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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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진영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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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4~2026-06-23
칼럼100%
  • [횡설수설/이진영]반려동물 화장시설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은 키우는 사람에겐 가족과 다름없다. 같이 산책하고 맛집 가고, 혼자 두고 외출할 땐 냉난방 장치 가동을 예약해 둔다. 사료비와 간식비에 건강보조식품까지 월 양육비로 19만4000원을 쓰고, 정기 검진과 각종 치료비로 연간 51만 원을 지출한다(2025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 반려동물을 ‘아들’ ‘딸’이라 부르거나, 손주들에게 ‘이모’나 ‘삼촌’으로 부르라 하는 집도 있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반려동물의 장례 의식도 날로 정교해지는 추세다. ▷반려동물의 사체를 처리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종량제 봉투에 담아 생활폐기물로 버리거나, 동물병원에 맡겨 의료폐기물로 처리하거나, 화장시설에서 화장하는 방법이다. 매장은 환경오염과 감염병 위험이 있어 불법이다. 생전에 물고 빨던 반려동물을 ‘폐기물’로 처리하기는 어려운 법. 대개는 화장을 택한다. 두 집 걸러 한 집꼴로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반려동물을 화장할 수 있는 장묘시설도 86곳으로 늘었다. 인체 장묘시설 62곳보다 많다. ▷사람의 장례는 3일장에서 무빈소 장례, 가족장 등으로 간소화하고 있지만 반려동물 장례는 고급화 추세다.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수의를 골라 안치, 염습 및 입관, 발인 순의 의례를 거친 뒤 개별 추모실에서 작별 인사를 나눈다. 이후 화장시설로 이동해 화장한 뒤 수습한 유골을 함에 담아 집에 보관하거나, 봉안당에 안치하거나, 수목장을 한다. 유골을 가공해 ‘메모리얼 스톤’으로 간직하는 집도 있다. 반려동물 장례비는 18만∼299만 원으로 사람과 별 차이가 없다. ▷사람 화장시설처럼 동물 화장시설도 부족하다. 화장시설의 약 절반은 수도권에 몰려 있어 비수도권에서는 ‘원정 장례’를 가기도 한다. 화장시설은 대표적인 혐오 시설이니 신설도 여의치가 않다. 특히 반려동물 화장시설의 경우 “개 화장장까지 감수해야 하느냐”는 반감이 더해져 자치단체는 허가를 잘 내주지 않는다. 경남 산청군과 제주시처럼 반려동물 화장장 허가를 거부했다가 소송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대안으로 이동식 동물 화장시설 서비스가 올 연말 합법화된다. ▷‘개가 가진 유일한 단점은 인간보다 수명이 짧다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반려인들은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힘들어한다. 반려동물을 앞서 보낸 반려가구의 16%는 상실감과 우울감이 1년 이상 지속되는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다. 인간관계는 다양한 감정이 끼어들고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지만, 반려동물은 조건 없는 사랑만 주고 일상의 대부분을 공유하는 사이여서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반려인들은 이별의 의례가 안정적으로 보장될 때 일상 회복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동물 가지고 왜 그리 유난이냐”는 이들도 있지만 반려인이 1500만 명이 넘는 세상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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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스위스의 ‘인구 1000만 상한’ 국민투표

    스위스는 이민의 문턱이 매우 높은 나라다. 난민 수용이나 저숙련 노동자 유입에 관대한 이웃 나라들과 달리 스위스는 유럽연합(EU) 시민이 아닌 제3국적자의 경우 대체 불가의 고급 인력이 아니면 취업 비자를 받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외국인을 채용하려는 기업은 스위스와 EU 안에선 뽑을 인재가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것도 연간 쿼터 내에서만 채용할 수 있다. 그런 스위스에서 이민 억제를 위해 인구 상한을 두는 극단적인 제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져 화제다. ▷우파 성향의 스위스국민당이 주도한 이 발의안은 910만 명인 스위스 인구를 2050년까지 1000만 명이 넘지 않도록 난민 수용과 이민을 통제하자는 내용이다. 스위스는 외국인 비중이 28%인데 이민자 증가로 2040년대 초엔 외국인 비율이 더 늘고 인구는 10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민자가 스위스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집값을 끌어올리며, 의료 교육 교통 시스템에 부담을 준다”는 것이 이 안건에 찬성하는 쪽 주장이다. ▷정부와 재계는 의료 관광 금융 등 산업 전반이 이민자 없인 돌아가지 않는다며 부결을 독려했다. 스위스는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여서 숙련된 노동력과 납세자 확보는 더욱 절실하다. 스위스는 자국 제품의 절반 이상을 EU로 수출하는데 EU 시민의 이동을 제한할 경우 EU 시장 접근이 어려워진다. 결국 이민 규제 강화는 스위스판 ‘브렉시트’로 자해적 행위라는 주장이 도시에서 먹히면서 농촌 지역의 압도적 찬성 여론에도 이 안건은 55 대 45로 부결됐다. ▷이번 국민투표 소식에 유럽은 초긴장 상태였다. 유럽 각국에선 반(反)이민 정책을 내건 우경화 세력들이 지지세를 넓혀 가고 있는데 스위스에서 인구 상한제가 채택됐다면 다른 나라에선 이보다 더 과격한 고립주의적인 정책들이 도미노 격으로 제기됐을 것이다. EU 시민에 대한 이민 규제 강화는 ‘단일 시장’과 ‘이동의 자유’라는 EU 체제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기도 하다. ▷스위스에서는 10만 명이 서명하면 국민투표가 가능하다. 연간 약 4차례 국민투표를 실시하는데 이민 규제는 2000년대 들어 국민투표 단골 의제로 가결과 부결을 오가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트럼프 관세로 미국과 틀어진 스위스가 EU와의 관계를 해칠 정책을 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스위스는 이민자 문제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덜한 편이다. 국민투표를 통해 빗장을 열고 닫으며 반이민 정서와 경제적 필요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온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라에서 인구 상한 제한이라는 전례 없는 안건에 45%가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은 이민 문제가 유럽의 화약고가 돼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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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李의 조작 기소 ‘오물’ 털어내기

