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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당내 초선 의원들에게 상품권을 뿌린 사실이 밝혀진 가운데, 이시바 총리가 14일 국회에서 사과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자금 관련법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일본 정치권은 이날 이시바 총리가 상품권을 건넨 사실이 언론에 일제히 대서 특필되면서 발칵 뒤집어졌다. 참의원(상원) 선거를 불과 4개월도 안 남기고 금품 사건이 터지면서 가뜩이나 비자금 문제로 지지율이 떨어진 정부와 자민당으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당내 보수파를 중심으로 이시바 총리에 대한 퇴진 압력이 더욱 거세질지 주목된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국회에 출석해 상품권 문제를 묻는 질문에 “세상의 상식과 다르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많은 분의 불신과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상품권은) 정치활동 관련 기부금에 해당하지 않아 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왜 초선 의원들에게 상품권을 뿌렸는지에 대해서는 “순전히 개인적인 안부 인사”였다며 “정치적 이념, 시책을 홍보하거나 특정 공직 후보를 추천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시바 총리는 앞서 기자들과 만나 과거에도 상품권을 뿌린 적이 있냐는 질문에 “(처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어떤 모임에서 몇 번 나눠줬는지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규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으로 물러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번 일로 소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며 퇴진할 뜻이 없음을 시사했다. 이시바 총리의 이런 해명에 자민당 내에서는 비판이 강하다. 후배 의원들에게 고액 상품권을 건네 비판이 쏟아지는데도 총리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아서다. 자민당 내 고위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벌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참의원을 중심으로 총리의 국정운영에 대한 불만이 쌓여온 데다 이번 문제로 당내 구심력 저하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당내 젊은 의원들을 중심으로는 이시바 총리에 대해 “정치 감각이 없다. 이대로면 선거는 참패”라며 총리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당 안팎에서는 자민당이 2023년 말 파벌 비자금 스캔들로 지난해 총선에 참패한 상황에서 총리가 직접 상품권을 돌린 사건까지 벌어져 국민의 비판이 커지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자민당 파트너인 연립여당 공명당의 사이토 데쓰오(斉藤鉄夫) 대표는 “보도를 보고 귀를 의심했다”며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총리가 진지하게 들었으면 한다”고 비판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대표는 이시바 총리가 상품권을 “포켓머니(사비)로 샀다”고 밝힌 점을 꼬집으며 “150만 엔은 내 주머니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관저 기밀비용일 가능성도 있다”며 국회에서 추궁할 뜻을 밝혔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주요 대기업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에 나섰다. 내수 호전으로 기업 실적이 좋아졌고,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근로자들에게 임금 인상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13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협 소속 기업의 60%가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이른바 ‘만액(満額) 회답’을 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평균 5% 이상의 임금 인상이 예상된다. 일본 기업들은 매년 3월 노조와 임금 등을 협상하는 이른바 ‘춘투(春鬪)’에 나선다. 과거에는 노사 갈등이 커 파업을 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노조가 일정 수준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기업이 인상 폭을 정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최근 몇 년은 기업이 노조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거나, 오히려 더 많이 올려주는 경우도 있다. 일본 최대 제조업체인 도요타자동차는 최대 월 2만4450엔(약 24만 원) 인상을 결정하며 5년 연속 노조 요구를 100% 수용했다. 히타치제작소 역시 노조의 1만7000엔 인상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미쓰비시케미컬은 노조 요구액에 사 측이 3000엔을 추가해 1만8415엔 인상을 결정했다. 일본에서는 상장 기업의 지난해 1∼3분기(4∼12월) 순이익 총액이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5% 증가한 43조 엔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임금 인상을 해 줄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다만, 임금보다 물가가 더 많이 오르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물가 상승률 대비 임금 상승률을 보여주는 실질 임금은 지난해 0.2% 감소해 3년 연속 줄었다. 상대적으로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임금 인상 폭이 작아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지난해 10월 일본 총선에서 당선된 초선 국회의원 15명가량이 이달 초 이시바 시게루 총리에게 10만 엔(약 98만 원)어치 상품권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아사히신문이 13일 보도했다. 집권 자민당 내에서는 보수파를 중심으로 당내 입지가 약한 이시바 총리에 대한 비판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상품권을 건넨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올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내에서 이른바 ‘이시바 끌어내리기’ 움직임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민당 초선 의원 15명은 이달 3일 이시바 총리가 개최한 간담회에 참석한 뒤 총리의 의원 사무실 측에서 1인당 10만 엔 상당의 상품권을 받았다고 전해졌다. 이날 간담회는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렸다. 간담회가 끝난 뒤 총리 비서가 참가한 의원들의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오늘의 기념품입니다”라고 말한 뒤 상품권이 든 백화점 종이가방을 건넸다고 한다. 이시바 총리 측이 건넨 상품권 총액은 100만 엔(약 980만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 총리 의원 사무실 측은 아사히신문 취재에 “(3일 열린) 간담회는 내부 모임이었다”라며 모임에 대해서는 상세한 언급을 삼가겠다고 밝혔다. 상품권을 받은 의원 일부는 다른 동료 의원들과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하고 있고, 일부 의원은 이시바 총리 사무실에 찾아가 돌려줬다. 