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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진영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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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8~2026-05-08
칼럼100%
  • [횡설수설/이진영]보이스피싱에도 위장수사 허용되나

    신세계, 무간도, 미스 에이전트. 한국 홍콩 미국으로 배경은 다르지만 모두 범죄조직에 잠입한 ‘언더커버’ 수사 요원들의 활약을 다룬 영화들이다. 한국의 경우 영화와 달리 위장수사는 특정 범죄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조주빈 일당의 ‘n번방’ 사건을 계기로 2021년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해 처음 위장수사가 허용됐고, 이후 성인 디지털 성범죄(2024년)와 마약 수사(올 4월)로 확대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야 의원들이 조직범죄도 위장수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6일 발의한다. ▷위장수사는 n번방 사건처럼 폐쇄적이고 비대면에 점조직 형태로 이뤄져 압수수색이나 체포 같은 전통적 수사 방식으로는 증거 확보가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이번에 발의되는 법안도 보이스피싱, 로맨스스캠, 투자 리딩방, 기획부동산 사기처럼 내부자가 아니면 정보 접근이 어렵고, 조직 말단을 잡아도 윗선까지 검거하기 어려운 조직범죄가 대상이다. 수사관이 조직원이나 피해자로 위장해 계약이나 거래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증거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위장수사의 효용은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서 입증된 바 있다. 2021년 9월 제도 도입 이후 4년간 위장수사 765건으로 성범죄자 2171명을 붙잡았다. 범인이 개설한 텔레그램 대화방에 위조 신분증으로 가입해 증거를 모았다. 2024년엔 지인과 연예인을 대상으로 가짜 영상물 3만 개를 제작 유포한 ‘합사방(합성사진방)’ 운영자 등 238명을 검거했다. 위장수사 개시 3개월 만이었는데, n번방 때는 조주빈 검거까지 6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위장수사는 불법인 함정수사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범죄 의도가 있는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은 합법적 위장수사지만, 죄지을 생각이 없던 사람의 범죄를 유발하면 함정수사가 된다. 위장수사는 대상자의 모든 언행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어 기본권 침해 소지도 크다. 위장수사관은 범죄조직 내에서 신뢰를 얻기 위해 범죄에 가담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성범죄 조직에 잠입해 성착취물을 유포한다면, 마약조직에서 마약 거래를 돕는다면 정당한 수사 행위일까. ▷위장수사를 개별 법률로 허용하는 점도 개선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발의되는 조직사기특별법을 비롯해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성폭력범죄처벌법, 마약류 관리법 등으로 관련 규정이 흩어져 있다 보니 위장수사의 범위와 한계 등에 대한 일관된 운용이 어렵다. 위장수사가 필요한 범죄 유형이 생길 때마다 개별법을 고치거나 특별법을 만든다면 일관성 유지가 더 어렵고 형사특별법이 난립할 수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형사소송법, 영국은 수사권한규제법, 미국은 행정지침으로 규율한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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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문화예술계 ‘보은-코드인사’

    문화예술계는 보은 인사, 코드 인사가 특히 심한 분야다. 성과 측정이 상대적으로 어려워 ‘문화적 소양’이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오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역대 보은 인사 중에서도 ‘끝판왕’은 박근혜 정부 시절 79세로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된 코미디언 자니 윤이었다. 그는 대선 당시 대통령의 재외선거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인연으로 임명됐는데 “인사 자체가 코미디”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문화예술계 인사를 놓고 자니 윤 인사 못지않은 거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보은 인사에 대한 우려는 자칭 ‘뼛속까지 이재명’인 배우 이원종 씨가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지원하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면접 심사에서 후보 전원이 탈락해 없던 일이 됐지만 문화계가 받은 충격은 컸다. 이후 이재명 대선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모델 출신 배우 장동직 씨와 코미디언 서승만 씨가 유서 깊은 국립정동극장 이사장과 대표이사에 임명되자 문화계가 끓기 시작했다. 정동극장 대표는 스타 공연기획자인 홍사종, 국립발레단 단장을 지낸 최태지같이 내로라하는 문화계 인사들이 맡아 온 자리다. ▷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재단 이사장에 친여 성향 역사학자 전우용 씨,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에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를 임명한 것은 이쪽 분야의 끓는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세종학당재단 이사장은 한국어 교육 전문가들이 맡아 온 자리이고, 문화관광연구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중 유일한 국책 연구기관으로 박사급 연구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황 씨는 2021년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됐다가 보은 인사 논란에 사퇴한 적이 있다. ▷문화예술단체 65개와 개인 794명은 21일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전문성 없는 인사는 예술인에 대한 모욕”이라며 파행 인사의 책임 규명을 촉구했다. “인사가 전문성보다 인지도, 역량보다 권력과의 관계를 우선시하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 감독 자리에 강호동이나 서장훈을 앉히는 격”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날 행사를 제안한 단체는 진보 성향의 문화연대다. 이 단체의 공동대표를 지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문화체육비서관이다. ▷문화예술계 보은 및 코드 인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의 힘을 이용하려는 정치권과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예술계의 취약성이 빚어낸 나쁜 관행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 인사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고, 코드가 맞는 단체에 지원이 몰린다는 잡음이 나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도 이런 풍토에서 빚어진 것이다. 정치가 예술을 지배하면 그건 예술이 아니라 선전이 된다. 문화 선진국들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다. 어느 예술인이 일갈했다. “예술을 정치의 놀이터로 만들지 말라.”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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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일개 검사 하나 못 잡아 안달인가

    국회의 조작 기소 국정조사가 아니었다면 일개 검사인 박상용 인천지검 부부장검사가 이렇게 유명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대북송금 사건의 주임 검사로 이재명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검사는 국회에 불려 나가서도 당당하게 주장하고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의원들 앞에서 ‘쫄지’ 않는 사람은 쿠팡의 미국인 임원 말고는 본 적이 없다. 조작 기소 여부야 수사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하지만, 산 권력 앞에서도 ‘가오’를 잃지 않는 검사는 인상적이다. 박 검사는 이번 조작 기소 건으로 수개월간 서울고검의 감찰을 받아 왔다. 법무부 처분으로 직무가 정지됐고, 국회로부터 위증 혐의로 고발됐으며,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다. 얼마 전엔 2차 종합특검이 그를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을 금지했다. 법무부는 정치적 중립 위반 혐의로 추가 감찰도 지시했다. 검사 하나 잡기 위해 공권력을 총동원하는 이유는 조작 기소임을 밝혀내야 이 대통령의 공소 취소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조작 기소 증거가 있다면 확정 판결을 받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부터 재심을 받으라고 한다. 재심에서 이 대통령의 기소 근거가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공소 취소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재심에서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부터가 낮아 보인다. 결국 검사가 공소 취소를 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보니 조작 기소로 몰아가기 위한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조작 기소 국정조사부터가 그렇다. 여당은 재판에 관여할 목적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야당과 법조계 일각의 견해는 다르다. 여당 일부 의원들은 국정조사 시작도 전에 공소 취소가 목적이며 조작 사실이 확인됐다고 공언했다. ‘결론 먼저 쓰고 진술 꿰맞추기’로 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특위 위원 중 김동아, 양부남, 이건태 의원은 대장동 변호사 출신이다. 국가정보원과 금융감독원은 기관 증인으로 채택됐는데, 이종석 국정원장은 대북 송금 재판에서 “이화영의 20년 지기”라며 ‘경기도가 쌍방울 대북사업을 돕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증언했던 인물이다. 국정원의 예산과 인사를 총괄하는 기조실장과 이찬진 금감원장도 대북송금 사건 변호사였다. 공정한 재판, 아니 국정조사가 이뤄지길 바라기 어려운 구성이다. 대북송금 사건은 2년간 50차례 공판이 이뤄졌다. 500명 넘는 관련자를 조사하고 재판 증인만 130명이라고 한다. 연어 술파티 회유나 진술 조작도 법원에선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당은 이를 국정조사 50일로 뒤집겠다면서 아직까지 결정적 증거를 못 내놓고 있다. 국조특위 가동의 동력이 됐던 녹취록도 결정적이지 않다. 이화영의 변호인이 제공한 녹취록에는 박 검사가 변호인에게 “이재명 씨가 완전히 주범이 되고 이 사람(이화영)이 종범이 되는 식의 자백” 같은 미심쩍은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앞뒤 맥락이 잘린 녹취록만으론 어떤 결론도 내기 어렵다. 어느 나라나 경찰 보디캠과 관련해선 현장 출동 시점부터 상황 종료 시점까지 누락 없이 전체 촬영을 하도록 규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법과 이해충돌 논란으로 시작부터 실패를 예고한 국정조사는 다음 달 8일 끝난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정조사 이후 조작 기소 특검을 통해 의혹의 티끌까지 밝혀내겠다”고 했다. 조작 기소가 드러나면 공소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당이 통과시킨 특검법과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의 힘으로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는 특권을 누리겠다는 것인가. 박 검사가 국정조사로 주목받는 시기에 칸 영화제 수상작인 영화 ‘두 검사’가 개봉했다. 1937년 스탈린 체제가 시대적 배경이다. 주인공인 초임 검사가 불법 지식인 숙청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자 검찰총장을 만나 막아 달라 하는데, 총장은 그러겠다고 해놓고는 몽둥이 들고 기다리는 숙청조직에 검사를 밀어 넣는다는 내용이다. 정의 수호도, 법치 유린도 결국 법률가 손으로 이뤄진다. 영화는 법의 지배를 믿는 개인과 힘의 지배를 원하는 권력 간 대결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아일보 문화면에 실린 리뷰를 인용하면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할 법이 권력에 부역할 때 국가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끝난다. 국제 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요구받는 선진국에 살면서 왜 법 위의 권력이 ‘권력의 의심을 받는 자는 이미 유죄’라고 단죄하는 스탈린 시대 영화를 보고 남 일 같지 않음을 느껴야 하나. 박상용 검사는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국민이 가지고 계신 법치로, 제도로 처벌해 달라”고 했다. 대통령도 ‘나에 대한 기소가 잘못됐다면 다른 국민과 똑같은 사법 절차에 따라 바로잡아 달라’고 해야 한다. 특검과 공소 취소라는 예외를 요구하는 세력은 보편적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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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 대학교수와 AI의 에세이 첨삭 대결

