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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메피스토는 다섯 손가락을 미끄러지듯 오므렸다 펴고 혀를 날름거렸다. 턱 끝을 휘휘 젓던 그는 “인간들이 자기 자신에게 어떻게 고통을 주는지가 내 관심사”라고 말하며 기괴한 웃음으로 낄낄거렸다.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 중인 연극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 역을 맡은 배우 박해수(42)는 살아 있는 뱀과 같았다. 독일 문호 괴테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연극 ‘파우스트’는 평생을 학문에 바친 지식인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와 계약을 맺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삶에 회의를 느낀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힘을 빌려 인생의 쾌락을 맛보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영혼을 상실하면서 괴로워한다. 박해수는 ‘악’의 무게감과 경박함을 매끄럽게 오가며 광기를 드러냈다. 그가 연극 무대에 오른 건 ‘2018 이타주의자’ 이후 5년 만이다. 첫 등장부터 방대한 대사를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그는 또렷한 발성과 발음으로 막힘없이 소화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수리남’을 통해 글로벌 배우로 거듭난 그는 음흉하고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메피스토를 그려내며 무대를 압도했다. 노년의 파우스트 역은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은 배우 유인촌(72)이 맡았다. 그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적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낸 것은 물론이고, ‘쾌락과 욕정, 선조들의 지식’ 중 무엇도 끝내 손에 쥐지 못한 파우스트가 느끼는 무력감을 대사에 응축시켜 카리스마 있게 표현해냈다. 메피스토를 만났을 때의 환희와 두려움을 찰나에 교차하는 눈빛으로 담아낸 점도 인상적이었다. 젊어지는 묘약을 먹고 청년이 된 2막의 파우스트는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로건 리 역으로 입지를 다진 배우 박은석(39)이 연기했다. 양정웅 연출가는 변화무쌍한 무대 연출로 딱딱한 고전을 넘어 관객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패널로 투사되는 무대 배경은 신비로운 천상 세계에서 해골 가득한 마녀의 부엌 등으로 옮겨가며 초현실적인 감각을 선사했다. 타락과 혼돈이 절정에 달하는 장면에선 새빨간 조명을 사방에서 쏘고 천장에 달린 12개의 팬(fan)이 돌아가며 아수라장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일부 장면에선 배우들이 객석 통로에 깜짝 등장해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4월 29일까지. 4만4000∼9만9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56·사진)이 국립예술단체장으로는 처음으로 네 번째 연임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5일 강 단장을 재임명했다고 밝혔다. 임기는 3년이다. 2014년 취임한 강 단장은 이번 연임으로 2026년까지 총 12년간 국립발레단을 이끌게 됐다. 강 단장은 서울 서초구 국립예술단체공연연습장에서 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어깨가 참 무겁다”며 “국립발레단 고유의 색깔로 ‘K발레’를 알리고 해외 선진 발레단과 겨루는 데 손색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8월 방한하는 세계적인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미국)와 함께 공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강 단장은 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아시아인 최초로 입단했다. 해외에서 30년가량 구축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립발레단에 이리 킬리안, 우베 숄츠 등 해외 유명 안무가들의 작품을 도입했다. 2015년부터는 단원들이 안무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KNB 무브먼트 시리즈’를 기획해 운영하고 있다. 일각에선 강 단장의 ‘역작’이라고 불릴 작품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10년간 정기공연에서는 ‘호두까기인형’ ‘백조의 호수’ 등 일부 작품을 반복 공연하고 있다. 여기에 강 단장이 ‘고집쟁이 딸’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을 추가했지만 대형 화제작은 없었다. 해외 안무가가 국립발레단을 위해 만든 신작도 ‘마타하리’뿐이었다. 앞으로 3년의 계획에 대한 질문에 강 단장은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는 “유럽 등 해외 무용단에선 새 작품을 위해 3년 이상 시간을 주는 것과 달리 우리는 1년 주기로 작품을 준비해왔다”며 “존 노이마이어의 방한을 시작으로 머릿속의 계획을 매년 현실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악마 메피스토는 다섯 손가락을 미끄러지듯 오므렸다 펴고 혀를 날름거렸다. 턱 끝을 휘휘 젓던 그는 “인간들이 자기 자신에게 어떻게 고통을 주는지가 내 관심사”라며 기괴한 웃음으로 낄낄거렸다. 4일 공연된 연극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 역을 맡은 배우 박해수(42)는 살아있는 뱀과 같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수리남’ 등을 통해 대세배우로 거듭난 박해수는 이번 작품에서 음흉하고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독일 문호 괴테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연극 ‘파우스트’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무대에 올랐다. 평생을 학문에 바친 지식인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와 계약을 맺음으로써 벌어지는 ‘비극 제1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모두가 자신을 현자라고 불러줌에도 인생에 회의를 느낀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힘을 빌려 인생의 쾌락을 맛보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영혼을 상실하면서 괴로워한다. 스크린과 브라운관, 무대를 넘나들며 연기력을 입증한 박해수는 ‘악’의 무게감과 경박함을 시계추처럼 매끄럽게 오가며 광기를 피부로 느끼게 했다. 2007년 연극 ‘최강 코미디 미스터로비’로 데뷔한 뒤 연극계 간판 배우로 활약했던 박해수가 연극 무대로 돌아온 건 ‘2018 이타주의자’ 이후 5년 만이다. 연극 ‘프랑켄슈타인(2014)’에서 분노와 모멸감이 치미는 괴물을 연기했다면 ‘파우스트’에선 비열하고 무자비한 괴물로 변신했다. 첫 등장부터 방대한 대사가 빠른 속도로 치고 나왔지만 또렷한 발성과 발음으로 막힘없이 소화해냈다. 노년의 파우스트 역은 배우 유인촌(72)이 맡아 악마와 호흡을 맞췄다. 데뷔 51년차 베테랑 배우인 만큼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적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냈다. 그는 “쾌락과 욕정, 선조들의 지식” 중 무엇도 끝내 손에 쥐지 못한 파우스트가 느꼈을 무력감을 대사 한줄 한줄에 응축시켜 카리스마 있게 표현해냈다. 메피스토를 만났을 때의 환희와 두려움은 찰나에 교차하는 눈빛으로 담아냈다. 젊어지는 묘약을 먹고 청년이 된 2막의 파우스트는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로건 리 역으로 입지를 다진 배우 박은석(39)이 연기했다.풍성한 볼거리로 고전극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춘 공연은 원작을 향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연출은 연극 ‘코리올라누스’ ‘페르 귄트’ 등 고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온 양정웅이 맡았다. 