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김갑식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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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갑식 부국장입니다.

취재분야

2026-05-27~202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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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자 다이제스트]만화로 세계 종교 엿보기

    “하느님이 정말 존재하는 거야.” “교회는 멍청해.” 신앙인이라도 어쩌면 한번쯤 이런 의심을 품었을지 모른다. 제목에 ‘사적(私的)인’이 붙은 것은 네덜란드 목사의 딸이자 신학을 전공한 만화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 있다는 뜻이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 불교 등의 출발과 핵심 교리, 차이점 등을 쉽게 풀어냈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에 대해 같은 반지를 물려받은 세 아들로 비유한 대목도 흥미롭다. 세계 종교의 큰 흐름을 1, 2시간 동안 만화로 보며 이해할 수 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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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식 기자의 뫔길]種豆得豆… 故 방지일 목사의 마지막 큰 울림

    103세 국내 최고령 목회자로 10일 소천한 방지일 목사의 생전 마지막 설교 제목은 ‘종두득두(種豆得豆·콩 심은 데 콩 난다)’였습니다. ㈔방지일목사기념사업회(이사장 김삼환 목사)가 이날 발행한 ‘심은대로’라는 소책자 1면에 사진과 함께 이 내용이 실렸습니다. 마지막이라지만 사실 이 설교는 2012년 12월 이뤄진 것으로 사연이 있습니다. 개신교 방송인 씨채널이 경기 광주시 진새골사랑의집에서 진행된 녹화에서 ‘내 인생의 마지막 설교’라는 의미로 부탁한 것이라네요. 이후 고인이 간간이 강단에 섰지만 취지로 볼 때 마지막 설교로 봐도 무방할 겁니다. 고인은 이 설교에서 “외를 심으면 외를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둔다는 말과 같이 종두득두라는 말을 흔히 한다”며 “바울 사도도 갈라디아서에서 심은 대로 거두리라고 하셨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좋은 종자라도 그것이 알맞은 옥토에 떨어져야 결실을 30배, 60배, 100배 거둘 수 있다. 같은 종자라도 바탕이 좋지 못하면 그렇게 수확하지 못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고인의 세상을 향한 마지막 당부는 이렇습니다. “내 마음을 항상 잘 살펴서 돌은 골라 치워버려야 하고, 수분이 없으면 수분을 공급해야 하고, 굳었으면 부드럽게 다듬어가면서 옥토를 만들어서, 언제라도 씨가 떨어지면 가장 잘 자랄 수 있도록 늘 가꾸는 우리가 돼야 한다.” 평소 검소하게 생활해온 고인은 해외 방문 중 고령에도 꼭 이코노미석을 타고 호텔 방도 다른 사람과 같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룸메이트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는 목사 A 씨의 전언도 있습니다. 방 목사가 머그잔에 모닝 블랙커피를 먹으면서 각설탕을 15개나 넣는 걸 보고 깜짝 놀라 “장수에 해롭지 않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싱긋 웃으며 “단맛으로 먹지”라고 했는데 그 미소를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곁에서 지켜본 방 목사는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기도와 성경 암송 뒤 항상 갖고 다니던 노트북을 꺼내 독수리 타법으로 2시간 가깝게 e메일 체크와 답신을 했다고 합니다. 한글은 물론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로 언어를 변환해 세계 각지에서 온 메일에 대해 큰 글씨로 답변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그 메일 답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올해 초 인터뷰 요청을 메일로 보내자 방 목사는 정말 큼지막한 글씨로 “제가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 힘들어요. 다음에 꼭 뵙죠”라는 답신을 보내 온 기억이 납니다. 14일 한국기독교회장으로 치러진 장례예배에는 개신교계의 많은 목회자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평소 고인의 목소리가 특정 교단을 넘어 메아리친 것은 나이와 지위가 아니라 평생을 지켜온 경건한 신앙과 삶 때문이었습니다. 벌써부터 이제 쓴소리 할 개신교 원로가 없다는 걱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난다, 그 평범한 말에 목회자들이 귀를 열어야 할 때입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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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종, 조용히 있고 싶어도 바람 잘 날 없구나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멎지 않으니…. 요즘 대한불교조계종은 바람 잘 날 없는 고목 처지다. 조계종은 종단 명칭을 사용하고 승려 교육과 포교, 수계(受戒·계를 받는 것) 등에서 한 울타리에 있으면서도 종단에 등록하지 않았던 사찰들의 법인 등록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분종(分宗) 위기에 처했다. 대표적인 선승으로 종단 안팎에서 존경받아 온 용화선원 송담 스님(법보선원 이사장)도 최근 탈종(脫宗)을 선언했다. ○ ‘뜨거운 감자’ 법인관리법 조계종의 ‘뜨거운 감자’는 종단 내 모든 법인의 등록을 의무화한 ‘법인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법인관리법)’이다. 조계종은 이 법이 종단의 각종 법인 현황을 파악토록 해 종단 재정의 안정화와 효율적 관리, 나아가 사찰 사유화를 막기 위한 필수적 장치로 여기고 있다. 반면 등록을 거부하는 측에서는 총무원으로 상징되는 종단 행정에 불신을 표출하면서 이 법이 법인에 대한 불필요한 통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달 30일 법인 등록 마감시한까지 총 17개 대상 가운데 9곳만 등록했다. 일찌감치 등록 거부 뜻을 밝혀온 선학원과 법보선원 외에도 규모가 큰 능인선원, 재가 신자의 활동이 많은 경북 영천의 만불회도 등록을 거부했다. 다만 “보리동산, 옥련선원, 세등선원, 숭산국제선원은 기한을 넘겼지만 협의를 진행하고 있어 등록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조계종 총무원 측은 설명했다. ○ 분종 위기의 선학원 조계종 내 재단법인이면서도 독자적으로 활동해온 선학원의 경우 조계종과의 갈등이 이미 분종 단계로 접어들었다. 앞서 조계종의 사법부에 해당하는 호계원은 7일 선학원 이사장인 법진 스님에 대해 멸빈(滅빈·승적을 박탈해 영원히 종단에서 추방)을 확정했다. 법진 스님은 멸빈 확정 후 “법인 등록을 하지 않으면 (조계종이 담당하는) 승려 교육에서 선학원 승려에 대한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나를 팔아서라도 도제들 교육만큼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선학원은 현재 독자적인 승려증 발급을 비롯해 신규 사찰 등록, 승려의 교육과 승려 양성을 위한 기구 설립 등 조계종이 하고 있는 주요 업무를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조계종에 따르면 17개 법인 소속 사찰을 뺀 종단 사찰은 3000여 개로 추산된다. 선학원도 300여 개라는 적지 않은 사찰이 있어 선학원 집행부 의지대로 분종이 현실화되면 조계종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계종 최고 선승의 탈종 재단법인 법보선원도 이사장인 송담 스님을 포함한 이사진 전원이 제적원을 조계종에 제출하고 승려증을 반납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법보선원 사태는 법인 등록 문제뿐 아니라 산하 사찰인 용주사 주지 선거에서 불거진 갈등, 총무원의 행정력과 도덕성에 대한 불신 등이 얽혀 있다. 종단의 한 관계자는 탈종 사태와 관련해 “송담 스님이 자신의 말을 쉽게 뒤집는 성격이 아니다”며 “‘종단에 가입하지 말라’는 스승 전강 스님의 유지가 있다지만 송담 스님의 탈종 선언은 총무원뿐 아니라 자신의 상좌들에 대한 큰 실망감이 계기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종단과 법보선원 모두 불교의 미래라는 명분을 강조하고 있어 의외로 쉽게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송담 스님의 마음을 풀기 위해 조카 제자뻘인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삼고초려와 종단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는 개혁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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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복을 빕니다]103세 목회 ‘영원한 현역’ 국내 최고령 방지일 목사

