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희

조건희 차장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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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이 사건이 되는 지점을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becom@donga.com

취재분야

2025-11-23~202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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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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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기정화기 설치, 강당-체육관은 제외… “실내체육도 마스크 쓸 판”

    “미세먼지로 온 세상이 뿌옇게 변했는데도…. 학교에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6일 전남지역에 사는 학부모 A 씨의 하소연이다. 이날 아침 전남 일대의 미세먼지 농도가 m³당 200μg 가까이로 치솟은 상황에서 초등학교 1학년인 자녀를 학교에 보내며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A 씨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는 ‘공기정화장치’가 한 대도 없다”며 “미세먼지에 무방비로 노출돼 종일 미세먼지를 들이마신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고 말했다. A 씨뿐 아니다. 수도권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엿새째 이어진 6일,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공부하고 뛰어노는 학교 내 ‘미세먼지 안전’이 위협받자 학부모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도 운동장에서 체육수업을 실시하고, 교실 내에 공기정화장치가 있어도 가동하지 않는 등 미세먼지에 둔감한 학교가 많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청소년이나 성인보다 미세먼지에 취약하다. 정기석 한림대의료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아이들은 초미세먼지(PM2.5)의 일차적인 방어막이 돼주는 코 점막과 체모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며 “폐의 면역세포와 상피세포도 성인보다 더 민감해 초미세먼지 속 유해물질의 자극을 더 강하게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날 학부모들은 공기정화장치 하나 없는 교실에 대한 불만을 가장 크게 나타냈다. 교육부에 따르면 초등학교는 공기정화장치 설치 비율이 74.9%(2019년 2월 기준)에 그친다. 초등생 자녀를 둔 경기지역 학부모 B 씨는 “학교 4곳 중 1곳은 공기정화장치가 없는 데다 미세먼지가 심해도 계속 현관문이나 창문을 열어 놓는 곳이 적지 않다”며 “미세먼지 관리가 전혀 안 되는 곳에서 계속 공부해야 한다니 이민 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중학교는 공기정화장치 설치율이 25.7%, 고등학교 26.3%로 더욱 열악하다. 교육부는 올해까지 가능한 한 학교 내 공기정화장치 설치를 끝낼 방침이지만 그 계획에 실내 강당이나 체육관이 포함되지 않는다. 전남의 한 학부모는 “강당에서 체육을 하다 보면 폐활량이 많아 미세먼지를 많이 흡수하는데도 공기정화장치가 없다”며 “교장이 재량으로라도 공기정화장치를 놓지 않으면 교육청에 민원을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미세먼지에 둔감한 학교의 태도에 더 큰 분노를 표출했다. 경북지역의 한 학부모는 “아파트에서 내다보니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창문을 계속 열고 수업을 하기에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경기지역의 한 학부모는 “학교에서 ‘학생 수가 많아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는데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며 “학생들이 발암물질을 한 시간가량 먹은 셈 아니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교실에 설치된 공기정화장치도 방치되기 일쑤였다. 학부모 C 씨는 “교장이 1000만 원을 들여 교실 공기정화장치에 좋은 필터를 장착했다고 강조했는데 교사 중 누구도 정화장치를 가동시키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다. 미세먼지 상황이 너무 악화되자 일부 학부모는 아예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호흡기질환이 있다’는 의사 소견서가 있으면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이상’일 때 학교에 가지 않아도 질병결석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교사는 이 같은 교육부 지침을 모르고 무단결석으로 처리해 학부모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학교도 나름대로 고충이 크다. 학생들은 학부모의 우려만큼 미세먼지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해 지도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22년 차 초등학교 교사는 “하교할 때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신신당부해도 교실에 꼭 서너 개씩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엄마들은 ‘왜 우리 애 마스크 안 챙겨줬냐’고 한다”고 말했다. 최예나 yena@donga.com·조건희·김하경 기자}

    • 2019-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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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세먼지 심해도 하루 3차례 10분씩 환기하는게 좋아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으로 심한 날엔 창문을 꼭 닫아두기 마련이지만 하루 3차례, 10분씩만이라도 환기를 하는 게 좋다. 조리나 청소를 할 때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유해가스 탓에 실내 미세먼지 농도가 오히려 더 높아질 수 있어서다. 창밖에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 수준으로 자욱하다면 환기를 하기보다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헤파(HEPA)필터가 달린 공기청정기를 가동하는 게 낫다. ‘표준 사용 면적’이 최소한 거실 크기 이상인 제품을 골라야 제 성능을 낸다. 공기청정기 성능이 이보다 떨어지면 공기를 제대로 정화시키지 못할 수 있다. 레인지후드를 함께 틀어두면 실내 미세먼지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가습기를 틀면 물 분자가 미세먼지를 붙잡아 공중에 덜 날리게 해준다. 간혹 가습기가 뿜어내는 수증기 입자를 공기청정기가 미세먼지로 잘못 인식할 수 있는 만큼 두 기기를 2m 이상 떨어뜨려 두는 게 좋다. 먼지를 가득 머금은 털옷과 머리카락은 귀가하기 전 문밖에서 털면 집 안으로 유입되는 걸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미세먼지는 한번 들이마시면 폐뿐 아니라 두뇌와 혈관 등 몸속 곳곳을 돌아다니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방사성물질을 입힌 초미세먼지를 쥐에게 들이마시게 한 뒤 관찰해 보니 초미세먼지 입자의 60%가량은 이틀 뒤에도 그대로 폐에 남아 있었다. 폐 속 초미세먼지가 완전히 배출되는 데는 일주일 이상 걸렸다. 전문가들은 물을 하루 1.5L 이상 자주 마시는 것이 몸속 미세먼지 배출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물을 많이 마시면 기관지에 들러붙은 미세먼지를 가래 형태로 뱉어내기 쉽고 혈액 순환과 이뇨 작용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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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미세먼지의 재앙…우리 몸 속에 미치는 치명적 영향은?

