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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수업을 방해해도 교사는 화를 내지 못한다. 조심스럽게 타이르기라도 하면 되돌아오는 건 ‘아동 학대’라는 무서운 말. 학부모는 곧바로 민원을 제기하고, 교장은 교사에게만 책임을 묻는다. 이쯤 되면 ‘혼내지 않는 교사’가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교사’다. 2023년 서울 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깊은 고민에 빠진 두 명의 현직 초등교사가 1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육 현장의 민낯을 기록한 에세이다. 저자들은 오늘날 학교에 ‘무기력 교사’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한다. 체벌이 사라진 교실에 학생 지도를 대체할 훈육 체계는 여전히 부재한 상황이다. 교사는 학생을 바로잡을 방법도, 자신의 정당성을 지킬 방패도 없이 교실 한가운데 홀로 남겨졌다고 저자들은 토로한다. 특히 ‘내 새끼 지상주의’로 불리는 과잉 보호 문화는 치명적이다. ‘우리 아이’만 중요하고, 다른 아이는 안중에도 없는 학부모의 이기주의에 교사는 어느새 민원 처리자로 전락한다. 저자들은 일부 교사들의 안일한 태도나 권위에 기대는 습관도 놓치지 않고 짚는다. 동시에 교사가 갖춰야 할 전문성과 자기 성찰이 무엇인지도 고민한다. 교대를 졸업하고도 실제 학급 운영에 필요한 기술을 스스로 연수를 찾아다니며 익혀야 했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교원 양성 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교사 10명 중 6명이 교단을 떠날 고민을 하고 있다는 요즘 학교에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우리 거리 두자. 난 언젠가 우주로 날아가 버릴 테니까.” 2050년 대한민국 서울. 화성 탐사를 꿈꾸는 ‘난영’은 음악가 ‘제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화성으로 떠난다. 두 사람은 마치 별의 인력처럼 이끌려 사랑에 빠졌지만, 각자 품은 꿈이 달랐다. 두 사람은 우주만큼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연애를 이어가는데…. 둘의 ‘롱디’(장거리) 로맨스는 해피엔딩으로 끝날까. 3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하는 장편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은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이 직접 투자·제작에 참여한 작품이다. 연출은 1989년생 신예 여성 감독 한지원이 맡았다. 배우 김태리와 홍경이 성우로 참여해 벌써부터 팬들을 설레게 한다. 푸르고 투명한 하늘과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 같은 작화가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2016년)에 비견될 정도라는 기대도 받고 있다.K팝과 K무비, K드라마에 이어 최근 ‘K애니’가 새로운 한류의 구심점이 될지 주목받고 있다. 북미에서 지난달 11일(현지 시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예수의 생애’(미국명 ‘The King of Kings’)는 지금까지 약 5907만 달러(약 824억 원)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년)이 세웠던 흥행 기록 5384만 달러를 넘어선 것. 2월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퇴마록’도 독창적인 연출과 밀도 높은 미장센으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최근 들어 ‘K애니’가 큰 관심을 받는 건 한류 콘텐츠의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미국과 일본 위주로 흘러가던 애니메이션 장르로 저변을 넓히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특히 넷플릭스는 드라마나 예능 등에서 입증된 ‘K콘텐츠’의 저력을 애니메이션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강동한 넷플릭스 한국콘텐츠부문 VP(부사장)는 2월 ‘넥스트 온 넷플릭스 2025 코리아’ 행사에서 “넷플릭스 세계 시청자가 대략 7억 명 이상이다.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도 굉장히 대중화돼 다양함이 필수”라고 했다. ‘닮은 듯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과의 차별점도 ‘K애니’의 발전 가능성에 긍정적인 요소다. 일본이 여전히 애니메이션에선 훨씬 앞선 선진국이지만, ‘K애니’가 글로벌 확장성 측면에선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단 의견이 나온다. 특히 가족과 여성, 청년 등을 담은 폭넓은 서사가 공감대가 크다. 한지원 감독도 최근 인터뷰에서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다”며 “떠나고 나서야 깨닫는 소중한 가치인 사랑이 우리에게 항상 필요하다는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최근 글로벌 애니메이션 시장의 성장세도 ‘K애니’엔 호재다. 지난해 6월 공개된 ‘인사이드 아웃 2’는 제작비 2억 달러로 17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애니메이션은 관객이 특정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고,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모두 즐길 수 있어 일정 관객 수가 보장되는 편”이라고 했다. 국내 유명 감독들의 진출 소식도 들려온다. 봉준호 감독은 심해 생물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준비 중이며, 김태용 감독은 연극 원작 애니메이션 ‘꼭두’의 연출을 맡았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성인도 충분히 감동할 수 있는 ‘K애니’를 만들어 낸다면 정체된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우리 거리 두자. 난 언젠가 우주로 날아가 버릴 테니까.”2050년 대한민국 서울. 화성 탐사를 꿈꾸는 ‘난영’은 음악가 ‘제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화성으로 떠난다. 두 사람은 마치 별의 인력처럼 이끌리듯 사랑에 빠졌지만, 각자 품은 꿈이 달랐다. 두 사람은 결국 우주만큼 먼 거리를 사이에 둔 연애를 시작하는데…. 둘의 ‘롱디’(장거리) 로맨스는 해피엔딩으로 끝날까.30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장편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은 한국 애니메이션 처음으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이 직접 투자·제작에 참여한 작품이다. 연출은 1989년생 신예 여성 감독 한지원이 맡았다. 배우 김태리, 홍경이 성우로 참여해 공개 전부터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푸르고 투명한 하늘,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 작화는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2016년)에 비견될 정도로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최근 K-애니메이션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 ‘예수의 생애’(미국 작품명 The King of Kings)는 북미 시장에서 5907만 달러(약 824억 원)의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년)이 세운 미국 내 흥행 기록 5384만 달러(약 751억 원)를 넘었다. 이우혁 작가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올 2월 국내 개봉 후 독창적인 연출과 밀도 높은 미장센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한국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끄는 건 ‘K-콘텐츠’ 확장의 마지막 퍼즐이기 때문이다. 특히 넷플릭스는 이미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 등에서 입증된 ‘K’ 브랜드의 저력을 애니메이션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을 적극 펼치고 있다. 강동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부문 VP(부사장)는 올 2월 ‘넥스트 온 넷플릭스 2025 코리아’ 행사에서 “넷플릭스 전 세계 시청자가 대략 7억 명 이상이다.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도 굉장히 대중화돼 다양함이 필수”라고 했다.