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장원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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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습니다.

취재분야

2026-05-25~2026-06-24
칼럼100%
  • [오늘과 내일/장원재]선거 없는 해 재외선거관은 뭘 했을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재외선거 도입을 앞둔 2011년부터 총 176명의 재외선거관을 해외 공관에 파견했다. 파견 기간은 최대 3년이었다. 그런데 재외선거가 치러지는 총선과 대선은 각각 4년, 5년마다 돌아온다. 그러면 선거가 없는 해에 파견된 선거관은 뭘 했을까.한 선거관은 현지 한국학교의 학생회장 선거를 지도·감독했다고 한다. 현지 관계자는 “교내 선관위 구성부터, 후보자의 선거운동 방식, 개표 절차까지 단계별로 코칭했다”고 전했다. 해외에 파견된 공무원이 한국학교를 돕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급여와 별도로 1억 원 이상의 체재비를 혈세로 지원받는 파견 선거관으로선 선거 없는 해가 되면 그만큼 할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재외선거 홍보했는데 투표자는 줄어한 아시아 국가에서는 자택에서 술에 취해 자주 고성을 지르는 바람에 이웃 주민들의 항의를 여러 차례 받은 선거관도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한 외교 관계자는 “한마디로 나라 망신이었다”고 했다. 물론 해외선거 정보 수집, 투표율 제고 등을 위해 노력한 선거관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과는 어땠을까.지난해 발표된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2024년 22대 총선 때 선거관이 파견된 워싱턴, 파리, 도쿄 등 22개 공관의 평균 투표율은 3.7%였다. 선거관이 파견되지 않은 156개 공관 평균(6.8%)의 절반 남짓이었다. 해외에 파견된 20명 안팎의 선관위 소속 주재관들이 투표율 제고에 별 도움이 못 된 것이다. 지난 총선만의 일도 아니었다. 선거관이 파견된 2012년 19대 총선 이후 7번의 선거에서 모두 선거관이 없었던 공관의 투표율이 더 높았다.오래 준비한다고 투표자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일본에 선거관이 상주하며 6개월∼1년간 준비한 대선 투표자 수는 2만5312명(2012년), 2만1384명(2017년), 1만8835명(2022년)으로 계속 줄었다. 반면 갑자기 잡힌 지난해 대선 땐 선거관 2명이 급파돼 두 달간 준비했는데, 투표자 수가 2만7453명으로 깜짝 반등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선거를 여러 번 치르며 대사관과 영사관에 노하우가 쌓여 선거관이 장기간 나와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현지어 구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선거관도 상당수였다. 2011년 첫 파견 당시 “어학 능력을 따지면 파견할 사람이 없다”고 선관위가 요청해 외교부가 예외를 인정해 줬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 같은 관행이 이어졌다고 한다.선관위는 “재외동포 대상 업무가 많아 어학 능력이 꼭 필요하진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제 파견 후에는 한국어가 서툰 동포가 적지 않고, 현지 자료 조사와 기관 협조가 필요하다며 월급 수백만 원을 주고 현지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년 전 총선 때만 선관위는 현지 직원의 인건비로 약 10억 원을 썼다. 대사관에 파견된 특정 부처 직원만을 지원하기 위해 전담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성과, 책임 안 따지고 자리 지키기만 급급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못 받거나, 투표율 올리기에 실패한 선거관도 귀국하면 상당수가 승진했다. 파견은 특혜처럼 주어지고, 성과는 묻지 않으며, 돌아오면 보상받는 구조다.일이 있든 없든 자리를 늘리고 싶어 하는 건 공무원 조직의 생리다. 선관위는 2011년 첫 파견 때 55명을 22개월 동안 내보냈다가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인원을 줄이는 대신에 기간을 최대 3년으로 늘렸다. 이후 장기 파견을 상시화하려다 여론의 역풍을 맞아 좌절됐는데, 2년 전 총선 때는 1년간 22명을 파견했다.재외선거에서 성과를 못 냈던 선관위는 국내 선거 관리에도 실패해 6·3 지방선거에선 투표용지 부족 사태까지 벌어졌다. 책임은 흐리고 자리는 지키는 선관위의 조직 문화가 낳은 ‘예고된 부실’이라 할 것이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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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원재]與 대표의 ‘폴더 인사’

    18일 오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 유럽 순방을 마치고 전용기에서 내린 이재명 대통령이 다가오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이른바 ‘폴더 인사’였다. 이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수고했습니다”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대통령실이 관례상 당 대표가 참석해 온 대통령 출국 행사에 정 대표 대신 김민석 국무총리를 부르며 ‘당청 갈등설’이 일파만파로 퍼진 지 아흐레 만이었다.▷공항서 돌아온 정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도 “월드클래스의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역대급 외교 성과에 경의를 표한다” 등의 극찬을 해가며 이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집권 여당은 더 포용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실력”이라고 지적했다. 검찰개혁 등에서 사사건건 강경 노선을 앞세워 온 정 대표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왔다. 친명(친이재명)계에선 “90도 인사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정치 기술”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폴더 인사와 낯 뜨거운 칭송이 오히려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것이다.▷정 대표의 폴더 인사는 “정권은 짧고 국민은 영원하다”는 자신의 발언을 두고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협박 아니냐”고 격앙된 반응이 나온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 대표의 발언 이후 친명계는 6·3 지선 결과에 책임을 지고 8월 전당대회 때 당 대표 연임 도전에 나서지 말라고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주변에 도종환 시인의 시를 인용하며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겠나. 흔들리면서 젖으면서 가는 게 인생 아니겠느냐”고 했다. 필요하면 고개를 숙여서라도 내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란 해석이 많았다.▷대통령에 대한 당 대표의 ‘폴더 인사’가 화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무소속 한동훈 의원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던 2024년 1월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그는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당시 윤석열 대통령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보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를 문제 삼은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한 직후였다. 당시 한 의원은 “대통령님에게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길로 들어선 다음이었다.▷민주당 안팎에서 정 대표의 폴더 인사로 당청 갈등이 쉽사리 봉합될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뉴이재명’으로 통하는 친명그룹과 노무현-문재인 시절부터 당의 주류로 있었던 범친문계의 세력 다툼이 쉽게 정리되기 힘든 탓이다. 2024년 한동훈 의원의 폴더 인사를 두고 “이건 미봉책으로 곧 2차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던 사람이 바로 정 대표였다. 이번 ‘폴더 인사’의 귀결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정 대표일지도 모른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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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원재]日 ‘AI 고립’ 위기감에 연구자 3만 명 해외로

