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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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재영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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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8~2026-06-27
칼럼100%
  • [횡설수설/김재영]브렉시트 10년, 英 총리 잔혹사

    마거릿 대처 11년 반, 토니 블레어 10년…. 과거 영국 총리들은 장기간 집권하며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의 회전문은 훨씬 빨리 돌아간다. 2024년 7월 집권한 키어 스타머 총리가 전격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이제 영국은 지난 10년 사이 7번째 총리를 맞게 됐다. 단명(短命) 총리 릴레이의 출발점은 10년 전 영국을 집어삼킨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였다.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가결한 이후 영국 총리직은 ‘독이 든 성배’가 됐다. 국민투표에 부쳤던 데이비드 캐머런은 곧장 사퇴했고, 후임 테리사 메이는 유럽연합(EU)과의 이혼 합의서를 들고 의회와 씨름만 하다 2019년 물러났다. ‘브렉시트 완수’를 외치며 등장한 보리스 존슨은 파티 게이트와 거짓말 논란 끝에 2022년 사퇴했다. 압권은 리즈 트러스였다. 대책 없이 대규모 감세안을 던졌다가 44일 만에 물러나 영국 최단명 총리의 오명을 썼다. 영국 최초의 인도계 총리 리시 수낵도, 14년 만에 보수당에서 노동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이뤄낸 스타머 총리도 브렉시트의 멍에를 극복하지 못했다. ▷브렉시트는 보수당 내부의 계파 갈등과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결합해 낳은 ‘실패한 기획’이었다. 당내 강경파들을 달래고 정치적 입지를 다진다는 계산으로 캐머런 총리가 국민투표의 승부수를 던졌는데, 판이 열리자 선동이 활개를 쳤다. 나중에 총리가 되는 보리스 존슨 당시 런던 시장이 이끈 EU 탈퇴파는 빨간 버스에 “우리는 EU에 매주 3억5000만 파운드를 보내고 있다”는 문구를 내걸고 영국 전역을 돌았다. 이후 거짓 뉴스로 밝혀졌지만 복잡한 진실은 가려졌고, ‘통제권을 되찾자’는 감성적 구호가 표심을 낚아챘다. ▷‘브렉시트 10년’을 맞은 영국의 현실은 암울하다. 통상·규제 정책의 자율성을 찾았지만 저성장, 무역 감소, 이민 증가, 정치적 혼란 등 잃어버린 것이 훨씬 많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브렉시트로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6∼8% 깎였고, 투자도 EU에 잔류했을 때 예상치보다 12∼18%나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영국인 56%가 “EU 재가입을 원한다”고 답할 정도로 후회만 남았다. ▷핵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다. 10년 전 영국인들은 “경제가 힘드니 지긋지긋한 EU를 벗어나자”고 외쳤고, 지금은 “경제가 어려우니 제발 EU로 돌아가자”고 한다.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포퓰리즘 처방은 결국 더 큰 화를 부를 뿐이다. 신중해야 할 국가 대사를 광장 여론의 도박판에 무책임하게 던져버릴 때, 한 국가가 어떻게 길을 잃을 수 있는지 영국이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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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재영]‘주식 돈복사’해도 ‘세금 제로’ 정당한가

    “코스피 5,000, 한번 가봅시다.” 같은 말이라도 언제, 누가 하느냐에 따라 느낌은 천지 차이다. 1년 전 이재명 대통령이 얘기했을 땐 한국 증시가 언젠간 꼭 도달하고 싶은 희망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삼성전자 노조원들이 파업을 무기 삼아 이 말을 꺼냈을 땐 시장을 파멸로 몰고 가려는 저주처럼 들렸다. 1년 새 급변한 ‘코스피 5,000’에 대한 평가는 한국 자본시장의 체급과 주가의 하단이 그만큼 올라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주가가 큰 폭으로 뛰면서 이른바 ‘돈복사’ 수준으로 자산을 불린 이들도 부쩍 늘었다. 한국 증시가 고질적인 저평가와 ‘박스피’의 굴레를 벗고 비상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껄끄러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주식으로 수억 원의 수익을 올리고도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구조는 정당한가. 금융투자소득세 재도입 논의가 다시 불붙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언제까지 ‘시기상조’ 타령할 건지 금투세는 주식, 펀드 등 금융투자로 얻은 수익이 연 5000만 원을 넘으면 수익의 20∼25%를 세금으로 걷는 제도다. 2020년 소득세법 개정안이 통과돼 2023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가 거센 반발에 밀려 시행을 2년 뒤로 미뤘고, 2024년 말엔 여야 합의로 아예 폐지됐다. 2010년 이후 연평균 수익률이 3.3%에 불과한데 무슨 세금이냐는 불만, 큰손들이 이탈해 한국 증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가 컸다. 코스피가 4,000을 넘으면 논의하자는 타협론도 나왔다. 이제 한국 증시는 기준선을 훌쩍 넘었고, 세금보다 선결돼야 할 과제라던 상법 개정 등 자본시장 선진화 조치도 이뤄졌다. 세금을 미룰 핑곗거리는 사라졌다. 정부는 아직 유보적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시장 여건이 충분히 조성된 시점에 검토할 과제”라고 선을 그었다. 점순이의 키가 덜 자랐다며 성례를 미루는 장인의 논리다. 설령 코스피가 10,000을 찍더라도 “아직 저평가돼 있다”거나 “증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주장은 나올 것이다. 무작정 지켜만 볼 것이 아니라 시장이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다.‘선진지수’ 편입 시 도입 고려할 만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기준으로 삼는 방안을 고민해 볼 만하다. 한국 시장이 ‘선진 시장’으로 인정받으면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자금을 중심으로 약 300억 달러의 자금이 안정적으로 유입된다. 정부는 당장 이달 관찰 대상국(워치리스트) 등재에 기대를 걸고 있고, 이르면 내년 정식 편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선진 지수에 포함된 국가 대부분은 이미 자본이득에 대한 촘촘한 과세 체계를 갖추고 있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노력해 국제사회로부터 보증을 받는 시점을 금투세 과세의 원년으로 하겠다고 한다면 투자자들에게도 충분한 명분과 준비 기간을 줄 수 있다. 물론 과거 금투세 법안을 그대로 부활시키자는 뜻은 아니다. 당시에도 바로 시행하기엔 디테일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가상자산이나 부동산 등 다른 자산군과의 과세 형평성을 정교하게 맞춰야 하고, 단기 투기를 억제하고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세제 혜택도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세금을 걷겠다는 일차원적 접근을 넘어 자본시장 과세체계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물론 세금 내는 것을 반길 투자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근로소득, 사업소득엔 칼같이 세금을 거두면서 자본소득에만 예외를 두는 것은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다. 1400만 개미 투자자의 눈치만 보면서 조세 정의를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진짜 선진 증시로 가기 위한 공정한 과세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해야 할 때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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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교황의 첫 회칙 “AI 무장해제”