일본 애니메이션과의 차별점도 한국 애니메이션의 중요한 축으로 꼽힌다. 일본은 ‘오타쿠’ 중심의 마니아 취향과 장르 분화가 뚜렷한 반면 한국 애니메이션은 가족, 여성, 청년 등 폭넓은 서사로 관객층을 겨냥한다. ‘이 별에 필요한’을 연출한 한지원 감독은 사전 공개된 인터뷰에서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다.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소중한 가치인 사랑이 우리에게 항상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작품 속 보편적 주제를 강조했다.애니메이션 시장의 성장세도 눈에 띈다. 지난해 6월 공개된 ‘인사이드 아웃 2’는 제작비 2억 달러(약 2791억 원)로 17억 달러(약 2조 3728억 원)를 벌어들였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애니메이션은 관객이 특정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어 일정 관객이 보장된다”고 했다.국내 거장 감독들도 애니메이션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심해 생물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준비 중이다. 김태용 감독은 연극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꼭두’의 연출을 맡았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애니메이션을 이젠 아이들만의 장르로 볼 수는 없다. 어른들도 충분히 감동하고 생각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낸다면 정체된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987년 일본 도쿄. 열한 살 소녀 후키는 늘 혼자다. 아버지는 암 투병 중이고, 어머니는 돈을 벌러 밤까지 일터를 지킨다. 외로운 소녀는 점차 현실보다 상상 속에서 오래 머물기 시작한다. 13일(현지 시간) 개막한 올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일본 영화 ‘르누아르’의 줄거리다. 연출을 맡은 이는 여성 감독 하야카와 지에(早川千絵·49). 그는 단편 ‘나이아가라’(2014년)로 칸의 학생 경쟁 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에 진출했으며, 장편 ‘플랜 75’(2022년)로 신인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 때 특별 언급도 받았다. 이번엔 ‘르누아르’로 다르덴 형제의 ‘더 영 마더스 홈’, 웨스 앤더슨의 ‘페니키안 스킴’ 등과 함께 황금종려상을 놓고 경쟁하게 됐다. 최근 국내 영화계에선 “칸의 문이 일본에 열리고, 한국에는 닫히고 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한국 영화계는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별다른 성과가 없다. 반면 일본 영화는 세대 교체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영화는 3년 연속으로 칸 경쟁 부문 진출에 실패한 상태. 올해 역시 본선 경쟁작은 없고, 정유미 감독의 애니메이션 ‘안경’이 비평가주간 단편 부문, 허가영 감독의 단편 ‘첫여름’이 시네파운데이션에 초청됐다. 장편은 비경쟁,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주목할 만한 시선 등 공식 부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일본 영화는 올해 장편 6편이 칸에 초청됐다. 경쟁 부문 ‘르누아르’뿐 아니라 이시카와 게이 감독의 ‘먼 산의 빛’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올랐다. 가와무라 겐키의 ‘8번 출구’는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서 상영된다. 칸 프리미어 부문엔 후카다 고지 감독 ‘사랑의 재판’이 초청됐다. 감독주간에는 재일 한국인 3세인 이상일 감독의 ‘국보’, 단즈카 유이가 ‘전망 세대’가 초청됐다. 최근 일본 영화계는 다양성과 세대교체란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야카와 같은 여성 감독의 비중이 늘고 있고, 1998년생인 단즈카 감독처럼 젊은 신인도 주목받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지난달 29일 방한해 “일본에선 감독들의 세대교체가 시작되고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2021년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 후카다 고지, 하야카와 지에 등 차세대 감독이 발굴되는 건 일본 영화계에 고무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한국 영화계가 뒤처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영화계 내부에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의 산업 구조에 갇히면서 생긴 현상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최근 한국 상업영화들은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며 “이는 칸이 꾸준히 중요하게 여기는 ‘감독의 고유한 시선’이나 ‘영화적 실험성’과는 거리가 있다”고 짚었다. 예술성을 높이 사는 세계적 영화제들은 여전히 ‘작가의 언어’가 살아 있는 작품을 중시한다는 설명이다.올해 칸 영화제는 경쟁 부문 초청 감독 21명 가운데 7명이 여성 감독으로 역대 가장 높은 비중이다. 칸은 최근 4년 동안 쥘리아 뒤쿠르노, 쥐스틴 트리에 등 여성 감독에게 2차례 황금종려상을 수여하며 보수적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해 왔다. 올해 심사위원장도 프랑스 여성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가 맡았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기생충’ 이후 한국 영화계는 뚜렷한 세대교체 없이 기존 감독의 이름값에 의존하고 있다”며 “새로운 감독을 발굴하고, 새로운 시선을 담은 영화가 없다면 국제 무대에서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올해 칸 영화제 개막작은 프랑스 감독 아멜리 보낭의 장편 영화 ‘리브 원 데이’다. 황금종려상을 포함한 수상 결과는 24일 폐막식에서 발표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987년 일본 도쿄. 열한 살 소녀 후키는 늘 혼자다. 아버지는 암 투병 중이고, 어머니는 돈을 벌러 밤까지 일터를 지킨다. 외로운 소녀는 점차 현실보다 상상 속에서 오래 머물기 시작한다.13일(현지 시간) 개막하는 올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일본 영화 ‘르누아르’의 줄거리다. 연출을 맡은 이는 여성 감독 하야카와 치에(49·早川千絵). 그는 단편 ‘나이아가라’(2014년)로 칸의 학생 경쟁 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에 진출했으며, 장편 ‘플랜 75’(2022년)로 신인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 때 특별 언급도 받았다. 이번엔 ‘르누아르’로 다르덴 형제의 ‘더 영 마더스 홈’, 웨스 앤더슨의 ‘페니키안 스킴’ 등과 함께 황금종려상을 놓고 경쟁하게 됐다.최근 국내 영화계에선 “칸의 문이 일본에 열리고, 한국에는 닫히고 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한국 영화계는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별다른 성과가 없다. 반면 일본 영화는 세대 교체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영화는 3년 연속으로 칸 경쟁 부문 진출에 실패한 상태. 올해 역시 본선 경쟁작은 없고, 정유미 감독의 애니메이션 ‘안경’이 비평가주간 단편 부문, 허가영 감독의 단편 ‘첫여름’이 시네파운데이션에 초청됐다. 장편은 비경쟁,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주목할 만한 시선 등 공식 부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일본 영화는 올해 장편 6편이 칸에 초청됐다. 경쟁 부문 ‘르누아르’뿐 아니라 이시카와 게이 감독의 ‘먼 산의 빛’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올랐다. 가와무라 겐키의 ‘8번 출구’는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서 상영된다. 칸 프리미어 부문엔 후카다 고지 감독 ‘사랑의 재판’이 초청됐다. 감독주간에는 재일 한국인 3세인 이상일 감독의 ‘국보’, 단즈카 유이가 ‘전망 세대’가 초청됐다.