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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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4-03-25~2024-04-24
문학/출판63%
문화 일반27%
인사일반10%
  • 中 ‘문화대혁명’ 오프닝부터 비판…넷플릭스 ‘삼체’ 어떻게 달라졌나 [선넘는 콘텐츠]

    “버러지를 근절하라! 모든 악귀를 쓸어버려라!”1966년 중국 베이징 칭화대.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 예저타이(페리 영)가 고깔모자를 쓰고 홍위병에게 끌려 나온다. 남자 홍위병이 “물리학 수업 중에 상대성 이론을 가르치지 않았나?”고 소리친다. 예저타이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상대성 이론은 물리학의 기초 이론인데 입문 수업에서 안 다루겠나”고 받아친다. 여자 홍위병이 “아인슈타인은 미국에 가서 원자 폭탄 만드는 걸 도왔다”고 외친다. 예저타이의 부인이자 칭화대 물리학 교수인 사오린이 “반혁명적 빅뱅 이론을 가르쳤다”며 예저타이를 고발한다.흥분한 수천 명의 청중은 “예저타이를 단죄하라!”고 외친다. 홍위병들이 잇따라 허리띠를 풀어 예저타이를 향해 휘두른다. 광기에 사로잡힌 홍위병들이 몰려나와 예저타이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린다. 잠시 후 예저타이의 숨이 끊어지고, 홍위병들은 당황한 듯 그 자리를 뜬다.● 첫 장면부터 ‘문화대혁명’지난달 21일 공개된 뒤 넷플릭스 세계 시청 순위 1위(TV 부문·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오른 드라마 ‘삼체’의 첫 장면이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중국 문화대혁명(1966∼1976년)의 끔찍함을 직설적으로 묘사한다. 제자와 부인에게 버림받고 끝내 살해당하는 예저타이의 모습을 통해 홍위병이 지식인을 핍박한 역사를 직시한 것이다.특히 이 장면은 이후 예저타이의 딸 예원제(자인 쳉, 로절린드 챠오)가 외계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만든다. 지구는 인간이 지배해선 안 된다는 회의론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특히 문화대혁명 당시 각계각층 지식인들이 무참히 죽은 역사로 반지성적 행동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다.반면 SF(공상과학) 소설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하고 900만 부 이상 팔린 중국 작가 류츠신이 2013년부터 연달아 쓴 원작 장편소설 ‘삼체’(전 3권·자음과모음)에서 이 에피소드는 첫 장면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1권 초·중반부에 이르러 7페이지 남짓하게 짧게 언급될 뿐이다.왜 장면 배치가 달라진 걸까. 류츠신은 2019년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소설도 홍위병 장면으로 시작하려 했지만 출판사가 검열을 우려해 바꿨다”고 털어놓았다. 중국 출판사는 이 장면을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이야기의 뒷부분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류츠신은 NYT에 “마지못해 (편집에) 동의했지만 소설이 달라졌다고 느꼈다”고 했다.원작 소설에서도 문화대혁명에 대한 묘사는 짧지만 참혹하기 그지없다. 예저타이가 죽은 뒤 단상의 모습을 원작 소설은 “광란의 대회장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핏줄기만이 유일하게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붉은 뱀처럼 천천히 구불구불 기어가다 단상 끝에서 한 방울씩 아래에 있는 빈 상자 위로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고 세밀하게 그려낸다. 예저타이의 부인 사오린이 집에 돌아간 뒤 실성한 듯한 웃음소리를 내는 장면을 묘사하는 원작 소설은 부부의 연마저 끊어버린 문화대혁명의 비극을 그대로 보여준다.류츠신이 ‘삼체’를 쓴 것도 문화대혁명에 대한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류츠신은 “문화대혁명 때 밤에 총소리를 들었다. 도시를 순찰하는 붉은 완장을 찬 남자들로 가득 찬 트럭을 본 것을 기억한다”고 NYT에 말했다.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대중운동으로 바뀌던 문화대혁명이 류츠신이 ‘삼체’에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것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삼체’는 중국의 참혹한 역사를 SF라는 장르적 특성 안에 품어낸 대작”이라며 “요즘 한국 SF에도 근현대사 등 역사를 바탕으로 쓰인 작품과 작가들이 필요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 “원작자 허락 받고 각색”‘삼체’ 공개 후 중국 내에선 반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드라마가 중국을 비하하는 데 사용됐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중국을 나쁘게 그린다”, “중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정치적 각색”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지난해 중국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30부작 드라마 ‘삼체’가 더 낫다는 주장도 유행하고 있다. 이런 반발은 특히 중국의 젊은 ‘애국주의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넷플릭스가 원작의 심오한 개념을 단순하고 조잡하게 변형시켜 서양 영웅 스타일의 할리우드 스토리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하지만 원작자의 의도를 반영한 각색을 정치적이라고만 비난할 수 있을까. 실제로 ‘삼체’ 제작진은 원작자의 허락하에 각색했다. 또 원작 소설은 미국판에선 홍위병 장면을 맨 앞장에 배치했다. 그래서 이 장면의 각색은 미국판 번역자가 한 것이라 보는 게 합리적이다. 미국판 번역자이자 SF 소설가인 켄 리우는 2019년 NTY와의 인터뷰에서 “서사 중간에 묻혀 있던 역사적 회상을 끌어내어 소설의 서두로 바꾸자고 원작자에게 제안했다”고 회상했다.넷플릭스가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감독을 섭외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2010년 감독 데뷔한 증국상은 중국 영화계에서 주로 활동했다. 증극상은 넷플릭스와의 인터뷰에서 “문화대혁명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며 “실제 문화대혁명을 겪은 사람을 인터뷰해 인간적이고 세세한 분위기까지 담으려 노력했다”고 했다.물론 류츠신이 원작에서 중국 체제를 오로지 비판한 것만은 아니다. 류츠신은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각종 인터뷰에서 직답을 피하곤 한다.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주의를 강조한 원작의 메시지는 동아시아적 문화의 특징을 강조한 것처럼 느껴진다. 또 원작은 중국을 미국만큼의 과학 강국으로 묘사한다. 중국 ‘SF세계’ 편집장인 야오하이쥔이 원작 서문에서 “최근 10년간 중국 문학에서 SF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미국 SF와의 비교를 동서양 취향 차이로 논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진전을 이룬 작품이 많이 발표됐다”고 자부심을 드러낸 이유다.일각에선 예원제가 겪는 시련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인생과 엮는 시선도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은 문화대혁명 당시 아버지인 시중쉰 부총리가 숙청되면서 하방한 바 있다. 오지에서 7년 동안 토굴 생활하다 공산당에 입당했다. 아버지 예저타이가 숙청당한 뒤 고생하다 외계인과의 소통을 주도하는 연구원이 된 예원제의 삶과 시 주석의 인생이 겹쳐보인다.● 다국적 캐스팅으로 이민자 문제 강조드라마가 전 세계를 배경으로 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원작 소설은 중국만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드라마는 배경을 영국 미국 등으로 넓힌 것이다. 특히 남미, 아시아 등 다양한 이민자 출신 배우를 조합한 것도 특징이다. 박진혜 자음과모음 편집부장은 “단순히 중국을 중심으로 두지 않고 드라마에 여러 인종이 등장하게 바꾼 점이 돋보인다”고 했다.드라마에서 이민자들이 피부색이나 비자 문제로 차별받는 장면을 넣어 이민의 문제를 강조한 점도 두드러진다. 이를 통해 외계인이 지구로 이민을 올 때, 지구인들은 이민자(외계인)를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확장했다. 드라마의 총괄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베니오프는 넷플릭스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 다양한 지역 출신의 배우들을 원했다. 외계인이라는 위협에 맞서는 한 국가만의 투쟁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전 세계적인 투쟁인 것을 나타내기 위해 다국적의 다양한 출연진을 캐스팅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드라마가 원작보다 인간적 면모를 강조한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드라마는 다섯 명의 옥스퍼드대 동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며 이들의 우정을 강조한다. 원작에서 중국 과학자인 왕먀오가 홀로 맡았던 일종의 탐정 역할을 드라마는 다섯 명이 함께 맡은 것이다. 이를 통해 접근법은 신선하지만, 필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원작의 한계를 넘어선다.다만 옥스퍼드 동문의 서사가 길어져 드라마가 지루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SF 소설을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거치는 각색 과정에서 세계관에 집중할지, 인간관계에 초점 맞출지는 앞으로도 고민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드라마 시즌2가 세계관과 배경을 우주로 넓힌 원작 소설의 흐름을 따라갈지, 옥스퍼드 동문을 중심으로 새로운 서사를 창조할지 기대된다”고 했다.드라마 ‘무빙’을 본 뒤 스마트폰을 켜고 원작 웹툰을 정주행한 적이 있나요?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가상 캐스팅’을 해본 적이 있나요? ‘선넘는 콘텐츠’는 소설, 웹소설, 만화, 웹툰 등의 원작과 이를 영상화한 작품을 깊이 있게 리뷰합니다. 원작 텍스트가 이미지로 거듭나면서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재밌는 감상 포인트는 무엇인지 등을 다각도로 분석합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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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휴일 없이 1057일째 근무 중… 日 편의점 사장의 애환