    초미세먼지는 한번 들이마시면 폐뿐 아니라 두뇌와 혈관 등 몸속 곳곳을 돌아다니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번 몸속에 들어온 초미세먼지가 배출되는 데는 최소 일주일이 걸린다. 전문가들은 물을 자주 마시는 게 초미세먼지 배출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4일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방사성 물질을 입힌 초미세먼지를 쥐에게 들이마시게 한 뒤 관찰해보니 초미세먼지 입자의 60%가량은 이틀 뒤에도 그대로 폐에 남아있었다. 폐 속 초미세먼지가 완전히 배출되는 데는 일주일 이상 걸렸다. 반면 음식을 통해 위장에 유입된 초미세먼지는 이틀 만에 거의 전부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임상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생명공학연구부장은 “대기 중 초미세먼지가 가신 후에도 몸속엔 오염물질이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초미세먼지가 폐암과 심혈관질환뿐 아니라 비만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캐나다 임상평가과학연구소의 2015년 연구에 따르면 초미세먼지를 10주간 들이마신 쥐의 지방 세포는 깨끗한 공기에서 지낸 쥐의 것보다 20% 더 컸다. 초미세먼지가 혈액을 타고 돌아다니며 신경계를 자극해 혈당 조절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하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팀의 추정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대기 오염에 노출된 임산부가 낳은 아이의 비만 위험이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2.3배 높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물을 하루 1.5리터 이상 자주 마시는 것이 몸속 초미세먼지 배출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물을 많이 마시면 기관지에 들러붙은 초미세먼지를 가래 형태로 뱉어내기 쉽고 혈액 순환과 이뇨 작용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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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즈베크 건강보험제도, 한국인이 설계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한국의 퇴직 공무원을 자국의 보건부 차관으로 영입했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과 의료제도를 자국에 이식하기 위해서다. 우즈베키스탄이 한국 공무원을 고위직으로 영입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보건복지부는 이동욱 전 복지부 인구정책실장(54·사진)이 이달 초 우즈베키스탄 보건부 차관 겸 사회발전 부총리 보건자문관에 임명됐다고 27일 밝혔다. 이 차관은 다음 달 초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중앙 부처 공무원 임기는 통상 1년이지만 이 차관은 3년 이상 활동을 하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고 한다. 한국 공무원이 우즈베키스탄 고위직을 맡은 것은 2012년 김남석 전 행정안전부 1차관이 우즈베키스탄 정보통신기술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에 임명된 데 이어 두 번째다. 이번 인사는 2017년 11월 샵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형 보건의료시스템을 전수할 인력을 영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추진됐다. 지난해 2월에는 보건의료시스템 전수와 관련해 양국 경제부총리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의 가장 큰 관심은 건강보험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건강보험은 의무 가입이 아니다. 한국은 1997년 사업장과 지역으로 나뉜 의료보험을 하나로 합친 국민의료보험법을 제정한 뒤 6년 만인 2003년 완전한 건강보험 통합을 이뤄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건강보험 제도를 정비한 전례는 세계적으로 찾기 어렵다. 이 차관은 복지부 보험급여과장과 건강보험정책국장, 보건의료정책관 등을 지내 건강보험 분야에 정통하다. 이 차관의 임명으로 한국의 보건의료 제도 수출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17년 바레인에 건강보험 청구 및 심사시스템을 이식하기로 하고 173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은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이 차관 임명을 계기로 우즈베키스탄에 보건의료협력센터를 세우고 이상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건강보험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을 파견할 예정이다. 이 차관은 출국을 이틀 앞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의 경험과 제도를 공유해 우즈베키스탄의 보건의료 체계 개선에 기여하겠다”라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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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즈벡에 보건부 차관 ‘수출’…한국식 보건의료시스템 이식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한국의 퇴직 공무원을 자국의 보건부 차관으로 영입했다.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과 의료 제도를 자국에 이식하기 위해서다. 우즈베키스탄이 한국 공무원을 고위직으로 영입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보건복지부는 이동욱 전 복지부 인구정책실장(54)이 이달 초 우즈베키스탄 보건부 차관 겸 사회 발전 부총리 보건자문관에 임명됐다고 27일 밝혔다. 이 차관은 다음달 초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중앙부처 공무원 임기는 통상 1년이지만 이 차관은 3년 이상 활동을 하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고 한다. 한국 공무원이 우즈베키스탄 고위직을 맡은 것은 2012년 김남석 전 행정안전부 1차관이 우즈베키스탄 정보통신기술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에 임명된 데 이어 두 번째다. 이번 인사는 2017년 11월 샵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형 보건의료시스템을 전수할 인력을 영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추진됐다. 지난해 2월에는 보건의료시스템 전수와 관련해 양국 경제부총리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의 가장 큰 관심은 건강보험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건강보험은 의무 가입이 아니다. 한국은 1997년 사업장과 지역으로 나뉜 의료보험을 하나로 합친 국민의료보험법을 제정한 뒤 6년 만인 2003년 완전한 건강보험 통합을 이뤄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건강보험 제도를 정비한 전례는 세계적으로 찾기 어렵다. 이 차관은 복지부 보험급여과장과 건강보험정책국장, 보건의료정책관 등을 지내 건강보험 분야에 정통하다. 이 차관의 임명으로 한국의 보건의료 제도 수출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17년 바레인에 건강보험 청구 및 심사시스템을 이식하기로 하고 173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은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이 차관 임명을 계기로 우즈베키스탄에 보건의료협력센터를 세우고 이상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건강보험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을 파견할 예정이다. 이 차관은 출국을 이틀 앞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의 경험과 제도를 공유해 우즈베키스탄의 보건의료 체계 개선에 기여하겠다”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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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지부 ‘어르신 수당’ 강행한 중구 제동

    서울 중구가 정부의 반대에도 ‘어르신 공로수당’ 지급을 강행하자 보건복지부가 제재에 나섰다. 서양호 서울 중구청장(52)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신설한 현금 살포성 복지정책을 두고 여권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중구는 25일 관내 만 65세 이상 기초생활급여 및 기초연금 대상자 1만1000여 명에게 공로수당을 처음 지급했다. 중구 지역 안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화폐(플라스틱 카드)에 매달 25일 10만 원씩 충전해주는 형태로, 이번엔 1, 2월분을 합쳐 20만 원을 지원했다. 그동안 정부는 “기초연금과 중복된다”며 공로수당 지급에 반대했다. 하지만 중구가 이를 강행하자 복지부는 “중구에 지급하는 기초연금 국고보조금 중 1, 2월분 5억 원 삭감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지자체가 기초연금과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면 국고보조금의 10%를 삭감할 수 있다. 서일환 복지부 기초연금과장은 “‘시행 불가’ 의견을 전한 뒤 협의 중이었는데 중구가 지급을 강행해 법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 성남시는 공립도서관에서 책 6권 이상을 빌린 청년에게 지역화폐 2만 원을 지급하는 ‘독서수당’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는 2017년 고령 해녀에게 월 10만∼20만 원을 주는 ‘해녀수당’을 도입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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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탠퍼드大병원도 포기한 환자 살린 아산병원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동관 10층. 간 이식 병동에 생일 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다. 환자복을 입은 미국인 찰스 카슨 씨(47)가 생일 케이크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미국 최고 수준의 병원에서도 “치료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지난해 11월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마흔일곱 번째 생일 케이크를 마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카슨 씨가 병마와의 싸움을 시작한 건 2011년이다. 몸이 좋지 않아 스탠퍼드대병원을 찾았다가 백혈병 전 단계인 ‘골수 이형성 증후군’과 간경화라는 진단을 받았다. 항암 치료를 견디려면 건강한 간을 이식받아야 했지만 적합한 뇌사 기증자가 언제 나타날지 기약할 수 없었다. 부인 헤이디 카슨 씨(47)의 간 일부를 이식받는 게 거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미국 최고 수준의 의료진도 “까다로운 수술”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체 간 이식 수술 자체가 어렵고 성공해도 골수 질환 탓에 상태가 다시 나빠질 공산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실의에 빠진 채 좌절해 있는 카슨 씨에게 지난해 가을 스탠퍼드대병원의 의료진은 “생체 간 이식 의술은 한국이 훨씬 앞서 있다”며 서울아산병원을 추천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생체 간 이식 5000례(수술 단위)를 달성했다. 이식 후 1년 생존율도 97%로 미국 병원 평균(89%)을 앞섰다. 카슨 씨는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그해 11월 한국을 찾았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송기원 교수도 수술이 쉽지 않다고 판단했지만 카슨 씨의 마지막 희망을 무너뜨릴 순 없었다. 지난해 12월 19일 카슨 씨의 배를 열자 간과 복막이 들러붙어 있고 혈관엔 핏덩어리가 가득했다. 통상 10시간 안팎 걸리는 수술은 18시간을 넘겼다. 성인 2명 분량의 혈액을 수혈하는 대수술이었다. 이후 카슨 씨는 몇 차례 고비를 맞았지만 두 달 만에 회복해 이달 25일 미국으로 귀국했다. 그는 “가족과 평범한 행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의료진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이승규 석좌교수는 “미국 10대 병원으로 꼽히는 스탠퍼드대병원이 한국에 환자를 맡겼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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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할 수 있는 나이’ 60→65세 늘렸다

