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아

서영아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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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100세 시대를 생각합니다.

sya@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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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서영아]요즘 느끼는 ‘성공한 인생’

    지난달 말, 장애인 지원 활동을 펼쳐 온 푸르메재단의 창립 20주년 기념행사에 다녀왔다. 300여 명의 후원자와 관계자가 꽉 들어찬 행사장에는 시종 따뜻한 감사와 격려가 넘쳤다. 참석자들 모두가 ‘이렇게 큰 행사인 줄 몰랐다’며 어리둥절해할 정도였다. 반가운 사람들도 많았다. 김성수 재단 초대 이사장(성공회 대주교)은 95세 고령에도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씀을 멋지게 하셨다. 재단 탄생의 진짜 주역인, 백경학 상임대표 부인 황혜경 여사는 행사장 중간쯤에 자리한 테이블에 앉아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본보 ‘100세 카페’ 지면에도 소개한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대표는 얼마 전 아드님을 잃었지만 다행히 밝은 표정이었다. 재단 창설 초기부터 큰 기부를 하며 힘을 보태 ‘키다리아저씨’로 불린 이철재 전 쿼드디멘션 대표도 행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백 대표에게 몇 차례 졸랐지만 성사되지 못했다.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 기자는 백경학 대표와는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니 40년 지기다. 당시 유행하던 언론사 입사 공부 모임을 함께 하기도 했다. 해외 연수에서 불행한 사고를 당하고, 같은 언론사에 적을 뒀던 그가 ‘독일식 맥주로 돈을 벌어 재단을 만들겠다’며 회사를 나갈 때는 잘되길 빌면서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모두가 확신하지 못했던 재단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기적을 만들어 왔다. 2016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어린이재활병원이, 2022년 경기 여주시에 발달장애 청년들의 일터 ‘푸르메소셜팜’이 문을 열었다. 모두 합리적 사고만 해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3년 전쯤 백 대표를 인터뷰하면서 ‘이게 바로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386세대는 정치권을 위시한 각계에서 활약 중이지만 얼마나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백 대표는 모두의 의심을 딛고 꿋꿋이 신념을 밀어붙여 재단을 반석 위에 올렸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더 큰 의미를 위해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힘없는 분들을 대변해야 하다 보니 스스로 강해져야 했고 두터운 인맥으로 무장했다. 그렇게 푸르메재단은 많은 이의 선의가 모여드는 중심이 됐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가교가 되고 있다. 장애인 일자리 모델이라면 사회적 기업 ‘향기내는 사람들’도 있다. 임정택 대표(42)가 대학생 시절이던 2008년 경북 포항 한동대에 장애인이 일하는 카페 ‘히즈빈스’를 연 것이 시작이다. 현재는 전국 38개 지점에서 장애인 160여 명의 안정적 고용을 뒷받침해 준다. 주로 주변 이해를 얻기 어려운 정신질환 장애인을 고용하는데, 이들의 누적 근속률은 90%에 달한다. “외롭게 살던 분들이 일하고 고객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활력을 얻고 행복해지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볼 수 있다”(임정택)고 한다. 요즘 힘을 쏟는 것은 ‘사내(社內) 카페’ 모델. 기업이 장애인고용부담금 대신 고용을 선택하고 장애인은 일자리를 얻는 ‘윈윈’의 길이다. 임 대표는 이런 공로로 올해 삼성공익재단에서 주는 ‘통합 포용 부문’ 행복대상을 받는다.장애인이 일하는 카페 ‘향기내는 사람들’ 36년간의 회사 생활을 마감하며 생각이 많아진다. 마침 화제인 대기업 부장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보며 회사란 생존경쟁의 현장과 다름없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경쟁 사회에서 남을 밟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건 가능했을까. 의도한 바가 아니었어도 오랜 회사 생활에서 누군가를 밟고 지나간 적이 있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그런 분이 있다면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행복심리학자 서은국 연세대 교수는 ‘만나서 도움이 될 사람들’보다 ‘만나서 즐거운 사람들’을 만나야 행복해진다고 했다. 이제 만나서 즐거운 사람들만 만나도 되니, 행복해질 일만 남았다.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sya@donga.com}

    • 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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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 남 아닌 내 기준의 즐거운일 만들어야”[서영아의 100세 카페]

    2021년 초 ‘서영아의 100세 카페’ 시리즈를 시작하며 노후에 꼭 필요한 것으로 ‘돈 건강 행복’의 3가지를 꼽았다. 이중 가장 까다롭고 미완의 숙제로 남은 것이 ‘행복’인 듯하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이가 들면 행복의 요건도 변하는 걸까. 9월 25일 국내에서 행복 심리학 분야를 개척한 서은국(59)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를 만나 지혜를 구해봤다. 서 교수는 철학 영역에서 다뤄지던 행복이란 주제를 과학적, 생물학적으로 접근해 그 본질을 탐구해왔다. 2014년 펴낸 대중서 ‘행복의 기원(21세기북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20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지난해 출간 10주년을 기념해 개정 증보판을 내기도 했다.“행복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행복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며 생존을 위한 뇌의 작동이라고 하십니다. 외향적인 사람이 행복에 유리하다는 얘기인데.“행복은 진화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상황일 때 느끼도록 설계된 감정입니다. 행복에 영향을 주는 성격적, 기질적, 사회적 요인을 연구해보면 외향적인 사람들이 유리한 것으로 나와요. 행복이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데, 많이 움직이고 많이 만나며 뇌의 보상체계가 더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노후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병들고 삐걱거리는 몸을 데리고 오랜 세월 살아야 하는데요.“행복의 본질은 본인이 즐거움 같은 긍정적인 정서를 자주 느끼고 삶에 만족하는 경험을 하는 겁니다. 이건 20대건 70대건 똑같다고 봅니다. 다만 그런 경험을 유발시키는 일상의 사건들은 바뀌겠죠.”―10대는 반에서 인기있는 이성학생이 미소만 지어줘도 행복하지만 70대는 욱신대던 허리가 가벼워져서 행복해지는 것같은?“부모님이 미국에서 살다 최근 돌아오셨는데 매주 뵈러 가서 느끼는 게 연세가 들더라도 행복의 요인은 풍성한 사회적 경험이라는 거예요. 그 부분에서 결핍이 있으면 고립감이 생길 수 있죠. 예컨대 90세가 목전인 아버지가 운전을 기피하게 됐는데 동선이 좁아져 답답해하십니다. 행복의 동선도 좁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해외 통계는 60대부터 행복감 높아져“다만 해외 각국 데이터를 모아보면 연령과 행복은 관계가 거의 없어요. 오히려 서양연구들에서는 행복감이 중년에 살짝 떨어졌다가 퇴직 후 올라가는 유(U)자 커브가 나오죠. 그런데 한국은 60~70대를 지나면서 특히 남성분들이 조금 내려가는 경향이 있어요. 이분들이 사회적 활동에서 물러나는 시기와 겹치죠.”그는 이를 집짓기에 비유했다.“저는 한국인들이 인생에서 두 개의 집을 짓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직장이나 사회생활 등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한 집이죠. 일하고 경력 쌓아나가고, 공적인 치적이 쌓이는 집입니다. 또 하나는 개인적 즐거움과 사적 경험으로 꾸려나가는, 프라이빗한 집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바깥 집은 점차 쓸모가 줄어들죠. 퇴직이나 은퇴가 대표적인 이벤트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위해 만든 집이 거의 전부로 여겨지는 사회가 있어요. 그 비중이 큰 사회일수록 바깥 집에서 나와 나의 집으로 이사할 때 심리적 여파가 클 수밖에 없죠. 한국이나 일본, 싱가포르가 그런 사회인 것 같습니다.”이런 현상은 사회를 둘러싼 문화의 탓이 크다고 한다.“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타인의 평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라는 거예요. 이런 사회에서는 공적인 면에 속한 무대가 끝나고 다음 무대로 갔을 때 허전하죠. 게다가 이런 사회일수록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사회적인 자원도 축소된다는 게 결정타입니다. 내가 평생 만나고 투자했던 인간관계 대부분이 업무 관련인데, 아무리 친해도 비즈니스적인 관계잖아요. 인생에서 비즈니스 부분이 끝나면 그 사람들이 싹 사라지는 거고요. 여러가지 상실감을 만들겠죠.”친구가 많은 노인이 자신과 가족, 자식에게도 바람직―어떻게 해야 할까요?“삶을 회사나 일에 쏟아부었던 입장에서는 막막해지죠. 내가 뭘 좋아하는지 고민하거나 준비할 여유가 없었잖아요. 예전보다 축소된 삶을 살게 되고 경제나 건강, 이런 이슈들까지 겹치면 행복에 영향을 받겠지요. 그러니까 미리 준비를 해야죠. 흔히 노후라고 하면 돈이나 건강만 생각하는데, 사회적으로 풍족한 자원을 확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국처럼 집단주의적이고 유교적인 사회에서는 사람에 대한 에너지를 가족이나 회사 등 아주 협소한 집단에 ‘올인’하면서 살잖아요. 울타리밖 사람과의 연결망을 구축하는데 관심이 덜하죠. 한창일 때는 모르지만 인생 2막, 노년으로 들어가면 그런 것들이 아쉬워집니다. 하지만 갑자기 만들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인간은 친밀한 인간관계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끼도록 진화돼 왔다고 했습니다.“호모 사피엔스에게 제일 중요한 건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보상인데, 노년에도 똑같습니다. 다만 우린 그걸 가족에서만 찾는 것 같아요. ‘자식이 찾아오는 게 유일한 행복’인 부모님이라면 아무리 효심 많은 자식이라도 좀 부담스럽죠. 플랜 b c d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나 사회관계가 많은 부모님이 본인이나 가족, 자식에게도 좋죠.”―시니어 콘텐츠 중에는 ‘노년에는 혼자를 즐겨야 한다’거나 ‘웬만한 인간관계는정리해 버리라’는 권유가 많던데요.“현실에서 사람은 혼자인 시간이 많아요. 타인과 24시간을 함께 지낸다면 상당히 피곤한 일이겠요. 다만 결핍은 아주 안 좋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삶 대부분은 혼자 사는 거예요. 그런 시간에 내가 뭘 할 때 더 재미있고 몰두하게 되는지, 스스로 발견할 필요가 있고요. 이건 중요한 일입니다.”즐거움을 주는 압정이 많아야―행복 압정 얘기인가요?“밟으면 기분이 좋고 즐거운 압정을 많이 가진 자가 행복 게임에서 유리합니다. 인생에 많은 압정을 던져놓고 살면 즐거운 일이 확률적으로 많아지는 겁니다. ‘내 즐거움의 전부는 우리 자식들이랑 밥 먹는 거야’ 같은 한정된 행복압정을 가졌다면 불리하죠. 행복감이 높은 사회에서는 즐거운 압정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걸 잘합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자기가 재미있어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를 봅니다. 자기 규제나 검열도 심하죠. 좀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내가 좋아하는 것에 떳떳하자?“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남들 보기에 시시껍절하더라도 자기 즐거움에 긍지를 가져야죠. 실제로 저희 연구실에서 썼던 논문 주제인데, 한국인은 남들이 칭찬을 안 해주면 자기가 ‘이것 덕에 행복했다’고 얘기했더라도 나중에 생각을 바꿔요. ‘나 혼자 착각하고 있는 건가’라며 흔들리는 거죠. 미국인들은 전혀 그런 경향을 보이지 않아요.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친구들이 동의해줘야 할 문제가 아닌 거죠. 우리는 너무 어릴 때부터 사회적 시선과 타인의 평가에 초민감하게 사회화돼 있습니다. 행복을 얻기에 유리한 방향은 아니죠.”―취미가 다양하다고 들었습니다.“스포츠도 한두 개가 아니죠. 사람들이 잘 안 보는 아이스하키같은 것도 보고 미식축구, 축구, 야구…. 하루가 굉장히 바쁩니다. 그 경기들 스코어가 어떻게 되는지 다 봐야 되고 음악도 아주 다양한 걸 많이 좋아해요. 친구들과 얘기해 보면 제가 압정이 많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행복심리학은 사회심리학에서 파생된 분야로 집단심리 전공자였던 에드 디너(Ed Diener·1946~2021) 교수가 처음 연구의 필요성을 주창했다.“제 지도교수님인데, 그 분의 중요한 논문이 1984년도에 나왔습니다. 학부 때 우연히 도서관에서 그 논문을 보게 됐어요. 그는 ‘행복’이 아니라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이란 표현을 썼는데, 저는 ‘웰빙’보다 ‘주관적’이란 표현이 어린 나이에 인상적이었어요. 디너 교수님이 UN, 갤럽과 교섭해 전세계 행복도 조사를 시작했습니다.”행복은 목표가 아닌 생존의 도구―행복감이 높은 사회의 특징은.“최근 연구들을 보면 행복감이 높은 사회는 소수 몇 명에게 에너지를 몰빵하는 사회가 아니에요. 가족은 중요하고 구성원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심리적 타격을 주는 존재지만 새롭지는 않죠. 행복감은 근원적으로 새로움과 연관되거든요. 음식도 똑같은 거 먹으면 질리듯이 인간의 만물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 시스템이 그렇게 생겨 먹었어요. 그래서 행복감이 좀 높은 사회의 특성은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잘 됩니다. 전철에서 마주치는 사람, 단골 식당 주인 아저씨와 농담도 하고 ‘하이, 잘 있었니’같은 작은 대화들을 나누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의 행복감을 예측하는데 중요한 요인인데, 한국이 제일 결핍된 부분입니다.”―한국사회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요.“사회적 신뢰가 부족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어요. 행복은 복잡한 것 같지만 어떤 보상감을 뇌에서 켜주는 거예요. 호모사피엔스의 뇌가 찾고 있는 건 ‘사람’이라는 자원이죠. 혼자였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이 사람과 뭔가 연결되는 것 같다, 통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만큼 뇌가 강렬하게 보상을 주는 경우가 없어요. 이 사소한 사회적 경험의 누적이 개인과 그 사회의 행복을 좌우하는데, 우린 그 부분이 취약한 겁니다. 우리는 내 집단(ingroup) 밖에 있는 사람들을 잠재적 경쟁자 아니면 적으로 생각하지요. 이건 장기적으로 가장 행복을 위협하는 요소들입니다. 한국인이 목숨걸고 추구하는 돈이나 지위, 명예보다 가족 친구 동료 간의 연결감과 인정, 소속감이 행복을 유발하는 더 큰 요인입니다.”최근 젊은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치열한 경쟁문화 탓에 한국생활은 고통스러웠고 지옥 같았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사회적 수준의 행복이 부족한 한국그는 한국은 사회전체적으로 좀 더 행복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한국 사회가 결핍된 부분 중에 행복 수준과 직결된 것들이 있어요. 첫째가 창의성이에요. 행복하지 않은 조직은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맨날 야단치고 스트레스를 주면 그냥 본전치기만 하려는 정신상태가 되죠. 지금 한국 사회가 부닥친 한계가 그겁니다. 둘째, 사회적 맥락에서 행복감이 높아야 전반적인 사회의 부패도가 내려가요. 권력을 쥔 자들이 뭔가 ‘해먹고 있다는 느낌’은 사회적 불신을 만들어내고 사회적 관계를 발전시킬 의욕을 저해합니다. 또 한국인의 약점이자 행복감의 발목을 잡는 문화적 사회적 철학으로 과도한 안정 지향성이 있어요. 이런 문화는 행복해지기가 어려워요. 본인뿐 아니라 남들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거든요.”2025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행복하다’는 국민이 가장 많은 국가 1위는 8년 연속 핀란드, 한국은 147개국 중 58위로 지난해보다 여섯계단 떨어졌다.“행복도가 높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경우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도 황당할 정도로 개인의 사소한 경험을 존중하고 지켜주려 노력합니다.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에 들어 있는 노르웨이의 한 절경은 교통이 험난한 곳에 있어요. 사망사고가 빈발하지만 정부당국은 그 길을 폐쇄하지 않아요. 그게 중요한 행복 패키지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가는 기회를 막지는 않되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은 개인 책임인 거죠. 저는 운전할 때 제일 좋아하는 지점이 석양 무렵의 인천대교예요. 그게 좋아서 송도로 이사도 갔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인천대교에 오렌지색 드럼통 1500개를 세워놨더군요. 인천대교에서 자살 시도가 있었다는 거예요. 자살 시도를 근절할 대책이 드럼통? 노르웨이와 대조되는 장면이죠. 다리에서 서해의 석양을 음미하는 수 백 만 명의 경험을 이런 형식적인 조치로 가려도 된다는 의식. 행복한 사회의 방향과는 반대라고 생각합니다.”노년에도 제일 중요한 건 사람“한국 시니어들은 남의 눈치 보느라고 진정한 자기 삶을 못 산 분이 많아요. 인생 첫 챕터를 마무리하고 2막으로 넘어가는 지금부터는 나의 삶을 살아야죠. 그러려면 어딘가 갈 곳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뇌는 새로운 변화가 없는 자극에는 점점 무덤덤하게 반응해요.아무리 사랑하는 연인도 수십년 함께 살면 무뎌지는 것과 같은 이치죠. 행복하려면 조금은 새로운 자극을 찾아야죠.”―교수님 인생2막은 정년퇴직 뒤가 될까요? 아니면 미국에서 귀국한 시점인가요?“제 장점이자 단점이 미래에 대한 생각을 잘 안 한다는 점이예요. 하하. 종신교수직 받아놓고 한국행을 결정한 이유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지 스스로 물어보니 대학 시절이었어요. 미국에 계속 있으면 더 많이 논문은 쓸 테지만 너무 똑같은 삶이 이어질 것 같았습니다. 논문을 몇 편 덜 쓰더라도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재미있는 지옥’에 가자.”―‘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자주 먹는 것이다’로 결론내도 될까요.“행복 별 거 아닙니다. 제 행복은 축구보기, 사람들과 탕수육 먹기, 운전하기 등 사소한 것들에서 나옵니다. 행복을 거창한 과업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또 하나, 행복은 즐거움 유무가 중요하지 근심 걱정이 없는 상태는 아닙니다. 걱정거리가 있어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많은 압정들을 만드세요.”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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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서영아]이웃나라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의 조언

