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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사는 박모 씨가 한국에 온 건 10년 만이다.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그가 처음 꺼낸 얘기는 계엄도 탄핵도 아닌 ‘K푸드’였다. 라면·떡볶이·김밥·만두·김치 등 K푸드가 암스테르담을 휩쓸고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14시간 거리다. 국토 면적이 남한의 5분의 2, 전체 인구는 1835만 명이며 수도 암스테르담 인구는 92만 명이다. 2021년 기준 네덜란드에 사는 재외동포 수는 9473명에 불과하다. 미국에 있는 재외동포가 263만 명, 중국에 235만 명이 있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다. 이런 곳에서 신라면, 비비고만두, 종가집김치, 메로나 등의 인기가 절정이라니 놀라울 뿐이다.암스테르담 휩쓸고 있는 K푸드 박 씨가 처음 암스테르담에 정착했을 때는 한국 라면조차 먹기 쉽지 않았다. 라면을 수입 판매하는 곳이 없어서 한국에 다녀온 지인들로부터 얻어먹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네덜란드의 오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네덜란드인들이 휴양지로 많이 찾는 태국보다도 덜 알려진 아시아 국가였다. 상황이 변한 건 불과 3, 4년 전이었다. 네덜란드 청소년들이 K팝과 K드라마를 즐겨 보기 시작하더니 곧 K푸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최대 마트 체인점 ‘알버르트 헤인’ 냉장 매대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한국 만두와 김치가 있고 한국 라면 매대가 별도로 만들어졌다. 짜장라면, 초코파이, 아이스크림 메로나는 없어서 못 팔 정도이고 암스테르담 도심에 있는 카페테리아의 인기 메뉴가 김치샌드위치라는 게 박 씨가 전한 암스테르담의 K푸드 열기다. 식문화는 그 나라 문화상품 수출의 선봉대 역할을 한다. 서울에 일식당이 들어서고 일본어 간판이 늘어난 것처럼 암스테르담 중심가에도 ‘KOREAN BBQ(코리안 비비큐)’, ‘KOREAN BAR(코리안 바)’ 등으로 K푸드를 알리는 음식점과 한글과 태극기가 등장했다. K푸드 ‘짝퉁’ 위협… 수성전략 마련해야 식문화가 수출되면 동시에 현지화와 세계화가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K푸드 정체성이 훼손되기도 한다. 암스테르담의 K푸드 식당 중에도 중국인 등 아시아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꽤 된다고 한다. 특히 자금력이 막강한 중국인들이 암스테르담 중심가를 장악하면서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K푸드 음식점이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일부 K푸드 식당에서는 중국 등에서 널리 쓰이는 향신료인 고수 맛이 강한 변형 K푸드도 등장했다. 한국인인 박 씨는 맛을 구별할 수 있지만 현지인들은 이 음식을 한국의 맛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세계 시장의 K푸드 상품 역시 ‘짝퉁 상품’의 위협을 받고 있다. 라면의 원조로 불리는 일본의 닛신식품은 지난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과 유사한 ‘볶음면’을 내놓고 한국풍(韓國風)이라는 문구를 넣어 짝퉁 논란이 일었다. 한국지식재산보호원에 따르면 2023년 중국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에서 303건의 한국식품기업 상표 무단 선점 사례가 확인됐다. 원조를 위협하는 짝퉁 제품은 문화 상품의 세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K푸드를 지키려면 해외 상표권 관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제대로 된 한국의 맛을 알리기 위해 우리가 더 뛰는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 2년이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해외 시장 공략에 열을 올렸지만, 앞으로는 해외에 있는 한국문화원이 한국의 맛을 인증하는 마크를 한국 식당에 부착하는 식으로 브랜드와 품질을 관리하는 수성(守城)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공들여 키운 K푸드의 과실을 남에게 뺏기는 일을 겪지 않는다.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요즘 믿을 데라곤 기업뿐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매번 당연하게 여겼던 기업들의 성금(誠金)이 달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을 할퀸 ‘괴물 산불’이 지나간 뒤에도 기업들의 온정이 이어졌다. 삼성그룹 30억 원, SK·현대차·LG·포스코그룹은 각각 20억 원씩 냈다. 롯데·KT·HD현대는 10억 원, CJ·신세계·LS는 5억 원씩 냈다. 이 외에도 이름 대면 알 만한 거의 모든 기업이 정성으로 돈을 냈다. 기업들이 내는 돈은 ‘성금’이다. ‘세금’이 아니다. 세금 받으면서 일하는 정치인들이 산불 피해 주민들을 돕는 추경안을 놓고 다툼을 벌인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러니 믿을 데가 기업뿐이라는 것이다.“혼란한 정국 믿을 데라곤 기업뿐” 대형 재난 상황에서뿐만 아니다. 2021년 중국이 갑자기 요소 수출을 제한하자 한국에서 ‘요소수 대란’이 터졌다. 요소수는 화물차의 필수품인데 품귀 현상이 빚어지자 가격이 10배까지 뛰었다. 당시 한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터라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이때 나선 것이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한국 A기업이다. A기업은 중국에서 다져둔 탄탄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으로 보낼 요소를 대량으로 긴급 확보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한국 정부는 우선 급한 불을 끄고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큰 칭찬을 받아 마땅하지만 A기업은 공치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성과를 한국 외교관과 공무원들에게 넘겼다. “국민들이 힘들 때 기업이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만 했다. 기업은 세금으로도 국민을 돕는다. 한국은 전체 세수 328조 원 가운데 법인세(62조5000억 원) 비율이 19%를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기업이 비틀거리면 법인세 수입이 줄어 정부 재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믿을 데라곤 기업뿐인데도 한국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반(反)기업 정서가 강하다. ‘약자는 선(善)하고, 강자는 악(惡)하다’는 ‘언더도그마’에 빠져 있는 것 같다. 허리 굽은 노인과 덩치 큰 젊은이가 다투면 젊은이가 나쁠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다. 대중(大衆)은 기업이 돈이 많고, 규모가 크고, 능력이 좋으니 악할 것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들은 이런 대중을 따라 각종 기업 규제에 나선다.기업 노력에도 반기업 정서 강한 韓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입법은 막았지만 상법 개정안은 국회까지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8개 경제단체의 하소연은 통하지 않았다. 기업들은 “경영진 상대로 소송이 남발되고 투기 세력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있다. 사업장에서 사망 등 중대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최고경영자(CEO)가 처벌받을 수 있다. 하청업체에서 난 사고에 대해 원청 경영자에게 더 무거운 책임을 지우고 관련 규정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결국 시행 중이다. 기업과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며 처벌하고 규제하는 법률과 정책이 너무 많다. 기획재정부 등이 2023년 조사한 결과 414개 법률에서 형벌 규정은 5886개였다. “CEO가 되면 감옥 갈 각오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 흰소리가 아니다. 여기에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까지 떨어졌다. 안에서는 반기업 정서에 따른 각종 규제로 힘들고, 밖에서는 미국의 무자비한 관세까지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쪽 발에만 있던 족쇄가 양발에 채워진 형국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해 보인다. 기업이 뛸 수 있도록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날개까지 달아주면 더 좋다. 믿을 데라곤 기업밖에 없으니까.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나는 ‘테무’를 이용하지 않는다. 물건값이 아무리 싸다고 해도, 심지어 품질이 좋다고 해도 그럴 것이다. “물건이 싸고 좋으면 그만이지 유별나다”고 할지 모르겠다. 인정한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과 테무를 더 알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몇 년 전부터 기업에도 공산당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당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당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장(黨章·당헌법)을 기업에까지 강제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삼성전자 안에 ‘국민의힘 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위원회’를 만든 셈이다. 