    1990년대 중반 미국에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낸 나라는 일본이었다. 그런데 버블 붕괴 후 일본의 저성장이 장기화되고 젊은층이 보수적, 안정 지향적으로 변하면서 유학도 급감했다. 1997년 4만7000명이던 미국 내 일본인 유학생은 2024년 1만4000명으로 줄었고 전체 유학생 중 비중도 1% 안팎으로 쪼그라들었다. 일본 유학생이 떠난 자리는 인도, 중국 유학생이 채웠다. ▷유학파 대신 국내파가 일본 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해외 대학 및 연구소와의 교류도 줄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2023년 해외에서 한 달 이상 연구한 일본인 학자는 3623명으로 2000년(7674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인적 교류가 축소된 탓에 해외 학자와의 공동 연구도, 공동 논문도 위축된 상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합종연횡하며 혁신을 이끄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연구자의 고립은 치명적 약점일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과 중국, 대만 기업이 약진하면서 일본의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4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대만과 한국만 방문하고 일본은 건너뛰었다며 “일본에 황 CEO가 함께하자고 제안할 매력적인 기업이 얼마나 있느냐”고 반문했다. 황 CEO가 “대만은 AI 혁명의 중심”, “한국과 함께 미래를 만들겠다”며 양국 기업에 구애한 게 ‘저팬 패싱’의 징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반도체 기술을 전수받은 삼성전자가 AI 혁명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부상한 것도 일본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최근 온라인에선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일본 100대 기업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아질 수 있다”는 글이 일본인들에게 충격을 줬다. 실제로 야후저팬 파이낸스 홈페이지에서 영업이익 1∼100위 기업의 지난해 실적을 모두 더하면 56조 엔(약 530조 원)으로, 골드만삭스가 전망한 2028년도 삼성전자 영업이익 610조 원에 못 미친다. ▷닛케이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달 중 발표할 혁신 전략에 ‘2030년까지 AI 등을 전공하는 젊은 연구자 3만 명을 해외로 파견하겠다’는 내용을 넣기로 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한 지 5년이 안 된 연구자를 AI 혁신의 최전선으로 보내 글로벌 네트워크에 편입시킨다는 구상이다. 다만 일부 연구자의 해외 파견을 지원한다고 이미 갈라파고스화된 일본의 연구 생태계가 얼마나 바뀔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하버드대가 발표한 ‘AI 경쟁력 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9위, 일본은 10위였다. 하버드대는 일본에 대해 “소재 및 장비 분야가 강점이지만 디지털 전환이 미흡하고 AI 혁명을 이끌 핵심 인재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일본을 보면 AI 패권 경쟁 시대에 고립은 곧 후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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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원재]‘위안부 사과’ 日 고노 전 장관 별세

    8일 세상을 떠난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하원) 의장은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와 함께 ‘일본의 양심’으로 불렸던 정치인이다. 그는 일본에 가장 중요한 나라로 한국과 중국을 꼽으면서 “과거사를 정확히 알고 반성해야 이웃과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가 관방장관이던 1993년 발표한 ‘고노 담화’는 그런 신념의 산물이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피해 증언으로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 현안이 된 후에도 일본 정부는 한동안 “민간업자가 한 일”이라며 책임을 부인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그는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와 상의해 국내외 자료를 취합했고, 위안부 피해자 16명의 증언을 들었다. 생생하고 참혹한 피해 진술을 확인한 그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군의 관여를 처음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하고 고개 숙여 사죄했다. ▷고노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1995년), 김대중-오부치 선언(1998년)으로 이어지며 한일 간 화해와 협력의 흐름을 궤도에 올렸다. 하지만 우익 세력은 이 담화가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며 끊임없이 공격했다. 우익단체 회원이 흉기를 소지한 채 그의 집 앞에서 자해 소동을 벌인 적도 있었다. “정부 입장을 대표로 발표했을 뿐”이라며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고노 전 의장은 그렇게 하는 대신 기회가 날 때마다 언론에 나와 담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정계 은퇴 후에도 자민당의 온건파 원로로서 야스쿠니신사 참배, 평화헌법 개정 같은 우경화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자민당 중진 의원의 망언이 나왔을 때는 “정치가로서 실격이다. 공부 좀 하라”며 직접 나서 꾸짖었다. 고노 담화를 눈엣가시로 여겼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14년 “담화 작성 경위를 검증하겠다”고 나섰을 때도 “위안부 동원에는 분명히 강제성이 있었다”고 맞섰다. 결국 아베 정부는 고노 담화를 폐기하지 못했고,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이 담화를 계승하고 있다. ▷그는 한국 정계 거물들과도 가까웠는데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였다. 퇴임을 앞둔 김 전 대통령을 위로하기 위해 수술 직후 의사 몰래 병원을 빠져나가 서울행 비행기를 탔을 정도였다. 김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존경하는 선배이자 친구를 잃었다”며 애통해했다. ▷그의 이름 ‘요헤이(洋平)’는 ‘평화로운 태평양’을 기원하면서 부친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고노 전 의장은 그 이름대로 일본이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주변국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찾으려 했다. ‘강한 일본’을 내세우는 다카이치 내각이 방위비 증액과 개헌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그의 별세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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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원재]트럼프의 38번째 ‘종전 임박’ 호언

    2월 28일 대이란 전쟁을 시작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종전 합의’를 처음 언급한 건 한 달가량 지난 3월 23일이었다. 당시 “닷새 안에 전쟁이 끝날 수 있다”는 말에 미국 다우존스와 나스닥 지수는 각각 1.4% 올랐고, 국제유가는 10% 넘게 급락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호언장담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개전 직후 “4∼6주 안에 끝낼 것”이라던 전쟁은 어느덧 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미 CNN에 따르면 트럼프가 개전 이후 “종전이 임박했다”는 취지로 말한 건 38차례에 달한다. 가장 최근에는 8일 뉴욕에서 미국프로농구(NBA) 결승전을 관람한 후 “2, 3일 정도면 이란과 합의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주가와 국제유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스라엘과 이란은 하던 대로 미사일 및 드론 공격을 이어갔다. ‘양치기 소년’처럼 그의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개전 직후 “아주 짧은 소풍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던 트럼프의 태도도 달라졌다. 7일 NBC와의 인터뷰에서 공격적인 질문이 나오자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중단하고 퇴장하는 등 신경질적인 반응이 늘어난 것이다. 최근 ‘브로맨스’를 과시하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미쳤다”며 욕설을 퍼부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전쟁 개시 전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현재의 교착 상태를 예견하는 의견이 있었다. 댄 케인 합참의장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초래할 후폭풍을 거론하며 공습에 신중론을 폈고, J D 밴스 부통령은 백악관 회의에서 “지역적 혼란과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같은 충고 대신 “초반에 지도부를 제거하면 반정부 시위로 정권이 무너질 것”이란 네타냐후의 달콤한 설득에 귀를 더 기울였다. ▷오판으로 시작된 전쟁의 대가는 전 세계가 치르고 있다. 미군 전사자 13명과 초등학교 오폭으로 숨진 이란 학생들을 비롯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국제 원유 가격은 전쟁 전보다 30% 이상 뛰었고, 국제 해상 운임은 두 배 가까이가 됐다. 지난달 뉴욕타임스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3명 중 2명이 “이란전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답하는 등 ‘전쟁 피로감’이 쌓이는 중이다. ▷미국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헬버스탬은 저서 ‘최고의 인재들’에서, 케네디 행정부의 엘리트들이 ‘막연한 낙관주의’와 ‘관료주의의 숫자놀음’에 사로잡혀 베트남전이란 수렁에 빠져드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3시간 만에 생포했다는 자신감과 개전 직후 ‘군사시설 90% 무력화’ 보고로 조기 승리를 확신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오판과 판박이다. ‘출구’를 말하면서도 계속 늪으로 빠져드는 이란전이 제2의 베트남전이 되지 말란 법도 없어 보인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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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원재]‘40억 포상금’에 쏟아진 탈세 제보