    일본이 27번째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우리 언론은 ‘27 대 0’이라며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내지 못한 한국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기자는 두 차례 도쿄특파원 근무 중에 노벨 과학상 수상자 3명을 인터뷰했다. 매번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없는 한국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기초과학 지원은 국가의 의무” 처음 만난 수상자는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특별명예교수. 뉴트리노 천문학을 개척한 공로로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2008년 1월 신년맞이 석학 인터뷰였다. 당시 81세였던 그는 초등학교 강연에 열심이었는데, ‘기초과학도 진지하게 하면 재미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한국 대학에서 만난 젊은 학자들이 무척 진지했다”며 양국 공동으로 세계 최대 과학연구소를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아시아 젊은이가 기초과학에 기여할 때가 왔는데, 일본과 한국 독자적으로는 세계와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론은 기초과학 지원은 국가 의무라는 것. “국가에 미래가 있으려면 국내총생산 몇 %는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면서 “도쿄대 법인화 이후 산학협력 중심이 되다 보니 기초과학 지원이 줄어 걱정이 많다”고 했다. 이듬해 2월에는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토산업대 교수를 인터뷰했다. 노벨상 시상식에 가기 위해 68세에 처음 여권을 만든 ‘토종’ 학자였다. 1973년 목욕하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토대로 작성한 6쪽짜리 소립자 구조론 논문은 이후 물리학자 수백 명이 매달려 2001년 입증됐다. 그는 당시까지 일본에서 소립자 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6명이나 나온 비결에 대해 “결국은 국력이고 사회 역량의 총합”이라고 했다. “과학이 융성하려면 사회가 안정되고 기초과학 지원이 있어야 한다. 기반이 마련되면 인재가 모이고 그중에 과제를 풀어내는 사람이 생긴다. 마침 그 상황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가장 적합한 자리에 간 사람이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축적이 필요하고 인재가 모여야 한다.” 세 번째 인터뷰이는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혼조 다스쿠 교토대 교수. 발표 다음 날 인터뷰를 청하는 e메일을 보냈는데, ‘학교로 오라’는 답장이 왔다. 약 2주 뒤 만난 그는, 단독 인터뷰는 스웨덴 방송사 한 곳과 동아일보만 응했다고 했다. 한국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였는데, 요지는 ‘양국 간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길게 보고 미래를 위해 서로 도우며 발전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혼조 교수의 공적은 면역항암제를 만들어 암환자에게 희망을 준 것. 대학원생 연구에서 우연히 발견된 새로운 분자를 4년간 들여다보다가 이 분자가 면역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암 치료에 응용했다. “남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돌을 20년간 갈고닦았더니 다이아몬드가 되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돈 되느냐’만 따져서는 큰 성취 어려워 세 사람은 자신들 업적은 우연과 호기심, 꾸준함 덕이었다고 했다. 남들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일에 정성을 쏟으며 한우물을 파는 뚝심이 있었다. 그 배경에 기초과학을 중시하고 지원한 국가가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일본 과학계의 호시절은 지나간 것 같다는 걱정도 공통됐다. 자유롭고 엉뚱한 상상력이 허용되는 풍토가 사라졌다는 것. 고시바 교수가 뉴트리노를 세계 최초로 관측한 때는 1987년, 마스카와 교수의 ‘유레카’는 1973년, 혼조 교수는 1992년의 발견이 계기였다. 연구 규모는 커지는데 국가는 실용화 여부만 따지며 일일이 보고를 요구한다. 이래서는 수십 년 뒤 노벨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시간은 무상하다. 고시바 교수는 2020년, 마스카와 교수는 2021년 타계했다. “기초과학을 키우려면 농부가 씨를 뿌리듯 젊은 연구자들에게 돈을 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던 혼조 교수는 면역항암제 특허로 받은 로열티로 교토대에 젊은 연구자 지원 기금을 만들었다.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sya@donga.com}

    •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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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적 되기 쉬운 ‘치매 머니’ 154조… 외로운 고령자가 위험하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언젠가는 내 힘만으로 살아가기 힘든 순간이 온다는 것, 노후의 또 다른 공포다. 나이가 들수록 떨어지는 인지능력 탓이다. 다행히도 배우자나 자녀가 보호자 역할을 해준다면 복받은 경우. 독신인데 인지장애(치매)까지 왔다면 난감하다. 이런 고령자를 보호하기 위해 2013년 성년 후견제도가 시작됐지만 이용자는 많지 않다. 제도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이용하기 어렵게 만들어진 탓도 크다.소순무(74) 법무법인 가온 고문변호사는 2017년 한국후견협회를 만들고 8년간 이끌며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후견전도사’다. 18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을 찾아 우리 후견제도의 현황을 들어봤다. 구체적인 현장 실태에 대해서는 배광열(39)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가 도움말을 줬다.독신 고령자 재산은 임자없는 돈? 뉴스 보도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듯이 혼자 사는 고령자의 재산은 자식과 친지, 이웃은 물론,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 이른바 ‘실버 칼라 크라임’이다. 특히 치매 어르신의 경우 간병인이나 가사도우미, 이웃 등 주변 사람들이 재산을 가로채거나 아예 혼인과 입적 등을 통해 증여나 상속을 꾀할 때가 적지 않다. 최근에도 “당신과 결혼해서 평생 보살펴주겠다”며 치매 환자에게서 상가를 빼앗은 60대 식당 여주인이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1 요즘 이름난 실버타운에서는 독신 어르신이 돌아가신 뒤 그를 보살피던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이 통장과 현금을 갖고 잠적해버리는 사건이 왕왕 발생한다. 자녀가 없거나, 해외에 사는데 친인척 2세들과의 관계도 소원하다면 사망자가 남긴 유산에 신경 쓸 사람이 없다.#2 “조카들이 대머리독수리 같아요.” 고급 실버타운에서 살고 있는 자산가 A 할머니가 평생 연락없던 조카들이 자꾸 찾아오는 게 공포스럽다며 토로한 표현이다. 기아로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소녀와,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의 모습을 찍어 퓰리처상을 받은 유명사진에 빗댔다. 조카들이 마치 자신의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리는 독수리들 같다는 것. 평생 혼자 힘으로 살아온 그는 머리가 희끗해진 조카들이 손주라며 자녀들까지 데리고 오는 것이 영 마뜩치 않다. 조카들을 피해 건강이 더 나빠지면 들어갈 종교계 요양원을 알아보고 여기에 재산 일부를 기부해 최후의 돌봄을 의탁하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그들도 믿을 수 없다’는 의구심 때문이다.#3 서울 도심지에 큰 상가건물을 가진 B 어르신에게도 치매가 찾아왔다. 자식은 없고 친자식 같은 조카가 있어 그를 입양하고 임의후견 계약을 했다. 그런데 뒤늦게 소식을 들은 다른 조카들이 발끈했다. ‘왜 걔만 입양했느냐’, ‘왜 걔가 후견인을 맡느냐’며 난리가 난 것. 어르신은 이미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 조카들은 후견인을 ‘노인학대’라며 고소하고 각자 치매 어르신을 끌고 가 이리저리 작업하더니 결국 조카 7명이 모두 그의 ‘자식’이 됐다. “말년에 자식복이 터지셨네”라는 농담이 절로 나오는 상황. 하지만 후견인이 돼 어르신을 여전히 돌보는 건 처음 입양한 그 조카뿐이다.초고령사회 대비하는 성년후견제도소 변호사는 “이런 때를 대비해 성년후견인을 준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성년후견제도는 ‘질병, 장애, 노령 등으로 정신적 제약이 있어 사무 처리 능력이 제한된 사람들에게 법원의 결정으로 의사결정을 거들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2013년 기존 금치산자·한정치산자 제도 대신 도입됐다. 금치산자 제도가 본인보다는 주위 가족을 위한 제도였다면 성년후견제는 본인의 의사를 중시하고 지원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급격하게 초고령사회가 심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 복지 시스템의 한 축으로 인식되고 있다. 앞서 소개한 간병인이 남은 재산을 가져가버린 어르신들도, 독수리들의 먹잇감이 될 것 같다는 어르신도 공식 후견인을 가졌다면 덜 불안했을 것이다. 조카 7명을 자식으로 입양한 어르신의 사례는 조카들은 싸울지언정 후견인이 있어 재산과 신변관리가 유지되는 다행스러운 경우다.“문제는 중간에 낀 애매한 보통 사람들”하지만 성년후견제도는 아직 일반인에게는 생소하다. 고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 등에게 적용되면서 유명세를 탔지만 ‘자산가의 전유물’로 인식되기도 한다.소 변호사는 “재산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이 제도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컨대 누군가가 가난한 고령자의 수급비를 빼앗으려 하거나, 한 채뿐인 부동산을 요양원 등이 서약서 하나만 받고 기부해버리는 일이 생기는데, 후견인이 있으면 이런 일을 감시할 수 있다는 것. 그는 “후견인의 존재만으로도 재산을 노리는 사람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강조한다.2018년부터는 치매 공공후견제도가 시작돼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무료 후견이 이뤄지고 있다. 다만 지난해 4월 기준 심판청구 건수는 누적 562건으로 연간 100건 내외에 불과하다. 공공후견인 수가 부족하고 지자체별 지원에도 차이가 크다. 공공후견인에게는 월 20만 원 정도 활동비가 나오는데, 매주 어르신을 들여다보는 교통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공공후견인과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을 연결해줄 치매안심센터들이 제대로 역할하지 못하는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다른 한편으로 자산가들을 위해서는 최근 금융권에서 각종 신탁제도를 도입해 홍보중이다. 번거롭고 비싼 한국의 임의후견소 변호사는 “우리 복지 체계가 재산 기준으로 제공되니 중산층 이상 고령자들은 모두 사각지대에 있다”고 지적한다. 혼자인 고령자에게 치매가 와 버리면 내가 내 재산을 관리 못하고 내 몸을 건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권에서 운용하는 신탁제도의 경우 자산은 맡아 관리해줘도 건물 관리, 월세 수금 등의 직접적인 운용은 대리해주지 못한다. 치매 어르신은 더 이상 월세 걷고 세금 내고 건물 수리하는 일을 못하게 됐는데도 금융권은 그런 수요에는 대처해주지 못하는 것이다.고령자 입장에서는 건강할 때 미리 후견인을 예약해두면 든든할 것이다. ‘임의후견’ 제도가 그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활용도가 매우 낮다. 연간 성년후견인 선임 사례는 5000건 정도인데, 이중 임의후견 신청 건수는 2023년 기준 42건에 불과하다. 심지어 신청 건수 중 약 45.2%만 인용됐다.여기에는 절차가 번거롭고 비용까지 드는 등 제도의 문제점도 있다. 임의 후견을 신청하려면 공증과 등기를 해야 한다. 훗날 치매진단을 받은 뒤 후견을 가정법원에 청구하면 후견인을 감독할 제 3자를 선임해야 하고 그에게 보수를 지불해야 한다. 이미 치매가 진행돼 법정후견에 들어갈 경우와 절차는 똑같은데 더 비싸고 복잡한 것이다.<성년후견제도>: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해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성인이 가정법원의 결정으로 후견인을 선임받아 재산 관리 및 일상 생활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받는 제도. 2013년 7월 1일 민법 개정으로 폐지된 금치산, 한정치산 제도를 대체해 도입됐다.O임의후견: 자신의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해질 상황에 대비해 미리 후견인이 될 사람 또는 법인과 후견계약을 체결해, 자신의 재산관리 및 신상보호에 관한 사무를 맡기는 제도. 또렷한 정신일 때 가정법원에 등록해두고 치매가 발병하면 신청한다. 후견인에 대한 감독인이 따로 필요하다.O법정후견: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 처리 능력이 부족한 성인에게 가정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해 보호와 지원을 제공하는 제도.후견의 민간부문 구심점―후견협회가 왜 필요한 겁니까?“성년후견인은 변호사나 법무사, 회계사,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직역의 전문가들이 맡지만 특정 직역의 사람이 후견인 역할을 완벽하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컨대 법률 전문가는 요양 등의 문제를 결정하는 데 취약하고, 사회복지사는 재산 관리 등 법률적 의사 결정을 돕기 어렵죠. 제대로 된 후견을 위해서는 이들 사이의 정보 교류와 상호 교육이 절실한데, 이런 걸 우리 협회가 맡게 되는 겁니다.”그는 은퇴자들의 사회봉사 창구로서의 역할도 강조했다. “가난한 어르신들을 위한 공공후견인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역량 있는 은퇴자들이 사회봉사 차원에서 후견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후견협회가 민간 부문의 구심점이 될 수 있지요.”‘조세 소송 대가’에서 ‘성년후견 전도사’로소 변호사는 ‘조세 소송의 대가’로 2017년 한국법률문화상을 수상했고 202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만 20년간 판사로, 만 17년간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일했고 2016년 사단법인 온율 이사장, 2017년 한국후견협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협회장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주로 돈 만들고 홍보하는 일이죠.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않아서 비용 마련에 늘 어려움을 겪습니다.”그가 처음 성년후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소박하다. 그가 이사장으로 일하던 사단법인 온율의 설립목적 중 하나가 성년후견제도 정착이었다. 여기에 박차를 가한 것이 2018년 제 5차 세계후견대회다. 덜컥 유치하게 된 세계대회 준비를 서두를 주체가 없자 급거 후견협회를 만들었다. 세계 성년후견대회는 성공리에 개최됐지만 대회 비용을 협찬받기 위해 대법원과 법무부, 기업들을 찾아다닌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새롭다. 협회는 연 2회 기관지 ‘후견’을 내고 있는데, 알고 보니 그 예산 또한 소 변호사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지정기부한 1억 원에서 충당하고 있었다. “내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준비하는 독일얼마 전 정부는 치매를 앓는 고령자들이 가진 자산이 2023년 기준 154조 원에 이른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이들 자산의 70% 이상이 부동산이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한국은 전반적으로 노후 대비에 대해 너무 안이합니다. ‘난 별일 없을 것’이란 낙관주의가 강하다고나 할까요. 배우자가 치매로 쓰러져도 본인에겐 치매가 안 올 거라고 믿어요. 치매는 뇌의 노화현상입니다. 65세에서 10% 유병율이지만 85세 이상이 되면 80% 이상에서 나타나죠. 내게도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자세로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한국에서 성년후견을 준비한다면 후견인을 미리 지정하는 ‘임의후견’이 늘어야 하는데, 앞서도 밝혔듯 매우 저조하다.고령화율 22%로 약 1800만 명이 고령자인 독일의 경우 세계에서 성년후견제도가 가장 잘 정착한 나라로 꼽힌다.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150만 건, 한국의 임의후견에 해당하는 ‘지속적 대리권’을 미리 등록한 건수는 600만 건에 달한다. 후견이 필요해질 사람과 후견을 해줄 사람 간의 관계를 미리 등록해 놓는 것. 한국의 임의후견은 공증과 등기가 의무조항이지만 독일에서는 의무가 아니다. 그런데도 600만 건이 등록돼 있는 것이니 실제로는 더 많은 임의후견 관계가 준비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아름다운 마무리 준비하는 한국이 되길소 변호사는 지난 7월 협회장 자리를 내놓고 고문으로 물러났다. 사단법인 온율에서 오랜 기간 함께 해온 박은수 변호사가 협회장을 맡았다. 아직 숙제가 많은 후견사업이지만 토대를 닦았다는 자부심을 안고 제도보완과 문화 쇄신을 기대하고 있다. 전직 의원이기도 한 새 협회장이 국회와 협조해 제도개선에 성과를 내 줄 것도 내심 바라고 있다.―앞으로 계획은.“원혜영 전 의원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웰다잉문화운동과 후견협회를 뒤에서 열심히 도울 생각입니다. 사전유언장을 쓰고 자산을 정리하고 기부를 하고 후견을 준비하는 모든 것들이 웰다잉 과정이죠.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제대로 정착해 전국민이 행복한 노후를 맞이했으면 합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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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서영아]‘EU 수준의 한일 경제공동체’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시대적 화두가 된 요즘, 재계 일각에서 일본과의 경제 연대를 통해 성장동력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와 관심을 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한일 양국이 유럽연합(EU) 수준의 경제공동체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두 나라가 힘을 합친다면 미국, EU, 중국에 이은 세계 4위 경제권을 형성해 새로운 성장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근래 기회 닿을 때마다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갈수록 현실감이 커지는 느낌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이런 제안에 “어쩌면 그렇게 저랑 생각이 똑같습니까”라고 화답한 바 있다. 트럼프발 관세전쟁과 보호무역주의 바람 속에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자 한국 정부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가입국끼리라도 미중 무역 의존도를 완화하고 공급망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최 회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는 것이다.獨·佛 엘리제 조약에서 배울 점 한국과 일본은 여러모로 처한 상황이 유사하다. 극심한 저출산 초고령화와 인구 감소, 그리고 저성장이 예고돼 있다. 양국 내수시장을 합친다면 아무리 인구가 감소 중이라 해도 1억7000만 명 규모다. 이 시장을 공유하며 에너지나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협력한다면 성장의 단초를 열 가능성이 커진다. 일자리 수급의 미스매칭도 인재풀이 커질수록 융통성이 생길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EU 회원국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솅겐 조약을 참조한 ‘한일판 솅겐 조약’을 제안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 구체적인 여건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뿌리 깊은 역사 갈등은 물론, 새로운 갈등과 부작용이 적지 않게 나타날 것이다. 이런 때 생각나는 것이 1963년 1월 서독과 프랑스가 맺은 엘리제 조약이다. 조약은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당시 72세)과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 총리(당시 87세)가 수십 번의 만남과 토론을 거친 산물이었다. 당시 양국은 현재의 한국과 일본처럼 주변 환경의 불확실성이 가득하다고 느꼈다. 안보 분야에서 미국은 신뢰감을 주지 않았고 분단국가였던 독일은 소련의 직접 압박을 느꼈다.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튼튼하게 다져야 했다. 이 조약으로 양국은 수세기에 걸친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화해 협력을 다짐했다. 조약 이후 양국 정상은 1년에 2회 이상, 외교·국방부 장관들은 4회 이상, 교육·청소년 정책 담당자들은 6회 이상 정기모임을 통해 긴밀한 협력을 유지했다. 2003년 조약 체결 40주년에는 양국 청소년 의회의 제안으로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작업이 시작돼 훗날 3권의 역사교과서가 완성됐다. 엘리제 조약 정신은 EU 탄생의 원동력이 되었다.더 큰 세상에서 청년들 가능성도 열려 청년들은 더 큰 시장과 기회의 장을 얻을수록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기적과도 같았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상기해 보자. 우리 선수들은 월드컵 주최국이라는 판이 깔리자 놀라운 기량을 발휘해 4강까지 올라갔다. 이 공동 개최는 한일 민간인 네트워크인 ‘한일(일한)포럼’이 1995년 양국 정부에 공동 개최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면서 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오와다 히사시(小和田恒·93) 당시 일본 측 의장이 2022년 도쿄에서 열린 제7회 한일포럼상 수상식에서 그 시절을 회고했다. “일본이 유리한 상황인데 왜 그러느냐며 항의 전화가 쏟아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결국 공동 개최가 실현돼 한국이 준결승에 오르자 이번엔 ‘공동 개최니까 일본도 한국을 응원하자’는 전화가 왔다. 잘했다고 생각했다.” 엘리트 외교관 출신으로 현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장인이기도 한 그는 이날 한일관계에 대해 “현실 분석만 하지 말고 희망을 찾아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sya@donga.com}

    • 202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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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퇴자들이 ‘열일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병원[서영아의 100세 카페]