원전 해석에 무게를 둔 양 연출은 공연 시간 165분에 걸쳐 파우스트 내면 갈등의 기틀을 견고히 쌓아올렸다.고전 특유의 딱딱함을 완벽히 벗어던지진 못했지만 변화무쌍한 무대 연출로 관객 몰입도를 높였다.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패널로 투사되는 무대 배경은 극 초반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천상에서 파우스트의 신비로운 서재로, 해골 가득한 마녀의 부엌으로 옮겨가며 초현실적인 감각을 선사했다. 타락과 혼돈이 절정에 달하는 장면에선 새빨간 조명을 수직과 수평, 사선으로 길게 쏘고 천장에 달린 12개의 팬(fan)을 가동해 아수라장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파우스트가 탐욕에 휩싸일 땐 정령 역 배우들이 그 주위에서 기괴한 춤을 추며 눈길을 모았다. 배우들이 프로시니엄에 갇혀있지 않고 무대를 넓게 사용한 것도 극에 명랑함과 입체감을 더했다. 일부 장면에선 배우들이 객석 통로에 깜짝 등장하며 관객 주의를 재차 환기시켰다. LED 패널로 송출되는 실시간 백스테이지 연기는 ‘파우스트’의 파격적인 볼거리다. 파우스트가 사랑하는 여자 그레첸의 방에 메피스토와 숨어들어 보석함을 넣어놓는 영상은 실제 배우들이 무대 뒤 마련된 세트장에서 라이브로 연기하는 모습을 동시 송출한 것이다. 4월29일까지, 4만4000∼9만9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고전 원작에서 조연에 그쳤던 인물들이 무대 위 주인공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국립발레단은 1869년 세계 초연된 발레 ‘돈키호테’ 원작에서 춤을 추지 않고 마임으로만 등장하던 돈키호테를 앞세웠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2∼16일 공연되는 신작은 돈키호테가 원작 주인공인 키트리와 바질 못지않게 이목을 끌 수 있도록 안무와 연출을 재구성했다. 원작에 없던 젊은 시절의 돈키호테 에피소드를 추가하고 둘시네아와 파드되(2인무)를 추는 장면을 추가한 것. 돈키호테 역 무용수는 기존 공연에선 부츠를 신었지만, 신작에선 발레슈즈를 신는다.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는 11일 창극 ‘흥보 마누라 이혼 소송 사건’이 개막한다. 유명 판소리 ‘흥보가’에서 흥보 대신 흥보의 아내를 조명한 작품이다. 원작에선 이름조차 없었던 흥보 아내를 독립적인 주체로 묘사하고, 가부장적 남편 흥보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해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돼 올해 2월 공연된 그랜드오페라단의 ‘피가로의 이혼’은 모차르트 원작 ‘피가로의 결혼’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정원사의 딸 바르바리나를 피가로, 수잔나와 함께 주인공으로 세웠다. 이처럼 기존 작품의 조연을 주연으로 내세우는 전략은 고전의 명망과 친숙함에 신선함을 더해 관객의 주목도를 높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현아 국립발레단 홍보마케팅팀장은 “1991년 마리나 콘드라티예바 안무 버전으로 국내 초연한 후 돈키호테가 무대 전면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호기심을 자극해 관객층을 넓히고 이야기에 대한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자체적으로 변형했다”고 말했다. 안지환 그랜드오페라단장은 “완전히 낯선 소재로는 관객에게 다가가기 어렵지만 고전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기발한 서사를 제시하면 관객의 눈길을 끌기에 유리하다”고 했다. 공연계 주요 관객인 젊은층의 눈높이에 맞추는 효과도 있다. ‘흥보 마누라…’의 연출을 맡은 최용석 감독은 “공연 시장을 주도하는 관객층이 20, 30대 여성인 만큼 여성 서사 등 시대적 흐름을 잘 반영한 작품에 대한 수요가 많다”며 “현시대와 맞지 않는 내용을 뒤엎는 공연일수록 젊은 관객의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배우 조승우가 연기한 유령은 사랑과 연민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인간적인’ 존재였다. 조승우는 지난달 30일 부산 남구 드림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주인공 유령 역을 맡으며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 작품을 처음 연기했다. 그는 “‘내겐 너무 큰 옷인가’ 하는 두려움과 편견 어린 시선에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동료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용기를 준 덕에 해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후 세계 188개 도시에서 관객 1억4500만 명이 관람한 대작이다.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작곡가 웨버가 뮤지컬로 재탄생시켰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1988년 첫선을 보인 뒤 사상 최장기간(35년) 공연됐다.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은 2010년 이후 13년 만이다. 유령은 흉측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천재 음악가다. 신인 여가수 크리스틴을 향한 깊은 사랑, 그리고 사랑이 이뤄지지 않자 분노와 연민을 표현하는 것이 관건. 1일 공연에서 1막 초반 욕망과 권위 의식으로 점철된 모습을 보여준 조승우는 2막 끝 장면에서 한껏 굽은 등으로 눈물을 쏟아내며 감정의 낙차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넘버 ‘그 밤의 노래(The Music of the Night)’를 부를 땐 입꼬리 모양과 숨소리까지 단어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일그러진 사랑을 노래했다. 다만 광기 어린 면모는 ‘지킬 앤 하이드’에서의 연기가 연상됐다. 유령이 부르는 넘버엔 까다로운 강약 조절과 압도적 성량이 요구되는 만큼 조승우는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며 최적의 목소리를 연구했다. 이번에 같은 배역을 맡은 김주택과 전동석, 서울 공연에서 합류하는 최재림은 성악을 전공했지만 조승우는 연기 전공자다. 신동원 에스앤코 프로듀서는 “조 배우는 자기만의 색이 담긴 유령을 찾아내고자 공연 확정 직후부터 개별적으로 발성법과 목 관리법을 바꿔보는 등 치열한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조승우는 전반적인 보컬을 정비했음에도 일부 곡에서 고음 부분이 흔들리는 등 노래를 소화하는 것이 다소 버겁게 느껴졌다. 시시각각 바뀌는 웅장한 무대는 관객을 압도했다. 내한 공연과 달리 유령이 공중에서 천사상을 탄 채 노래하고, 무대 세트 꼭대기에 서서 괴로워하며 샹들리에 줄을 끊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유령이 관객 등 뒤에서, 옆에서 말하는 듯한 입체적 음향을 통해 ‘언제나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소름 끼치는 면모를 강조했다. 이번 공연을 위해 대형 컨테이너 20대 분량의 세트가 해외에서 운송됐다. 1막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화려한 샹들리에, 무대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린 총 2230m 길이 장막을 비롯해 모두 1988년 제작된 오리지널 세트다. 백형근 기술감독은 “샹들리에가 기존보다 정교하고, 설치 지점이 높아 더욱 아찔하게 추락한다”고 했다. 이 작품은 오리지널 제작사가 캐스팅에 참여해 배우를 까다롭게 뽑기로 유명하다. 이번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9개월간의 오디션 끝에 결정됐다. 라울 역은 송원근과 황건하가 돌아가며 연기한다. 크리스틴 역엔 신예 배우 손지수, 송은혜가 발탁됐다. 지혜원 뮤지컬 평론가는 “역대 유령들과 비교해 조승우는 ‘위대한 음악의 천사’이기에 앞서 외롭고 상처받은 영혼의 인간적 면모를 잘 풀어냈다”며 “웨버의 전성기를 이끈 작품인 만큼 시대를 뛰어넘는 견고함이 무대를 압도했다”고 말했다. 6월 18일까지 부산에서 공연된 뒤 7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부산 공연 7만∼19만 원.