    이재명 대통령의 유체이탈식 화법은 들을 때마다 놀랍다.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선 4대 국정 목표로 ‘규범과 규칙이 지켜지는 정상사회’를 제시했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 관행을 지적하는 대목에선 “모든 영역에서 금도라고 하는 게 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공소 취소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특검이 낫지 않나’라고 답한 직후였다. 진보 시민단체들도 위헌이라며 반대하는 조작 기소 특검법은 규범과 규칙에 맞는 일인가, 선을 넘는 일인가.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기대치 이하의 성적표를 받았는데 실점 요인으로 ‘스벅 사태’ 과잉 대응과 조작 기소 특검법 등이 꼽힌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조작 기소 특검법이 국민의힘을 살렸다”고 했다. 민주당이 재판 중인 이 대통령의 사건 전체를 가져다가 조작 기소 여부를 따져본 뒤 공소 취소까지 할 수 있게 하는 특검법을 4월 말 발의했다가 보류한 이유도 ‘이 대통령 재판 뭉개기용’이라는 여론에 15 대 1 압승론이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표심이 무서워 미뤄뒀던 입법을 선거가 끝났다고 추진하겠다는 것이다.이 대통령은 진상 규명 방법으로 ‘내가 지휘하는 검찰과 경찰 합수본을 구성해 하는 게 정상’이지만 “국민 입장이나 야당 입장에서는 중립적인 특검이 낫지 않나”라며 특검에 무게를 실었다. 뭔가 양보하는 듯한 발언이지만 민주당 법안엔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하도록 돼 있어 중립적이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애초에 여당이 특검 카드를 꺼내든 것도 검찰의 공소 취소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었을 것이다.공소 취소는 로스쿨 시험 문제에 출제된 적이 없어 고시생들도 건너뛰는 제도라고 한다. 그만큼 드문 일이어서 어지간한 조작 증거가 나오기 전엔 검사가 공소를 취소할 일은 없다는 뜻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 방법도 있지만 훗날 직권남용이든 법왜곡죄든 법적 책임을 각오해야 한다. 정 장관은 올 3월 공소 취소 거래설이 제기됐을 때 “공소 취소를 지휘할 생각 자체가 없다”고 했었다.정 장관이 못 하는 공소 취소를 특검은 해줄까. ‘뒤탈’을 걱정해야 하는 건 특검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비해 조작 기소 특검법에 넣어둔 독소조항이 ‘공소 유지 변호사’ 조항이다. 공소 유지 변호사는 특검이 위임하면 특검과 같은 권한으로 공소 취소를 할 수 있다. 특검은 법조 경력 15년 이상, 특검보는 7년 이상인데 공소 유지 변호사는 이런 자격 요건도 없다. 공소 취소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대폭 늘려놓으면 특검이 발 빼더라도 누구 하나쯤은 나서서 총대 메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내린 결정이 어떤 권위를 가질 수 있겠나.한국갤럽이 지난달 중순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공소 취소에 반대하는 여론(44%)이 찬성하는 여론(27%)보다 훨씬 높았다. 여당은 특히 2030 세대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에게 표를 몰아준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 대통령이 생리대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탈모약에 건강보험 적용 검토를 지시해 가며 살뜰히 챙겼지만 여당에 대한 젊은 표심은 싸늘하다. 취업과 자산 형성의 기회에서 소외된 채 미래 부양 부담만 떠안게 돼 반감이 크다고 한다. 요즘 서울 잠실을 뜨겁게 달구는 참정권 운동과 대학가의 시국선언은 조용히 끓던 잃어버린 세대의 분노가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맞아 터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이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왜 암담한 미래만으로도 버거운데 기본권마저 보장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권리 침해나 불공정엔 누구보다 예민한 학생인권조례 세대다. 뜻밖의 시위로 선관위 개혁을 이끌어 내며 정치적 효능감을 맛본 이들이 특정인만을 위한 조작 기소 특검법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까.이 대통령은 경기도지사 시절이던 2020년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한 허위 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판결을 받은 뒤 ‘오물’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그는 “수없이 제기된 문제들 다 근거가 없다”며 “다만 오물을 뒤집어쓴 상태이기 때문에 털어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의 8개 사건 12개 혐의를 수사한 검사가 연인원 150명이 넘는다고 하니 억울한 일도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이 모든 오물은 법과 상식으로 털어낼 수밖에 없다. 조작 기소의 경우 수사 검사의 공소 취하 절차를 밟거나 퇴임 후 재판을 통해 털어내는 것이 법과 상식이다. 그러지 않고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려 꼼수를 쓴다면 털어내기 어려운 새로운 허물을 뒤집어쓰게 된다. 선을 넘는 일이자, ‘규범과 규칙이 지켜지는 정상 사회’와도 맞지 않는 일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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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AI 시대, 자소서보다 면접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서류심사의 1차 관문인 자기소개서다. 취업 시즌이 되면 지원하는 회사가 요구하는 양식에 맞춰 수십 장씩 자소서, 혹은 ‘자소설’을 써야 한다. 취업에 성공한 합격 자소서를 1만∼2만 원에 사서 참고하거나, 건당 10만∼20만 원을 주고 첨삭 지도를 받는다. 하지만 자소서 공포증도 옛말이 돼가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자소서를 써내는 지원자가 늘면서 자소서 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안 보는 기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AI의 등장으로 기업들의 입사 전형이 바뀌고 있는데, AI가 잘하는 문서 작성 능력의 중요도는 낮아지고 실제 문제 해결 능력이나 사고력을 검증하는 면접과 동아리 활동 스펙은 중요해졌다. 컴퓨터활용능력과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시험 응시자가 줄어든 이유다. 영어도 문법과 독해 위주의 토익 점수보다는 말하기 시험 성적을 요구한다. 영문 서류 작성은 AI에 맡기면 되지만 해외 바이어와 원활하게 소통하는 회화 실력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취준생 입장에선 자격증 같은 정량 평가보다 정성 평가가 더 부담이 된다. 취업에 유리한 동아리들의 경우 결석하면 벌금을 물리거나 결석일수가 누적되면 퇴출시킬 정도로 내부 규율이 엄격해졌다고 한다. 특히 직무면접과 인성면접은 평가 기준이 모호한 탓에 ‘면까몰’, 즉 ‘면접은 (당락 여부를) 까볼 때까지 모른다’는 말들을 하며 부담스러워한다. 또래 취준생들과의 면접 스터디만으론 불안한 취준생들은 회당 20만∼40만 원을 주고 면접 컨설팅을 받는다.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취업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은 날로 늘고 있다. 취업 컨설팅 비용, 학원이나 온라인 강의 수강료, 카페나 스터디룸 이용료 등 1인당 연간 취업 사교육비가 455만 원이다(잡코리아 2025년 조사). 4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배로 늘었다. 요즘은 원하는 기업에 가려고 재수 삼수를 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무전무업(無錢無業)’, 돈이 없으면 취업도 안 되는 세상이고, ‘엄빠은행’, 즉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못 받는 흙수저가 대기업에 입사하는 건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돼가고 있다는 자조가 나온다. ▷취업률이 100%에 가까운 일본 대학생들은 ‘내정 블루(우울증)’를 앓는다고 한다. 기업들의 입도선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르게는 신입생 때부터 취업이 ‘내정’된 학생들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안감과 회사원이 된다는 중압감을 느끼는 현상이라고 한다. 한국 취준생들로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다. 20대 고용률이 58.4%인 한국 젊은이들은 ‘존재통’, 존재하는 것만으로 아픔을 느낀다. 취업하면 절로 나을 병인데, 존재통이 성장통이 아니라 불치병이 될까 걱정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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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트럼프 생일날 백악관 격투기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생일을 국가적 행사로 기념하는 이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유일하다. 독립 전쟁의 영웅인 워싱턴의 생일(2월 22일)이 되면 낮엔 축포를 쏘고 밤엔 성대한 무도회를 열었다. 그의 사후엔 생일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됐고, 지금은 2월 셋째 주 월요일로 옮겨 사흘 연휴를 쉰다. 공식 명칭은 ‘대통령의 날’로 바뀌었지만 몇몇 주에선 여전히 ‘워싱턴 탄생일’로 부른다. 이후 대통령들에게 생일은 개인적 기념일일 뿐인데 각자 성향에 따라 스타일이 다 달랐다. ▷농구광인 버락 오바마는 생일 주간에 대통령 휴양지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고교 동창들과 농구를 즐겼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소아마비 퇴치를 위한 기금 모금 무도회를 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45번째 생일에 할리우드 스타들을 초대해 민주당 모금 행사 겸 생일 파티를 했는데 매릴린 먼로의 축가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프레지던트’로 지금껏 회자되는 행사다. ▷팔순이나 구순을 맞는 대통령은 전현직 구분 없이 각별한 축하를 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 조종사로 참전했던 아버지 부시는 75세부터 5년 단위로 생일 기념 스카이다이빙을 했다. 특히 2014년 90번째 생일에는 파킨슨병으로 휠체어에 의지하는 몸으로 스카이다이빙에 성공해 박수를 받았다. 지미 카터가 2024년 100세 생일을 맞자 미국 전역에서 그가 퇴임 후 헌신했던 해비타트 사랑의 집짓기 운동 특별 행사가 펼쳐졌다. 조 바이든은 2022년 미 역사상 처음으로 백악관에서 팔순을 맞았지만 나이 문제가 부각될까 봐 조용한 브런치로 생일상을 대신했다. ▷초대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생일을 국가적 행사로 치른 이가 도널드 트럼프다. 지난해 6월 14일 79번째 생일에는 미 육군 창설 250주년 군사 열병식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생일과 미 육군 창설일이 같다. 1991년 걸프 전쟁 기념 열병식 이후 최대 규모의 열병식이 사실상 대통령 생일 축하쇼로 진행되는 동안 미국 전역에선 최대 규모의 반(反)트럼프 시위인 ‘노 킹스(No Kings)’ 시위가 펼쳐졌다. ▷올해 80세 생일엔 백악관 남쪽 잔디밭(사우스론)에서 종합격투기(UFC) 대회를 개최한다. 미 건국 250주년 기념행사라지만 행사일이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이 아니라 트럼프 생일이다. 총 8만5000장의 무료 관람권을 발행할 계획이며 주최 측이 댄다는 비용이 적게 잡아도 6000만 달러(약 900억 원)다. 로마 제국 쇠락기에 굶주린 민중의 분노를 피 튀는 검투사 경기로 달랬듯, 전쟁과 고물가로 흉흉한 민심을 수습하려는 ‘서커스 정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국가에선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트럼프다운 권력자의 팔순 잔치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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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창고형 약국

