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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학원 ‘뺑뺑이’. 요즘 아이들의 유일한 놀이라네요. 골목길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아이들이 이제는 없어요. 쉼 없는 쳇바퀴 속에선 앞이 안 보여요. 숨도 크게 쉬고 가끔 거꾸로 봐야 세상이 아름다운 걸 알 텐데. 저처럼요. ―인천 중구 동화마을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배트맨 얼굴과 헐크의 가슴, 원더우먼의 하반신, 스파이더맨의 손, 슈퍼맨 망토…. 완벽한 영웅을 기대했는데 현실은 불협화음이네요. 넘치면 모자람만 못합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에헴! 비록 누렇고 말라비틀어졌으나 명색이 뼈대 있는 가문의 단풍일세. 어찌 천박하게 땅바닥으로 철퍼덕 떨어지겠나. 행색이 좀 초라하기로서니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고 면박을 주면 섭섭하지.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크리스마스 장식의 감초인 붉은 ‘포인세티아’ 잎이 가을비를 흠뻑 맞고 이슬을 매달았습니다. 커피숍엔 성탄환(聖誕環)이 걸리고 11월부터 연말 분위기 물씬. ‘가는 해’는 아직 많이 남았으니 우선 연말 분위기를 즐겨 보면 어떨까요.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얼마나 걸어야 할지, 어디로 갈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지금 잠시 멈춰 고민하지만 소년은 다시 걸을 겁니다. 다리 아프고 배고파도 그 끝에서 웃으며 흐른 땀을 닦을 수 있을 겁니다. ―경춘선 화랑대역 폐역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계곡에 떨어진 빨간 비늘. 올해도 산을 찾아온 붉은 마법의 흔적이네요. 한 해가 가고 있다는 신호네요. 하얀 옷으로 갈아입기 전 빨간 치마. 화려한 날이 가네요.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경제면 사진에 ‘신제품’이 ‘정보’로서 자리를 잡습니다. 이전엔 광고색이 짙어 꺼리던 사진들이었죠. 그래서 주로 경제 현상이나 트렌드, 경제 정책(주로 정부 활동) 사진들이 주로 경제면에 편집됐는데 이젠 아예 제품 자체가 사진으로 인기를 끕니다. 뭐, 딱히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러려고 이런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이 쪽으로 가는 거죠. 어느 누구도 가지 않았던 곳엔 당연히 길도 없죠. 당시에 김대중정부가 IMF 위기를 극복하는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IT를 잡았습니다. ‘IT’도 나중에 나온 용어이고 당시엔 ‘정보화’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IT업계도 자신감에 넘쳐있었습니다. 신통방통한 요물(?)들이 쏟아져 나왔죠. 신기하잖아요. 사진꺼리로도 딱이었습니다. 독자들과 소비자들도 이 신기한 물건과 서비스가 한국 경제를 다시 일으킬 것이라 확신했고 IT벤처 기업을 중심으로 문을 연 코스닥도 거품 논란이 있을 정도로 솟구치던 때였습니다. 1998년 10월 게재된 사진입니다. 지금 보면 초보적인 디지털 제품인데 당시엔 ‘문자를 보내는 삐삐’로 눈길을 끌었던 제품입니다. IT제품을 모델이 들고 있는 경제면 사진 포맷은 이때부터 조금씩 가뭄에 콩나듯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아직은 전문모델이 아닌 일반인(주로 직원들)이 들고 있는 포맷이었죠. 업체들이 전문 모델을 동원해 본격적으로 제품홍보 사진촬영 행사를 한 것은 2000년대 초반입니다. 컨변센이나 엑스포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원래 어느 행사나 안내직원(usher, 주로 젊은 여성)이 있긴 했지만 ‘도우미’라는 이름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것은 1993년 대전 엑스포 때부터입니다. 이 박람회를 위해 정부가 대대적으로 자원봉사자를 뽑았고 이분들에게 ‘도우미’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죠. 