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김재영 논설위원

논설위원실

구독 17

추천

안녕하세요. 김재영 논설위원입니다.

redfoot@donga.com

취재분야

2024-04-21~2024-05-21
칼럼100%
  • [횡설수설/김재영]세계 유일 대기업 총수 규제… 쿠팡 오너는 손 못 대는 이유

    해마다 5월이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가 있다. ‘공시 대상 기업집단’ 지정 결과가 나오는데 보통 ‘대기업 집단’이라 부른다. 이 순위가 흔히 말하는 공식 재계 서열이다. 자산 5조 원 이상의 대기업 집단은 올해 88개로 지난해보다 6개 늘었다. 새로 ‘대기업’으로 인정받은 기업들에게 자부심은 잠깐일 뿐이다. 공정거래법과 이 법을 원용하는 다른 41개 법률에 따라 274개의 규제를 새로 적용받는다. 대기업이 안 되려고 성장을 기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대기업 규제를 받는 기업집단은 매년 5, 6개씩 늘고 있다. 경제 규모는 커지고 있는데 자산 5조 원이라는 허들은 2009년부터 15년 동안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48개였던 대기업집단은 3, 4년 뒤엔 100개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30대 그룹 정도의 재벌에 대한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완화한다는 취지였는데, 이제는 중견기업 수준까지도 규제 대상이 됐다.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그룹을 지배하는 1인을 특정하도록 하는 ‘동일인(총수) 지정제’도 현실과 동떨어진다. 공정거래법은 ‘기업집단이란 동일인이 사실상 그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회사의 집단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개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4촌 이내 친족과 3촌 이내 인척 등의 사업 현황과 주식 보유 현황 등을 신고해야 한다. 평소에 연락도 하지 않고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 친인척의 자료까지 뒤져야 하는데 자료 제출 의무가 있는 동일인 관련자가 5000여 명, 총수 1명당 60여 명에 이른다. 혹시 자료를 빠뜨리거나 오기를 해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국내 기업만 규제를 받는 역차별 논란도 크다. 쿠팡의 최대주주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올해로 4년째 총수 지정을 피했다. 공정위는 김 의장이 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2021년부터 김 의장 대신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정해 왔다. 쿠팡은 한국 법인인 ㈜쿠팡 지분 100%를 미국 모회사(쿠팡Inc)가 소유하고 있고, 쿠팡Inc 의결권의 76.7%를 김 의장이 갖고 있다. ▷공정위가 올해부터 외국인도 총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지만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김범석)이 최상단회사(쿠팡Inc)를 제외한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고, 총수 일가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예외규정을 충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의장이 사실상 지배력을 갖고 있는데도 국내 기업과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 애초에 국내 경제력 집중을 막으려고 37년 전에 도입한 ‘국내용’ 규제를 국경이 무의미해진 현재에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5-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김재영]구리값 오르니, 다리 명판 도둑

    경남 진주시의 농촌 지역 교량에서 다리 이름을 적어 놓은 교명판과 공사설명판 등이 잇따라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교량 12곳에서 4개씩 동판 48개를 누군가 몰래 떼 갔다. 충북 보은에서도 동판이 사라진 교량이 발견돼 군내 다리를 전수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2019년에도 대구와 경북 청도 등에서 명판 절도 사건이 발생하는 등 수년에 한 번씩 비슷한 범죄가 되풀이되고 있다. ▷동판이 절도범의 집중 표적이 된 것은 최근 구리 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열풍과 이상기후 우려로 전선의 주요 소재인 구리 수요가 크게 늘었다.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구리 가격은 지난달 말 t당 장중 1만 달러를 넘어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난당한 명판은 구리가 70% 포함된 황동으로 만들었다. 30kg 명판 1개를 팔면 고물상에서 20만 원가량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최근 일본에서도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케이블 절도가 횡행하는 등 구리를 노린 절도가 세계적으로 빈번하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같은 경기 침체 시기나 원자재 가격이 크게 뛸 때마다 쇠붙이 절도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배수관, 철제 대문, 공사장 철근, 고기불판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기승을 부렸다. 2007년 울산에선 10여 곳의 학교에서 밤새 스테인리스 재질의 교문이 사라지기도 했다. 전신주를 타고 올라가 구리 전선을 훔치는 경우가 많아 한국전력은 10여 년 전부터 전선 재질을 구리 대신 저가의 알루미늄으로 교체해 왔다. 맨홀 뚜껑도 단골 표적이었는데, 최근엔 잠금장치를 단 덕분인지 도난이 많이 줄었다.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수십억 원어치의 기름을 빼돌리는 도유(盜油) 범죄도 많이 일어났다. 특히 2007, 2008년에는 한 해에 30여 건씩 발생하기도 했다. 그 자체로도 중대 범죄지만 자칫 송유관 폭발이나 환경오염 등 2차 사고를 부를 수 있는 위험천만한 범죄다. 지금은 첨단감지시스템 덕분에 많이 줄긴 했지만, 지난해에도 모텔을 통째로 빌려 지하실 벽을 뚫고 송유관 근처까지 땅굴을 파던 일당이 목표지점 30cm 앞에서 붙잡히는 영화 같은 일이 있었다. ▷CCTV 보급이 확대되고 현금 보유가 줄면서 절도 사건 자체는 점차 줄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생활이 팍팍해지면서 10만 원 이하 소액 절도는 최근 4년 새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코로나19 이후 점원이 없는 무인점포가 크게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깊어지는 불황에 푼돈에 손을 댄 ‘생계형 범죄’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시민 안전을 위협하면서 공공시설을 훔치는 조직적 절도까지 ‘불황형 범죄’라며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5-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김재영]뱅크런 위기에 1조 수혈받고도 4800억 배당 잔치한 새마을금고

    지난해 정부 혈세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위기를 넘긴 새마을금고가 출자 회원들에 약 4800억 원의 배당금을 지급해 빈축을 사고 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860억 원의 5배가 넘는 규모다. 순이익이 전년 대비 18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고 전체 1288개 금고 중 3분의 1이 적자를 봤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서 세금으로 한숨 돌리게 도와줬더니 배당만 알뜰하게 챙긴 것이다. ▷지난해 7월 한 부실 금고의 합병 소식에 불안해진 예금주들이 돈을 찾으려고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18조 원이 빠져나갔다. 위기감이 고조되자 정부가 나서 1인당 보호한도(5000만 원)를 넘어가는 원리금까지 보장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금융위원장은 수천만 원을 예치하며 고객들을 안심시켰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새마을금고의 부실 채권 1조 원어치를 매입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새마을금고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체율이 7%대를 넘어서는 등 위기는 진행 중이다. ▷새마을금고의 도덕적 해이는 심각한 수준이다. 3월에는 대출 컨설팅을 해주겠다며 대출수수료 40억 원을 가로챈 전현직 직원들이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신입 직원이 고객의 비밀번호를 바꿔 통장에 있던 돈을 빼돌리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이 대학생 딸을 사업자로 꾸며 금고로부터 대출을 받은 ‘작업대출’ 의혹도 불거졌다. 이 밖에도 부정·부실 대출, 횡령, 직장 내 갑질, 성희롱 등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새마을금고의 가장 큰 문제는 단위 금고 이사장이 인사와 예산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구조에 있다. 이사장은 임기 4년에 2번 연임해 12년까지 연임할 수 있는데, 중간에 대리인을 두거나 상근이사로 근무하는 등 편법을 써서 사실상 종신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2021년 기준으로 임직원 2만8891명 가운데 임원만 1만3689명인 기형적 조직도 문제다. 직원 100명당 임원이 85명이나 되니 현장 인력의 전문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뒤늦게 PF 대출을 확대했다가 부실이 커진 새마을금고에 대해 “주린이(주식 투자 초보자)가 상투 잡은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사고가 빈발해도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새마을금고의 주 업무는 금융이지만 금융위원회가 아닌 행정안전부의 감독을 받는다. 1983년 새마을금고법을 만들 때 재무부에서 내무부로 권한이 넘어간 게 여태껏 이어져오고 있다. 금융을 잘 모르는 행안부 직원 10여 명이 1300개 가까운 금고를 관리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다. 덩치만 커졌을 뿐 서민금융기관으로서의 본래의 역할은 제대로 못 하는 새마을금고에 대해 대대적 수술이 필요해 보인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5-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김재영]부자들의 아침 일과, 종이신문 읽기