    온라인에는 제품이나 장소를 체험한 후 올리는 리뷰 콘텐츠가 많은데 최근엔 창고형 약국 리뷰들이 많이 올라온다. ‘가성비 약국템 총정리’나 ‘창고형 약국이 무조건 싸다는 착시’ 같은 것들이다. 창고형 약국은 대형마트처럼 널따란 공간에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등을 한데 진열해 놓아 사람들이 카트를 끌고 다니며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대형 약국을 말한다. 창고형 약국의 등장으로 약국이 의료 공간이 아닌 쇼핑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동네 약국은 소비자가 증상을 얘기하면 약사가 약을 선택해 꺼내 주지만 창고형 약국은 소비자가 약을 골라 가면 약사가 계산해 주는 구조다. 창고형 약국의 강점은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전문의약품 말고는 다 있다는 점. 감기약이나 소화제 같은 상비약부터 영양제, 화장품, 염색약, 반려동물용품까지 수천 종의 제품을 대량 매입을 통해 동네 약국보다 싸게 판다. ‘1+1’ 행사 상품들로 호객하고 소비기한이 임박한 제품은 특가로 내놓기도 한다. 지난해 5월 경기 성남시에 처음 들어선 이후 1년 만에 전국에 40개가 생겼다. ▷해외에선 대형 약국들이 대세다. 월마트나 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 안에 약국이 있고, 약과 생활용품을 함께 파는 드러그스토어도 많다. 미국 월그린, 영국 부츠, 일본의 마쓰모토 기요시 같은 체인형 드러그스토어는 인기 관광 코스다. 이와 달리 한국은 동네 약국 위주인데 이는 약사법의 ‘약사 1인 1약국’ 조항으로 체인화가 어렵고 2000년 의약 분업 이후 인근 병원의 처방전 조제만으로도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험하는 약사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약사들은 약을 필요에 따라 구매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가격 비교와 대량 구매 중심으로 바뀌면 의약품 오남용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약국이 대형화하면 복약 지도가 허술해질 위험도 있다. 창고형 약국 약사들이 소비자의 상담에 응하고, 계산할 땐 복약지도도 하지만 환자의 이력을 꿰고 있는 동네 약국을 대체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창고형 약국에 동네 약국들이 밀려나면 지역 보건 인프라 기능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는 창고형 약국을 규제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다. 드러그스토어 쇼핑의 즐거움을 체험한 해외 여행객들과 창고형 약국 덕에 약값 부담을 덜어낸 만성질환자들이 많아 약국의 대형화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동네 약국은 급할 때 가장 쉽게 의지할 수 있는 보건 의료 기관이다. 고령자가 많이 사는 지역에선 마을 사랑방처럼 심리적 안전망 역할도 한다. 좋은 약을 싸게 살 수 있게 하는 유통 혁신이 가장 가까이서 건강 지킴이 역할을 해 온 동네 약국의 소멸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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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정청래 장동혁 좋은 일 시킬까봐

    선거 해보나 마나 15 대 1이라더니 두서너 곳은 끝까지 가봐야 안다고 말들이 바뀌었다. 막바지 진영 결집이 일어난 데다 여당이 이재명 대통령 사건 관련 ‘조작 기소 특검법’을 발의하자 보수 유권자들이 투표할 명분을 얻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정원오-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좁혀졌고, 전재수-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와 김부겸-추경호 대구시장 후보 지지율도 붙었다 떨어졌다 유동적이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당층이 되레 늘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국지표조사 결과 무당층은 4월 둘째 주 30%에서 5월 첫째 주 조사 때 38%로 늘어났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무당층이 27%로 4년 전 선거 때보다 11%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온다. 지방선거는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이지만 실제론 중앙 정당 간 대리전에 가깝다. 이번엔 전국 14개 지역구에서 재보궐선거까지 함께 치러지다 보니 정당의 대표 슬로건 영향이 커졌다. 더불어민주당은 “반드시 승리해 내란의 싹까지 잘라내고 무너진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자”며 내란 세력 심판을 전면에 내세웠다. 국민의힘은 “공소 취소 특검법은 이 대통령 범죄 지우기를 넘어 독재로 가는 마지막 톨게이트”라며 독재를 저지하자고 한다. 아직까진 내란 심판도 독재 저지도 마뜩지 않다는 게 ‘무당층 38%’에 반영된 민심일 것이다. 여당의 내란 심판론에 대해선 아직도 내란 타령인가 싶지만 아직도 그게 먹히는 게 국힘의 처지다. ‘절윤 없이 선거는 하나 마나’란 당내 아우성에도 친윤 인사들을 대거 공천했다. 여당이 조작 기소 특검법 발의에 ‘오빠’와 ‘악수 후 손 털기’ 논란으로 수세에 몰리는가 싶었는데,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계엄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으로 반격의 힘을 확 빼놓았다. 진보층에 장 대표 사퇴 여부를 물었더니 ‘유지해야 한다’(44%)가 ‘사퇴해야 한다’(42.5%)는 여론보다 오차 범위 내에서 우세했다(미디어토마토 7일 발표). 장 대표가 있는 게 여당엔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어용 야당’처럼 견제 역할 못 하는 장 대표와 내란 잔당을 표로 심판해야 보수당이 정신 차리지 않을까. 그러자니 더욱 기고만장해질 여당이 두렵다. 제1야당 시절부터 탄핵안 발의를 30회 남발해 온 당이다. 집권 후엔 검찰청을 폐지하고 재판 소원제, 법왜곡죄, 대법관 증원법을 강행 처리했다. 여당은 ‘사법 개혁’ 3법이라 하지만 헌정 질서를 뒤흔들고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 無權有罪)’ 만드는 ‘사법 파괴’ 3법에 가깝다. 옛날 한 정치 세력은 선거로 집권해 합법적으로 혁명을 수행하고 있다며 “우리는 민주주의의 무기고(武器庫)에서 민주주의 무기로 무장하기 위해 의회에 적으로서 온 것”이라고 했었다. 민주당의 개혁을 내세운 입법 폭주를 보면 민주당 역시 국회에 그렇게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권력에 지방 권력까지 쥐여주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그렇다고 여당의 오만을 심판하자니 장 대표가 안 나가고 버틸까 그게 또 걱정이다. 올 3월 어정쩡한 ‘절윤 결의문’ 발표 후 당 지지율이 떨어지자 장 대표는 ‘절윤 했더니 지지율 떨어지지 않았느냐’고 여론조사 결과를 오독(誤讀)했다고 한다. 애초에 선거 예상치가 15 대 1이었으니 14 대 2, 13 대 3만 돼도 “당 대표 리더십 덕”이라 또 우길 것이다. 여당의 독재를 견제하자니 장 대표가 웃고, 국힘의 내란 세력을 심판하자니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웃을까 걱정인 기막힌 딜레마 상황이다. 내란 심판과 독재 저지 중 어느 쪽이 급하고 중요할까. 여당의 폭주부터 막아내는 것이 우선일까, ‘윤 어게인’과 절연하지 못하는 세력을 청산해 보수 재건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일까. 이쪽저쪽 다 싫다면 사표의 가능성을 각오하고 제3 정당의 후보를 찍는 방법이 있다.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의회 의원의 소속 정당을 달리해 찍는 교차 투표로 권력을 분산시킬 수도 있다. 지방선거는 관심도가 낮아 광역단체장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같은 당 후보로 줄줄이 찍는 ‘줄투표’ 성향이 강한데, 단체장과 의원들의 정당 쏠림이 없도록 투표해 지방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꾀하는 방법이다. 여당의 폭주와 국힘의 무능 모두 불신임한다는 뜻에서 아예 투표를 거부하면 어떨까. 투표란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일이다. 기권하더라도 차악마저 선택하지 않은 데 따른 결과는 피할 수 없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는 반전주의자들을 겨냥해 “여러분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전쟁은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다”고 했었다. 전쟁만 그렇겠나. 여러분은 선거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선거는 여러분에게 관심이 많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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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보이스피싱에도 위장수사 허용되나