부산=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조승우가 연기한 유령은 사랑과 연민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인간적인’ 존재였다. 1일 부산 남구 드림씨어터에서 공연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배우 조승우는 주인공 유령 역을 맡으며 ‘뮤지컬계의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 작품에 처음 입성했다. 그는 “‘내겐 너무 큰 옷인가’ 하는 두려움과 편견 어린 시선에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동료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용기를 준 덕에 해낼 수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이 4차례의 프리뷰 공연을 거쳐 지난달 30일 개막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이후 전 세계 188개 도시에서 관객 1억4500만 명을 모은 대작이다.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작곡가 웨버가 뮤지컬로 재탄생시켰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1988년 첫선을 보이며 최장기간(35년) 공연된 작품으로 꼽힌다. 한국어 공연은 2001년 초연, 2009~2010년 재연 이후 13년 만이다. 조승우가 맡은 유령 역은 흉측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천재 음악가다. 신인 여가수 크리스틴을 향한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데서 느끼는 증오와 연민 등을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다. 조승우가 7년 만에 도전한 새 뮤지컬 배역이다. 그가 2013년부터 10년간 출연한 뮤지컬 작품은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스위니토드’, ‘헤드윅’ 등 4개뿐이다. 조승우는 2001년 한국어 공연 초연 당시 최종 오디션까지 봤으나 영화 ‘후아유’ 촬영 일정이 겹치며 결국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이번 부산 공연에서 조승우가 출연하는 회차는 전부 매진된 상태다. 2000년 영화 ‘춘향뎐’으로 데뷔한 이후 23년간 무대와 스크린,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쌓아온 조승우의 연기력은 이번 무대에서도 돋보였다. 1막 초반 욕망과 권위로 점철된 모습을 보여준 그는 2막 끝 장면에서 한껏 굽은 등으로 눈물을 쏟아내며 감정의 낙차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넘버 ‘The Music of the Night’을 부를 땐 입꼬리의 모습과 숨소리가 단어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일그러진 사랑을 노래했다. 다만 광기 어린 면모가 ‘지킬 앤 하이드’에서의 연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유령이 부르는 넘버엔 까다로운 강약 조절과 압도적 성량이 요구되는 만큼 조승우는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며 최적의 목소리를 연구했다. 이번에 같은 배역을 맡은 김주택과 전동석은 각각 베르디국립음악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성악을 배운 정통 클래식파 출신이다. 서울 공연에서 합류하는 최재림 역시 학부에서 성악을 전공했지만 조승우는 연기 전공자다. 신동원 에스앤코 프로듀서는 “조 배우는 자기만의 색이 담긴 유령을 찾아내고자 공연 확정 직후부터 개별적으로 발성법과 목 관리법을 바꿔보는 등 치열한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무게감 역시 유령 역을 표현하는 데 일조했다. 원작에서 유령은 20대인 크리스틴과 나이 차가 많은 40대 안팎의 남성으로 묘사된다. 조승우(43)는 역대 국내 유령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초연 유령을 맡았던 배우 윤영석과 김장섭은 당시 각각 30세, 34세였고 재연에서의 양준모, 홍광호 모두 한참 젊은 20대 후반이었다.‘오페라의 유령’은 오리지널 제작사가 캐스팅 과정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해 배우를 까다롭게 뽑기로 유명하다. 이번 캐스팅도 9개월간의 오디션 끝에 결정됐다. 라울 역은 뮤지컬 ‘레드북’, ‘이프덴’ 등에서 활약한 송원근과 황건하가 돌아가며 연기한다. 무명 무용수가 프리마돈나로 급부상하는 크리스틴 역엔 성악과 출신의 신예 배우 손지수, 송은혜가 발탁됐다. 초연에서 유령 역을 맡았던 윤영석은 극중 오페라 하우스의 운영자인 무슈 앙드레로 돌아왔다. 시시각각 바뀌는 대형 무대는 객석을 압도했다. 이번 공연을 위해 컨테이너 20대 분량의 오리지널 세트가 해외에서 운송됐다. 1막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화려한 샹들리에는 물론 무대 천장에서부터 늘어지는 총 2230m 길이의 장막까지 오리지널 세트를 가져왔다. 백형근 기술감독은 “간소화한 형태로 제작된 2019년 내한 공연에서의 샹들리에와 달리 이번 샹들리에는 더욱 정교하고, 설치 지점이 높아 관객 체감상 더욱 아찔하게 추락한다”고 설명했다. 1일 공연에서는 프리뷰 공연 기간이 지났음에도 자잘한 실수가 나와 몰입감을 흩트리기도 했다. 1막 마지막 장면, 라울과 크리스틴이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All I Ask of You’를 애절하게 부를 때 무대 왼편에서 새하얀 조명이 갑자기 켜졌다 꺼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막에서 유령이 복면을 쓰고 노래할 때는 마이크에서 잡음이 이어졌다. 지혜원 뮤지컬 평론가는 “역대 유령들과 비교해 조승우는 ‘위대한 음악의 천사’이기 앞서 외롭고 상처받은 영혼의 인간적 면모를 잘 풀어내 특별했다”며 “뮤지컬 ‘캣츠’와 더불어 웨버의 전성기를 이끈 작품인 만큼 시대를 뛰어넘는 견고함이 무대를 압도했다”고 평했다.‘오페라의 유령’은 6월 18일까지 부산에서 공연된 뒤 7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부산 드림씨어터 7만~19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신문 정치면을 볼 때면 우리 정치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궁금할 때가 많다. 책은 그 혼란이 민주화 투쟁의 산물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1987년 개헌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분석한다. 개헌 작업부터 민주성과 숙의성이 결여됐다는 것. 당시 논의에는 소수당이 배제됐고, 비공식기구인 ‘8인정치회담’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대체하는 등 민주적 절차가 무시됐다. 책은 직선제 개헌 이후 박근혜 정부까지 30년에 걸친 한국헌정사 속 문제를 치밀하게 짚어낸다. 저자는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아 보자는 단순 논리를 바탕으로 탄생한 대통령 직선 단임제는 권위주의적 대통령을 존속시켰다”며 “절차적 민주주의가 구현될 때에야 헌법의 실질적 내용을 바탕으로 한 민주적인 정부가 탄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오늘날 한국헌정사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이 “의회와 정당을 매개로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이 균형을 유지하고 끝내 책임정치를 이루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에서 헌정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연구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헌법 제정을 기점으로 앞뒤 50여 년씩, 총 한 세기를 망라한다. 저자는 앞서 1898년 만민공동회 활동부터 제헌까지를 다룬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과 ‘한국헌정사 1948-1987’을 펴낸 바 있다. 이후의 역사를 다룬 이번 책으로 마침표를 찍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블랙핑크 지수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분식집에 가보려고 한국에 왔어요!”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만난 태국인 페리 씨(25)는 초록색 분식 접시에 차려진 떡볶이와 김치볶음밥 사진을 보여주며 활짝 웃었다. 