테무 모회사 핀둬둬에 공산당위원회 테무의 모회사 ‘핀둬둬’에도 공산당위원회가 있다. 핀둬둬는 중국인이 9억 명 넘게 이용하는 쇼핑 플랫폼이다. 창업자 황정(黃崢)은 지난해 중국 최고 부자에 오르기도 했다. 핀둬둬는 테무를 설립했고 이를 통해 글로벌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거대 기업 핀둬둬의 공산당위원회 서기(書記·최고 책임자)는 중국 고위 공산당원이다. 이 사람은 핀둬둬에서 수석 부사장직까지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최대 검색사이트 바이두에 따르면 기업의 공산당위원회는 당의 노선·방침·정책을 기업에 전달해야 한다. 또 당의 지시가 기업에서 효과적으로 집행되도록 책임져야 한다. 쉽게 말하면 ‘공산당의 지시를 기업이 잘 따르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이 공산당위원회 말을 듣지 않고 공산당에 반기를 들면 어떻게 될까. 2020년 10월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馬雲)은 “중국 금융 당국이 ‘전당포 영업’을 하고 있다”며 공산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후 그는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다. 실종·납치·사망설 등이 돌았는데, 1년 뒤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사이 알리바바는 4조5000억 원 규모의 과징금을 맞았다. 세계 최대 기업공개(IPO)로 주목받던 자회사의 상장도 무기한 연기됐다. 또 일부 회사를 공산당에 헌납해야만 했다.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중국 최대 차량공유업체 ‘디디추싱’도 철퇴를 맞은 적이 있다. 디디추싱은 2021년 미국 증시에 입성한 지 5개월 만에 자진 상장 폐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중국 공산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장을 강행했던 탓이다. 중국에서는 이런 일이 ‘자업자득’으로 여겨지며 당연시되고 있다. 중국 기업 테무는 한국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유튜브에서 테무 광고가 수도 없이 나온다. 테무의 한국인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이미 8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한국인 결제 금액은 60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됐다. 아마도 이 수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테무가 한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한국인의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입점을 원하는 한국 상인들에게 얼굴 사진 등을 요구했다. 또 사용자들이 휴대전화 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의 해외 이전을 거부하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기도 했다. 테무 이면까지 생각한 뒤 선택해야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이 조사에 나선 상황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봐야겠지만 정부의 조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거대 기업 핀둬둬를 등에 업은 테무가 한국 정부의 조치에 겁을 먹을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결국 한국 소비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중요하다. 눈앞에 현란하게 펼쳐지는 테무 광고만 봐서는 안 된다. 광고가 보여주지 않는 이면의 테무까지 생각해야 한다. 3년 8개월 동안 베이징에 머물며 중국 공산당을 취재했던 나는 그래서 테무를 이용하지 않는다.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이로써 정치적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최종 결정을 전후한 앞으로의 혼란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치 혼란은 필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서울 광화문 근처 음식점 A 사장은 요즘 가게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다. 십중팔구 송년 모임 취소 전화여서다. A 사장의 가게는 홀 테이블 10여 개, 방 10여 개 규모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전까지는 저녁 예약이 70% 수준이라고 했다.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가게들에 비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엄 선포 후 취소 전화가 폭주하면서 예약은 거의 다 사라졌다. 연말 특수는 고사하고 평상시보다 더 장사가 안되는 상황이 됐다. 정치 혼란이 그대로 실물경제에 전이된 것이다. 14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직후 그 어떤 소회보다도 “국민 여러분, 취소했던 송년회를 재개하시길 당부한다”고 말한 것은 경제 위기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일 것이다. 직장인들의 송년회 취소는 기업의 위축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국내 기업 239개를 조사한 결과 49.7%가 내년 경영계획 기조를 ‘긴축 경영’으로 설정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것이다. 특히 임직원 300인 이상 대기업은 61%가 긴축하겠다고 답했다. 201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놀랍게도 이 조사는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3일) 전인 1일 이뤄진 것이다. 정치적 혼란이 가중된 지금 단언컨대 수치가 더 높아졌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업을 위축시키는 것은 정치였다. 알리바바, 디디추싱 등 세계적으로 승승장구했던 중국 빅테크는 2020∼2023년 중국공산당 눈 밖에 난 이후 기업공개(IPO)를 중단하는 등 시련을 겪고 있다. 일본은 1993년부터 2012년까지 20년간 총리 13명 중 12명의 평균 재임 기간이 426일에 불과했다. 정치 불안은 일본을 저성장으로 몰아갔다. 1994년 멕시코 페소화 위기는 유력 대통령 후보의 암살 등 정치 불안이 원인이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도 정치 지도력 공백과 혼란이 있었다. 당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진정한 문제는 달러 부족이 아니라 정치 리더십의 부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치 안정이 곧바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 안정 없이 경제 성장은 불가능하다. 국내 한 대기업 임원은 최근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보면서 “한국이 정치만 살아나면 경제는 날아다닐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윤 대통령 탄핵안 국회 통과 후 긴급경제관계장관회의, 대외관계장관간담회 등 주요 회의를 잇달아 개최했다. 정치적 혼란이 기업들의 투자 의지까지 꺾는다면 위기는 더 심화할 것이란 점을 알기 때문이다. 기업의 위축은 그대로 직장인들에게 이어지고 다시 가계 소비 심리 위축으로 전이돼 경제를 얼어붙게 만든다. 정부도 중요하지만 더 이상 정치가 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정치가 할 일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상식선에서 예측 가능하기만 하면 된다. 가게에 전화벨이 울리면 사장이 좋아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김기용 산업1부 차장 kky@donga.com}
자동차는 ‘제조업의 꽃’이라 불린다.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이 3만 개가 넘는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스프링부터 이름도 생소한 스테빌라이저(차체 기울어짐 감소 장치)까지 정말 많다. 사용되는 소재도 철강과 비철금속, 고무, 유리, 플라스틱, 탄소섬유 등 다양하다. 철강은 ‘산업의 쌀’이라 불린다. 가장 중요한 기초 소재라는 얘기다. 철강 산업의 경쟁력은 제조업 전반의 성장과 고용 창출과도 직결돼 있다. 자동차, 건설, 조선, 가전, 기계 등 주요 산업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기본 소재가 철강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30여 년 동안 전 세계 ‘꽃’과 ‘쌀’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승승장구했다. 글로벌 자동차·철강 기업들이 중국에 몰려들면서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됐다. 이것이 중국 고도 성장의 토대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글로벌 자동차·철강 기업들의 ‘중국 엑소더스’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먼저 빠져나오고 있다. 17일 현대제철은 2003년 설립한 중국 베이징 법인을 매각하기로 했다. 7일에는 포스코그룹이 1997년 세운 공장을 팔기로 했다. 앞서 지난해 초 포스코그룹은 중국 광둥성에 있는 공장도 처분했다. 동국제강은 지난해 7월 중국 법인 지분 90%를 중국 지방정부에 매각했다. 일본 철강기업인 일본제철도 7월 중국 기업과 20년 동안 진행해 온 합작 사업을 중단했다. 철강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이들의 핵심 고객인 자동차 기업들이 중국에서 먼저 발을 뺐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중국에서 판매가 급감하면서 2021년 베이징 1공장을, 올해 1월에는 충칭 공장을 매각했다. 일본 혼다자동차는 중국 공장 3곳의 가동을 중단하고 매각을 검토하기로 했다. 닛산자동차는 6월 장쑤성에서 운영하던 공장을 폐쇄했다. 