    “편의점 차리는 건 어때?” 1990년대 중반 30대인 저자는 남편에게 이런 제안을 받았다. 저자는 유치원, 남편은 호텔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었지만 부부가 함께 자영업자가 되자는 것이었다. 편의점을 차리면 지긋지긋한 삶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떼돈을 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친척의 부고를 들어도 일할 사람이 없으면 갈 수 없었다. 누가 언제 무슨 일로 화를 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한시도 마음 놓고 쉴 수 없었다. 그렇게 정신 차리니 약 30년간 편의점 주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과로와 손님에 시달리는 삶을 저자는 이렇게 토로한다. “편의점 점주로 사는 게 이토록 힘들 줄은 몰랐다.” ‘편의점 왕국’ 일본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가 쓴 에세이다. 온갖 잡화를 팔고 24시간 영업을 하는 일본 편의점의 속살을 유쾌하면서도 잔잔하게 전한다. 한국 거리 곳곳에도 편의점이 즐비한 만큼 한국 독자에게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 편의점에선 손님이 왕이다. 특히 서비스를 중시하는 일본에선 고객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필수다. 예를 들어 저자는 계산대 앞에서 “담배”라고만 주문하는 손님의 취향을 외운다. 길고양이에게 먹이라도 주듯 동전을 던지고, 전자레인지를 턱으로 가리키며 음식을 데우라고 명령하는 ‘진상’ 손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저자가 고군분투하는 건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일본의 편의점 수는 5만7544개에 이른다. 최근 청년들이 일하지 않으려고 해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2021년 기준 일본의 편의점 사장이 1년 동안 쉬는 일수는 21.3일에 불과하다. 저자 역시 휴일 없이 일한 지 1057일째다. 그럼에도 저자가 편의점 운영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편의점엔 요즘 사람들이 먹고 읽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사회의 축소판’이라 장사하는 재미가 있다.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맙다”는 단골손님의 응원에 힘이 나기도 한다. 수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편의점을 ‘천객만래(千客萬來)’라고 부르며 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음, 역시 나는 편의점을 사랑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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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로 잘 썼냐고요? 장그래처럼 최선은 다했습니다”

    “결국 최고의 바둑이란, 나의 최선을 이끌어낸 상대의 몫일지도.” 만화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옛 바둑 스승의 말을 떠올린다. 중소기업 ‘온길 인터내셔널’ 사장이 된 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다 스승의 조언에서 묘안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과거 장그래는 스승에게 “최고의 바둑, 대국은 뭐냐”고 물었다. 이에 스승은 “바둑은 혼자 두는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스승은 “묘수가 가득하려면 상대의 바둑도 굉장히 좋아야 한다. 내가 결점 없이 둔다는 건 상대 역시 결점이 없거나 적었다는 반증 아니겠냐”고 했다. 스승은 우문현답을 덧붙인다. “상대도 나도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그 결과 내가 이겼을 때 이보다 최선일 수 없었던 바둑이 나온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삶을 세밀하게 그려낸 ‘미생’이 12년 만에 완결됐다. 20일 ‘미생 시즌2’(더오리진) 20, 21권이 동시 출간돼 종지부를 찍은 것. 윤태호 작가(55)는 27일 서울 마포구 슈퍼코믹스스튜디오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힘에 부치고, 팔을 다치는 등의 이유로 여러 번 쉬어서 약 5년 동안 연재를 중단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2년 연재를 시작한 뒤 완결까지 12년이 걸린 대장정”이라고 말했다. “최고로 잘 썼냐는 질문엔 쉽게 답하기 힘들죠. 하지만 장그래처럼 최선을 다했습니다.” 2012∼2013년 카카오웹툰에 연재된 ‘미생’ 시즌1은 바둑에 인생을 걸었다 실패한 고졸 출신 장그래가 종합상사인 원 인터내셔널에 입사하면서 겪는 좌충우돌을 그렸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같이 폐부를 찌르는 명대사로 독자들의 선풍적 지지를 받았다. 2015년부터 연재된 시즌2는 장그래가 중소기업 온길 인터내셔널에서 일하는 과정을 통해 한국의 기업문화를 생생히 살려냈다. 2014년 방영된 동명의 tvN 드라마에 힘입어 시즌 1·2 단행본 판매량은 약 300만 부에 달한다. 그는 “시즌2에선 장그래의 입사 동기인 ‘장백기’처럼 4년제 대학을 나온 평범한 직장인의 삶도 충실히 다루고 싶었다”며 “회사와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다 갖춘 직장인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동력으로 살아갈까 고민했다”고 했다. 12년 전 연재를 시작한 만큼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장그래는 시즌1에서 무턱대고 야근하며 열심히 일한다면, 시즌2에선 동료와 선후배를 챙기며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리더로 묘사된다. 그는 “요즘 시선으로는 장그래는 너무 열심히 일해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빌런’(악당)으로 비칠 수 있다”며 “주 52시간 근무 시대에 맞춰 작품을 낡아 보이지 않게 했다”고 설명했다. “장그래가 성장한 만큼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모습도 담으려고 했어요. 상급자인 ‘오상식’, ‘김동식’의 부하 직원이 아니라 독립적 주체라는 걸 보여주려고요. 그래서 결국 온길 인터내셔널의 사장이 장그래에게 사장직을 물려준 거죠.” 시즌2는 이창호 9단과 마샤오춘 9단의 제3회 삼성화재배 결승 5번기 제5국을 모티브로 한다. 이 경기 216수에서 이창호는 드디어 승리를 확신하는 듯 ‘계가’(計家·대국이 끝난 후 이기고 진 것을 가리기 위하여 집 수를 헤아리는 일)를 향해 달려간다. 같은 216수를 내세운 미생 마지막 화에서 장그래는 후배 ‘조아영’과의 결혼을 결심한다. 승기를 잡은 이창호, 결혼하는 장그래. 미생을 완결한 그는 완생(完生)에 이른 걸까. 윤 작가는 두 손을 합장하며 이렇게 답했다. “그건 모르죠. 다만 제겐 미생을 읽고 댓글을 달아준 독자들이 최고의 바둑 상대였습니다. 묘수로 가득한 삶을 살던 제게서 최선을 이끌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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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 없는 그림책이 말 걸어오는 세계, 이것이 바로 나의 언어”

