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이상훈 기자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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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정책사회부장입니다.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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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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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상훈]2030 일자리 문제, 이렇게 조용해도 되나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 정책을 종합한 가장 최근 연설인 지난달 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는 ‘일자리’라는 단어가 총 세 번 등장한다. 장애인 일자리를 확충하고, 노인 일자리를 확대하면서 더 많이 지원받을 수 있게 설계했다는 내용이다. 중요한 과제들이지만, 정부의 핵심 정책으로 보긴 어렵다. 이 대통령 취임 후 6개월간 청년 일자리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면 “청년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정부뿐 아니라 기업의 노력도 필요하다”(9월 16일 국무회의) “청년 한 명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온 나라가 함께 힘을 모으겠다”(10월 22일 페이스북) 정도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사망 사고나 주식시장에 쏟는 관심과 비교하면 빈도와 내용 모두 비교가 안 된다. 용산의 핵심 어젠다에 청년 일자리는 없다는 걸 보여준다. 청년 일자리에 침묵하는 정부-정치권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청년 일자리에 대한 언급이 갈수록 줄어드는 가운데, 2030세대 신규 채용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 2분기 2030세대 신규 채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만6000개 감소했다. 특히 대졸자의 첫 사회 진출 수치를 보여주는 20대 이하 신규 채용(137만 개)이 8만4000개 줄어들며 관련 통계 작성(2018년) 이후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복잡한 숫자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지 못해 발을 구르는 청년, 이들을 자녀로 둔 부모들의 한숨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상황이 엄혹해졌는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조용하다. “인구가 줄면 일자리 경쟁이 완화될 것”이라던 낙관론은 빗나간 지 오래다. 석유화학, 철강 등 주력 산업 불황, 미국의 관세 압박, 경직된 노동 정책 등 일자리를 위협하는 변수들은 더 커졌지만, 고용 확대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 시선이 정년 연장, 산업재해 근절 등 표가 되는 중장년층 대상으로 향하는 가운데,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못 한 청년의 일자리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정책에도 유행이 있다면 정부와 정치권에 청년 일자리 문제는 유효기간이 지난 것 같다. 10년 넘게 대책을 쏟아내도 해결되지 않으니 은근슬쩍 뒷전으로 미뤄 두는 분위기다. 정부와 정치권에는 낡은 숙제일지 몰라도, 당사자인 청년에게는 미래의 생존이 달린 피 말리는 문제다. 유행이 지났다고 고통이 무뎌지는 건 아니다. 청년 취업률이 부진하다는 통계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무실에 설치했던 일자리 상황판은 분명 보여주기식 정치였지만, 적어도 정부가 청년 일자리를 주요 국정 과제로 삼고 있다는 메시지는 전달했다.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등이 앞다투어 내놓은 일자리 정책들은 기업들이 눈치를 보며 채용 규모를 늘리는 시늉이라도 하게 했다. 지난 10여 년간 청년 일자리 정책의 중심에는 마중물 이론이 있었다. 청년 고용 기업에 세금 감면, 보조금 지급 등 마중물을 부어 주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란 논리였다. 지금은 마중물을 부어도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이 사람을 뽑고 싶어야 보조금이 의미가 있는데, 생존이 불확실한 기업으로서는 다음 달 실적을 낼 경력직 말고는 채용할 여력이 사라졌다. 무관심으로 청년 고용 문제 외면 안 돼 정책에서 가장 무서운 건 실패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실패는 고치면 되지만, 무관심은 문제를 없는 것처럼 만든다. 역량 배양이 시작돼야 하는 청년 일자리가 인공지능(AI)과 매뉴얼로 대체되는 시대다. 기업이 청년을 채용할 때 드는 초기 비용은 어떻게 정부가 분담할지, 노동시장 진입 장벽은 어떻게 낮출지 이제부터라도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 안 풀린다고 덮어놓아선 안 된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한 번 소모하고 폐기할 유행이 아니다. 이상훈 정책사회부장 sanghun@donga.com}

    • 202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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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상훈]교사 정치 활동, 한국 사회가 감당 가능한가

    “아빠. 오늘 진보 친구 둘, 보수 친구 둘 생겼어.” 처음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했다. 올 3월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새 친구를 사귀었다며 한 말이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이 한창이던 봄, 새 학교에서 처음 만난 아이들은 첫인사를 나누자마자 파랑 빨강 편 나누기부터 시작했다. 탄핵과 대선을 거치며 중1 아이들은 “보수는 내란당이래” “진보는 검찰 없앤대” 같은 말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거친 정치 구호가 아이들의 일상어가 됐다. 등하굣길에서 마주치는 정쟁 현수막 문구는 아이들이 장난처럼 소비하는 밈이 됐다. 마음에 안 드는 반장에게 “탄핵해 버린다”고 농담하는 게 요즘 교실 풍경이다.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게 보수, 진보는 본래 뜻과 상관없이 편을 갈라 싸우는 깃발 표식으로 전락했다. 두 쪽으로 나뉜 교실과 교무실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교무실도 속을 들여다보면 정치 성향으로 갈라져 몸살을 앓고 있다. 경기 수원시 한 중학교에서는 어떤 교사가 스마트폰으로 편향성 강한 시사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동료와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대통령이 주는 25만 원을 어디 쓸지 고민이다”라며 싱글벙글하던 교사에게 “그거 다 우리 세금인데 뭐가 그리 즐겁냐”며 다른 교사가 공개적 면박을 준 일도 있었다.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자 거울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는 교사의 정치 활동 자유 보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정당 가입의 자유,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민주 시민의 권리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 사회와 정치 문화 수준을 볼 때, 학교 현장이 정치 자유의 책임과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혐오와 진영 갈등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교사에게 제한 없는 정치 자유를 전면 허용한다면 학교는 가장 치열한 정치의 전쟁터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교육부가 지난달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교원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한 결과,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특정 정당·정치인을 지지·비판하는 글을 쓸 수 있게 하고, 교사 커뮤니티나 단체 대화방에서 정치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미디어에서 정부 정책에 대해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게 허용하고, 집회 시위에서 자신이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정당·정치인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주장도 있었다. 물론 50만 명에 달하는 전국 교사의 절대다수는 건전한 상식과 양식을 갖춘 분들이다. 하지만 어디나 그렇듯 극단적 소수가 전체 분위기를 뒤흔든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일부 교사가 방송이나 SNS에서 특정 진영의 나팔수처럼 행동한다면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학부모 항의에 “정치적 탄압을 받는다”며 순교자 행세를 할 수도 있다. 극성 지지자들이 달려들면 학교는 정치의 최전선으로 내몰린다. 단순한 정치적 편 가르기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자칫 공교육에 대한 신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학교가 정치판에 휘말린다는 인식이 퍼지는 순간, 가뜩이나 흔들리는 공교육 신뢰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떨어질 게 자명하다. 교사가 흔들리면 공교육 신뢰 추락한다 교사는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다. 사회 규범과 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판단 능력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인생의 방향을 좌우할 사표(師表)다. 교원의 정치적 자유는 보장해야 하지만, 그 자유는 학생과 사회가 편향된 가치로 흐르지 않도록 절제와 균형을 갖춰야 한다. 교실은 한국 사회 품격과 책임을 배우는 마지막 보루다. 두 쪽으로 갈라진 한국 사회가 교원의 제한 없는 정치 활동 허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자칫 학교가 정치의 전장으로 전락한다면, 민주주의도 공교육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이상훈 정책사회부장 sanghun@donga.com}

    • 202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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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상훈]막다른 골목에서 빠진 캄보디아 범죄의 늪

