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

김태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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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태언 기자입니다.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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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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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는 하나의 욕조… 국적-성별 없는 러버덕 통해 평화 얘기”

    “노랑 오리가 돌아왔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는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산책로이자 데이트 코스. 2014년 10월 이곳은 북새통을 방불케 했다. 앙증맞고 통실한 오리 한 마리 때문이었다. 네덜란드 출신 플로렌테인 호프만(45·사진)의 ‘러버덕’을 보기 위해 한 달 동안 500만 명이 넘게 몰렸다. 얼마나 인기였는지 순회전시를 떠난 오리가 아쉬워 2017년 호프만의 또 다른 작품 ‘스위트스완’(백조 5마리)을 설치하기도 했다. 30일 슈퍼스타 오리가 다시 호수로 날아들었다. 롯데물산과 송파구청이 주최한 ‘러버덕 프로젝트 서울 2022’로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높이는 18m로 전보다 1.5m 정도 커졌다. 설치 비용은 14억 원.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28일 만난 호프만 작가는 “당시엔 서울을 잘 몰랐다. 다들 너무 환대해줘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며 “돌아온 러버덕을 보며 그때와 지금의 삶을 비교해 보고, 또 다른 이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가 러버덕을 처음 구상한 건 2001년이었다. “세계를 하나의 욕조라 상상하고, 욕조에 띄운 러버덕이란 국적도 성별도 없는 캐릭터를 통해 평화를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여러 과정과 실험을 거쳐 2007년 프랑스에서 처음 선보였죠. 지금까지 16개 나라에서 전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의 다른 장소에도 러버덕을 전시하고 싶어요.” 2014년 국내에서 러버덕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관련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쏟아졌고, 러버덕이 바람이 빠지거나 살짝 고꾸라지기만 해도 화제를 모았다. 작가는 “이런 밈들은 처음 보는데 정말 재밌다”며 “관객들이 러버덕을 통해 창조적인 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고맙다. 한국에서 러버덕이 유독 인기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고 했다. 그는 ‘공공미술은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대형 러버덕 앞에서 관객들은 자신이 작은 존재란 걸 알게 되죠. 누구나 ‘평등하게’ 작다는 거죠. 그런 조건 아래 모두 하나 되는 느낌을 받길 바랍니다.” 순회전시지만 실은 러버덕은 전시 때마다 새로 만든다. 이번에 설치한 러버덕 역시 다음 달 31일 전시가 끝나면 생을 마감한다. 2014년에는 에코백으로 제작해 새 생명을 얻었고, 올해도 재활용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엔 러버덕의 친구 넷도 몰려왔다. 롯데월드타워를 포함해 주변 4곳에 ‘레인보덕’ ‘드라큘라덕’ ‘스컬덕’ ‘고스트덕’이 자리 잡았다. 이들은 1.4m 크기다. 인근 5곳에는 1.4m 크기의 러버덕을 각각 설치해 석촌호수까지 포함하면 총 6마리의 러버덕을 볼 수 있다. 이들 역시 다음 달 31일까지 전시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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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 만에 돌아온 러버덕…“세계는 하나의 욕조”

    2014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는 유례없는 인파가 몰렸다. 앙증맞은 부리와 통통한 엉덩이를 자랑하는 ‘러버덕’을 보기 위해서였다. 당시 연인, 가족, 친구끼리 러버덕을 보러 온 480만 명은 지금도 여전히 돈독할까. 롯데물산과 송파구청은 8년 만에 다시 ‘러버덕 프로젝트 서울 2022’를 진행한다. 30일 러버덕이 다시 석촌호수에 모습을 드러내며 향수를 자극할 예정이다. 설치비용만 14억.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높이 18m, 가로 19m, 세로 23m 크기로, 전보다 높이가 1.5m 높아졌을 뿐이다. 28일 롯데월드타워에서 만난 네덜란드 출신 작가 플로렌타인 호프만(45)은 “당시에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잘 몰랐는데, 환대해주셔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며 “이 작품 앞에서 그때와 다른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또 그때와 지금 본인의 삶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길 바란다”고 했다.호프만이 러버덕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세계를 하나의 욕조로 설정하고 국적도, 성별도 없는 캐릭터를 통해 평화를 말하고 싶다”는 목적 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여러 번의 스케치와 기술적 실험 끝에 2007년 프랑스에서 처음 선보여졌다. 현재까지 전 세계 16개국을 순회하며 25회 이상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석촌호수가 아닌 한국의 다른 장소에서도 러버덕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국내에서는 2014년 이후 러버덕과 관련된 많은 밈(memeㆍ재밌는 말이나 행동을 온라인상에서 모방하거나 재가공한 콘텐츠)들이 생겼다. 당시 러버덕이 호수 위를 유영해도, 바람이 빠져 고꾸라지거나 납작해져도 화제에 올랐다. 이날 이 밈들을 처음 접한 호프만은 유쾌하게 웃으며 “보는 이들이 스스로 창조성 있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작가로서 기쁜 일이다 왜 한국에서 러버덕이 인기 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고 했다.호프만은 ‘대형’ ‘공공’ 설치미술을 진행해온 이유에 대해 “공공미술을 할 때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철칙을 가지고 임한다“며 ”큰 러버덕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작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작다는 평등한 조건 속에서 모두 하나 되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러버덕은 다음달 31일까지 전시된 뒤 재활용될 예정이다. 러버덕은 설치되는 장소에 맞춰 매번 새로 제작되는데, 8년 전에는 러버덕 고무를 재활용해 에코백을 제작된 바 있다.호프만은 올해 서울 프로젝트를 위해 ‘러버덕의 친구들’인 레인보우덕, 해골덕, 드라큘라덕, 고스트덕을 만들어 롯데월드타워와 몰 9곳의 포토존에 배치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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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 김창열의 물방울, 아픈 기억 지우기 위한 몸부림”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창열 화백(1929∼2021)의 별명은 너무나 유명하다. 1971년 ‘밤에 일어난 일’을 시작으로 줄곧 물방울만 그려 ‘물방울 화가’라 부른다. 김 화백의 둘째아들인 김오안 영화감독(48·사진)은 언제나 궁금했다. “왜 당신께선 평생 수십만 개의 물방울만 그리는 ‘예속’을 스스로 선택한 것일까.” 그 답을 찾아 김 감독은 카메라를 들었다. 2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아들이자 한 명의 예술가인 김 감독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재해석이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26일 만난 그는 “아버지 작품은 아름답지만, 아름답다는 이미지가 내밀한 깊이를 숨겨왔다”며 “화가 내면의 고통과 철학의 깊이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스크린에서 김 화백은 다양한 면모를 드러낸다. 작업 땐 고독한 수도승 같았지만 과거를 회상하면 단박에 울음을 쏟아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평생 가슴을 짓눌렀다. 김 화백은 “물방울은 모든 기억을 지우기 위한 것이다. 모든 악과 불안을 물로 지우고 싶다”고 털어놨다. 촬영은 쉽지 않았다. 김 감독은 “아버지란 존재는 너무 가까우면서도 커서 거리감을 조절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영화는 2014년부터 5년 동안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만들었다. 어느덧 아버지가 프랑스에서 물방울 작품을 구상했던 40대가 된 아들은 오랜 궁금증을 풀었을까. “글쎄요. 다만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네요. 말수는 적지만 옆에만 있어도 사랑을 느끼게 해준 이. 심각했지만 와인 한 잔 마시면 노래를 부르던 이. 세월이 흐르니 이젠 조금 아버지를 알 것 같아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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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물방울 그리며 기억을 지운다”

