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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진영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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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1-07~2026-02-06
칼럼100%
  • 아이스크림 하나 때문에 9세 초등생 사진 공개한 점주[횡설수설/이진영]

    중장년 세대 중엔 어린 시절 학교 앞 가게에서 물건을 슬쩍하다 혼쭐난 경험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유년 시절 친구들과 콩 서리, 수박 서리하던 경험담을 털어놓는 유명인들도 있다. 대개는 “다신 하지 마라”는 훈계를 듣고 풀려나거나, 부모에게 먼저 들킨 경우 제 발로 찾아가 “잘못했다” 사과하고 용서받는 것으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자녀에게 서리 당한 집 일손을 돕게 하는 부모도 있었다. 아이들의 잘못을 교육의 기회로 삼을 줄 알았던 이들에게 얼마 전 600원짜리 아이스크림 미결제 사건을 놓고 벌어진 송사는 씁쓸하기만 하다. ▷사건은 2023년 4월 9세 어린이가 인천 무인매장에서 아이스크림을 계산하지 않고 들고 나가면서 시작됐다. 40대 가게 주인은 이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 캡처 사진을 ‘일주일 안에 연락 없으면 경찰에 신고한다’는 문구를 달아 가게 내부에 공개했다. 아이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지만 인근 주민들은 알아볼 수 있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이 부모는 가게 주인과 합의를 시도했으나 불발됐다. “절도”라는 가게 주인과 “단순 실수”라는 부모 주장이 엇갈렸다. ▷경찰은 아이가 어려 죄가 되지 않는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가게 주인이 그해 7월 아이 사진을 다시 가게에 붙이면서 사건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이 아버지가 사진을 떼자 가게 주인은 재물손괴죄로 고소하고, 부모는 가게 주인을 아동학대와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했다. 아이 아버지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가게 주인은 1심에선 무죄, 2심에선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아이를 알아볼 수 있는 사진과 절도를 암시하는 글을 같은 학교 학생들이 이용하는 매장에 게시한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아이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아이 부모는 아이가 실수로 계산을 안 하고 나온 건데 상습범으로 몰아붙여 화가 났다고 한다. 또 “검찰에서 가게 주인이 30만 원에 합의할 의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합의금을 목적으로 이 일을 벌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반면 가게 주인은 “합의금을 요구한 적 없다. 정식으로 사과만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렇더라도 아홉 살 아이 잘못을 쉽게 범죄로 규정하고 사진까지 공개하는 극단적 방법을 써야 했을까. ▷중장년 세대가 어린 시절 소소한 일탈을 웃으며 돌아볼 수 있는 이유는 동네 어른들의 따끔하되 너그러운 꾸지람에서 좋은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는 배려심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 사방에 CCTV 달아놓고 감시하고, 조금이라도 잘못하다 걸리면 아이 장래고 뭐고 무조건 범죄자로 낙인찍어 응징하고, 법 말고는 갈등을 조율할 줄 모르는 각박한 사회가 됐는지 6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로 벌어진 기막힌 송사에서 절감하게 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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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BTS ‘아리랑’에 들썩이는 세계

    군 복무를 마친 BTS 멤버 7인이 4년 만에 완전체로 복귀하는 월드투어 ‘아리랑’을 앞두고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K팝 가수 단일 투어로는 최대 규모가 될 아리랑 투어는 3월 서울을 시작으로 34개 도시에서 82회 공연이 예정돼 있는데 예매를 개시한 북미와 유럽에서 41번 열리는 공연이 전석 매진됐다. 소셜미디어에는 예매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50만 명 대기 중’이란 메시지에 좌절하고, 인터넷이 빠른 한국으로 ‘원정 티케팅 와서 성공했다’며 환호하는 영상들이 공유되고 있다. ▷이번 투어 티켓 가격은 한국 공연을 기준으로 19만8000∼26만4000원. 하지만 미국의 재판매 시장에선 스탠퍼드 스타디움 공연 표가 5700달러(약 82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곳에서의 단독 공연은 ‘콜드플레이’에 이어 BTS가 두 번째다. 멕시코는 15만 장을 놓고 110만 명이 몰려들어 암표 가격이 치솟고 ‘아미(ARMY)’들의 민심이 험악해지자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외교 서한을 보냈다. “BTS 공연을 늘리거나 스크린 상영을 허용해 달라.” ▷글로벌 팬덤인 아미들이 움직이면서 공연이 열리는 도시들의 항공권과 숙박 예약 사이트도 불이 났다. 서울행 여행 검색량이 전주 대비 155%, 6월 공연이 예정된 부산행 검색량은 2375% 폭증했다. 브라질도 공연이 예정된 상파울루행 장거리 버스표 검색량이 600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공연장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BTS세권’ 호텔들은 하루 60∼80달러이던 숙박료가 375달러로 뛴 곳도 있다. ▷빌보드는 BTS가 아리랑 투어로 10억 달러(약 1조4500억 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추산한다. BTS 공연이 열리는 곳마다 관객들이 먹고 자고 관광하는 데 돈을 쓰면서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BTS노믹스’ 효과는 이보다 훨씬 커서 ‘스위프트노믹스’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2023년 3월부터 21개월간 전 세계 51개 도시에서 149회 공연으로 거둔 경제 효과는 총 100억 달러였다. ▷BTS는 3월 20일 신곡 14곡이 담긴 정규 5집 ‘아리랑’을 발표하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첫 공연을 갖는다. 막내 정국(28)을 빼곤 모두 30 줄에 접어든 멤버들이 ‘기다림도 사랑이다’라는 표어로 ‘군(軍)백기’를 인내해온 아미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다. 광장의 수용 인원은 1만8000명이지만 무료 공연이어서 전 세계 아미들 20만 명이 몰려들 것으로 전망된다. 광장 주변의 대형 전광판에선 공연을 생중계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 겨우내 세계 곳곳에서 반목하던 사람들이 인종과 종교와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봄의 희망을 함께 노래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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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82세에 6번째 징역형 선고받은 장영자

    1980년대 사채업계 ‘큰손’ 장영자 씨(82)가 얼마 전 사기죄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사찰을 공동 명의로 인수하자’고 속여 지인 소개로 만난 피해자로부터 1억 원을 챙겼다고 한다. 1982년 단군 이래 최대 금융 사기였던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후 6번째 징역형이다. 형이 확정되면 전체 수감 기간이 35년으로 늘어난다. ▷장 씨는 5공 시대를 돌아볼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다. 사건은 시중에 파다한 소문에서 시작됐다. 이순자 여사의 측근인 미모의 여성이 서울 시내 특급호텔 한 층을 세내어 쓰면서 대형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장 씨는 이순자 여사의 작은아버지 이규광 씨 처제이고, 남편 이 씨는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이었다. 장 씨 부부를 통해 청와대가 비자금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자 청와대 민정팀 내사를 거쳐 검찰 수사가 시작됐고, “겨우 안정돼 가던 청와대와 나라 경제를 뿌리째 뒤흔들어 놓은”(이순자 자서전)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장 씨 부부는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에 접근해 현금을 빌려준 뒤 거액의 어음을 받아내고 이를 사채시장에서 할인해 챙긴 현금으로 다른 회사에 같은 수법으로 사기 쳐 돈을 불렸다. 피해액이 6400억 원대로 당시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2%, 정부 예산의 10% 수준이었다. 철강업계 2위 일신제강과 도급 순위 8위 공영토건을 비롯해 여러 회사가 부도났고, 이규광 씨를 포함해 30명 넘게 구속됐다. 정부는 민심 수습을 위해 총리를 비롯한 5공 실세 19명을 교체했다. 그러고도 장 씨는 당당했다. “경제는 유통이다. 날 풀어주면 막힌 돈을 유통시킬 자신 있다.” ▷5공 청산 후로도 장 씨는 출소와 재범을 되풀이했다. 1차부터 6차 사건까지 법원이 인정한 피해액만 6891억 원이다. 장 씨는 왜 멈추지 않는 걸까. 사기는 피해자가 속아 넘어가야 완성되는 범죄여서 사기꾼 입장에선 ‘속는 사람이 나쁘다’고 범죄를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어 재범률이 높다. 특히 장 씨처럼 ‘큰 건’을 성공시켜 본 사람은 그 쾌감이 워낙 커 평범한 삶은 무료해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이철희·장영자 사건은 피해자에겐 악몽이고 정권에도 치명타였지만 돈도 가족도 없고 세금 체납액만 21억 원인 장 씨에겐 그 시절이 화양연화였을지 모른다. 각별한 인맥과 ‘고위층 구권 화폐 비자금’ 같은 거짓말을 흘려 쉽게 돈뭉치를 만들 수 있었고, 당시 서울 시내 20평대 아파트를 사고도 남는 1100만 원을 하루 생활비로 쓰고 외제차 5대를 굴렸다. 지금은 사기 수법도 첨단화하고 있지만 장 씨는 여전히 어음이나 위조 수표 방식을 고수하며 화려했던 ‘큰손의 추억’에 갇혀 사는 듯하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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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잘난 韓, 못난 尹, 이상한 張