    28년간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을 지켜온 요셉의원이 최근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새 터전을 잡았다. 지하철 서울역 14번 출구 앞, 바닥 면적 20여 평에 7층으로 올라간 병원 외관은 산뜻해보였다. 올 7월 말 이사한 뒤 지난달 1일부터 시범운영했고 29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순택 대주교의 축복식을 거쳐 본격 개원했다. 병원이 자리잡는 데 분주하던 지난달 25일, 고영초 병원장(72)을 만났다.재개발에 밀려 영등포에서 서울역으로‘요셉의원은 가난한 환자를 위한 병원입니다. 건강보험 가입자, 의료급여 1종 가입자는 다른 병원을 이용해 주십시오’ 입구에 붙은 안내문은 건강보험조차 없는 환자들을 위한 병원임을 강조한다. 노숙인이나 쪽방촌 주민, 외국인노동자같은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이를 위한 무료병원이다.고 병원장은 이 병원 유일한 상근 의사다. 그가 일하는 2층 약 20평 공간에는 진료실 3개와 처치실, 간호사 대기실, 환자대기실, 엘리베이터로 꽉 차 있다. 좁은 공간을 나눠 필요한 집기를 구겨넣느라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1층 접수대와 3층 약국 외에도 검사실 진료실 물리치료실 간호실 등이 층마다 나뉘어 있다. 7층은 미사를 드리는 경당으로 사용한다.“병원 크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식사봉사 같은 건 아예 포기했습니다. 그런데도 영등포 병원 보상액보다 돈이 두 배 이상 들었어요. 방문의료팀과 행정인력 등 직원 15명은 200m 떨어진 사무실을 빌렸습니다.”“아침부터 아무 것도 못 먹었어요”오후 1시. 시범운영 중이지만 환자는 끊임없이 찾아왔다. 영등포 시절 환자가 많다. 손목이 아프다는 외국인 D씨는 한국어가 안 돼 서툰 영어로 의사소통했다. 그가 진료 중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하자 고 원장은 근육이완제 등을 처방해준 뒤 자원봉사자를 불러 “직원식당에 데려가 뭘 좀 먹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그는 종교문제로 난민신청을 했는데 몸이 아프면 요셉의원을 찾아왔다.모든 환자는 1층 접수를 거쳐 진료실로 보내지는데 ‘의료급여 1종이라 앞으로 진료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환자들이 무척 서운해했다. 의료급여 1종은 근로능력이 없다고 판정받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일반 병원에서도 1000~2000원만 내면 진료받을 수 있다. “저희는 여력이 별로 없는데 그분들 봐드리다가 더 곤란한 분들을 못 봐드리면 안되니까요. 기초생활 수급 환자를 저희가 진료하면 주변 의원들 환자가 줄어 난처하기도 하죠.”이런 환자들은 고원장이 전후사정을 일일이 설명해주면 납득하고는 “마지막이니까” 하면서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더 물어봤다. 고원장도 “마지막이니까”하며 이것저것 더 챙겨줬다. 지팡이를 짚고 거동이 무척 불편한 환자는 고 원장 지시로 찍은 MRI 영상을 가져왔다. 고 원장은 “역시 그렇군”하며 척추관협착증 진단을 내린 뒤 보라매병원 수술을 주선하겠다고 했다. 환자는 겁이 났는지 다른 치료법은 없냐고 물었지만 목의 디스크가 튀어나와 경추 신경관을 압박하는 상황은 문외한이 봐도 알 정도였다. 고원장은 “일반 치료로는 안되고 척추강을 넓히는 수술을 해야 한다. 수술만 하면 확실히 좋아진다”며 벌써부터 자기 몸을 고친 듯 기분 좋아했다. 먹구름이 꼈던 환자 안색도 ‘다시 잘 걸을 수 있다’는 말에 밝아지는 듯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병원’ 요셉의원은 1987년 고(故) 선우경식 원장이 달동네 많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개원한 이래, 신림동에서 10년, 영등포 쪽방촌에서 28년간 빈민 무료 진료를 이어왔다. 현재까지 요셉의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는 77만 여 명에 달한다.무급 봉사 의사 130여 명, 일반 봉사자 700여 명, 정기 후원자 5500여 명이 요셉의원을 든든하게 받쳐준다. 운영중인 진료과는 15개로 종합병원을 방불케한다. 내과 외과 피부과 안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비뇨기과 신경과 신경외과 정신과 재활의학과 치과 영상의학 통증클리닉 한의과 전문의들이 일정표에 맞춰 진료해준다. 진료시간은 평일 오후 1시부터 밤 9시까지. 쪽방촌 주민들 라이프스타일과 본업을 마친 뒤 야간진료를 하러 오는 봉사 의사들을 배려한 시간표다.병원은 개원 이래 환자들로부터 한푼도 받지 않고 모든 것을 내줘왔다. 약값이며 자재값 치과치료도 모두 무료다. 수술이 필요한 경우 보라매병원 등 제휴병원에 의뢰하고, 비용이 필요하면 요셉나눔재단에서 내주기도 한다.―돈 들어오는 데가 없는데 어떻게 비용을 충당하나요.“정기후원자 5500여 명 덕분입니다. 부모님 유언을 받들어 한번에 몇 억씩 기탁하는 후원자도 계시구요. ‘오래 치료해줘 고맙다’며 100만원 봉투를 놓고 가신 분도 기억납니다. 생계급여 80만원 받는 분이었는데, 한달 생활비보다 많이 기부하신 거죠. 얼마 전 돌아가셨어요.”재개발로 인해 병원을 옮길 때마다 더 많은 도시 빈민을 찾아갔다. 서울역에 자리를 잡은 것도 부근에 노숙인 500여명, 동자동과 중림동, 후암동 등에 쪽방촌 주민 3000여 명이 있어서다. 영등포 요셉의원에 다니던 환자들이나 자원봉사자들의 동선도 고려했다.“의사는 누군가를 돕기에 아주 좋은 직업”고 원장으로서는 요셉의원 원장을 맡은 2023년부터가 인생 2막이다. 2018년 건국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로 정년퇴직했고 요셉의원에서는 36년간 진료 봉사를 해왔다.“의대생 시절부터 따진다면 50년간 의료봉사를 해왔지요. 의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아주 좋은 직업이예요. 학생들에게 ‘의사처럼 봉사하기 쉬운 직업이 없다, 가장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내 것을 움켜쥐는 게 아니고 손을 펴서 나누는 거다’ 이런 얘기를 해왔거든요. 저는 의사가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한때 신부가 되려 했다고요.“부모님이 (6.25) 전쟁 때 이북에서 내려오셨는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예요. 저희가 3형제인데 모두 어려서부터 성당에서 복사(사제의 미사 집전을 보조하는 평신도) 일을 했어요. 1960년 4.19때 저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시위대에 휩쓸려 하루 실종된 일이 있었어요. 어느 대학생 도움으로 이튿날 집에 돌아갔는데 밤새도록 제가 큰 일 당했을까봐 걱정했던 부모님은 하늘의 뜻이라며, 그때부터 저를 신부로 만들겠다고 하셨죠.”―그런데 어떻게 의사가 됐나요.“중학교부터 신부가 되기 위한 학교에 다니다가 1970년 일반고 3학년으로 편입을 했어요. 1968년부터 대입 예비고사 제도가 생겼는데 신학교 선배들 70~80%가 예비고사에서 떨어졌어요. 신학대학에 가서 신부가 돼야 하는데 예비고사라는 벽에 부딪혀 좌절한 거죠. 우리가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뭐가 문제가 있는지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대학생인 형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너 생각 잘했다’며 방법을 찾다가 마침 새로 생긴 신일고등학교 편입생 모집 광고를 가져왔어요.3학년 5명을 뽑았는데 전국에서 750명이 지원했어요. 서울대 들어가면 4년 전액 장학금을 준다고 했거든요. 요행히도 붙었는데 고 3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미적분 같은 건 하나도 안 배웠거든요. 제2외국어도 독일어가 아니라 라틴어를 배우는 식이었고…”―그렇게 서울대 의대에 들어가셨다는…. “재수할 각오까지 했는데 그렇게 됐네요. 수학은 20~30점 맞았을 거고 다른 과목에서 메웠겠죠. 신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과목들을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어요. 신부가 영혼을 고쳐주는 존재라면 의사는 몸을 고쳐주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이 저를 의사로 만들려는 계획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하하.”그의 안과의사 차남도 요셉의원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십일조 개념으로 한달에 3일은 의료봉사원장을 맡기 전에는 요셉의원과 전진상의원, 라파엘 클리닉 에 정기 진료봉사를 나갔다.“십일조 개념이었어요. 제 시간과 노력의 10분의 1을 남들과 나눈다는 생각에 매달 사흘을 봉사에 할당했습니다. 세 병원은 모두 김수환 추기경이 애정을 쏟은 자선의료기관입니다.”진료봉사를 하면서 추기경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저로서는 시간만 조금 내서 하는 건데 추기경님같이 훌륭한 분이 ‘하느님께 축복받을 만한 일’이란 식으로 얘기해 주시니 의사로서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했지요. 또 주변 사람들한테도 자꾸 권하다 보니 점점 일이 커지더군요.”평소 별명은 ‘의사 낚아오는 어부’. 세 병원에서 봉사하면서 같은 길을 걷도록 ‘낚아온’ 동료의사가 50명은 된다고 한다. 이 중에는 30년 이상 봉사해온 분들도 적지 않다. ―언제까지 하실 생각인가요.“선우경식 원장님이 21년 간 하셨고 신완식 원장님이 14년 간 하셨더군요. 그럼 저는 7년인가? 하하.. 일단 5년 임기로 했고 필요하면 연장하면 되죠.”대를 잇는 ‘영등포 슈바이처’들‘영등포 슈바이처’의 원조는 고 선우경식 박사다. 1980년대 관악구 신림동 달동네에서 가톨릭의대 학생들이 시작한 빈민활동의 일환으로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배가 아프다고 해서 약을 준 사람이 위암을, 그리고 기침하는 환자가 폐암을 앓게 되자 정밀검사를 할 수 있는 병원 설립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이것이 요셉의원 설립으로 이어졌다. 당시 그가 돈을 안 받는 무료 병원을 열겠다고 하자 주변 사람 모두가 “얼마 못 갈 것”이라며 불안하게 지켜봤다. 하지만 그는 동료 선후배들로부터 꾸준히 봉사와 후원을 이끌어내며 200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간 병원을 이끌었다.그 뒤 요셉의원은 신부와 의사가 2인3각 형태로 이끌어왔다. 상근 의사로는 신완식 가톨릭의대 교수가 2009년 정년을 6년 남겨두고 명예퇴직한 뒤 요셉의원 의무원장으로 부임해 14년간 봉사했다. 감염내과 분야에서 국내 권위자로 꼽혔던 신 박사는 병원장 직을 내려놓은 요즘도 주 2회 4시간씩 의료봉사하러 나온다.60대 이상 은퇴자들이 대들보 역할지난 5월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 고 원장과 요셉나눔재단 사무총장인 홍근표 바오로 신부(66)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됐다. 그들의 맛깔나는 얘기가 재미있었는데, 특히 “요셉의원은 은퇴자들이 떠받치는 일터”라는 말이 귀에 꽂혔다.“은퇴 연령대인 분들이 ‘열일’ 하고 있지요. 상근 직원은 30여 명인데 50대면 아주 젊은 축이고 60대가 주축입니다. 간호팀장은 서울대 병원 간호팀 부장하다가 정년퇴직하고나서 이곳에 왔지요.” 간호사 4명과 사회복지사, 치위생사, 행정직원 등 상근직원의 급여는 모두 최저임금이다. “너무 저임금이라 젊은 분들은 힘들어해요. 미래가 있고 기회비용 따져야 하고 가족도 돌봐야 하잖아요. 매일 밤 9시까지 근무도 문제죠. 미혼인 분들은 데이트도 해야 하는데 말이죠. 고령자들은 별 상관 없으니 기쁘게 일하는 거구요.”―이런 일은 연세 드신 분들이 해주는 게 사회적 분업인 것 같습니다. “본업에서 꽃 피울 만큼 피우셨고 조금 여력이 남은 분들이 여기서 또 한 번 인생의 꽃을 피우고 있는 거죠. 돈은 못 벌지만 보람 있고 ‘내 역할’이 있다는 기쁨도 있죠. 재능기부가 굉장히 많이 필요한 병원이예요.” 진료봉사 오는 분들도 쟁쟁했던 의사가 많다. 예컨대 이날 출근한 양정현 교수는 삼성의료원 부원장과 건대의료원장을 역임한 한국 유방암 수술의 권위자다.고원장은 매주 수요일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기 위해 일을 쉰다. 그의 걱정은 가난한 사람들 못지 않게 초고령사회 노인들에게도 미치고 있었다.“혼자 있는 노인들이 굉장히 위험해요. 우울증이나 치매에 걸리기 쉽고 이런 요소들은 악순환의 사슬로 연결돼 있어요. 제 어머니가 103세이신데, 제가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찾아뵙거든요. 그런 게 필요해요. 가족과 지인들이 함께 식사하고 안부 묻고 들여다보는 것. 주민센터 같은 곳에서 하는 도시락배달이나 안부전화 걸기 같은 활동도 좋죠. 공적 사적 네트워킹이 모두 필요합니다. 최소한 고독사의 공포는 없도록 해야죠.”통계로 잡히지 않는 ‘찾아가는 의료’의 성과요셉의원은 2022년 요셉나눔재단법인으로 확대 개편됐다. 조직상으로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산하 기관이다. 이때부터 재단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홍근표 신부는 특히 방문의료에 관심이 많다. 2023년 10월부터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는 진료를 시작했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약사 청년봉사자가 한 팀이 되어 각 가정을 방문해 진료나 간호, 복약지도를 해주는 방식이다. 다음은 홍근표 사무총장 신부의 설명이다.“병원에 스스로 찾아오는 환자들만 해도 자기관리가 되는 분들입니다. 중증 질환자, 거동이 불편한 환자, 은둔 환자 등은 아예 방에서 나오지를 않죠. 자신을 포기하고 방치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 돌봄이 필요한 이웃에게 진료와 건강관리 서비스를 펼치는 게 방문진료입니다.”그는 ‘누군가가 죽으면 뉴스에 나오는데 죽을 위기를 잘 넘기면 뉴스에 안 나온다’며 영등포 쪽방촌의 방문진료 경험을 얘기했다. “2023년 겨울(2022년 12월~2023년 2월) 200명 안팎이 모여 사는 쪽방촌에서 21명이 사망했어요. 약 10%죠. 그 해 10월부터 저희가 방문진료를 시작하면서 쪽방촌 긴급상황을 도맡게 됐는데 이듬해 겨울 사망자는 5명, 2025년에는 6명으로 줄었습니다. 통계로 말하자면 매년 얼추 15명을 살려낸 셈이 됩니다. 물론 그 살아난 분이 ‘살려줘서 고맙다’고 하는 건 아니죠. 또 술 먹고 와서 투정 부리고 약 달라고 하고 그러면서 지내겠죠. 그래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원봉사자나 후원자들께 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이 기여하고 기부해 주신 게 정말 의미 있었습니다. 그런데 통계에는 안 나옵니다. 그거야말로 좋은 뉴스 아니겠습니까’라고요.”새 병원이 자리가 잡히는 9월 중순부터 요셉이웃사랑센터(센터장 안분이 수녀)가 중심이 돼 용산구 동자동과 종로 쪽방촌, 서울역 주변 고시원 등에 대한 방문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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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서영아]노년의 최대 어려움은 ‘고독’

    풍요로운 노후에 꼭 필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흔히 돈, 건강, 행복을 말한다. 돈과 건강은 누구나 알기 쉽지만 행복은 좀 자의적이다. 그래서 ‘사회적 관계’ ‘삶의 보람’ 등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혼자 고립되지 않고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상태다. 은퇴 전후 중장년이 가장 간과하기 쉬운 게 사회적 관계다. 직장 생활이 삶의 전부였던 사람일수록 위험하다. 무수한 경험자들 얘기에 따르면 ‘백수 과로사’는 잠시, 반년만 지나면 직장을 통한 인간관계는 대부분 연락이 끊긴다. 삶에 고독이 찾아온다.‘고독력’을 키우라지만 바야흐로 세상은 각자 알아서 살아남는 ‘각자도생’의 외로운 사회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면 어차피 고독해지는 거라며 ‘고독력(力)’을 키우라는 조언도 흔히 들린다. 왜 이렇게 외로운 사회가 된 걸까. 전문가들은 1인 가구 증가, 양극화와 빈곤, 고령화 등을 지적한다. 한국은 전체 가구 셋 중 하나(36.1%)가 혼자 살고, 이 중 35.5%는 고령자 가구다. 2040년이면 고령자 10명 중 4명이 혼자 살 것으로 전망된다. 노후 독거는 사회적 고립을 가져오기 쉽고 흔히 거론되는 고독사 위험도 커진다. 누구나 살면서 고독을 느낄 수 있다. 문제는 이를 계기로 고립의 늪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퇴직이나 사별, 사업 실패 등으로 우울과 소외를 느낄 때 터놓고 얘기하거나 의지할 사람이 없다면 고립 상태가 된다. 통계청이 매년 내놓는 사회적 고립도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중 3명이 ‘신체적, 정신적 위기에 도움받을 곳이 하나도 없다’고 답했다(2023년). 연령대별로 보면 이 응답은 20대에서 24.5%였던 것이 60세 이상에서는 40.7%로 나이에 정비례해서 늘었다. 만약 60세 이상을 세분화해서 조사했다면 더 확연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고독에 대한 경각심은 해외에서 이미 높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제러미 노벨 교수는 저서 ‘외로움 벗어나기 프로젝트’에서 고독은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고 했다. 고독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면역체계를 약화시키고 염증을 촉진해 심혈관계 질환, 암, 치매, 당뇨병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정신적으로도 외로움은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자신을 방임하게 하며 사회적 교류를 막아 안전망을 잃게 만든다. 노벨 교수가 제시한 해결책은 ‘타인과의 연결과 유대’다. 2018년부터 고독을 사회적 질병으로 규정한 영국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약 대신 사람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는 ‘사회적 처방’을 시작했다.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복원하자 생기 없던 노인들이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는 보고가 적지 않다.방치된 중간층, 스스로 고립 떨치자 얼마 전 만난 70대 변호사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그는 “한국 노년의 가장 큰 문제는 고독”이라며 “아주 못사는 분들은 나라가 돌봐 주고 아주 잘사는 분들은 알아서 하면 되는데, 중간층은 대책 없이 버려져 있다”고 했다. 고독까지 돌보는 복지의 손길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게만 미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중간한 노년은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적 고립을 떨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많이 움직이고 많이 만나고 주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가벼운 일이나 봉사활동을 통해 삶의 보람을 찾아 나가야 한다. 지난달 13일 국정기획위원회가 내건 새 정부 국가 비전에서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 눈에 띄었다. 여당 일각에서 ‘국민총행복’을 늘리자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있다. 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국가도 노년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시스템을 더 많이 구축해 줄 것을 기대한다.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sya@donga.com}