최근 일본 영화계는 다양성과 세대교체란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야카와 같은 여성 감독의 비중이 늘고 있고, 1998년생인 단즈카 감독처럼 젊은 신인도 주목받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지난달 29일 방한해 “일본에선 감독들의 세대교체가 시작되고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2021년 칸국제영화제 각본상), 후카다 고지, 하야카와 치에 등 차세대 감독이 발굴되는 건 일본 영화계에 고무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한국 영화계가 뒤쳐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영화계 내부에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의 산업 구조에 갇히면서 생긴 현상이한 지적이 나온다. 한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최근 한국 상업영화들은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며 “이는 칸이 꾸준히 중요하게 여기는 ‘감독의 고유한 시선’이나 ‘영화적 실험성’과는 거리가 있다”고 짚었다. 예술성을 높이 사는 세계적 영화제들은 여전히 ‘작가의 언어’가 살아 있는 작품을 중시한다는 설명이다.올해 칸영화제는 경쟁 부문 초청 감독 21명 가운데 7명이 여성 감독으로 역대 가장 높은 비중이다. 칸은 최근 4년 동안 쥘리아 뒤쿠르노, 쥐스틴 트리에 등 여성 감독에게 2차례 황금종려상을 수여하며 보수적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해 왔다. 올해 심사위원장도 프랑스 여성 배우 쥘리엣 비노슈가 맡았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기생충’ 이후 한국 영화계는 뚜렷한 세대교체 없이 기존 감독의 이름값에 의존하고 있다”며 “새로운 감독을 발굴하고, 새로운 시선을 담은 영화가 없다면 국제 무대에서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올해 칸영화제 개막작은 프랑스 감독 아멜리 보낭의 장편 영화 ‘리브 원 데이’다. 황금종려상을 포함한 수상 결과는 24일 폐막식에서 발표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점심시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인스타그램에서 대학 동창이 올린 여행 사진을 본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 중”이라는 문구 아래 바다와 카페, 햇살이 가득하다. 반면 내 앞엔 식어버린 도시락과 퇴근 없는 야근이 기다리고 있다. 내 인생은 왜 이럴까. 혹시 잘못 살고 있는 걸까.현대인은 작은 일에도 쉽게 마음이 무너진다. 타인의 삶과 비교하는 순간 내 삶은 무가치하게 느껴지고, 감정은 하루에도 수차례 요동친다. 이런 감정을 느낀다면 고대 로마 철학자 루키우스 안나에우스 세네카(기원전 4년∼65년)의 격언을 되새기면 어떨까. “바꿀 수 없는 것에 인생을 소모하지 마라.”독일 철학자가 세네카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교양 철학서다. 변호사이자 영화 제작자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던 저자는 어느 순간 삶의 방향을 잃고 공허함을 느끼다가 철학을 찾았다. 특히 세네카의 글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면서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행복한 삶이란 걱정이 없고, 지속적인 마음의 평온이 있는 삶이다.” 세네카는 마음의 평정심을 삶의 가장 높은 목표로 삼았다. 평정심은 무감각이나 체념이 아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태도다. 세네카는 “우리는 실제보다 상상에 더 많이 고통받는다”고 했다. 괴로움의 실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해석과 두려움이 문제라는 진단이다.현대인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 끊임없는 비교와 평가, 높아만 가는 기대 속에서 쉽게 흔들린다. 세네카의 조언이 20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필요한 이유다. 세네카는 또 운명에 집착하기보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고 태도를 다듬으라고 조언한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대신, 통제 가능한 내면을 단련하라는 조언이다.누군가는 이런 격언이 식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같이 불안에 흔들리는 이들에게는 짧고 단순한 문장이 오히려 더 깊이 스며든다. 철학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삶을 버텨내는 방식이 될 때 진정한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지난해 베스트셀러였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유노북스)처럼 일상 속에서 철학을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드라마 ‘허준’(1999년) 등 사극에 다수 출연한 배우 정명환이 8일 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향년 65세.고인은 안양예고를 졸업하고 1986년 MBC 18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1990년), ‘여명의 눈동자’(1991년)에서 이름을 알렸고 1991년 MBC 방송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신돈’(2005년), ‘이산’(2007년)에서 강직하고 중후한 배역을 맡아 ‘사극 전문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제3공화국’(1993년) ‘제5공화국’(2005년) 등 시대극에서도 활약했다. 2014년 드라마 ‘불꽃 속으로’를 끝으로 작품 활동을 멈췄다. 유족으로는 누나 명순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동성심병원, 발인은 11일 오전 6시 반.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뽀빠이’ 이상용 씨가 9일 별세했다. 항년 81세. 소속사 이메이드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고인은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택 인근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쓰러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미국 만화 캐릭터 ‘뽀빠이’가 별명이었을만큼 ‘건강의 상징’으로 유명했지만 최근 당뇨, 전립선 문제 등을 겪으며 건강 악화를 겪었다. 충남 서천군 출신으로 대전고, 고려대를 졸업한 고인은 1973년 ‘유쾌한 청백전’으로 방송에 데뷔했다. ‘뽀빠이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1975년부터 KBS의 인기 어린이 노래 프로그램인 ‘모이자 노래하자’를 진행하면서부터였다. 대중에게 가장 각인된 활동은 1980~1990년대 진행한 군부대 위문 예능 프로그램인 ‘우정의 무대’ 였다. 학군사관후보생(ROTC) 경험을 바탕으로 1989년부터‘우정의 무대’를 맡아 국민 MC 반열에 올랐다. 1996년까지 전국 군부대를 찾아다니며 방송을 진행해 ‘군통령’으로 불렸다.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5.5 문화상, 문화관광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여섯 살 때 비행기를 타다가 ‘날개에 매달려 있으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시간이 지나서야 그 ‘상상의 날개’를 펴본 거죠. 하하.”‘톰 형’ 혹은 ‘톰 아저씨’ 배우 톰 크루즈(63)가 다시 한번 한국을 찾았다. 벌써 12번째다. 8일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열린 영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간담회에서 만난 그는 세월도 무색하게 여전한,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로 다시 우리 앞에 섰다. 크루즈는 이번 작품에서 2438m 상공, 시속 225km의 바람을 가르며 비행기 날개에 매달렸다. 그는 “(크리스토퍼 매쿼리) 감독이 ‘날개에 올라가 보지 않겠느냐’며 농담했는데, 실제로 이뤄졌다”며 “솔직히 정말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비행기에 매달리면 맞바람이 불어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얼굴 내미는 것도 힘들잖아요. 비행기에서, 그것도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요.”이날 크루즈는 검은 정장 바지에 검은 긴팔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살짝 주름살은 늘었지만 미소는 여전히 소년 같았다. 등장과 동시에 팬들에게 연신 손을 흔들고 환하게 웃으며 ‘친절한 톰 아저씨’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12번이나 방문한 한국은 이제 그에게 어떤 나라로 기억되고 있을까. 