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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와 함께 미납 추징금 1672억 원을 모두 내겠다고 장남 재국 씨를 통해 10일 밝혔다. 이로써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11월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고 1997년 법원이 전 전 대통령에 대해 군사반란 및 내란 혐의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을 확정한 ‘12·12 및 5·18 사건’은 비로소 끝을 바라보게 됐다. 특히 지난 16년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흐지부지됐던 추징금 미납액 환수 문제가 해결의 전기를 맞게 된 셈이다. 재국 씨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대국민 사과를 한 뒤 자진 납부 계획을 발표했다. 재국 씨는 90도로 허리를 숙인 뒤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가족 모두를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부친은 당국의 조치에 최대한 협조하라는 말씀을 진작 하셨고 저희도 그 뜻에 부응하고자 했지만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혀 해결이 늦어진 데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말을 끝내고는 다시 카메라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이날 전 전 대통령 일가는 이미 검찰에 압류된 900억 원 상당의 재산 외에 약 8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추징금으로 자진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이미 압류한 재산과 자진 납부 재산을 합쳐 총 1703억 원의 재산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재국 씨는 자신의 명의로 돼 있는 서초동 시공사 사옥 3필지와 경기 연천군 허브빌리지 48필지(33필지는 압류), 미술품 등을, 차남 재용 씨는 서초동 시공사 사옥 1필지를 자진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삼남 재만 씨와 딸 효선 씨 역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과 경기 안양시 관양동에 보유한 부동산을 자진 납부 대상에 포함시켰고, 사돈 이희상 동아원 회장은 275억 원 상당의 금융자산을 자진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재국 씨는 “부모님이 현재 살고 계신 연희동 사저도 추징금으로 납부할 것”이라며 “다만 부모님께서 반평생 거주했던 사저에서 여생을 보내실 수 있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검찰은 한국자산관리공사와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확보한 재산에 대한 공매 등 환수 절차에 착수할 계획이다. 검찰은 또 추징금 환수 과정에서 드러난 탈세, 해외 비자금 은닉 등의 의혹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되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자진 납부 결정 등을 정상참작 사유로 감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이 이날 계획만 발표했을 뿐 아직 완납 절차가 남아 있고, 또 해외 은닉 자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만큼 검찰 수사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1980년 5·18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때 ‘발포 지시자’가 누구인지 실체를 밝히지 못했고, 언론통폐합에 대한 책임 소재도 묻지 못했기 때문에 전 전 대통령 본인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추징금을 완납하더라도 진정한 ‘5공 청산’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민동용·유성열 기자 mindy@donga.com}

1988년 11월 23일 오전 9시 32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응접실. 퇴임한 지 1년이 채 안 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생중계되는 TV 카메라 앞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읽어 내려갔다. 믿었던 동지 노태우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의 ‘5공 청산’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고 전 전 대통령은 이날 강원도 백담사로 은둔의 길을 떠났다. 이순자 여사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12·12쿠데타 당시 전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하극상을 당했던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은 1993년 7월 전 전 대통령 등을 내란혐의로 고소·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이듬해 10월 ‘공소권 없음’이라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심판대에 제대로 오르지도 못한 첫 번째 심판이었다. 1995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천억 원대 비자금을 갖고 있다고 당시 박계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폭로하면서 두 번째 심판이 다가왔다. 이를 계기로 김영삼 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우며 5·18특별법 제정을 공식화했고 검찰은 다시 전 전 대통령을 향해 수사의 칼날을 겨눴다. 1995년 12월 2일 오전 9시, 이번에는 전 전 대통령이 연희동 자택 응접실이 아닌, 집 앞 골목에서 ‘대국민 담화’를 읽었다. 이른바 ‘골목성명’이었다. 7년 전의 초췌한 표정은 간데없이 성난 얼굴이었다. 그는 “검찰의 태도는 진상 규명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 저는 검찰의 소환 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라고 밝히고는 고향 경남 합천으로 떠나 버렸다. 하지만 이튿날 합천까지 내려온 검찰 수사관들에 의해 전 전 대통령은 서울로 송환됐다. 그리고 1997년 4월 그는 군사반란 및 내란죄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두 번째 심판의 결과였다. 그해 12월 22일 그는 사면됐다. 하지만 그가 재임 기간 거둔 정치자금 중 사적(私的) 용도로 챙겨 뒀다고 법원이 판단한 2205억 원의 추징이 문제였다. 1997년 법원이 추징금을 확정하면서 확보한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은 약 239억 원. 이후 16년 동안 추가로 추징한 돈도 290억 원 남짓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민주당은 추징시효를 연장하고 불법 재산과 거기서 유래한 재산을 별도 절차 없이 가족 등에게서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 일명 ‘전두환 추징법’을 5월 발의했다. 6월 초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가 조세회피처인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소유하고 있다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폭로가 나오면서 ‘전두환 추징법’ 처리에 불이 붙었다. 