    10년 전 이세돌 9단과 알파고 대국 때 바둑기사들 말고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직업군이 작가들이다. ‘바둑은 철학이고 체스는 과학’이어서 체스 챔피언이 슈퍼컴퓨터에 질 순 있어도 바둑은 어림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넓고 깊은 철학의 영역에서 추월당했으니 글쓰기도 시간문제 아닐까. 작가들 사이에선 “왜 위대한 작품을 꼭 인간이 써야 하느냐”는 반문까지 나왔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대결이 3일 펼쳐졌다. ▷글 잘 쓰기로 이름난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와 인공지능(AI)의 첨삭 대결은 김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 개정증보판 출간을 기념해 출판사가 마련한 행사다. 사전에 응모한 900자 분량의 에세이 중 3편을 골라 읽은 뒤 미리 준비해 둔 김 교수와 최강의 AI로 꼽히는 앤스로픽 ‘클로드 오퍼스’의 첨삭 내용을 비교해 보는 방식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글에서는 누가 첨삭한 것인지 맞히는 블라인드 테스트도 했다. 200명의 참가자 중 85%가 정답을 맞혔다. ▷둘의 첨삭 결과는 많이 겹치지 않았다. AI는 논리적 흐름과 일관성을 강조했다. 늘어지는 대목은 “글의 속도를 늦추는 문장”이고, ‘듯하다’는 표현이 들어간 문장은 “글쓴이가 자신의 논지를 믿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라며 삭제를 권했다. AI가 글 안에 갇혀 있는 반면 김 교수는 틀 밖에서 도발했다. ‘떫은감 협회’ 총회 현수막에서 착안한 글을 놓고 “왜, 떫냐?’는 제목을 제안했고, “사적인 감상에서 시작하되 본격적인 사회비평으로까지 도약하는 글이 되면 임팩트가 클 것 같다”며 확장적 사고를 주문했다. ▷행사를 기획한 출판사는 둘의 첨삭 중 어느 쪽이 좋은지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려다 접었다고 한다. 앤스로픽과 사전 양해 없이 대결을 진행한 후 승패를 판정하기가 부담스러웠다는 것. 하지만 헤밍웨이와 포크너의 ‘수식어 논쟁’이 보여주듯 글쓰기는 승패를 가릴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헤밍웨이는 수식어 없는 문장을 썼고, 그런 헤밍웨이를 겨냥해 포크너는 “독자가 사전을 찾아봐야 하는 단어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다”며 비꼬았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묘사하려면 수식어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수식어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초고는 무조건 혼자 쓴다. 그리고 (AI) 도움을 받는다. 그게 나의 원칙”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AI에 맡긴다면 “내 능력은 퇴화할 것이고, 그게 내가 정말 살고 싶은 생인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AI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되니, AI 시대에도 글쓰기와 사유는 멈출 수 없는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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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배달 앱 개인정보 털어 ‘보복대행업’

    보안성이 뛰어나고 서버에 기록이 남지 않는 텔레그램은 범죄자들에게는 완벽한 은신처를 제공한다. 디지털 성범죄, 마약 유통, 투자 리딩방 사기 등이 텔레그램을 매개로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돈을 받고 오물 투척 테러 등을 해주는 보복 대행 텔레그램 채널이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과거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를 통해 이뤄지던 사적 보복이 텔레그램의 보안 기술을 만나 기승을 부릴 조짐이 있다는 것이 경찰 분석이다. ▷보복 대행 채널 운영자들은 ‘대신 복수해 드립니다’ ‘원한을 해결해 드립니다’ 같은 문구로 의뢰인을 모집한다. 보복 대행의 서비스 종류는 인분 투척하기, 페인트로 낙서하기,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이나 피해자를 음해하는 내용의 전단 뿌리기 등 다양하다. 비용은 인분 테러가 200만 원, 전단 살포를 추가하면 50만 원이 더 든다. ‘사고 위장 신체 손상’이나 ‘범죄혐의 뒤집어씌우기’ 같은 중범죄 대행을 내건 채널도 있다. ▷채널 운영자가 실제 보복을 실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낙서 알바’ ‘심부름 알바’ ‘월 500+α 보장’ 같은 모집 공고로 뽑은 젊은 ‘특공대원’들이 실행을 맡는다. 올 2월엔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아파트 현관문에 음식물 쓰레기와 인분을 뿌리고 래커칠을 한 20대가 붙잡혔다. 비슷한 시기 경기 군포에선 다세대주택에 침입해 현관문에 빨간색 래커칠을 하고 협박 전단을 붙인 20대가 검거됐다. 모두 텔레그램으로 알게 된 익명의 ‘윗선’으로부터 가상화폐 60만∼80만 원 어치를 받고 저지른 일이라고 했다. ▷텔레그램의 자동 삭제 기능 탓에 윗선까지 추적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검거된 행동대원들에겐 형이 무거운 보복 범죄 대신 주거침입, 재물손괴, 명예훼손 죄목만 적용한다. 얼마 전엔 보복 대행 총책인 30대 남성을 포함한 일당 4명 전원이 구속됐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들은 올 1월 경기 시흥의 한 아파트 현관에 인분을 뿌리고 욕설 낙서를 하는 등 전국 각지에서 보복 대행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일당은 범행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빼내려고 40대 남성을 배달의민족 외주사에 상담원으로 위장 취업시키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이 남성이 상담 목적 이외에 조회한 개인정보가 1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어느 시대나 법은 멀게 느껴졌고 사적 제재의 유혹은 존재해 왔다. 과거와 달라진 건 보복 범죄를 의뢰하기도 실행하기도 쉬워졌다는 점이다. 스마트폰과 가상화폐 계좌만 있으면 음성적인 심부름센터를 차리거나 찾을 필요가 없다. 보복으로 얻는 이익은 크고 리스크는 적다면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보복 대행은 사법 질서를 흔들고 사회적 불안감을 퍼뜨린다. 사적 보복을 공공 범죄로 엄벌해야 하는 이유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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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첫발 뗀 통합 돌봄