    주부나 택시운전사 등 정년이 없는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稼動年限·일할 수 있는 나이)을 기존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5년 더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나왔다. 1989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가동연한을 만 55세에서 만 60세로 5년을 올린 지 30년 만에 다시 5년 더 올리는 것으로 대법원 판례가 바뀐 것이다.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수영장에서 숨진 박모 군(당시 4세)의 유족이 수영장 운영업체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가동연한을 만 65세로 인정해 배상액을 다시 계산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재판부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구조와 생활 여건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법 제도가 정비 개선됨에 따라 1989년 선고한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경험칙의 기초가 됐던 제반 사정이 현저히 변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지난 30년 동안 △국민 평균 수명 증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 △정년 연장 △연금 수령 시점 연기 등을 가동연한 상향 판단의 근거로 제시했다. 김 대법원장과 대법관 11명 등 전원합의체 12명은 모두 가동연한 상향에 동의했다. 김 대법원장 등 9명은 다수 의견으로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만 60세로 봐야 한다는 견해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고, 이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만 60세를 넘어 만 65세까지도 육체노동자가 일할 수 있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조희대 이동원 대법관은 가동연한을 만 63세로, 김재형 대법관은 연령을 특정하지 말고 포괄적으로 봐서 만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가동연한은 일용직 노동자나 미성년자가 숨졌거나 다쳤을 때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기준이 된다. 가동연한이 올라가면서 각종 복지제도의 노인 연령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등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근로자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전면 의무화한 지 2년이 지난 상황에서 정년을 다시 높일지를 두고 논란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노인 연령과 관련한 복지제도는 199종에 달하고 통일된 기준이 없어 진통이 예상된다. 금융당국과 보험사는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해 보상금 산정 기준이 되는 ‘일할 수 있는 연령’을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김예지 yeji@donga.com·조건희 기자}

    • 201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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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기준 상향’ 명분 얻었지만… 복지혜택 늦추면 반발 커질듯

    육체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나이를 현재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더 높여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은 보험금 지급기준을 비롯해 정년 연장 논의까지 우리 사회 전반에 연쇄적인 파장을 몰고 온다는 점에서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판례 변경으로 보험업계가 당장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갔고, 각종 복지 제도를 손질할 필요성이 높아지게 됐다. 정부에서도 노인 기준을 현재 만 65세에서 만 70세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자동차 보험료 인상 불가피할 듯 가장 가깝게는 자동차 보험료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보험엔 사고로 상대방을 다치거나 숨지게 했을 경우 이를 보상하는 ‘대인배상’ 항목이 포함돼 있다. 이때 보험금은 상대방이 일할 수 있는 나이를 토대로 산정한다. 현행 표준약관에는 이 나이가 만 60세로 규정돼 있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조만간 표준약관 개정을 논의할 예정이다. 보험개발원은 대인배상액 산정 시 일할 수 있는 나이를 만 65세로 높일 경우 자동차 보험금 지출이 연간 1250억 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라 인상될 자동차 보험료는 약 1.2%포인트 수준이다. 화재배상책임 등도 같은 이유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단, 개인연금보험은 계약 당시 약관이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번 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만 60세부터 보험금을 받기로 계약했다면 기존 가입자가 동의하지 않는 한 수령 시점을 늦출 수 없다는 얘기다.○ 노인 기준 상향 조정 탄력 받나 이번 판결은 정부가 시동을 건 노인연령 상향 논의에도 불을 지필 것으로 보인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워크숍에서 “노인 연령 기준을 현행 만 65세에서 만 70세로 단계적으로 높이는 것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6년 초고령사회(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 진입에 대비해 생산가능인구(현재 만 15∼64세)를 늘려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다. 정부는 노인 연령을 만 70세로 올리면 2040년 생산가능인구가 2943만 명에서 3367만 명으로 424만 명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인 연령 기준은 복지 혜택과 직결된다. 정부 복지포털 ‘복지로’에 따르면 노인 연령과 관련된 복지 서비스는 총 199종에 이른다. 기초연금(월 25만 원) 수급과 지하철 무료 이용, 장기요양보험 적용,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무료 접종 등 대다수 제도가 만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다. 정부는 급격한 노인연령 상향은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보고 단계적인 접근법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노인 연령 기준을 일률적으로 올리는 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송준헌 저출산위 미래기획팀장은 “박 장관의 주문처럼 노인 기준을 일률적으로 올리는 방식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개개인의 경제 상황과 욕구를 기반으로 연령 기준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수령 시점도 영향 받나 국민연금 수령 시점은 노인 연령 기준이 거론될 때마다 불거지는 ‘뜨거운 감자’다. 지난해 8월 국민연금 제도개선위원회는 국민연금 수령 시점을 2043년부터 만 67세로 늦추는 방안을 권고했다가 거센 반대 여론에 부닥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내가 보기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진화했을 정도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공개한 국민연금 제도 개편안에서 수령 시점을 늦추는 내용을 뺐다. 20, 30대는 이날 대법원 판결에 대해 “국민연금 수령 시점도 늦추는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 노인 연령 기준을 올리면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도 현행 만 62세(2033년에 만 65세로 상향 예정)에서 만 70세 이후로 늦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정부나 국회가 당장 국민연금 수령 시점을 늦추자고 나설 가능성은 낮다. 다만 연금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적 저항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2057년으로 예상된 기금 고갈을 늦추려면 연금 수령 시점을 늦추는 것 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과 독일은 10년 내에 국민연금 수령 시점을 만 67세로 늦추는 데 합의한 상태다. 덴마크는 2030년부터 수령 시점을 만 68세로 미루기로 했다.조건희 becom@donga.com·김형민 기자}