당시 엑스포만큼 눈길을 끈 것은 부스 곳곳에 자리잡은 도우미들이었습니다. 도우미들이 역동적으로 활동하던 공간은 자동차 발표회나 모터쇼였습니다. 아예 ‘레이싱걸’이라는 콩글리시도 생겼죠. 원래는 자동차경주대회의 안내 역할을 하던 도우미들을 뜻했던 것 같은데 신차를 소개하는 데도 등장했습니다. IT 제품을 홍보하는 분들에게 모델이 제품을 소개하는 사진 포맷은 매력적이었습니다. 제품이 도드라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또 자동차나 IT나 첨단소비재라는 맥락을 같이 하니 연상하기 쉬웠죠. 자동차보다 훨씬 작은 손에 드는 휴대용 제품이지만 오히려 들고 찍기 좋으니 인기였습니다. ‘신제품 발표회’에 ‘포토세션’을 따로 만들어서 사진기자들을 위한 시간을 냈습니다. 이전에는 담당기자들만 대상으로 하던 발표회를 사진기자들에게까지 개방을 한 거죠. 신제품은 기사 못지않게 사진홍보가 중요해졌습니다. 어떤 기업은 아예 신제품 발표회를 포토세션으로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포토세션이 중요해지니 모델들의 역할도 중요해졌습니다. 이 즈음부터 모델 인력회사(에이전시) 규모가 점점 커졌습니다. 이런 포맷의 사진은 지금도 계속 촬영중입니다. 백화점이나 마트는 아예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을 하고 제품 홍보를 할 때마다 정기적으로 모델들을 모시고 사진촬영 행사를 하곤 합니다. 누군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하다보니 설정된 포맷. 홍보인 입장에선 제품을 ‘뉴스사진’으로 만들기 쉽고, 사진기자 입장에선 ‘편하게(?) 찍으니 좋고 편집자 입장에선 울긋불긋한 사진을 게재해 좋았죠. 독자나 소비자 입장에선 새로운 첨단제품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낯선 뭔가가 처음 등장해 일상의 것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숱한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그냥 굴러가기 마련이죠. 경제 사진의 이 새로운 포맷도 초반엔 우왕좌왕하기도 했지만 일단 신문사진으로 인정받으니 가장 쉽고 안정적인 사진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문제도 있습니다. 이 포맷이 15년 가량 반복되니 이제는 아예 포토세션을 위한 포토세션도 많이 있습니다. 신제품은 여전히 새로운 정보를 주긴 하지만 이 앵글은 너무 단순하고 지루합니다. 또 광고효과가 지나치게 강해서 기업들은 이를 활용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편, 신문이나 인터넷에 안 뜰 것 같으면 자체적으로 촬영해 인터넷이나 SNS에 돌립니다. 또 신문들은 이것을 광고를 유치하기 위한 레버리지로 이용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업은 홍보하고 언론은 검증하는 불문율이 깨질까 우려됩니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기 마련이니 이 포맷이라도 시간이 지나 점점 악용되며 수명을 다해가는 건 아닐까요. 결자해지이니 애초에 포맷을 만든 사진기자들에게 숙제로 남았습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런 사진, 많이들 보시지요. 모델들이 제품을 들고 있거나 특정 서비스를 홍보하는 이미지로 신문 경제면과 인터넷뉴스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뉴스’ 사진이기는 한데 마치 광고사진과도 비슷하니 저널리즘과는 무관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어쨌든 이미지 홍보 사진도 뉴스사진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은 것도 사실입니다. 국내 홍보 사진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불과 20년 정도입니다.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0월 D일보 경제면입니다. 경제면은 아무래도 기사 내용이 딱딱하고 건조하기 때문에 사진이나 삽화로 숨통을 터주는 편집을 하겠다는 시도를 막 시작할 때였습니다. 