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댕이’… 안으면 포근해, 마음이 편안해[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4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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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증되는 개의 치유 효과
개와 교감할 때 뇌파 활동 변화… 휴식 효과-집중력 향상에 도움
소아암 병동 등에서 동물치료 활용… 수술 후 환자 회복과 정서에 좋아
명랑한 모습 보면 쾌활함 전이돼… 사람 스트레스 물질 ‘개코’ 감지도

게티이미지 코리아
게티이미지 코리아
“내 배 한번 쓰다듬어 볼래?”

지난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장화 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에 등장하는 강아지 캐릭터 페로의 꿈은 심리치료견이다. 페로는 사람들이 우울할 때 자신의 볼록 나온 배를 쓰다듬으면 기분이 나아지게끔 돕고 싶어 한다. 정작 주인에게 버려져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남의 집 현관 밑에 얹혀사는 처지지만 큰 눈망울을 반짝이며 무한 긍정 에너지를 발산한다. 주인공 장화 신은 고양이 푸스도 두려움에 압도된 순간 페로의 보드라운 털 온기로 위기를 넘긴다.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뿐 아니라 현실의 반려동물도 이 같은 위로를 줄 때가 종종 있다. 기운 없이 축 처져 있으면 먼저 다가와서 몸을 비비거나 온기를 나눠 주며 위로를 건넨다. 개나 고양이 털을 쓰다듬고 있으면 묘하게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반려견과 교감할 때 우리 몸에 과학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증거는 속속 발견되고 있다. 꼭 반려견과 집에 같이 살 때만 나타나는 효과가 아니다. 그저 짧은 시간 개와 교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반려견의 보드라운 털과 천진난만한 움직임이 인간에게 주는 치유 효과에 대해 알아보자.

● 개와 놀면 명상하는 것 같은 효과

인간이 개와 함께한 세월은 약 3만 년으로 추정되지만 둘 사이에 일어나는 교감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고양이나 말, 새 같은 다른 동물과 인간의 교감에 관한 연구도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 사이 개와 시간을 함께 보낼 때 실시간으로 우리 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밝혀내는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건국대 바이오힐링융합학과 연구팀 실험 장면. 유온유 연구원 제공
건국대 바이오힐링융합학과 연구팀 실험 장면. 유온유 연구원 제공
건국대 바이오힐링융합학과 연구팀은 올 3월 이와 관련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게재했다. 연구팀은 뇌파 검사(EEG) 장치를 통해 개와 교감할 때 인간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아봤다. 개와 함께 놀아 주기, 셀카 찍기, 쓰다듬기, 빗질하기, 먹이 주기, 포옹, 산책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동안 뇌파 변화도 살펴봤다.

사람이 개와 놀면 정서적으로 안정됐을 때 나오는 뇌파인 알파파와 집중할 때 나오는 베타파가 동시에 증가했고, 개를 쓰다듬을 때는 베타파가 증가했다. 유온유 연구원 제공
사람이 개와 놀면 정서적으로 안정됐을 때 나오는 뇌파인 알파파와 집중할 때 나오는 베타파가 동시에 증가했고, 개를 쓰다듬을 때는 베타파가 증가했다. 유온유 연구원 제공
그 결과 개와 놀아 주거나 산책할 때 뇌의 알파파가 증가했다. 알파파는 휴식을 취하거나 정서적 안정 상태에 있을 때 발생한다. 깊은 명상에 들어간 상태에서도 나타난다. 또 개를 쓰다듬거나 빗질하거나 놀아 줄 때는 베타파가 높게 증가했다. 베타파는 집중력이 올라갈 때 나타난다. 실험 참가자들은 개와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주관적으로 느끼는 스트레스나 피로, 우울한 기분 등이 나아졌다고 보고했다. 연구를 주도한 유온유 연구원은 “개와 함께하는 활동은 뇌를 촉진해 더 강한 이완과 정서적 안정을 느끼게 해줄 뿐 아니라 집중력과 창의성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스위스 바젤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실험 결과도 이와 비슷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개와 교감하는 동안 인간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기록했다. 개를 멀리서 지켜보기, 가까이에 눕혀 놓기, 무릎에 올려놓기, 무릎에 앉히고 쓰다듬기와 같이 점점 접촉 강도를 높여 가며 비교해 봤다.

