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임수]“한국이 美 산업 빼앗아”… 트럼프의 황당한 약탈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3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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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만큼 막말과 궤변이 화제가 되는 정치인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실이 아닌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트위터에 올려, 대통령 임기 마지막 달에는 트윗 471개에 ‘허위 정보’ 딱지가 붙어 공개 제한 조치를 받았다. 팬데믹 위기 때는 “백신이 없어도 결국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라질 것”이라는 비과학적 주장을 늘어놔 조롱거리가 됐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다수의 형사·민사 재판에 처해 있는 트럼프에게 미 법원은 재판 관련자들을 비방하거나 위협하지 말라며 세 차례 함구령을 내렸다.

▷그런데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국을 겨냥해 사실과 다른 발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지난달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왜 우리가 부유한 한국을 방어해야 하느냐”, “불안정한 위치에 4만 명의 병력을 두고 있는데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을 거의 내지 않고 있다” 등의 주장을 한 것이다. 하지만 CNN 방송이 “최소 32개의 오류를 확인했다”고 보도할 정도로 트럼프의 타임 인터뷰는 거짓투성이였다.

▷현재 주한미군은 2만8500명으로 4만 명이라는 숫자부터 사실과 다르다. 또 한국은 통상 인건비를 제외하고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40∼50%를 부담하고 있다. 특히 조 바이든 행정부와 협상을 통해 2021년 방위비 분담금을 13.9% 인상해 10억 달러 가까이를 냈고, 내후년까지 한국 국방비와 연동해 해마다 분담금을 올리기로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향해 방위비를 압박했던 트럼프가 공격 대상을 한국으로 옮기면서 근거 없는 ‘안보 무임 승차론’을 내세운 셈이다.

▷이어 트럼프는 11일 뉴저지주 대선 유세에서 “한국이 미국의 해운(shipping), 컴퓨터 등 많은 산업을 빼앗아갔다”며 “그들은 미군에 방위비를 낼 만큼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미국의 해운, 컴퓨터 산업을 뺏은 적이 없을뿐더러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조선, 반도체로 범위를 넓혀 봐도 억지스럽다. 중국 조선업이 3년째 한국을 제쳤고, 치열한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 한국 대표 기업이 미국에 4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한 상황에서 한국을 겨누는 건 황당하다. 결국 터무니없는 ‘산업 약탈론’까지 들이밀며 방위비 증액을 재차 압박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2015년 트럼프의 첫 대선 출마 선언 직후 인터뷰와 공개 발언, 트윗 등을 점검해 그의 막말과 거짓 주장이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막말을 던져놓고 반응이 좋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고, 선동적인 거짓말을 뱉은 뒤엔 진실처럼 포장해 지지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사상 최대 대미 무역흑자에다 방위비 분담 문제가 걸려 있는 우리로선 트럼프의 ‘거짓말 베팅’, ‘막말 베팅’의 강도가 더 높아질까 우려스럽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도널드 트럼프#막말#궤변#약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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