    ‘정든 집이 보약보다 낫다’는 옛말이 있다. 친숙한 동네와 손때 묻은 집은 명약이 대신할 수 없는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노인 10명 중 8명은 집에서 생애 말기를 보내고 싶어 한다. 선진국 노인 복지정책의 핵심 목표도 ‘살던 곳에서 늙어가기(AIP·Aging In Place)’다. 그래야 건강하고 존엄한 노후를 보낼 수 있고 병원이나 요양원 신세를 질 때보다 비용도 적게 든다고 한다. 27일부터 전국의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한국판 AIP를 위한 제도다. ▷지금까지는 아프면 병원 가고, 거동이 불편하면 장기요양등급 받아 요양보호사 부르고, 돌봄 서비스는 구청이나 복지관에 따로 신청해야 했다. 그런데 통합돌봄이 시행되면 의료, 요양, 돌봄 서비스를 집에서 받을 수 있다. 주소지 행정복지센터에 신청하면 전문가가 방문해 건강 상태 등을 확인한 후 방문 진료, 주거 개조, 목욕 지원 같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재원은 중앙과 지방 정부 예산,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재정에서 충당하고, 사용자가 내는 비용은 서비스 종류와 소득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본격 도입에 앞서 시행된 시범사업의 효과는 고무적이다. 통합돌봄 서비스 이용자의 연간 의료비와 장기요양비 지출이 1인당 평균 282만 원 감소했다. 요양병원 입원율과 요양시설 입소율도 낮아졌다. 치료가 필요 없는데도 돌봐줄 사람이 없어 병원에 머무는 ‘사회적 입원’이 줄고, 안전 손잡이 등을 설치해 낙상 사고를 예방하고, 정기적인 방문간호와 투약 관리를 한 덕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범사업에서만 결과가 좋게 나오는 ‘파일럿 편향’은 경계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의사, 간호사, 요양보호사가 집집마다 찾아다닐 경우 병원이나 시설에 수용해 적은 인력으로 관리할 때보다 비용이 더 들 수 있다고 반박한다. 통합돌봄을 해준다 해놓고 예산과 인력 부족을 이유로 서비스가 부실해지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에 전가된다. 개별적인 요구에 맞추기보다 정해진 서비스 메뉴에 끼워 넣는 행정편의주의로 흐를 위험도 있다. 한국보다 앞서 통합돌봄을 시행한 일본이 20년간 겪어온 일이다. ▷지역 간 자원 격차가 통합돌봄의 격차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 통합돌봄을 하려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한 명씩은 있어야 하지만 의료취약지역은 공중보건의도 없는 곳이 태반이다. 최소한의 서비스도 제공하기 어려운 곳부터 챙겨야 한다. 이해관계와 돈주머니가 제각각인 여러 조직들이 수요자 중심의 통합 서비스에 기여할수록 이득을 보는 보상 시스템도 필요하다.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노년기 삶의 질이 달라진다면 통합돌봄은 성공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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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신빨’ 떨어진 정치 무당 김어준

    소설가 성해나의 베스트셀러 ‘혼모노’(창비)엔 30년 차 박수무당 얘기가 나온다. 선거철엔 예비 출마자들을 상대로 억대의 굿값을 벌던 그는 ‘신빨’이 예전 같지 않음을 감지하게 되고, 갓 신내림을 받은 무당 ‘신애기’가 앞집에 이사 와 단골들을 채가면서 위기를 맞는다. 요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김어준을 보며 이 박수무당이 떠올랐다. 김어준은 청와대 출입기자를 둔 언론인이지만 강준만 교수의 책 제목대로 ‘정치 무당’에 가깝다. 김어준 유튜브 채널이 얼마 전 내보낸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을 놓고 “팩트체크도 안 했다” “게이트키핑은 기본”이라고 비판하는 건 전한길뉴스더러 왜 공정보도 안 하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 “냄새가 난다”며 후각대로 보도하는 기자가 어디 있나. 오보로 판명 나면 책임지는 게 언론이지만 김어준은 그러지 않는다. 점사가 틀린다고 복채 돌려주지 않고, 굿의 효험이 없다고 굿값 돌려주지 않는 법이다. 동양 철학자 임건순은 ‘한국형 무속 정치학’에서 한국 사회의 심층엔 무속이 자리하고 있고 인과적 사고보다 응보적 사고, ‘문제 풀이’보다는 ‘한풀이’식 무속적 세계관이 한국 정치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정희, 노무현 대통령이 좌우 진영에서 추앙받는 배경에도 비극적 최후를 맞은 이에게 상징적 힘을 부여하는 무속적 정서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어준은 “노무현 노제 때 숨어서 울다 결심한 게 있다. 남은 세상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라 했었는데 노무현이란 신을 모시는 무당을 자처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검찰개혁 하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떠오른다”고 했다. 여권 강경파들에게 검찰개혁은 검찰 수사 도중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한 해원(解冤)의 의미를 갖는 듯하다. 무속은 믿음의 영역이란 점에서 진위의 영역인 언론과 다르고, 영적 성장이 아닌 세속적 욕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다르다. 정치 무당 김어준도 좌파 진영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온갖 음모론으로 ‘액막이’ 역할을 하며 상대 진영엔 화를, 자기 진영엔 복을 불렀다. ‘윤미향 의혹’을 제기한 이용수 할머니를 배후설로 공격했고, ‘박원순 피해자’를 겨냥해 “굳이 나선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김어준 신봉자들은 ‘김어준이 문재인도 대통령 만들고, 박근혜도 감옥 보내고… 나랏일을 다 하고 있다’고 한다. 김어준 신당, 아니 방송에만 나가면 “공천받는 건 일도 아니고 후원금 계좌도 두둑”해지니 곽상언 의원처럼 안 나갔다간 오히려 “지가 뭐라고…” 같은 욕을 먹게 되는 것이다. 무당이 ‘신빨’이 다해 간다는 걸 깨닫는 계기는 작두 타다 칼날에 베여 피를 봤을 때다. 김어준으로선 올 1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 좌절이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합당하라는 ‘공수’를 내렸지만 먹히지 않았고 유튜브 구독자들만 빠져나갔다. 이후 ‘이재명 정청래 악수 패싱설’ 등으로 허둥대다 거래설이 터졌다. 여당의 대통령 공소취소 몰이는 방관하면서 검찰개혁 절제를 당부하니 “냄새가 난다” 할 법하지만 대통령 측근과 검찰 간 거래설을 밑도 끝도 없이 내지를 일은 아니었다. 여권에선 “김어준은 민주주의의 적” “괴물이 됐다”고 야단들이다. 민주당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니다. 이해찬 전 대표는 생전에 “김어준이 하는 유튜브는 다 봤다. 김어준이 민주당을 위해 큰일을 한다”고 했고, 송영길 전 대표는 “김어준 없는 아침이 두렵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2·3 계엄 후 처음 인터뷰한 곳도, 대선 하루 전날 출연한 곳도 김어준 채널이다. 현 정부는 처음으로 김어준 채널 기자에게 청와대 출입기자증을 내주었다. 정권 초기만 해도 총리, 장관, 청와대 대변인이 국정TV 드나들듯 김어준 방송에 나와 정책 배경과 해외 순방 성과를 소개했다. 상대를 겨냥한 음모론자는 ‘참언론인’이고, 우리 쪽을 향하면 무슨 무슨 ‘수괴’가 되는 건가. 김어준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그의 음모론을 정치 의제 삼아 사회를 분열시키고, 공동체를 위한 정치를 사적인 제액구복(除厄求福)의 도구로 삼아 온 무속적 습속부터 반성하라. 무당 정치의 폐해가 너무나 크다. 선거에 지면 ‘K값’ 때문이고, 유죄 판결을 받으면 “정치 판사” 탓이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기보다 음모론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정치에 무슨 책임 윤리가 있고 발전이 있겠나. 김어준과 절연해 봤자 유튜브 푸닥거리 장단에 맞춰 정치하는 문화를 청산하지 못하면 헛일이다. 좌우 가리지 않고 제2의 김어준과 신애기들이 정치와 공론장을 망치는 대가로 부와 권력을 누리려 무령(巫鈴)을 요란하게 흔들고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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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한 아비는 열 아들을 길러도…’