    “제가 쓴 디지털 세계의 글이 영원히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글이 모두 사라질 거란 두려움이 찾아왔죠.” 이수지 작가(48)는 26일 에세이 ‘만질 수 있는 생각’(비룡소)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블로그에 오랫동안 썼던 글이 얼마 전 블로그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종이책을 펴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림책은 어린이 손에 쥐어지는 물리적으로 단단한 물건”이라며 “책을 묶으며 그동안 내가 해 온 작업이 그렇게 떠다니는 글을 모아 물리적 실체로 만드는 작업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2022년 한국인 최초로 ‘어린이책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그림작가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국내 그림책 작가 중 처음으로 제36회 인촌상 언론·문화 부문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그의 대표작은 ‘파도야 놀자’(2008년), ‘거울속으로’(2009년), ‘그림자놀이’(2010년)다. 제본선을 활용해 ‘경계 3부작’으로 불리는 이 시리즈는 바다와 모래사장, 현실과 거울 등의 경계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책의 물성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신간 역시 책의 물성을 독특하게 살려냈다. 큰 사각형 안에 작은 사각형을 넣은 표지는 그가 작품에서 자주 쓰는 ‘책 안의 책’ 특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초판은 실로 꿰맨 책등이 보이는 ‘누드 제본’으로 제작됐다. 그는 “그림책 작가는 책을 쓸 때 판형이 어떻고, 무게가 얼마고, 종이를 뭘 쓰는지를 생각하는 예술가”라며 “그림책은 손에 든 순간부터 책 읽기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신간에는 그가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영국 런던 캠버웰예술대에서 북아트 석사 학위를 받을 당시의 일이 담겼다. 초창기 작업 노트나 외국 편집자와 일한 경험처럼 작가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엄마로서 아이들과 보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도 가득하다. 그는 “그림책이 기본적으로 어린이 책이라고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그림책 세계에 빠져드는 독자가 많다”고 말했다. 신간에서 그는 ‘말 없는 그림책이 내게 말없이 말 걸어오는 내밀한 세계. 이것은 완전히 다른 언어이며, 이것이 바로 나의 언어구나’라고 썼다. 글을 최소화하고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품 세계에 대한 개인적 감상을 고백한 것이다. 이날 그는 “오독(誤讀)할 수 있는 그림책은 얼마나 멋지냐”며 “아이들이 그림책 안에서라도 정답만 얘기하면서 살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다음 달 8일 발표되는 안데르센상 글 부문 수상 후보에 이금이 작가(62)가 포함됐다. 한국 그림책이 발전하기 위해선 무엇이 더 필요할까. “그림책을 읽어주는 사람의 태도요. 어른에겐 이 이야기가 정말 멋있어, 너랑 같이 이걸 느끼는 게 너무 좋다는 태도가 필요해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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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 ‘일러두기’ 이상문학상 대상