글로벌 자동차·철강 기업들이 중국을 빠져나가는 것은 금융 자본이 빠져나가는 것과는 사뭇 의미가 달라 보인다. 금융 자본의 이동은 일상다반사다. 하지만 거대한 장치 산업인 자동차·철강의 이동은 회사의 명운과도 직결된 일이다. 가장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결국 세계의 성장을 견인했던 세계의 공장 문이 닫히고 있다는 뜻이다. 자동차·철강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중국이 갈수록 경직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30여 년 동안 ‘흑묘백묘(黑猫白猫·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를 앞세운 철저한 실용주의적 개혁개방 노선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기업들에 예측 가능한 경영 환경도 제공했다.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셈이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모습은 과거와는 달라 보인다. 중국의 변화에 대해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대비하고 대처해야 할 뿐이다. 다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자동차·철강을 포함해 많은 한국 기업들이 ‘사드 사태’라는 예방주사를 맞고 중국의 변화를 빨리 눈치챘다는 점이다. 고통스러웠지만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김기용 산업1부 차장 kky@donga.com}
영어 단어 프리(free)는 명사 뒤에 붙어 ‘∼이 없는’이라는 뜻을 만들어 낸다. 슈거 프리(sugar free·설탕 없는), 듀티 프리(duty free·세금 없는) 등이다. 대체로 프리 앞에 오는 단어가 부정적이어서 프리가 붙으면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차이나 프리(china free)란 말도 있다. 2007년에 크게 유행했었다. 당시 중국은 명실상부한 ‘세계의 공장’이었다. 주변에서 중국산 아닌 걸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독성물질이 포함된 중국산 식료품과 의료품, 생활용품 등이 세계적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졌다. 그러자 일부 제품에 ‘차이나 프리’ 스티커가 붙기 시작했다. 중국산 원료·재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확산될 것 같았던 차이나 프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중국을 배제할 경우 세계 경제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더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 그랬다. 중국과 붙어 있는 지리적 특성과 오랜 시간 중국의 영향을 받아온 역사적 특성까지 더해져 차이나 프리가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이런 분위기가 크다. 이런 상황에서 비자발적 차이나 프리를 경험한 현대차의 약진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때 중국에서 승승장구했던 현대차는 사실상 차이나 프리를 당했다. 2014년 1월 현대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11.1%까지 치고 올라갔다. 2016년까지 4년 연속 연간 판매량 100만 대 이상을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중국 매체와 기관, 단체들이 혐한 감정을 부추기자 판매량은 급감했다. 6년 연속 판매량이 감소했고 시장 점유율은 1%대까지 하락했다. 지난해에는 약 24만 대 판매에 그쳤다. 2016년의 4분의 1 수준이다. 이제 더 내려갈 곳도 없다는 것이 현대차 베이징 주재원들의 인식이다. ‘중국 시장 없이 성공은 힘들다’는 인식에 비춰 보면 현대차는 지금 심각한 위기여야 한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중국에서 승승장구 할 때도 글로벌 5위에 머물렀던 현대차는 지금 글로벌 3위에 올랐다. 1위는 도요타, 2위는 폭스바겐이다. 일부에서는 현대차가 곧 세계 1위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 판매 비중이 높은 도요타와 폭스바겐이 최근 중국에서 위기를 맞고 있어서다. 현대차의 이른 중국 의존도 축소는 선견지명이 아니라 우연이다. 이렇게 얻은 성과는 쉽게 사라진다. 이제 우연이 아닌 실력으로 입증해야 한다. 현대차는 최근 미래차 선도 계획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괄적 협력을 하기로 했고, 구글에 자율주행용 차량을 공급하기로 했다. 또 중국이 아닌 인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인구 대국에 오른 인도에서 성공한다면 현대차의 세계 1위 가능성도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나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들은 틈만 나면 중국 칭송에 바쁘다. 중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세기 때문이다. 이런 속에서도 현대차가 ‘중국 없이도’ ‘차이나 프리’여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김기용 산업1부 차장 kky@donga.com}
한국인 이승윤 씨(34)가 2022년 미국에서 창업한 ‘스토리’라는 회사는 기업 가치가 3조 원에 이른다. 창업 2년 만에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 기업)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 중고거래 신드롬을 일으킨 ‘당근마켓’과 비슷한 규모다. 스토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들의 지식재산권(IP) 보호를 목표로 한다. 이렇게 보호된 IP를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이다. 이 대표는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AI)을 학습시키려 콘텐츠를 무단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모든 콘텐츠가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스토리가 주목한 것은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IP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란 점이었다. 스토리는 최근 8000만 달러(약 1064억 원)를 투자받아 그 가치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스토리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콘텐츠의 위기를 뜻한다. AI의 등장으로 ‘콘텐츠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AI 시대를 주도하는 빅테크들은 AI를 학습시킬 양질의 콘텐츠를 원하면서도 창작자들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만드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가비지 인, 가비지 아웃(Garbage In, Garbage Out).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뜻이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많이 쓰는 이 말은 “입력 데이터가 좋지 않으면 출력 데이터가 좋지 않다”는 의미다. 최첨단 반도체와 최고 기술로 만들어진 AI라 해도 쓰레기를 입력하면 쓰레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반대로 좋은 콘텐츠를 많이 흡수한 AI는 더 강력해진다. 구글의 ‘제미나이’와 오픈AI의 ‘챗GPT’ 등 글로벌 선두권 AI들은 이미 지구상에 있는 모든 정보를 다 섭렵한 것처럼 보인다. 책과 백과사전, 뉴스 기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대화와 게시물 등 디지털화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학습하고 있다. 2032년에 AI 학습 자료가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문제는 AI가 공부한답시고 양질의 콘텐츠를 공짜로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웹상의 정보를 무작위로 탐색하는 ‘크롤링’이나 ‘웹스크레이핑’ 등의 방법도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행태들은 필연적으로 창작자들의 의욕 감소와 창작 포기를 불러온다. 일부 창작자들은 자신의 디지털 창작물에 일종의 독극물(독성 픽셀)을 풀어 놓고 AI가 이를 학습할 경우 바보가 되도록 함정을 파기도 한다. 21세기 디지털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이렇게 창작자들이 무너지면 그다음엔 AI다. 창작자들의 빈자리엔 쓰레기만 남고, 쓰레기로 학습한 AI는 쓰레기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1년여 전부터 AI 관련 저작권 제도 개선 연구를 시작해 지난해 말 ‘생성형 AI 저작권 안내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늦고 너무 느슨해 보인다. 창작자들을 보호하는 것은 AI 규제가 아니라 AI를 살리는 길이다. 콘텐츠와 AI의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AI 강국으로 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기도 하다. 한국 AI가 쓰레기를 학습하지 않도록 더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김기용 산업1부 차장 kky@donga.com}