    김창열 화백(1929~2021)은 ‘물방울 화가’라 불린다. 그는 1971년 ‘밤에 일어난 일’을 시작으로 줄곧 물방울만을 그렸다. 그의 차남 김오안(48)은 그런 아버지가 궁금했다. “어떤 사람이 돼야만 수십만 개의 물방울을 그리는 예속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인 김오안은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의 감독이 되어 그 답을 찾아간다. 26일에 영화 개봉을 이틀 앞두고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에서 만난 김 감독은 “아버지 작품은 아름답지만, 아름답다는 단순한 이미지가 그 깊이를 숨겨왔다”며 “그 뒤에 있는 내면의 고통, 철학의 깊이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김창열은 휴전선을 넘던 순간을 떠올리며 울음을 쏟는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겪으며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가져온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물방울은 모든 기억을 지우기 위한 것이다. 나는 모든 악과 불안을 물로 지운다.” 김 감독은 아버지를 여러 면모를 가진 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물방울은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김 감독은 “순수한 동시에 눈물처럼 보여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고도 소멸하기 쉬운 나약한 것을 물방울이라는 단순한 오브제로 표현했다는 점이 놀랍다”고 했다. 고독한 도인 같았던 아버지에게서 “항상 비밀을 가진 느낌을 받아”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그는 “‘김창열 화백의 삶과 작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려 했지만 아버지라는 대상은 너무나 가깝고 커서 거리감을 조절하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이에 공동연출자인 브리짓 부이요 감독의 조언을 받아 아들의 시선에서 내레이션을 하며 아버지의 세계를 이해해간다. 영화는 2014년부터 5년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만들었다. 영화를 시작할 무렵, 아들은 프랑스로 가 물방울 그림을 구상했던 당시 김창열과 같은 나이인 마흔살이 됐다. 어릴 적 아들에 눈에 비친 아버지는 푸근한 ‘산타클로스’보다는 수수께끼 같은 ‘스핑크스’에 가까웠다. “아버지가 남다르단 걸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는 김 감독은 오늘날 아버지를 이렇게 추억한다.“말수는 적었지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느끼게 해준 사람. 심각하다가도 포도주를 마시면 노래를 부르던 사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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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뚱뚱이 모니터가 빠지면, 작품이 달라질까요? [영감 한 스푼]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태언 기자입니다.지난주, 백남준(1932~2006)의 ‘다다익선’이 4년 만에 재가동됐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중심을 지키던 다다익선에 드디어 불이 들어오게 된 거죠. 2018년, 다다익선은 일부 모니터가 고장 나 가동이 중단됐고 이듬해부터 복원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 복원 과정이 어땠는지 담당 학예연구사를 만나 들어봤습니다.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미디어아트 소장품들의 보존 방법은 어떤지도 살펴봅니다. 미디어아트 작품을 주로 소장하는 기관에는 대개 테크니션(기술자)이 있습니다. 이들만 있으면 만사형통일까요? 미디어아트를 주로 담당하는 큐레이터와 미술관은 무엇 때문에 고군분투 중인 걸까요? 확인하러 가봅시다.4년 만에 깨어난 다다익선, “인공호흡기 단 상태”1988년 9월 15일, 다다익선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올해 같은 날, 다다익선은 약 4년 만에 재가동됐죠. 하지만 점등한 지 5분 만에 모니터 1대가 꺼지는 등 불안한 모습이었는데요. 국내 미디어아트 보존 처리 관련 성과를 입증할 행사였지만, 작품 자체는 “인공호흡기를 단 상태나 마찬가지”라는 평을 받습니다.‘원본 고수냐, 변환이냐’ 다른 비전 가진 세계 미술관들백남준은 생전 작품의 외형을 신기술로 대체하는 데에 개방적이었습니다. 외형이 변해도 본질만 지키면 된다는 철학이었지요.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 각 미디어아트 기관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변환 정도를 두고 각기 다른 정책을 갖고 있습니다. 다다익선, 그게 뭔데?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개관을 앞두고 백남준은 미술관으로부터 한 의뢰를 받습니다. 과천관 정중앙에 놓인 램프코어(각 전시장을 연결하는 나선형 공간)에 놓일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백남준은 설계를 맡은 김원 건축가와 함께 작업을 진행합니다. 다다익선은 높이 18m, 지름 7.5m의 철골 구조에 6¤25인치 모니터 1003개를 탑처럼 쌓은 작품입니다. 10월 3일 개천절을 상징하기 위해 1003개의 모니터를 사용했다고 하죠. 백남준 작품 중 최대 규모이기도 합니다. 이들 모니터에는 8개의 영상 작품이 나오는데요. 경복궁, 부채춤, 프랑스 개선문,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등 각국의 문화 상징물이 떠다니죠. 동양-서양, 과거-현재, 예술-과학의 조화를 꿈꾼 그의 철학이 담겨있습니다.그런데 그것 아시나요? 2019년 미술관은 영상, 모니터, 철재구조물 등을 ‘다다익선’이라는 하나의 작품으로 소장품에 등록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다다익선 중 백남준의 작품은 영상이었죠. 탑 형태의 구조물은 건축가 김원이 설계했던 것이고요. 이전부터 영상, 모니터, 철재구조물을 모두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해왔던 것은 ‘다다익선의 원본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많은 논란을 불렀습니다.영상만 그대로 보존되면 원본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모니터나 철골이 바뀐다면요? 실제 예전부터 가장 논쟁적이었던 것은 모니터입니다. 다다익선 원작이 사용하던 모니터는 ‘뚱뚱한 모니터’로 잘 알려진 삼성전자 기종의 CRT 모니터입니다. 이것을 LCD나 LED 모니터로 바꾸면 특유의 볼록한 볼륨감이 사라지죠. 그러면 원본이 아니게 되는 걸까요?다다익선 살리기현재 CRT 모니터를 만드는 공장은 사라졌고, 시중에서 잘 판매되지도 않습니다. 이 경우, 미디어아트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원작과 동일 기종의 중고품으로 대체 ▲동일사양의 제품으로 교체▲최신 기술 적용실제로 2003년 다다익선의 일부 모니터가 노후화되어 정상 가동이 불가능해지자 회색 구형 TV로 전부 교체했습니다. 당시 미술관은 삼성전자의 후원 등을 통해 다다익선 모니터를 모두 교체하는 리모델링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당시는 백남준이 생존해있을 때라 작가의 양해 아래 진행됐죠.하지만 그 후로도 고장과 수리가 반복됐고 결국 2018년 2월 가동을 중단합니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작품을 계속 가동하면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는 상태”라 판단했고, 삼성이 후원한 동종 모니터는 이미 단종돼 대책이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2019년, 미술관은 국내외 전문가 자문을 거쳐 ‘보존·복원 3개년 계획’을 마련했고, 이 과정을 거쳐 이번에 다다익선은 재가동됐습니다. 그 과정을 담당자인 권인철 학예연구사의 입을 통해 들어봅시다.-다다익선 보존·복원에 있어 가장 우선됐던 것이 무엇인가요?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되 일부 대체 디스플레이 기술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진행됐습니다. 중고품 CRT 모니터 확보가 가장 먼저 진행됐고, LCD 디스플레이도 확보했습니다. -정밀 검사 결과 어땠습니까?더 이상 사용이 어렵게 된 266대는 LCD로 교체했고, 나머지 737대는 크고 작은 수리와 교체가 진행됐습니다. 737대 중 41대는 확보한 중고품 CRT 모니터로 대체했고요.-더 이상 사용이 어렵다는 266대가 상단의 6, 10인치 CRT 모니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가 있나요?크기가 작은 모니터일수록 발열에 취약하고, 그만큼 내구성도 떨어집니다. 6인치의 경우 겨우 1~2대 정도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중고 물량이 부족했고요. 10인치는 다다익선 전체 모니터 수량의 절반을 넘습니다. 중고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물량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CRT 모니터 확보 과정을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현재 다다익선용 CRT 모니터는 국내에서만 수급한 물량입니다. 서울 황학동 중고시장과 전국 재활용센터를 돌면서 600여대를 구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CRT 모니터를 모두 가져갔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로 발품을 팔았습니다. 현재 다다익선에 사용된 동일한 CRT 모니터는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게 됐죠. 국내 말고도 미국, 중국 등을 오가며 동일기종이 아닌 대체 모니터를 확보하려 나섰습니다.-모니터 외에 백남준의 영상에도 변화가 있나요?네. 8개 영상의 경우 비디오테이프 버전에서 디지털로 변환했습니다. 8개 영상 원본은 그대로 보존하고, 디지털로 복원을 실시한 거죠. -수리에 사용된 중고 제품도 생산된 지 오래라 언제든 수명을 다할 수 있습니다. 예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모니터링과 보존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우선 가동시간을 주4일, 하루 2시간으로 정했습니다. 또 과열을 막기 위한 냉각 설비, 전기 설비 시설을 새로 교체했죠. 앞으로도 수시로 점검하고 대체 디스플레이 적용성을 계속 검토할 계획입니다. 원본 고수냐, 변환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미디어아트의 보존·복원은 이미 세계적으로 대두된 문제입니다. 기술 발전이 워낙 빠르다보니 현 시점에서 가장 선두적인 기술과 제품을 사용했더라도 금세 구시대의 유물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다다익선의 재가동은 국내 미디어아트 보존·복원 역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입니다. 국내 미디어아트 중심 미술관인 울산시립미술관의 서진석 관장은 해외유수의 미디어 아트 전문기관들과 함께 2006년부터 ‘미디어아트 아카이브 네트워크 포럼’이라는 국제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서 관장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크게 3가지 사례를 들어 미디어아트 보존·복원 방향을 설명합니다.독일의 ‘예술과 미디어센터’(ZKM): 원본 유지ZKM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원본을 고수합니다. 수명이 다한 미디어 작품의 TV들을 대체할 수천대의 TV들을 지속적으로 사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모니터나 비디오 플레이어 같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원본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구시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많은 비용을 들여 다시 복원하는 겁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영상을 디지털파일로 변환시키지 않고 그대로 가져가는 식이죠.일본의 NTT ICC(InterCommunication Center): 변형 가능아시아 최대 미디어아트 기관은 ICC미술관은 창작자의 동의 하에 작품을 변형시킬 수 있도록 합니다. ICC미술관은 미디어아트 작품을 사들일 때부터 구입 계약서와 보존·복원 설명서를 함께 작성합니다. 하드웨어의 경우 옛 제품인 브라운관 TV는 LCD, LED, OLED 모니터로 바꿀 수 있고요. 소프트웨어라면 옛 운영체제인 DOS를 Window로 변환할 수 있는 거지요. 시각적으로 원본을 해칠지라도 내면의 개념을 더 중시하는 겁니다.영국의 뉴미디어아트 기관 FACT: 일부 변형 가능영국의 FACT는 하드웨어는 원본을 유지하고, 소프트웨어는 변환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TV 케이스는 그대로 두고 뚱뚱한 모니터인 CRT 모니터를 평면 모니터인 LCD 모니터로 교체하는 식이죠. 이처럼 미디어아트 보존·복원 방식에는 정답이란 없습니다. 시대 변화에 맞게 맞춰가야 한다는 의견도, 원작의 고유성을 살리자는 의견도 모두 타당해보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적절한 방법은 무엇인가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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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그녀는 51세에 법의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미국의 법의학이 조그마한 상자 하나에서 시작됐다면 믿어지겠는가. 1940년대 만들어진 ‘손바닥 연구 모형’이란 상자를 살펴보자. 살짝 섬뜩할 수 있는데, 핏자국이 튄 벽지와 불탄 침대, 목을 매달아 숨진 시체의 미니어처가 세밀하게 표현돼 있다. 사건 현장을 재연한 것이다. 상자 크기는 실제 현장의 12분의 1이다. 이 상자를 처음 만든 건 미국에서 ‘과학수사의 어머니’라 불리는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1878∼1962)다. 미 메릴랜드주 수석검시관실 공공정보관인 저자는 최초의 여성 법의학자인 리의 생애를 되짚으며 미 법의학의 초기 발전 과정을 살펴본다. 사실 리는 법의학과 관련된 정규 훈련도 대학 학위도 받지 않았다.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의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꿈꿨던 하버드대 의대는 여성을 뽑지 않았다. 당시 여느 여성들처럼 결혼해 가정을 꾸린 리가 법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무려 51세 때였다. 한 치료시설에서 검시관 조지 버지스 매그래스(1870∼1938)를 만나며 리는 못다 한 꿈을 다시 펼쳐 나간다. 당시 미국에는 ‘코로너’라는 독특한 신분이 있었다. 사망 사건만 다루는 게 아니라 세금을 걷는 일도 했다. 게다가 의학이나 법학은커녕 글도 모르는 이들이 상당수였다고 한다. 주로 고위관료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이를 앉히는 ‘정치적인’ 자리였다. 매그래스는 리에게 “제대로 훈련받은 의사가 사망 원인을 진단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대학에도 법의학과를 개설해 전문가를 길러야 한다”고 일러줬다. 가족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상당했던 리는 법의학을 독학하며 즉각 행동에 나섰다. 1931년 하버드대에 막대한 돈을 기부하고 미 최초의 법의학과를 개설했다. 1934년엔 법의학 전문 도서관도 만들었다. 앞서 언급한 손바닥 연구 모형을 만들고, 경찰 교육생들에게 이 모형을 통해 훈련받도록 했다. 리는 방대한 지식과 뛰어난 업적을 받아 여성 최초로 뉴햄프셔주에서 경찰 경감이 됐다. 현재 미국에는 리가 만든 손바닥 연구 모형 가운데 18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현대 법의학의 관점에선 다소 엉성하지만, 꼼꼼하고 놀라운 표현력은 지금도 놀랍다. 사회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며 세상을 바꾼 여성에게 경의를 표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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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당신을 좋아하나요?”… ‘나’를 깨우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당신을 좋아하나요?” 설치미술가인 박혜수 작가(48)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굳이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사는 게 재밌는지’ ‘지금 현재 스스로에게 무엇을 느끼는지’ 어쩌면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한 궁금증이다. 그리고 그 답에 삶과 예술이 추구하는 뭔가가 숨겨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토대로 전시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는 박 작가가 책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돌베개·사진)을 16일 출간했다. 한 편의 작업노트라 할 수 있는 이 책에는 그가 창작활동을 위해 모아온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빼곡하다. 사랑이나 실연, 꿈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작품에 담아온 그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서울 금천구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모노포비아―외로움 공포증’ 전시장에서 21일 만난 그는 “남들의 버려진 꿈이나 헤어진 연인이 남긴 물건, 혹은 고독사와 나이 듦 등을 다룬 작업 과정도 책에 담았다”며 “수많은 상실 속에도 여전히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되묻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통해 질문을 던지는 박 작가의 방식은 조소과 학생이던 20대 때 조우했던 영화 한 편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올해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브로커’로 친숙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2001년)란 작품이었다. “영화는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고르는 줄거리였어요. 그런데 전 지금까지의 인생에선 선택할 게 없구나 싶었죠. 가족과 사회가 원하는 모습을 충실히 따라왔기 때문이었죠. 문득 꿈이나 사랑 같은, 나이 들수록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어쩌면 사라지는 것들 중에 더 지켜야 하는 게 많은 게 아닐까요.” 11월 26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 역시 그런 고민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무표정한 공장 노동자들이 첫사랑 얘기를 할 땐 미소 짓는 영상,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뒤에 홀로 써내려갔던 일기…. 작품들은 시종일관 타인의 사연을 다루지만, 그 속에서 작가는 물론이고 관객들은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간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건 누구나 포기해선 안 되는 일이죠. 굳이 전시에서 제 얘기는 생략하는 이유도 작가에게 집중하면 관객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에요. 무언가를 상실한 경험이 있다면, 지금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묻고 싶은 겁니다.” 이런 상호작용은 작가에게도 자신을 깨우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그에게 관객은 아무 접점이 없는 ‘제3자’가 아니다. 박 작가는 “작품을 감상하는 그들이야말로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며 “작품을 통해 서로의 내면을 비출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가. 그가 가장 많이 던진다는 질문을 되물어봤다. 작가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요? 전 저를 너무 좋아하죠. 거울 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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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당신을 좋아하나요?”… 나에 대해 질문 던지는 시각예술가 박혜수

