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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파월 중 누가 미국에 더 적(敵)인지 모르겠다.” “파월은 ‘(금리 인하가) 너무 늦은 남자’(Mr. too late)이자 ‘중대한 실패자’(major loser)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 자신의 집권 1기 때 직접 발탁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게 지금껏 퍼부은 독설의 일부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부터 자신의 금리 인하 요구에 미온적인 파월 의장에게 강한 불만을 나타내며 ‘배신자’ ‘멍청이’ ‘무능하다’란 표현을 썼다. 집권 2기에 들어서는 더 노골적으로 ‘해임’을 강조하며 위협한다. 배임 같은 중대 과실이 없다면 법적으로 4년 임기(연임 가능)가 보장된 연준 의장을 해임할 권한이 자신에게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내쫓겠다고 외친다. 지난달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해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이로 인한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을 우려한 월가 투자자들이 대거 매도에 나서 당시 뉴욕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경기 부양’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대통령과 ‘물가 안정’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바라보는 연준은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관계다. 많은 미국 대통령들이 연준 의장과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다. 다만 연준 의장, 그것도 자신이 임명한 연준 의장에게 이토록 노골적으로 사퇴를 강요한 백악관 주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유일하다. 두 사람이 왜 사사건건 부딪치는지, ‘세계 최고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과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연준 의장의 갈등 역사는 어떤지 알아본다.● “고금리는 惡” vs “원리원칙 중요”‘부동산 사업가’ 출신 트럼프 대통령과 ‘법률 전문가’인 파월 의장의 인생 역정을 살펴보면 두 사람이 ‘저금리’라는 사안을 두고 왜 대립하는지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25세 때인 1971년 부동산 개발회사 트럼프그룹의 대표가 됐다. 은행 등 금융권에서 빌린 돈으로 건물과 땅을 대거 사들이고 개조한 후 비싸게 되파는 방식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에게 ‘고금리’는 사업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정치인이 된 뒤에도 고금리는 자신의 주 지지층인 노동자들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방해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고금리를 ‘악(惡)’으로 여긴다는 건 언론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기준금리가 5.50%였던 2023년 9월 NBC 방송 인터뷰에서 “금리가 너무 높아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 파월 의장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법조인이 된 후 뉴욕 월가 투자은행 딜런리드, 사모펀드 칼라일그룹 등에서 인수합병(M&A) 및 자금조달 업무의 관리 감독을 주로 담당했다. 깐깐하고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태도가 몸에 밸 수밖에 없다. 2011년 12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공화당원인 파월을 연준 이사로 지명했다. 현직 대통령이 당적이 다른 인물을 연준 이사로 발탁한 건 1988년 공화당 소속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민주당원이었던 존 라웨어 전 이사를 기용한 지 23년 만이어서 큰 관심을 모았다. 당시 민주당 일각에서는 파월의 당적, 그가 경제학 전공자가 아닌 법조인 출신이란 이유로 그의 기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오바마 전 대통령은 파월이 정치적 이념을 앞세우지 않는 데다 실용주의적이고 온건한 성향이라는 점을 높이 샀다. 다음 해 5월 이사 임기를 시작한 파월은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기 위해 1년에 8차례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늘 다수 의견에 따르는 투표를 하며 연준에 무난히 녹아들었다. 2017년 11월 첫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대통령은 연임이 예상되던 재닛 옐런(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 당시 연준 의장을 교체하고 당적이 같은 파월을 연준의 새 수장으로 낙점했다. 그는 파월이 똑똑하고 헌신적이며 연준에 필요한 모든 지도력을 갖췄다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파월 의장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금리를 낮추지 않자 노골적으로 비난했고, 해임도 거론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파월 의장은 2018년 한 해에만 네 차례 금리를 올렸다. 2019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은 분노했다. 그는 파월 의장을 해임할 방법을 찾아내라고 참모진을 들볶았다. 해고가 어렵다는 것을 알자 ‘의장’에서 ‘이사’로 강등시키겠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폴 볼커,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옐런 등 4명의 전직 연준 의장은 2019년 8월 월스트리트저널(WSJ) 공동 기고문을 통해 “정치적 필요성에 따른 통화정책은 경제 성과를 악화시킨다. 중앙은행이 단기적인 정치 이익에서 독립하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며 맹목적인 금리 인하 요구를 멈추고 연준의 독립성을 보장하라고 비판했다. ● 집권 2기에 더 거센 충돌 파월 의장은 바이든 전 대통령 시기인 2022년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2024년 대선 과정에서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는 2020년 대선 과정의 앙금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대선을 앞두고 연준에 적극적인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해 연준은 경기 부양 차원에서 금리를 내리긴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대선에서 패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이 금리를 더 빨리, 더 많이 내렸어야 했다’며 거듭 불만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연준 사람들보다 내 직감이 더 낫다. 대통령이 최소한 거기(연준)에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연준 인사에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한 달 후엔 “파월이 카멀라 해리스(당시 부통령 겸 민주당 대선 후보)를 돕기 위해 금리를 내렸다”는 근거 없는 주장도 폈다. 대선 승리 후에는 2026년 5월 파월 의장의 임기 만료 전에 미리 후임 의장을 지명하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1월 재집권 뒤에도 노골적으로 파월 의장의 해임을 거론했다. 그는 지난달 17일 트루스소셜에 “파월의 해임을 더 미룰 수 없다”고 썼다. 같은 날 취재진에게도 “내가 그를 내쫓고 싶다면 아주 빠르게 그렇게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전날 파월 의장이 한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가 미 경제를 물가와 실업률 안정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파월 의장은 “통화정책의 결정은 전적으로 경제지표에 달려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달 22일 “파월을 해고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뉴욕 증시의 급락, 나아가 금융 시장 전반의 혼란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일주일 만인 29일 취임 100일 집회에서 파월을 “정말 일을 잘 못하는 연준 인사”라고 지칭했다. 또 “난 그보다 금리에 대해 훨씬 많이 안다”고 비판을 재개했다. 파월 의장의 3연임 가능성도 사라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지난달 14일 “백악관이 올가을경 파월의 후임자를 찾는 면접을 시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루먼-카터도 연준과 불화트럼프 대통령 외에도 연준과 불화를 겪은 대통령은 많다. 1950년대 초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참전 여파 등으로 정부 지출이 치솟자 연준에 금리 인하를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나 윌리엄 마틴 당시 의장은 이를 거부했다. 마틴 전 의장은 취임 첫해인 1951년 연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협약도 재무부와 맺었다. 1913년 연준 출범 후 38년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연준 최초의 흑인 이사 앤드루 브리머는 이런 마틴 전 의장을 ‘연준의 구원자(Savior of the Fed)’라고 극찬했다. 마틴 전 의장은 “중앙은행의 역할은 파티가 무르익을 때 ‘펀치볼(punch bowl·파티 때 음료를 담는 커다란 그릇)’을 치우는 것이다”란 명언도 남겼다. 