    탈세 제보로 가장 많은 포상금을 받아 기네스북에 오른 사람은 스위스 은행 UBS의 전직 직원 브래들리 버켄펠드다. 2008년 탈세 방조 혐의로 체포된 그는 내부고발자로 변신해 UBS 비밀계좌에 재산을 숨긴 탈세자 정보를 미국 국세청(IRS)에 넘겼고, 출소 후 포상금 1억400만 달러(약 1600억 원)를 챙겼다. 미국 정부가 탈세를 도운 UBS로부터 받아낸 과징금 중 15%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IRS가 한도 없이 징수액의 15∼30%를 제보 포상금으로 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의 탈세 제보 포상금 한도는 2003년 건당 최고 1억 원에서 점차 늘어 2018년부터 건당 최고 40억 원이 됐다. 해외 페이퍼컴퍼니와 가상자산을 이용하는 등 탈세 수법이 지능화되면서 국세청 조사만으로는 적발하기 어렵게 되자 ‘로또 당첨금’ 수준으로 금액을 올린 것이다. 최근에는 100억 원 넘는 서울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부동산 탈세 제보만으로 수억 원대 포상금을 받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국세청은 지난해 10월 ‘부동산 탈세 신고센터’를 개설해 5개월 동안 780건의 제보를 접수했다고 최근 밝혔다. 가장 많은 유형은 아파트 취득 자금을 부모로부터 받고 증여세를 내지 않은 경우였다. 부모·자식 간의 은밀한 거래를 누가 알겠나 싶지만, 지인이나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물론 다른 가족이 신고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담하거나 방조한 책임은 안 묻고 세금 징수에만 활용한다”는 국세청 방침이 제보를 끌어낸 것이다. 제보가 사실로 확인되면 징수한 세금의 5∼20%를 포상금으로 받을 수 있다. ▷해외에서도 고액 탈세 제보에 대한 보상은 강화되는 추세다. 영국은 고액 자산가와 다국적 기업의 탈세가 늘자 지난해 말 포상금 상한을 없애는 미국식 제도를 도입했다. 제보를 통해 150만 파운드(약 30억 원) 이상의 세금을 받아낸 경우 15∼30%를 포상금으로 준다. 국내에선 지난해 탈세 포상금을 건당 최고 100억 원으로 늘리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나쁜 짓 신고하면 평생 팔자 고칠 만큼 받게 하자”고 말한 바 있다. ▷탈세 포상금은 징수 비용도 덜 든다. IRS는 세무조사 등으로 세금 1달러를 걷는 데 10센트 이상을 쓰는데, 포상금 제도를 활용하면 징수 비용이 4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물론 경계할 부분도 있다. 국내에선 과거 교통법규 위반 신고 포상제도, 이른바 ‘카파라치’를 도입했다가 전문 신고꾼이 활개 쳐 폐지한 전례가 있다. 탈세 포상금이 금액이 훨씬 더 큰 만큼 근거 없는 제보가 난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고액 제보’에 집중해야 허위 제보에 따른 행정력 낭비를 막으면서 갈수록 교묘해지는 탈세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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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원재]연봉 격차가 20배를 넘으면 생기는 일

