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김갑식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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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갑식 부국장입니다.

취재분야

2026-02-27~202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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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불교 ‘3父子 교무’ “四恩의 가르침 좇아 원망 씻고 감사의 마음으로 봉사”

    원불교에서 삼부자(三父子) 교무가 탄생했다. 교무(敎務)는 교화와 교육, 자선 등 교단의 각종 사업에 종사하는 성직자를 가리킨다. 평양교구장이자 100주년 기념성업회 대외협력단장인 김대선 교무(61)와 그의 큰아들 동원 씨(29·서울 화곡교당 부교무), 둘째 동국 씨(28)가 그 주인공이다. 동국 씨는 12일 전북 익산시 중앙총부에서 열리는 출가식에서 교무로 서원할 예정이다. 원불교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는 부자와 형제, 자매 교무가 드물지 않게 배출됐지만 이후 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삼부자 교무는 매우 드물다. 8일 서울 현충로 원불교서울회관에서 이들을 만났다. “내년은 원불교 성업(聖業·개교)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요즘에는 삼부자가 함께 성직을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혈연뿐 아니라 법연(法緣)까지 이어져 개인적으로 큰 영광입니다.”(김대선 교무) 두 아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된 아버지 교무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동원 씨는 동생보다 한 살 위이지만 일찍 학교에 입학해 벌써 2년 차 교무가 됐다. “그동안 교무로서의 활동을 평가하면 100점 만점에 60점 정도 줄 수 있을까요? 부족한 점이 많았죠. 하지만 나머지 40점은 앞으로 더 남은 시간에 채워 가겠습니다.” 김 교무 집안과 원불교의 인연은 아버지 대로 거슬러 간다. 그의 부친은 청년 시절 원불교 중앙 총부에서 입교했고 어머니 역시 북한 개성교당에서 시무했다. 이들의 대화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아 ‘독신 출가하는 정남(貞男·여성은 정녀·貞女) 교무는 생각해 보지 않았느냐’고 짓궂은 질문을 던져도 별로 ‘소득’이 없다. “6년 사귄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제가 그러면 그 친구는 어떻게 하죠.”(동국 씨) “한때 정남으로 살지 고민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인연이 됐는지 지난해 만난 지 10개월 만에 결혼했습니다. 하하.”(동원 씨) 원불교 교무는 정남의 경우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월 38만 원 안팎, 결혼한 경우 최대 70만 원의 용금(用金·수입)으로 생활을 꾸려가야 하는 경제적 어려움도 견뎌내야 한다. 아들 중 한 명은 비교적 여유 있는 길을 가기를 바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김 교무는 “같은 길을 가니까 의지가 되지 않겠냐. 경제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지혜롭게 꾸려갈 것으로 믿는다”며 “정년이 8년 정도 남았는데 제가 떠나도 아들들이 있으니 정말 좋다”고 했다. 새내기 교무인 동국 씨의 다짐과 선배 교무로서의 조언도 이어졌다. “학창 시절 갈등과 내적 방황이 있기도 했지만 부모님과 형이 큰 힘이 됐습니다. 이제는 원불교 공부가 참 좋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성직자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의 초심(初心)을 꼭 지켜 나가겠습니다.”(동국 씨) “동생이 초심을 꼭 지켜 나가길 바랍니다. 전, 원불교에 좋은 법문이 많지만 원망의 마음을 감사의 마음으로 돌리자는 ‘사은(四恩)’을 좋아합니다. 천지, 부모, 동포, 세상의 균형을 찾아주는 교법을 포함한 법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죠.”(동원 씨) “과거 종교가 세상을 도왔지만 이제 세상이 종교를 걱정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교무로 서원한 만큼 세속적인 성공이 아니라 나를 버리고 공적인 것에 봉사하는, ‘무아봉공(無我奉公)’의 가르침을 따르길 바랍니다.”(김 교무)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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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명 테이슨 터너, 법명은 원대선입니다”

    “저는 원대선이라고 합니다. 오늘 출가식의 자리에 서게 돼 영광이며 겸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12일 오후 2시 전북 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열리는 출가식 대표로 인사말을 하는 그의 본명은 테이슨 터너(42·사진). 원대선은 원불교에 입문하면서 받은 법명(法名)이다. 원불교에 따르면 터너 씨는 미국인 최초의 원불교 교무(성직자)다. 현재까지 외국인 교무는 10여 명이 있다. 터너 씨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원불교 선학대학원대에서 5년간의 교육 과정을 마치고 교무로 새로운 인생을 펼치게 됐다. 그는 인사말을 통해 원불교 교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밝혔다. “원불교를 만나기 전에 저는 서양과 동양의 지혜를 함께 배울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원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정신, 현실의 세계에서 세상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지혜를 배웠습니다.”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각각 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 특히 대학원에서 긍정심리학을 공부하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가?’란 고민 끝에 원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2008년부터 1년간 미군 행정 군무원으로 이라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터너 씨는 “요즘 미국인들은 돈과 가족, 환경, 건강, 인간관계, 전쟁 등 다양한 문제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며 “동서양의 융합과 공존을 강조해온 원불교 정신에 입각해 이들이 고민을 풀어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날 출가식에서는 원불교대학원대에서 4∼6년의 교육과정을 마친 교무 28명 등도 원불교 성직자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을 서원(誓願)하게 된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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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종 왜 이러나… 총무원장 상좌 또 음주운전 사고

    대한불교 조계종의 주요 보직을 맡은 스님들이 잇따라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켜 물의를 빚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의 상좌이자 경기 용인시 한 사찰 주지인 A 스님이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모든 보직에서 사퇴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A 스님은 지난달 22일 오후 11시경 음주 상태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사찰로 돌아가다 택시를 들이받는 사고를 일으켰다. 사고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취소 기준(0.1%)을 초과한 0.137%였다. 수원남부경찰서는 면허취소와 함께 벌금을 부과하는 의견을 검찰에 낸 것으로 알려졌다. 조계종의 경찰, 검찰 기능을 담당하는 호법부는 3일 A 스님을 불러 조사했으며 이 스님은 이 자리에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고 참회한다는 뜻을 밝혔다. A 스님은 호법부의 상임감찰과 조사국장을 지냈다. 이에 앞서 자승 총무원장의 또 다른 상좌인 B 스님도 8월 음주운전 사고를 냈고 지난달 뒤늦게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뒤 보직에서 물러났다. B 스님은 조계종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 의원과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다. 자승 총무원장은 상좌들의 잇단 음주운전 사고를 보고받고 강력한 징계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호법부도 4일 교구 본사 주지 스님들에게 공문을 보내 소속 사찰 주지와 종무소 직원들의 ‘복무지 이탈 금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불교계에서는 조계종의 계율을 지키는 호법부와 종단의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스님들이 잇따라 음주운전 사고를 낸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A 스님의 음주운전 사고는 B 스님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지 불과 이틀 뒤에 발생했다”며 “계율을 어기는 스님들의 행태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큰 상황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져 개탄스럽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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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식 기자의 뫔길]“자선냄비는 기적의 마술램프”