    외모, 성격, 학력, 직업, 자산, 집안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을 요즘 결혼 시장에선 ‘육각형 배우자’라 부른다. 이 중 ‘집안’을 볼땐 배우자 부모의 노후 대비 여부도 따지는데, 부모의 자립도는 배우자의 직업만큼 중요한 조건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대출 없는 자가(自家) 1채, 연금을 포함해 월수입 300만 원에 아플 때를 대비한 1억 원 이상의 현금을 갖고 있어야 합격권에 든다고 한다. 자녀의 원만한 결혼생활을 위해선 자녀에게 손 벌릴 생각을 접어야 하는 것이다.▷얼마 전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국민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를 부양할 책임이 자식에게 있다’는 데 동의한 응답자는 20.6%였다. 이 조사를 처음 시작한 15년 전 53%가 부모 부양에 동의한다고 답했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드는 소식이다. 저출산 현상으로 부양할 자식은 줄었으나 부모의 평균 수명은 늘어 부양 부담이 커진 데다, 가족이 전담해 온 돌봄 책임을 사회가 나눠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로 보인다.▷요즘엔 부모들도 자립심이 강하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자 10명 중 8명은 본인이나 배우자가 생활비를 마련하고, 10명 중 7명은 자녀와 따로 산다. 자녀에게 부담을 주기 싫은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벌어 따로 사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은퇴한 부부의 월평균 적정 생활비는 300만 원, 연금 수령액은 110만 원이다. 이들은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노후로 미뤄둔 취미 생활과 여행의 꿈을 접고 생활비를 버는 데 상당 시간을 보낸다. 60세 이상 취업자는 절반에 육박한다.▷부모 부양이 자식된 도리로 통하던 시대가 바뀌는 과도기엔 ‘낀 세대’가 있기 마련이다. 1960년대생이 이에 해당한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뜻에서 ‘마처 세대’라 불린다.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의 2024년 조사에서는 1960년대생의 56%가 부모나 자녀 중 어느 한쪽을 부양하고 있고, 15%는 부모와 자녀를 ‘이중 부양’하느라 월평균 164만 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후엔 자신의 노후까지 ‘삼중 부양’을 해야 하는 처지다.▷“한 아비는 열 아들을 길러도, 열 아들은 한 아비를 봉양하기 어렵다”는 독일 속담이 있다. 어느 나라든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나 보다. 더구나 ‘그냥 쉬었음’ 청년이 71만 명에, 청년 세대 전체가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다. 자식 덕 보기는커녕 자식 부양 부담만 덜어도 좋겠다는 부모들이 많다. 때 되면 부모 품 떠나 제 앞가림 하는 것이 최고의 효도이고, 자녀에게 기대지 않고 활기 있게 보내는 노후가 자녀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인 시대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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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죽음과 전쟁까지 베팅, 폴리마켓 논란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 주식 시장 못지않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장이 예측 시장이다. 세계 최대 베팅 사이트인 미국 폴리마켓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시점을 맞히는 내기에 5억2900만 달러(약 7800억 원)가 몰렸다. 지난달 28일 공습 하루 전 베팅해 12만 달러를 벌어간 사람도 있다. 현재는 ‘이란 정권은 3월 중 무너질까’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3월까지 유지될까’를 놓고 내기가 한창이다. ▷폴리마켓은 뉴욕대 중퇴생인 셰인 코플란(28)이 2020년 설립한 가상화폐 기반의 베팅 플랫폼으로 스포츠 경기나 선거 결과뿐만 아니라 이란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사건의 미래에 베팅할 수 있는 최초의 사이트다. 선거를 예로 들면 특정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Yes’나 ‘No’를 0∼1달러 가격에 사고팔 수 있는데 이 가격이 참여자들이 예상하는 그 후보의 당선 확률이 된다. 2024년 미국 대선 결과 예측에는 30억 달러 넘는 베팅이 이뤄졌다. ▷올해 초 잠시 한국어 서비스를 한 적이 있지만 국내에서 폴리마켓이 유명해진 계기는 그보다 앞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다. 탄핵 여부뿐만 아니라 정확한 시기를 맞히는 세분화된 상품이 나와 판돈이 커졌다. ‘윤 대통령이 2025년 4월 이전에 탄핵될까’에만 2600만 달러 넘게 베팅됐다. ‘LadyGunhee’라는 닉네임의 이용자는 16억 원을 벌어갔다고 한다. 현재는 ‘차기 서울시장’ ‘부산시장’ 맞히기 내기가 뜨겁다. 하지만 스포츠토토처럼 특별법으로 허용하는 경우가 아니면 온라인 베팅은 형법상 도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폴리마켓은 2024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을 가장 먼저 예측해 주목받았다. 일론 머스크는 “여론조사보다 더 정확하다. 돈이 걸려 있어서”라고 했다. 하지만 2022년 미국 중간선거에선 공화당의 압승을 점쳤으나 빗나갔다. 참여자들 중 다수가 가상화폐에 익숙한 우파 성향의 젊은 남성들이어서 전체 민심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한다. 2024년 베네수엘라 대선에선 여당 후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당선 예측에 실패했는데 집권 세력의 부정선거 변수를 놓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내부자 거래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엔 이스라엘 예비군이 기밀정보를 이용해 베팅했다 걸려 기소됐다. ‘가장 빠르고 냉정한 여론 지표’라는 낙관론과 달리 ‘큰손’이 특정 후보나 이슈에 베팅해 여론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 예측 결과의 판정 기준도 모호하다. 올 1월엔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언제 침공할까’ 내기가 있었는데 마두로 대통령 체포 압송은 ‘침공’이 아니라며 배당금 지급을 거부해 논란이 됐다. 무엇보다 ‘피 묻은 배당금’이 죽음과 전쟁으로 돈을 벌어도 되느냐는 무거운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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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파멸적 위험’ AI 무기화 갈등

    요즘 전쟁에선 인공지능(AI) 기술이 승패를 가르는 핵심 자산이다. 방대한 위성사진과 소셜미디어, 드론 영상을 실시간 분석해 적군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정밀 타격 지점을 찾아내는 데 AI 기술이 활용된다. 저비용으로 살상력을 높이는 데 AI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킬러 로봇’과 같은 치명적 ‘자율살상무기’가 현실화하면 인류를 파멸적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AI 무기화는 윤리적 문제를 낳기 마련. 미국 정부와 앤스로픽이 AI의 군사적 사용 범위를 놓고 벌이는 갈등이 대표적이다. ▷앤스로픽은 ‘가장 안전한 AI’를 지향하지만 이 회사 챗봇 클로드는 군사용으로 각광받는다. 다양한 언어와 방언으로 된 문서, 첩보 보고, 작전 계획서를 이해하고 요약 비교하는 능력이 뛰어나 미 국방부 기밀 작전에 사용되는 유일한 AI 모델이다. 올해 초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생포 작전 때도 팔란티어와 함께 위성 정찰, 첩보 보고 등을 요약 분류해 지휘관의 질문에 빠르게 답하는 ‘AI 참모’ 역할을 했다고 한다. 클로드, 챗GPT, 제미나이의 3자 가상 전쟁에선 클로드가 8승 4패로 최고 승률을 올렸다는 영국 연구팀의 실험 결과도 나왔다. ▷클로드가 이번 이란 공습에도 활용됐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돌연 모든 연방 정부 기관에 클로드 사용을 6개월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클로드를 ‘합법적인 모든 용도’에 제한 없이 활용하게 해달라는 국방부 요구를 앤스로픽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군사작전 결정권은 대통령과 군에 있는데 민간 기업이 회사 정책을 군에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앤스로픽은 AI 기술이 인간의 개입 없는 완전 자율살상무기 체계에 활용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 정부 주도의 군사 기술 개발에 핵심 역할을 했던 실리콘밸리는 AI 기술에 관한 한 ‘반전(反戰)’ 정서가 강하다. 2018년엔 구글이 국방부의 AI 화상 인식 기술 개발에 참여한 사실이 알려져 비난이 쏟아지자 ‘살상용 AI는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발표하고 사업을 포기한 적이 있다. 그만큼 AI의 위력이 원자폭탄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를 써서 시행한 전쟁 실험에서는 21번의 전쟁 중 20번의 전쟁에서 핵무기를 쏴 충격을 줬다. AI가 핵을 공멸의 무기가 아닌 승리의 수단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이번 앤스로픽 사태를 두고 빅테크 기업들은 갑론을박 중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윤리적 제약 없이 AI 무기를 만들고 있는데 우리만 손 놓고 있을 순 없다”는 주장과 “AI가 인류 최고이자 최후의 발명품이 돼서는 안 된다”는 반박이 교차한다. 민간의 혁신 기술이 주력 전략 자산으로 동원되는 ‘기술 징집’의 시대에 그 통제 권한은 누가 가져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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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BTS 광화문 공연 D-1개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3월 21일 BTS 복귀 공연은 대중문화사를 새로 쓰는 빅 이벤트다. 한국의 심장부인 서울 광화문광장이 대형 콘서트장으로 변신해 아티스트의 무료 단독 공연이 펼쳐지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넷플릭스가 K팝 공연을 190개국에 생중계하는 것도 초유의 일. 미국 월가에선 슈퍼볼급 시청자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한다. 광화문 일대의 빌딩 외벽에 설치된 초대형 스크린에선 멤버들의 공연 관련 영상을 송출하며 색다른 도시 미학을 선보이게 된다. ▷예상되는 관객 규모부터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객석은 3만4000석 규모이나 광화문광장 무대부터 숭례문까지 모든 차로에 사람들이 가득 찰 경우 26만 명이 몰릴 것으로 추산된다. BTS가 세운 K팝 사상 최다인 ‘62회 공연에 206만 명’을 깨는 기록이다(2018∼2019년 ‘Love Yourself’ 투어). 넷플릭스 생중계 실시간 접속자 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라이브 이벤트 사상 최다 기록인 500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공연 시작 시간이 한국은 오후 8시, 미국 서부는 오전 4시다. ▷‘라이브 쇼의 제왕’인 해미시 해밀턴 감독(60)이 공연 연출을 맡는 것도 화제다. 지상 최대의 쇼로 불리는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쇼, 2012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 오스카상 그래미상 에미상 시상식을 두루 연출한 감독으로, 영국 출신인 그가 유서 깊은 공간에서 ‘아리랑’이라는 한국적 주제의 공연을 어떻게 표현해 낼지 주목된다. 특히 광화문에서 숭례문까지 1.2km에 달하는 야외 공연장의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 간 불일치를 어떻게 극복할지도 관심거리다. 소리는 빛보다 느리다. ▷안전과 교통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서울시와 경찰은 공연장을 밀집도에 따라 4개 구역으로 나누어 인파를 관리하고, 난동과 테러에 대비해 9개 경찰서의 13개 강력팀과 경찰특공대를 배치하기로 했다. 광화문역, 경복궁역, 시청역은 지하철이 무정차 통과하고 주무대인 세종대로뿐만 아니라 새문안로, 종로, 사직로, 율곡로 전반에 걸쳐 단계별 교통 통제가 이뤄질 예정이다. 인근 주민들과 결혼식 같은 행사가 예정된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도 과제다. ▷광화문광장은 역사적 변곡점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세종대로 사거리 주변에만 55만 명이 모여 응원전을 펼쳤다. 세계는 그 뜨거운 함성에 놀라고, 사건 사고 없이 청소까지 하고 돌아가는 깨끗한 마무리에 또 한 번 놀랐다. 올해는 BTS 복귀 공연에 힘입어 관광객 2000만 명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화문의 밤을 즐기고 가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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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폐섬유증 60대 환자의 스위스行

