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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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5-11-17~2025-12-17
문화 일반51%
인사일반20%
문학/출판10%
기획7%
무용3%
사고3%
칼럼3%
기타3%
  • ‘설은살’ ‘하루갈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최근 재미 삼아 했던 2022년 버전의 신조어 테스트에서 처참한 성적을 받아 들었다. 67개 문제 중 9개의 정답만 맞혔다. ‘어쩌라고, 가서 TV나 보라’는 뜻의 ‘어쩔티비’, 유튜브 등의 구독을 취소한다는 뜻의 ‘구취’는 알고 있던 신조어다. 반면 갑자기 통장을 보니 알바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뜻의 ‘갑통알’, 오늘 운동 완료했다는 ‘오운완’은 알지 못했다. 낮은 성적에 왜 이런 신조어 테스트를 해야 하나 반감이 들던 차에 이 책을 접했다. 1세대 문학평론가이자 영문학자인 유종호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의 에세이다. 1935년생인 유 전 회장은 초등학교 때 광복을 맞았고 중학교 때 6·25전쟁을 겪었다. 그는 책에서 과거에 잘 썼으나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207개 단어의 뜻에 대해 살핀다. 책은 내게 또 다른 의미의 신조어 테스트처럼 느껴졌다. 예를 들어 ‘설은살’이라는 단어를 처음 읽고 ‘서른 살’을 잘못 쓴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이 단어는 동지섣달에 태어난 아이의 나이를 뜻한다. 유 전 회장은 이 단어가 익숙하지 못하다, 모자라다는 뜻을 품고 있다고 짐작하나 기원을 찾을 길은 없다. 감칠맛 나는 우리말이 사라져 간다고 애석해할 뿐이다. 소가 낮 시간 동안 갈 수 있는 논밭의 넓이를 나타내는 ‘하루갈이’라는 단어는 어떤가. 소로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소가 하루에 얼마나 걸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데 이 넓이를 짐작할 수나 있을까. 나 같은 이들의 생각을 아는지 유 전 회장은 이 단어는 도시의 청년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말이라고 평가한다. 버리기 아까운 말도 있다. 낮잡아 홀하게 대접한다는 뜻의 ‘층하’라는 말이 그렇다. 과거 “음식으로 사람 층하하면 못 쓴다”는 식으로 쓰이곤 했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교육 기회가 늘어나면서 평등 의식이 퍼진 덕에 한때 널리 쓰인 단어였다는 게 유 전 회장의 설명. 요즘 말론 ‘갑질’이라는 단어와 가깝다. 유 전 회장이 책을 쓴 건 말을 통해 과거를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말은 그 자체로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상 모두를 담고 있다. 옛 단어를 살피는 일은 그 단어를 쓰던 사람들이 살던 세상을 이해해 보려 노력하는 일이다. 고령 세대와 젊은 세대의 언어가 서로에게 외국어처럼 느껴질 정도로 다른 언어를 쓰는 요즘, 옛 단어를 소개함으로써 세대 간극을 줄이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어처구니없어 보이던 2022년 버전의 신조어 테스트가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좋아요 댓글 구독 알림설정을 하라는 뜻의 ‘좋댓구알’은 유튜브를 많이 보는 세대의 특징이겠다. 혼자 노는 브이로그를 뜻하는 ‘혼놀로그’는 누군가와 너무 어울리기보단 홀로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는 뜻의 ‘복세편살’은 대의보단 소소한 행복을 중시하는 모습 아닐까. 세대 갈등이란 말이 횡행하는 시대, 사라지는 말들과 생겨나는 우리말을 익히는 일종의 ‘외국어(?) 공부’가 이를 줄일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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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조원 시장 ‘K웹툰’, 당당히 학문 속으로

    ‘이말년 시리즈’의 이말년, ‘신과 함께’의 주호민, ‘스위트홈’의 김칸비, ‘마음의 소리’의 조석, ‘미생’의 윤태호….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사랑받는 한국 웹툰 시장은 그간 꽤 많은 스타 작가를 배출해왔다. 그런데 이들의 작품을 ‘클래식(고전)’이라 볼 수 있느냐고 질문한다면 살짝 망설여지는 게 사실. 하나의 전형이나 모범이라 부를 만한 반열에 올랐는지는 흥행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웹툰도 당당하게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대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책이 나왔다. 2018년 6월 시작해 이달까지 출간된 ‘만화웹툰이론총서’ 50권과 ‘만화웹툰작가평론선’(커뮤니케이션북스) 50권. 무려 100권에 한국 웹툰의 역사를 꼼꼼히 담았다. 100권이나 되는 대장정의 첫발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이버 문화재단이 출연한 4억 원을 바탕으로 한국애니메이션학회와 한국캐릭터학회가 100권의 책을 펴내자고 기획했다. 웹툰에 대한 학술적인 이론과 제대로 된 평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전정욱 커뮤니케이션북스 편집주간은 “한국 대학엔 웹툰 관련 학과가 70여 곳이나 되지만 만화 실기 위주로 가르치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2013년 1500억 원에 불과하던 웹툰 시장 규모는 2020년 1조 원으로 성장했지만 관련 연구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번 기획엔 연구자만 64명이 참여했다. 만화애니메이션학과·국문학과·문예창작학과·문화콘텐츠학과·미디어학과 교수뿐 아니라 영화·문학평론가도 상당하다. 대표 기획자인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지식재산권(IP) 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콘텐츠인 웹툰을 평가하려면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며 “웹툰 작가나 관련 PD를 꿈꾸는 청소년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다”고 설명했다. ‘만화웹툰이론총서’는 학문적 근거가 되는 기초 이론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뒀다. 종이책으로 보는 일본의 만가, 미국 코믹스와 달리 스마트폰으로 소비되는 웹툰의 장점을 분석하고, 최근 여성들을 주 독자로 하는 성인 웹툰이 떠오른 사회 문화적 배경을 파고드는 식이다. ‘만화웹툰작가평론선’은 유명 웹툰 작가들의 특징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예를 들어, 이말년 작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만 떠돌던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병맛 코드’를 웹툰에 적용했다. 윤태호 작가는 인간성이 짙은 서사로 웹툰의 작품성을 높였다. “세상의 모든 문화는 하위 문화에서 시작됐어요. 교수라고 고고한 것만 연구한다는 건 편견입니다. 웹툰은 이제 문화로 평가받아야 하고, 그 문화를 제대로 비평하는 게 학자의 역할 아닐까요. ‘시장 규모가 커졌다’는 일방적인 찬사, ‘웹툰 작가가 논란 있다’는 평면적인 비판 너머를 봐야 웹툰의 세계화가 가능합니다.”(한 교수)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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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하나의 예술 장르”…6년 대장정 끝 韓 웹툰史 100권에 담다