    교황 레오 14세는 디지털 친화적이다. 추기경 시절부터 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소통했고, 손목엔 애플워치를 즐겨 찬다. 사제가 되기 전 미국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고등학교에서 수학과 물리를 가르치기도 했다. 기술의 가능성과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이과 출신 교황님’의 인공지능(AI)에 대한 생각은 단호하다. “단순한 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AI는 무장해제돼야 한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25일 교황은 바티칸 교황청 시노드 강당에서 즉위 후 첫 회칙(回勅)인 ‘마그니피카 후마니타스(Magnifica Humanitas·고귀한 인류)’를 직접 발표했다. 교황은 회칙, 교서, 권고, 담화, 강론 등 다양한 문헌을 통해 사목적 지침을 전하는데, 그중 회칙은 가장 권위 있는 형태로 신자들은 이를 따라야 할 신앙적 의무가 있다. 245개 항목, 4만 개 단어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번 회칙은 AI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수호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황은 회칙에서 “AI를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AI는 소수의 손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회칙은 살상 무기 사용 결정을 불투명하거나 자동화된 절차에 위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로봇과 AI가 노동 구조 자체를 바꾸면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경계했다. 허위정보와 이미지 조작, 알고리즘이 진리와 판단을 왜곡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디지털 경제가 보이지 않는 노동 착취에 기반하고 있다며 ‘현대판 노예제’라고도 비판했다. 회칙은 “AI 도입에 신중함, 엄격함, 더딘 속도를 요구하는 것은 진보에 대한 반대가 아닌 인류를 위한 책임감 있는 배려”라고 했다. ▷이번 회칙은 1891년 교황 레오 13세의 사회 회칙 ‘새로운 사태’의 연장선에 있다. 레오 13세가 산업혁명 시기 노동권과 자본주의의 한계를 지적했다면, 레오 14세는 AI 혁명이 인간 존엄과 노동, 정의와 평화에 미칠 영향에 주목했다. 2020년 알고리즘에 윤리를 더한 ‘알고레틱스(Algorethics)’를 주창했던 가톨릭교회는 이제 AI를 성경 속 ‘바벨탑’에 비유하며 강력한 조치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혁신과 효과적 가속주의라는 미명 아래 폭주하는 거대 기술 기업들과 효율적인 살상력을 탐내는 강대국들이 교황의 경고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번 회칙 발표장에 크리스토퍼 올라 앤스로픽 공동 창업자도 참석한 것은 기술계 내부에서도 윤리적 브레이크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AI 자체를 통제하는 것보다는, 기술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오만함을 무장해제하는 것이 더 어렵고 시급한 일일지도 모른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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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재영]그대가 ‘삼전닉스’에 있는 것만으로

    2024년 6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산유국의 꿈을 설파했을 때, ‘대왕고래’의 최대 기대가치는 당시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2200조 원이었다. 대박의 꿈은 일장춘몽으로 끝났지만 이후 동해 앞바다에 거대한 고래가, 그것도 두 마리나 떠올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시가총액은 11일 3000조 원을 찍었다. 내년엔 두 회사의 영업이익이 1000조 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비현실적인 숫자에 취한 탓일까. 일단 내 몫부터 챙겨 달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노조가 먼저 움직였다.“주주 패싱하고 우리부터 챙겨 달라” 파업이란 벼랑 끝 전술을 꺼내 든 삼성전자 노조의 핵심 요구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고, 연봉 50%라는 지급 상한선을 철폐하라는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건 SK하이닉스였다. 2021년 산식이 복잡한 ‘경제적 부가가치(EVA)’ 대신 ‘영업이익의 10%’를 약속하더니 지난해엔 상한선마저 풀었다. 힘든 시기를 견뎌낸 구성원들에 대한 위로이자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경영진의 ‘통 큰 결단’이었겠지만, 산업계 전반에 막대한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다. 회사의 이익을 근로자와 나누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몫으로 영구히 못 박으라는 건 논리에 맞지 않다. 손익계산서의 흐름을 보자. 매출에서 임금 등 인건비를 가장 먼저 떼어 근로자들에게 확정적 대가를 지불한다. 작년에 삼성전자 직원들은 평균 1억5000만 원, SK하이닉스는 1억8000만 원을 받았다. 영업이익이 확정되면 채권자는 이자를, 정부는 법인세를 받아간다. 순이익이 정해진 뒤에 주식회사의 주인인 주주 몫을 따진다. 배당으로 모두 가져갈 순 없다. 다가올 위기에 대비할 유보금과 미래를 위한 투자 재원부터 먼저 떼어놔야 한다. 모든 정산이 끝난 후에야 성과급 규모를 논의할 수 있고, 모든 과정은 철저히 경영적 판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이익의 특정 비율을 먼저 떼어 달라는 노조의 주장은 채권자, 정부, 주주를 패싱하고 기업의 장기적 생존마저 외면하겠다는 억지에 가깝다. 대법원은 성과급이 근로의 대가가 아닌 ‘경영 성과의 사후적 분배’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국식 성과급의 더 큰 맹점은 개인의 기여도를 따지지 않고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 주는 데 있다. 금·은·동상 대신 ‘참가상’을 주는 식이다. 이익 규모가 작아 성과급이 소소한 보너스 정도였을 땐 문제가 없었지만, 참가상으로 6억, 7억 원을 달라며 파업까지 불사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근로자들의 노력만으로 이룬 성과인가” “우리도 간접적으로 기여했으니 ‘응원상’을 달라”는 요구가 터져 나온다. 투자, 고용, 납세로 책임을 다하고 있는 기업들에 또 다른 식으로 기여를 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노조의 과도한 탐욕이 빌미를 제공했다.‘참가상’ 6억, 7억은 과연 공정한가 빅테크들과 해외 반도체 경쟁사들은 어리둥절하다. 노조도 없거니와, 경영 판단의 영역인 성과급을 이유로 파업을 하겠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엔비디아나 구글, 애플 등은 현금 대신 장기 실적 및 주가와 연동되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을 핵심 보상 수단으로 활용한다. 대만 TSMC는 현금으로 주지만 이사회가 회사 재무 상황과 미래 투자 소요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성과급 크기와 배분 비율을 정한다. 이젠 한국 기업들도 왜곡된 보상 체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바꿔야 한다. 온정주의나 나눠 먹기식 관행을 끊어내고, 개인과 기업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보상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소모적 갈등을 하고 있는 사이, 인공지능(AI) 해류를 따라 나타난 고래가 다시 심해로 사라질 수도 있다. 고래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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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주가 올라도 지갑 안 열리는 이유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8일 코스피는 7,500 선 턱밑에서 장을 마치며 4거래일 연속으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증시는 뜨겁다못해 데일 지경이지만 체감 경기는 냉골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년 만에 기준선인 100 아래로 내려앉았다. 주식 계좌가 두둑해졌는데도 사람들은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다. 자산 가치가 오르면 씀씀이도 커진다는 이른바 ‘자산효과(Wealth Effect)’가 유독 한국에선 잘 드러나지 않는다.▷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우리나라 주식 자산효과에 대한 평가’ 보고서를 보면 2011∼2024년 가계의 주식 자산이 1만 원 늘어날 때 증가하는 소비는 130원 남짓에 불과했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에서 300∼400원이 소비 증가로 연결되는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다. 한국에서 주식 자산효과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은 가계에서 주식을 많이 들고 있지 않아서다. 가계의 주식 보유 비중은 전체 자산의 7%에 불과하다. 주가가 많이 올라도 소비를 늘릴 수준만큼의 자산 증가를 체감하기 어렵다.▷그나마 벌어들인 주식 소득의 상당 부분은 소비가 아닌 부동산으로 흘러갔다. 한은은 무주택 가계의 경우 주식 자본이득의 약 70%를 부동산 자산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서울 주택 매입 자금 중 주식·채권 매각대금 비중은 지난해 5월 4.9%에서 올해 1월 8.9%로 치솟았다. ‘무리하게 빚을 내더라도 집은 사야 한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는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한국에선 주식을 ‘안정적인 수익원’이 아닌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일시적 이익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2011∼2024년 한국 주식 시장의 월평균 기대 수익률은 미국의 6분의 1에 불과했고, 변동성은 10% 높았다. 이 때문에 주식을 장기 보유하기보단 단기에 차익을 실현하고는 부동산 등 ‘안전자산’에 묻어 두려는 투자자들이 많았다. “주식 하면 패가망신” “주식에 손대면 이혼 사유” 등 주식투자에 대한 부정적 꼬리표도 한몫했다.▷물론 지난해부턴 상황이 바뀌고 있다. 지난해 국내 가계가 주식의 매매 차익으로 벌어들인 돈은 429조 원으로, 직전 14년 연평균인 20조 원의 20배가 넘는다. 주식을 보유한 개인도 2019년 말 612만 명에서 지난해 말 1442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안정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해 한국 증시도 장기 우상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꺾어 주식으로 번 돈이 부동산으로 쏠리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주식시장이 기업과 내수를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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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오늘은 ‘어른이날’