경기 호황으로 모두가 흥청일 때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해 거품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까지도 전 세계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마틴 전 의장은 19년간 최장수 연준 수장을 지내며 트루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까지 5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이런 마틴 전 의장과 자주 비교되는 인물은 아서 번스 전 의장이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베트남전 비용을 조달하려고 막대한 달러를 찍어냈다. 이로 인해 달러 가치가 급락한 ‘닉슨 쇼크’가 발생했지만 연준은 통화팽창 정책을 폈다. 번스 전 의장이 재선을 꿈꾸는 닉슨 전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한 탓이다. 닉슨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1973년 1차 오일쇼크까지 겹치면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일어난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왔다. 여기에 ‘워터게이트 도청 사태’가 터지며 닉슨 전 대통령은 결국 하야했다. 번스 전 의장 또한 종종 ‘최악의 연준 의장’으로 꼽히는 치욕을 당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유명한 볼커 전 의장도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볼커 전 의장이 취임한 1979년에도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 후폭풍에 시달렸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고 경기를 살리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당시 볼커 전 의장은 물가 안정을 택했다. 그는 취임 두 달 만인 1979년 10월 기자회견을 통해 “인플레이션이란 용(龍)을 잡겠다”고 외쳤다. 당시 11%였던 기준금리를 19세기 남북전쟁 이후 최고치인 20.5%까지 끌어올렸다. 초고금리에 반발한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워싱턴 연준 본부로 와 오물까지 투척했지만 꿈쩍하지 않고 금리 인상을 고수했다. 그는 결국 물가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취임 초 14%까지 올라갔던 소비자물가가 3, 4%대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또한 재선을 앞둔 1984년 여름 볼커 전 의장에게 “대선 전까지 금리를 올리지 말라”는 식으로 압박했다. 볼커 전 의장은 두 번째 의장 임기를 두 달 남겨둔 1987년 6월 대통령에게 사퇴 의사를 밝혔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말리지 않고 그린스펀 전 의장을 후임자로 발탁했다.● ‘트럼프 관세’도 갈등 불씨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으로 연준과 행정부의 불화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관세가 고물가와 저성장을 동시에 부추길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또 이런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연준이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처럼 ‘금리 인하 결정’을 내리는 건 쉽지 않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끊임없는 ‘연준 흔들기’가 결국 그 자신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최근 미국 주식, 채권, 달러 가치의 하락에서 보듯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 관세 정책, 연준에 대한 유례없는 위협은 미 경제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자산의 추가 하락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은 “파월 의장의 해임 여부에 관계없이 대통령이 계속 연준 의장의 권한을 흔든다면 연준이 독립적으로 적절한 통화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금융시장 전반의 의구심이 커진다”고 진단했다. 송민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의 미국 장기 국채가격 하락(국채 수익률 상승)으로 설사 기준금리를 낮춘다고 해도 그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는 통상 국채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통화정책의 신뢰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상태라 설사 기준금리를 내려도 기대만큼 국채 수익률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이 약해지면 장기적으로는 관세전쟁보다 훨씬 큰 피해가 미 경제에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집권 공화당의 존 케네디 상원의원(루이지애나) 역시 최근 NBC 방송에 출연해 “어느 대통령도 연준 의장을 해임할 권한은 없다”며 파월 의장을 두둔했다. 연준과 파월 의장이 무조건 ‘선’, 트럼프 대통령이 무조건 ‘악’은 아니다. 연준 역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제기된 정책 실기(失期)를 했다. 연준은 팬데믹 초기인 2021년 7월 “인플레이션은 일시적 현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2022년 6월 미국 소비자물가가 9.1%에 달할 정도로 치솟았다. 또 “금리 인상이 늦어 인플레이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경기 침체 시기마다 부양을 위해 택한 대규모 양적 완화가 ‘양극화’라는 부작용을 야기했다는 지적도 많다. 다만 로스 레빈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경제매체 배런스에 “연준이 완벽하지 않고 실수도 종종 저질렀지만 이런 결함은 수정하면 되는 것이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개입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미국 의회가 자국의 조선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법안을 지난달 30일 초당적으로 발의했다. 지난해 12월 당시 공화당 하원의원이던 마이클 왈츠 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주도로 118대 의회 종료 직전 발의된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과 항만시설법(SHIPS for America Act)’을 보강해 119대 상·하원에서 재발의한 것이다. 이번 법안에는 기존 법안의 핵심 내용이 대부분 포함됐다. 우선 미국에서 만든 국제 상선을 현 80척에서 향후 10년 내 250척으로 늘려 ‘전략상선단’을 운용하기로 했다. 현재 국제무역에 쓰이는 중국 선박이 5500척에 달하지만 미국 선박은 80척에 불과하단 점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에선 국가안보와 경제 자립을 위해 이 같은 중국과의 격차를 신속히 해소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번 법안에는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과 협력해 선박을 건조하고, 해상 수송 능력을 보강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법안이 통과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업 관련 기술과 생산 역량을 지닌 한국이 혜택을 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물량의 일정 비율을 미 국적 선박으로 운송하도록 의무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LNG 운반선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미 조선업계에서는 미국산 운반선이 한국산보다 2∼4배 비싸 “자체 생산을 통해선 사실상 달성 불가능한 목표”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해운 전문지 로이드리스트가 보도했다. 한국 조선업계로서는 LNG 운반선 수주를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이번 법안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서명한 ‘미국의 조선산업 재건’ 행정명령에 따라 마련됐다. 상원에서는 민주당 마크 켈리·공화당 토드 영 의원이, 하원에서는 민주당 존 개러멘디·공화당 트렌트 켈리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현대자동차, 일본 소프트뱅크와 도요타자동차, 미국 엔비디아 존슨앤드존슨 제너럴일렉트릭(GE) 등 미국 투자 계획을 밝힌 글로벌 기업 경영자 20여 명을 워싱턴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이들의 투자 결정을 호평하며 자신의 관세 정책이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을 가장 먼저 거명하며 “고맙다”고 치하했다. 현대차의 210억 달러(약 30조 원) 투자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며 “아름답다(beautiful)”고 추켜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 자리에 있지 않은 삼성조차도 관세를 이겨내기 위해 매우 큰 공장을 (미국에) 건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하루 전 삼성전자가 올 1분기(1∼3월)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밝힌 관세 대응 방안을 거론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콘퍼런스콜에서 ‘관세 불확실성에 따른 대응 전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박순철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VD(TV, 가전) 사업 등은 필요시 글로벌 제조 거점을 활용한 일부 물량의 생산지 이전을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삼성은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세가 강한 미국 남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세탁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망간, 흑연, 티타늄 등 우크라이나 내 희토류는 물론이고 원유와 천연가스 등을 공동 개발한 후 이익금의 일부를 ‘우크라이나 재건 기금’으로 조성하는 ‘광물 협정’에 서명했다. 