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첫 評議]진행 빨라도 총선前 결정 힘들듯

  • 입력 2004년 3월 18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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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에 쏠린 국민의 눈.’ 18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첫 평의를 가진 헌법재판소에 보도진이 몰렸다. 이날 한 헌법재판관이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출근하는 모습.    -김동주기자
‘헌법재판소에 쏠린 국민의 눈.’ 18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첫 평의를 가진 헌법재판소에 보도진이 몰렸다. 이날 한 헌법재판관이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출근하는 모습. -김동주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재판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가 첫 변론기일을 30일로 정한 것은 통상적인 헌재 사건 진행 절차에 비해 매우 빠른 것이다. 사건접수(12일)에서 첫 평의(評議·18일)를 거쳐 첫 기일(30일)까지 단 18일이 소요되는 것. 2차 평의도 25일로 결정됐다.

일반적인 헌재 사건의 경우 사건 접수에서 첫 평의까지만 통상 1, 2개월이 걸린다는 게 헌재측의 설명. 헌재 관계자는 “구두변론을 원칙으로 하는 탄핵심판 사건을 서면심리만 진행하는 헌법소원이나 위헌법률 심판 사건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사건의 진행이 이례적으로 빠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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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가 이렇게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이번 사안의 중대성과 시급성 때문이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태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탄핵 가부를 결정해 국정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 노 대통령 변호인단의 집중심리방식 도입 요구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30일 첫 변론기일을 마치면서 매일 재판을 여는 등 특별한 집중심리 절차를 채택하지 않는 한 4·15총선 이전에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노 대통령의 출석이 이뤄질지 불투명한 데다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쟁점도 다양해 한두 차례의 재판으로 변론이 종결되기 힘들다. 변론이 종결되더라도 재판관들의 최종 평결을 거쳐 결정문 초안을 작성하고, 다시 재판부의 검토를 거쳐 최종 결정문을 작성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 같은 전체 과정을 보름 만에 끝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이렇게 되면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民意)’가 헌재의 최종 결정에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헌재가 매일 재판을 진행하는 방식의 집중심리 절차를 택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헌재는 실제 1998년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 탄핵사건 재판의 집중심리 사례를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백악관 인턴인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사건에 연루됐던 클린턴 전 대통령은 위증과 사법방해 행위 등의 사유로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됐으나 미국 상원은 18일 동안 매일 심리를 열어 탄핵안을 부결시켰다.

헌재는 첫 변론기일 이전까지 노 대통령 변호인단과 소추위원인 국회 법사위원장, 법무부 장관 등으로부터 답변서를 제출받아 검토하는 한편 외국 사례 연구도 계속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또 향후 평의와 재판 과정의 집중심리 여부도 신중히 검토할 계획이어서 앞으로 헌재의 움직임에 더욱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헌법재판 용어▼

▼평의▼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이 참석해 사건 심리에 필요한 절차를 논의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말한다. 헌재는 매주 목요일에 평의를 해 왔는데 올해부터 2주에 한번씩 하고 있다. 재판관들이 합의할 경우 평의 개최 간격은 바뀔 수 있다. 평의는 주심 재판관이 사건에 대한 검토내용을 요약해 발표하고 다른 재판관들이 각자의 의견 등을 개진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건에 대한 결정도 재판관들의 평의에서 이뤄진다. 주심 재판관은 평의에서 나온 재판관들의 다수 의견을 기초로 결정문 초안을 작성한다.

▼집중심리▼

형사소송법상 하나의 사건이 끝날 때까지 공판의 심리를 계속적·집중적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 사건의 심판을 지체 없이 하여 형사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해 공판 기일은 될 수 있는 한 짧은 기간 안에 계속 열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결정의 종류=탄핵심판 사건의 종국(終局·최종)결정에는 각하, 기각, 인용 등 세 종류가 있다.

▼각하▼

심판청구가 이유 있는지 따져 볼 필요도 없이 법률이 정한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내리는 결정이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이라크 파병안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해 요건 미비 등을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탄핵심판에서도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각하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일부 헌법학자들은 헌재가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절차상의 흠을 이유로 각하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가능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기각▼

심판사건의 본안(내용) 판단을 통해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국회가 제시한 탄핵소추 사유를 실질적으로 심사해 헌법이 정하고 있는 탄핵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할 경우 기각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인용▼

본안 판단을 통해 탄핵심판 청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정문에는 “피청구인 OOO를 OOO직에서 파면한다”는 형식으로 기록한다. 청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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