    20대 중반의 한 조소과 학생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2001)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영화는 세상을 떠난 이들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고르는 내용인데, 이 학생은 영화를 보고 “지금까지 인생 중에는 선택할 게 없다”고 생각했단다. 가족과 사회가 원하던 것만을 충실히 따라왔기 때문이었다. “꿈이나 사랑 같은 개인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생각했다”는 그는 “사라지는 것들 중에는 지켜야할 것들이 많았고, 얻으려는 것들 중에는 긴 기쁨을 주는 것이 없다”고 깨달았다.어느덧 그는 중견 작가가 되어 남들에게 다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 다닌다. “너는 네가 좋니?”박혜수(48)는 사랑, 실연, 꿈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갖고 설문조사와 분석을 거친 뒤 시각예술 작품을 만들어 발표해왔다. 16일 발간된 책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돌베개)은 그의 작업노트로, 그가 모아온 남들의 버려진 꿈이나 헤어진 연인이 남긴 물건과 사연 등이 빼곡하다. 또 고독사와 나이 듦, 코로나 유가족 등에 대한 작업 이야기도 함께 담으며 수많은 상실 속에서도 여전히 소중한 것들에 대해 되묻는다.21일 서울 금천구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에서 만난 그는 2013년부터 지속해온 사랑과 실연에 관한 프로젝트 ‘굿바이 투 러브’를 마무리 짓는 전시 ‘모노포비아-외로움 공포증’(~11.26)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박혜수는 “이별 후에 남은 건 당신”이라며 “꿈이든 사랑이든 자신의 과거든 무엇인가를 상실하고 혼자가 된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묻고 싶다”고 했다.그의 작업의 핵심은 감정을 건드린다는 점이다. 무표정했던 중년 공장 노동자들이 첫사랑을 이야기하며 미소짓는 영상, 이별 후 누군가가 혼자 끄적인 일기…. 타인의 사연을 다루는 작품이지만, 관람객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찾고 어떠한 감정을 안고 돌아간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이 일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철학은 관람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전시에서 생략하는 이유기도 하다. “제 이야기가 들어가면 작가에게 집중돼요. 관람객들이 스스로 ‘나’에 대한 질문을 안고 가는 것이 주 목적인데, 제가 주인공이 될 순 없죠.”작가 또한 수많은 이들의 사연과 관람객들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본다. 과거 혹은 현재, 미래의 자신을. 사람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그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 사람’에겐 관심이 없다”고 답한다. “전 관람객을 제3자로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더라고요. 전 거울 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관람객들도 저를 보면 그랬으면 해요.”책과 전시를 보다보면 일관되게 ‘나’를 깨우는 질문들을 마주한다. “사는 게 재밌는지” “너는 누구인지” “너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따위들, 그리고 “너는 너를 좋아하는지”까지. 잘 물어오지 않았던 이 질문이야말로 필요한 질문은 아닐까. 작가가 던져놓은 질문을 그에게 되물었을 때 그는 자신있게 대답했다.“저는 저를 너무 좋아하죠.”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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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카소와 샤갈, 파리의 아름다웠던 만남… ‘이건희컬렉션’의 초대