    삼성전자 노사의 잠정 합의에 따라 연봉 1억 원인 반도체(DS)부문 메모리사업부 직원이 받게 될 성과급은 약 6억 원으로 추산된다. 연간 총 7억 원을 버는 것이다. 반면 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경기 화성 공장에서 웨이퍼를 운반하는 근로자는 최저임금(시급 1만320원)을 받는다. 이 노동자가 5인 미만 영세 업체 소속이라면 주말·야간 근무를 해도 가산수당을 못 받는다. 심할 경우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 직원과는 20배가 넘는 연봉 격차가 날 수 있다.드러커 “CEO 연봉도 직원 20배 이상 안 돼”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최고경영자(CEO)의 보수가 일반 직원 연봉의 20배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이른바 ‘드러커의 법칙’이다. 그는 1986년 펴낸 책 ‘프런티어의 조건’에서 “임원 보수와 기업 성과 간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며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질 경우 ‘함께 일한다’는 의식이 약해지고 팀워크와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국 기업 CEO와 근로자 간 임금 격차는 1965년 20 대 1에서 지속적으로 벌어져 2012년에는 354 대 1이 됐다. 결국 근로자들이 분노해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벌였고 미 의회는 CEO 급여를 공개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드러커가 1996년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과도한 탐욕이 10년 후 문제가 될 것”이라며 밝힌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의 격차가 용인될까. 2014년 하버드대 마이클 노턴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연구팀은 대기업 CEO가 비숙련 근로자보다 얼마나 급여를 더 받아야 하는지 40개국 5만5238명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평균 4.6배였다. 답변은 국가마다 조금씩 달랐는데 한국 응답자는 대기업 CEO가 비숙련 근로자의 10배 정도는 받아도 된다고 했다. BTS나 이정후 같은 슈퍼스타가 아닌 다음에야 숙련도와 성과, 맡고 있는 책임의 차이로 일반인이 납득할 수 있는 급여 격차는 많아야 10배 수준이란 얘기다. 한국의 경우 ‘52시간 근무제’에 따라 삼성전자든 하청업체든 일하는 시간은 주 52시간 이하라는 특수성도 있다.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같은 시간 일했는데 연봉이 20배 이상 차이 나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번 협상에서 근로자 측을 대표한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정규직은 공부도 많이 한 분들”이라며 하청기업 근로자와의 격차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메모리사업부 고졸 생산 직원이 비메모리사업부 박사 출신 연구원보다 성과급을 훨씬 많이 받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성과급 잔치 뒤에 남을 사회적 균열 물론 로또 당첨자에게 취약계층을 도우라고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삼성전자 직원에게 하청업체 비정규직을 위해 성과급을 양보하라고 강제할 순 없다. 문제는 업황이 좋았다는 이유로 초고액 성과급을 받게 된 수만 명이 우리 공동체에 미칠 영향이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막대한 성과급을 당연한 보상으로 받아들이고 하청기업 비정규직과의 격차를 노력과 실력 때문으로 돌릴 때,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에는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반대로 프리랜서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시급 차이를 보면서 사회의 보상 체계가 공정하다는 믿음을 잃을 때도 사회적 자본의 토대인 신뢰와 결속이 흔들리게 된다. 드러커의 경고는 단순히 임금 격차가 시기심을 낳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면 동료의식이 희미해지고, 작은 사안에도 내부 갈등이 폭발해 성과를 지속적으로 낼 수 없을 것이란 우려였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얘기일 것이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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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원재]온라인 쇼핑몰의 ‘가짜 할인’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하면 ‘오늘만 50%’, ‘쿠폰 중복 할인’, ‘10% 적립’ 같은 문구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구매 심리를 극대화하도록 설계된 사용자 인터페이스(UI)가 당장 사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볼 것 같은 조바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구매 유도가 자칫 선을 넘으면 ‘다크 패턴’(온라인 눈속임 상술)이 된다. 기준은 소비자를 설득하느냐, 속이느냐다.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은 쿠팡, 네이버, G마켓, 11번가에서 판매되는 상품 1335개를 조사한 결과 눈속임 상술이 다수 확인됐다고 19일 밝혔다. 대표적인 수법이 정가 부풀리기다. 한 쇼핑몰에서 정가 3만 원, 할인가 1만9900원에 팔리던 제주 천혜향 세트는 올 초 설 명절 행사가 시작되자 정가가 11만4000원으로 4배 가까이로 뛰었다. 할인 판매가는 1만7900원으로, 상품에 표시된 할인율은 84%에 달했다.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에 사는 듯한 착시 효과를 노린 것이다. 공정위는 “조사한 설 선물 세트 8개 중 1개꼴로 할인율이 과장돼 있었다”고 했다. ▷‘오늘만 할인’이라던 귤이 다음 날도, 일주일 뒤에도 똑같이 10kg에 1만5900원에 팔린 경우도 있었다. 특정 기간에만 싸게 파는 것처럼 홍보하며 구매 결정을 압박하는 수법이다. 공정위는 “조사한 상품 5개 중 1개는 이처럼 할인 행사 종료 후 가격이 같거나 오히려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할인가와 정가가 같은데도 마치 가격이 내린 것처럼 표시하거나, 쿠폰을 발급하면서 유효기간과 사용 조건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모두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가로막는 다크 패턴에 해당한다. ▷행사 상품을 다른 상품과 비교하기 쉬운 대형마트와 달리 온라인에선 ‘가짜 할인’을 가려내기가 훨씬 어렵다. 쿠폰, 적립금, 결제 할인, 배송비 등이 복잡하게 얽힌 데다 접속 경로와 이용자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 피해가 이어지자 유럽연합(EU)은 2022년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만들어 온라인 플랫폼의 다크 패턴을 금지했다. 미국에선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다크 패턴을 불공정 행위로 규정해 제재하고 있다. 모두 “소비자의 자율적 선택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뜻에서다. ▷한국도 지난해 전자상거래법을 개정하며 다크 패턴 규제에 나섰지만, 이번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눈속임 상술은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 국내 온라인 쇼핑은 이미 3년 전 오프라인 쇼핑을 넘어섰다. 이제 일상의 소비 공간이 된 온라인 쇼핑몰이 계속 소비자를 ‘호갱’(호구+고객) 취급한다면 소비자의 신뢰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 더 강도 높은 규제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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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원재]‘5·18 탱크 데이’라니…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는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크고 작은 정치적 역사적 논란에 휘말렸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때는 현지 운영권을 가진 맥심그룹 창업자의 딸이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을 옹호했다가 타깃이 됐다. 창업자 하워드 슐츠가 유대계다 보니 ‘친이스라엘 기업’으로 분류돼 중동에서 수차례 불매 운동도 벌어졌다. 그럴 때마다 미국 본사는 “어떤 정치적 종교적 이념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해명을 반복해야 했다. ▷이번에는 신세계그룹이 운영권을 가진 한국 스타벅스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인 18일 ‘5/18 탱크 데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텀블러 할인 행사를 홍보하면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탱크를 연상케 한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게시물에 포함된 ‘책상에 탁!’이란 문구를 두고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고문 사실을 은폐했다가 국민적 분노를 샀다. 여기에 할인 텀블러 용량이 박근혜 전 대통령 수형 번호를 연상케 하는 503mL라는 점까지 조명되며 행사 기획자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심을 사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스타벅스는 행사를 중단하고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서 “저질 장사치의 막장 행태”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결국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손정현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를 전격 경질하고 “국민께 깊은 상처를 드렸다”며 고개 숙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미국 본사도 하루 만에 성명을 내고 사과했지만 후폭풍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스타벅스 측은 ‘탱크 텀블러’라는 제품명을 활용한 프로모션이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부적절한 시기에,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설사 실무자의 실수였다고 해도, 현대사의 큰 비극인 5·18에 대한 최소한의 역사적 지식과 감수성이 있었다면 내부 검토 과정에서 걸러졌어야 했다. 경영진이 몰랐어도 문제고, 보고를 받고도 문제의식 없이 넘어갔다면 더 문제다. ▷한국은 인구 대비 스타벅스 매장 수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광주에만 71개의 매장이 있어, 인구 대비 매장 수로는 서울 다음이다. 더구나 신세계는 그룹 차원에서 3조 원을 투입해 광주종합버스터미널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런 기업이 마케팅 행사를 하면서 5·18의 의미와 광주의 역사적 상처를 헤아리지 못했다는 건 어이없는 일이다. “저부터 교육을 받고 역사의식과 윤리 기준을 정립하겠다”는 정 회장의 다짐이 실천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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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원재]한국GM의 변신 “철수는 없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메리 배라 회장이 요즘 인터뷰에서 빼놓지 않고 거론하는 차가 쉐보레 트랙스다. 지난달 28일 주주 서한에서도 가장 먼저 거론하며 “수익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고 치켜세웠다. 한국GM이 개발해 경남 창원 공장에서 생산하는 이 차는 지난해 미국에서만 26만5000대 팔리며 소형 SUV 시장 점유율 27%를 기록했다. 부평 공장에서 만드는 트레일블레이저까지 합치면 점유율은 43%로 절반에 육박한다. ▷한국GM이 최근 공개한 창원 공장은 대우자동차 시절 티코를 만들던 곳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달라져 있었다. 627대의 로봇이 용접을 전담하고, 3D 비전 카메라를 이용해 부품을 공정에 자동 투입하는 첨단 스마트 공장이 된 것이다. “넘치는 수요를 맞추지 못해 고민”이라는 이 공장의 가동률은 95%로 세계 GM 공장 중 가장 높다. 한국GM은 지난해 차량 46만 대를 만들어 대부분 수출했는데 미국 본사는 올 초 “풀 캐파(최대 생산 능력)에 맞춰 달라”며 50만 대 생산을 주문했다. ▷한국GM이 계속 잘나갔던 건 아니다. GM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파산보호를 신청한 이후 ‘철수설’은 꼬리표처럼 한국GM을 따라다녔다. 2014년부터 8년 연속 적자가 났고, 2018년에는 군산 공장이 문을 닫았다. 한국산업은행이 공적자금 8400억 원을 투입하며 2028년까지 국내 사업장 유지 약속을 받아냈음에도, 역대 한국GM 대표들은 철수설 관련 질문에 명확한 답을 피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차 관세를 0%에서 25%로 올리겠다고 선언한 것도 생산차 대부분을 미국에 수출했던 한국GM에는 악재였다. ▷흐름을 바꾼 것은 트랙스와 트레일블레이저였다. 2020년경부터 두 차종이 미국 시장에서 연이어 히트를 쳤다. ‘가성비 SUV’를 찾던 미국 소비자 입맛에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후 GM은 철수 대신 대규모 투자를 선택했다.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사장은 지난해 말 “3억 달러(약 44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지난달 3억 달러를 더 투자하겠다고 했다. 트랙스의 미국 판매 가격은 2만1700달러(약 3200만 원)부터 시작하는데, 이는 미국 신차 평균 가격의 절반에 못 미친다. ▷지난해까지 4년 연속 흑자를 낸 한국GM은 창원 공장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철수할 생각이라면 대규모로 투자할 이유가 없다”며 철수설을 부인했다. 해외 자본의 한국 직접 투자가 해외로 나가는 국내 자본의 절반에 그치는 가운데 GM의 투자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한국GM이 창출하는 직간접적 일자리는 15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노동 유연성 확보와 세제 혜택 등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도와준다면 제2, 제3의 GM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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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원재]“수능 잘 볼 걱정 말고 지원하세요”