이날 명동 거리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거리 양쪽에는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간이 트럭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고, 앞으로 걸어가려면 줄을 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서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지나가려는 사람들이 뒤엉켰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은 칼국수집 ‘명동교자’는 오후 6시에 이미 만석이었고, 관광객 4개 팀이 대기 중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점포들이 모두 문을 닫아 을씨년스러웠는데, 같은 곳인지 헷갈릴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엔데믹 국면과 한일 관계 개선, 중국발 입국자 유전자증폭(PCR) 검사 해제 등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폭 늘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 2월에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91만367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8만1850명) 대비 5배가량으로 늘었다. 국가별로 일본(16만1293명) 대만(9만7447명) 미국(9만5324명) 중국(7만830명) 태국(5만3965명) 베트남(5만449명) 홍콩(4만3014명)의 순으로 많았다. 특히 홍콩은 춘제 이후인 2월이 관광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전년도 2월 대비 관광객이 약 60배로 폭증했다. 대만 역시 한국 관광 수요가 늘어난 데다 2월 평화기념일 연휴의 영향으로 방한객이 전년 동월 대비 56배로 늘었다. 코로나19로 급감했던 외국인 관광객 대상 매출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1, 2월 외국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1배로 증가했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은 올해 들어 3월 22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외국인 매출이 8.5배로 늘었다. 명동 화장품 가게 점원 김정은 씨(37)는 “문을 닫았던 가게들이 지난해 가을부터 조금씩 다시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주말에는 코로나 이전처럼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 매출이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일본, 대만 등 22개국 외국인에 대해 전자여행허가제(K-ETA)를 내년 말까지 면제한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5월부터는 유럽, 미국 등 34개국 입국 비자 소지자가 환승 시 지역 제한 없이 최대 30일간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7월 외국인 관광객들이 다양한 한국 콘텐츠를 체험해 볼 수 있는 한국관광홍보관 ‘하이커 그라운드’를 열고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박경숙 한국관광공사 관광홍보관운영팀장은 “올해 2월 기준 하이커 일평균 방문객 수는 2088명이며 이 중 외국인이 30% 정도를 차지한다”며 “국제 관광 시장이 정상화되면 한류팬을 비롯해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서울 중구 명동에서 27일 만난 일본인 관광객 아이미 씨(21)와 지히사 씨(21)는 또렷한 한국말로 “트와이스 너무 예뻐요”라고 외쳤다. 한국에 3박 4일 일정으로 놀러온 두 사람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바로 명동의 한 면세점. 이곳에 트와이스 멤버들의 핸드프린팅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미 씨는 핸드프린팅에 손을 대고 있는 기념사진을 보여주며 “트와이스를 좋아하다 보니 한국도 좋아하게 돼 여행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온 히로 씨(28)는 한손엔 무거운 짐 가방을, 다른 한손에는 핫도그를 쥐고 있었다. 이날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방탄 벤치’ 인증샷을 찍고, 유명 베이글 맛집을 방문해 30분 넘게 줄을 서 베이글을 구입한 뒤 숙소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지난해 방탄소년단(BTS)에 뒤늦게 빠진 뒤 멤버들이 즐겨 먹는 한국 음식이 실제로 어떤지 늘 궁금했다”며 “유명한 관광지도 좋지만 현지인 ‘핫플’에서 한국의 힙한 감성을 느껴보는 게 이번 여행의 목표”라고 했다.》한류 열풍의 시초 격인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 NHK 위성에서 2003년 4월 3일 처음 방영된 지 꼭 20년이 지난 지금, 일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제4차 한류’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BTS가 최근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에서 10관왕을 달성한 데 이어 르세라핌, 스트레이키즈 등 K팝 아이돌 그룹들이 오리콘차트 부문마다 1위에 오르내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한류가 재확산되면서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다시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역동적 K팝, 고단한 日 MZ세대 탈출구” 제1차 한류는 2003년 ‘겨울연가’를 계기로 일본 중년 여성들이 ‘욘사마’(배용준) 등 한국 드라마에 열광한 데서 시작했다. 이후 2010년대 동방신기를 비롯한 아이돌 그룹이 현지 투어 공연을 하며 제2차 붐을 일으켰고, 팬데믹 기간 K팝과 함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등이 인기를 얻으며 제3차 열풍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가장 보수적인 문화 분야로 꼽히는 음식과 패션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대된 추세다. 일본 내 재일교포가 세 번째로 많은 고베 지역에서는 한국 총영사관과 한인 사회가 주축이 돼 효고현과 함께 ‘아시안 파크’ 출범을 준비 중이다. 제1, 2차 한류를 일본 중년층이 이끌었다면 최근 열풍을 주도하는 건 MZ세대다. 이들은 반한 감정이 기성세대에 비해 현저히 낮고, 어릴 적 여행 등으로 한국 문화에 친숙한 세대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과거엔 한국과 일본이 수직적 관계로 인식됐지만 일본 경제가 30년간 침체된 반면 한국은 급속 성장하면서 젊은층은 양국을 대등한 관계로 느낀다”며 “1970, 80년대 세계적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일본 문화가 경제적 쇠퇴와 함께 정체되면서 젊은층이 자국 콘텐츠에만 만족하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류 열풍의 기저엔 일본 젊은층이 느끼는 불안과 좌절이 깔려 있단 분석도 나온다. 