    • 201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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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머니에 손 넣고 걷다가 꽈당… “롱패딩 입을 때 낙상 사고 조심하세요”

    곧 새 학기가 시작된다. 개학과 개강을 앞둔 학생들이 새 학기에 입을 옷이나 가방을 준비하느라 분주할 때다. 하지만 잘못된 패션이 각종 근골격계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 임한빛 대전 자생한방병원장의 조언을 토대로 ‘주의해야 할 패션 아이템’을 알아봤다. 3월엔 꽃샘추위가 잦다. 올겨울 큰 인기를 모은 롱패딩(일명 ‘김말이’) 점퍼는 보온 효과가 뛰어나 새 학기 등굣길에도 자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말이 점퍼는 통상 무릎까지 내려와 착용 시 자유롭게 걷지 못한다. 계단이나 내리막길에서 발을 헛디디면 타박상은 물론이고 골절이나 인대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낙상 위험을 줄이려면 점퍼의 아래쪽 지퍼나 단추를 풀어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는 게 좋다. 주머니에서 손을 넣은 채 빙판길을 걷는 건 특히 피해야 한다. 점퍼의 부피가 커 움직임이 둔한 상태에서 자칫 낙상 사고를 당할 수 있다. 만약 가벼운 낙상 사고를 당했다면 다친 부위에 얼음주머니를 10∼20분 대고 있으면 좋다. 부기와 열감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다. 주의해야 할 또 하나의 패션 아이템은 스키니 청바지와 압박 스타킹 등 몸에 딱 달라붙는 이른바 ‘슬림핏’ 의류다. 이런 옷은 혈액 순환을 방해해 다리 혈관이 튀어나오는 하지정맥류를 일으킬 수 있다. 몸속 장기에 압박이 전달돼 호흡과 영양 흡수, 소변 배출까지 방해한다. 변비나 방광염 등 신진대사 이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척추 옆굽음증(측만증) 등을 앓고 있다면 몸을 조이는 의상은 요통이나 신경통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뒤로 메는 가방(백팩)도 마찬가지다. 무거운 가방을 오래 메면 무게중심이 뒤로 쏠려 목을 앞으로 빼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는 본래 C자형인 목뼈의 굴곡을 일자형이나 ‘거북형’으로 바꾼다. 몸무게의 10% 수준인 백팩을 10분만 메고 있어도 척추가 평소보다 33% 더 눌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임 원장은 “가방이 무거워 부담이 되면 작은 캐리어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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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훌륭한 선배 잃어 가슴 먹먹해”…응급의학과 전공의 꿈꾸는 윤한덕 후배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50)이 외상센터 관련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 동구 전남대 의대를 찾았던 2009년 가을의 일이다. 이 교수는 그곳에서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51)과 마주쳤다. 전남대 의대 출신인 윤 센터장은 바쁜 일정을 쪼개 심포지엄 발표자로서 모교를 방문했다. 윤 센터장은 자기 발표가 끝나자마자 가방을 둘러매고 강당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음은 당시 윤 센터장을 따라나섰던 이 교수가 자신의 책 ‘골든아워’에서 회상한 모습이다. 윤한덕은 망설임 없이 한 강의실로 들어섰다.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학부 강의실 뒤편이었고, 강의실은 비어 있었다. 그는 교단 쪽으로 천천히 내려가며 양측에 계단식으로 놓여 있는 책상들을 손으로 가볍게 쓸며 천천히 내려갔다. ―내가 말이야, 여기서 공부했었어. 그렇게 말하며 돌아보는 윤한덕의 표정이 어린 학생같이 상기되었다. ―여기서 강의 받을 때는 말이야, 이 답답한 강의실을 벗어나서 졸업만 하면 의사로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지. (중략) 오래전 이곳에 앉아 강의를 듣고 밤을 새우던 날들을 더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몰아세우던 윤한덕은 거기에 없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순수한 열의를 가진 젊은 의학도의 뒷모습이었다. (이국종 ‘골든아워’ 1권) 윤 센터장과 함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1호 전공의’로 동문수학한 허탁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56)는 “윤 센터장이 과로로 쓰러질 정도로 일에 시달리면서도 시간을 아껴 추억에 잠겼던 그 강의실이 바로 환자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헌신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윤 센터장이 젊은 의학도 시절 배운 것이 응급의료 체계 개선에 투신하는 계기이자 밑거름이 됐다는 얘기다. 윤 센터장은 설 연휴에도 퇴근하지 않고 일하다가 4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자신의 집무실에서 앉은 자세로 숨진 채 발견됐다. 11일 기자가 찾은 전남대 의대 본과 4학년 강의실은 이 교수가 묘사한대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계단식 강의실이었다. 이곳에선 윤 센터장의 후배인 전남대 의대 본과 3학년 학생 40여 명이 신민호 예방의학과 교수로부터 감염병 예방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의대생은 겨울방학에도 실습을 위해 학교나 병원에 나온다. 의대생 홍성민 씨(24)는 “윤한덕 선배가 바로 이 강의실에서 생각에 잠기곤 했다는 내용을 책에서 읽고 강의실에 들어올 때마다 기분이 새로웠는데, 훌륭한 선배를 잃어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의대 건물에서 나와 80m 가량 걸으니 윤 센터장이 전공의와 임상강사(펠로)를 거친 전남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가 나왔다. 응급실은 이날도 분주했다. 일반 응급환자 병상 41개가 가득 찬 것은 물론이고, 병상을 찾지 못한 환자 15명이 복도의 간이병상에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 예진실에 앉아 수액을 맞는 환자도 10명 이상이었다. 응급실 밖에선 구급차 6대가 새로운 환자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허 교수에 따르면 윤 센터장이 근무했던 1990년대 후반엔 응급실의 상황이 이보다 심각했다고 한다. 간이 병상조차 부족해 바닥에 매트리스를 깐 채 환자를 눕혀놓고 돌봐야 했다. 바쁘게 달려가던 의료진이 환자의 다리를 밟는 일까지 종종 벌어졌다. 중증 환자와 경증 환자를 구분하는 체계도 없었다. 병상에 앉은 채 자장면을 배달 시켜 먹는 경증 환자 옆에서 중환자가 심폐소생술을 받아야 했다. 허 교수는 “그런 지옥 같은 풍경이 윤 센터장을 과로로 내몰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응급실 뒤편엔 전공의가 쓰는 당직실이 있었다. 제때 빨지 못해 목 때가 낀 가운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테이블은 먹다 남은 음료수 잔과 일회용 나무젓가락으로 어지러웠다. 냉장고엔 배달음식 쿠폰 스티커가 30개 이상 붙어있었다. 2층 침대도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끼니도 잠도 제대로 못 챙기는 전공의의 일상을 짐작케 한다. 윤 센터장의 뒤를 이어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선택한 한준호 씨(32)는 두 눈이 퀭하고 머리가 부스스했다. 한 씨는 수련의(인턴) 때 응급실 실습을 하며 ‘내가 가장 쓰임새 있을 만한 곳은 이곳’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동료 임종백 씨(36)는 응급의료에 헌신한 윤 센터장의 이야기를 접한 뒤 신기하게도 용기를 얻었다. “선배가 저렇게도 사셨는데, 내가 아무리 힘들다 한들 저것보다 고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한 씨도 임 씨도 윤 센터장을 만난 적이 없다. 윤 센터장이 중앙응급의료센터를 지킨다며 후배와의 모임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남대 의대 교정엔 윤 센터장의 추억이 어린 장소가 여럿 있었다. 윤 센터장이 자주 들른 의대 도서관 ‘명학(鳴學)’회관의 이름은 “배움의 소리를 울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윤 센터장은 공부가 힘들다며 “사실은 ‘울면서 배운다’는 뜻 아니냐”는 농담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가 바라보며 자주 마음을 다지곤 했던 8층 건물 높이의 느티나무 ‘천년완골(千年頑骨·오랫동안 완고하게 기개를 떨쳐 나아가라는 뜻)’도 건재했다. 윤 센터장이 봉사 동아리 ‘Y회’에서 활동한 학생회관 건물도 그대로다. 허 교수는 전남대 의대 교정에 윤 센터장을 기리기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 센터장의 후배들이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공부하고,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는 것을 배우길 바란다는 것이다. 전남대 의대 동창회(062-220-4019)는 윤 센터장의 유가족을 후원하고 추모사업을 벌이기 위해 추모기념회를 구성했다.광주=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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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해 온천서 ‘레지오넬라균’ 검출…3명 폐렴 증상