일본 정치자금 규정법에 따르면 정치인이 개인에게 현금, 상품권 등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10만 엔 상당의 상품권은 사회 통념상의 기념품 수준을 넘어선다”는 전문가 발언을 소개하며 정치자금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총리가 후배 의원들에게 상품권을 준 게 아니냐는 이번 의혹이 미칠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2023년 말 자민당의 파벌 비자금 스캔들이 불거진 것을 계기로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가 퇴진하면서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돼 총리직에 올랐다. 정치자금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혀 온 이시바 총리 본인이 상품권을 건넸다는 의혹이라 파장이 쉽게 가라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민당 보수파를 중심으로 이시바 총리 체제로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일부 의원들은 퇴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미 정부에서 동아시아 담당 고위 관료로 오래 활동한 마이클 아마코스트 전 미 국무부 차관이 8일 샌프란시스코 근교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NHK방송 등이 13일 보도했다. 1937년 미 오하이오주 출신으로 컬럼비아대를 나와 1969년 국무부에 들어갔다. 미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 담당 수석 보좌관,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 국무장관 대행 등을 역임했다. 1987년 호헌 조치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커지면서 전두환 정권이 계엄령 카드를 만지작거리자, 그는 분명한 반대 메시지를 냈다. 2023년 외교부가 공개한 비밀해제 외교문서에 따르면 그는 당시 국무부 정무차관으로서 주미 한국대사에 면담을 요청해 “설사 부득이한 경우라 하더라도 계엄령, 위수령 선포 등 비상 수단을 발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전했다. 국민적 저항에 미국의 압박까지 거세지자 결국 전두환 정권은 직선제 개헌을 담은 6.29 선언을 발표했다. 주일 미국 대사 퇴임 후에는 스탠퍼드대, 브루킹스연구소 등에서 연구에 전념하며 한국 싱크탱크 등과 교류를 이어갔다. 2009년에는 전직 관료 및 한반도 전문가들과 ‘한미 동맹의 새로운 출발: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제언’ 보고서를 펴내기도 했다. 당시 그는 “북한이 지난 몇십 년간 핵 개발을 해 온 데다 핵무기를 안보와 대외협상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핵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며 지금의 북핵 고도화를 전망했다. 일본에서는 1991년 걸프전 당시 평화헌법으로 해외 파병을 거부한 일본에 자위대 파견을 요구했다. 쌀 시장 개방, 규제 완화 등을 둘러싸고 일본을 강하게 압박해 일본에서 ‘미스터 외압’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미국을 방문 중인 일본 산업장관이 10일(현지 시간)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관세 적용 대상에서 일본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 측의 긍정적인 답변은 듣지 못한 것으로 알 려졌다.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에 따르면 무토 요지(武藤容治) 일본 경제산업상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만나 일본에 대해서는 자동차, 철강 등 추가 관세 조치를 배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가진 통상 장관 회담에서도 일본 측이 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무토 경산상은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해 “(일본을) 제외해 줬으면 하는 취지는 전했지만, (미국이 일본을) 제외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이 안전 기준 강화 등 비관세 장벽 강화를 고려하는 것에 대해서도 무토 경산상은 “구체적인 내용은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 측은 미일 양국 간의 균형 잡힌 관세율을 적용하는 ‘상호성’이 중요하다는 점, 미국 내 제조업 부활에 일본이 기여하고 있는 부분을 강조했지만, 미국 측의 뚜렷한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미일 양국은 이번 회담에서 실무자 협의체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경산성 관계자는 “이르면 다음 주에 실무급 협의에 나서려 한다”고 전했다. 닛케이는 “회담 목표는 조만간 닥칠 트럼프 관세의 본격 적용에 따른 타격을 가능한 한 완화하는 것”이었다면서도 “철강 관세 등의 12일 전면 적용이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본 측이 실무 협의체 구성을 서두르는 것에 반해, 미국 정부는 “앞으로 담당자가 될 직원을 지명해 연락처를 전하겠다”고 통보하는 것에 그쳤다고 한다. 일각에선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가 고위급 인력은 부족하고 실무 공무원에 대해서도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어 당분간 깊이 있는 논의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무토 요지(武藤容治) 일본 경제산업상이 1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나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각국의 철강, 자동차 등에 부과하는 관세에서 일본은 제외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만 예외로 해 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일본은 마지막 결론이 날 때까지 끝까지 설득하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향후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무토 경산상은 러트닉 장관 외에도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도 만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12일부터 발효되는 철강, 알루미늄에 대한 25% 추가 관세, 자동차 관세 부과 대상에서 자국을 제외해 달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트럼프 행정부에 전달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일본은 최근 5년간 미국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국가다. 일본의 투자에 따른 미국 내 고용 창출 효과는 96만 명에 달한다. 일본의 최대 우려는 자동차 관세다. 자동차는 일본의 대(對)미국 수출의 28.3%를 점하는 최대 품목이기 때문이다. 