장기적인 불황 속에서 자라난 일본의 20, 30대는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사고해 ‘사토리(득도) 세대’라고 불린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전망이 불투명한 젊은층이 현실의 무기력을 탈피할 수 있는 탈출구로 한류를 낙점한 것”이라며 “동일한 아이돌 문화여도 아기자기하고 소위 ‘소녀풍’인 일본 현지 음악 대신 역동적이고 화려한 K팝 문화를 즐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두 나라는 근현대 문화 코드가 닮아 공감하기 좋다는 점도 작용했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는 “우리나라 근대 문화가 일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로의 문화 콘텐츠에 친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1970, 80년대 이후 국내 문화가 자기 색을 갖고 발전하면서 일본 젊은층이 서로 ‘비슷하고도 다른’ 점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특히 20년 전 ‘욘사마’ 팬들이 지금 2030의 엄마 세대가 되면서 한류는 현지 젊은층에게 더욱 자연스러운 문화가 됐다”고 덧붙였다. 2, 3년 사이 K콘텐츠가 아시아를 넘어 서구권에서 인기를 얻은 것도 제4차 한류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동아시아 문화를 연구하는 김은영 인하대 중국학과 교수는 “통상 ‘문화 수도’로 여겨지는 북미와 유럽에서 K콘텐츠를 즐기는 현상이 일본 내에서 한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자리 잡게 했다”며 “한류가 더 이상 마니아들만 즐기는 소수 문화가 아니라 당당하게 즐길 수 있는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올 1, 2월 외국인 관광객 중 일본인 비중 최대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 수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 2월 한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 수는 16만1293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4096명)보다 40배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대만인(9만7447명), 미국인(9만5324명), 중국인(7만830명)을 크게 앞질러 일본인 관광객은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큰 비중(17.6%)을 차지했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거리에서 만난 일본인 나카지마 사야카 씨(22)는 처음 한국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의 한일 보이그룹 ‘트레저’의 팬이다. 그는 “트레저를 좋아하면서 한국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일본 학교의 한국 수학여행이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재개되면서 지난달 21일에는 일본 구마모토현 루테루 고등학교 학생 37명과 교사 2명 등 총 39명이 수학여행으로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5일간 전북 전주 한옥마을, 서울 경복궁과 롯데월드 등을 구경했다. 최근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일본인 관광객은 팬데믹 이전에 비해 젊어지고, 방문지가 다양해진 것이 특징이다. 양경수 한국관광공사 일본팀장은 “일본 최대 온라인 여행 사이트 라쿠텐트래블에 따르면 ‘한국 여행’을 가장 많이 검색하는 연령대가 3년 전 40∼60대에서 한류 팬인 10, 20대로 바뀌었다”며 “20년 전 일본 중장년 여성 관광객이 드라마 촬영지를 구경했다면 지금은 젊은 여성들이 한국식 패션과 메이크업으로 꾸미고 성수동 등 서울 곳곳의 핫한 거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5월 8일 일본 정부가 해외 입국자를 대상으로 유전자증폭(PCR) 검사 의무를 해제하면 관광객 유입은 더욱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일본 다이이치세이메이케이자이(第一生命經濟)연구소에 따르면 2004년 한 해 ‘겨울연가’ 열풍으로 유입된 일본인 관광객이 우리나라에서 유발한 경제적 효과는 총 1조1906억 원에 달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한류에 애정을 품고 온 여행객은 기존에 ‘가깝고 싸서’ 오던 이들보다 씀씀이가 큰 편”이라며 “5월 8일 일본 PCR 검사 의무 해제에 앞서 현지 한류 열풍을 관광 수요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장실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일본에서는 한류 20주년을 맞아 다양한 방한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중국권에서는 세대별 타깃 마케팅을, 미주에선 한류 콘텐츠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국가별 맞춤형 마케팅을 통해 올해 외래 관광객 1000만 명 유치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세련되고 말랑해진 창작 판소리가 연달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1980, 90년대생 젊은 소리꾼들이 앞장서 판소리를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고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진출하며 관객의 저변을 넓히고 있다. 우선 해외 고전을 재해석한 판소리극이 눈길을 끈다.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다음 달 8일 개막하는 ‘판소리 레미제라블―구구선 사람들’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재창작한 작품이다. 뮤지컬 ‘아리랑’(2017년)의 차옥비 역으로 관객의 눈도장을 찍었던 소리꾼 이승희(41)가 판을 이끈다. 원작의 시민혁명은 의병 활동으로, 장발장은 장 씨로 등장하는 등 서사와 인물을 한국식으로 바꿨다. 소리꾼과 고수 외에 키보드, 드럼 등 현대 악기가 어우러진다. 인디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로 활동하며 팬층을 다진 소리꾼 이자람(39)도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 원작의 창작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4월21∼22일·아트센터인천)를 공연한다. 국내 현대문학도 적극 활용한다. 창작 판소리극 ‘체공녀 강주룡’(3월 31일∼4월 2일·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박서련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평양의 고무공장에서 일하며 독립운동가 겸 노동운동자로 활동한 실존 인물 강주룡(1901∼1931)의 일대기를 그렸다. 정지혜(37), 강나현(29) 등 젊은 소리꾼들이 창작 판소리 28곡을 노래한다. 판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소리꾼을 찾는 매체도 늘었다. ‘국악계 아이돌’로 불리는 소리꾼 김준수(32)는 국립창극단 동료 단원인 유태평양(31)과 함께 KBS ‘불후의 명곡’을 비롯해 TV 예능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김준수는 지난해 말 뮤지컬 ‘서편제’에서 뮤지컬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소리꾼 이소연(39)도 뮤지컬 ‘서편제’ ‘아리랑’에서 실력을 뽐냈다. 판소리가 다변화하는 건 우리 문화에 대한 국내외 젊은층의 관심도가 높아진 것과 관련이 깊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해 말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의 예매자 중 20, 30대의 비율은 54%에 달했다. ‘판소리 레미제라블…’ 역시 30일 기준 20, 30대 예매자의 비중이 50%를 차지한다. ‘판소리 레미제라블…’의 유현진 총괄PD는 “판소리를 단순히 전통음악이 아니라 공연예술 자체로 즐기는 20, 30대 관객이 많아졌다”며 “해외에선 2017년 퓨전 국악 그룹 씽씽밴드가 이름을 알린 것을 시작으로 최근 K팝 열풍이 겹치며 국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팬데믹 기간 온라인 플랫폼에서 수준 높은 판소리 콘텐츠가 많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박인혜 작창가는 “과거 지상파 방송 클립영상에 그쳤던 판소리 콘텐츠가 최근 3년 사이에 질적,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젊은 관객이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며 “젊은층에게 판소리가 고루한 것이 아니라 새롭고 세련된 예술로 인식되면서 창작자들 역시 독창적인 시도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K컬처에 대한 국내외 관심도가 급등하면서 세련되고 말랑해진 창작 판소리가 무대에 줄줄이 오르고 있다. 1980~1990년대생 젊은 소리꾼들이 앞장서 판소리를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고 TV 예능 등 다른 매체에도 진출하며 관객 저변을 넓히는 추세다.다음달 8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판소리 레미제라블-구구선 사람들’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재창작했다. 