    없는 집구석보다 있는 집안 싸움이 시끄러운 법이다. 걸려 있는 게 많아서다. 그런데 입법과 행정 권력을 모두 쥔 거대 여당의 내전보다 법안 하나 통과시킬 힘도 없는 국민의힘 집안싸움이 더 요란하다. 누구 하나는 진짜 죽어 나갈 것 같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여당의 내전은 ‘명청 대전’이라 부른다. 국힘의 내전은 ‘장한 전쟁’이자 ‘윤한 전쟁’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66), 한동훈 전 대표(53), 장동혁 현 대표(57) 사이에서 벌어지는 물고 물리는 난투극은 보물 지도를 놓고 서로 총질하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캐릭터에 맞게 고쳐 부른다면 ‘잘난 놈, 못난 놈, 이상한 놈’ 정도가 되겠다. 먼저 ‘못난 놈’ 윤석열이다. 자폭 계엄으로도 모자라 그 책임을 죄다 아랫사람들에게 돌림으로써 마지막 구명줄인 훗날 사면을 위한 동정 여론 조성도 못 하는 못난 사람이다. ‘잘난 놈’은 한동훈이다. 수사면 수사, 말싸움이면 말싸움, 훈훈한 외모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으나 치명적인 약점이 품을 줄 모르는 성품이다. 교수라면 한동훈에게 A학점은 줘도 딸은 주지 않을 것 같다. ‘이상한 놈’은 장동혁이다. 온건 보수인 줄 알았는데 국힘의 극우화를 선동하고 여당 독주를 막겠다면서 여당 좋은 일만 시키는, 못난 듯 이상한 사람이다. 원래 한동훈은 윤석열에게 의리남이었다. 윤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로 좌천된 후 한동훈만 같이 산책하고 케이크 나눠 먹으며 윤을 챙겼다고 한다. 윤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정치를 하려면 지금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 사람도 한이었다(‘실록 윤석열 시대’). 윤은 대통령이 된 후 한을 법무부 장관에 깜짝 발탁해 공직자 인사 검증 권한까지 몰아주며 2인자 자리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둘 사이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윤에게 한은 “총으로 쏴서라도” 없애고 싶은 죽일 놈이 됐다. 각별했던 사이일수록 한번 틀어지면 끝도 없이 어긋나는 법이다. 윤과 한이 계엄과 탄핵으로 실권한 틈을 타 당권을 잡은 이가 장동혁인데 그를 발탁한 사람이 한이다. 한은 비대위원장 시절 3선 이상이 맡던 사무총장 자리에 보궐선거로 배지를 단 0.5선 장을 앉히면서 그의 정치적 체급을 높여줬다. 둘은 윤의 탄핵에 관한 견해차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장은 한더러 “윤의 배신자”라 하고, 친한계는 장을 “한의 배신자”라 한다. 장의 윤리위원회가 ‘당원 게시판’ 문제로 한을 제명하자 여당 의원은 이런 촌평을 남겼다. “윤석열의 사형 구형을 듣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한동훈이 죽어 있었다.” 셋은 어쩌다 깐부에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걸까. 정책이나 정치적 노선에 관한 견해차로는 이렇게까지 감정의 골이 깊게 패지 않는다. 내란 특검에 따르면 윤은 한의 후임인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게 ‘도이치 수사는 불법임에도 사악한 한동훈이 2년째 끌고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친윤계는 “윤이 한을 업어 키우다시피 했는데 배은망덕하다”고 하고, 한은 “개똥 같은 소리”라고 한다. 장과 한의 결별엔 한의 페북 게시글이 결정적이었다. 장이 당 대표 선거에 나가자 한은 “최악(장동혁)을 피하게 해달라”며 김문수 편을 들었다. 요즘 양쪽 진영은 “한동훈은 면장도 못할 사람” “장동혁은 내 스태프였다”는 말을 놓고 입씨름 중이다. 결국 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서울대 법조인 출신 정치 초보들이 사감(私感)에 빠져 공사(公事)를 그르치는 바람에 보수당은 총선에 대패하고, 정권 내주고, 이젠 지방 권력까지 내줄 처지가 됐다. 한동훈으로선 싸잡아 비난받는 게 억울할 것이다. 윤에게 드물게 직언한 소신파, 계엄을 앞장서 막아낸 사람이 누군가. 한은 내용도 절차도 하자투성이인 불의한 ‘당게 제명’의 피해자 아닌가. 모두 맞는 말이나 한동훈 스스로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그래서 주인공인 ‘좋은 놈’이 못 되는 것이다. 윤이 계엄으로 탄핵당하자 한은 계엄을 막아낸 무용담을 책으로 내고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다. 그때 윤 정부의 2인자로서 책임지고 물러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러고 보니 보수엔 한동훈만 한 사람이 없다’는 여론의 추대로 기회를 잡지 않았을까. 문제 될 것 없는 당게 사건을 대형 사태로 키우기까지 한의 무오류에 대한 강박과 오만의 책임은 없나. 한동훈 최종 징계 결정을 앞두고 당내 명망가들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하나가 돼 보수 재건의 길을 찾자”고 호소하지만 당도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는 회복 불능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 종군기자로서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목격했던 생텍쥐페리가 썼듯 “내전은 전쟁이 아니라 병”이나 양쪽 다 이길 궁리만 하지 치유할 마음은 없어 보인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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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템플스테이 지난해 35만 명

    요즘 가장 ‘힙’한 종교는 불교다. 전국의 유명 사찰을 돌며 진행하는 짝짓기 프로그램 ‘나는 절로’에 참가하려면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매년 열리는 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극락도 락(Rock)’ 같은 재치 있는 슬로건 덕에 성황을 이룬다. 빵과 소스까지 식물성 식재료만 쓰는 ‘극락 버거’ ‘왕생 핫도그’는 채식주의자는 물론이고 육식을 즐기는 이들에게도 화제다. 절에서 하룻밤 지내며 수행 문화를 체험하는 템플스테이에 지난해 역대 최대 인원이 몰려든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전국 158개 사찰에서 진행된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35만 명. 템플스테이는 2002년 월드컵 때 외국인들의 숙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는데 K팝 스타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체험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체험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까지 누적 참가자가 418만 명이고, 이 중 세계 200여 개국에서 온 외국인 참가자가 59만3000명이 넘는다. 경북 경주 함월산 중턱의 골굴사와 서울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금선사는 외국인 참가자가 훨씬 많다. ▷한국은 선불교 전통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다. 맑은 공기와 칠흑 같은 어둠, 새벽 예불을 알리는 청량한 목탁 소리까지 빛과 소음이 차단된 산사에서의 하룻밤은 경이로운 체험을 선사한다. BTS 멤버 RM은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 절로 간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고 했고, 미국 미슐랭 3스타 셰프인 에릭 리퍼트는 불교의 식사 의례인 발우공양을 경험한 뒤 “인내와 겸손,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듬뿍 담겼다”고 썼다. ▷요즘 템플스테이 인기몰이의 일등 공신은 ‘나는 절로’다. 코로나를 겪으며 대면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청춘남녀를 위해 2023년 11월 시작했는데, ‘솔로’인 스님들이 솔로 탈출을 돕는다는 설정 자체가 화제를 불러 모았다. 회당 20∼30명의 남녀가 참가하고 이 중 절반이 커플이 돼 절을 떠난다. 지난해 9월엔 결혼 1호 커플이 탄생했다. 사찰이 주는 진중함과 신뢰감에 서로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기 때문에 만남의 질이 높고 커플 성사율도 높다고 한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다양하다. 누구는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하고, 누구는 평생의 인연을 찾으러 간다. 사찰음식을 통해 식재료에 대한 존중을 배우기 위해, 소고기 없이도 소고기 맛을 내는 화엄 버거를 먹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찰의 개방성과 유연함이 기독교, 가톨릭, 이슬람 교도들까지 고요한 산사를 찾고 비움의 미학을 얻어 사찰 문을 나서는 비결일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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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가짜 금 주의보