    해마다 5월 8일 어버이날이면 부모님의 왼쪽 가슴마다 빨간 카네이션이 활짝 피어올랐다. 훈장이라도 받은 것처럼, 온 세상을 다 얻은 듯하셨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로 시작하는 노래 ‘어머니의 마음’은 첫 소절부터 울컥해져 끝까지 부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 자녀 양육에 한창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부모에겐 어버이날이 코끝 찡한 날만은 아니다. 자기 스스로를 챙기고 자축하는 이른바 ‘어른이날’로 부르는 신풍속도가 나타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맘카페를 보면 어버이날을 핑계 삼아 자신에게 이른바 ‘셀프 선물’을 했다는 인증 글이 넘쳐난다. 평소 가격표를 보며 망설이던 100만 원대 명품 액세서리나 고급 향수를 나를 위한 보상 차원에서 과감히 결제하거나, 육아에 지친 몸을 달래려 고가의 경락 마사지를 예약하는 식이다. 아이의 삐뚤빼뚤 편지도 물론 기쁘지만,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고생한 나 자신을 위한 확실한 위로를 얻겠다는 심리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신의 부모들에게 소홀한 것은 아니다. 다만 방식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일 뿐이다. 어버이날 선물 부동의 1위는 십수 년째 굳건하게 ‘현금’이 차지하고 있다. 카카오페이에 따르면 지난해 1년 중 송금이 가장 많이 이뤄진 날 2위가 어버이날이었다. 추석 연휴 다음으로 돈이 많이 오갔다. 한 설문조사에서도 10명 중 9명은 어버이날에 가장 선호하는 선물로 현금을 꼽았다. 부모님껜 가장 확실한 ‘봉투’를 드리고, 나에겐 취향에 맞는 ‘선물’을 주는 이원화 전략이다. ▷이러한 현상의 바탕엔 MZ세대 특유의 ‘미이즘(Meism)’이 깔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들은 개인의 행복과 자아실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며 자라난 세대다. 자식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헌신하고 희생하던 과거의 부모상에서 벗어나, ‘나를 소중히 여겨야 아이도 행복하게 키울 수 있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훗날 자녀에게 기대거나 보상을 바라기보다는, 당장 나 스스로를 챙겨 심리적 만족감을 얻고 육아의 동력을 잃지 않으려 한다. ▷예전엔 당장 굶더라도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보면 배부르다고들 했다. 어르신들의 눈엔 자녀의 카네이션을 자랑하는 대신 스스로에게 명품 반지를 끼워주는 모습이 낯설거나 이기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팍팍한 살림살이와 육아의 고단함을 견디며 살아가는 젊은 부모들이 1년에 한 번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마저 탓하긴 어렵지 않을까. 오히려 ‘나’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부모의 무게를 견뎌내겠다는 긍정적인 다짐 의식에 가깝다. 꽤 실용적이고 씩씩한 요즘 부모들의 생존법일지도 모른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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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이젠 초6부터 “엄카 대신 내카”

    혹시나 해서 지갑에 현금을 좀 넣어 다니지만 좀처럼 쓸 일은 없다. 신용카드나 간편결제, 계좌이체로 대부분 해결된다. 아이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편의점이나 생활잡화점,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능숙하게 카드를 쓱 내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실제론 ‘엄카(엄마 카드)’, ‘아카(아빠 카드)’를 빌려 쓰는 것이지만, 이젠 초등학교 6학년도 본인 명의의 ‘내카’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신용카드는 만 19세 이상 성인만 발급할 수 있었지만, 4일부터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발급 가능 연령이 크게 낮아졌다. 부모가 신청하면 만 12세 이상 자녀 명의로 ‘가족카드’를 발급할 수 있다. 그동안 일부 카드사에서 혁신금융서비스로 제한적으로 운영하던 것을 전면 허용했다. 무분별한 소비를 막기 위해 한도는 월 10만 원(부모 허락 시 최대 50만 원)으로 제한된다. 문구점, 편의점, 학원, 병원 등 실생활에 밀접한 업종에서만 쓸 수 있고, 유흥·사행성 업종의 결제는 차단된다. ▷원칙적으로 신용카드를 가족을 포함한 타인에게 빌려주는 것은 여신법과 카드사 약관 위반이다. 분실·도난으로 부정 사용이 발생해도 책임소재를 따지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현금 없는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면서 매번 용돈을 현금으로 주는 대신 ‘엄카’를 빌려주는 게 관행처럼 돼 왔다. 금융당국은 자녀들이 음성적으로 부모 카드를 쓰는 대신, 부모의 통제 아래 투명하게 소비를 관리하는 구조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본인 명의의 카드 사용을 통해 금융 시스템의 근간인 ‘신용’의 개념을 일찍 익힐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우려의 시선도 만만찮다. 당장 통장에 잔액이 없어도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경험은 아직 자제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겐 치명적인 유혹이다. 신용카드의 본질은 결국 ‘빚’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용돈 당겨쓰기’의 단맛에만 일찍 길들여질 우려가 있다. 아이들은 ‘내 카드로 내가 샀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엔 부모의 신용에 기대는 구조다. 내가 맘대로 써도 결국 누군가 갚아줄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부터 형성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통장 잔액 한도 내에서만 쓸 수 있는 체크카드만으로 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카드가 빚이란 사실을 깨닫기까지 우리 사회는 엄청난 수업료를 치렀다. 소득 없는 대학생, 저신용자 등에게 무분별하게 카드를 남발했다가 수백만 명의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2000년대 초반 카드대란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카드를 긁는 행위가 훗날 어떤 책임으로 돌아오는지 제대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첫 신용카드가 독배가 될지, 건강한 경제관념을 키워주는 자양분이 될지는 결국 카드를 허락한 어른들에게 달렸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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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AI 골드러시’의 역설… 빅테크 감원 칼바람