    최근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납치 감금 피해 사건은 2010년대 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거마 대학생’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취업난과 등록금 부담에 몰린 청년들, 특히 지방 출신 대학생들이 ‘고수익 아르바이트’라는 유혹에 넘어가 서울 거여·마천 일대 불법 합숙소에 감금당하며 악성 다단계 판매에 내몰린 사건이다. 허름한 골목길 빌라 건물에 단체로 들락날락하던 대학생들의 초점 잃은 불안한 눈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면서 수법은 바뀌었지만, 막다른 골목에 몰린 젊은이들의 등골을 빼먹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십수 년 전 거마가 2025년 캄보디아로 옮겨졌고, 건강식품과 옥장판이 보이스피싱과 불법 도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때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할 수라도 있었지만, 캄보디아 사태는 감금 피해자가 피싱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이기도 해 해석마저 복잡해졌다. 열심히 살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깨진 자리에서 청년들은 인생 한 방을 노리며 범죄의 늪에 빠진다. 땀 흘리는 노력 비웃는 절망 캄보디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2627달러, 주력 산업인 의류 신발 제조업 임금은 월 30만 원 남짓이다. 숫자로만 따지면 한국의 1980년대 중반과 엇비슷하고,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상대적 국력 수준을 고려하면 한국의 1970년대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이런 곳에 고수익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고 간 청년들이 건강한 일자리를 기대했을 리 만무하다. 그 끝은 알려진 대로다. 한국의 청년들은 왜 그런 무모한 선택을 했을까. 밑바닥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유혹에 빠지기 쉬운 구조가 생겼다.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작년 5월 이후 17개월 연속 하락하며 45%대에 머물고 있다. 청년층 취업자는 올 8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22만 명 가까이 감소하며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8월 이후 가장 많이 감소했다. 제조업 취업자는 14개월째, 건설업은 16개월째 줄어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고용의 질이다. 졸업 후 첫 일자리가 1년 이하 계약직인 청년 비중은 올해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 임시 일용직까지 포함하면 10명 중 4명 가까이가 불안정한 일자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청년들이 첫 직장에서 받는 월급은 200만 원 안팎이 대다수이고 정규직 진입 장벽은 갈수록 높아진다. 사회에 진입해도 평생직장의 꿈은커녕 ‘단기직-이직-구직 포기’라는 굴레에 갇힌다. 2000년대 중후반 일본의 취업 빙하기 세대가 보여주듯, 한번 어긋난 출발은 중년이 돼도 회복되지 않는다. 속았다고 하지만, 캄보디아로 향한 청년 대부분은 잘못된 계산에 스스로 발을 들였다. 아르바이트하며 취업을 준비할 수 있었고, 성실하게 학교에 다니며 미래를 기약했어야 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일부 청년들이 범죄의 문을 두드렸다. 문제는 성실하게 하루를 사는, 겁이 나 잘못된 선택을 할 엄두를 못 내는 청년들이 땀 흘리는 노력을 어리석게 비웃는 절망에 좌절하고 있다는 점이다.구조 그대로면 제2의 캄보디아 생긴다 캄보디아에서 범죄에 가담한 청년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그 선택이 구조적 문제에서 나온 것이라면, 캄보디아 사태는 개인 일탈로 끝나지 않는다. 번듯한 일자리를 꿈꾸기 어려운 변두리 계층 청년들이 인생을 걸고 마지막 한탕을 잡기 위해 범죄의 길에 뛰어들었다. 그들이 저지르는 보이스피싱 등 범죄의 대상 역시 그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서민들이다.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캄보디아 사태는 국내에서도, 또 다른 국가에서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다. 비극은 끝난 것이 아니라,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이상훈 정책사회부장 sanghun@donga.com}

    • 202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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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상훈]간병비 급여화, 시간에 쫓길 일이 아니다

    “저승에서 빨리 데리러 와야 하는데….” 2015년 일본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자 NHK 드라마의 원작 소설 ‘왜 자꾸 죽고 싶다고 하세요, 할아버지’(하다 게이스케 지음)에서 주인공 겐토의 할아버지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죽고 싶다는 노인의 말은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 말, 결혼하지 않겠다는 젊은이 말과 함께 3대 거짓말이라지만 겐토는 생각이 묘해진다. ‘저 말이 진심이라면, 내가 도와야 하지 않을까.’ 누구보다 열심히 재활하는 할아버지가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장면은 노년 심리와 사회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육체적 통증 속에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갈망하는 모습, 간병 때문에 경제적 심리적으로 바닥을 치는 가족 고통은 공적 돌봄 시스템이 부족한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준다.반은 맞고 반은 틀린 ‘건보 지원 정책’ 병든 가족을 돌보다 산 사람까지 잡는 간병 지옥, 간병 파산을 막기 위해 정부는 간병비 급여화를 추진하고 있다. 중증 이상 환자에게 100%인 본인 부담률을 30% 내외로 낮추면 개인은 월 60만∼80만 원 안팎의 간병비를 부담하면 된다. 간병의 가장 큰 어려움인 경제적 고통을 많이 덜어줄 수 있다. 문제는 단순한 보장 강화만으로 급증하는 간병 수요와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35년이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30%를 넘어선다. 이미 지난해 고령 인구의 건보 진료비 총액(52조1221억 원)이 4년 전보다 40% 증가하며 전체 진료비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이 된 걸 돌이켜 보면 간병비 급여화는 건보에 막대한 부담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한국 장기요양보험에 해당하는 일본 개호보험 급여 규모가 2000년 3조3000억 엔에서 2022년 11조 엔으로 3배 이상으로 늘어난 모습은 한국의 미래가 될 수 있다. 막대한 재정 부담은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국민연금에 이어 세대 갈등을 키울 위험이 크다. ‘간병이 어려우니 건보로 지원하자’는 정책은 그래서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단순한 보장 강화를 넘어 노인들의 요양 수요 자체를 줄이는 정책이 필수다. 요양원에서 생애 마지막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누구보다 노년층 본인이 강하다. 하지만 어떻게 건강을 유지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시스템이 없어서다. 고혈압, 당뇨, 관절염 등 흔한 만성 질환조차 체계적 관리가 안 돼 하루에만 10개 이상 약을 2개월 이상 복용하는 사람이 국내에 136만 명이다. 주민센터 건강체조, 노인복지관 낙상 예방 교육 등 건강 증진 프로그램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요양 시설 수요를 줄일 정도의 수준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내년 3월 전면 시행되는 통합 돌봄을 놓고는 현장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의사가 많은 수도권은 현관문 밖 이웃 간 장벽이 너무 높고, 지역 커뮤니티가 그나마 살아 있는 지방에서는 보건소를 지킬 의사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정보기술(IT), 간호사 등 의사 대체 인력, 이동 진료 차량 등을 활용한 다양한 비대면 원격 진료가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고 있지 않다.병원 입원 부추기는 현실 개선해야 간병비 급여화 정책은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에 꼭 필요하다. 하지만 ‘간병 보장-건강 증진-효율적 자원 활용’이라는 선순환을 초기에 제대로 구축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개선을 시도하기조차 힘든 거대한 밑 빠진 독이 될 수 있다. 간병비 지원이 병원 입원을 부추기고 부실한 간병 현실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환자와 가족의 고통은 줄어들기 어렵다. 현장의 비효율을 해소하는 것에서부터 간병 급여화 정책의 스타트를 끊어야 한다. 국민의 존엄한 삶과 직결된 문제다. 시간에 쫓겨 급하게 추진할 정책이 아니다. 이상훈 정책사회부장 sanghun@donga.com}

    • 202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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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상훈]‘가뭄 물그릇’ 하나 마련 못하는 한국 정치