전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단임 약속을 지켰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뤘다는 점 등을 공적으로 내세워 왔다. 하지만 국민은 그가 권력을 쥐는 과정에서의 군사쿠데타 및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5공 기간 자유와 언론을 탄압한 기억을 잊지 않았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 중 계엄군의 총격 등으로 민간인 165명(정부 공식 통계)이 사망했지만 누가 최초 발포 명령을 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1995년 검찰의 수사 결과엔 1980년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발포명령 하달 과정에 연루된 정황이 두루뭉술하게 나타나 있을 뿐이다. 5공의 업보를 심판하고 역사적 과오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와 시대적 요구가 퇴임 후 25년이 지나 불법취득 재산에 대한 추징금 납부 선언을 이끌어냈다. 나머지 부분의 5공 청산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셈이다.민동용·신광영 기자 mindy@donga.com}
민주당이 대공수사권 폐지 등을 담은 국가정보원 개혁안을 마련해 이를 당론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민주당 ‘국정원법개혁추진위원회’는 대공수사권을 비롯해 전체 수사권 폐지, 국내정보 파트 분리, 국회 통제권 강화 등 세 가지 방안을 골자로 한 국정원 개혁안 성안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9일 “조만간 최고위원회의를 거쳐 추석 연휴 전 당론으로 공식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를 적발하는 등 대북 관련 수사의 중요성이 높아진 시점이어서 민주당의 국정원 개혁안이 공식 발표될 경우 정치권, 법조계 등에서 “명분을 갖추지 못했고, 시기도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내에서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민주당 국정원법개혁추진위원회 간사인 문병호 의원은 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대공수사권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검찰과 경찰에 대공수사 기구를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또 “국정원의 대공수사 전문성을 가진 요원은 새로운 기구로 옮겨가면 된다”고 말했다. 대공수사의 담당 기관을 바꾸자는 얘기다. 문 의원은 국정원에서 대공수사권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국정원이 정보와 수사권을 다 가지고 있다 보니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사건을 조작한다든지 잘못된 방향으로 권력이 남용될 가능성이 끊이지 않아 왔다”며 “권한을 분산시키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도 최근 사견임을 전제로 “대공(수사) 파트도 없애는 방향으로 갈 생각”이라며 “검찰에 별도 조직을 만들면 된다”고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석기 의원 사건으로 국내 종북(從北) 세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옳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대공수사권을 폐지하자는 민주당의 주장은 국정원을 개혁하는 게 아니라 국정원을 무력화시키자는 것”이라며 “대공수사권을 폐지한다면 결국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린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팀장은 “이석기 사태를 보고도 국정원의 핵심 기능을 폐지하자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민동용·황승택 기자 mindy@donga.com}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국회의원은 헌법이 규정한 질서를 인정하고 있을 것이라는 상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일회성으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세력이 공직에 발 딛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논의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높다. 전문가들은 먼저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지역구 후보자에 비해 비례대표 후보자의 신상에 대한 정보 공개가 상대적으로 제한돼 있는 점을 제도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권자가 이 의원 같은 비례대표 후보자를 사전에 최대한 알아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새누리당 정희수 의원은 지난해 8월 비례대표 후보자에 대한 정보 공개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에게 배포하는 선거공보물에 각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만 넣지 말고 지역구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등록재산 △최근 5년간 세금 납부·체납 증명 △병역 △학력 △전과 기록 증명을 모두 넣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은 비례대표 후보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선관위 인터넷 홈페이지에만 선거일 20일 전 게재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의원처럼 과거 헌정질서와 체제를 부정해서 사법적 처벌을 받은 인사에 대해서는 복권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더 나아가 1972년 일명 ‘극단주의자 훈령’을 제정해 반(反)국가 극단주의자들의 공직 임용을 제한했던 독일처럼 ‘반국가 이적행위자’에 대해서는 공직 임용을 배제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 “비례대표 후보 ‘과거’ 꼼꼼히 공개해 깜깜이 투표 막아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먼저 이 의원이 국회에 입성할 수 있게 된 요인을 분석해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된 견해다.○ 누가 이석기 ‘의원’을 만들었나 거시적으로 보면 이 의원 사건의 단초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적 폭압 통치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맞서는 반정부·민주화운동 세력은 곧 진보라는 등식이 성립됐고, 이로 인해 북한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종북(從北)’마저 진보라는 범주로 받아들이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토양이 조성됐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정치학)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세력에 대한 맹목적인 관대함이 있었다”며 “북한체제를 지향하는 ‘종북진보’, 민주화 세력의 ‘민주진보’, 생활 속 진보를 실현하는 ‘민생진보’를 동일하게 취급했다”고 분석했다. 