관세 부과가 현실화한다면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노무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이 일본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수출 감소로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0.2% 줄어든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무토 요지(武藤容治) 일본 경제산업상이 1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나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각국의 철강, 자동차 등에 부과하는 관세에서 일본은 제외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로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일본만 예외로 해 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일본은 마지막 결론이 날 때까지 끝까지 설득하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향후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무토 경산상은 러트닉 장관 외에도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도 만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12일부터 발효되는 철강, 알루미늄에 대한 25% 추가 관세, 자동차 관세 부과 대상에서 자국을 제외해 달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전달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일본은 최근 5년간 미국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국가다. 일본의 투자에 따른 미국 내 고용 창출 효과는 96만 명에 달한다. 미국 경제에 기여한 바가 많은 만큼 관세 제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일본의 최대 우려는 자동차 관세다. 자동차는 일본의 대(對)미국 수출의 28.3%를 점하는 최대 품목이기 때문이다. 관세 부과가 현실화한다면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노무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이 일본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수출 감소로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0.2% 줄어든다.무토 경산상은 앞서 7일 기자회견에서도 “(미일) 양국이 윈윈할 수 있는 관계를 모색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달 일본 철강 및 자동차 업계 또한 무토 경산상에게 “일본의 관세 적용 제외를 실현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해외 주요 언론들은 8일(현지 시간)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따른 윤석열 대통령 석방 소식을 전하며 향후 재판과 정국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특히 외신들은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여론에 영향을 줄 가능성 등을 짚었다. 또 탄핵을 둘러싼 한국 내 갈등이 격화되고,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윤 대통령 석방과 탄핵 찬반 진영의 움직임 등을 전하며 “이번 석방이 향후 계엄 선포와 관련한 재판과 심판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NYT는 레이프 에릭 이즐리 이화여대 교수를 인용해 “윤 대통령의 석방으로 한국의 정치적 위기가 더 깊어지고 장기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윤 대통령이 52일간의 구금 끝에 갑자기 풀려난 것은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탄핵심판을 앞두고 진보와 보수 세력 사이의 균열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CNN방송도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분열은 더 악화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탄핵 찬반 집회가 서울 거리를 두 쪽으로 나눴다”고 전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9일 “(윤 대통령) 석방에 따라 수사가 위법하다고 주장한 윤 대통령 측과 지지자들의 기세가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헌재가 조만간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보이는데, 탄핵을 둘러싼 사회 대립도 한층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요미우리신문은 “여당과 윤 대통령 지지자는 이번 석방이 탄핵 기각으로 이어진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며 “탄핵을 주장하는 야당은 정권 탈환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보고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외신은 계엄 및 탄핵 여파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 상황을 조명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석방) 결정은 헌재가 재판에서 윤 대통령 탄핵 여부를 숙고하는 가운데 내려졌다”며 “한국은 계엄령 충격으로 흔들리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뒤 북한과 관세 관련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리더십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도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해외 주요 언론들은 8일(현지 시간)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따른 윤석열 대통령 석방 소식을 전하며 향후 재판과 정국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특히 외신들은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여론에 영향을 줄 가능성 등을 짚었다. 또 탄핵을 둘러싼 한국 내 갈등이 격화되고,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윤 대통령 석방과 탄핵 찬반 진영의 움직임 등을 전하며 “이번 석방이 향후 계엄 선포와 관련한 재판과 심판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NYT는 레이프 에릭 이즐리 이화여대 교수를 인용해 “윤 대통령의 석방으로 한국의 정치적 위기가 더 깊어지고 장기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윤 대통령이 52일간의 구금 끝에 갑자기 풀려난 것은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탄핵 판결을 앞두고 진보와 보수 세력 사이의 균열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CNN방송도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분열은 더 악화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탄핵 찬반 집회가 서울 거리를 두쪽으로 나눴다”고 전했다.