    지난달 강원지역 한 온천을 이용한 노인 여성 3명이 레지오넬라균에 감염됐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달 7일 강원 동해시 컨벤션보양온천을 이용한 A 씨(69·여)와 같은 달 11일 이 온천을 찾은 B 씨(83·여) 등 3명이 레지오넬라균에 의한 폐렴 증상을 보였다고 14일 밝혔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용한 온천 욕조수에선 레지오넬라균이 검출됐다. 보건당국은 이 온천을 소독 조치한 뒤 당분간 손님을 받지 않도록 했다. 레지오넬라균은 주로 대형 건물의 냉각탑수(물탱크)나 목욕탕, 분수, 수영장 등에서 증식한다. 균에 오염된 물이 호흡기로 들어가면 폐렴이나 발열, 복통 등을 일으킨다. 환자 중 10%가 사망에 이른다. 국내 환자는 2014년 30명에서 지난해 296명으로 증가했다. 정부는 7월부터 목욕장 물의 염소 소독 기준을 강화할 예정이다. 조건희기자 becom@donga.com}

    • 201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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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전히 심전도 못재는 병원 응급구조사

    “벌에 쏘여 과민성 쇼크로 119를 불러도 치료제를 맞으려면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있어야 한다.” 설을 하루 앞두고 과로로 숨진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51)이 지난해 10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119구급대나 응급실에서 활동하는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가 혈압 측정 등 14가지로 제한된 탓에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윤 센터장은 8024자 분량의 페이스북 글에서 “센터장이 아닌, 언제든 응급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간청한다”며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를 넓혀 달라고 호소했다. 지난해 말 119구급대나 의료기관, 사설 구급차 업체에서 활동하는 국내 응급구조사는 2만1643명이다. 이 중 80.8%인 1만7487명이 119구급대원이다. 정부는 다음 달부터 시범사업을 거쳐 구급대원의 업무 범위를 넓혀 주기로 했다.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될 불안을 안고 환자를 살려야 하는 구급대원의 고충을 다룬 동아일보 보도(지난해 11월 19일자 A1면, 20일자 A1면 참조)에 따른 것이다. 반면 응급실이나 사설 구급차 업체 소속인 응급구조사 4156명에 대한 업무 규제는 그대로다. 응급실 일손이 아무리 부족해도 이들은 심전도를 직접 잴 수 없다. 전극을 환자의 가슴에 붙이는 일은 할 수 있지만 동작 버튼은 의사가 와서 직접 눌러야 한다. 저혈당 환자에게 포도당 주사를 놓을 순 있지만 혈당을 측정하는 건 위법이다. 13일 서울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응급의료체계 고도화에 따른 응급구조사의 역할 및 업무 범위 개정을 위한 토론회’에선 이런 현실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당초 이날 토론회에는 윤한덕 센터장이 토론자로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를 대신해 토론회에 나온 윤순영 중앙응급의료센터 재난응급의료상황실장은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옮길 때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도 동승한 응급구조사가 전문의약품 투약량을 늘릴 수 없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선화 한국생활안전연합 공동대표는 “병원 안이든 밖이든 환자의 생명을 중심에 두고 업무 범위 개정을 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객석을 가득 메운 응급구조학과 학생 500여 명 중 일부는 “응급구조사는 진료보조사가 아닙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병원 내 일자리를 두고 응급구조사와 경쟁하는 다른 직역 단체들은 반대 의견을 냈다. 정은희 대한간호협회 병원응급간호사회장은 “훈련이 부족한 인력이 배치되면 응급환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업무 범위 확대는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호사가 간호대를 나와야 하듯 1급 응급구조사 역시 3, 4년제 대학 응급구조학과를 나오거나 2급 응급구조사로 3년 이상 일해야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심전도 측정이 가능한 임상병리사를 대표해 참석한 안영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임상생리검사학회장은 “응급구조사의 심전도 측정은 구급차 등 병원 밖에서만 허용하고, 응급실엔 임상병리사가 상주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는 뚜렷한 결론 없이 끝났다. 토론회장 밖 복도에 마련된 윤 센터장의 사진 옆에는 그의 페이스북 글 일부가 적혀 있었다. “어쩌면 (다른 직역 단체) 여러분의 가족이 어느 순간 응급구조사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환자를 돌보는 숭고한 직업을 가진 분들로서 가식 없는 논의의 장에서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실 거라고 믿습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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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쪽잠 자던 간이침대, 전하지 못한 선물…故 윤한덕 집무실의 마지막 모습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집무실 모습이 13일 공개됐다. 국립중앙의료원은 그동안 집무실 책상에 앉은 자세로 숨진 윤 센터장을 처음 발견한 그의 부인이 괴로운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 공개를 미뤄왔다. 윤 센터장의 유족은 이날 “사진을 공개해도 괜찮다”는 뜻을 의료원에 전했다고 한다. 사진은 12일 촬영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윤 센터장의 간이침대다. 윤 센터장은 평일엔 거의 집에 들어가지 않고 이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업무에 몰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센터장을 추모하며 “사무실 한편에 오도카니 남은 주인 잃은 남루한 간이침대가 우리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고 했다. 침대 옆 금색 보자기로 싼 물품은 설에 가족에게 가져다줄 선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윤 센터장은 설을 하루 앞둔 4일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 선물은 전달되지 않았다. 서랍장 위에 놓인 닥터헬기 모형은 이르면 5월 이국종 교수가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 도입할 예정인 대형 닥터헬기와 비슷한 기종이다. 국내 닥터헬기 도입을 주도한 윤 센터장은 현재 운항 중인 중소형 기종 외에 대형 기종이 필요하다고 보고 모형을 구해 집무실에 놓아두었다고 한다. 책상에는 책과 필기구가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컴퓨터 모니터 옆에는 대용량 멀티 비타민도 있었다. 책상에 놓인 책 ‘알 쿡북(R Cookbook)’은 응급의료 빅데이터 분석을 위해 최근 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책상에 놓인 국화꽃은 추모객이 집무실 문 앞에 가져다 놓은 것을 옮긴 것이다. 의료원 측은 윤 센터장의 집무실을 그대로 보존해 후배 의사와 시민들을 위한 기념관으로 유지할지 검토 중이다. 1958년 중앙의료원 개원 당시 유엔에서 파견 나온 의사와 가족들의 숙소로 지어진 윤 센터장의 집무실은 4평 남짓 크기다. 조건희기자 becom@donga.com}