    빨간 세 다리 냄비 걸이와 냄비 모양의 모금통, 제복을 입은 구세군 사관의 ‘댕그렁 댕그렁’ 하는 손 종소리…. 매서운 찬바람과 함께 구세군 자선냄비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이 무렵 익숙한 겨울 풍경이 됐죠. ‘189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교 해안에 표착(漂着)한 난파선 생존자를 위한 모금에서 한 구세군 여사관(女士官)의 아이디어로 자선냄비를 사용했던 것이 그 시초이다. …한국에서는 1928년에 시작돼 매년 실시되고 있다.’ 여기까지는 저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아는 자선냄비의 유래죠. 그런데 며칠 전 가까운 구세군 사관과 통화하다 뜻밖의 사실을 듣게 됐습니다. 그분은 “구세군인 저도 잘 모르는 구세군 역사였는데 최근 알게 됐다”며 몇 가지 사실을 전하더군요. 일제강점기이던 1943년부터 광복 이후인 1946년까지 자선냄비는 거리에서 사라졌습니다. 막바지 식민통치를 강화한 총독부는 조선 내 종교계에도 신사 참배를 강요하면서 여러 개신교단을 하나로 묶으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세계 공통인 구세군(Salvation Army·救世軍)은 구세단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됐습니다. 종교단체가 군(軍)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이에 발끈한 세계구세군본부는 구세군이 아닌, 구세단의 자선냄비를 허용하지 않아 거리모금도 할 수 없게 된 거죠. 광복 이후 다시 명칭을 복원하고 세계본부를 설득한 1947년에야 자선냄비는 재개됐습니다. 1936년 전국적인 물난리 때 일제의 모금 승인이 나지 않았을 때조차 사령관이 각 구세군 교회에 개인모금을 요청해 어려운 이웃을 도왔던 구세군으로선 안타까운 역사입니다. 반면 6·25전쟁 와중에도 자선냄비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구세군 통계에 따르면 1950, 1951년에는 부산을 중심으로 자선냄비 활동이 이루어져 당시 화폐 기준으로 50년 3000원, 51년 3421원을 모금해 피란민을 도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52년에는 특이하게도 자선냄비가 ‘구세군자선鍋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거리에 등장했다고 하네요. 이 한자를 찾아보니 ‘솥 과’라고 돼 있으니, 그해만은 자선냄비가 ‘자선 솥’이 된 것 아닌가 합니다. 돌이켜보니 저도 길을 가다 문득 멈춰 자선냄비를 가리키며 아들의 고사리손을 빌려 작은 정성을 보태곤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쭈뼛하던 놈은 망설이다 슬금슬금 다녀온 뒤 수줍은 얼굴로 웃더군요. 이제 추억이 됐네요. 매년 자선냄비는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분들의 마음이 모이는 기적의 마술램프가 됩니다. 올해도 그 사랑의 마법을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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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만 그릇 짜장 보시

    3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창원교도소 취사장. ‘착한 스님 짜장’이라고 쓰인 조리복 차림의 남성이 2m는 됨직한 커다란 주걱으로 대형 솥 안을 휘젓는다. 솥 안엔 면이 한가득이다. 까까머리에 당당한 체격,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풍모의 운천 스님(52)이다. 전북 남원 선원사 주지인 그는 직접 짜장면을 만들어 나누는 ‘짜장 보시(布施·널리 베풂)’를 6년째 하고 있다. 그릇 수로는 20만 그릇을 훌쩍 넘겼다. 이날도 그는 오전 8시부터 2300명분의 짜장면 면발을 뽑아내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수용자는 1000여 명이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이 먹는 양보다 1.5배쯤 돼 곱빼기로 준비해야 합니다. 별식이라 그런지 더 잘 드시는 것 같습니다.” 취사를 돕던 한 수용자는 “짜장면 생각만 해도 옛 추억들이 떠오르고 입 안에 군침이 돈다”며 “아침부터 다들 들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재료만도 20kg 밀가루 열다섯 부대, 양배추와 배추가 각각 40kg이었다. 재료 준비 후 잠시 허리를 편 ‘짜장 스님’과 대화를 나눴다. ―엄청난 양이다. “이골이 나서 어렵지 않다. 처음엔 30인분도 버거웠는데 이젠 1000명, 2000명분도 뚝딱 내놓을 수 있다.” ―조리복에 착한 스님 짜장이라고 쓰여 있다. “짜장 보시를 하다 보니 기왕이면 건강에 좋은 착한 짜장면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표고버섯 멸치 북어 파뿌리를 섞어 국물을 우려냈다. 반죽도 하루 정도 숙성시키고, 야채는 기름으로 볶는 대신에 이 국물로 쪄서 내놓는다.” ―며칠 전엔 진도 팽목항에서 희생자를 위로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수륙재(水陸齋)에도 참여했던데…. “행사 일주일 전 해남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의 주문이 있었다. ‘점심에 짜장면 500그릇, 저녁에 떡국 300그릇’. 전화 받자마자 두말 않고 하겠다고 했다. 어른들 잘못으로 희생된 아이들과 유족을 위한 행사라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거의 매일 ‘스님은 배달 중’인데 절집은 누가 지키나. “하하, 다른 분이 잘 지키신다. 저를 찾는 분들이 대부분 소외되거나 어려운 분들이라 부탁을 외면하기 어렵다.” 대형 솥에서 면이 엉키지 않게 큰 주걱으로 연신 젓는 스님의 손엔 큰 흉터가 있었다. 올 1월 면을 뽑다가 오른손 세 손가락이 제면기에 빨려 들어가 찢겨 봉합한 상처다. ―재료비도 만만찮은데 돈을 받지 않고 짜장 보시를 할 수 있나. “돼지감자를 길러 만든 국우차 판매수익금과 친형님, 친구의 도움을 받아 버틴다. 내겐 짜장면을 만들고 나누는 것이 화두이자 수행의 방편이다. 돈 생각하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떻게 짜장 수행을 시작하게 됐나.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와 파계사 율원을 졸업한 뒤 중국 저장 성 사범대로 유학을 갔다. 유학생들에게 식사 대접하다가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태안 기름 유출사고 때 짜장면으로 봉사한 처사(處士·남성 불자)와의 만남도 한 계기가 됐다.” ―앞으로의 계획은….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돼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 왔다. 거꾸로 중국을 거쳐 인도로 이어지는 짜장면 보시행을 펴고 싶다.”창원=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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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짜장 20만 그릇 보시’ 착한 짜장면 만드는 스님 사연은

    3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창원교도소. '착한 스님 짜장'이라는 문구가 있는 조리복을 입은 한 남성이 2m에 가까운 주걱으로 대형 솥 안을 휘젓고 있다. 그 안에는 면이 가득 들어 있다. 까까머리에 당당한 체격, 한 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풍모의 운천 스님(전북 남원 선원사 주지·52)이다."밖에 있는 사람들이 먹는 양보다 1.5배, 곱빼기로 준비해야 합니다. 별식이라 그런지 더 잘 드시는 것 같습니다."전날 남원에서 이곳을 찾은 운천 스님은 오전 8시부터 취사반에서 일하는 교도소 수용자 10여명과 짜장면 2300명분을 내놓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현지 수용자는 1000여명이지만 '바깥 음식', 특히 짜장면을 좋아하는 수용자들의 식성을 감안해 넉넉하게 준비했다. 옆에 있던 한 수용자는 "짜장면 생각만 해도 옛 추억들이 떠오른다"며 "아침부터 모두 들떠 있다"고 했다. 운천 스님은 입으로는 요리팀에게 지시하고, 손으로는 면을 뽑아내느라 바빴다. 이날 짜장면에 들어갈 재료는 20㎏ 밀가루 열다섯 부대에 양배추와 배추만 각각 40㎏에 이른다. 잠시 쉬는 틈과 준비를 마친 뒤 마침내 허리를 편 '짜장 스님'과 대화를 나눴다. -엄청난 양이다."이골이 나서 어렵지 않다. 처음에는 30인분도 버거웠는데 이제는 주문만 있으면 1000명, 2000명분도 뚝딱 내놓을 수 있다."-조리복에 착한 스님 짜장이라고 씌여 있다. "짜장 보시(布施·널리 베품)를 하다 건강에 더 좋은 착한 짜장면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사실 짜장면에 설탕과 소금,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표고버섯 멸치 북어 파뿌리 등을 섞어 국물을 우려낸다. 반죽도 하루 정도 숙성 시키고, 야채는 기름으로 볶지 않고 이 국물에 넣어 찌는 것처럼 해서 내놓는다."-2009년 짜장 보시를 시작한 이후 20만 그릇을 넘어섰는데. "지난 9월 20만 그릇을 넘겼다. 한해 사회복지시설과 교정시설 등 150여 곳을 돌다보니 짜장면 그릇이 어느새 그만큼 쌓였다."-며칠 전에는 진도 팽목항에서 열린, 희생자를 위로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수륙재(水陸齋)에도 참여했다."행사 일주일 전 해남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의 주문이 있었다. '점심에 짜장면 500그릇, 저녁에 떡국 300 그릇'. (웃음) 전화 받자마자 두말 않고 하겠다고 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희생된 아이들과 유족들을 위한 행사라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거의 매일 '스님은 배달 중'인데 절집은 누가 지키나."하하, 다른 분이 잘 지키신다. 저를 찾는 분들이 대부분 소외되거나 어려운 분들이라 부탁을 외면하기 어렵다. 신도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잘 이해해 주시고 있다."대형 솥에서 면이 엉키지 않게 큰 주걱을 연신 젓는 스님은 1월 제면기로 면을 뽑다 오른쪽 세 손가락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찢기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손에는 봉합한 흉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재료비만 해도 큰 비용이다. 돈을 받지 않고도 자장면 보시를 할 수 있나. "돼지감자를 길러 차로 만든 국우차를 판매한 수익금과 친형님, 친구의 도움을 받아 버티고 있다. 내게는 짜장면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화두이자 수행의 방편이다. 돈을 생각하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가톨릭 시설에도 보시한 기록이 있다."주문 오면 어디든 간다. 짜장면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는데 종교의 차이가 무슨 벽이 되겠나. 모든 이에게 차별 없이 베푼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제자로 그게 마땅한 도리다."-어떻게 짜장 수행을 시작하게 됐나."중앙승가대 사회복지과와 파계사 율원을 졸업한 뒤 중국 저장성 사범대로 유학을 갔다. 거기에서 유학생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다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귀국해 선원사 주지를 맡은 뒤 산행길에 나섰다 태안 기름 유출사고 때 짜장면으로 봉사한 처사(處士·남성 불자)와의 만남도 한 계기가 됐다."-앞으로 계획은."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돼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 왔다. 중국 소림사도 한번 가보고 싶고, 그래서 중국을 거쳐 인도로 이어지는 짜장면 보시행을 펴고 싶다."창원=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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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는 예배당이 아니고 신앙인들의 모임입니다”

