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카오스의 날개짓'

  • 입력 2001년 1월 12일 19시 05분


나라꼴이 그야말로 카오스 그 자체다. 무차별적 약육강식의 무질서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있는 것인데 요사이 우리 정치는 오히려 사회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카오스가 원래 ‘크게 벌린 입’, 즉 ‘괴리’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온 말임을 생각하면 정당 간의 ‘의견 차이’가 나라 전체를 혼돈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것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리라.

카오스 이론은 원래 물리학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화학반응이나 기상현상은 물론 전염성 질병의 역학, 주식시장의 변동, 신경계의 회로망 구성에서 각종 사회현상들의 분석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응용되고 있다.

원래 수학자이지만 어찌 보면 인문학자의 냄새가 더 풍성한 김용운 교수의 저서 ‘카오스의 날갯짓’에는 이 혼돈의 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가 음미해봐야 할 내용들이 언뜻 어지럽게 보이나 일관된 논리체계를 따라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책의 구성마저도 마치 복잡계의 논리를 따른 듯 흥미롭다.

저자는 이 책에서 록인(lock―in) 이론을 비롯한 다양한 복잡계 이론들을 원형사관, 노장 사상, 불교철학 등과 접목시켜 우리 사회의 역사와 병폐를 해부한다. 그리곤 단순히 ‘고인 물’ 또는 뿌리 채 뒤흔드는 혁명보다는 적절한 요동과 그런 자극에 민감하게 변화할 수 있는 구조개혁을 미래에 대한 우리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수학적인 개념의 카오스가 실제 자연계에 어느 정도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 실체와 중요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밀턴이 이미 300여 년 전 ‘실락원(1667)’에서 예측한 일이다. “카오스의 심판관이 군림하며 문제를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의 곁에 앉아 있는 더 높은 심판관인 ‘우연’이 모든 걸 지배한다.”

카오스는 ‘우주’ 또는 ‘질서’를 의미하는 코스모스의 반대 개념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카오스의 가장자리’에 서면 변화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으로 인해 훨씬 더 풍요로울 수 있다.

카오스 이론에 따르면 나비의 날갯짓도 초기 조건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끝내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데, 요즘 우리 사회의 정치적 변화는 엊그제 내린 폭설 마냥 거칠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 정치가 지금 카오스의 가장자리에서 ‘질서를 낳는 혼돈’의 진통을 경험하고 있는 것 뿐이길 진심으로 빌어본다.

최재천(서울대 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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