    19세기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 당시 정작 떼돈을 번 것은 금광을 찾아 미친 듯이 파고든 광부들이 아니었다. 광부들에게 곡괭이와 텐트, 질긴 청바지를 팔았던 상인들이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다.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는 인공지능(AI) 패권 전쟁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AI라는 황금을 캐려는 빅테크 기업들이 ‘현대판 곡괭이’인 AI 반도체와 인프라를 사들이는 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서, 정작 제 식구들의 밥줄은 끊어 내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AI 인프라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감원에 나서고 있다.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는 전체 직원의 약 10%인 8000명을 다음 달 해고하고, 계획했던 6000개 신규 채용마저 백지화한다고 23일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최근 창사 51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내 직원의 약 7%인 8700여 명에게 자발적 조기 퇴직을 제안했다. 나이와 근속 연수의 합이 70 이상인 직원이 대상이다. 20년 일한 50세 직원은 나가달라는 것이다. 오라클은 이달 들어 수천 명 규모의 감원을 발표했고, 아마존도 지난해 10월 이후 일자리 3만 개를 줄였다. AI를 구축하고 훈련시킨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AI에 의해 가장 먼저 대체되는 슬픈 역설이 일어나고 있다. ▷승자 독식이란 AI 플랫폼 경쟁의 본질 때문에 투자 중단은 곧 도태를 의미한다. 이 때문에 빅테크들은 실탄 마련을 위해 구조 조정은 물론 ‘빚투’까지 마다하지 않고 있다. 2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인프라 등에 투자하기 위한 목적으로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해 화제를 모았다. 최근 아마존, 메타, 오라클 등도 수백억 달러어치의 채권을 잇달아 찍어 냈다. ▷실제 AI 인프라 구축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이 든다. 거대언어모델(LLM)을 학습시키고 구동하기 위해서는 21세기 최고가 곡괭이인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경쟁적으로 쓸어 담아야 한다. 여기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막대한 전력을 끌어오는 데만 수십조, 수백조 원이 깨진다. 올해 구글, 아마존, MS, 메타 등 빅테크 4사가 AI 인프라 구축에 투입하겠다고 공언한 금액은 6740억 달러(약 1000조 원)로 전년 대비 60% 급증했다. ▷AI의 장밋빛 미래에 주식 시장은 축포를 쏘아 올리고 있다. ‘삽과 곡괭이 전략’은 이제 당연한 상식이 되어 빅테크보다 오히려 반도체, 전력망, 에너지 등 인프라 기업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금광 채굴이 멈추고 광부들이 떠나면 곡괭이든 청바지든 더는 팔릴 수 없다. AI에 대한 기대감이 언제부터 수익으로 바뀔 수 있을지, 빅테크들의 치킨게임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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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재영]‘소통의 약’ 투약 시급한 불신의 K바이오

    신약 개발은 흔히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에 비유된다. 확률은 희박해도 일단 바늘구멍을 뚫으면 보상이 엄청나다. 비만약의 대히트가 빅테크급 제약사를 키워냈듯, ‘노벨상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획기적 탈모치료제가 나오면 빅테크를 능가할 기업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 불확실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과정이 불투명해선 안 된다. 그런데 한국에선 속이 보이지 않는 블랙박스를 놓고 대박의 꿈을 내세워 약을 파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천당에서 황천길로 급락한 주가 중견 제약사 삼천당제약은 올해 코스닥 시장을 달군 아이콘이었다. 주사형 단백질 의약품을 먹는 형태로 바꿀 수 있는 독자 플랫폼 ‘S-PASS’를 앞세워 ‘먹는 당뇨약’ ‘먹는 비만약’ 개발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1월 일본, 2월 유럽, 3월 미국 등 일련의 기술 수출 계약을 공개하며 한국의 일리아릴리, 노보노디스크의 서사를 쌓아갔다. 올해 20만 원대에서 출발한 주가는 지난달 말 120만 원대로 급등하며 코스닥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의문점도 커졌다. 보도자료에선 유럽에서 5조3000억 원, 미국에서 15조 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했는데, 공시에 명시된 규모는 100분의 1에 불과했다. 판매 수익의 90%까지 가져온다는 계약도 이례적이었다. 주가가 최고조로 향할 무렵 알려진 대표이사의 대량 지분 매각 계획은 고점 신호로 읽혔다. 여기에 삼천당제약을 작전주로 지목한 한 블로거의 주장과 추가 임상이 필요하다는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지적이 이어지며 단 사흘 만에 주가가 반 토막이 났다. ‘작전주 의혹’이 트리거가 됐지만 시장이 격하게 반응한 것은 삼천당제약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2021년 먹는 인슐린, 먹는 코로나19 백신 관련 투자 협의라는 소식에 대해 수차례 해명 공시를 반복하더니 수년이 지나 협의가 중단됐었다. 삼천당제약 측은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진화에 나섰지만 기술력과 계약 구조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내놓지 못해 불신을 잠재우지 못했다. 삼천당제약 사태를 특정 기업의 문제로만 보기엔 기시감이 크다. 항암제 임상 중단 및 내부자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으로 상장 폐지 직전까지 몰렸던 신라젠, 코로나19 치료제 기대감으로 주가가 급등했다가 대주주 지분 매각 이후 급락한 신풍제약, 올해 초 기술이전 계약의 로열티 비율이 시장 예상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져 주가 하락을 겪었던 알티오젠 등 K바이오의 잔혹사는 거듭됐다. 주식시장에서 공시 의무를 위반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는 상장사의 20% 이상이 제약·바이오 기업이다. 타 산업군에 비해 유독 비중이 높다.블랙박스 걷어내고 신뢰 쌓아야 전문성과 긴 호흡이 필요한 신약 개발의 특수성 때문에 바이오 기업들의 공시 내용은 대부분 전문적이고 복잡하다. 일부 기업들은 이런 정보 비대칭을 악용한다. 화려한 수사를 내세워 매출 전망을 최대치로 부풀린다. 계약이 확정적인 것처럼 얘기하다가 나중에 미정이라며 바꾼다. 투자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표현으로 바꾸고, 임상 성공 가능성과 위험 요인, 향후 일정 등을 흐름에 따라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제약·바이오 공시 전반을 뜯어고치겠다고 했는데, 이번엔 예전처럼 땜질 처방에 그쳐선 안 될 것이다. 올해 한국 바이오헬스 산업은 수출 300억 달러(약 44조 원)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잇는 차세대 국가 전략산업으로 꼽히지만 일부 기업들의 소통 방식은 구멍가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소통 없이는 글로벌 파트너와의 협력이나 건전한 장기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없다. 투자자들에게 믿음만 강요하는 방식으론 약장수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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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네이밍 앤드 셰이밍’

    국세청은 매년 12월 국세 체납액이 2억 원 이상인 고액·상습 체납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한다. 지난해 신규 공개 대상자는 개인 6848명, 법인 4161곳이나 됐다. 체납자를 압박하고 성실 납부를 유도하려는 일종의 ‘망신 주기’ 전략이다. 앞으론 주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기업들의 명단도 공개될 예정이다. 대상자 선정 기준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다. ▷금융위원회는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에서 PBR이 1배 미만인 ‘저(低)PBR 기업’을 집중 관리하겠다고 했다. PBR은 시가총액을 기업이 보유한 총자산으로 나눈 비율인데, PBR이 1을 밑돈다는 것은 기업을 청산했을 때의 가치보다 시장에서 평가받는 가치가 낮다는 뜻이다. 금융위는 ‘네이밍 앤드 셰이밍(Naming and Shaming·이름을 밝혀 망신 주기)’ 방식으로 관리하겠다고 했다. 동일 업종 기업끼리 PBR을 비교해 2개 반기 연속해 하위 20%인 기업의 명단을 반기마다 공개하고, 종목명에 ‘저PBR’ 꼬리표를 붙이는 식이다. ▷PBR이 낮은 기업에 대한 압박은 일본의 밸류업 정책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3월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상장기업에 ‘자본비용과 주가 의식 경영’을 요구했다. PBR 1배 미만인 기업에는 기업가치 개선 계획을 공시하도록 했다. 다음 해부터는 개선 계획을 잘 짠 기업과 그러지 못한 기업의 명단을 공개했다. 법적 제재보다는 시장의 압박을 통해 참여를 유도했다. 일본 기업들은 앞다퉈 개선 대책을 내놨고, 일본 증시는 상승세를 타면서 2024년 40,000엔 선, 지난해 말 50,000엔 선을 넘어섰다. ▷한국 기업들의 PBR은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평균 0.8∼0.9배 수준에 머물렀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저개발 국가보다 낮다”고 한탄했을 정도였다. 그나마 지난해 이후 기록적인 주가 상승으로 지난달 말 기준 1.6배까지 올라왔지만, 미국(5.4배) 일본(2.6배)은 물론이고 2.4배 수준인 신흥시장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절반가량이 PBR 1배를 밑도는 실정이다. ▷한국 기업들의 자산 대비 주가가 유독 낮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주주환원에 소홀했고 지배구조가 취약해 기업이 돈을 벌어도 주주들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았다.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해 PBR이 낮은 제조업의 비중이 높다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만성적인 주가 저평가 상태를 방치하는 경우는 바로잡아야겠지만, 업종별 특성과 회계 기준의 차이 등을 두루 고려해 세심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명단 공개의 목적은 단순한 기업 망신 주기가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제값 찾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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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봉대산 불다람쥐’