가까이로는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민주당(당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를 들 수 있다. 선거 승리나 정권 획득을 위해 정당이 다른 정당과 연합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긴 어렵다. 그러나 지난해 이뤄진 야권연대는 오로지 ‘선거 승리’만을 위해 이념, 정체성의 차이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연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이 의원 사건의) 반쪽의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며 “야권연대라는 이름 아래 무차별적으로 연대했다”고 강조했다. ‘종북주의’를 이유로 2008년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진보신당(현 정의당에 포함돼 있음)의 일부 세력이 근본적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총선을 앞둔 2011년 말 다시 통합진보당으로 합친 일도 정치공학에만 집중한 근시안적 통합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체제 부정 인사 복권 함부로 못 하도록 2002년 민혁당 사건으로 도피하다 체포된 이석기 의원의 당시 공소장에는 그가 “김일성은 민족을 자주독립 국가 건설로 이끈 절세의 애국자”라는 발언을 했다고 돼 있다. 그러나 그는 2003년 3월 항소심에서 2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지 5개월 만에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됐다. 2005년 8월 다시 광복절 특사로 복권됐다. 그 덕분에 그는 피선거권을 회복했고, 지난해 총선 때 통진당의 비례대표 후보 2번으로 당당하게 국회에 입성했다. 이를 근거로 전문가들은 이 의원처럼 대한민국 헌정질서와 체제를 인정하지 않은 혐의로 사법적 처벌을 받은 인사에 대해서는 선출직 공직에 입후보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사자의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에 대한 자격 제한을 풀어 주는 사면·복권을 막자는 것이다.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헌법)는 “외국의 입법례를 보면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며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해치는 범죄 행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사면·복권을 제한하는 방안을 사회공익적 차원에서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전우현 한양대 법학과 교수도 “범죄 경중에 따라 국가의 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이 제한되어야 한다”며 “관련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자제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유동열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더 나아가 헌정 질서와 체제를 부정한 자에 대해서는 공직 임용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72년 일명 ‘극단주의자 훈령’을 제정한 독일은 1990년 통일 전까지 반국가 극단주의 경력자 3000여 명의 공직 임용을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유권자의 적극적 정치 참여 의식 있어야 정당이 선정한 후보자를 뽑는 유권자도 이번 사건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유권자라면 최소한 현존 체제를 옹호하지 않는 후보자가 누구인지 꼼꼼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유권자들은 지역과 국민의 대표자로서 어떤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야 하는지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희민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정치학)도 “우리나라 유권자는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들 하지만 후보자 정보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 의원 사건은 하나의 사회적 통증이라고 본다”며 “앞으로 유권자들이 투표할 때 이런 정당은, 이런 후보는 안 되겠다고 되새기는 자정 작용이 생길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이 의원 사건을 계기로 유권자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때 국가 정체성, 헌법 질서 등을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민동용·황승택 기자 mindy@donga.com}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8일 “지금 현재 국민 정서로 본다면 국회의원의 절반은 국민의 뜻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이날 오후 경기 수원 라마다호텔에서 열린 ‘경기도민과 함께 하는 100분 동행토크’에서 “현재 여론조사를 보면 양당은 50% 정도 지지를 받고 있고, 생기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과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이 50% 정도 점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절반의 정치 지분이 국민의 정치 변화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다”며 독자 세력화 추진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이정희 대표는 4일 내란음모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또 다른 황당 발언들을 남겼다. 5·12 RO(혁명조직) 비밀 회합에서는 ‘미국 놈’, ‘미 제국주의’라며 미국을 비난한 것으로 체포동의안에 기술된 이 의원은 이날은 미 일간지 기사에 의존해 통진당이 탄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체포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진행된 본회의 신상발언에서 “뉴욕타임스(NYT)도 저에 대한 내란음모죄 수사를 유신시대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과 비교해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언급한 것은 지난달 29일자 NYT 기사였다. 그러나 기사 원문은 “국가정보원이 이 의원 및 당직자들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철권을 휘두르며 통치하던 유신시대를 떠오르게 한다고 통진당은 밝혔다”고 돼 있다. NYT가 통진당의 주장을 소개한 대목이다. NYT는 ‘유신’을 설명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많은 정치적 반대자들이 내란 등의 혐의로 고문을 당하거나 정당한 재판 없이 사형당했다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표결에 앞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12 회합에서 나왔던 ‘총기 탈취, 시설 파괴’ 등의 발언은 모두 “농담이었다”고 주장해 누리꾼 등의 거센 비난을 들었다. 