    지난해 5월 국제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납 원자핵을 가속 충돌시키는 실험 도중 납이 금 원자핵으로 변했다는 내용이었다. 결론적으로 금 원자핵은 워낙 불안정해 생성되자마자 부서져 사라졌고, 금 100만분의 1g를 얻으려면 거대강입자충돌기 전기료로만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로써 연금술은 사실상 불가능한 기술임이 판명났지만 사기꾼 ‘연금술사’의 가짜 금 만드는 기술은 날로 정교해지고 있다. ▷최근 금값이 치솟는 가운데 한국주얼리산업단체총연합회가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 일대에 ‘함량 미달 금 척결을 위해 모두 나서 주세요’라는 제목의 긴급 담화문을 게시했다. 종로는 전국 귀금속 제조 업체의 40%가 모여 있는 곳. 연합회는 지난해 9월 9%의 이물질을 섞은 도매용 가짜 금이 유통된 사실을 확인했다. 금 1kg을 기준으로 최소 2000만 원 상당의 순금이 빼돌려진 셈이다. 가짜 금은 은이나 주석을 이용해 만드는데 요즘은 금과 성질이 비슷한 텅스텐에 두껍게 도금해 적발하기 어렵다고 한다. ▷가짜 금을 감별하는 대표적 방법이 비중을 측정하는 것이다. 금은 밀도가 높아 같은 부피의 다른 금속보다 무겁다.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한 사기꾼 세공사의 금관이 은을 섞어 만든 가짜임을 증명할 때도 이 원리를 이용했다. 왕관과 같은 무게의 순금을 물에 넣었는데 밀어내는 물의 양이 달랐던 것. 그런데 텅스텐은 밀도(cm³당 19.25g)가 금(cm³당 19.3g)과 거의 같아서 레이저 같은 비파괴 검사로는 감별이 불가능하다. 확실하게 하려면 녹여보는 수밖에 없다. 순금은 녹는 점이 1064도, 텅스텐은 3422도여서 금은 녹아도 텅스텐은 남는다. ▷금값이 오를 때마다 가짜 금 주의보가 발령됐지만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이 등장한 후로는 가짜 금 유통이 더욱 쉬워졌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는 가짜 금반지를 샀다가 반품도 못 했다는 후기들이 올라온다. ‘포 나인(99.99%)’ 순금을 할인 판매하기에 품질 보증서만 믿고 샀는데, 하도 가벼워 감정을 의뢰한 결과 금 함량이 2%밖에 안 되는 도금 반지였다는 식이다. 온라인 경매나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시세보다 싸게 나온 금을 샀다가 피해를 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순금은 자석에 붙지 않고, 물렁해서 깨물면 자국이 남는다. 금 제품을 사진으로 찍거나 바닥에 떨어뜨려 나는 소리를 이용해 진짜 금인지 판별해 주는 앱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레이저를 쏘고 엑스레이를 찍어도 못 하는 감별을 일반인이 할 수는 없다. 믿을 만한 업체를 이용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환불 절차가 명확한지 확인하며, 거래 기록을 남겨둬야 한다. 서양의 오래된 속담대로 반짝인다고 해서 다 금은 아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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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생리대가 아닌 집값·환율 잡아야”

    지금껏 이런 대통령 업무보고는 없었다. 2주간의 업무보고를 생방송으로 진행한 것도 처음이고, 업무보고 영상들이 ‘대통령, 심각한 표정으로 긴급 지시’ 같은 쇼츠로 제작돼 온라인 공론장을 주도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김민석 총리는 “이재명 대통령이 새로운 장르를 하나 만드셨다. 넷플릭스보다 재미나는 잼플릭스”라고 했다. 듣고 보니 잼플릭스엔 대중문화의 고전적 흥행 요소가 곳곳에 들어 있다. 기초와 광역 단체장, 국회의원을 두루 거친 ‘행정 천재’가, 19부 5처 18청 7위원회 등 228개 공공기관을 ‘도장깨기’ 하듯 돌면서, 무사안일에 빠진 철밥통들을 흔들어 깨워 함께 성장한다는 서사부터 그렇다. 예측 불가의 대통령 질문에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남는 전개는 ‘오징어 게임’ 같은 긴장감을 준다. 답변이 부실한 기관장은 “써준 것만 읽는다” “도둑놈 심보”라며 공개 모욕을 당했는데 그 수위가 아침 드라마의 맵디매운 ‘김치 싸다구’ 수준이다. 생방송 업무보고의 흥행으로 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커졌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갤럽과 리얼미터의 이달 3주 차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 반등은 없었다. 최근 3주간 한국갤럽의 대통령 지지율은 62%-56%-55%로 2주 연속 하락세다. 리얼미터는 54.9%-54.3%-53.4%다. 두 조사기관 모두 생중계 업무보고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경제 불확실성과 특정 기관장 공개 질책이 지지율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했다.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대통령 부정 평가 이유 1위는 경제와 민생이다. 요즘 이런저런 모임에 가면 대화가 집값에서 시작해 환율로 끝난다. 그런데 새해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이번 업무보고는 탈모에서 시작해 생리대로 끝난 느낌이다. 이 대통령은 “젊은 사람들이 보험료만 내고 혜택을 못 받는다”며 탈모약 건강보험 지원 검토를 지시했다. 취업이 안 돼 자존감이 바닥나고 뛰는 월세 내느라 죽을 지경인데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는 말이 와닿겠나. 이 대통령이 “국산 생리대 가격이 비싸다”며 실태 파악을 지시한 날엔 친명 여성 커뮤니티도 들썩였다. “생리대값 안 내려도 되니 집값과 환율을 잡아달라.”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부정 평가 이유 2위가 도덕성 문제다. 이 대통령은 “능력은 없는데 연줄로 버티는 경우”와 “부패한 이너서클”을 질타했다. 바른말도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역효과만 난다. 대통령의 질책을 듣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떠올린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실 비서관이 “훈식이 형” “현지 누나” 운운하며 대학 동문 출신을 공공기관도 아닌 민간 협회장 자리에 앉히려다 들키지 않았나. 대통령 사법연수원 동기로 북한 안보리 결의안도 몰라 망신당한 유엔대사는? 대통령의 변호사 출신으로 공직을 차지한 사람들은? “이 대통령은 민족의 축복”이란 아부 외엔 발탁 사유를 모르겠는 인사혁신처장은? 이 대통령은 이달 초 업무보고를 생방송으로 진행하겠다며 “국민 알권리 존중, 투명한 국정 운영 실현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강유정 대변인은 “CCTV를 늘 켜놓고 국민께 공개하고 감시받겠다는 뜻”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제대로 감시받겠다는 자신감과 의지는 평가할 만하지만 일방적 소통을 생중계한다고 국정 운영이 투명해지고 국민 알권리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올해 국정감사 기간 내내 야당 의원들이 묻고 물었어도 ‘핵심 실세’ 김현지 제1부속실장의 기본적인 이력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현 정부 들어 소통의 효용을 실감한 건 3일 외신 기자회견이었다. 한 기자가 “북한에 억류된 한국 국민들의 석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겠는가”라고 묻자 이 대통령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질문한 기자도 놀라고 듣는 국민도 놀랐다. 회견 다음 날 대통령실은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 현황을 공개하며 “조속한 남북 대화 재개 노력을 통해 해결해 나가겠다”고 했다. 정부가 제대로 일하는지 감시하고 국민에게 책임을 다하도록 견제하는 건 날카롭게 묻고 성실히 답하는 정부와 언론 간 양방향 소통에서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정부 내에선 벌써부터 잼플릭스 시즌 2 얘기가 나온다. 본편만 한 속편은 만들기 어렵다. 설사 흥행하더라도 시청률이 깡패인 넷플과 여론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국정은 같을 수가 없다. 신뢰받는 정부가 되려면 정부 감시와 견제가 본업인 국회와 언론에 설명의 의무부터 다해야 한다. 잼플릭스 제작은 선택이지만 이건 필수다. 국회와 언론을 불편해하며 일방적 홍보만 고집하다 탈선한 전임자의 불행을 잊지 않기 바란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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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돌고 돌아 일회용 컵 ‘따로 계산’