    ‘이말년 시리즈’의 이말년, ‘신과 함께’의 주호민, ‘스위트홈’의 김칸비, ‘마음의 소리’의 조석, ‘미생’의 윤태호….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사랑받는 한국 웹툰 시장은 그간 꽤 많은 스타 작가를 산출해왔다. 그런데 이들의 작품을 ‘클래식(고전)’이라 볼 수 있느냐고 질문한다면 살짝 망설여지는 게 사실. 하나의 전형이나 모범이라 부를만한 반열에 올랐는지는 흥행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웹툰도 당당한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대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책이 나왔다. 2018년 6월 시작해 이달까지 출간된 ‘만화웹툰이론총서’ 50권과 ‘만화웹툰작가평론선’(커뮤니케이션북스) 50권. 무려 100권에 한국 웹툰의 역사를 꼼꼼히 담았다. 100권이나 되는 대장정의 첫발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이버 문화재단이 출연한 4억 원을 바탕으로 한국애니메이션학회와 한국캐릭터학회가 100권의 책을 펴내자고 기획했다. 웹툰에 대한 학술적인 이론과 제대로 된 평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전정욱 커뮤니케이션북스 편집주간은 “한국 대학엔 웹툰 관련 학과가 70여 곳이나 되지만 만화 실기 위주로 가르치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2013년 1500억 원에 불과하던 웹툰 시장 규모는 2020년 1조 원으로 성장했지만 관련 연구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고 했다. 이번 기획엔 연구자만 무려 64명이 참여했다. 만화애니메이션학과·국문학과·문예창작학과·문화콘텐츠학과·미디어학과 교수뿐 아니라 영화·문학평론가도 상당하다. 대표 기획자인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지식재산권(IP) 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콘텐츠인 웹툰을 평가하려면 여러 다양한 시각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며 “웹툰 작가나 관련 PD를 꿈꾸는 청소년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책을 썼다”고 설명했다. ‘만화웹툰이론총서’는 학문적 근거가 되는 기초 이론을 마련하는데 중점을 뒀다. 종이책으로 보는 일본의 망가, 미국 코믹스와 달리 스마트폰으로 소비되는 웹툰의 장점을 분석하고, 최근 여성들을 주독자로 하는 성인 웹툰이 떠오른 사회 문화적 배경을 파고드는 식이다. 이에 비해 ‘만화웹툰작가평론선’은 유명 웹툰 작가들의 특징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예를 들어, 이말년 작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만 떠돌던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병맛 코드’를 웹툰에 적용하는 성취를 이뤄냈다. 윤태호 작가는 인간성이 짙은 서사로 웹툰의 작품성을 드높였다. “세상의 모든 문화는 하위문화에서 시작됐어요. 교수라고 고고한 것만 연구한다는 건 편견입니다. 웹툰은 이제 문화로 평가받아야 하고, 그 문화를 제대로 비평하는 게 학자의 역할 아닐까요. ‘시장 규모가 커졌다’는 일방적인 찬사, ‘웹툰 작가가 논란 있다’는 평면적인 비판 너머를 봐야 웹툰의 세계화가 가능합니다.”(한 교수)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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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솔로활동 제이홉-정국, 세계 음반시장 강타

    그룹 활동을 잠시 중단한 방탄소년단(BTS)이 개인 활동으로도 해외 음반 시장을 휩쓸고 있다. 소속사 빅히트뮤직에 따르면 BTS 멤버 제이홉이 15일 발표한 첫 정규앨범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가 16일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49개국 아이튠즈에서 톱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음반 타이틀곡인 ‘방화’는 세계 62개국 아이튠즈 톱 송 차트 정상에 올랐다. ‘방화’ 뮤직비디오(사진)는 유튜브 조회수 1000만 회를 넘겼다. 또 다른 멤버 정국도 막강한 화력을 뽐냈다. 미 싱어송라이터 찰리 푸스와 협업한 ‘레프트 앤드 라이트(Left and Right)’는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에 3주 연속 진입했다. 1일 차트에 41위로 진입한 곡은 현재 66위.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수는 1억 회를 넘어섰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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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중앙박물관, ‘영원한 삶의 집, 아스타나 고분’ 전시

    세계적인 타임캡슐의 보고로 꼽히는 중국 아스타나 고분 출토품을 조명한 전시 ‘영원한 삶의 집, 아스타나 고분’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실에서 16일부터 개최됐다. 아스타나 고분은 투루판 국씨 고창국(麴氏高昌國)과 당나라 귀족 무덤. 20세기 초부터 400기가 넘는 무덤에서 나무와 흙으로 만든 인형과 토기 등이 출토됐다. 중국 신화의 창조신을 담은 ‘복희와 여와 그림’은 상반신이 사람, 하반신이 뱀의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구슬 무늬 명기와 나무 받침’은 유물을 입수했을 당시 자료를 참고해 짝을 맞춰 전시했으며, ‘말을 탄 무인상’은 파편을 접합해 원래 모습을 복원했다. 무료. 2023년 7월 15일까지.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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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개인활동으로도 세계 휩쓸어…제이홉-정국 ‘막강 화력’

    그룹 활동을 잠시 중단한 방탄소년단(BTS)이 개인 활동으로도 해외 음반 시장을 휩쓸고 있다. 소속사 빅히트뮤직에 따르면 BTS 멤버 제이홉이 15일 발표한 첫 정규앨범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가 16일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49개국 아이튠즈에서 톱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음반 타이틀곡인 ‘방화’는 세계 62개국 아이튠즈 톱 송 차트 정상에 올랐다. ‘방화’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조회수 1000만 회를 넘겼다. 더블 타이틀곡인 ‘모어’(More)는 앞서 1일 공개돼 84개국 아이튠즈 톱 송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또 다른 멤버 정국도 막강한 화력을 뽐냈다. 미 싱어송라이터 찰리 푸스와 협업한 ‘레프트 앤드 라이트’(Left and Right)는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에 3주 연속 진입했다. 1일 차트에 41위로 진입한 곡은 현재 66위.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수는 1억 회를 넘어섰다. BTS는 지난달 14일 유튜브 채널 ‘방탄티비’를 통해 단체 음악 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개인 활동을 통해 멤버들의 개성을 살리고 발전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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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으로 살이 빠지지 않는 건 진화의 결과다?[책의 향기]