5월 개청한 우주항공청이 우주탐사 목표로 ‘블랙홀’을 점찍었다. 22일 경남 사천 우주항공청 임시청사에서 만난 존 리 우주청 임무본부장(68)은 이 같은 계획을 밝히며 “국민들의 지지가 있어야 우주청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며 “국민들이 ‘와∼’ 하고 놀랄 만한 목표를 세우고 성과를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리 본부장이 국내 언론을 만나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태양 질량 100만 배 거대 블랙홀 탐사 리 본부장이 언급한 블랙홀 탐사 계획은 국제 협력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우주청은 영국,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0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평방 배열 거대전파망원경(SKAO)’ 프로젝트 가입 절차를 밟고 있다. SKAO는 호주와 남아공에 건설 중인 소형 안테나 13만여 개에서 수집되는 전파 데이터를 분석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완공 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성능이 좋은 전파망원경이 된다. 태양 질량의 100만 배 이상인 거대 블랙홀까지 감지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차기 노벨상 후보를 배출할 수 있는 거대 과학 장비로 손꼽힌다. 리 본부장은 그동안 한국의 우주 개발이 다소 보수적으로 진행돼 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쫓아가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퀀텀 리프’를 해야 세계 7위 우주 강국에서 5위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했다. 블랙홀 탐사 역시 퀀텀 리프할 수 있는 주요 탐사 목표라는 것이다.● 韓 잠재력, 성장 아닌 폭발에 가까워 50여 년을 미국에서 살았고 NASA와 백악관에서 30년을 일한 리 본부장을 한국으로 이끈 것은 한국 연구자들의 잠재력이었다. 리 본부장은 “200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NASA에는 ‘한국이 뭘 할 수 있겠냐’는 인식이 팽배했다”면서 “나도 확신이 없었지만 방문한 뒤 생각이 확 달라졌다”고 했다. 그가 찾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는 당시 막 개발한 대형 열진공 체임버가 있었다. 열진공 체임버는 내부를 진공으로 만들어 우주 환경을 모사한 장비다. 위성을 실험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당시 지름 8m급 이상의 대형 체임버를 소유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7개국뿐이었다. 리 본부장은 “10m 크기의 체임버를 한국의 독자 기술로 개발했다는 것을 듣고 너무 놀랐다”며 “그때 한국은 기회만 있으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언탭트 포텐셜(untapped potential·아직 터지지 않은 잠재력)’을 가진 엄청난 나라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국의 ‘브레인 파워’를 확인한 그는 이후 한국과 교류를 계속 이어왔고 올해 3월 중순 우주청의 영입 전화를 받자 ‘오케이’를 외쳤다.● 과학 연구가 경제에도 도움돼야 최근 우주청 직원들과 ‘피자 런치’를 기획하기도 한 리 본부장은 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리 본부장은 매일 오전 연구자들이 일하는 3층부터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9층까지 돌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직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리 본부장이 항상 강조하는 점은 연구의 경제적 파급력이다. 리 본부장은 “경제에도 도움을 줘야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사무실 화이트보드에는 글로벌 우주경제 규모가 크게 쓰여 있었다. ‘2040년 27조 달러(약 3경 원).’ 우주청은 앞서 2045년까지 우주 경제 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리 본부장은 “통신, 반도체, 원자력, 제조업 등 한국이 강한 산업을 우주와 융합한다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퀀텀 리프(Quantum leap)양자역학에서 유래한 말로 천천히 상태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계단처럼 수준이 한 번에 도약하는 것을 의미.사천=김기용 kky@donga.com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
기술의 역사 속 큰 갈등은 ‘사다리 치우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술 사다리에 먼저 오른 뒤 사다리를 걷어차 후발 주자를 막는 것이다. 뒷사람은 위를 바라만 볼 뿐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다리에 오른 사람은 아래로 손을 내밀지 않는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수만 년 전 송곳에 구멍을 뚫어 귀 달린 바늘을 만드는 기술은 호모사피엔스의 필살기였다. 이런 기술을 갖지 못한 네안데르탈인은 뒤처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멸종했다. 굳이 선사시대까지 갈 필요도 없다. 한국은 지금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 핵무기 기술을 먼저 확보한 미국 소련(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핵클럽 국가들이 일찌감치 ‘핵 사다리’를 치워 버렸다. 1968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비핵보유국이 핵무기를 갖는 것을 금지했다. NPT가 전면에 내세운 것은 핵무기 위협 속에서 인류의 안전과 생존을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당위 명제는 강력했다. 더 이상 ‘핵 사다리’는 존재할 수 없게 됐다. 반면 사다리에 오른 핵클럽 국가들은 더 많은 핵실험을 했고 더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다. 이미 가진 나라는 영원히 가지고, 못 가진 나라는 영원히 못 가진다는 뜻이다. 한국은 생존의 상당 부분을 다른 나라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인공지능(AI)이 핵 사다리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AI는 핵무기 못지않게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기술로 꼽힌다. 이 기술을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가 국가 발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AI 사다리 치우기’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 유럽연합(EU)은 AI 규제 법률인 AI법을 8월 1일부터 정식 발효한다. 앞서 지난해 10월 미국도 조 바이든 대통령의 ‘AI 행정명령’을 통해 규제에 나서기 시작했다. 명분은 급속도로 발전하는 AI로부터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규제의 명분은 아름답다. 하지만 거기에 현혹돼 이면에 숨은 뜻을 놓치면 안 된다. 규제로 인해 AI 사다리가 치워지고 있는 것이다. EU와 미국의 규제로 더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미국의 AI 선두 기업이 아니라 한국 등 국가에 있는 후발 기업이다. 한국 정부는 AI 진흥과 육성을 위해 AI기본법을 마련했다. 하지만 극심한 여야 대립 속에 지난 국회는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22대 국회 재상정을 앞두고 있는데 논의가 산으로 간다는 우려가 나온다. AI 기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우선 허용, 사후 규제’ 원칙은 이미 사라졌다. 규제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진보네트워크, 정보인권연구소 등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주축이 돼 EU나 미국의 규제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다. 물론 AI가 초래할 사고를 막기 위해 규제는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AI 강국이 아니다. AI 사다리에 높이 오르지 못했다. 지금은 스스로 발목을 잡아 걷지 못하게 할 때가 아니라 서둘러 AI 사다리 위에 올라야 할 때다. 핵 사다리처럼 AI 사다리는 곧 치워진다. 아래에서 위만 바라봐야 하는 후회와 당면하게 될 생존의 위기는 핵무기 때보다 몇 배 더 클 수 있다. 김기용 산업1부 차장 kky@donga.com}
“무역장벽이 없으면 비야디가 다른 전기차 업체를 거의 다 무너뜨릴 것이다.”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올 1월 중국 경쟁사 비야디(比亞廸·BYD)를 두고 한 말이다. 2011년 한 미국 방송에서 비야디 차량을 비웃으며 “저런 차 봤나요”라고 조롱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태도다. 머스크 CEO는 지난해 자신의 조롱 영상이 다시 주목받자 이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다시 올린 후 “이 영상은 수년 전 일이며 현재 비야디의 경쟁력이 매우 강하다”고 호평했다. 12일 미국 뉴욕타임스(NYT) 또한 “과거 비야디는 전 세계 자동차 업계의 웃음거리였지만 지금 비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비야디가 비단 저가 공세로 성장한 게 아니라며 그 전략을 집중 보도했다. 비야디는 지난해 4분기(10∼12월) 사상 최초로 테슬라를 제치고 전 세계 1위 업체에 올랐다. 올해는 과감한 투자를 통해 연간 전체로도 세계 1위 업체가 되겠다는 야심이 가득하다.● 디자인 경영-자체 생산 배터리 NYT는 비야디가 중국 특유의 촌스러운 디자인을 극복하기 위해 2016년 독일 아우디의 수석디자이너였던 볼프강 에거를 영입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에거는 ‘용의 얼굴(dragon face)’이라 불리는 비야디의 독특한 전면 디자인을 선보였다. 지난해에는 랜드로버를 떠올리게 하는 SUV ‘양왕(仰望)’ 등 고급 모델도 발표했다. 에거가 합류한 후 비야디는 저가품의 이미지를 벗고 서구 유명 자동차업체 못지않은 ‘디자인 경영’을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다른 성공 비결로 배터리도 꼽았다. 