    정부가 일회용품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값을 따로 받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불편했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컵 따로 계산제’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컵 가격은 100∼200원이 될 전망이다. 시행 시기는 공청회 의견 수렴 후 결정한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제대로 시행도 못 해 보고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만큼 오락가락했던 정책도 드물 것이다. 코로나로 일회용 쓰레기가 급증하자 정부는 2020년 6월 일회용 컵 음료를 사면 보증금 300원을 낸 뒤 컵을 반환할 때 돌려받는 이 제도를 2년 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행 한 달을 남겨두고 준비 부족을 이유로 6개월 연기했다가, 6개월 후엔 세종과 제주에서만 우선 시행하기로 물러선 뒤, 2023년 11월 윤석열 정부가 소상공인 부담을 이유로 전국 확대 시행을 보류했다. 현재 시범 시행 중인 세종과 제주에선 74%까지 올랐던 컵 반환율이 55%로 떨어진 상태다. ▷이 제도가 표류한 이유는 부담은 크고 유인은 작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보증금 300원을 돌려받으려고 컵을 씻어 반납하는 걸 번거로워했다. 업주 입장에선 컵마다 반납 라벨 붙이고, 반납한 컵 보관했다 회수업체에 보내고, 보증금 내주는 게 불편하고 비용까지 드는 일이었다. 사실 이 제도는 2002년 처음 도입했다 2008년 폐지됐는데 그때도 ‘누가 보증금 50∼100원 받자고 귀찮게…’라는 저항이 컸다. 이미 실패했던 정책을 도입하면서 2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음에도 똑같은 이유로 실패한 셈이다. ▷역대 세 번째 일회용 컵 규제가 될 ‘따로 계산제’는 반납하는 불편함이 없다. 대신 소비자로선 가격 인상이 불만일 수 있다. 정부는 텀블러를 이용하면 일회용 컵값 100∼200원, 탄소중립포인트 300원, 매장 할인 500원 등 총 900∼10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와 함께 도입했다가 유야무야된 것이 플라스틱 빨대 매장 내 사용 금지다. 정부는 재질에 상관없이 빨대는 고객이 요청할 때만 제공하도록 규정을 고치기로 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일회용 컵 사용량은 102개다. 일회용 컵은 생산 단계부터 폐기까지 많은 자원을 쓰고 환경을 오염시킨다. 종이컵 안쪽 코팅 성분은 뜨거운 음료가 닿으면 미세 플라스틱이 나와 인체에도 좋을 것이 없다. 유럽은 매장 내 사용은 물론이고 배달 시에도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는 추세다. 하지만 앞선 두 번의 실패에서 보듯 수용성 고려 없이 명분만으론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환경 정책이다. 일회용품 규제하자며 ‘일회용’ 대책만 내놓는 일은 그만 봤으면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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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美 국방부 보도지침에 위헌 소송 낸 NYT

    언론 자유를 수정헌법 1조로 보장하는 미국에서 정부 및 고위 공직자와 언론 간 소송은 매우 드문 편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경우 지난 1기 때부터 현재까지 대통령 개인이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소송만 30건이 넘고 올해 제기한 소송만도 6건이나 된다. 미국 역사상 최다 기록일 것이다. 언론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5일엔 뉴욕타임스(NYT)가 국방부를 상대로 새로운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NYT가 문제 삼은 것은 국방부가 10월 발표한 보도지침으로 ‘기밀이든 아니든 모든 보도는 사전 승인을 받으라’는 내용이다. NYT는 “이 보도지침은 정부가 공식 발표한 내용 이외의 정보를 취재해 국민에게 전달하는 기자들의 역량을 제한하는 것으로 수정헌법 1조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또 보도지침을 어기면 출입을 금지하는 일방적 처벌 규정도 적법 절차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5조 위반이라고 했다. 사전 검열이나 다름없는 보도지침 시행 후 40여 명의 기자들이 출입증을 자진 반납하고 펜타곤 밖에서 취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수정헌법 1조와 5조는 언론이 정부의 언론 통제에 맞서 법정 다툼을 벌일 때 꺼내 드는 핵심 방패다. AP 기자는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표기하라는 행정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백악관 출입을 금지당하자 수정헌법 1조 위반으로 소송을 냈고, 1심 승소 후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트럼프 1기 때는 CNN 백악관 출입기자가 날 선 질문을 한 후 출입증을 빼앗겼으나 수정헌법 1조와 5조 덕에 되찾은 적도 있다. 공영방송 PBS와 NPR은 ‘논조의 편향성’을 이유로 연방 자금 지원이 끊기자 수정헌법 1조에 근거해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언론 입막음용으로 트럼프 정부가 활용하는 무기는 거액의 소송 폭탄이다.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보낸 ‘외설 편지’를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엔 100억 달러(약 14조7000억 원), “수십 년간 트럼프와 가족, 미국 전체에 거짓말을 퍼뜨려온 최악의 신문”이라 부른 NYT엔 150억 달러짜리 손해배상 소송을 낸 상태다. ABC뉴스(1500만 달러), NBC뉴스와 CBS(각 1600만 달러)엔 명예훼손 소송을 취하하는 대가로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내기도 했다. ▷언론 자유와 관련한 기념비적인 판결로,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는 원고가 ‘실제적 악의’를 입증해야 성립한다는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1964년), 국가기밀이란 이유만으로 언론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는 ‘뉴욕타임스 대 미국 정부’(1971년)가 꼽힌다. 모두 NYT가 당사자였다. 이번에 국방부를 상대로 낸 NYT 소송도 그 효력은 모든 언론에 미칠 것이다.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를 57위까지 추락시킨 트럼프 정부에 맞서 언론 자유를 지켜내는 또 하나의 판례가 나올지 기대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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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떨어지는 감도 못 받아먹는 국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어록 중에 “정치는 상대가 자빠지면 이긴다”는 명언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인용해서 새삼 유명해진 말이다. 그런데 상대가 자빠지는데 이기기는커녕 지는 바보도 있다. 여당이 부동산 대책으로 자빠지고, 대장동 항소 포기로 비틀대는 동안 여당과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내려가고 있다. 떨어지는 감도 못 받아먹는 게 요즘 국힘의 정치력이다. 이탈리아 경제사학자 카를로 치폴라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법칙’에서 인간을 현명한 인간, 순진한 인간, 영악한 인간, 어리석은 인간 네 종류로 나누었다. 개인의 행동이 본인과 집단에 득실이 되는지가 기준인데 이는 정치에도 유용한 분류법이다. 첫째, 나와 공동체 모두에 득이 되는 ‘현명한 정치’가 있다. 둘째, 사회엔 득이 되는데 난 손해를 봤다면 ‘순진한 정치’다. 노동개혁으로 독일 경제 부활의 초석을 놓고 실각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노동정책이 순진한 정치다. 셋째, 개인이나 정파의 이익을 채우려 나라에 막대한 손해를 주는 ‘영악한 정치’가 있다. 여당의 사법 정치는 개인적 사법 리스크 해소를 위해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영악한 정치다. 넷째, 자신은 어떠한 이득도 못 얻거나 심지어 손해를 보면서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어리석은 정치’다.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고 패가망신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정치가 딱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요즘 국힘이 ‘1호 당원’ 못지않은 어리석은 정치를 하고 있다. 장동혁 대표를 가리켜 ‘멍청한 윤석열이 가고 나니 더 멍청한 장동혁이 왔다’고들 혀를 찬다. 1년 전 계엄의 밤 국힘 의원 18명이 없었더라면 신속한 계엄 해제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계엄 극복에 정치적 지분을 주장하기는커녕 계엄 옹호 세력과 절연하지 못한 채 여당이 놓은 ‘내란 정당’의 덫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나라는 폭주하는 권력에 위태롭게 내어주고 당은 위헌 정당으로 해산될 위기에 처했으니 이보다 어리석은 정치도 없다. 최근 부동산 대책 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국면에서 국힘이 구사한 전략은 1사 만루의 기회를 병살타로 날려 먹은 야구팀 수준이다. 역대 진보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문제는 국힘엔 ‘우리 싸움터’에서 싸워 볼 기회였지만 장 대표가 윤 전 대통령 면회 다녀온 사실을 공개하면서 싸우기도 전에 힘이 빠져버렸다. 대장동 일당에 수천억 원의 부당 이득을 챙겨준 항소 포기에 국힘은 규탄대회까지 열어 놓곤 “우리가 황교안이다” 하고 헛발질하는 바람에 “우리가 김만배다” 세력의 기만 살려줬다. 결정적 위기 때마다 지지율 방어에 나서주는 국힘이야말로 ‘찐명’ 아닌가. 어느 나라든 현명한 정치나 순진한 정치는 어렵고, 흔한 것이 영악한 정치다. 영악한 정치끼리 만나면 서로 견제가 돼 큰 탈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악한 정치와 어리석은 정치가 만나면 ‘헌법 존중 TF’와 ‘사법 정상화 TF’ 같은 기만적 이름의 조직이 헌정 질서를 유린해도 속수무책인 한국처럼 파국으로 치닫기 쉽다.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민주주의의 유산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폭정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제도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체제 위기를 겪었던 20세기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을 연구한 결과 사람들이 새로운 질서에 저항하기보다 놀랍도록 잘 적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정부가 죄 없는 사람 휴대전화 들여다보고, 내 편이면 상 주고 아니면 벌주는 엉터리 신상필벌에 입법권과 예산권을 남용하는데도 별 저항 없이 안정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새로운 질서에 놀랍도록 순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보호하지 못하는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지켜낼 수 있을까. 영악한 정치보다 나쁜 것이 어리석은 정치다. 영악한 사익 추구 정치는 정당하진 않아도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해 방어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도 큰 손해 봐가며 공동체에 해코지하는 어리석음은 비합리적이어서 예측도 반격도 어렵다. 국힘이 왜 여당의 내란 몰이가 극에 달할 계엄 1주년이 다가오도록 선제적 사과와 청산을 하지 않는지, 여당을 긴장케 하는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려 하지 않는지 이해하려 애써 봐야 소용없다. 그저 그들이 “신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로 어리석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정당이 해산된들 뭐가 아쉽겠나. 어리석은 정당 탓에 나라가 비가역적 치명상을 입게 될까 걱정되고 분통 터질 뿐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아직도 윤 어게인을 외치는 자가 있다면 모두 모자란 사람들이다. 암적 존재들이다”라고 했다. 폭정의 여당 대표가 할 말인가 싶지만 이 말만큼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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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죽은 엡스타인, 산 트럼프 잡나