    한국 경제 개발 역사는 인프라 건설의 역사다. 고속도로와 원자력발전소만큼 조명받진 않지만,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는 핵심 인프라가 전국 곳곳의 댐이다. 1970년대 준공된 소양강댐과 팔당댐이 수도권 2000만 주민 생활과 공업의 젖줄 역할을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수도권 시민이 소양강댐 팔당댐 물에 의존하는 현실을 보면, 선인들의 선견지명이 놀랍다. 하지만 댐 건설, 치수(治水) 사업은 언제부턴가 환경 파괴 논란과 지역 반발에 막혀 왔다. 2000년 이후 국내에 건설된 댐은 군위댐, 김천부항댐, 성덕댐 등 한 손으로 꼽을 만큼 적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홍수 방지, 수자원 확보라는 의미가 있었지만, 한반도 대운하 구상이 무산되자 대체로 추진된 사업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임기 내 완공을 위해 22조 원을 들여 밀어붙인 강한 추진력도 논란의 독이 됐다. 좌우 진영 간 극단적 정치 논쟁은 치수 사업의 상수가 된 지 오래다.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대책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는 강원 강릉시 가뭄은 단순한 기후 변화 문제가 아니다. 한국 물 정책의 민낯이다.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으면서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1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단수가 현실로 나타났다. 주민들은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가을에 이런 가뭄이 찾아왔다는 게 큰 문제다. 그동안 한반도 가뭄은 보통 봄에 나타났다. 전년도 장마 때 저수지와 댐을 채운 물은 가을, 겨울에 쓰고 봄에 부족해진다. 장마 전에 비가 오지 않아 나타나는 가뭄이 그간의 일반적 패턴이었다. 장맛비가 내리면 가뭄이 자연스레 해결됐다. 가을 가뭄은 이런 자연 해갈을 기대하기 어렵다. 강릉은 동해안을 대표하는 도시이지만, 상수원 취약성은 오래전부터 지적됐다. 한강 같은 큰 강이 없으니 취수원이 마땅찮다. 1990년 평창에 도암댐을 건설했지만, 태백산맥 자락 고랭지 채소밭과 축사에서 흘러든 오폐수로 수질 오염이 심각해 사실상 버려져 왔다. 관리를 강화해 쓰자는 지적도 있지만, “댐 자체를 해체하자”는 주장도 여전하다. 댐 상류 곳곳에 있는 오염원 문제는 2000년대 초부터 지속돼 왔지만, 해결은커녕 댐 가동을 막는 방식으로 방치해 왔다. 2015년 충남 서북부 지역의 극단적 가뭄 때는 금강 백제보 도수로를 짓는 대응책이라도 펼 수 있었다. 물론 4대강 정비로 풍족해진 물이 있었기에 끌어다 쓸 수 있었다. 강릉에는 대체 수원도 마땅치 않다. 도암댐을 둘러싼 논란은 20년이 넘도록 한 발짝도 진전되지 않았다. 그사이 주민들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비가 오면 어찌어찌 넘어가는,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방식 말고는 손쓸 방법이 마땅찮다는 뜻이다. 백년대계 손도 못 대는 韓 민낯 가뭄이 오면 정부는 소방차, 헬기를 동원하며 다양한 대책을 쏟아 내지만, 비만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용두사미가 된다. 대규모 다목적댐 건설이든, 지하 댐 논의든, 기존 댐 재활용이든 근본적 대책은 진전이 없다. 물 문제는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보상하고 100년 앞을 내다보며 해결해야 하는데, 이를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할 정치는 갈등만 부추기며 아무것도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 강릉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특정 지역의 단순한 기후 문제가 아니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한국 사회 민낯의 축소판이다. 지금처럼 정치가 백년대계를 외면하고 갈등에만 매몰된다면 오늘의 강릉은 내일의 수도권과 반도체 공장이 될 수 있다. 물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권이 무슨 문제에 손을 댈 수 있겠나. 이상훈 정책사회부장 sanghun@donga.com}