비야디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는 유일한 전기차 회사다. 1995년 BYD 설립 당시 소형 배터리 제조업체로 출발했고 2003년 기존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면서 완성차 업계에 뛰어들었다. 즉, 배터리부터 전기차까지 직접 제조하는 저비용·고효율 생산 체계를 무기로 다른 업체에서 배터리를 조달하는 테슬라를 제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비야디는 현재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중국 CATL에 이은 세계 2위 업체다. 특히 비야디는 2020년 3월 길쭉하고 얇은 모양의 ‘블레이드 배터리’를 출시했다. 기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보다 상당히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같은 해 7월 블레이드 배터리를 탑재해 출시된 ‘한(漢)’은 테슬라 동급 제품 ‘모델3’보다 저렴하면서도 주행거리,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에 걸리는 시간), 충전 시간 등 성능 면에서 우수하다.● 수출 확대 노려 세계 최대 차 운반선 운영 비야디는 내수 시장에만 의존하지 않고 유럽 등 전 세계로의 수출 또한 확대하고 있다. 수출 확대의 일등 공신으로 직접 건조해 운영하는 세계 최대 자동차 운반선 ‘비야디 익스플로러 1호’가 꼽힌다. 비야디는 지난달 10일 익스플로러 1호의 첫 출항 기념식을 열었다. 또한 2년 안에 이 같은 자동차 운반선을 7대까지 늘려 해외 판매를 가속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 등으로 전 세계 물류 비용이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자체 운송 수단을 확보한 비야디가 물류비를 아껴 가격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비야디가 배터리에서부터 해외 운송 등 물류까지 자동차 공급망의 수직통합을 실현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며 “비용 면에서 우위를 점한 비야디가 테슬라를 더욱 압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비야디는 중국의 정보기술(IT) 거점인 광둥성 선전에서 적극적으로 연구 인력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직원들을 위한 ‘미니 도시’를 만들어 숙소에서 사무실까지 출퇴근용 모노레일을 설치했다. 왕촨푸(王傳福) 비야디 회장은 NYT에 “우리의 최대 자산은 기술자”라고 강조했다. 15개월 전 비야디에 합류했다는 한 연구원은 “현재 연구 인력이 내가 입사했을 당시보다 3배 늘었다”고 전했다.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지난해 홍콩의 8개 공립대에서 학교를 떠난 교수 등 교직원 수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계를 포함해 홍콩 사회 전반이 갈수록 ‘중국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 학년도(2022~2023년) 홍콩대, 홍콩교육대, 홍콩과기대, 홍콩중문대 등 홍콩의 유명 8개 공립대에서 퇴사한 교직원은 총 380명, 퇴사율은 7.6%로 나타났다. 직전 361명이 퇴사한 것보다 19명 증가한 수치로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이전까지 홍콩 공립대들에서 퇴사하는 교직원은 300명 수준으로 퇴사율은 6%를 유지해 왔다. 8개 대학 가운데 홍콩교육대의 이직률이 13%로 가장 높았다. 지난해 교직원 36명이 퇴사했는데 직전 18명의 두 배를 기록했다. 홍콩 공립대학들에 예산을 배정하는 대학보조금위원회 관계자는 “퇴직자에는 계약종료나 완료, 정년 퇴임자 등의 숫자가 모두 포함된다”면서 “지난해 퇴직자 숫자가 다소 늘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380명이 떠난 이후 대대적 신규 채용으로 퇴직자보다 더 많은 660명이 새로 채용됐다”고 설명했다. 신규채용이 대대적으로 이뤄지긴 했지만 홍콩 교육현장의 우려는 크다. 숙련된 연구자들이 떠나고 신규 인력이 급속도로 증가할 경우 기대할만한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홍콩 내에선 대학에서 교직원 이탈이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등 정치 환경 변화에 따른 것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SCMP는 홍콩 교육대 관계자를 인용해 “퇴직자가 증가한 구체적 원인은 정확한 통계가 있어야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기본적으로 교직원들의 이직률이 너무 높다”고 전했다. 또 “정치 환경의 변화로 자발적으로 홍콩을 떠나려는 젊은 학자들이 있지만 이에 대한 통계는 없다”고 덧붙였다.하지만 일부에서는 홍콩 국가보안법 등의 영향으로 대학 교직원들의 자유로운 발언이 제약되는 등 홍콩이 갈수록 ‘중국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홍콩에서는 2020년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이후 2021년 6월 반(反)중국 성향 신문인 핑궈일보가 폐간됐고, 반중 집회를 주도하던 민주 진영 인사들이 잇달아 체포됐다. 또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반중 인사들의 출마가 원천 봉쇄되는 등 홍콩의 중국화가 속도를 내고 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음력 설) 연휴가 다음 주 시작된다. 중국인들은 공식적으로 10일부터 17일까지 쉰다. 연휴 앞뒤로 휴가를 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체감 연휴’ 기간은 더 길다. 중국 당국은 매년 춘제 전 15일, 춘제 이후 25일을 합해 총 40일간을 ‘춘윈(春運)’이라는 특별운송기간으로 정해 관리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구 대이동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에는 춘윈 기간 동안 88억4700만 명이 이동했다. 중국 당국은 올해 90억 명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중국은 올해 춘제 연휴에 소비 활성화 불씨가 살아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른바 ‘춘제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지난해 춘제 역시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지하고 맞은 첫 번째여서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을 막기 위해 고향을 방문하지 말자는 움직임이 있는 등 코로나19 여파가 아직 남아 있어서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해 춘윈 때 이동 인구는 2019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최근 중국 경제는 심각한 소비 위축으로 고민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 기업들은 초저가 할인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업체인 맥도날드가 ‘10위안(약 1800원) 버거’를 내놓을 정도다. 원치 않는 할인 경쟁에 내몰린 기업들은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다시 고용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렇잖아도 높은 청년실업률로 고민 중인 중국으로서는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중국이 장기 경기침체라는 악순환의 늪에 점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소비가 살아나야 경제 회복도 기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춘제 때 역대 최대 규모인 90억 명이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은 중국 당국에 ‘춘제 효과’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춘제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많다. 우선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는 90억 명 가운데 상당수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저렴한 버스나 자가용을 이용할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고속철도나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으면서 비용을 아끼겠다는 생각이다. 이동비용을 아끼는 사람들이 다른 소비를 늘릴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이 때문에 과거 춘제 때마다 통 크게 돈을 쓰던 중국인들의 모습은 줄어들고 최대한 비용을 아끼는 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춘제 효과’와 더불어 중국은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되게 하려는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말레이시아 등 6개 나라와 비자 면제 협정을 체결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와 태국도 추가됐다. 이 같은 정책들이 효과를 내 무비자 관광객들이 대폭 증가했다는 통계도 나왔다. 하지만 국가 안보나 대만 문제와 관련된 경색된 태도가 외국인 관광객 증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지난달 24일 중국에 입국한 한국인 정모 씨(72)는 자신의 다이어리에 부착된 세계지도에 대만이 별도의 국가처럼 표시돼 있다는 이유로 억류되기도 했다.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당장 중국 여행을 포기하려는 외국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춘제가 지나더라도 중국 경제의 봄은 요원해 보인다.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지난해 중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출하량 기준)에 올랐던 애플 아이폰의 기세가 올해는 크게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중국 내 출하량 감소가 가장 큰 이유다. 