협정문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 재무부가 내놓은 관련 보도자료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전면 침공(full-scale invasion)’으로 발발했다며 러시아의 책임을 묻는 내용이 담겼다. 희토류는 전기차, 풍력 터빈, 태양광 패널 등의 핵심 재료다.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희토류 가치가 26조 달러(약 3경7180조 원)에 달한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대부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동부에 매장돼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내각 회의에서도 “미국이 (우크라이나 광물 채굴) 현장에 있으면 나쁜 행위자(러시아)들이 오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보수 성향 케이블 ‘뉴스네이션’이 개최한 타운홀 행사에선 ‘광물 협정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억제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아마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이번 협정과 미국의 군사 지원을 연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인 안전 보장은 명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고, 협정 타결이 실제 휴전으로 이어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美-우크라 모두 윈윈” 이날 율리야 스비리덴코 우크라이나 제1부총리 겸 경제장관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워싱턴 백악관에서 광물 협정에 서명했다. 스비리덴코 부총리는 “우크라이나의 안보, 복구, 재건에 대한 미국의 헌신을 반영한 협정”이라며 “두 나라 모두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도 “역사적인 경제 파트너십”이라며 “끔찍하고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도록 촉진하는 것에 미국이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협정은 올 2월 말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워싱턴 백악관 회담이 파행으로 끝난 지 두 달 만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지난달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바티칸 장례식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이 15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독대하며 그를 설득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 등이 전했다. 두 나라는 재건 기금을 5 대 5의 비율로 공동 관리하기로 했다. 미국의 기존 군사 지원에 대한 보상 방안, 전쟁 후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의 운영 및 소유권을 미국이 넘겨받는 방안 등은 협정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협정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군사 지원을 약속받고 미국은 우크라이나 광물 개발의 우선권을 갖게 돼 ‘윈윈’이라고 진단했다. ● ‘트럼프 측근’ 그레이엄, 러 제재법 발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협정 타결을 주요 치적으로 적극 홍보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인디펜던트 등은 이번 협정으로 세계 희토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가 장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협정 타결 하루 전인 지난달 29일 재집권 100일을 맞은 그는 관세 정책 등에 대한 내외부 비판 등으로 지지율이 줄곧 하락세였다.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회사 입소스가 같은 달 30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이 56%로 ‘지지한다’(36%)보다 20%포인트 높았다. 이는 그의 집권 1, 2기를 통틀어 최저 수준의 지지율이라고 로이터통신이 분석했다. WSJ에 따르면 집권 공화당의 대표적인 친(親)트럼프 인사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또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을 거부하거나 우크라이나를 다시 침공한다면 러시아와 그를 지지한 국가 모두를 제재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러시아산 원유, 천연가스, 우라늄 등을 구매하는 국가에 500%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이 담겼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백악관으로 현대차 등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한 주요 글로벌 기업 수장들을 대거 초청해 이들의 투자 결정을 칭찬하며 자신의 관세정책이 성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연 ‘미국 투자’ 행사에 주요기업 최고경영자(CEO) 20여명을 소집해 “여기에 참석한 기업들은 모두 합쳐 2조 달러(약 2863조 원) 이상의 신규 대미 투자를 발표했다”라며 “(다른 기업들까지 합친) 전체적인 투자 규모는 8조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전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전 (조 바이든) 행정부는 4년간 1조 달러 이하를 (투자 유치) 했을 것“이라면서 자신이 취임한 뒤 관세와 다른 인센티브들을 제공한 것이 투자 증가의 이유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이 자리에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삼성조차도 관세를 이겨내기 위해 매우 큰 공장을 건설할 것이라고 오늘 아침에 발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재차 언급했다. 이날 앞서 열린 각료회의에서도 그는 “회의 직전 삼성이 관세 때문에 미국에 대규모 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자리에 있던 CEO 중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을 가장 먼저 거명해 “땡큐”라며 현대차가 지난달 백악관에서 발표한 210억 달러(약 30조 원) 투자를 거론했다. 그는 해당 투자의 하나로 진행되는루이지애나주의 제철소 건설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며 “호세, 땡큐, 뷰티풀(beautiful)”이라고 재차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마주 보고 앉아있던 뮤뇨스 사장은 일어나서 손을 흔들면서 화답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엔비디아, 존슨앤드존슨, 일라이릴리, 제너럴일렉트릭(GE), 소프트뱅크, 도요타자동차 등 참석한 기업을 일일이 거명하고 그들의 투자 실적을 언급하며 “땡큐”, “대단하다(amazing)”, “환상적이다(fantastic)” 등 칭찬을 쏟아냈다. 이어 “이들의 투자는 (미국) 정신, 관세, 인센티브 때문”이라고 강조했다.그는 정작 미국 GDP가 1분기에 역성장한 것에 대해서는 “수입, 재고, 정부 지출 등 왜곡 요인을 제외한 핵심(core·근원) GDP는 3%가 올라갔다”라며 전임 바이든 정부 탓으로 돌렸다. “이어 우리는 1월 20일에 정권을 인수했으며 내 생각에 여러분은 우리에게 좀 더 시간을 줘야 한다”라며 미국의 제조업 부흥 정책이 성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한복을 입고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미국 코리아타운의 ‘한인 할머니들’이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경기에서 ‘승리의 부적’으로 떠올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아이스하키 경기장 크립토닷컴아레나에서 열린 두 차례 경기에서 미 국가를 연주한 ‘코리아타운 시니어·커뮤니티 센터(KSCCLA)’의 하모니카 교실 회원 14명이 그 주인공이다. NHL 소속 LA킹스는 21일(현지 시간) 홈구장에서 열린 에드먼턴 오일러스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 국가 연주자로 이들을 초청했다. 백발의 연주단원들이 “시작!” 하는 구령과 함께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2만여 관중도 따라 제창했다. 이날 6 대 5로 극적인 승리를 거둔 LA킹스는 하모니카 연주단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식 X 계정에 올렸다. “다음 경기에도 할머니들을 초청해 달라”는 LA킹스 팬들의 댓글이 쇄도해 구단 측은 23일 플레이오프 2차전에도 이들을 초청했다. 이번에 단원들은 LA킹스 유니폼을 입고 연주했고, 결과는 6 대 2로 또다시 승리였다. 두 번 모두 무대에 섰던 도나 리 씨(80)는 워싱턴포스트(WP)에 “우리는 아이스하키를 모르지만, 첫 경기에서 승리하는 순간 소리를 질렀다”며 즐거워했다. 