    • 202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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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 초대석]“임종 임박해 내리는 연명의료 결정, 존엄한 삶 마지막 준비 역부족”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죽음을 경험해 본 인간은 누구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 앞에서 늘 서툴다. 평소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준비했다는 사람도 생애 마지막 앞에서는 코에 관을 꼽고 강한 진통제에 의존하다가 차가운 병상에서 고통 속에 눈을 감는다. 가족들 역시 떠나는 이에게 불효가 될까 두려워,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자책과 시선이 걱정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정신적 고통에 괴로워한다. 호스피스와 연명의료 중단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한국 의료 현실은 환자와 가족 모두를 힘겹게 한다.서울대병원 완화의료 임상윤리센터 유신혜 교수(36)는 생애 마지막을 눈앞에 둔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의사다. 말기 암 환자나 중증 치매 환자의 병을 완벽하게 낫게 할 순 없지만, 최대한 아프지 않게 존엄한 마지막 순간을 맞도록 돕는 일은 노력에 따라 가능하다.》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고 치매 인구도 100만 명에 달하는 한국에서 품위 있는 죽음은 더 이상 개인적 소망이 아닌 사회와 국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속에서 통증조차 다스리지 못한 채 눈을 감는 현실은 누구에게도 행복하지 않다. 유 교수는 “좋은 죽음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괴로운 죽음을 피하게 돕는 건 가능하다”고 말한다. “죽음을 미루거나 당기려 하기보다 오늘 하루를 더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는 그의 말은,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한국이 직면한 보편적이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품위 있는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상 쓰지 않은 편안한 얼굴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을 함께 보내는 것, 본인이 바라는 삶과 죽음의 방식이 존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프지 않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나. “신체적으로 하나도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가시는 분이 꽤 있다. 진료 현장에서 통증을 겪는 환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말이 ‘지금도 이렇게 아픈데, 죽을 땐 얼마나 더 아프냐’는 것이다. 그럴 때 ‘아프지 않게 돌아가실 수 있다’고 답해 드린다.” ―그게 컨트롤이 가능한가. “스스로는 어렵고, 의료의 도움이 필요하다. 환자가 힘든 증상을 보이고 있을 때, 괴롭지 않도록 (통증 등을) 완화하는 의료가 생애 마지막까지 이뤄지면 된다. 좋은 죽음을 정의하는 건 굉장히 어렵지만 피하고 싶은 죽음을 맞이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건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평소에 주로 어떤 환자들을 치료하는지…. “더 이상 낫지 않는 질병, 흔히 말하는 중증 질병이 상당히 진행돼 몸과 마음이 불편해진 분들을 만난다. 암 환자나 폐, 간 등 장기부전 환자, 신경계 질환 환자가 많다.” ―그런 분은 일반적인 환자와 무엇이 다른가. “대부분 상황이 안 좋아졌을 때 원래 진료하던 다른 의사들이 ‘준비하십시오’라는 말을 하면서 보낸다. 환자는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저 의사는 무슨 말을 할까 두려움을 안고 불안한 표정으로 온다. 뭔가 안 좋은 얘기를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겠나. 그런 환자들을 만날 때 항상 같은 첫 질문으로 ‘오늘 컨디션 어떠세요? 가장 힘든 게 뭐예요?’라고 묻는다.” ―환자마다 대답이 제각각일 텐데…. “몸이 아픈 환자는 당연히 어디가 아픈지 먼저 얘기한다. 통증이 있는 환자에게는 통증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런데 몸이 아프지 않은 환자 중 ‘마음이 힘들어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 의사에게 말하지 못했던, 심적으로 힘든 상황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 직접 대화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 죽음을 앞둔 환자는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일들에 대해 괴로워한다. 딸 결혼을 시켰어야 했는데, 배우자와 몇 살까지는 살고 싶었는데, 같은 얘기를 하시며 그런 아쉬움도 끝나가는 것, 자기 죽음으로 남겨진 가족들이 얼마나 슬퍼할지 그런 걸 힘들어한다.” ―가족의 고통도 크지 않나. “암은 보통 병이 상당히 진행돼야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상대적으로 간병 기간이 짧다 보니 가족들은 ‘얼마 못 산다는데 온 힘을 다해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내 손으로 돌보자’는 마음을 갖는다. 반면 치매, 파킨슨병, 신경계 질환은 신체 기능이 지속적으로 나빠지지만 당장 돌아가시진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이 정말 많이 소진된다. ‘내가 너무 나쁜 사람 같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하는 가족이 많다. 하지만 그건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동안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돌봐온 것이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면 위안을 얻는다.” ―그래서 품위 있는 죽음에 관한 생각이 커지는 것일 텐데, 결국 연명치료를 할지 말지에 대한 환자와 가족의 고민이 크지 않나. “의학적으로 의료진이 제안하고 환자가 결정해 수락하는 게 기본 구조다. 그런데 한국에선 많은 환자가 “이걸 어떻게 내가 정하나. 의사 선생님이 결정해 달라”고 한다. 의료 전반에서 한국은 서구보다 자기 결정권 개념이 약하다. 죽음에 관한 결정은 환자, 의료진이 단독으로 내리기 어렵다. 생애 마지막에는 간병하는 분의 의견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가족 역시 환자 못잖게 중요한 의사 결정 역할을 한다.” ―어떤 방식으로 결정을 내리나. “항암 치료를 받는 게 좋은지, 안 하는 게 나은지 확실하게 어느 쪽이 맞는다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병을 치료할 때 ‘이 치료는 효과가 없을 수 있는데 안 하면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고 돌아가실 수 있다’고 설명해야 할 때도 있다. 환자가 너무 지쳐서 인제 그만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가족이 ‘그래도 의사가 제안했는데 한번 힘내서 해 보자’고 한다. 생애 마지막엔 환자가 가장 힘이 없고 힘들다.” ―돈이 많거나 권력 있는 환자는 다르지 않나. “오히려 더 힘든 경우가 많다. 의료진이 치료로 호전되기 어렵다고 보는데도 주변에서 “지금 돌아가시기 너무 아까운 분이다” “오래 살아야 할 분이다”라며 죽음에 대해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 정작 환자 본인은 연명치료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는데, 의료 방향이 반대로 흘러갈 때도 있다.” ―국내에서 연명의료 결정법이 시행된 지 7년이 됐다. “현행법은 품위 있는 죽음을 하기 위해 아주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을 정해놓은 수준이다. 원하지 않는 연명치료를 안 하고 환자가 바라는 대로 존엄하게 임종하게 해 주자는 게 목표인데, 현재 법은 임종이 임박할 때만 결정할 수 있게 돼 있다. 왜 생애 마지막 임종 직전에만 가능해야 하냐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안락사, 존엄사를 허용하자는 뜻인가. “그것과는 다르다. 임종을 맞이하는 분이 자연스럽게 돌아가시도록 두자는 것이지, 죽이는 약물을 투여해도 된다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생애 말기는 언제일까. 누군가는 화장실도 걸어서 못 가고 가족들이 전적으로 수발해야 하는 상황을 삶의 끝자락이라고 생각하면서 더 이상 처치하지 말고 편안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진은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을 임종이 임박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기 결정권은 어디까지 줘야 할까. 원치 않는 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연명의료 결정권을 어떻게 확대해야 할까. 지금은 너무 좁은 부분만 인정하고 있다. 너무 죽음이 임박해 연명의료 결정을 하는 건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잘 마무리하는 데 부족하다. 더 이른 시기부터 숙고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칫 환자에게 죽음을 부추기는 현대판 고려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현행법은 환자가 의사 표현을 하지 않으면 끝까지 연명의료를 하게 돼 있다. 해외에서는 환자가 적극적인 치료를 원해도 임종이 임박해 회복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는 환자를 편안하게 하는 게 최선이라는 공감대가 있다. 최근 우리 병원에서 한 환자가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쓰러 와서 설명을 듣더니 화를 냈다. “지금 당신들 얘기를 들어보니 연명치료는 안 하는 게 기본 아닌가. 연명치료를 받고 싶은 사람이 서명해야지, 왜 안 받겠다고 하는 사람이 사인하게 만드냐”고 말이다.” ―큰 병원에서 완화 치료를 받으려면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보단 환자 질환이 호스피스 대상 질환인지, 환자가 그런 정보를 알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 암 환자의 경우 말기에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이 되는데도 국내에서 4분의 1만 이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호스피스를 받을 수 있는 건 5가지(암,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 후천성면역결핍증, 임종 과정)로 제한돼 있다. 예를 들어 루게릭병은 심해지면 말도 못 하고 온몸이 굳어져 숨을 쉴 수 없는데도 호스피스를 받을 수 없다.” ―완화치료 서비스가 잘 갖춰진 나라는 대부분 선진국이다. 한국의 건강보험 재정으로 충분한가. “현재 한국 건보는 호스피스에 매우 적게 투자하고 있다. 흔히 영국과 비교하는데, 영국은 건강할 때 받는 의료 서비스가 한국보다 훨씬 적다. 선진국에서 의사를 만나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한다고 하지 않나. 임종, 품위 있는 죽음에 투자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의료가 너무 과잉이 아닌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연명의료 결정법 시행 후 현장에서 달라진 점은…. “의사가 환자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는 게 가장 크다. 처음에는 의사들이 ‘이런 말을 꺼내도 되나’ 싶었는데, 막상 해보자 환자들은 다 자기 생각을 갖고 있었다. 환자 생각을 듣기 시작하면서 의사가 의료적 결정을 내릴 때 환자의 생각을 존중하게 됐다. 물론 의학에는 불확실성이 있고, 죽음은 신의 영역이다. 하지만 가장 싫은 상황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죽음 그 자체보다 오늘 살아가는 하루를 더 잘 살도록 도와주자는 것에 초점을 두게 된다. 의미 없는 삶을 살지 않도록 계획하고 나아가다 보면 피하고 싶은 죽음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품위 있는 죽음에 한 걸음씩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 임상윤리센터 교수1989년생.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혈액종양내과전문의. 2019년부터 서울대병원 완화의료 임상윤리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완화의료 임상윤리센터는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줄이고 의미 있는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연구하는 곳이다. 암 환자 임종 돌봄, 연명의료 결정, 호스피스 완화치료 등을 연구하고 있다. 2023년 한국생명윤리학회 ‘젊은 생명 윤리 학술상’을 수상했다.이상훈 정책사회부장 sanghun@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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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상훈]‘최저가 공화국’ 산재는 필연이다

    며칠 전 기자가 사는 아파트 게시판에 공고가 붙었다. 20년 된 승강기의 메인 로프와 시브(도르래) 교체 작업을 맡길 공사 업체 선정 알림이었다. A4 2장짜리 공고문에서 유난히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입찰 종류: 최저가 입찰.’ 주민들이 매일 타는, 안전에 직결된 승강기 장비를 교체하는데 가장 싼 값을 부르는 업체에 맡긴다는 뜻이다. 승강기 특성상 부품 제작 방식, 재질, 납품처 등은 대체로 정해져 있을 터. 가격을 일정 수준 밑으로 떨어뜨리긴 어려울 것이다. 엘리베이터 수리같이 기술이 필요한 일에서 공임을 낮추는 것도 한계가 있다. 결국 쥐어짤 곳은 안전 비용이다. 말로는 “안전에 돈을 아끼지 말자”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가장 싸게 해 줄 곳을 찾는다.말과 행동이 다른 ‘안전제일’ 최저가 입찰이 선호되는 배경엔 한국 사회 특유의 사회적 자본 및 신뢰 부족 문제가 깔려 있다. 품질이나 책임성을 따지려면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된다. 이 과정에서 “누구 밀어주는 것 아니냐” “그 판단을 어떻게 믿냐”는 의심이 항상 따라붙는다. 뒷말이 안 나오게 하려면 눈에 보이는 숫자로 평가해야 한다. 그중 가장 단순하고 공정해 보이는 기준이 바로 가격이다. 애초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생각도 약하다. 최근 서울 대단지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심심찮게 터지는 시공사와 조합원의 공사비 갈등이 대표적이다. 시공사는 안전조치 강화, 근무시간 제한 등으로 비용이 늘어 공사비를 증액해야 한다고 하지만, 조합원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부도 다르지 않다. 안전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발주하는 공사의 낙찰 구조는 여전히 최저가 입찰 중심이다. 정부부터 ‘싼 게 좋은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니 민간도 너 나 할 것 없이 최저가로 결정한다. “안전 비용 때문에 공사비를 올려야 한다”는 건설사 말을 어디까지 믿을지는 철저히 검증해 봐야 한다. 하지만 낮은 금액이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현실은 통계로 드러난다. 국토안전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 사고가 난 공공공사 현장 95곳 중 74곳(78%)이 낙찰률 90% 미만의 저가 낙찰 공사 현장이었다. 공사비를 지나치게 낮추면 결국 어디선가 무리해 아끼게 된다. 보통은 안전이 희생양이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싸게 계약하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다. 값이 비싸면 감사 대상이 되지만, 사고는 운 좋으면 피할 수 있고 설사 나더라도 건설사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 대통령은 취임 두 달 만에 공식 발언으로만 산업재해 문제를 9차례 거론했다. “정부 차원에서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모두 찾아 보고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산재 근절에 “직을 걸겠다”고 말했다. 여당은 징벌적 손해배상 등이 담긴 법안을 준비하며 초강경 대응에 나섰다. 대통령이 세게 나서야 기업이 움직이고 제도가 바뀌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 정도 강한 메시지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좋은 취지만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차분히 논의하고 제도 설계해야 ‘싼 게 좋은 것’이라는 고질적 병폐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산재 사고를 막을 순 없다. 사고는 기업의 탐욕 못잖게 부실한 제도 때문에 발생한다. 입찰 기준에서 책임과 품질을 강화하고 적정 예산과 공기를 보장하며 정성적 판단이 부패로 이어지지 않도록 투명성과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안전을 강화하겠다는 건 그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겠다는 뜻이다. 사회 전체가 기준을 지키기 위해 돈을 더 쓰고, 시간을 더 들이겠다는 사회적 합의를 하고 그에 기초한 제도 개선이 있어야 한다. 안전은 ‘전광석화처럼 추석 전 완수’ 같은 구호로 해결 가능한 게 아니다. 대통령 임기 5년간 차분히 논의하고 제도를 설계해 산재 문제만 제대로 해결해도 국민의 박수를 받기 아깝지 않다. 이상훈 정책사회부장 sanghun@donga.com}