뮤지컬 ‘아리랑(2017)’의 차옥비 역으로 관객 눈도장을 찍었던 1982년생 소리꾼 이승희가 판을 이끈다. 원작의 시민혁명은 의병 활동으로, 장발장은 장씨로 등장하는 등 서사와 인물을 한국에 맞게 바꿨다. 소리꾼과 고수 외에 키보드, 드럼 등 현대 악기가 협연한다. 해외 고전을 재해석한 판소리극도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다. 인디 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로 활동하며 팬층을 다진 이자람(39)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원작의 창작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4월21~22일·아트센터인천)’를 공연한다. 앞서 창작 뮤지컬 ‘아랑가’, ‘적벽’ 등으로 주목받은 작창가 겸 소리꾼 박인혜(39)는 올해 초 19세기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의 단편소설을 토대로 한 ‘판소리 쑛스토리-모파상 편’을 선보였다. ‘보석’을 비롯한 모파상의 단편 3권을 엮어 1인극으로 풀어냈다. 국내 현대문학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창작 판소리극 ‘체공녀 강주룡(3월31일~4월2일·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박서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평양의 고무공장에서 일하며 독립운동가 겸 노동운동자로 활동했던 실존 인물 강주룡의 일대기를 다룬다. 새로운 형태의 판소리를 지향하는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소속 정지혜(37), 강나현(29) 등 젊은 소리꾼들이 창작 판소리 28곡을 노래할 예정이다. 판소리가 다변화하는 건 우리 문화에 대한 국내외 젊은층의 관심도가 높아진 것과 관련된다. 30일 인터파크티켓에 따르면 지난 연말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 ‘노인과 바다’의 예매자 중 20, 30대의 비율은 54%에 달했다. ‘구구선 사람들’ 역시 2030 예매자가 50%를 차지하고 있다. 유현진 ‘구구선 사람들’ 총괄PD는 “팬데믹 이전에 비해 판소리를 단순 ‘전통음악’이 아니라 공연예술 자체로 즐기는 2030대 관객이 많아졌다”며 “해외에선 2017년 씽씽밴드가 이름을 알린 것을 시작으로 최근 K팝 등 열풍이 겹치며 국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걸 체감한다”고 말했다. 판소리에 화제성이 더해지자 소리꾼을 찾는 매체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젊은 소리꾼들은 최근 정통 판소리 이외 장르와 매체에 진출하며 대중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국립창극단 소속 김수인(28)은 팝페라 경연 프로그램에서 다채로운 소리를 들려주는 중이다. ‘국악계 아이돌’로 불리는 소리꾼 김준수(32)는 지난해 말 뮤지컬 ‘서편제’에서 뮤지컬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으며 지난달 음악 예능 방송에서 활약하며 주목을 받았다. 팬데믹 기간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서 수준 높은 판소리 콘텐츠가 많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박인혜 작창가는 “과거 공중파 방송 클립영상 등에 그쳤던 판소리 콘텐츠가 불과 3년 사이에 질적,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젊은 관객의 접근성이 높아졌다”며 “젊은층에게 판소리가 고루한 것이 아닌 새롭고 세련된 예술로 인식되면서 창작자들 역시 전승과 보존 이상의 예술적 활동을 활발히 하는 추세”라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안중근 의사의 생애 마지막 1년을 그린 뮤지컬 ‘영웅’이 ‘명성황후’에 이어 국내 대형 창작뮤지컬 사상 두 번째로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공연제작사 에이콤은 ‘영웅’이 28일 기준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29일 밝혔다.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2009년 10월 26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초연된 지 14년 만이다. ‘영웅’은 2004년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의 제안을 시작으로 구상 및 제작 기간 5년을 거쳐 탄생했다. 창작진은 중국 다롄과 하얼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수차례 답사하며 안 의사의 행적을 담아냈다. 2011년 미국 뉴욕, 2015년 중국 하얼빈에서도 공연됐다. 지난해에는 동명의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져 326만 명이 관람했다. 뮤지컬 ‘영웅’은 5월 21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된다. 7만∼15만 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새까만 옷을 입은 배우들이 팔꿈치까지 소매를 걷어 신호를 보내자 관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빠른 박자의 노래에 맞춰 고개와 발끝을 까딱거렸다. 배우가 장막을 열어젖혀 너머의 공간을 가리키자 관객들이 그 방향으로 걸었다. 네 개로 나뉜 각각의 공간에는 ‘1000년에 한 번 열리는 차원의 틈으로 소환된 네 명의 영혼’이 자신들의 장례식을 다시 치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금천구 금나래아트홀에서 17일 공연된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이 함께 작품을 만드는 관객 참여형 뮤지컬이다. 총 관객 80여 명이 공연 시작 전 극장 로비에 모인 뒤 안내자 역할인 까마귀 역 배우들의 호명에 따라 입장했다. 객석은 텅 비워둔 채 관객들은 빠짐없이 무대에 올랐다. 무대는 장막을 통해 4칸으로 나뉘어 다른 칸을 볼 수는 없지만 노래, 발걸음 등 소리로 서로 인지하고 소통할 수 있다. 작품은 대사 없이 노래로만 전개된다. 현대음악과 힙합이 섞인 듯한 7곡의 넘버는 가사와 멜로디보다 리듬에 집중했다. 관객은 원치 않은 방식으로 장례를 치렀던 주인공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온몸으로 따라가며 자신의 인생을 살펴보게 된다. 안무도 간단해 관객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관객은 서 있어도 되고 배부받은 손수건을 깔고 바닥에 앉아 있어도 된다. 작품은 올해 1월 제59회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을 수상한 극단 ‘코끼리들이 웃는다’와 LG아트센터가 공동 제작했다. 18일까지 열린 이틀간의 공연은 모두 매진됐다. 공연은 다음 달 15∼2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로 옮겨 열린다. 전 석 4만5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하얀 장막을 친 듯 무대 위 억수가 몰아쳤다. 방파제에 부딪친 파도는 무대 옆과 뒤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관객 귓가에서 철썩였다. 만선을 꿈꾸는 가난한 어부 곰치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에도 고집스럽게 바다로 나갔다. 잘살아보겠다는 그의 간절한 마음은 강풍에 찢길 듯 펄럭이는 오방색 만선기 앞에서 절규로 돌변한다.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16일부터 공연 중인 연극 ‘만선’의 한 장면이다. 1964년 극작가 천승세가 쓴 희곡을 국립극단이 2021년 창단 70주년을 맞아 선보였다. 이번 공연은 2년 만의 재연이다. ‘만선’은 1960년대 남해안의 작은 섬마을에 사는 곰치네 가족이 거친 숙명과 자본가의 횡포로 겪는 비극적 삶을 다룬다. 평생을 배 타는 일에 바쳤지만 이 때문에 모든 것을 잃는 곰치 역은 배우 김명수가, 그의 아내 구포댁 역은 정경순이 맡았다. 강인하면서 재치 있는 구포댁은 “배암 섯바닥처럼 비양질 헌다(뱀 혓바닥처럼 비아냥거린다)” 등 전라도 방언으로 가득 찬 대사를 차지게 구사하며 말맛과 극적 재미를 더한다. ‘만선’의 무대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살려냈다. 2∼3t에 달하는 빗줄기가 무대에 휘몰아치는 마지막 장면은 작품의 백미로 꼽힌다. ‘만선’ 무대는 제42회(2005년), 제55회(2018년) 동아연극상 무대미술상을 수상한 이태섭 디자이너가 맡았다. 