    중앙대는 이달 9일 서울 시내 대형 영화관을 빌려 새 입시전형을 공개했다. 기업의 신제품 발표회를 연상케 하는 무대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문구가 화면에 떴다. “이제 수능 잘 볼 걱정 없이 안심하고 지원하세요.” 요즘 입시 제도를 잘 모르면 시험 잘 볼 걱정을 왜 하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하지만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나면 기대 이상의 점수를 받고 울지도 못하는 수험생이 적잖게 생긴다. 학생부 위주인 수시 전형에 먼저 합격하면 수능 위주인 정시 전형에 지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수시 납치’다.수시 납치 피하려 매년 눈치싸움 공교육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수시가 확대된 건 2002년경부터다. 이후 대학들이 우수 학생 선점을 위해 비중을 늘리면서 수시 납치 현상이 확산됐다. 여기에 대학마다 수시 일정이 제각각이다 보니 수험생이 체감하는 입시 난도는 상상 이상이다. 예를 들어 수능 전 수시를 치르는 A대와 수능 후 수시를 치르는 B대, 그리고 C대의 정시 전형에 지원했다고 가정해 보자. 수능 점수가 기대보다 잘 나와 B대 수시를 포기했다가 자칫 A대에 합격하면 C대 역시 포기해야 한다. 이런 계산을 하면서 수시 6곳, 정시 3곳을 지원해야 하니 사교육 컨설팅 없이는 입시 전략을 짜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오락가락하는 수능 난이도 역시 변수다. 2014, 2015년처럼 수능 만점자가 수십 명씩 나온 ‘물수능’에선 수능 문제를 거의 다 맞히고도 수시에 합격했다는 이유로 정시에 지원조차 못 하는 수험생이 속출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입시 결과에 만족하지 못해 재수를 택한다. 수능 등급과 백분율이 수시 전형을 모두 마친 후 나오는 것도 문제다. 결국 수능 가채점 결과만 손에 쥔 채 사교육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깜깜이 대입을 치러야 하는 게 한국 입시의 현주소다. 미국과 일본에도 합격한 경우 등록 의무가 있는 ‘조기 결정(Early Decision)’ 또는 ‘종합형(総合型·총합형) 선발’ 제도가 있다. 하지만 비중이 크지 않은 데다, 한국처럼 수능 몇 점을 받았으니 어디에 진학해야 한다는 생각이 크지 않아 사회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 수시 납치가 K입시 특유의 현상인 이유다. 중앙대가 내놓은 해법은 수능을 잘 본 경우 수시 합격을 취소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흘 만에 교육부가 “수시 합격자는 정시에 지원할 수 없다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어겼다”며 제동을 걸어 없던 일이 됐다.언제까지 불합리한 제도 방치하나 시험 잘 보는 게 걱정인 상황이 비교육적이란 지적이 이어지자 교육부는 8년 전 수시 정시 통합을 검토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수능과 내신 반영 방식부터 정리되지 않아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최근 다시 수시 정시 통합을 논의 중이지만 자칫 벌집을 건드리는 꼴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한국 입시의 고질적 문제는 각자 합리적으로 내린 선택이 모여 현저히 불합리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공교육을 살리겠다며 수시와 정시를 나눴고, 대학은 우수 학생을 확보하겠다며 수시를 늘리고 전형 시기를 당겼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수험생이 사교육 업체로 달려가면서 입시는 실력만큼이나 정보력과 눈치에 좌우되는 게임이 됐다. 수시 납치 논란은 이런 왜곡된 입시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중앙대 설명회에 참석했던 한 고교 입시 교사는 “대학이 수험생에게 시험 잘 볼 걱정 하지 말라고 하는 걸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부조리한 현실을 방치하는 교육 당국에 있다. 수시 합격 후 정시 지원을 허용하든, 수시 지원 시기를 바꾸든, 아예 수시와 정시를 통합하든 이제 답을 낼 때가 됐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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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원재]‘성공의 80%는 출석’

    1980년 1월 14일자 동아일보 사회면에는 서울 환일고 3학년 10반 59명 전원이 개근상을 받았다는 기사가 실렸다. 골절상을 당한 학생도 “교실에서 쓰러지겠다”며 40일 동안 택시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고 한다. 졸업식에서 받을 수 있는 상이라곤 우등상과 개근상밖에 없고, 초중고 12년 개근상이 무엇보다 큰 훈장 같던 시절 얘기다. ▷요즘 초중고교 졸업식에서 개근상을 받는 학생은 10명에 1명도 안 된다. 체험 학습 등으로 결석하는 학생이 워낙 많다 보니 개근상을 없애고 학교생활기록부에만 출결을 기재하는 학교도 많다. 팬데믹으로 ‘아프면 집에서 쉰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개근은 더 희귀해졌다고 한다. 최근에는 해외여행 한 번 안 가고 꾸준히 출석한 학생을 비하하는 ‘개근거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개근하는 학생이 계속 줄자 이제 대학들이 입시에 출결을 반영하겠다고 나섰다. 중앙대는 올해 입시부터 ‘수능 100%’였던 정시 전형을 ‘수능 90%, 출결 10’%로 바꾸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모든 전형에서 동점자 발생 시 개근 학생을 우선 선발한다. 서강대, 경희대, 인하대 등도 출결을 반영하기로 했거나 반영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고교 교사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대학들이 출결을 보겠다고 나선 것에는 고교 때 개근한 학생이 대학에 와서도 학업을 성실하게 이어간다는 경험칙도 작용했다. 초중고든 대학이든 출결이 우수할수록 학업 성취도가 높다는 건 국내외 연구에서 입증된 상식이다. 미국 정부 산하 국가교육통계센터에 따르면 유치원 결석조차 초교 1학년 때 읽기 및 산수 성취도를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그 영향이 고교 때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팬데믹으로 출석률이 떨어진 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2021∼2022년 만성결석률(출석률 90% 미만)이 30%를 넘었는데 그 영향으로 지난해 고교생 학업 성취도가 3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에 연방정부는 ‘출석이 중요하다(Attendance Matters)’ 캠페인을 벌이며 결석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초중고교생 5명 중 1명이 한 달 이상 결석하는 아일랜드도 ‘매 등교일이 새로운 날(Every School Day Is a New Day)’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영화감독 우디 앨런은 1989년 뉴욕타임스의 질문에 “내 성공의 80%는 출석(showing-up) 덕분”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개근하려면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건강을 스스로 챙기고, 밤샘 게임이나 소셜미디어를 자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길러지는 인내심과 절제력, 시간 관리 능력과 책임감은 인공지능(AI) 시대의 사회생활에 더 돋보이는 덕목일 수 있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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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원재]‘무기 금수’ 빗장 푼 日, 첫 군함 수출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0∼2024년 세계 무기 수출 순위에서 한국은 10위, 일본은 51위였다. 국방예산은 일본이 더 많지만 구조, 수송, 경계, 감시, 기뢰 제거용으로만 수출이 제한되다 보니 시장 점유율이 미미했던 것이다. 완제품 수출 실적이라곤 6년 전 필리핀에 대공 감시 레이더 4대를 판매한 게 전부였다. 그랬던 일본이 18일 호주에 모가미급 호위함 11척을 10조 원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첫 군함 수출이자 사상 최대 무기 수출이다. ▷‘바다의 닌자’로 불리는 모가미급 호위함은 길이 132m, 만재 배수량 5500t으로 순양함, 구축함보다 작지만 단독 작전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함이다. 스텔스 기능이 있으며 최신형 함대공·함대함 미사일도 탑재할 수 있다. 이런 공격형 군함의 수출이 가능했던 건 “타국과 공동 개발하는 경우 살상무기도 이전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방위산업의 분기점이 될 이번 계약을 위해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열흘 사이 호주 국방장관을 두 차례 만나며 공을 들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도 조만간 호주를 찾아 방위 분야 협력 확대를 선언할 방침이다. ▷전후 일본은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에 따라 ‘무기 수출 금지’ 원칙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아베 신조 내각은 2014년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을 선언하며 무기 수출의 빗장을 열었다.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맞서 방위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방위성 내부에서 “제안서를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초반에는 시행착오가 많았다. 기술 이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다 호주 잠수함 사업에서 탈락했고, 현지 생산 조건을 수용하지 못해 인도와 맺으려던 구난 비행정 계약도 무산됐다. ▷일본은 이번 계약을 발판 삼아 ‘방위산업 대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달 중 구조용 등으로 수출을 제한해 온 지침을 폐기하고 공격용 살상무기까지 수출을 허용할 계획이다. 여론조사에선 ‘살상무기 수출’에 반대하는 의견이 더 많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모가미형 호위함은 뉴질랜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 추가 수출을 타진 중이다. ▷일본 방위산업의 약진은 한국에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번 호주 사업에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도 도전했지만 예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일본이 다음 수출 대상으로 꼽은 국가들 역시 한국 방산업계가 공들여온 시장과 상당 부분 겹친다. 여기에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악몽도 있다 보니 한국으로선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보는 시선이 여러모로 예사롭지 않을 수밖에 없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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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원재]총학생회 사라진 SKY대학