    • 202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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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상훈]코로나로 잃은 시간, 이제라도 책임져야 한다

    “청춘은 밀(密)한 시간인데, 뭘 해도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서…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고맙다.” 2022년 8월, 일본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 대회(고시엔) 우승기를 품은 스에 와타루(須江航) 센다이 이쿠에이고 감독의 우승 소감이다. 전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고교야구 우승 감독의 ‘청춘은 밀하다’는 소감은 그해 일본 신조어·유행어 대상 후보에 오를 만큼 일본 사회 전체에 울림을 줬다. 3년 가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으로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못 한 청춘들에게 바치는, 어른으로서의 미안한 고백이자 사과였다. 아이들에게 혹독했던 코로나 방역 어른의 시간과 청소년의 시간은 밀도가 다르다. 어른에게 3년은 그냥 흘러가는 시간일 수 있지만, 학생들에게 3년은 학창 시절 전부이자 인생 기반을 쌓는 결정적 시기다. 코로나19 방역으로 ‘안 된다’는 말만 들었던 중고교생의 3년은 입학부터 졸업까지를 통째로 아우른 시간이었다. 추억과 낭만 문제가 아니다. 마땅히 확보했어야 할 학업 시간을 잃은 후유증은 지금도 뚜렷하다. 지난해 중3, 고2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고2 국어 기초 학력 미달 비율이 9.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때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대면 수업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면서 문해력과 사고력이 저하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를 되돌아본다면 놀랄 일이 아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에 학교는 서둘러 교문을 닫았다. 집단 감염 뉴스가 나올 때마다 수도권에서 수십, 수백 곳의 학교가 등교를 중단하고 개학을 연기했다. 그해 내내 수도권은 제한적 등교와 원격 수업을 오락가락하며 파행적 학사 운영을 이어갔다. 전면 등교는 2021년 말에야 이뤄졌지만, 이듬해까지 수업은 온전하지 못했다. 마스크 의무 착용으로 초등 저학년의 언어 학습이 더디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1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면 일주일간 학급 전체가 통째로 원격 수업을 했다. 코로나19 초기 민첩한 대처는 평가받을 만하지만, 주요 연령대 가운데 호흡기 바이러스에 제일 강한 아이들이 3년 가까이 코로나 방역의 중점적 대상이었다는 건 지금 보면 아이러니다. 당시는 원격 수업으로 된다고 했지만, 책과 교과서를 읽고 교실에서 선생님 칠판 글씨를 보고 수업을 들으며 집에서 숙제를 풀어오는 경험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었다는 게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로 드러났다. 빈부 격차는 아이들에게 더 크게 작용한다. 중산층 이상은 학교에서 기르지 못한 ‘공부 근육’을 부모의 관심과 경제력으로 어찌어찌 학원과 과외를 통해 보완했다. 하지만 공교육 말고는 대안이 없던 아이들은 PC, 스마트폰에 의존하다가 쇼츠와 게임에 중독됐다. 단순한 학습 격차를 넘어 교육 불평등과 계층 격차를 동시에 증폭시켰다.지금이라도 잘잘못 따져봐야 지금이라도 묻자. 우리는 정말 과학적 근거에 따라 방역 정책을 올바로 펼쳤는가. 커피숍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면서 학교는 못 가게 했던 그때 방역은 과연 옳았는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농밀한 시간을 보낸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왜 그리 가혹했는가. 기성세대는 코로나 시절을 추억으로 회상하지만, 학창 시절을 통째로 날려 버린 아이들에게 방역 후유증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당시 방역을 주도했던 책임자는 선거 운동 전면에 나서더니 다른 자리도 아닌 대한민국 보건복지 정책 수장으로 돌아왔다. 이제라도 잘잘못을 따져봐야 한다. 사고가 나면 진상 규명을 외치면서 유독 K방역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 이게 옳은가.이상훈 정책사회부장 sanghun@donga.com}

    • 202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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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상훈]최저임금조차 부러운 진짜 약자들

    #1. 네이버에서 ‘쿠팡’을 검색하면 쇼핑몰이 뜨지만, 유튜브에서 같은 단어를 치면 쿠팡 플렉스 배달 후기 동영상이 나온다. 3개월 전 올라온 동영상 속 유튜버는 1시간 40분간 17개를 배달해 1만7370원을 벌었다고 했다. 기름값을 빼면 시간당 8000원도 못 번 셈이다. 배달의민족 라이더, 일반 택배회사 근로자도 사정은 비슷하다. 모두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인 도급 근로자, 특수형태근로 플랫폼 종사자(특고)다. #2. 기자가 사는 경기도 한 아파트 상가 커피숍이 지난주 문을 닫았다. 커피가 맛있고 서비스도 친절해 손님이 적지 않았던 곳이다. 몇 달 전 한숨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16.5㎡ 월세만 200만 원이에요. 관리비 50만 원에 전기료, 인터넷비, 포스비는 별도고요. 기계 렌털료에 원두값, 종이컵값까지….” ‘남는 것 없다’는 말을 앓는 소리로 생각했는데, 휑뎅그렁하게 문 닫은 가게를 보고서야 처참한 자영업자 현실을 실감했다. 제도 밖에 내몰린 ‘진짜 약자’ 배달 라이더와 문 닫은 커피숍 사장이 최근에 막판 기싸움을 거듭하는 최저임금위원회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올 상반기(1∼6월) 소비자물가 누계 상승률이 2.1%라며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근로자 측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0.8%라며 최소 수준 인상을 주장하는 사용자 측은 라이더와 사장을 대표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이 보호해야 할 ‘진짜 약자’들은 제도 바깥에 서 있거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사업장에서 고통받고 있다. 한국 최저임금 논의는 문재인 정권 때부터 정치적 이해관계로 뒤틀렸다. 애초 최저임금이 정치적 제도이고 사회적 타협의 산물이라지만 2018년, 2019년 2년간의 29.1% 최저임금 인상은 그 어떤 경제적 이론과 사회적 논의로 설명할 수 없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사라진 일자리는 무인 가게, 태블릿 주문 기계로 대체된 지 오래다. 소주성(소득 주도 성장) 실패 이후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률을 관리하고 있다고 해도, 시간당 1만 원이 넘은 현실에서 밑바닥 일자리가 살아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높아진 최저임금은 초저금리, 정부 재정 확대와 맞물려 물가를 자극하는 3중 압력이 됐다. 인플레이션은 소상공인 생존을 위협하고, 임금 인상을 압박해 최저임금을 다시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어 소비 여력을 높여준다고 해도 경기가 살아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내년 최저임금은 이달 중 노동계와 경영계가 각각 요구한 시간당 1만1020원과 1만150원 사이 어딘가에서 결정될 것이다. 그래 봤자 시간급 개념조차 적용되지 않는 도급, 특고 노동자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오히려 60%를 넘는 중위 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높고, 전체 근로자의 20%가 최저임금에 묶이는 ‘임금 상한선’ 역할까지 하고 있다. 자영업자 10명 중 3명이 월평균 최저임금(약 209만 원)도 못 벌어 밤새 가게를 지켜야 하는 현실도 쉽게 달라지기 어렵다. 아르바이트생 채용은커녕 쌓인 대출 때문에 폐업하고 싶어도 못 하고,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기계와 로봇이 대체하는 현실에서 최저임금이 지속 가능한 제도인지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새 정부, 최저임금 바로잡을 고민해야 최저임금은 이념이 아니라 현실이 돼야 한다. 노동자도 사용자도 보호하지 못한 채 사회 전체 비용과 갈등만 키우는 현행 방식은 재설계돼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매년 반복되는 퍼포먼스 같은 줄다리기가 아니라, 제도가 보호해야 할 진짜 약자를 명확하게 구해 주는 정밀한 수술이다. 약자는 보호하지 못하고 물가만 자극하는 ‘거꾸로 최저임금’은 바뀌어야 한다. 새 정부가 ‘거꾸로 최저임금’을 바로잡을 고민과 대안을 가졌는지, 벼랑 끝에 선 약자들이 지켜보고 있다.이상훈 정책사회부장 sanghun@donga.com}

