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

김태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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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태언 기자입니다.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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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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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와 국적을 뛰어넘어 발견되는 ‘한국적이라는 느낌’, 그 근원은 무엇일까

    조선 후기, 한강변 압구정 동쪽에는 미상의 정자가 있었다. 1749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정자의 이름은 ‘숙몽정’. 한국화의 뿌리와도 같은 조선의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은 정자 뒤로 펼쳐진 기암절벽 풍경과 정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선비와 어린 아이를 그렸다. 지금은 없어진 이 정자는 정선의 그림 ‘숙몽정’(1700년대)으로 그 흔적을 짐작할 수 있다.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은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 전시장의 가장 초입에 ‘숙몽정’을 놓았다. ‘한국화의 개념과 한국화의 기반이 되는 전통이 사라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을 은유한 셈이다. 출품작은 크게 소장품과 대여품으로 나뉘어있다. 소장품은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1786~1856), 오원 장승업(1843~1897) 등 ‘고전’이라 칭해지는 예술가 24명의 작품 42점. 대여품은 ‘현대’라 불리는 동시대 작가 13명의 작품 69점이다. 한국적 재료나 소재를 작업에 이어가고 있는 작가들을 추렸다.독특한 점은 전시 구성이다. 한데 섞여 있는 이 작품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벽지 색이다. 전시의 주축이 되는 것은 회색 벽지다. 전시장은 툭툭 끊어진 회색 벽지와 그 사이로 다양한 색의 벽지들이 끼어있는 형식이다. ‘고전’ 작품은 회색 벽지에, ‘현대’ 작품이 그 사이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 측은 “소장품과 대여품을 섞어 진열하면서 과거 속에서 현재를, 현재 속에서 과거를 살피며 한국화의 정의를 고민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정선의 ‘숙몽정’에서 시작한 고전 작품들은 시대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서예의 필선이 두드러지는 김정희의 ‘사시묵죽도사폭병’(1840년대)과 실험적인 구도와 담채법이 특징인 장승업의 ‘화조도’(1860년대)를 선두로 그들의 영향을 받은 이들의 작품이 펼쳐진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고전도 변화를 겪는다. 소나무와 아홉 명의 선비를 그린 고희동의 ‘송하관류도’(1927년)에서 발견되는 작아진 글씨나 설산 풍경을 그린 박승무의 ‘설청계방’(1940년대)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장방형 비율이 대표적이다.변화의 속도는 2층 전시장에서부터 더 빨라진다. 김은호(1892~1979)의 ‘미인도’(1940년) 등으로 대표되는 채색화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화풍의 일본화에 영향을 받은 작가들은 1936년 ‘후소회’를 설립해 수묵산수화를 주로 그린 이상범(1897~1972)과 그의 제자들과 쌍벽을 이뤄갔다. 이 흐름은 1950년부터 한국화가들이 추상표현주의를 수용하면서 또 한번 큰 변화를 맞이한다. 서세옥(1929~2020)의 ‘춤추는 사람들’(1995년)이나 황창배(1947~2001)의 ‘새로 쓰는 선비론 삽화’ 시리즈(1997~1998년) 등은 단순한 선이 눈에 띈다.사실 시대 흐름에 따른 한국화의 변화 양상을 따라가기 쉬운 전시는 아니다. 분절된 회색 벽지 사이사이에 놓인 화려한 현대 작품들 때문이다. 마이클 잭슨의 모습을 한국화 구도로 그린 손동현의 ‘왕의 초상(P.Y.T)’(2008년), 불교 도상에서 모티브를 얻은 박그림의 ‘심호도’ 시리즈(2021~2022년) 등은 고전 작품처럼 담백함은 덜하지만 어딘지 친숙하다. 또 조선의 화가 윤두서와 정선의 그림을 재해석한 회화 ‘과거에 대한 고찰’(2021년)의 주인은 프랑스 출신 예술가 로랑 그라소(50)다. 시대와 국적을 뛰어넘어 발견되는 ‘한국적이라는 느낌’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전시는 내년 1월 8일까지. 5000~7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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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우리는 애도한다, 삶이 끝나도 관계는 지속되기에

    스위스 정신의학자 루트비히 빈스방거(1881∼1966)는 갓 스무 살이 된 장남을 잃었을 때 그 비통한 마음을 정신분석학 창시자인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에게 알렸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빈스방거를 이렇게 위로했다. “사별 뒤 극심한 슬픔은 언제나 끝이 납니다만, 그 후에 무엇으로도 고인을 대신할 수 없는 기나긴 날들이 이어집니다. 다른 무엇으로 대체해보려 해도 역시 고인과는 어딘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괜찮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고인에 대한 사랑을 유지해갈 수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골목에서 안타까운 생명들이 숨을 거뒀다. 그 어이없고 난데없는 희생을 목도하고 수많은 이들이 혼란에 빠졌다. 준비 없는 이별을 맞닥뜨린 유족과 주변인들은 그 비통함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연구위원인 저자는 3년간 세상을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족을 떠나보낸 유족들을 인터뷰했다. ‘애도 상담 전문가’로 활동하는 그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사인(死因)이나 처지는 다르지만 사별을 마주한 이들의 심정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남은 이들에게 한꺼번에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책감이다. 책에 등장하는 유족들은 대부분 고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례를 떠올리거나 자기 탓에 일찍 떠난 건 아닌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위기 상황 속 극도의 불안이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죄책감”이라며 “이러한 죄의식은 대개 비합리적인 것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현실 검증을 통해 완화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럴 때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시간을 갖고 ‘상실노트 쓰기’를 해보라고 저자는 추천한다. 글쓰기를 통해 고인과의 지난 시간을 추억하고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별한 이들이 경험하는 죄책감을 고인과의 화해에 대한 소망으로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짚어준다. 이때 중요한 점은 감정이 생생할 때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인과의 추억을 마주하며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은 기나긴 애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프로이트가 얘기했듯, 애도는 기나긴 날들이 이어지는 여정이다. “삶은 끝나도 관계는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별의 슬픔은 떠난 이와의 관계를 끝내버린다고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고인과의 관계가 죽음으로 인해 마무리됐다고 해버리면, 사별 뒤에 오래도록 고인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게 부정적인 편견이 덧씌워질 수 있다. 저자는 “고인과의 심리적 유대감은 제사나 추모 문화 등의 환경에 따라 유지되고 진화할 수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주변의 지지와 위로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사별을 겪은 이들은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다. 어떤 유족들은 세상에 대한 인식이나 가치에 대한 신념 같은 기존의 인식 체계가 붕괴되기도 한다. 특히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헤어짐일 경우 정신적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 견디는 것조차 힘든 이들이 거기에 얽매이지 않도록, 그 이후의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주변과 사회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슬픔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그 어떤 모멸도 받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 어느 때보다,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게 해주고 아픈 목소리를 들어주는 태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간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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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떠났지만 나는 다 울지 못하였습니다”…준비 없는 사별을 한 이들에게