    신세계, 무간도, 미스 에이전트. 한국 홍콩 미국으로 배경은 다르지만 모두 범죄조직에 잠입한 ‘언더커버’ 수사 요원들의 활약을 다룬 영화들이다. 한국의 경우 영화와 달리 위장수사는 특정 범죄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조주빈 일당의 ‘n번방’ 사건을 계기로 2021년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해 처음 위장수사가 허용됐고, 이후 성인 디지털 성범죄(2024년)와 마약 수사(올 4월)로 확대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야 의원들이 조직범죄도 위장수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6일 발의한다. ▷위장수사는 n번방 사건처럼 폐쇄적이고 비대면에 점조직 형태로 이뤄져 압수수색이나 체포 같은 전통적 수사 방식으로는 증거 확보가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이번에 발의되는 법안도 보이스피싱, 로맨스스캠, 투자 리딩방, 기획부동산 사기처럼 내부자가 아니면 정보 접근이 어렵고, 조직 말단을 잡아도 윗선까지 검거하기 어려운 조직범죄가 대상이다. 수사관이 조직원이나 피해자로 위장해 계약이나 거래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증거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위장수사의 효용은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서 입증된 바 있다. 2021년 9월 제도 도입 이후 4년간 위장수사 765건으로 성범죄자 2171명을 붙잡았다. 범인이 개설한 텔레그램 대화방에 위조 신분증으로 가입해 증거를 모았다. 2024년엔 지인과 연예인을 대상으로 가짜 영상물 3만 개를 제작 유포한 ‘합사방(합성사진방)’ 운영자 등 238명을 검거했다. 위장수사 개시 3개월 만이었는데, n번방 때는 조주빈 검거까지 6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위장수사는 불법인 함정수사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범죄 의도가 있는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은 합법적 위장수사지만, 죄지을 생각이 없던 사람의 범죄를 유발하면 함정수사가 된다. 위장수사는 대상자의 모든 언행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어 기본권 침해 소지도 크다. 위장수사관은 범죄조직 내에서 신뢰를 얻기 위해 범죄에 가담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성범죄 조직에 잠입해 성착취물을 유포한다면, 마약조직에서 마약 거래를 돕는다면 정당한 수사 행위일까. ▷위장수사를 개별 법률로 허용하는 점도 개선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발의되는 조직사기특별법을 비롯해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성폭력범죄처벌법, 마약류 관리법 등으로 관련 규정이 흩어져 있다 보니 위장수사의 범위와 한계 등에 대한 일관된 운용이 어렵다. 위장수사가 필요한 범죄 유형이 생길 때마다 개별법을 고치거나 특별법을 만든다면 일관성 유지가 더 어렵고 형사특별법이 난립할 수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형사소송법, 영국은 수사권한규제법, 미국은 행정지침으로 규율한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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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문화예술계 ‘보은-코드인사’

    문화예술계는 보은 인사, 코드 인사가 특히 심한 분야다. 성과 측정이 상대적으로 어려워 ‘문화적 소양’이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오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역대 보은 인사 중에서도 ‘끝판왕’은 박근혜 정부 시절 79세로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된 코미디언 자니 윤이었다. 그는 대선 당시 대통령의 재외선거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인연으로 임명됐는데 “인사 자체가 코미디”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문화예술계 인사를 놓고 자니 윤 인사 못지않은 거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보은 인사에 대한 우려는 자칭 ‘뼛속까지 이재명’인 배우 이원종 씨가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지원하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면접 심사에서 후보 전원이 탈락해 없던 일이 됐지만 문화계가 받은 충격은 컸다. 이후 이재명 대선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모델 출신 배우 장동직 씨와 코미디언 서승만 씨가 유서 깊은 국립정동극장 이사장과 대표이사에 임명되자 문화계가 끓기 시작했다. 정동극장 대표는 스타 공연기획자인 홍사종, 국립발레단 단장을 지낸 최태지같이 내로라하는 문화계 인사들이 맡아 온 자리다. ▷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재단 이사장에 친여 성향 역사학자 전우용 씨,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에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를 임명한 것은 이쪽 분야의 끓는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세종학당재단 이사장은 한국어 교육 전문가들이 맡아 온 자리이고, 문화관광연구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중 유일한 국책 연구기관으로 박사급 연구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황 씨는 2021년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됐다가 보은 인사 논란에 사퇴한 적이 있다. ▷문화예술단체 65개와 개인 794명은 21일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전문성 없는 인사는 예술인에 대한 모욕”이라며 파행 인사의 책임 규명을 촉구했다. “인사가 전문성보다 인지도, 역량보다 권력과의 관계를 우선시하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 감독 자리에 강호동이나 서장훈을 앉히는 격”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날 행사를 제안한 단체는 진보 성향의 문화연대다. 이 단체의 공동대표를 지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문화체육비서관이다. ▷문화예술계 보은 및 코드 인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의 힘을 이용하려는 정치권과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예술계의 취약성이 빚어낸 나쁜 관행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 인사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고, 코드가 맞는 단체에 지원이 몰린다는 잡음이 나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도 이런 풍토에서 빚어진 것이다. 정치가 예술을 지배하면 그건 예술이 아니라 선전이 된다. 문화 선진국들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다. 어느 예술인이 일갈했다. “예술을 정치의 놀이터로 만들지 말라.”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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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일개 검사 하나 못 잡아 안달인가

    국회의 조작 기소 국정조사가 아니었다면 일개 검사인 박상용 인천지검 부부장검사가 이렇게 유명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대북송금 사건의 주임 검사로 이재명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검사는 국회에 불려 나가서도 당당하게 주장하고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의원들 앞에서 ‘쫄지’ 않는 사람은 쿠팡의 미국인 임원 말고는 본 적이 없다. 조작 기소 여부야 수사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하지만, 산 권력 앞에서도 ‘가오’를 잃지 않는 검사는 인상적이다. 박 검사는 이번 조작 기소 건으로 수개월간 서울고검의 감찰을 받아 왔다. 법무부 처분으로 직무가 정지됐고, 국회로부터 위증 혐의로 고발됐으며,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다. 얼마 전엔 2차 종합특검이 그를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을 금지했다. 법무부는 정치적 중립 위반 혐의로 추가 감찰도 지시했다. 검사 하나 잡기 위해 공권력을 총동원하는 이유는 조작 기소임을 밝혀내야 이 대통령의 공소 취소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조작 기소 증거가 있다면 확정 판결을 받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부터 재심을 받으라고 한다. 재심에서 이 대통령의 기소 근거가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공소 취소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재심에서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부터가 낮아 보인다. 결국 검사가 공소 취소를 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보니 조작 기소로 몰아가기 위한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조작 기소 국정조사부터가 그렇다. 여당은 재판에 관여할 목적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야당과 법조계 일각의 견해는 다르다. 여당 일부 의원들은 국정조사 시작도 전에 공소 취소가 목적이며 조작 사실이 확인됐다고 공언했다. ‘결론 먼저 쓰고 진술 꿰맞추기’로 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특위 위원 중 김동아, 양부남, 이건태 의원은 대장동 변호사 출신이다. 국가정보원과 금융감독원은 기관 증인으로 채택됐는데, 이종석 국정원장은 대북 송금 재판에서 “이화영의 20년 지기”라며 ‘경기도가 쌍방울 대북사업을 돕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증언했던 인물이다. 국정원의 예산과 인사를 총괄하는 기조실장과 이찬진 금감원장도 대북송금 사건 변호사였다. 공정한 재판, 아니 국정조사가 이뤄지길 바라기 어려운 구성이다. 대북송금 사건은 2년간 50차례 공판이 이뤄졌다. 500명 넘는 관련자를 조사하고 재판 증인만 130명이라고 한다. 연어 술파티 회유나 진술 조작도 법원에선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당은 이를 국정조사 50일로 뒤집겠다면서 아직까지 결정적 증거를 못 내놓고 있다. 국조특위 가동의 동력이 됐던 녹취록도 결정적이지 않다. 이화영의 변호인이 제공한 녹취록에는 박 검사가 변호인에게 “이재명 씨가 완전히 주범이 되고 이 사람(이화영)이 종범이 되는 식의 자백” 같은 미심쩍은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앞뒤 맥락이 잘린 녹취록만으론 어떤 결론도 내기 어렵다. 어느 나라나 경찰 보디캠과 관련해선 현장 출동 시점부터 상황 종료 시점까지 누락 없이 전체 촬영을 하도록 규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법과 이해충돌 논란으로 시작부터 실패를 예고한 국정조사는 다음 달 8일 끝난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정조사 이후 조작 기소 특검을 통해 의혹의 티끌까지 밝혀내겠다”고 했다. 조작 기소가 드러나면 공소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당이 통과시킨 특검법과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의 힘으로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는 특권을 누리겠다는 것인가. 박 검사가 국정조사로 주목받는 시기에 칸 영화제 수상작인 영화 ‘두 검사’가 개봉했다. 1937년 스탈린 체제가 시대적 배경이다. 주인공인 초임 검사가 불법 지식인 숙청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자 검찰총장을 만나 막아 달라 하는데, 총장은 그러겠다고 해놓고는 몽둥이 들고 기다리는 숙청조직에 검사를 밀어 넣는다는 내용이다. 정의 수호도, 법치 유린도 결국 법률가 손으로 이뤄진다. 영화는 법의 지배를 믿는 개인과 힘의 지배를 원하는 권력 간 대결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아일보 문화면에 실린 리뷰를 인용하면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할 법이 권력에 부역할 때 국가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끝난다. 국제 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요구받는 선진국에 살면서 왜 법 위의 권력이 ‘권력의 의심을 받는 자는 이미 유죄’라고 단죄하는 스탈린 시대 영화를 보고 남 일 같지 않음을 느껴야 하나. 박상용 검사는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국민이 가지고 계신 법치로, 제도로 처벌해 달라”고 했다. 대통령도 ‘나에 대한 기소가 잘못됐다면 다른 국민과 똑같은 사법 절차에 따라 바로잡아 달라’고 해야 한다. 특검과 공소 취소라는 예외를 요구하는 세력은 보편적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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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 대학교수와 AI의 에세이 첨삭 대결