크루즈는 “항상 새로운 곳에 가면 관광만 하지 않고 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한국 방문도 이런 제 꿈 중 하나”라며 “12번 방문한 게 그 증거다.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고, 따뜻한 환대에 감사하다”고 했다. 17일 국내 개봉하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은 1996년부터 시작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8번째 작품. 인류를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무기를 추적하는 에단 헌트(크루즈)의 여정을 그린 신작은 2023년에 개봉했던 7편 ‘데드 레코닝’의 후속편이다. 전편의 클라이맥스가 이번 영화의 서막이 되는 구조다. 이번 작품에선 극한의 수중 촬영도 눈길을 끈다. 북극해 노르웨이 최북단 스발바르 제도.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크루즈는 ‘직접’ 물에 뛰어들었다. 매쿼리 감독 역시 배우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다고 한다. “미지의 영역에 있다는 점이 공포스러웠다. 숨을 쉬기 어렵고 시야도 확보되지 않았다”는 감독과 달리, 크루즈는 자신감에 찬 모습이었다. 크루즈는 “많은 사람이 극단적인 액션을 하면 무섭지 않냐고 질문하는데, 솔직히 무섭긴 하다”면서도 “그것은 (순간의) 감정일 뿐, 두렵지는 않다”고 말했다. “어떤 걸 찍든 항상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돼요. 영화 덕에 비행기도 몰게 되고, 오토바이, 자동차 경주도 다 할 수 있게 됐죠. 노래가 필요하면 노래도 배울 겁니다. 영화가 제 인생이니까요.” 크루즈는 40년 넘게 이어진 자신의 ‘영화 인생’도 들려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가 꿈이었다. 네 살 때 세계를 돌며 영화 만드는 게 꿈이었고, 첫 영화를 열여덟 살 때 찍었다”며 “침대에 누워 제 삶이 어떻게 변할까 생각하면서, 모든 걸 영화에 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해야 할 정도로 너무 사랑하게 됐고, 내가 하는 게 뭔가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곧 나”라고 했다. 최근 할리우드에선 이번 작품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크루즈는 “신작은 30년 가까이 이어진 프랜차이즈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며 “그 이상은 아직 말씀드리고 싶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렇다면 배우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일까. “전 지금도 ‘워밍업(warming-up)’ 단계입니다. 인생은 ‘네버엔딩’이죠. 주 7일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언제나 이것이 저의 꿈이죠.”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6살 때 비행기를 타다가 ‘날개에 매달려 있으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시간이 지나서야 그 ‘상상의 날개’를 펴본 거죠. 하하.”‘톰 형’ 혹은 ‘톰 아저씨’ 배우 톰 크루즈(63)가 다시 한번 한국을 찾았다. 벌써 12번 째다. 8일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열린 영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간담회에서 만난 그는 세월도 무색하게 여전한,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로 다시 우리 앞에 섰다.크루즈는 이번 작품에서 2438m 상공, 시속 225km의 바람을 가르며 비행기 날개에 매달렸다. 그는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이 ‘날개에 올라가 보지 않겠느냐’며 농담했는데, 실제로 이뤄졌다”며 “솔직히 정말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비행기에 매달리면 맞바람이 불어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얼굴 내미는 것도 힘들잖아요. 비행기에서, 그것도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요.”이날 크루즈는 검은 정장 바지에 검은 긴팔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살짝 주름살은 늘었지만 미소는 여전히 소년 같았다. 등장과 동시에 팬들에게 연신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으며 ‘친절한 톰 아저씨’의 면모를 유감 없이 드러냈다.12번이나 방문한 한국은 이제 그에게 어떤 나라로 기억되고 있을까. 크루즈는 “항상 새로운 곳에 가면 관광만 하지 않고 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한국 방문도 이런 제 꿈 중 하나”라며 “12번 방문한 게 그 증거다.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고, 따뜻한 환대에 감사하다”고 했다.17일 국내 개봉하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은 1996년부터 시작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8번째 작품. 인류를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무기를 추적하는 에단 헌트(크루즈)의 여정을 그린 신작은 2023년에 개봉했던 7편 ‘데드 레코닝’의 후속편이다. 전편의 클라이맥스가 이번 영화의 서막이 되는 구조다.이번 작품에선 극한의 수중 촬영도 눈길을 끈다. 북극해 노르웨이 최북단 스발바르 제도.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크루즈는 ‘직접’ 물에 뛰어들었다. 맥쿼리 감독 역시 배우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다고 한다. “미지의 영역에 있다는 점이 공포스러웠다. 숨을 쉬기 어렵고 시야도 확보되지 않았다”는 감독과 달리, 크루즈는 자신감에 찬 모습이었다. 크루즈는 “많은 사람이 극단적인 액션을 하면 무섭지 않냐고 질문하는데, 솔직히 무섭긴 하다”면서도 “그것은 (순간의) 감정일 뿐, 두렵지는 않다”고 말했다.“어떤 걸 찍든 항상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돼요. 영화 덕에 비행기도 몰게 되고, 오토바이, 자동차 경주도 다 할 수 있게 됐죠. 노래가 필요하면 노래도 배울 겁니다. 영화가 제 인생이니까요.”크루즈는 40년 넘게 이어진 자신의 ‘영화 인생’도 들려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가 꿈이었다. 4살 때 세계를 돌며 영화 만드는 게 꿈이었고, 첫 영화를 18살 때 찍었다”며 “침대에 누워 제 삶이 어떻게 변할까 생각하면서, 모든 걸 영화에 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해야 할 정도로 너무 사랑하게 됐고, 내가 하는 게 뭔가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곧 나”라고 했다.최근 할리우드에선 이번 작품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크루즈는 “신작은 30년 가까이 이어진 프랜차이즈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며 “그 이상은 아직 말씀드리고 싶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그렇다면 배우로서 앞으로의 목표를 무엇일까.“전 지금도 ‘워밍업(warming-up)’ 단계입니다. 인생은 ‘네버 엔딩’이죠. 주 7일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언제나 이것이 저의 꿈이죠.”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폐업 직전, 먼지 쌓인 게임 가게 한구석. 허세만 남은 왕년의 챔피언 ‘개릿’(제이슨 모모아).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이상한 통로가 뻥 열리더니 그를 통째로 삼켜버린다. 정신 차려 보니, 나무도 산도 심지어 구름까지 네모난 세상. 먼저 요상한 세상에 도착한 ‘스티브’(잭 블랙)와 만난 개릿은 기상천외한 세계에서 엉뚱하고 황당한 대모험을 시작한다. 영화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이처럼 ‘예상 가능한’ 다소 뻔하고 단순한 이야기가 뼈대다. 원작 ‘마인크래프트’는 2009년 출시 당시부터 줄거리 없는 자유로운 플레이로 사랑받았던 게임. 영화 역시 탄탄한 서사보다 중간중간 폭소를 자아내는 연출에 중점을 뒀다. 영화적으로 허술함이 많다 보니 미국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비평가 신선도 지수는 48점. 망작에나 주는 ‘혹평’에 가까운 점수다. 하지만 관객 반응은 달랐다. 