    문학사상이 주관하는 제47회 이상문학상 대상에 소설가 조경란(55·사진)의 단편소설 ‘일러두기’가 25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대도시 변두리 동네에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복사집을 운영하는 ‘재서’와 길 건너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미용’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며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내용이다. 각박한 현실의 이면에서 여러 인물들의 내면의식이 변화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수작에는 김기태의 ‘팍스 아토미카’, 박민정의 ‘전교생의 사랑’, 박솔뫼의 ‘투 오브 어스’, 성혜령의 ‘간병인’, 최미래의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 5편이 뽑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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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진보초 거리에선 누구나 서점 주인이 된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서점 주인을 꿈꿔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런 환상을 충족시켜 보고 싶다면 일본 도쿄 진보초 거리에 있는 책방 ‘파사주 바이 올 리뷰스’로 가보면 어떨까. 이 책방에선 서점 주인이 될 수 있다. 월 임대료 5500엔(약 5만 원)만 내면 누구에게나 판매용 책장을 빌려준다. 교수나 번역가는 자신이 오랫동안 간직했던 헌책을 내놓는다. 작가나 출판사 대표는 자신이 펴낸 책을 판다. 책장은 300개가 넘는다. 책장마다 주인의 정보가 담긴 QR코드가 붙어 있어 스마트폰으로 도서 정보나 재고량을 알 수 있다. 결제는 신용카드나 모바일로만 가능하다. 주로 현금을 쓰는 일본에선 이례적이다. 이른바 ‘셰어형 서점’이 진보초에서 퍼져가고 있다. 신간은 ‘거대한 서점’이라 불리는 진보초를 기록한 에세이다. 일본에서 연극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했던 한국인 저자가 진보초 책방 18곳을 취재해 썼다. 진보초에 처음 서점이 생긴 건 1877년이다. 메이지유신 직후 근처에 대학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학생들이 드나드는 서점이 하나둘 문을 열었다. 일본에서 정치경제는 마루노우치, 소비문화는 긴자, 지식유통은 진보초를 대표 거리로 친다. 진보초에 서점이 130개 이상이라고 하니 상상 이상이다. 진보초를 지탱하는 건 오래된 서점이다. 1881년 문을 연 ‘산세이도 진보초 본점’, 1890년 개점한 ‘도쿄도서점’처럼 문을 연 지 100년 이상 된 서점이 가득하다. 가로 2cm, 세로 3cm에 단편소설 한 편을 담은 이른바 콩책을 판매하는 ‘로코서방’, 오래된 동화 헌책만 파는 ‘미와서방’처럼 독특한 서점도 많다. 일본 화구와 문구를 파는 ‘분포도’, 고지도 전문점 ‘신세도서점’같이 다양한 물건을 판다. 물론 시대에 따라 진보초도 바뀌고 있다.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식당을 운영하는 어린이책 전문 서점 ‘북하우스 카페’, 서점 안에 현대 미술품을 전시하는 ‘고미야마서점’처럼 새로운 시도도 보인다.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일을 선호하는 일본 출판계 모습을 한국 출판계에 곧바로 적용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책을 사랑하는 이웃 나라의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니 잠시나마 서점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든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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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다한 인연의 말… 행간에선 들릴지도[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여러 해석을 내놓곤 한다. 특히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처럼 주인공의 감정과 주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은 더욱 그렇다. 물론 인터뷰를 찾아보면 작가와 감독의 생각을 유추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영화를 찍는 이의 입장에서 쓰인 글을 읽으면 창작자의 의도를 더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패스트 라이브즈’의 셀린 송 감독이 직접 쓴 각본을 펼쳤다. “해성,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아마 이렇게 어리지 않았다면 제대로 표현했을 텐데.” 12세인 소꿉친구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이 처음 헤어지는 장면에서 해성의 감정을 묘사한 지문이다. 나영은 가족을 따라 이민을 가려는 차다. 작별을 앞두고 두 사람은 함께 걷다가 머뭇거린다. 해성은 “야!”라고 부르고 나영은 “왜!”라고 답한다. 이때 해성이 느끼는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너무 어려 인사마저 건네지 못하는 해성의 마음이 지문에서 짙게 느껴진다. “너무나도 평범한 한국 가정의 너무나도 평범한 아침 식사의 모습이다. 해성이 살아오는 동안 한결같은 모습이다.” 24세가 된 해성의 집안을 묘사한 지문이다. 해성은 미국에 사는 나영에게서 연락을 받은 차다. 하지만 지문은 해성이 처한 현실을 명확히 설명한다. 셀리 송은 해성의 가족에 대해 ‘너무나도 평범한’이란 단어를 2차례 쓴다. 이민자로서 독특한 삶을 살아가는 나영 집안과 평범함을 중시하는 해성 집안이 지닌 문화 차이가 두 사람의 관계에 영향을 끼친다는 걸 은유한다. 36세가 된 나영과 해성이 미국 뉴욕에서 만날 때 각본은 더 직설적으로 의도를 전달한다. 뉴욕에서 나영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해성의 마음에 대해 셀린 송은 “아주 길게 느껴질 게다. 고통스러울 정도로”라고 표현한다.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강가 풍경에 대해선 “뉴욕이란 도시만큼이나 다양한 연인들의 모습. 짝이 없는 사람이라곤 해성밖에 안 보인다”고 설명한다. 두 사람의 만남을 바라보는 나영의 남편 아서(존 매가로)의 감정도 눈길이 간다. 아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해성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또 다른 생에서 중요한 사람”이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아서가 두 사람이 서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는 걸 모른 체하자 셀린 송은 “고개를 돌리고 못 본 척할 뿐. 친절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평가한다. 이처럼 인물들의 감정에 대해 세세히 묘사한 지문을 읽다 보면 이 작품이 영화보단 소설이나 연극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숨겨진 ‘이스터에그’를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12세인 나영과 해성이 함께 뛰어노는 장소가 이일호 작가의 조각상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응시’라고 각본엔 명시돼 있다. 서로를 마주 보는 얼굴을 그린 조각상은 교감하는 둘의 관계를 뜻하는 것 아닐까. 나영의 부모가 이민을 위해 짐을 쌀 때 등장하는 음악은 레너드 코언의 ‘이봐, 그런 식의 작별은 안 돼’다. 두 사람의 서투른 작별에 대한 은유로 느껴진다. 해성을 만나러 간 나영을 집에서 기다리던 아서는 게임 ‘오버워치’에서 우주의 균형에 대해 설법하는 승려 로봇을 선택해 플레이한다. 아서가 불교의 윤회 개념에서 온 ‘인연’이란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 것 같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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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통의 승화, 시적 공간의 확장… 다채롭게 변주될 작품 골라”

    동아일보와 전남 강진군이 공동 주최하는 제21회 영랑시문학상 본심에 오른 후보작이 선정됐다. 영랑시문학상 예심 심사위원회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15일 심사를 진행해 5개 작품(시집)을 선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영랑시문학상은 섬세하고 서정적인 언어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영랑 김윤식 선생(1903∼1950)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그의 시 세계를 창조적으로 구현한 시인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지난달 영랑시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신달자 시인)는 올해 운영 요강과 심사위원 위촉 및 심사 기준을 확정하고, 예·본심 심사위원단을 구성했다. 1차 예심 위원인 고봉준 김훤 박순원 시인과 2차 예심 위원인 고재종 문태준 오형엽 시인은 ‘등단한 지 10년 이상 된 시인이 2022, 2023년 출간한 시집’을 대상(기존 수상작 제외)으로 올 2월부터 17개 작품을 선정했다. 이 중 심사를 거쳐 5개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김경윤 시인의 ‘무덤가에 술패랭이만 붉었네’ △곽효환 시인의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 △안미옥 시인의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이은규 시인의 ‘무해한 복숭아’ △함기석 시인의 ‘모든 꽃은 예언이다’이다(이상 작가명 가나다순). 김 시인의 ‘무덤가에 술패랭이만 붉었네’는 실존적 고통을 불교적 사유로 극복하려는 시집이라는 평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애절함을 불교의 무상과 무아의 차원으로 수용하고 승화시키는 아름다움을 동반하고 있다”고 했다. 곽 시인의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은 한국 시의 시적 공간을 북방까지 크게 넓힌 점을 인정받았다. 심사위원단은 “‘북방의 시인’이라는 시인의 별칭에 호응하듯 만주, 시베리아, 연해주 등 광활한 북방 공간을 가로지른다”고 했다. 안 시인의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는 과거의 상처와 고통이 현재와 미래에 남아 있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렸다. 심사위원단은 “고통이 안과 밖, 그림자와 빛, 나와 너라는 이분법을 넘어가는 과정을 집과 나무를 통해 형상화했다”고 했다. 이 시인의 ‘무해한 복숭아’는 길, 기억, 상실, 부재 등의 단어로 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표현한 시집이다. 심사위원단은 “타자에게 가닿고자 마음의 무늬를 표현하는 모습이 절실하다. 사랑과 존재의 본질에 가 닿으려는 솜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했다. 함 시인의 ‘모든 꽃은 예언이다’는 시인이 실제 삶 속에서 만난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현실을 세세하게 그려냈다. 심사위원단으로부터 “시인이 그간 그토록 돌아보지 않던 짙은 서정성에다 과거의 민중시적인 태도까지 더해져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에너지가 넘치는 시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오늘의 한국 시단에서 현재적 의미로 다채롭게 변주될 수 있을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고 밝혔다. 본심은 29일 열린다. 시상식은 다음 달 19일 전남 강진군 강진아트홀에서 열린다. 상금은 3000만 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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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관의 영랑시문학상, 불혹까지 뻗어갈것”