    폭주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1년도 안 돼 대형 장애물을 만났다. 트럼프 정부가 공개 반대를 고수해 온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수사 기록에 대해 상하원이 사실상 만장일치로 공개하라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 엡스타인은 미성년자들을 동원해 정·관·재계 인사들에게 성접대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2019년 구치소에서 자살했는데, 그의 ‘고객’으로 의심되는 명단엔 전현직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거물들이 망라돼 있다. 트럼프가 19일 법안에 서명하면서 한 달 내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됐다. ▷엡스타인 사건을 스캔들로 키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과 경쟁한 대선을 앞두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해 “엡스타인 때문에 큰일을 겪게 될 것”이라며 성접대를 받았음을 암시했다. 이즈음부터 부정선거론과 함께 극우 보수세력의 2대 음모론인 딥스테이트(deep state), 즉 좌파 엘리트 소아성애자들로 구성된 비밀 조직이 세계를 조종한다는 음모론이 퍼지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에선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해 배후 세력인 딥스테이트를 척결하겠다고 공약했다. ▷대선 승리 후엔 피해자 정보 보호를 명분으로 비공개로 선회했는데, 이후로는 트럼프에게 불리한 정황이 담긴 자료가 유출되며 거꾸로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2000년대 중반 무렵 ‘역겨운 변태’와 절연했다고 했지만 엡스타인은 2011년 지인에게 보낸 메일에서 “트럼프와 피해자가 내 집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고 했고, 죽기 직전 메일에선 “트럼프는 소녀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트럼프가 성범죄에 연루됐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는 상태다. ▷트럼프 정책의 ‘거수기’ 역할을 하던 공화당은 이번 표결에선 하원의원 1명을 빼곤 모두 공개 찬성 쪽에 섰다. 그만큼 엡스타인 음모론은 마가 진영을 결집시키는 핵심 이슈다. 마가를 지탱하는 6개의 기둥이 있는데 미국 우선주의가 중심이고, 나머지가 국경 문제, 반(反)세계화, 표현의 자유, 나라 밖 전쟁 개입 금지, 그리고 ‘우리 국민(we the people)’이다. 마가 진영이 워싱턴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선택한 건 엡스타인 파일에 나오는 딥스테이트에 맞서 ‘우리 국민’을 보호할 적임자로 봤기 때문이다. ▷클린턴, 오바마 행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래리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은 얼마 전 엡스타인과 연애사를 공유하는 사이임이 드러나 모든 공적 활동을 중단했다. 엡스타인으로부터 미성년자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동생 앤드루 왕자도 왕실 작위와 칭호를 포기했다. 미국 국민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또 어떤 이름이 나올지 못지않게 왜 트럼프가 감추고자 했는지 궁금해한다. 죽은 엡스타인이 산 트럼프를 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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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하루에 책 12권 쓰는 ‘괴물 작가’

    다작(多作)하는 작가들이 있다. 프랑스의 발자크는 26년간 125편의 소설과 희곡을 완성했다. 하루 15시간씩 커피를 50잔 마셔가며 썼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76)는 46년간 107편의 소설과 에세이집을 냈다. 달리기와 수영으로 다져진 몸으로 매일 새벽 5시부터 7시간 동안 4000자씩 쓴다. 다산 정약용은 전남 강진 유배 시절 19년간 500편의 저작을 남겼다. 연평균 26.3권으로 제자 18명과 협업한 덕분이다. 세계적인 다작의 명수들이 울고 갈 괴물 작가가 나타났다. ▷요즘 출판계에선 1년 새 9000권 넘는 책을 낸 무명의 출판사가 화제다. 하루 평균 20여 권씩 찍어낸 셈인데 ‘작가 회원’에게 ‘AI 툴’을 제공한다는 홍보 문구로 보아 인공지능(AI)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작가는 이곳에서 4개월간 137권을 냈다. 철학 예술 공학 경제 입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이 쓴 날엔 하루 12권도 냈다고 하니 AI가 다 쓴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AI의 등장으로 급변하는 분야 중 하나가 출판이다. 편집, 교열, 디자인을 맡기는 수준을 넘어 목차 구성부터 본문 집필까지 전 과정을 AI로 하는 경우도 많다. 글쓰기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전자책 시장엔 AI ‘유령작가’들 책이 쏟아진다. 한 작가는 AI를 ‘글쓰기 파트너’로 받아들인 후 2년 걸리던 책을 2개월 만에 완성했다고 했다. AI가 초안을 쓰면 이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낸다는 것이다. 이 작가는 ‘챗GPT’를 공저자로 표기하지만, 관련 표기 기준이 없어 양심 없는 저자들이 AI로 써놓고 아닌 척해도 확인할 길은 없다. ▷AI의 기여도를 판별하는 ‘문해력’ 기술도 진화 중이다. 무엇을 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썼느냐를 본다. 구문 패턴과 어휘의 다양성 등 AI가 남긴 ‘문체적 지문’을 분석하거나, 문자 입력 속도가 규칙적이고 수정 없이 입력됐다면 AI가 쓴 것으로 판별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39번 고쳐 썼는데, AI라면 한 번에 좌르륵 썼을 것이다. 문자를 입력하는 동안 심박수와 뇌파를 측정하는 기술도 있다. 슬프거나 분노가 느껴지는 대목을 타이핑하면서 생리 신호에 변화가 없다면 AI가 쓴 것으로 본다. 앞으론 집필 과정의 이런 정보를 보관했다가 ‘AI로 썼느냐’는 의심을 받을 때 반박 근거로 사용하게 될지 모르겠다. ▷AI 덕분인지 지난해 발간된 신간 종이책만 6만4300종으로 10년 전보다 42% 늘었다. 하지만 1030 청년들의 독서량은 14년 새 반 토막이 났다. 책보다 재밌는 게 많아진 데다 “끔찍하고 기진맥진한 투쟁”(조지 오웰) 같다는 글쓰기가 하루에 12권을 너끈히 쓸 정도로 가벼워진 탓이다. 출판의 풍요 속 지적 빈곤을 느끼는 AI 시대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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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새벽 3시 출근한 다카이치