    스위스 정신의학자 루트비히 빈스방거(1881~1966)는 갓 스무 살이 된 장남을 잃었을 때 그 비통한 마음을 정신분석학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에게 알렸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빈스방거를 이렇게 위로했다.“사별 뒤 극심한 슬픔은 언제나 끝이 납니다만, 그 후에 무엇으로도 고인을 대신할 수 없는 기나긴 날들이 이어집니다. 다른 무엇으로 대체해보려 해도 역시 고인과는 어딘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괜찮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고인에 대한 사랑을 유지해갈 수 있습니다.”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골목에서 안타까운 생명들이 숨을 거뒀다. 그 어이없고 난데없는 죽음을 목도하고 수많은 이들이 혼란에 빠졌다. 준비 없는 이별을 맞닥뜨린 유족과 주변인들은 그 비통함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신간 ‘코로나를 애도하다’의 저자인 양준석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연구위원은 3년 넘게 세상을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족을 떠나보낸 유족들을 인터뷰했다. ‘애도 상담 전문가’로 활동하는 그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사인(死因)이나 처지는 다르지만 사별을 마주한 이들의 심정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갑작스런 이별은 남은 이들에게 한꺼번에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책감이다. 책에 등장하는 유족들은 대부분 고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례를 떠올리거나 자기 탓에 일찍 떠난 건 아닌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위기 상황 속 극도의 불안이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죄책감”이라며 “이러한 죄의식은 대개 비합리적인 것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현실 검증을 통해 완화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이럴 때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시간을 갖고 ‘상실노트 쓰기’를 해보라고 저자는 추천한다. 글쓰기를 통해 고인과의 지난 시간을 추억하고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별한 이들이 경험하는 죄책감을 고인과의 화해에 대한 소망으로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짚어준다. 이때 중요한 점은 감정이 생생할 때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인과의 추억을 마주하며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은 기나긴 애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프로이트가 얘기했듯, 애도는 기나긴 날들이 이어지는 여정이다. “삶은 끝나도 관계는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별의 슬픔은 떠난 이와의 관계를 끝내버린다고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고인과의 관계가 죽음으로 인해 마무리됐다고 해버리면, 사별 뒤에 오래도록 고인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게 부정적인 편견이 덧씌워질 수 있다. 저자는 “고인과의 심리적 유대감은 제사나 추모문화 등의 환경에 따라 유지되고 진화할 수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주변의 지지와 위로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사별을 겪은 이들은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다. 어떤 유족들은 세상에 대한 인식이나 가치에 대한 신념 같은 기존의 인식 체계가 붕괴되기도 한다. 특히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헤어짐일 경우 정신적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 견디는 것조차 힘든 이들이 거기에 얽매이지 않도록, 그 이후의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주변과 사회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저자는 말한다. “슬픔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그 어떤 모멸도 받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 어느 때보다,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게 해주고 아픈 목소리를 들어주는 태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간이다.김태언기자 beborn@donga.com}

    •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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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 그늘 벗고… ‘온전한 나’로 일어선 女화가들

    “그의 아내가 아닌/나의 이름으로 서 있는 이곳/아직 낯설어/그의 그림이 아닌/나의 그림으로 채워진 이곳/그건 더 새로워….” 올해 9월 처음 선보인 창작뮤지컬 ‘라흐 헤스트’는 여성 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인 김향안(1916∼2004)의 삶을 재조명한 작품. 시인 이상(1910∼1937)과 화가 김환기(1913∼1974)라는 두 천재 거장의 부인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김향안 역시 자기만의 세계를 공고히 구축한 예술가였다. ‘라흐 헤스트’는 “예술은 남다”라는 프랑스말로,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는다”라는 김향안의 어록에서 따왔다. 과거부터 미술을 포함한 예술무대는 남성 중심으로 흘러갔다. 유명 화가의 부인은 그들을 뒷받침하는 조력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상당수는 독립적 정체성을 지닌 미술가들이었다. 최근 미술계에선 이들의 작품을 재조명하며 평가도 다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라온에서 2일 만난 류민자 작가(80)는 “고유한 한 명의 작가로 인정받고 싶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적 추상화의 대표주자였던 하인두(1930∼1989)의 부인인 그는 올해 6, 7월 이곳에서 한국화 등 50여 점을 선보인 개인전 ‘류민자’를 열었다. “한국 근현대 여성 작가들은 가사와 육아, 내조로 1인 3, 4역을 해야 했죠. 전업 작가는 꿈도 못 꿨어요. 물론 그게 당시엔 주어진 삶이었으니 후회는 없어요. 이 나이에도 붓을 들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죠.” 한국화가 안상철(1927∼1993)을 기리며 세운 안상철미술관이 최근 나희균 작가(90)를 소개하는 데 애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안상철의 부인인 그가 살아 있을 때 제대로 조명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 작가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1896∼1948)의 조카다. 나 작가의 큰딸인 안재혜 안상철미술관장은 “어머니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여기시는지 매일 식사하듯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1세대 조각가인 문신(1922∼1995)의 부인이자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명예관장인 최성숙 작가(76)는 요즘 잠잘 시간도 쪼개 쓴다. 동양화를 주로 그려온 최 작가는 “올해가 문신 탄생 100주년인 데다 프랑스에서 열린 한국작가 초대전에 제 작품도 출품해야 해 너무 바빴다. 지난달 31일부터 열린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 국회특별전’도 기획했다. 예술작업과 외부활동을 함께하는 게 참 힘들긴 하다”고 했다. 뒤늦게 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도 있다. 국내 1세대 행위예술가로 꼽히는 이건용 화백(80)의 부인 승연례 작가(73)는 2017년 첫 개인전을 가진 뒤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 9월 세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승 작가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결혼 뒤 가사에 집중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는 언제나 가득했는데, 갤러리 측에서 작품을 보고 요청해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필주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박래현(김기창 부인)과 박인경(이응노 부인) 등 화가의 부인은 한국 사회가 요구한 내조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예술을 고민한 당대의 화가였다”며 “유명 화가의 부인이란 편견 없이 작품만으로 제대로 평가를 받을 기회가 적었다”고 했다. 황규성 갤러리라온 대표도 “여성 원로 작가들은 작품보다 누군가의 부인이나 어머니로 정의되는 일이 많았다”며 “이젠 미술계도 그들을 다룬 전시는 물론이고 학술적인 연구도 본격적으로 진행해 정당한 지위를 찾아줄 때가 됐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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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름-어눌한 듯한 조각속에 철학을 심다