    “영랑시문학상은 20년 후 불혹(不惑)이 됩니다. 앞으로도 외부 환경이나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뻗어 나가길 바랍니다.” 강진원 전남 강진군수(65·사진)는 21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로 21회를 맞은 영랑시문학상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 그는 “영랑시문학상은 사람으로 치면 약관(弱冠)의 나이다. 이제 막 갓을 쓰고 성년이 됐다”며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탄탄한 토대를 만들겠다”고 했다. 강진군은 2020년부터 영랑시문학상을 동아일보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강 군수는 “영랑시문학상은 일제강점기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뜨겁게 항거했던 실천하는 지식인이며 동시에 한글이 가진 아름다움의 정수를 보여준 영랑 김윤식 선생을 기리는 뜻깊은 문학상”이라며 “영랑은 강진의 아들이자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강진군은 영랑의 시대정신과 주옥 같은 시를 후세에 남기고 지켜야 할 사명과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시인의 이름을 건 문학상은 시인을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 시대에 만나는 생생하고 특별한 이벤트”라며 “시는 실제 세계에 기반하지만 현실과는 독립된 독자적인 영역을 지닌 전혀 새로운 세계다. 인류에게 문자가 사라지지 않고 상상력이 소멸하지 않는 한 시는 계속해서 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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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문화 바람 타고… 숨은 보석 ‘히든 챔피언’이 뜬다

    “데뷔할 줄 몰랐어요. 몇 년 동안 마음을 접고 있었는데 너무 좋았죠.”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을 연출한 김희진 감독(38)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랜 고생 끝에 첫 장편영화 감독이 돼 먹먹하다는 소감을 밝힌 것이다. 김 감독은 ‘수학여행’(2010년) 등 단편영화 3편을 연출했을 뿐 오랫동안 시나리오 작가로 일했다. 2017년 ‘로기완’의 연출을 제안받았지만 캐스팅과 투자 문제로 작품 제작은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투자를 결정하고 배우 송중기의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제작은 급물살을 탔다. ‘로기완’은 1일 공개 후 넷플릭스 비영어권 영화 부문 1위에 올랐다. 탈북자 인권 문제를 다뤄 국제적 관심을 얻은 데 따른 것이다. 김 감독은 “빛을 보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렸다. 연출가로서 데뷔하는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최근 세계적인 K문화 열풍에 힘입어 국내 콘텐츠 업계에서 ‘히든 챔피언’이 부상하고 있다. 국내에선 별 주목을 받지 못한 신인 창작자들이 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 넷플릭스에 따르면 2022∼2025년 선보였거나 선보일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다섯 편 중 한 편은 신인 감독의 작품이다. 예컨대 민홍남 감독은 단편영화 ‘병원이나 가야겠습니다’(2005년)만 연출했을 뿐 주로 연출부 스태프나 조감독으로 일했는데, 올 초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선산’을 연출했다. 올 1월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황야’의 허명행 감독 역시 무술감독, 스턴트 배우로 일하다가 감독으로 처음 데뷔했다. ‘선산’이나 ‘황야’는 모두 충무로에선 메가폰을 잡지 못한 감독들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을 통해 해외로 진출 기회를 얻은 사례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19일 방한해 “신인 감독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를 무대로 데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OTT가 창작자의 명성보다 작품성에 주목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K콘텐츠 인기에 힘입어 작품만 좋다면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는 구조인 것. 배우 송중기는 ‘로기완’ 기자간담회에서 신인 감독 작품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시나리오를 보지 감독이 누군지를 보고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제 유명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작품을 보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학에서도 히든 챔피언 창작자들이 빛을 보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서울국제도서전의 지식재산권(IP) 상담 건수는 2022년 115건에서 지난해 944건으로 불과 1년 새 8배 넘게 급증했다. 주연선 은행나무 출판사 대표는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해외 출판사 40곳과 상담했는데 이 중 60% 이상이 우리 책을 사려는 상담이었다”며 “해외 출판사에 서울국제도서전은 그동안 책을 팔러 오는 곳이었는데 지난해부터 사러 오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의경 작가의 장편소설 ‘헬로 베이비’(2022년·은행나무)는 영국, 미국,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출간을 최근 확정했다.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미국 판권은 북미 최대 출판사인 랜덤하우스 계열의 호가스북스에 팔렸다. 호가스북스 편집자는 김 작가에게 e메일을 보내 “오늘날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여성으로서 느끼는 문제에 관심이 높은데 ‘헬로 베이비’가 이를 잘 다뤄 마음에 들었다”고 썼다. 세계적으로 인구 감소 현상이 벌어지는 가운데 난임 병원에서 만난 30, 40대 여성의 고민을 담은 점이 호소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진희 은행나무 이사는 “인구 감소 트렌드와 소설의 주제가 맞닿아 해외에서 반응이 뜨겁다”고 했다. 신인인 박소영 작가의 장편소설 ‘스노볼’(2021년·창비)은 미국, 영국 등 10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미래 혹한기에 돔으로 둘러쳐진 따뜻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 기후 위기에 관심이 높은 해외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진보라 작가의 장편소설 ‘메모리케어’(2023년·은행나무)는 미국, 영국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인공지능(AI)으로 만든 딥페이크 가짜뉴스가 국내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 힘든 미래를 그린 책 내용이 영미권 독자들의 흥미를 끈 것. ‘메모리케어’를 해외에 수출한 국제 문학 에이전트 바버라 지트워는 “앞으로는 창작자의 명성보다 작품 내용의 보편성이나 작품성이 콘텐츠의 성공을 판가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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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방인에 등돌린 유럽은 이제 ‘섬’… 타인은 위협이 아니라 삶의 기회”

    “유럽은 ‘섬’이 됐습니다.” 프랑스 작가 필리프 클로델(62)은 19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린 첫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15일 국내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은행나무)을 쓴 건 이방인을 배척하는 유럽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 유럽 사람들은 이민자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차 자신만의 세상을 유지하려 한다”며 “하지만 끊임없이 밀려올 이민자와 공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4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공쿠르상과 르노도상을 잇따라 수상하고 공쿠르상 심사위원에 오른 유명 작가다. 나약한 인간과 선악의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회색 영혼’(2005년·미디어2.0)이 대표작이다. 그는 영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2008년)로 영국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신간 배경은 지중해의 작은 섬마을이다. 사람들은 올리브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으며 평온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해변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흑인 청년 시신 세 구가 발견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신이 왜 밀려왔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현재 진행 중인 온천 사업이 틀어질지 걱정하다 시신을 구덩이에 던져 넣고 사건을 은폐한다. 그는 “지금 유럽은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난민이 들어오고 있다. 난민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지닌 유럽인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소설을 쓴 건 2018년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며 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더 심해졌어요.” 신간에서 상당수 등장인물들은 이름 없이 시장, 의사, 신부 등으로만 불린다. 그는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나 시간을 특정하지 않은 건 어느 시대에나 이 이야기가 적용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간은 우화”라고 했다. 작품에서 외지인인 교사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진실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한다. 불신과 공포, 이기심이 섬을 가득 채운다. 그는 “세상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나누어져 있지 않다. 선악을 모두 품고 있는 인간상을 다양하게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민자 문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첨예한 사안이다. 문학이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정치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그대로 직시할 수 있게 해주죠. 타인은 위협이 아니라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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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재 주연 스타워즈 신작 6월 4일 공개