    1980년 5월 서울역 앞에 민주화 시위대 10만 명이 모였을 때 해산을 결정한 건 주요 대학 총학생회장들이었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이다. 이처럼 독재 시절 대학 총학생회장은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었고, 거액의 현상금이 걸릴 만큼 존재감도 컸다. 졸업 후 ‘비싼 몸값’으로 정치권에 영입되는 경우도 많았다. 현 정부만 봐도 김민석 국무총리,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송영길 전 대표, 우상호 전 비상대책위원장, 한병도 원내대표 등이 그렇다. ▷그 시절 총학생회장을 놓고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 계열이 캠퍼스에서 치열한 선거전을 벌였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총학생회를 꾸리지 못하는 대학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해와 올해 입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연이어 무산됐다. 고려대와 연세대 역시 올해 총학생회 선거를 치르지 못한 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른바 ‘SKY 대학’에서 모두 총학생회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다른 대학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 1월 기준으로 서울 주요 대학 20곳 중 9곳에 총학생회가 없다. ▷총학생회가 존립 위기에 놓인 근본 원인은 시대 변화에 걸맞은 역할과 정체성을 찾지 못한 데 있다. 대학생이 지식인으로서 사회 변혁을 이끌던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다. 이제 구성원의 권익을 대변하는 역할이 남았지만 등록금, 주거, 취업 같은 현실적 문제 앞에서 총학생회는 뚜렷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총학생회가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냉담한 반응이 퍼지면서 총학생회장 선거 때 투표율은 20, 30%대까지 추락했다. 아무리 기간을 연장하며 독려해도 ‘투표 성립’ 요건조차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한둘이 아니다. ▷팬데믹은 ‘총학생회 무용론’에 기름을 부었다. 비대면 강의와 온라인 과제가 일상화됐고, 오리엔테이션(OT)이나 응원전 등 자연스럽게 모일 기회도 줄었다. 연대감과 소속감이 약해지면서 ‘학생회 활동을 할 시간에 학점을 따거나 스펙을 쌓는 게 낫다’는 각자도생의 분위기가 확산됐다. 상당수 대학에서 총학생회 운영을 위한 학생회비 납부율이 절반에도 못 미치면서 재정 여건까지 악화됐다. ▷총학생회 구성이 무산되면 단과대 대표 중 비대위원장을 뽑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일부 대학에는 비대위원장조차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학생 대표가 아예 공석이라고 한다. 독재 정권과 정면으로 맞섰던 총학생회가 이제 대학과의 협의조차 제대로 못 하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총학생회 없이 e메일로 학교에 의견을 전하고, 축제는 별도의 위원회가 담당하는 상당수 일본 대학의 모습이 한국 대학 캠퍼스의 미래일지도 모르겠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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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원재]세제실장은 왜 법전을 베고 잤을까

    현 재정경제부가 기획재정부였던 시절 얘기다. 새벽까지 일하다 오전 2, 3시에도 궁금한 게 생기면 세제실장에게 전화해 묻던 장관이 있었다. 질문의 내용도 즉각 답하기 어려운 세부적인 것들이었다. 세제실장은 “밤중에 두세 번 전화를 받은 다음부터 정확하게 답하기 위해 두꺼운 세법 책을 베고 잤다”고 했다. 밤잠 없이 일하는 수장을 모신 참모의 ‘웃픈’ 에피소드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업무 스타일은 이재명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새벽 1, 2시에도 물어보거나 지시할 게 있으면 청와대 참모들이 모인 텔레그램방에 글을 올린다고 한다. 휴일은 물론 늦은 밤이나 새벽에 X(옛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민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한다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론 업무 효율 측면에서도 이런 스타일이 바람직한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새벽 2시에 답변한 공정위원장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오후 11시 37분 공정거래위원회가 한 떡볶이 프랜차이즈 본부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게시물을 공유했다. 그리고 공정위를 칭찬한 뒤 “과징금 액수가 크지 않은데 법률이 정한 최대치로 부과한 것이냐”고 물었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다음 날 오전 2시 14분 “최대한 엄정하게 제재하려 노력했다”며 과징금 산정 근거를 설명하는 답을 달았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밤 12시, (새벽) 1시에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는 잊어버릴까 봐 그러는 것”이라며 즉각 답변을 요구하는 건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하지만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메시지라면, 일선 부처와 청와대 참모 사이에선 언제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또 장관이 대통령의 질문에 정확히 답하려면 국·실장이나 담당 과·팀장의 실무 검토가 필요한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결국 심야 질의응답이 두세 차례 반복되면 해당 부서 장차관과 간부들은 언제 나올지 모를 대통령 메시지를 생각하며 밤잠을 설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의 실장과 수석비서관, 비서관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제의 특성상 임기 초반에 성과를 내기 위한 만기친람(萬機親覽)이 어쩔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지시와 문의가 밤낮없이 내려오다 보면 구성원의 자발성을 이끌어 내기 어려워질 수 있다. “시키는 일만 해도 벅찬데 굳이 새 일을 벌일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는 것이다. 공직사회가 대통령과 청와대만 바라보면 부처 장관이 주도권을 잡고 정책을 펴기도 힘들어진다. 충분히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불필요한 논란이나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은 올 2월에만 부동산에 대한 글을 X에 23번이나 올렸다. 고개를 끄덕일 내용도 많았지만 “마귀에게 최소한의 양심마저 빼앗겼나” 등의 표현은 정치권 논란으로 번지기도 했다.SNS 게시물 3배로 늘어난 李 대통령 이 대통령이 X에 글을 올리는 횟수가 부쩍 늘어난 건 올해 초부터다. 임기 시작 직후인 지난해 7월과 올해 2월의 한 달 게시물 수를 비교하면 약 3배로 늘었다. 새벽이나 심야에 글을 올리는 일도 많아졌다. 국정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면서 전면에 나서 정부를 이끌어 가는 모습이지만,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읽힐 여지도 있다. ‘공직자의 1시간은 5200만 시간의 가치가 있다’는 이 대통령의 말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국민과 소통하며 업무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는 평가할 만하다. 다만 국정은 단거리 달리기보다 마라톤에 가깝다. 리더와 참모 모두 피로가 누적되면 실수가 나오기 쉽고, 실수 하나가 자칫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같은 방식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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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원재]日 파병 요청해 놓고 ‘진주만 기습’ 꺼낸 트럼프