    • 20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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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상훈]건보 포퓰리즘, 이런 약탈도 없다

    건강보험만큼 선거철마다 만만한 돈주머니가 없다. 병원비와 건강이라는, 국민이 가장 민감해하는 이슈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지출 확대를 약속하고 유권자는 표를 던진다. 이번에는 간병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앞다퉈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을 약속했다. 나이 든 부모를 요양병원에 모시며 간병 부담을 짊어지는 건 누구에게도 남 일이 아니다. 반응이 즉각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내가 낸 건보료로 부모 간병비를 댄다’라는 그럴듯한 논리로 정치권과 유권자 모두를 합리화시킨다.선거 때마다 지출 확대 공약 건강보험을 ‘효도 보험’으로까지 써 먹겠다면 적어도 재원 마련과 책임 분담에 대한 설계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그런 고민 없이 선심성 공약만 내놓는다면 건보 보장성 확대는 기분 좋은 약속이 아니라 미래를 갉아먹는 약탈이 될 수 있다. 간병비 건보 적용 공약의 가장 큰 문제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이다. 당장 내년에 3000억 원 안팎 건보 적자가 예상된다. 2028년에는 연간 적자액이 1조6000억 원을 넘어서면서 누적 적립금도 바닥날 것으로 전망된다. 요양병원 환자 중증도를 5단계로 나눠, 가장 심한 1∼3단계에만 건보를 적용하더라도 매년 최소 15조 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이쯤 되면 2064년에 고갈된다는 국민연금 걱정이 사치로 느껴진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건보 지출 확대 카드를 꺼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혜택을 늘려 표를 얻고, 재정에 구멍이 나면 그때 가서 건보료를 올리면 된다. 건보료 인상은 증세와 달리 법 개정이 필요 없어 국회 문턱을 넘지 않아도 된다. 정부가 적당히 요율만 조정하면 된다. 그마저도 지지율이 떨어질 것 같으면 다음 정권에 떠넘기면 그만이다. 정치적 책임은 희미해지고 표는 손에 들어온다. 이보다 더 달콤한 유혹이 있을까. 역대 정권은 보수든 진보든 이 유혹을 피해 가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노년층을 겨냥해 임플란트와 틀니를 건강보험에 포함했다. 문재인 정부는 ‘문재인 케어’라는 이름으로 상급 병실료, 자기공명영상(MRI) 등 비급여 항목을 대거 급여화했다. 전형적인 건보 포퓰리즘이다. 윤석열 정부는 의정 갈등을 수습하겠다며 의료수가 조정 등 뒤늦은 개혁을 추진하다가 건보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안겼다. 어설픈 개혁이 더 심각한 포퓰리즘을 낳았다. 이렇다 보니 정작 필요한 곳에 쓰여야 할 건보 재정이 탕진되고 있다. 목숨이 달린 중증질환, 소아암, 희소병 환자들에 대한 급여 확대는 번번이 외면당한다.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필수분야 지원 확대가 제자리를 맴돌면서 좌절하는 흉부외과 의사는 탈모 클리닉을 연다. 반면 MRI, 임플란트, 틀니처럼 불특정 다수가 조금씩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항목에는 조 단위 지출이 펑펑 나간다. 이런 구조로는 건보 존립마저 위태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지금, 의료와 돌봄 수요는 더욱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건보 지출 40%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층에 집중됐다. 장기 요양보험 지출은 불과 5년 만에 두 배로 뛰었다. 반면 건보 재정을 떠받칠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감소세다. 잠재 성장률 둔화로 국민소득도 정체되고 있다. 소득 대비로 매겨지는 건보료 파이가 커지기 어려운 이유다. 건강보험은 더 이상 만만한 정치인 돈주머니가 돼선 안 된다. 지금처럼 재정 고민은 뒤로 미룬 채 혜택만 늘리는 방식은 약탈에 가깝다. 선심성 한탕 정책으로 건보 재정이 바닥나면 책임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가 떠안게 된다. 이런 구조로는 건보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다. 언제까지 숫자 계산 없는 정치, 책임 외면하는 정책으로 일관할 텐가.이상훈 정책사회부장 sanghun@donga.com}

    • 20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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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상훈]이렇게까지 정치가 숫자를 버려도 되나

    누가 대통령이 되든 복지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갈수록 커지는 의료, 돌봄, 주거 부담을 개인이 온전히 떠안는 건 지속 가능하지 않다.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모습도 아니다. ‘국가는 사회보장 증진에 노력해야 한다’는 조문이 헌법에 처음 들어간 게 1962년, 1인당 국민소득이 87달러에 불과하던 시절이다.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은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63년 전에 이미 명확히 제시됐다. 누가 정권을 잡아도 나랏돈 들어갈 일은 더 많아질 것이다. 건강보험 지출 40%가 65세 이상에게 집중되기 시작됐다. 장기요양보험 지출은 5년 만에 9조 원대에서 18조 원을 넘기며 2배로 늘었다. 국민연금은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을 반영해도 2048년부터 적자다.누가 대통령 돼도 나랏돈 더 쓸 일만 복지 강화는 이념 문제가 아니다. 삶의 문제다. 보수 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건강보험, 국민연금, 기초연금, 무상보육, 장기요양보험 등 다양한 복지 제도가 새로 만들어졌거나 확대됐다. 한국 정치 역사는 복지 정책 강화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복지 확대에는 늘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다. ‘증세 없는 복지’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게 2012년 대통령 선거 때다.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한국 복지의 허약한 기반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당시 대선에서 맞붙어 결과적으로 시차를 두고 대권을 거머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모두 재임 중 변변한 재원 대책 없는 복지 정책을 추진했다가 상대 당과 전문가에게 뭇매를 맞았다. 그때는 그래도 논쟁이라는 게 있었다. 지금은 숫자 앞에서 아예 입을 다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아동수당을 18세 미만까지 확대하겠다고 했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65세 이상은 낮 시간 버스 무료 공약을 내세웠다. 누가, 얼마나, 어떻게 돈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질문하는 사람도 찾기 힘들다. 아무리 계엄과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지는 대선이라지만, 가장 기초적인 계산조차 없다. 과거에는 엉성하게라도 ‘재원은 이렇게 마련하겠다’라는 설명을 했다. 무상급식 논쟁 때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조정을 통해 예산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 명시됐다(끝없이 퍼줘도 남아도는 교육교부금의 근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박근혜 정부 기초연금 도입 때는 국민연금 연계 여부를 두고 논의가 병행됐다. 지금처럼 탄핵 대선이었던 2017년 문재인과 안철수는 아동수당 재원 마련책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지금은 정치가 숫자를 버렸다. 국가채무는 1100조 원을 넘었고 건보, 연금 등 각종 복지 기금은 빠르게 고갈되고 있는데, 이런 얘기를 하면 흘러간 옛 유행가 취급을 당한다. 감세는 말하면서 증세나 보험료 인상은 외면한다. 정치권은 표를 구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다. 나랏돈 들어갈 일은 분명히 늘어나고 있는데, 누구도 현실을 정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무지라기보다는 기만이고, 침묵이라기보다는 위선이다.복지 약속에는 책임 따른다 선진국은 다르다. 스웨덴은 1990년대 재정위기를 겪은 이후, 누진 소득세를 강화하고, 부가가치세를 25%까지 인상했다. 복지를 유지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감당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2023년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가 방위비 증액으로 재정이 빠듯한 상황에서 저소득층에 가구당 10만 엔(약 100만 원)을 나눠주겠다는 선심성 약속을 했다가 지지율이 하락해 이듬해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더 많이 주겠다고 말하려면, 어떻게 감당할지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 복지 확대는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나라 구조 설계를 바꾸는 것이다.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라 책임을 지는 일이다. 이상훈 정책사회부장 sanghun@donga.com}