일본 아사히신문은 9일 “(윤 대통령) 석방에 따라 수사가 위법하다고 주장한 윤 대통령 측과 지지자들의 기세가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헌법재판소가 조만간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보이는데, 탄핵을 둘러싼 사회 대립도 한층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또 요미우리신문은 “여당과 윤 대통령 지지자는 이번 석방이 탄핵 기각으로 이어진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며 “탄핵을 주장하는 야당은 정권 탈환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보고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일부 외신은 계엄 및 탄핵 여파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 상황을 조명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석방) 결정은 헌재가 재판에서 윤 대통령 탄핵 여부를 숙고하는 가운데 내려졌다”며 “한국은 계엄령 충격으로 흔들리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뒤 북한과 관세 관련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리더십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도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의 대표적인 시장 지표금리인 국채 10년물 금리가 약 16년 만에 처음으로 연 1.5%를 넘어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이은 국방비 인상 및 관세 부과 압박으로 주요국 채권 금리가 상승한 데다 일본은행(중앙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일본 채권시장에서 신규 국채 10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65%포인트 오른 연 1.5%를 기록했다. 장 중 한때 연 1.51%까지 오르며 2009년 6월 이후 15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채권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그만큼 하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채권시장을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에서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국방비 인상 압박 여파로 채권 매도세가 가속화되면서 각국의 채권 금리가 올랐다. 미국이 유럽에 국방비를 늘리라고 압박하자 독일은 국방비 증액을 위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0.35% 밑으로 재정적자를 억제하는 재정 준칙을 완화할 방침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5일 독일 장기금리가 상승했고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 국채 금리도 일제히 오르면서 일본에서도 금리가 상승한 것이다. 여기에 일본은행 부총재가 전날 “경제와 물가가 예측대로 움직이면 정책금리를 계속 인상해 금융완화 정도를 조정해 갈 방침”이라고 밝히면서 금리 인상 전망이 강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블룸버그통신은 “(세계 채권 금리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 몇 주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 중단, 관세 관련 뉴스 등 지정학적 변동성이 금융 시장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해 말 연 1.09% 수준이었다. 하지만 일본은행이 올 1월 연 0.5%로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향후 추가 인상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채권 금리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윤봉길 추모관 건립이 추진 중인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서 우익 단체로 추정되는 인사가 재일동포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지방본부 사무실 벽을 들이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3일 민단 및 현지 보도에 따르면 2일 오전 9시쯤 50대 일본인 남성이 운전한 경차가 민단 건물을 들이받았다. 인명 피해는 없었고 주차장 시설 일부가 부서진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은 혐의를 인정했으며 “윤 의사 추모관 건립에 항의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언급했다고 민단 측이 전했다. 민단 관계자는 “최근 윤봉길 추모관 건립 등을 둘러싸고 반대하는 우익 단체들이 민단 건물에 와 확성기를 틀면서 거세게 시위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단체인 ‘윤봉길 의사 추모사업회’는 재일교포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올 4월 말 가나자와에 추모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민단은 이 추모관 사업과 관련이 없는데도 일부 우익들은 민단이 한국 관련 단체라는 이유로 각종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일본 전역의 우익 세력을 모아 가나자와 시내, 윤봉길 의사 암장지 주변 등에서 시위를 벌이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지 경찰 또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민단 건물 등에 경비를 강화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인 10명 중 7명가량은 자국 헌법을 개정하는 데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일본에서는 매년 여론조사에서 헌법 개정 찬성 비중이 올라가는 추세다. 집권 자민당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 군(軍)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명기한 평화헌법 조항을 고치겠다는 구상을 이어 가고 있다. 위헌 논란이 있는 자위대의 헌법상 지위를 명확히 해 사실상 군대로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말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헌법 개정에 관한 질문에 68%는 ‘개정하는 편이 좋다’고, 28%는 ‘개정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 신문이 2018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뒤 가장 높은 수치였다.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데 대해선 73%가 찬성하고, 23%는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자 78%는 다른 나라로부터 공격받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고 밝혔고,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을 느낀다는 응답자는 각각 87%에 달했다. 다만 제2차 세계대전 패전 뒤 일본은 전범국가로서 군대를 보유하지 못하게 돼 있다. 1947년 제정한 일본 헌법에선 ‘국권이 발동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9조1항),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는다’(9조2항)라고 규정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는 그간 저서 등에서 “헌법을 개정해 자위대 존재를 명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 등 역대 일본 총리 대부분도 개헌에 찬성하며 의욕을 보였다. 다만 자민당이 지난해 총선 참패 후 국민투표가 필요한 개헌에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는 정치적 동력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많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인 10명 중 7명가량은 자국 헌법을 개정하는 데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일본에서는 매년 여론조사에서 헌법 개정 찬성 비중이 올라가는 추세다. 집권 자민당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 군(軍)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명기한 평화헌법 조항을 고치겠다는 구상을 이어가고 있다. 