    ‘영원한 현역’으로 불려온 국내 최고령 목사인 방지일 영등포교회 원로목사(사진)가 10일 0시 20분 노환으로 소천(召天)했다. 향년 103세. 고인은 최근까지 북한 선교를 위한 기도회 행사에 참석하는 등 외부 활동을 했으나 9일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진 뒤 9시간여 만에 운명했다. ‘닳아 없어질지언정 녹슬지 않는다’는 좌우명에 어울리게 평생을 교회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목회자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에는 102세의 나이로 부활절 연합예배 설교자로 나섰다. 1911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목사(방효원) 아들로 태어나 선천 신성중학교와 평양 숭실대, 평양장로회신학교를 마쳤다. 평양 장대현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면서 길선주 목사와 활동하기도 했다. 193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중국 산둥(山東) 성 일대에서 21년간 선교사로 일했다. 중국 당국은 1957년 그를 북한으로 추방하려고 했으나 중국에 남은 마지막 개신교 선교사라고 서방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귀국 이후 1958년부터 서울 영등포교회 담임 목사를 20년 넘게 맡았다. 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장과 대한성서공회 이사장 등을 지냈고 국민훈장 모란장(2008년)을 받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와 이영훈 담임 목사, 강변교회 김명혁, 덕수교회 손인웅, 도림교회 유의웅, 명성교회 김삼환, 영락교회 이철신 목사 등이 이날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았다. 유족으로 재미 역사학자인 아들 선주 씨와 딸 선자 씨가 있다. 장례는 한국기독교회장으로 치러지며 장례 예배는 14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빈소 02-2227-7556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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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식 기자의 뫔길]‘금기 해제’ 논란… 가톨릭 교회 선택은?

    얼마 전 대구를 방문했다 40대 중반의 A 신부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가톨릭 교리에 대한 주제로 이어졌습니다. 동성애와 여성사제, 낙태와 피임 등 그동안 가톨릭이 금기시해 온 단어들이 화제가 됐습니다. “신부님, 세상이 어쩔 수 없이 변해가고 있는데 가톨릭교회가 어떤 것을 가장 먼저 인정하게 될까요?”(기자) “….”(A 신부) “동성애 문제 아닐까요? 프란치스코 교황도 동성애와 관련해서는 동정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기자) 침묵을 지키던 A 신부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하면서도 세 문제는 교회가 가까운 미래에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가톨릭은 어느 종교보다도 역사성을 중시한다”며 “그 역사성의 핵심인 성경에서 셋 모두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교황의 동성애에 대한 몇몇 발언도 인간적인 차원의 배려라며 동성애를 교회에서 인정할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현재 교황청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이 회의가 특히 주목을 받는 이유는 결혼과 이혼, 피임과 낙태, 동성애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신에 따르면 최근 교황과 이 대회에 참석한 주교들이 ‘성교육’도 받았다고 하네요. 아마도 대회 주제 때문인 듯합니다. 호주 시드니에 사는 한 부부가 고위 성직자들 앞에서 55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한 비결을 ‘성적 매력’이라고 설명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동정적인 입장도 밝혔다고 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년)는 20세기 들어 가톨릭교회를 근본적으로 바꾼 중요한 계기로 여겨집니다. 자국어 미사와 전례를 인정하고, 세상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등 가톨릭교회 현대화와 개방화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만약 A 신부의 예측과 달리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이들 금기에 수정을 가한다면 그 충격과 논란의 강도는 지구촌 전체를 흔드는 핵폭탄 수준일 겁니다. 교황청은 내년 10월까지 이에 대한 논의를 계속한 뒤 입장을 밝힐 예정입니다. 저도 몹시 궁금하네요.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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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식 기자의 뫔길]스펙대신 스토리로… 中 규제 뚫고 책 낸 목사

    전북 남원시 지리산 자락 출신인 그는 맨몸 맨손 맨땅의 ‘3M 목회자’를 자처합니다. 목회를 꿈꿨지만 한학자인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19세 때 집에서 쫓겨나 수박과 오이장사, 막노동판 등을 전전했습니다. 1988년 교회 개척 이후 신자 3만여 명의 대형교회를 일궈냈습니다. 경기 용인시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52)입니다. 최근 그는 개신교에서는 드문 사례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그의 저서 ‘스펙을 넘어 스토리를 만들라’ 중국판이 출간된 겁니다. 교회에 따르면 한중 수교 23년 만에 국내 목회자의 중국판 저서가 공인된 출판사에서 나온 것은 처음이랍니다. 그만큼 중국 정부의 개신교에 대한 입장은 예민합니다. 중국 당국 통계에 따르면 중국 내 개신교인 수는 2300만 명가량입니다. 하지만 비합법인 ‘가정 교회’ 신자를 합치면 1억 명에 가깝다는 설도 있습니다. 올해 6월에는 중국 종교사무국 간부들이 참여한 ‘한중기독교교류협회’가 창립됐습니다만 개신교 선교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공식적, 합법적 창구는 열어 두되, 비합법적 형태의 선교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 책은 성경 구절과 소 목사의 목회 체험을 다루고 있어 출판이 허가된 것은 의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스펙…’이 종교서가 아니라 성공체험서로 분류됐다는 겁니다. 다소 알쏭달쏭한 제목과 목회자의 인생 스토리가 규제의 틈새를 뚫은 이유인 듯합니다. 책에는 소 목사가 과거 집에서 쫓겨날 때의 상황이나 거리의 여성에게서 받은 유혹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이 썩을 놈아. 뼈 빠지게 농사지어서 가르쳐 놓으니까 예수쟁이가 돼 버렸어.…” 그의 솔직한 유머도 떠오르네요. “교계에서 아버지가 목회자면 성골, 장로는 진골, 이도저도 아니면 ‘해골’로 불려요. 저는 성(姓)이 소 씨라 ‘사골’이죠.(웃음)” 목회자의 별명을 알기는커녕 접근도 어려운 게 요즘 개신교 분위기입니다. 그런 그들만의 왕국에서 성(性)과 세속화, 학력 위조 등을 둘러싼 추문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골 목사’를 보면서 어쩌면 이 시대 목회자에게 필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스펙이 아니라 진솔한 자기고백이 아닐까 합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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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중불교를 대중불교로… 음악만한 게 없더군요”