    성공한 사람들 중엔 ‘새벽형 인간’이 많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새벽 3시 45분이면 일어나 직원들에게 보낼 메일을 준비한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새벽 5시에 눈을 떠 1시간 동안 독서하는데 “출근도 전에 내 하루가 성공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새벽에 폭풍 트윗을 날려 참모들 잠을 설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을 압도할 새벽형 인간이 화제다. ▷얼마 전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로 당선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7일 새벽 3시 4분에 출근해 국회 중의원 예산위원회 답변 준비 회의를 3시간 했다. 다카이치 내각 출범 이후 첫 예산위원회인 만큼 “정성스럽고 치밀한 준비가 필요”했으나 전날 밤까지 답변 자료를 완성하지 못해 새벽 회의를 소집했다고 한다. 야당에선 “총리가 3시부터라면 직원들은 1시 반, 2시부터 대기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윗사람이 일찍 출근하면 아랫사람 여럿이 힘들어진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새벽 1시에도 회의를 소집해 참모들이 하루 24시간 대기 상태였다. 수면 장애를 겪는 북한 김정은은 ‘새벽 시찰’이 잦은데 그때마다 사진 속엔 보고하고 지시받는 간부들이 한가득이다. 민주적인 조직에서 리더의 새벽 출근이 드문 이유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오전 6시 30분 출근해 안보 브리핑을 받아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다카이치 총리도 새벽 출근에 대해 “도와준 비서관, 경호원, 운전사들께 폐를 끼쳤다”며 사과했다. ▷새벽형 인간은 적게 자는 편이다. 나폴레옹은 “남자는 6시간, 여자는 7시간, 바보는 8시간 잔다”고 했는데 남자의 전유물이던 지위에 오른 여성들도 적게 잔다. 다카이치 총리의 롤모델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재임 시절 3∼4시간 자고 새벽 5시면 일어나 농부용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출근 준비를 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16년의 재임 기간에 많이 자도 하루 5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그러고도 버티는 비결에 대해선 “(밤새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기질이 있다”고 했다. ▷적게 자야 성공하는 건 아니다. 빌 게이츠는 7시간, 제프 베이조스는 7∼8시간, 워런 버핏은 8시간 이상 잔다. 미국 국립수면재단은 “세계 인구의 5%는 4시간 미만을 자고도 버티지만 5%는 10∼12시간을 자야 한다. 규칙적으로 잘 자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도 같은 값이면 열심인 게 좋아 보인다고 여기는 걸까. 백악관 대변인은 3∼4시간만 자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잠도 자지 않고 일하는 근면한 지도자”라고 홍보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일성으로 “워라밸이란 말을 버리겠다.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해 나갈 것”이라고 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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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맘다니 쇼크

    뉴욕은 무슬림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도시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이 사는 곳인 데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이슬람 공포증까지 더해졌다. 역대 뉴욕시장 110명 가운데 흑인 시장은 2명 있지만 무슬림 시장은 없었다. 민주당 텃밭인 뉴욕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조란 맘다니(34)의 당선이 이변인 이유도 그가 미국 시민권을 얻은 지 7년밖에 안 되는 무슬림이어서다. 더구나 뉴욕은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인데 맘다니는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다. ▷우간다의 인도계 가정에서 태어나 7세에 미국으로 이민 온 맘다니는 뉴욕주 하원의원을 지낸 정치 신예다. 돈도 조직도 없는 그가 뉴욕 주지사를 지낸 무소속의 거물 정치인 앤드루 쿠오모(68)를 꺾은 데는 살인적인 생활비 해결을 일관되게 주장한 것이 주효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 공공주택 임대료 동결, 무료 버스, 무상 보육을 실현하겠다는 포퓰리즘 공약이 심각한 빈부 격차에 분노하는 표심을 사로잡았다. ▷맘다니는 1892년 이래 최연소 시장 당선인이다. 진보 언론들도 그의 경륜 부족을 문제 삼았지만 그는 ‘고인 물을 갈아보자(drain the swamp)’며 자신이 좌우 기득권을 청산할 적임자라고 반격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딥스테이트(deep state·기득권 세력)’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과 비슷한 전략이다. 뉴욕의 인구 구성이 라틴계와 남아시아계 이민자들 위주로 변화하는 추세도 맘다니에게 유리했다.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재정 위기를 겪은 이후 월가의 암묵적 지지 없이 당선된 뉴욕시장은 없다고 한다. 그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자 월가가 수천만 달러를 들여 맘다니 저지 작전을 짜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월가와 각을 세우며 인지도를 높인 맘다니는 민주당 후보가 된 후엔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월가 거물들과 물밑 접촉을 하며 ‘부자세는 대안이 있으면 철회 가능하다’고 설득했다. 그가 컬럼비아대 교수 아버지에 유명 영화감독 어머니를 둔 ‘캐비아 좌파’인 점도 부자들과의 소통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맘다니의 승리는 반(反)이민, 친(親)이스라엘인 트럼프의 패배다. 트럼프는 ‘공화당 찍으면 맘다니 된다’며 무소속 쿠오모 지지를 호소했다. 반면 극우 세력에 밀리던 유럽 진보 정당들은 맘다니 승리에 고무된 표정이다. 하지만 맘다니의 급진적 좌파 공약은 민주당조차 거리 두기를 할 정도다. 뉴욕시 세수 기반이 붕괴되고, 임대료 동결은 도심 인프라 투자 동결로 이어져 슬럼화가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다. 그가 인구 850만에 연간 예산이 1160억 달러(약 168조 원)인 뉴욕 시정을 제대로 이끌어갈지, 어두운 트럼프 시대를 밝힐 빛이 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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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트럼프 당선 1년… 불확실성 늪에 빠진 세계

    5일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지 1년이 된다. 그는 최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1년 전만 해도 미국은 매우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었지만 내가 취임한 후 힘을 되찾았다”며 “취임 후 9개월 만에 18조 달러 규모의 투자를 확보해 미국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갖게 됐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자국 내 민심의 평가는 트럼프의 자평과는 거리가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트럼프 당선 1주년을 앞두고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지지율은 41%로 2021년 미 의사당 습격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구호와 달리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강해졌다’보다 우세했고, ‘경제가 나빠졌다’는 응답은 절반이 넘었으며, 특히 관세 정책에 대한 부정 평가가 65%로 높았다. 휘발유 가격 인하에도 상호관세로 물가가 오름세인 것이 악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야당인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보는 것도 아니다. 민생에 무관심하기로는 트럼프나 여당인 공화당보다 민주당이 더하다는 평가다. 내년 중간선거가 오늘 당장 치러진다면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는 답변(46%)과 공화당 쪽을 찍겠다는 답변(44%) 간 별 차이가 없었다. 트럼프의 실점이 민주당의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는 주요 요인으로는 정치적 양극화가 꼽힌다. 미국 동서부 해안은 파란색(민주당), 그 사이 지역은 빨간색(공화당)이다시피 해 나라가 두 쪽 난 상태이고, 트럼프 지지율도 공화당원 사이에선 86%, 민주당원의 경우 5%로 극과 극이다. ▷국내에선 전직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비롯해 정적들을 줄줄이 보복 기소하고, 진보 성향의 대학과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을 상대로 연일 거친 싸움을 벌이면서도 해외에선 평화 중재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8개의 전쟁을 끝냈다”는 자평과는 달리 트럼프의 귀환 이후 세계는 위험해지고 있다. 대외 원조 축소로 수백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전염병이 확산되면 미국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최근엔 “중국 러시아 북한 모두 핵실험을 하고 있다”며 33년간 중단했던 핵실험 재개까지 명령하면서 핵 군비 경쟁 우려까지 나온다. ▷고인이 된 헨리 키신저는 “트럼프는 역사상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할 때 등장해 그 시대의 가식을 벗겨 내는 인물일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막을 내리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극우 세력의 발호와 정치적 양극화를 겪고 있는 것도 트럼프 영향이 크다. 전 세계를 유례없는 불확실성으로 던져넣고 있는 트럼프의 임기가 아직 39개월 남았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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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