2013년 개관한 KSCCLA는 1500명이 이용하는 지역 기반 비영리 단체다. 이곳에서 7년 전 문을 연 하모니카 교실은 음력 설 행사와 LA 시의회 등 다양한 곳에서 하모니카 연주를 해 왔다. LA킹스와의 인연은 3월 23일 시작됐다. 이날 LA킹스가 주최하는 연례 행사 ‘코리아타운의 밤’에 KSCCLA의 국가 연주를 부탁한 것이다. LA킹스는 관중들이 색다른 연주에 호응을 보인 데다 이날 열린 경기에서도 승리를 거두자 플레이오프전에도 이들을 또다시 초청했다. 다만, LA킹스는 KSCCLA 하모니카 교실 회원들이 국가를 연주한 세 경기에서 내리 이겼지만 다른 두 경기에선 패해 현재 플레이오프 5차전을 앞두고 있다. LA타임스는 “하모니카가 킹스의 포스트시즌 ‘행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박관일 KSCCLA 사무국장은 스포츠매체 ESPN에 “늘 이민자로 여겨졌던 우리가 ‘한국계 미국인’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대규모 관중 앞에서 공연할 수 있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한복을 입고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미국 코리아타운의 ‘한인 할머니들’이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경기에서 ‘승리의 부적’으로 떠올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아이스하키 경기장 크립토닷컴아레나에서 열린 두 차례 경기에서 미 국가를 연주한 ‘코리아타운 시니어·커뮤니티 센터(KSCCLA)’의 하모니카 교실 회원 14명이 그 주인공이다. NHL 소속 LA킹스는 21일(현지 시간) 홈구장에서 열린 에드먼턴 오일러스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 국가 연주자로 이들을 초청했다. 백발의 연주단원들이 “시작!” 하는 구령과 함께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2만여 관중들도 따라 제창했다. 이날 6대 5로 극적인 승리를 거둔 LA킹스는 하모니카 연주단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식 X 계정에 올렸다. “다음 경기에도 할머니들을 초청해 달라”라는 LA킹스 팬들의 댓글이 쇄도하면서 구단 측은 23일 플레이오프 2차전에도 이들을 초청했다. 이번에 단원들은 LA킹스 유니폼을 입고 연주했고, 결과는 6대 2로 또다시 승리였다. 두 번 모두 무대에 섰던 도나 리 씨(80)는 워싱턴포스트(WP)에 “우리는 아이스하키를 모르지만, 첫 경기에서 승리하는 순간 소리를 질렀다”라며 즐거워했다. 2013년 개관한 KSCCLA는 1500명이 이용하는 지역 기반 비영리단체다. 이곳에서 7년 전 문을 연 하모니카 교실은 음력 설 행사와 LA 시의회 등 다양한 곳에서 하모니카 연주를 해왔다. LA킹스와의 인연은 3월 23일 시작됐다. 이날 LA킹스가 주최하는 연례행사 ‘코리아타운의 밤’에 KSCCLA의 국가 연주를 부탁한 것이다. LA킹스는 관중들이 색다른 연주에 호응을 보인 데다 이날 열린 경기에서도 승리를 거두자 플레이오프전에도 이들을 또다시 초청했다.다만, LA킹스는 KSCCLA 하모니카 교실 회원들이 국가를 연주한 두 경기에서 내리 이겼지만 다른 두 경기에선 패해 현재 플레이오프 5차전을 앞두고 있다. LA타임스는 “하모니카가 킹스의 포스트시즌 ‘행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라고 전했다. 박관일 KSCCLA 사무국장은 스포츠매체 ESPN에 “늘 이민자로 여겨졌던 우리가 ‘한국계 미국인’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대규모 관중 앞에서 공연할 수 있어 감격스럽다”라고 말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소년 소녀 여러분, 경청하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이 올 1월 8일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남긴 영상 메시지가 27일(현지 시간) 공개됐다. 이날 이탈리아 매체 ‘오기’는 교황이 폐렴으로 입원하기 직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경청 워크숍’에 보내기 위해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속 교황은 생전 거처였던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편안한 흰색 옷차림으로 화면을 바라보며 경청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누군가 여러분에게 말할 때, 그들이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다음 마음이 내키면 답하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청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사람들을 자세히 봐라. 제대로 듣지 않는다”며 “말을 듣다 말고 중간에 대답하곤 하는데, 평화에 도움 되지 않는 자세”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며 “들으라, 거듭 들으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전에도 “우리는 귀 기울이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며 경청이 소통의 조건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바티칸뉴스에 따르면 교황청 국무원장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25∼27일 ‘청소년 희년’을 맞아 바티칸을 찾은 각국 청소년을 2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교황의 애도 미사에 초청했다. 이날 미사를 집전한 파롤린 추기경은 “젊은이들이 자비에 대한 교황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세계 평화의 길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소년 소녀 여러분, 경청하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합니다.”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 1월 8일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남긴 영상 메시지가 27일(현지 시간) 공개됐다. 이날 이탈리아 매체 ‘오기’는 교황이 폐렴으로 입원하기 직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경청 워크샵’에 보내기 위해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속 교황은 생전 거처였던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편안한 흰색 옷차림으로 화면을 바라보며 경청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누군가 여러분에게 말할 때, 그들이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다음 마음이 내키면 답하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청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사람들을 자세히 봐라. 제대로 듣지 않는다”며 “말을 듣다 말고 중간에 대답하곤 하는데, 평화에 도움 되지 않는 자세”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며 “들으라, 거듭 들으라”고 거듭 강조했다. 교황은 이전에도 “우리는 귀 기울이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라며 경청이 소통의 조건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바티칸뉴스에 따르면 교황청 국무원장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25~27일 ‘청소년 희년’을 맞아 바티칸을 찾은 각국 청소년을 27일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교황의 애도 미사에 초청했다. 이날 미사를 집전한 파롤린 추기경은 “젊은이들이 자비에 대한 교황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세계 평화의 길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26일(현지 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엄수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에선 ‘조문 외교의 장’이 펼쳐졌다. 이날 장례미사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등 세계 정상급 인사 81명이 참석했다. 이들을 포함해 대표단을 파견한 나라는 총 170여 개에 이른다.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장례 미사에 앞서 15분간 독대한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올 2월 말 이른바 ‘백악관 충돌 사태’가 발생한 지 두 달 만에 이뤄진 이번 회동에서 두 정상은 좋은 분위기 속에서 논의를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X에 “좋은 회동이었다”라고 썼다. 백악관 관계자도 “매우 생산적인 논의를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 뒤 트루스소셜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을 멈추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은행 (관련 제재) 또는 ‘2차 제재’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대처해야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러시아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일각에선 이런 메시지가 이례적이란 평가도 나온다. 두 정상과 마크롱 대통령, 스타머 총리 등 4명이 함께 만나는 사진도 공개됐다. 영국과 프랑스는 우크라이나 전후(戰後) 안보를 위한 비공식 협의체 ‘의지의 연합’을 주도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이 관세 문제 등으로 갈등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악수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복장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바티칸 복장 규정에 따르면 장례 미사 때 남성은 어두운 정장에 검은색 넥타이를 착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푸른색 정장과 넥타이를 착용했다. 