1990년대 중반 J일보가 ‘섹션신문’을 표방하며 경제 섹션을 따로 만들었는데 많은 신문들이 그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전엔 경제관련 회의가 주로 쓰였는데(사진기자들 말로 시커먼스 회의-어두운 색의 양복을 입은 분들이 회의를 하기 때문), 이 즈음부터는 사회면에 쓰일 법한 농촌 스케치나 경제 현장, 외신 패션쇼 등이 주로 쓰였습니다. ▲1998년 8월 D일보 경제섹션 1면 IMF 외환위기는 한국인들에게 전쟁만큼이나 충격을 줬습니다. 경제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니 신문들도 경제면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우울한 경제기사로 편집이 되던 시절이었지만, 섹션 주요 지면이 컬러 인쇄되면서 울긋불긋 사진이 선호됐고, 영차영차 외환위기를 극복하자는 각계각층의 온갖 행사를 취재한 사진이 주로 쓰였습니다.▲1998년 12월 D일보 경제섹션. 명동 양말가게 사진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온 국민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매일 극복다짐 행사를 할 수는 없는 일. 자. 여기서 사진기자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집니다. 행사가 확연히 줄었지만 이미 늘어난 컬러지면은 여전히 딱딱한 경제 정보로 채워지고, 편집기자들은 숨통을 터줄 컬러풀 사진을 원했습니다. 경제지면을 매일 5면 발행하는데, 행사를 알리는 보도자료는 하루 1~2건으로 줄었습니다. 별 수 있나요, 카메라를 들고 시장으로, 거리로, 상가골목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매일 3~4개의 사진 아이템을 발굴하는 건 정말 고역이었죠. 1999년부터는 사진기자들이 한시름 놓게 됩니다. 매일 5꼭지 가량 경제면 용 사진을 마감해야 하는데, 구세주들이 등장한 겁니다. 바로 백화점과 호텔이었죠. 롯데 신세계 현대 갤러리아 등 백화점과 서울 시내 각 호텔들은 자체 행사나 상품들을 홍보하기 위해, 늘 아이템에 쪼들려있던(?) 사진기자들을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원래 백화점과 호텔 홍보실은 기자들을 무지무지 싫어했습니다. 특히 카메라 기자들은 더더욱 싫어했죠.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치의 상징으로 취급받아 주로 비판과 고발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홍보 일도 언론의 비판을 해명하는 ‘네거티브 홍보’ 업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행무상. 서서히 외환위기의 암운이 걷히면서 소비시장이 조금씩 살아나는 분위기였고, 한동안 지갑을 닫고 허리띠를 졸라맨 소비자들이 ‘우아한’ 소비를 열망했습니다. 백화점과 호텔 홍보실이 대폭 강화되고 사진 관련 보도자료를 돌렸습니다. 물건,서비스 등 상품이 사진으로 표현되고 지면에 실리면 바로 매출과 이어지던 시기라 경쟁이 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홍보실 입장에선 ‘공짜 홍보’였고 경제면 사진 아이템 발굴에 굶주린 사진기자들 입장에선 시원한 바람이었던 거죠. 이미지 홍보일은 주로 각 홍보실의 주니어 직원들이 했는데, 이 때의 홍보맨-우먼들이 지금은 시니어가 돼 현역에서 왕성하게, 주도적으로 홍보업계를 이끄는 것을 보면 당시에 이분들이 얼마나 빡세고 경쟁적으로 홍보일을 경험하고 배웠는지 가늠됩니다. (다음회에 계속)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문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방문해 리센룽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싱가포르는 출장으로 여러차례 들렀던 곳입니다. 가장 최근 출장은 고 리콴유 총리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국부로 추앙받는 리 총리의 죽음을 슬퍼하는 싱가포르 국민들의 표정을 촬영하려 했지만 정작 길거리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기자실이 있던 호텔 앞 큰 도로가 완전히 통제돼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치안이 센 것은 알고 있었지만 호텔 뒤 골목을 제외하곤 아예 움직이지 못 하게 하니 할 수 있는 것은 기자실에 있던 벽걸이 TV의 장례식 중계화면을 캡쳐하는 일 뿐이었죠. 