이 의원은 “(5·12 회합) 녹취록에는 한 개 분반에서 한두 사람이 총기 탈취나 시설 파괴 등을 말했지만 실제로 이 말은 농담으로 한 말인데 발표자가 마치 진담인 것처럼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6개 분반 110여 명은 총기 탈취나 시설 파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농담처럼 말하거나 누군가 말해도 웃어넘겼다”고도 했다. 그러나 체포동의안의 내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RO 조직원인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구속)은 당시 회합에서 “총은 준비해야 되는 게 아니냐? 이런 의견이 나왔다. 어떻게 총을 만들 거냐? 부산에 가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항일의 시기에도 만들어 썼는데 우리가 손재주가 있고 결의가 있고 거기에 재주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문제를 가지고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비밀 회합이 아닌 정당 공식 행사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5월 10일 RO 모임과 12일 회합에 아이들이 참석한 사실을 새로 제시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무시무시한 지하조직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체포동의안을 들여다보면 이 의원은 5월 10일 회합에서 “아이는 안고 오지 마시라고, 전쟁터에 아이를 데리고 가는 사람은 없지”라고 강조했다. 또 “소집령이 떨어지면 정말 바람처럼 순식간에 오라. 당내 전쟁기풍을 준비하는 데 대한 현실 문제라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라”고 다그쳤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앞뒤 안 맞는 두 이 씨의 언동은 그들이 ‘진보를 가장한 꼴통’ 즉 ‘진꼴’임을 보여준다”고 쏘아붙였다.민동용·고성호 기자 mindy@donga.com}
4일 오후 4시 25분 강창희 국회의장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 투표 결과를 발표하자 이 의원은 통진당 의원들과 함께 본회장을 빠져나왔다. 이 의원은 국회 로비에 있던 기자들에게 “한국의 민주주의 시계가 멈췄다. 정치가 실종되고 국가정보원의 정치가 시작됐다”고 말한 뒤 질문엔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통진당 의원들은 투표 전 잇따라 발언대에 나서 체포동의안 통과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면서 국정원을 비난했다. 1980년대 주사파 학생운동권이었던 하태경 의원이 투표 전 의사진행발언에서 통진당을 향해 “이 의원을 감싸며 자폭하겠다는 건 국회에 영원한 흠집을 남기는 일이다. 아끼는 당원들과 같이 쓰레기통에 묻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을 감옥으로 보내고 다시 태어나라”고 촉구했다. 이에 자리에 앉아 있던 통진당 의원들이 하 의원을 향해 “그만하고 내려와”라고 고함을 질렀다. 뒤이어 나온 통진당 오병윤 의원은 발언을 끝내고 돌아가는 하 의원을 향해 “하태경 의원”이라며 불렀고, 하 의원이 돌아보지 않자 “말 들으세요. 예의가 없네요”라고 쏘아붙였다. 오 의원은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이유 하나로 수십 년간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면서 “기회만 되면 종북(從北)이라고 떠드는 행태는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오 의원 발언 도중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이 “궤변 늘어놓지 마”라고 고함치자 오 의원이 “김태흠 의원, 좀 심하시더라고요”라고 받아쳤다. 오 의원이 체포동의안 표결과 관련해 “법리 적용이 맞는지 살펴서 잘 처리해 달라”고 하자 한 새누리당 의원은 “걱정하지 마. 잘 처리해 줄게”라고 받았다. 이석기 의원이 신상발언을 할 때는 여당쪽 의석에서 “자리로 들어와”라는 말이 나왔고, 발언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려 하자 “도망가지 말라고”라는 고함도 들렸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이 의원을 ‘피의자’로 불렀다. 김 의원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를 하러 나와 “나는 이석기 피의자를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인정한 적 없다. 그 흔한 악수도 한 번 한 적 없다. 왜냐하면 그는 대한민국의 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본회의가 열리기에 앞서 오전 이 의원을 제외한 통진당 의원 5명은 민주당 의원총회가 열리는 본관 제3회의장 앞에서 참석하러 오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인사를 하며 체포동의안 처리에 반대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상규 의원은 민주당 박남춘 의원이 다가오자 “남춘이 형! 파이팅”, “선배님! 잘 봐 주십쇼”라고 외치기도 했다. 3군사령관 출신의 민주당 백군기 의원은 통진당 의원들이 ‘국정원 녹취록에 대한 입장 발표문’을 건네자 쳐다보지도 않고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경찰은 일찍부터 국회 주변에서 삼엄한 경계를 폈다. 오전 11시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통진당 집회가 예정돼 있고, 여기에 통진당원 수백 명이 참석한다는 첩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국회 주변에 38개 중대 2600명을 배치하고 경찰 버스 수십 대를 동원해 국회 외벽을 에워쌌다. 국회 정문 앞 큰길 건너편에는 살수차까지 동원했다.민동용·권오혁 기자 mindy@donga.com}
내란음모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누리당은 3일 “4일 오후 2시 본회의를 열자”고 민주당에 제안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이 협조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협조가 안 된다면 (새누리당이) 혼자 해야 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는 분위기다. 당 핵심 관계자는 “4일 오전 의원총회를 열어 체포동의안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고, 반대하자는 의원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국회는 체포동의안 처리 때 통진당의 물리력 동원에 대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한편 경찰에 국회 본관과 주변에 병력 배치를 요청했다. ○ 새누리, “석기시대 문 열어준 문재인 책임져야” 민주당은 당초 체포동의안 처리에 앞서 정보위, 법사위 개최를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이 “법사위는 열자”고 하자 법사위 개최 요구는 거둬들였다. 노무현 정부 때 이석기 의원이 2번이나 특별사면(가석방과 복권)을 받았고,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문재인 의원이었다는 점에 대해 새누리당이 법사위에서 공세를 펼 것으로 본 것이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문 의원을 맹공했다. 