명동예술극장에서 22일 만난 그는 “무대 뒤편에 있는 총 5t 용량의 물탱크에 저장된 물을 호스로 끌어와 천장에 일렬로 설치된 강수장치로 무대에 흩뿌린다”며 “빗물은 곧장 경사를 타고 내려와 무대 아래 설치된 수조에 고이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이어 “무대 바닥 표면이 거칠고 여러 겹 코팅된 덕에 공연 후 1시간이면 마른다”고 덧붙였다. 극 전체에 난파선 느낌을 주기 위해 무대 바닥을 송판으로 제작했다. 이 디자이너는 “무대의 돌도 스티로폼 모형이 아니라 쌀 한 가마니 무게에 달하는 실제 돌”이라고 했다. 나혜민 무대감독은 “안전을 위해 강수장치는 전기 설비보다 낮은 곳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4월 9일까지, 3만∼6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먼 곳에서 잔잔한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찰싹이는 소리 속 갈매기 울음도 껴있다. 평화로운 어촌 마을 뒤편에선 만선을 뜻하는 오방색 깃발이 잔바람에 나부낀다. 부둣가에 가난한 어부 곰치네 가족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굿을 펼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필코 만선일 것”이라는 무당의 말에 환호하던 이들의 간절한 마음은 거친 숙명과 선주의 횡포 앞에서 이내 절규로 돌변한다. 16일부터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중인 연극 ‘만선’의 도입부다. 극작가 천승세가 쓴 희곡을 국립극단이 2년 전 창단 70주년을 맞아 선보인 작품이다. ‘만선’은 1960년대 남해안의 작은 섬마을에서 만선을 꿈꾸는 곰치네 가족의 비극적 삶을 이야기한다. 평생을 골몰한 ‘배 타는 일’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곰치 역은 배우 김명수가, 그의 아내 구포댁 역은 정경순이 맡았다. 약 60년 전 초연된 작품이지만 자본가의 횡포, 세대 간 갈등을 다룬 장면 등은 오늘날의 사회상과도 맞닿아있다. 당시의 말투를 생생하고 구수하게 담아낸 대사들은 ‘만선’의 묘미다. “부서(보구치) 떼가 사태라우” 등 토속적인 단어와 말투는 다소 낯설게 들리기도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배경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강인하면서 재치 있는 여성 주인공 구포댁은 “배암 섯바닥처럼 비양질 헌다(뱀 혓바닥처럼 비아냥거린다)” 등 방언 빼곡한 대사를 찰지게 구사해 말맛과 극적 재미를 더했다. 2~3t에 달하는 빗줄기가 무대에 휘몰아치며 거친 폭풍우를 구현한 엔딩은 공연의 백미로 꼽힌다. ‘만선’ 무대는 제55회(2018년), 제42회(2005년) 동아연극상에서 무대미술상을 수상한 이태섭 디자이너가 2021년 초연과 재연 디자인을 모두 맡았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마저 무대 위에 재현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대를 구상한다”며 “올해 공연에서는 백척간두의 위험함과 비극성을 강화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초연에선 굵은 비만 내렸다면 이번엔 자욱하게 날리는 안개비 장치를 추가해 위태로움을 강조했다. 엔딩 장면에선 특별 제작한 강풍기 1대를 포함해 총 4대의 서큘레이터를 돌린다. 무대 끝자락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곰치네 집의 양철지붕은 몰아치는 비바람에 하릴없이 흔들리며 관객의 귀에 둔탁한 소리를 남긴다. ‘만선’이 사회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실주의 희곡인 만큼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살려낸 무대도 볼거리다. 이 디자이너는 “극 전반에 난파선 느낌을 주기 위해 무대 바닥 전체를 단가 높은 송판으로 제작했다”며 “배우들이 앉거나 발을 올리는 돌 역시 스티로폼 모형이 아니라 쌀 한가마니 무게에 달하는 실제 돌”이라고 말했다. 방파제에 부딪친 듯 포물선을 그리며 철썩이는 파도는 무대 뒤편 스탭들이 직접 바가지로 물을 흩뿌려 표현한다. 배우들이 흠뻑 젖을 정도로 물이 사용되는 만큼 안전성을 높이려는 심혈도 기울였다. 나혜민 무대감독은 “공연 중 사용된 물이 새지 않도록 무대 하단 전체를 빈틈없는 수조로 만든 뒤 방수포와 비닐로 3~4겹 감쌌다”며 “강수장치 역시 조명기를 비롯한 전기 설비보다 낮은 위치에 설치해 물이 닿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무대 바닥은 거친 질감을 낸 뒤 여러 겹 코팅함으로써 미끄러움을 최소화했고 공연 후 1시간이면 물은 전부 마른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배우 이다해(39)와 가수 세븐(본명 최동욱·39)이 8년 연애 끝에 결혼한다. 이다해와 세븐은 각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5월 6일 결혼식을 올린다고 20일 밝혔다. 이다해는 웨딩 사진을 공개하며 “반려자에게 좋은 아내로서 더욱 배려하며 큰 힘이 되겠다”고 했다. 세븐은 자필 편지를 통해 “가장이자 남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살겠다”고 밝혔다. 이다해는 드라마 ‘낭랑 18세’(2004년), ‘마이걸’(2005년), ‘추노’(2010년) 등에 출연했고, 세븐은 2003년 ‘와줘’로 데뷔해 ‘열정’, ‘라라라’로 인기를 끌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어둠은 빛의 존재를 반증한다.’ 누군가에게는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떤 말이 오랜 세월 무수한 사람의 입을 거쳐 내려온 데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저자는 “클리셰란 진실의 아주 가까운 친척이고 통찰의 보급형 유사품”이라며 독자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후 나는 더욱 살아있다고 느꼈다. 이 책은 이 같은 클리셰로 가득하니 각오 단단히 할 것.” 어느 날 저자의 삶은 하루아침에 어둠으로 뒤덮였다. 전날 밤까지도 멀쩡하던 오른쪽 시야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그는 25년간 뉴욕타임스(NYT)의 간판 칼럼니스트로 일하며 백악관 담당 기자와 이탈리아 로마 지국장까지 지냈다. 일주일에 60시간씩 일하면서 자신의 삶을 통제하며 스스로를 빛내 왔지만 뇌졸중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간밤에 시신경 일부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서 예기치 못한 절망이 닥쳐왔다. 처음에는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다. 시신경 일부를 복구하는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안구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는 고통이 반복됐지만 시야는 갈수록 더 비틀리고 흐릿해졌다. 절망하던 그는 약 2년 후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인 어둠을 통해 오히려 희망을 엿본다. 그는 “통상적인 대처 방식이 모두 막혔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든 차선을 찾아냈다”며 “잘 살기란 상실에 적응하는 것이자 내게 남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일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시력이 나빠질 즈음 설상가상 덮친 아버지의 치매 진단 앞에서도 굴복하기보단 한발 내딛기를 택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가 어릴 적 살던 동네를 찾는다. 그곳에서 아버지가 슬퍼하지 않고 감사하는 태도로 모든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주어진 것들을 “친밀하고 아름답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의사의 진단대로라면 저자는 왼쪽 눈의 시력 역시 잃을 가능성이 컸다. 어둠에 적응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자신보다 앞서 “일어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후안 호세는 10대 후반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했음에도 현재 유엔에서 멕시코 상임 대표를 맡고 있는 외교관이다. 