    웅장하거나 매끈하지는 않다. 오히려 어딘가 모르게 허름하고 어눌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하지만 그 거친 결 사이로 깊은 고민을 담아온 조각가들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30년 넘게 조각에 천착한 정현 작가(66)와 박미화 작가(65)가 그들이다. 서울 성북구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정 작가의 개인전 ‘시간의 초상: 정현’은 작품마다 철학적 사유가 진득하다. 대표적으로 ‘무제’(2022년)는 시커멓게 타버린 나무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무너지지 않는 형상이 인상적이다. 정 작가는 “2019년 발생한 강원 고성 산불 현장의 잿더미에서 건진 나무들”이라며 “시련을 겪은 것들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했다. 조각 및 설치 87점과 드로잉 등 110점으로 구성된 전시는 정 작가의 1980년대 작품부터 최신작까지를 망라했다. 대부분의 재료가 나무토막이나 아스팔트, 콘크리트, 잡석과 석탄이다. 작가는 “기교는 최소화하고 시간이 만들어놓은 물질의 상처와 아픔을 최대한 끌어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석고 작품도 인상적이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길쭉한 인간의 형상인 ‘무제’(1987년)나 거세게 표현된 인간의 얼굴인 ‘무제’(1998년)를 보면 “브론즈가 화장한 얼굴이라면 석고는 맨 얼굴”이란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 작가는 “많은 이들이 석고를 ‘과정의 재료’로 여기지만, 석고의 풋풋함이 좋다”고 했다.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스페이스3에서 다음 달 3일까지 열리는 박 작가의 개인전 ‘Lesser 더 적게’도 닮은 점이 많다. 박 작가도 버려진 목재 등을 이용해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에 애정 어린 시선을 둬왔다. 전시엔 그의 또 다른 도전이 돋보였다. 조각에서 흙은 주로 굽거나 칠해서 사용하는데, 박 작가는 젖은 흙으로 형상을 빚어 “날것인 상태로” 배치했다. 전시장을 길쭉하고 넓게 장식한 ‘지성소’와 ‘회랑’은 누워 있는 천사와 웅크린 양 등 무기력하면서도 왠지 눈이 가는 자그마한 존재들이 한데 모여 있다. 두 작품 모두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작업했다. 모두 13점을 선보인 이번 전시 작품들은 대부분 긁히고 파인 자국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박미화의 작업은 권력과 무지에 희생당한 존재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념하는 일”이라며 “존재를 연민으로 감싸는 애틋한 시선이 인상적이다”라고 평했다. 박 작가는 이번 전시작 대부분을 판매하지 않을 예정이다. 박 작가는 “지구에서 더 적게 자취를 남기고 싶다”며 “흙 조형들은 전시가 끝난 뒤 흙으로 되돌려 보내겠다. 이 역시 새로운 작업으로 재탄생될 것”이라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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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로잉은 더 이상 작품 연습용이 아니죠”

    ‘이것은 드로잉인가 회화인가.’ 서울 종로구 토포하우스에서 다음 달 13일까지 열리는 ‘긴 호흡: 다섯 작가의 드로잉’ 전시는 드로잉을 ‘대상의 윤곽을 채색 없이 선으로 그리는 것’이라고 여겼던 관람객의 생각을 흔들어 놓는다. 드로잉을 기본으로 하되 채색을 곁들였다. 원로 작가 윤동천(65), 정현(66), 곽남신(69), 오원배(69), 서용선(71)의 드로잉 총 25점을 선보이는 전시를 통해 변화하는 드로잉의 개념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 초입에 놓인 조각가 정현의 드로잉 6점은 비교적 익숙하다. 종이에 오일바 등으로 나무와 인간을 그렸는데, 거친 느낌을 풍긴다. 그는 서문에서 “내 감정이 가장 첫 번째로 표현되는 것이 드로잉”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 28일 만난 오 작가는 “더 이상 드로잉을 ‘작품의 밑바탕’ 혹은 ‘연습용’으로만 정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오 작가의 작품 ‘무제’(2022년)는 로봇 형상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채색을 곁들였다. 오 작가는 “드로잉이 회화보다는 단순하고 즉흥적인 요소를 갖고 있지만, 그 자체로도 작품으로 인정받는 추세”라고 했다. 곽 작가의 작품은 일반적인 ‘드로잉’ 개념과 거리가 더 멀다. 종이에 수채색연필로 작업한 ‘실루엣 놀이’(2019년)는 그림자까지 그려 멀리서 볼 땐 입체 작품처럼 보인다. 곽 작가는 “최근 물감을 쌓아가면서 화면을 구성하는 전통적 회화보다는 가볍고 단순한 회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드로잉적인 회화’가 탄생했다. 이 작업은 기존 회화보다 더 자유롭다”고 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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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핼러윈, 영어유치원-테마파크 통해 확산… MZ세대 놀이문화로