    《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 자락의 청량사. 벼르고 별러야 가는 곳이다. 서울에서 청량산 도립공원까지 4시간, 다시 1시간 산행을 해야 다다를 수 있다. 그래도 한번 가면 꼭 다시 찾는다는 곳이 청량사다. 1986년 눈 크고 헌칠한 29세의 청년, 아니 스님이 이곳을 찾았다. 그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말이 절이지 쓰러져 가는 전각만 남은 폐사지에 가까웠다. 건강이 좋지 않은 은사 스님의 요양에 좋을 것 같아 주지로 부임했지만 너무 외져 은사를 다른 곳으로 모셔야 했다. “임기 4년은 채워야 하는데”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           ○ 청량사와의 약속 일주일쯤 지났을까. 청량사 본사인 고운사 주지 근일 스님이 사탕 한 봉지를 들고 젊은 주지를 찾아왔다. “‘애기’ 같은 사람이 살 수 있을까”라며 걱정하던 노스님이다. 그로부터 28년. 애기 같던 지현 스님(57·조계종 총본산 성역 총도감)은 30년 가까이 청량사를 지키고 있다. 조계종 총무부장과 불교문화사업단장 등 굵직한 소임을 맡아 큰 사찰 주지를 맡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다 마다했다. 지현 스님은 “큰 사찰 주지 자리와는 인연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도 가끔 청량사 신도들에게 ‘청량사에 계속 있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스님은 “청량사 사람들이 저를 싫다고 하지 않는 한 계속 지킬 것”이라고 했다.○ 청량사의 약속 2001년 산사음악회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아름다운 산사를 지역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리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음악회 얘기를 꺼냈더니 “스님, ‘택도 없어예’”라는 반응들이 나왔다. 누가 산골 오지에, 그것도 해발 650m까지 발품을 팔면서 오겠느냐. 할매들 몇십 명 모아 놓고 음악회 열 거냐…. 스님은 소리꾼 장사익을 섭외한 뒤 “관객 한 명이 오더라도 음악회를 연다”고 둘이서 약속했다. 가수 한영애와 안치환도 합류했다. 첫 음악회 날, 평탄한 자리가 별로 없어 엉덩이 붙이기도 힘든 이곳에 3000명 넘게 몰렸다. 이후 봉화군에 수해가 났을 때와 신종플루가 유행했을 때를 빼곤 음악회는 어김없이 개최되고 있다. 왜 산사음악회였을까? “산중불교를 대중불교로, 받는 불교에서 주는 불교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음악은 무엇보다 사람을 끄는 힘이 있어요.” 올해 음악회는 4일 오후 7시 청량사 경내에서 ‘꿈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이란 주제로 열린다. 가수 인순이 홍경민 마야, 팝페라 가수 정태옥 오윤석이 출연한다. 청량사 신도로 구성된 둥근소리 합창단도 소리를 보탠다.○ 아이들과의 약속 스님은 가끔 아이들과 손가락 다짐을 나눈다. “너, 나중에 커서 여자(남자) 친구 생기면 꼭 스님에게 인사시켜야 한다.” 지현 스님은 청량사로 내려가자마자 어린이 포교에 나섰다. 스님은 산사에서 신도를 기다리는 대신 마을회관과 논두렁에서 ‘찾아가는 법회’를 열었다. 경운기 탄 신도들이 삼삼오오 모였고, 부모 손을 잡은 아이들도 따라왔다. 요즘은 일요일마다 청량사에서 여는 어린이 법회에 70여 명이 참석한다. “어린이들은 불교와 우리 농촌의 미래죠. 주지 초년병 시절 만난 아이들이 어른이 됐어요. 벌써 주례만 30쌍이나 했습니다. 허허.” 9세에 출가한 스님은 부처님과 무슨 약속을 했을까. “젊었을 때는 그냥 바쁘게만 살았는데, 요즘은 ‘내가 잘 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사춘기’가 왔나 봅니다, 하하. 그러면 절도 한 번 더 하고 그래요. 나중에 죽을 때 ‘아까운 스님 돌아가셨네’ 하는 소리는 나와야 하는데….”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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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선종 대표적 선어록 ‘傳心法要’ 쉽게 풀어냈다

    당나라 말기 관리이자 불자인 배휴(797∼870)는 당대 최고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부임 지역을 옮길 때마다 스승 황벽 선사(?∼850)를 가까운 사찰에 모시고 불법에 대해 물은 뒤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중국 선종의 대표적인 조사 어록으로 꼽히는 전심법요(傳心法要)와 완릉록(宛陵錄)은 이렇게 탄생했다. 황벽 선사는 우리 선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임제 스님의 스승으로 혜능, 남악, 마조, 백장 선사로 이어지는 법을 이었다. 배휴와 황벽의 문답은 이렇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배휴) “그대의 마음이 부처다. 부처는 곧 마음이니, 마음과 부처가 서로 다르지 않다. …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가 따로 없다.”(황벽) 부산 범어사 주지이자 도심선원인 안국선원을 창립해 간화선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온 수불 스님이 최근 ‘흔적 없이 나는 새’(김영사·사진)를 출간했다. 스님이 전심법요와 완릉록, 황벽의 에피소드를 모은 행록에 해설을 붙인 책이다. 수불 스님은 1일 간담회에서 “불교 공부의 기본은 경전이지만 옛 스승들의 말씀에서 깨달은 이와 수행자들의 고민과 경지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며 “이번 책은 수행자들에게 이치를 전하는 게 아니라 알고 싶다는 ‘발심(發心)’의 인연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대중법회를 지도해온 수불 스님의 해설은 단순, 명쾌하다. “선에서는 번뇌가 바로 보리요, 중생이 바로 부처라는 사실을 직시할 뿐,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수불 스님은 간화선이 지나치게 어렵게 인식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호흡 위주의 남방 수행 또는 간화선으로 대표되는 북방 불교 수행법을 선택하는 것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로 볼 것은 아니다”면서도 “역대 스승들이 간화선을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여겨왔다면 이를 제대로 한번 체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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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MZ 평화음악회 공동개최 제안에 北 긍정적”

    “북한에서 승마장 와서 말 타려면 당 고급 간부 아니면 어렵습니다. 평양 외곽 미림승마구락부에서 3대가 함께 승마를 즐기는 것도 봤어요. 그쪽에서 말하는 최고 존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신변에 큰 이상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죠.” 3박 4일 일정으로 최근 평양을 방문한 뒤 지난달 29일 귀국한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 영담 스님(부천 석왕사 주지)의 말이다. 영담 스님은 30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최근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불거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건강 이상설에 대해 “외부인의 짧은 방문이라 보는 데 한계가 있지만 평양은 평온했다”며 “김 위원장이 건강이 좋지는 않다지만 체제가 흔들릴 만큼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김 위원장의 동정에 대해 북측 관계자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 몇 차례 물었지만 일절 답하지 않았다는 게 스님의 말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부장을 지낸 영담 스님은 2011년 평양과 묘향산, 백두산을 방문한 것을 포함해 남북 불교 교류와 인도적 지원 활동을 위해 북한을 30여 차례 방문했다. 스님은 북측 초청과 정부의 방북 허가를 받아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평양의 윤이상음악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 음악회와 토론회에 참석했다. 영담 스님은 3년 전 방북과 비교할 때 북한이 의외로 활기가 넘쳤다고 했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는데 군인들이 10일 당 창건기념일에 맞춰 공항 확장 공사에 분주한 모습이었어요. 보통강 호텔 주변의 차량들도 많이 늘고 60∼70km 속도로 빨리 달려 깜짝 놀랐어요.” 스님은 이전과 달리 이번 방북 일정은 비교적 자유로웠다고 했다. 과거에는 동명왕릉과 각종 기념관 등이 일정에 포함됐지만 이번에는 승마구락부와 문수 물놀이장 방문도 허가가 났다는 것이다. 스님은 “물놀이장은 외부와 실내로 나뉘는데 외국인은 10달러, 평양 시민은 1달러 정도를 요금으로 받는다고 했다”며 “가을이라 외부에는 사람이 없었지만 실내수영장에는 물놀이를 즐기는 가족들도 보였다”고 말했다. 영담 스님은 방북 기간 중 박춘남 문화상과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인 강수린(조선불교도연맹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를 만나 평화를 위한 자전거 투어와 윤이상이 생전에 제안했던 비무장지대(DMZ)에서의 지구촌 평화음악회 공동 개최를 제안했다. 자전거 투어는 2017년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독일 베를린 윤이상하우스에서 출발해 러시아와 북한을 경유한 뒤 판문점을 거쳐 통영 생가까지 이어진다. 남북은 물론이고 음악과 평화를 사랑하는 해외의 모든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열 계획이다. “원래 북측 사람들, 관심이 없으면 반응이 없어요. 그런데 두 가지 제안을 했더니 ‘남측에서 허락할까요’라며 되묻더군요. 이 행사들은 조국을 하나로 사랑했던 윤이상 선생의 마음을 담았기 때문에 남과 북, 모두 기꺼이 협력할 것으로 믿습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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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식 기자의 뫔길]‘정구사’를 바라보는 가톨릭 사제들의 우려