    《 25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로에 있는 카페 ‘씨앗 스토리’. 서너 명이 13.22m²(4평)쯤 되는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 그 옆으로 조금 분리된 공간에 오누이처럼 보이는 두 학생이 책을 보며 공부하고 있다. 다시 옆문을 여니 악기와 카페처럼 아기자기하게 의자를 놓은 66.11m² 정도의 공간이 나온다. 어떤 곳일까? 교회다. 》 씨앗교회는 한쪽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다른 공간들은 학생들의 공부와 독서를 위한 도서관과 일요예배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 또 다른 변화가 예정돼 있다. 다음 달 7일부터 인근 학교를 예배 장소로 사용하던 너머서교회가 씨앗교회의 예배 공간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날 만난 ‘한 지붕 두 교회’의 주인공이 된 씨앗교회 이규원 목사(43)와 너머서교회 이헌주 목사(41)는 얼핏 보면 카페 손님처럼 보였다. 개신교계에서 매우 드문 사례이기에 준비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준비할 게 별로 없어요. 건강한 교회와 신학을 지향해 왔기 때문에 공동으로 공간을 쓰는 것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교회를 작은 교회, 중형 교회, 대형 교회 하는 식으로 크기로 나누지만, 저희 구분은 좀 달라요. 건강한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가 있는 거죠. 우리는 큰 교회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아요.”(이규원) “교회 창립 이후 교회 건물이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씨앗교회와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상이 기본적으로 같기 때문에 신자들 내에서 문제가 없습니다.”(이헌주) 이들은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 2.0목회자 운동’이라는 모임에서 만났다. 이 모임은 교회 건축과 신도 수 등 외형적 성장보다는 초기 교회처럼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교회를 만들자는 운동을 벌여 왔다. 어쨌든 공간 임대료 문제를 물었다. 너머서 목사가 “교회 여건이 허락하는 선에서”라고 답하자 씨앗 목사는 “주시는 대로”라며 웃었다. 현재 70여 명이 출석하는 너머서교회는 2008년 창립 이후 인근 중고교의 공간을 빌려 예배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공립학교는 특정 종교단체에 시설을 임대할 수 없도록 제한돼 있고, 사립학교는 비용이 너무 비싸 어려움이 컸다. 2012년 개척된 씨앗교회는 신자가 늘자 이미 한 차례 분립했고, 현재 출석 신자는 20여 명이다. 두 교회의 ‘동거’가 가능한 것은 예배당이 아니라 일상의 신앙생활을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교회가 교회당으로 불리는 건물의 유지와 확장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와 비용을 지불해 왔죠. 교회의 본질은 신앙이죠.”(이헌주) “우리의 모습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것입니다. 초기 교회의 신앙생활은 특정 건물이 아니라 다양한 공간에서 이뤄졌습니다. 로마와 중세를 거치면서 초기 교회의 ‘건강한 가변성’이 깨져 사람들이 신앙 활동을 교회당 위주로 생각하게 됐죠.”(이규원) 이들은 갈수록 몸집을 부풀리고 있는 한국 교회와 목회자의 세속화를 둘러싼 비판들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목회자뿐 아니라 신자들 역시 사회 전반의 물질주의적 풍토에 영향을 받고 있어요. 무엇보다 겉으로 과시하는 신앙 행위가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소박하게 성경 말씀을 잘 구현하는 게 필요합니다.”(이헌주)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두 가지죠. 현재 한국 교회는 예배에 참여하고 헌금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충분한 편이죠. 하지만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는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이규원)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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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식 기자의 뫔길] ‘조주끽다거’와 절집의 커피향

    당나라 조주 스님(778∼897)은 꽤 흥미로운 캐릭터의 선승입니다. 그가 남긴 일화와 화두는 중국 선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죠. ‘차나 마셔라’ 또는 ‘차나 마시고 가라’쯤으로 옮겨질 ‘끽다거(喫茶去)’가 그렇습니다. 알려진 대로 조주 선사는 가르침을 받기 위해 온 사람에게 처음 왔냐고 물은 뒤 그렇다고 하니, “끽다거”라고 합니다. 또 다른 이는 온 적이 있다고 했더니 이번에도 “끽다거”라 하죠. 그러자 절집 살림살이를 챙기는 원주(院主) 스님이 이를 지켜보다 “왜 똑같이 말하냐”고 묻습니다. 바로 이때 나온 답이 걸작입니다. 너도 “끽다거”죠. 귀찮으니 입 닥치고 차나 마시라는 의미는 아닌 것 같죠. 선종에서는 ‘조주끽다거’를 선 수행이 차 마시는 것처럼 늘 있는 일, 즉 다반사(茶飯事)로 이뤄져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스님은 차와 선을 하나로 꿰뚫은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선구자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24일 만난 원철 스님은 해인사 승가대학장으로 법정 스님의 뒤를 잇는 불교계의 대표적인 문장가로 꼽힙니다. 스님이 새로 낸 산문집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불광출판사·사진)에는 커피를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참선 중 졸음을 이겨내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난 달마 대사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눈꺼풀’을 잘라 던졌더니, 그 자리에서 차나무가 자랐다는 불교계 전설이죠. 원철 스님은 시대에 따라 제자들의 졸음 쫓는 찻잎이 커피로 바뀌었어도 이해해 달라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올 4월 해인사를 찾았다가 원철 스님 숙소에서 커피를 한잔 마신 일도 있습니다. 전통차가 나오나 했더니 스님은 손으로 커피 가는 그라인더에 원두를 넣어 커피 한잔을 주더군요. 5년 전쯤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스님은 어느새 커피콩의 종류와 콩 볶는 온도, 향, 물맛에 따른 맛의 차이까지 언급하는 전문가가 됐습니다. 원철 스님에게 이런 질문도 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글 빚도 싫다며 자신의 책을 절판시켰는데 스님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절집도 익숙해지면 매번 비슷한 생활로 이어져 직장과 비슷한 구석이 있어요. 제게 글쓰기는 숨 쉴 구멍이죠. 드러내기 위해 글을 쓰진 않지만 사람들과 너무 멀리 있어도 문제니 세상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에서 소통하는 방법이죠.” 부산 범어사 석공 스님의 커피도 빠지지 않습니다. 범어사 스님들 사이에 커피 열풍을 몰고 온 분이기도 하죠. 강릉 현덕사의 현종 스님은 커피 템플스테이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주 선사는 커피 맛을 알 수 없었겠죠? 하지만 커피, 녹차, 푸얼차(‘보이차’)면 어떻습니까. 요즘 절집의 변화에 스님은 다시 ‘끽다거’, 이러지 않았을까요.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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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요한 신부 “술 때문에 한국 못 돌아올 땐 쪼개진 대나무처럼 아팠죠”