    10년 전 이세돌 9단과 알파고 대국 때 바둑기사들 말고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직업군이 작가들이다. ‘바둑은 철학이고 체스는 과학’이어서 체스 챔피언이 슈퍼컴퓨터에 질 순 있어도 바둑은 어림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넓고 깊은 철학의 영역에서 추월당했으니 글쓰기도 시간문제 아닐까. 작가들 사이에선 “왜 위대한 작품을 꼭 인간이 써야 하느냐”는 반문까지 나왔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대결이 3일 펼쳐졌다. ▷글 잘 쓰기로 이름난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와 인공지능(AI)의 첨삭 대결은 김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 개정증보판 출간을 기념해 출판사가 마련한 행사다. 사전에 응모한 900자 분량의 에세이 중 3편을 골라 읽은 뒤 미리 준비해 둔 김 교수와 최강의 AI로 꼽히는 앤스로픽 ‘클로드 오퍼스’의 첨삭 내용을 비교해 보는 방식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글에서는 누가 첨삭한 것인지 맞히는 블라인드 테스트도 했다. 200명의 참가자 중 85%가 정답을 맞혔다. ▷둘의 첨삭 결과는 많이 겹치지 않았다. AI는 논리적 흐름과 일관성을 강조했다. 늘어지는 대목은 “글의 속도를 늦추는 문장”이고, ‘듯하다’는 표현이 들어간 문장은 “글쓴이가 자신의 논지를 믿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라며 삭제를 권했다. AI가 글 안에 갇혀 있는 반면 김 교수는 틀 밖에서 도발했다. ‘떫은감 협회’ 총회 현수막에서 착안한 글을 놓고 “왜, 떫냐?’는 제목을 제안했고, “사적인 감상에서 시작하되 본격적인 사회비평으로까지 도약하는 글이 되면 임팩트가 클 것 같다”며 확장적 사고를 주문했다. ▷행사를 기획한 출판사는 둘의 첨삭 중 어느 쪽이 좋은지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려다 접었다고 한다. 앤스로픽과 사전 양해 없이 대결을 진행한 후 승패를 판정하기가 부담스러웠다는 것. 하지만 헤밍웨이와 포크너의 ‘수식어 논쟁’이 보여주듯 글쓰기는 승패를 가릴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헤밍웨이는 수식어 없는 문장을 썼고, 그런 헤밍웨이를 겨냥해 포크너는 “독자가 사전을 찾아봐야 하는 단어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다”며 비꼬았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묘사하려면 수식어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수식어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초고는 무조건 혼자 쓴다. 그리고 (AI) 도움을 받는다. 그게 나의 원칙”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AI에 맡긴다면 “내 능력은 퇴화할 것이고, 그게 내가 정말 살고 싶은 생인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AI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되니, AI 시대에도 글쓰기와 사유는 멈출 수 없는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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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배달 앱 개인정보 털어 ‘보복대행업’

    보안성이 뛰어나고 서버에 기록이 남지 않는 텔레그램은 범죄자들에게는 완벽한 은신처를 제공한다. 디지털 성범죄, 마약 유통, 투자 리딩방 사기 등이 텔레그램을 매개로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돈을 받고 오물 투척 테러 등을 해주는 보복 대행 텔레그램 채널이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과거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를 통해 이뤄지던 사적 보복이 텔레그램의 보안 기술을 만나 기승을 부릴 조짐이 있다는 것이 경찰 분석이다. ▷보복 대행 채널 운영자들은 ‘대신 복수해 드립니다’ ‘원한을 해결해 드립니다’ 같은 문구로 의뢰인을 모집한다. 보복 대행의 서비스 종류는 인분 투척하기, 페인트로 낙서하기,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이나 피해자를 음해하는 내용의 전단 뿌리기 등 다양하다. 비용은 인분 테러가 200만 원, 전단 살포를 추가하면 50만 원이 더 든다. ‘사고 위장 신체 손상’이나 ‘범죄혐의 뒤집어씌우기’ 같은 중범죄 대행을 내건 채널도 있다. ▷채널 운영자가 실제 보복을 실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낙서 알바’ ‘심부름 알바’ ‘월 500+α 보장’ 같은 모집 공고로 뽑은 젊은 ‘특공대원’들이 실행을 맡는다. 올 2월엔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아파트 현관문에 음식물 쓰레기와 인분을 뿌리고 래커칠을 한 20대가 붙잡혔다. 비슷한 시기 경기 군포에선 다세대주택에 침입해 현관문에 빨간색 래커칠을 하고 협박 전단을 붙인 20대가 검거됐다. 모두 텔레그램으로 알게 된 익명의 ‘윗선’으로부터 가상화폐 60만∼80만 원 어치를 받고 저지른 일이라고 했다. ▷텔레그램의 자동 삭제 기능 탓에 윗선까지 추적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검거된 행동대원들에겐 형이 무거운 보복 범죄 대신 주거침입, 재물손괴, 명예훼손 죄목만 적용한다. 얼마 전엔 보복 대행 총책인 30대 남성을 포함한 일당 4명 전원이 구속됐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들은 올 1월 경기 시흥의 한 아파트 현관에 인분을 뿌리고 욕설 낙서를 하는 등 전국 각지에서 보복 대행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일당은 범행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빼내려고 40대 남성을 배달의민족 외주사에 상담원으로 위장 취업시키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이 남성이 상담 목적 이외에 조회한 개인정보가 1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어느 시대나 법은 멀게 느껴졌고 사적 제재의 유혹은 존재해 왔다. 과거와 달라진 건 보복 범죄를 의뢰하기도 실행하기도 쉬워졌다는 점이다. 스마트폰과 가상화폐 계좌만 있으면 음성적인 심부름센터를 차리거나 찾을 필요가 없다. 보복으로 얻는 이익은 크고 리스크는 적다면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보복 대행은 사법 질서를 흔들고 사회적 불안감을 퍼뜨린다. 사적 보복을 공공 범죄로 엄벌해야 하는 이유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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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첫발 뗀 통합 돌봄