    억만장자들의 신문 사랑은 각별하다. ‘신문 중독자’라고까지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하루에 5, 6개의 신문을 샅샅이 훑는다. 청소년들에게는 “세상을 알려면 신문부터 읽어라”고 조언하곤 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도 매일 아침 신문을 읽고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소학교만 나와서 어떻게 명문대 출신들을 거느리고 있냐는 질문에 “나는 ‘신문대학’을 나왔소”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부자들의 아침에는 여전히 신문이 있다. 25일 하나금융연구소가 내놓은 ‘2024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의 33%는 오전 루틴으로 종이신문·뉴스를 본다고 답했다. 금융자산 1억 원 미만인 일반 대중(18%)의 응답보다 훨씬 높았다. 부자 중에서도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신문, 뉴스를 가까이 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일반인들이 주로 연예·스포츠 뉴스를 많이 챙겨 본 반면 부자들은 경제, 정치, 생활문화 순으로 관심을 보였다. ▷부자들이 빠뜨리지 않는 루틴에 독서가 있는 것도 신문 읽기와 무관치 않다. 일반 대중이 1년에 약 6권의 책을 읽는 동안 부자들은 10여 권의 책을 읽었다. 특히 금융자산 100억 원 이상의 부자들은 연간 20여 권을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경영 도서보다는 오히려 인문·사회 분야의 책과 소설을 선호했다. 부자들에게 ‘읽는다’는 행위는 특별히 시간을 내서 하는 것이 아닌 일상 자체였다. 신문과 책을 늘 곁에 둠으로써 사유의 폭을 넓히고 남들이 보지 못한 보배를 활자 속에서 건져 올렸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부자들이 종이신문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평면적이고 파편화된 정보만으로는 뉴스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꼭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고 뉴스의 경중을 편집으로 보여주는 종이신문의 힘이 여기서 나온다. 미국 카네기멜런대와 다트머스대 연구진의 실험에 따르면 디지털 화면을 볼 때보다 종이로 글을 읽을 때 내용을 더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고 한다. 종이신문을 매일 꾸준히 읽으면 주의·집중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관심 있는 것만 보여주는 알고리즘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허위 정보에 속지 않도록 하는 것도 신문의 강점이다. 지난해 12월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한미일 3국의 30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신문을 읽는 사람이 그러지 않는 사람보다 허위 정보를 더 잘 가려내는 것으로 분석됐다. 좋은 정보를 골라 꼭꼭 씹어 삼킬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신문의 힘이다.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통찰력을 얻기 위해 부자들이 선택한 가성비 높은 투자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4-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김재영]‘AI 3대 강국’ 외치더니 패싱당한 한국

    ‘눈에 띄는 모델이 하나도 없다.’ 지난주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발표한 ‘인공지능(AI) 인덱스 보고서’는 한국엔 굴욕적이었다. 보고서는 지난해 한국이 생성형 AI를 만드는 기반인 ‘파운데이션 모델’을 단 하나도 개발하지 못했다고 썼다. 주목할 만한 머신러닝 모델 중에도 한국의 이름은 없었다. 아랍에미리트(UAE)나 이집트보다도 못한 결과다. “미국, 중국과 더불어 AI 분야 3대 강국(G3)으로 도약하겠다”는 정부의 야심 찬 선언이 공허하게 느껴진다.독자 모델 갖고도 해외서 무시당한 韓 사실 보고서 내용엔 허점이 많았다. 지난해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 LG ‘엑사원 2.0’, 삼성전자 ‘가우스’ 등 다양한 국내 모델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특정 데이터 소스 두 곳에만 의존해 자료를 취합했고, 특히 비영어권의 성과를 많이 빼먹었다. 보고서가 나온 뒤 정부는 해명 자료를 내고 스탠퍼드대에 수정을 요청했다. 업계도 오류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민간 연구기관의 조사 부실에 따른 해프닝으로 넘기기엔 찜찜하다. 만약 미국의 성과가 턱없이 적게 집계됐다면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다시 자료를 뒤적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AI 기술 생태계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는 결과에도 미국 연구진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AI 기술력이 딱 그 정도 수준이란 의미다. 업계의 홍보 부족과 정부의 기술 외교 부재도 아쉽다. 그동안 국내 업체들은 모델을 개발하고도 연구논문이나 기술 리포트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공유하는 작업에는 인색했다. 국내에서 보도자료를 내고 발표 행사를 갖는다고 해외 연구 생태계에서 알아주진 않는다. ‘한국어 특화 모델’이라는 장점은 ‘내수용’으로 폄하되기 쉽다. 국내에서만 ‘독도는 우리 땅’ ‘일본해가 아닌 동해’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해외 지도와 교과서가 거저 바뀌지 않는다. 보고서에서 우리가 정작 뼈아프게 느껴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1만 명당 AI 인재 이동 지표는 ―0.3으로 순유출을 보였다. 2020년 기준 한국의 AI 인재가 2500여 명으로 전 세계의 0.5%에 불과한 상황에서 인재가 빠져나가기까지 한다는 점엔 위기를 느껴야 한다. AI 민간 투자는 13억9000만 달러로 9위에 그쳤는데 미국의 50분의 1, 중국의 5분의 1 규모에 불과하다. 자본과 인재 없이 제대로 된 경쟁이 될 리가 없다.민관 합동 실행전략으로 판 뒤집어야 다행히 AI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에서 국가별로 기술 격차는 그리 크지 않다. 중요한 것은 AI를 다양한 산업과 서비스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있다. 최근 챗GPT의 인기가 주춤한 것도 신기한 건 알겠는데 그걸로 뭘 할 수 있는지 막연하기 때문이다. AI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와 시장을 개발하고 초기 수요를 창출하는 전략, 글로벌 빅테크가 장악하지 못한 중동, 동남아시아 등을 공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 대항전’으로 전개되는 AI 경쟁에서 정부와 민간이 한몸으로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정부는 “9조4000억 원을 투자해 AI G3로 도약하겠다” “디지털 인재 100만 명을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숫자를 넘어선 구체적인 비전과 실행전략은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AI의 활용과 규제를 위한 기본 법체계도 갖추지 못했다. 현재 AI 경쟁은 마라톤으로 치면 미국, 중국에 이은 3위 그룹이 두텁게 형성된 상태다. 하기에 따라 3위로 올라설 수도, 10위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해외에서 국내 AI 성과가 무시되는 것은 한 번이면 족하다. 굴욕은 실력으로 갚아줘야 한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4-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김재영]“혼자 사니 원룸에만 살아라?”…뿔난 1인 가구

    신혼생활은 단칸방에서 시작한다는 얘기는 부모 세대에나 통하는 옛말이 됐다. 오히려 요즘은 혼자 살아도 방이 2개 이상은 필요하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주거 환경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더 넓은 공간에 대한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취미 활동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고,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진 생활가전을 넣다 보면 집이 꽉 찬다. 그런데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면서 앞으로 1인 가구는 사실상 원룸에 살 수밖에 없도록 규정을 개정해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논란이 시작된 건 지난달 국토교통부가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내놓으면서부터다. 영구임대·국민임대·행복주택을 공급할 때 가구원 수에 따라 공급할 수 있는 적정 면적(전용면적 기준)을 새로 정했다. 1명은 35㎡ 이하, 2명은 26∼44㎡, 3명은 36∼50㎡, 4명은 44㎡ 초과 식이다. 지금까지는 1인 가구에만 전용 40㎡ 이하라는 제한을 뒀는데, 1인 가구의 상한선은 낮추고 별도 기준이 없던 2∼4인 가구는 세분화했다. ▷공공임대 입주 희망자들은 선택권이 크게 제약돼 주거의 질이 떨어지게 됐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인 가구는 예전 기준대로면 방 1개에 거실이 있는 36㎡형까지 선택할 수 있었지만, 이젠 단 1㎡ 차이로 불가능해졌다. 그 아래 타입인 26㎡형, 29㎡형 등은 원룸 형태뿐이다. 2인 가구의 경우는 방 2개인 46㎡형 대신 그보다 작은 1.5룸 타입만 들어갈 수 있는데,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현실에 맞지 않는 면적 제한을 폐지해 달라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면적 기준을 만든 이유에 대해 국토부는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자녀가 많은 가구가 넓은 면적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지 내 1, 2인 가구에 해당되는 주택이 없는 경우에는 기준보다 더 넓은 주택에 입주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한정된 임대주택을 더 필요한 곳에 배분하겠다는 취지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달라진 주거 수요에 비해 면적 기준 자체가 지나치게 낮다는 게 문제다. 수요자 눈높이에 맞지 않는 초소형 임대주택을 무턱대고 지었다가 빈집으로 비어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주거의 질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1인당 주거 면적은 2006년 26.2㎡에서 2022년 34.8㎡로 증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선진국엔 미치지 못한다. 미국(65.0㎡)의 절반에 불과하고 일본(40.2㎡)이나 영국(42.2㎡)보다도 좁다. 혼자 살면, 임대주택에 살면 비좁게 살아도 된다고 정부 당국자들이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4-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김재영]총선 끝나니 치킨·버거값 인상… 눈치 보기 끝났나