    전시장 한쪽에 세워진 채 샛노란 빛을 머금은 가로등. 오래전 유럽 거리를 밝히던 가스등처럼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길 반복한다. 안개 낀 프랑스 파리 센강 주변을 산책하면 이런 기분이 들까. 몇 발짝을 더 내디디니 파블로 피카소와 클로드 모네의 작품이 눈앞에 펼쳐졌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 위대한 예술가들이 모여들던 19세기 파리의 노천카페로 탈바꿈했다. 21일 개막한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관객을 몽환적인 걸작의 세계로 초대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선보이는 세 번째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으로, 작가들 면면만 봐도 가슴이 뛴다. 모네, 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폴 고갱, 살바도르 달리의 회화 7점이 전시장을 수놓았다. 미술관은 “4월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첫선을 보였던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년)을 제외하면 모두 처음 공개하는 작품들”이라고 밝혔다. 가장 중심이 되는 작가는 피카소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기증한 피카소 도자 112점 가운데 90점을 대거 선보였다. 1948년부터 1971년까지 만들어진 ‘피카소 도자 에디션’의 대표작들이다. 전유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피카소가 회화나 조각, 판화에 활용했던 다양한 주제와 기법이 응축돼 작가의 예술세계 전반을 살필 수 있다”고 했다. 전시 제목에서 짐작되듯 작가 8명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했다. 당시 파리는 세계적인 미술의 중심지로, 이들은 다양한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다. 모네와 르누아르는 파리 문화계에서 유명했던 절친. 피사로와 고갱은 돈독한 사제지간이다. 피사로는 이번 전시에 나온 고갱의 ‘센강 변의 크레인’(1875년) 등을 보자마자 그의 재능을 알아봤다고 한다. 이후 증권 중개인이던 고갱을 가르쳐 전업 화가로 이끌었다. 함께 전시한 피사로의 ‘퐁투아즈 곡물 시장’(1893년)이 왠지 닮은 기운을 풍기는 연유가 짐작된다. 피카소와 미로, 달리는 스페인 출신이지만 파리에서 처음 만났다. 미로와 달리가 파리에 온 이유가 피카소 때문이었다고 한다.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년)과 피카소의 도자 ‘켄타우로스’(1956년), 사람과 새와 별이 있는 밤 풍경을 담은 미로의 ‘회화’(1953년)와 피카소의 ‘큰 새와 검은 얼굴’(1951년)을 살피노라면, 파리의 밤하늘 아래서 셋은 어떤 대화를 나눴을지 궁금해진다. 르누아르와 샤갈 역시 피카소와 이어진다. 피카소는 전시에 소개된 르누아르의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를 입은 앙드레(독서)’(1917∼1918년)를 본 뒤 1919년 존경을 담아 르누아르의 초상화를 그렸다. 샤갈도 파리를 사랑했으나 피카소를 처음 만난 곳은 1940년대 말 프랑스 남부였다. 샤갈의 ‘결혼 꽃다발’(1977∼1978년)은 당시 도자에 매진하던 피카소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바깥에 설치한 회화들 곁을 거닐다가 도자의 숲을 돌아본 뒤 전시장 가운데 설치한 테이블에서 쉬어가는 경로를 추천한다. 잠시 앉아 ‘걸작의 풍경’을 바라보면 삶을 토닥이는 예술의 숨결이 귓가를 간질인다. 무료이며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mmca.go.kr)에서 예약해야 한다. 1인당 4장까지 가능하다. 관람 희망일 14일 전 오후 6시부터 예약할 수 있다. 회차당 70명씩 하루 8회 차 관람을 진행한다. 현장에선 회당 30명, 하루 240명까지 따로 접수를 한다. 내년 2월 26일까지. 월요일 휴관.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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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세기 말 파리로 초대합니다…‘이건희 컬렉션’ 해외미술품 전시 