    《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미국에서 일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는 마치 내가 잘려져 나간 대나무처럼 느껴졌다. 아름다운 가지도 없고 반으로 쪼개진 대나무처럼 내 안에 정성스럽게 간직해 온 한국인으로서의 심장이 제거된 것 같았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아일랜드 출신의 전요한(숀 코닐리·71) 신부가 한 가톨릭 잡지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알코올 의존증이었다. 》 그는 아일랜드에 본부를 둔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으로 1969년 사제품을 받은 그해 한국으로 파견됐다. 전남 함평과 흑산도 본당 신부에 이어 1975년부터 10여 년간 야학에서 활동하는 대학생들의 대부(代父)가 됐다. 본당 사목을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민주화를 위해 고민하던 학생들과 나누던 소주잔이 화근이 됐다. 18일 서울 동소문로 외방선교회에서 만난 전 신부는 ‘그의 과거’를 언급하자 웃음을 터뜨렸다. “흑산도 있을 때 어딜 가기만 하면 ‘신부님 오셨냐’며 밥그릇에 소주 가득 부어 주면 거절 못해 마셨고, 서울 올라온 뒤에도 행당동 닭 내장집에서 학생들과 또 한잔, 이러다 보니…. 허허.” 사제가 되기 전 술을 입에 대지도 않던 그는 특히 1980년대 밤낮 없이 일하고, 술 마시고, 기도했다. 밤새 술자리에 있어도 단 5분도 정신을 빼앗긴 적이 없다고 자부하던 그는 결국 자신이 1992년 알코올 의존증 환자임을 인정하고 “하느님, 내 병을 고쳐 주세요”라며 밤새 울며 기도했다. 선교회는 1992년 그를 미국으로 파견했다. 치료와 새로운 사목 활동을 찾으라는 배려였다. “언제 술을 마지막으로 먹었냐”고 묻자 그는 ‘1992년 3월 15일 멕시코에서’라고 정확하게 기억했다. “원래 이틀 뒤 미국에서 열리는 신부들과의 모임에서 마지막 잔을 들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멕시코서 만난 한국 이민자 부부를 만나니 술 한잔하게 됐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한국 소주로. 나중 한국 와 보니 경월, 무학 같은 소주들 많이 없어졌더라고요. 하하.” 그는 술과의 인연을 끊은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한국 복귀는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제가 정말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고 노는 걸 마다하지 않아 다시 무너질까 봐 선교회에서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한국을 그리워하며 자신을 ‘쪼개진 대나무’로 표현한 그는 2005년에야 마침내 돌아왔다. 그의 말을 끊고 “정말, 이젠, 확실히, 술을 끊었냐”고 묻자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분명한 어조로 얘기했다. “I'm recovering, 나는 회복하고 있어요. 알코올 의존증의 세계에서는 recovered, 회복됐다는 과거형을 써서는 안 됩니다.” 그가 미국에서 새로 발견한 것은 ‘르트루바이(Retrouvaille)’였다. “프랑스어로 ‘(혼인)재발견’으로 풀면 되는데 위기에 빠진 부부와 가정을 돕기 위한 모임입니다.” 귀국 이후 그는 르트루바이 담당신부로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는 올 초 서울대교구에서 단체 인준을 받기도 했다. “제가 대학생과 농촌 사목 활동을 많이 했죠. 또 제 건강을 위해 그 분야는 다른 분께 선물한거죠. 전, 술에서 벗어나 생명을 다시 받았으니까 이걸 사람들과 다시 나눠야죠.” 나이를 묻자 그는 “하도 오래돼서…. 치매인가…”라며 웃었다. 가끔 “난 이런 놈이니까”라며 한국 사람 같은 언어와 유머를 구사했다. 위기의 그를 구한 것은 바로 기도와 유머, 한국에 대한 사랑일지도 모른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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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식 기자의 뫔길]‘하늘나라 우체국장’ 목사님

    오늘 점심시간에 ‘하늘나라 우체국장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20일 ‘슬픔이 있는 곳이 성지다’(해피홈)라는 책을 출간한 송길원 목사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우정사업본부 소속이 아닙니다. 그의 우체통은 세월호 참사 구조작업이 진행되던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하늘나라 우체통’이라는 이름으로 설치돼 있습니다. 그가 낯선 명칭의 우체국장이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던 그는 참사 100일째인 7월 24일 팽목항에 우체통을 세웠습니다. 편지 쓰기가 힐링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게 그 출발점이었다네요. “사고 직후를 돌이켜보면 현장에 사람은 많았지만 ‘위로한다’ ‘애도한다’는 식의 백마디 말은 소용이 없었어요. 그 과정을 지켜보다 유족이나 그 유족을 위로하고 싶은 시민들 모두 말이 아닌 편지로 자신의 가슴 속 얘기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우체통을 세운 뒤 편지 쓰기를 독려하는 우정사업본부 행사가 있었는데 우체통 관리 역할을 맡긴 팽목항 현지 활동가가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대신 참석한 송 목사가 행사장에서 우체국장으로 소개됐다고 합니다. 편지들은 전국 어디에서든 수취인을 ‘진도 하늘나라 우체통’으로 하면 팽목항 우체통으로 배달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19일까지 우체통에 들어온 편지는 2243통입니다. 유족을 위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세월호 대책이 미진하다는 주장을 담은 편지도 꽤 있었다고 합니다. 우체통에 돈과 목걸이를 넣은 경우도 있다네요. “책은 우체통에 모인 편지에 대한 일종의 답신이죠. 영성학자들 연구나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슬픔을 치유하는 데 편지 쓰기만큼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송 목사) 책은 편지 사연 일부와 함께 성경 속 재난 심리와 치유를 주제로 다뤘습니다. 한때 ‘웰빙’ 바람이 분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사회의 화두는 웰다잉(Well-dying)으로 바뀐 것 아닌가 합니다. 재난뿐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때입니다. 감정적으로는 슬프지만 ‘나는 어떻게 죽을까’ ‘어떻게 세상과 이별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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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식 기자의 뫔길]난 언제 밥값 할 것인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화두로 잘 알려진 성철 스님(1912∼1993)의 백일법문이 증보판으로 새 옷을 입었습니다. 1992년 첫 출간 때 빠졌던 내용을 보완해 스님의 육성을 충실하게 담았다는 설명입니다. 11일 성철 스님의 상좌인 원택 스님(70)이 참석한 간담회는 책도 책이거니와 책에 얽힌 노장들의 사연이 흥미로웠습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스님은 1972년 출가해 22년간 성철 스님을 시봉했습니다. 알려진 대로 책은 1967년 성철 스님이 해인사 방장에 추대된 뒤 100일간 설법한 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하지만 스님의 육성이 책으로 남기까지 사연이 적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녹음하려고 하자 스님은 “쓸데없는 일 한다”며 호통을 쳤다네요. 그래도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까워 스승의 눈을 피해 맏상좌 천제 스님 등 몇 사람이 ‘도둑 녹음’을 했고, 이는 결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책으로 남게 됐습니다. 왜 성철 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을까요? “깊이를 추구한 ‘본지풍광’ ‘선문정로’가 나올 때는 노장께서 스스로 ‘나 이제, 밥값 했다’고 하셨죠. 하지만 백일법문은 후학들에게 불교의 정수를 쉽게 전달하려고 시작한 ‘방편(수단)’ 법문이어서 초기에 굳이 남기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 듯합니다.”(원택 스님) 간담회에서는 법정 스님에 얽힌 일화도 나왔습니다. ‘백일법문’에는 언급이 없지만 실제 녹음테이프에는 법문을 듣던 법정 스님의 질문이 자주 나온다고 하네요. 법정 스님은 ‘본지풍광’ ‘선문정로’ 출판 과정에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성철 스님은 책 출간을 앞두고 “문장은 법정 스님이 최고니 원고를 보내 글을 다듬어 달라고 부탁하라”고 했답니다. 이에 법정 스님은 “받침 하나도 그 사람 성격을 보여준다. 더구나 내가 어떻게 큰스님 책을 손대겠느냐”면서도 “그래도 큰스님 부탁이니 보겠다”고 했답니다. 그 작업이 끝난 뒤 법정 스님은 원택 스님에게 “책을 사 주변에 나눠주는 ‘법보시(法布施)’ 하지 말고 꼭 정가를 붙여 서점에 내 놓으라”고 신신당부했답니다. 성철 스님의 반응이 궁금하지요? “니, 나 보고 책 팔아먹으란 말인가.”(성철 스님) “법정 스님 말은 그게 아니라 정가를 붙여야 사람들도 책을 귀하게 여기고, 그래야 오래 간다는 말 아닐까요.”(원택 스님) “오래 간다….”(성철 스님) 내심 불호령을 걱정했던 원택 스님은 처음에 버럭 하다 수그러진 노장의 반응을 승낙으로 여겨 책에 정가를 붙이는 데 성공했답니다. 원택 스님의 시봉 노하우는 이렇습니다. “노장을 대할 때 야구로 치면 홈런을 기대하면 안 돼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하면 홈런은커녕 뺨 맞기 십상이고…. 조심스럽게 운을 떼고, 별 반응 없으면 성공, 안타죠. 하하”. 귀한 책의 또 다른 조건은 보이지 않는 여러 사람의 공덕 아닌가 합니다. “노장 말처럼 저도 나이 칠십에 밥값 했다”는 원택 스님의 말이 귀에 남습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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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주교님들의 심부름꾼, 편하게 쓰시도록 노력할 것”