    4·10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론의 눈치를 보던 기업들이 총선이 끝나자마자 슬금슬금 가격 인상의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15일 굽네치킨은 9개 제품 가격을 1900원씩 올렸다. 일부 메뉴는 2만 원을 넘어섰다. 파파이스도 치킨, 샌드위치(버거) 등의 가격을 평균 4% 올렸다. 앞서 12일 쿠팡은 유료 회원제 서비스인 와우 멤버십 월 구독료를 4990원에서 7890원으로 58% 올렸다. 총선 이틀 뒤 금요일 밤의 기습 인상이었다. ▷‘금사과’로 대표되는 고물가는 이번 총선 레이스 내내 주요 이슈였다. 과일, 채소값뿐만 아니라 생활품목 전반의 물가 오름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식용유, 된장 등 다소비 가공식품 32개 품목은 평균 6.1% 올라, 3%대 초반인 전체 물가상승률을 훌쩍 뛰어넘었다. 코코아, 설탕, 김, 올리브 등의 국제 가격이 작황 악화 등으로 오르고 있어 식품업체들은 과자, 초콜릿, 빵 등의 가격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정부의 물가 관리는 많이 오른 품목을 쫓아다니며 관리하는 ‘두더지 잡기’ 식이었다. 지난해 상반기엔 부총리가 직접 나서 술값과 라면값을 압박하더니 지난해 11월엔 ‘빵 과장’ ‘배추 국장’ 식의 품목별 물가 담당자를 지정해 전담 관리에 나섰다. 과일·채소값이 뛰어오르자 올해 들어 사과, 대파 등 많이 오른 품목을 중심으로 납품단가 지원, 정부 할인 쿠폰 등을 집중 투입했다. 각종 할인으로 가격을 안정시킨 우수 사례를 홍보하려다 ‘대파 875원’의 사달이 났다. ▷사과·대파값이 다소 진정세를 보이자 이달 초 정부는 “3월에 연간 물가의 정점을 찍고 하반기로 갈수록 안정화될 것”이라며 성난 민심을 달랬다. 하지만 최근 물가 흐름은 정부의 기대와는 다르다. 돈을 쏟아부어 한 곳을 틀어막으면 다른 곳이 튀어 나오고 있다. 할인 지원 대상에서 빠진 방울토마토값이 급등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방울토마토를 지원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러자 이번엔 양배추와 배추 가격이 뛰었다. 재원은 한정돼 있는데 품목은 많으니 한꺼번에 잡기가 쉽지 않다. 돈을 풀어 물가를 잡겠다는 모순도 지속 가능한 해법은 아니다. ▷정부가 품목별 할인 지원, 인상 자제 요청 등의 대증 대책에 매달리고 있는 동안 중동 전쟁 확전 위기감이 커지며 국제 유가와 환율이 급등하는 등 물가 외부 요인도 불안해졌다. 여기에 총선 때까지 꾹꾹 눌러놨던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까지 꿈틀대고 있다. 할인으로 가격을 억지로 누르고, 가격을 올린 업체를 찾아가 단속·압박하는 방식만으로 어느 세월에 물가를 잡을지 걱정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4-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김재영]내국인 인구 5000만 붕괴… 외국인 의존도 커지는 韓 경제

    국내에 살고 있는 한국 국적자, 즉 내국인 인구가 6년 만에 5000만 명 밑으로 내려앉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 인구추계를 반영한 내·외국인 인구추계’를 보면 내국인은 2022년 5002만 명에서 지난해 4985만 명으로 17만 명 줄었다. 다만 외국인 체류자가 22만 명 늘어나 전체 인구는 소폭 증가했다. 내국인 인구만 따졌다면 한국은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 7개국 대열에서 지난해 탈락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미래는 암울하다. 2042년에는 내국인 인구가 지금보다 300만 명 줄어들고,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생산연령인구는 더 큰 폭으로 감소한다. 일할 사람은 적어지고 고령인구는 늘다 보니 청년과 중장년층의 부양 부담은 배로 늘어난다. 인구 감소가 사회 전체적으로 미치는 파장은 엄청나다. 학생이 없어 대학이 문을 닫고, 군대 갈 사람이 없어 안보가 위태롭고, 연금 수령은 급증해 재정 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인구 감소의 우울한 그림자가 짙어지는 것은 저출산 때문이다. 세계적 인구학자인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한국을 ‘1호 인구소멸국가’로 경고한 게 벌써 18년 전인데 그새 저출산은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지난해 한 대형 온라인쇼핑몰에선 아이가 타는 유모차보다 반려동물을 태우는 이른바 ‘개모차’가 더 많이 팔리기도 했다. 저출산으로 운영이 어려워진 어린이집은 요양원으로 바뀌고, 분유 업체들은 노인용 건강식품으로 사업을 전환하고 있다. ▷국력의 근간인 인구를 늘리려면 근본적으로는 출산율을 높여야겠지만 단기간에 회복되긴 어렵다. 내국인의 빈자리는 외국인이 채우게 될 가능성이 크다. 2042년 외국인 규모는 지난해보다 120만 명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산·고령화로 내국인 중 절반 정도만 ‘일할 나이’가 되는 것과 달리 외국인은 열 명 중 여덟 명이 생산가능인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선 외국인 증가가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된 사례가 적지 않다. 한국에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이주 정책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정부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저출산 대응을 위해 예산 약 380조 원을 투입했지만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출산, 보육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내용까지 끼워 넣어 관련 예산을 뻥튀기한 측면이 있다. 실제 필요한 곳에 돈을 충분히 쓰지 못한 것은 아닌지도 따져볼 일이다. 우수한 해외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도 지지부진하다. 선진국들은 한국에 비하면 출산율이 훨씬 높은데도 다양한 출산 장려 정책과 적극적인 이민자 유입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꼴찌가 오히려 더 게으름을 피우니 답답하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4-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김재영]선거 끝나면 우수수… 정치인 테마株 급락 주의보