제작비 1억5000만 달러(약 2025억 원)가 들어간 영화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무려 8억7530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영화에서 블랙이 부른 34초짜리 노래 ‘스티브의 라바 치킨(Steve’s Lava Chicken)’은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78위를 차지했다. 빌보드 67년 역사상 ‘가장 짧은 노래’라는 기록도 세웠다. 한국은 예정일보다 나흘 앞당겨 지난달 26일 개봉했는데 6일까지 109만 명이 관람했다. 이처럼 최근 게임이 원작인 영화들이 성공을 거두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과거 약점으로 꼽히던 ‘헐거운 서사’가 오히려 영화 흥행에 도움이 되고 있다. 이야기가 빈약할수록 틀에 박히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쳤다며 호응을 얻는 ‘게임 영화의 성공 법칙’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게임 ‘마인크래프트’는 정해진 줄거리 없이 블록을 쌓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게 특징. 이런 빈틈이 영화 제작진에게도 새로운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캔버스가 됐다. 특히 ‘밈(meme)’의 확장이 영화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다. 닭 위에 올라탄 아기 좀비 캐릭터 ‘치킨 조키’에 10대 관객들은 열광했다. 팝콘과 음료를 뿌리는 관람 인증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도배했다. 미국에선 급기야 일부 관객이 살아있는 닭을 들고 극장에 나타나고, 폭죽을 터뜨리는 소동도 벌어졌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치킨 조키를 앞세운 미친 캐치프레이즈가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점령하고 있다”고 했다.이런 ‘단무지’(단순, 무식, 지맘대로) 경향은 다른 게임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023년)도 마리오와 루이지가 납치된 피치 공주를 구하러 간다는 뻔한 이야기. 익숙한 캐릭터와 해맑은 세계관을 내세워 13억61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명탐정 피카츄’(2019년·4억5006만 달러)나 ‘슈퍼 소닉’ 시리즈(3편 합산 10억 달러) 역시 복잡한 스토리를 버린 게 오히려 약이 됐다. 향후 등장할 ‘젤다의 전설’과 게임 원작 영화들도 이런 성공 법칙을 적극적으로 따를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나 틱톡 등 짧은 영상에 익숙한 세대의 입맛에 맞춰 빠르게 몰입할 수 있는 요소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이지혜 영화평론가는 “게임 원작 영화의 주 관객층인 젊은 세대는 비디오 게임을 시청하듯 영화를 소비한다”며 “완성도보다 밈이나 유행에 바탕을 두고 10대가 공감할 문화 요소로 각색된 작품이 성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에서 제작된 영화에도 100% 관세를 즉각 부과한다고 4일(현지 시간) 밝혔다.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등 제조업 위주로 매긴 품목 관세를 콘텐츠 산업으로 확장하겠다는 것. 이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블록버스터급 할리우드 영화들은 대부분의 수익을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인다”며 “다른 나라가 보복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영화사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오랜 내수 시장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영화의 미국 시장 진출에 제약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美 영화 산업 빠르게 죽어가, 다시 美서 제작”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미국 영화 산업이 매우 빠른 속도로 죽어가고 있다”며 “다른 나라들은 우리 영화 제작자들과 스튜디오들을 미국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온갖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는 다른 국가들이 조직적으로 벌이는 시도이며,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했다. 이에 외국에서 제작된 모든 영화에 100% 관세를 즉각 부과하도록 지시했다며 “우린 다시 미국에서 영화를 제작하길 원한다”고 했다. 최근 미국 영화 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캘리포니아 대형 산불 등으로 고전 중이다. 앞서 1월 트럼프 대통령은 멜 깁슨 등 유명 배우 세 명을 ‘할리우드 특사’로 임명하는 등 영화 산업 지원 의지를 강조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영화 관세를 계기로 한국에 각종 비관세 장벽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올 3월 미국영화협회(MPA)는 “외국 콘텐츠에 대한 한국의 스크린쿼터를 완화해야 한다”며 미 무역대표부(USTR)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USTR은 한국 국회에 계류 중인 콘텐츠사업자(CP)의 망 사용료 지급을 의무화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韓에 스크린쿼터 완화 요구 시 큰 반발”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박스오피스 수익의 46.3%(2022년 기준)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영화 시장이다. 국내 영화계에선 미국의 관세 부과가 한국 영화의 미국 시장 진출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19년 미국에서 5384만 달러(약 745억 원)의 수익을 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나, 올해 미국에서 흥행 기록을 세운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28일 기준 5451만 달러) 같은 사례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조치가 할리우드의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억제하고, 각국의 자국 영화 보호 정책을 완화시키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영화관들이 한국 영화를 1년에 73일 이상 의무 상영해야 하는 스크린쿼터 제도를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 김현수 영화진흥위원회 사업본부장은 “트럼프의 발언이 향후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이슈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며 “스크린쿼터 완화는 영화계에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USTR이 우려한 망 사용료 지급 의무화도 뜨거운 감자다. 넷플릭스 등이 대량의 트래픽을 유발하면서도 KT 등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들에 망 사용료를 부담하지 않고 있어서다. ‘망 이용 대가 공정화’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2건이 현재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남혜정 기자 namduck2@donga.com}