    한국에서 핼러윈은 문화·상업적으로 ‘만들어진 문화’다. 전문가들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유년 시절을 보낸 2000년대 초 영어 유치원과 학원에 원어민 강사 채용이 일반화되고 수업의 일환으로 핼러윈 파티가 정착되면서 핼러윈 문화가 확산됐다고 분석한다. 어릴 때부터 핼러윈 파티를 접한 MZ세대에게 핼러윈은 더 이상 미국 문화가 아니라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처럼 익숙한 문화가 됐다는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30일 “지금 10, 20대는 어린이집을 다니던 미취학 아동 때부터 원어민 강사와 함께 코스튬 플레이를 즐기며 핼러윈에 익숙해진 세대”라며 “성인이 된 지금도 이들에게 핼러윈은 자연스러운 문화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핼러윈 문화는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과 맞물리며 규모가 커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2000년대 초 국내 테마파크에서 핼러윈 축제를 기획하며 학원가에서 소규모 집단이 즐기던 파티에서 대규모 축제로 몸집을 키웠다”고 했다. 회사원 이하영 씨(28)는 “초등학생 때부터 가족과 놀이동산에 가서 핼러윈 퍼레이드를 접했다”며 “10월이 되면 음식점과 상점이 각종 핼러윈 이벤트를 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핼러윈을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핼러윈 문화에 익숙해진 MZ세대가 성인이 되면서 서울 용산구 이태원과 마포구 홍대입구역 일대 클럽에서 핼러윈을 마케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어린이가 있는 가족과 이웃들이 소규모로 즐기는 미국 핼러윈과 달리 한국의 핼러윈이 테마파크와 클럽을 중심으로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축제로 자리 잡은 배경이다. 소셜미디어도 핼러윈 문화가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독특한 복장을 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 뜨거운 관심을 받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한국의 핼러윈 문화는 코스튬 플레이를 한 사진을 SNS에 올리는 ‘인증샷’ 문화와 만나며 핼러윈 축제가 열리는 클럽 일대에 폭발적인 인파를 끌어들였다”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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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것은 드로잉인가 회화인가’…전통적 드로잉 개념 벗어난 5명의 원로 작가

    ‘이것은 드로잉인가 회화인가.’서울 종로구 토포하우스에서 다음달 13일까지 진행되는 ‘긴 호흡: 다섯 작가의 드로잉’ 전시의 첫 인상이다. 이곳에는 다섯 명의 국내 원로 작가 윤동천(65), 정현(66), 곽남신(69), 오원배(69), 서용선(71)의 드로잉 총 25점이 전시되고 있다.드로잉을 ‘대상의 윤곽을 채색 없이 선으로 그려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변화하고 있는 드로잉의 개념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 초입에 놓인 조각가 정현의 드로잉 6점은 비교적 익숙하다. 종이에 오일바 등으로 나무와 인간의 형상을 그렸는데, 거친 느낌을 풍긴다. 그는 서문에서 “내 감정들이 가장 첫 번째로 표현되는 것이 드로잉”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면, 드로잉이라기에는 생경한 작품들이 놓여있다.28일 전시장에서 만난 오 작가는 “더 이상 드로잉을 ‘작품의 밑바탕’ 혹은 ‘연습용’으로만 정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오 작가의 작품 ‘무제’(2022년)는 종이 위에 작업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로봇의 형상을 그려 넣고 채색까지 곁들여 ‘드로잉’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와는 결이 다르다. 오 작가는 “드로잉이 회화보다는 단순하고 즉흥적인 요소를 갖고 있지만, 그 자체로도 작품으로 인정받는 추세”라고 했다.곽 작가의 작품은 더욱 보편적인 ‘드로잉’ 개념과 멀다. 작품 ‘실루엣 놀이’(2019년)는 종이 위에 수채색 연필로 작업했는데, 그림자까지 그려 넣어 멀리서 볼 땐 입체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같은 날 만난 곽 작가는 “최근 물감을 쌓아가면서 화면을 구성하는 전통적 회화보다는 가볍고 단순한 회화를 추구했다. 그러다보니 ‘드로잉적인 회화’가 탄생했고, 이 작업은 기존 회화보다 더 자유스러움이 있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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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줄무늬, 중세시대엔 악마의 표식이었다?

    중세 유럽의 여러 사료나 도상에 나오는 악마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머리에 뿔이 달렸고, 몸에 반점이나 줄이 가로로 그어져 있다. 이 때문인지 12, 13세기에 줄무늬 옷은 비하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당시에 줄무늬 옷을 입는 이들은 집시나 죄수처럼 사회에서 배척받는 사람들이었다. 줄무늬 옷이 기본 아이템으로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엔 줄무늬 자체가 혼란을 야기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스위스 로잔대와 제네바대에서 초빙교수를 지내며 ‘중세 문장학의 대가’로 꼽히는 저자는 “중세인은 자연에서 줄무늬를 발견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기에 공포감과 혐오감을 느꼈다”고 설명한다. 무질서의 상징이던 줄무늬는 근대 유럽에서 새로운 지위를 얻는다. 가로 줄무늬가 아니라 세로 줄무늬가 등장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장 클루에(1486∼1540)의 그림 ‘프랑수아 1세의 초상’에서 보듯, 군주들마저 세로 줄무늬 옷을 입고 초상화 모델로 설 정도였다. 세로 줄무늬가 귀족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상징물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계층의 상징이나 이국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줄무늬는 미국으로 건너가 또 한번 변화를 맞는다. 직물이나 실내 장식으로 퍼지던 줄무늬는 독립혁명이 시작된 1775년을 기점으로 정치적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당시 미국인은 영국에 맞서며 13개의 식민지를 뜻하는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이뤄진 가로 줄무늬 깃발을 만든 것이다. 이때부터 줄무늬는 자유주의 독립사상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등극했다. 전위적인 예술가들에겐 줄무늬가 도발적이면서도 불량스러운 이미지로 애용됐다. 괴짜였던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위아래로 줄무늬 옷을 입은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프랑스 설치미술가 다니엘 뷔렌(84)도 줄무늬를 주제로 5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다. 줄무늬라는 하나의 소재를 따라 천변만화하는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줄을 긋는다는 하나의 행위가 어쩌면 가장 파격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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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10년 역사 되돌아보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올해의 작가상’ 10년을 기념하는 전시 ‘올해의 작가상 10년 기록’이 28일부터 열린다. 이번 전시는 도록과 영상 아카이브 자료 등으로 이뤄진다. 2~3 전시실에서는 작가 선정과 심사 과정, 작가의 작업실 모습, 신작 제작 과정, 작가의 개별 인터뷰 등 10년간 축적된 영상 기록 자료를 펼쳐놨다. 4 전시실에서는 역대 발간된 ‘올해의 작가상’ 도록과 전시 자료들로 구성됐다. 올해의 경우 미술관은 ‘올해의 작가상’ 작가를 선정하지 않기로 했다. 내년에는 2월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그동안 지적된 문제점 등을 반영한 개선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제껏 후보작가 경쟁 체제로 진행되는 선정 방식에 대한 지적과 특정 장르에 선정 작가가 치우친다는 비판 등이 있었다. 전시는 내년 3월 26일까지.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이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개최한 ‘올해의 작가’ 전시에서 출발했다. 2012년부터는 SBS문화재단과 장기 후원협약을 맺고 4명의 후보작가 중 한 명을 최종 수상자로 선정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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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션피플이 사랑하는 ‘줄무늬’, 중세 땐 악마의 상징이었다고? 