권성동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법무부 지침에 따르면 형기의 80% 정도를 복역해야 가석방 대상이 되는데, 이 의원은 2년 6개월이 확정된 상태에서 80%(2년)를 채우지 않고 1년 3개월만 복역하고 가석방됐다”며 문 의원의 해명을 요구했다. 새누리당은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문 의원이 ‘정기회기 결정 안건’에 대해 기권표를 행사한 것도 문제 삼았다. 홍지만 원내대변인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파괴를 외치던 사람을 사면해 준 문 의원이 표결에 기권까지 했다”며 “문 의원은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홍문종 사무총장도 의원총회에서 “우리 시대가 ‘석기시대’가 된 것에 대해 노무현 정권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의원은 발끈했다. 그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사건도, 또 이번 사건에 대한 반응도 한 30년 전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며 “변호사 시절 주사파 사건 변론도 했는데 그것도 다 책임지라고 할지 모르겠다”고 불쾌해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성명서 발표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날 의총에서 원내지도부가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려 하자 이재오 의원이 “정치권은 일단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만류했다. 정몽준 의원까지 나서 “언론보도만 보고 성급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국정원 수사 발표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김태흠 원내대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게 지금 뭐하는 거냐. 통진당 의원들과 국정을 논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결국 새누리당 의원들은 시간에 쫓겨 성명서를 채택하지 못한 채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민주당에서도 이석기 사퇴 요구 나와 민주당은 한층 단호한 어조로 통진당과 선을 그었다. 김한길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헌정파괴 세력과는 단호히 절연하겠다”며 “민주당은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생각하지 않는 무리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전략홍보본부장인 민병두 의원은 라디오에서 “고립된 친북주의자들의 피해망상과 영웅심이 결합돼 이질적이고 광신교적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은 용납될 수 없다”며 “이 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국회 본관 앞에서 ‘체포동의안 처리 반대’를 주장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통진당 이정희 대표를 격려 방문해 비난을 받았다. 온라인에서는 “같은 종북이냐”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정 의원은 트위터에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매몰차게 모른 척 지나가라고? 에이∼ 그건 아니다. 통진당에 동의하진 않지만 그래도 ‘고생한다’고 위로했다”고 적었다. 민동용·고성호 기자 mindy@donga.com}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폭력을 동원한 체제 전복을 도모하면서도 선거를 통해 2017년까지 정권을 장악하는 합법·비합법 병행 방식의 집권플랜을 세웠음이 2일 국회에 제출된 체포동의요구서를 통해 드러났다. 체포동의요구서에 따르면 이 의원은 지난해 8월 경기 광주시 곤지암에서 열린 ‘진실승리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2014년 광역(지방선거), 2016년 총선에서 제1 진보 야당을 구성하고 2017년이야말로 진보집권의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올리자는 전략적 방향을 세운 바 있다”고 말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와 2016년 20대 총선을 통해 제1야당의 위상을 확보한 뒤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의원이 선거를 통한 권력 장악을 상정한 것은 ‘RO(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조직)’ 회합에서 “물질적, 기술적 총” “전쟁” 등 폭력, 전쟁을 강조한 것과는 다른 접근법이다. 한 방에 뒤집어엎는 식의 기동전만으로는 체제를 전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이 5월 12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열린 RO 회합에서 조직원들에게 대한민국 국회를 ‘혁명 투쟁의 교두보’ ‘계급투쟁의 최전선’으로 규정하면서 통진당 당권을 장악해 정치적 합법 공간을 확보한 것을 “혁명의 진출”이라고 평가한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교양학부)는 “정당의 비례대표 경선이 100%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모바일투표처럼 민의를 왜곡할 수 있는 제도를 막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이석기는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체포동의요구서는 또 “피의자 이석기를 비롯한 지하조직 RO의 핵심 조직원 상당수는 반국가단체 ‘민혁당’ 출신으로, ‘남한 사회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조직을 결성하고 그 목적 실현을 위해 조직원들을 사회단체,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정당, 국회 등 다양한 분야에 침투시켜 각자의 위치를 ‘초소’로 삼아 ‘혁명’을 준비해 왔다”고 적시했다. 이 의원은 통진당 분당(分黨)의 원인이 된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태에 대해서는 “혁명과 반혁명 세력의 치열한 전쟁”으로 규정했다.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국회법상 본회의 보고 후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처리하도록 규정돼 있으며 빠르면 3일 표결 처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혐의는 내란음모라는데 단 한 건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사상 검증, 마녀사냥”이라고 반발했다.민동용·황승택 기자 mindy@donga.com}