위헌 논란이 있는 자위대의 헌법상 지위를 명확히 해 사실상 군대로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헌법 개정에 관한 질문에 68%는 ‘개정하는 편이 좋다’고, 28%는 ‘개정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 신문이 2018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뒤 가장 높은 수치였다.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데 대해선 73%가 찬성하고, 23%는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자 78%는 다른 나라로부터 공격받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고 밝혔고,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을 느낀다는 응답자는 각각 87%에 달했다.다만 제2차 세계대전 패전 뒤 일본은 전범국가로로서 군대를 보유하지 못하게 돼 있다. 1947년 제정한 일본 헌법에선 ‘국권이 발동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9조1항)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는다’(9조2항)라고 규정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는 그간 저서 등에서 “헌법을 개정해 자위대 존재를 명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 등 역대 일본 총리 대부분도 개헌에 찬성하며 의욕을 보였다. 다만 자민당이 지난해 총선 참패 후 국민투표가 필요한 개헌에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는 정치적 동력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많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윤봉길 추모관 건립이 추진 중인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서 우익 단체로 추정되는 인사가 재일동포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지방본부 사무실 벽을 들이받는 사건이 일어났다.3일 민단 및 현지 보도에 따르면 2일 오전 9시쯤 50대 일본인 남성이 운전한 경차가 민단 건물에 부딪혔다. 인명 피해는 없었고 주차장 시설 일부가 부서진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은 혐의를 인정했으며 “윤 의사 추모관 건립에 항의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언급했다고 민단 측이 전했다. 민단 관계자는 “최근 윤봉길 추모관 건립 등을 둘러싸고 반대하는 우익 단체들이 민단 건물에 와서 확성기를 틀면서 거세게 시위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단체인 ‘윤봉길 의사 추모사업회’는 재일교포 독지가 도움을 받아 올 4월 말 가나자와에 추모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민단은 이 추모관 사업과 관련이 없는데도 일부 우익들은 민단이 한국 관련 단체라는 이유로 각종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일본 전역의 우익 세력을 모아 가나자와 시내, 윤봉길 의사 암장지 주변 등에서 시위를 벌이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지 경찰 또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민단 건물 등에 경비를 강화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끝난 것을 두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통역을 두지 않고 회담에 임하면서 원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일 “역사상 보기 드문 외교 실패에는 코미디언 출신으로 소통에 능숙했던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심이 있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통역 없이 직접 영어를 쓰며 회담에 임했다. 그는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등 주요 외교 무대에서도 영어를 자주 사용했다. 2022년 8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만났을 때는 통역사가 일부 문장 통역을 건너뛰자 답답해하면서 직접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정상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특유의 단순하고 강경한 표현으로 밀어붙이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본인도 다소 단정적이거나 급하게 말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발언 수위 조절 등이 진행되기 어려웠고, 결과적으로는 카메라 앞이라고는 믿기 힘든 거친 충돌이 연출된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적의를 가진 상대를 대하는 상황이었다면 더욱 통역사가 필요했다”며 “국가를 대표하는 정상의 발언은 무게감이 크고 언어력 부족에 따른 오해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통역사가 있다면 발언한 이후 생각을 가다듬고 냉정하게 판단할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우리 집 대문 앞에 매일 태극기와 일장기를 나란히 게양합니다. 양국 국기를 이렇게 내거는 곳은 전 세계에 우리 집밖에 없을 겁니다.” 조선 도공의 후예이자 세계적인 도자기 명장 15대 심수관(沈壽官·65)은 자신이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두 나라는 영원한 이웃이고, 우정으로 맺어져야 할 관계”라고 강조했다. 24일 오후 ‘사쓰마야키(薩摩焼) 15대 심수관전’이 열린 일본 히로시마를 찾았다. 사쓰마야키는 임진왜란 후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과 그 후예들이 남부 가고시마현에 정착해 만들고 있는 도자기다. 심수관은 정유재란이 끝난 1598년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 심당길의 15대 후손이다. 400년 넘게 청송 심씨 성과 도혼(陶魂)을 잊지 않으면서 12대부터는 ‘심수관’이라는 이름도 습명(襲名·선대의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굴곡진 한일 교류의 역사가 가문에 오롯이 새겨진 15대 심수관은 “과거에 구속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서로 고민하자”며 미래를 이야기했다.》심수관전이 열린 히로시마 소고 미술화랑 입구에는 심수관 가문이 일본에 정착하게 된 역사가 자세히 소개된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임진왜란 때 한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에 정착해 조선 도예 기술로 사쓰마야키를 구워낸 역사는 심수관의 정체성 그 자체다. 전시회 마지막 날인 이날, 심수관은 관람객에게 도자기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심수관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저에게 한국은 어떤 상황에서도 좋아하는 나라입니다. 이렇게 심수관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하는 것만으로 일본 사람들에게 일본과 한국의 인연을 알릴 수 있죠. 엊그제 갤러리 토크를 하면서도 관객들에게 사쓰마야키 역사를 소개했습니다. 일본 것이지만,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바다를 건너 한반도로 거슬러 간다는 큰 이야기를 느낄 수 있죠.” ―한일 가교라는 존재감이 부담스럽진 않으신가요.“전혀 없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일본인인가, 한국 쪽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지금은 둘 다라고 생각해요. 