    4·10총선 전 마지막 거래일이었던 9일 주식시장은 약보합으로 마감했지만, 일부 주식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총선을 진두지휘한 여야 대표들과 관련이 있다는 이른바 ‘정치인 테마주’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테마주로 꼽혔던 동신건설은 13.60%, 에이텍은 10.20% 올랐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테마주로 주목받은 대상홀딩스와 덕성은 장중 10% 안팎까지 올랐다가 내림세로 마감했다. ▷이들 기업이 정치인 테마주로 엮인 이유는 사실 황당하다. 동신건설은 본사가 이 대표 고향인 경북 안동에 있다고 테마주로 분류됐다. 에이텍은 최대 주주가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만든 민관 협의체에 참여했다는 이유다. 대상홀딩스는 한 위원장이 고교 동창인 배우 이정재 씨와 식당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근거가 됐다. 이 씨가 임세령 대상그룹 부회장의 연인이라서다. 덕성은 대표와 사외이사가 한 위원장과 서울대 법대 동문이어서, 태양금속은 창업주와 한 위원장이 같은 ‘청주 한씨’여서 테마주가 됐다. ▷다른 나라에도 정치 테마주가 있지만, 한국처럼 정책이 아닌 정치인 개인과 엮인 테마주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에선 유력 정치인과의 혈연, 학연, 지연, 혼맥 등을 매개로 기업 주가가 급등락하는 현상이 매번 선거마다 되풀이된다. 특정 정치인이 새롭게 떠오르면 주식시장 주변의 꾼들이 정치인 주변을 샅샅이 훑는다. 기관투자가들의 관심이 적고 풍문으로 주가를 움직일 수 있는 코스닥 중소형주와 엮어 스토리를 만든다. 정치 이벤트가 생길 때마다 소셜미디어나 메신저, 주식 커뮤니티 등을 이용해 풍문을 퍼뜨린다. ▷정치인 테마주의 끝은 대개 좋지 않다. 후보의 당락이나 정당의 승패와 상관없이 선거가 끝나면 급락하는 패턴을 보였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이재명 당시 후보의 테마주로 꼽혔던 NE능률과 이스타코는 선거 전 주가가 10배 이상 올랐지만 선거가 끝나고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2021년 홍준표 당시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 테마주로 엮인 경남스틸은 홍 후보의 패배가 확정되자 한 시간도 안 돼 주가가 44%나 떨어져 하한가로 곧장 직행했다. ▷정치 테마주가 기승을 부린다는 것 자체가 한국 정치와 자본시장의 후진성을 보여준다. 과거 정경유착의 기억이 생생한 투자자들은 권력자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으면 기업이 뭔가 도움을 받지 않을까 기대한다. 정치인과의 관계는 관심 없고 주가 급등락 분위기에서 타이밍을 잘 잡아 ‘나만 먹고 튀면 된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도 많다. 유력 정치인과 옷깃만 스쳐도 주가가 요동치는 비상식이 반복되는 한, 기업가치 제고를 통해 주식시장을 띄운다는 ‘밸류업’의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4-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김재영]돈 푸는 총선 끝, 이젠 ‘곳간지기’의 시간

    10일로 마무리된 총선 레이스에서 여야는 서로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마구 쏘아 댔다. 비판의 지점이나 내용은 서로 달랐는데 딱 한 번 워딩이 일치한 적이 있다. “저들이 이기면 한국이 아르헨티나(또는 베네수엘라)가 될 것”이란 얘기였다. 여야가 쏟아낸 감세와 개발, 현금살포 등의 공약이 모두 현실화한다는 불길한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지나친 걱정도 아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여야의 총선 개발공약이 2239개, 소요 예산은 최소 554조 원으로 추산했다. 청구서로 돌아올 수백조 ‘묻지 마’ 총선 공약지금까지 이런 선거가 있었나 싶을 만큼 돈 풀기 공약이 난무했다. ‘묻고 더블로 가’ 식의 도박판을 연상케 했다. 한쪽에서 철도 ‘부분 지하화’를 들고나오면 다른 쪽에선 ‘전부 지하화’로 맞섰고, ‘경로당 주 5일 공짜 점심’ 공약에는 ‘주 7일 공짜’로 응수했다. 급기야 더불어민주당은 ‘민생회복지원금’ 13조 원쯤은 소양강 물에 던지는 돌멩이 하나 정도로 여기는 대범함을 보였고, 국민의힘은 조세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부가가치세 인하 카드를 꺼내는 대담함을 보였다.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연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24차례에 걸쳐 민생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돌며 돈 풀기 약속을 했다. 너무 많아서 집계조차 어려운데 정부가 후속 조치를 위해 추린 과제만 240개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토하겠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마라”고 했으니 부처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해야 한다. 재원 마련 방안이 없거나 세수 펑크가 우려되는 ‘묻지 마’ 공약들은 이제 곳간지기인 기획재정부에 고스란히 청구서로 돌아오게 됐다. 지난달 윤 대통령은 기업 출산장려금 비과세 혜택에 대해 “기재부에서 우리 장관님이 시원하게 양보했다”고 했는데, 기재부로선 단순한 칭찬으로 들을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 대통령실과 여야에서 ‘통큰 결단’ ‘쿨한 양보’를 압박할 일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면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는 호통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기재부도 대비하고 있긴 하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달 초 간부회의에서 “기재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다음 달 재정전략회의, 7월 세법 개정안 발표 등 기재부가 챙겨야 할 이슈가 이어진다. 한정된 재정 상황 속에서 총선 기간 쏟아진 약속을 해결하고 경제의 미래 먹을거리를 챙기려면 우선순위를 가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꼼꼼한 검토 과정이 필요하다. 걱정되는 것은 현 정부 들어 기재부가 곳간지기로서의 결기를 보여준 적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상장주식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완화할 때도,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방침을 밝힐 때도 대통령실의 뜻에 따라 기존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 부담금 제도 개편 등도 대통령이 지시하면 한두 달 내에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대통령실에서 화두를 던지면 최소한의 검토와 고민도 없이 그대로 이행하는 경우가 많았다.‘쿨한 양보’ 요구 맞서 곳간 지킬 소신 보여야 기재부가 경제 정책을 총괄하고 건전 재정을 수호한다는 자존심과 소신이 있다면 무리한 요구에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저항해야 한다. 최소한 ‘밀당’이라도 해야 한다. 여야도 재정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재정준칙의 입법화를 통해 곳간지기에게 명분과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흥청망청 총선 파티는 끝났다. 이젠 나라 곳간을 손쉽게 털려는 유혹에 맞서 다시 한번 빗장을 걸어 잠가야 할 때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4-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김재영]줄였다 늘렸다 ‘고무줄’ R&D 예산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은 역대 최고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산 비효율을 이유로 올해 국가 R&D 예산을 대폭 줄였던 정부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3일 대통령실은 “세계가 기술 경쟁에 뛰어드는 유례없이 빠른 기술 변화의 파고 속에서 개혁 작업에 매달릴 수만은 없다”며 “대폭 증액을 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라고 했다. 글로벌 기술 경쟁이 올해 들어 갑자기 격화된 것은 아닌데, 1년 만에 R&D 예산을 줄였다 늘렸다 하는 형국이 됐다. ▷지난해 R&D 예산 삭감은 갑작스럽게 진행됐다. 지난해 6월 말 윤석열 대통령이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였다. 이는 ‘R&D 이권 카르텔’ 논란으로 이어졌다. 증액 기조로 예산안을 짜놨던 정부는 부랴부랴 일괄 삭감 작업에 들어가 두 달 만에 전년 대비 16.6%(5조2000억 원) 줄인 예산안을 들고나왔다. 국회에서 6000억 원 증액돼 최종적으로는 4조6000억 원 깎였다. ▷외환위기, 금융위기에도 늘었던 R&D 예산이 33년 만에 처음으로 줄자 과학기술계의 충격은 컸다. 연구비가 20%씩 일괄 삭감된 대학 연구실은 부족한 인건비를 충당하기 위해 실험은 제쳐두고 신규 연구과제 확보에 혈안이 됐다. 연구비가 대폭 깎이거나 과제가 중단된 연구실에선 연구원과 학생들의 인건비가 삭감됐고, 계약을 연장하지 못해 연구실을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카르텔’ 논란에 휩싸인 과학기술계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한국이 R&D 예산을 줄일 때 경쟁국들은 투자를 늘렸다. 이달 초 중국은 올해 과학기술 예산이 3708억 위안(약 69조 원)으로 지난해보다 10% 증액됐다고 밝혔다. 한국의 올해 국가 R&D 예산 26조5000억 원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지난해 R&D 예산(약 30조6000억 원)보다도 적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가 중요 과학기술 11대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 수준이 처음으로 중국에 추월당했는데 격차가 더 커질까 두렵다. ▷정부가 뒤늦게 예산 복원을 선언한 것은 다행이나 과정은 매끄럽지 않다. 올해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2주 뒤인 올해 1월 4일 첫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재임 중 R&D 예산을 대폭 늘리겠다”고 언급했다. 증액 규모에는 ‘상한선’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과학계 카르텔 문제가 해소된 것인지 이렇다 할 설명은 없었다. 예산 삭감 때 불통 지적을 받았다면 예산을 늘리고 정책을 개선·보완하는 과정에서라도 현장과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무줄 예산’ ‘병 주고 약 주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4-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 가격”[횡설수설/김재영]