정기국회 첫날인 2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원들에게 A4용지 세 쪽짜리 서한을 돌렸다. 그는 “국가정보원이 제게 내란음모라는 어마어마한 딱지를 붙여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으로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며 “저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를 거둬 달라”고 호소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나서자는 저의 진심이 ‘총’이라는 단어 하나로 전체 취지와 맥락은 간데없고 ‘내란음모’로 낙인찍혀 버렸다”며 “앞뒤 말을 가위질해 선정적 단어만 골라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야말로 왜곡, 날조가 아니냐”고도 했다. 그런데 이 같은 발언은 며칠 전 발언과 배치된다. 이 의원은 5월 12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종교시설에서 열린 ‘RO(혁명조직)’ 회합 녹취록이 보도되자 “총기 운운한 적이 없다”(8월 30일 기자회견)고 부인했다. “물질적, 기술적 총을 언제 준비하느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자루 권총 사상이다” 등 여러 차례 총기와 관련한 녹취록 발언은 조작된 것이란 주장이었다. 그런데 해명을 하려다 그만 “총 발언은 있었다”고 시인해버린 것이다. 이 의원은 이날 정기국회 개회식에 들어가기 전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에 다녀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2005년 3월, 2007년 3월 두 차례 북한을 방북했다”는 동아일보 보도내용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러나 통진당 홍성규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의원이 ‘북한을 다녀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맥락상 언론에 호도되고 있는 밀입북과 관련한 것이다. 이 의원은 금강산 관광은 몇 차례 다녀왔다”며 엉뚱한 해명을 내놨다. 정치권에선 “이 의원과 통진당이 해명에 급급하다 자꾸 자살골을 넣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한편 통진당 이정희 대표는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이 대표는 “중세 마녀사냥을 중단하라”며 “체포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은 한국전쟁 피바람 속에 자행된 즉결 처분과 같다”고 주장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요구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사회주의 혁명 달성을 위해 폭력적 수단뿐만 아니라 선거를 통한 합법적 방식을 활용한 정권 장악 프로그램도 구체적으로 세워놓았다는 점이다. 이 의원은 자신이 이끄는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조직을 통해 이 같은 ‘장밋빛’ 집권 전략을 그려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의원은 총선과 대선 승리를 통해 ‘한반도의 지배 질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후된 사회가 아닌 발전한 사회에서는 체제를 한 방에 뒤집어엎는 ‘기동전’ 대신 정치에 참여해 ‘진지전’을 펼쳐야 한다는 이탈리아 사회주의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론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석기의 ‘집권 플랜’ 내용은 2일 국회에 제출된 이 의원의 체포동의요구서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8월 RO 회합에서 조직원들에게 “2014년 광역(지방선거), 2016년 총선에서 제1 진보 야당을 구성하고 2017년에 진보 집권 시대의 새로운 서막을 올리자는 전략적 방향을 세운 바 있다”고 말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을 통해 민주당을 넘어서는 제1야당의 위치를 확보한 뒤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집권 계획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 의원은 또 지난해 4·11총선 결과와 관련해 “(의석수) 13석 돌파로 제3세력으로서 기존 양당 구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새로운 진보군을 형성했다”고 자평했다. 이어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혁명적 낙관주의와 전투적 기상으로 정권 교체를 반드시 이뤄 내자”고 덧붙이기도 했다. ‘가는 길 험난해도…’라는 말은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내세웠을 때 수십만 명의 아사(餓死)자가 발생하자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구호다. 정치권에서는 “종북세력의 허황된 망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조직을 가동하고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이 된 점 등을 무겁게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안당국은 RO가 집권플랜의 토대 위에 무장투쟁도 병행하는 구체적 실천 방안을 준비해 왔다고 보고 있다. 체포동의요구서에서 공안당국은 이 의원을 지하조직 RO의 수괴로 지칭한 뒤 조직원들에게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킬 것을 선동, 음모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RO의 강령에 나온 ‘남한사회 변혁운동’은 합법, 비합법, 폭력, 비폭력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 ‘남한 사회주의 혁명 투쟁’을 의미하며, 강령 실현을 위해 총책인 이 의원의 지휘 아래 조직원들은 사회단체, 지자체, 공공단체, 정당, 국회 등에 침투해 ‘혁명의 결정적 시기’를 기다려 왔다”고 밝혔다.○ 남한은 ‘식민지’-북한은 ‘강성대국’ 체포동의요구서에서는 이 의원이 남한 사회를 북한이 규정하는 것처럼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여러 군데서 드러난다. 그는 “미국은 남측의 양당 체계를 바탕으로 분할통치 전략을 유지해 왔다”고 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양당 체제를 미국의 한국에 대한 통치 전략으로 본 것이다. 그는 “현 정세는 미 제국주의에 의한 낡은 지배 질서가 몰락 붕괴하는 격동기”라며 “조선반도는 미 제국주의 지배 질서의 가장 약한 고리이며 제국을 무너뜨리는 세계 혁명의 중심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이 의원은 북한에 대해선 ‘강성대국’ ‘핵 보유 강국’이라며 우호적 시각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2012년 12월 12일 띄웠던 광명성 3호로 표현되는 위성의 3호는 우주과학의 역사를 보면 엄청난 일”이라며 “미 국방정보국(DIA)이라든가 다양한 (미국의) 공식 의견을 보면 (북한이) 핵 보유 강국이 되었다는 것이고 북은 미국의 위협 세력이라는 것. 이것은 팩트다. 객관적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 이석기 퇴로 차단 공안당국은 이 의원에게 기존의 혐의(내란음모, 국가보안법 위반) 외에 ‘내란선동’ 혐의를 추가했다. “강연만 했고 내란을 모의한 적은 없다”는 이 의원의 해명으로도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퇴로를 차단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내란음모 혐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2명 이상이 내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의견 교환’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의원이 모임을 소집하지 않았고 참석자들과 논의를 한 것이 아니라 강연만 했다면 법적으로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내란선동은 적용 범위가 좀 더 넓다. 녹취록에는 이 의원이 직접 “전쟁 준비” 등을 언급한 것으로 나와 있다.