부모 중 한쪽이 일본인, 다른 쪽은 한국인인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런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너희들은 가슴에 두 나라를 품을 수 있다고, 중요한 역할을 맡아 태어났다고요.” ―한일 관계는 언제나 민감합니다. “정치적 문제는 정치인들끼리 해결하고 국민은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양국 국민이 이렇게 친하게 지내고 서로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잘 아는데, 국민을 이용해서야 되겠어요. 종종 고교생에게 강연할 기회가 있는데, ‘애국심은 불량배의 마지막 도피처’(영국 문필가 새뮤얼 존슨의 명언)라는 말을 소개합니다. 학생들에게 애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말을 반복해 쓰는 어른이 있다면 절대 믿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이 “와” 웃으며 손뼉 쳐요. 애국심, 민족이라는 단어의 뜻을 정말 알고 쓰는 건지, 국민 감정을 부추기기 위해 쓰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오랫동안 한일 관계를 지켜보시면서 많은 생각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영원한 이웃이니 기본적으로 우정으로 맺어져야 할 관계죠. 연간 1000만 명이 오고 가는 사이 아닙니까. 그런데 불매 운동을 하겠다며 제품을 발로 밟고, 국기에 불을 지르고…. 그런 수법은 더 이상 국민에게 통하지 않을 겁니다. 또 그러냐고, 또 그거냐고 할 거예요.”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과거사를 생각하면 쉽게 넘어가긴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연구자가 여러 자료를 꼼꼼히 조사하는 건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만 끄집어내고, 그것도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려는 목적으로 한다면 유감입니다. 저는 상호 이해가 아니라 상호 허용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부부도, 부모 자식도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요. 하지만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는 있죠. 과거가 지금의 우리를 구속하면 안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서로 고민해야죠. 검지로 상대를 가리키면 나머지 손가락 3개는 자신을 향하는 법이에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데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10월쯤 한국 도예가와 함께 교류전을 할 계획이에요. 심수관가 고향인 전북 남원시에서 행사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일본 대(對) 한국으로서가 아니라 함께 전시하고 차 마시면서 저녁에 가볍게 한잔하는 자리로요. 다음에 전화할 테니 맛있는 밥집 데려가 달라, 그렇게 하면 돼요. 친구가 되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일본과 한국이 사이좋게 지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네,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일본인과 한국인이 모이면 됩니다.” ―한국에서 심수관 하면 지금도 1998년 전시회를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시 ‘400년 만의 귀향: 심수관가 도예전’은 사실 제가 아버지(14대 심수관·2019년 별세)께 먼저 제안한 겁니다. 일본에 온 지 400년을 맞았으니 저희 집안의 오래된 작품들을 한국에 보여주자고 했죠. 처음에 아버지는 반대했습니다. 도자기를 옮기다가 깨지거나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어쩌냐고요. 아버지는 오래된 것을 보관하고 지키는 당대 입장이었죠. (2019년 별세한 14대 심수관은 “선조들이 대대로 만든 도자기가 밖으로 나간 것은 일본 정착 후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생전에 밝혔다) 제가 “이건 은혜에 보답하는 일”이라고 설득해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그 뒤로 어디서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동아일보가 흔쾌히 나서줘 일민미술관에서 할 수 있었죠. 전시회는 아주 큰 화제가 됐고 반응도 좋았습니다.” ―동아일보와 일민미술관 주최로 열린 당시 전시회를 5만 명이 넘게 관람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개막식에 직접 참석했습니다. 개막식 직전까진 올지 몰랐죠. 김 전 대통령은 관람 후 “한국인은 일본에 도자기 기술을 전수했고, 일본은 그 기술을 산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우리가 일본에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해 김 전 대통령이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하며 일본 국회에서 과거사 인식 문제를 매듭짓고 40여 개 항목을 양국이 약속했죠. 그것만 제대로 지키면 한일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심수관 요(도자기 가마, 수장고 등이 있는 본산)는 한국 명예총영사관이기도 합니다. “(14대 심수관은 1989년, 15대 심수관은 2021년에 한국 정부로부터 명예총영사로 임명됐다) 우리 집 대문에 태극기와 일장기를 매일 게양합니다. 양국 국기를 이렇게 내거는 곳은 전 세계에 우리 집밖에 없어요. 주일 한국대사관은 태극기만, 주한 일본대사관은 일장기만 걸잖아요.” ―일본 우익들이 협박하진 않나요. “전혀요. 오히려 한국 대통령 취임 때 ‘한일 관계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축하 전화가 오더라니까요.” 조용할 줄 알았던 화랑은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장처럼 왁자지껄했다. 지방 도시의 소규모 전시회임에도 심수관 도자기를 보러 온 관람객들로 전시장은 북적였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기술로 화려한 도혼의 꽃을 피운 심수관을 일본인들은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전시회는 자주 개최하시나요. 근황이 궁금합니다. “일본 곳곳에서 연 3, 4회 정도 엽니다. 심수관 요가 있는 가고시마현 미야마(美山)에 3년 전 다실을 만들었어요. 저희가 만든 그릇에 한국식 약선(藥膳) 요리를 드립니다. 비빔밥, 설렁탕, 삼계탕 같은 한국 음식을 몸에 좋은 재료로 일본인 입맛에 맞게 만들어요. 한국 손님께는 “한국 비빔밥과 조금 다르지만 즐겨 달라”고 부탁하는데, 다들 맛있게 드세요. 약선 요리라 건강에도 좋고요.” ―한국인도 많이 옵니까. “꽤 오십니다. 예전 가고시마에 오는 한국인들은 주로 골프만 쳤는데, 이 지역 역사나 문화를 배우고 공부하려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조금씩 변하는 게 보입니다.” ―심수관 요를 직접 찾는 방문객들은 어떤 분들인가요.“코로나19 팬데믹 전과 후가 달라요. 팬데믹 전에는 가고시마 지역의 여러 도자기 공방을 돌아보며 즐기는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핀포인트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SNS에서 인기 있는 곳만 골라 온천욕 하고, 심수관 요 들르고, 쇼핑하는 식이죠.” ―SNS가 관광 스타일도 바꿨네요.“그래서 그런지 내 발로 새로운 곳을 발견하거나 나만의 특별한 장소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줄었어요. 입소문을 듣거나 남의 평가만 보고 그대로 따라가면서 줄 서는 거죠. 그래서 SNS를 잘 활용하는 곳은 잘되지만, 정말 실력이 있는데 SNS에 서투르면 사라져 버려요. 