    • 20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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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서영아]수교 60년, 서로에게서 배우는 한일관계

    지난해 여름까지 서울 특파원으로 일하다 귀국한 이나다 기요히데 아사히신문 논설위원이 최근 책 한 권을 보내왔다. 제목은 ‘축소하는 한국, 고뇌의 향방(아사히신서)’. 한국의 저출산과 초고령화, 이민, 수도권 집중 문제 등 인구 문제를 다룬 문고판이다. 띠지에는 ‘한국 현실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라거나 ‘출산율 0.72의 현실’, ‘인구 절반이 수도권 집중, 지방은 쇠퇴’, ‘그러나 한국인들은 희망을 갖고 있다!’ 등의 문구가 장식돼 있다. 지난해 인터넷판으로 보도한 기획 시리즈를 첨삭 보완해 250여 쪽 분량의 책으로 엮었다는 설명이었다. 취재에 이나다 위원을 비롯해 기자 5명이, 편집에 국제보도부 데스크 등 3명이 참가한 역작이다. 일본에서도 한국 인구 문제에 지대한 관심 책장을 넘기며 격세지감이 들었다. 기자는 인구구조에 관한 한 한국이 일본서 일방적으로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해 왔고, 실제로 그런 기사를 ‘100세 카페’ 칼럼에 열심히 써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령화율은 한국보다 1970년대 기준으로는 30년, 2000년대 기준으로는 20년 앞선다. 예컨대 고령자가 인구 20%를 넘긴 초고령사회에 일본은 2005년, 한국은 지난해 말 돌입했다. 일본의 고령화는 이후로도 심화돼 2023년 기준 29.3%에 이른다. 대개 이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을 소개하고 원인을 따져 본 뒤 ‘그런데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더 빠르다, 대책 없이 있다가는 큰일 난다’는 식의 기사를 써왔다. 일본 기자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이 절망적 상황에서도 꽤나 밝고 희망을 본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필자들은 한국 사회를 취재하며 ‘양국이 공통의 과제를 안고 있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했다. 사실 세계 어떤 나라도 이 정도로 급속한 저출산과 고령화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양국은 서로 참고할 점이 무척 많다. 굳이 누가 누구를 돕지 않더라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든든함도 있다. 혼자 사막에서 길을 잃거나 바다에서 난파했는데 인적이 보인다면, 그 존재만으로도 반갑지 않겠는가.각자도생 트럼프 라운드에 공조하는 실용외교 인구 문제 외에도 양국이 비슷하게 직면한 고민거리는 많다. 특히 미중 갈등과 트럼프 라운드로 대표되는 새로운 국제질서 아래서 협력 여지는 더욱 커지고 있다. 트럼프 1기 때 기자는 도쿄에서 일했는데, 동맹국들에 대한 막무가내식 방위비 증액 압박에 대해 같은 처지인 한국과 일본이 상의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졌었다. 현실에서는 아베 일본 총리는 일본만의 국익을 위해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고 뛰어다녔고 한일 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이라 불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듯하다. 그 시절로의 회귀를 우려하던 일본인들의 경계심은 이재명 정권의 ‘국익 중심 실용외교’ 노선을 확인하며 누그러졌다. 이 대통령은 취임 14일 만에 주요 7개국 정상회의(G7)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화기애애한 정상회담을 가져 일본인들의 의구심을 풀어줬다. 그 일주일 뒤로 예정됐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는 이 대통령의 불참 결정을 참고해 이시바 총리도 불참하기도 했다. 서로를 살피며 보조를 맞추는 간접적인 한일 공조를 보는 것 같았다. 7월 말에는 미국과 관세 협상에 나서는 조현 외교부 장관이 일본을 거쳐 방미했다. 이 대통령은 25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직전 일본에 들러 이시바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갖는다. 쉽지 않은 국제정세하에 양국이 서로를 의식하고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깜깜이 대응할 때보다는 힘이 될 수 있다. 내일은 광복절 80주년이고 올해는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60주년 되는 해다. 각자도생이 강조되는 국제 환경이지만, 국익에 입각하되 서로를 살피며 서로에게서 배우는 자세가 양국 관계를 좀 더 성숙하게 이끌기를 기대해 본다.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sya@donga.com}

    •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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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료실 박차고 나온 스타 의사 “저속노화 사회실험 할 겁니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올 4월 경, ‘느리게 나이들기 전도사’로 각광받는 정희원(41) 전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6월 말로 병원을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올 게 왔구나’ 하면서도 ‘좀 빠른 것 아닌가’ 싶었다. 이어 6월 새 저서 ‘저속노화 마인드셋(웨일북스)’이 나오고 7월부터 그가 공중파 라디오 DJ가 됐다는 보도가 잇달았다.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 3년 반 만에 취재를 청했다.마침 인터뷰 날로 잡은 1일은 그가 서울시 건강총괄관 임명장을 받는 날. 당초 동아일보 회의실로 정했던 인터뷰 장소를 급거 그의 새 사무실로 바꿨다. 이날 도하 신문에는 ‘저속노화 정희원 교수, 서울시 초대 건강총괄관 됐다’는 기사가 실렸다.서울시 통해 ‘저속노화 사회실험’‘건강총괄관‘은 서울시가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하고 건강 중심 시정을 펼치기 위해 처음 도입한 제도. 3급(국장급)인데, 2년 임기의 비상근직이다. 그는 주 2일 일한다.―현란한 변신을 했네요.“저속노화를 하루빨리 정책으로 연결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 잘 먹고 잘 살도록, 그걸 위해 유튜브 찍고 책 내고 해왔습니다. 서울시 일도 그 일환입니다. 저속노화의 본질을 지키며 더 많은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궁극 목표는 나라를 살리는 것입니다.”서울시 채용 공고에 응모해 선발되는 형태를 취했다. 시급 5만 원 정도를 출근한 만큼만 받는다. 정 전 교수가 2년 전 서울시 월례회의 강사로 나서 오세훈 시장을 비롯한 시 직원들에게 서울시민의 건강 현황, 선진국과의 비교 등을 강의한 것이 인연이 됐다.―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건강한 서울은 개인 수준에서 ‘잘 먹고 잘 생활’한다고 이뤄지는 건 아니죠. 사회 구조적 문제나 시민의 정신건강, 이동, 주거 등 여러 면에서 건강한 도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서울은 거대한 압력솥 같습니다. 아이들의 먹거리부터 젊은 사람들의 이동문제나 스트레스, 노년층의 노쇠 예방, 돌봄 예방 등을 중앙 정부에서는 못 챙기는 현실이죠. 서울시는 정부보다 조직이 통합적이라 정책이 민첩하게 만들어지고 실천 가능합니다. 비교적 고령화율이 낮고 재정도 탄탄하죠. 일종의 사회실험인데, 일단 서울이 모범적인 정책을 치고 나가면 다른 데서 따라올 걸로 기대합니다.”그는 크게는 도시 환경에서 건강을 기본값으로 만드는 일부터, 구체적인 예로는 소아·청소년의 당분과 초가공식품 섭취를 줄이기 위해 이런 식품은 매대에서 어린이 키높이보다 높게 배치한다거나, 비행기 타면 콜라나 주스 대신 물이나 ‘슈가 제로’ 음료를 선택지로 주는 것, 식당에서 추가요금을 내더라도 잡곡밥을 고를 수 있게 하는 등의 아이디어를 말했다. 갈수록 기름지고 ‘단짠’ 음식으로 기울어징 식음료 운동장을 바로잡고 싶다고도 했다.“당신은 스타가 될 거야”2022년 4월 정 전 교수를 처음 인터뷰했었다. 그 몇 달 전 출간된 그의 첫 저서 ‘지속가능한 나이듦(두리반)’이 계기였다. 지금은 연예인급 인기를 누리지만 당시만 해도 기성 미디어와의 첫 인터뷰였다.38세 정 교수는 잠재력을 잔뜩 품은 줄기세포 같았다. 젊은데 겸손하고 유창한데 내용이 깊었다. 의학뿐 아니라 인문학과 시사 영역까지 해박했다. 원석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배웅나온 그에게 “당신은 조만간 반드시 스타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더니 그는 하하 웃으며 ‘책이나 좀 팔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사가 나간 다음날 2쇄에 들어갔다고 연락이 왔다.당시 아산병원 노년내과는 간호사 약사와도 연대해 시니어위원회를 만들고 이상적인 노인의학 돌봄 통합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런 활동이 100세 카페 성격과 꼭 맞아 그로부터 한달 간격으로 두 번 더 관련 기사를 썼다. 2회째는 노년내과 전속 간호사를 중심으로, 3회째는 원내 약사를 만나 노인들의 약 중복 문제를 취재했다. 그때마다 정 전 교수는 섭외는 물론이고 취재 내내 옆에 붙어 앉아 부족한 부분은 본인이 설명해줬다.세상 사람들의 눈은 다 비슷한 법. 결국 그는 어마어마하게 ‘떴다’. 2023년 두 번째 저서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더 퀘스트)’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한국사회에 저속노화 바람이 불었다. 같은 해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한빛라이프)’, 2024년 ‘저속노화 식사법(테이스트북스)’이 나왔다. 1년 전 쯤 유튜브(정희원의 저속노화) 채널도 시작했다,신문과 방송, 유튜브, SNS에서 종횡무진하며 저속노화를 위한 식단과 운동, 수면, 정신건강 관리법 등을 제시했다.편의점 판매 상품에 얼굴이 나오기도 하고 여기저기 강연도 다녔다.환자와 의사의 어긋남이런 가운데 어김없이 유명세를 치르게 됐다. 몇몇 TV 프로그램 출연이 시초가 됐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 외래 1년치 예약이 꽉꽉 차 버렸다.“정상적인 진료가 불가능해졌어요. 제가 잘하는 일과 환자들이 원하는 게 어긋나 버렸죠. 제가 잘하는 일은 노쇠에 빠지고 약에 쩔어 기력 잃은 노인들을 약 조절과 섭생으로 건강하게 하는 건데, 진료실에는 건강염려증을 가진 상대적으로 건강한 분들이 줄을 잇게 된 거죠. 이분들은 제가 단번에 힐링 에너지를 넣어줄 것을 기대하면서 오시는데, 저는 ‘약 줄이고 운동하시라’, ‘단백질 섭취 많이 하시라’. 이런 얘기를 해주는 상황이었죠.”―3년 전에는 응급실에 입원한 노쇠 환자들을 찾아가서 치료해줄 정도로 여유 있었는데…“바로 그 응급실에 오는 노쇠로 꼬이고 꼬여 빈사상태가 된 노인들이나 약 정리가 필요한 분들은 아예 접근하지 못하게 돼 버렸어요. 대기만 1년 걸리니까요. 저도 진료에서 자기효능감을 느끼기 어렵게 됐고요. 10분에 봐야 할 환자가 5명 들어차 있는 상황이었죠.“―병원에서 차단해주거나 하지는 않나요?“그게 안 되더군요. 나중에는 너무 번아웃이 심해서 3분 진료를 했어요. 아무 의미 없는데 의사만 갈려나가는 거죠. 환자도 제 진료가 마음에 들 수 없었겠죠. 병원 입장에서는 적자나는 부서일 뿐이었고요. 이 3자가 서로 마음에 안들면 지속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나 자신의 스피커가 필요했다”세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늘면서 정보전달체계에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과거에는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제된 정보가 전달됐다면 뉴미디어는 알고리즘 따라 ‘많이 보면 그게 진리’가 돼 버려요. 제가 어디서 길게 얘기한 것 중 가장 자극적인 부분만 편집한 유튜브 쇼츠가 돌아다니고 그게 다시 인스타그램으로 옮겨져 수천 만 명이 봅니다. 사람들은 제가 ‘모든 즐거움을 거세하고 술은 한방울도 안 되며 렌틸콩만 퍼먹어야 한다’고 말한 걸로 아는 거죠. 강연에서나 진료실에서 이런 걸 물고 늘어지는 사람도 너무 많아요. 그래서 ‘내 스피커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그렇게 만들어진 채널 ‘정희원의 저속노화’는 1년 만에 구독자수 51.7만 명으로 급성장했다. 기자가 가끔 방문해보면 의정갈등 여파로 병원 사정이 극도로 열악할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운영하는 모습이 보였다.“거짓 정보가 너무 많아요. 예컨대 ‘고지혈증 약 먹으면 뇌가 녹는다’ 식의 자극적인 영상이 올라오면 수백 만 명이 봅니다. 그러면 저는 하루 60명 진료를 보는 내내 ‘아닙니다. 고지혈증 약 드셔야 됩니다’고 설명해야 합니다. 녹초가 되죠. 정말 필사적으로 유튜브를 키웠습니다. 좋은 정보를 심심하지만 올바르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야겠다…”지난달 시작한 MBC라디오 ‘정희원의 라디오 쉼표’ 진행도 같은 맥락이다. “이 방송을 실시간으로 20~30만 명 정도가 듣는답니다. 구독자 300만 넘는 유튜브 채널도 실시간 라이브는 5만 명쯤 듣거든요. 라디오로 제가 20~30만 명께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건 진짜 큰 스피커다, 내가 열심히만 하면 사람들한테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평일 오전 11시 방송이라 연배가 좀 있는 소상공인이나 택시기사, 제조업 종사자들이 주요 청취층이다. 음악 사이사이 다양한 방식으로 건강 상식을 전달한다. 예컨대 ‘파스를 너무 많이 붙이면 콩팥에 무리가 갈 수 있다’거나 ‘환기와 공기청정은 다른 것인데, 공기청정은 미세먼지를 걸러주지만 환기를 해야 공기중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등이 배출된다’는 식의 피부에 와닿는 정보가 넘쳐난다.‘끈 떨어진 의사’?―명망있는 상급병원 교수직에 대한 미련은?“제가 아산병원 나올 때 많은 선배들이 ‘나가 봐라, 이제 강연도 안 들어오고, 끈 떨어지고 어쩌고’ 하면서 겁을 주셨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송길영 작가님이 쓴 ‘호명사회’ 개념에 크게 공감합니다. 앞으로는 자기 이름, 즉 개인 브랜드로 살아가는 시대라는 거죠. 제가 가진 역량 포트폴리오를 종합해서 저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갈 겁니다.”―경제적인 부분은요.“의사 때보다 지금이 나아요. 적자부서 의사여서 거의 기본급만 받았거든요. 유튜브 수입은 대부분 제작비로 들어가서 제가 빼오는 돈은 거의 없습니다. 제작사 친구들이 모두 어린데 정말 열심이예요. 제게 유튜브는 대국민 방송을 위한 스피커 역할로 충분해요. 수입은 그냥 제작비로 쓰라고 나눠줍니다. 집사람도 의사여서 경제적 어려움은 별로 없습니다.”―서울시 건강총괄관은 언제까지?“임기 2년이니까요. 많은 분들이 내년 지방선거 때를 지적하는데, 가봐야 알겠죠. 다만 벌써부터 여러 오해를 하시는데 저는 정책을 하고 싶을 뿐, 정치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당과도 상관없고요.”―일하면서 실망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는 거죠. 일단은 최대한 배워볼 생각입니다. 노인 관련 사안은 통합적으로 일해야 할 게 많은데, 정부 부처는 장벽들이 너무 심해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서울시는 역할과 책임이 좀 섞여 있는 편이라 오히려 유연한 것같습니다. 실제로 서울시 정책들은 굉장히 빨리 구현되거든요. 긴급 돌봄 사업이나 병원 동행 서비스 등 선진적인 서비스도 되더라구요.”개인브랜드로 살아가는 ‘호명사회’―3년 전 제가 인터뷰했던 기사를 다시 보니까 지금 하고 있는 얘기가 다 들어 있더라고요.“바로 그거예요.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그 핵심은 안 바뀌는 거죠. 저는 그걸 남은 생애에 걸쳐서 실현시키면 되는 거예요.”―10년 뒤 자신의 모습은?“아직 잘 모르겠어요. 정치는 안 할 것 같고 연구는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더 큰 스케일로 연구하고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병원 나오면서 ‘저속노화연구소’라는 법인을 만들었는데,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를 모델로 해서 민간연구소로 키우고 싶습니다. 연구조직을 만들어 코호트 연구나 데이터 분석을 하고, 젊은 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줄 수도 있죠. 이걸 누구의 입김도 없이 ‘내돈내산’으로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돈을 모으긴 모아야겠죠.”―환자 진료는 계속하나요.“고민입니다. 아직 한국에서 노인 의학적인 진료를 하면 무조건 적자거든요. 그렇다고 강남에서 하는 항노화클리닉 같은 건 아닌 것같고…제가 세웠던 목표 중에 ‘2030년까지 한국에서 환자 중심 통합진료 노인의학 모델이 정착되도록 노력한다’는 게 있었는데 여기저기 계속 두드리다가 지금은 빈사 상태가 됐어요. 다만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그는 내과의사로서 환자를 보지 않으면 ‘감’을 잃게 된다며 매달 며칠이라도 어느 병원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 밤샘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생각 중이라고 한다.의사의 활동무대가 꼭 진료실만은 아닐 수 있다. 병원 밖으로 뛰쳐나온 스타 의사.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실망과 좌절이 그에게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그의 목표는 여전하다. 세상을 더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요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병폐와 고난을 극복해나갈 길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격려와 기대를 보내줄 만하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5-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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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서영아]‘전 국민 회고록 쓰기 운동’