    배우 이정재(52·사진)가 제다이 마스터로 주연을 맡은 디즈니플러스의 ‘애콜라이트(The Acolyte)’ 시리즈가 6월 4일 공개된다. 이 드라마는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1―보이지 않는 위험’(1999년)의 100년 전 이야기로 총 8부작이다. 스타워즈 제작진은 18일(현지 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애콜라이트 방영일이 적힌 포스터를 공개했다. 포스터에는 ‘빛의 시대에 어둠이 떠오른다’는 문구와 함께 스타워즈 상징인 광선검 손잡이 위로 피가 흐르는 이미지가 담겼다. 제작진은 “애콜라이트는 제다이 기사단의 전성기를 배경으로 한다”며 “하지만 은하계의 평화와 정의의 수호자에게 문제가 일어나게 된다”고 소개했다. 이어 “에콜라이트에서는 충격적인 범죄 행위에 대한 조사를 통해 존경받는 제다이 마스터가 위험한 전사와 맞서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정재가 연기하는 제다이 마스터는 광선검을 사용하는 검술 기사이자 기계공학에 능한 학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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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보다 참혹해진 메시아의 미래… 영웅주의를 겨누다

    영웅주의에 대한 경고.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듄 파트2’는 원작 소설보다 이 점이 두드러진다. 주인공 폴(티모테 샬라메)이 꿈에서 참혹한 미래를 보는 장면을 곳곳에 배치해 비극적 결말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성전(聖戰)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서로를 죽이고, 굶주림에 죽어가는 인류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방대한 세계관을 이해해야 읽을 수 있는 원작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장치다. 그 덕에 영화는 ‘듄친자’(듄에 미친 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국내 관객 150만 명을 동원했다. 미국 작가 프랭크 허버트(1920∼1986)가 1965년부터 펴낸 원작 소설 ‘듄’(황금가지)은 6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원작에서 폴이 과거와 미래를 명확히 볼 수 있게 되는 시점은 1권 초반부다. 환각물질인 스파이스에 노출된 폴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게 되고, 확신에 차 원수인 하코넨 가문에 복수를 시작한다. 폴은 두려움 없이 전쟁을 이끌며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반면 영화에서 폴은 자주 망설인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면 곧 참혹한 전쟁이 벌어질 거라는 생각에 고뇌한다. 영화 후반부에서야 ‘생명의 물’을 마시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다. 카메라는 폴을 구원자로 맹신하는 이들을 자주 비춘다. 모래 행성 아라키스의 원주민 프레멘족은 폴을 ‘리산 알 가입’(외계에서 온 목소리)이나 ‘마디’(낙원으로 이끌어줄 자)라고 부르며 맹종한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가신(家臣)으로 폴에 복종하는 거니(조시 브롤린)는 복수를 외치며 하코넨 가문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영화는 소설보다 참혹하고 암울한 미래를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영웅 찬가가 아닌 ‘환멸’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극 중 폴의 연인 차니(젠데이아 콜먼)의 역할 변화도 돋보인다. 원작에서 차니는 폴을 사랑하고 돕는 순종적 인물이다. 반면 영화에서 차니는 메시아가 되려는 폴에게 경고를 던진다. 황제가 돼 다른 가문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폴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다. 분노와 실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폴을 떠나 홀로 사막으로 향하는 차니를 통해 영화는 영웅주의에 대한 비판을 강조한다. 김준혁 황금가지 주간은 “원작에서 순종적인 주변 인물에 불과한 차니가 영화에선 주체적 주인공이 된다. 폴의 대척점에 선 반동자”라고 평했다. 이 같은 각색은 허버트가 고민한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영화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 감독은 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허버트는 원작이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를 담기를 원했지만 1권 출간 후 독자가 자신의 의도를 잘못 이해했다고 느꼈다”며 “자신의 생각이 확실히 드러나도록 (폴이 회의를 느끼고 지도자가 되기를 포기하는 내용의) 2권을 썼다”고 말했다. 여성의 주체적 서사가 강조된 점도 눈길을 끈다. 극 중 폴의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페르구손)는 폴에게 영웅이 될 것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유도한다. 이에 비해 원작에선 남편을 잃고 당황해하며 뒤에서 폴을 도울 뿐이다. 또 영화에선 대가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초능력 여성 집단 ‘베네 게세리트’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베네 게세리트 소속인 일룰란 공주(플로렌스 퓨)는 황제에게 자주 조언하고, 레이디 마고트(레아 세두)는 하코넨 가문의 후계자를 매혹적으로 유혹한다. 겉으론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를 사실상 움직이는 건 여성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셈이다. 원작의 독백을 최소한으로 줄인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원작은 영웅이 되기를 결정하는 폴의 심리를 소설 지문으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1984년 작 영화 ‘듄’이 내레이션을 통해 폴의 심리를 전해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은 반면, 이번 영화에선 독백을 거의 없애 속도감을 높였다. 영화에서 우주를 지배하는 대가문들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점도 특징이다. 곁가지를 쳐내 폴의 이야기에 대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미장센도 특기할 만하다. 빌뇌브 감독은 하코넨 가문에서 벌어지는 음모들을 흑백 화면으로 보여준다. 하코넨 가문의 행성에선 태양이 검다는 원작 내용을 시각적으로 살려낸 것.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제복은 나치의 파시즘을 연상시킨다. 모래로 가득한 아라키스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전투 신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년)를 떠올리게 한다. 전홍식 SF&판타지 도서관장은 “1차대전 당시 중동에 파견된 영국군 장교가 아랍의 영웅이 되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서사는 이방인 폴이 원주민 프레멘을 이끄는 ‘듄’의 이야기와 닮았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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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수만 “학전 마무리에 써라” 1억5000만원 기부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72·사진)가 15일 폐관한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에 1억5000만 원을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기획한 가수 박학기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전 프로듀서가 김민기 학전 대표를 걱정하며 필요한 것을 다 이야기하라고 했다”며 “만성 적자에 시달린 학전 정리에 부족한 액수를 말했더니 필요한 금액 이상을 올해 1월 보내줬다”고 말했다. 서울대 농업기계학과 출신인 이 전 프로듀서는 서울대 회화과를 나온 김 대표의 대학 후배다. 1991년 3월 개관한 학전은 15일 폐관했다. 학전은 그동안 고 김광석, 들국화, 조승우 등 수많은 스타 가수와 배우들을 배출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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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버, 정정보도 온라인 청구… 언론사 기사 편집권 침해 논란