    뜨거운 여름, 부담스러운 다이어트의 계절이 돌아왔다. 바닷가에서 뽐낼 만한 몸매는 엄두도 안 낸다. 땀으로 흠뻑 젖은 티셔츠 사이로 삐져나오는 뱃살이라도 빼야 할 텐데…. 이런 맘으로 한숨을 쉬며 헬스장으로 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웬걸. “운동해서 살 뺀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며 으름장을 놓는 한 학자의 지적이 담긴 교양과학서가 때마침 나왔다. 아무리 운동으로 땀을 빼도 하루에 소비하는 칼로리는 그다지 많지 않다는 말에 슬금슬금 배신감이 차오를 정도다. 사실 운동만으로 살 빼기 어렵다는 주장은 그리 낯설지는 않다. 그러나 미국 듀크대 진화인류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를 꽤나 치밀한 연구를 통해 낱낱이 파헤친다. 대충 설파하는 허풍이 아니란 소리다. 폰처 교수(사진)는 2009년부터 10년 넘게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전통적인 수렵 채집 생활을 이어가는 하드자족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저 책만 들여다본 게 아니라 아프리카로 직접 날아가 하드자족과 먹고 자며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사자 앞에서 벌벌 떨고, 땡볕 더위에 녹초가 돼가며 하드자족의 생활습관과 에너지 소비량을 꼼꼼히 기록했다. 책에 따르면 하드자족 성인 남성은 하루 평균 14km를 걷는다. 농사를 짓지 않아 음식을 구하려면 초원을 매일 걸어 다녀야 하기 때문. 하드자족 남성이 태어나 70대까지 걷는 거리는 평균 38만4000km.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와 거의 비슷할 정도다. 그런데 묘하게도 하드자족의 에너지 소비량은 그다지 높지 않다. 예를 들어 체중이 110파운드(약 50kg)인 하드자족 성인 남성의 일일 에너지 소비량은 2500kcal에 불과했다. 체중이 같은 미국이나 영국, 네덜란드, 일본, 러시아 등의 성인 남성 일일 에너지 소비량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온종일 걷거나 뛰어다니는데도 도시인들과 에너지 소비량이 비슷한 것이다. 체중이 다른 이나 여성으로 두 집단을 비교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폰처 교수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배경에 ‘에너지 균형’이 작용한다고 진단한다. 에너지 균형이란 신체가 고강도 활동으로 에너지 소비량이 크게 늘어나면 다른 에너지 소비를 자동으로 절약해 전체 에너지 소비량을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많이 하면 인간의 몸은 스스로 기초 대사량을 줄여버린다. 외부에서 들어온 병원균에 저항하는 힘인 면역력이나 다친 신체 조직을 복구하는 속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결국 운동으로 열심히 땀을 빼도 다이어트엔 별로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물론 단기적으로야 살이 빠질 수 있지만 결국엔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는 슬픈(?) 주장을 저자는 담담하게 전한다. 인간의 몸이 이렇게 설계된 이유는 뭘까. 진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식량 공급이 불안정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이다. 인간이 수렵 채집 생활을 할 땐 식사량과 운동량이 달라져도 매번 에너지 할당량을 유연하게 바꿔야 했다.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조상들이 생존을 위해 진화해온 몸의 구조가 현대인의 다이어트를 방해하고 있는 셈이랄까. 그럼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폰처 교수는 병을 주면서 약도 줬다. 그래도 운동이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엔 도움을 준단다. 먼저 식단 조절로 살을 뺀 뒤에 꾸준히 운동하면 적어도 ‘요요 현상’은 막을 수 있다고 다독거린다. 또 건강을 위해서는 신진대사 조절 능력을 높이는 운동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비만, 당뇨, 고혈압을 일으키는 음식을 자주 섭취하는 현대인들이 웰빙할 수 있는 비결은 역시 운동밖에 없단 소리다. 운동 안 하고 살 좀 빼는 비법이라도 얻을까 싶어 책을 들었던 이들에겐 입이 삐죽 튀어나올 얘기겠지만, 뭐 원래 삶이란 그런 거다. 고민한답시고 앉아 있지 말고 일단 나가서 걸어야 한다. 그럼 이 책도 얼른 덮어야 하는 게 아닌지…. 살짝 헷갈리긴 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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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 14km 걷는 아프리카 부족, ‘칼로리 소비량’은 도시인과 비슷했다

    뜨거운 여름, 부담스런 다이어트의 계절이 돌아왔다. 바닷가에서 뽐낼만한 몸매는 엄두도 안 낸다. 땀으로 흠뻑 젖은 티셔츠 사이로 삐져나오는 뱃살이라도 빼야 할 텐데…. 이런 맘으로 한숨을 쉬며 헬스장으로 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웬걸. “운동해서 살 뺀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며 으름장을 놓는 한 학자의 지적이 담긴 교양과학서가 때마침 나왔다. 신간 ‘운동의 역설’. 아무리 운동으로 땀을 빼도 하루에 소비하는 칼로리는 그다지 많이 않다는 말에 슬금슬금 배신감이 차오를 정도다. 사실 운동만으로 살 빼기 어렵다는 주장은 그리 낯설지는 않다. 그러나 미국 듀크대 진화인류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를 꽤나 치밀한 연구를 통해 낱낱이 파헤친다. 대충 설파하는 허풍이 아니란 소리다. 허먼 폰처 교수는 2009년부터 10년 넘게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전통적인 수렵채집 생활을 이어가는 하드자족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저 책만 들여다본 게 아니라 아프리카로 직접 날아가 하드다족과 먹고 자며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사자 앞에서 벌벌 떨고, 땡볕 더위에 녹초가 돼가며 하드다족의 생활습관과 에너지 소비량을 꼼꼼히 기록했다. 책에 따르면 하드다족 성인 남성은 하루 평균 14km를 걷는다. 농사를 짓지 않아 음식을 구하려면 초원을 매일 걸어 다녀야 하기 때문. 하드자족 남성이 태어나 70대까지 걷는 거리는 평균 38만4000km.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와 거의 비슷할 정도다. 그런데 묘하게도 하드다족의 에너지 소비량은 그다지 높지 않다. 예를 들어 체중이 110파운드(약 50kg)인 하드다족 성인 남성의 일일 에너지 소비량은 2500kcal에 불과했다. 체중이 같은 미국이나 영국, 네덜란드, 일본, 러시아 등의 성인 남성 일일 에너지 소비량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온종일 걷거나 뛰어다니는데도 도시인들과 에너지 소비량이 비슷한 것이다. 체중이 다른 이나 여성으로 두 집단을 비교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폰처 교수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배경에 ‘에너지 균형’이 작용한다고 진단한다. 에너지 균형이란 신체가 고강도 활동으로 에너지 소비량이 크게 늘어나면 다른 에너지 소비를 자동으로 절약해 전체 에너지 소비량을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많이 하면 인간의 몸은 스스로 기초 대사량을 줄여버린다. 외부에서 들어온 병원균에 저항하는 힘인 면역력이나 다친 신체 조직을 복구하는 속도를 떨어트리기도 한다. 결국 운동으로 열심히 땀을 빼도 다이어트엔 별로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물론 단기적으로야 살이 빠질 수 있지만 결국엔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는 슬픈(?) 주장을 저자는 담담하게 전한다. 인간의 몸이 이렇게 설계된 이유는 뭘까. 진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식량 공급이 불안정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이다. 인간이 수렵채집 생활을 할 땐 식사량과 운동량이 달라져도 매번 에너지 할당량을 유연하게 바꿔야 했다. 야생에서 살아남아야 위해서다. 조상들이 생존을 위해 진화해온 몸의 구조가 현대인의 다이어트를 방해하고 있는 셈이랄까. 그럼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폰처 교수는 병을 주면서 약도 줬다. 그래도 운동이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엔 도움을 준단다. 먼저 식단 조절로 살을 뺀 뒤에 꾸준히 운동하면 적어도 ‘요요현상’은 막을 수 있다고 다독거린다. 또 건강을 위해서는 신진대사 조절 능력을 높이는 운동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비만, 당뇨, 고혈압을 일으키는 음식을 자주 섭취하는 현대인들이 웰빙할 수 있는 비결은 역시 운동 밖에 없단 소리다. 운동 안 하고 살 좀 빼는 비법이라도 얻을까 싶어 책을 들었던 이들에겐 입이 삐죽 튀어나올 얘기겠지만, 뭐 원래 삶이란 그런 거다. 고민한답시고 앉아있지 말고 일단 나가서 걸어야 한다. 그럼 이 책도 얼른 덮어야 하는 게 아닌지…. 살짝 헷갈리긴 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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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른넷 김연수의 글, 쉰둘의 김연수가 고쳐 쓰다

