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 총재직을 사퇴한 DJ는 88년 4월 13대 총선에서 ‘전국구 11번’을 맡아 배수의 진을 친 끝에 평민당을 제1야당으로 만드는 데 성공해 기사회생했다.
이후 90년 3당합당이 이뤄지자 DJ는 91년 평민당 간판을 내리고 재야세력들을 끌어모아 ‘신민주연합’을 재창당한다. 이어 9월에는 원내 7석의 ‘꼬마 민주당’과 통합해 민주당을 출범시켜 이기택(李基澤)씨와 공동대표체제로 92년 14대 대선에 도전했으나 다시 대권 삼수에 실패한다.
DJ당 연표 87년 11월 평화민주당 창당 12월 13대 대선 패배 88년 4월 13대 총선에서 제1야당 부상 91년 4월 3당합당에 맞서 신민주연합 창당 9월 ‘꼬마 민주당’과 합당, 민주당 창당 92년 12월 14대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 95년 9월 정계복귀 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97년 12월 15대 대통령 당선 2000년 1월 새천년민주당 창당 2001년 11월 민주당 총재직 사퇴
대선 직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DJ는 아태평화재단을 창설, 야인(野人)으로 2년여를 보냈으나 95년 지방선거 공천문제로 이기택씨와의 불화가 불거지자 민주당을 분당시키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총재직에 올랐다.
97년 15대 대선에서 네번째 도전 만에 당선된 그는 2000년 4·13총선을 앞두고 국민회의를 새천년민주당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하지만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새로 등장한 초재선 의원들이 DJ 측근들을 겨냥해 벌인 정풍운동의 후유증 때문에 결국 지난해 11월 총재직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자신의 아들들의 비리의혹이 전면에 부상하고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렸던 최측근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마저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면서 DJ 본인마저 탈당, 이제 ‘DJ 정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됐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