    2016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히로시마-진주만 상호 방문은 미일 동맹의 역사적 화해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와이주 진주만에서 일본을 비난하는 대신 아베 총리 등을 두드리며 “가장 치열했던 적이 동맹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이처럼 일본 정상 앞에서 진주만 공습을 직접 거론하길 삼갔고, 동맹의 가치를 부각하는 맥락에서 간접적으로 다루곤 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달랐다. ▷발단은 19일 미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말미에 나온 일본 기자의 질문이었다. “이란 공격을 일본 등 동맹국에 왜 안 알렸느냐. 일본인들은 혼란스러웠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기습에 대해 일본보다 잘 아는 나라가 있느냐. 그럼 왜 진주만은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고 받아쳤다. 1941년 12월 선전포고 없이 이뤄진 일본의 기습을 농담 섞어 꼬집은 것이다. 미국 측에선 웃음이 터졌지만,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굳은 얼굴로 눈을 크게 뜬 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속보로 전했다. ▷미국 내에서도 비판이 많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브루킹스연구소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동맹의 유대를 강조해야 할 자리에서 나온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발언”이라고 썼다. 보수 진영에선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진주만 공습처럼 부당했다는 말이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편 트럼프의 발언이 호르무즈 해협에 더 기여하라는 대일 압박용 메시지였다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아베 총리를 만났을 때도 “진주만을 기억한다”며 무역 협상에서 양보를 요구한 바 있다. ▷불편한 과거사를 불쑥 꺼내 상대를 압박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의 단골 수법이다. 지난해 6월 미국을 찾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에게는 “내일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일인데 당신들에겐 썩 기쁜 날은 아니잖냐”고 물었다. 메르츠 총리는 “아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나치 독재로부터 우리가 해방된 날”이라며 넘어갔다. 올 1월 다보스 포럼에선 “(2차대전 때) 미국이 없었다면 여러분은 독일어와 일본어를 쓰고 있었을 것”이라며 유럽 동맹국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독일과 달리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일본에선 아직도 ‘대동아(大東亞) 전쟁’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진주만 공습과 태평양 전쟁을 정당화하는 시각이 남아 있다. 아베 총리가 진주만까지 가서 헌화를 하고도 미국에 사과를 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외교적 결례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이라는 문제가 아직도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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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원재]‘페트로 달러’ vs ‘페트로 위안’

    미국의 글로벌 패권을 지탱하는 두 축은 ‘군사력’과 ‘달러’다. 그리고 이 둘이 맞물리는 지점에 ‘페트로(Petro) 달러’가 있다. 1974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협정으로 출범한 페트로 달러 체제에선 산유국은 달러로 석유를 거래하고 그 수익을 미 국채에 투자하고, 미국이 반대급부로 안보를 보장해 준다. 덕분에 미국은 기축통화국의 특권을 누리며 막대한 재정·무역 적자 속에서도 달러를 마음껏 찍어낼 수 있었다. ▷CNN은 13일 “이란 정부가 원유를 중국 위안화로 거래하는 유조선만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불량 국가’로 찍혀 미국 주도 금융결제망에서 퇴출당한 이란의 원유 90%를 사들이는 ‘큰손’이다. 이란으로선 봉쇄 중인 호르무즈 해협을 선별적으로 열어 중국과의 에너지 협력을 확대하고, 페트로 달러 시스템에도 균열을 내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실제로 이란은 지금도 중국 유조선에 대해선 일부 통행을 허용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20일 가까이 이어지면서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프랑스, 이탈리아, 인도, 튀르키예 등은 자국 선박 통행을 위해 이란과의 개별 협의에 나섰다. 이들 국가가 위안화 결제를 받아들이면 세계 원유의 20%가 지나는 길목이 위안화 석유 거래의 전초기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2018년경부터 ‘페트로 위안’을 추진해 온 중국 정부로선 현재 5∼10%에 머무는 위안화 석유 결제 비율을 크게 끌어올릴 기회다. ▷반면 페트로 위안의 부상은 미국 입장에선 악몽에 가깝다. 위안화 거래가 확산되면 산유국의 미국 국채 수요가 줄어 금리가 오르고 막대한 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달러 가치 하락과 함께 기축통화국 지위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과거 페트로 달러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라크는 2000년 원유 결제 통화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꿨지만, 미국은 이라크전 직후인 2003년 다시 달러로 되돌렸다. 최근 러시아, 인도 등이 위안화 거래를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원유 결제의 80%가 달러화인 것도 미국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다. ▷중국은 “군함을 보내라”는 미국의 압박에도, “페트로 위안을 돕겠다”는 이란의 구애에도 신중하다. “미국의 이란 폭격에 반대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히는 수준이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으로서 에너지 수급 안정이 최우선인 탓일 것이다. 그렇다고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겠다”는 시진핑 주석의 야심까지 사라진 건 아닐 터다. 에너지와 금융, 지정학적 이해까지 뒤엉킨 호르무즈 대치가 달러화와 위안화의 위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우리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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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원재]반도체발 훈풍… 대규모 채용 나선 삼성, SK

    저성장 시대에 인공지능(AI)까지 확산되면서 일자리 가뭄이 어느 때보다 극심하다는 요즘이다. 지난해 구직자 1명당 일자리 수가 0.36개로 역대 최악이었을 정도다. 기업 채용은 경력직 위주로 전환된 지 오래여서 특히 첫 직장을 찾는 20대 구직자의 한숨이 깊다. 이런 상황에서 슈퍼사이클을 맞은 반도체 기업들이 최근 대규모 채용 방침을 발표했다.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그룹 공채를 유지 중인 삼성은 9일 상반기 채용계획을 공개했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18개사가 참여해 4월 삼성직무적성검사(GSAT), 5월 면접을 실시한다. 올해 삼성의 신규 채용 규모는 1만2000명으로 예년 대비 2000명 늘었다. 특히 반도체 분야 채용 인원이 크게 확대됐다고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달 4일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삼성전자의 영업 실적이 많이 올라 좀 더 채용할 여력이 생겼다”고 했다.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한 SK하이닉스도 10일부터 신입사원 모집에 나선다. SK하이닉스를 포함한 SK그룹의 올해 채용 규모는 신입과 경력을 합쳐 8500명이다. 2021년부터 수시 채용으로 전환한 SK하이닉스는 올해 ‘탤런트 하이웨이’라는 새 채용 시스템을 통해 경력사원뿐만 아니라 신입사원에게도 충분한 기회를 주기로 했다. “경험 쌓을 기회는 안 주고 경력자만 뽑으려 한다”는 취업준비생들의 하소연을 감안한 조치로 보인다. ▷취업은 개인의 문제지만 취업포기자를 장기간 방치하면 사회적 문제가 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가 대표적이다. 버블 붕괴 직후인 1990, 2000년대 취업 빙하기를 경험한 이들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두고두고 사회에 부담이 됐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와 니트족(구직 단념자) 등이 늘며 가정 내 갈등으로 이어지고 저출산도 심화됐다. ▷한국에서도 2020년 팬데믹을 기점으로 일도, 구직 활동도 안 하는 ‘그냥 쉬었음’ 인구가 크게 늘었다. 특히 20대 쉬었음 인구는 지난해 40만8000명으로 3년 새 5만 명 가까이 증가했다. 어학 점수, 자격증, 공모전, 인턴 등 할 수 있는 걸 다 했음에도 취업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하자 구직을 단념한 청년들이다. 기업이 즉시 활용할 경력직만 찾는 동안 서류와 면접 탈락을 반복하다 주저앉은 걸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공채든 수시 채용이든 중요한 건 청년들에게 직무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대와 30대의 고용률 격차는 최근 13년 동안 2배 이상으로 벌어졌는데 주된 원인은 경력직 위주의 채용 관행이었다. 기업은 미래 인재를 확보할 수 있고, 정부는 향후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신입 채용의 훈풍이 반도체 외 분야로도 퍼져가기를 기대한다.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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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장원재]정부가 코인을 잃어버리는 세 가지 방법