최창봉·민동용 기자 ceric@donga.com}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통진당이 1일 ‘프락치를 활용한 국가정보원의 정당 사찰’을 주장하면서 역공에 나섰다. 통진당 이상규 의원은 국회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이 수원에서 활동하는 (통진당) 당원을 거액으로 매수해 수개월에서 최대 수년간 (통진당을) 사찰했다”며 “이번 사건은 내란음모가 아닌 국정원의 정당 사찰, 프락치 공작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본인의 자백은 아니지만 저희가 확인한 바로는 이 당원은 가족 전체가 해외로 나가 평생 살 수 있는 거액을 받았다”며 “이 당원이 도박 빚으로 곤경에 처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의) 매수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 조력자는 40대 중후반 남성으로 수도권 사립대를 졸업하고 민주노동당 초기부터 수도권에서 당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경기도에서 민노당 후보로 출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성은 국정원의 통진당 내사가 시작된 2010년 말 이전부터 경기동부연합 지하조직 RO(혁명조직)의 내부 비밀회합 등 다양한 정보를 국정원에 전달했고, 일부 모임의 동영상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영상들은 내란음모 등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유력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어 주목된다. 통진당의 매수설 제기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이라며 “(통진당 주류인) 경기동부연합은 (내부) 사정이 복잡하다. 조직에 대한 불만도 있고 회의감도 있고…”라고 말했다. 통진당의 내부 문제 때문에 조력자가 자발적으로 나섰다는 설명이다. 통진당은 역공을 통해 ‘정국 반전’을 기대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통진당이 5월 12일 비공개 회합 녹취록이 사실임을 자인(自認)하는 모양새가 돼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진당의 주장을 뒤집어 보면 국정원이 통진당 내부의 정보원으로부터 내부 사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받았고, 5·12회합 녹취록도 사실이라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통진당 등의 종북(從北) 성향을 비판해온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이 의원의 기자회견 뒤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통진당 스스로 내부 고발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녹취록의 신빙성이 오히려 높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의 개인사무실, 집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한 이후 통진당의 대응은 오락가락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동아일보가 첫 압수수색 다음 날인 29일 “이석기 의원 등이 비공개 회합을 열고 통신 철도 유류저장고 등 국가 기간시설을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운 혐의가 있다”고 보도하자 이 의원은 국회에서 “사실이 아니다. 철저한 모략극이고 날조”라고 주장했다. 당시 이 의원은 5·12회합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30일 5·12회합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되자 같은 날 오전 김재연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런) 모임이 없었다”며 모임 자체를 부인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홍성규 대변인은 모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 의원을 초빙한 정세 강연으로 당원 행사였다”고 해명했다. 당이 5·12회합을 ‘당원 행사’라고 주장하자 김 의원은 1일 보도전문채널에 나와 “지하조직 RO 비밀회합은 없었고 당연히 가지도 않았으며, 당원 행사 강연 모임은 갔다”며 이틀 전과 다르게 말했다. 통진당의 ‘정당 사찰’이라는 주장에 대해 법조계 등에서는 “수긍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검찰 출신 고영주 법무법인 ‘케이씨엘’ 대표변호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국가안보를 위해(危害)하는 사범에 대한 조사와 수사는 국정원의 당연한 업무”라며 “안보 위해 사범 수사에서 정당은 치외법권 지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정기국회가 2일 시작되지만 의사일정이 합의되지 않아 당분간 파행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은 금주 후반 처리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2일 체포동의 요구서를 재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은 우선 체포동의안부터 처리하자고 주장한다. 체포동의 요구서가 이르면 2일 국회에 제출될 것으로 보고 이날 본회의를 개최하자고 민주당에 요구해 놓은 상태다. 이날 요구서를 보고받은 뒤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표결’한다는 국회법에 따라 주 후반 ‘원포인트 본회의’를 다시 열어 동의안을 처리하자는 것이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1일 여의도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의장도 민주당 지도부에 본회의를 빨리 열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민주당은 정기국회 의사일정과 별개로 통 크게 결단해 체포동의안을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과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일정은 나중에 협의하더라도 내란음모 사건 수사에는 국회가 최우선적으로 협조하자는 것이다. 민주당도 체포동의 요구서가 국회로 넘어오는 대로 처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민주당이 이석기 의원 문제를 원칙적으로 대응한다고 해서 ‘국가정보원에 동조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고, 이 때문에 국정원 개혁까지 수포로 돌아간다는 판단도 국민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체포동의안은 국회법 절차에 따라 원칙대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2일 개회식 참석 여부도 의원총회로 결정할 예정이다. 현재로선 참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가 체포동의안 처리에 합의하더라도 국회가 정상화되기 어려운 분위기여서 나머지 의사일정은 합의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내에선 장외투쟁을 접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강경파가 ‘청와대의 태도 변화 없이 회군할 수는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 박 대변인은 “사상 초유의 제1야당 대표의 노숙투쟁과 한 달 넘는 대국민보고대회를 진행하며 국정원 개혁에 앞장서고 있는 민주당의 전의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11일 이후에야 김한길 대표와의 회동을 예상해 볼 수 있어 정기국회 파행이 10일 이상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10월 재·보궐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국정감사 시점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것으로 전해졌다.