    ‘정든 집이 보약보다 낫다’는 옛말이 있다. 친숙한 동네와 손때 묻은 집은 명약이 대신할 수 없는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노인 10명 중 8명은 집에서 생애 말기를 보내고 싶어 한다. 선진국 노인 복지정책의 핵심 목표도 ‘살던 곳에서 늙어가기(AIP·Aging In Place)’다. 그래야 건강하고 존엄한 노후를 보낼 수 있고 병원이나 요양원 신세를 질 때보다 비용도 적게 든다고 한다. 27일부터 전국의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한국판 AIP를 위한 제도다. ▷지금까지는 아프면 병원 가고, 거동이 불편하면 장기요양등급 받아 요양보호사 부르고, 돌봄 서비스는 구청이나 복지관에 따로 신청해야 했다. 그런데 통합돌봄이 시행되면 의료, 요양, 돌봄 서비스를 집에서 받을 수 있다. 주소지 행정복지센터에 신청하면 전문가가 방문해 건강 상태 등을 확인한 후 방문 진료, 주거 개조, 목욕 지원 같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재원은 중앙과 지방 정부 예산,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재정에서 충당하고, 사용자가 내는 비용은 서비스 종류와 소득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본격 도입에 앞서 시행된 시범사업의 효과는 고무적이다. 통합돌봄 서비스 이용자의 연간 의료비와 장기요양비 지출이 1인당 평균 282만 원 감소했다. 요양병원 입원율과 요양시설 입소율도 낮아졌다. 치료가 필요 없는데도 돌봐줄 사람이 없어 병원에 머무는 ‘사회적 입원’이 줄고, 안전 손잡이 등을 설치해 낙상 사고를 예방하고, 정기적인 방문간호와 투약 관리를 한 덕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범사업에서만 결과가 좋게 나오는 ‘파일럿 편향’은 경계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의사, 간호사, 요양보호사가 집집마다 찾아다닐 경우 병원이나 시설에 수용해 적은 인력으로 관리할 때보다 비용이 더 들 수 있다고 반박한다. 통합돌봄을 해준다 해놓고 예산과 인력 부족을 이유로 서비스가 부실해지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에 전가된다. 개별적인 요구에 맞추기보다 정해진 서비스 메뉴에 끼워 넣는 행정편의주의로 흐를 위험도 있다. 한국보다 앞서 통합돌봄을 시행한 일본이 20년간 겪어온 일이다. ▷지역 간 자원 격차가 통합돌봄의 격차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 통합돌봄을 하려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한 명씩은 있어야 하지만 의료취약지역은 공중보건의도 없는 곳이 태반이다. 최소한의 서비스도 제공하기 어려운 곳부터 챙겨야 한다. 이해관계와 돈주머니가 제각각인 여러 조직들이 수요자 중심의 통합 서비스에 기여할수록 이득을 보는 보상 시스템도 필요하다.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노년기 삶의 질이 달라진다면 통합돌봄은 성공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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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신빨’ 떨어진 정치 무당 김어준

    소설가 성해나의 베스트셀러 ‘혼모노’(창비)엔 30년 차 박수무당 얘기가 나온다. 선거철엔 예비 출마자들을 상대로 억대의 굿값을 벌던 그는 ‘신빨’이 예전 같지 않음을 감지하게 되고, 갓 신내림을 받은 무당 ‘신애기’가 앞집에 이사 와 단골들을 채가면서 위기를 맞는다. 요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김어준을 보며 이 박수무당이 떠올랐다. 김어준은 청와대 출입기자를 둔 언론인이지만 강준만 교수의 책 제목대로 ‘정치 무당’에 가깝다. 김어준 유튜브 채널이 얼마 전 내보낸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을 놓고 “팩트체크도 안 했다” “게이트키핑은 기본”이라고 비판하는 건 전한길뉴스더러 왜 공정보도 안 하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 “냄새가 난다”며 후각대로 보도하는 기자가 어디 있나. 오보로 판명 나면 책임지는 게 언론이지만 김어준은 그러지 않는다. 점사가 틀린다고 복채 돌려주지 않고, 굿의 효험이 없다고 굿값 돌려주지 않는 법이다. 동양 철학자 임건순은 ‘한국형 무속 정치학’에서 한국 사회의 심층엔 무속이 자리하고 있고 인과적 사고보다 응보적 사고, ‘문제 풀이’보다는 ‘한풀이’식 무속적 세계관이 한국 정치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정희, 노무현 대통령이 좌우 진영에서 추앙받는 배경에도 비극적 최후를 맞은 이에게 상징적 힘을 부여하는 무속적 정서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어준은 “노무현 노제 때 숨어서 울다 결심한 게 있다. 남은 세상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라 했었는데 노무현이란 신을 모시는 무당을 자처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검찰개혁 하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떠오른다”고 했다. 여권 강경파들에게 검찰개혁은 검찰 수사 도중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한 해원(解冤)의 의미를 갖는 듯하다. 무속은 믿음의 영역이란 점에서 진위의 영역인 언론과 다르고, 영적 성장이 아닌 세속적 욕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다르다. 정치 무당 김어준도 좌파 진영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온갖 음모론으로 ‘액막이’ 역할을 하며 상대 진영엔 화를, 자기 진영엔 복을 불렀다. ‘윤미향 의혹’을 제기한 이용수 할머니를 배후설로 공격했고, ‘박원순 피해자’를 겨냥해 “굳이 나선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김어준 신봉자들은 ‘김어준이 문재인도 대통령 만들고, 박근혜도 감옥 보내고… 나랏일을 다 하고 있다’고 한다. 김어준 신당, 아니 방송에만 나가면 “공천받는 건 일도 아니고 후원금 계좌도 두둑”해지니 곽상언 의원처럼 안 나갔다간 오히려 “지가 뭐라고…” 같은 욕을 먹게 되는 것이다. 무당이 ‘신빨’이 다해 간다는 걸 깨닫는 계기는 작두 타다 칼날에 베여 피를 봤을 때다. 김어준으로선 올 1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 좌절이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합당하라는 ‘공수’를 내렸지만 먹히지 않았고 유튜브 구독자들만 빠져나갔다. 이후 ‘이재명 정청래 악수 패싱설’ 등으로 허둥대다 거래설이 터졌다. 여당의 대통령 공소취소 몰이는 방관하면서 검찰개혁 절제를 당부하니 “냄새가 난다” 할 법하지만 대통령 측근과 검찰 간 거래설을 밑도 끝도 없이 내지를 일은 아니었다. 여권에선 “김어준은 민주주의의 적” “괴물이 됐다”고 야단들이다. 민주당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니다. 이해찬 전 대표는 생전에 “김어준이 하는 유튜브는 다 봤다. 김어준이 민주당을 위해 큰일을 한다”고 했고, 송영길 전 대표는 “김어준 없는 아침이 두렵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2·3 계엄 후 처음 인터뷰한 곳도, 대선 하루 전날 출연한 곳도 김어준 채널이다. 현 정부는 처음으로 김어준 채널 기자에게 청와대 출입기자증을 내주었다. 정권 초기만 해도 총리, 장관, 청와대 대변인이 국정TV 드나들듯 김어준 방송에 나와 정책 배경과 해외 순방 성과를 소개했다. 상대를 겨냥한 음모론자는 ‘참언론인’이고, 우리 쪽을 향하면 무슨 무슨 ‘수괴’가 되는 건가. 김어준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그의 음모론을 정치 의제 삼아 사회를 분열시키고, 공동체를 위한 정치를 사적인 제액구복(除厄求福)의 도구로 삼아 온 무속적 습속부터 반성하라. 무당 정치의 폐해가 너무나 크다. 선거에 지면 ‘K값’ 때문이고, 유죄 판결을 받으면 “정치 판사” 탓이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기보다 음모론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정치에 무슨 책임 윤리가 있고 발전이 있겠나. 김어준과 절연해 봤자 유튜브 푸닥거리 장단에 맞춰 정치하는 문화를 청산하지 못하면 헛일이다. 좌우 가리지 않고 제2의 김어준과 신애기들이 정치와 공론장을 망치는 대가로 부와 권력을 누리려 무령(巫鈴)을 요란하게 흔들고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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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한 아비는 열 아들을 길러도…’

