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악의 축은 北주민 아니라 정권"

  • 입력 2002년 2월 20일 18시 38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일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과 경의선 도라산역에서 내놓은 대북 발언들은 지난달 연두교서 및 최근의 각종 기자회견 발언에 비하면 상당히 순화된 톤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그동안 사용해온 ‘악의 축’이라는 표현을‘북한에 대해 언급한 나의 강경한 발언’이라는 문장으로 풀어서 완곡하게 설명했다. 또 연두교서에서는 북한 자체를 ‘악의 축’이라고 겨냥했었지만 이날 일문일답에서는 “‘악의 축’은 북한 주민이 아니라 북한 정권을 가리키는 것”이라며 장황할 정도의 배경설명을 덧붙였다.

부시 대통령은 방한 직전까지도 표현의 변화만 있었을 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해 강력한 경고성 발언을 계속해왔다. 1월30일 애틀랜타 연설에선 “(‘악의 축’으로 언급한) 3개국과 WMD 개발 또는 테러리스트 지원국은 미국의 감시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또 플로리다주 데이토나비치 소방훈련센터 연설(1월31일)에서 “우리는 테러와 악이 미국이나 다른 국가들을 협박하도록 놓아두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 수위를 높였다. 북한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북한이 ‘악’임을 시사한 발언이었다.

부시 대통령의 강경한 대북 발언은 방한 직전에도 있었다. 그는 미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이라크 북한 등에 대해) 모든 대응방안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한기간 중에는 자주 애용해온 ‘북한의 WMD 위협을 좌시하지 않겠다’ ‘휴전선 무기를 후방배치하라’는 등의 거칠거나 민감한 표현들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외교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한국 여론을 고려한 것 같다”고 평했다.

‘악의 축’ 발언 이후 최근 국내에서 반미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굳이 자극적 표현을 쓸 필요가 없다는 전술적 판단을 한 것 같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표현만 부드러웠을 뿐 강경한 대북인식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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