화가 난 다른 기자는 뒷골목에 나가 몰래 껌과 침을 뱉곤 들어와서 “에잇, 300만원 벌었다”고 푸념했습니다. 침을 뱉으면 벌금이 300달러 쯤 됐으니 10번쯤 뱉었나 봅니다.“싱가포르가 듣던 바대로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건물마다 특색이 있다.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귀국(싱가포르)의 훌륭한 지식과 경험들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 지난 6월 북-미 정상회담 전 깜짝 밤나들이를 나섰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이 단순히 외교적인 수사가 아니라, 김 위원장의 속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의 개혁 개방 모델을 따를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상하이 주식시장을 시찰했을 때에는 북한이 중국식 모델을 따를 것이라고들 했죠. 또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베트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에게 베트남을 롤모델로 제시해 화제가 됐습니다.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이런 발언 등이 미국이 북한에 대해 깊이 학습하지 않은 방증이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싱가포르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저도 주기자의 시각이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싱가포르 하면 자유무역, 부유한 선진국, 깨끗한 거리, 청렴한 엘리트 공무원 등을 먼저 연상하는데요, 이면에는 독재국가라는 그림자가 짙게 있습니다. ‘창업자’인 리콴유 전 총리 일가가 ‘오너’인 나라죠. 세습이요? 물론입니다. 리 전 총리가 타계한 이후 장남인 리센룽이 사실상 종신인 총리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리 총리는 32세 때부터 국무장관에 오르는 등 정부요직을 두루 거치며 일찌감치 후계자 학습을 했죠. 선거도 있고 의회도 있지만 하나마나, 있으나마나. 독재자라면 혹하지 않을까요. 김 위원장에게도 싱가포르 체제는 엄청난 매력으로 보일만 합니다. 싱가포르에선 경제도 정부가 주도권을 가집니다. 정부가 직접 경제영역을 일일이 관리하고 통제하죠. 싱가포르 최대 기업인 국영투자회사 ‘테마섹’의 CEO는 리 총리의 부인 호칭 여사입니다. 독점권을 가진 주요 국가기업들 수장을 죄다 리 총리 일가와 친인척이 맡고 있는 구조지요. 언론 자유도 없습니다. 신문매체는 10개가량 있지만 전부 한 회사입니다. 방송채널도 6개인데 사실상 한 회사가 관리합니다. 당연히 지배회사의 수장도 리 총리 일가이고요. SNS도 소용없습니다. 몇 해 전 한 싱가포르 고등학생이 용감하게도(?) 유튜브에 “우리는 민주주의가 없다”고 항변하는 동영상을 올렸다가 얼굴을 알아본 행인에게 구타를 당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치안이 뛰어난 싱가포르지만 경찰은 모른 척 했다고 합니다. 국가보안법도 살벌하고 반정부 집회 금지, 흡연 금지, 밤10시 이후 야외 음주 금지, 침만 뱉어도 벌금 수백달러… 사복경찰이 대화내용까지 엿듣는다고 하니 말 다했죠. 민간인 사찰도 잦을 것입니다(우리나라에도 얼마 전까지 있었죠). 어쨋든 싱가포르는 1인당 GDP가 5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을 이뤘습니다(국민들이 얼마나 행복감을 느끼는지는 모릅니다). 민주주의를 포기한 대신, 청렴한 엘리트 공무원들이 깨끗하고 촘촘하게 국가를 경영해 훌륭한 성과를 냈으니 이를 ‘효율적’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김 위원장은 북한을 ‘가난한 나라’라고 지칭했다고 하죠. 권력은 대물림해왔는데 아뿔싸, 가난까지 대물림했다는 하소연일까요. 반대로 부를 대물림할 수 있다면요? 북한의 경제발전이 본인의 자산형성과 직결 된다면요? 