애플 전문 분석가인 대만의 궈밍지(郭明錤) TF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최신 공급망 조사에 따르면 애플이 올해 주요 반도체 부품의 출하량을 지난해보다 15% 줄였다”면서 “특히 중국 내 출하량이 최근 몇 주 동안 1년 전보다 30∼40%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애플은 올해 주요 글로벌 스마트폰 브랜드 중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애플은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2억3460만 대를 출하해 삼성전자를 제치고 사상 처음 출하량 1위에 올랐다. 중국 시장에서도 출하량 기준으로 처음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 상황은 녹록지 않다. 올해 중국 시장에서 폴더블 스마트폰이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애플에는 현재 폴더블폰이 없다. 게다가 중국 토종 브랜드인 화웨이가 고가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며 아이폰의 점유율을 가파르게 잠식하고 있다. 궈 애널리스트는 “아이폰은 적어도 2025년까지는 디자인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애플의 출하량은 당분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중국 부동산 업계에 다시 ‘도미노 디폴트(채무불이행) 공포’가 불고 있다. 29일(현지 시간) 홍콩 법원이 대형 부동산 회사 헝다(에버그란데) 그룹에 대해 청산 명령을 내리자마자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완다, 소호차이나 등 다른 부동산 기업의 상황 또한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한 듯 30일 중국 주식 시장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상하이종합지수와 선전성분지수는 각각 전일 대비 1.83%, 2.70%씩 하락 마감했다. 상하이와 선전 증시의 시가총액 상위 300개 종목으로 구성된 CSI 300 지수 또한 1.78% 빠졌다. 주요 부동산 기업 주가, 홍콩에 상장된 중국 부동산기업 주가를 추종하는 지수 또한 일제히 하락했다. 중국 당국이 최근 우량 자산을 가진 부동산 회사에 해당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다른 빚을 갚는 것을 허용하기로 한 것에 대한 우려도 높다. 결국 ‘빚 돌려막기’에 불과해 기존 부동산 시장의 부실만 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1위 비구이위안도 ‘위험’ 30일 블룸버그통신은 “홍콩 법원의 헝다그룹 청산 명령으로 인해 해외 투자자의 손실이 불가피해졌고 이 과정에서 중국 경제 비관론이 더 심해질 것”이라며 “특히 부동산 시장에 대한 기대가 점점 낮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전날 홍콩 법원은 헝다그룹의 청산을 요청하는 채권단의 청원을 승인했다. 이후 시장의 시선은 지난해부터 계속 ‘디폴트 경고음’을 내고 있는 비구이위안 등으로 쏠리고 있다. 비구이위안은 매출 기준 중국 1위 회사로 중국 전역에서 3000여 건의 부동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직원만 약 7만 명으로 전체 규모는 헝다의 4배에 달한다. 비구이위안은 지난해 9월 만기를 맞은 미 달러 채권의 이자 1540만 달러(약 208억 원)를 지급하지 못했다. 경영진 임금 삭감, 자산 매각 등을 통해 간신히 급한 불을 껐지만 올해도 부동산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으면서 여전히 파산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다른 대형 회사 완다그룹도 마찬가지다. 이 그룹은 부동산뿐 아니라 미디어, 관광, 쇼핑 등 다양한 영역에 진출해 있다.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대형 쇼핑몰 10개, 상하이 고급 호텔 등을 매각했지만 부동산 분야의 부실이 그룹 내 다른 분야로 전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상당하다. 업계 10위권인 위안양(시노오션)그룹도 지난해 8월 디폴트 위기까지 내몰렸다. 특히 위안양그룹의 대주주는 중국생명보험이어서 자칫 부동산 부문의 위기가 보험 등 금융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여전하다.● “中 부동산 시장 영향 제한적” 주장도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부동산 부문의 침체가 수년간 이어질 것”이라고 비관적 전망을 내렸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홍콩 법원의 청산 결정이 중국 본토에서도 적용될지가 미지수라며 부동산 시장 전반에 큰 타격이 없을 것이란 낙관론을 제기했다. 중국 매체 관차저왕은 “중국 법원이 홍콩 법원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으면 헝다의 자산 청산 대상은 홍콩 내 자산으로 제한된다”고 전했다. 당국 또한 “부동산 침체가 제어 가능한 범위에 있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심각한 소비 절벽과 부동산 시장 침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중국이 돌파구 찾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초저가 경쟁에 뛰어들고 있고,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부동산 업체들이 빚을 내 빚을 갚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또 시장에 돈을 더 풀어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대책도 내 놨다. ● “中지갑 열자” 초저가 경쟁 돌입 펑파이 등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24일 한때 중국 맥도날드의 온라인 주문 시스템이 다운됐다. 펑파이는 “맥도날드가 15일부터 특정 제품을 10위안(약 1800원)으로 할인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면서 “이 제품들의 원래 가격은 30위안(약 5600원), 40위안(약 7500원) 정도인데 할인 폭이 워낙 크다보니 주문이 밀려 시스템이 다운됐다”고 전했다. 맥도날드는 당초 ‘10위안 버거’ 행사를 25일까지만 진행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확인되자 행사를 연장하거나 다른 초저가 제품 출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업체인 맥도날드가 중국에서 ‘10위안 버거’를 내 놓은 것은 굳게 닫힌 중국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10위안 버거’는 팔면 팔수록 맥도날드의 손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도날드가 할인 행사 연장까지 검토하는 것은 그만큼 중국의 소비 침체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올해 중국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압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다른 대형 유통업체들도 저가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알리바바의 식료품 체인인 프레시포는 최근 5000개 이상 품목의 가격을 인하하기로 했다. KFC도 20.9위안(약 3800원)짜리 햄버거 세트를 새로 선보였고, 중국 토종브랜드인 루이싱(瑞幸)커피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9.9위안에 판매하는 저가 전략을 앞세우고 있다. 할인 행사를 거의 하지 않는 애플도 중국에서 최신 스마트폰인 아이폰15를 포함해 대부분 제품을 6~8% 낮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도 나서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도 여전하다. 24일 대만 쯔유(自由)시보 등에 따르면 중국 톈진에 있는 한 부동산회사는 ‘집을 가지고 있으면 아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집을 사고 아내를 공짜로 받아라”라는 광고 문구를 내 걸었다가 벌금까지 물게 됐다. 부동산 시장이 바닥인 상황에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셈이다. 중국 저장성의 한 건설사는 주택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골드바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내걸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25일 신징보 등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은행은 수익성이 양호한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업체들에 대해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기존 부채를 갚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 동안 이런 방식의 대출로 빚을 갚는 것은 불법이었다. 당국이 ‘빚을 내 빚 갚기’를 허용한 것은 우량자산을 가진 부동산업체까지 무너질 경우 부동산 시장 침체가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신징보는 “이번 조치로 부동산업체의 자금 상황 개선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중국 당국은 경기 회복을 위해 시장에 돈을 더 풀 방침이다. 런민은행은 2월 5일부터 예금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내려 시장에 약 1조 위안(약 188조 원)을 공급할 방침이다. 지준율은 고객의 요구에 대비해 은행이 반드시 보유하고 있어야 할 현금 비율이다. 지급준비율을 낮추면 은행이 활용할 수 있는 돈이 많아져 시장에 돈이 풀리는 효과가 있다. 런민은행은 지난해 3월과 9월 각각 지준율을 0.25%포인트 인하했지만 이번에는 인하 폭이 더 크다. 