멜라니아 여사도 검은색이 아닌 다리가 비치는 살구색 스타킹을 신어 입방아에 올랐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은 반(反)이민 정책 등을 둘러싸고 프란치스코 교황과 여러 차례 맞부딪쳤지만, 이날 미사에선 귀빈석 맨 앞줄에서 교황의 관이 운구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평소 “부동산에서도, 정치에서도 자리가 전부”라는 지론을 펼치며 공식 행사의 자리 배치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바티칸 의전 관례상 프랑스어 알파벳 표기순으로 자리를 배치해야 하지만, 교황청은 전통을 깨고 막판에 자리 배치를 바꿨다고 유로뉴스는 전했다. 한편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지각하는 바람에 조문하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헤럴드는 25일 “밀레이 대통령이 자신이 존경하는 스페인 경제학자의 박사 학위 수여식에 참석하느라 출발이 2시간 연기돼 교황의 관이 닫힌 후에야 이탈리아에 도착했다”고 전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그날은 간만에 날씨가 좋았다. 따뜻하고도 말갛던, 귀한 공기를 흘려보낼 수 없었다. 퇴근 후 청계천을 내리 걸었다. 습관처럼 배낭을 한쪽 어깨로 돌려 메고 앞주머니를 열었다. 걸을 때든 달릴 때든, 언제건 속도를 내고 빠른 발걸음을 오래 지키려면 꼭 필요한 소품이 있었다.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천변 산책길은 바닥이 울퉁불퉁하다. 분당 130비트의 음악을 들으며 숨차게 걸을 만한 길은 아니었다. 그래도 마치 묵은 버릇처럼, 내 손은 조약돌 만한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향했다. 그때 맞은 편에서 걸어오던 두 여성이 숨넘어갈 듯 웃음을 쏟아냈다. “최종이 최최최최종까지 갔다니까….”뻔한 대화, 지친 얼굴인데도 둘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 묻었다. 저물어가는 햇살이 두 사람의 얼굴을 발갛게 비췄다. 앞뒤가 궁금해지는 잔향을 남기고 5초도 채 되지 않아 그들은 내 뒤로 멀어져갔다. 배낭 지퍼를 닫던 두 손이 멈칫했다. 산책길은 붐볐다. 재촉하는 발걸음을 막아서며 느릿하게도 걷던 이들의 얼굴은, 다시 보니 봄날을 즐기려는 상춘객처럼 밝았다. ‘길도 안 좋은데, 저 다음 다리까지만 맨 귀로 그냥 가 볼까.’ 슬그머니 이어폰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나중에야 알고 보니 사실은 조금도 속도를 낼 필요가 없었던 그날 그 길에서, 나는 깨달았다. 귀를 열면 눈과 마음도 함께 열리는 거였다.사회 초년생 같아 보이는 연인이 스쳐 갔다. 남자가 구시렁대자 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너 말하는 게 그거 같애.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게 뭐야….”왼쪽 팔뚝에 문신이 가득한, 덩치 큰 남자가 지나가느라 좁은 길을 살짝 비켜서야 했다. 그의 왼손에는 보송보송한 줄무늬 털이 덮인, 저금통 만한 멧돼지 봉제 인형이 들려 있었다. 외지인인 것이 분명한 두 소녀가 청계천의 터줏대감인 왜가리를 유심히 지켜봤다. “꼼짝도 안 하는데?” “모형인가 봐. 살아있는 게 아닌 거 같아.” 듣다 못 한 왜가리가 보란 듯 날개를 한 번 퍼덕이자 꽥 소리를 지르던 그녀들.한쪽을 엄지로 살짝 문지른 듯한, 보름까지 하루 남은 달 주변으로 달무리가 번졌다. 낮과 밤의 경계에 어둠이 드리우자 낮은 담벼락에 바닥을 향한 간접조명이 드문드문 켜졌다.빛이 있는 곳에 어린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가 어둠으로 사라지길 반복했다. “아빠, 내 얼굴 이제 보여요?” “아, 다시 안 보인다!” “다시 보여요?” 빛을 들락날락하던 소년의 가쁜 웃음소리. 아까까진 수면에 흔들림조차 없이 고요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돌다리를 지나며 구르는 맑은 물소리. 이윽고 이어진 다리 아래서 흰색 편의점 비닐봉지를 사이에 두고 주섬주섬 기타를 꺼내던 두 노인. 물소리에 섞여 희미하게 들려오던, 느릿한 옛 가요의 스트로크.고개를 들었다. 버드나무가 드리운 연둣빛 머리칼이 어둠에 폭 젖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라일락의 엷은 보랏빛 향기가 코끝을 건드리곤 사라졌다.물가에 시선을 두길, 초저녁 하늘의 달을 바라보길, 성급했던 발걸음을 늦추길,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열길, 이어폰을 끼지 않길, 잘했다.[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사랑에도 순서가 있다. ‘오르도 아모리스(Ordo Amoris·사랑의 질서)’는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모든 덕의 근본’으로 여긴 천주교 교리다. 여기에서 말하는 질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게 최우선이며, 다음이 다른 사람, 마지막이 자기 자신이다. 천주교 신자인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은 1월 이 ‘사랑의 질서’를 인용해 강경 이민자 추방정책을 옹호했다. 그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가족이 먼저, 다음이 이웃, 소속 집단, 동료 시민, 국가 순서이며, 그 이후에 세상의 나머지를 사랑하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했다. 누군가가 이를 비판하는 글을 X에 올리자 밴스 부통령은 친히 답장까지 남겼다. “구글에 쳐 보세요.” 그가 “기본적인 상식”을 운운하며 오르도 아모리스를 ‘자국민 우선주의’처럼 강변하자, 몇 주 뒤 진짜 강적이 나타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그는 2월 10일 쓴 ‘미국 주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대량 추방정책 등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대한 위기를 면밀히 주시해 왔다”고 운을 떼며 성경 속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예시로 들었다.“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율법에서 대체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에 예수는 답한다. 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외면한 성직자보다,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 혼혈 민족이지만 그를 도우려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 우리가 따라야 할 이웃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정한 사랑의 질서’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열려 있는 형제애의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결코 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반박한 것이다.‘모두에게 열린 사랑’은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자취를 단적으로 요약한다. 천주교에서 금기로 여겨지는 동성애자에 대한 견해를 질문받았을 때조차도, 그는 “내가 누구라고 그들을 판단하겠는가”라는 겸허한 답변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또 모두에게 교회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 교황으로 선출된 그가 한편에서 사랑을 열어가는 동안, 다른 편에선 ‘사랑의 질서’를 충분히 알 만한 지도자들이 인간의 존엄성에 상처를 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밴스 부통령뿐만이 아니다. 본인이 천주교 신자인 것을 적극 알린 강경보수 성향의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해상을 봉쇄해 불법 이민을 막자는 무관용 정책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역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폴란드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성소수자 운동이 공산주의보다 해롭다”고 주장했다. 초유의 계엄 사태로 탄핵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도 천주교 세례를 받은 바 있다. 교황은 가톨릭의 수장인 동시에, 전 세계의 정치, 외교,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지도자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종교를 초월해 나타나는 뜨거운 추모 열기는 교황이 생전 강조한 ‘열린 사랑’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는 증거다. 후임 교황을 뽑는 추기경단의 비밀회의인 ‘콘클라베’가 다음 달 초 진행될 예정이다. 보수파에서는 교리보다 포용을 중시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그의 선종은 무너진 사랑의 질서를 바로 세우라는 유산을 곱씹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파파’가 떠난 자리에 남은 건, 우리가 ‘어떤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홍정수 국제부 기자 hong@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통상전쟁 중인 중국에 부과한 145%의 관세율을 향후 2, 3주 안에 낮출 뜻을 23일(현지 시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 전 중국에 대한 관세가 “너무 높다”며 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이날 구체적인 인하 시점까지 거론했다. 