    2023년 9월, 초등학교 중퇴 학력에 50대까지 공사판 잡역부로 일해 온 이숙희 씨 사연을 기사화한 적이 있다. 이 씨는 50대부터 초중고 검정고시를 거쳐 2년제 대학에 진학했고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 나이 60에 딸이 원장으로 있는 한의원에 취업했다. 기사가 나간 지 반년쯤 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다며 방법을 물어 왔다. 친분이 있던 출판사 몇 군데에 타진해 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출판계가 워낙 어려워 ‘돈 될 일’ 아니면 손댈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비 출판이 아니면 어려울 것 같다”고 조언하며 내심 안쓰럽고 미안했다.한 시대를 살아낸 개인의 역사=민중의 역사 그런데 최근 이 씨가 “드디어 책이 나왔다”고 연락해 왔다. ‘굳세었다! 숙희야’란 제목에 장정도 소박한 200여 쪽 분량. 자신의 삶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전하며 ‘가슴속에 묻어둔 꿈이 있다면 당장 무엇이건 시작하라’고 권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책 에필로그와 추천사 모두 그의 가족과 친지가 썼다는 점. 에필로그는 딸이, 세 개의 추천사는 오랜 친구와 며느리, 아들이 각각 썼다. 그럴싸한 직함의 군더더기 같은 추천사가 없다는 점이 오히려 그들의 독립심과 순수함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한땀 한땀 정성으로 만든 ‘가족 자서전’에서 역사를 이끈 민중의 힘마저 느껴졌다. 이 책은 30대 대표가 운영하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 ‘이분의 일’에서 나왔다. 출판사 이름은 국민 절반이 회고록 쓰는 날까지 일하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기자는 2021년 6월 ‘노인 한 명의 죽음은 도서관 한 개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시니어들에게 자서전 쓰기를 권하는 칼럼을 썼다. 자서전이건 회고록이건 쓰는 사람은 갈수록 늘어나는 듯하다. 독서 인구가 줄어 ‘이러다 책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은 거 아니냐’며 걱정하는 세태지만, 그럼에도 책 쓰기는 권장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가 읽지 않더라도 본인에게는 ‘내가 살았다’는 기록을 남기는 의미가 있고, 가족과 친지에게도 좋은 정신적 유산이 될 수 있다. 이 씨의 경우도 온 가족이 두고두고 얼마나 기뻐할까를 생각하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노인 한 명 죽음은 도서관 하나 사라지는 것 개인의 역사는 하나하나 모여 한국 현대사가 된다. 개개인의 자서전이 살아 있는 민중사의 데이터베이스가 될 수도 있다. 인류가 지금의 인류일 수 있었던 힘은 후세에게 기록을 남기고 기억을 전수한 것에서 나왔다. 문자와 인쇄술은 그 힘을 폭발적으로 키워 줬다. 원로 언론인 조갑제 씨가 최근 부쩍 ‘전 국민 회고록 쓰기 운동’을 주창하고 있다. 대선 전후 두 차례 만난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이를 제안했고, 대통령도 공감을 표했다고 한다. 조 씨가 2022년 10월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 회고록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을 읽고 한 월간지에 쓴 글 말미에도 같은 주장이 나온다. 김 전 장관은 사회지도층으로 살며 겪은 일들을 650여 쪽 분량에 담은 회고록 머리말서부터 기록에 소홀한 한국 지도층 인사들을 ‘역사적 의무를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조 씨는 이를 받아 “기성세대는 연륜에 새긴 저마다의 회고록, 피가 흐르는 진짜 교과서들을 다 토해 놓고 사라져야 한다”며 “60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회고록 쓰기 운동을 제창한다”고 썼다. 당시 두 사람의 초점은 사회지도층 회고록을 통해 대한민국 정체성과 정통성을 찾는 일에 맞춰져 있었다. 그만큼 거창하지 않더라도 무명인들의 민중사는 만들어질 수 있다. 다만 국가가 주도하는 ‘범국민 운동’ 형태가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다. 이 씨처럼 개인의 자발적인 회고록 정리가 먼저이고, 국가는 도움이 될 만한 정보나 플랫폼을 제공해 주는 정도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sya@donga.com}

    • 202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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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무공무원 포상? 부실 과세 방지책부터 만들어야”[서영아의 100세 카페]

    ‘인생에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두 가지는 죽음과 세금이다.’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조세 전문 변호사’로 일해 온 고성춘 변호사(61)는 심지어 “국세청은 죽음의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표현한다. 한 사람이 평생 내야 할 세금을 ‘사후(死後)’ 정산하기 위해 국세청이 죽음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고 변호사는 4년 여 전 ‘이제는 중산층도 상속세를 걱정해야 한다’는 기사로 100세 카페 독자들과 만난 적이 있다.그가 요즘 크게 분노하는 일이 잦아졌다. “너무 말이 안 되는 일이 세무행정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 고군분투하다가 기자에게도 전화를 해 왔는데, 들어 보니 이런 풍토가 확산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단 세무담당자가 자기 입맛대로 수 억, 수 십 억 원 세금을 매기고는 근거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당하는 납세자로서는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18일 서울 송파구의 한 지식산업센터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근거 없이 과세… “억울하면 불복하세요”지난해 2월, 50대 J씨는 2021년 사망한 모친의 양도소득세 35억 원을 대신 납부하라는 과세예고통지를 받았다. 인지장애(치매) 모친의 재산이 거의 없어 상속세 신고도 하지 않았던 그로서는 영문 모를 일이었다. 앞서 2016년 모친이 가지고 있던 건물이 경매로 120여억 원에 팔렸지만 빚잔치 끝에 남은 돈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고 변호사의 도움으로 과세 전 적부 심사를 청구했다. 국세기본법에 따라 납세액은 635만 원으로 감액 결정되며 상황은 일단락하는 듯 보였다. 국세기본법은 피상속인(사망자)의 체납세액은 상속인이 상속받은 범위 내에서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그러나 이튿날, 관할 세무서는 상속재산가액을 당초 1770만 원에서 8억3200여 만 원으로 임의 증액하며 양도소득세 과세예고통지와 고지서를 동시 발부했다. 법정 후견인의 보수 청구 시 남은 금액을 근거로 삼았다. 양도소득세 과세예고통지 금액은 4억2000여 만 원, 고지세액은 8억3200여 만 원으로 금액이 달랐고, J 씨는 과세 전 적부 심사 기회를 박탈당했다.세무서는 국세청장이 심사 청구에서 ‘재조사’ 결정을 내렸음에도 기한을 넘기며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올해 3월 소송이 제기된 이후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변호사는 “세무서가 근거 없는 답변을 하면 허위 공문서 작성 책임, 이실직고하면 부실 과세 책임을 져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수시로 체납독촉문자… 액수는 오락가락이런 상황에서도 관할 세무서는 수시로 J 씨에게 체납 독촉 문자를 보냈는데, 독촉 금액은 4.3억 원에서 7.6억 원까지 매번 달랐고 계산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날 보낸 문자 3개의 금액이 모두 달랐다. 올 들어서는 청구 액수가 1억 원대로 줄어들기도 했다.고 변호사는 “담당자가 왜 이런 금액을 과세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더군요. 이의 신청하면 ‘각하하겠다’는 문자부터 보내고, 항의하면 ‘실수였다’고 말하는 식”이라고 비판했다.이러한 심적 고통 때문인지, J씨는 이 무렵 신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까지 받았다. ‘그저 죽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피폐해진 상태다. 고 변호사는 그의 사건일지를 ‘J씨 고통일지’라는 제목으로 정리해놓고 있었다. 그는 세무당국에 대해 “(공무원) 본인의 무지와 무책임에 당하는 백성은 피가 마른다는 걸 알아야 한다”며 무책임한 행태를 비판했다. 세무조사 청탁 의혹 사례역시 50대인 S씨 사건은 관할 세무서의 조직적 움직임이 더 큰 의혹을 낳고 있다. 강남구 소재 중소 건축업체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경기도 분당에 거주하는 이 업체 대표의 별거 중인 부인 S 씨에게 세금 21억 여 원이 부과됐다. 조사를 진행한 세무서는 남편 회사나 부인 거주지 모두 관할이 아니었다. 남편 회사에는 세금 2.1억 원이 부과된 반면, 회사와 무관한 S씨에게는 양도세, 증여세, 가산세 명목으로 21억 원이 부과됐다. 남편은 S 씨 부동산을 담보로 한 26억 원 대출이 있어, S 씨 아파트가 경매로 팔리면 본인 빚도 탕감되는 상황. 실제로 이 아파트에 대한 경매 처분 통지도 이미 S 씨에게 날아왔다.의혹의 핵심은 S 씨가 2001년 취득한 뉴질랜드 부동산을 3년 전 처분한 돈을 미국 영주권자 아들에게 ‘공동 투자’ 목적으로 보낸 것에 대한 증여세와 가산세가 부과되고 모든 재산이 압류된 과정이다. 이 모든 절차가 S 씨에게는 소명 기회조차 없이 남편과 시동생, 그리고 세무 당국 간의 상의만으로 진행되었다는 주장이다. 고 변호사가 세무조사 청탁을 의심하는 이유다. 여기에 20회가 넘는 정보 공개 청구 끝에 불복 청구를 하자 비로소 과세 근거 서류가 만들어진 정황까지 나타나고 있다.“2024년 서식으로 2023년 서류가 작성돼 있는 식입니다. 허위 공문서 작성 및 유착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지요. 세무 행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세법 모르는 공무원이 한 일이 ‘국가가 한 일’ 돼―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겁니까.“일선 과세 행정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국세청에서 지방 조세 행정 단위에 이르기까지 세금을 부과하는 구성원이 세법에 무지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세무 행정은 법리에 맞춰 해야지 자의적으로 추정해 해석하면 안 됩니다.”더 큰 문제는 세무 조직의 생리다. 부실 과세 같은 문제가 생겨도 소속원들은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 잘못을 쉬쉬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윗선의 엄한 관리도 세무 관련 조직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퇴직이 임박한 고위급일수록 ‘전관 예우’를 기대해야 하니 직원들을 건드릴 수 없는 구조라는 것.소소하지만 작지 않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개인주의가 만연해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문화마저 사라지면서 각자 ‘나는 이렇게 보련다’며 세금을 때리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이런 세무행정이 국민에게 친절할 리는 없다.“국세청은 직원들이 알아서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간부가 세금을 가장 모릅니다. 서로 건드리지도 않죠. 일개 ‘무식한’ 공무원이 되는 대로 일하는데 외형상으로는 ‘국가가 하는 일’이 돼 버리는 거예요.”국민 생각한다면 포상보다 부실과세 방지 우선돼야고 변호사가 이런 세무행정에 분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조세 전문변호사다. 2003년 국세청 개방직 1호로 특채돼 5년간 서울지방국세청 법무2과장으로 일하며 법무와 조세소송을 지휘했다. 특히 조세불복사건 결재 책임자로서 부당과세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납세자들 문제제기에 대해 수많은 인용결정을 내렸다. ‘책임과세’를 위해 ‘과세 행정 실명제’ 도입을 그가 제안했고 이용섭 당시 국세청장이 실행에 옮겼으나 이 국세청장이 퇴진하면서 흐지부지해졌다고 한다.2007년 말 국세청 퇴직 후에는 6개월간 절에 틀어박혀 세법 관련 책 6권을 써냈다. 국세청에서 다뤘던 조세소송 등의 판례와 핵심 법리 등을 쟁점별로 총정리한 그의 책은 조세 분야에서 바이블로 평가받는다.“실전에서 세법을 공부할 교재가 전혀 없더군요. 관행보다는 원칙, 주관보다는 법리가 우선시되는 과세 풍토가 되려면 세무 공무원들이 세법을 공부해야 합니다.”그에 따르면 국세청에서 본 사례 중에는 가슴 아픈 것이 무척 많았다. 영세 사업자가 사업을 접더라도 부가세는 내야 하는데 이를 놓쳐서 살고 있던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간 반찬가게 아주머니, 200만 원 짜리 무허가 판잣집을 아들에게 증여했다는 이유로 ‘사해(詐害) 행위’로 재판에 넘겨진 체납자 할머니 등. 법을 잘 모르고 힘없는 서민이 희생양이 되곤 했다. “대법원은 조세체납처분의 목적은 국가적 강제에 의해 체납된 조세를 징수하는 것에 불과할 뿐 체납자의 재산권을 상실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재산권을 상실시키는 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조세는 규제보다 구제의 마인드로 임해야 한다’가 지론이신데….“자타불이(自他不二). 당신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타인의 아픔이 내 아픔입니다. 법의 마음이 그런 것입니다. 공직의 칼은 서민이 아니라 거악(巨惡)을 잡는 데 쓰여야죠.”‘세수부족’ 논리… “주인보다 마름이 더 무섭다”그의 전공은 ‘조세불복’이다. 유튜브를 통해 ‘세금과 인생’이란 주제로 구독자들과 만난다. “과세 당국은 납세자가 항의하면 ‘그럼 불복하세요’라고 대꾸합니다. 하지만 변호사 비용과 시간, 공력을 생각하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소송해서 3심까지 가면 5년은 그냥 지나가죠. 과세 당국이 처음부터 과세를 잘하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 아닙니까.”―요즘 세수 부족이라는 주장이 많습니다. 세무 공무원을 대상으로 연간 2000만 원 포상금 제도가 시행된다더군요.“포상금 제도는 세금 도둑을 찾아내 세금을 받아내면 상을 주겠다는 취지로, 그대로만 되면 좋겠지요. 하지만 주인보다 마름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세수가 부족하니 세원을 제대로 포착해 세금 걷어 달라는 윗선 방침은 일선 세무 공무원들을 무리하게 수탈하는 자세로 만들 수 있지요.”그는 거꾸로 ‘부실 과세 백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국세청도 세무서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부실 과세 백서가 필요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 벌어지는데 2025년 대한민국 시민에게 닥친 현실이란 점이 두렵습니다.이런 경우가 J씨나 S씨 뿐이겠습니까.”납세자보호연대를 ‘뒷배’ 삼아―앞으로 계획은….“승소한다 해도 보수를 받을 가능성도 없는 일인데 이제는 오기가 생겨서 하늘이 제게 주신 소명으로 여기게 됐습니다. 세상을 밝혀서 정의를 실현하라는 부처님 뜻인 것 같아요. 제가 아니면 그 누구도 못하는 일입니다.”그가 자구책으로 생각해 낸 것은 ‘납세자보호연대’라는 단체다. 일개 변호사가 아니라 납세자들 힘을 ‘뒷배’ 삼아 보겠다는 것. 6월 초부터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회원모집을 시작해 3주 만에 300명 넘게 모였다.“감사원에 공익 감사 청구를 하려면 300명 서명이 필요하거든요. 이번 두 사건을 풀기 위해 정보 공개 청구만 30회쯤 했습니다. 한번 청구하면 20일은 기다려야 하는 등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저도 많이 배웠어요. 납세자들 고통에 책임질 사람들은 반드시 책임지게 하고 국가 배상도 받아낼 겁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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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미래포럼, 한일수교 60주년 기념 세미나 개최[온라인 라운지]

    (사)한일미래포럼이 7일 서울 중구 동국대에서 한일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전문가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는 ‘한일수교 60주년을 맞아 되돌아보는 한일 문화교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한일 전문가와 후속세대의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각계에서 활동 중인 양국 전문가들과 대학생 청중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참석했다.정치 세션에서는 가와세 가즈히로(川瀬和広)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이 ‘일본 외교 전략과 한일관계’를, 조용래 전 한일의원연맹 사무국장이 ‘1965년 체제 60년, 한일 의원교류의 성찰과 과제’를 주제로 한일 양국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길을 모색했다.경제 세션에서는 송정현 동국대 교수가 ‘한일 문화콘텐츠 산업의 무역 동향에 관한 연구’를, 후지타 데쓰야(藤田哲哉) 니혼게이자이신문 서울지국장이 ‘한일관계의 경제 동향’을 주제로 해 양국간 경제 협력의 방향성을 찾아봤다.사회문화 세션에서는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동국대 일본학연구소 연구원이 ‘한일 문화교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시미즈 유이치(淸水雄一) 일본정부관광국(JNTO) 서울사무소장이 ‘양국 사회문화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 토론했다.(사)한일미래포럼 이혁 대표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공통되게 예측불가능한 미국의 정책과 중국의 급속한 군사적 기술적 성장 등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양국의 진정한 상호이해와 긴밀한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세미나는 대학생들의 질의응답 및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참석자들과 열린 대화를 나누며 마무리됐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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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서영아]‘내 인생 마지막은 내가 정한다’의 함정

    지난달 본보 ‘100세 카페’ 지면에 소개한 강릉 갈바리의원 호스피스 기사에 붙은 댓글들을 보며 처연한 마음이 들었다. 기사는 60년간 이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는 환자들의 존엄한 임종을 도와주는 수녀들과 의료진 이야기를 전했는데, 댓글들은 ‘호스피스도 좋지만 안락사할 권리, 즉 자신이 원할 때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허용해 달라’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초고령사회가 가져다주는 불안감 때문일까. 노년의 가난이나 질병, 인지장애(치매), 고독 등이 거론될 때마다 독자 반응은 ‘편안하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라’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유튜브나 다른 대중 매체에서도 자발적 안락사, 혹은 조력 존엄사에 긍정적인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날 수 있다. 존엄사가 초고령사회의 비상구나 도피처라도 된 것 같다. 존엄사 허용 국가 갈수록 늘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존엄사를 합법화한 나라는 2002년 네덜란드를 필두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캐나다 미국(일부 주) 호주 뉴질랜드 스페인 독일 등 부쩍 늘고 있다. 인간의 권리 의식이 발전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 한꺼번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나이 먹어 가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호주의 경우 극적인 반전을 보였다. 104세 식물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스위스로 향한 2018년만 해도 안락사는 법으로 금지돼 있었다. 구달 박사는 100세 넘어서도 연구 활동을 지속했지만 집에서 쓰러진 뒤 혼자 생활하는 게 힘들어지자 “삶의 질 악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택하겠다”며 실행에 옮겼다. 호주 전체가 찬반양론으로 들끓었지만 그 뒤 ‘존엄사법’이 호주 모든 주로 퍼져 나갔다. 올 3월에는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교수의 1년 전 부고가 존엄사로 인한 것이었다고 뒤늦게 알려졌다. 행동경제학 창시자인 카너먼 교수는 “나는 과거부터 인생의 마지막 몇 년간 치를 고통과 수모는 불필요하다고 믿어 왔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며 “행복할 수 있을 때 떠난다”고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 한국에서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여론의 변화 속도를 보면 언제 허용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몇몇 여론조사 결과는 80% 이상 찬성률을 나타낸다. 저출산 고령화 인구구조에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아무리 존엄한 죽음이 ‘현대인의 권리’라지만 너무 손쉽게 내려지는 답안에는 삶의 본질적인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예컨대 일본 영화 ‘플랜 75’에서 엿보이는 세상. 국가 정책으로 75세 이상이 되면 안락사를 신청할 수 있게 한 제도가 가져올 디스토피아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80세 정도 된 노인을 보면 “저분은 왜 아직 살아 계신가?”라며 눈치를 주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의사결정 단계부터 사회적 압력이 개입될 가능성이나 이런저런 범죄가 연관될 가능성도 따져 봐야 한다. 한국에서도 조력 존엄사가 허용된다면무엇보다 당사자로서 너무 쉬운 도피처가 생긴다면 삶의 무게와 가치가 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성실한 삶, 운명과 인연에 대한 수용, 세상 및 이웃과의 유대 같은 여러 덕목이 경시될 수 있다는 생각은 기우일까. 생자필멸의 인간 숙명이랄지 예술과 종교의 모티브가 되는, 인류가 고통 속에서 꽃피워 온 삶의 가치들은 손쉬운 비상구 앞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100세인(人) 연구 선구자 전남대 박상철 석좌교수가 주창하는 ‘나이 드는 것은 거룩한 것(Holy Aging)’이란 가설을 떠올리게 된다. 노화 현상을 세포 단위로 연구하던 박 교수는 늙은 세포가 생존을 위해 성장을 거부하고 노화를 선택했음을 발견했다. 그 세포가 계속 성장을 고수했다면 생존할 수 없었다는 것. 그는 수십 년째 진행 중인 100세인 연구에 대해서도 “간난신고 속에서도 생명을 지켜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은 ‘숭고하다’는 말 외에 표현할 길이 없더라”라고 했다.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sya@donga.com}

    • 20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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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서영아]인구 위기,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을까

