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외교부 반성 아직 멀었다

  • 입력 2001년 11월 7일 19시 39분


한국인 처형 사건이 나라 망신으로 비화된 근본 이유는 우리 외교관들이 재외국민 보호를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대충대충 해왔기 때문이다. 마약사범 신모씨가 중국 당국에 체포됐을 때부터 담당직원들이 동포가 처형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에서 성의를 갖고 대처했다면 그의 처형사실을 뒤늦게 알았느냐 몰랐느냐, 관련문서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한심스러운 소동이 벌어질 이유가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본란을 통해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책임자 처벌과 함께 외교통상부의 수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었다.

어제 한승수(韓昇洙) 외교통상부 장관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고 영사업무 개선책을 내놨으나 소나기를 피하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한 장관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관련자를 엄중 문책할 예정이라고 말했으나 현재까지 외교부는 실무선 5, 6명에 대한 징계만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 분노가 그 정도의 처벌로 누그러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외교부는 또 한번 중대한 오판을 하는 것이다. 외교부가 발표한 개선책에는 인력 충원 등 외교부 단독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대책이 들어 있어 실현 가능성 또한 크지 않다. 공사나 공관차석에게 총영사 또는 수석영사 겸임 발령을 내린다는데 과연 업무가 크게 늘어난 이들이 신이 나서 적극적으로 영사업무를 수행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런 정도의 사과와 대책으로는 흐트러진 외교관들의 자세를 다잡을 수가 없다. 채찍과 당근을 총동원해 영사업무 담당자들의 획기적인 자세 변화와 재외국민 권익보호를 위한 굳은 다짐을 끌어내야 한다. 처벌은 실무자급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재외국민 보호를 태만히 한 책임이 이토록 큰 것임을 모든 외교관이 절감할 수 있을 정도의 고위직이 포함돼야 한다. 한 장관도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으니 이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영사업무 종사자들이 어려움에 빠진 재외국민 곁으로 항상 달려갈 수 있는 시스템을 즉각 구축해야 한다. 지금처럼 재외국민이 휴일에 ‘비상’ 상황을 맞아도 많은 공관직원들은 자동응답전화기만 틀어놓고 유유히 ‘휴일’을 즐기는 상황에서는 설사 인력을 충원한다 해도 서비스 개선은 어렵다.

관련국과의 협상이 전제조건이기는 하지만 중국처럼 재외국민과 교민이 급증하는 지역에는 외교부 인력배치를 조정해 영사업무 담당자를 크게 늘리는 것도 시급하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