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전쟁준비 시간벌기'

  • 입력 2001년 9월 21일 01시 22분


‘미국에 대한 굴복인가, 아니면 시간을 벌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인가.’

미국 테러 참사의 배후조종자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즉각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 20일 종교지도자 회의를 통해 빈 라덴의 자진 출국을 촉구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의 보복 공격 위협에 굴하지 않고 성전(聖戰)을 다짐해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혀 예상 밖의 결정이다.

그러나 그동안 탈레반의 대응 태도를 볼 때 이번 결정 또한 미국의 공격 시기를 늦춰 전쟁 준비를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분석이 많다.

탈레반 정권은 11일 테러사건 직후 미국이 빈 라덴과 아프가니스탄을 공격 목표로 설정하자 ‘증거제시 요구→빈 라덴 문제를 종교지도자 회의에 일임(16일)→미국에 대화 제의(19일)’ 등으로 치밀하게 대응해 왔다.

미국이 대화 제의를 거부하자 미국이 제시한 빈 라덴 신병인도 시한인 20일 ‘빈 라덴의 자진 출국’ 결정을 내린 것.

무엇보다도 종교지도자 회의의 이번 결정은 절차상 탈레반 정권의 최고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시간벌기 전략’이라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종교지도자 회의 자체가 오마르의 지시에 따라 소집됐고 따라서 이날 결정도 오마르의 심중이 반영된 결과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따라서 오마르가 이날 결정을 추인할 가능성이 크지만 또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오마르가 ‘빈 라덴의 자진 출국 종용’을 최종 승인한다고 해도 탈레반 정권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빈 라덴의 출국을 요구할지도 불분명하다.

탈레반 정권이 미국의 빈 라덴 인도 요구를 수용할지 검토하는 동안 파키스탄과의 국경지대에 스커드 미사일과 스팅어 미사일을 집중 배치하는 등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탈레반 정권은 또한 빈 라덴의 자진 출국을 요청함으로써 자신들이 테러 용의자를 비호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천명하는 한편 빈 라덴에 대해서도 일말의 ‘예우’를 해주는 형식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일단 이를 받아들일 의사가 없음을 밝힌 만큼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이 또 어떤 수를 쓸지 주목된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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