    한국의 인구 위기는 바야흐로 세계적 관심사다. 2300만 구독자를 가진 독일 유튜브 채널 ‘쿠어츠게자크트’가 “한국은 끝났다”고 단언하는 영상을 내놓는가 하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여러 차례 한국의 낮은 출산율을 지적하며 “인구 붕괴”를 조롱했다. ‘인류 사멸’이 ‘밤잠 못 이루게 하는 걱정거리’라며 한국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처럼 짧은 기간 저출산과 초고령화가 극적으로 진행된 국가는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지는 전 세계가 주시하는 거대한 사회실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인구 감소가 긍정적일 수 있다’는 시각을 일본 연수 시절이던 2004년 한 여론조사 기사에서 처음 배웠다. 저출산 고령화로 1억2000만 명대인 일본 인구가 2070년이면 7000만 명대로 줄어든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별문제 없다’는 반응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인구가 줄면 경쟁이 줄고 쾌적해진다’거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올라갈 것’,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를 줄일 수 있다’ 같은 이유가 거론됐다. 당시 일본 고령화율은 19.5%, 출산율은 1.29명이었다. 발전도상국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인구 증가=경제성장’을 상식으로 알던 기자로서는 문화충격이 컸다.한국은 정말 끝났나 물론 일본에서도 인구 위기는 큰 걱정거리다. 사회 원로들이 모여 인구전략회의를 구성하고 인구 100년 대계를 짠다며 머리를 맞댄다. 다른 쪽에선 낙관적 의견을 내놓는 경제학자도 상당수 있다. ‘인구 감소 사회에서는 사람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생산성이 상승하며 여성 및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로 경제가 한층 발전할 수 있다’(‘인구 감소의 경제학―저출산 고령화가 일본을 구한다’)거나 ‘고령자의 엄청난 자산이 세상에 풀려 경기가 활성화될 것’(‘초고령사회이기에 급성장하는 일본 경제’)이라는 주장도 있다. 인구 감소를 감내하되 4차 산업혁명과 로봇,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초고령사회의 신기원을 열자는 유의 관점(‘진짜 일본 경제’)도 흔히 접할 수 있다. 처음 대규모 인구 감소를 경험하는 선진국으로서 그 효시가 돼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읽혔다. 인구가 줄어도 정말 아무 문제 없는 걸까. 출산율은 전 세계에서 떨어지고 있다. 문제는 속도와 밸런스다. 정현숙 방송통신대 교수 분석에 따르면 2020∼2050년 생산연령인구는 한국에서 1319만 명(2020년 대비 64.7%), 일본에서 1969만 명(〃 73.8%) 줄어든다. 같은 기간 고령 인구는 한국에서 1085만 명(233.1%), 일본에서 286만 명(107.9%) 늘어난다. 한국에서 30년간 생산연령인구 1319만 명이 줄고 고령 인구 1085만 명이 늘어나는데, 새롭게 고령자로 편입되는 인구가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1700만 베이비붐 세대의 역할 그래서 ‘발상의 전환’ 시선으로 한국을 본다면 170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74년생)가 많은 키를 쥐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들은 그 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인류다. 고학력에 경제력을 갖췄고 나이보다 건강하다. 이들이 무기력하게 부양받는 쪽이 아니라 생산인구 쪽에 머물면서 위아래 세대를 이어줄 필요가 있다. ‘마처세대’, 즉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서 부양받지 않는 ‘첫’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한국의 정체성을 지속 가능한 것으로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책임이 있다. 머스크는 지난해 10월에도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단기적으로 AI, 장기적으로 세계 인구 붕괴”라며 “인류는 그런 변화에 대응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누군가 나서서 인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압축 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한국이 그 길을 찾아낸다면 이는 허를 찌르는 반전이자 세계사에 남을 일이 될 것이다.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sya@donga.com}

    • 202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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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스피스는 이 세상 마지막 쉼터… 잘 돌아가시면 보람을 느낍니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번잡한 현대인의 삶에서 죽음은 무척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누구도 종착역을 피해갈 수는 없다. 타인의 임종을 좀 더 의미있고 아름답게 해주기 위해 기꺼이 기도하며 함께하는 수녀들이 있다.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가 1965년 3월 강원 강릉시 홍제동에 세운 갈바리의원 수녀들이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초 호스피스 기관으로 세워진 갈바리의원은 60년 동안 그 자리에서 명맥을 이어왔다.갈바리의원은 지난달 22일 라이나전성기재단이 주는 ‘제 8회 라이나50+어워즈’의 ‘생명존중상’을 받았다. 시상식장에는 최순자 로사 원장수녀(66)를 비롯, 함께 일하는 수녀들과 자원봉사자까지 11명이 참석했다. 최 원장수녀는 “호스피스는 종합예술”이라며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켜온 모든 분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들의 얘기를 듣고 싶어 지난달 27일 갈바리의원을 찾았다. 최 원장수녀와 박희원 진료원장(57), 김예랑 리오바 수녀(54)가 인터뷰에 응해줬다.임종기 환자 통증 완화-영적 돌봄 제공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은 임종기 환자의 통증을 완화하고 존엄하게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대신 인간의 품위와 존엄성을 지키면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남은 가족이 돌아가신 분과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도록 해준다.현재 전국에 124개소가 있는데, 강원도 4곳 중 영동 지역에는 갈바리의원이 유일하다.―“호스피스는 종합예술”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수많은 손길과 마음이 모여 한분의 임종을 지켜드린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각자 몫을 하면서 한 사람이 외롭지 않고 품위있게 임종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예술 같아요.(최 원장수녀)”병원은 강릉의 한적한 주택가 한가운데 들어서 있다. 1층은 외래, 2층은 입원 병동, 3층은 수녀들이 기거하는 수도원으로 사용된다. 낡고 좁은 건물이지만 60년대 건축물 치고는 참 단단하게 지었다는 인상을 준다. 병상은 10개(1인실 6병상, 2인실 4병상), 수녀 6명, 의사 2명, 간호사 11명 등 24명이 일한다. 자원봉사자 70여 명도 힘을 보탠다.입원대상은 말기암 환자와 통증조절이 필요한 환자 등. 의사소견서가 필요하다. 이날 2층 병동에는 환자 6명이 입원해 있었다.임종 맞는 자를 위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마리아의 작은 자매회는 임종을 맞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일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도회다. 소속 수녀들은 호스피스와 병원 원목, 요양원 등에서 활동한다. 2003년 이 수도회 이름으로 낸 책 제목이 ‘죽이는 수녀들의 이야기’였다. 말기 환자의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영적 고통까지 보살핀다. 때로 병원에서 본인이나 자녀의 결혼식이 열린다. 다음은 박희원 원장의 회고다.“몇 년 전 세상을 떠난 40대 엄마는 7세 아들까지 있었는데 결혼식을 못 했대요.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늘 웨딩드레스 입고 싶어했다’며 식을 올려주고 싶어했어요. 사흘 후로 날짜를 잡았는데 제가 보니 그때까지 못 버틸 것 같아서 ‘그냥 오늘 하자’고 우겼죠. 사회복지사가 번갯불에 콩 볶듯 턱시도랑 웨딩드레스 빌려오고 자원봉사자가 곱게 화장해 주고 간호사들이 다 달라붙어서 드레스 입히고…. 그런데 거의 혼수 상태였던 신부가 힘을 내서 일어나 앉더군요. 원목 수녀님은 그 짧은 시간에 청첩장을 만들고 7살 아들이 병실마다 돌렸지요. 신부는 엷은 미소를 띠고 앉아서 식을 올리고는 그날 밤 돌아가셨어요. 제 기억에 웨딩 드레스를 채 못 벗고 가셨어요.”호스피스에서는 혼자 떠나야 하는 환자와 떠나보내지 못하는 가족 사이에 애닲은 시간들이 흐른다. “갑작스레 말기 암 통보를 받은 40대 후반 남자분이 있었어요. 부인하고 딸 둘, 네 식구가 1인실에서 한 달을 살았어요. 단칸방살이처럼. 20대였던 큰 딸이 ‘평생 했던 것보다 더 밀도 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한달이었다’고 하더군요.” “잘 돌아가시면 안도감”―임종을 반복해서 지켜보면 어떤 느낌인가요.“저는 의사니까 환자가 편안하도록 의료적으로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슬픔 같은 감정보다는 고통 없이 가셨으면 ‘휴, 잘 가셨구나’하고 안도감을 느낍니다.”(이하 박 진료원장)―애써 관계를 맺은 분들이 돌아가시면 허망하지는 않은가요.“그냥 잘 보내드리는 게 목표예요. ‘비행기의 연착륙’으로 표현을 하는데 한참 저공 비행하는 분도 계시고 쿵쿵쿵쿵 떨어지는 분도 있어요. 그분들이 어쨌거나 우당탕탕 안 하고 잘 착륙할 수 있게 조절하면서 살포시 내려놓아 연착륙하면 저는 보람을 느끼죠. 허망함보다는.”―낮에 결혼식하고 밤에 돌아가신 그 엄마의 경우도?“‘아이고 그날 하길 잘했다.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고. 그분들에게는 내일이 없을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늘 일을 미루지 않으려 해요. 이분이 언제 가실지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내일이면 늦는 거죠.”―완화의료는 정말 고통을 다 잡아주나요.“약에 반응하는 통증은 최대한 저희가 조절합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겪을 걸 다 겪고 죽어요. 못 먹는 거, 붓는 거, 스스로 용변 못보는 거, 입 마르는 거…. 이런 건 약으로 해결이 안 되거든요. 거기에 혼돈이 오는 거, 혼수상태에 빠지는 거, 힘이 완전히 빠지는 거, 몸이 너무 무거워지는 것들을 다 겪고 가시는 거죠.”그런 가운데 품위 있는 죽음을 맞으려면 정말 종합예술이 필요할 듯하다. ‘내일이면 너무 늦을’ 사람들과의 동행 박희원 진료원장은 1999년부터 5년 전 박종설 선생이 합류하기 전까지 의사로서 혼자 병원을 지켰다.“호스피스라는 말이 성지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객들이 쉬어가는 장소에서 기원했다고 해요. 인생이 순례라면 마지막 여관인 셈이죠. 온갖 치료받느라 힘들었던 몸을 누이고 쉬고 통증도 완화하고 마음도 좀 어루만지면서 좀 편안하게 마지막으로 쉬었다 떠나는 장소를 우리가 잘 제공했으면 좋겠다….”최 원장수녀의 경우 고향이 강릉이어서 20대에 3년 정도 이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인연이 있다. 경기 포천, 서울 등지에서 호스피스 관련 일을 하다가 3년 전 원장수녀로 부임했다.“전 그렇게 거룩하지 않아요. 입원한 분들이 편안하게, 남겨진 짧고 귀한 시간을 가족과 함께 의미있게 보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죠. 운영자로서 어떻게 하면 병원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합니다.”역할로는 경영을 맡았지만 일부러 매일 아침 당직 브리핑에 참석하고 첫 회진을 따라다닌다. 환자들과 접촉을 통해 자신의 일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싶어서다.갈바리의원도 만성적자다. 과거 번호표 받고 줄 설 정도로 몰려들던 외래 환자는 거의 사라졌고 단골환자들만 남았다. 워낙 새 병원들이 늘어난 탓이다.“적자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후원자가 많아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재단 법인인 저희 수도회에서 도와주는 것도 있고요. 근근이 유지는 되지만 이익을 내본 적은 없어요.”4월 소식지에 실린 후원자 명단을 보니 200여 명은 넘는다. 회사나 단체, 성당 단위 후원도 있고 고인의 이름으로 후원되는 경우도 있다.―50주년에는 아산상 대상을 받았네요. 최근 하슬라 국제예술제 측이 병원에서 한 연주회가 호평을 받는 듯합니다.“외부인 입에서 ‘갈바리의원’이란 단어를 들으니 뭉클했습니다. 저희는 ‘이게 내 삶’이라고 생각한 건데, 60년 동안 수도자가 호스피스 일을 해온 것에 대해 존경심을 표해 주시는구나. 우리는 이 안에서 하루하루 복닥거리고 살고 있지만 그것들이 쌓여 인연을 맺은 분들, 외부에서는 크게 봐주시고 있구나.(김예랑 리오바 수녀·사회복지사).”지방의 독립 호스피스, 병상 10개 채워지는 경우 드물어―앞으로 계획이랄까 소망이 있다면.“많은 분이 호스피스에 대해 알았으면 합니다. 호스피스가 인생 마지막 장면에서 얼마나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알고, 더 많은 분이 마지막 가는 길을 조금 더 품위 있게 존엄하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둘째로는 좀더 많은 의료진이 함께 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박희원 선생님께 1년 안식년을 드리기로 하고 후임을 알아보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의사 선생님들이 호스피스에 관심 갖고 종사할 수 있는 문화나 환경이 자리 잡으면 좋겠습니다.”(최 원장수녀)호스피스는 늘 ‘자리가 없다’는 통념에 대해 이들은 고개를 젓는다. “서울은 그럴 수 있지만 강릉은 전혀 아닙니다. 저희 병상 10개인데 지금 여섯분밖에 안 계세요. 지난해 가동률 82%였고 병상이 꽉 차는 건 1년에 서너번 정도예요.”―임종 시기에 맞춰 어딘가에 들어간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었는데요.“저희 병원에서 1년에 150명~180명 정도 돌아가시는데 그런 경험을 하신 분은 20명도 안 될거예요. 대기를 걸어도 대체로 일주일 안에 해결됩니다. 또 그런 경우 가정방문부터 시작할 수도 있지요. 가정방문 환자가 입원을 하겠다면 저희는 0순위예요. 이미 우리 환자니까요. 소도시 독립형 호스피스에 대기자가 많아 입원을 못 하는 건 아니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경제논리와 거리가 먼 병원 운영―가정방문은 어떻게 하나요? “첫날은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때로는 봉사자가 함께 가서 환자 상태, 가정환경, 살아온 이력을 파악을 하죠. 그 다음부터는 주로 간호사가 정기 방문해 증상을 살피고, 수녀님도 가끔 가서 영적 돌봄 프로그램을 합니다. 현재 10명 정도 환자가 있습니다. 저희 장점은 병동이 있으니까 가정 방문과 입원을 적절히 섞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환자는 가까운 곳에 사는 분들인가요. “삼척이나 정선 속초까지 갑니다. 이 일대에 호스피스가 저희밖에 없으니 의뢰가 들어오면 다 가야죠. 삼척은 한 번 다녀오면 반나절이 걸려요. 경제논리로만 따지면 말이 안되죠(최 원장수녀).”2년 전부터는 입원환자에 대한 무료간병을 시작했다. 입원비용은 월 50~60만 원(본인부담) 선에 불과하지만 간병비 부담에 입원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6개의 병상에 공동간병인을 배치해 돌본다.절감된 의료비, 호스피스 등 웰다잉 지원 필요입원형 호스피스는시설과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수가는 낮아 대형병원들조차 외면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2018년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법제화에 힘쓴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는 분에게 웰다잉을 위한 준비, 호스피스 전환 등의 시스템을 마련해 고통없고 품위있는 임종을 보장해드리자는 것.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말기암 환자의 최종 1년간 평균 의료비는 호스피스를 이용하지 않은 경우 약 9348만 원, 호스피스 이용환자는 약 4271만 원으로 두배 이상 차이가 났다. 국가지원도 덜 받은 만큼 일부라도 이를 호스피스 등에 돌려 지원해주자는 얘기다.말기 환자와 가족에 구세주 역할이날 1층에서 만난 환자 가족을 통해 갈바리의원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기암 환자인 50대 언니가 며칠 전 퇴원해 가정방문 호스피스를 받기 시작했는데, 휠체어 등 의료기구를 빌리러 온 참이라고 했다.“서울아산병원 주치의가 ‘더이상 치료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저희가 강릉에 산다니까 여기를 연결해 주셨어요. 호스피스에 가정 방문이 있다는 것도, 생각보다 폭넓은 케어를 해 주신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무척 감사하고, 위안을 얻고 있어요. 말기암 환자는 통증치료가 중요한데 집에까지 와서 통증을 잡아주시고,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 다시 입원하면 되니까 얼마나 안심되는지 모릅니다. 그 전에는 아플 때마다 응급실 달려가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었거든요. 초고령시대는 다른 말로 하면 죽음이 많아지는(多死) 시대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통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강릉=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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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서영아]정년연장 논쟁과 ‘잃어버린 세대’

    올해 초 정년퇴직한 지인은 호적상 생일이 1월 1일이다. 실제보다 한두 달 늦게 출생신고가 됐다고 했다. 퇴직이 늦어져 좋은 거 아니냐 했더니 고개를 젓는다. 하루 차이로 국민연금을 1년 더 늦게 받게 됐다는 얘기다. 1998년 개정된 국민연금법에 따라 1965년생부터는 만 4년의 소득공백기를 거쳐야 한다. 법정 정년과 연금수급 시기가 동떨어져 생기는 소득 절벽을 해결하고 저출산 고령화가 가져올 인구 위기에 대처한다며 ‘정년 연장’ 논쟁이 뜨겁다. 8일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계속고용 의무 제도화’ 방안을 내놓았다. 정년 연장을 법으로 정하지 말고 기업에 계속고용 의무를 부여하자는 것. 1년을 연구했다는데 뜯어 보면 일본의 계속고용 제도와 매우 유사하다. 여러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의문이 생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년’이란 ‘연금수급 개시’ 연령을 뜻한다. 선진국 중 정년(60세) 따로, 연금수급 연령(65세) 따로인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엄청난 저출산 고령화에 시달리고 연금 재원 마련에 갈수록 어려움이 예상되는 점도 닮았다. 그렇다면 일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일본, 연금 연령 올리기 전 고용 연령부터 손봐 일본은 법정 정년 60세를 그대로 두고 모든 기업에서 65세까지 고용 연령을 높여왔다. 주목할 점은 연금개혁과 고용 확보 조치는 항상 함께 추진됐다는 것. 2001년부터 연금 수급 시기를 60세에서 65세로 25년에 걸쳐 늦췄는데 그 10년 전인 1990년부터 고령자 고용 확보를 위해 60세→65세→70세의 순으로 노력의무화(유도)→의무화→법제화의 과정을 밟았다. 1994년에는 60세 정년을 의무화하면서 연금 수급 시기를 2001년부터 올리기로 결정했다. 2000년 65세까지 고용 확보 조치 도입을 노력의무화, 2004년 법적의무화를 거쳐 2020년엔 70세까지 계속고용을 노력의무화했다. 이 결과 2023년 현재 65세까지 계속고용 제도를 도입한 기업은 99.9%에 이른다. 국가책임인 사회보장 부담을 기업에 떠넘긴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대신 기업에 상당한 재량권을 줬다. 기업 중 69.2%가 재고용 제도를 택하고 있는데, 퇴직 전 대비 임금 수준은 대기업의 경우 75%, 통상은 60% 정도다. 업황이 좋은 30%의 기업은 아예 정년을 없애거나 65세 이상으로 올렸다. 퇴직에 즈음해 회사가 제시한 재고용 조건을 마주한 근로자들의 고민담이 흔히 들려온다. 달라진 업무 내용, 주 3일 출근, 급여 삭감, 사회보험 지원 없는 촉탁직…. 이런 조건을 받아들일 것이냐를 고민하는데, 2023년 기준 87.4%가 회사에 남았다.제도의 구멍에 갇힌 ‘잃어버린 세대’ 연금이니 정년이니 자기 일로 닥치지 않으면 관심이 없는 법이다. 하지만 제도 설계와 정책 결정의 책임을 따지는 건 다른 얘기다. 한국은 1998년 말 연금 수급 연령을 2013년부터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올린다고 결정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소득 공백에 대해서는 손을 놓았다. 2013년 60세를 맞은 1953년생의 1년부터 시작해 4년마다 1년씩 소득 공백이 추가되고 있다. 제도상 구멍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계속고용’의 도입 시기도 문제다. 경사노위안의 2028년이라면 1968년생부터 적용 대상이 된다. 베이비붐 세대가 몰린 1953∼1967년생까지 15년간의 세대를 내다버리고 1968년생부터 챙기면 된다는 건가. 또 다른 ‘잃어버린 세대’가 이렇게 탄생한다. 현재 노동계는 임금 삭감 없이 법정 정년을 65세로 올리자고 주장한다. 경영계는 퇴직 후 재고용을 통해 고용 대상과 임금을 조정하고 싶어한다. 고용 주체는 기업이므로 기업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게 맞을 듯하다. 청년고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데 퇴직자들이 재고용을 통해 소득 절벽을 헤쳐나가고 세금을 내고 사회에서 쓸모를 발휘한다면 그 자체가 청년들의 부양 부담을 줄여주는 일이기도 하다.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sya@donga.com}

