[강한섭의 시네월드]「마이크로코스모스」

  • 입력 1996년 12월 11일 20시 16분


사람들은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는다. 스크린에서 사라진 기록영화들은 TV의 브라운관으로 자리를 옮겨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관객들의 잊혀진 습관을 단숨에 복원시킬 작품이 나타났다. 극소(極小) 또는 미소(微小)의 세계라는 뜻의 「마이크로코스모스」. 영화의 첫장면, 구름에서 초원까지 카메라가 숨막힐 정도의 속도로 급강하한다. 그러면 거기에 풀잎과 풀잎 사이의 공간이 나타나고 그 세계의 이상한 거주자들이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활동을 시작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정착해 살아온 곤충들이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영화를 만든 두명의 프랑스 생물학자 클로드 누리드사니와 마리 페레노는 단 한번도 곤충들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또 그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영화는 75분의 상영시간동안 곤충들의 모양, 색, 움직임 그리고 그들이 내는 숨소리와 발소리 날갯짓소리만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들려줄 뿐이다. 무선작동되는 마이크로 카메라를 곤충들이 숨쉬고 활동하는 풀잎에 은밀히 설치한 다음 곤충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촬영하였다. 영화는 곤충들을 예찬하지도 비평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이 영상과 소리가 관객을 흥분시키고 탄성을 지르게 만들며 결국에는 감동시킨다. 「마이크로코스모스」는 영화의 부제 「풀잎의 거주자들」이 뜻하는 대로 곤충을 관찰의 대상이 아닌 지구의 주인공으로 다룬 첫번째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3년간의 촬영과 반년의 후반작업 끝에 완성된 이 다큐멘터리는 어느 순간에 관객을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공포의 감정속으로 빠뜨리는 새로운 드라마의 장르로 변모하게 된다. 그 일등공신은 곤충들의 극소의 세계가 영사되는 스크린이라는 극대의 세계다. 지구의 가장 오래되고 작은 생명체들이 그 수천배의 크기로 확대되는 순간 영화는 컴퓨터그래픽의 인공영상이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생명의 경이로 가득 차게 된다. 「마이크로코스모스」는 곤충들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체계적인 지식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아이들의 자연과목 성적을 절대로 올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모든 어른들을 저절로 자연예찬론자로 만들어 버린다. 강 한 섭 (서울예전 영화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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