    폐섬유증을 앓고 있는 60대 남성이 10일 가족 몰래 조력사를 하기 위해 스위스로 가려다 인천공항에서 제지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 남성은 “아버지가 조력사를 위해 출국하려는 것 같다”는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그냥 여행 가는 것”이라는 거짓말로 돌려세웠으나 “유서 형식의 편지를 발견했다”는 가족의 두 번째 신고 전화를 받은 경찰이 항공기 이륙까지 늦춰가며 설득하자 출국을 포기했다. 남성을 태운 비행기가 이륙하기 15분 전이었다. ▷스위스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환자 스스로 약물을 투여해 사망하는 ‘조력 자살’을 외국인에게도 허용하는 유일한 나라다. 존엄한 죽음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조력사를 위한 스위스행에 대한 관심도 높다. 조력사를 선택한 사람들의 스위스 여정을 담은 책들이 여럿 출간됐고, 스위스 조력사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도 흥행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스위스의 4개 조력사 단체에 가입한 한국인이 300명이 넘는다. 가입한 사람들은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위안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스위스에서 조력사한 한국인은 10명 남짓으로 추정된다. 죽음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고, 결심했다 해도 가족을 설득해야 하며, 설득했다 해도 동행한 가족이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을 각오해야 한다. 남유하 작가는 말기 암 환자로 고통에 몸서리치는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인 스위스행에 동행했다. 한국에 돌아와 주민센터에 사망 신고를 하며 장소를 스위스로 적었더니 직원이 “안락사하셨느냐”고 물었고 엄마의 죽음에 대해 거짓말하기 싫어 “맞다”고 했지만 경찰에 신고당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해외에서도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조력사를 진행하는 것이 윤리적이냐는 논쟁이 제기되곤 한다. 지난해 10월엔 영국의 40대 남성이 가족에게 파리 여행을 간다고 속이고 스위스에 가서 조력사한 일이 있었다. 귀가하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다 뒤늦게 아들 통장에서 조력사 단체로 1만5000달러(약 2200만 원)가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한 어머니는 단체에 항의한 후에야 유해 발송 계획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는 조력사를 허용해 달라는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 중이다. 하반신이 마비된 회복 불능의 척수염 환자가 조력사를 하러 스위스로 가려다 간병을 맡아온 딸이 동행할 경우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마음에 걸려 청구한 사건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우려가 있다” “환자 생명을 구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의료 윤리에 배치된다”는 의견서를 냈다. 헌재가 “현대판 고려장이 될 것”이라는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마지막 인권으로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정할지 주목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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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아이스크림 하나 때문에 9세 초등생 사진 공개한 점주

    중장년 세대 중엔 어린 시절 학교 앞 가게에서 물건을 슬쩍하다 혼쭐난 경험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유년 시절 친구들과 콩 서리, 수박 서리하던 경험담을 털어놓는 유명인들도 있다. 대개는 “다신 하지 마라”는 훈계를 듣고 풀려나거나, 부모에게 먼저 들킨 경우 제 발로 찾아가 “잘못했다” 사과하고 용서받는 것으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자녀에게 서리 당한 집 일손을 돕게 하는 부모도 있었다. 아이들의 잘못을 교육의 기회로 삼을 줄 알았던 이들에게 얼마 전 600원짜리 아이스크림 미결제 사건을 놓고 벌어진 송사는 씁쓸하기만 하다. ▷사건은 2023년 4월 9세 어린이가 인천 무인매장에서 아이스크림을 계산하지 않고 들고 나가면서 시작됐다. 40대 가게 주인은 이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 캡처 사진을 ‘일주일 안에 연락 없으면 경찰에 신고한다’는 문구를 달아 가게 내부에 공개했다. 아이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지만 인근 주민들은 알아볼 수 있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이 부모는 가게 주인과 합의를 시도했으나 불발됐다. “절도”라는 가게 주인과 “단순 실수”라는 부모 주장이 엇갈렸다. ▷경찰은 아이가 어려 죄가 되지 않는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가게 주인이 그해 7월 아이 사진을 다시 가게에 붙이면서 사건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이 아버지가 사진을 떼자 가게 주인은 재물손괴죄로 고소하고, 부모는 가게 주인을 아동학대와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했다. 아이 아버지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가게 주인은 1심에선 무죄, 2심에선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아이를 알아볼 수 있는 사진과 절도를 암시하는 글을 같은 학교 학생들이 이용하는 매장에 게시한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아이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아이 부모는 아이가 실수로 계산을 안 하고 나온 건데 상습범으로 몰아붙여 화가 났다고 한다. 또 “검찰에서 가게 주인이 30만 원에 합의할 의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합의금을 목적으로 이 일을 벌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반면 가게 주인은 “합의금을 요구한 적 없다. 정식으로 사과만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렇더라도 아홉 살 아이 잘못을 쉽게 범죄로 규정하고 사진까지 공개하는 극단적 방법을 써야 했을까. ▷중장년 세대가 어린 시절 소소한 일탈을 웃으며 돌아볼 수 있는 이유는 동네 어른들의 따끔하되 너그러운 꾸지람에서 좋은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는 배려심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 사방에 CCTV 달아놓고 감시하고, 조금이라도 잘못하다 걸리면 아이 장래고 뭐고 무조건 범죄자로 낙인찍어 응징하고, 법 말고는 갈등을 조율할 줄 모르는 각박한 사회가 됐는지 6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로 벌어진 기막힌 송사에서 절감하게 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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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BTS ‘아리랑’에 들썩이는 세계