    올해 국정감사 시즌은 ‘김현지’에서 시작해 ‘김현지’로 끝나나 했더니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다. 최 위원장은 입법부 권세의 서슬이 가장 시퍼럴 때인 국감 기간에 국회에서 딸 결혼식을 치러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식장에는 과학기술, 정보, 방송, 통신 분야 피감 기관과 기업에서 보내온 화환 100여 개가 즐비했다고 한다. 이른바 ‘최민희 이슈’가 하루이틀 뜨겁다 식나 했는데 결혼식 후 일주일쯤 지나 축의금 목록이 담긴 최 위원장의 텔레그램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한 신문사 카메라 기자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포착한 휴대전화 화면엔 축의금을 낸 사람의 소속과 최소 20만 원, 최고 100만 원인 축의금 액수가 나온다. 최 위원장 측은 피감 기관에서 냈거나 과하게 들어온 축의금을 돌려주라고 보좌진에게 지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야당은 경조사비 한도를 5만 원으로 제한한 김영란법 위반이라며 위원장직 사퇴를 촉구했고, 여당에선 “최민희처럼 이해충돌 축의금을 돌려준 사람이 있느냐”며 감싸고 있다. 경조금엔 받는 만큼 돌려주는 상호부조의 원칙이 작용한다. 최 위원장이 주거니 받거니가 가능한 상대에게서 축의금을 받았다면 위법 여부와 관계없이 윤리적으론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선출직 공무원은 공직선거법에 따라 친족이 아닌 사람에게 경조금을 주면 불법 기부행위로 처벌받는다. 한 선출직 공직자는 장남 결혼식을 조용히 치렀는데 “대단한 미담이랄 것도 없다”고 했다. “선거법 때문에 지인들 경조사에 가서 부조 안 하고 말로 때운다. 나는 안 하면서 어떻게 그걸 받나.” 최 위원장네 혼사가 공개된 때가 한 달 전이다. 결혼식 시기와 장소, 모바일 청첩장에 카드 결제 기능까지 넣은 게 알려지면서 갑질 논란이 제기됐지만 카드 결제 기능만 삭제했을 뿐 화환과 축의금을 사절한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래 놓고 문제가 커지자 “피감 기관에 청첩장 돌린 적 없다. 허위 정보 유포에 대응하겠다”며 오히려 화를 내더니, 보좌관에게 ‘축의금 반환’이라는 사적 업무를 시키고, 여당은 “환급한 것도 잘못이냐”며 거들고 있다. 애초에 받지 않았으면 될 일이다. 갚지도 못할 경조금 챙기고 반성은커녕 큰소리치니 사태가 커지고 여론이 나빠지는 것이다. 권력을 쥐면 뇌 구조가 바뀌어 ‘나는 일반적 도덕준칙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 존재’라고 착각하게 된다는데 자신에게만 관대한 이중 잣대 중독증은 여당이 특히 심하다. 난 전세 끼고 대출받아 집 사도 되고, 네가 전세 끼고 대출받아 집 사는 건 ‘공익을 위해 억눌러야 할 욕망’이라고 훈계하는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 회의실 걸개 문구를 인용하면 매사에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는 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혐중 시위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자 여당 의원들이 혐오 표현 시 처벌하고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혐오 표현은 ‘멸시, 모욕, 위협 등의 표현 행위’란다. 피감 기관 관계자에게 “그따위” “발악” “추태” “부모에게 못 배운”이라 퍼붓는 건 어떤가. 야당도 예외가 아니다. 정청래 대표와 추미애 법사위원장을 향해 “막 사는 광기 남매”라 했다. 남들 다 보는 국회에서 상욕 주고받으면서 어떻게 국민들에겐 혐오 표현 쓰면 처벌하겠다 하나. 여당은 허위 조작 정보를 보도 유포하는 언론과 유튜버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배상금을 물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불법 허위 정보를 악의적 반복적으로 유통하면 최대 10억 원의 과징금까지 물리겠다고 한다. 여당 의원들은 근거 없는 ‘조희대 한덕수 회동설’을 제기하고선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나는 가짜 정보 말해도 되고 너는 안 된다는 식이다. 여당은 이런저런 개혁 입법 과제를 쏟아내고 있는데 가장 시급한 개혁은 국회 개혁이다. 윤리규정 강화하고 면책특권 포기하라. ‘조요토미 희대요시’라 해놓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의원, 밑도 끝도 없이 음모론 제기해 놓고 책임도 안 지는 의원은 퇴출시킬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국회다. 야당은 피감 기관에서 경조사비를 못 받게 하는 ‘최민희 방지법’ 운을 띄우고 있다. 3년 전 민주당도 “줄 수 없다면 받지도 못하게 하자”며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었다. 경조금 들어오고 나가는 규모를 양심껏 ‘똔똔’ 비슷하게라도 맞출 자신이 없다면 법으로 강제하는 것도 방법이다. 난 되고 넌 안 된다는 양심 불량의 오만한 의원들을 보며 “저런 사람들이 국회에 앉아 있으니 나라가 큰 걱정”이라며 혀를 차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정신 차려야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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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기자들은 못 막는다

    국가 안보와 언론의 자유는 때론 충돌한다. 197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펜타곤 보고서’ 보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정부가 감춰 왔던 베트남전의 실상을 담은 정부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했고, 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협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국가 기밀이란 이유만으로 언론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는 기념비적인 판례의 나라에서 때아닌 보도 통제 논란이 뜨겁다. 이번 논란의 진앙도 국방부 청사 펜타곤이다. ▷‘전쟁부’로 문패를 바꿔 단 국방부 청사에서 15일 짐을 챙겨 나오는 출입 기자들 사진이 전 세계 주요 언론에 실렸다. 국방부는 최근 ‘기밀이든 아니든 모든 보도는 사전에 국방부 승인을 받으라’는 내용의 보도지침을 통보하고 이를 준수한다는 서약서에 서명해야 출입을 허락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전 검열이나 다름없는 보도지침에 항의하는 뜻에서 기자 40여 명이 출입증을 반납하고 제 발로 걸어 나온 것이다. 서약서에 서명한 매체는 강경 보수 원아메리카뉴스 한 곳뿐이라고 한다. ▷폭스뉴스 앵커 출신인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45)은 취임 이후 정례 브리핑을 중단하고, 주요 언론의 지정석을 없애고, 기자들의 청사 내 이동을 통제해 왔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지만 올해 3월 예멘 후티 반군 공습 정보 유출 사건이 적대적 언론관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그는 정부 고위 각료들이 모인 단톡방에 기자가 초대된 줄도 모르고 공습 계획을 공유했다. 또 아내와 남동생 등이 있는 다른 단톡방에도 공습 계획을 올린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 경질될 뻔했다. ▷펜타곤 보도지침은 갈수록 험악해지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언론 통제 실상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정부에 비판적인 AP통신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하고, CNN 기자에게 “개처럼 쫓겨나야 한다”며 막말을 퍼붓고, 자신을 풍자한 토크쇼를 내보낸 ABC방송에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고 겁박했다. 백악관 풀기자단에 껄끄러운 기자를 빼고 극우 팟캐스트 진행자를 넣기도 했다. 비판 언론은 겁주고 우호적 매체는 우대하며 갈라치기를 하는 건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언론 통제 수법이다. ▷눈엣가시 같던 출입 기자들이 사라졌으니 펜타곤은 조용해질까. 펜타곤 보고서 특종은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양심적인 전문가와 용기 있는 기자의 청사 밖 만남에서 시작됐다. 1961년 미국 정부가 감추려던 쿠바 피그스만 침공 사건이 알려진 건 늦은 밤 정부 청사의 중남미 담당 사무실에만 불이 환히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지나치지 않은 기자 덕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부 보도지침을 두둔하면서도 별 효과는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기자들은 못 막는다(Nothing stops reporters).”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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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이재명도 못 말리는 정청래, 추미애