그만큼 경기 부양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홍콩에서 벌어진 민사 소송에 대해 중국 본토 법원이 해당 소송에 관한 재산을 강제 집행할 수 있는 홍콩 조례가 29일부터 시행된다. 중국이 홍콩 내 사유재산에 대한 압류, 몰수, 동결 등을 실시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이에 홍콩 부유층들이 싱가포르, 스위스 등으로 재산을 이전하는 ‘홍콩 자산 엑소더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홍콩은 이제 ‘아시아 금융 허브’가 아니며 ‘허브 유적지’가 됐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24일 홍콩프리프레스(HKFP) 등 홍콩 매체들은 ‘민사 및 사업 문제에 대한 본토 판결 및 상호 집행 조례’가 29일부터 시행된다고 보도했다. 상당수 홍콩 부유층이 재산권 침해를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조례의 핵심은 홍콩 법원과 중국 법원이 각자 내린 민사 판결이나 명령을 상호 인정하는 것이다. 중국 법원이 결정하면 홍콩 내 자산을 압류하거나 몰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행정수반)은 이 조례의 시행을 두고 “홍콩이 ‘법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자화자찬했다. 동일 분쟁에 대해 홍콩과 중국에서 각각 소송을 제기하지 않도록 소송 당사자의 편의성을 높여 주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사실상 홍콩 자산에 대한 중국의 직접 통제가 시작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주요 기업이 속속 홍콩을 떠나는 흐름도 뚜렷하다. 지난해 홍콩 증시에서는 55개 기업이 상장을 폐지했다. 기업공개(IPO)는 2019년과 비교해 10% 수준으로 급감했다. 중국 본토에서도 홍콩보다 싱가포르를 훨씬 매력적으로 보고 있다. 2022년 중국인의 싱가포르 부동산 구입은 3년 전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국인의 싱가포르 이민 문의 또한 83% 늘었다. HKFP는 재산권 침해 우려를 넘어 홍콩과 중국 사이에 모든 사법 관련 정보가 완전히 공유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19년 대규모 반중 시위 또한 홍콩 범죄인을 중국 본토로 직접 송환할 수 있는 소위 ‘송환법’ 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발발했다. 당국은 송환법 도입을 철회했지만 이후 반(反)중국 성향의 홍콩 인사를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반중 활동에 무기징역을 가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 또한 2020년 도입했다. 이 와중에 양국의 사법 체계까지 통합을 추진한다면 사실상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가 무의미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향후 50년간 일국양제를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13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반(反)중국 성향인 집권 민진당 소속 라이칭더(賴淸德) 후보가 당선된 것에 거듭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중국이 대만에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라이 당선인이 5월 20일 집권 후에도 반중 행보를 계속하면 추가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시사했다. 23일 중국의 국정자문기구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政協)’가 발행하는 기관지 인민정협보는 최근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열대 과일의 일종인 ‘빈랑(檳榔)’, 갈치 등 대만산 농수산물 34종에 부여하던 무관세 특혜를 중단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자유무역협정인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자체가 폐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2010년 대만과 체결한 ECFA에 따라 2013년 1월부터 대만산 267개 품목에 대한 관세 감면 및 무관세 혜택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대만산 제품이 다른 나라 제품보다 싼값에 거대 중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고 대만 경제에도 긍정적 영향이 뒤따랐다. 그러나 중국은 총통 선거 직전인 올해 1월 1일부터 대만산 화학제품 12개 품목에 대해 관세 감면을 중단했다. 같은 달 9일에는 대만산 농수산물, 기계류, 자동차 부품, 섬유 등에 대한 관세 감면을 중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농수산물 34종에 대한 관세 특혜 중단 검토는 물론이고 경제협정 폐기 가능성까지 거론한 것이다. 인민정협보는 “민진당이 대만 독립 입장을 고수하는 등 양안 관계를 부정하면서 대만 동포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의 경제 보복은 ‘자식기과(自食其果·자기가 저지른 죄악의 결과를 자기가 받는다는 의미)’의 측면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라이 당선인과 민진당이 반중 행보를 철회하면 경제 보복 또한 풀어주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중국은 특히 라이 당선인이 1992년 양국이 합의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두 나라의 명칭은 각자 편의대로 한다는 ‘92 공식’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민정협보는 “‘92 공식’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경제 보복) 문제의 적절한 해결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나우루’와 ‘리투아니아’는 모두 나라 이름이다. 평생 한 번 가보는 것은 고사하고 이름조차 들어볼까 말까 한 이 나라들이 최근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와 관련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서태평양 섬나라인 나우루는 인구가 1만여 명으로 국토 면적은 서울 용산구 정도다. 나라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지만 어쨌든 하나의 국가다. 나우루는 대만 총통 선거에서 반(反)중국 성향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 후보가 당선되자마자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회복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나우루의 단교 선언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대만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나우루의 단교 선언으로 대만 수교국은 바티칸 파라과이 과테말라 아이티 팔라우 등 전 세계 12개 나라로 줄어들게 됐다. 반중 성향인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 집권 8년 동안 10개국이 대만과 단교했다. 서방 언론들은 ‘차이나 머니’를 앞세운 중국의 작업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지구상에서 대만 수교국이 전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의 후속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이 나우루의 경제 발전을 돕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현대식 부두를 건설해 외부와 연결을 확대하고 경제가 발전하도록 할 예정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대사관이 개설되기도 전에 상주 특파원까지 파견했다. 나우루를 잃은 대만은 유럽의 리투아니아에 공을 들이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인구 270만 명으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와 함께 ‘발트3국’으로 불리는 국가다. 리투아니아는 2021년 11월 수도 빌뉴스에 ‘주리투아니아 대만대표처’를 설치하면서 중국과 갈등이 커진 상태다. 중국은 리투아니아 주재 중국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고 양국 관계를 대리대사급으로 격하했다. 또 리투아니아 수출품 통관을 막는 등 경제 보복을 했다. 리투아니아도 중국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권고하는 등 맞대응에 나섰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낮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다. 대만은 반중 행보를 걷는 리투아니아에 최근 12억 달러(약 1조6100억 원)를 건넸다. 리투아니아가 중국과 ‘맞짱’ 뜬 국가라는 점에서 보답 차원에서 금융 원조를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대만 당국은 이 돈이 경제협력 강화를 위한 ‘중동·유럽 금융기금’과 ‘중동·유럽 투자기금’ 설립을 위한 돈이라고 해명했다. 대만 총통 선거가 끝나자마자 뜬금없이 ‘나우루’와 ‘리투아니아’가 소환되는 모습은 양안 관계 악화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은 지금보다 더 집요하게 대만을 압박할 것이다.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장관)은 “중국의 정보 조작 등 ‘인지전’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대 대만 지도자 가운데 반중 성향이 가장 강한 것으로 평가받는 라이 당선인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중국의 아픈 곳을 찌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볼 것이다. 이 같은 양안 갈등은 예측이 어렵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한눈팔고 있다가는 날아오는 불똥에 다칠 가능성이 높다. 