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한국의 보수주의자’로 독립 타이틀이 붙은 조지훈 선우휘 연구는 이 잡지가 지속적으로 게재할 ‘한국현대사와 지식인’ 시리즈의 첫회. 논문들은 조지훈 선우휘의 일대기가 아니라 이른바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는 두 사람의 사상이 어떤 성장배경이나 지적 교유를 통해 길러졌으며 그들의 지적 발언이 한국현대사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라는 ‘지성사(知性史)’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역사비평’의 인물 연구 기획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그간 한국현대사 연구에서 ‘인물’에 초점을 맞춘 작업이 드물었기 때문. 이는 텔레비전의 역사드라마나 뮤지컬 등이 ‘인물’에 초점을 맞춰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국민들에게 ‘역사 재교육’을 하는 현실과도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역사비평’ 편집진은 “게재하고 싶은 인물들의 리스트는 쌓여있지만 써줄 수 있을만한 필자가 아직 확보되지 않아 공개를 못한다”며 “그러나 필자들에게 집필시간을 1, 2년씩 주는 한이 있어도 인물 연구를 계속 실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역사연구에서 왜 인물연구가 중요할까? 최근 ‘명성황후와 대한제국’을 펴내 명성황후의 정치적 역할 등을 조명한 서울대 한영우 교수(국사학과)는 “역사라는 거대한 그림을 그리는데 인물연구는 그 최소단위인 점을 찍는 일과 같다”며 “그런 인물 연구 결과가 쌓여있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 역사학은 아직 초창기”라고 지적했다. 최근 역사학계에서 서양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한국사 연구의 미시사적 보완 필요성’도 인물연구를 통해 풀어나갈 수 있다.
인물연구는 해당 인물이 맺고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 등을 탐구함으로써 한 시대를 보다 입체적이고 세밀한 그림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역사학뿐 아니라 학문 전분야에서 인물연구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는 우선 실명비판이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때문.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단행본과 잡지 형식으로 발간되는 ‘인물과 사상’을 통해 이례적으로 실명 인물 비판을 시도하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한국사회에서는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건드리기 어렵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기록물의 빈약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대사 인물연구자는 “연구 대상 인물들이 펴낸 자서전이나 전기 등이 있어도 공과(功過)가 솔직하게 다뤄진 것은 찾기 어렵고 중요한 부분일수록 왜곡이 많다”고 말했다.
한영우 교수는 “조급하게 한 시대를 조망하는 거대이론을 내놓으려는 욕망이 역사적 인물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연구보다는 ‘16세기 사림’이니하는 큰 그룹연구로 치우치게 하는 경향을 낳는다”며 “연구자들의 자세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