    중세 유럽의 여러 사료나 도상에 나오는 악마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머리에 뿔이 달렸고, 몸에 반점이나 줄이 가로로 그어져 있다. 이 때문인지 12, 13세기에 줄무늬 옷은 비하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당시에 줄무늬 옷을 입는 이들은 집시나 죄수처럼 사회에서 배척받는 사람들이었다. 줄무늬 옷이 기본 아이템으로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엔 줄무늬 자체가 혼란을 야기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스위스 로잔대와 제네바대에서 초빙교수를 지내며 ‘중세 문장학의 대가’로 꼽히는 저자는 “중세인은 자연에서 줄무늬를 발견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기에 공포감과 혐오감을 느꼈다”고 설명한다. 무질서의 상징이던 줄무늬는 근대 유럽에서 새로운 지위를 얻는다. 가로 줄무늬가 아니라 세로 줄무늬가 등장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장 클루에(1486~1540)의 그림 ‘프랑수아 1세의 초상’에서 보듯, 군주들마저 세로 줄무늬 옷을 입고 초상화 모델로 설 정도였다. 세로 줄무늬가 귀족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상징물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계층의 상징이나 이국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줄무늬는 미국으로 건너가 또 한번 변화를 맞는다. 직물이나 실내장식으로 퍼지던 줄무늬는 독립혁명이 시작된 1775년을 기점으로 정치적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당시 미국인은 영국에 맞서며 13개의 식민지를 뜻하는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이뤄진 가로 줄무늬 깃발을 만든 것이다. 이때부터 줄무늬는 자유주의 독립사상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등극했다. 전위적인 예술가들에겐 줄무늬가 도발적이면서도 불량스러운 이미지로 애용됐다. 괴짜였던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위아래로 줄무늬 옷을 입은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프랑스 설치미술가 다니엘 뷔렌(84)도 줄무늬를 주제로 5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다. 줄무늬라는 하나의 소재를 따라 천변만화하는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줄을 긋는다는 하나의 행위가 어쩌면 가장 파격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스트라이프, 혐오와 매혹 사이 / 미셸 파스투로 지음·고봉만 옮김 / 238쪽·2만2000원·미술문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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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과 후원이 만나는 모범 사례” 영역 넓혀가는 ‘아트 펀드레이저’

    #1. 18일 서울 강동구 강동성심병원. 진료를 기다리던 어린이 환자들 사이로 일러스트화가인 구지민 작가(30)가 나타났다. 구 작가가 “중력 없는 방이 있다면 뭘 하고 놀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아이들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잘라 구 작가가 미리 준비한 그림에 붙이기 시작했다. 현직 작가와의 만남에 아이들은 아픈 것도 잊은 채 빠져들었다. #2. 2018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광장 앞에 낯선 전시물들이 채워지며 지나가던 시민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그린란드 피오르에서 옮겨온 어른 키보다 살짝 큰 빙산 조각 30개가 예술품으로 배치된 것. 온난화를 경고하기 위해 덴마크 설치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55)이 주도한 ‘아이스 워치’라는 야외 전시였다. 얼핏 닮은 점이 없어 보이는 두 프로젝트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예술가와 후원자를 연결해주는 ‘아트 펀드레이저’가 성사시켰다는 것. 국내에선 ‘문화예술후원매개전문가’라고도 부르는 아트 펀드레이저는 해외에선 이미 낯설지 않은 개념. 미국은 약 1만 명에 가까운 아트 펀드레이저가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최근 공연 기획을 중심으로 미술 전시나 예술프로젝트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19년 유엔의 세계기후변화 회의를 앞두고 열린 ‘아이스 워치’는 미 블룸버그재단의 아트 펀드레이저가 기획을 주도했다. 재단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자 적절한 예술가를 찾아 연결시켰다. 당시 현지에서도 “예술과 후원이 만난 모범 사례”라며 반향이 컸다고 한다. 구 작가의 미술치유 워크숍도 마찬가지다. 국내 미술계 아트 펀드레이저 스타트업인 ‘블루버드씨’가 기획했다. 김상미 블루버드씨 대표는 “병원을 찾은 아동을 위한 예술이란 콘셉트를 갖고 후원자인 병원과 미술가인 구 작가를 섭외했다”며 “예술은 감정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만큼 다양한 기획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LoL) 라이브: 디 오케스트라’도 일종의 아트 펀드레이저가 내놓은 결과물이다. 세종문화회관이 아트 펀드레이저 역할을 맡아 “젊은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클래식 공연을 해보자”는 취지로, 젊은층이 좋아하는 게임인 ‘LoL’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콘서트를 기획했다. ‘LoL’ 제작사인 라이엇게임즈가 후원하고 KBS교향악단이 연주를 맡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여성 관람객 위주였던 기존 클래식 공연과 달리, 남성 관람객이 50% 이상이었다. 조휘영 세종문화회관 공연제작마케팅팀 PD는 “객석 점유율이 95%에 이를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20대 예매가 63.9%를 차지해 기획 의도와 잘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아트 펀드레이저는 국내에선 초기 단계이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미래 유망 14개 신 직업’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20년부터 아트 펀드레이저 양성을 위한 ‘아트너스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민세정 예술위원회 예술확산본부 차장은 “2020년엔 지원자가 50명이었지만 지난해 71명, 올해는 120명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김성규 전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한국은 문화예술에 대한 모금이나 후원이 활발하지 않은 실정이라 아트 펀드레이저 같은 관련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며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은 이를 즐기는 저변이 확대된다는 뜻이기에 문화계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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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그리다 방향 잃고 방황… ‘일대일 매칭’으로 길 찾아줘