일단 본인이 직접 주도해 토목, 건설, 통신, 철도, 발전, 제철, 정유, 광산 등 기간산업 분야부터 정부투자기업을 세우고 독점권을 주면 엄청난 기업으로 성장하겠죠. 그 뒤 싱가포르처럼 각 주요기업 실권수장으로 친인척을 대거 앉히는 겁니다. 북한 경제의 절반 이상을 김씨 일가가 장악하는 상황도 가능합니다. 대개 독재자들은 정치권력만 갖고 경제권은 시장에 넘긴 상태에서 통제하고 장악하려합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아예 경제권까지 완벽하게 통째로 소유하는 셈입니다. 한반도 북쪽의 완벽한 주인이 되는 거죠. 할아버지가 창업했으나 진즉에 부도난 가업을 벌떡 일으켜 세우는 3세 오너로서, 모든 것을 소유하는 절대주인이 되는 꿈. 자신과 친인척이 곧 정부이자 기업이 되고, 국가가 곧 자신이 되는 나라. 인민은 생계를 보장해 주는 대신 철저히 통제하되, 자신과 일가는 세습은 물론 완전한 부와 자유를 누리는 나라. 그러면서도 싱가포르만큼 야경이 멋진 폼 나는 나라. 이상 어설픈 사진기자의 헛된 상상이었습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프랑스 출신 퍼포먼스 작가 밀라 라이츠(MILA LIGHTS)가 지난 23일 저녁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 에메랄드홀에서 라이브 페인팅 퍼포먼스를 선보였다.‘LIGHT YOUR WORLD(당신의 세계에 빛을 밝히다)’라는 주제로 펼쳐진 이번 공연은 밀라 라이츠 고유의 역동적인 에너지와 다양성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밀라 라이츠는 가야금과 장구 연주, 한국 무용을 반영한 춤사위, 한복 모티브 의상 등 한국적 문화를 퍼포먼스 전반에 반영하고, 페인팅 소재 역시 한지, 먹물, 전통 붓 등 동양적인 소재에 액상 세라믹과 금가루 등을 더해 다채롭게 표현했다. 파리 크리스티 경매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밀라 라이츠는 오는 6월과 8월 파리 오마갤러리(galerie omagh)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갤러리비케이(www.gallerybk.co.kr)를 통해 밀라 라이츠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부루벨코리아가 주최하고 갤러리비케이, 두성종이, 주한 프랑스 문화원이 후원한 이번 공연은 전 과정이 다큐멘터리로 촬영·제작되어 BBC와 Arte 등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영화 ‘E.T.’에 나오는 외계인을 닮았다고요? E.T.처럼 ‘식빵 머리’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지구인을 구하러 온 것은 맞습니다. 불이 나면 재빠르게 연결해주세요. 그 대신 우리 앞을 가로막는 불법 주차는 제발 하지 말아주세요.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민들레는 바닥에 붙어서 옆으로 성장합니다. 위로 높게 자라는 식물은 아니죠. 하지만 솜털 같은 씨앗은 가벼워서 어린이의 입바람에도 멀리 날아갈 수 있습니다. 생존력, 번식력이 어마어마하죠. 어디까지 갈까요. 이번에는 훈풍을 타고 북에도 갈 수 있을까요.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제 정체는 뭘까요? 살던 곳은 갯벌. 조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죠.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어딘가로 끌려갔어요. 손에 손을 거쳐 바지락 칼국수를 끓일 때 함께 투입됐죠. 아뿔싸, 결국 들통이 났네요. 저는 속살이 없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친구들과 함께 긴 여행을 했으니까요.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귀를 찢는 소음과 숨 막히는 공해를 모두 이겨내고, 도시 한가운데서 아름드리로 성장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古木이 되었고 이제는 枯木이 되었습니다. 썩어들어간 몸뚱아리를 양분으로 봄이 피어났습니다. 도심 속 초록의 임무를 봄꽃에게 넘기고, 이제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