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敵을 줄여라” 美 화해外交 본격 시동

  • 입력 2001년 9월 28일 19시 02분


테러 참사를 계기로 미국의 외교정책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미국은 테러 지원국으로 분류해 ‘불량국가(rogue state)’로 폄훼했던 국가들에 손을 내미는가 하면 국제무대에서 오만하게 비칠 정도로 독선적이었던 태도도 누그러뜨리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변화가 일시적인 것인지, 근본적인 외교정책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인지는 좀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일단 국제사회에서 긍정적으로 비쳐지고 있다.

▽테러지원국에 대한 정보 제공 요청〓27일 미 보스턴글로브지에 따르면 미국은 7개 테러지원국 가운데 리비아 시리아 수단 이란 등 4개국에 테러조직에 관한 정보 제공을 요청했다. 이 중 리비아 시리아 수단과는 지난주 영국 런던에서 고위급 대표단 회의를 갖고 이미 상당한 정보를 제공받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미국은 이란에 대해서는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조직인 알 카이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가니스탄 내 마약조직에 관한 정보를 요청했다. 미국은 심지어 북한에도 테러 관련 정보 제공을 요청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한 관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가 이런 일을 생각할 수 있었겠느냐”며 “미국의 협력 요청을 받은 국가들로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할 좋은 기회를 맞은 셈”이라고 말했다.

▽외교관계 변화〓미국은 26일 체첸공화국에 대해 국제 테러조직들과의 관계를 끊고 러시아가 제의한 협상에 응하라고 촉구했다고 워싱턴포스트지가 27일 보도했다. 이는 얼마 전까지 체첸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며 러시아를 비난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 그동안 유혈 충돌을 빚어온 체첸에 대해 72시간의 말미를 주며 평화협상에 나오도록 촉구했다.

미국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러시아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미국에 기지 사용과 영공 통과를 허용한 뒤에 나온 것이어서 러시아와의 교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또 그동안 모든 국제문제에 자신들이 간여해야만 하는 듯한 오만함을 보여왔으나 지금은 상당한 자제를 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정부는 가능한 한 여러 개의 외교 및 군사전선을 만들려고 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예정됐던 서울 도쿄(東京) 베이징(北京) 방문을 취소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전했다.

미국 정부가 ‘일방주의’ 대신에 ‘상호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것도 테러사건 이후의 변화로 꼽힌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파키스탄으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는 대신 여러 가지 외교적 경제적 혜택을 주기로 했다.

미국이 연체된 유엔분담금을 최우선 순위로 갚기로 결정한 것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에 대해 휴전하도록 강한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도 미국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진녕기자>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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