    군 복무를 마친 BTS 멤버 7인이 4년 만에 완전체로 복귀하는 월드투어 ‘아리랑’을 앞두고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K팝 가수 단일 투어로는 최대 규모가 될 아리랑 투어는 3월 서울을 시작으로 34개 도시에서 82회 공연이 예정돼 있는데 예매를 개시한 북미와 유럽에서 41번 열리는 공연이 전석 매진됐다. 소셜미디어에는 예매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50만 명 대기 중’이란 메시지에 좌절하고, 인터넷이 빠른 한국으로 ‘원정 티케팅 와서 성공했다’며 환호하는 영상들이 공유되고 있다. ▷이번 투어 티켓 가격은 한국 공연을 기준으로 19만8000∼26만4000원. 하지만 미국의 재판매 시장에선 스탠퍼드 스타디움 공연 표가 5700달러(약 82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곳에서의 단독 공연은 ‘콜드플레이’에 이어 BTS가 두 번째다. 멕시코는 15만 장을 놓고 110만 명이 몰려들어 암표 가격이 치솟고 ‘아미(ARMY)’들의 민심이 험악해지자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외교 서한을 보냈다. “BTS 공연을 늘리거나 스크린 상영을 허용해 달라.” ▷글로벌 팬덤인 아미들이 움직이면서 공연이 열리는 도시들의 항공권과 숙박 예약 사이트도 불이 났다. 서울행 여행 검색량이 전주 대비 155%, 6월 공연이 예정된 부산행 검색량은 2375% 폭증했다. 브라질도 공연이 예정된 상파울루행 장거리 버스표 검색량이 600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공연장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BTS세권’ 호텔들은 하루 60∼80달러이던 숙박료가 375달러로 뛴 곳도 있다. ▷빌보드는 BTS가 아리랑 투어로 10억 달러(약 1조4500억 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추산한다. BTS 공연이 열리는 곳마다 관객들이 먹고 자고 관광하는 데 돈을 쓰면서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BTS노믹스’ 효과는 이보다 훨씬 커서 ‘스위프트노믹스’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2023년 3월부터 21개월간 전 세계 51개 도시에서 149회 공연으로 거둔 경제 효과는 총 100억 달러였다. ▷BTS는 3월 20일 신곡 14곡이 담긴 정규 5집 ‘아리랑’을 발표하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첫 공연을 갖는다. 막내 정국(28)을 빼곤 모두 30 줄에 접어든 멤버들이 ‘기다림도 사랑이다’라는 표어로 ‘군(軍)백기’를 인내해온 아미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다. 광장의 수용 인원은 1만8000명이지만 무료 공연이어서 전 세계 아미들 20만 명이 몰려들 것으로 전망된다. 광장 주변의 대형 전광판에선 공연을 생중계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 겨우내 세계 곳곳에서 반목하던 사람들이 인종과 종교와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봄의 희망을 함께 노래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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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82세에 6번째 징역형 선고받은 장영자

    1980년대 사채업계 ‘큰손’ 장영자 씨(82)가 얼마 전 사기죄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사찰을 공동 명의로 인수하자’고 속여 지인 소개로 만난 피해자로부터 1억 원을 챙겼다고 한다. 1982년 단군 이래 최대 금융 사기였던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후 6번째 징역형이다. 형이 확정되면 전체 수감 기간이 35년으로 늘어난다. ▷장 씨는 5공 시대를 돌아볼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다. 사건은 시중에 파다한 소문에서 시작됐다. 이순자 여사의 측근인 미모의 여성이 서울 시내 특급호텔 한 층을 세내어 쓰면서 대형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장 씨는 이순자 여사의 작은아버지 이규광 씨 처제이고, 남편 이 씨는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이었다. 장 씨 부부를 통해 청와대가 비자금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자 청와대 민정팀 내사를 거쳐 검찰 수사가 시작됐고, “겨우 안정돼 가던 청와대와 나라 경제를 뿌리째 뒤흔들어 놓은”(이순자 자서전)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장 씨 부부는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에 접근해 현금을 빌려준 뒤 거액의 어음을 받아내고 이를 사채시장에서 할인해 챙긴 현금으로 다른 회사에 같은 수법으로 사기 쳐 돈을 불렸다. 피해액이 6400억 원대로 당시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2%, 정부 예산의 10% 수준이었다. 철강업계 2위 일신제강과 도급 순위 8위 공영토건을 비롯해 여러 회사가 부도났고, 이규광 씨를 포함해 30명 넘게 구속됐다. 정부는 민심 수습을 위해 총리를 비롯한 5공 실세 19명을 교체했다. 그러고도 장 씨는 당당했다. “경제는 유통이다. 날 풀어주면 막힌 돈을 유통시킬 자신 있다.” ▷5공 청산 후로도 장 씨는 출소와 재범을 되풀이했다. 1차부터 6차 사건까지 법원이 인정한 피해액만 6891억 원이다. 장 씨는 왜 멈추지 않는 걸까. 사기는 피해자가 속아 넘어가야 완성되는 범죄여서 사기꾼 입장에선 ‘속는 사람이 나쁘다’고 범죄를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어 재범률이 높다. 특히 장 씨처럼 ‘큰 건’을 성공시켜 본 사람은 그 쾌감이 워낙 커 평범한 삶은 무료해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이철희·장영자 사건은 피해자에겐 악몽이고 정권에도 치명타였지만 돈도 가족도 없고 세금 체납액만 21억 원인 장 씨에겐 그 시절이 화양연화였을지 모른다. 각별한 인맥과 ‘고위층 구권 화폐 비자금’ 같은 거짓말을 흘려 쉽게 돈뭉치를 만들 수 있었고, 당시 서울 시내 20평대 아파트를 사고도 남는 1100만 원을 하루 생활비로 쓰고 외제차 5대를 굴렸다. 지금은 사기 수법도 첨단화하고 있지만 장 씨는 여전히 어음이나 위조 수표 방식을 고수하며 화려했던 ‘큰손의 추억’에 갇혀 사는 듯하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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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잘난 韓, 못난 尹, 이상한 張