    “바람이 그린 ‘그림’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전업 화가 10년 차인 김수연 작가(36)는 최근 자신이 지속한 ‘바람 채집’이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 들었다. 그는 “자연이 만든 의도하지 않은 미의 세계”를 찾기 위해 야외에서 붓을 줄에 매달아 바람에 흔들리는 대로 그림이 그려지게 했다. 나름대로 성과를 냈지만, 뭔가 본질적인 해답은 저 멀리 안개에 가려진 듯 답답했다고 한다. 최근 김 작가는 12일부터 열린 전시 ‘Dialogue(대화)’에서 진행한 ‘일대일 프라이빗 멘토링’에서 빛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전시 기획자인 이대형 예술감독, 임근준 미술평론가와의 대화에서 “국내외 여러 문학에는 바람이 가진 상징이나 의미가 자주 등장한다. 이를 공부하며 자신의 답을 찾아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미술의 길은 어렵고 지난하다. 특히 청년 작가들은 혼란에 빠져 길을 잃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잦다. 미술계에선 고민에 빠진 MZ세대 작가들이나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지역 작가들이 선배 화가나 현직 큐레이터 등과 상담하는 ‘일대일 매칭 프로그램’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이 예술감독도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힘든 작가들에겐 약간의 조언도 방향 설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해부터 시작된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 사업인 ‘공립미술관 추천작가-전문가 매칭 지원’이다. 지역 공립미술관이 지역 작가들을 추천하면 분야별 전문가가 ‘맞춤형 멘토링’을 진행한다. 지난해는 5개 기관에서 추천한 15명의 작가가 대상이었고 올해는 7개 기관에서 추천한 12명에게 지원을 해주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모로 선정한 작가들을 상대로 멘토링과 전시를 진행하는 ‘신진미술인 전시 지원 프로그램’도 비슷한 경우다. 미술관은 “최근 대상을 확대해 공모 선정 작가가 아니더라도 작업관이 확립되지 않은 젊은 작가에게 도움을 주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원 양구에서 주로 활동하는 김형곤 작가(52)도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프로그램을 통해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과 만난 뒤 “이런 기회가 더 늘어나야 한다”며 반색했다고 한다. 김 실장은 “지역 미술계는 작가가 대중과 소통할 기회나 창구가 많지 않아 고립되기 쉽다”며 “비평가를 비롯한 미술계 인사들과 만나 작업관을 확장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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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대일 매칭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작업 활로 찾는 젊은 작가들

    올해로 10년차에 접어든 김수연 작가(36)는 최근 자신의 작업 방향에 고민이 생겼다. 김 작가는 줄에 매달아 놓은 붓이 바람에 흔들리며 남긴 흔적을 바탕으로 작업해왔는데, “단순히 월별로 그 흔적을 채집하는 데에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의 고민은 이달 12일부터 서울 양천구 현대백화점 목동점에서 진행하는 단체전 ‘Dialogue’의 부속 프로그램인 ‘일대일 프라이빗 멘토링’에서 일견 해소됐다. 이는 전시 기획을 맡은 이대형 예술감독이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방향을 찾기 어려워하는 작가들에게 뼈아픈 조언이 필요한 때”라며 시니어 큐레이터 2명과 함께 기획한 것이다. 김 작가는 “약 한 시간의 대화를 통해 ‘국내외 문학 속 바람이라는 소재의 의미를 작품에 반영해보라’는 조언을 받았고, 새 작업의 물꼬를 텄다”고 말했다. 큐레이터나 비평가와의 일대일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 작업 활로를 찾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이제껏 일대일 매칭 프로그램은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재단이나 미술관에서 종종 진행되어 왔다. 2008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모 선정 작가를 상대로 멘토링과 전시를 진행한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프로그램 대상이 확대되면서 작업관이 확립되지 않은 젊은 작가들이나 비평과 멀어진 지역 작가들에게 특히 도움이 된다는 평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사업인 ‘공립미술관 추천작가-전문가 매칭 지원’이 한 사례다. 지역 공립미술관이 지역 작가들을 추천하면 분야별 전문가가 붙어 맞춤형 멘토링을 진행한 후 자료집을 발간하는 식이다. 지난해에는 5개 기관 14명을, 올해는 7개 기관 12명을 진행했다. 지난해 강원 양구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양화가 김형곤(52)의 경우, 매칭 상대인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이 작가 작업실에 방문해 심층 토론을 진행했다. 김 실장은 “미술 신은 대중과 언어로 소통이 잦지 않고 창구가 많지 않아 작가가 고립되기 쉽다. 그동안 눈에 띄지 않던 작가들이 타 지역과 중앙에서 활동하는 비평가들을 만나며 작업관을 확장해 나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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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과 겸허히 마주하는 예술, 박수근과 통해”

    “박수근(1914∼1965)이란 이름 앞에서 예술가로서의 삶의 태도를 다시 점검하게 됩니다. 박수근미술상 수상은 ‘질문하기를 멈추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25일 열린 제7회 박수근미술상 시상식 및 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 개막식에서 올해 박수근미술상을 받은 차기율 작가(61·인천대 조형예술학부 교수)가 말했다. “38세에 혼자가 돼 6남매를 키우신 어머니에게 감사드린다”며 잠시 울음을 삼킨 그는 “부족한 제게 또다시 전진할 기회를 줘 감사하다”고 했다. 박 화백의 예술혼을 기리는 뜻에서 제정된 박수근미술상은 동아일보와 양구군, 강원일보, 박수근미술관이 공동 주최한다. 이인범 박수근미술상 운영위원장은 “차 작가는 자연, 장소의 기억, 노마드 등을 기본 개념으로 집요하게 탐구하며 다양한 소재로 설치미술 작업을 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예술을 자신과 겸허하게 마주하는 방법으로 받아들여 온 작가로, 이는 박 화백이 치열하게 추구했던 길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박 화백의 장녀인 박인숙 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은 “선함과 진실함을 전해주는 아버지와 맥이 통하는 면이 많은 차 작가가 앞으로도 멋진 작품을 만들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서흥원 양구군수는 “차 작가는 수십 년간 자연, 인간, 우주에 천착하며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고 말했다. 차 작가는 이날 박 화백의 작품 ‘아기 업은 소녀’(1963년)를 조각으로 만든 상패와 창작지원금 3000만 원을 받았다. 내년 5월 박수근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박수근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 ‘박수근의 시간·미석(美石)의 공간’에서는 ‘철쭉’(1933년)과 ‘절구질하는 여인’(1952년)을 비롯해 판화, 탁본, 드로잉 등을 만날 수 있다. 내년 3월 26일까지 열린다. 양구=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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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테면 보라지… 요즘은 매일 자화상”

