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파문 수습 못한다…꽁치외교-ABM파문 닮은꼴

  • 입력 2001년 10월 13일 18시 55분


“올 2월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조약 파문’의 교훈을 너무 쉽게 잊어버렸다.”

최근 일본과 러시아간의 남쿠릴수역 제3국 조업금지 합의에 따른 ‘꽁치 파문’으로 비난 여론이 거세어지자 한 당국자가 털어놓은 말이다.

그는 “두 사건의 전개과정이 여러 면에서 비슷한데도 정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우선 두 파문의 진원지가 외신 보도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ABM 파문은 미국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시작됐고, ‘꽁치 파문’은 10월6일 일본 언론들이 일-러간의 잠정합의 사실을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정부의 1차적 대응은 예외 없이 보도 내용의 부인이었다. 그러나 이는 파문의 진화보다는 정부의 상황인식이 안일하기만 하다는 비판만 낳았다.

정부는 ABM 파문 당시 “한-러 공동성명 문구는 과거 미국 정부도 동의한 것으로 아무 문제 없다”고 해명함으로써 미국의 공화당 보수정권 출범이라는 새로운 정세에 대한 인식 부족을 스스로 드러냈다. 꽁치 파문도 “우리의 어업 이익을 과연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한 본질적인 대응보다 ‘일-러가 아직 합의하지 않았고 구체적 내용은 파악되지 않았다’는 원론적 해명으로 여론을 더 악화시켰다.

다른 당국자는 “외교적 파문이 터졌을 때 사태를 종합판단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해 가는 시스템이 부재하다”며 “담당자는 ‘나도 할 만큼 했다’고 변명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정부의 잘못된 대응이 정상회담이라는 ‘최후의 외교적 카드’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이 당국자는 말했다.

윤영관(尹永寬) 서울대 교수(외교학과)는 “정부가 외교적 위기를 적극적이고 전략적으로 풀어가기보다는 관행적 타성으로 대응하는 느낌”이라며 “비판여론을 두려워만 하지 말고 국민 여론을 어떻게 활용해 위기를 타개할 것인가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파문이 커진 뒤에야 전문가를 찾아 대응책을 논의하는 ‘사후 처방’보다 중요한 현안에 대해 미리 민관의 지혜를 모으는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ABM 파문과 꽁치 파문에 대한 정부 대응 비교
항 목ABM 파문꽁치 파문
사건 발단한-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ABM조약의 보존 강화’ 문구 포함(2.27)일-러가 남쿠릴수역에서 제3국 조업 금지 잠정 합의(9월 중순)
파문 확산미 뉴욕타임스, ‘한국이 NMD 반대하고 러시아에 동조했다’고 보도(2.28)일 언론, ‘일-러간 제3국 조업 금지 잠정합의’ 보도(10.6)
정부의 1차 대응 문구는 미국도 과거 동의했던 것으로 문제 없다(2.28 보도자료)일-러 최종합의 않았다,‘한국이 뒤통수 맞았다’고 비관적 보도할 필요 없다(10.7 정부 당국자 브리핑)
정부의 2차 대응 미국의 NMD 추진을 사실상 인정하는 정부 공식입장 표명(3.2 외교부장관 발표)협상과정 적극 설명하며 ‘정부가 앉아서 당한 것 아니다’고 강조(10.11 정부 당국자, 10.12 국정홍보처장)
최종대응한미정상회담(3.8)한일정상회담(10.15 예정)
결과공동성명에서 NMD 입장 정리, 한미간 대북공조 우려 증폭정상회담에서 해결책 모색 예정, 성과 없을 경우 양국관계 더욱 악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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