    없는 집구석보다 있는 집안 싸움이 시끄러운 법이다. 걸려 있는 게 많아서다. 그런데 입법과 행정 권력을 모두 쥔 거대 여당의 내전보다 법안 하나 통과시킬 힘도 없는 국민의힘 집안싸움이 더 요란하다. 누구 하나는 진짜 죽어 나갈 것 같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여당의 내전은 ‘명청 대전’이라 부른다. 국힘의 내전은 ‘장한 전쟁’이자 ‘윤한 전쟁’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66), 한동훈 전 대표(53), 장동혁 현 대표(57) 사이에서 벌어지는 물고 물리는 난투극은 보물 지도를 놓고 서로 총질하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캐릭터에 맞게 고쳐 부른다면 ‘잘난 놈, 못난 놈, 이상한 놈’ 정도가 되겠다. 먼저 ‘못난 놈’ 윤석열이다. 자폭 계엄으로도 모자라 그 책임을 죄다 아랫사람들에게 돌림으로써 마지막 구명줄인 훗날 사면을 위한 동정 여론 조성도 못 하는 못난 사람이다. ‘잘난 놈’은 한동훈이다. 수사면 수사, 말싸움이면 말싸움, 훈훈한 외모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으나 치명적인 약점이 품을 줄 모르는 성품이다. 교수라면 한동훈에게 A학점은 줘도 딸은 주지 않을 것 같다. ‘이상한 놈’은 장동혁이다. 온건 보수인 줄 알았는데 국힘의 극우화를 선동하고 여당 독주를 막겠다면서 여당 좋은 일만 시키는, 못난 듯 이상한 사람이다. 원래 한동훈은 윤석열에게 의리남이었다. 윤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로 좌천된 후 한동훈만 같이 산책하고 케이크 나눠 먹으며 윤을 챙겼다고 한다. 윤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정치를 하려면 지금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 사람도 한이었다(‘실록 윤석열 시대’). 윤은 대통령이 된 후 한을 법무부 장관에 깜짝 발탁해 공직자 인사 검증 권한까지 몰아주며 2인자 자리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둘 사이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윤에게 한은 “총으로 쏴서라도” 없애고 싶은 죽일 놈이 됐다. 각별했던 사이일수록 한번 틀어지면 끝도 없이 어긋나는 법이다. 윤과 한이 계엄과 탄핵으로 실권한 틈을 타 당권을 잡은 이가 장동혁인데 그를 발탁한 사람이 한이다. 한은 비대위원장 시절 3선 이상이 맡던 사무총장 자리에 보궐선거로 배지를 단 0.5선 장을 앉히면서 그의 정치적 체급을 높여줬다. 둘은 윤의 탄핵에 관한 견해차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장은 한더러 “윤의 배신자”라 하고, 친한계는 장을 “한의 배신자”라 한다. 장의 윤리위원회가 ‘당원 게시판’ 문제로 한을 제명하자 여당 의원은 이런 촌평을 남겼다. “윤석열의 사형 구형을 듣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한동훈이 죽어 있었다.” 셋은 어쩌다 깐부에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걸까. 정책이나 정치적 노선에 관한 견해차로는 이렇게까지 감정의 골이 깊게 패지 않는다. 내란 특검에 따르면 윤은 한의 후임인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게 ‘도이치 수사는 불법임에도 사악한 한동훈이 2년째 끌고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친윤계는 “윤이 한을 업어 키우다시피 했는데 배은망덕하다”고 하고, 한은 “개똥 같은 소리”라고 한다. 장과 한의 결별엔 한의 페북 게시글이 결정적이었다. 장이 당 대표 선거에 나가자 한은 “최악(장동혁)을 피하게 해달라”며 김문수 편을 들었다. 요즘 양쪽 진영은 “한동훈은 면장도 못할 사람” “장동혁은 내 스태프였다”는 말을 놓고 입씨름 중이다. 결국 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서울대 법조인 출신 정치 초보들이 사감(私感)에 빠져 공사(公事)를 그르치는 바람에 보수당은 총선에 대패하고, 정권 내주고, 이젠 지방 권력까지 내줄 처지가 됐다. 한동훈으로선 싸잡아 비난받는 게 억울할 것이다. 윤에게 드물게 직언한 소신파, 계엄을 앞장서 막아낸 사람이 누군가. 한은 내용도 절차도 하자투성이인 불의한 ‘당게 제명’의 피해자 아닌가. 모두 맞는 말이나 한동훈 스스로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그래서 주인공인 ‘좋은 놈’이 못 되는 것이다. 윤이 계엄으로 탄핵당하자 한은 계엄을 막아낸 무용담을 책으로 내고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다. 그때 윤 정부의 2인자로서 책임지고 물러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러고 보니 보수엔 한동훈만 한 사람이 없다’는 여론의 추대로 기회를 잡지 않았을까. 문제 될 것 없는 당게 사건을 대형 사태로 키우기까지 한의 무오류에 대한 강박과 오만의 책임은 없나. 한동훈 최종 징계 결정을 앞두고 당내 명망가들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하나가 돼 보수 재건의 길을 찾자”고 호소하지만 당도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는 회복 불능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 종군기자로서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목격했던 생텍쥐페리가 썼듯 “내전은 전쟁이 아니라 병”이나 양쪽 다 이길 궁리만 하지 치유할 마음은 없어 보인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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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템플스테이 지난해 35만 명

    요즘 가장 ‘힙’한 종교는 불교다. 전국의 유명 사찰을 돌며 진행하는 짝짓기 프로그램 ‘나는 절로’에 참가하려면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매년 열리는 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극락도 락(Rock)’ 같은 재치 있는 슬로건 덕에 성황을 이룬다. 빵과 소스까지 식물성 식재료만 쓰는 ‘극락 버거’ ‘왕생 핫도그’는 채식주의자는 물론이고 육식을 즐기는 이들에게도 화제다. 절에서 하룻밤 지내며 수행 문화를 체험하는 템플스테이에 지난해 역대 최대 인원이 몰려든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전국 158개 사찰에서 진행된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35만 명. 템플스테이는 2002년 월드컵 때 외국인들의 숙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는데 K팝 스타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체험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체험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까지 누적 참가자가 418만 명이고, 이 중 세계 200여 개국에서 온 외국인 참가자가 59만3000명이 넘는다. 경북 경주 함월산 중턱의 골굴사와 서울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금선사는 외국인 참가자가 훨씬 많다. ▷한국은 선불교 전통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다. 맑은 공기와 칠흑 같은 어둠, 새벽 예불을 알리는 청량한 목탁 소리까지 빛과 소음이 차단된 산사에서의 하룻밤은 경이로운 체험을 선사한다. BTS 멤버 RM은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 절로 간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고 했고, 미국 미슐랭 3스타 셰프인 에릭 리퍼트는 불교의 식사 의례인 발우공양을 경험한 뒤 “인내와 겸손,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듬뿍 담겼다”고 썼다. ▷요즘 템플스테이 인기몰이의 일등 공신은 ‘나는 절로’다. 코로나를 겪으며 대면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청춘남녀를 위해 2023년 11월 시작했는데, ‘솔로’인 스님들이 솔로 탈출을 돕는다는 설정 자체가 화제를 불러 모았다. 회당 20∼30명의 남녀가 참가하고 이 중 절반이 커플이 돼 절을 떠난다. 지난해 9월엔 결혼 1호 커플이 탄생했다. 사찰이 주는 진중함과 신뢰감에 서로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기 때문에 만남의 질이 높고 커플 성사율도 높다고 한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다양하다. 누구는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하고, 누구는 평생의 인연을 찾으러 간다. 사찰음식을 통해 식재료에 대한 존중을 배우기 위해, 소고기 없이도 소고기 맛을 내는 화엄 버거를 먹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찰의 개방성과 유연함이 기독교, 가톨릭, 이슬람 교도들까지 고요한 산사를 찾고 비움의 미학을 얻어 사찰 문을 나서는 비결일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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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가짜 금 주의보

    지난해 5월 국제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납 원자핵을 가속 충돌시키는 실험 도중 납이 금 원자핵으로 변했다는 내용이었다. 결론적으로 금 원자핵은 워낙 불안정해 생성되자마자 부서져 사라졌고, 금 100만분의 1g를 얻으려면 거대강입자충돌기 전기료로만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로써 연금술은 사실상 불가능한 기술임이 판명났지만 사기꾼 ‘연금술사’의 가짜 금 만드는 기술은 날로 정교해지고 있다. ▷최근 금값이 치솟는 가운데 한국주얼리산업단체총연합회가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 일대에 ‘함량 미달 금 척결을 위해 모두 나서 주세요’라는 제목의 긴급 담화문을 게시했다. 종로는 전국 귀금속 제조 업체의 40%가 모여 있는 곳. 연합회는 지난해 9월 9%의 이물질을 섞은 도매용 가짜 금이 유통된 사실을 확인했다. 금 1kg을 기준으로 최소 2000만 원 상당의 순금이 빼돌려진 셈이다. 가짜 금은 은이나 주석을 이용해 만드는데 요즘은 금과 성질이 비슷한 텅스텐에 두껍게 도금해 적발하기 어렵다고 한다. ▷가짜 금을 감별하는 대표적 방법이 비중을 측정하는 것이다. 금은 밀도가 높아 같은 부피의 다른 금속보다 무겁다.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한 사기꾼 세공사의 금관이 은을 섞어 만든 가짜임을 증명할 때도 이 원리를 이용했다. 왕관과 같은 무게의 순금을 물에 넣었는데 밀어내는 물의 양이 달랐던 것. 그런데 텅스텐은 밀도(cm³당 19.25g)가 금(cm³당 19.3g)과 거의 같아서 레이저 같은 비파괴 검사로는 감별이 불가능하다. 확실하게 하려면 녹여보는 수밖에 없다. 순금은 녹는 점이 1064도, 텅스텐은 3422도여서 금은 녹아도 텅스텐은 남는다. ▷금값이 오를 때마다 가짜 금 주의보가 발령됐지만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이 등장한 후로는 가짜 금 유통이 더욱 쉬워졌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는 가짜 금반지를 샀다가 반품도 못 했다는 후기들이 올라온다. ‘포 나인(99.99%)’ 순금을 할인 판매하기에 품질 보증서만 믿고 샀는데, 하도 가벼워 감정을 의뢰한 결과 금 함량이 2%밖에 안 되는 도금 반지였다는 식이다. 온라인 경매나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시세보다 싸게 나온 금을 샀다가 피해를 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순금은 자석에 붙지 않고, 물렁해서 깨물면 자국이 남는다. 금 제품을 사진으로 찍거나 바닥에 떨어뜨려 나는 소리를 이용해 진짜 금인지 판별해 주는 앱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레이저를 쏘고 엑스레이를 찍어도 못 하는 감별을 일반인이 할 수는 없다. 믿을 만한 업체를 이용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환불 절차가 명확한지 확인하며, 거래 기록을 남겨둬야 한다. 서양의 오래된 속담대로 반짝인다고 해서 다 금은 아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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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생리대가 아닌 집값·환율 잡아야”