그는 중국과의 직접 협상 또한 “매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거듭된 관세 위협에도 중국이 물러설 뜻을 보이지 않고 미국 금융시장의 하락세와 산업계의 우려가 이어지자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4일 베이징에서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관세 및 무역전쟁에는 승자가 없다. 세계 여러 나라와의 협력을 통해 중국의 권리와 이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중국 상무부와 외교부는 “현재 미국과 어떤 협상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부인했다. 또 허야둥(何亞東)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미국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일방적인 관세 조치를 전면 철폐해야 한다”고 맞섰다.● 트럼프-베선트, 中에 유화 제스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백악관에서 취재진에게 “향후 2, 3주 안에 관세율을 (새로) 정할 것”이라며 “(관세 조정 대상국에는) 중국도 포함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얼마나 빨리 대(對)중국 관세율을 낮추겠느냐란 질문을 받자 “중국에 달렸다”고 답했다. 그는 ‘중국과 직접 협상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 매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협상을 관장하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또한 같은 날 워싱턴의 한 포럼에서 최근 양국의 관세 공방이 “무역 금수 조치에 해당하는 수준”이라며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과 ‘빅딜(big deal)’ 기회가 있을 수 있다”며 적극 협상할 뜻을 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또한 미국이 중국에 대한 관세를 50∼65%로 낮추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23일 전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이런 행보는 중국에 강경 발언만 계속했던 기존과 상당히 다르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환율 조작국’ ‘(미국을) 가장 많이 학대한 국가’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 저성능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중국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중국산 선박에 입항 수수료도 부과하기로 했다.이런 압박에도 중국이 꿈쩍 않는 가운데 최근 미국 주식, 채권, 달러 가치가 급락하자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도 달라진 것이다. 다만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관세 인하가 중국에 대한 양보로 비치는 것을 염려한 듯 “중국 수입품에 대한 일방적인 관세 인하는 없을 것”이라고 23일 밝혔다. ● 美, 車-유통업계 “관세 유예” 호소 미국 자동차와 유통업계 경영자들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로 중국이 아닌 우리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호소한 것도 대중 관세 인하 검토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오토스드라이브아메리카 등 미 자동차 업계를 대표하는 6개 정책 단체는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서한을 보내 다음 달 3일부터 발효되는 25%의 자동차 부품 관세를 철회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갑작스러운 관세로 인한 차질에 대비한 자본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업체가 생산 중단, 해고, 파산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백악관 또한 수입 중국산 자동차 부품에는 일부 관세 면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CNBC가 23일 전했다. 월마트, 타깃, 홈디포 등 미국 3대 유통업체 최고경영자(CEO)들도 21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 때 “급격한 관세 계획을 자제하지 않으면 2주 내에 미국 내 공급망이 얼어붙어 주요 상점의 진열대가 텅텅 빌 수 있다”고 호소했다고 CBS 등이 보도했다. 한편 뉴욕, 애리조나, 네바다, 뉴멕시코주 등 미국 내 12개 주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경제에 혼란을 초래한다”며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연방국제통상법원에 제기했다. 애리조나와 네바다는 지난해 미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지역이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관할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수장이 가자지구를 장악한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전쟁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며 “개자식들”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2023년 10월 7일 가자 전쟁이 발발한 이후 가장 강도 높은 비난에 나선 것이다. 마무드 아바스(89) PA 수장은 23일(현지 시간) 서안 라말라의 팔레스타인 중앙 의회에서 한 연설에서 하마스에 이스라엘 인질을 석방하고 가자지구 통치권을 이양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하마스가 인질을 풀어주지 않아 이스라엘에 공격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며 “이 개자식들아, 인질들을 넘겨주고 그냥 끝내라. 그들의 정당성을 막고 우리를 여기서 살려내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한편 하마스 측은 아바스의 거친 언사에 대해 “자기 국민의 상당수를 경멸적인 언어로 묘사하고 있다”며 “그는 이스라엘이 저지른 범죄와 (불법적인) 점령, 공격에 대한 책임을 우리 국민에게 지워왔다”고 비난했다.하마스와 PA는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통치 문제를 두고 수십 년간 마찰을 빚어왔다. PA는 2005년 이스라엘로부터 가자지구 통치권을 넘겨받았지만, 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해 이듬해부터 PA 대신 통치권을 행사했다. 하마스는 PA 지도부는 무능하고 부패했다며 PA가 사실상 이스라엘과 협력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PA는 하마스의 과격한 행보가 팔레스타인 국가의 단합을 해친다고 반박하고 있다.아바스의 고강도 비난은 “국제사회로부터 가자지구 내 PA의 역할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한 전략”이라고 AP통신 등은 분석했다. 아바스는 2009년 임기가 만료된 뒤 선거 없이 권력을 이어왔지만 낮은 지지율로 인해 고전하고 있다. AP는 아바스가 의장을 겸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집행위원회의 수석부의장직을 신설하는 안건이 23~24일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라며 “아바스의 후계자를 지명하기 위한 작업의 첫 단계로, 향후 가자 전쟁 평화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지난달 18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합의가 깨진 뒤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습도 연일 이어지고 있다.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 민방위대는 22일 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대피소로 쓰이던 학교를 공습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해당 학교에 하마스 지휘 본부가 있어 공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FP통신은 이날 가자시티 학교를 포함한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최소 25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헤그세스 장관의 지도력이 심각한 문제에 처했다. 국방부를 이끌기에 부족하다.”각각 언론인, 가족 등이 포함된 민간 메신저 ‘시그널’의 단체 채팅방 2곳에서 예멘의 친(親)이란 반군 ‘후티’에 대한 공습 계획을 유출한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에 대한 경질론이 고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헤그세스 장관 본인의 거듭된 부인에도 집권 공화당에서도 그의 사퇴를 직간접적으로 주장하는 의원들이 늘어나 트럼프 대통령의 고심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공군 장성 출신으로 하원 군사위원회 소속인 도널드 베이컨 공화당 하원의원은 22일 정치매체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국방부의 기밀 유출, 내부 반목 등이 심각하다”며 헤그세스 장관의 해임을 요구했다. 러시아, 중국 등이 미국 고위 관료의 통신을 도청하기 위해 수천 명을 동원하는 상황에서 국방장관은 대통령 다음으로 중요한 표적이 될 수 있는데 그런 인물이 민감한 군사 정보를 소홀히 다룬다는 것은 “명백한 법 위반이자 아마추어 같은 모습”이라고 질타했다.익명을 요구한 공화당 상원의원 또한 상원 인준 당시 “헤그세스를 지지한 것을 후회한다”고 토로했다. 폴리티코는 이 상원의원처럼 공화당 내에서 헤그세스 장관에 대한 호의를 거두며 분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장관 지명 당시부터 성비위, 음주 이력 등으로 비판받았던 헤그세스 장관은 올 1월 가까스로 인준을 통과했다. 