    “그래도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된다.”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파 한 단(1kg) 가격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농협유통 대표가 “지난해 생산량 부족으로 대파가 1700원 정도 하는데 (현재) 875원에 판매 중”이라고 설명한 뒤에 나온 평가였다. 4000원대에 구입하던 소비자들은 “도대체 어디서 살 수 있는 거냐”며 의아해했다. 1000원 정도인 소포장 손질 대파와 헷갈린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윤 대통령이 이날 마트를 방문한 것은 민생경제점검회의에 앞서 현장 물가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대통령에게 소개된 875원짜리 대파 한 단은 모든 지원을 끌어모아야 가능했다. 대형마트 권장판매가격 4250원에서 납품단가 지원 2000원, 농협 자체 할인 1000원, 정부 할인(30%) 쿠폰 375원을 반영했다. 생산단가를 낮춘 게 아니어서 농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건 아니지만 단순히 가격만 보면 ‘합리적’인 수준이 아니라 파격적이다. 2020년 도매가격이 1000원을 밑돌자 농민들은 생산비도 못 건진다며 대파밭을 갈아엎었다. ▷이 매장이 대파 한 단을 875원에 팔기 시작한 것은 윤 대통령이 방문한 18일부터였다. 1인당 5단씩 하루 1000단을 한정 판매했다. 이달 11∼13일엔 농림축산식품부 지원 20% 할인 행사라며 2760원에 팔았다. 14일부터 1250원으로 가격을 낮췄다가 대통령 방문 당일에는 정부 할인 30%를 반영해 875원으로 내렸다. 원래는 20일까지 사흘 동안만 할인을 진행하려 했지만, ‘대통령 방문 특가’ 논란이 커지자 27일까지로 연장했다. ▷최근 금값이 된 과일, 채소 때문에 빈 장바구니를 든 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채소류 물가는 1년 전보다 12.2% 올랐다. 주요 산지인 전남 등에 한파와 폭설 피해가 이어지며 파 가격은 전년보다 50.1%, 배추값도 1년 전보다 21.0% 올랐다. 대통령이 2022년 8월 이후 1년 7개월 만에 마트를 찾아 물가 대책을 논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파격적으로 싼 특가 상품을 보여주는 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농축산물 물가를 잡기 위해 납품단가와 할인 지원, 수입 과일 관세 인하 등 총력전을 펴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돈을 풀어 가격 낮추기만 시도할 순 없다. 농산물 생산 및 유통구조 안정화 등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이 찾은 마트는 다음 주부터 대파를 제외한 대부분 농산물 가격을 인상한다고 한다. 대통령 방문 같은 보여주기식 깜짝 이벤트만으론 물가를 잡을 수 없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3-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김재영]韓 ‘일하는 여성 환경’ 12년째 OECD 꼴찌

    한국이 선진국 29개국 가운데 직장 내 여성 차별이 가장 심한 국가로 꼽혔다.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The glass-ceiling index)’에서 꼴찌를 기록한 것이다. 2013년 첫 발표 이후 12년 연속 부동의 꼴찌다. 매년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지만 최하위권은 일정하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일본, 튀르키예 ‘바닥권 3인방’에 대해 “이젠 익숙한 이름”이라고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성별 간 임금 격차, 기업 내 여성 임원 비율,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 10개 지표로 지수를 산출한다. 한국은 대부분의 지표에서 바닥권이었다. 남녀 임금 격차는 31.1%로 꼴찌, 여성 임원 비율(12.8%)은 끝에서 두 번째다. 여성의 노동참여율은 남성보다 17.2%포인트 낮은 27위다. 남성이 유급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기간은 두 번째로 길지만 실제 사용하는 남성은 드물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꼬집었다. ▷20대에선 여성의 고용률이 남성보다 높지만, 30대 이후부턴 역전된다. 결혼과 출산, 육아 과정을 거치며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여성이 많다. 임신과 출산, 영유아 육아전쟁을 버텨낸 여전사들도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장벽 앞에 무너지곤 한다. 이후 노동시장에 돌아와도 남는 자리는 저임금의 비정규직뿐이다. 선배들의 고군분투를 지켜본 여성 후배들은 결국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하게 된다. ▷육아와 가사의 부담이 여성에게만 쏠리는 것도 문제다. 가사 분담을 꽤 한다는 남편들도 ‘아내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더 오래 일하고 회사에 절대 충성하기를 원하는 전투적 근무환경 역시 문제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클로디아 골딘 미 하버드대 교수는 이를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로 표현했다. 일과 가정의 양자택일 상황에서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으로 두둑한 보수를 받는 일자리는 남성에게, 근무시간이 유연한 일자리는 여성에게 돌아간다. 이에 따라 소득과 승진 등에서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여성에게 차별적인 노동환경을 바꾸는 것은 국가 전체적으로도 중요한 과제다. 지난해 12월 방한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한국이 근로시간의 성별 격차를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줄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8%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여성의 경력 단절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연간 44조 원에 이른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여성이 행복한 일터를 만들어야 소득도 높아지고 출산율도 올라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단 얘기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3-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부수는’ 정책에 찬밥 된 ‘고치는’ 정책 [오늘과 내일/김재영]

    재건축으로 가는 특급열차의 승차권이 한꺼번에 풀렸다. 올 1월 정부가 준공 후 30년이 지나면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에 나설 수 있게 하면서부터다. 노후도시 정비 대상 지역도 당초 1기 신도시 등 51곳에서 전국 108곳, 215만 채로 늘렸다. 특별법 인센티브를 받으면 용적률을 최대 750%까지 올릴 수 있다. 기존 20층대 아파트 위에 아파트 두 채를 더 얹는 셈이니 그동안 재건축이 사실상 힘들던 아파트도 ‘우리도 혹시’ 하며 희망을 갖게 됐다. 정부의 지원과 총선 후보들의 공약이 온통 재건축으로만 쏠리면서 정비 사업의 또 다른 한 축인 리모델링은 찬밥 신세가 됐다. 리모델링은 기존 아파트를 완전히 철거하는 재건축과 달리 뼈대를 유지한 채 고쳐 짓는 방식이다. 재건축·재개발 규제가 강했던 지난 정부에선 상대적으로 사업비가 적게 들고 진행 속도도 빨라 대안으로 주목받았지만 재건축을 미는 현 정부 들어서는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리모델링을 추진하다 좌초된 곳도 많고, 기존 리모델링 조합과 새로 들어선 재건축추진위원회로 갈려 갈등을 빚는 단지도 많아졌다. 리모델링에 결정적 타격을 준 것은 지난해 7월 국토교통부와 법제처의 유권해석이었다. 기존에는 1층을 필로티 구조로 바꾸고 최상층을 한 개층 올릴 경우 수평증축으로 판단했는데, 수직증축에 해당한다고 해석을 바꾼 것이다. 1차 안전진단으로 끝나는 수평증축과 달리 수직증축은 2차 안전진단을 거쳐야 해 비용과 시간이 더 든다. 1층을 필로티로 하고 구조 보강을 하면 오히려 안전하다는 게 구조기술 업계의 판단이지만 정부는 과학적, 기술적 검증보다 법령의 문언적 해석에 주력했다. 아파트 리모델링은 2001년 건축법 시행령에서 처음 개념이 반영됐고, 2003년 주택법 개정으로 제도화됐다. 멀쩡한 콘크리트 건물도 부수는 무분별한 재건축 추진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리모델링 제도와 규제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그동안 건설 기술이 크게 발전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며 리모델링 활성화에 미온적이었다. 사실 인기 있는 정책이긴 힘들다. 기존 뼈대를 살려야 해 구조상 제약이 많은 리모델링보단 화끈하게 부수고 새로 짓는 재건축이 더 선호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의 달콤한 약속을 믿고 재건축행 열차에 탑승하면 곧바로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좋은 자리를 앉으려면 비싼 웃돈을 내야 한다. 그동안 안전진단 등의 문턱에 걸려 후순위로 밀렸던 단지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철저하게 사업성에 따라 우선순위가 갈린다. 더 시급한, 더 오래 기다려온 단지가 뒤로 밀릴 수 있다. 사실 지금 재건축 사업이 부진한 건 안전진단이 아니라 건설경기 부진과 공사비 상승 등에 따른 사업성 악화 때문이다. 재건축을 쉽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라며 앞으로 더 많은 규제 완화를 요구할 텐데 정부가 어떻게 뒷감당을 할지 의문이다. 선거가 끝나면 한발 뺄 수도 있다. 정부의 정확한 워딩은 준공 30년 지나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건 사실상 힘들다. 지난해 서울시는 시내 공동주택 4217개 단지 중 3087개는 재건축은 어렵고 리모델링만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이에서 핑퐁 게임을 할 것이 아니라 단지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정비 방식을 합리적으로 고를 수 있도록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그래야 도심 주택 공급도 다양한 방식으로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다. 지금처럼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재건축 승차권을 흔들며 호객 행위를 한다면 헛된 기대감만 심어줘 정비사업 전반을 왜곡시킬 뿐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3-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김재영]삼겹살 ‘비계 밑장깔기’ 잡으려 AI감별기까지 등장