    사제단과 정구사. 한국 가톨릭에는 다른 약칭으로 불리는 한 단체가 있습니다. 22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창립 40주년 감사미사를 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입니다. 이 단체는 오랜 관행에 따라 흔히 사제단으로 불리고 있지만, 이 명칭에 대한 가톨릭 내부의 거부반응도 만만치 않습니다. 알려진 대로 이 단체는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 크게 기여하고 사회적 약자 보호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뒤에도 계속된 법과 제도의 틀을 벗어난 주장과 행동, 북한 인권에 대한 외면 등은 침묵하는 다수의 반(反)사제단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이 단체는 가톨릭의 공식 기구가 아닌 임의단체다. 사제단이라고 하면 가톨릭 사제 전체를 대표하는 것 같다”며 정구사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단체에 대한 가톨릭 분위기를 취재하다 보면 공통된 요청을 받게 됩니다. 인터뷰에 응한 신부들이 자신의 의견을 밝힌 뒤 “정구사 알지 않느냐. 내 이름 나가면 여러 명이 행패 부리고 인터넷에 비난하는 탓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꼭 익명으로 해 달라”는 것이죠. 이날 이 단체의 전 대표인 전종훈 신부는 미사강론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암흑 속의 횃불이 돼야 하는 게 시대적 소명”이라고 했습니다. 전 신부는 또 “세월호 유족에게 양보하라는 추기경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교황과 뜻을 같이해야 할 교구장의 이런 발언은 사제의 첫 마음인 십자가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을 비난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전 신부는 염 추기경의 ‘아들 신부’입니다. 교계에서는 신학대에 진학할 때 추천서를 써주거나 서품식 때 사제의 직책과 의무를 상징하는 영대(領帶)를 주는 신부를 ‘아버지 신부’라고 부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이 무엇이냐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아들 신부가 아버지 신부를 공개석상에서 부끄럽다고 해야 했을까요? 더구나 염 추기경의 주교좌성당인 명동대성당에서 40주년 미사를 진행하면서 말이죠. 교계에서 진보적으로 평가받는 강우일 주교가 이 단체에 보낸 축사는 귀담아들을 만합니다.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비판을 두려워할 것은 아니지만 참된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려면 생각이 다른 이들도 배척하지 않는 아량과 관용도 필요하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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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찰음식은 食 아닌 藥… 몸과 마음 다스리는 수행食이죠”

    《 번잡한 거리를 잠시 벗어나니 주변 풍경이 금세 바뀐다. 입구를 지나자 사찰음식교육관 금비라에 이어 불(佛)자가 새겨진 불자바위, 묘엄 스님 시비, 대적광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각과 작은 연못, 수목이 빈틈없이 어우러진, 단정한 미인의 옷매무새다. 청담 스님(1902∼1971)의 딸로 우리 비구니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다 2011년 입적한 묘엄 스님의 체취가 가득한 봉녕사다. 40여 년 전 쓰러져가는 전각과 절집 살림공간인 요사채만 달랑 남아 있던 이곳은 묘엄 스님의 원력에 의해 승가대와 세계 최초의 비구니 율원인 금강율원이 세워지는 등 비구니 교육의 산실이 됐다.10월 3, 4일 경내에서 열리는 제6차 세계사찰음식대향연을 앞두고 24일 묘엄 스님의 제자로 그 뒤를 잇고 있는 주지 자연 스님(60)을 만났다. 》               사실 비구니 도량에서 외부인 출입이 많은 국제행사는 번잡한 일이다. 자연 스님은 “은사가 생전 ‘사찰음식은 기본에 충실한 음식이며 그 기본이란 바로 자연과의 조화’라고 강조했다”며 “사찰음식대향연은 사찰음식에 담긴 자연과 생명의 정신을 종교에 관계없이 많은 분과 함께 나누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행사에는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미얀마 스리랑카 태국 등 11개국이 참여해 각국 발우공양과 고유한 사찰음식 등 닮은 듯 다른 사찰음식문화를 소개한다. 선재 적문 대안 우관 스님 등 사찰음식 대가들의 시연과 전시회도 마련돼 있다. 선재 대안 스님 등이 봉녕사 승가대 출신이다. 묘엄 스님이 생전 제자들에게 “글을 가르쳤는데 왜 음식을 잘하느냐”며 웃었다는 자연 스님의 전언이다. 불교에서 음식은 음식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불교에서는 사찰음식을 식(食)이 아닌 약(藥)으로 여겨왔습니다. 요즘 먹는다는 식의 개념만으로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몸에 독이 쌓이고 병도 나게 됩니다. 사찰음식은 때 아닌 때에 먹지 않고, 필요한 때에 적절히 먹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식이기도 합니다.”(자연 스님) 은사의 유품을 모은 기념관과 대적광전 등 주변을 안내하던 스님은 40여 년 전 출가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자 “어제 일 같다”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대학 국문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4년의 일이다. 출가의 원력을 세우고 소개서를 품고 봉녕사를 찾았다. “그때 이곳은 사찰이 아니라 영락없이 폐사지라 실망이 컸어요. 소개서를 써준 분의 체면을 신경 쓰지 않았다면 당장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죠. 그런데 은사를 뵙고 절을 하는데 빙그레 웃는 그 얼굴을 보니 마음이 확 잡히더군요. 호호.” 요즘도 계를 지키는, 지계(持戒)에서는 제일이라고 자부하는 봉녕사의 계율은 지금보다 훨씬 엄격했다. “출가 초기 사소한 일로 4박 5일 정학을 당해 공부 대신 벌로 공양간 소임과 울력을 한 기억도 있어요. 수행 환경과 자세는 과거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수행자들이 너무 많은 생각과 분별을 갖고 있으면 공부에 방해가 되는 법이죠. 깨끗한 흰 천이 염색하기가 쉬운 것과 같은 이치죠.” 출가 초기 이런저런 법명을 쓰다 결국 자연(自然)이란 법명을 택한 스님은 “이름이 좋아 스님 생활도 잘해오고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스님은 언제나 ‘다리 밑을 비추어 잘 살피라’는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거창한 선의 이치를 논하기 전에 항상 자기 발밑을 살피는 수행자가 되어야죠. 그래야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도 가능하고 남도 배려할 수 있죠.”수원=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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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식 기자의 뫔길]낙산사에 두고 온 마음