    어느덧 쉰 살이 됐다. 청춘이란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나이. 그즈음 서른네 살 때 펴냈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청춘의 끝자락에 썼던 문장을 따라 썼다. 배역을 이해하기 위해 연기하는 연극배우처럼. 불현듯 옛글을 고치고 있는 나. 그 시절 눌러쓰던 손에 지금의 손이 겹쳐 보였다. 그렇게 50대의 난 불안이 가득했던 30대의 날 다독였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면서 살아도 괜찮아. 믿기지 않겠지만 믿어야 해. 그렇게 믿는 과정이 앞으로의 내 인생이 될 거야.” 18년 전 썼던 젊음의 문장을 오롯이 자신의 내면에 다시 담아낸 작가가 있다. 소설 ‘밤은 노래한다’(2008년) 등으로 탄탄한 독자층을 지닌 소설가 김연수(52)가 자신의 인기 에세이 ‘청춘의 문장들’(마음산책) 개정판을 선보인다. 20일 출간되는 개정판은 2년 동안이나 개고를 거쳤다고 한다. 2004년 첫선을 보인 뒤 10만 부가 넘게 팔린 이 책을 개정한 건 이번이 처음. 1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김 작가는 그 이유를 “청춘 때 쓴 글의 유효기간이 지났다. 원래 절판하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글을 고치고 있더라”며 웃어보였다. “읽다 보니 청춘 김연수의 절박함, 서투름, 불안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지금 청춘들도 이 책을 읽으면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요. 현재의 독자에게 보내는 새 글을 써보자는 마음으로 2020년 초부터 올 5월까지,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뜯어고쳤습니다.” ‘청춘의 문장들’은 젊은 시절 김연수가 읽은 문장과 그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과 조선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글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청춘 김연수의 모습이 담겼다.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살펴보면 ‘청춘의 문장들’ 기존 판은 구매자 가운데 20, 30대가 73.5%로 압도적이다. 18년이나 지난 ‘낡은 글’을 왜 현재 청춘들이 찾고 있는 걸까. “불안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청춘은 예나 지금이나 모두 불안하죠. 청춘의 내가 불안에 가득 차서 쓴 글이라 공감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30대엔 바로 내일만 생각하며 불안했지만, 50대가 되고 나니 조금 더 먼 미래의 내 모습도 상상할 수 있게 됐어요.” 개정판은 눈에 띄게 문장이 담백해졌다. 청춘 김연수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었다면, 중년 김연수는 좀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예를 들어, 김연수가 자신이 매순간 의미 있게 살지 않으면 그 즉시 자살하겠단 내용의 ‘조건부 자살 동의서’를 작성해 책가방에 넣고 다녔다는 일화는 개정판에도 그대로 실렸다. 하지만 작가는 개정판에서 이 동의서를 두고 “우스꽝스러운 내용”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아무래도 감정이 과잉된 부분이 있었어요. 젠체하고, 아는 체하는 내용은 싹 지워버렸어요. 그리고 40대에 썼지만 발표하지 않았던 에세이 3편도 추가했습니다. 삶의 골짜기같이 힘들었던 40대를 건너왔을 때 깨달은 감정에 관해 담고 싶었어요.” 2013년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이후 단편소설집을 내지 않았던 작가는 올해 하반기 6번째 단편소설집을 펴낼 예정. 어머니가 생전에 쓴 책을 찾아다니다 일종의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 방송국 PD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죽였다는 의혹을 받던 딸과 관련된 진실을 찾아가는 ‘진주의 결말’ 등 8편을 담는다. 9년 만에 선보이는 단편소설집에 작가는 무얼 담고 싶을까. “현재도 진행형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에 고민했던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좌절과 절망을 겪었지만 그곳에서 희망을 찾고, 기존의 삶 대신 다른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찾아내려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제가 50대에 쓴 이 소설집을 통해 희망을 말하고 싶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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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의성 높은 소재로 출판 트렌드 바꾸는 ‘플랫폼 출판’