    전시장에 놓인 가로등 불이 깜빡거린다.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하는 곳. 마치 흐린 날 프랑스 파리의 노천 카페에 온 듯 하다. 21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막하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은 관람객들을 19세기 말 파리로 초대한다. 이 전시는 마르크 샤갈, 호안미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폴 고갱, 살바도르 달리의 회화 7점과 파블로 피카소의 도자 90점을 선보인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기증한 해외미술작품 중 피카소의 도자 22점을 제외한 모든 작품이 다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했던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에 출품됐던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을 제외하면 모두 첫 공개다. 이들 8명의 작가는 모두 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했다. 이 시기 파리는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모이는 국제 미술의 중심지였다. 이들은 스승과 제자로, 선후배와 동료로 만나 각자의 성장을 거듭했다. 전유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국적 다른 8명의 거장들이 파리에서 만나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장 초입에 놓인 피사로와 고갱은 유명한 사제지간이다. 피사로는 고갱의 초기작 ‘센강 변의 크레인’(1875) 등을 접한 뒤 그의 재능을 알아본다. 피사로는 당시 증권 중개인이었던 고갱에게 직접 풍경화를 지도하고 전시회 참가 기회를 주는 등 전업 화가의 길로 이끈다. 파리 근교의 전원 풍경과 아이 손을 잡고 강변을 걷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포착한 ‘센강 변의 크레인’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시장 풍경을 그린 피사로의 ‘퐁투아즈 곡물 시장’(1893)과 어쩐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이유다. 작가들 사이에서도 큰 주축이 되는 작가는 피카소였다. 미로와 달리는 피카소를 만나기 위해 처음 파리를 방문한 작가들이다. 세 사람은 모두 스페인 출신이지만 파리에서 서로를 처음 만나 교류했다. 이는 작품으로 증명된다. 그리스 신화 속 반인반마 종족인 켄타우로스를 주제로 한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과 피카소의 도자 ‘켄타우로스’(1956), 사람과 새와 별이 있는 밤 풍경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미로의 ‘회화’(1953)와 피카소의 ‘큰 새와 검은 얼굴’(1951)은 작가들 간의 접점을 보여준다. 르누아르는 피카소가 뒤늦게 매료된 작가다. 피카소는 르누아르의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를 입은 앙드레(독서)’(1917~1918)를 발견하곤 1919년 존경의 마음을 담아 르누아르의 초상화를 그렸다. 샤갈은 피카소를 1910년부터 피카소를 만나고자 노력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인해 불발되다 1940년대 말 피카소가 도자를 제작하던 남프랑스에서 처음 조우한다. 연인과 꽃 등을 통해 생의 순간들을 담은 샤갈의 ‘결혼 꽃다발’(1977~1978)은 피카소가 꽃다발이나 비둘기 등을 그려낸 도자와 겹쳐봐도 좋다.작가들 간 관계성이 전시 기획의 착점이 됐지만, 작품은 개별로 관람하기에 더 적절하게 꾸려졌다. 원형 전시장은 3개의 레이어로 나뉘어 외벽에는 회화 작품을, 가운데에는 피카소의 도자를, 가장 안쪽에는 카페처럼 공간을 구성했다. 이번 전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피카소의 도자들은 1948~1971년에 제작된 ‘피카소 도자 에디션’을 대표하는 작품들로, 피카소의 도자에는 그가 회화, 조각, 판화작품에서 활용했던 다양한 주제와 기법들이 응축돼있어 피카소 예술세계 전반을 살펴볼 기회다. 내년 2월 26일까지. 무료.김태언기자 beborn@donga.com}

    • 202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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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쾌대 ‘군상’ 등 한반도 격동기 작품 앞에 인파