    • 201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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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경증 환자 넘치는 응급실… ‘6시간 룰’이 눌러앉기 부추긴다

    “다른 증상은 없고, 두드러기 나신 게 전부죠?” 10일 낮 12시 40분경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가 침착하게 증상을 되묻자 40대 환자 A 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그렇다니까! 어제 먹은 케이크가 잘못됐나 봐.” A 씨는 별다른 지병도 없었고 팔에 난 두드러기는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경미했지만 “어서 병상에 눕혀 달라”고 재촉했다. 이 응급실은 중증 응급환자를 위해 고가의 장비를 갖춘 권역응급의료센터였지만 이날 이곳을 찾은 환자 18명 중 5명은 경증 환자였다.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51)이 마지막 순간까지 고심했던 건 경증 환자가 응급실 병상의 72.3%를 차지하는 바람에 급박한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가 거리를 헤매다 숨지는 현실이었다. 이 병원에선 전날 저녁 경증 환자들이 병상을 점령한 탓에 중증 환자 20여 명이 예진실에서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간호사 채모 씨는 “더 급한 환자를 위해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면 난동을 부리는 경증 환자가 매일 6, 7명은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응급실 체류 늘리는 ‘6시간 룰’ 손봐야 전문가들은 경증 환자가 응급실에 북적이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이른바 ‘6시간 룰’을 꼽았다. 이는 응급실에서 6시간 이상 체류하면 외래가 아닌 입원으로 분류돼 건강보험 진료비 중 환자가 부담하는 비율을 20%로 낮춰주는 규정이다. 진료비가 100만 원이라면 응급실에 5시간 59분간 머무른 환자는 일반 본인부담률(50∼100%)이 적용돼 50만∼100만 원을 내야 하지만, 6시간 이상 눌러앉으면 20만 원만 내면 된다. 보건복지부는 대형병원의 응급환자 과밀도를 낮추겠다며 2016년 1월부터 응급환자 분류등급(KTAS) 5개 중 4, 5급에 해당하는 비응급 환자에겐 진료 시간과 상관없이 본인부담률을 50∼100%로 무겁게 적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 대책이 적용되는 곳이 전체 응급실 517곳 중 권역 및 지역응급의료센터 153곳(29.6%)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규모가 작은 지역응급의료기관 등 364곳(70.4%)에선 여전히 의료진이 ‘치료가 끝났으니 비켜 달라’고 요청해도 버티는 환자가 이득을 보는 구조다. 일부 육아 및 환자 커뮤니티에선 이를 ‘응급실 저렴하게 이용하는 꿀팁’으로 공유하고 있다. 비응급 환자가 응급실에 들르면 진료비와 별개로 ‘응급의료관리료’ 2만∼5만 원이 붙는다. 정부는 이 돈을 실손의료보험으로도 보장할 수 없도록 했지만, 금지 대상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42곳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2015년 12월 31일 이전에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해외 선진국은 국내와 상황이 판이하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은 기본적으로 응급실에 가려면 구급차를 불러야 해 스스로 걸을 수 있는 경증 환자가 이용할 수 있는 응급실이 극히 드물다. 미국의 한 교민 유튜버는 최근 응급실에서 6시간 진료를 받은 뒤 각종 검사비에 구급차 이용료까지 더한 총 1만5000달러(약 1686만 원)짜리 청구서를 받았다는 동영상을 올려 화제가 됐다. 허윤정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평가연구소장은 “환자가 ‘진료비 폭탄’을 맞는 사례는 없어야겠지만 경증으로 응급실을 찾는 걸 더 어렵게 만들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응급 상담전화-‘달빛 보건소’ 활성화해야 응급실 의료진은 경증 환자 대다수가 ‘어쩔 수 없이’ 응급실을 찾는다고 믿고 있다. 일반인은 자신의 상태가 중증인지, 몇 시간 참았다가 다음 날 동네 의원에 들러도 되는 정도인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응급 상담전화 ‘1339’를 1998년 7월 도입했다. 하지만 긴급전화가 너무 다양해 헛갈린다는 지적이 나오자 2012년 6월에 1339를 없애고 상담 기능을 119에 통합했다. 문제는 119가 응급 상담을 해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고, 전화를 걸어도 상담원의 의학 전문성이 낮다 보니 제대로 된 상담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상담 기능이 구급·구조대를 신속히 출동시켜야 하는 119의 본질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선진국처럼 119와 응급 상담전화를 다시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은 긴급출동 요청 전화와 별개로 환자의 상태를 원격으로 확인해 적합한 응급실을 찾아주는 상담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또 미국과 캐나다는 야간 진료 클리닉이 활성화돼 있어 불필요하게 응급실에 들를 필요가 적다. 영국은 야간 및 휴일 진료 서비스를 공공의료의 개념으로 제공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17개 시도가 야간 및 휴일 진료를 해주는 이른바 ‘달빛 보건소’를 한 곳씩만 시범 운영해 봐도 응급 환자 분산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조건희 becom@donga.com·박성민 기자}

    • 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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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윤한덕 센터장, 국립의료원에 닥터헬기장 만들기 꿈꿨다”