    • 202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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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이시바 총리, ‘상품권 스캔들’에 휘청…정권 위기 커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당내 초선 의원들에게 상품권을 뿌린 사실이 밝혀진 가운데, 이시바 총리가 14일 국회에서 사과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자금 관련법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일본 정치권은 이날 이시바 총리가 상품권을 건넨 사실이 언론에 일제히 대서 특필되면서 발칵 뒤집어졌다. 참의원(상원) 선거를 불과 4개월도 안 남기고 금품 사건이 터지면서 가뜩이나 비자금 문제로 지지율이 떨어진 정부와 자민당으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당내 보수파를 중심으로 이시바 총리에 대한 퇴진 압력이 더욱 거세질지 주목된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국회에 출석해 상품권 문제를 묻는 질문에 “세상의 상식과 다르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많은 분의 불신과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상품권은) 정치활동 관련 기부금에 해당하지 않아 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왜 초선 의원들에게 상품권을 뿌렸는지에 대해서는 “순전히 개인적인 안부 인사”였다며 “정치적 이념, 시책을 홍보하거나 특정 공직 후보를 추천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시바 총리는 앞서 기자들과 만나 과거에도 상품권을 뿌린 적이 있냐는 질문에 “(처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어떤 모임에서 몇 번 나눠줬는지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규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으로 물러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번 일로 소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며 퇴진할 뜻이 없음을 시사했다. 이시바 총리의 이런 해명에 자민당 내에서는 비판이 강하다. 후배 의원들에게 고액 상품권을 건네 비판이 쏟아지는데도 총리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아서다. 자민당 내 고위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벌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참의원을 중심으로 총리의 국정운영에 대한 불만이 쌓여온 데다 이번 문제로 당내 구심력 저하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당내 젊은 의원들을 중심으로는 이시바 총리에 대해 “정치 감각이 없다. 이대로면 선거는 참패”라며 총리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당 안팎에서는 자민당이 2023년 말 파벌 비자금 스캔들로 지난해 총선에 참패한 상황에서 총리가 직접 상품권을 돌린 사건까지 벌어져 국민의 비판이 커지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자민당 파트너인 연립여당 공명당의 사이토 데쓰오(斉藤鉄夫) 대표는 “보도를 보고 귀를 의심했다”며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총리가 진지하게 들었으면 한다”고 비판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대표는 이시바 총리가 상품권을 “포켓머니(사비)로 샀다”고 밝힌 점을 꼬집으며 “150만 엔은 내 주머니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관저 기밀비용일 가능성도 있다”며 국회에서 추궁할 뜻을 밝혔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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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대기업들, 2년 연속 5% 이상 임금인상

    일본 주요 대기업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에 나섰다. 내수 호전으로 기업 실적이 좋아졌고,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근로자들에게 임금 인상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13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협 소속 기업의 60%가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이른바 ‘만액(満額) 회답’을 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평균 5% 이상의 임금 인상이 예상된다. 일본 기업들은 매년 3월 노조와 임금 등을 협상하는 이른바 ‘춘투(春鬪)’에 나선다. 과거에는 노사 갈등이 커 파업을 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노조가 일정 수준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기업이 인상 폭을 정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최근 몇 년은 기업이 노조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거나, 오히려 더 많이 올려주는 경우도 있다. 일본 최대 제조업체인 도요타자동차는 최대 월 2만4450엔(약 24만 원) 인상을 결정하며 5년 연속 노조 요구를 100% 수용했다. 히타치제작소 역시 노조의 1만7000엔 인상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미쓰비시케미컬은 노조 요구액에 사 측이 3000엔을 추가해 1만8415엔 인상을 결정했다. 일본에서는 상장 기업의 지난해 1∼3분기(4∼12월) 순이익 총액이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5% 증가한 43조 엔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임금 인상을 해 줄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다만, 임금보다 물가가 더 많이 오르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물가 상승률 대비 임금 상승률을 보여주는 실질 임금은 지난해 0.2% 감소해 3년 연속 줄었다. 상대적으로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임금 인상 폭이 작아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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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시바, 당내 초선 의원들에게 100만 원 상당 상품권 건네”

    지난해 10월 일본 총선에서 당선된 초선 국회의원 15명가량이 이달 초 이시바 시게루 총리에게 10만 엔(약 98만 원)어치 상품권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아사히신문이 13일 보도했다. 집권 자민당 내에서는 보수파를 중심으로 당내 입지가 약한 이시바 총리에 대한 비판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상품권을 건넨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올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내에서 이른바 ‘이시바 끌어내리기’ 움직임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민당 초선 의원 15명은 이달 3일 이시바 총리가 개최한 간담회에 참석한 뒤 총리의 의원 사무실 측에서 1인당 10만 엔 상당의 상품권을 받았다고 전해졌다. 이날 간담회는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렸다. 간담회가 끝난 뒤 총리 비서가 참가한 의원들의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오늘의 기념품입니다”라고 말한 뒤 상품권이 든 백화점 종이가방을 건넸다고 한다. 이시바 총리 측이 건넨 상품권 총액은 100만 엔(약 980만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 총리 의원 사무실 측은 아사히신문 취재에 “(3일 열린) 간담회는 내부 모임이었다”라며 모임에 대해서는 상세한 언급을 삼가겠다고 밝혔다. 상품권을 받은 의원 일부는 다른 동료 의원들과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하고 있고, 일부 의원은 이시바 총리 사무실에 찾아가 돌려줬다. 일본 정치자금 규정법에 따르면 정치인이 개인에게 현금, 상품권 등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10만 엔 상당의 상품권은 사회 통념상의 기념품 수준을 넘어선다”는 전문가 발언을 소개하며 정치자금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총리가 후배 의원들에게 상품권을 준 게 아니냐는 이번 의혹이 미칠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2023년 말 자민당의 파벌 비자금 스캔들이 불거진 것을 계기로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가 퇴진하면서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돼 총리직에 올랐다. 정치자금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혀 온 이시바 총리 본인이 상품권을 건넸다는 의혹이라 파장이 쉽게 가라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민당 보수파를 중심으로 이시바 총리 체제로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일부 의원들은 퇴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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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두환에 “계엄령 바람직 않아” 경고한 아마코스트 전 美국무차관 별세

    미 정부에서 동아시아 담당 고위 관료로 오래 활동한 마이클 아마코스트 전 미 국무부 차관이 8일 샌프란시스코 근교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NHK방송 등이 13일 보도했다. 1937년 미 오하이오주 출신으로 컬럼비아대를 나와 1969년 국무부에 들어갔다. 미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 담당 수석 보좌관,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 국무장관 대행 등을 역임했다. 1987년 호헌 조치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커지면서 전두환 정권이 계엄령 카드를 만지작거리자, 그는 분명한 반대 메시지를 냈다. 2023년 외교부가 공개한 비밀해제 외교문서에 따르면 그는 당시 국무부 정무차관으로서 주미 한국대사에 면담을 요청해 “설사 부득이한 경우라 하더라도 계엄령, 위수령 선포 등 비상 수단을 발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전했다. 국민적 저항에 미국의 압박까지 거세지자 결국 전두환 정권은 직선제 개헌을 담은 6.29 선언을 발표했다. 주일 미국 대사 퇴임 후에는 스탠퍼드대, 브루킹스연구소 등에서 연구에 전념하며 한국 싱크탱크 등과 교류를 이어갔다. 2009년에는 전직 관료 및 한반도 전문가들과 ‘한미 동맹의 새로운 출발: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제언’ 보고서를 펴내기도 했다. 당시 그는 “북한이 지난 몇십 년간 핵 개발을 해 온 데다 핵무기를 안보와 대외협상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핵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며 지금의 북핵 고도화를 전망했다. 일본에서는 1991년 걸프전 당시 평화헌법으로 해외 파병을 거부한 일본에 자위대 파견을 요구했다. 쌀 시장 개방, 규제 완화 등을 둘러싸고 일본을 강하게 압박해 일본에서 ‘미스터 외압’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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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車-철강 관세 빼달라”는 일본 요청에 선그은 美