    “자랑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네요.”(나혜석의 손자 스탠 김)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뮤지엄(LACMA)에서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주최로 열리고 있는 기획전 ‘사이의 공간: 한국 미술의 근대’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8일(현지 시간) 열린 개막식 전후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이 비중 있게 소개하며 많은 인파가 몰렸고, 지금도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근대 여성 화가이자 시인인 나혜석(1896∼1948)의 손자인 스탠 김은 개막식에 참석해 할머니의 ‘자화상’(1928년경)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고 한다. 해외에서 한국 근대미술 전시를 접하기는 쉽지 않아 반갑다는 반응이 많다. 이번 전시에는 한반도의 격동기였던 1897∼1965년에 나온 회화와 조각, 사진을 엄선해 128점을 출품했다. 13일까지 전시장에 머문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관람객들이 굴곡을 겪었던 한국 근대 예술가들에게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며 “해외 한국전은 전통 혹은 현대에 초점을 맞춰 왔지만,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근대미술로도 지평이 넓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현지에선 사실주의 화가 이쾌대(1913∼1965)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다. 전시장 입구에 걸린 대표작 ‘군상Ⅳ’(1948년경) 주위엔 항상 많은 이가 몰리고 있다. 사진작가 한영수(1933∼1999), 임응식(1912∼2001) 등의 사진 30점도 인기다. LACMA의 버지니아 문 큐레이터는 “다양한 형식을 지닌 근대작의 유기적 관계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방탄소년단(BTS)의 RM이 재능 기부로 오디오가이드 목소리를 녹음해 눈길을 끌었다. RM은 조선 왕실의 어진화사(御眞畵師) 채용신(1850∼1941)의 ‘고종황제 어진’ 등 열 개 작품을 우리말과 영어로 설명했다. 내년 2월 19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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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화가’ 방혜자, 하늘의 빛이 되어 떠나다

    “수도승처럼 평생 작품 활동에만 헌신하셨어요. ‘빛의 화가’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분이셨습니다.”(박선주 영은미술관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프랑스가 자랑하는 샤르트르대성당에 해외작가 최초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4점을 설치하는 등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던 방혜자 화백이 15일(현지 시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 고인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화가다. 1956년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에 입학한 방 화백은 1세대 서양화가 장욱진(1917∼1990)을 스승으로 모시고 ‘단색화의 거장’ 이우환(86), 우현 송영방(1936∼2021)과 함께 그림을 배웠다. 1961년 국내 첫 프랑스 국비유학생으로 선정돼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고인의 작품 세계는 ‘빛의 화가’로 두루 일컬어진다. 평생 빛의 표현에 천착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어릴 적 개울가에서 반짝이는 조약돌을 보고 ‘이 빛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에 사로잡혔다”고 회고했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했던 고인은 국내에서 영은미술관이 운영하는 영은레지던시에 주로 머물렀다. 박 관장은 “항상 물감이 많이 묻은 같은 작업복을 입고 작업했는데,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언제나 진지하셨다”고 회고했다. 방 화백의 작품은 한국적 색채가 짙어 더 사랑받았다. 대표작 ‘우주의 노래’(1976년)는 한지와 황토를 섞어 빛의 번짐을 자연스럽게 살린 걸작. 올해 ‘이건희 컬렉션’에서 공개된 ‘하늘과 땅’(2010년)도 오묘한 전통적 색감으로 관심을 모았다. 샤르트르대성당 종교 참사 회의실에 걸린 작품이 마지막 유작으로 남았는데, 2018년 선정 뒤 지난해 완성했으나 팬데믹으로 아직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문화예술상(2010년)과 한불문화상(2012년), 올해의 미술인상(2008년) 등을 수상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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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버지가 말한 ‘그 형’의 정체는

    두 시간 전 급성폐렴으로 입원한 아버지의 병실에서 나온 나. 간병인에게서 아버지가 임종 직전이란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다시 병원으로 되돌아간 나에게 아버지는 대뜸 “형은?”이라고 물어온다. 장남인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40년 전 잠시 집에 머물렀던 한 형을 떠올린다. 결국 세상을 떠난 아버지. 장례식장에 나타난 한 사내를 보며 ‘그 형’일 거라 짐작한다. 나는 남은 가족에게 형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보지만, 알게 되는 건 이전까지 몰랐던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들.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나는 타인의 인생을 판단하는 걸 그만 멈추기로 한다. 올해 데뷔 29년을 맞은 저자의 아홉 번째 소설집. ‘소년은 늙지 않는다’(문학과지성사) 이후 8년 만이다.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1996년)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2003년) ‘장국영이 죽었다고?’(2005년) 등으로 탄탄한 팬층을 구축해 온 그의 문장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위에서 소개한 단편 ‘타인의 삶’은 지난해 이효석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단편소설 9편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은둔형 외톨이인 주인공의 3인칭 시점이 독특하게 전개되는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를 비롯해 성경학교의 성추행 사건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의 진술을 다룬 ‘가브리엘의 속삭임’, 바다에서 아들을 잃은 뒤 아들의 죽음을 망각하기에 이른 아버지를 다룬 ‘튜브’도 인상적이다. 각기 다른 이야기지만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소설들은 읽는 내내 타인을 상대로, 더 나아가면 자기 스스로를 상대로 ‘가면’을 쓰고 있는 누군가를 직면하게 된다. 그건 내면에 상존한 또 다른 나일지도 모른다. 순간 동떨어져 바라보게 되는 나란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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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의 골목골목 누비니 보물섬 탐험하는 기분”

    14일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비엔날레 전시장. 입구에서 만난 외국인 2명은 탐험이라도 나선 듯 신난 표정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이들은 “산동네 골목에서 이리저리 표지판을 따라오니 전시장에 다다랐다. 도심에서 신기한 체험”이라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개를 보고 부산에 왔는데, 숨겨진 보물섬을 마주한 기분”이라며 즐거워했다. 2002년 시작돼 올해로 20년을 맞은 부산비엔날레가 3일 개막해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때 “차별성이 없고 진부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부산비엔날레는 지역적 독특함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승부를 걸었다. ‘물결 위 우리’라는 주제 아래 여성과 이주, 노동, 자연을 키워드로 내세워 관객에게서 공감을 이끌어내려 노력했다. 일단 비엔날레가 열리는 장소 4곳부터 남다르다. 부산 산복도로(산 중턱을 지나는 도로)를 내려다보는 초량동과 태종대가 있고 해녀들의 일터였던 영도, 일제강점기부터 굴곡진 역사를 머금은 부산항 제1부두, 철새들의 터전으로 생태공원화한 을숙도다. 장소에 맞춰 도시의 역사를 조명하면서도 그 이면에 깔린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배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깡깡이’를 재현한 김도희 작가의 설치미술이나 부산 노동자 파업을 담은 최호철 작가의 회화가 눈길을 끈다. 지역성에 너무 강조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노력도 돋보였다. 인도계 호주미술가인 산신티아 모히니 심슨은 남아프리카에서 노역했던 여성 인도인의 삶을 15점의 회화 연작으로 소개했다. 국가무형문화재인 ‘불화장(佛畵匠)’ 이수자인 법인 스님과 콜롬비아 작가 프란시스코 카마초 에레라가 협업해 세계에 산재한 노동현장을 탱화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들도 인상적이다. 김해주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42)은 “부산 뒷골목에 밴 삶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공감할 보편적인 주제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랐다”며 “이번 전시가 서로 다른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할 방법을 모색할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11월 6일까지.부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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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남준 1003대 모니터탑 ‘다다익선’ 재가동