그 결과 그냥 바라볼 때보다 가까이에서 적극적으로 교감할수록 전두엽이 활성화됐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가 전두엽의 주의력 조절, 문제 해결, 정서 처리 기능에 두루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치료견 만나면 고통 잊고 회복 빨라져

해외에서는 동물을 활용한 치료 활동인 동물매개중재(Animal-Assisted Intervention)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훈련된 치료견들이 수술 전후나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환자들을 직접 방문해 교감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고통을 덜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특히 소아암 병동 환자나 정서적 안정이 중요한 정신의학과 그리고 재활의학과 치료 등에 두루 활용된다. 동물을 무서워하거나 동물에 대해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에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내에서도 일부 심리상담센터나 복지관, 병원 등에서 동물을 활용한 치료를 도입하는 곳이 조금씩 늘고 있다.

특히 어린이 환자가 치료견을 만나면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에서 평온함을 얻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완화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 파비아대 연구팀은 전신마취 수술을 받은 3∼17세 환자가 치료견 골든리트리버와 20분간 놀고 난 뒤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이들의 뇌파, 심박수, 혈압,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 등을 기록했고 주관적으로 느끼는 통증과 스트레스 지수도 측정했다.

그 결과 이 아동 및 청소년 환자들은 수술 후 의료적 처치만 받은 다른 아동 및 청소년과 비교해 마취에서 깨어난 이후 뇌와 자율신경계 활동이 더 빠르게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통증 민감도도 상대적으로 낮았고 졸음이나 무기력감도 훨씬 덜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슷한 조건의 다른 여러 실험에서도 이 같은 결과가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동물 인형이나 로봇 개 등의 효과를 비교해 봤지만 치유 효과는 오직 살아있는 생명체일 때만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 명랑함 전달되는 ‘거울 뉴런’ 영향?

왜 동물과 교감한 환자에게 이런 변화가 나타나는지 그 메커니즘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학자들이 추측하는 몇 가지 이유 가운데 뇌의 거울 뉴런(mirror neuron) 활동이 있다. 거울 뉴런은 보거나 듣기만 해도 대상이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궁극적으로는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세포다. 다른 사람이 하품하는 걸 보고 따라서 하품을 했다거나, 누군가 책상다리에 발가락을 부딪쳐 얼굴을 잔뜩 찡그리는 걸 보고 내 발가락이 아픈 것처럼 느껴진 적이 있다면 거울 뉴런이 활동한 것이다. 드라마에서 배우가 우는 장면이 나올 때 따라 울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거울 뉴런은 이탈리아 신경심리학자 자코모 리촐라티 파르마대 생리학연구소 교수가 1990년대에 처음 발견했다. 리촐라티 교수는 처음에 원숭이를 대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원숭이가 땅콩을 직접 집을 때 활성화되는 뇌세포와 다른 사람이 땅콩을 집는 모습을 볼 때 활성화되는 뇌세포가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거울 뉴런이라 명명했다.

사람 뇌에서는 거울 뉴런 활동이 원숭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방면으로 일어나는 것이 관찰됐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해 뇌 활동을 촬영한 실험에서는 다른 사람이 웃는 것을 볼 때, 자신이 실제로 웃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유사하게 활성화됐다. 다른 사람이 신체적 고통을 당하는 것을 봤을 때도 자신이 아플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됐다.

귀엽고 천진난만한 동물을 볼 때도 마찬가지로 거울 뉴런이 역할을 한다고 보기도 한다. 강아지가 사람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눈을 맞추고, 또는 입을 약간 벌리고 미소를 짓고, 반가움의 표시로 꼬리를 흔드는 것 같은 명랑한 행동을 지켜볼 때 인간 뇌에서 강아지의 쾌활한 감정에 대한 공감이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울하거나 불안할 때 동물과 교감하면 기분이 나아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개는 언제 인간에게 위로가 필요한지 알아차릴 수도 있다. 후각이 뛰어난 개는 스트레스나 우울감 등으로 인해 인간 몸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를 탐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체내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성분같이 평소와 다른 화학물질이 분비되는데 개는 이런 변화를 냄새로 감지한다.

영국 벨파스트 퀸스대 연구진에 따르면 개가 사람 땀이나 호흡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로 스트레스와 관련한 화학물질을 찾아낼 확률은 93.8%에 달했다. 기분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 문득 반려견이 다가와 애교를 부린다면 평소와 다른 냄새를 맡고 주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확인하러 온 것일지 모른다. 이 연구진은 “실험에 참가한 개는 별도 훈련을 받은 견종이었지만 일반 반려견도 사람이 스트레스 받을 때 나타나는 냄새 변화를 충분히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개와 교감#동물치료#쾌활함 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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