    “이게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꿈이었어요. 서울 한복판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에 응급환자 전용 헬기(닥터헬기)가 자유롭게 뜨고 내릴 수 있는 헬기장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외상외과 교수)이 10일 윤 센터장 영결식에 참석한 후 국립중앙의료원 내 잔디밭을 가리키며 손가락으로 크게 알파벳 ‘H’를 그렸다. 윤 센터장의 집무실이 보이는 약 180m² 넓이의 잔디밭이었다. ‘H’는 헬기 이착륙장의 표지이다. 이 교수는 윤 센터장의 영결식을 치른 뒤에도 한동안 의료원을 떠나지 못하다가 동아일보 기자에게 입을 열었다. 윤 센터장이 2013년 닥터헬기 도입에 앞장서고도 정작 국내 응급실 517곳과 권역외상센터 13곳을 총괄하는 중앙응급의료센터엔 헬기장이 없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했다는 얘기였다. 윤 센터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해 헬기장이 부족한 현실을 증언하기도 했다. 2003년 이 교수가 소음 민원을 무릅쓰고 1만2000원짜리 흰색 페인트를 사다가 직접 경기 수원시 아주대 의대 건물 앞 공터에 ‘H’ 마크를 그린 얘기는 유명하다. 이 교수는 “윤 센터장은 내가 그렇게 날뛸 수 있도록 어둠 속에서 뒷받침을 해주면서도 정작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는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국립중앙의료원은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로부터 약 3km밖에 떨어지지 않아 그 하늘이 비행금지 구역인 ‘P-73 A 공역’이다. 닥터헬기는 ‘긴급항공기’로 분류돼 운항 직전 통보하면 가로지를 수 있지만 아직 전례가 없다고 한다. 이 교수는 윤 센터장의 꿈을 사후에라도 이루기 위해 이곳에 헬기장을 지을 수 있게 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하고, 이르면 올해 5월 도입되는 아주대병원 닥터헬기의 첫 훈련비행 목적지를 그 헬기장으로 잡을 계획까지 세웠다. 이 교수는 뻥 뚫린 하늘을 가리키며 “잔디밭 위에 전선도 없다. 영국 런던 시내에선 닥터헬기가 지은 지 수백 년 된 건물 사이로 날고, 이보다 훨씬 좁은 곳에서 자유롭게 뜨고 내린다. 그게 국민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진짜 선진국이다”라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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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빈 응급실 찾느라 직접 전화 30통 돌린 응급센터장

    지난달 초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재난응급의료상황실에서 당직 근무를 하던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51)은 부산의 한 병원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70대 여성 환자가 괴사성 근막염으로 쇼크에 빠졌는데 응급실에 빈자리가 없어 치료할 수 없다는 전화였다. 윤 센터장이 부산과 경남, 수도권에 이르기까지 30곳이 넘는 응급실에 직접 전화를 걸었지만 “우리도 빈자리가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2시간여 만에 부산의 응급실에 자리가 생겨 환자를 옮겼지만 상태가 심하게 나빠진 후였다. 과로사로 추정되는 윤 센터장의 희생 뒤에는 이처럼 응급실에 자리가 없어서 환자가 복도에 방치되거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轉院)되다가 골든타임을 놓치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응급의료 현실이 있었다. 환자가 처음 도착한 응급실이 치료를 마치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옮긴 사례는 2016년 1365건에서 지난해 5188건으로 2년 만에 3.8배로 급증했다. 윤 센터장이 설 연휴가 시작된 1일 저녁에도 귀가하지 않고 국립중앙의료원에 남았던 이유도 전국 응급실 532곳의 전원 요청을 조정하는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이 원활하게 운영되는지 확인하고 책임지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4일 그가 숨진 채 발견된 책상 위엔 응급의료체계 개선 방안이 담긴 자료 등이 놓여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매달리느라 지난달 말 5년여 만에 처음으로 가려 했던 가족여행도 취소했다. 윤 센터장의 부인은 이날 “남편은 평소 집에 못 들어오는 때가 많았지만 불평 한번 안 했던 분이었다”고 심경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윤 센터장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해 달라고 보건복지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경찰은 “심장동맥 경화로 인한 급성 심장사”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부검 결과가 나왔다고 이날 밝혔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박성민 기자}

    • 201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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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은 몸 3개 머리 2개였어야…내일은 몇개 필요할까” 故윤한덕 센터장 SNS 글

    7일 오후 3시경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의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전국 병원과 119구급대에서 “응급실이 부족하다”는 다급한 전화가 줄을 이었다. ‘골든타임 확보’의 최일선에 선 당직 의료진 6명은 검은 상복(喪服)을 입은 채 민첩하게 응급실의 빈 병상을 연결했다. 이들에겐 전쟁 같은 이 업무가 일상이다. 이곳은 설 연휴에 퇴근을 미루고 응급상황을 챙기다 쓰러져 설 전날인 4일 숨진 채로 발견된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51)이 생전에 응급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악전고투한 공간이다.○ 전국 응급실 ‘비명’ 집중되는 상황실 윤 센터장은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에게 종종 “응급실이 지옥 같다”고 토로했다. 응급실에 자리가 없어서 환자가 다른 병원을 전전하다가 숨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은 열악한 국내 응급의료 현실이 집약된, 전국 응급실의 비명이 집중되는 곳이다.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은 윤 센터장의 빈소가 차려진 이날에도 변함없이 북새통 같은 분위기였다. 한 당직 의료진이 “서울 ○○병원에 ICU(중환자실)가 없대요”라고 외치자 다른 의료진이 곧장 상황판에 뜬 각 병원의 빈 병상을 살펴보더니 인근 병원에 연락했다. “바이탈(생체 신호)은 괜찮은데 외과적인 관찰이 필요해서 그러니 받아주세요”라며 읍소에 가까운 상황 설명이 이어졌다. 이곳 근무자들은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근무자의 일 처리 속도가 환자의 생명을 살릴 골든타임 확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식사는 고사하고 잠시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가도 급한 호출을 받고 돌아오기 일쑤다. 상황실에서 근무하는 응급구조사 김모 씨(30·여)는 “담당했던 응급 환자가 응급실에 끝내 자리를 못 잡고 숨지면 정신적 압박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윤 센터장은 2017년 10월 추석과 개천절, 한글날로 이어지는 열흘간의 연휴를 한 달여 앞두고 페이스북에 “연휴가 열흘! 응급의료는 그것만으로도 재난이다!”라고 썼다. 대다수 병원이 문을 닫는 명절 연휴,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응급실 빈자리가 부족해져 환자의 골든타임을 놓칠까 봐 마음을 졸인다는 뜻이었다. 이 글을 올린 지 며칠 뒤 윤 센터장은 “오늘은 몸이 세 개, 머리가 두 개였어야 했다. 내일은 몇 개가 필요할까?”라며 응급의료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페이스북에서 한탄했다.○ 응급실 방문 4명 중 3명은 비응급 환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급히 진료를 보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환자가 응급실 병상의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연구소가 2016년에 응급의료센터를 찾은 환자 4만6558명을 응급도에 따라 다섯 단계로 구분한 결과 비응급 환자에 해당하는 4, 5급 환자가 3만3663명으로 전체의 72.3%를 차지했다. 실제로 5급 환자 1만1967명 중 91.2%는 간단한 처치만 받고 퇴원했다. 응급도가 가장 높은 1급 환자는 341명(0.7%)에 불과했다. 이는 중증 응급 환자가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2017년 급성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환자 1222명이 처음 찾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통계도 있다. 응급실 의료진은 경증 환자를 상대하느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격무에 시달린다. 1일 가천대 길병원에선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레지던트) A 씨가 당직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경증 환자가 응급실 병상을 차지하는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야간에 외래 진료가 가능한 동네 병·의원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녁 시간 이후 발생한 경증 환자 대다수는 달리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응급실을 찾기 때문이다. 허윤정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평가연구소장은 “늦은 저녁까지 영업하는 대형마트나 영화관에 세제 혜택을 주고 내과나 소아과 의원을 영업할 수 있도록 하면 경증 환자는 편리하게 진료를 보고, 응급실은 그만큼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 경영진이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응급실 및 중환자실 운영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는 일반 병실에 비해 투입되는 인력 및 장비 대비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 병원에 적자를 감수하고 병상을 늘리라고 요구하기 어려운 구조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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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대통령 “남루한 간이침대 가슴 아파” 이국종 “내가 의지해 짐 됐을것…미안”