    미국을 방문 중인 일본 산업장관이 10일(현지 시간)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관세 적용 대상에서 일본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 측의 긍정적인 답변은 듣지 못한 것으로 알 려졌다.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에 따르면 무토 요지(武藤容治) 일본 경제산업상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만나 일본에 대해서는 자동차, 철강 등 추가 관세 조치를 배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가진 통상 장관 회담에서도 일본 측이 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무토 경산상은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해 “(일본을) 제외해 줬으면 하는 취지는 전했지만, (미국이 일본을) 제외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이 안전 기준 강화 등 비관세 장벽 강화를 고려하는 것에 대해서도 무토 경산상은 “구체적인 내용은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 측은 미일 양국 간의 균형 잡힌 관세율을 적용하는 ‘상호성’이 중요하다는 점, 미국 내 제조업 부활에 일본이 기여하고 있는 부분을 강조했지만, 미국 측의 뚜렷한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미일 양국은 이번 회담에서 실무자 협의체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경산성 관계자는 “이르면 다음 주에 실무급 협의에 나서려 한다”고 전했다. 닛케이는 “회담 목표는 조만간 닥칠 트럼프 관세의 본격 적용에 따른 타격을 가능한 한 완화하는 것”이었다면서도 “철강 관세 등의 12일 전면 적용이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본 측이 실무 협의체 구성을 서두르는 것에 반해, 미국 정부는 “앞으로 담당자가 될 직원을 지명해 연락처를 전하겠다”고 통보하는 것에 그쳤다고 한다. 일각에선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가 고위급 인력은 부족하고 실무 공무원에 대해서도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어 당분간 깊이 있는 논의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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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달려간 日경산상 “車-철강 관세 면제해 달라”

    무토 요지(武藤容治) 일본 경제산업상이 1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나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각국의 철강, 자동차 등에 부과하는 관세에서 일본은 제외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만 예외로 해 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일본은 마지막 결론이 날 때까지 끝까지 설득하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향후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무토 경산상은 러트닉 장관 외에도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도 만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12일부터 발효되는 철강, 알루미늄에 대한 25% 추가 관세, 자동차 관세 부과 대상에서 자국을 제외해 달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트럼프 행정부에 전달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일본은 최근 5년간 미국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국가다. 일본의 투자에 따른 미국 내 고용 창출 효과는 96만 명에 달한다. 일본의 최대 우려는 자동차 관세다. 자동차는 일본의 대(對)미국 수출의 28.3%를 점하는 최대 품목이기 때문이다. 관세 부과가 현실화한다면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노무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이 일본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수출 감소로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0.2% 줄어든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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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달려간 日산업장관 “車-철강 관세 우린 빼달라” 매달리기

    무토 요지(武藤容治) 일본 경제산업상이 1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나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각국의 철강, 자동차 등에 부과하는 관세에서 일본은 제외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로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일본만 예외로 해 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일본은 마지막 결론이 날 때까지 끝까지 설득하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향후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무토 경산상은 러트닉 장관 외에도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도 만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12일부터 발효되는 철강, 알루미늄에 대한 25% 추가 관세, 자동차 관세 부과 대상에서 자국을 제외해 달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전달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일본은 최근 5년간 미국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국가다. 일본의 투자에 따른 미국 내 고용 창출 효과는 96만 명에 달한다. 미국 경제에 기여한 바가 많은 만큼 관세 제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일본의 최대 우려는 자동차 관세다. 자동차는 일본의 대(對)미국 수출의 28.3%를 점하는 최대 품목이기 때문이다. 관세 부과가 현실화한다면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노무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이 일본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수출 감소로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0.2% 줄어든다.무토 경산상은 앞서 7일 기자회견에서도 “(미일) 양국이 윈윈할 수 있는 관계를 모색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달 일본 철강 및 자동차 업계 또한 무토 경산상에게 “일본의 관세 적용 제외를 실현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5-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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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사회대립 커질것” “탄핵심판 영향 작을듯”… 尹석방에 외신도 주시

    해외 주요 언론들은 8일(현지 시간)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따른 윤석열 대통령 석방 소식을 전하며 향후 재판과 정국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특히 외신들은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여론에 영향을 줄 가능성 등을 짚었다. 또 탄핵을 둘러싼 한국 내 갈등이 격화되고,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윤 대통령 석방과 탄핵 찬반 진영의 움직임 등을 전하며 “이번 석방이 향후 계엄 선포와 관련한 재판과 심판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NYT는 레이프 에릭 이즐리 이화여대 교수를 인용해 “윤 대통령의 석방으로 한국의 정치적 위기가 더 깊어지고 장기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윤 대통령이 52일간의 구금 끝에 갑자기 풀려난 것은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탄핵심판을 앞두고 진보와 보수 세력 사이의 균열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CNN방송도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분열은 더 악화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탄핵 찬반 집회가 서울 거리를 두 쪽으로 나눴다”고 전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9일 “(윤 대통령) 석방에 따라 수사가 위법하다고 주장한 윤 대통령 측과 지지자들의 기세가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헌재가 조만간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보이는데, 탄핵을 둘러싼 사회 대립도 한층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요미우리신문은 “여당과 윤 대통령 지지자는 이번 석방이 탄핵 기각으로 이어진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며 “탄핵을 주장하는 야당은 정권 탈환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보고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외신은 계엄 및 탄핵 여파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 상황을 조명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석방) 결정은 헌재가 재판에서 윤 대통령 탄핵 여부를 숙고하는 가운데 내려졌다”며 “한국은 계엄령 충격으로 흔들리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뒤 북한과 관세 관련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리더십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도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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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신들, 尹 구속 취소에 긴급 보도… “탄핵 관련 여론 영향 가능성”

    해외 주요 언론들은 8일(현지 시간)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따른 윤석열 대통령 석방 소식을 전하며 향후 재판과 정국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특히 외신들은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여론에 영향을 줄 가능성 등을 짚었다. 또 탄핵을 둘러싼 한국 내 갈등이 격화되고,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윤 대통령 석방과 탄핵 찬반 진영의 움직임 등을 전하며 “이번 석방이 향후 계엄 선포와 관련한 재판과 심판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NYT는 레이프 에릭 이즐리 이화여대 교수를 인용해 “윤 대통령의 석방으로 한국의 정치적 위기가 더 깊어지고 장기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윤 대통령이 52일간의 구금 끝에 갑자기 풀려난 것은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탄핵 판결을 앞두고 진보와 보수 세력 사이의 균열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CNN방송도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분열은 더 악화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탄핵 찬반 집회가 서울 거리를 두쪽으로 나눴다”고 전했다.일본 아사히신문은 9일 “(윤 대통령) 석방에 따라 수사가 위법하다고 주장한 윤 대통령 측과 지지자들의 기세가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헌법재판소가 조만간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보이는데, 탄핵을 둘러싼 사회 대립도 한층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또 요미우리신문은 “여당과 윤 대통령 지지자는 이번 석방이 탄핵 기각으로 이어진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며 “탄핵을 주장하는 야당은 정권 탈환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보고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일부 외신은 계엄 및 탄핵 여파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 상황을 조명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석방) 결정은 헌재가 재판에서 윤 대통령 탄핵 여부를 숙고하는 가운데 내려졌다”며 “한국은 계엄령 충격으로 흔들리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뒤 북한과 관세 관련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리더십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도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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