    지난달 21일 경남 함양군에서 발생한 산불이 올해 첫 대형 산불로 번지자 주민들은 방화를 의심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인근에서 여러 차례 산불이 발생해서다. 5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버섯, 약초를 캐며 지내던 60대 김모 씨가 수상쩍다고들 했다. 경찰이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해 보니 발화지역 근처엔 항상 김 씨의 차량이 있었다. 그가 다녀간 뒤 2시간 정도 지나면 불길이 치솟았다. 경찰은 야산 세 곳에 불을 지른 혐의로 김 씨를 긴급 체포해 16일 구속했다. 초범이 아니었다. ‘함양 산불’은 그의 99번째 방화일 가능성이 커졌다. ▷김 씨는 과거 울산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희대의 연쇄 방화범인 ‘봉대산 불다람쥐’였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7년 동안 울산 동구 봉대산과 마골산 일대에서 96차례나 불을 냈다. 처음엔 등산객의 실화로 여겨졌지만, 반경 3km의 좁은 범위에서 너무 자주 불이 나자 경찰은 방화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산 곳곳에 산불감시원을 매복시키고 수사 전담팀까지 꾸렸지만, 방화범은 날다람쥐처럼 유유히 빠져나갔다. 500만 원으로 시작된 현상금은 3000만 원, 1억 원을 거쳐 3억 원까지 올랐다. ▷김 씨는 매년 겨울, 특히 주말에 주로 범행을 저질렀다. 사흘 연속으로 불을 낸 적도 있고, 하루 세 곳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주로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수준이었지만 갈수록 수법이 교묘해졌다. 두루마리 화장지를 새끼처럼 길게 꼬아 불을 붙여 ‘지연 방화’를 유도했다. 금속 너트에 성냥과 휴지를 묶어 불을 붙인 뒤 멀리 던지는 수법도 썼다. 산불 감시 상황을 확인하려 산불감시원들과 친분을 쌓기도 했다. ▷미궁에 빠진 범행은 2011년 3월 꼬리가 밟혔다. 아파트 단지 CCTV에서 흔적이 발견됐다. 잡고 보니 방화범 김 씨는 방화 지점에서 500m 떨어진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울산의 한 대기업에 다니던 50대 가장이었다. 가정불화와 금전 문제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방화를 저질렀다고 했다. 김 씨는 37차례 불을 낸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산불방화죄 공소시효가 7년이어서 2005년 이후 범행만 기소됐다. ▷출소 후 5년 만에 다시 불을 지른 김 씨는 “최근 뉴스에서 산불 소식을 보고 희열을 느껴 충동을 참지 못했다”고 했다. 10년을 복역하고도 가슴속 뒤틀린 불길이 꺼지지 않은 것이다. 그의 잘못된 선택에 축구장(7140m²) 328개 면적인 산림 234ha가 피해를 입었다. 방화는 유독 재범률이 높다. 지난해 경기 의정부의 한 오피스텔에서 불을 지른 60대는 방화미수 혐의로 복역한 후 출소 하루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 방화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물론이고 재범을 막기 위한 특별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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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재영]차포 떼고 치러지는 첫 주주총회

    현실 법정은 드라마보다 지루하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으로 시작하는 화려한 변론도 없고, 판을 뒤엎는 반전의 증인도 없다. 현실의 주주총회도 재벌 드라마에서처럼 긴박하진 않다. 치열한 지분 싸움, 예상치 못한 폭로전 등은 보기 어렵다. 상장사들의 주총 소요 시간은 평균 30분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번 주부터 줄줄이 열리는 올해 주총은 다를 것 같다. 소액주주들의 권한을 강화한 세 차례의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열리는 첫 주총 시즌이기 때문이다. 올해 주총을 앞둔 기업들은 소액주주들의 눈치를 살피며 바짝 몸을 낮추고 있다. 지난해 1차 상법 개정으로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사의 보수 한도 승인’ 같은 것은 별다른 설명 없이 통과되던 형식적 안건이었지만 올해는 달라졌다. 기업들은 수백에서 수천 자 분량의 자료를 공개하며 보수 산정 기준이 뭔지, 왜 올려야 하는지 주주들에게 구체적으로 밝히기 시작했다.힘세진 소액주주, 몸 낮춘 기업들 배당 확대 요구 정도에 그치던 주주 제안도 더 구체적이고 집요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팰리서캐피털, 얼라인파트너스 등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은 이미 주요 상장사를 대상으로 주주 환원 강화와 이사회 개편 등을 요구하는 주주 제안서를 발송했다. 소액주주들도 온라인을 통해 지분을 결집하고 행동주의 펀드와 연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응해 기업들은 현금 배당을 확대하고 자사주를 소각하는 등 선제적으로 주주 환원 강화에 나섰다. 기업들은 이사회의 결정이 주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주주들에게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과거처럼 형식적 질의응답으로 어물쩍 넘어갈 수 없다. 기업들은 9월 시행되는 2차 개정 상법에 대응하기 위해 경영권 보호의 방벽도 쌓고 있다. 이사회 규모를 줄이거나 이사의 임기를 바꾸는 것이 대표적이다. ‘집중투표제’에 대비한 포석이다. 주식 1주당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면, 소액주주들이 특정 후보에게 몰표를 던져 자신들을 대변하는 후보를 이사회에 진입시킬 수 있다. 그런데 한 번에 선임하는 이사 수가 줄면 ‘표 몰아주기’의 효과가 반감된다. 이사 임기 규정을 ‘3년’에서 ‘3년 이내’로 바꾸는 것도 퇴임 시점을 분산해 한 번에 뽑는 이사 수를 줄이려는 목적이다. 이사회 진입 장벽을 높이려는 기업들의 시도에 대해 일각에선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대주주에 맞서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높이려는 개정 상법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시도란 것이다. 국민연금은 상법 개정 취지에 반하는 안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반대로 기운 저울에 뭘 올려놓을지 하지만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을 우회나 회피 전략으로 몰아붙이기는 어렵다.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에 맞설 유일한 대안인 자사주 카드를 잃어버린 기업들로선 마땅한 대응책이 없기 때문이다. 1차 상법 개정 때부터 논의되던 배임죄 폐지는 아직 기약도 없고, 차등의결권이나 황금주 등 경영권 방어 장치도 보이지 않는다. 기업들은 외풍에 견디기 위해 수비 라인을 내리고 잔뜩 움츠리고 있다. 이런 자세론 골은 안 먹을지 몰라도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긴 어렵다. 상법 개정은 대주주 쪽으로 치우친 균형을 바로잡는다는 의의가 있다. 이번 주총을 앞둔 기업들의 투명성 강화, 주주 환원 노력은 상법 개정의 순기능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균형은 끊임없이 흔들리며 중심을 잡는 동태적 개념이다. 한쪽에 한꺼번에 세 개의 추를 올렸으니 반대쪽으로 기울어졌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개정 상법이 자본시장 선진화의 계기가 될지 아니면 기업 경영의 족쇄가 될지 이번 주총을 통해 저울 눈금을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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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머스크, 태극기 휘날리며 “테슬라로 오라”

