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빗물이”… 싸이월드, 인소 감성 노린 ‘선재 업고 튀어’ [선넘는 콘텐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3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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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고등학생 남주인공 류선재(변우석·오른쪽)가 파란색 우산을 씌워주고, 여주인공 임솔(김혜윤)은 선재를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다. 두 사람은 비가 오는 날에 돌아가며 서로에게 우산을 씌워준다. tvN 제공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고등학생 남주인공 류선재(변우석·오른쪽)가 파란색 우산을 씌워주고, 여주인공 임솔(김혜윤)은 선재를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다. 두 사람은 비가 오는 날에 돌아가며 서로에게 우산을 씌워준다. tvN 제공

“어느새 빗물이 내 발목에 고이고, 참았던 눈물이 내 눈가에 고이고.

2008년 비가 쏟아지는 고등학교 교정. 남주인공 선재(변우석)가 여주인공 솔(김혜윤)에게 파란색 우산을 씌워주자 가수 윤하의 곡 ‘우산’이 흘러나온다. 이 곡은 에픽하이와 윤하가 2008년에 함께 부른 음악으로 당시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선재와 솔의 로맨스가 펼쳐지는 드라마에선 윤하가 2014년 홀로 부른 곡이 흘러나오지만 2000년대 감성을 살리기엔 부족함이 없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만 같다.

선재와 솔이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은 로맨스물의 전형이다. tvN 제공
선재와 솔이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은 로맨스물의 전형이다. tvN 제공

● 2000년대 싸이월드 감성 노린 ‘선업튀’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는 2023년을 살아가던 솔이 15년 전인 2008년으로 회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돌 선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2019년부터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된 김빵 작가의 원작 웹소설 ‘내일의 으뜸 : 선재 업고 튀어’에선 솔이 6년 전으로 회귀했다. 비교적 최근 이야기를 다룬 웹소설과 2000년대를 다룬 드라마는 배경이 다르다.

그 덕에 드라마에서 솔은 MP3에 브라운 아이즈 ‘점점’(2002년), 김형중의 ‘그랬나봐’(2003년)를 담아 듣는다. 곳곳에서 러브홀릭 ‘러브홀릭’(2003년),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2009년)가 흘러나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 드라마에서 솔은 카페 ‘캔모아’에서 팥빙수를 먹으며 친구와 수다를 떤다. 선재의 ‘싸이월드’를 찾아가 일촌 신청을 한다. 컨버스 신발과 지샥 손목시계도 등장. 2008년을 배경으로 한만큼 중국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수영 선수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환이 등장하는 점도 시청자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선재 업고 튀어’는 2000년대를 배경으로 복고 감성을 재현했다. tvN 제공
‘선재 업고 튀어’는 2000년대를 배경으로 복고 감성을 재현했다. tvN 제공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은 4.8%다. 온라인 경쟁력 분석기관인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펀덱스가 발표한 5월 1주차 TV-OTT 드라마 화제성 1위에 올랐다. 온라인에서 ‘선친자’(선재에 미친 자)란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 것도 복고 감성을 살렸기 때문이다. 하이틴 로맨스를 좋아하는 10, 20대뿐 30, 40대까지 불러 모으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쿠팡플레이 드라마 ‘소년시대’가 1980년대를 배경으로 중장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면 ‘선재 업고 튀어’는 2000년대를 배경으로 30, 40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선재와 솔이 함께 우산을 쓰는 장면은 2002년 귀여니가 발표한 동명의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늑대의 유혹’(2004년)을 생각나게 한다”며 “1980, 90년대가 배경인 ‘응답하라 시리즈’가 다루지 못한 2000년대를 노려 각색한 전략이 적중했다”고 했다.

웹소설 ‘내일은 으뜸’ 표지. 카카오페이지 제공
웹소설 ‘내일은 으뜸’ 표지. 카카오페이지 제공

● ‘늑대의 유혹’처럼 그 시절 감성 녹여

“뜬금없이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6년 전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 꿈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건 그냥,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었다. 내가 앞으로 벌어질 6년간의 일들을 알고 있다는 것만 빼면.”