    국세청은 지난달 26일 양도소득세 체납자의 가상화폐가 저장된 USB메모리 4개를 압류했다며 사진과 동영상을 공개했다. 그런데 사진 속 USB 보관함 덮개에는 영어 단어 24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마스터키’로 불리는 니모닉 코드(Mnemonic Code)였다. 니모닉 코드만 알면 USB가 없어도 코인을 복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결국 다음 날 새벽 국세청 코인 지갑에서 해커의 지갑으로 69억 원 상당의 ‘PRTG 코인’이 빠져나갔다. 유출 사실이 보도되며 부담을 느낀 해커가 이튿날 새벽 코인을 돌려놨지만 불과 2시간 반 만에 다른 해커가 또 가져갔다. 국세청은 두 번이나 털린 후에야 “원본 사진을 공개한 건 변명의 여지 없는 잘못”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공교롭게도 국세청은 가상화폐 압류 브리핑에서 압류 물품 수장고도 처음 공개했다. 명품 가방과 시계, 고가의 위스키가 가득한 창고는 10cm 철문으로 이중 삼중 잠긴 철통 보안 상태였다. 그런 국세청이 수십억 원이 든 가상자산 금고 비밀번호를 “누구든 가져가라”는 식으로 만천하에 공개한 걸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눈 뜨고 코인을 털린 건 국세청뿐이 아니다. 올 들어 광주지검은 400억 원, 서울 강남경찰서는 20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탈취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코인이 사라진 걸 광주지검은 반년, 강남서는 4년 만에 알았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눈 뜨고 코인 털린 국세청과 검경 광주지검은 피싱에 당했다. 2021년 불법 도박사이트 관계자로부터 압수한 비트코인을 보관하던 광주지검은 지난해 8월 잔액 확인을 위해 코인 지갑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런데 접속한 사이트가 코인 지갑 업체로 위장한 피싱 사이트였다. “USB를 꽂고 니모닉 코드를 입력하라”는 지시에 따르자 순식간에 비트코인 320개가 빠져나갔다. 사이트 주소만 확인했다면, 잔액 조회에는 니모닉 코드가 필요 없다는 사실만 알았다면 막을 수 있었던 피해였다. 강남서의 피해는 광주지검 사건 이후 검경의 압류 코인 일제 점검에서 드러났다. 가상자산 업체 해킹 사건을 수사하던 중 압수한 비트코인 22개가 사라진 것이다. “경찰서 코인 지갑에 보관하라”는 내부 지침을 어기고 수사를 요청한 업체 지갑에 보관한 게 화근이었다. 경찰은 자금난에 시달리던 업체 운영자가 비트코인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비유하자면 국세청은 압수품을 거리 한복판에 두고 자리를 비운 틈에 도둑맞았고, 검찰은 피싱에 당해 자기 손으로 갖다 바쳤으며, 경찰은 민간인에게 맡겨 놨다가 잃어버렸다. 가상자산에 대한 기초 지식만 있어도 막을 수 있었던, 하나같이 어이없는 사고였다. 얼마나 무방비였으면 처음 국세청 코인을 탈취했던 해커가 경찰과 언론에 낸 자술서에서 “폐지 줍는 심정으로 가져갔다”고 했겠나.“압류 코인, 폐지 줍듯 가져갔다” 검찰이 잃어버린 비트코인은 수사가 본격화되자 해커가 돌려줬다. 하지만 국세청과 경찰이 탈취당한 코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특히 국세청의 경우 도난당한 코인의 원주인인 체납자가 양도세 납부를 위한 부동산 매각을 진행 중이어서, 최악의 경우 잃어버린 코인을 국민 혈세로 보전해 줘야 할 수도 있다. 범죄는 국경과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벗어난 지 오래다. 해외에서 텔레그램으로 범죄를 사주하고, 수익을 가상화폐로 바꿔 은닉하는 건 이제 범죄의 상식이다. 사이버 도박장 소프트웨어가 공개된 ‘오픈 소스’라는 말에 “가게 문 닫기 전에 빨리 가자”고 나서던 영화 ‘범죄도시’ 속 마석도 형사의 수준으론 범죄를 막는 것도, 범죄수익을 환수하는 것도 어렵다. 사정기관 담당자들의 가상자산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교육 훈련이 시급해 보인다. 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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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장원재]AI 대화에 남겨진 ‘범죄 지문’

    2019년 전남편 살해 혐의로 체포된 고유정은 “성폭행을 모면하려다 발생한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의 휴대전화와 컴퓨터에서 ‘니코틴 치사량’ ‘졸피뎀(수면제)’ ‘뼈의 무게’ 등을 검색한 기록을 찾아냈고, 법원은 고의성과 계획성을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당시만 해도 포털 검색 기록으로 범죄 의도와 배경을 입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과의 대화 기록이 수사의 새로운 핵심 단서로 떠오르고 있다. ▷요즘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모텔 약물 사망’ 사건에서 20대 여성 피의자는 약물을 탄 숙취 해소 음료를 건네 남성 2명을 숨지게 했다. 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의견 충돌이 생겨 재우려 했던 것”이라며 살해 의도는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이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확보한 챗GPT 대화에선 “수면제와 술을 같이 먹으면 위험한가” “죽을 수도 있나” 같은 질문이 반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경찰은 상해치사 대신 살인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당국은 AI에 입력된 프롬프트(명령어)가 대화형으로, 단순 검색어보다 구체적인 맥락을 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용자의 의도와 동기, 내밀한 심리 상태까지 부지불식간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형사 사건을 맡기 전 의뢰인이 AI와 나눈 대화 내용부터 확인하는 변호사도 있다고 한다. 의뢰인이 AI와 상의하며 범행을 준비한 기록을 수사당국이 확보했다면, 범죄를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어 승산이 희박하다는 생각에서다. ▷AI와의 대화를 수사에 활용하는 건 해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선 31명이 숨진 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다. 당시 검거된 방화 피의자는 챗GPT에 “담배 때문에 불이 붙으면 내 잘못인가” 등의 질문을 하고, 화재 수개월 전 AI로 불타는 숲에서 사람들이 도망치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수사당국은 이를 오랜 기간 범행을 준비한 피의자가 ‘실화’로 위장해 책임을 면하려 한 증거로 보고 공소장에 명시했다. 이달 10일 캐나다에서 9명의 사망자를 낸 총기 난사범도 사전에 AI와 논의하며 범죄 시나리오를 구체화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한 팟캐스트에서 “사람들은 챗GPT에 가장 내밀한 얘기를 털어놓지만, 대화 내용은 당국에 제출될 법적 의무가 있다. 비밀이 보장된 의사·변호사 상담과는 다르다”고 경고했다. 설사 휴대전화에서 대화를 지운다고 해도, AI 업체가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된 대화 내용을 제출하는 것까지 막을 순 없다는 뜻이다. 범죄에 지문을 남기는 AI 뒤에 숨어 완전범죄를 꿈꾸는 건 어리석은 미몽일 뿐이다. 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202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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