    14일 강원 양양 낙산사를 다시 찾았습니다. 햇볕은 아직 뜨거웠지만 낙산사는 여전했습니다. 초입의 홍예문과 해수관음상, 바람과 어우러지는 푸른 바다 모두 그대로였습니다. 2011년 이후 3년 만의 발길이었습니다. 그때는 낙산사 동종과 원통보전을 잿더미로 만든 2005년 화재 뒤 복원사업을 책임진 정념 스님과 시집 ‘밥값’에 실린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로 공초문학상을 수상한 정호승 시인과 동행했죠. 당시 낙산사는 화재 뒤 6년이 흘렀지만 그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불에 그을린 흔적이 역력한 고목과 노송의 자리를 대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여린 나무, 세월의 이끼를 느낄 수 없는 새 전각…. 정념 스님은 “아무리 복원을 잘해도 죄인이라는 마음으로 산다”, 정 시인은 “이제 낙산사에서 두고 온 마음을 찾고 간다”고 했습니다. 시인의 그 마음은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못했던 그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낙산사를 지켜보면서 한 가지를 두고 왔습니다. 그것은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노파심입니다. 올 3월 해수관음상 인근 야산에서 불이 나 1시간여 만에 진화됐습니다. 정념 스님을 도와 복원 작업에 참여했던 낙산사 총무 무문 스님은 차담을 나누다 몇 달 전 화재를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낙산사에 살면 작은 불씨 하나만 봐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다행하게도 바람이 바다 쪽으로 불어 우려할 만한 상황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2005년에도 화재 진압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불티가 다시 큰 화재로 이어졌으니, 며칠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화재의 기억은 낙산사 사람들을 더욱 철저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다니는 길뿐 아니라 바람길까지 공부하게 됐다는 정념 스님의 말처럼 이곳 사람들은 복원과 각종 불사(佛事) 때에도 불과 바람을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고려하게 됐습니다. 낙산사 화재는 불교계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큰 상처이자 아픔이었습니다. 하지만 차츰 제자리를 찾아가는 낙산사의 모습은 그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물론 몇몇 스님과 종무원들의 몫이 아니라 사찰을 찾는 모든 이들이 지켜나가야 할 낙산사입니다. 가을, 낙산사를 찾으시죠. 그리고 ‘T’(몸과 마음) 속에 남아 있던 무언가를 찾거나 두고 오시면 어떨까요.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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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라? 인기가 만만치 않네

    《 반짝반짝 머리에 기러기 날개 눈썹과 여덟팔자 눈, 웃음을 머금은 입술…. 꼭 쥔 작은 손 주변에는 ‘힘내’라는 작은 글씨들이 모여 부처님 광배처럼 빛난다.요즘 불교카툰 쪽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 ‘어라’(사진)다.어라 캐릭터를 만든 이는 ‘진짜 스님’ 지찬 스님(40)이다. 2004년 출가한 뒤 여러 선방에서 수행하던 스님은 어라 캐릭터로 작품 활동을 하다 5월 불교카툰신문 ‘만만(卍卍)한 뉴스’를 창간해 대표가 됐다. 》              어라, 왜 어라일까? “왜 그러지 하며 궁금해 하다 조금 엉뚱하게 궁금증이 풀릴 때 어∼라 하잖아요. 제가 화두를 참구하는 분위기가 강한 절집에 출가해서 그런지 이 말 자체가 화두처럼 느껴졌어요. 재밌다 싶어 어라로 정했죠. 그 캐릭터가 못생긴 저를 닮았다고도 해요. 하하.” 어라, 왜 만만한 뉴스일까? “불교박람회에 같이 참가한 작가들과 의기투합했어요. 불교적이면서도, 만화가 삽화로 있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 되는 웹툰을 한번 만들어 보자는 취지였죠. 만만(卍卍)은 부처님 가르침이 가득하다는 뜻과 한글로 어렵지 않게 쉽게 대할 수 있다, 두 가지 의미가 있죠.” 만화와 카툰 분야에서는 스님보다 훨씬 선배격인 배종훈(39) 똥개김작가(본명 김동범·36) 양경수 씨(30)가 참여했다. “우리, 너무 만만해 보이는 것 아닐까”라는 반대도 있었지만 그대로 만만한 뉴스가 됐다. 어라, 만만한 인기가 아닌데? 만만한 작가들은 수원 봉녕사에서 열리는 세계사찰음식대향연(10월 3, 4일)을 앞두고 비구니 스님들과 불화와 만화가 어우러지는 전시회(17일∼10월 4일)를 개최한다. “비구니 스님들이 찾아주는 덕에 먹고살아요. 어라를 귀엽다며 좋아하는 분이 많아요. 전시 제목은 우리 상징 문자인 만(卍)자를 살리고 음식 행사라는 것을 감안해 ‘만두전(卍do展)’으로 했어요.” 어라, 왜 만화를? 출가 전 만화가 지망생이었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스님의 말은 영 싱거웠다. 불과 3년 전 만화를 본격적으로 배웠단다. “여러 스님과 생활하다 홀로서기를 준비할 때 일본 작가 고이즈미 요시히로의 ‘우리는 모두 돼지’를 봤는데 큰 충격이었어요. 간단한 그림이 지닌 힘과 영향력이 대단했어요. 그래서 만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겠다고 결심했죠.” 어라, 만화와 수행은? 고교 시절부터 생사에 대한 고민이 많던 스님은 일찍 출가를 결심했지만 아직 인연이 아니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결국 동국대 선학과에 진학한 뒤 2004년 용주사에서 성관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고민하는 어라가 제 모습일 수도 있죠. 만화가 수행의 전부는 아니지만 한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라를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고 배우면서 삶과 수행을 배워야죠.”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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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전통 달라도 하나의 교회 정신 유지해온 건 큰 축복”