    여당이 주도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조희대 대법원장 대선 개입 의혹’ 청문회에 대법원장이 불참했다. 법사위는 곧 열리는 대법원 현장 국정감사를 청문회 삼아 조 대법원장을 다시 부르겠다고 한다. 어찌 되든 ‘조희대는 사퇴하라’는 여당 요구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희대 청문회는 이름만 청문회일뿐 결론이 이미 정해진 중세 유럽의 종교재판 같다. 이단이라서 재판받는 것이 아니라 재판받기 때문에 이단이 된다는 재판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얼마 전 유엔 총회 연설에서 “유엔이 이룬 성취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대한민국 80년 역사를 바라보라’ 대답하겠다”고 했다. 누군가 더불어민주당이 이룬 성취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국회 법사위로 가보라’고 하겠다. 민주당 의원들이 연일 떠들썩한 소동을 주도하는 법사위는 집권 여당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먼저 화력 높은 비호감 의원들이 득세하고 있다. 추미애 위원장부터가 그렇다. 추 위원장은 온건파인 전임자 이춘석 의원이 주식 차명 거래 의혹으로 제명된 후 ‘원자폭탄으로 불을 끄자’는 전략에서 내세운 인물이라고 한다. 의도대로 이춘석 불은 껐는데 화력 조절이 안 돼 여당에서도 “추미애 전쟁의 결과가 좋았던 기억이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식적인 이들에겐 스트레스 지수 높이는 밉상이지만 강성 지지층엔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복덩이다. 요즘 여당 의원들의 의정 활동은 야당에 한 방 먹여 개딸들 정치적 효능감을 충족시키는 격투기로 변질됐다. 정청래 대표도 법사위원장 시절 누구 못지않은 전투력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개딸이 새롭게 주목하는 선수가 서영교 의원이다. 사기 전과만 9범인 전과자를 검찰개혁 입법청문회 증인으로 부르고, ‘조희대-한덕수 회동설’이라는 가짜 녹취를 국회에서 틀어 정치생명 끝나나 했는데 모 서울시장 적합도 조사에선 오히려 상위를 차지했다. 민심이 아닌 개딸 눈치만 살피니 의원들이 일할수록 나라는 나빠지는 듯하다. 막말과 선동으로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맹목적인 사법부 흔들기로 삼권 분립을 위협한다. 노란봉투법부터 경제 부처 개편과 검찰청 폐지법까지 여당의 속도전에 제동을 걸어야 할 법사위가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기업을 밖으로 내쫓고, 경제 위기에 대응할 경제사령탑은 실종되고, 서민 범죄 피해자들만 피눈물 흘릴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면 어떻게 책임지려 하나. 이 대통령도 중요한 뉴욕 순방 기간에 초유의 대법원장 청문회 의결이라는 폭탄이 터지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KTV가 제작한 ‘유엔 무대를 뒤흔든 한국의 귀환. 이 대통령이 뉴욕에서 이뤄낸 놀라운 성과’ 영상은 비슷한 시기에 올라온 ‘추추 트레인은 멈추지 않는다!’ 같은 쇼츠에 묻혀버렸고, 한국갤럽의 9월 마지막 주 대통령 지지율은 집권 이후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추의 전쟁은 대통령도 못 말리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걸까.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상당 부분 공천권에서 나온다. 법으론 안 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친문 친윤 인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곽상언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요즘 당내 경선은 개딸 동원력이 있는 ‘보이는 손’ 유튜브 권력이 좌우한다. 이 대통령 취임 직후 치러진 당 대표 선거도 개딸들이 좋아하는 정 대표 승리로 끝났다. 유튜브 권력은 벌써 내년 6월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를 결정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해결해 줄 핵심 열쇠도 여당이 쥐고 있다. 배임죄 없애고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면 대통령은 대장동, 백현동, 성남FC, 허위사실 공표 사건 모두 ‘면소’ 판결을 받게 된다. 검찰청은 폐지됐어도 국회는 입법권으로 수사와 기소를 모두 할 수 있는 특검 체제를 가동할 수 있다. 대통령으로선 ‘잘 드는 칼’이 필요하면 국회에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다. 여당의 힘자랑이 위험 수위를 넘었는데도 정부는 국정과제 1호로 헌법 개정을 제시하며 더 강한 국회를 예고했다. 감사원 국회 소속 이관, 대통령 거부권 제한, 비상계엄 선포 시 국회 통제권 강화,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도입, 중립성이 요구되는 기관장 임명 시 국회 동의 의무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탄핵 남발과 입법 독주를 견제할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 도입이나 불체포특권 폐지는 언급도 없다. 이 대통령은 정 대표와 추 위원장을 못 말리는게 아니라 안 말리는 것일지 모른다. 민주당에 유리한 유권자 지형과 지리멸렬 국민의힘을 감안하면 대선은 몰라도 20년 의회 권력 장악은 꿈이 아니다. 국회에 권한을 몰아주면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제왕적 국회, 제왕적 민주당으로서 권력을 누릴 수 있다. 못 말리든 안 말리든 폭주하는 정청래, 추미애 시대가 윤석열, 김건희 시대보다 더 험한 것을 예고하고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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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사무장 병원과 면허대여 약국, 내부 고발 포상금 20억

    일반인 500만 원, 내부 종사자 20억 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의사와 약사 면허를 빌려 불법 개설한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면대)약국 신고 포상금으로 내건 최고 액수다. 금융당국이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와 담합 신고자에게 주는 포상금(30억 원)보다는 적지만 간첩 신고 포상금과 같고 로또 1등 평균 당첨금(21억 원)에 맞먹는다. 그만큼 국민 건강을 해치고 건강보험 재정을 좀먹는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 문제가 심각하다.▷법적으로 병원은 의사나 의료법인 등이, 약국은 약사나 한의사만이 개설할 수 있다. 그런데 사무장병원은 의사 면허를 월 1000만 원 내외, 면대약국은 약사 면허를 수백만 원을 주고 빌린 뒤 의사와 약사를 고용해 운영한다고 한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적발된 사무장병원은 치과와 요양병원 등 196곳, 면대약국은 89곳이다. 이들 285개 기관이 건보공단에서 타낸 돈이 837억 원. 기간을 14년으로 늘리면 이들이 건보 곳간에서 빼간 금액은 3조4000억 원에 이른다.▷하지만 이 중 환수에 성공한 금액은 7%도 안 된다. 보건당국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 수사 결과를 통보받기까지 1년 가까이 걸린다. 그동안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은 폐업 후 증거물을 없애고 잠적하면 그만이다. 애초에 보건당국이 찾아내기도 어렵다. 사무장병원은 개원하고 평균 6년 5개월, 면대약국은 개국하고 평균 7년 9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적발된다. 보건당국에 걸릴 때까지 35년간 불법으로 운영한 병원도 있다.▷이윤 극대화가 목적인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은 항생제와 수면제를 과다 처방하고 불필요한 입원을 강요하는 비율이 일반 병원과 약국보다 훨씬 높다. 최근 광주에선 가짜 입원 환자 20여 명의 진료 기록을 조작해 건보 급여 2억 원을 타낸 사무장병원이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사무장병원의 폐해를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사건이 2018년 47명이 숨지고 112명이 다친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다. 이 병원은 병상을 늘리고 환자 유치에 열을 올리면서도 안전 시설은 부실하게 관리하다 대형 인명 피해를 냈다.▷건보공단은 해결책으로 공단에 수사권(특별사법경찰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수사를 3개월 만에 마쳐 연간 2000억 원의 건보 재정 누수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회엔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민간인에게 수사권을 주기보다 이미 수사권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담당 부서를 확대 운영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수사 장기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각자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병원 원장이나 개설 약사가 수시로 바뀌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단골 환자 때문에 병원이나 약국 이름은 잘 안 바꾼다고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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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토론은 말로 하는 것”

    독일 연방의회 율리아 클뢰크너 의장(53)이 최근 연방의원 전원에게 편지를 보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사용을 “적당하고 방해되지 않는 수준으로” 자제하고, 노트북 같은 기기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스티커 부착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편지를 받아 든 의원들 사이에선 “신임 의장의 시시콜콜한 군기 잡기”라는 불만과, 토론의 장이 돼야 할 의회가 온갖 구호가 난무하는 “서커스장”이 돼가고 있어 자제가 필요하다는 옹호론이 나온다. ▷중도 보수 기독민주당 소속인 클뢰크너 의장은 올 5월 취임 이후 ‘국가 상징물 외의 다른 정치적 상징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회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규탄하는 뜻에서 ‘팔레스타인’이라 적힌 티셔츠를 입은 의원에게 퇴장하라 명령하고, 올 7월 베를린 퀴어축제 기간에는 관행을 깨고 의회 건물에 성소수자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못 걸게 했다. 의원들이 소셜미디어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선동적 구호와 옷차림, 소품에만 신경 쓰면서 의회가 양극화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독일 의회 규칙을 한국 국회에 적용하면 무사할 의원이 있을까 싶다. 국회만 열리면 여야 가리지 않고 ‘OUT’이나 ‘STOP’이 들어간 피켓을 회의장과 노트북 곳곳에 붙여놓고 세 과시를 한다. 국회 앞 여의도엔 20개가 넘는 피켓 인쇄소가 성업 중인데 주문이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들어 24시간 영업하는 곳도 있다.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튀고 보자”는 심리에 태권도복이나 급식 조리사복을 입은 의원들과 가스통, 성인용품 ‘리얼돌’, 벵골고양이에 구렁이까지 소품으로 등장한다. 이 정도는 돼야 ‘서커스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선거운동은 시(詩)로, 국정은 산문으로’란 말이 있다. 선거 캠페인은 귀에 쏙 들어오는 선명한 구호를 쓰더라도 복잡다단한 국정을 처리할 땐 차분하고 논리적인 언어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회 어디에서도 깊이 있는 논쟁을 보기는 어렵다. 간단명료하고 데시벨 높은 낙인찍기와 들춰내기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의원들의 활약상은 맥락 없이 짧은 영상들로 편집돼 ‘의원 팩폭에 넋 나간 장관’ 같은 아전인수식 제목으로 소셜미디어에 유통된다. 뉴미디어가 정치를 죽이고 있다. ▷독일 의회 의장은 “스티커나 티셔츠는 어떤 일도 하지 못한다” “토론은 말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불완전하나 평등한 사람들끼리 설득하고 설득당하며 지혜를 모아 현안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다. 민주국가 국회 본회의장이 모두 고대 그리스 시대 토론 광장에 원형을 두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가장 정제된 토론 문화를 보여줘야 할 국회가 말로 토론하지 않고 소품과 구호로 싸우고 있다. 어떤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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