    네이버가 언론보도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로부터 온라인으로 정정 및 반론 보도, 추후 보도 청구를 직접 받겠다고 15일 밝혔다. 정정·반론·추후 보도 청구가 들어온 기사에는 포털 검색 결과 페이지에 ‘정정 보도 청구 중’이라는 문구를 노출하기로 했다. 언론중재위원회 결정이 나오기 전 포털에 정정 요청만 해도 기사에 문제 소지가 있다고 표시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네이버는 서면과 등기우편 등으로 접수하던 정정·반론·추후 보도 청구를 온라인으로 손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이달 28일 청구용 웹페이지를 신설한다고 15일 밝혔다. 또 네이버에 온라인으로 정정 보도 청구가 접수돼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포털 검색 결과 페이지에서부터 해당 문구를 표시하기로 했다. 네이버는 정정 요청이 들어온 경우 언론사에 해당 기사의 댓글을 일시적으로 닫는 방안을 적극 요청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뉴스 유통업체에 불과한 포털이 언론사의 기사 편집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뉴스 서비스를 독점하는 거대 포털이 오류로 판명되지 않은 기사에 낙인을 찍어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온라인 정정 보도 청구가 악용될 소지가 커진 가운데 언론의 추가·후속 보도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네이버가 독자적으로 뉴스에 ‘품질이 안 좋은 뉴스’라는 딱지를 붙이겠다는 것”이라며 “언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네이버, 중재위 판단前 기사에 ‘정정 청구중’ 표시… 法 위반 논란“정정보도 온라인 접수”법조계 “정정보도, 서면청구 규정포털, 온라인 접수땐 법위반 소지” 언론중재법 15조 1항에 따르면 언론사에 대한 정정 보도 등은 서면으로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네이버는 제17조의 2 ‘인터넷 뉴스서비스 사업자는 지체 없이 정정 보도 청구 등이 있음을 알리는 표시를 하고 언론사 등에 청구 내용을 통보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들어 정당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조계 해석은 다르다. 류형우 법률사무소 눈 대표변호사는 “‘지체 없이’ 알리라는 의무는 서면 요청을 받은 뒤 언론사에 빠르게 전달하라는 것”이라며 “서면이 아닌 온라인으로 접수하는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언론계에서는 네이버의 조치가 위헌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오류가 명백하게 증명되지 않은 기사에 대해 사기업인 네이버가 ‘정정 보도 청구 중’이라는 문구를 내세워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을 어겼다는 해석이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네이버라는 대형 포털이 언론의 기본 역할을 침해했다. 위헌 가능성이 높은 명확한 언론 자유 침해”라고 했다. 언론중재위원회가 분쟁을 조정 및 중재하는 과정에서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기 위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것과도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정정 보도 청구 중’이라는 문구 등이 노출됐을 때 사람들에게 해당 기사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인식될 소지가 크다”고 했다. 사기업인 네이버가 언론중재법에 따라 설립된 준사법적 독립기구인 언론중재위원회의 역할을 과도하게 넘본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유홍식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네이버 정책으로 인해 언론중재위원회의 공식 절차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총선을 앞두고 네이버의 새로운 정책 발표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종수 세종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검증 대상이 되는 고위공직자, 정치인이 자신한테 비판적인 기사라는 이유만으로 정정 보도를 요청해 댓글 창이 막힐 수 있다”며 “의혹이 충분히 있다고 느껴져도 기사를 조심해서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온라인신문협회는 이날 네이버의 발표 직후부터 일부 소속사 대표자들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면서 공론화 수순을 밟고 있다. 한 관계자는 “네이버가 뉴스 유통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언론사들의 저질 연성 기사 생산을 부추기는 근본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정정 보도 청구를 이유로 언론사들에 대한 영향력과 규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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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중남미문학 대가’… 마르케스 유작, 10년 만에 세상 밖으로

    “술 한잔 초대해도 될까요?” 중년여성 아나 막달레나 바흐는 호텔 바에서 한 남자에게 이런 제안을 받는다. 아나는 결혼한 지 27년 된 평범한 주부. 남편은 유명한 음악가고, 번듯한 자식 둘을 뒀다. 그러나 이날 아나는 홀로 카리브해의 섬으로 여행을 와 있다. 어머니의 기일인 8월 16일에 맞춰 섬에 있는 어머니의 묘지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아나와 남자는 브랜디를 마시며 달콤한 대화를 나눈다. 아일랜드 소설가 브램 스토커(1847∼1912)의 소설 ‘드라큘라’에 대한 평가를 나누며 취향을 확인한다. 프랑스 음악가 클로드 아실 드뷔시(1862∼1918)의 곡 ‘달빛’을 볼레로 스타일로 편곡한 연주를 함께 감상한다. 밤 11시 호텔 바가 문을 닫는다. 아나는 남자의 크고 노란 눈을 바라보며 “올라갈까요?”라고 말한다. 남자가 망설이자 아나는 명확하게 유혹한다. “2층 203호, 계단 오른쪽이에요. 문 두드리지 말고 그냥 밀고 들어오세요.” 장편소설 ‘백년의 고독’ 등 중남미를 대표하는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의 유작 소설이다. 마르케스의 사후 10주기에 맞춰 전 세계에 동시 출간됐다. 신간은 중년 여성의 일탈을 다뤘다는 점에서 언뜻 ‘막장 드라마’처럼 보인다. 첫 불륜을 저지른 아나는 다음 해에는 다른 남성과 밤을 보낸다. 다만 아나는 집으로 돌아온 뒤엔 죄책감에 시달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냐”는 남편의 추궁에 가슴을 떤다. 불륜은 아나가 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을 담기 위한 장치다. 아나는 어머니의 묘지 앞에서 자신의 불륜을 털어놓는다. 생전 매번 어머니와 다투던 아나지만, 이제 죽은 어머니는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상대가 됐다. 소설 막바지엔 아나가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된다. 아나와 어머니는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절친’이 된 셈이다. 아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는 모든 걸 이해해요. 어머니는 섬에 묻히기로 마음 먹었을 때 이미 유일하게 모든 걸 이해한 분이에요.” 신간은 마르케스가 처음으로 주인공을 여성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이 때문에 역자는 마르케스의 글을 자주 읽던 어머니가 소설 집필에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고 해석한다. 죽음이 다가온 마르케스가 소설을 통해 세상을 뜬 어머니를 기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소설엔 마르케스가 사랑했던 음악을 찾는 묘미도 있다. 주인공 아나의 이름은 독일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두 번째 아내와 이름이 같다. 무인도에 가게 되면 바흐 음악을 가져가고 싶다고 했던 마르케스답다. 마르케스의 유언을 거스르고 출간된 점도 흥미롭다. 소설은 1999년 주간지에 1장이 발표됐지만 이후 전체 작품은 발표되지 않았다. 마르케스는 치매에 시달리며 이 작품을 처절하게 썼지만,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죽기 전 두 아들에게 “원고를 찢어버리고 절대 출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신간 출간이 결정되자 두 아들이 경제적 이유로 출간을 결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이를 의식했는지 두 아들은 신간에 “독자의 기쁨과 즐거움을 위해 아버지의 뜻을 어겼다”고 썼다. 마르케스가 하늘에서 출간 소식을 들으면 기뻐할까, 분노할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다만 체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경우처럼 작가의 의도에 반해 출간된 작품이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는 경우가 왕왕 있다. 독자로선 ‘가보’(마르케스의 애칭)의 귀환이 반가울 뿐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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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 해임 효력정지 확정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권태선 이사장이 대법원의 최종 결정으로 직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게 됐다. 14일 대법원 2부는 방송통신위원회가 권 이사장 해임 처분의 효력을 정지한 법원 결정에 불복해 제기한 재항고를 기각했다. 앞서 방통위는 “권 이사장이 MBC 임원 성과급의 과도한 인상과 MBC 및 관계사의 경영 손실을 방치하는 등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지난해 8월 그를 해임했다. MBC의 사장 선임 과정에서 부실한 검증 등도 해임 사유로 들었다. 이에 권 이사장이 반발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처분 효력을 멈춰 달라는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법원 결정으로 해임 처분 효력은 권 이사장이 제기한 본안 사건의 1심 선고일로부터 30일이 되는 날까지 정지된다. 이에 따라 권 이사장은 올 8월 12일까지인 임기를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이번 대법원 결정은 집행정지 관련일 뿐 본안 소송에서 계속 다투겠다”고 밝혔다. 권 이사장의 후임으로 보궐이사를 임명하고 야권 측 김기중 이사를 해임한 방통위의 처분도 대법원에서 효력 정지 결정이 확정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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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록파’ 시인 박목월, 역사적 상흔 직시한 작품도 남겼다

