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내정자와 제임스 켈리 동아태담당 차관보 내정자 등은 앞으로 미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인물들.
아미티지 내정자는 파월 장관과 호형호제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앞으로 한반도정책을 총괄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켈리 내정자도 아시아주둔 미군 재편 방안을 오랫동안 연구해와 주한미군 변화에 실질적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내정 사실조차 공식 발표되지 않은 민간인 신분이다. 이들 외에 에드워드 제리지엔 국무부 정무차관 내정자,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내정자, 토컬 패터슨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내정자도 같은 처지.
외교부로서는 이들에게 한국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의 성과와 그에 따른 북한의 변화 등을 충분히 설명해 미측의 대한반도정책 수립에 참고가 되도록 해야 하지만 그 만남의 형식이 ‘정부 대 민간인’의 양상을 띠게 돼 모양이 좋지 않다.
게다가 “한국 정부가 햇볕정책이란 용어를 쓰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는 아미티지 내정자의 발언이 최근 국내에 상당한 파문을 불러일으키자 이들 내정자들조차 이 장관 등과의 만남을 은근히 꺼리고 있다고 정부 고위당국자가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들은 앞으로 거쳐야 할 의회 청문회에서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한국 정부 대표단을 만났는가’라는 지적을 받을까 우려하고 있다”며 “만난다면 그 형식을 가급적 비공식화하고 내용도 철저히 비밀로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과 함께 방미하는 임성준(任晟準) 차관보와 오래 전부터 친분관계를 맺어온 패터슨 내정자조차 이런 이유로 한국측과의 면담에 소극적이라는 것.
그러나 정부는 미국 신행정부의 고위관료 임명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이 장관의 방미가 한미간의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 한국의 대북정책을 미측에 설명하는 자리라는 인식 아래 비공식적으로 이들 내정자들과 적극 대화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외교적 모양새보다는 정책적 실익이 더 중요하다”며 “이들 내정자들에게 한국의 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은 미국내 지한(知韓) 인사를 만든다는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