    • 202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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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 10만 엔만 벌면 충분”… 정년 후 고령자, 조금 벌지만 더 행복하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정년 후’를 생각하면 누구나 막연한 불안감을 갖는다. 이런 때 남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면 어떨까. 한국보다 20년 먼저 초고령사회에 돌입한 일본은 우리가 참고로 하기에 좋은 나라다.일본에서는 2017년 쿠스노키 아라타(楠木新)가 쓴 ‘정년 후’(주쿠신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바 있다. 저자는 자신이 만난 150명 가량의 정년 전후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정년후 최대 문제는 건강도 돈도 아니고 고독”이라고 갈파했다. 이 책의 패러디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뒤 통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년후 일본인의 평균적이고 전형적인 삶을 밝힌 책이 나왔다. 2022년 말 사카모토 다카시(坂本貴志)가 낸 ‘진짜 정년 후’(고단샤현대신서)가 그것으로 가계수입이나 지출, 업무내용 등에 관한 각종 데이터를 통해 ‘정년 후 일본인의 15가지 진실’을 정리했다.책은 일본의 초고령사회 20년간 삶의 방식이나 일하는 방식이 모두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드는 사이 고령자의 노동은 사회적 요구이자 현실이 돼 일상에 뿌리내리고 있다. 70세 남성의 절반 가까이, 여성의 3분의 1이 취업 중이며 보통 가계에서 정년 후 정말 벌어야 하는 액수는 월 10만 엔 정도라는 점, 직장인들은 대체로 50대에 업무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리는 경험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정년후 일본인의 15가지 진실’ 중 추려낸 내용이다. 모든 언급은 통계와 조사로 밝혀진 평균적인 모습임을 밝혀둔다. 통계에 나타난 엔화 환율은 10을 곱하면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연소득은 대체로 300만 엔 이하정년 후 취업자는 어느 정도 벌고 있을까. 일본 국세청 민간급여실태통계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급여소득자의 평균 연소득은 436.4만 엔. 연령별 평균 소득은 20대 263.9만 엔에서 나이가 들수록 올라가 50~54세의 524.5만 엔으로 정점을 찍는다. 60세 이후 급속히 줄어 60~64세 410.7만 엔, 65~69세 323.8만 엔, 70세 이후는 282.3만 엔까지 내려간다.소득액 추이를 분석해 보면 대체로 정년 전에 한 번 떨어지고 정년 후 다시 내려가는 걸 볼 수 있다. 40대 후반부터 50대까지 3세 단위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소득의 정점은 정년 직전인 50대 후반이 아니고 50대 중반이다. 50대 후반이 되면 정년을 앞두고 대체로 직책에서 물러나는데 이에 따라 급여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정년 후에는 일을 한다 해도 현역 시절처럼 높은 수입을 얻기는 어렵다.생활비는 월 30만 엔 정도로 줄어든다정년 후에는 어느 정도 돈을 쓰게 될까. 고령이 되면 지출이 크게 줄어든다는 통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일본 총무성이 가계조사를 통해 2인 이상 세대 기준 월 평균 지출액을 연령별로 취합한 표를 보면 34세 이하가 월 39.6만 엔을 지출했고 이후 늘어나 50대 전반에는 월 57.9만 엔을 쓴다. 가족 식비나 교육비, 주택비, 세금, 사회보험료 등 가장 돈이 많이 드는 시기다.50대 후반까지 높게 유지하던 가계지출은 60대부터 줄어든다. 감소폭이 가장 큰 시점은 60세 정년 전후다. 월 57만 엔에서 43.6만 엔으로 줄어든다. 그 뒤로도 계속 줄어 60대 후반에 월 32.1만 엔. 70세 전반에 29.9만 엔까지 내려간다. 70대 후반 이후는 월 26만 엔 정도에 안착한다.정년을 경계로 지출이 주는 이유는 교육 관련 비용이 사라지고 대부분 정년 전에 주택 대출금 갚는 시기가 끝나며 비소비지출이 줄어든 덕이다. 비소비지출은 세금과 사회보장비용 등을 말하는데 50대 후반 월 14.2만 엔, 60대 전반 월 8.8만 엔, 60대 후반 3.7만 엔으로 내려간다. 모두가 걱정하는 보건의료비 부담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실제 65~74세 가구의 의료비는 월 평균 1.7만 엔에 불과했다. 고령자가 벌어야 할 돈은 월 10만 엔 정도그렇다면 정년 후에 얼마를 벌어야 할까.은퇴한 65~69세의 평균 소득액은 월 약 25만 엔이다. 사회보장급부(공적연금)가 월 19.9만 엔, 민간보험이나 확정거출연금 등을 포함한 보험금이 월 2.7만 엔, 기타 수입이 월 2.2만 엔이다. 앞에서 본 해당 연령대 지출액은 월 32.1만 엔이므로 7.6만 엔이 모자란다. 결국 현역 시절 월 60만 엔 정도를 벌던 사람도 정년 후에는 연금에 더해 약 10만 엔 정도만 노동수입이 있으면 살림은 충분히 돌아간다는 계산이 나온다.월 10만 엔을 벌려면 어느 정도 일해야 할까. 시급 1000엔짜리 일이라면 월 100시간, 예컨대 주 4일 하루 6시간, 혹은 주 3일 8시간 근무하면 된다. 시급 1500엔이라면 같은 시간 근무해서 5만 엔을 더 벌 수 있다. 조금씩 흑자가 난다면 일할 수 없게 될 때에 대비해 저축을 하면 좋을 것이다.나아가 공적연금 수령연령인 65세 부부가 각자 월 15만 엔에서 20만 엔씩 벌 수 있다면 합쳐서 30만 엔 넘는 소득이 되므로 굳이 연금을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이럴 때는 연금 연기가 유리하다. 공적연금 월 20만 엔을 받을 세대가 70세까지 연기하면 월 28.4만 엔, 75세까지 연장하면 월 36.8만 엔을 사망 시까지 받는다. 노후 생활에 여유를 얻고 장수 리스크에도 대비할 수 있다.70세 취업률, 남성 45.7%-여성 29.4%일본 총무성 국세조사에 따르면 2020년 일본의 70세 남성의 취업률은 45.7%. 70세 남성의 거의 절반 가까이가 일을 한다. 여성 70세는 29.4%가 일하고 있다. 연령을 65세로 낮추면 남성 62.9%, 여성의 44.9%가 일하고 있다. 고령자 취업률은 최근 10년간 급상승 중이다. 2010년과 비교해보면 당시 70세 남성 취업률은 35.4%, 여성은 20%였고 65세 남성은 53.2%, 여성 31.8%였다.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고령자들의 노동참여는 불가피한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년 후 고령자가 맡는 업무는 현장업무가 많다. 회사가 원하는 고령자의 업무는 과장 부장 같은 관리직이 아니라 일선에서 고객을 응대하고 움직이는 ‘선수’ 역할이다. 업무부담도 줄어든다. 회사에서 고령 근로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대체로 60대부터 능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가벼워진 업무를 하며 성과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돼 일과 삶을 즐기는 모드로 전환해 간다.또한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만족도는 올라가고(50세 35.9%, 75세 61.2%) ‘행복을 느낀다’(50세 38.2%, 70세 54.9%)는 응답도 늘어간다.50대에 취업관은 급변한다왜 일하는가. 첫 번째 답은 ‘돈 벌기 위해’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일을 통해 유형무형의 여러 가지를 얻는다. 일에 대한 가치관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심리학자 도널드 E. 수퍼는 직업가치를 경제적인 안정뿐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 ‘남에게 도움이 된다’ 등 20가지 척도로 정리했다. 저자는 일본인이 일에서 느끼는 가치를 △타인에 대한 공헌 △생활과의 조화 △일에서 얻는 체험 △능력 발휘 △몸을 움직이는 것△높은 소득과 영예의 6가지 요소로 나누고 연령에 따라 이들 가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5점 척도 방식으로 조사했다.일에서 가장 많은 가치를 발견하는 연령대는 20대였는데, 이들은 ‘높은 소득과 영예’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 ‘일에서 얻는 체험’이나 ‘능력 발휘’도 점수가 높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에서 느끼는 보람은 줄어든다.일에 대해 의미를 잃게 되는 증상이 가장 심한 시기가 50대 전반이다. 이 연령대에는 지금까지 가치의 원천이던 ‘높은 소득이나 영예’는 마이너스 요소가 되고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고민했다. 정년이 다가오고 직책에서 물러나는 시점에 지금부터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 같은 현실이 데이터에서도 나타나는 것.반면 더 나이가 들면 반전이 일어난다. ‘높은 소득과 영예’를 제외한 모든 요소가 70대 후반까지 가치를 높여나간다. 일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70대 취업자는 젊은 시절 이상으로 긍정적인 자세가 돼 있다.정년 이후 취업관이 20대의 취업관과 크게 다르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고령이 될수록 ‘타인에 대한 공헌’ ‘몸을 움직이는 일’ 등의 가치를 중시한다. 이는 20대는 별로 중시하지 않는 가치들이다. 많은 이에게 정년후는 새로운 일 속에서 지금까지 몰랐던 가치를 발견해가는 과정이 된다.경제란 ‘작은 일들의 축적’저출산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가 급속히 쪼그라드는 현실에서 사회는 고령자들이 부족한 일손을 보태주기를 바란다. 단 현역시대처럼 대단한 생산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를 “고령자들이 사회의 부양을 받는 쪽에서 사회를 부양하는 쪽이 돼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부양을 받지 않는 것만 해도 국가와 사회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평균적인 퇴직자들이 하는 일은 현역시대와는 많이 다르다. 정년 후 삶의 ‘전형’은 무리하지 않고, 소소한 작은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란 걸 각종 데이터가 알려준다. 경제학자인 저자는 이러한 평범한 사람들이 해내는 작은 ‘일’들이 일본 경제를 지탱한다고 말한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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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서영아]‘지방소멸’ 충격 그후 10년… “여전히 마지막 기회”

    ‘2040년이면 일본 지방자치단체 중 절반이 사라진다.’ 이런 내용의 ‘마스다 보고서’가 열도를 충격에 빠뜨린 게 2014년 일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의 대도시 유출로 지방이 쇠퇴해 행정체계가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경고였다. 마스다 히로야(増田寛也·74) 전 도쿄대 교수는 그런 점에서 ‘지방소멸’이란 용어의 창시자였다. 10년 뒤인 지난해 말, 후속 보고서가 나왔다. 이번엔 인구전략회의(의장 미무라 아키오 일본제철 명예회장·85·마스다 전 교수는 부의장) 명의로 낸 보고서에서 이들은 ‘지난 10년간 들인 노력에도 인구 감소를 멈추지 못했다’고 고백했다.‘인구 감소 사회에선 민주주의도 흔들려’ 인구전략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소멸 위기 지자체는 10년 전보다 약간(896개→744개) 줄었다. 그러나 큰 의미는 없다고 마스다 전 교수는 말한다. 출산율 추세는 변함없고, 외국인 노동자 유입과 지자체끼리의 인구 쟁탈전 결과라는 것. 대도시가 주변 인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현상도 여전했다. 10년 전 보고서는 당시 1.4인 합계출산율을 1.8까지 끌어올려 2100년 인구 9000만 명대를 유지할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하지만 실제 출산율은 1.20(2023년)으로 떨어졌고 2100년 추계 인구는 6300만 명 선에 머물고 있다. 인구 감소가 가져올 문제들 가운데 ‘인구감소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도 흔들린다’는 지적이 눈에 띄었다. 민주주의에는 ‘동시대인들과 중장기적으로 이 사회를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암묵적 합의가 전제되는데, 미래가 불확실하고 시스템의 지속 여부를 알 수 없다면 아무도 손해 보려 하지 않게 된다. 결국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져 갈등이 커지고 민주주의는 훼손된다. 요즘 한국 청년들이 결혼 출산 연금 등에 대해 보이는 냉소적 태도의 배경에도 유사한 불신이 깔려 있는 듯하다.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들여 아이를 낳고 길러 봤자 나만 손해”라거나 “연금 열심히 내 봤자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만이 그렇다. 도처에서 계층과 세대, 지역, 성별로 갈라져 싸우는 배경에도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지방 소멸 방지, “지금이 마지막 기회” 인구전략회의는 새로운 인구 비전으로 ‘2100년 8000만 사회’를 목표로 하자고 제안했다. 일본이 지속 가능한 성장률을 담보하려면 이 정도 규모는 갖춰야 한다는 것. 그러려면 최소한 5년 내에는 출산율을 점차 두 배까지 올리는 움직임이 시작돼야 한다고 했다. 마스다 전 교수와 미무라 의장은 입을 모아 “지금이 미래를 선택할 마지막 기회”라고 외친다. 이분들이 자신은 살아 있지도 않을 2100년을 기약하는 모습에서는 기성세대의 책임감과 걱정이 느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했다. 결국 출산과 육아를 맡을 당사자는 적령기 청장년이고 무엇이 필요한지도 이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부 학자들은 ‘세대별 선거구제’ 아이디어마저 내놓고 있다. 선거구를 나눌 때 지역이 아니라 세대별로 잘라 각 세대 대표들을 의회로 보내자는 것. 예컨대 20대가 60대보다 머릿수는 적겠지만 대표성을 위임받은 인원의 의회 진출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입시나 채용에서 성별, 인종별 쿼터제가 적용되듯 세대 쿼터제도 고려해 봄 직하다. 인구 감소, 고령화에 관한 한 일본은 우리에게 좋은 학습 사례였다. 그런데 출산율은 좀 다르다. 한국 합계출산율이 1970년 4.53에서 지난해 0.74까지 수직낙하하는 동안 일본은 2.1에서 1.20으로 떨어진 정도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1989년 ‘1.57 쇼크’부터 시작해 2023년 도쿄의 ‘0.99 쇼크’ 등 새로운 숫자가 나올 때마다 온 나라가 들썩였다. 한국의 ‘0’대 출산율은 ‘집단자살 사회’(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라는 우려 섞인 시선을 받고 있지만 정작 우리 내부에서는 일본만큼의 위기의식도 없어 보인다.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sya@donga.com}