    “한국 반도체 인재들이여, 테슬라로 오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태극기 이모티콘 16개를 주르륵 올렸다. 그는 “만약 당신이 한국에 있고 반도체 설계와 제조 또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면 테슬라에 합류하라”고 했다. 머스크 CEO가 자사 채용공고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한 건 처음이 아니지만, 특정 국가와 업무 분야를 꼭 찍어 공개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것은 이례적이다. ▷15일 테슬라코리아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량 생산 AI 칩 개발에 함께할 인재를 찾는다”며 AI 칩 설계 엔지니어 채용공고를 냈다. ‘향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산량을 기록할 AI 칩 아키텍처 개발’을 목표로 제시했다. 자율주행, 휴머노이드 로봇(옵티머스) 등을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삼은 테슬라는 엔비디아 제품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AI 반도체를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머스크 CEO는 지난달 “AI 칩이 없으면 ‘옵티머스’는 ‘오즈의 마법사’ 속 깡통 인간처럼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설계를 넘어 제조 역량까지 확보하는 ‘반도체 독립’ 의지도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머스크 CEO는 지난달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와 TSMC 등 주요 공급 업체의 생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며 자체 생산시설인 ‘테라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로직 반도체뿐만 아니라 메모리, 패키징 공정까지 모두 아우르는 미국 내 거대 생산시설이다. 이를 위해 설계, 메모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반도체 분야 전반에 걸쳐 인재가 풍부한 한국을 우선적으로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뿐만 아니라 엔비디아, 구글 등 빅테크들도 한국 인재 확보에 혈안이다.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 메모리가 AI 시대의 핵심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출신 경력직을 웃돈을 주고 찾는 것은 물론이고, 대졸 신입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지난해 12월 서울대와 고려대 등 주요 대학을 찾아 현장에서 곧장 인재를 채용하기도 했다. 마이크론의 사업부 내에선 한국어로 내부 회의가 가능할 정도란 얘기까지 나온다. ▷한국 기술인재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건 반갑지만, 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인 인재를 넘겨주는 것은 뼈아픈 손실이다. 이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도 수성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보상만으론 빅테크와 경쟁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과학기술자를 우대하는 사회 분위기, 연구 인프라 개선 등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만으론 인재들을 지켜내기 어렵게 됐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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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멋진 라이벌” 현대차와 도요타

    “올해도 멋진 라이벌로 함께 달릴 수 있어 기쁘다.” 2일 동아일보 등 국내 주요 일간지에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그룹 회장이 현대자동차의 레이싱카 옆에서 ‘엄지 척’을 한 사진이 담긴 광고가 실렸다. 도요다 회장은 “라이벌과 경쟁하며 느끼는 분함과 기쁨이 서로 더 좋은 차를 만드는 원동력”이라며 현대차를 치켜세웠다. 지난해 12월 도요타 레이싱팀이 ‘국제자동차연맹(FIA) 월드랠리챔피언십(WRC)’에서 3관왕을 달성하자 현대차가 축하 광고를 낸 데 대한 답례 성격이었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자동차 업체는 2024년부터 모터스포츠를 매개로 우정을 쌓아 오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도요다 회장은 2024년 10월과 11월 경기 용인과 일본 도요타시에서 각각 열린 레이싱 대회에서 거푸 만나 공감대를 나눴다. 그해 현대 월드랠리팀이 WRC 드라이버 부문에서 우승하자 도요타가 일본 현지 광고로 응원과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고, 지난해 12월엔 현대차가 도요타의 우승을 축하하며 주거니 받거니 덕담을 이어갔다. ▷과거 현대차에 도요타는 ‘타도’, ‘추격’의 대상이었다. ‘도요타를 배우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전교 1등의 공부법을 따라 하듯 현대차의 마케팅 전략도 도요타를 빼다 박았다. 도요타는 1980년대 미국 시장조사업체 JD파워 품질조사 성적에 집중해 품질에서 인정을 받은 뒤 1990년대 브랜드 파워를 키워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를 출시했는데 20여 년 간격으로 현대차가 그 길을 따라갔다. 현대차가 하이브리드차를 개발할 땐 “도요타가 했는데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반면 도요타는 현대차를 몇 수 아래로 봤다. 2004년 JD파워 품질 조사에서 쏘나타가 캠리를 이기자 “(개가 사람을 문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로 현대차에 진 것을 이례적 사건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현대차가 1등 도요타를 무섭게 추격하는 3등으로 급성장하자 이젠 도요타가 현대차 배우기에 나설 정도가 됐다. 2024년 도요다 회장이 WRC 최종전에서 현대 레이싱팀에 대해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라고 했는데 단지 모터스포츠만 염두에 둔 말은 아니었다. ▷두 회사는 비슷한 점이 많다. 현대차는 3대째, 도요타는 4대째 가업을 이어가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내연기관부터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차까지 고른 라인업을 갖춘 회사도 전 세계에 둘뿐이다. 중국 차의 거센 공세에 맞서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최근 두 회사가 서킷 위 경쟁을 넘어 수소, 로봇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손을 잡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의의 라이벌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 두 회사가 경쟁과 협력을 통해 미래 시장을 함께 선도하길 기대한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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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재영]“불났는데 퇴근·휴일 어디 있나”

    “공무원에게 퇴근 시간이 어디 있나.” 이달 초 공개된 이재명 대통령의 청와대 시무식 발언을 들은 공무원들은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동네에 불이 났는데, 적군이 쳐들어오는데 ‘아, 나 퇴근했네, 휴일이네’ 그런 게 어디 있냐”라며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충분히 지급하겠지만 공직자는 24시간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직자들의 사명감을 강조한 말이지만 대통령의 이 발언 속에 노동 개혁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이 몰릴 때는 제대로 하고, 이후에 충분한 휴식이나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공직과 민간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 공직은 국민을 위해 무한 봉사해야 하는 성직이고, 민간 기업은 받은 만큼만 해주면 되는 싸늘한 계약관계로 나눌 순 없다.‘전쟁’ 중에도 땡 하면 퇴근하는 韓“불났는데 퇴근이 어디 있냐”는 자세는 민간 기업에도 꼭 필요하다. 1999년 대만을 강타한 ‘9·21 대지진’ 당시 TSMC 공장이 있던 신주과학단지는 들어가려는 차로 길이 막혔다. 직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공장 복구를 위해 달려간 것이다. 공장이 장기간 멈출 것이란 우려가 컸지만 2주 만에 정상 가동됐고, 고객사들의 신뢰를 굳혔다. 망설임 없이 회사로 달려가는 문화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업에 대한 사명감, 그리고 자신의 헌신이 보상받을 것이란 믿음이 쌓였기에 가능했다. 한국 기업에선 이런 모습을 찾기 힘들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 ‘군인’들은 시계를 보다가 땡 하면 총을 내려놓는다. 무책임해서가 아니라 획일적인 주 52시간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연구개발(R&D) 분야만이라도 예외를 허용해달라는 호소는 대답 없는 메아리로 남았다. 3교대로 24시간 불을 밝히는 TSMC의 ‘나이트호크 프로젝트’나 007(24시간, 7일) 근무를 불사하는 중국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근로시간 규제의 예외를 폭넓게 인정하는 다른 선진국들만큼이라도 할 순 없는 걸까. 이 대통령도 경직된 근로시간의 문제점과 고용 유연성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인 지난해 2월 토론회에서 “특정 산업의 연구개발 분야 고소득 전문가들이 동의할 경우 예외로 몰아서 일하게 해주자는 게 왜 안 되냐고 하니 (나도) 할 말이 없더라”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유연근무 확대를 요구하는 게임업계에 “탄력적인 노동시간 운영에는 양면이 있다”며 지혜로운 해결을 주문했다. 하지만 주 52시간 규제를 무력화할 것이라는 양대 노총 등 노동계의 반발에 이후 논의는 쑥 들어갔다.제대로 일하고 보상받는 게 노동개혁 물론 근로시간 개편에는 충분한 휴식이나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근로시간 개편은 ‘주 69시간 근로’ 프레임에 걸려 좌절됐는데, 노사관계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한몫했다. 지금도 포괄임금제에 묶여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데 ‘공짜 야근’이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컸다. 건강권 보호를 내세워 근로시간 개편 논의를 아예 봉쇄하기보다는 함께 머리를 맞대 효율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현 정부의 노동 개혁은 ‘시간’에 매몰돼 있다. 2030년까지 실근로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연 1700시간대로 단축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은 목표가 아닌 생산성 높은 방식으로 일한 결과여야 한다. 업무의 밀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쪽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근무 시간만 채우면 포인트 쌓듯 해마다 연봉이 높아지는 호봉제 대신 성과 중심의 평가와 보상체계를 확대해야 한다.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해야 일이 굴러가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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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그린란드도, 콜롬비아도…”