    외모, 성격, 학력, 직업, 자산, 집안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을 요즘 결혼 시장에선 ‘육각형 배우자’라 부른다. 이 중 ‘집안’을 볼땐 배우자 부모의 노후 대비 여부도 따지는데, 부모의 자립도는 배우자의 직업만큼 중요한 조건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대출 없는 자가(自家) 1채, 연금을 포함해 월수입 300만 원에 아플 때를 대비한 1억 원 이상의 현금을 갖고 있어야 합격권에 든다고 한다. 자녀의 원만한 결혼생활을 위해선 자녀에게 손 벌릴 생각을 접어야 하는 것이다.▷얼마 전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국민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를 부양할 책임이 자식에게 있다’는 데 동의한 응답자는 20.6%였다. 이 조사를 처음 시작한 15년 전 53%가 부모 부양에 동의한다고 답했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드는 소식이다. 저출산 현상으로 부양할 자식은 줄었으나 부모의 평균 수명은 늘어 부양 부담이 커진 데다, 가족이 전담해 온 돌봄 책임을 사회가 나눠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로 보인다.▷요즘엔 부모들도 자립심이 강하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자 10명 중 8명은 본인이나 배우자가 생활비를 마련하고, 10명 중 7명은 자녀와 따로 산다. 자녀에게 부담을 주기 싫은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벌어 따로 사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은퇴한 부부의 월평균 적정 생활비는 300만 원, 연금 수령액은 110만 원이다. 이들은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노후로 미뤄둔 취미 생활과 여행의 꿈을 접고 생활비를 버는 데 상당 시간을 보낸다. 60세 이상 취업자는 절반에 육박한다.▷부모 부양이 자식된 도리로 통하던 시대가 바뀌는 과도기엔 ‘낀 세대’가 있기 마련이다. 1960년대생이 이에 해당한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뜻에서 ‘마처 세대’라 불린다.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의 2024년 조사에서는 1960년대생의 56%가 부모나 자녀 중 어느 한쪽을 부양하고 있고, 15%는 부모와 자녀를 ‘이중 부양’하느라 월평균 164만 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후엔 자신의 노후까지 ‘삼중 부양’을 해야 하는 처지다.▷“한 아비는 열 아들을 길러도, 열 아들은 한 아비를 봉양하기 어렵다”는 독일 속담이 있다. 어느 나라든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나 보다. 더구나 ‘그냥 쉬었음’ 청년이 71만 명에, 청년 세대 전체가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다. 자식 덕 보기는커녕 자식 부양 부담만 덜어도 좋겠다는 부모들이 많다. 때 되면 부모 품 떠나 제 앞가림 하는 것이 최고의 효도이고, 자녀에게 기대지 않고 활기 있게 보내는 노후가 자녀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인 시대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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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죽음과 전쟁까지 베팅, 폴리마켓 논란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 주식 시장 못지않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장이 예측 시장이다. 세계 최대 베팅 사이트인 미국 폴리마켓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시점을 맞히는 내기에 5억2900만 달러(약 7800억 원)가 몰렸다. 지난달 28일 공습 하루 전 베팅해 12만 달러를 벌어간 사람도 있다. 현재는 ‘이란 정권은 3월 중 무너질까’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3월까지 유지될까’를 놓고 내기가 한창이다. ▷폴리마켓은 뉴욕대 중퇴생인 셰인 코플란(28)이 2020년 설립한 가상화폐 기반의 베팅 플랫폼으로 스포츠 경기나 선거 결과뿐만 아니라 이란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사건의 미래에 베팅할 수 있는 최초의 사이트다. 선거를 예로 들면 특정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Yes’나 ‘No’를 0∼1달러 가격에 사고팔 수 있는데 이 가격이 참여자들이 예상하는 그 후보의 당선 확률이 된다. 2024년 미국 대선 결과 예측에는 30억 달러 넘는 베팅이 이뤄졌다. ▷올해 초 잠시 한국어 서비스를 한 적이 있지만 국내에서 폴리마켓이 유명해진 계기는 그보다 앞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다. 탄핵 여부뿐만 아니라 정확한 시기를 맞히는 세분화된 상품이 나와 판돈이 커졌다. ‘윤 대통령이 2025년 4월 이전에 탄핵될까’에만 2600만 달러 넘게 베팅됐다. ‘LadyGunhee’라는 닉네임의 이용자는 16억 원을 벌어갔다고 한다. 현재는 ‘차기 서울시장’ ‘부산시장’ 맞히기 내기가 뜨겁다. 하지만 스포츠토토처럼 특별법으로 허용하는 경우가 아니면 온라인 베팅은 형법상 도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폴리마켓은 2024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을 가장 먼저 예측해 주목받았다. 일론 머스크는 “여론조사보다 더 정확하다. 돈이 걸려 있어서”라고 했다. 하지만 2022년 미국 중간선거에선 공화당의 압승을 점쳤으나 빗나갔다. 참여자들 중 다수가 가상화폐에 익숙한 우파 성향의 젊은 남성들이어서 전체 민심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한다. 2024년 베네수엘라 대선에선 여당 후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당선 예측에 실패했는데 집권 세력의 부정선거 변수를 놓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내부자 거래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엔 이스라엘 예비군이 기밀정보를 이용해 베팅했다 걸려 기소됐다. ‘가장 빠르고 냉정한 여론 지표’라는 낙관론과 달리 ‘큰손’이 특정 후보나 이슈에 베팅해 여론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 예측 결과의 판정 기준도 모호하다. 올 1월엔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언제 침공할까’ 내기가 있었는데 마두로 대통령 체포 압송은 ‘침공’이 아니라며 배당금 지급을 거부해 논란이 됐다. 무엇보다 ‘피 묻은 배당금’이 죽음과 전쟁으로 돈을 벌어도 되느냐는 무거운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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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파멸적 위험’ AI 무기화 갈등

    요즘 전쟁에선 인공지능(AI) 기술이 승패를 가르는 핵심 자산이다. 방대한 위성사진과 소셜미디어, 드론 영상을 실시간 분석해 적군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정밀 타격 지점을 찾아내는 데 AI 기술이 활용된다. 저비용으로 살상력을 높이는 데 AI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킬러 로봇’과 같은 치명적 ‘자율살상무기’가 현실화하면 인류를 파멸적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AI 무기화는 윤리적 문제를 낳기 마련. 미국 정부와 앤스로픽이 AI의 군사적 사용 범위를 놓고 벌이는 갈등이 대표적이다. ▷앤스로픽은 ‘가장 안전한 AI’를 지향하지만 이 회사 챗봇 클로드는 군사용으로 각광받는다. 다양한 언어와 방언으로 된 문서, 첩보 보고, 작전 계획서를 이해하고 요약 비교하는 능력이 뛰어나 미 국방부 기밀 작전에 사용되는 유일한 AI 모델이다. 올해 초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생포 작전 때도 팔란티어와 함께 위성 정찰, 첩보 보고 등을 요약 분류해 지휘관의 질문에 빠르게 답하는 ‘AI 참모’ 역할을 했다고 한다. 클로드, 챗GPT, 제미나이의 3자 가상 전쟁에선 클로드가 8승 4패로 최고 승률을 올렸다는 영국 연구팀의 실험 결과도 나왔다. ▷클로드가 이번 이란 공습에도 활용됐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돌연 모든 연방 정부 기관에 클로드 사용을 6개월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클로드를 ‘합법적인 모든 용도’에 제한 없이 활용하게 해달라는 국방부 요구를 앤스로픽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군사작전 결정권은 대통령과 군에 있는데 민간 기업이 회사 정책을 군에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앤스로픽은 AI 기술이 인간의 개입 없는 완전 자율살상무기 체계에 활용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 정부 주도의 군사 기술 개발에 핵심 역할을 했던 실리콘밸리는 AI 기술에 관한 한 ‘반전(反戰)’ 정서가 강하다. 2018년엔 구글이 국방부의 AI 화상 인식 기술 개발에 참여한 사실이 알려져 비난이 쏟아지자 ‘살상용 AI는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발표하고 사업을 포기한 적이 있다. 그만큼 AI의 위력이 원자폭탄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를 써서 시행한 전쟁 실험에서는 21번의 전쟁 중 20번의 전쟁에서 핵무기를 쏴 충격을 줬다. AI가 핵을 공멸의 무기가 아닌 승리의 수단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이번 앤스로픽 사태를 두고 빅테크 기업들은 갑론을박 중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윤리적 제약 없이 AI 무기를 만들고 있는데 우리만 손 놓고 있을 순 없다”는 주장과 “AI가 인류 최고이자 최후의 발명품이 돼서는 안 된다”는 반박이 교차한다. 민간의 혁신 기술이 주력 전략 자산으로 동원되는 ‘기술 징집’의 시대에 그 통제 권한은 누가 가져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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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BTS 광화문 공연 D-1개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3월 21일 BTS 복귀 공연은 대중문화사를 새로 쓰는 빅 이벤트다. 한국의 심장부인 서울 광화문광장이 대형 콘서트장으로 변신해 아티스트의 무료 단독 공연이 펼쳐지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넷플릭스가 K팝 공연을 190개국에 생중계하는 것도 초유의 일. 미국 월가에선 슈퍼볼급 시청자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한다. 광화문 일대의 빌딩 외벽에 설치된 초대형 스크린에선 멤버들의 공연 관련 영상을 송출하며 색다른 도시 미학을 선보이게 된다. ▷예상되는 관객 규모부터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객석은 3만4000석 규모이나 광화문광장 무대부터 숭례문까지 모든 차로에 사람들이 가득 찰 경우 26만 명이 몰릴 것으로 추산된다. BTS가 세운 K팝 사상 최다인 ‘62회 공연에 206만 명’을 깨는 기록이다(2018∼2019년 ‘Love Yourself’ 투어). 넷플릭스 생중계 실시간 접속자 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라이브 이벤트 사상 최다 기록인 500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공연 시작 시간이 한국은 오후 8시, 미국 서부는 오전 4시다. ▷‘라이브 쇼의 제왕’인 해미시 해밀턴 감독(60)이 공연 연출을 맡는 것도 화제다. 지상 최대의 쇼로 불리는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쇼, 2012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 오스카상 그래미상 에미상 시상식을 두루 연출한 감독으로, 영국 출신인 그가 유서 깊은 공간에서 ‘아리랑’이라는 한국적 주제의 공연을 어떻게 표현해 낼지 주목된다. 특히 광화문에서 숭례문까지 1.2km에 달하는 야외 공연장의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 간 불일치를 어떻게 극복할지도 관심거리다. 소리는 빛보다 느리다. ▷안전과 교통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서울시와 경찰은 공연장을 밀집도에 따라 4개 구역으로 나누어 인파를 관리하고, 난동과 테러에 대비해 9개 경찰서의 13개 강력팀과 경찰특공대를 배치하기로 했다. 광화문역, 경복궁역, 시청역은 지하철이 무정차 통과하고 주무대인 세종대로뿐만 아니라 새문안로, 종로, 사직로, 율곡로 전반에 걸쳐 단계별 교통 통제가 이뤄질 예정이다. 인근 주민들과 결혼식 같은 행사가 예정된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도 과제다. ▷광화문광장은 역사적 변곡점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세종대로 사거리 주변에만 55만 명이 모여 응원전을 펼쳤다. 세계는 그 뜨거운 함성에 놀라고, 사건 사고 없이 청소까지 하고 돌아가는 깨끗한 마무리에 또 한 번 놀랐다. 올해는 BTS 복귀 공연에 힘입어 관광객 2000만 명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화문의 밤을 즐기고 가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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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폐섬유증 60대 환자의 스위스行