    “자기 복제처럼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보리밭을 그리고 싶은 걸 어쩌겠어요.” ‘보리밭 화가’ 이숙자 화백(80)이 6년 만에 개인전으로 돌아왔다.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19일 열린 선화랑 45주년 기념전 ‘이숙자’에서 만난 그는 수줍은 미소로 작품을 소개했다. 40점을 출품한 이번 전시에는 2022년 작품도 3점 포함됐다. 역시 모두 보리밭이다. ‘분홍밭 장다리꽃이 있는 보리밭’과 ‘청보리―초록빛 안개’는 각각 1981년, 2012년에 그렸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전면 개작했다. 이 화백은 “파기할까 고민도 했지만 내 자식이 부족하다고 버릴 순 없지 않으냐”며 “과거의 저와 현재의 제가 합작했다고 여겨 달라”고 했다. 천경자 화백(1924∼2015)의 제자인 그는 이번 전시에 1980년대부터 쌓아온 자신의 화업(畵業) 50년을 두루 조망할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그 가운데 ‘이브의 보리밭 90-6’(1990년)은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 보리밭에 맨몸으로 누운 여성을 그린 작품은 당시에도 적나라한 묘사로 파장을 일으켰는데, 32년이 지난 지금도 당당한 기세가 느껴진다. “발가벗은 여성의 몸도 사람 얼굴 보듯 낯익었으면 좋겠어요. 낮은 여성 인권에 대한 저항과 인습에 대한 반항이 의식 속에 있지 않았나 싶어요.” 이 화백은 최근 자화상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매일 맨몸으로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과 얼굴을 캔버스에 담는다고 한다. 그는 “이번에 처음 공개한 ‘푸른 모자를 쓴 작가의 초상’(2019년)은 날 너무 곱게 그린 것 같다”며 “‘볼 테면 보라지’라는 마음으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다음 달 19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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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 테면 보라지” 보리밭에 누운 맨몸의 ‘이브’서 자화상까지…

    ‘보리밭 화가’라고 하면 금세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50년 화업을 이어온 이숙자(80) 화백이다. 이 화백은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6년 만에 개인전을 열고 있다. 19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자기 복제처럼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보리밭을 그리고 싶은 걸 어쩌냐”며 웃었다.출품작 40점 중 신작 3점도 모두 보리밭 그림이다. 이중 ‘분홍빛 장다리꽃이 있는 보리밭’(1981년)과 ‘청보리-초록빛 안개’(2012년)는 마음에 들지 않아 올해 개작한 작품이다. 그는 “파기할까 생각했지만 내 자식이 부족하다고 버릴 순 없다”며 “과거의 저와 현재의 제가 합작한 작품”이라고 했다. 천경자 화백(1924~2015)의 제자였던 그는 “무슨 그림을 그려도 천 선생님을 흉내 낸다고 했는데, 보리밭을 그리면서 그 소리가 들어가더라”라며 보리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이번 개인전에는 1980년대 작품부터 출품돼 이 화백의 작품 세계를 두루 조망할 수 있다. 그중 단연은 ‘이브의 보리밭’(1990년)이다. 보리밭에 맨몸으로 누워있는 여성과 세밀하게 표현된 음모는 당시 매우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32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의 당당한 기세가 느껴진다.“발가벗은 여성의 몸도 사람 얼굴 보듯 낯익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낮은 여성인권에 대한 저항, 인습에 대한 반항이 내 의식 속에 있지 않았나 싶어요.”최근 이 화백은 자신의 적나라한 자화상을 그리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맨몸으로 거울 앞에 서서 매일 자신의 몸과 얼굴을 캔버스에 담는다. 이번에 처음 발표한 ‘푸른 모자를 쓴 작가의 초상’(2019년)이 “너무 날 곱게 그린 것 같다”면서, “볼 테면 보라지”하는 마음으로.전시는 다음달 19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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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작도록, 생전에 미리 준비를… 작품 기억은 작가가 제일 확실”

    서양화가 서용선(71)은 약 2년 전부터 자신의 회화작업을 스스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서울대 미대 교수였던 그는 본격적인 전업 작가로 활동한 2008년부터 각 작품의 도판과 전시이력, 비평 등을 한데 모았다. 올해 7월 출간된 ‘서용선 2008-2011’(연립서가·사진)이 그 결과물. 서 작가는 “‘전작도록’의 중간 단계로 보면 된다”며 “앞으로도 3, 4년 치씩 묶어 책으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작도록이란 작가의 작품이력과 출품기록을 담은 자료로, 향후 미술품 감정의 기초로 활용돼 중요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작가가 활동을 중단한 뒤, 즉 세상을 떠났을 때 만든다. 하지만 최근 미술계에선 서 작가처럼 생존 작가들이 전작도록을 미리 준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간 사후 전작도록은 혼란이 빚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작품을 선정하는 데 연구학자마다 의견이 달라 제작에 차질을 빚는 일이 잦았다. 수록작의 진위를 놓고 논란이 생긴 사례도 있다. 서 작가도 “작품에 대한 기억은 1차적으로 작가가 제일 확실한 게 당연하지 않나”라며 “작가가 직접 참여하면 제작도 원활하고 내용도 훨씬 풍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선 생존 작가의 전작도록 작업이 상당히 보편화된 추세다. 독일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90)는 2011년 ‘1962∼1968년 도록’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6권을 내놓았다. 이인범 전 상명대 교수는 “생존 작가의 전작도록은 제작 과정에서 자기 작품에 대한 자가 비평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지녔다”며 “작가가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뿌리를 굳건히 만드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전작도록의 사전 단계라 할 수 있는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자료수집 연구지원’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2015년부터 이승택(90)과 박서보(91), 김순기(76), 김영원(75) 등 작가 30명을 대상으로 했다. 일반적으로 한 작가당 연구진 3∼6명을 투입해 1, 2년씩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심지언 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은 “작가들이 생전에 연구자들과 작품에 대한 정보를 객관적으로 정리하면 향후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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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가들 생전 ‘전작 도록’ 준비하는 이유… “작품에 대한 기억은 작가에게”