그런 경향이 아쉬워요.” ―SNS가 활발하고 인공지능(AI)이 지배하는 시대에 수작업으로 도자기를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인간이 자기 손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진실입니다. 계산을 정확히 하고 긴 문장을 짧게 정리하는 일은 AI가 할 거예요. 주식 투자도 AI가 훨씬 뛰어나죠. 산업혁명으로 많은 블루칼라가 실직했듯, 이젠 화이트칼라가 실직하는 사태가 벌어질 겁니다. 그렇다면 머리 좋고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런 분들이 물건을 만드는 현장에 왔으면 좋겠어요. 시대를 쫓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시대와 경쟁할 수밖에 없어요. 앞서가려는 한국인의 마음도 잘 알겠지만, ‘여러분은 먼저 가세요.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라는 삶의 방식이 앞으로 요구될 거예요. 심수관은 이곳에 계속 서 있을 겁니다.”15대 심수관(沈壽官)1959년 14대 심수관 장남으로 출생. 와세다대 졸업 후 교토 도공 고등기술 전문학교, 이탈리아 국립 미술 도예 학교, 경기도 김일만 토기공장 등에서 도예를 익혔다. 1999년 15대 심수관을 습명(襲名·선대 이름을 계승)했다. 2006년 일본 총리관저에 그의 작품이 상설 전시된 것을 비롯해 서울,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등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2021년 가고시마현 한국 명예총영사로 임명됐고 그해 7월 일본 최대 월간지 ‘분게 이슌주(文藝春秋)’에 ‘일본의 얼굴’로 게재됐다. 본명은 오사코 가즈테루(大迫一輝).히로시마=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위비 증액 압박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2%를 넘는 예산 편성 검토에 나섰다. 주일미군에 안보를 의존하는 일본으로서 미국 압박에 응하는 모습이지만, 중국 견제를 이유로 군사 대국화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18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전날 국회에 출석해 “안전보장 환경을 고려해 필요하다면 (방위비가) 2%를 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시바 총리가 국회에서 2027년 이후 자국 방위비 증액에 대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한 것과는 다르다. 미일 양국은 7일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2027년도 이후에도 근본적으로 방위력을 강화해 가겠다는 일본의 약속을 환영한다”고 적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 방위비에 대해 “더 늘어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일본이 사실상 미국과 방위비 추가 증액을 약속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은 2022년 개정한 ‘국가 안보 전략’ 등을 통해서도 당시 GDP 대비 1% 수준이던 방위비를 2027년도까지 2%로 늘려 43조 엔(약 409조 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일본이 방위비를 늘리면 미국으로서는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북한 견제를 위해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동맹에 대해서도 거래를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일본의 방위비 증액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이미 무기 수출, 장거리 미사일 개발 및 배치에 박차를 가하는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앞세워 역내 군사력 증강을 꾀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이달 10∼18일 필리핀 동쪽 앞바다에서 미군, 프랑스군과 사상 첫 공동 훈련을 실시했다. 미국, 프랑스 항공모함과 함께 사실상 항공모함으로 개조 중인 일본 호위함 ‘가가’가 참여했다. 이 지역에서 일본 자위대가 미군, 프랑스군과 함께 훈련을 한 건 처음이다. 일본 자위대는 또 최신예 호위함 ‘노시로’가 공동 훈련을 위해 17일 규슈 나가사키현 사세보 기지를 출발해 호주로 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호주와 호위함 공동 개발도 추진 중이다. 최신형 호위함 도입을 추진 중인 호주는 지난해 일본과 독일 업체를 최종 후보로 선정한 바 있다. 일본은 자국 방산업체의 무기 수출 확대를 위해 올해 상반기 중 ‘방위산업전략’(가칭) 수립 작업에 들어가 내년 중 완료할 계획이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위비 증액 압박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2%를 넘는 예산 편성 검토에 나섰다. 주일미군에 안보를 의존하는 일본으로서 미국 압박에 응하는 모습이지만, 중국 견제를 이유로 군사 대국화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18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전날 국회에 출석해 “안전보장 환경을 고려해 필요하다면 (방위비가) 2%를 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시바 총리가 국회에서 2027년 이후 자국 방위비 증액에 대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한 것과는 다르다.미일 양국은 7일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2027년도 이후에도 근본적으로 방위력을 강화해 가겠다는 일본의 약속을 환영한다”고 적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 방위비에 대해 “더 늘어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일본이 사실상 미국과 방위비 추가 증액을 약속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은 2022년 개정한 ‘국가 안보 전략’ 등을 통해서도 당시 GDP 대비 1% 수준이던 방위비를 2027년도까지 2%로 늘려 43조 엔(약 409조 원)을 확보하기로 했다.일본이 방위비를 늘리면 미국으로서는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북한 견제를 위해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동맹에 대해서도 거래를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일본의 방위비 증액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이미 무기 수출, 장거리 미사일 개발 및 배치에 박차를 가하는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앞세워 역내 군사력 증강을 꾀할 가능성이 높다.일본 해상자위대는 이달 10~18일 필리핀 동쪽 앞바다에서 미국, 프랑스군과 사상 첫 공동 훈련을 실시했다. 미국, 프랑스 항공모함과 함께 사실상 항공모함으로 개조 중인 일본 호위함 ‘가가’가 참여했다. 이 지역에서 일본 자위대가 미군, 프랑스군과 함께 훈련을 한 건 처음이다.일본 자위대는 또 최신예 호위함 ‘노시로’가 공동 훈련을 위해 17일 규슈 나가사키현 사세보 기지를 출발해 호주로 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호주와 호위함 공동 개발도 추진 중이다. 최신형 호위함 도입을 추진 중인 호주는 지난해 일본과 독일 업체를 최종 후보로 선정한 바 있다. 일본은 자국 방산업체의 무기 수출 확대를 위해 올해 상반기 중 ‘방위산업전략’ (가칭) 수립 작업에 들어가 내년 중 완료할 계획이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윤동주는 한일 우호 관계의 상징입니다. 당신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서서 적대감의 벽을 허물고 화해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윤동주 시인(1917∼1945)의 서거 80주기를 맞이한 16일, 그의 모교인 일본 교토 도시샤(同志社)대에서 명예 문화박사 학위를 증정하는 수여식이 열렸다. 