    “삼겹살을 시켰는데 커다란 지방 덩어리가 나왔다.” 삼겹살은 고소한 비계 맛으로 먹는다지만 비계가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는 오랜 논쟁거리다. 아무리 그래도 하얀 도화지에 붉은 붓으로 한 줄 직 그은 듯한 수준은 곤란하다. 포장을 뜯었더니 비곗덩어리뿐이라는 원성이 높아지면서 최근 대형마트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삼겹살 선별기까지 등장했다. 삼겹살의 단면을 분석해 살코기와 지방의 비중을 확인하고, 과지방 삼겹살을 골라내는 기술이다. ▷삼겹살 선별에 AI를 활용하는 건 그만큼 소비자들이 품질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3월 3일 ‘삼겹살 데이’ 20주년을 맞아 유통업계가 대대적 반값 할인행사에 나섰는데 도를 넘은 비곗덩어리 삼겹살 때문에 분통을 터트린 사람들이 많았다. 반 이상이 기름이었으니 사실상 제값 주고 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말에는 수도권 한 지역에서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 보낸 삼겹살의 3분의 2가 비계여서 항의가 빗발쳤다. ▷눈속임 상술은 대형마트와 온라인몰, 식자재마트 등 유통채널을 가리지 않았다. 특히 윗부분의 때깔 고운 고기를 보고 구매했는데 포장을 뜯어 들춰보니 비곗덩어리만 깔려 있는 것을 확인한 소비자들이 ‘삼겹살 밑장 깔기’라며 분노했다. ‘먹는 게 아니라 불판을 닦거나 김치를 굽는 용도’ ‘고기 대신 기름을 샀다’는 불만도 많았다. 정부가 삼겹살 품질관리 매뉴얼을 배포하고 품질관리 실태 특별점검에 나섰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소포장의 경우 일반 삼겹살의 지방 두께는 1cm 이하, 오겹살은 1.5cm 이하로 관리하라고 기준을 제시했다. 하지만 권고 수준이어서 업체들이 따를 의무는 없다. 비계에 대한 선호가 제각각이라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참고할 만한 조사는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지방 함량이 적절한’, 지방 비율로는 25∼30% 수준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위별로는 흉추 5번, 흉추 9번, 요추 1번 순이었고, 이른바 ‘떡지방’이 많은 흉추 12번의 선호는 낮았다. ▷비계가 많다고 하소연해도 업체에선 ‘비계가 많아야 맛이 좋다’고 하거나, ‘단순 변심’이라며 반품해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처음부터 지방 함량에 따라 삼겹살을 세분해서 판매하고, 판매대나 포장지에 정보를 표시하면 어떨까. 세종시의 한 마트에선 지방 함량이 많은 것은 ‘풍미삼겹’, 중간 정도는 ‘꽃삼겹’, 적은 것은 ‘웰빙삼겹’ 등으로 구분해서 팔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솔푸드로 불리며 사랑받는 삼겹살이 AI 감별사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불신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2-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김재영]中 쇼핑앱의 공습… ‘헐값의 역습’ 대비해야

    ‘운동화 청바지가 1000원대, 그것도 무료 배송’.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e커머스 플랫폼들이 ‘초저가’를 앞세워 국내 유통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앱에 들어가 보면 국내 플랫폼 가격의 절반 이하인 물건이 수두룩해 진짜 이 가격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다. 한번 이용하기 시작하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는 의미로 ‘알리 지옥’ ‘테무 지옥’이라는 유행어까지 나왔다. 쇼핑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중년 남성들까지 해외 직구 시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알리의 한국 월평균 이용자 수는 지난달 기준 717만 명으로 1년 전 336만 명과 비교해 배 이상으로 늘었다. 업계 2위인 11번가 앱 사용자(759만 명)를 위협할 정도다. 지난해 7월 한국에 진출한 테무의 성장세는 더 가파르다. 진출 직후인 지난해 8월 52만 명이던 이용자 수가 지난달 571만 명으로 11배가 됐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광고비를 쏟아붓고, 각종 할인 및 쿠폰을 앞세워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중국 플랫폼의 경쟁력은 초저가를 넘어선 ‘극초저가’다. 치솟는 물가에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생활용품, 소품, 의류 등은 1만 원 이하인 경우가 많고, 1000원대 상품도 따로 모아 판다. 중국산 저가 제품을 중간 유통과정 없이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하니 국내 업체는 경쟁이 안 된다. 경기 침체로 국내 소비가 급감한 중국이 자국 생산품을 해외에 헐값에 내다 판다고 ‘디플레 수출’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고 품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충전기를 구매했는데 충전이 안 되고, 이동식저장장치(USB)는 저장이 안 된다는 식이다. 옷이 사진과 달리 사이즈가 터무니없이 작다는 등의 불만도 있다. 국내 유명 브랜드 상품을 위조한 ‘짝퉁’도 여과 없이 판매된다. 제대로 된 고객센터를 갖추지 못해 반품, 환불 등 민원을 제기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소비자연맹에 접수된 알리 관련 소비자 불만 신고는 2022년 93건에서 지난해 465건으로 1년 새 5배로 늘었다. ▷소비자들은 싸게 사서 한 번 쓰고 버린다는 식으로 가볍게 생각할 수 있지만, 중국 플랫폼의 저가 공습은 국내 유통 생태계에 치명적이다. 관세·부가세, 안전인증(KC) 비용 등을 제대로 부담하지 않아 국내 유통업체들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가의 중국산 제품이 소비재시장을 장악하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국내 제조업은 설 자리가 없다. 지금이야 초저가와 각종 혜택을 앞세워 유혹하지만 국내 유통산업 기반을 잠식하고 나면 언제 포식자로 돌변할지 모른다. 중국 플랫폼발 ‘헐값의 역습’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2-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與도 野도 ‘철도 지하화’… 실현 가능성 있나 [수요논점/김재영]