    두 해 전, 서양화가 서용선(71)은 자신의 회화 작업을 총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대 미대 교직을 떠나 전업 작가가 된 2008년부터 시작했다. 올 7월 출간된 ‘서용선 2008-2011’(연립서가)은 그 결과물이다. 이 책에는 각 작품 도판과 전시 이력, 작품에 대한 비평 등이 포함됐다. 최근 동아일보와의 화상통화에서 서 작가는 “이 책은 전작도록(전체 작품 이력과 출품 기록을 담은 것으로, 미술품 감정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는 책)의 중간단계 작업”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생존 작가들이 전작도록을 미리 준비하는 경우들이 늘고 있다. 보통 전작도록은 작가가 작품 활동을 중단했을 때, 즉 일반적으로 사후에 제작한다. 하지만 이럴 경우 전작도록에 수록할 작품에 대해 학자 간 이견이 생겨 작업이 중단되기도 하고, 수록작에 대한 진위에 대해 다른 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많았다. 이 때문에 작가들이 생전부터 자신의 전작도록 작업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서 작가는 “작품 소유나 기증 이력들을 작가 개인이 추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책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지만, 국내에서 미미한 연도별 도록 제작에 돌입했다는 것으로도 의의는 크다. 그는 “작품에 대한 기억은 1차적으로 작가에게 있으니 작가의 참여가 중요하다. 이러한 중간 단계 노력이 있다면 사후 전작도록 제작이 원활함은 물론 내용도 풍부해질 것”이라며 “앞으로도 작품 3, 4년 치씩 묶어 꾸준히 책으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술경영지원센터도 전작도록의 사전 단계인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자료수집 연구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 작가의 현재까지 작품 활동을 정리해 온라인에 공개하는 식이다. 2015년부터 박서보(91), 김순기(76), 김영원(75) 등 30명을 대상으로, 한 작가 당 3~6명의 연구진이 1~2년간 진행한다. 심지언 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은 “원로 작가 중 아카이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으신 분들이 있다. 생전에 연구자들과 함께 객관적인 작품 정보를 정리해야 추후 연구, 유통 등에 원활하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여러 생존 작가가 전작도록 작업에 뛰어들고 있다. 독일 대표화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90)는 2011년에 1962~1968년 도록을 시작으로 현재 6권까지 내놓았다. 이인범 전 상명대 교수는 “생존 작가가 전작도록을 만들게 되면, 그 과정에서 자기 작품에 대한 자가 비평이 가능해진다. 전작도록이 단지 진위 여부 기준이 되는 걸 넘어서서 작가에게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뿌리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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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첨지의 설렁탕, 구보씨의 커피는 어떤 맛이었을까[책의 향기]

    “설렁탕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현진건이 쓴 소설 ‘운수 좋은 날’(1924년)의 안타까운 결말은 오래도록 한국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대목. 주인공 김 첨지는 퇴근길에 부인이 원하던 설렁탕을 사왔지만 부인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그런데 부인은 왜 하필 ‘설렁탕’을 사달라고 한 걸까. 배탈이 난 환자가 먹기엔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 소설 배경인 1920년대에 설렁탕은 대표적인 외식 메뉴였다. 당시 신문 기사들을 보면 1920년까지 경성 안팎에 설렁탕 가게는 25개뿐이었으나 1924년엔 100군데가 넘는다. 당시 설렁탕은 한 그릇에 13∼15전. 요즘 시세로 치면 3900∼4500원으로, 서민도 크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소머리고기로 육수를 내 몸보신에 좋다는 인식도 강했다. 어쩌면 심성 고운 부인은 남편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설렁탕을 고른 게 아닐까. 국문학 전공자로 성균관대 학부대학 대우교수인 저자는 근대소설 10편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유행했던 음식과 그를 둘러싼 문화를 다뤘다. 선정 작품은 염상섭의 ‘만세전’(1924년)과 이상의 ‘날개’(1936년), 심훈의 ‘상록수’(1936년) 등 우리에게 친숙한 소설들이다. 저자는 “먹는다는 행위는 사회 문화적 취향과 연결되며 제도에 지배되기도 한다”며 “안타까운 것은 한국에서 그 시기가 식민지라는 역사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광수의 ‘무정’(1917년)에선 좀 더 이채로운 음식이 등장한다. 주인공 영채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맘먹고 탄 평양행 기차에서 일본 도쿄 유학생인 병욱을 만난다. 병욱은 상처가 깊던 영채에게 위로를 건네며 어떤 음식을 건넨다. 영채는 “구멍이 숭숭한 떡 두 조각 사이에 엷은 날고기가 끼인 것”을 맛본 뒤 “특별한 맛은 없으면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운치 있는 맛이 있다”고 느낀다. 이 음식은 바로 샌드위치였다. 일본 회사 ‘오후나켄’이 1898년부터 일본 기차역에서 팔며 ‘서구 음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조선에도 들어왔다고 한다. ‘무정’에는 또 다른 음식도 등장한다. 영채와 정혼한 형식은 하숙집에서 끓인 된장찌개를 “지극히 졸렬한 음식”이라고 비난한다.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이 한국 전통 문화와 서구 문명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당시 경성에서 크게 유행했던 ‘카페’의 분위기도 맛볼 수 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년)에는 구보 씨가 즐겨 찾은 ‘낙랑파라’라는 카페가 나온다. 당대 문인들은 카페에 모여 피로하고 우울한 대화를 나누곤 했다. 여기선 커피도 팔았다. 채만식은 1939년 잡지 ‘조광’에 기고한 글에서 커피를 “힝기레 밍기레한 게 맹물 쇰직한 맛”이라고 표현했다. 저자는 문학과 역사를 무게감 있게 다뤘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추억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상의 ‘날개’에 등장하는 두부장수나 심훈의 ‘상록수’에 나오는 카레를 마주하다 보면, 그 시대를 살진 않았는데도 왠지 ‘찡한’ 옛 앨범을 들추는 기분이랄까. 오늘 저녁엔 학창 시절 읽었던 그 소설들을 다시금 들춰 보고 싶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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