올해로 창립 150년을 맞이하는 도시샤대에서 고인에게 명예박사를 수여한 건 처음이다. 명예박사 수여식에는 대학 관계자와 한국 정부 관계자 및 국회의원, 양국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를 졸업한 윤 시인은 1942년 도쿄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한 뒤 그해 10월 도시샤대 문화학과 영문학 전공으로 편입했다. 그는 1943년 7월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항일 독립운동 사상범으로 체포됐고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와다 요시히코(和田喜彦) 도시샤대 기독교문화센터 소장은 “우리 대학은 당시 시대 추세에 저항하지 못하고 윤동주라는 한 학생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며 “이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타가키 류타(板垣龍太) 사회학부 교수도 “재학 중 체포돼 숨진 윤 시인을 대학 측이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 담긴 특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학위 수여를 주도한 고하라 가쓰히로(小原克博) 도시샤대 총장은 “윤동주의 작품은 일본 통치 아래, 전쟁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쓰였다”면서도 “그의 시가 만들어 낸 보편적 힘은 국가와 시대의 차이를 뛰어넘어 독자들에게 널리 공감을 불러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일본 사회가 전후 80년을 되돌아보며 그 역사 속에 윤동주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역사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면서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수여식에서는 윤 시인 장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건축학과 명예교수가 유족 대표로 학위를 받았다. 윤 교수는 “명예 학위를 수여한다는 소식에 큰아버지가 하늘에서 가장 기뻐할 것”이라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보며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큰아버지의 염원에 따른 길이라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 교수는 기념 촬영을 하면서 ‘서시’의 대목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며 학위기를 들어 보였다. 수여식이 끝난 뒤에는 1995년 도시샤대 캠퍼스 안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 앞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양국 참석자들은 윤동주의 대표 시 ‘서시’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낭독하며 윤 시인을 기렸다.교토=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에서 잊을 만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도는 게시물이 있다. 일본 땅에서 사는 재일 힌국인들이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권리만 누린다는 것이다. “차별 피해자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특권 계급”이라며 비난을 퍼붓는다. ‘재일 한국인은 일하지 않고도 연간 600만 엔(약 5400만 원)을 받는다’ ‘범죄를 저질러도 언론에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 ‘의료, 수도 등이 무료로 제공된다’…. 재일 교포의 현실을 알면 헛웃음도 안 나올 내용이지만, X에서 ‘재일특권(在日特權)’이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무수히 많은 게시물이 나온다.있지도 않은 ‘특권’ 누린다며 비난 일제강점기부터 100여 년 이어져 온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은 세계적인 외국인 인권 침해 사례로 다뤄야 할 만큼 차별로 굴곡진 역사 그 자체다. 과거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재일교포 1세들은 강제징용 등으로 끌려갔거나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해탄을 건넌 이들이 대다수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후 국적 박탈 같은 굵직한 법적 차별은 물론 취업 및 사회보장 배제, 혐한 시위 등 헤아리기도 힘든 수많은 일상적 차별에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했다. 지독한 차별을 견디다 못해 한국식 본명 대신 일본식 통명(通名)을 쓰거나 귀화 후 한국 출신임을 감추는 재일교포도 많다. SNS에 떠도는 이런 글이 대체로 그렇듯, ‘재일특권’은 애초 일본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빈곤 고령 외국인 영주자에게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월 1만 엔(약 9만 원) 안팎 보조금을 주는데, 이를 마치 떼돈처럼 왜곡한다. 외국인 세금 면제는커녕 사업이 어려워져 본의 아니게 일시 체납을 해도 영주권이 박탈될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 정부가 과거 자행했던 법적 차별은 많이 완화됐다. 하지만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한 차별 분위기 조성은 더욱 교묘하고 노골적이다.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 같은 극우 단체가 대표적이다. ‘구키(공기·空氣)를 읽는다’는 특유의 문화가 지배하는 일본에서 이런 소수 단체가 목소리를 높이면 대다수는 침묵하며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혐한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 같은 극우 정치인은 이런 토양에서 성장한다. 극단화돼 가는 한국 사회에서 최근 많이 나타나고 있는 외국인 혐오증은 일본 극우 단체가 사회 곳곳에서 퍼뜨린 외국인 차별 혐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한다며 이웃 국가에 대한 교묘한 간섭과 위협을 키우는 중국에 대한 불만으로 국내 체류 중국인과 조선족에 대한 차별과 부정적 인식이 커지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동남·서남아시아 출신에 대한 노골적 차별, 나아가 혐오감 역시 부끄럽지만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각에선,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추진 중인 강력한 이민자 추방 정책이 한국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외국인 차별에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잘못된 제노포비아, 우리 경쟁력 떨어뜨려 재특회로 대표되는 일본의 외국인 혐오증은 장기 경제 불황, 자국 턱밑까지 따라온 한국의 경제 성장, 한류 열풍 등에 열등감을 느낀 극우 세력들이 만들어 낸 사회 병증이다. 부정 선거에 중국인 간첩이 개입했다거나 특정 정치인 뒤에 화교가 있다는 식의 근거 없는 허위 정보가 난무하는 지금의 한국은 20년 전 일본의 모습과 닮아 있다. 장기 저성장 초입에 들어서며 ‘오늘보다 못한 내일’이 시작된 한국에 퍼지고 있는 ‘제노포비아’는 우리의 미래 경쟁력을 떨어뜨릴 독버섯이다. 외국인 혐오를 일삼으며 결과적으로 자국 국익에 해를 끼친 일본 극우 세력의 민낯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돼야 한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