    지난해 1월 뉴욕포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소를 머금고 지시봉으로 서반구 지도를 가리키는 그림을 1면에 큼지막하게 실었다. 캐나다 위에 붉은 글씨로 가위표를 치고 ‘51번째 주’라고 새로 썼다. 덴마크령 그린란드는 ‘아워 랜드(우리 땅)’, 멕시코만(灣)은 ‘아메리카만’, 파나마 운하는 ‘파나-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하가 됐다. 당시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허풍에 대한 풍자로 읽혔지만 베네수엘라 사태가 터진 지금은 웃고 넘길 수 없게 됐다. ▷3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압송한 ‘확고한 결의’ 작전 직후 미국 백악관 공식 인스타그램엔 트럼프 대통령의 흑백사진과 함께 ‘FAFO’라는 짤막한 글이 올라왔다. ‘까불면 죽는다’는 뜻이다. 베네수엘라를 친 진짜 이유도 밝혔다. 1년 6개월 안에 미국 회사들을 통해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을 재건할 수 있다며 “유가를 낮게 유지할 수 있어 미국에 좋은 것”이라고 했다. ▷다른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개입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콜롬비아에 대해 “코카인을 제조해 미국에 파는 걸 즐기는 역겨운 남자가 통치하는 나라”라며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라고 했다. 군사작전을 할 거냐는 질문엔 “괜찮게 들린다”고 했다. 쿠바는 “그냥 무너질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마약·이민자의 유입을 차단하고, 천연자원 확보 등 경제적 이득을 취하면서 중남미를 탐내는 중국, 러시아엔 경고를 보낸 것이다. 미국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에는 ‘서반구에서 미국의 우위 회복’이 ‘트럼프 수정조항’이라는 이름으로 들어 있다.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그린란드 도처에 러시아와 중국 선박이 깔려 있다”며 “국가 안보 관점에서 그린란드가 필요하다”고 했다. 5일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누구도 미국과 군사적으로 싸울 순 없을 것”이라며 “세상은 힘과 권력이 지배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린란드는 유럽과 아시아, 북미를 잇는 최단 항로이자 희토류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보물섬’이 탐난다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 멤버이자 오랜 동맹의 영토를 뺏겠다는 노골적 선언에 유럽이 아연실색하고 있다. ▷미국이 중남미를 ‘근외(近外·near abroad)’로 여기며 장악에 나서면서 중국과 러시아 역시 들썩일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 논리로 중국이 대만을, 러시아가 옛 소련 지역을 공격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국 이익을 위해 힘자랑에 나선 미국의 행보가 세계 정세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시대가 다시 왔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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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체를 흔드는 손, 차라리 ‘립서비스’나 말든지 [오늘과 내일/김재영]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던 보험사의 화끈한 말은 보험금 청구를 할 땐 싸늘하게 바뀌곤 한다. 사전고지 의무를 위반했다느니, 별도 특약이라느니 깨알 같은 약관엔 보험금을 줄 수 없는 이유만 빼곡하다. ‘무조건 보장’이란 말을 믿었기에 더 쓰라리다. 요즘 반도체 기업들의 심정이 딱 이렇다. 틈만 나면 반도체가 나라의 미래라며 파격적으로 지원하겠다던 정부와 정치권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발목을 잡는다.앞으론 파격 지원, 뒤로는 발목 잡기 일주일 전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공장 투자 관련 설명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반도체 분야에 한해 지주회사 규제를 완화하는 정부 방안이 특혜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해명했다. 당초 이재명 대통령은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첨단 산업에 자금 조달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금산분리 완화를 언급했는데, 공정거래위원장이 “몇몇 회사의 민원 때문에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하면서 엉뚱하게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 의혹으로 불똥이 튀었다. 결국 기업이 나서 기존의 자금 조달 방식으론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대국민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국가 전략 프로젝트라며 정부와 정치권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던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클러스터)를 흔드는 손도 많아졌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라디오 방송에서 “꼭 거기에 있어야 할지”라는 발언으로 불을 세게 지폈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장인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새만금 이전을 주장하며 맞장구를 쳤다. 시민단체 등이 제기한 용인 산단 승인처분 취소 소송에도 정치권이 개입해 화력을 보태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도체 전리품을 챙기려는 지역 정치권의 이전투구가 가열될까 걱정이다. 숙원 법안이던 ‘반도체 특별법’은 결국 또 해를 넘겼다. 2024년 22대 국회가 문을 열 때부터 여야 모두 한목소리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로 예외’ 조항 적용을 놓고 다투다가 1년 넘게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핵심 쟁점을 뺀 반쪽짜리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여야가 합의했지만 그마저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부는 비(非)수도권의 반도체 R&D 인력에 대해선 근로시간 규제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며 지역균형발전과 엮어 보려고 한다. 시험 잘 치라고 응원한다면서 밤엔 공부하지 말라고 강제 소등시키니 수험생은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다.전쟁을 하는 건지 전쟁놀이를 하잔 건지 우리가 입으로만 파격적 지원을 외치는 동안 해외 각국은 립서비스가 아닌 진짜 지원을 하고 있다. 공장 건설 발표부터 가동까지 불과 28개월 만에 끝낸 일본 구마모토의 TSMC 파운드리 공장이야말로 파격이다. 외국 회사의 공장을 건설하는 비용의 절반을 댄 일본 정부의 조치가 파격적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소리를 들어 가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반도체 자립에 다가선 중국 정부의 지원이 전폭적이다. 지난해 12월 10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K-반도체 비전과 육성 전략 보고회’는 전쟁 작전 회의 같은 분위기였다. 서부전선(중국), 동부전선(미국), 아군의 전력 열세 등의 용어를 쏟아내며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 철저하게 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게 실제 전쟁이라면 한국의 전비 태세는 암울하다. 지휘부는 입으로만 결사항전을 부르짖고 여론은 적전분열 상태인 데다 보급마저 시원찮다. 세계는 밤새워 불을 밝히며 덤벼드는데 우리는 균형발전과 건강권을 강조하며 ‘군자는 기습하지 않는다’는 송양공 식의 전쟁을 하고 있다. 한국에 유일하게 남은 초격차 산업인 반도체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는데 왜 이리 한가한가. 전쟁이 아닌 전쟁놀이만 하고 있는 것 같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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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포괄임금제