    • 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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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아직 젊다’는 그 믿음이 건강을 부릅니다”… 삶과 죽음 연구하는 의사의 ‘건강하게 나이들기’[서영아의 100세 카페]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2012년)’,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2014년)’, ‘나는 품위 있게 죽고 싶다(2021년)’… 그 연배에 이처럼 죽음에 대한 책을 많이 낸 현직의사도 드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첫 저서의 제목대로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였다.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가이자 굵직한 의료정책들을 내놓으며 세상을 바꿔온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61) 얘기다.최근 새 저서를 보내온 그를 만나려 15일 서울대 의대를 찾았다. 대뜸 그는 “내 나이는 43세 정도”라고 말한다. 그가 적정나이를 계산하는 방법은 이렇다. 자신이 태어난 1964년의 기대수명이 58세였고 현재 기대수명이 83세이므로 58을 83으로 나눈 0.7을 곱해야 현재의 적정나이가 된다는 것. 61세에 0.7을 곱하면 43세 정도 된다.20대 누님 암으로 보내며 의사의 길 결심그가 의사가 된 동기에는 개인적 체험이 자리하고 있다. 어린 시절 큰 누나가 24세 꽃다운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중학교 1학년 때, 제가 맹장수술을 받게 돼 큰누나가 간병을 해줬어요. 회진하던 의사가 누나 눈에 황달이 보인다며 검사를 권했는데, 알고보니 위암이 간까지 전이돼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대학생이던 큰 형과 아버지가 크게 싸웠다. 형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니 수술을 해보자고 했고, 6남매를 키워야 했던 아버지는 포기하려 했다. 누나는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소년은 반드시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삶은 한번 방향이 잡히면 자꾸 그쪽으로 끌려 들어간다.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그는 1989년 원목실 봉사활동을 통해 말기 위암 환자를 만났다. 환자 가족들과 함께 간병하고 임종까지 지키면서 호스피스에 대한 사명감을 갖게 됐다. 25세 때였다.“신부님 수녀님들과 함께 말기 환자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기도해주고 책을 읽어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게 ‘호스피스’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요.”2011년 EBS다큐 ‘명의’에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의사로 그가 출연하기도 했다. 이 내용을 책으로 쓴 것이 첫 저서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가 됐다. ―가정의학과를 선택한 이유도 호스피스를 하기 위해서라고요.“전공과를 정하기 전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조언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가톨릭단체에 호스피스병원을 만들자는 제안도 했었지요. 선배들은 가정의학과를 권했습니다. 그런데 과 입국식때 제가 ‘호스피스를 하려고 들어왔다’고 했더니 다들 웃더군요. 당시 호스피스는 성직자나 간호사가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했어요.”무의미한 연명 중단하도록…연명의료결정법 통과시켜따지고보면 우리 모두는 그에게 신세를 졌다. 2016년 제정(2018년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법제화는 그의 노력에 힘 입은 바 크다. 한국인의 삶의 마지막에 대한 생각도 엄청나게 바뀌었다. 사전에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은 23일 현재 283만 여명. 연명의료 중단을 이행에 옮긴 사람은 누적 42만 여 명에 이른다.―2017년 경 일본의 슈카쓰(終㓉‧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활동)를 취재할 때 그쪽 사람이 “한국은 어느 날 갑자기 법을 뚝딱하고 만들어 버렸다”며 혀를 내두르더군요.“그때 일본 언론이 제게도 취재하러 왔었어요. 일본에서도 오래 전부터 추진했지만 계속 안 됐는데 어떻게 한 거냐고요. 이유는 여럿 있지만 일단 계기가 되는 사건이 있었죠.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에 이어 2008년 김할머니 사건이 결정적이었습니다.”김할머니는 2008년 2월 식물인간이 되었으나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다가 자녀들이 연명의료의 중단을 요구하며(영양제공 중단은 요구하지 않았다) 재판 끝에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에서 승소한 사건이다.당시 대법원은 연명의료는 무의미한 신체침해 행위로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며,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이른 환자가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될 경우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사실상 존엄사를 인정한 첫 판례라는 평가를 받았다.“그 뒤로 국회에서도 계속 법안을 논의해왔습니다. 당시 정부는 연명의료결정법만 통과시키려 했어요. 저희가 호스피스 법안을 함께 넣어야 한다고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연명의료를 중단했는데 호스피스 지원이 없다면 생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분들이 너무 힘들지 않겠어요. 우여곡절 끝에 따로따로 발의된 두 법안을 합쳐서 통과시킨 겁니다.”이때 기여한 공로로 그는 2016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재원 없는 정책은 모래위에 지은 성 같아”천신만고 끝에 법이 제정됐지만 윤교수는 못내 찜찜하다. 법안이 19대 국회 말기에 급하게 통과되면서 그가 넣었던 웰다잉과 호스피스를 위한 ‘기금’과 그것을 운영할 ‘재단’ 조항이 모두 삭제됐기 때문이다.“‘이건 이번엔 빼고 다음에 하자’면서 통과에 집중했는데 지금까지도 그대로입니다. 아무리 법안이나 정책을 만들어도 재원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기금과 재단이 왜 필요한 겁니까.“지금의 연명의료결정법은 연명의료 중단에 국한돼 있기 때문에 아주 소극적입니다.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분들에게 웰다잉을 위한, 존엄한 죽음을 준비시켜 드려야 해요. 생전장례식이나 마지막 소원, 마지막 여행, 자서전 등 인생노트, 이런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고 죽음을 잘 정리할 시간을 갖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걸 제도화하자고 계속 부르짖었지만 정부도 의료계도 귀담아듣지 않네요.”국가가 그런 데까지 신경쓸 여력이 있을까. 아무튼 윤교수의 논리는 이렇다. 예컨대 누군가가 ‘나는 연명의료 안하겠다’ ‘호스피스를 하겠다’고 결정한다면 건강보험에서는 엄청난 의료비가 절감된다. 대신 이 분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것. “이런 건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마무리, 국가가 책임집니다’라고요. 미국은 카터 대통령때부터 오바마 대통령때까지 매년 11월을 ‘호스피스의 달’로 정하고 대통령이 말기 환자와 그 가족을 위로하고 그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고 격려하는 메시지를 씁니다. 캐나다는 의회가 나서서 ‘모든 국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에 존엄성을 지키며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를 포함했어요.”‘설탕세’에 거는 기대그래서 그가 요즘 열심히 들여다보는 것은 ‘설탕세’다. 몸에 해로운 상품 판매에 대해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그 사용을 줄이고 모자라는 재원으로도 활용한다는 취지다. 유사한 사례로 담뱃세가 있는데 현재 1갑당 세금이 약 3300원, 연간 11~12조 원이 걷힌다.세계보건기구(WHO)는 2016년 ‘설탕을 넣은 상품값의 20%만큼 세금을 매기라’고 각국에 공식권고했다. 이를 계기로 설탕세를 도입하는 곳이 급증해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0년 17개국에서 2023년 117개 국가 및 지역으로 늘었다. “영국이 2018년에 설탕세를 시작했는데 설탕 섭취량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비만, 암 발병까지 줄었어요. 최근 청소년 천식이 줄었다는 논문도 나왔습니다. 제가 새로운 재원으로 설탕세(건강세)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국내에서 여론조사를 두 번 했어요. 초고령사회 노인건강 문제나 예방적 의료에 대한 재원 확보를 위해 건강보험료를 올리는 것과 건강세를 신설하는 것에 대해 물으면 80% 이상이 건강세를 택했습니다. 사실 호스피스도 그렇지만 고령인구 증가에 따른 만성질환 치료와 예방 활동에도 재원이 필요합니다.”고독은 건강에 치명적그가 최근 낸 저서 ‘삶의 의미를 잃기 전에(안타레스)’에서는 삶과 죽음에 관한 얘기 외에 ‘건강하게 나이드는 법’이 수록돼 있다. “이 책은 제 참회록과 같은 것입니다. 건강과 삶에 대한 신념이 담겨 있어요. 미래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건강권, 건강민주화, 건강공동체, 건강세 등을 고민합니다. 세상은 생명공동체, 삶 공동체, 건강공동체를 거쳐 돌봄공동체, 웰다잉공동체로 나아가야 합니다.” 건강하게 나이드는법 파트에는 △건강은 선택에 의해 얻어내는 것 △삶의 목표와 보람이 수명을 늘린다 △고독은 건강을 망친다 △사회적 관계가 건강에 중요하다 △‘아직 젊다’는 믿음이 기적을 곧잘 낳는다 △나이 들수록 돕고 살아야 하는 이유 등이 담겨 있다. “건강하게 나이 들려면 삶의 목표랄까 보람이 있어야 하고 고독을 벗어나야 하고 낙관주의를 가져야 하고 ‘아직 젊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과거보다 기대수명이 늘어났으니 그에 어울리는 젊은 생각을 해야 하죠. 그런 노력을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이타적인 활동이 수명을 늘린다―노년에 사회관계가 좋을수록 건강하다고요.“고독은 건강에 치명적입니다. 고독의 해악에 대해 영국에서는 하루에 담배 15가치를 피우는 것과 비슷한 정도로 해롭다고 하고 있습니다. 나이 들수록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교류하고 사는 삶이 건강의 비결입니다.”―부자일수록 오래 살고 건강하다는 말이 있지요“그래서 건강 민주화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건강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재원을 만들고 그 재원을 사용하는 국민은 권리만이 아니라 책임도 져야 합니다. 예컨대 노인들이 젊은 세대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건강이예요. 자신의 건강을 잘 관리함으로써 의료비를 줄이고 젊을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지요. 재미있는 건 봉사활동이 생존율을 20% 정도 올린다는 점입니다.”―노년의 봉사활동을 강조하시는군요.“심리학자 메슬로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첫째 생존, 둘째 안정, 셋째 소속, 넷째 인정, 다섯째 자아실현의 순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가 자아초월이예요. 이게 바로 봉사하는 마음입니다. 나를 넘어서 이타적으로 사는 삶이 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는 거죠. 여기에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것, 사회관계를 잘 만들어가는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인간의 삶이 됩니다. 인간은 동물로 태어나 신이 되고자 하는 존재죠. 불가능하지만 끊임없이 도전하므로 위대합니다.”혼자 꾸는 꿈은 그저 꿈이지만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그의 꿈이 확산돼 현실이 되길 빌어본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5-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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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소중한 건 가족”… 먼 길 돌아 나이 일흔에 찾아온 깨달음[서영아의 100세 카페]

    ‘첫째, 어머니가 살아계셔서 감사합니다. 둘째, 제가 어머니 아들인 것에 감사합니다. 셋째, 정신이 혼미한 지금도 ‘제가 누구냐’고 물으면 ‘내 아들’이라고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70)이 2010년 인지장애(치매) 판정을 받은 어머니 장곤단 여사(2011년 86세로 작고)를 생각하며 써내려 간 1000개의 감사편지 앞부분이다.어머니는 이 편지를 630여 통 썼을 때 돌아가셨다. 박회장은 상을 치른 뒤에도 370여 통을 더 써서 1000개의 감사편지를 완성했다.‘어머니, 내 어머니’누구에게나 어머니는 특별한 존재지만 박 회장에게는 더욱 그랬다. 어머니는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유복자인 5살 아들을 데리고 흑산도로 들어가 남의 집 일을 해주며 키웠고 뭍으로 유학보내 고등학교를 졸업시켰다.“섬에서 유일하게 남의 집 셋방살이를 했어요. 참 어렵게 살았는데, 제 마음 속에는 그런 그늘이 하나도 생기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워낙 저를 신뢰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키워주신 덕입니다. 예를 들어 끼니때면 저는 어머니가 일하러 간 집에 가서 밥을 먹었는데 ‘얻어먹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손님처럼 가서 먹고 온다는 느낌이었죠.”섬 마을 인심이 후했던 것에 더해 그가 공부를 무척 잘했다는 점, 어머니에 대한 평판이 워낙 좋았던 점이 작동했던 듯했다.그는 이 편지들을 모아 2014년 ‘어머니, 부치지 못한 1000통의 감사편지(올림)’이란 책으로 만들었고 2022년 개정판 ‘어머니, 내 어머니(올림)’를 냈다.50대 중반에 ‘감사’를 만난 축복그는 세무업계에서 ‘감사운동 전도사’로 불린다. 지난달 25일 서울시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내에 자리한 천지세무법인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 입구 벽면에는 ‘감사 메모’가 잔뜩 꽂힌 나무가 장식돼 있었다. ‘00님. 야근당직 짝꿍 해줘서 고마워요’ ‘00팀장님 칭찬합니다’ 등 직원들이 붙인 일상의 소소한 감사들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감사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2000년대 후반 회사가 위기라고 느꼈습니다. 당시 세무업계는 전자세금계산서 도입을 앞두고 업무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상황이었어요. 답답하던 차에 우연히 뇌과학자와 심리학자가 쓴 논문을 읽었는데 ‘이거다’ 싶더군요. ‘감사편지를 하루 5개씩 쓰면 3주면 스스로의 변화를 느끼게 되고 3개월이면 다른 사람들이 내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는 얘기였습니다. 나부터 달라져보자고 생각했습니다.”결국 ‘감사편지 쓰기’는 그의 50 평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일대 사건이 돼 버렸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박 회장 자신이었다.“전에는 제가 성격이 만만치 않아서 직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윗사람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감사일기를 쓰면서 미소도 늘고 ‘사람이 달라졌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석 달 뒤 그는 감사편지 쓰기를 전 직원에게 확대했다. 종이세금계산서 입력센터를 만들어 기존 업무를 줄이고 남는 시간을 고객 상담에 집중하도록 했다. 사무실도 서초동에서 지금의 장소로 옮기고 스마트오피스로 바꿨다. 직원들이 고객에게도 감사편지를 쓰게 되면서 회사는 더욱 성장세를 이어갔다.“15년째 매일 감사편지를 일기처럼 쓰고 있습니다. 하루 10개 이상은 씁니다. 그날 일어난 인상적인 일이나 상황을 적고 마지막에 감사합니다! 라고.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더 나쁜 일을 당하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씁니다.”호랑이 어머니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아들이 ‘아비없는 자식’ 소리 들을세라 더 엄하게 키웠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매를 많이 맞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니 더 이상 매를 들지 않았다.“고등학교 가기는 글렀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 담배에 손을 댔습니다. 어머니는 눈치를 채셨을 텐데도 아무 내색도 없으셨어요.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앉혀놓고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가 너를 고등학교에 보낼 테니 공부하라’고 하셨죠. 매 맞는 것보다 열배는 더 아팠습니다.”목포상고 다니던 시절 크게 혼난 적이 있다. 방학 때 친구들과 짜고 이웃집 염소를 몰래 잡아먹고 목포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이웃의 염소값을 물어주고 목포 자취집까지 그를 찾아와서 교과서와 책을 전부 꺼내 불사르며 꾸짖었다.“내가 ‘경우 바르게’ 살라고 했냐, 안 했냐? 사람이 그런 나쁜 짓을 하면서 공부는 해서 뭐하냐. 남에게 못된 짓 하는 사람은 공부를 해선 안된다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제가 감사일기를 안 썼으면 그런 일도 다 잊고 살았을 거예요.”졸업 뒤 무작정 상경해 공장과 백화점 등을 전전하며 일했다. 주경야독 끝에 1980년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것이 속세의 기준으로는 삶의 전기였다. “남들에게 잘해라. 베풀면서 살아라”‘어머니, 나의 어머니’를 읽어보면 짤막한 에피소드가 쌓여 어머니의 전체 모습이 그려지고 그 희생과 인내, 깊은 속내가 읽힌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너는 혼자니까 남에게 잘해라, 남에게 베풀며 살라’고 가르쳤다. 그는 ‘가진 것도 없이 뭘 베푸나’라고 생각했지만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제일 먼저 그 생각이 났다고 한다. 흑산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께 전화 걸어 ‘혹시 학교에 필요한 건 없느냐’를 묻고 교문 고치는 비용을 보내거나 아내가 다니는 성당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 없느냐를 탐문했다.“누가 어디에 기부했다는 소식 들으면 제 가슴이 덩달아 뛰었어요, 나도 저거 해야 하는데, 어디다 하지? 이러면서.”그렇게 그는 기부천사가 돼 갔다. 그는 사랑의 열매 아너소사이어티 18호 회원이고 푸르메재단의 열성적인 후원자이기도 하다. 정기후원은 물론, 2011년 어머니 장례식 조의금 5000만 원을 기부했고 2014년 푸르메재단 고액후원자 모임 ‘더 미라클스’가 발족하자 1호 회원이 되었다. 정기후원하는 단체만 10여 군데가 넘고 클래식과 국악에 관심을 넓히면서 첼리스트 문태국 바리톤 김기훈을 지원하기도 했다.마음이 씩씩한 아들, “더 오래 내 곁에”1985년생인 아들 동훈 씨는 근위축증의 일종인 듀센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근육의 힘이 빠지고 위축되며 악화되는 병이다. 두 살도 되기 전에 진단을 받았고 모두가 20세를 넘기기 어렵다고 했다. 자꾸만 넘어지던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휠체어에 의지했다. 하지만 온 식구의 헌신적인 돌봄 덕일까. 만 40세인 지금도 꿋꿋하게 지내고 있다.“지금은 손가락끝과 고개 정도만 움직일 수 있어요. 올 초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는 이제 각오해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친척들이 마지막 인사까지 하러 왔었지요. 얼마 전 퇴원했고 주 3회 투석을 다닙니다. 밤에만 쓰던 산소마스크를 낮에도 급히 써야 하는 경우가 늘었어요.”―아드님이 힘들어하지는 않는지.“그 녀석의 긍정성은 놀라울 정도예요. 제게 ‘아버지, 내 제삿밥 얻어먹으려면 잘하세요’라고 하는 식이죠. 중환자실에 누워 뼈만 남은 모습에 엄마가 막 우니까 ‘엄마, 맥도널드에 츄러스 신제품 나온다는데 나 그거 먹고 싶어. 안 죽으니까 걱정마’라고 했다나…. 하하. 그저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랄 뿐이고 그동안은 우리도 붙어서 최선을 다해야죠.”동훈씨는 10여 년 전 천지세무법인 직원이 됐다. 의사들이 ‘스무살까지도 못 살 것’이라던 아들이 20대 후반에 접어든 어느날, 박회장은 ‘하루를 살더라도 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해주는 게 맞겠다’ 싶어 동훈 씨에게 일을 시켰다. 집에서 컴퓨터로 회사 홈페이지 관리를 하게 한 것. 동훈 씨가 신나게 일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느날 회사에 놀러가보고 싶다고 하더니 주 3일만 출근하겠다고 말해왔다. 그 뒤 코로나 사태 전까지는 거의 매일 출근했다. 직원들에게 커피를 잘 쏘곤 해 인기도 좋았다. 박 회장은 자기 일을 하는 주체적 경험이 아들의 건강을 지켜준 힘이 됐다고 믿고 있다.자수성가한 회사는 후배들에게박회장의 근황을 물으니 ‘은퇴준비 중’이란 답이 돌아왔다. 전국에 퍼진 20여 개 지사의 운영권을 동고동락해온 후배 세무사들에게 넘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법인은 제 소유로 돼 있지만 그분들이 고객관리하고 영업하면서 키워낸 것이죠. 이 정도 일궜으면 후배들에게 넘겨줘야죠. 승계작업은 상당부분 진척이 됐고 4년 정도 더 지나면 모두 마무리될 겁니다.”―다 나눠주고 나면 어쩌시려구요? 나이 들어도 일을 해야 한다던데요.“일은 할 거예요. 저만 찾는 고객도 있고, 일거리는 있어요. 다만 제가 이 회사에서 더 이상 돈을 가져가지는 않겠다는 거죠. 그간 돈 많이 벌었고, 생각해보니 앞으로 사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가 없겠더라구요.”―아드님 간병비는? 부인 의견은?“간병비는 중증장애인에 대한 정부 지원이 잘 돼 있어 그렇게 많이 들지 않아요. 집사람도 큰 욕심 없는 사람입니다. 사는 데 지장 없으면 괜찮을 겁니다.”“가장 소중한 건 가족인데…”자수성가해 직원 100여 명이 넘는 세무법인을 키워냈으니 사회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그는 요즘 스스로에 대한 반성으로 혼란스럽다고 말한다. “나이 일흔이 되어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 스스로는 ‘이 정도면 괜찮은 남편, 괜찮은 아버지’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게 저혼자 착각이었다는 의구심이 드는 거죠. 어쩌면 제가 어머니의 깊고도 끈질긴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오만해진 건 아닐까. 아내와 아들 딸이 어머니처럼 무조건 저를 믿고 품어줄 수는 없는데,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채워주지 못한 그 무엇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박회장이 사업이 바빠 밖으로 도는 사이 부인은 매일 아들을 업어 등하교시킨 후유증으로 앙쪽 무릎 연골이 다 망가졌다. 외아들만 바라보고 살아온 시어머니를 모시고 장애를 가진 아들을 돌보며 가정을 꾸려야 하는 부인의 어려움도 대충 모른 체했다.물론 그는 이런 부인과, 몸이 아픈 오빠 때문에 늘 모든 것을 양보했던 딸에게도 100통의 감사편지를 썼다.-부인이 정말 평생 고생하셨을 것 같습니다.“제가 그걸 잘 몰랐다니까요. 이제 깨닫기 시작하니 집사람 얼굴에 조금씩 웃음기가 돌기 시작했어요. 반성문을 수없이 썼어요. 그러니까 저는 정말로 뭘 잘못하는지를 몰라서 깨닫지를 못했어요. 이 정도면 됐겠지 싶었는데 아닌 거예요. 스스로 얼마나 한심한지. 감사에 대해 강의하고 다닌 게 부끄럽습니다. 정작 중요한 게 뭔지도 모르고 가장 소중한 사람한테 상처를 주고….”그래서 은퇴 이후 계획을 묻자 단호한 답변이 돌아온다.“집사람이 하자는 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려구요. 당분간 제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어요.”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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