    비디오아트의 세계적 거장인 백남준(1932∼2006)의 작품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다다익선’(사진)이 3년에 걸친 복원 작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8년 가동을 중단한 뒤 2019년부터 보존 및 복원 작업을 진행한 다다익선을 재가동하고 관객에게 선보인다”고 15일 밝혔다.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있는 다다익선은 6∼25인치 브라운관 모니터 1003대를 쌓아올려 높이만 18m에 이르는 초대형 작품. 세월이 흐르며 모니터 등이 노후화돼 수리를 거듭했지만, 화재를 비롯해 각종 위험이 커지며 2018년 2월 가동을 멈췄다. 다다익선은 이듬해 9월 시작된 보존·복원을 통해 모니터 737대가 수리되거나 교체됐다.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운 모니터 266대는 외형만 유지하고 액정표시장치(LCD) 패널로 바꿨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백남준 탄생 90주년과 다다익선의 제막식 날짜에 맞춰 다시 선보였다”며 “다다익선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주 4일, 하루 2시간만 잠정 가동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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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문턱, 비엔날레 투어 떠나볼까…공존-공생의 미술축제

    14일, 부산 동구 초량의 한 언덕 위에 마련한 전시장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온 두 명의 관람객이 있었다. 이들의 동선은 부산비엔날레가 열리는 장소. 부산의 산복도로를 내다볼 수 있는 초량부터 출항 해녀들의 일터였던 영도, 일제 식민시기부터 물자와 피란민 수송을 담당하던 부산항 제1부두, 새들의 터전이었던 을숙도의 부산현대미술관까지. 이들은 “부산의 숨어있는 곳들을 찾아다니는 기분이다. ‘자연’ ‘이동’ 같은 현대사회 키워드를 대변하는 공간을 부산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고 했다. 올 가을 전국에서 동시대 미술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비엔날레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는 장르와 국적을 넘나드는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국제미술제다. 각 비엔날레가 고심한 주제는 제각기 다르지만, 최근 현대미술이 일제히 가리키는 것은 ‘공존’이다. 각 비엔날레가 다루는 작품들을 보며 공존의 대상을 고민해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이주, 여성, 노동 등을 소주제 삼아 공존을 환기한다. 다소 기시감이 있는 주제지만 차별점은 지역성에 있다. 김도희는 부산 깡깡이(배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행위)를 재현한 설치 작품을, 최호철은 부산에서 진행됐던 한진중공업 고공 농성 장면을 그린 작품을 내놨다. 도시의 급성장 속에서 중요시 여겨지지 않았던 존재들을 부산의 구체적인 사건들을 통해 재확인시키는 식이다. 전시는 부산의 특수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법인 스님과 콜롬비아 출신 프란시스코 카마초 에레라는 협업을 통해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한국을 관통하는 고무산업을 소재로 노동자와 환경 파괴의 역사를 탱화로 표현했다. 그렇게 보면, 남아프리카에서 노역하던 여성 인도인들의 삶과 학살 등을 그린 산신티아 모히니 심슨의 회화도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게 느껴진다. 김해주 감독은 “부산의 뒷골목 이야기가 보편적인 이야기가 돼가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서로 다른 현재를 사는 우리가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했으면 한다”고 했다. 11월 6일까지. 지난달 2일 개막한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는 ‘미래 도시’라는 주제 하에 디지털 시대 속 인간이 공생해야 할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한다. 영국의 알렉산더 웜슬리가 도시개발로 사라져가는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3개 지역을 3차원 가상환경으로 꾸며낸 ‘티라나 타임캡슐’ 등은 가상현실이 개입되는 새로운 도시 모습의 탄생을 마주하게 한다. 과학도시를 지향하는 대전답게 예술과 과학기술을 접목시켜 대전시립미술관과 대구 도심 내 상징적인 4개 공간에서 다음달 30일까지 진행한다. 자연과 생태계는 많은 비엔날레에서 특히나 자주 논의되는 공존의 대상이다. 지난달 27일 개막해 11월 30일까지 진행하는 공주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또, 다시야생’을 주제로 충남 공주 연미산자연미술공원 일대에 작품을 내놨다. 거대한 말이 관람객을 감싸는 형상으로 인간과 동물의 영적인 연결을 꾀하는 몽골 작가 그룹의 설치작 ‘자연과의 상관관계’ 등이 대표적이다. 11월 열릴 제주비엔날레 또한 지구 공생을 위한 자연의 순리에 주목한다. 강이연 작가는 제주의 자연을 소재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미디어아트로 풀고, 캐나다 출신 자디에 사는 제주 자연물을 이용한 조각, 회화 등을 선보인다.부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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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 ‘누벨바그 대부’ 고다르 감독 별세

    “우리는 프랑스의 보물을 잃었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1960년대 유럽을 강타한 영화 사조 ‘누벨바그(새로운 물결)’를 이끌며 세계 영화계 판도를 뒤바꾼 장뤼크 고다르 감독(사진)이 13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92세. 로이터통신은 “프랑스 뉴웨이브 영화의 상징인 고다르 감독이 13일 타계했다”며 “그는 기존 영화의 문법을 거부하고 지평을 넓혀 세계의 수많은 감독에게 영감을 줬다”고 보도했다. 파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소르본대 인류학과를 중퇴한 고다르 감독은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했다. 고다르 감독의 데뷔 작품인 ‘네 멋대로 해라’(1960년)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1932∼1984)의 영화 ‘400번의 구타’와 함께 “누벨바그의 신호탄”이라 불리는 기념비적인 걸작이다. ‘네 멋대로 해라’는 현장에서 쓴 ‘쪽대본’으로 진행되는 줄거리와 비논리적으로 흐르는 등장인물의 행동, 장면과 장면을 급전환하는 점프 컷 등 파격적인 연출로 “영화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극찬을 받았다. 고인은 ‘여자는 여자다’(1961년), ‘비브르 사 비’(1962년), ‘미치광이 피에로’(1965년) 등 센세이션을 일으킨 수작을 잇달아 내놓으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공상과학(SF) 영화 ‘알파빌’(1965년)은 제15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60년대 말 고다르 감독은 전통적인 극영화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다큐멘터리 혹은 에세이풍의 영화를 선보였고, 1970년대엔 당시로선 새로운 매체인 비디오를 이용해 작업하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다르는 누벨바그 영화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우상 파괴자이자 천재였다”며 고인을 추모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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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땅에 천착”… 화이트큐브 안으로 들여온 돌과 흙, 나무