    폐섬유증을 앓고 있는 60대 남성이 10일 가족 몰래 조력사를 하기 위해 스위스로 가려다 인천공항에서 제지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 남성은 “아버지가 조력사를 위해 출국하려는 것 같다”는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그냥 여행 가는 것”이라는 거짓말로 돌려세웠으나 “유서 형식의 편지를 발견했다”는 가족의 두 번째 신고 전화를 받은 경찰이 항공기 이륙까지 늦춰가며 설득하자 출국을 포기했다. 남성을 태운 비행기가 이륙하기 15분 전이었다. ▷스위스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환자 스스로 약물을 투여해 사망하는 ‘조력 자살’을 외국인에게도 허용하는 유일한 나라다. 존엄한 죽음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조력사를 위한 스위스행에 대한 관심도 높다. 조력사를 선택한 사람들의 스위스 여정을 담은 책들이 여럿 출간됐고, 스위스 조력사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도 흥행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스위스의 4개 조력사 단체에 가입한 한국인이 300명이 넘는다. 가입한 사람들은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위안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스위스에서 조력사한 한국인은 10명 남짓으로 추정된다. 죽음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고, 결심했다 해도 가족을 설득해야 하며, 설득했다 해도 동행한 가족이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을 각오해야 한다. 남유하 작가는 말기 암 환자로 고통에 몸서리치는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인 스위스행에 동행했다. 한국에 돌아와 주민센터에 사망 신고를 하며 장소를 스위스로 적었더니 직원이 “안락사하셨느냐”고 물었고 엄마의 죽음에 대해 거짓말하기 싫어 “맞다”고 했지만 경찰에 신고당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해외에서도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조력사를 진행하는 것이 윤리적이냐는 논쟁이 제기되곤 한다. 지난해 10월엔 영국의 40대 남성이 가족에게 파리 여행을 간다고 속이고 스위스에 가서 조력사한 일이 있었다. 귀가하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다 뒤늦게 아들 통장에서 조력사 단체로 1만5000달러(약 2200만 원)가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한 어머니는 단체에 항의한 후에야 유해 발송 계획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는 조력사를 허용해 달라는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 중이다. 하반신이 마비된 회복 불능의 척수염 환자가 조력사를 하러 스위스로 가려다 간병을 맡아온 딸이 동행할 경우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마음에 걸려 청구한 사건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우려가 있다” “환자 생명을 구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의료 윤리에 배치된다”는 의견서를 냈다. 헌재가 “현대판 고려장이 될 것”이라는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마지막 인권으로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정할지 주목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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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아이스크림 하나 때문에 9세 초등생 사진 공개한 점주

    중장년 세대 중엔 어린 시절 학교 앞 가게에서 물건을 슬쩍하다 혼쭐난 경험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유년 시절 친구들과 콩 서리, 수박 서리하던 경험담을 털어놓는 유명인들도 있다. 대개는 “다신 하지 마라”는 훈계를 듣고 풀려나거나, 부모에게 먼저 들킨 경우 제 발로 찾아가 “잘못했다” 사과하고 용서받는 것으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자녀에게 서리 당한 집 일손을 돕게 하는 부모도 있었다. 아이들의 잘못을 교육의 기회로 삼을 줄 알았던 이들에게 얼마 전 600원짜리 아이스크림 미결제 사건을 놓고 벌어진 송사는 씁쓸하기만 하다. ▷사건은 2023년 4월 9세 어린이가 인천 무인매장에서 아이스크림을 계산하지 않고 들고 나가면서 시작됐다. 40대 가게 주인은 이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 캡처 사진을 ‘일주일 안에 연락 없으면 경찰에 신고한다’는 문구를 달아 가게 내부에 공개했다. 아이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지만 인근 주민들은 알아볼 수 있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이 부모는 가게 주인과 합의를 시도했으나 불발됐다. “절도”라는 가게 주인과 “단순 실수”라는 부모 주장이 엇갈렸다. ▷경찰은 아이가 어려 죄가 되지 않는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가게 주인이 그해 7월 아이 사진을 다시 가게에 붙이면서 사건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이 아버지가 사진을 떼자 가게 주인은 재물손괴죄로 고소하고, 부모는 가게 주인을 아동학대와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했다. 아이 아버지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가게 주인은 1심에선 무죄, 2심에선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아이를 알아볼 수 있는 사진과 절도를 암시하는 글을 같은 학교 학생들이 이용하는 매장에 게시한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아이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아이 부모는 아이가 실수로 계산을 안 하고 나온 건데 상습범으로 몰아붙여 화가 났다고 한다. 또 “검찰에서 가게 주인이 30만 원에 합의할 의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합의금을 목적으로 이 일을 벌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반면 가게 주인은 “합의금을 요구한 적 없다. 정식으로 사과만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렇더라도 아홉 살 아이 잘못을 쉽게 범죄로 규정하고 사진까지 공개하는 극단적 방법을 써야 했을까. ▷중장년 세대가 어린 시절 소소한 일탈을 웃으며 돌아볼 수 있는 이유는 동네 어른들의 따끔하되 너그러운 꾸지람에서 좋은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는 배려심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 사방에 CCTV 달아놓고 감시하고, 조금이라도 잘못하다 걸리면 아이 장래고 뭐고 무조건 범죄자로 낙인찍어 응징하고, 법 말고는 갈등을 조율할 줄 모르는 각박한 사회가 됐는지 6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로 벌어진 기막힌 송사에서 절감하게 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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