    《“주요 도심 철도를 지하화하겠다.” “우리는 모든 도시의 지상 철도를 지하화하겠다.” 4·10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야가 경쟁적으로 ‘철도 지하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표심 잡기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교통 분야 민생토론회에서 전국 주요 도시 철도의 지상구간을 지하화하겠다고 밝혔다. 사업비는 약 50조 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정치권도 분주하다. 지난달 31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 격전지인 경기 수원시를 찾아 “도심 단절을 초래하는 철도를 지하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날인 이달 1일 더불어민주당은 경인선, 경부선 등 9개 철도 노선과 수도권 도시철도 5개 노선, 광역급행철도(GTX) 3개 노선 등 총 259km 구간을 모두 지하로 넣겠다고 맞불을 놨다. 여야 모두 “재원을 충분히 감안했다” “반드시 실천할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철도 특별법 근거로 지하화 급부상 철도 지하화 요구는 지역민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계속돼 왔다. 지상 철도로 인한 도시 기능 및 생활권의 단절, 도심 토지 이용의 효율 저하, 철도 주변 지역의 쇠퇴와 노후화 등 다양한 도시문제를 야기해 왔기 때문이다. 1995년 첫 동시 지방선거에서 경부고속철도 도심 구간 지하화 공약이 나온 뒤 수십 년간 선거 때마다 나오는 단골 공약이기도 했다. 정부와 지자체마다 여러 차례 지하화 용역을 실시했고, 책상 서랍에 들어갔던 보고서를 선거가 다가오면 다시 꺼내 들었다. 하지만 조 단위로 예상되는 천문학적인 사업비를 마련할 방안을 찾지 못해 번번이 무산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철도 지하화 사업을 뒷받침할 법률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난달 9일 ‘철도 지하화 및 철도 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통과시켜 철도 지하화에 대한 제도적 걸림돌을 없앴다. 지금까지 철도 지하화는 노선을 신설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 구간을 지하로 옮기는 사업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교통 편익이 적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 쉽지 않았다. 재정사업, 임대형민자사업(BTL) 등 기존의 사업방식으로는 대규모 민간 자본을 유치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특별법은 지상 지역 부동산 개발로 발생하는 이익을 철도 지하화 사업 재원으로 쓸 수 있도록 통합개발 개념을 도입했다. 국가가 사업시행자에게 철도 부지를 출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지하화에 필요한 비용을 우선 조달할 수 있도록 사업시행자가 채권을 발행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추가했다. 또 지상 부분 개발 시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기반시설 지원, 용적률 완화 등의 다양한 혜택을 주도록 했다. 현재 총선을 앞두고 전국 선거구에서 후보들마다 철도 지하화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정부는 난개발을 막기 위해 지자체의 제안을 검토해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할 계획이다. 사업성이 높은 구간은 올해 12월까지 선도사업으로 지정해 다른 곳보다 1, 2년가량 빠르게 추진할 방침이다. ● 뉴욕 파리 등 입체도시 계획 활발 철도 지하화는 단순히 기존 철도노선을 지하로 넣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철도, 도로 등 교통시설을 포함한 공원, 광장 등의 공간시설, 공공·문화체육시설, 유통·공급시설 등 다양한 도시계획시설을 바탕으로 한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개발로 추진된다. 국내에서는 서울 용산구 마포구 인근에 조성된 6.3km 길이의 경의선 숲길이 대표적인 철도 지하화 사례로 꼽힌다. 옛 경의선 철길을 지하화하고 지상 지역을 녹지화한 뒤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연간 885만 명이 찾는 도심 명소가 됐다. 청년층 등 유동인구가 늘면서 주변 상권도 활성화되는 등 도시 재생의 성공 사례로 거론된다. 해외에서도 도시계획 차원에서 철도 지하화를 활용하는 다양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2019년 1단계 개발을 마친 미국 뉴욕의 허드슨야드가 대표적이다. 한 위원장이 “육교와 철도 부분을 덮고 공원, 산책로, 맨해튼 스카이라인 같은 것이 생긴다 생각해 보라”라고 예를 든 그 사업이다. 기존 철도 기능을 유지하면서 위를 인공대지로 덮었다. 차량기지의 상부는 금융특별지구로 조성하고, 폐선 철도 부지는 하이라인파크로 만들어 빌딩숲과 결합된 도심명소로 탈바꿈했다. 1991년부터 추진해 2028년 완공 예정인 프랑스 파리의 리브고슈 프로젝트도 모범사례로 꼽힌다. 리브고슈는 센강 주변으로 철로를 따라 창고와 공장 등이 산재한 낙후지역이었다. 파리시는 기존의 철도용지 위에 인공지반을 만들고 그 위에 업무와 상업시설, 주거지, 교육시설 등이 들어선 자족 기능을 갖춘 공간을 계획하는 한편 아래로는 기존 기차가 통과하는 대규모 재개발을 계획했다. 이를 통해 6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문화의 중심지로 육성하고, 철도부지가 갈라 놓았던 센강과 13구역 거리를 연결했다. 이범현 성결대 교수는 “철도부지 개발은 새로운 도시공간 구조를 재구성하고 도시에 활력적인 장소와 매력적인 상권을 형성할 수 있는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사업”이라며 “입체도시 계획의 일부분으로서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천문학적 비용이 문제… 민자 유치 방안은 추상적 철도 지하화는 도시재생 차원에서 필요한 사업이지만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는 게 문제다. 2013년 서울시 용역 결과에 따르면 지하철 1·2호선 구간과 국철 경인선·경부선·경의선 등 서울 구간 86.4km를 지하화하는 데만 38조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됐다. 2022년 서울시의 ‘지상철도 지하화 추진전략 연구 보고서’에선 기존 추정에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재원이 약 45조 원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추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3년 사이 공사비와 원자재값이 급증한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전국의 개발 현장에서 공사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고 한강변 초고층 수직 개발 사업도 공사비 문제로 차질을 빚고 있다. 공사비와 인건비, 인근 지역 토지 가격 등을 감안하면 최소 2배 이상 들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특별법이 생겼다고 해도 국비 부담 없이 민자 유치만으로 수십조 원의 사업을 추진한다는 발상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수익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민간사업자의 참여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 역세권 개발사업은 수익성 부족으로 민자 유치에 실패한 대표적 사례다. 2001년 논의를 시작했지만 2007년에야 삼성물산을 사업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삼성물산이 사업권을 반납했고, 자금 조달 문제로 난항을 겪다가 2013년 사업을 결국 청산했다. 이승우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결국 상부 부동산 개발이 원활히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와 부동산 경기 침체를 감안할 때 조속한 추진은 어려울 것”이라며 “심각한 정체 상태에 빠져 있는 민간투자사업의 정상화, 건설 금융 PF 제도 개선 등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술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해외 사례는 활용도가 낮은 철도나 폐선 부지를 활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상에서 활발하게 운행하고 있는 철도를 그대로 운영하면서 지하화 작업을 함께 추진한 사례는 쉽게 찾기 어렵다. 대부분 도심 구간에 있어 공사기간 교통체증 등 민원도 피하기 어렵다. 당초 계획보다 사업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대만의 경우 타이베이 지역의 지상 철도 22.3km에 대한 지하화 사업을 1983년 시작했는데 30년이 지난 2013년에야 겨우 마무리됐다. 결과적으로 여야 후보들이 각 지역구에서 공약하는 대로 주요 도시 철도의 지하화, 모든 철도의 지하화가 한꺼번에 진행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업성과 공공성, 도시계획을 꼼꼼하게 판단해 선도사업 한두 개를 선정해 제대로 성공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총선용 지역공약이 아닌 미래형 도시공간 개발 계획 차원에서 옥석을 가려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 때마다 써먹는 공수표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2-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김재영]金사과 金딸기