원작에서 솔은 6년 전으로 회귀한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처럼 원작은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앞으로 닥칠 문제를 해결하는 ‘회귀물’이다. 요즘 국내 웹소설에서 보통명사로 취급받는 장르다. 더욱이 미래를 알고 있는 만큼 솔은 선재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곳곳에서 진심으로 드러낸다. 솔이 두려워하는 장면은 섬세한 문체로 표현한다.

“어떤 기대로, 간절한 바람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꿈이라도 좋으니 선재를 만난다면 알려 주고 싶었다. 이 세상엔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단지 그 사람들은 나처럼 목소리가 크지 못했을 뿐이라는 걸. 넌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걸.”

드라마에서 선재는 수영선수로 활동하다 다친다. tvN 제공
드라마에서 선재는 수영선수로 활동하다 다친다. tvN 제공

솔은 선재에게 닥칠 위험을 경고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불면증이 있어 수면제를 찾겠지만 버티기 힘들더라도 그날만은 제발 아무 약도 먹지 말아라”는 편지를 써서 전달하려 했지만, 문장이 삭제돼 있다. 미래를 경고하지 못한 설정인 셈이다.

웹소설 특유의 감성이 담긴 점도 눈여겨볼 점이다. “선재가 강아지 상이라면 백인혁은 고양이 상이었는데, 이러나저러나 둘 다 숨이 막힐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있자니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억눌리는 느낌이 들었다”는 솔의 독백을 읽고 있으면 2002년 귀여니가 발표한 소설 ‘늑대의 유혹’이 생각난다. 고등학생들이 자주 쓸법한 일상적인 욕설을 거침없이 쓰는 점도 순문학 소설과 다른 점이다.

드라마는 싸이월드 등 옛감성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tvN 제공
드라마는 싸이월드 등 옛감성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tvN 제공

● ‘팬덤 문화’를 보편적 사랑 이야기로 확장해

드라마에서 선재가 소속된 그룹명은 ‘이클립스’지만, 원작에선 ‘감자전’이다. 원작에선 선재가 그룹에 중간에 합류해 그룹의 이미지를 망친다고 비난을 받지만, 드라마에선 원래부터 그룹 멤버였다. 원작에선 선재가 아이돌 데뷔를 하지 못해 고생하는 장면이 들어갔지만, 드라마에선 선재가 수영선수였다가 부상으로 그만두고 아이돌이 됐다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원작에서 현재 시점 솔의 직업은 방송사 조연출이지만, 드라마에선 취업준비생으로 바뀌어 취업이 힘든 한국 청년들의 퍽퍽한 현실을 강조했다.

‘선재 업고 튀어’ 드라마 포스터. tvN 제공
‘선재 업고 튀어’ 드라마 포스터. tvN 제공

드라마에서 솔이 장애인인 점도 원작과는 다른 점이다. 원작은 솔이 공부를 못하고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만 나오지만 드라마에선 솔의 좌절을 극대화하기 위해 새롭게 설정을 추가한 것이다. 드라마에서 솔이 과거 짝사랑했던 김태성(송건희)이라는 캐릭터가 새롭게 생기며 삼각관계가 형성된 점도 다른 점이다. 원작에서 솔이 선재를 사랑하는 심리가 두드러진다면, 드라마에선 선재와 솔이 서로를 아끼고 지키려는 상호 작용이 돋보인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이돌 팬덤 문화만 담은 게 아니라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로 각색한 덕에 대중성을 확보했다”고 했다.

드라마의 해외 반응도 뜨거운 편이다. 드라마는 세계 영화 비평 사이트 IMDb 평점 9.2를 기록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 대중문화에 익숙한 동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2000년대 감성을 건드린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점도 눈여겨볼 점”이라고 했다.

드라마 ‘무빙’을 본 뒤 스마트폰을 켜고 원작 웹툰을 정주행한 적이 있나요?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가상 캐스팅’을 해본 적이 있나요? ‘선넘는 콘텐츠’는 소설, 웹소설, 만화, 웹툰 등의 원작과 이를 영상화한 작품을 깊이 있게 리뷰합니다. 원작 텍스트가 이미지로 거듭나면서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재밌는 감상 포인트는 무엇인지 등을 다각도로 분석합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선재 업고 튀어#로맨스#싸이월드 감성#팬덤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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