    《 1924년 9월 24일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장로교와 감리교 목회자들이 모여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올해로 90주년을 맞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출발점이었다. 이 단체는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 축을 이루며 한국 개신교와 사회발전에 기여해왔다. 현재 예장 통합, 감리교, 기장, 구세군, 성공회, 복음교회, 기하성, 정교회, 루터회(이상 약칭) 9개 교단이 가입해 있다. NCCK는 12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기독교회관에서 ‘한국교회와 국제관계, 그 역사와 변화’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이어 18일 오후 2시 서울 충정로 구세군아트홀에서 90주년 기념예배를 갖는다. 11일 기독교회관에서 30년 가깝게 NCCK와 인연을 맺어온 김영주 총무(62)와 회장인 박종덕 구세군 사령관(64)을 만났다. 》               ―90주년, 짧지 않은 세월이다. ▽김영주 총무(이하 김)=창립 초기 장로교와 감리교 목회자들이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조선에 하나의 교회를 만들자’라는 취지로 모인 게 씨앗이 됐다. 교단마다 선교 전통이 달라 분열이 있었지만 교회협이라는 하나의 기치 아래 하나의 교회정신을 유지해온 것은 큰 축복이다. ▽박종덕 사령관(이하 박)=총무님만큼 오랫동안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파송 임원과 실행위원으로 10여 년간 활동했고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NCCK는 출범 이후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 있어 왔다. NCCK는 다른 연합기구와 비교할 때 연합정신을 깨끗하게 구현했고, 비교적 잡음 없이 세상을 품어왔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김=1990년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으로 본격적으로 단체활동을 시작했다. ‘윤석양 이병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사건’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1993년 통일위원회에 있을 때의 남북 인간 띠잇기 운동도 잊을 수 없다. NCCK 사무실은 당시 군 인권 피해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가 양심선언을 하는 단골 공간이었다. NCCK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모여 힘을 얻고, 흩어지는 산실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있다. ▽박=회장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지만 큰일을 하지 못해 미안한 감도 있다.(웃음) ▽김=NCCK 회장은 한국 교회의 상징이다. 현재 한국 교회에 대한 비난은 신뢰의 부족 때문에 생긴다. 구세군만큼 절제 있는 교단은 드물다. 작지만 강한 교단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낮은 행보가 화제가 됐는데 구세군은 항상 낮은 곳에서 사랑을 실천해왔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면 주변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만 계속 낮은 곳에 있으면 잘 안 보이는 법 아니냐. 하하 ▽박=교황 방한을 계기로 종교계를 포함한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부분이 많다는 것을 절감했다. 빛 없이, 이름 없이 낮은 곳에서 일하는 분이 적지 않지만 아직도 자신을 낮추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부분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 교황의 행보가 큰 관심을 받은 것은 그만큼 한국 교회가 우리 사회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교회의 위기는 존경받지 못하는 목회자의 위기에서 시작됐다는 지적도 있다. ▽박=부인하기 어렵다. 개신교는 교단도 너무 많고 중앙집권적이지 않다. 목회자들이 무슨 짓을 하든, 사회적으로 몰매를 맞아도 그대로 가는 경우도 있다. 목회자의 신뢰 상실은 교회의 큰 아픔이다. 한국 교회가 새로워지는 일에는 목회자 갱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김=요즘 한국 교회가 누리고 있는 성장은 우리 목회자가 잘해서가 아니라 신앙의 선배들이 눈물나게 노력한 결과다. 우리가 지금 욕을 먹고 있다면 후배 목회자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는 초라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이후 NCCK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김=사회가 교회에 요구하는 투명성이나 민주적 절차 등의 기준은 강화됐는데 교회와 NCCK가 그 변화에 따르지 못했다. 불편한 구석이 있더라도 교회 개혁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개인적 영성뿐 아니라 집단적인 차원에서 모범적인 개신교인, 목회자상이 정립돼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분이 많은데 개신교인 하면 이미지가 나쁜 경우도 있다. ▽박=NCCK의 목소리가 과거처럼 크게 들리지 않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안고 있는 문제 때문이다. 우리가 어떠한 이슈를 주장해도 옛날만큼 귀담아 듣지 않고 있다. 주변을 변화시키려면 스스로 거룩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주장을 해도 힘이 없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다. ▽박=세속의 권력이나 힘이 교회 속으로 너무 많이 들어와 부패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진정 있어야 할 것은 영성, 신앙의 힘이다. ▽김=지금 우리 상황이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 상황과 비슷한 것 아닌가. 교회 세습, 금권 타락 선거를 통한 성직 매매, 대형교회 건축이 사회적으로 비판받고 있다. 교회가 사회를 위해 써야 할 물질이나 가치를 내부를 살찌우는 데 써버리고 있다. 한국 교회도 500년 전처럼 대단한 개혁의 몸부림을 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가 부패했다고 해도 남은 그루터기를 살려야 한다. ▽박=종교개혁은 루터가 도화선에 불을 댕겼지만 개인뿐 아니라 여러 사람, 나아가 시대가 공감한 것이다. 개신교의 출발점이자 가톨릭 갱신의 계기가 됐다. 오늘날에도 그 개혁의 힘이 필요하다. 500주년을 앞두고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교회 연합과 갱신을 시작해야 한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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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식 기자의 뫔길]스님의 별명 속엔 그 삶의 궤적이…

    30년 된 승복을 기워 입는 ‘누더기 스님’으로 알려진 부산 영일암 주지 현응 스님이 최근 동국대에 1억 원을 기부해 화제가 됐습니다. 현응 스님은 2007년에도 사찰 소유지가 수용되면서 받은 보상금 중 1억 원을 동국대 일산불교병원 발전을 위해 기부했고 지난해에도 사찰의 모든 재산 6억 원을 인재불사에 써달라며 같은 대학에 맡겼습니다. 스님의 또 다른 별명은 ‘4무(無) 스님’입니다. 휴대전화와 신용카드, 자동차, 인터넷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것입니다. 스님을 법명이 아닌 별명으로 부르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길 수도 있지만 옛 어른 스님들의 별명에는 삶의 한 자락이 담겨 있어 친근하기도 합니다. 동산 스님은 뛰어난 법문으로 ‘설법제일(說法第一)’, 성철 스님은 주로 머물렀던 가야산과 서릿발 같은 선풍으로 가야산 호랑이였죠. 현재 해인총림 방장인 법전 스님은 한번 참선에 들어가면 꼼작 않는다고 해서 절구통 수좌, 쌍계총림 방장 고산 스님은 젊은 시절 매섭게 시시비비를 따지는 불같은 성격 때문에 ‘땡비(땅벌)’로 불렸습니다. 요즘 스님들의 별명에서도 그들이 추구하는 포교와 수행의 방편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신도 30여만 명으로 국내 최대 사찰인 대한불교천태종 부산 삼광사 주지 무원 스님의 별명은 항상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다녔다는 복덕원만(福德圓滿)의 상징, 포대화상(包袋和尙)입니다. 불교판 산타클로스죠. 넉넉한 외모와 원만한 성품, 다문화가정을 비롯한 소외계층을 돕는 데 열성적인 무원 스님의 별명으로는 제격입니다. 한국불교태고종 충북 옥천 대성사 주지 혜철 스님은 ‘중매쟁이 스님’으로 불립니다. 결혼이야말로 종교를 뛰어넘는 국가 대계(大計)라는 지론으로 2005년부터 청춘사업에 뛰어들어 1000여 쌍의 인연을 맺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성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cafe.daum.net/dasungsa)에는 900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2년간 8000km를 달리며 모금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도와온 진오 스님은 ‘철인 스님’입니다. 스님들은 출가할 때 은사 스님으로부터 대개 수행자로서 살아야 할 방향이 담긴 법명을 받습니다. 법명이 삶의 목표라면, 별명은 그 삶의 궤적인 셈이죠. 그런데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별명은 뭘까요? 다음에 또 얘기하죠.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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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홍 스님 “이 시대 불교의 역할은 중생의 고통을 끌어안는 것”