30주년을 맞는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새롭게 만든 대상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Palme d‘Or )’처럼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1996년 시작된 BIFF가 올 9월 열리는 30회에서 그간의 비경쟁 원칙을 접고 경쟁 체제로 전환해 부문별 수상작을 발표한다. ‘축제형 영화제’를 지향했던 기존 운영 방식을 바꿔 본격적인 개편에 나선 셈이다. 잇단 내홍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인한 영화시장의 경쟁력 약화 속에서 BIFF가 재도약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개막작 수난에 OTT 역습까지 최근 BIFF는 명성에 비해 실속이 예전만 못하다는 논란에 자주 휘말렸다. 특히 개막작의 존재감은 갈수록 희미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2023년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는 관객 6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개막작 ‘전, 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란 점에서 “영화제 본연의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비판도 받았다. 한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개막작은 영화제의 방향성과 기준을 보여주는 얼굴”이라며 “경쟁 체계가 없다 보니 선정 기준이 불투명하고, 기대감을 이끌어내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BIFF가 경쟁 부문을 신설한 배경에는 급격히 변하고 있는 산업 환경도 작용했다. 팬데믹 이후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가 제작과 유통의 주도권을 쥐면서 기존 영화계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줄었다. 이에 영화제도 영화 상영만으로는 작품의 가치를 증명하기 어려워졌고, 평가 체계를 갖춰 권위를 부여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판단이다. 또 다른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비경쟁 구조를 유지해 온 BIFF는 초청작에 수상 이력이 없다는 점에서 유통 시장과 홍보에서 불리했고, 신작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했다. 게다가 2023년 인사 갈등과 집행위원장 사퇴, 성추행 논란 등이 겹쳐 전례 없는 혼란을 겪은 점도 한몫했다. 이미지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BIFF로선 ‘대변신’이 절실해진 것이다.● ‘황금동백상’ 같은 매력 포인트 살려야 신설되는 경쟁 부문은 대상과 감독상, 배우상, 예술공헌상, 심사위원특별상 등 5개 분야로 나눠 시상한다. 대상 수상작은 폐막작으로도 상영된다. 신인 감독만을 대상으로 했던 기존 ‘뉴커런츠’보다 한층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구조다. 박광수 BIFF 이사장은 지난달 29일 간담회에서 “장기적으로 칸이나 베니스 같은 글로벌 영화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 충분한 역량이 있다고 판단되면 세계적 경쟁 영화제로 전환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BIFF의 변화 시도에 영화계 인사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이제는 경쟁 없는 영화제는 주목받기 어렵다”며 “BIFF에서 받은 상이 시장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공식이 만들어지면 BIFF의 영향력도 조금씩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영화제 마케팅 면에서 과감한 노력이 필요하단 의견도 나온다.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대상에 ‘황금동백상(Golden Camellia Prize)’ 같은 근사한 이름을 명명하는 것도 방법이다. 동백꽃은 부산의 시화(市花)이기도 하다. 다만 제도 개편만으로는 신뢰도를 회복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시선도 있다. 오랫동안 유지해 온 ‘관객 친화적 축제’ 이미지가 경쟁 중심으로 바뀌면 훼손될 수 있단 우려다. 특히 경쟁 부문을 운영하며 심사 공정성 등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경우 오히려 영화제는 더 크게 흔들릴지도 모른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경쟁 부문이 생긴다 해도, 칸이나 베니스에 진출하지도 못한 작품이 수상하는 구조라면 권위에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인적 쇄신 등 적극적인 변화를 통해 아시아 영화의 허브로서 BIFF가 쌓아온 위상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같이 갈래?” 주인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 반려견 ‘섀도’는 온몸으로 기뻐한다. 뛰고, 짖고, 심지어 스스로 목줄을 걸기까지 한다. 목적지는 별다를 것 없는 동네 학교. 매일 반복되는 주인의 아이 등하굣길에 함께 가는 일이다. 그런데도 섀도는 마치 인생 최고의 모험이라도 되는 양 들뜬다. 미국 마이애미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그런 섀도를 보며 생각한다. “나는 왜 이런 단순한 일에 이토록 기뻐하지 못할까?” 인간은 자꾸 ‘왜 사는지’, ‘이게 맞는 선택인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고 했지만, 저자는 되묻는다. “그 성찰 때문에 우리가 불행해진 건 아닐까?” 저자는 섀도의 삶에서 ‘몰입’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한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섀도는 강둑을 따라 달리며 이구아나를 쫓는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하지만, 그 순간의 달리기 자체가 기쁨이다. 섀도는 한 번도 지루해하지 않는다. 섀도는 어제 잘못한 일을 반성하지 않고, 내일 할 일을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현재를 살아간다. 저자는 고대 신화 속 인물 ‘시시포스’를 떠올린다. 산 위로 바위를 끝없이 밀어 올리는 벌을 받았던 시시포스. 많은 사람이 시시포스를 삶의 허무함의 상징으로 보지만, 섀도는 그런 반복조차 즐거움으로 바꿔낸다는 것이다. 저자는 개를 단순히 본능에 따르는 존재로 폄하하지 않는다. 개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도덕과 자유, 판단력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다. 위험한 상황에서 사람을 구하거나, 친구 개를 돕기도 한다. 계산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마음이 시켜서 움직일 뿐이다. 철학자들이 오랫동안 고민해온 ‘도덕’이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책장을 덮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눈앞의 햇살, 바람, 한 그릇의 밥이 얼마나 고마운가. 현재에 몰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행복에 한발 가까워진 것 아닐까. 부제 “타고난 철학자 ‘개’에게 배우는 단순명료한 행복의 의미”.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K컬처의 전성기가 계속될지는 우려스럽다. 하지만 기회는 있다. 이제 숨 고르기를 넘어 체질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아일보의 기획시리즈 ‘K컬처, 해외 석학에게 길을 묻다’와 관련해 한류를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사의 고위 관계자가 보내온 메시지다. 갈수록 글로벌 콘텐츠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수익 구조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는 상황이란 진단이다.한류는 여전히 뜨겁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가 여전하고, ‘폭싹 속았수다’ 등 새로운 콘텐츠가 쏟아진다. 하지만 내부에서 바라보는 한류 핵심 종사자들의 시선은 다소 다르다. 한류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교두보가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이에 동아일보는 K컬처 기업 핵심 종사자 20인을 대상으로 한류의 현재와 미래를 점검하는 설문조사 및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이브와 SM, JYP, YG, 카카오 등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를 비롯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대형 드라마 제작사, 영화 배급사 등 K콘텐츠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대표 및 전략책임자, 고위급 실무자가 참여했다. ● “한류, 정체 위기 경고등 켜졌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 다수는 K컬처가 현재 성장 정체기에 도달했다는 데 동의했다. 20명 가운데 13명(65%)이 “한류가 정체 상태에 들어섰다”고 답했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성장 둔화 신호와 여러 형태의 구조적 문제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며 “최근 정치·경제적 불안정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또 한 제작사 관계자는 “K팝 시장은 하락세에 있지만 드라마 부문은 여전히 성장세여서 분야별로 정체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류 성장 정체의 원인으로는 ‘글로벌 콘텐츠 경쟁 심화’(11명)를 가장 많이 지목됐다. 