    《 “올해 수능이 쉬웠다는데, 오늘 간담회도 쉬운 거죠?”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이자 최근 천주교주교회의 신임 의장으로 선출된 김희중 대주교(67)는 13일 취임 간담회에서 특유의 미소로 운을 뗐다. 2004년 이후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몸에 밴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유머 감각은 여전했다. 키가 어떻게 되느냐는 뜻밖의 질문에도 “세월 흐르니까 키도 주는데 1m60 조금 못 되나? 측정기가 머리에 세게 떨어지면 더 준다”며 웃었다. 》―오늘 끝난 한일주교교류모임의 성과는…. “유학 시절 스페인에서 페르시아(이란) 공주와 어머니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는 이슬람교도 하면 겁이 덜컥 났는데 서로 알게 되니 그게 아니더라. 나중에는 어머니가 신부라고 했는데도 딸을 데려가라고 하더라(웃음). 이번 한일 간 모임은 역지사지로 양국 문제를 볼 기회가 됐다.” ―일본 주교들이 군 위안부 할머니도 만나고 안중근 기념관도 찾았는데…. “할머니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더 현실감 있게 위안부 문제를 공감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신임 주교회의 의장으로서 포부는…. “주교님들을 위해 심부름하고 싶다. 이끌어가기에는 능력과 자격도 없다. 그냥 주교님들이 (저를) 편하게 쓰시도록 하겠다. 정치인들도 이런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나. 가톨릭신자 중 선출직으로 뽑힌 분들에게 선거 때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힌 자세로 임기를 보내면 다음에는 선거운동이 필요 없다고 했다. 약속의 본질은 지키는 것이다.” ―선출 과정의 에피소드는…. “선출은 의장 적임자를 그냥 써내는, 이른바 콘클라베 방식으로 진행됐다. 나중에 축하한다고 해서 ‘십자가를 지는데 웬 축하냐. 위로주를 사 달라’고 했다.” ―주량은…. “기자 분들과 만나도 제가 먼저 나가떨어질 일은 없을 것 같다.” ―최근 정의구현사제단 행보를 둘러싸고 가톨릭교회의 분열 우려도 나왔다. “추구하는 목적은 같은데 표현하는 방식이 다양한 것 아닌가 한다. 광주서 서울 가는데 비행기나 버스, 기차, 다양하게 갈 수 있다.” ―종교 간 대화 전문가다. 원칙은….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나의 신앙이 수용할 수 없을지라도 이웃 종교와 그 가치를 존중하는 마음은 있어야 한다. 존중과 인정은 다르지 않나.” ―최근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13만 명 선언에 참여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 말씀처럼 고통 앞에는 중립이 없다. 세월호 유가족의 가장 큰 고통은 진상이 안 밝혀진 것이다. 진상규명을 바탕으로 더이상 참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교황 방문 이후 주교회의 차원에서 할 일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교회로 나가야 한다. 남북 관계가 지금처럼 교착 상태면 안 된다. 정부 차원에서는 지켜야 할 원칙이 있어 어렵지만 민간, 종교계에서는 좀 더 여유 있게 만날 수 있다. 배가 운하를 통과할 때는 수위가 어느 정도 맞아야 하지 않나. 그래도 우리가 힘이 조금 더 있으니까 나눔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퍼준다는 슬픈 표현보다는 투자로 보면 좋겠다.” ―일각에서는 가톨릭이 북한 인권문제에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는 북한의 인권이나 신앙 자유에 대해서는 어느 보수단체보다도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단체나 유엔 등에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지켜보는 측면이 있다. 절대 방관은 아니다. 세계 어느 공산국가나 이슬람 국가에도 신부가 없는 곳이 없다. 북한에만 없다. 하느님을 닮게 창조된 인간들은 모두 평등하고 귀하다. 북한에서 그 부분이 짓밟히고 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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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할머니 만난 日주교단 “마음속 깊이 반성… 사죄드린다”

    “전 여든아홉, 말은 해도 듣지 못해요. 옛날(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을 때) 맞아 고막을 다쳐 그래요. 천주교에서 교황님 만나게 해줘 고맙고, 이렇게 저희를 찾아주셔서 고마워요. 일본 정부가 제대로 사과하고 우리 문제를 빨리 해결했으면 좋겠어요. 이제 이렇게 백발이 됐는데….” 10일 오후 경기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의 터전인 ‘나눔의 집’. 김군자 할머니(89)의 말이 끝나자 짧은 침묵에 이어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르게 박수가 나왔다. 이날 이곳을 찾은 일본 가톨릭 주교 10명을 포함한 한국과 일본 주교단은 할머니 7명이 짧은 소개와 함께 가슴에 맺힌 사연을 언급할 때마다 귀를 기울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유희남 할머니(87)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귀한 분들이 여기 오시게 돼 기쁘다. 일본어로 말해도 되느냐”고 말한 뒤 일본 주교들에게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올해 20회를 맞는 한일천주교주교교류모임은 사흘 일정에서 첫 행사로 나눔의 집 방문을 선택했다. 역사를 둘러싼 양국 갈등이 심화되고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첫 방문지를 이곳으로 선택했다는 것이 천주교주교회의의 설명이다. 일본 오사카 교구 마쓰우라 고로 주교는 할머니들과의 대화에 앞서 인사말에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할머니들에게 끼친 상처와 고통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사죄드린다”며 “일본 국민들이 역사를 바르게 볼 수 있도록 주교와 신부를 포함한 교회에서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 측에서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 주교회의 의장이자 광주대교구장인 김희중 대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 인천교구장인 최기산 주교, 수원교구장인 이용훈 주교, 일본 측에서 오사카 대교구장인 마에다 만요 대주교, 가고시마 교구장인 고리야마 겐지로 주교 등이 참석했다. 양국 주교단은 할머니들과의 대화에 앞서 추모 공간에 있는 할머니들의 빈소에 헌화한 뒤 역사관도 둘러봤다. 염 추기경은 “할머니들이 힘들게 가슴에 간직해 온 슬픈 사연 때문에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오늘의 만남이 할머니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역사를 바로잡을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희중 대주교도 “역사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며 “역사의 교훈을 잘 되새겨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주교교류모임은 1996년 양국이 공통의 역사 인식 속에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교회로 나아가기 위해 ‘한일 교과서문제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일본 가톨릭회관 모임에서 시작됐다. 2004년 제10회 모임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함께 읽는 열린 한국사’를 펴내기도 했다. 올해 모임의 주제는 ‘국가주의를 뛰어넘는 복음적 삶’이며 토론회와 통일전망대 방문, 탈북자들과의 만남에 이어 13일 공동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광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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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식 기자의 뫔길]4대 종단 축구대회, 모두가 승자입니다