그 역시 처음에는 좌절했지만 이제는 실명을 개성으로 여긴다. 보이지 않는 덕에 참을성이 많아졌고, 매일 장애물에 부딪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력을 길렀다는 것. 현재 저자의 왼쪽 눈은 시력이 나빠져 “글을 읽을 때 내 시야는 한 무리의 단어에 집중하는 대신 그 위를, 아래를, 둘레를 헤엄쳐 다닌다”고 한다. 상실과 기쁨은 빛과 어둠만큼이나 모순된 단어로 느껴진다. 그러나 저자는 감성에 호소하지 않고 초지일관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을 담아내며 상실의 또 다른 말이 ‘기쁨의 기회’임을 설득한다. 빛과 색은 잃었지만 “낙엽의 소리가, 살갗에서 관현악을 연주하는 바람의 소리가” 더 진하게 남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겨우내 차갑던 방바닥에 봄볕이 스미듯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독자들은 “기쁨을 향해 몸 돌릴”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휘자 정명훈(70·사진)이 이탈리아의 세계적 오케스트라 ‘라스칼라 필하모닉’의 명예 지휘자로 위촉됐다. 라스칼라 필은 13일(현지 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35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온 지휘자 정명훈에게 명예 지휘자 칭호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명예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발전에 기여한 지휘자에게 부여하는 직책으로, 라스칼라 필 역사상 명예 지휘자를 위촉한 건 정명훈이 처음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 소속 오케스트라로 출발한 라스칼라 필은 1982년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에 의해 솔로 교향악단으로 창단됐다. 유명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82)가 1987년부터 2005년까지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자리 잡았다. 정명훈은 1989년 라스칼라 필과의 첫 협연을 시작으로 해외에서 120차례 함께 공연했다. 라스칼라 필의 부사장인 다미아노 코탈라소는 “정명훈은 지휘대에 오를 때마다 매번 놀라운 음악을 만들어낸다”며 “그에게 명예 지휘자 칭호를 수여하는 것은 오랜 협업에서 우리가 공유한 모든 것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명훈은 지난해 이탈리아 공로 훈장(2등장)을 받았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유튜브 등에서 쇼트폼 콘텐츠를 중심으로 ‘킹받는’ 캐릭터들의 인기가 뜨겁다. ‘킹받다’는 ‘열받다’에 ‘킹(King)’을 넣어 만든 말로 본래는 ‘엄청 화가 났다’는 의미였지만 최근 들어 짜증과 호감을 함께 내포한 의미로 확장됐다. 2, 3년 전 ‘카페 사장 최준’ 등 일부 연예인의 부캐(자신의 본모습이 아닌 제2의 자아 캐릭터) 콘텐츠가 열풍을 일으킨 데 이어 최근 개그맨 출신부터 일반인까지 다양한 창작자들이 킹받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킹받는 캐릭터들은 공통적으로 극사실주의 문법을 구사한다. 현실에선 비호감으로 인식될 요소를 가졌지만, 웃음을 유발하는 상황에 이를 적절히 녹여 ‘밉지 않은 캐릭터’로 그려낸다. SNL코리아 시즌3 ‘MZ오피스’는 MZ세대 직원들이 회사에서 상사, 동료와 빚는 갈등을 우스꽝스럽게 담아내 화제가 됐다. MZ세대를 대표하는 ‘맑은 눈의 광인’ 신입 직원 아영은 사무실에서 이어폰을 낀 채 일한다. 아영은 일부 꼰대 상사들의 말 중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고 대답해 웃음과 빈축을 동시에 산다. 유튜브 채널 ‘사내뷰공업’은 직종별 알바생의 ‘킹받는’ 고충을 그리는가 하면, 두발 검사 때 앙칼진 목소리로 선생님에게 대드는 2000년대 일진을 재현해 호응을 얻었다. 빵집 알바 편에서 알바생이 ‘이 안에 뭐가 있게 샐러드 듬뿍 고로케’ ‘오븐에 노릇 핏자핏자 피자빵’ 등 복잡한 빵 이름을 모두 외워야 하는 고충을 그리는 식이다. 사내뷰공업 채널을 운영하는 파괴연구소 관계자는 “출연자이자 제작자인 김소정 PD 본인의 경험과 구독자 제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든다”며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는 시청자들 기억 저편에서부터 공감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맘카페에서 인기인 ‘신도시 아재들’의 ‘서준맘’은 신도시에 사는 ‘젊줌마’(젊은 아줌마)다. 몸에 딱 달라붙는 롱 원피스, 로고가 크게 새겨진 명품 크로스백 등 인터넷에서 이른바 ‘신도시 미시 패션’이라 불리는 옷차림이 트레이드마크다. 서준맘은 아들을 비싼 영어유치원에 보내려 애쓰고 화려한 네일아트를 즐기며, 친한 동네 언니들에게 알짜배기 정보를 공유하는 다정한 푼수 캐릭터다. 맘카페 회원들은 “딱 우리 동네 엄마들 스타일” “내가 바로 서준맘”이라며 기존 ‘맘충’에 담겼던 혐오를 유쾌하게 탈바꿈시킨다. ‘신도시 아재들’, ‘피식쇼’ 채널을 보유한 메타코미디의 정영준 대표는 “MZ세대들이 경험했을 법한 일상적 감정을 파고들려 한다”며 “비슷한 상황에서 느꼈을 슬픔,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시켜 스스로를 놀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시청자들은 제작진과 댓글을 통해 소통하며 킹받는 캐릭터에 호감을 표한다. 킹받는 캐릭터들 특유의 자조적 개그와 ‘힘 뺀’ 느낌이 지쳐 있는 동시대 젊은층을 매료한 것으로 풀이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열심히 사는 걸 높게 평가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현재 2030세대는 만성적인 정체 앞에서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이 오히려 좌절로 이어지는 경험을 적잖게 하고 있다”며 “내면 깊이 자리 잡은 자조적, 냉소적 태도가 킹받는 콘텐츠에 열광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젊은층이 동영상 콘텐츠를 보는 스마트폰은 개인화된 도구여서 아주 일상적인 소재를 다룬 유머에 끌리게 된다”고 분석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6세기 잉글랜드 군주였던 헨리 8세의 부인 6명의 삶을 조명한 ‘식스 더 뮤지컬’(식스) 오리지널 내한공연이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개막했다. 아시아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건 처음이다. 뮤지컬 식스는 헨리 8세의 여성 편력으로 이혼당하거나 참수되는 비극을 겪은 부인들에게 마이크를 건넨다는 착안에서 만들어졌다. 토비 말로와 루시 모스가 공동제작해 2017년 초연한 뒤 2019년 영국 웨스트엔드에 입성했다. 이듬해 미국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했으며 지난해 토니상 최우수음악상 등 2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11일 공연은 인기 가수의 콘서트장을 방불케하는 관객의 환호와 배우들의 폭발적 성량으로 시작됐다. 출연진은 통상 뮤지컬 배우들이 이마에 부착하는 마이크 대신 핸드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1시간 20분짜리 공연은 널리 알려진 팝 음악을 토대로 작곡된 10개의 넘버로 채워져 흥을 돋웠다. 주인공 6명이 돌아가며 부르는 넘버는 각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아들을 낳지 못한다며 이혼을 요구받는 첫 번째 부인 아라곤이 헨리 8세를 향해 부르는 ‘No way(말도 안 돼)’는 ‘팝의 여왕’ 비욘세 등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다. 아라곤 역의 클로이 하트가 힘차게 불러 큰 환호를 받았다. 두 번째 부인이자 반항적인 캐릭터 앤 불린의 넘버 ‘Don′t lose your head(정신 좀 챙겨)’는 에이브릴 라빈 등의 펑키한 음악을 토대로 작곡됐다. 26일까지 오리지널팀의 내한공연이 진행된다. 그 후엔 한국어 공연이 같은 공연장에서 31일부터 6월 25일까지 이어진다. 라이선스 공연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앤 불린 역은 김지우, 배수정이 맡았다. 내한공연 7만∼14만 원, 한국어 공연 6만∼12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