이어 ‘해외 플랫폼 전략 변화’(9명), ‘콘텐츠 포맷 반복과 차별화 부족’(9명)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꼽혔다. K팝 분야에선 유사한 외형과 전략을 반복하는 제작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컸다. 한 응답자는 “비슷한 비주얼과 전략을 가진 K팝 그룹들이 연달아 데뷔하면서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며 “기획사들도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그 차이가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류 산업의 가장 큰 위협 요소로는 ‘수익 모델의 지속 불가능성’(8명)이 꼽혔다. 특히 K드라마 분야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졌다고 짚었다. K팝은 공연과 부가 사업의 수익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해외 팬덤 이탈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롯데컬처웍스의 한 관계자는 “영화 흥행 실패가 재투자 축소로 이어지며 제작 규모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응답자는 “피프티피프티, 뉴진스 사태 등에서 보듯 K팝은 저작권과 아티스트 관계, 팬덤의 과도한 개입 같은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고 했다.● “익숙한 공식 버리고 현지화 전략 나서야”응답자들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략으로 ‘해외 현지화 강화’(10명)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단순히 콘텐츠를 수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각국의 창작자들과 협업해 현지 문화를 반영한 콘텐츠를 함께 기획·제작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K팝 시스템 자체를 수출하고, 다국적 아티스트를 육성해 각국 시장에 맞춰 현지화해야 한다”는 응답도 있었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장르물, 실험작 등 장르 및 포맷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했으며, 또 다른 기획사 관계자는 “창작자 중심의 수익 배분과 제작 구조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류 산업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는 11명이 ‘중장기 반등’을 내다봤다. K팝의 성장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고, BTS가 군입대로 완전체 활동을 멈추는 등 일시적인 악재들이 해결되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중소 기획사들의 빠른 성장과 글로벌 팬덤의 확장 등은 한류 성장의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손승애 쇼박스 드라마사업총괄 대표는 “성장률 둔화는 피할 수 없지만, 제작과 유통 방식을 전면적으로 ‘리셋’ 한다면 중장기 반등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 재개방 등 환경 변화에 따라 시장이 확대될 여지도 충분하다”는 응답도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익숙해진 성공 공식을 반복하는 제작 관행이나 불균형한 수익 구조, 폐쇄적인 제작 환경 등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구조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제언도 많았다. 제작자와 창작자가 존중받는 환경과 유연한 협업 모델, 변화하는 팬덤 생태에 대응할 수 있는 수익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정하 콘텐츠판다 총괄이사는 “OTT의 득세로 인한 시장 구조 변화, 수익 악화가 현재 위기의 핵심”이라며 “글로벌 OTT에 종속되지 않고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지속적으로 좋은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는 것이 한류의 생존 조건”이라고 강조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년)에서 무능력한 가족이 힘을 합쳐 싸우는 장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년)에서 변두리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는 부분을 제일 좋아합니다. ‘썬더볼츠*’에서 아웃사이더 히어로들이 함께 힘을 합치는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요.” 30일 국내 개봉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영화 ‘썬더볼츠*’의 한국계 미국인 편집감독 해리 윤(54)은 이날 한국 언론과의 화상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함께 간담회에 참석한 한국계 미국인 미술감독 그레이스 윤(43)은 “우리 영화엔 주변에 있을 만한, 땅 위를 걷는 히어로가 등장한다”며 “다른 마블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독특한 지점”이라고 했다. 이 영화는 ‘어벤져스’가 없는 세상에서 MCU의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그렸다. ‘옐레나’(플로렌스 퓨), ‘윈터 솔저’(서배스천 스탠), ‘레드 가디언’(데이비드 하버) 등 주인공들은 특별한 초능력이 없다. 오히려 전통적인 영웅상과 어긋날 정도로 결점이 가득한 ‘안티 히어로’에 가깝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의 마블 영웅과는 다른 캐릭터를 그리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그레이스 윤은 “레드 가디언은 ‘다 놔 버린 사람’, ‘포기하고 과거의 향수에 묻혀 사는 사람’으로 표현했다”며 “과거를 상기하게 만드는 사진이 가득한 공간으로 집을 꾸몄다”고 했다. 해리 윤은 “다른 마블 작품과 달리 상대를 무찌르고 파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치유하는 이야기”라며 “영웅들의 동기를 잘 설명하도록 편집에 신경을 썼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중국 본토에서 한류가 멈췄다. 이른바 ‘한한령(限韓令)’ 때문이다. 한류 스타들의 콘서트와 방송 출연이 줄줄이 막히면서 양국의 문화 교류도 멈췄다.그런데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3인조 힙합 그룹 ‘호미들’이 중국 우한에서 공연했고, 가수 겸 배우 김재중도 충칭에서 팬미팅을 열었다. K팝 보이그룹 ‘이펙스’는 이달 중 푸저우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중국에서 한류가 재도약할 수 있을까. 동아일보는 중국 산둥대에서 한류와 동아시아 문화를 연구하는 뉴린제(牛林杰·60) 교수와 전화 및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뉴 교수는 북한 김형직사범대 교육학부를 졸업한 뒤 한국 성균관대에서 국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산둥대에서 ‘국제 동아시아연구원’ 설립을 준비 중이다. 그는 중국 내에서 드물게 한국어로 한류를 연구하고 해석할 수 있는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최근 중국 내 공연과 콘텐츠 유통이 다시 시작되는 분위기다. 정책이 바뀐 것인가. “시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변화로 보인다. 관객들의 수요는 계속 있었고,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려는 민간의 노력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움직임이 조심스럽게 다시 드러나는 시기다. 아직 제한적인 방식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기회가 있다.” ―중국 안에서 한류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모두가 한류를 함께 즐기는 시대는 아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영상 플랫폼, 팬 커뮤니티 등에서 특정한 팬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긴다. 이런 현상을 ‘서클화(圈層化)’라고 부른다. 