    《 아무로 몰랐다. 초록색 표지의 작은 잡지가 불교 현대화와 대중화의 큰 씨앗이 되리라는 것을.도심포교의 선구자로 불리는 광덕 스님(1927∼1999)은 1974년 11월 잡지 ‘불광(佛光·사진)’을 창간했다. 몇몇 도반의 손을 빌리긴 했지만 스님이 글을 쓰고 편집한 ‘1인 잡지’에 가까웠다. 불광의 창간은 사찰을 중심으로 스님들의 법문에 의지하던 당시 불교 포교에서 볼 때 획기적인 변화였다. 스님이 뿌린 이 씨앗은 불광법회로 이어졌고, 다시 1979년 불광출판사 설립과 1982년 최초의 도심 포교당 불광사 창건으로 꽃을 피웠다. 4일 서울 송파구 백제고분로 불광사에서 광덕 스님의 상좌로 불광 운동을 계승해온 회주 지홍 스님(62)을 만났다. 》―불광 운동이 40년을 맞는다. “1970년대 중반은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조선의 유교 문화와 광복 이후 개신교 확산으로 불교는 암흑기를 맞았다. 큰 위기의식을 느낀 은사는 불교가 본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잡지 창간이 그 출발점이었다.” ―불광 운동의 의미는 어떻게 평가하나. “불광이 내건 목표는 ‘불교의 현대화 생활화 대중화’였다. 잡지가 다시 자발적인 법회로 이어졌다. 1975년 10월 서울 종로 대각사에서 열린 법회에 직장인 중심으로 43명이 참석했다. 지금 불광사 신도가 1만 가구인 만큼 적지 않게 성장했다.” 불광사는 불광 창간 40주년을 기념해 14일부터 매주 일요일 대표적 선승인 고우, 혜국, 지환, 무여 스님을 초청한 법회를 개최한다. 지홍 스님은 1971년부터 88년까지 은사를 시봉(侍奉·스승을 모시는 것)했다. 그럼에도 그의 기억에 광덕 스님은 항상 엄격하고 철저했던 스승으로 남아 있다. ―18년, 최장 시봉 아닐까. “공식 기록은 없지만 그렇지 않을까. (웃음) 17세 때 범어사로 은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상좌 필요 없다’고 말하는데 찬바람이 쌩쌩 났다. 강원에서 교육받다 시봉할 사람 없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시봉 필요 없다’고 하더라. 흐흐, 그런데 18년 모셨으니.” ―그래도 18년을 어떻게…. “뭐, 결국 쫓겨났다. 1987년 유력자의 어머니가 불광사에 왔는데 잘 모시지 못했다는 소리 듣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덕분에 광명에 금강정사를 창건했고 홀로서기에 들어갔다.” ―결국 다른 상좌들이 아니라 스님이 불광사를 지키고 있다. “못생긴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하지 않나.(웃음)” ―앞으로 불광 운동의 방향은…. “당시와는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는 사회 윤리적 입장에서 불교가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 현 시대 중생들의 고통을 끌어안는 역할이 중요하다.” ―그럼, 세월호 참사를 포함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물론 세월호 문제는 진상규명과 함께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처해야 한다. 종교계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럴 경우 다른 세력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다. 이래서는 안 된다. 더디지만 물질이 아닌 생명 위주의 가치를 존중하도록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가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다.” ―좋아하는 말은…. “그런 말 별로 없다. 참, 내 통장에는 돈이 없다. 불사나 다른 분들 돕는 데 썼다. 마음을 비우는 공심(空心)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길이다. 스님이나 일반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야 앞으로 살 수 있는 길이 보인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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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식 기자의 뫔길]이영훈 체제의 한기총, ‘두기총’ ‘세기총’ 안되려면…

    보수적 성향의 개신교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최근 몇 년간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려왔습니다. ‘두기총’ 또는 ‘세기총’, 심지어 ‘네기총’까지. 내부 갈등과 대표회장을 둘러싼 분열로 소속 단체와 교단이 잇달아 탈퇴했기 때문입니다. 2일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담임목사(60)가 이 단체의 제20대 대표회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이 목사는 당선 인사에서 “역대 한기총 회장들이 지키려 했던 설립 정신을 적극 지지 수용하면서 맡겨진 직무를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목사께는 먼저 축하 인사를 보냅니다. 그러면서도 노파심에 한기총을 향한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만 역대 한기총 회장이 지켜온 설립 정신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알려진 대로 한기총은 개신교를 넘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아온 고 한경직 목사(1902∼2000)가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아 출범했습니다. 진보적 신학관으로 정부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워온 당시 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현재 NCCK)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 출범의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NCC에 대한 불만 때문인지 한기총은 최대 교단인 합동, 통합의 가입으로 개신교내 최대 단체가 됐습니다. 대표회장으로는 초대 박맹술 목사를 시작으로 14·15대 엄신형, 16대 이광선, 9·10·17대 길자연, 18·19대 홍재철 목사까지 15명의 목회자가 거쳐 갔습니다. 하지만 NCC와 함께 새의 양 날개로 자리 잡은 한기총은 어느 순간 이른바 ‘교단정치’의 표적이 됐습니다. 굳이 14대부터 실명을 거론한 것은 이때부터 대표회장을 ‘기독교 대통령’으로 부르며 벌이는 이전투구가 심각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만의 기독교 대권을 향한 욕망이 추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선거 때마다 목회자와 교단 갈등, 금권(金權) 선거, 폭로, 소송의 악순환이 계속됐으니까요. 심지어 대표회장이 연임을 위해 정관을 바꿨고, 길자연 홍재철 목사는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했습니다. 이영훈 목사께는 많은 숙제가 있습니다.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를 둘러싼 갈등도 있고, 만신창이가 된 한기총의 현안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기총이 다시 서려면 한경직 목사의 존경받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목회자들을 향한 최소한의 사회적 기준을 지키는 한기총을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기독교 대통령이 아니라 최고의 머슴이 됐다는 낮은 자세야말로 그 출발점이 아닐까 합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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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거운 추석]와! 화려한 뮤지컬에 ‘황홀’… 아∼ 잔잔한 드라마에 ‘감동’