    아침에 먹는 사과는 ‘금(金)사과’라고 할 정도로 건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5년 전부터 가을이 아닌 여름에 수확하는 신품종 개량 사과가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익숙한 빨간색이 아닌 노란색이어서 ‘황금사과’로 불린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요즘 사과를 ‘금사과’라 부르는 이유는 따로 있다. 비싸도 너무 비싸서다. 사과뿐만 아니라 배, 귤, 딸기 등 비싸지 않은 과일이 없다. 마트와 전통시장에선 과일 봉지를 들었다 놨다 한참을 망설이는 소비자들이 많다. ▷국제유가가 안정세를 보이며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반년 만에 2%대로 내려왔지만 농산물 가격은 딴 세상 얘기다. 두 달 연속 15% 이상 올랐다. 특히 사과(56.8%), 배(41.2%), 귤(39.8%), 딸기(15.5%) 등 신선과실 가격이 28.5% 오르며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서울 전통시장을 기준으로 400g짜리 사과 3개가 평균 1만3000원이 넘고 700g짜리 배 3개는 1만5000원에 가깝다. 딸기도 500g 한 팩 기준으로 소매가격이 2만 원 안팎까지 올랐다. ▷과일값이 크게 오른 것은 지난해 극심했던 이상기후로 주요 과일의 생산량이 한꺼번에 줄었기 때문이다. 대표 국민 과일이자 명절 주요 제수품인 사과와 배의 경우 봄철 개화기 땐 이상저온으로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했고, 여름철엔 폭염으로 탄저병 등 병충해에 노출됐다. 수확 시기에는 태풍 등으로 낙과 피해도 많았다. 지난해 사과, 배, 단감의 생산량 모두 전년보다 30%가량 줄었다. 겨울철 대표 과일인 딸기도 폭염, 수해 등의 영향으로 출하량이 크게 감소했다. ▷제철 과일의 가격 급등은 작황이 나쁘지 않았던 다른 과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했던 감귤에 수요가 몰리면서 귤 가격이 27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며 ‘금귤’이 됐다. 이불 속에서 하나둘 까먹다 보면 어느새 한 상자가 동나곤 했는데 귤 1개가 500원을 넘는 지금은 부담스러워졌다. 국산 과일이 비싸지면서 소비자들은 오렌지, 바나나, 파인애플 등 수입 과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건과일이나 냉동 과일도 인기다. ▷지난해 과일 생산량이 크게 줄면서 남아 있는 저장 물량도 많지 않아 햇과일이 나오기 시작할 때까지는 가격이 안정되기 쉽지 않다. 이상기후가 일상화되면서 올해 작황은 괜찮을지 불안감도 크다. 과일값 등이 치솟으면서 올해 4인 가족 설 차례상 비용은 대형마트 기준 38만580원으로 역대 최고치라고 한다. 이러다 명절에 조상님들이 처음 보는 외래 과일만 잔뜩 있거나 아예 과일이 없는 차례상에 당황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2-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김재영]대통령 한마디에 정책 뒤엎는 게 ‘증시 저평가’ 요인

    윤석열 대통령은 국립현충원 참배 등 통상 일정을 제외한 사실상 첫 대외 일정으로 2일 증권시장 개장식을 택했다.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자본시장의 한 해 시작을 함께하며 증시 활성화의 의지를 밝혔다. 올해 역점 추진할 정책의 스포일러도 깜짝 공개했다. 내년 시행을 앞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한 것이다. 금투세는 주식,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얻은 수익이 연 5000만 원을 넘으면 수익의 20∼25%를 세금으로 걷는 제도다. 2020년 여야 합의로 소득세법 개정안이 통과돼 당초 지난해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가 주식시장 침체 등을 이유로 내년으로 시행을 미룬 상황이었다. 정부가 6개월 전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도 2025년 1월로 시행 시기가 명시돼 있었다. 윤 대통령은 금투세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들었다. 한국 기업의 주가가 비슷한 가치의 외국 기업보다 저평가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말이다. 한국 증시를 낮추보는 주체는 외국인일 텐데, 사실 금투세는 외국인에겐 해당 없는 세금이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도 주식 양도차익에 세금을 걷고 있으니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유로 내세울 수도 없다. 예고편으론 설명이 부족했다. 본편 격인 ‘경제정책방향’의 해설을 들어봐야겠다. 하지만 ‘활력 있는 민생경제’를 주제로 4일 정부가 내놓은 68페이지짜리 경제정책방향 어디에도 금투세에 대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다. 대통령이 새해 벽두부터 강조하고, 조 단위 세금이 걸린 정책이 빠진 건 이해하기 어렵다. 기획재정부의 사전 브리핑에 힌트가 있다. “대통령 행보나 메시지와 관련된 정책의 경우 특수성을 감안해 다룰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단계적으로 인하해 오던 증권거래세는 다시 환원하는 것인지 등 정책 방향을 묻는 질문에 대해선 “이제부터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대통령 발언이나 대통령실 의중에 따라 금융정책이 바뀐 건 처음이 아니다. 상장주식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완화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2월 12일 추경호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 “야당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불과 9일 뒤인 같은 달 21일 공식 발표됐다. 그사이 인사로 물러난 추 전 부총리는 일구이언을 피했지만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실없는 사람이 됐다. 지난해 10월 김 위원장은 공매도 규제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거듭 밝혔다. 공매도를 통제하는 전산시스템 구축 요구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시스템을 만들어 거래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책인지 자신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도 안 돼 공매도 전면 금지를 직접 발표해야 했다. 4일 윤 대통령은 전산시스템이 확실히 구축될 때까지 계속 공매도를 막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새 김 위원장에겐 자신감이 생겼는지 궁금하다. 올해 초에는 정부의 오락가락 배당정책 때문에 투자자들이 혼란을 겪기도 했다. 주주환원 정책과 관련해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던 금융당국이 몇 달 사이에 갑자기 과도한 배당 자제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사이에 대통령의 ‘은행은 공공재’ ‘돈잔치’ 발언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 기업의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 복잡한 지배구조 등을 많이 거론한다. 한국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과 일관성 없는 정책을 드는 외신 보도도 있다. 장관이 약속해도 믿을 수 없고, 언제든 대통령 한마디면 정책 방향이 180도 바뀌는 나라에 무엇을 믿고 투자할 수 있겠나. 이쯤이면 대통령과 정부야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란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겠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1-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김재영]덕담인가 스팸인가… 새해 카톡 인사 스트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늘 건강하세요.” 새해 첫날이면 ‘까똑’ ‘까똑’ 하는 카카오톡 알림음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메시지나 이미지의 내용은 대개 비슷하다. 단체 카톡방마다 어김없이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청룡이 용틀임을 한다. 1월 1일은 연중 메시지가 가장 많이 몰리는 날이다. 2017년과 2020년 새해 첫날엔 안부 메시지가 한꺼번에 폭주해 카톡이 수시간 먹통이 되기도 했다. ▷동창, 지인, 직장 동료 등의 단톡방에서 누군가 새해 인사를 먼저 올리면 슬슬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하나둘씩 답장이 늘어갈수록 불안감이 점점 커진다. 형식적인 인사치레가 귀찮지만 그렇다고 답을 하지 않으면 무심하고 예의 없는 사람으로 찍힐까 걱정이다. 수직적 인간관계에서 ‘읽씹’(메시지를 읽고 답장하지 않는 것)은 큰 도전이기도 하다. 한 대학에선 교수가 단체 카톡방에 새해 인사를 올린 학생에게만 가산점을 줘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말주변이나 글재주가 없는 사람들에겐 인사 문구 하나 만드는 것도 스트레스다. ‘새해 복’ ‘건강’ ‘하시는 일마다’ 등 상투어를 빼고 말을 지어내려면 머리에서 쥐가 난다. 그래서 요즘엔 포털 사이트나 소셜미디어에서 센스 있는 문구를 검색하기도 하고, 유료 인사 문구 서비스나 인공지능(AI) 추천 메시지를 이용하기도 한다. 좋은 문구를 찾았다 해도 여러 사람에게 같은 인사말을 ‘복붙’(복사와 붙여넣기)했다간 성의 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 부담이다. ▷4월 총선을 앞둔 올해는 불청객이 더 늘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면서 유권자들에게 이름을 알리려는 문자가 부쩍 많아졌다. ‘희망 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같은 말로 시작하지만 주된 목적은 본인의 치적이나 출판 기념회 등을 홍보하는 것이다. 복 많이 받으시라고 보낸 덕담이 아닌, 내 표를 얻어 본인이 복 받겠다는 그 의도가 불편하다. 내가 사는 곳과 전혀 상관없는 지역에서까지 문자가 오면 짜증이 확 난다. 도대체 내 개인정보가 어디까지 퍼졌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문안 인사를 가든, 연하장을 돌리든, 전화를 하든 과거엔 물리적 한계 때문에 새해 인사의 범위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가족과 친지, 정말 가까운 지인에게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면 족했다. 하지만 모바일로 1초 만에 새해 인사가 가능한 시대가 되니 어디까지 인사를 돌려야 하나 애매해졌다. 양해와 합의가 필요하다.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형식적인 문자는 하지 않기로 하자. 인사 문구만 덜렁 보내지 말고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고 서로 공유하는 추억을 언급하자. 이번 설엔 형식적인 명절 인사의 공해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1-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