전체 대중보다 한정된 그룹 안에서 깊고 꾸준하게 소비되고 있는 셈이다.”―한류가 대중적으로 유행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어떤 점이 달라졌나. “과거에는 한국 콘텐츠가 중국 콘텐츠보다 앞서 있었고,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 콘텐츠도 빠르게 성장했고 관객 눈높이도 높아졌다.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큰 반응을 얻기 어렵다. 이제는 더 정교한 접근과 감정적인 연결이 필요하다.” ―중국 콘텐츠 산업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규모화’다. 중국은 세계적으로 큰 문화 시장이고, 여기에 많은 자본이 들어가 콘텐츠 제작이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둘째는 ‘장르화’다. 단조로운 이야기 대신 공상과학(SF), 범죄 등 다양한 장르가 활발하게 제작된다. 셋째는 ‘기술화’다. 인공지능(AI) 같은 새로운 기술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작지만 섬세한 이야기 구조에 강하다. 인물의 감정, 관계의 변화, 서사의 완성도 등에서 여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와 영화는 중국 팬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최근 중국 애니메이션 ‘너자2’가 큰 인기를 끌었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너자2’는 중국 고유의 문화와 상징을 담은 작품이다. 중국 관객들이 자국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콘텐츠가 단순히 ‘외국에서 잘 만든 콘텐츠’ 수준에 머무른다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문화적으로 연결되는 메시지가 있어야 경쟁력이 생긴다.” ―한국 콘텐츠가 일부 소재를 되풀이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동안 재벌, 학교폭력, 좀비 등 자극적인 소재가 많았다. 이제는 가족, 환경, 공동체 같은 보편적인 주제가 더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는 한국뿐 아니라 특히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또 여러 아시아 국가가 함께 만드는 공동제작 방식도 필요하다. 문화적으로 더 깊이 연결될 수 있고, 현지 관객의 거부감도 줄일 수 있다.” ―한국 콘텐츠가 중국에서 다시 의미 있게 자리 잡으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예전처럼 ‘한국 콘텐츠니까 본다’는 시대는 지났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관객들도 더 다양한 선택지를 알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 감수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중심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중국 측과 함께 기획하는 공동제작 방식도 좋은 방법이다.” ―앞으로 한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콘텐츠가 쉽게 소비되고 잊히는 시대다. 그 속에서 오래 남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졌다. 빠르게 퍼지는 이야기보다 천천히 더 깊게 스며드는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 감정을 건드리는 이야기,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 깊이 있는 메시지. 한류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년)에서 무능력한 가족이 힘을 합쳐 싸우는 장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년)에서 변두리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는 부분을 제일 좋아합니다. ‘썬더볼츠*’에서 아웃사이더 히어로들이 함께 힘을 합치는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요.”30일 국내 개봉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영화 ‘썬더볼츠*’의 한국계 미국인 편집 감독 해리 윤(54)은 같은 날 한국 언론과 진행한 화상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함께 간담회에 참석한 한국계 미국인 미술 감독 그레이스 윤(43)은 “우리 영화엔 주변에 있는, 땅 위를 걷는 히어로가 등장한다”며 “다른 마블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독특한 지점”이라고 했다.‘썬더볼츠*’는 어벤져스가 없는 세상에서 MCU의 새로운 영웅의 탄생기를 그린 작품이다. ‘옐레나’(플로렌스 퓨), ‘윈터 솔저’(서배스천 스탠), ‘레드 가디언’(데이비드 하버) 등 주인공들은 특별한 초능력이 없다. 전통적인 영웅상과 어긋날 정도로 결점이 가득한 일종의 ‘안티 히어로’다.특히 두 사람은 지금까지의 마블 영웅과는 다른 캐릭터를 그리는 데 중점을 뒀다. 그레이스 윤은 “레드 가디언은 ‘다 놔 버린 사람’, ‘포기하고 과거의 향수에 묻혀 사는 사람’으로 표현했다”며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사진이 가득한 공간으로 집을 꾸몄다”고 했다. 해리 윤은 “다른 마블 작품과 달리 상대를 무찌르고 파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치유하는 이야기”라며 “영웅들의 동기를 잘 설명하도록 편집에 신경 썼다”고 했다.‘미나리’(2020년), ‘패스트 라이브즈’(2023년), ‘성난 사람들’(2023년) 등 한국계가 만든 영화와 드라마에 두루 참여한 두 사람은 한국계 제작진의 성공 비결도 언급했다. 해리 윤은 “한국 사람들은 성실하고 참을성이 있다. 그런 기질이 미국 할리우드 현장에서 무척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했다. 그레이스 윤은 “한국인 특유의 따뜻한 정서, 배려의 문화가 작업 현장에서도 큰 장점이 된다. 추운 날 현장에서 해리 윤이 따뜻한 빵을 나눠주는 모습에 다들 감동한 적이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최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기 시작했어요, 하하. 다들 주변에서 ‘아이유가 최고’라고 하더라고요.”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63·사진)는 29일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에서 자신의 근황을 이렇게 밝혔다. ‘폭싹 속았수다’는 그가 연출했던 영화 ‘브로커’(2022년)에 출연한 아이유가 주연을 맡았다. 고레에다는 “주변에서 ‘빨리 봐라’고 해서 막 1화를 보기 시작했다”면서 “작품 소감은 다음에 물어봐 달라”며 웃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 ‘아무도 모른다’(2004년)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년), ‘어느 가족’(2018년) 등으로 세계적으로 팬층이 두껍다. 이번 방한은 씨네큐브 개관 25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별전’ 참석을 위해 이뤄졌다. 지난해 2월 영화 ‘괴물’(2023년) 홍보 이후 1년 2개월 만의 방한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오늘 점심으로 간장게장을 먹을 정도로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며 “내 작품 13편을 한 영화관에서 한꺼번에 상영하는 건 제게도 특별한 경험”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제기된 한국 영화 위기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주목했던 젊은 여성 감독들의 후속작이 나오지 않아 아쉽다”며 “한국에선 젊은 창작자들이 영화계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쪽으로 많이 옮겨 간 것 같다”고 진단했다. ‘포스트 박찬욱’이 아직 잘 드러나지 않는 한국과 달리, 하마구치 류스케(47) 등 ‘포스트 고레에다’가 등장한 일본 상황에 대해서는 “일본은 변화가 느린 덕분에 영화계가 OTT에 휩쓸리지 않았다. 극장을 지키려는 힘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답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관훈클럽(총무 김승련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30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를 초청해 관훈토론회를 개최한다. 이 후보가 기조 발언을 하고 언론인으로 구성된 패널들과 토론한다. 토론회는 유튜브 채널 ‘관훈클럽 TV’로 생중계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