    넉넉한 추석 연휴, 하루 정도 시간을 내 공연장을 찾는다면 풍요로운 추억 하나를 더할 수 있다. 날씨도 선선해 나들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할인해주는 공연도 많아 가격 부담도 조금은 덜 수 있다. 흥겨운 노래, 탄탄한 이야기 귀에 익숙한 노래와 화려한 무대를 즐기고 싶다면 뮤지컬 ‘프리실라’가 딱이다. ‘이츠 레이닝 멘(It’s raining men)’ ‘트루 컬러스(True colours)’ 등 히트 팝송을 엮어 만들었다. 드래그퀸(여장남자)인 틱이 별거 중인 아내가 일하는 호텔에서 쇼를 하기 위해 버나뎃, 아담과 함께 버스 ‘프리실라’를 타고 간다. 틱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8세 아들이 자신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걱정한다. 500여 벌의 의상이 등장하는 총천연색 무대는 눈을 즐겁게 만든다. 조성하 고영빈 김다현 마이클리 이지훈 이주광 출연. 28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 13세 이상 관람. 5만∼13만 원(7∼10일 공연은 40% 할인). 1577-3363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2005년 초연 이후 높은 완성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무료 병원에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환자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반전에 가슴이 찡해진다. 이현 한세라 양경원 라준 박세웅 출연. 2015년 1월 4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4만5000원(6∼10일 공연은 50% 할인). 02-744-7090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초록 마녀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위키드’는 온 가족이 함께 보기 좋다. 마법 같은 무대와 철학적인 이야기로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른에게도 감동을 선사한다. 김선영 박혜나 김소현 김보경 남경주 출연. 10월 5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 6만∼14만 원(7∼10일 공연은 30% 할인), 1577-3363 매혹적인 재즈 음악과 섹시한 춤이 어우러진 뮤지컬 ‘시카고’도 6∼9일에는 20∼30% 할인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최정원이 벨마 역, 아이비가 록시 역을 단독으로 맡아 탄탄한 연기와 춤 솜씨로 무대를 꽉 채운다. 28일까지 서울 디큐브아트센터, 5만∼12만 원. 02-577-1987꿈과 인생을 말하다 연극 ‘이기동체육관’은 잊고 살았던 꿈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낡은 복싱체육관을 한 청년이 찾는다. 그는 관장 이기동을 숭배했던 팬이자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 관장 이기동은 아들을 복싱으로 잃은 후 좌절한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복싱대회에 몰래 나가려던 관장의 딸 연희를 둘러싸고 소동이 벌어진다. 가족이 함께 보면 30% 할인해준다. 김수로 강성진 문진아 박은미 김동현 류경환 출연, 14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마당 2관, 4만 원. 02-6227-0301 죽음을 앞둔 남편과 이를 지켜보는 아내를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잔잔하고 진솔하게 그린 연극 ‘슬픈 연극’도 공연된다. 극단 차이무 민복기 대표가 극본을 쓰고 연출했다. 강신일-남기애, 김학선-김정영, 김중기-이지현이 커플을 이뤄 차례로 공연한다. 21일까지는 강신일 남기애의 무대다. 11월 2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3만5000원. 02-762-0010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보고싶던 그 전시 이번 추석에 꼭▼20세기, 위대한 화가들 -르누아르에서 데미안 허스트까지 모네, 르누아르, 샤갈, 피카소, 마티스, 데미안 허스트 같은 유럽의 거장과 앤디 워홀, 키스 해링 같은 미국의 팝아티스트까지 서양 미술사의 빛나는 별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대형 전시다. 작고한 거장부터 쟁쟁한 현역들까지 작가 53명의 작품 104점을 선보인다. 인상주의 야수주의 초현실주의 앵포르멜 옵아트 등 시대를 이어온 미술계의 변화를 11개 섹션으로 구성했다. 1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 8000∼1만3000원. 1544-1555매트릭스: 수학 순수에의 동경과 심연 지난달 개최된 서울세계수학자대회를 기념해 열리는 전시. 그래픽디자이너 슬기와 민이 수능 수리문제 문항을 이미지로 재해석한 ‘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영역’, 수학과 교수가 30년 넘게 써온 노트 10권을 확대해 방 하나에 도배한 송희진 작가의 ‘진리의 성’ 등이 전시된다. 내년 1월 1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3, 4전시실. 추석 연휴엔 무료. 02-3701-9500올해의 작가상 2014 구동희(40) 김신일(43) 노순택(43) 장지아(41) 등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 4명의 전시. 11월 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1, 2전시실과 중앙홀. 추석 연휴엔 무료. 02-2188-6000▼보고싶던 그 공연 이번 추석에 꼭▼블루문 페스티벌 클래식과 판소리, 국악이 어우러지는 추석맞이 공연 ‘블루문 페스티벌’이 6, 7일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첫 테이프는 6일 오후 7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양방언이 ‘프렌즈 문라잇 스토리’를 주제로 끊는다. 7일 오후 2시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인 이자람이 판소리 다섯대목의 하이라이트와 ‘사천가’의 주요 장면을 보여준다. 같은 날 오후 7시 공연에선 ‘국악계의 아이돌’ 송소희가 첫 콘서트 무대를 연다. 관람료는 2만2000∼12만 원. 1544-1555국립국악원 한가위 특별공연 8일 오후 8시 국립국악원 연희마당에서는 한가위 특별공연이 열린다. 1부에선 풍년을 기뻐하는 ‘경풍년’ 연주를 시작으로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안숙선 예술감독과 소리꾼 남상일이 꾸미는 단막 창극 ‘박타령’ 무대가 이어진다. 경기·서도민요 ‘오봉산타령’ ‘술타령’, 남도 민요 ‘팔월가’ 등 추석을 주제로 하는 소리가 박을 타며 펼쳐진다. 2부는 8개 팀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너도나도 아리랑 부르기’ 본선 무대가 이어진다. 국립국악원 무용단과 민속악단이 꾸미는 강강술래와 판굿도 공연된다. 관람료는 무료, 선착순 입장. 02-580-3300}

    • 201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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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승 스님 “세월호法, 정쟁으로 변질돼선 안돼… 유가족도 국민에게 짐을 나눠 주길”

    국내 최대 불교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60·사진)이 31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 여야의 국회 내 대화를 촉구하고 유족들에게도 국민들에게 짐을 나눠달라고 요청했다. 자승 스님은 이날 발표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호소문’에서 “진실 규명과 국가 혁신을 통해 안전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로 그 첫걸음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승 스님은 “여야는 두 번의 합의와 번복, 장외투쟁 등으로 국민들을 혼란과 갈등에 빠뜨리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이 정쟁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며 “여야는 장외가 아닌 국회에서 진지하고 끊임없는 대화와 협상을 해야 한다. 국민들이 외면하는 정쟁을 접고 여야 간 직접 대화에 나서 책임 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대표회장을 맡고 있는 자승 스님은 종교지도자들과 함께 지난달 21일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31일 호소문에는 민생법안의 조속한 처리와 유가족들에 대한 요청도 담겨 있다. 자승 스님은 “지금은 나라가 안팎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다. 세월호 특별법과 함께 민생법안 처리도 논의해야 한다”면서 “그런 국회여야 정상적이며 그러할 때 국민들이 외면하지 않고 힘을 모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유가족도 세월호 특별법 문제가 국회에서 해결될 수 있도록 여야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로운 방안을 모색해 주기를 바란다”며 “마지막까지 유가족과 함께하겠다는 국민들의 거룩한 마음을 믿고 짐을 나누어 주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자승 스님은 또 “세월호 사고로 큰 고통과 희생이 있었지만 언제까지 온 국민이 비탄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다”며 “이제는 국민 모두가 자기 자리와 일상으로 돌아가 건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힘을 함께 모아야 한다. 그것이 세월호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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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식 기자의 뫔길]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기고 간 숙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4박 5일의 방한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긴 울림은 진행형입니다. 교황이 방한 기간 중 내내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고,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왜 충격일까요? 그런 모습이 우리 종교인들에게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 그런 것 아닌가 합니다. 심지어 종교를 담당하는 기자들조차 한 해 몇 차례를 빼면 고위 성직자들을 만나기 어려우니까요. 평신도와 비신앙인의 경우 TV 화면을 통해 고위 성직자들이 대통령과 식사를 하거나, 중요한 교계 행사에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가끔 보겠죠. 이런 현실에서 세계 가톨릭계 수장인 교황의 낮은 행보는 국내 종교계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교황의 방한은 가톨릭을 포함한 종교계, 특히 고위 성직자들에게 큰 숙제를 남겼습니다. 교황을 향한 환호는 우리 종교인들이 보통 사람들 곁에 있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냉정히 말해, 그 환호도 가톨릭 자체가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는 ‘슈퍼스타의 개인기’를 향한 것이긴 합니다. 지금도 교황청은 여기저기서 ‘물새는 방주’로 비유되고 있으니까요. 바티칸공의회 이후 계속된 개혁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을 둘러싼 재정 스캔들, 일부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남성 위주의 폐쇄적인 성직자 시스템을 둘러싼 논란 등 각종 현안에 직면한 것이 가톨릭의 현 주소입니다. 교황의 방한을 지켜본 종교인들은 스스로 종교지도자들의 리더십 부재를 무엇보다 큰 아픔이자 그늘로 꼽고 있습니다. 성철 스님이나 한경직 목사, 김수환 추기경처럼 이념과 계층을 뛰어넘어 존경받을 만한 종교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열광적으로 지지받지만, 다른 쪽에서는 비난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970, 80년대에 비해 세상이 다양해졌다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그만큼 그분들이 보여준 삶과 언행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비천한 여종들의 다툼에 “모두 옳다”며 맞장구를 쳤다는 황희 정승의 고사가 떠오릅니다. 이 시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덕목은 황희처럼 큰 귀와 열린 마음 아닐까 합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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