    “미안해요.” 7일 오후 9시경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을 찾은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권역외상센터장)는 윤 센터장의 아들 형찬 군(23)의 손을 맞잡고 고개를 떨궜다. 이어 이 교수는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윤 센터장에게 의지했다”며 “이게 다 윤 센터장에게 짐이 됐을 것”이라며 미안함을 나타냈다. 이 교수는 2주 전쯤 한 회의에서 윤 센터장을 만난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당시 윤 센터장은 안색이 좋지 않은 이 교수에게 “건강을 챙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이 교수는 며칠 뒤 콩팥(신장) 결석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았다. 이 교수는 “윤 센터장이 의지를 갖고 버텨줬기에 우리나라 응급의료가 이만큼 온 건데, 앞으로 막막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책 ‘골든아워’에서 고인을 두고 “한국의 응급의료 체계에 대한 생각 이외에는 어떤 다른 것도 머릿속에 넣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적었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이렇게 소개했다. “2008년 겨울, 윤 센터장 찾아갔을 때 ‘지금 이 선생이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동안 아주대병원에 중증외상 환자가 갑자기 오면 누가 수술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냉소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신기하게도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꼈다.” 동료들은 윤 센터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허망한 표정으로 빈소를 지켰다. 윤 센터장과 1994년 수련의 생활을 함께한 허탁 전남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고인은 응급의료 분야에 발을 디딘 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처럼 일해 왔다”며 “우리나라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세 발자국 앞을 그리며 정책을 준비했다”고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충혈된 눈으로 빈소를 찾은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은 “응급환자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남다른 의사였다”며 고인을 회고했다. 한 동료 의사는 “의료계의 가장 험지를 지키다가 죽어서야 존경을 받는다”며 안타까워했다. 간이침대를 놓고 밤을 새우며 격무를 이어간 고인의 집무실 앞에는 한 시민이 남긴 꽃다발과 커피가 놓여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윤 센터장의 죽음을 ‘순직’으로 표현하며 “숭고한 정신 잊지 않겠다”는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문 대통령은 “설 연휴에도 고인에게는 자신과 가족보다 응급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먼저였다”며 “사무실 한편에 오도카니 남은 주인 잃은 남루한 간이침대가 우리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고 애도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빈소를 찾아 “응급의료 체계를 발전시켜 사회안전망이 강화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빈소에서 “의료진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잘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고인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국립중앙의료원도 윤 센터장의 국가유공자 지정을 복지부에 건의하기로 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건희 기자}

    • 201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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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윤한덕 센터장 추모 물결…文대통령도 “주인 잃은 남루한 간이침대 가슴 아파”

    “미안하다.” 7일 오후 9시경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을 찾은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권역외상센터장)는 윤 센터장의 아들 형찬 군(23)의 손을 맞잡고 고개를 떨궜다. 이어 이 교수는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윤 센터장에게 의지했다”며 “이게 다 윤 센터장에게 짐이 됐을 것”이라며 미안함을 나타냈다. 이 교수는 2주 전쯤 한 회의에서 윤 센터장을 만난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당시 윤 센터장은 안색이 좋지 않은 이 교수에게 “건강을 챙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이 교수는 며칠 뒤 콩팥(신장) 결석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았다. 이 교수는 “윤 센터장이 의지를 갖고 버텨줬기에 우리나라 응급의료가 이만큼 온 건데, 앞으로 막막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책 ‘골든아워’에서 고인을 두고 “한국의 응급의료 체계에 대한 생각 이외에는 어떤 다른 것도 머릿속에 넣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적었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이렇게 소개했다. “2008년 겨울, 윤 센터장 찾아갔을 때 ‘지금 이 선생이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동안 아주대병원에 중증외상 환자가 갑자기 오면 누가 수술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냉소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신기하게도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꼈다.” 동료들은 윤 센터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허망한 표정으로 빈소를 지켰다. 윤 센터장과 1994년 수련의 생활을 함께한 허탁 전남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고인은 응급의료 분야에 발을 디딘 뒤 일제시대 독립투사처럼 일해 왔다”며 “우리나라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세 발자국 앞을 그리며 정책을 준비했다”고 고인을 업적을 기렸다. 충혈된 눈으로 빈소를 찾은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은 “응급환자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남다른 의사였다”며 고인을 회고했다. 한 동료 의사는 “의료계의 가장 험지를 지키다가 죽어서야 존경을 받는다”며 안타까워했다. 간이침대를 놓고 밤을 새우며 격무를 이어간 고인의 집무실 앞에는 한 시민이 남긴 꽃다발과 커피가 놓여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윤 센터장의 죽음을 ‘순직’으로 표현하며 “숭고한 정신 잊지 않겠다”는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문 대통령은 “설 연휴에도 고인에게는 자신과 가족보다 응급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먼저였다”며 “사무실 한편에 오도카니 남은 주인 잃은 남루한 간이침대가 우리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고 애도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빈소를 찾아 “응급의료 체계를 발전시켜 사회안전망이 강화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빈소에서 “의료진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잘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고인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국립중앙의료원도 윤 센터장의 국가유공자 지정을 복지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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