    축구는 어느 종단이 가장 잘 할까요? 3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는 4대 종단(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성직자 축구대회가 열렸습니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 경기에서 불교가 천주교를, 원불교가 개신교를 각각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결승에서는 원불교가 ‘맏형’격인 불교를 2-0으로 이겨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국가대표처럼 최정예를 선발한 것이 아니고, 결과론이지만 어쨌든 원불교가 축구 실력은 최강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대회는 2002년 월드컵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시작됐습니다. 이후 해마다 열리며 종교인들이 심신을 단련하고 우의를 돈독히 하는 화합의 장이 됐습니다. “원불교 축구가 좀 세긴 세죠. 사실 이번 팀은 전국 선발이 아니라 서울교구 중심이었는데 우승까지 했네요. 브라질이 월드컵대회의 쥘리메컵을 영구적으로 가져간 것처럼 우리도 이미 최초로 3회 우승을 달성해 대회 첫 트로피를 소장하고 있죠. 하하.”(정인성 원불교 문화사회부장) 첫 대회부터 단골 멤버로 출전해온 불교팀 주장 지담 스님(홍천 백락사 주지)은 경기에 앞서 “지난해 첫 경기에 패해 4위를 했다. 오늘은 꼭 우승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과거에도 축구대회가 있었나 봅니다. 흥미로운 기록이 눈에 띕니다. 1974년 11월 5일자 동아일보 1면 횡설수설 코너에서는 종교인들의 축구대회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스포오츠를 통해 종교 간의 반목과 대립을 없애자’는 슬로우건을 내건 전국 종교인축구대회에는 예수교대한감리회 불교 천도교 원불교 대종교 몰몬교 이슬람교 통일교의 여덟티임이 참가하여 묘기백출로 관중들을 웃겼다.” 더이상 언급이 없어 어떤 묘기가 관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지금은 활동이 뜸한 대종교와 종교 간 갈등으로 애써 마주하지 않는 모르몬교(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이슬람교 통일교가 참가한 것이 이색적입니다. 종교의 힘이자 역할은 화해와 평화의 실핏줄이 돼 갈등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교리나 이해관계, 국제 정치 상황으로 먼저 증오하고 갈등하는 것은 종교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것 아닐까요. 4대 종단 축구대회가 다른 이웃 종교인들도 참여하는 화합의 장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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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끼리띠 스님 건강법은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 며칠 전 한 권의 책이 도착했다. ‘지원 스님의 100세 건강법’(고려원북스·사진). 그런데 관심을 끈 것은 ‘2600년 불가에서 전해 온’이라는 수식어였다. 지원 스님(68)이 2006년 창건한 육지장사(경기 양주시 백석읍)의 템플스테이는 한 해 3000여 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다. 포교원장이라는 직함도 예사롭지 않다. 4일 만난 스님은 조계종서 판매하는 물 ‘감로수(甘露水)’를 내놨다. 그러면서 대뜸 “그냥 먹지 말고 고맙습니다, 하고 먹으세요. 그러면 물의 입자가 달라져요”라고 했다. 인터뷰 중에는 머리에만 머무는 생각이 많다. 그 내용을 괄호 안에 담았다. 과연 불가비법의 감로수 한 방울을 맛볼 수 있을까. 》             ―건강법에 언제부터 관심이 많으셨나요. “1960년대 출가해 은해사에서 아픈 스님들을 돌보는 간병(看病) 소임을 맡았는데 그게 계기죠. 노스님들에게 귀동냥도 하고 기록하면서 배웠죠.”(허, 간병 소임도 있었나. 얘기되네) ―책을 보면 단식과 호흡, 명상 등 다양한 방법이 나옵니다. 단식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73년 만성위염으로 고생하다 시작했죠. 처음에 14일 단식했죠. 사실 사나흘만 넘어가면 몸이 그렇게 가볍고 고요해질 수 없어요.(정말? 믿을 수 없는데) 단식은 끝내고 회복하는 보식 과정이 중요하죠. 처음 미음 단 세 숟가락을 먹는데 한 숟가락에 몸이 반응하는 걸 보면 단식 효과를 느낄 수 있어요.”(음, 안 해 봐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다른 얘기로) ―육지장사 템플스테이는 삼성 같은 기업에서도 단체로 참가할 정도로 인기인데요. “1박 2일부터 4박 5일까지 일정은 다양한데 단식은 물론이고 호흡법과 명상법을 배울 수 있어요. 온돌방과 쑥뜸 체험도 가능하죠. 그 효과를 느끼고 혼자서도 단식이나 수행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프로그램이죠.”(한 끼만 굶어도 어질어질…. 혼자서 가능할까) ―말씀처럼 쉽진 않던데요. “그래서 교육 받아야 해요. 육지장사 특유의 발효차를 선차(禪茶)라고 하는데 한 잔을 30분 이상 걸려 천천히 마십니다. 모든 걸 빠르게 배 속에 넣어온 습관을 바꿔야 해요. 기자님, 식사할 때 자기 나이만큼 씹어 먹으면 그만큼 건강해져요.”(헉, 나이만큼 씹으려면 계산이 안나온다) ―책에 ‘살아 있다는 것은 숨이 붙어 있다는 것, 그래서 목숨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표현이 있죠. “나이가 들수록 호흡이 짧아져요. 올바른 호흡을 하지 못하면 아무리 음식을 잘 섭취해도 소용없어요. 전, 거의 일흔을 셀 때까지 길게 호흡할 수 있어요. 제가 볼 테니, 해보세요.” (해볼 것까지야ㅜㅜ) ―예를 들면 신장이 안 좋으면 어떤 호흡을 해야 하나요. “남성은 신장에 문제가 있으면 대부분 생식비뇨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요. 그럴 때 ‘쉬이’ 하는 소리를 낮게 내면서 호흡을 길게 하면 신장, 방광에 좋죠.” ―불경에 건강법에 대한 언급이 있나요. “성불(成佛)하려면 심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라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죠. 오랜 나쁜 습관으로 생긴 카르마(업), 생활습관을 바꾸는 게 중요해요. 천수경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에서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하잖아요. 마술을 거는 주문이 아니라 몸과 마음, 생각을 깨끗이 하려는 주문이죠. 귀와 눈은 두 개니 더 주의 깊게 듣거나 보고, 입은 하나니 삼가라는 의미죠.”(음, 말 되는 말씀이네) ―포교원장으로서 한 말씀 주시면…. “부처 열심히 믿어 살기 좋은 세상 만들자면 누가 따라 하겠어요. 자신의 호흡을 3분만 들여다보세요. 숨을 헐떡이는 상태를 알아야 변화가 오니까. 거기서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건강과 행복, 평화가 옵니다.”(격식이 아닌 마음에 있는 말씀. 밑줄 메모) ―어떻게 출가를…. “어릴 때 탁발 온 스님이 한자로 된 글귀를 주셨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화엄경 구절이더군요.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비를 쏟듯 보배가 중생을 이익 되게 하려고 허공에 가득한데 중생들은 종지, 대접 등 자신의 마음 그릇 따라 행복을 받아들인다는 거죠. 자연스럽게 열여덟, 열아홉인가 출가했죠.”(두 줄 메모. 그림 같은 인연이다) ―혹 올해 연세가…. “누가 물으면 부처님 인연 따라 사는 코끼리 띠라고 해요. 허허.”(감로수 뚜껑은 열었다. 하지만 정말 제대로 된 맛을 보려면 육지장사 단식에 참여해야 하는 것인지ㅜㅜ)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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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면 스님 “덤으로 사는 삶,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죠”