    ‘브런치북 9회 대상 수상작.’ 지난달 30일과 이달 1일 각각 출간된 장편소설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문학동네)와 에세이 ‘콜센터의 말’(민음사) 책 띠지에 붙은 홍보문구다. 이 책들은 카카오의 콘텐츠 구독 플랫폼 ‘브런치’가 개최한 공모전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출간됐다. 두 책을 포함해 6, 7월 출간됐거나 출간 예정인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책은 10권에 이른다. 에세이 ‘날것 그대로의 섭식장애’(부키) ‘미물일기’(어크로스) 등 중소출판사 책뿐 아니라 에세이 ‘여자야구입문기’(위즈덤하우스) ‘작고 기특한 불행’(알에이치코리아) 같은 대형 출판사 책도 다수다. 4년 전 제5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참여한 곳은 3개 중소 출판사였던 것과 달라진 상황이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로 출간된 작품은 시의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콜센터의 말’은 코로나19 시기 일본 여행사 콜센터에서 일한 저자의 경험이 담겼다.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는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몰락을 다뤘다. 에세이 ‘내돈 내산 내집’(흐름출판)은 MZ세대의 투자 열풍을 반영했다. 한 출판사 대표는 “브런치에서 발굴돼 올해 1월 출간된 뒤 베스트셀러가 된 장편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클레이하우스)의 성공이 출판계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출판사의 자체 기획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출판사 대표는 “대형 출판사의 신간 발굴 능력이 떨어진 상황이 빚어낸 기현상”이라고 지적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책은 출판사를 거쳐 시장에 소개돼야 한다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며 “출판사가 기획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저자들은 출판사를 떠나 다른 플랫폼으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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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섣부른 화해보다 올바른 분노부터[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낯선 언어가 울려 퍼졌다. 모르는 시어는 음악처럼 들렸다.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시집 ‘그 여자는 화가 난다’를 읽어 내려간 이는 덴마크 작가 마야 리 랑그바드다. 그는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에 입양됐다. 2007∼2010년 서울에 살며 자신처럼 다른 나라로 입양됐던 이들을 인터뷰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4년 덴마크에서 시집을 펴냈고 8년 만에 한국에 책을 번역 출간한 기념으로 시를 낭독한 것이다. 그는 시를 통해 국제 입양 실태에 대해 화를 낸다. 입양기관이 버려진 아이들을 해외에 입양시키는 일로 많은 돈을 버는 현실에 분노한다. 정부가 묵인한 국제입양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자신이 (한국의) 수출품이었기에 화가 난다”고 토로한다. “어린이를 입양 보내는 국가는 물론 입양기관도 국가 간 입양을 통해 돈벌이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고 말한다. 물론 그 역시 입양 제도에 일부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버려진 아이들에겐 가정이 필요하고, 피치 못할 이유로 아이를 입양시켜야 하는 부모의 마음도 이해한다. 자신 역시 그렇게 살아남았으니까.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입양 실태에 대해 비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직도 입양은 아이들을 위해 부모를 찾아주는 일보다 부모들을 위해 아이를 찾아주는 일을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또 미혼모에 대한 경제적 지원보다 입양이 더 장려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자신의 분노가 깊은 슬픔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분노를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는 “화가 난다”고 반복해 외친다. “제가 입양되지 않았다면 길에서 살았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항상 입양됐다는 것에 감사하길 요구받았죠. 하지만 그렇다고 입양 제도에 대해 분노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건강하게, 입체적으로 분노할 수 있습니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분노니까요.” 그의 시집은 제75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송강호) 수상작인 영화 ‘브로커’의 대척점에 있다. ‘브로커’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빼돌려 파는 브로커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아기를 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처한 엄마 소영(이지은)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보육원 출신 동수(강동원)가 소영의 힘든 처지를 바라보며 자신을 버린 엄마를 이해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영화가 말하려 하는 건 입양을 보내는 부모와 버려진 아이의 화해다. 그러나 이 시집을 읽다 보면 입양아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분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상처를 지닌 이들에겐 화를 낼 시간이 필요하다. 슬픔을 토로할 언어가 필요하다. 분노가 먼저이고 그 이후에 이뤄져야 할 일이 화해가 아닐까. 섣부른 화해보다 올바른 분노가 입양아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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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 한양’ 집 꿈꾼 정약용… 100만평 농장 일군 이황

    “한양에서 10리 안에 살게 하겠다.” 1810년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두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당시 정약용은 신유박해(천주교 박해 사건)로 유배된 상태였다. 귀양 생활을 끝낸 뒤 자식들에게 한양 혹은 한양과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한 것. 정약용은 “조선은 (중국에 비해) 문명이 뒤떨어져서 한양에서 몇십 리만 멀어져도 원시사회”라며 “어떻게든 한양 근처에 살면서 문화의 안목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정약용은 또 “만약 한양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을 불린 후에 들어가도 늦지 않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약용은 끝내 ‘인 서울’을 못 하고 현재의 경기 남양주시에 살았다. 조선시대 유행한 부동산 투기와 재테크 일화를 다룬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위즈덤하우스·사진)에 담긴 사례다. 최근 이 책을 출간한 이한 작가(44)는 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에 중요한 정보가 몰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며 “오죽하면 정약용도 아들에게 서울에 살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겠느냐”고 했다. 이 작가는 조선왕조실록을 기본 자료로 삼았다. 조선시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생하게 기록한 ‘승정원일기’, 유명 인물들의 편지와 상소문도 참고했다. 한양은 항상 사람으로 바글거렸다. 백성들은 더 좋은 일거리를 찾아 상업이 발달한 한양으로 몰려들었다. 양반들은 한양에서 열리는 과거(科擧)를 보기 위해 상경했다. 그러다 보니 한양엔 항상 집이 부족했다. 성균관 유생들은 하숙할 때 작은방에서 2명씩 함께 사는 게 보통이었다. 집을 구하지 못한 백성들은 풀과 가시나무로 엉성하게 가건물을 짓고 살았다. 부작용도 일어났다. 고위관리들이 백성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않고 집을 뺏는 ‘여가탈입(閭家奪入)’도 성행한 것. 어영청 대장 윤태연(1709∼1777)은 10칸 남짓 되는 집을 백성들에게 빼앗아 30칸으로 나눠 세를 놓는 ‘쪽방 재테크’를 했다. 이 작가는 “집안 살림에 꾸준히 정성을 기울여 100만 평의 농장을 소유한 이황(1501∼1570) 같은 인물도 있다”며 “하지만 양반과 백성 가릴 것 없이 집을 구하지 못해 안달이 났던 건 사실”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투기 열풍을 조사하며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묻자 이 작가는 답했다. “올 초까지 한국을 뒤흔든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열풍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어요. 과거나 지금이나 성실하게 살아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투기가 성행하는 것 아닐까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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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 원조 충무김밥… 대전 철공소 거리… “지역 알리자” 책으로 뭉친 지역 출판사