    지금껏 이런 대통령 업무보고는 없었다. 2주간의 업무보고를 생방송으로 진행한 것도 처음이고, 업무보고 영상들이 ‘대통령, 심각한 표정으로 긴급 지시’ 같은 쇼츠로 제작돼 온라인 공론장을 주도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김민석 총리는 “이재명 대통령이 새로운 장르를 하나 만드셨다. 넷플릭스보다 재미나는 잼플릭스”라고 했다. 듣고 보니 잼플릭스엔 대중문화의 고전적 흥행 요소가 곳곳에 들어 있다. 기초와 광역 단체장, 국회의원을 두루 거친 ‘행정 천재’가, 19부 5처 18청 7위원회 등 228개 공공기관을 ‘도장깨기’ 하듯 돌면서, 무사안일에 빠진 철밥통들을 흔들어 깨워 함께 성장한다는 서사부터 그렇다. 예측 불가의 대통령 질문에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남는 전개는 ‘오징어 게임’ 같은 긴장감을 준다. 답변이 부실한 기관장은 “써준 것만 읽는다” “도둑놈 심보”라며 공개 모욕을 당했는데 그 수위가 아침 드라마의 맵디매운 ‘김치 싸다구’ 수준이다. 생방송 업무보고의 흥행으로 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커졌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갤럽과 리얼미터의 이달 3주 차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 반등은 없었다. 최근 3주간 한국갤럽의 대통령 지지율은 62%-56%-55%로 2주 연속 하락세다. 리얼미터는 54.9%-54.3%-53.4%다. 두 조사기관 모두 생중계 업무보고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경제 불확실성과 특정 기관장 공개 질책이 지지율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했다.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대통령 부정 평가 이유 1위는 경제와 민생이다. 요즘 이런저런 모임에 가면 대화가 집값에서 시작해 환율로 끝난다. 그런데 새해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이번 업무보고는 탈모에서 시작해 생리대로 끝난 느낌이다. 이 대통령은 “젊은 사람들이 보험료만 내고 혜택을 못 받는다”며 탈모약 건강보험 지원 검토를 지시했다. 취업이 안 돼 자존감이 바닥나고 뛰는 월세 내느라 죽을 지경인데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는 말이 와닿겠나. 이 대통령이 “국산 생리대 가격이 비싸다”며 실태 파악을 지시한 날엔 친명 여성 커뮤니티도 들썩였다. “생리대값 안 내려도 되니 집값과 환율을 잡아달라.”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부정 평가 이유 2위가 도덕성 문제다. 이 대통령은 “능력은 없는데 연줄로 버티는 경우”와 “부패한 이너서클”을 질타했다. 바른말도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역효과만 난다. 대통령의 질책을 듣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떠올린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실 비서관이 “훈식이 형” “현지 누나” 운운하며 대학 동문 출신을 공공기관도 아닌 민간 협회장 자리에 앉히려다 들키지 않았나. 대통령 사법연수원 동기로 북한 안보리 결의안도 몰라 망신당한 유엔대사는? 대통령의 변호사 출신으로 공직을 차지한 사람들은? “이 대통령은 민족의 축복”이란 아부 외엔 발탁 사유를 모르겠는 인사혁신처장은? 이 대통령은 이달 초 업무보고를 생방송으로 진행하겠다며 “국민 알권리 존중, 투명한 국정 운영 실현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강유정 대변인은 “CCTV를 늘 켜놓고 국민께 공개하고 감시받겠다는 뜻”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제대로 감시받겠다는 자신감과 의지는 평가할 만하지만 일방적 소통을 생중계한다고 국정 운영이 투명해지고 국민 알권리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올해 국정감사 기간 내내 야당 의원들이 묻고 물었어도 ‘핵심 실세’ 김현지 제1부속실장의 기본적인 이력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현 정부 들어 소통의 효용을 실감한 건 3일 외신 기자회견이었다. 한 기자가 “북한에 억류된 한국 국민들의 석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겠는가”라고 묻자 이 대통령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질문한 기자도 놀라고 듣는 국민도 놀랐다. 회견 다음 날 대통령실은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 현황을 공개하며 “조속한 남북 대화 재개 노력을 통해 해결해 나가겠다”고 했다. 정부가 제대로 일하는지 감시하고 국민에게 책임을 다하도록 견제하는 건 날카롭게 묻고 성실히 답하는 정부와 언론 간 양방향 소통에서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정부 내에선 벌써부터 잼플릭스 시즌 2 얘기가 나온다. 본편만 한 속편은 만들기 어렵다. 설사 흥행하더라도 시청률이 깡패인 넷플과 여론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국정은 같을 수가 없다. 신뢰받는 정부가 되려면 정부 감시와 견제가 본업인 국회와 언론에 설명의 의무부터 다해야 한다. 잼플릭스 제작은 선택이지만 이건 필수다. 국회와 언론을 불편해하며 일방적 홍보만 고집하다 탈선한 전임자의 불행을 잊지 않기 바란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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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돌고 돌아 일회용 컵 ‘따로 계산’

    정부가 일회용품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값을 따로 받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불편했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컵 따로 계산제’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컵 가격은 100∼200원이 될 전망이다. 시행 시기는 공청회 의견 수렴 후 결정한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제대로 시행도 못 해 보고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만큼 오락가락했던 정책도 드물 것이다. 코로나로 일회용 쓰레기가 급증하자 정부는 2020년 6월 일회용 컵 음료를 사면 보증금 300원을 낸 뒤 컵을 반환할 때 돌려받는 이 제도를 2년 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행 한 달을 남겨두고 준비 부족을 이유로 6개월 연기했다가, 6개월 후엔 세종과 제주에서만 우선 시행하기로 물러선 뒤, 2023년 11월 윤석열 정부가 소상공인 부담을 이유로 전국 확대 시행을 보류했다. 현재 시범 시행 중인 세종과 제주에선 74%까지 올랐던 컵 반환율이 55%로 떨어진 상태다. ▷이 제도가 표류한 이유는 부담은 크고 유인은 작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보증금 300원을 돌려받으려고 컵을 씻어 반납하는 걸 번거로워했다. 업주 입장에선 컵마다 반납 라벨 붙이고, 반납한 컵 보관했다 회수업체에 보내고, 보증금 내주는 게 불편하고 비용까지 드는 일이었다. 사실 이 제도는 2002년 처음 도입했다 2008년 폐지됐는데 그때도 ‘누가 보증금 50∼100원 받자고 귀찮게…’라는 저항이 컸다. 이미 실패했던 정책을 도입하면서 2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음에도 똑같은 이유로 실패한 셈이다. ▷역대 세 번째 일회용 컵 규제가 될 ‘따로 계산제’는 반납하는 불편함이 없다. 대신 소비자로선 가격 인상이 불만일 수 있다. 정부는 텀블러를 이용하면 일회용 컵값 100∼200원, 탄소중립포인트 300원, 매장 할인 500원 등 총 900∼10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와 함께 도입했다가 유야무야된 것이 플라스틱 빨대 매장 내 사용 금지다. 정부는 재질에 상관없이 빨대는 고객이 요청할 때만 제공하도록 규정을 고치기로 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일회용 컵 사용량은 102개다. 일회용 컵은 생산 단계부터 폐기까지 많은 자원을 쓰고 환경을 오염시킨다. 종이컵 안쪽 코팅 성분은 뜨거운 음료가 닿으면 미세 플라스틱이 나와 인체에도 좋을 것이 없다. 유럽은 매장 내 사용은 물론이고 배달 시에도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는 추세다. 하지만 앞선 두 번의 실패에서 보듯 수용성 고려 없이 명분만으론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환경 정책이다. 일회용품 규제하자며 ‘일회용’ 대책만 내놓는 일은 그만 봤으면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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