    설치미술가 차기율 씨(61·사진)가 제7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6일 선정됐다. 동아일보와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강원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이 상은 박수근 화백(1914∼1965)을 기리는 뜻에서 2016년 제정됐다. 차 작가는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을 이용해 설치와 회화 여러 분야에서 자연이 지니는 원초적인 힘을 실험해 왔다. 심사단은 “차 작가는 동양의 전통철학에 바탕을 두고 박수근의 치열한 예술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다”고 평했다. 시상식은 10월 25일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다.‘박수근미술상’ 차기율 작가야생 그대로의 재료들 사용해 “땅에 대한 애정이 내 본연의 모습”‘도시시굴…’ ‘순환의…’ 작업 승화“자연이 만든 대범함 이길 수 없어… 자연과 협업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이번 수상 계기로 다시 한번 도약”“한참 나무를 깎고 있는 중에 전화가 걸려왔어요. 작업 중에 무심코 받았는데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하더군요. 아, 드디어 나에게도 뭔가 ‘계기’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기율 작가가 제일 먼저 떠올렸다는 계기란 뭘 뜻하는 걸까. 1일 인천 연수구 인천대에서 만난 그는 이를 “전력을 다해 작업할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부터 조형학부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꽤 오랫동안 뭔가 창작에 집중하질 못하며 생긴 ‘공백’에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런데 박수근미술상이 “다시 한번 삶을 도약시킬 힘을 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1985년 인천대를 졸업한 차 작가는 이후 약 10년 동안 여러 그룹전 등에 참가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 갔다. 하지만 1995년 두 번째 개인전을 마치고 난 뒤 무작정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귀국 뒤엔 1년 동안 작업을 멈췄다. “그때까지 제 작가로서의 인생은 한마디로 ‘깍두기’였습니다. 마흔 살 즈음까지 뭘 해도 잘 안 됐어요.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제 작품을 ‘설득하느라’ 몸부림쳤죠. 하지만 임기응변처럼 떠밀리듯 하는 전시는 관두고 싶었습니다. 여행에서 ‘나를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선 무작정 산천을 떠돌았어요.” 그 결과로 내놓은, 1999년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 ‘땅의 기억’은 차 작가의 예술 활동에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 이제는 그의 시그니처로 여겨지는 돌과 흙, 나무 등 야생 그대로의 재료들을 본격적으로 ‘화이트큐브’(전시장) 안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땅에 천착하기 시작했어요. 땅에 대한 애정이 제 본연의 모습이란 걸 깨달은 겁니다. 전 경기 화성의 갯벌과 평야가 맞붙은 시골집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 학교가 끝나면 산에서 식물과 새를 보는 게 일상이었죠. 지금도 눈을 감으면 끝없는 갯벌과 아지랑이, 풀, 온갖 철새들이 떠오릅니다. 그게 제 놀이터이자 저만의 색깔이 된 거죠.” 이런 기억은 이후 그의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자양분으로 자리 잡았다. 차 작가는 현재도 ‘도시 시굴―삶의 고고학’과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 사이’라는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도시 시굴은 집 뒷마당 같은 평범한 공간의 땅을 발굴해 삶의 흔적이 담긴 옹기 조각 등을 수집해 전시한다. 순환의 여행은 자연물과 문명을 결합시켜 보는 작업이다. 차 작가는 “자연이 만든 대범함은 이길 수 없다”며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연의 산물과 협업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설치미술을 주로 하다 보니 전시가 끝나면 작품을 해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차 작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는 “예술은 시각적 산물에 그치지 않고 정신이 바탕이 된 영적 산물”이라며 “의미 없이 소멸되는 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신념과 삶에 대한 열렬한 긍정이 남기 때문”이라고 했다. 차 작가가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된 건 어머니의 힘이 컸다. 2014년 세상을 떠나시며 어머니는 단 한마디, “정직하게 살아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 말을 되뇌며 강화도 작업실 앞마당 매화나무 아래 어머니를 모셨다. “지난해 그 매화나무가 고사했어요. 안타깝지만, 이 나무를 활용해 10월 수원국제예술제 ‘온새미로 프로젝트’에서 작품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일평생 아들의 삶이 녹록지 않은 것을 걱정하면서도 응원했던 어머니에게 이렇게라도 뭔가 갚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는 오늘도 그렇게 나무를 다듬고 자른다. 인천=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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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균관 “명절에 전 부치지 않아도 돼요”

    성균관이 앞으로 차례상을 간소화해 음식은 최대 아홉 가지만 올리고, 전도 부치지 않아도 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성균관 표준안에 따르면 추석 차례상의 기본 음식은 송편과 나물, 구이(적·炙), 김치(백김치류), 과일, 술 등 6가지다. 여기에 조금 더 올린다면 육류와 생선, 떡 정도를 추가할 수 있다. 밥과 국도 따로 올리지 않아도 된다. 위원회는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도 차례상에 꼭 올릴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홍동백서(紅東白西)’처럼 차례상에 음식 놓는 예법도 따를 필요가 없다. 실제로 붉은 과일은 동쪽에 놓고 흰 과일은 서쪽에 놓으라는 홍동백서나 대추 밤 배 감의 순서를 뜻하는 조율이시(棗栗梨枾) 등은 옛 문헌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당이 없는 일반 가정은 보통 지방(紙榜·종이에 써서 모신 신위)을 올리고 기제사나 차례를 지냈으나 이 역시 바꿀 수 있다. 모시는 분의 사진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위원회는 “집안마다 차례가 먼저인지 성묘가 먼저인지를 따지기도 하는데 가족끼리 의논해 정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은 “잘못된 의례문화가 명절증후군이나 명절 뒤 이혼율 증가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행처럼 내려오던 예법을 바꾸지 못했다”며 “이번 차례상 표준안이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성별 및 세대 갈등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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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심위, 제2의 n번방 ‘엘’관련 피해자 성착취물 접속 차단

    ‘제2의 n번방’ 주범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성착취 범죄자 ‘엘’(가칭)과 관련된 불법촬영 성착취물이 대거 접속 차단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엘 관련 성착취물 523건을 긴급 심의해 8월 31일부터 접속 차단 조치했다”고 5일 밝혔다. 해외 불법사이트에서 유통되는 미성년 피해자의 성착취물에 대해서는 국내 이용자의 접근을 제한하고, 해외 사업자에게는 해당 자료의 삭제를 요청했다. 아울러 경찰청이 ‘공공 DNA DB’로 등록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엘 관련 성착취물 429건을 ‘불법촬영 영상물 확인’으로 의결했다. 공공 DNA DB란 불법촬영물의 특징을 추출해 편집·변형된 파일도 적극 차단할 수 있도록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다. 해당 착취물들은 향후 이용자 접근 제한 등 필터링 조치를 통해 국내 인터넷사이트에서 유통이 차단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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