가까이 있을수록 위험 확률이 높아진다. 중국 대만과 얽히고설킨 한국은 작은 불똥에 큰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중국과 대만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중국 옆에 사는 한국의 영원한 숙명일 수도 있겠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중국에서 중산층 가정의 ‘상징’, 자녀들의 ‘필수 교양’으로 여겨졌던 피아노의 판매량이 급감했다. 부동산 시장 부실 등으로 좀처럼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한때 중국의 고도 성장을 뒷받침했던 중산층마저 지갑을 닫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수 부진, 경기 추가 둔화의 악순환을 야기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상당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강도 높은 방역 정책의 여파 등으로 중국 인구가 2년 연속 감소한 가운데 젊은 노동인구가 줄고 고령층이 증가하면서 중국 경제의 ‘미부선로(未富先老·부유해지기 전에 먼저 늙는다)’ 위기도 현실화하고 있다. 중국 경제의 장기적 불안 요인이 누적되고 있는 모습이다.● 지갑 닫은 중산층… 피아노 판매 급감 17일 지무(極目)신문 등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피아노 판매량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3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역은 4년 전 대비 10% 수준으로 급감했다. 생활 수준이 높은 산둥성 지난의 한 피아노 판매점은 “2019년까지 연간 최소 500대 이상의 피아노를 팔았지만 지난해에는 50대도 팔지 못했다”고 공개했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단 1대만 팔았다고도 했다. 중국악기협회에 따르면 중국 최대 피아노 제조기업 주강피아노의 지난해 2분기(4∼6월) 영업이익 또한 한 해 전보다 149.2% 감소했다. 2022년 초까지 중국 전체의 피아노 교습소는 약 65만 개, 피아노 판매점은 2만5000개가 있었지만 지난해 말까지 약 30%가 폐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의 피아노 산업 전체가 붕괴 직전”이라고 하소연했다. 중국의 피아노 판매량은 8, 9%대 고도 성장이 일상이었던 200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늘었다. 고성장으로 소득이 늘어난 중산층은 너나 할 것 없이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특히 피아노가 각광받았다. 2008년 교육 당국 또한 중·고교 입학시험에서 피아노를 일정 수준 이상 치는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2017∼2019년 중국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은 약 4000만 명에 달했다. 당시 연간 피아노 판매량 또한 40만 대였다. 같은 기간 미국의 피아노 판매량(3만 대)보다 13배 이상 많았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이런 활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신생아 1000만 명 밑, 2년 연속 인구 감소 중국 내 피아노 판매량 감소를 두고 중산층이 일시적으로 지갑을 걸어 잠가서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피아노 레슨을 받을 자녀 수 자체가 줄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중국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심각하다. 17일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출생 인구는 902만 명, 사망자 수는 1110만 명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총인구는 2022년보다 208만 명 감소한 14억967만 명으로 집계됐다. 중국은 2022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61년 이후 61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 감소를 경험했다. 이 감소세가 2년 연속 이어졌다. 특히 신생아 수가 2022년(956만 명)에 이어 2년 연속 1000만 명 아래로 떨어지면서 인구 감소를 견인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추세라면 인구 14억 명 선이 무너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또 노인 비중은 늘고 생산가능인구 비중은 감소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14.9%에서 지난해 15.4%로 늘었다. 반면 노동연령(16∼59세) 인구의 비중은 61.3%로 한 해 전보다 0.7%포인트 줄었다. 이날 발표된 2023년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5.2%였다. 당국 목표치인 ‘5% 안팎’을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15일 “중국이 인구 변화와 국제적 신뢰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올해 성장률은 4%대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중국에서 중산층 가정의 ‘상징’, 자녀들의 ‘필수 교양’으로 여겨졌던 피아노의 판매량까지 급감했다. 부동산 시장 부실 등으로 좀처럼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한때 중국의 고도 성장을 뒷받침했던 중산층마저 지갑을 닫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수 부진, 경기 추가 둔화의 악순환을 야기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상당하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강도 높은 방역 정책의 여파 등으로 중국 인구가 2년 연속 감소한 가운데 젊은 노동인구가 줄고 노령층이 증가하면서 중국 경제의 ‘미부선로(未富先老·부유해지기 전에 먼저 늙는다)’ 위기도 현실화하고 있다. 중국에서 경제의 장기적 불안 요인이 누적되고 있는 모습이다.● 지갑 닫은 중산층… 피아노 판매 급감17일 지무(極目)신문 등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피아노 판매량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3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역은 4년 전 대비 10% 수준으로 급감했다. 경제가 발달한 산둥성 지난의 한 피아노 판매점은 “2019년까지 연간 최소 500대 이상의 피아노를 팔았지만 지난해에는 50대도 팔지 못했다”고 공개했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단 1대만 팔았다고도 했다. 중국악기협회에 따르면 중국 최대 피아노 제조기업 주강피아노의 지난해 2분기(4~6월) 영업이익 또한 한 해 전보다 149.2% 감소했다. 2022년 초까지 중국 전체의 피아노 교습소는 약 65만 개, 피아노 판매점은 2만5000개가 있었지만 지난해 말까지 약 30%가 폐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의 피아노 산업 전체가 붕괴 직전”이라고 하소연했다. 중국의 피아노 판매량은 8, 9%대 고도 성장이 일상이었던 200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늘었다. 고성장으로 소득이 늘어난 중산층은 너나 할 것 없이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특히 피아노가 각광받았다. 2008년 교육 당국 또한 중·고교 입학시험에서 피아노를 일정 수준 이상 치는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2017~2019년 중국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은 약 4000만 명에 달했다. 당시 연간 피아노 판매량 또한 40만 대였다. 같은 기간 미국의 피아노 판매량(3만 대)보다 13배 이상 많았다.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이런 활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신생아 1000만 명 밑, 2년 연속 인구 감소중국 내 피아노 판매량 감소를 두고 중산층이 일시적으로 지갑을 걸어잠궈서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때 피아노 등 클래식 음악 레슨 열기를 불러왔던 자녀 수 자체가 줄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심각하다. 17일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출생 인구는 902만 명, 사망자 수는 1110만 명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총 인구는 2022년보다 208만 명 감소한 14억 967만 명으로 집계됐다. 중국은 2022년 통계에서 1961년 이후 61년 만의 첫 인구 감소를 기록했다. 이 감소세가 2년 연속 이어졌다. 특히 신생아 수가 2022년(956만 명)에 이어 2년 연속 1000만 명 아래로 떨어지면서 인구 감소를 견인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추세라면 인구 14억 명 선이 무너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노인 인구 비중은 늘고 노동 인구는 감소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14.9%에서 지난해 15.4%로 늘었다. 반면 노동연령(16∼59세) 인구의 비중은 61.3%로 한 해 전보다 0.7%포인트 줄었다.국가통계국은 지난해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5.2%를 기록했다며 당국 목표치인 ‘5% 안팎’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15일 “중국이 인구 변화와 국제적 신뢰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올해 성장률은 4%대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