    서울을 떠나 지방에 출판사를 차렸다. 3∼10년에 걸쳐 노력한 끝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가끔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대형 출판사의 책만, 서울 이야기만 주목받으니까. 그래서 5개 지역 소형 출판사가 마음을 모아보기로 했다. 강원 고성군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군 ‘포도밭출판사’, 대전 동구 ‘이유출판’, 전남 순천시 ‘열매하나’, 경남 통영시 ‘남해의봄날’이 각 지역의 명물을 담은 에세이 시리즈 ‘어딘가에는 @ 있다!’(전 5권)를 7일 펴낸 이유다. 기획이 시작된 건 2년 전이었다. 친한 친구도 안 만난다는 코로나19 시대였다. 정은영 남해의봄날 대표가 다른 출판사 대표들에게 “한 번 모여서 기획을 하자”고 무작정 연락했다. 알고 지낸 이도 있었지만 처음 연락하는 이도 있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지난해 초부터 화상으로 정기적으로 만나 회의를 했다. 정 대표는 “각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삶을 담아내고 싶다는 마음만은 하나였다. 우리끼리 통하는 게 많아서 좋았다”고 했다. 에세이 5편에는 지역에 대한 섣부른 환상을 걷어내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모습을 오롯이 살리려 노력했다. ‘어딘가에는 원조 충무김밥이 있다’(남해의봄날)는 충무김밥 취재기다. 통영 사람으로서 많이 듣는 “충무김밥 원조가 어디예요?”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통영의 충무김밥 맛집을 구석구석 탐험한다. 1981년 전두환 정권이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개최한 관제 문화축제 ‘국풍81’에서 충무김밥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사실, 충무김밥과 함께 먹는 석박지 단면의 각도가 15∼20도로 일정하게 유지돼 식감이 살아나는 과정을 세밀하게 소개한다. ‘어딘가에는 도심 속 철공소가 있다’(이유출판)는 대전 철공소 거리를 들여다본다. 1950년 대전 최초의 공업사인 남선기공이 설립된 뒤 우리나라 금속 제조업 메카로 자리 잡은 철공소 거리를 샅샅이 조사했다. 철공소 장인들을 인터뷰해 쇠락한 거리의 청춘을 회상한다. 유정미 이유출판 대표는 “장인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가 기름때와 범벅이 돼 행인을 붙잡는 곳이다. 오래 묵은 이야기를 채집하고 싶었다”고 했다. 옥천에 사는 이주여성의 애환을 담은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포도밭출판사)처럼 사회문제를 다루고, 순천만국가정원에서 철마다 버려지는 꽃들을 보며 고민하다가 생태를 고려한 여러 형태의 정원을 순천에 만든 과정을 정리한 ‘어딘가에는 마법의 정원이 있다’(열매하나)처럼 환경문제를 고찰하기도 한다. 태백에서 젊은 부부가 자연을 주제로 한 그림을 동판에 새겨 종이에 인쇄하는 ‘레터프레스’ 작업을 하는 일상을 담은 ‘어딘가에는 아마추어 인쇄공이 있다’(온다프레스)는 개인적인 고백을 기록했다. 박대우 온다프레스 대표에게 출간 소감을 물으니 담담한 답변이 돌아왔다. “지역 소형 출판사들이 낸 책은 보통 인기를 끌기 어렵습니다. 언론사에서 관심을 갖는 건 처음이라 신기하네요. 각 지역과 수도권 독자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면 힘을 내서 다음 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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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 서울’ 꿈꾼 정약용, ‘재테크의 달인’ 이황…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한양에서 10리 안에 살게 하겠다.” 1810년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두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당시 정약용은 신유박해(천주교 박해 사건)로 유배된 상태였다. 귀양 생활을 끝낸 뒤 자식들에게 한양 집을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한 것. 정약용은 “조선은 (중국에 비해) 문명이 뒤떨어져서 한양에서 몇 십리만 멀어져도 원시사회”라며 “어떻게든 한양 근처에 살면서 문화의 안목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정약용은 또 “만약 한양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을 불린 후에 들어가도 늦지 않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약용은 끝내 ‘인 서울’하지 못하고 현재의 경기 남양주시에 살았다. 최근 대중역사서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위즈덤하우스)를 펴낸 이한 작가(44)는 4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서울에 중요한 정보가 몰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며 “오죽하면 정약용도 아들에게 서울에 살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겠나”고 했다. 신간은 조선시대 유행했던 부동산 투기와 재테크 일화를 다룬다. “‘조선왕조실록’을 기본 자료로 삼았습니다. 조선시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생하게 기록한 ‘승정원일기’, 유명 인물들의 편지와 상소문을 참고해 당시 상황을 전하려 했어요.”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은 항상 사람으로 바글거렸다. 백성들은 더 좋은 일거리를 찾아 상업이 발달한 한양으로 몰려들었다. 양반들은 한양에서 열리는 과거를 쉽게 보기 위해, 더 좋은 정보를 얻기 위해 상경했다. 그러다 보니 항상 한양엔 집이 부족했다. 성균관 유생들은 하숙할 때 2인이 작은 방에 사는 게 보통이었다. 백성들은 집을 구하지 못해 풀과 가시나무로 엉성하게 가건물을 짓고 살았다. 부작용도 일어났다. 어영청 대장 윤태연(1709~1777)은 10칸 남짓 되는 집을 백성들로부터 빼앗아 30칸으로 잘라 세를 놓는 ‘쪽방 재테크’를 벌였다. 고위관리들이 백성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않고 집을 뺏는 ‘여가탈입’(閭家奪入)도 성행했다. 이 작가는 “집안 살림에 꾸준히 정성을 기울여 100만 평의 농장을 소유한 이황(1501~1570) 같은 모범적인 인물도 있다”며 “하지만 양반과 백성 가릴 것 없이 집을 구하지 못해 안달이 났던 건 사실”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투기 열풍을 조사하며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묻자 이 작가는 차분히 답했다. “올 초까지 한국을 뒤흔든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열풍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어요. 과거나 지금이나 성실하게 살아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투기가 성행하는 것 아닐까요.”이호재기자 hoho@donga.com}

    • 202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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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의 집 에어컨을 닦다가… 반짝반짝 詩를 얻다