상원 100석 중 53석을 점유한 공화당 상원의원 중 당시 미치 매코널, 수전 콜린스, 리사 머코우스키 상원의원 3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상원의장을 겸하는 J D 밴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간신히 인준을 성공시켰다.공영라디오 NPR은 이미 백악관이 헤그세스 장관의 후임자를 물색 중이라고 21일 보도했다. 백악관이 즉각 부인했지만 시사매체 디애틀랜틱은 22일 “백악관의 부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정 인물을 해고하기 전 항상 그들을 칭찬했다”며 경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디애틀랜틱은 트럼프 2기 행정부 내에서 헤그세스 장관을 반대하는 인사들이 존재하며, 헤그세스 장관의 반복되는 실수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대통령 참모들이 그의 퇴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견해 차이로 사퇴한 존 볼턴 전 보좌관 또한 같은 날 헤그세스 장관의 해임을 촉구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까지 겉으로는 헤그세스 장관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는 이유로 취임 3개월 만에 국방장관 같은 고위 인사를 경질하면 이런 사람을 발탁한 자신이 비판받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헤그세스 장관의 거취 논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떤 식으로든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진 샤힌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 사태의 책임은 자격이 부족한 인사를 국방장관으로 지명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고 꼬집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테러와 불법 이민으로부터 미국 안보를 지키는 게 주 업무인 미 국토안보부의 수장이 저녁 식사 도중 가방을 도난당했다. CNN방송 등에 따르면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장관은 20일 오후 8시경(현지 시간) 부활절을 맞아 워싱턴의 한 햄버거 식당에서 자녀와 손주 등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가방을 도둑맞았다. 그의 가방에는 현금 약 3000달러(약 426만 원)와 운전면허증, 약, 아파트 열쇠, 여권, 국토안보부 출입증, 화장품 파우치, 백지 수표 등이 들어 있었다. 국토안보부 대변인은 놈 장관이 거액의 현금을 갖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 “가족들에게 저녁과 부활절 선물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놈 장관의 테이블과 식당 출입구 사이에는 그를 24시간 경호하는 비밀경호국(SS) 요원이 두 명 이상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놈 장관은 좌석 아래에 가방을 두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비밀경호국은 식당 내 보안 카메라 영상에서 의료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식당에 들어온 백인 남성이 놈 장관 가까이에 앉아 발로 가방을 끌어당긴 뒤 재킷 안에 숨겨 떠나는 장면을 포착했다고 NBC방송이 전했다. 당시 놈 장관은 자신의 다리에 무언가 스치는 것을 느꼈지만, 손주와의 접촉인 것으로 생각했다. 놈 장관은 21일 백악관에서 열린 부활절 행사 때 “아직 (도난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범인이 놈 장관을 표적으로 삼았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 사우스다코타 주지사 출신인 놈 장관은 장관 취임 뒤 수차례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지난달 국토안보부가 추방한 불법 이민자들을 수용 중인 엘살바도르의 교도소에서 홍보 영상을 촬영하면서 6만 달러(약 8500만 원) 상당의 롤렉스 시계를 손목에 차 논란을 일으켰다. 8일에는 불법 이민자 체포 작전을 홍보하는 영상에서 총을 들고 등장했다. 이 영상에서 놈 장관은 총구를 옆에 서 있던 이민세관단속국(ICE) 직원 쪽으로 향하게 해 ‘총기 사용의 미숙함만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았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테러와 불법 이민으로부터 미국 안보를 지키는 게 주업무인 미 국토안보부의 수장이 저녁식사 도중 가방을 도난 당했다.CNN방송 등에 따르면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은 20일(현지 시간) 오후 8시경 부활절을 맞아 워싱턴의 한 햄버거 식당에서 자녀와 손주 등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 가방을 도둑맞았다. 그의 가방에는 현금 약 3000달러(426만 원)와 운전면허증, 약, 아파트 열쇠, 여권, 국토안보부 출입증, 화장품 파우치, 백지 수표 등이 들어 있었다. 국토안보부 대변인은 놈 장관이 거액의 현금을 갖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 “가족들에게 저녁과 부활절 선물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이날 놈 장관의 테이블과 식당 출입구 사이에는 그를 24시간 경호하는 비밀경호국(SS) 요원이 두 명 이상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놈 장관은 좌석 아래에 가방을 두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비밀경호국은 식당 내 보안 카메라 영상에서 의료용 마스크를 착용한 백인 남성이 식당에 들어온 뒤 놈 장관 가까이에 앉아 발로 핸드백을 끌어당긴 뒤 재킷 안에 숨겨 떠나는 장면을 포착했다고 NBC방송이 전했다.당시 놈 장관은 자신의 다리에 무언가 스치는 것을 느꼈지만, 손주와의 접촉인 것으로 생각했다. 놈 장관은 21일 백악관에서 열린 부활절 행사 때 “아직 (도난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범인이 놈 장관을 표적으로 삼았는지 등에 초점이 맞춰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미 사우스다코타 주지사 출신의 놈 장관은 장관 취임 뒤 수차례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지난 달 국토안보부가 추방한 불법 이민자들을 수용 중인 엘살바도르의 교도소에서 홍보 영상을 촬영하면서 6만 달러(약 8500만 원) 상당의 롤렉스 시계를 손목에 차 논란을 일으켰다. 8일에는 불법이민자 체포 작전을 홍보하는 영상에서 총을 들고 등장했다. 이 영상에서 놈 장관은 총구를 옆에 서 있던 이민세관집행국(ICE) 직원 쪽으로 향하게 해 ‘총기 사용의 미숙함만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았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40개국 중 40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각국의 ‘재택근무’ 현황을 설문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의 주당 평균 재택근무 시간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탠퍼드대 경제정책연구소(SIEPR)가 40개국 출신의 대졸 근로자 1만6422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일주일당 재택근무 일수’를 조사한 결과를 14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전 세계 평균은 1.3일이었다. 국가별로는 캐나다 1.9일, 영국 1.8일, 핀란드 1.7일 순으로 재택근무가 가장 흔했다. 반면 가장 적었던 것은 한국(0.5일), 중국(0.6일), 일본(0.7일) 등 동북아시아 3국이었다. 연구를 이끈 니콜라스 블룸 경제학과 교수는 이 결과에 대해 “개인주의적인 국가일수록 노동자에 대한 신뢰가 높고 많은 자율성을 허락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1일 이 연구결과를 다룬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실제로 ‘개인주의 지수’와 재택근무 시간은 정비례하는 관계를 보였다.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헤이르트 홉스테드가 개발한 ‘홉스테드 문화지수’의 한 축인 개인주의 지수에서도 우리나라가 40개국 중 가장 집단주의적 성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한·중·일의 낮은 출산율과 재택근무 성향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코노미스트는 “육아를 직장 생활과 양립할 수 있게 되면 장기적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안타깝게도 출산율이 가장 급락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원격근무에 가장 회의적인 경향이 있다”라고 진단했다.한편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크게 늘어난 재택근무 추세는 2023년까지 다소 줄어들었지만, 이후로는 비슷하게 유지되는 추세를 보였다. SEIPR이 전 세계에서 3차례에 걸쳐 조사한 결과 주당 재택근무일 수는 2022년 평균 1.6일에서 2023년 1.33일로 급감했지만, 2024~2025년에는 1.27일로 비교적 안정된 것으로 나타났다.이코노미스트는 “대체로 출퇴근에 낭비되는 시간은 줄었지만, 사교와 자원봉사 시간이 모두 줄었다”라며 “코로나가 앞당긴 재택근무는 경제적으로는 효율적이겠지만 사람들을 좀 더 외롭게 만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9일간의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면 추기경단의 비밀투표인 ‘콘클라베(Conclave·자물쇠가 채워진 방이란 뜻의 라틴어)’를 통해 차기 교황이 선출된다. 콘클라베는 통상 교황 선종 후 15∼20일 이내에 치러진다. 투표권을 갖는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 135명이 바티칸 교황청 내 시스티나 성당에서 콘클라베를 열게 된다. 외신에선 유럽계 혹은 비(非)유럽계, 교리적 차원에서 보수파 혹은 개혁파로 구분해 차기 교황 후보군을 거론하고 있다.