    “잘 모르는 청년들에 대한 노동 착취 수단이 되고 있다고 하더라.”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 한 제도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다. “제도 자체의 남용 여지가 너무 크지 않나” “대체적으로 노동자에게 불이익하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이 대통령이 지적한 제도는 ‘공짜 야근’의 주범으로 꼽혀 온 포괄임금제다. 1974년 대법원 판례로 인정돼 산업 현장에서 적용해 왔는데, 52년 만에 정부가 포괄임금제를 대폭 손질하기로 했다. ▷30일 고용부와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은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막기 위해 내년 상반기 중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포괄임금제는 실제 일한 시간과 관계없이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을 사전에 정해 지급하는 방식이다. 연구개발직, 사무직, 영업직 등 근로시간을 정확히 측정·관리하기 어려운 직군에서 많이 활용해 왔다. 하지만 약정한 시간보다 일을 더 해도 추가 보상을 받기 어려워 장시간 노동, 공짜 야근을 유발하는 제도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7월 한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20대 근로자는 주 80시간가량 근무했는데, 포괄임금제를 적용받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노동부는 근로자의 동의가 있고, 근로자에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포괄임금제를 허용하겠다고 했다. 또 정확한 법정 수당의 산정을 위해 출퇴근 시간 기록을 의무화하는 등 근로시간을 명확하게 측정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의 근태 관리가 지금보다 엄격해져 기존에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흡연·커피 시간, 대기 시간 등을 근로시간에서 제외하는 등 노사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회사가 근로시간을 제대로 측정하겠다며 폐쇄회로(CC)TV나 마우스 감시 프로그램 등을 설치해 논란을 빚은 경우도 있다. ▷고정수당이 폐지되고 실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연장근로 수당 등이 줄어들어 근로자 소득이 감소할 우려도 있다.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 노동의 확산으로 업무의 질을 시간으로 측정하기 힘든 시대적 변화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들은 행정비용 상승을 우려한다. 예외 규정을 구체화하고 근로시간 관리 시스템을 지원하는 등 보완책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공짜 야근’으로 대표되는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줄어드는 근로시간을 시장 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연성도 뒤따라야 한다. 유연근무제 확대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고연봉 관리·전문직 근로시간 규제 적용 제외)’ 등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노동개혁의 목적은 단지 적게 일하자는 게 아니라 생산성을 높여 적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 돼야 할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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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4년간 140억 받았는데 단순 실무자?

    해마다 3월이면 어느 임원이 얼마를 받았다더라, 누가 ‘업계 연봉킹’이라더라는 기사가 쏟아진다. 사업보고서에 임원 보수 총액과 1인당 평균 보수, 5억 원 이상 받은 임원을 공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임원 평균 연봉 1위는 삼성전자로 6억7000만 원이었다. 수십억, 수백억 원을 받는 최고경영자(CEO)들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임원이 아닌 ‘단순 실무자’에게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36억 원)만큼의 보수를 안긴 인심 좋은 회사도 있다. 바로 쿠팡이다. ▷쿠팡이 ‘단순 실무자’라 주장하는 이 행운의 직원은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동생 김유석 씨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김 씨는 2021년부터 4년 동안 152만 달러(약 22억 원)의 보수를 받았다. 현 주가 기준으로 118억 원에 이르는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RSU)까지 포함하면 4년간 140억 원에 이른다. 김 씨는 지난해 급여와 주식을 합쳐 32억 원을 받았는데 별도 보상 없이 급여 30억 원을 받은 형보다 더 많이 수령했다. ▷김 씨는 미국 본사 소속으로 직위는 ‘Vice President’다. 통상 ‘C레벨’인 한국의 ‘부사장’보단 위상이 떨어지지만 단순한 실무자로 보기는 어렵다. 김 씨는 파견 형식으로 국내에서 쿠팡 배송캠프 관리 부문 총괄로 근무하고 있는데 임원급 직위다. 2021년 한국 법인 의장직과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며 한국 사업과의 법적 연결고리를 끊은 김 의장이 동생을 통해 한국 법인의 경영을 컨트롤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쿠팡이 김 씨를 실무자로 포장하려는 것은 김 의장이 공정거래법상 동일인(기업 총수)으로 지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기업 총수에서 빠지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친인척 자료 제출 등 법적 의무에서 자유로워진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김 의장이 미국 국적이고 국내 지분이 없으며 친족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며 쿠팡을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분류해 왔다. 김유석 씨의 보수와 직위를 볼 때 경영 참여 가능성이 높은 만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불리하면 ‘미국 기업’이 되는 쿠팡은 한국적 정서와는 동떨어진 행보를 보여왔다. 개인정보 유출을 홀로 ‘노출’이라고 했고, 청문회에 출석한 미국인 대표는 “김범석 어디 있냐”는 질문에 “Happy to here(이 자리에 오게 돼 기쁘다)”라고 했다. 29일 쿠팡은 피해 고객 1인당 5만 원의 쿠폰 보상안을 제시했다. 쇼핑과 배달은 각 5000원씩 할인되고, 나머지 4만 원은 여행·명품에 배정돼 보상이 아닌 신종 마케팅이란 지적을 받았다. 한국을 잘 모르고 한국인을 무시하는 기업이 한국에서 사업을 계속해도 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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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가습기 살균제 사태 14년 만에 ‘사회적 참사’ 인정

    가습기 살균제 피해 참사는 착한 사람일수록 손해를 본다는 불편한 진실을 일깨워 줬다. 임신한 아내, 사랑스러운 아이, 편찮으신 부모님의 호흡기 건강을 위해 매일 가습기를 틀었다. 세균·곰팡이 번식을 막기 위해 꼼꼼히 청소하면서 살균제도 잊지 않았다. 그땐 미처 몰랐다. 가족을 생각하는 극진한 마음이 죽음의 수증기가 되어 가족의 폐를 완전히 망가뜨릴 줄은…. 내 손으로 독극물을 전파했다는 죄책감에 피해자 가족들은 무한 감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극은 당신 때문이 아니라고, 국가에도 책임이 있다고 처음으로 정부가 인정했다. 24일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사회적 참사’로 공식 규정했다. ‘참사의 공동 책임자’로서 정부가 배상을 비롯한 피해 구제를 주도하겠다고 했다. 피해 사실이 확인된 2011년 이후 14년 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모든 피해자와 유가족들께 머리 숙여 애도와 위로를 전한다”며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점검하겠다”고 했다. ▷‘조용한 살인자’가 된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처음 등장했다. 제대로 된 안전성 검사도 없이 기업들은 ‘인체에 무해하다’며 앞다퉈 제품을 출시했고, 정부는 ‘세계 최초의 창의적 제품’이라며 KC마크까지 달아줬다. 2000년대 들어 기침 등 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2011년 임신부들의 ‘원인 미상 폐 질환’이 집단 발생한 후에야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가 처음 확인됐다. 현재까지 공식 피해자는 5942명, 사망자는 1382명에 이르는데 미신고 사례 등을 포함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원인이 밝혀졌지만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힘들고 긴 법적 다툼을 견뎌야 했다. 2012년 국가와 제조·판매업체 등을 상대로 첫 집단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기업들의 사과와 보상 약속은 사건이 본격화된 지 5년이 지난 2016년에야 나왔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2023년 대법원은 제조·판매업체의 손해배상 책임을 처음 인정했고, 지난해 6월엔 국가 배상 책임까지 받아들였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사회적 참사’로 인정한 정부는 손해배상 책임을 기업과 국가로 넓히기로 했다. 치료비뿐만 아니라 사고로 장래 벌 수 있었던 소득을 잃은 손해와 위자료도 지급하고 학업, 병역, 취업 등 생애 전 주기에 걸쳐 피해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적절한 배상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등 남은 숙제가 많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의 눈물을 정부가 제대로 닦아 주길 기대한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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