    “전 이제 나이 서른여섯이죠, 허허. 14년 전 당시 스물두 살 젊은이의 간을 이식받아 새로 태어났으니까요.” 창립 20주년을 맞는 불교계 장기기증운동 단체인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일면 스님(67)의 말이다. 27일 만난 스님은 1982년 간경화 판정을 받은 뒤 20년 가까운 투병 끝에 ‘한 주도 못 넘긴다’는 말을 들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모든 걸 정리하고, 주위에서 다비식(茶毘式)을 준비하려고 할 때 적합한 기증자를 찾아 이식수술을 받게 됐죠. 2000년 1월 8일 오전 10시 5분…. 왜 몇 분까지 기억하는 줄 아세요. 불제자로 인과(因果) 속에 살아온 사람이라 염라대왕이 물으면 언제까지, 이렇게 살다 왔다 대답하려고 했죠.” 1959년 해인사에서 명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일면 스님은 1993년 상담전화인 ‘자비의 전화’를 창설했고, 초대 군종교구장에 이어 현재 조계종의 사법부인 호계원 원장을 맡고 있다. 생명나눔실천본부는 1994년 법장 스님이 창립한 생명공양실천회가 출발점이다. 법장 스님이 2005년 입적하자 이식 수술로 새 생명을 얻은 일면 스님이 자연스럽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일면 스님은 이사장 취임 뒤 지역과 종교에 관계없이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찾아가 장기기증운동 포교사로 활동해 왔다. 조계종이 아닌 불교계 다른 종단의 스님들도 100명씩 단체로 기증 등록을 한 사례도 적지 않다. 이 단체는 장기기증은 물론이고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등록,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의 치료비 지원, 자살 예방을 위한 치유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장기기증은 현재까지 4만2000여 명, 조혈모세포는 3만3000여 명의 등록을 받았다. 등록자와 후원회원을 합한 회원은 취임 당시 2000명에서 14만 명으로 늘었다. 이 단체는 11월 11일 서울 부암동 하림각에서 창립 2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일면 스님은 “누구나 아플 수 있기 때문에 장기기증은 자신과 가족을 위한 것”이라며 “인연이 닿아 제가 새 생명을 얻은 만큼 하루하루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면서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다”고 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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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식 기자의 뫔길]국화꽃 피우고 하늘나라 떠난 그리운 신부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로 시작하는 미당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라는 시가 떠오르는 계절입니다. 문득 꽃말 사전을 뒤져 보니 국화만큼 여러 꽃말을 가진 꽃도 드뭅니다. 일반적인 꽃말은 ‘당신은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성실, 고귀, 진실, 청결, 청순, 정조라고 하네요. 색깔별로는 빨강 국화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노랑 국화는 섬세한 사랑과 질투, 짝사랑, 황색 국화는 실망, 흰 국화는 진실과 성실, 이별, 감사…. 경기 연천군에서 열리는 구석기축제 한편에서는 10만 송이가 넘는 국화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한 줄기에 400송이의 꽃이 있는 다륜을 비롯해 현무암과 고목에 국화 분재를 길러낸 작품들도 있습니다. 그곳에는 고 전숭규 신부를 기리는 부스도 마련돼 있습니다. 천주교 의정부교구 연천본당 주임 신부로 사목하던 전 신부는 암으로 투병하다 지난해 3월 52세를 일기로 선종(善終)했습니다. 연천군에서 그는 ‘국화신부’로 불렸답니다. 그가 2005년 성당 뜰에서 시작한 국화 축제가 이번 전시로 이어지며 결실을 맺게 됐습니다. 고인과 함께 국화를 키워온 김재수 씨(72)의 얘기입니다. “신부님이 2004년 9월 부임해 연천에 와서 ‘성당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들 모른다고 고개를 젓더랍니다. 결국 읍사무소까지 찾아와 물었더니 바로 뒤에 있다고 알려줬다고 하네요. 좁은 동네에서 성당 하나 못 찾는 게 아쉽고, 주변에 도움이 될 것이 뭔가 고민하다 교우 중 국화 키우는 분이 있어 축제가 시작된 거죠.” 이듬해 400평 남짓한 성당은 국화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성당 마당에 국화 키우면 사람들이 찾아오겠지’ 하는 고인의 바람도 자연스럽게 이뤄졌습니다. 이 축제는 전 신부가 인근 수련원장으로 발령이 난 뒤에도 계속됐습니다. 지병과 과로로 전 신부가 선종하자 성당과 연천군은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이번 전시로 발전시키게 됐습니다. 가까이서 고인을 지켜본 김 씨의 말이 ‘짠하게’ 들립니다. “국화만 보면 제 심기가 사납죠. 신부님이 국화만 안 했어도 더 사셨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신부님 뜻이 이어지는 것도 같고….” 연천군은 국화 전시 호응이 커서 내년에는 더욱 크게 행사를 준비할 예정이랍니다. 마침, 서울 우정국로 조계사도 2만 송이의 국화로 덮여 있습니다. 국화 옷을 입은 동자승과 보리수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습니다. 두 전시는 모두 11월 2일까지니 서두르셔야 할 듯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국향과 그 속에 담긴 사연을 가슴속에 담아 보면 어떨까요.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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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권-야권-계파-금권선거… 조계종 이야기입니다

    2012년 일부 승려가 연루된 백양사 도박사건이 불거지자 종책(계파) 해산과 자성·쇄신을 사회적으로 선언한 대한불교조계종이 다시 ‘종단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낯설지만 종단 정치라는 단어는 조계종 내부에서 익숙하게 사용돼 왔다. 총본산인 조계사와 총무원이 들어선 서울 종로구 견지동 45번지(우정국로 55번지)는 종단 정치의 핵심 공간이다. ○ 종단 정치와 종책 조계종은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위한 사회의 3권 분립 원리를 도입해 행정은 총무원, 입법은 중앙종회, 사법 기능은 호계원을 두고 있다. 국회에 해당하는 81석의 중앙종회는 종권(宗權)을 창출하는 종단 정치의 산실로 꼽힌다. 1994년 개혁 종단 출범 이후 정당에 해당하는 여러 종책이 등장해 중앙종회를 중심으로 정책 제시와 총무원 견제는 물론이고 총무원장 선출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일각에서는 거대 종단을 이끌기 위해 정책 개발과 대안 제시를 위한 종책 모임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존 종책들이 건설적인 역할보다는 4년마다 치러지는 총무원장 선거를 중심으로 자리다툼을 위한 세력 구축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 크다. 백양사 도박사건 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참회의 108배를 하며 스스로 “종책 중심의 이합집산이 종단 개혁과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투명한 종단 운영을 위해 종책을 해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자승 스님과 가까운 종책 모임인 화엄과 법화회는 물론이고 무차, 무량, 보림회 등 다른 종책들도 잇달아 해산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종책들은 지난해 10월 제34대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이름을 바꾸거나 다양한 합종연횡으로 모습을 바꾼 채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무늬만 바꾼 종책 최근 끝난 제16대 중앙종회 선거는 종책들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불교계 분석에 따르면 ‘여권’에 해당하는 불교광장은 직할교구를 포함한 교구 본사 중심의 직선직과 간선 형태의 직능 대표를 합해 56석, ‘야권’으로 분류되는 삼화도량은 15석을 차지했다. 비구니 선출위원회에서 뽑는 비구니 몫은 10석이며 현재 내부 반발로 1명이 사퇴한 상태다. 불교광장(화엄 법화 무량회)과 삼화도량(백상도량·옛 보림회, 무차 원융회)은 이름만 바꿨을 뿐이지 옛 종책들의 연합체다. 그래서 종회 선거를 계기로 불교광장에서 직함은 없지만 이 모임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자승 스님이 영향력을 더욱 강화한 것으로 평가한다. 비구니 의석을 빼도 종단법, 종헌을 바꿀 수 있는 기준인 3분의 2(54석) 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삼화도량을 이끌고 있는 영담 스님은 “사회적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죄송하지만 여권의 세가 너무 강해 견제를 위해서라도 종책 유지가 불가피하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종단정치의 폐해 1994년 종단 개혁 이후 역대 총무원장 선거는 어김없이 종책들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으로 치러져 왔다. 종회 다수파는 총무원 주요 보직은 물론이고 말사(末寺) 주지 추천권이 있는 교구 본사 주지선거에 다시 영향을 미쳐 세력을 재생산해왔다. 총무원장 선거에서 지면 특정 문중의 세력이 유난히 강한 교구를 빼면 승리한 종책들을 중심으로 하루아침에 주지가 바뀌는 게 다반사였다. 불교계의 한 관계자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종책들이 금권선거와 불필요한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사회적 약속을 지켜 종책을 해산하고, 사찰 재정의 공개와 재가불자의 참여 확대를 통해 종단 운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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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식 기자의 뫔길]“터놓고 얘기합시다” 교황은 토론 애호가