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출신지(첫 아메리카 대륙 출신)나 성향(개혁성)이 파격적이었던 만큼 차기 교황도 예상치 못한 인물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측근 국무원장 유력 후보로 거론 로이터통신, CNN 등 주요 외신들이 거론하는 차기 교황 후보는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70)이다. 국무원장은 바티칸에서 교황 다음의 2인자다. 로이터통신은 그가 가톨릭 내 개혁파와 보수파로부터 두루 지지를 받는 후보라고 짚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추기경에 서임된 그는 팔레스타인 주민 인권 등 국제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보여 왔다. 다만, 파롤린 원장이 이탈리아인이라는 점은 최근의 다양성 추세에 비춰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교황은 전통적으로 이탈리아인이 많았지만, 최근엔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해 독일 출신 베네딕토 16세, 폴란드 출신 요한 바오로 2세 등 비이탈리아계가 많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리아 출신인 그레고리오 3세(731년) 이후 1282년 만에 선출된 비유럽 출신 교황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척점에 있는 보수 성향의 인물이 차기 교황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영국의 가톨릭 전문지 가톨릭헤럴드는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중 교내 보수파를 대표한 헝가리 출신의 페테르 에르되 추기경(73)을 유력 후보로 지목했다. 2003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된 그는 이혼 또는 재혼한 신자들이 성찬을 받는 데 반대해 왔다. ● 최초의 아프리카계 흑인 교황 등 물망 차기 교황 선출권을 쥔 만 80세 미만 추기경의 거의 절반은 상대적으로 저개발 상태에 놓인 남반구 출신이다. 최근 가톨릭의 교세가 유럽보다 남미, 아프리카 등 비유럽권에서 더 강하다는 점도 변수다. 이에 따라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프리돌린 암봉고 베숭구 추기경(65)과 가나 출신 피터 코드워 아피아 턱슨 추기경(76) 등이 최초의 아프리카계 흑인 교황 후보로 거론된다. 아메리카 대륙에선 미국 출신으로 보수적 성향인 레이먼드 리오 버크 추기경(77)이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아시아 출신 추기경들도 잠재 후보다. 지난해 12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유흥식 추기경(74)을 후보군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한국의 가톨릭 교구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어서 선출 가능성도 다소 떨어진다는 관측이 많다. 가톨릭 신자가 8000만 명에 달하는 필리핀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68)도 유력 후보로 꼽힌다. 개혁 성향인 그는 2013년 콘클라베 때도 교황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콘클라베 참석 추기경 3분의 2 이상 지지 얻어야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직후 장례 준비에 착수했다. 장례 절차는 교황의 비서 격인 궁내원장이 교황의 상징물 중 하나인 ‘어부의 반지’를 파기함으로써 시작된다. 교황청에는 조기가 게양되고, 교황의 유해는 일정 기간 바티칸 내 성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져 일반에 공개된다. 9일간의 장례가 마무리된 뒤 열리는 콘클라베는 교황 선종 후 15∼20일 안에 열린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전 세계 추기경 252명 중 교황 선출권을 갖는 만 80세 미만 추기경은 현재 135명이다. 한국인 추기경의 경우 염수정 추기경(82)은 투표권이 없고, 유흥식 추기경은 투표가 가능하다. 콘클라베가 시작되면 추기경들이 모인 건물의 청동문이 봉쇄되고 모든 문과 창문도 납으로 봉인된다. 콘클라베 중에는 의사와 요리사, 지원 업무를 맡은 소수의 수녀 외에는 누구도 추기경들과 소통할 수 없다. 투표 과정에서 교황 선출에 실패했을 때는 젖은 밀짚을 태워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나게 한다. 반면 교황이 선출되면 마른 밀짚과 투표 용지를 같이 태워 흰 연기를 내보내게 된다. 투표는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추기경 각자가 적합하다고 보는 사람 이름을 적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콘클라베 참석자 3분의 2 이상을 득표한 추기경이 교황직을 수락하면 새 교황이 탄생하게 된다. 새 교황은 ‘눈물의 방’으로 불리는 시스티나 성당 내 성구실로 이동해 교황명을 직접 정한다. 이후 예복으로 갈아입고 성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나와 대중과 만난다. 교황청 관계자들과 대중은 이때 라틴어로 ‘교황이 나셨다’를 의미하는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을 외친다.임현석 기자 lhs@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21일(현지 시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생 가난한 이들과 어울리며 복음을 실천한 인물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2013년 3월 즉위해, 가톨릭 교회 2000년 사상 첫 남미 출신이자 1282년 만의 비(非)유럽권 교황이란 기록도 세웠다. 교황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시절에도 허름한 아파트에 살며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이런 소탈한 모습은 2019년 영화 ‘두 교황(The Two Popes)’에도 소개됐다. 교황청 방문 때도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그는 “교황청 방문할 돈으로 빈자들에게 기부하라”고 했다.● “하느님 가르침을 따른 평범한 사람”‘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에서 즉위명을 딴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12월 17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철도 노동자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교황은 평소 어린 시절을 “고집불통에다 주먹이 먼저 나가던 문제아”라고 회고했다. 교황은 자서전에서 “여느 소년과 다를 바 없지만, 주님에게서 큰 선물을 받았다”며 “바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수치심”이라고 술회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지만, 1958년 예수회에 입문해 수도사의 길을 걸었다. 젊은 시절 폐렴 합병증으로 한쪽 폐를 떼어냈는데, 이 때문에 말년에 잦은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했다. 소탈한 면모는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 참석 때도 드러났다. 구두가 낡아 신부들이 새 구두를 사드렸을 정도였다. 가톨릭에서 추기경은 에미넨차(Eminenza), 주교는 에첼렌차(Eccellenza)로 부른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친근한 ‘파드레(신부)’로 불러주길 원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고령과 건강을 이유로 자진 사퇴한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교황으로 선출됐다. 교황청 안팎에 대한 신뢰 회복이 절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교황은 평소 “교회 기본 정신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며 “초창기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바른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에 오른 뒤엔 교황궁 전용 숙소를 거부하고 사제들의 공동 숙소인 카사산타마르타에서 생활했다. 교황은 교회 내부 개혁에도 힘썼다. 취임 시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던 관례를 폐지하고, 바티칸 은행감독위원회가 매년 추기경들에게 지급하던 보너스도 없앴다.● “타인의 비극에 눈감지 말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관한 관심과 지원은 교황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취임 넉 달 만에 교황청 밖 첫 미사를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에서 집전했다. 이 섬은 정치 불안과 가난을 피해 유럽으로 가는 북아프리카 난민들의 경유지였다.2014년 6월 중동을 방문해 평화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교황은 당시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참석한 가운데 “이 땅은 평화 정착에 성공할 기회가 있었지만 실패했고, 이것이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라고 했다. 논쟁적인 사회 문제에도 전향적이었다. 2016년 “예수도 난민이었다”며 바티칸 특별미사에 빈민과 난민 6000여 명을 초대했다. 2023년엔 로마 가톨릭 사제들의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공식 승인해 “가톨릭 교회의 중대한 변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교황은 즉위 10주년 인터뷰에서 소망을 묻자 “평화”라는 한 단어로 답했다. 그는 “타인의 비극에 눈을 감고 ‘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무관심”이라며 국제사회에 ‘무관심의 세계화’를 경계할 것을 촉구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