    ‘6.25 때/엄마 아빠가 다 돌아가신/슈샨보이./길모퉁이의 구두를 닦는 슈샨·보이.’ 시인 박목월(1915∼1978)이 1970년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미발표 시 ‘슈샨보오이’의 일부다. 이 시에선 전쟁의 참혹함을 딛고 살아가는 어린 구두닦이 슈샤인 보이(shoeshine boy)를 바라보는 시인의 애처로운 시선이 느껴진다. ‘아아 눈이 동그랗게 아름다운 그애 슈샨 보이/학교 길에 내일도 만날가 그애 슈샨보이.’라며 참혹함을 서정적인 어조로 그리기도 한다. 박목월 특유의 서정성을 담으면서도 역사적 상흔을 직시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청록파’의 대표주자였던 그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시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슈샨보오이’를 비롯한 박목월의 미발표 시 166편을 공개했다. 이 작품들은 박목월의 장남 박동규 서울대 국문학과 명예교수(85)가 자택에 소장한 공책 62권, 경북 경주시 동리목월문학관에 보관 중인 공책 18권에 담겨 있던 것이다. 공책에는 시인이 1930∼1970년대에 쓴 작품 318편이 실려 있다. 기존 발표작을 제외하면 290편인데 이 중 완성도가 높은 작품 166편만 추려 공개한 것이다. 공책은 박목월의 아내 유익순 여사(1920∼1997)가 보관했다. 유 여사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 치하의 서울에 남아 있을 때도 천장과 지붕에 남편의 공책을 숨겼다. 이후 박 교수가 보관하다 연구자들의 설득으로 시인 사후 46년 만에 공개됐다. 박 교수는 “공책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오랫동안 보자기에 싸인 채 보관돼 있었다”며 “오랜 시간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후배와 제자들의 도움으로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목월은 조지훈(1920∼1968), 박두진(1916∼1998)과 더불어 청록파로 불렸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문학을 사회변혁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사회주의 문학에 반발해 한국 시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시 ‘나그네’ 중)처럼 민요가락과 아름다운 자연을 어울리는 시구로 순수 서정시를 주로 썼다. 이날 공개된 작품들 중 눈길이 가는 건 역사적 상흔을 다룬 시들이다. 박목월은 해방 직후 쓴 것으로 추정되는 시 ‘무제_해방’에서 ‘어두운 굴레를 쓰는 일이 없으리라/두 번 다시는/스스로 목이 메어/영원히 빛나라.’라며 해방의 기쁨을 직설적으로 표출했다. 시 ‘결의의 노래’에선 ‘절절 끓는 핏줄을 가진 자라면/이 겨레의 핏줄을 가진 자라면/바다에서 산에서 또한 들에서/일어나고야 만다.’며 해방이 우리 민족에 가져올 희망을 노래했다. 박목월의 기존 작품들과 다른 결의 작품들이다. 근대화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도 발견됐다. ‘뻐스를 기다리는/기다리는 사람으로/줄을 이루었다’(시 ‘무제’ 중)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도시에서 삶의 피로를 그렸다. 이 외에 기독교 신앙, 가족, 사랑을 다룬 시들도 있다. 우정권 단국대 자유교양대 교수는 “박 시인의 문학사를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 한다. 미발표작을 중심으로 향후 박 시인의 전집을 발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시인이 자신의 미공개작이 세상에 나온 걸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짓궂은 질문에 박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뭐 하러 했노.’ 아버님이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 겁도 납니다. 하지만 평생 시를 껴안고 살아온 아버님의 인생을 보여 드리고 싶어 미발표작 공개를 결정했습니다. 잘 읽어 주세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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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석영 ‘철도원 삼대’ 부커상 1차 후보

    황석영 작가(81·사진)가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2020년·창비) 영문판으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올랐다. 황 작가는 2019년 ‘해질 무렵’(2015년·문학동네)으로 이 부문 1차 후보에 올랐지만 최종 후보엔 포함되지 못했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11일(현지 시간) 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로 ‘철도원 삼대’ 등 13개 작품을 발표했다. ‘철도원 삼대’를 영어로 옮긴 소라 김 러셀, 영재 조세핀 배 번역가도 함께 후보에 포함됐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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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의 봄이 흘러 마주한 ‘그날’… 세월호 참사가 관통한 삶의 기록”

    “10년이 지난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11일 서울 중구 재난피해자권리센터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록집 출간 기자간담회.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이었던 생존자 김주희 씨(27)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책을 위해 인터뷰를 하고 이후에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알게 됐다”며 “참사 이후 10년 동안 나 자신이 성장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기록집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온다프레스)와 ‘520번의 금요일’(온다프레스)의 15일 출간을 앞두고 열렸다. 신간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기획했고, 6명의 작가로 구성된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이 관련자들을 인터뷰했다. 유해정 작가는 이날 간담회에서 “‘피해자’라는 한 단어로 호명됐던 생존자, 희생자 가족 등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며 “세월호 참사를 넘어 우리 사회가 여러 재난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신간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에는 생존자 9명과 희생자의 형제자매 6명의 목소리가 담겼다. 참사 당시 10대 후반이던 생존자들은 20대가 된 뒤에야 참사와 마주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 생존자는 참사 이후 팽목항에 가지 못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참사가 벌어진 뒤 지금까지 ‘당시 나는 팽목에 없었지’라는 생각에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것. 다른 생존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현실에 익숙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520번의 금요일’에는 작가기록단이 2022년 봄부터 2년간 희생자 가족 62명과 시민 55명을 인터뷰한 결과물을 담았다. 인양, 조직, 기억, 가족 등 12개의 키워드로 세월호 참사를 겪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절규가 절절하게 실렸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희생자 가족들은 신간을 통해 ‘그날’을 다시 기억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희생자 아버지 김종기 씨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무엇을 위해 10년 동안 활동해 왔는지를 알리고 싶었다”며 “자화자찬 일색의 백서가 아니라 10년간 왜 이런 일을 해올 수밖에 없었는지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른 희생자 가족인 남서현 씨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청년들의 삶을 관통했다. 참사가 내게 어떤 것을 남겼는지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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