    19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막을 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는 동성애자에 대해 교회 공동체의 환대가 필요하다는 예비보고서(초안)를 공개해 지구촌 차원의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알려진 대로 초안의 이 항목과, 이혼 후 재혼한 신자들에 대한 영성체 허용과 관련한 두 항목은 찬반 투표에서 3분의 2를 얻지 못해 빠졌습니다. 큰 이슈에 묻혀 가려져 있지만 교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프란치스코식 열린 토론’의 성과입니다. 과거에는 교황청 관리들이 동성애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해 달라고 주문했다는 후문입니다. 이번 시노드는 넓은 개방성과 활발한 토론이라는 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가톨릭교회의 분열로 외부에 비칠 만큼 격렬한 논쟁이 있었지만 이런 갈등의 표출 자체가 현 교황이 이끄는 ‘베드로’호의 가장 큰 변화라는 거죠.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이 청중으로 참여한 특강도 프란치스코식 스타일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시노드 초반 초청된 호주 부부는 성생활의 즐거움을 말하면서 55년간 건강하게 유지된 결혼생활의 비결이 성적 매력이라는 ‘노하우’를 전수했죠. 가톨릭 내부의 전통주의자라면 강의 자체를 동성애 논쟁을 앞둔 교황의 ‘노림수’로 여겨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외부에서는 이 강의를 경청하는 고위 성직자들의 모습이 완고한 교황청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졌습니다. 나이 든 독신 성직자들이 세상 속 평범한 가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구나 하는 거죠. 교황은 시노드에서도 권위를 앞세운 지시보다는 솔직한 대화를 계속 주문했습니다. 시노드가 끝난 뒤 “만약 모든 것이 합의되거나 또는 조용하기만 한 평화 속에 침묵만 있었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황은 라틴아메리카 주교단으로 활동할 당시부터 열정적 설득보다는 모두가 말할 수 있는 열린 토론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혹자는 교황이 솔직한 대화를 원하는 수준이 거의 ‘강요’로 느껴질 정도라고 하네요. 시노드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교황은 “교회의 문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활짝 열려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의 주체를 청와대나 국회와 정당, 기업과 관청, 교회와 사찰로 바꿔 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문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바로 최고 책임자 아닐까요.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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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빗장 열리는 동성애]도전받는 2000년 금기… 프란치스코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 바티칸, ‘동성애=죄악’ 깨고 공론화 일단 성공 ▼동성애는 종교계를 포함한 지구촌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6일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금지해 달라는 버지니아 등 5개 주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찬반, 두 진영의 오랜 ‘전투’에 기념비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이로써 미국 내 전체 50개 주 가운데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주는 30개로 늘어났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김조광수 영화감독이 동성 연인과 결혼해 화제가 된 가운데 최근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미국 방문 중 인터뷰에서 “한국이 아시아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되길 바란다”고 밝혀 국내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오래된 논쟁이면서도 여전히 휘발성이 강한 동성애 이슈의 결정적 불씨는 동성애를 ‘죄와 무질서’로 여기며 금기시해온 바티칸 교황청에서 날아왔다. ○ 끝나지 않은 프란치스코의 혁명 13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는 초안에서 ‘동성애자에게도 가톨릭 신앙공동체를 위한 은사(恩賜·gifts)와 자질이 있다’는 문구를 넣었다. 하지만 주교 시노드는 18일 임시총회 최종 보고서에 동성애자 환대와 이혼자 및 재혼자도 영성체를 받을 수 있도록 했던 초안 문구를 모두 삭제하기로 했다. 외신에 따르면 찬성 118명, 반대 62명으로 채택 요건인 3분의 2 찬성에서 2표가 모자라 부결됐다. 교황청 안팎에서는 채택 여부를 떠나 가톨릭에서 동성애 문제를 공론화한 것 자체가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인 이동익 신부는 “동성애는 성경이나 교회 공식 문서에서 윤리적인 악”이라며 “교회를 대표하는 주교 180명이 오랜 가톨릭의 금기를 공개적으로 토론했다는 것 자체가 큰 변화”라고 말했다. 시노드 문서 작성에 참여하고 귀국한 강우일 주교회의 의장은 20일 간담회에서 “최종 문서에서 제외됐다고 논의에서 배제되는 게 아니다”라며 내년 10월 회의에서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가톨릭 교리와 동성애, 동성결혼 동성애, 나아가 동성결혼 허용은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한 기독교에서 가장 첨예한 현안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동성애가 창조질서에 비추어 위배된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면서도 동성애를 이유로 한 차별은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가톨릭 내에선 차별 반대보다는 ‘동성애=죄악’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했다는 점에서 시노드 논의 자체만도 충격적인 변화다.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장인 김정우 신부는 “시노드의 핵심은 교리 수정의 문제가 아니라 동성애자가 교회에 기여할 수 있고, 교회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취지”라며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외 종교계 개신교는 이미 동성애를 둘러싼 심각한 갈등에 직면하고 있다. 세계 성공회는 2003년 동성애자인 진 로빈슨이 미국 성공회 주교로 선출되면서 논란이 격화됐다. 2008년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호주, 남미 출신의 보수 성향 성공회 교인들과 서구 복음주의자들이 ‘참회하는 성공회 교도들의 모임’이라는 독자적인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미 30개 주가 동성결혼까지 허용한 미국에선 동성애를 인정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장로교의 한 교단(PCUSA)이 최근 동성결혼을 인정했다. 국내 개신교에서는 교단 차원의 논의는 없었다. 협의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사회적 소수자 인권 차원에서 동성애자를 보호한다는 입장이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미 PCUSA의 동성결혼 인정에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동성부부도 이성부부와 똑같이 어려움 겪어” ▼美 성공회 첫 ‘동성애 주교’, 결혼 4년만에 이혼2013년 은퇴한 미국 성공회 진 로빈슨 주교(사진)의 최근 이혼은 교계 안팎에서 큰 화제가 됐다. 그의 이혼이 유독 관심을 끈 것은 그가 성공회 최초의 동성애자 주교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목회하는 뉴햄프셔 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2010년 결혼식을 올렸지만 4년 만에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로빈슨은 “동성 부부도 이성 부부와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혔다고 외신은 전했다. 성공회 신부이던 로빈슨은 2003년 주교로 서품됐다. 당시 그는 함께 두 딸을 낳은 부인과 이혼하고, 동성 파트너와 10여 년째 동거 중이었다. 그가 주교로 선출되자 미국 성공회 내의 보수 세력이 반발했고 당시 세계 성공회는 미국 성공회와의 관계 단절까지 경고했다. 그의 이야기는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Love, Free or Die)’이라는 영화로도 제작돼 국내에선 지난해 개봉됐다. 국가별로 분권적 성격이 강한 성공회는 지역에 따라 동성애 문제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 대한성공회 교무원 총무국장인 유시경 신부는 “미국 성공회는 동성애자 주교까지 인정한 반면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 성공회는 대체로 보수적”이라며 “국내에서 동성애 문제를 교단 차원에서 논의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 국내 불교-원불교 “소수자 보호차원에서 배려” ▼이슬람은 “性 구분 명확… 불인정”기독교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동성애자 문제를 바라보는 국내의 이웃 종교들은 별 다른 반응 없이 지켜보는 분위기다. 불교에서 수행자와 신자를 위한 여러 계율이 있지만 동성애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부장인 정만 스님은 “교리나 학계에서 동성애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룬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며 “사회적 이슈가 된다면 생명의 관점에서 소수자를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불교 핵심 원리인 연기법(緣起法)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인과관계와 상호의존성에 의해 생기고 사라질 뿐이다. 비슷한 교리 체계를 지닌 원불교의 한 관계자는 “교리에서 동성애와 관련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면서 “일부 교무가 소수자 보호 차원에서 동성애자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슬람교에서는 교리상 성(性)에 따른 남녀의 구별이 명확해 동성애는 허용될 수 없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이주화 이맘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했을 때에는 본성적 목적이 있고, 그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역할도 따로 있다”며 “동성애는 이런 창조본성에 위배된다”고 밝혔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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