    “냉장고 선반을 욕실에서 닦으면 어떻게 해요?” 조수형 시인(51)은 냉장고 출장 청소를 하다 고객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냉장고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음식 찌꺼기가 젤리처럼 굳고, 검은 때가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선반의 묵은 얼룩을 지우려 욕실에서 세척을 했는데 고객이 화를 낸 것이다. 고객은 조 시인이 욕실에서 청소하는 장면을 말없이 지켜보다 나중에야 이를 지적했다. 조 시인은 고객의 요구대로 무료로 욕실 청소까지 했다. 고객은 “현금이 없으니 냉장고 청소비는 계좌로 송금하겠다”고 했다. 화가 치밀었으나 참았다. 먹고사는 일은 다 구차하니까. 하지만 고객은 돈을 보내지 않았다. 최근 조 시인이 펴낸 에세이 ‘마음을 쓰는 일, 몸을 쓰는 시’(눌민·사진)에 담긴 일화다. 조 시인은 3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은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이가 많아 고객과 작업자 사이에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가 흔하다”며 “타인의 집 안으로 들어가서 일하는 출장 청소는 육체노동이자 감정노동”이라고 했다. 그는 2015년부터 아내와 함께 가전제품청소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청소합니다. 2인 1조 작업 기준으로 2∼4시간이 걸리고 10만 원 안팎을 받습니다. 청소가 끝난 뒤 냉장고가 기울어졌다고 우기거나, 작업하러 들어가자 집에 있는 에어컨을 꺼버리는 고객을 만날 때면 몸을 쓰는 일이 왜 천대받는지 되묻게 되죠.” ‘진상 고객’만 만나는 건 아니다. 세탁기를 청소하던 그는 찌꺼기 거름망에서 금목걸이 조각을 찾았다. 조각을 보고 고객이 털어놓은 건 남편과의 추억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드럼세탁기와 목걸이를 선물했던 남편과 고객의 사연을 듣고 그는 시를 썼다. ‘사라졌던 노란 18금 실 목걸이/물속 어딘가를 떠돌다/아직은 다 빨지 못한 그이를/빨래찌꺼기 속에서 데려온다’(‘아직…’ 중) “고객의 속살과도 같은 가전제품을 청소하다 보면 시가 되는 이야기를 만나기도 하죠. 가만히 앉아서 쓰는 글보다 현실에서 건져 올린 시가 사람들의 공감을 더 얻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으로 청소하고, 시 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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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문학사상, ‘비주류’ 장르문학에 꽂혔다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에서도 기획하기 힘든 장르문학 작가 20명의 작품 단체 게재를 ‘현대문학’에서 제안받았을 때 나는 ‘정말?’ ‘진짜로?’라고 반신반의했다.” 소설집 ‘저주토끼’(Cursed Bunny·아작)로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46)는 1일 출간된 문학잡지 현대문학 7월호에 이렇게 썼다. 1955년 창간돼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잡지인 현대문학이 7, 8월호를 연달아 장르문학 특집으로 꾸미자 놀라움을 표현한 것이다. 특집에는 정 작가가 섭외한 장르문학 작가 20명의 작품을 실었다. 윤희영 현대문학 잡지팀장은 “순수문학을 주류, 장르문학을 비주류로 정하고 선을 긋던 문학계 판도가 바뀌며 내린 선택”이라며 “문학잡지에 연재된 작품을 묶어 단행본도 펴낼 계획”이라고 했다. 순수문학을 주로 소개했던 전통 있는 문학잡지들이 장르문학을 소개하고 있다. 문학잡지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외연을 넓히며 독자를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1972년 창간한 문학잡지 ‘문학사상’은 7월호 주제를 한국 장르문학의 발전으로 정했다. 최근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인정받는 이유로 장르문학의 문학성이 높아졌다는 점을 꼽으며 장르문학의 변화에 주목했다. 장르문학 전문 잡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6월 네 번째 주 문학잡지 분야 베스트셀러 중 공상과학(SF) 문학 전문 잡지인 ‘어션테일즈 3호’(아작)가 2위, 추리문학 전문 잡지인 ‘미스테리아 41호’(엘릭시르)가 4위를 차지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순수문학의 본가로 불리는 ‘현대문학’ ‘문학사상’의 선택은 장르문학이 대세로 떠오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며 “독자를 잡기 위한 문학잡지의 변화는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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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여대 무용과, 6일 ‘무브먼트 이화’ 공연 [전합니다]

    이화여대 무용과 학생들이 마련한 공연 ‘무브먼트 이화’가 6일 오후 7시 반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삼성홀에서 열린다. ‘무브먼트 이화’엔 학부 및 대학원 재학생으로 구성된 총11팀이 안무한 작품이 오른다.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등 모든 전공이 참여한다. 티켓은 사전 예매 중이며 현장에서도 구입 가능하다. 공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이화여대 또는 이화여대 무용과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석 2만 원.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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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독재자의 연서, 수용소의 작별…편지는 역사가 되었다

    1912년 조지아 출신의 34세 청년 이오시프 주가시빌리는 16세 소녀 펠라게야 아누프리예바에게 연애편지를 보낸다. 두 사람은 러시아 서쪽 항구도시 볼로그다에서 만났다. 청년은 소녀를 ‘섹시한 폴랴’, 소녀는 청년을 ‘괴짜 오시프’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청년은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를 타기 직전 소녀에게 연서를 쓴다. “키스를 보낼게. 그냥 키스가 아니라 아주 열정적이고 진한 키스를 담아”라고. 청년은 나중에 자신의 이름을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으로 바꾼다. 그는 러시아 혁명에 동참해 러시아 제국을 전복시키고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을 도와 소련을 세웠다. 30여 년간 소련을 이끈 정치인이자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독재자가 됐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인간이지만 편지에선 의외로 로맨틱한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전 세계의 편지 129통을 모았다. 가족, 전쟁, 권력, 작별 등 18개 주제에 맞춰 편지를 추려 담고 해설을 덧붙였다.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가 자신의 팬에게 보낸 열정적인 편지, 독일 정치인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소련을 침공하기 전날 밤 이탈리아 정치인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에게 보낸 전쟁을 암시하는 편지를 읽다보면 제목처럼 우편함 속에 세계사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편지는 역사를 바꾼다. 훗날 영국 여왕이 되는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1544년 ‘피의 메리’로 불리는 이복 언니 메리 1세(1516∼1558)에게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는 편지를 썼다. 반란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던 엘리자베스 1세는 감금되기 전 쓴 편지에서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만한 어떤 일도 실행하거나 조언하거나 동의하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한다. “폐하의 타고난 선하심에 희망을 건다” “폐하의 가장 충실한 신하”라는 말로 감정을 흔든다. 이 글이 힘을 발휘해서일까. 엘리자베스 1세는 죽음을 면하고 훗날 대영제국을 이끄는 왕이 된다. 뛰어난 편지는 연설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1940년 영국 정치인 윈스턴 처칠(1874∼1965)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에게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쓴다. 당시 처칠은 총리가 된 지 겨우 열흘밖에 되지 않았다.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한 뒤 영국 공격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칠은 “우리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하면서도 영국이 패전한다면 “대통령께 남은 협상 카드는 오직 함대밖에 없다”고 도발한다. 편지는 영원한 작별의 인사가 되기도 한다. 1944년 유대인 여성 빌마 그륀발트는 남편 쿠르트 그륀발트에게 둘째 아들을 부탁하며 짧은 편지를 썼다. 빌마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상태였다. 빌마는 첫째 아들 존이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처형 대상으로 분류되자 어머니로서 함께 가스실에 가기를 선택한다. 빌마가 수용소 감독관에게 맡긴 편지처럼 절절한 작별편지가 또 있을까. “트럭들이 이미 와 있고, 그 일이 시작되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전혀 동요하지 않아요. 우리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두 사람 모두, 꼭 건강해야 해요. 멋진 인생을 살아요. 우리는 이제 트럭에 올라야 해요. 영원히 안녕.”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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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과 아우슈비츠 가스실 택한 아내가 남편에게 남긴 편지엔…

    1912년 조지아 출신의 34세 청년 이오시프 주가시빌리는 16세 소녀 펠라게야 아누프리예바에게 연애편지를 보낸다. 두 사람은 러시아 서쪽 항구도시 볼로그다에서 만났다. 청년은 소녀를 ‘섹시한 폴랴’, 소녀는 청년을 ‘괴짜 오시프’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청년은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를 타기 직전 소녀에게 연서를 쓴다. “키스를 보낼게. 그냥 키스가 아니라 아주 열정적이고 진한 키스를 담아”라고. 청년은 나중에 자신의 이름을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으로 바꾼다. 그는 러시아 혁명에 동참해 러시아 제국을 전복시키고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을 도와 소련을 세웠다. 30여 년 간 소련을 이끈 정치인이자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독재자가 됐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인간이지만 편지에선 의외로 로맨틱한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우편함 속 세계사’(시공사)는 역사학자인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가 전 세계의 편지 129통을 모았다. 가족, 전쟁, 권력, 작별 등 18개 주제에 맞춰 편지를 추려 담고 해설을 덧붙였다.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가 자신의 팬에게 보낸 열정적인 편지, 독일 정치인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소련을 침공하기 전날 밤 이탈리아 정치인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에게 전쟁을 암시하는 편지를 읽다보면 제목처럼 우편함 속에 세계사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편지는 역사를 바꾼다. 훗날 영국 여왕이 되는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1544년 ‘피의 메리’로 불리는 이복 언니 메리 1세(1516~1558)에게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는 편지를 썼다. 반란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던 엘리자베스 1세는 감금되기 전 쓴 편지에서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만한 어떤 일도 실행하거나 조언하고나 동의하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한다. “폐하의 타고 난 선하심에 희망을 건다” “폐하의 가장 충실한 신하”라는 말로 감정을 흔든다. 이 글이 힘을 발휘해서일까. 엘리자베스 1세는 죽음을 면하고 훗날 대영제국을 이끄는 왕이 된다. 뛰어난 편지는 연설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1940년 영국 정치인 윈스턴 처칠(1874~1965)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에게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쓴다. 당시 처칠은 총리가 된 지 겨우 열흘 밖에 되지 않았다.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한 뒤 영국 공격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칠은 “우리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하면서도 영국이 패전한다면 “대통령께 남은 협상 카드는 오직 함대밖에 없다”고 도발한다. 편지는 영원한 작별의 인사가 되기도 한다. 1944년 유대인 여성 빌마 그륀발트는 남편 쿠르트 그륀발트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빌마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상태였다. 빌마는 첫째 아들 존이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처형 대상으로 분류되자 어머니로서 함께 가스실에 가기를 선택한다. 빌마가 수용소 감독관에게 맡긴 편지처럼 절절한 작별편지가 또 있을까. “트럭들이 이미 와 있고, 그 일이 시작되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전혀 동요하지 않아요. 우리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두 사람 모두, 꼭 건강해야 해요. 멋진 인생을 살아요. 우리는 이제 트럭에 올라야 해요. 영원히 안녕.”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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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가지 소원 들어줄게… 아이들 공감할 기쁨 담았어요”

    3마리 원숭이가 초록색 소파에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따분해서 졸릴 지경이다. 텔레비전을 끄고 밖에 나가 놀까? 원숭이들이 고민하던 차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등에 날개가 달린 파란 요정이 나타난 것이다. 텔레비전 밖으로 살며시 나온 요정은 제안한다. “너희를 위해서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어. 나는 너희의 소원 세 가지를 들어줄 거야. 뭐든 말만 하면 돼.” 그러곤 조용히 “소원은 아주 신중하게 골라야 해”라고 덧붙인다. 과연 원숭이들은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인가 싶었더니 고전 동화 ‘세 가지 소원’을 재해석한 이야기였다. 6월 23일 그림책 ‘엄청나게 커다란 소원’(웅진주니어)을 펴낸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76)은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세 가지 소원’은 어린 시절 나를 웃게 만든 이야기다. 재미있는 책을 만들고 싶어 이 이야기를 재해석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2000년 어린이문학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받은 그가 신간을 낸 건 지난해 2월 ‘공원에서’(웅진주니어) 이후 1년 4개월 만이다. “사실 ‘세 가지 소원’이라는 이야기를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인 건 분명하죠. 온화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죠.” 매번 창의적인 그림책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이야기의 마술사인 그는 신작에서도 고전 동화를 새롭게 해석한다. ‘세 가지 소원’ 고전 동화도 주인공을 남자 형제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신작에서 주인공을 원숭이로 바꿨다. 사람 대신 동물을 내세우는 변주는 그의 대표작인 ‘고릴라’(1982년), ‘미술관에 간 윌리’(2001년), ‘돼지책’(2002년)을 생각나게 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나이를 특정할 수 없게 했다”며 “셋의 관계에 대한 뚜렷한 단서도 없는 비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신간은 ‘소원’이라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주제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매번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이유를 묻자 그는 “아이들은 모두 다르지만 많은 면에서 똑같다. 모든 아이들이 느끼는 기쁨, 슬픔, 흥분, 사랑을 작품에 담는 게 내 일”이라고 했다. 그는 커튼이 닫힌 무대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작업 막바지에 표지를 급하게 수정했다. 이 작품을 한 편의 연극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그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첫 장면은 마치 관객들이 무대 위 연극을 지켜보는 듯하다”며 “농담, 관객 참여, 과장된 캐릭터가 나오는 일종의 팬터마임(대사 없이 표정과 몸짓만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연극)처럼 구성했다”고 했다. 원숭이들이 요정에게 비는 3가지 소원은 모두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자세한 결말은 밝힐 수 없지만 원숭이들이 함께 행복하게 바나나를 먹으며 마무리된다. 늘 해피 엔딩을 그리는 이유를 묻자 그는 “내 책을 읽고 난 후 아이들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며 “이 이야기가 아이들의 마음속에 남아서 이야기가 끝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할 수 있는 결말을 그리려 한다”고 했다. 다음 작품 계획을 묻자 그는 쾌활하게 답했다. “소년과 개에 대한 이야기예요. 바다, 하늘, 자갈이 깔린 해변을 배경으로 새로운 모험이 펼쳐질 겁니다. 이 작품을 위해 1년 전부터 바닷가에 살고 있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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