고성호·민동용 기자 sungho@donga.com}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이끈 지하조직 ‘RO’의 5월 회합에서 강경 발언을 한 인물들의 이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녹취록에서 “폭탄을 제조하고 통신과 철도를 차단시켜야 한다”는 등 과격 발언을 한 것으로 나타난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49)은 수원진보연대 수원시생활보장위원회 등 경기 수원시에 기반을 둔 단체에서 주로 활동했다. 이 고문은 올해 초 미행하던 국가정보원 직원과 몸싸움을 벌여 국정원과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 고문과 국정원 직원은 각각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며 상대를 상해 등의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저격하는 총을 준비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홍순석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49)은 경희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2002년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의 사무총장을 맡았다. 이후 경기도당 부위원장을 맡으며 경기동부연합 핵심 인물들의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2011년에는 현재 통진당 원내부대표인 김선동 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했고, 지난해에는 이석기 의원의 수행 비서를 맡았다. 지난해 4·11 총선에서는 경기 안양 동안을에서 통진당 예비후보로 출마했다가 당시 민주통합당 이정국 후보에게 야권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이 고문과 홍 부위원장은 한동근 전 통진당 수원시위원장과 함께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군사) 매뉴얼을 준비해야 한다”고 발언한 이영춘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장(40)은 이석기 의원 등 당권파가 통진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하도록 배후에서 도운 전력이 있다. 이 지부장은 지난 총선 때 이 의원을 비례대표로 선출하는 과정에서 대리 투표를 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구속됐다가 올해 4월 보석으로 풀려났다.조건희·김수연 기자 becom@donga.com}
현역 국회의원의 내란음모라는 초대형 이슈의 등장으로 민주당이 어쩔 수 없이 원내활동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장외투쟁에 대한 여론의 호응이 높지 않은데다, 더이상 우물쭈물하다가는 ‘종북(從北) 논란’에 휘말려 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은 30일 김한길 대표가 노숙투쟁은 계속하되, 의원들은 9월 2일 정기국회 개회식에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기국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다만 정기국회 참여 조건에 대해서는 새누리당과 좀 더 협의를 한다는 계획이다. 전날 국회에서 열린 정기국회 대비를 위한 의원 워크숍에서는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장외투쟁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61.9%나 됐다고 한다. 김 대표도 “국회는 국회의원에게만 특별하게 허용된 최고의 투쟁의 장이다. 어떤 경우에도 국회를 포기하고 외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장외투쟁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김 대표는 “국회에서 일할 여러분의 건투를 빈다”며 일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민주당은 통합진보당과의 선긋기에도 주력하고 있다. 김 대표는 30일 서울광장 천막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사건과 (통진당) 내란음모 사건을 별개의 것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개혁’과 ‘내란음모 사건’을 분리해 사전에 이번 통진당 사태가 미칠 여파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올 경우 적극 협조할 가능성이 높다. 당 핵심 관계자는 “(통진당) 녹취록을 보면 내란음모는 몰라도 (국가보안법상) 이적(利敵) 동조는 확실하다.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국가정보원의 수사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잠적’ 하루 만인 29일 모습을 드러냈다. 전날 국정원이 이 의원을 비롯한 통진당 관계자들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과 체포를 개시한 상황에서 행방이 묘연했던 그가 당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 참석해 자신에 대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나선 것.○ 하루 만에 나타나 “국정원의 날조” 이 의원은 당 회의에서 “저에 대한 혐의 내용 전체가 날조”라고 정면 반박했다. 이어 “국기문란 사건의 주범인 국정원이 진보와 민주세력을 탄압하고 있다”며 “유사 이래 있어본 적 없는 엄청난 탄압책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장에 적시된 국가기간시설 파괴를 비롯한 내란음모 혐의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이 의원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한마디로 황당하다. 국정원의 날조다. 기가 막힌다”고 비난했다. 특히 총기 및 폭약 마련을 통한 국가기간시설 파괴 등의 혐의에 대해선 “상상 속의 소설이다. 국정원의 상상력에서 나온 게 아니냐. 전혀 사실이 아니며 철저한 모략”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행적을 묻는 질문에는 “뭘 하긴 뭘 했겠나. 서울에 있었다”고 했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빨리 정리해 국정원의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왔다”고도 했다. 이 의원은 시종 여유로운 모습으로 수시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검은색 양복 차림이었지만 국회의원 배지는 부착하지 않았다. 이 의원이 전략을 바꾼 데 대해 정치권에서는 “이 의원이 변장을 하고 도주를 했다”는 보도까지 나온 데다 “당당하다면 왜 수사를 피하나”란 비난이 고조되면서 더이상 숨어 있다가는 여론만 악화될 뿐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 야당 인사는 “결정적인 증거물 등을 숨겨놓기 위해 시간이 좀 필요했지 않았겠나”라며 “다시 나타난 것은 어느 정도 상황 파악, 대응 방안 등이 마련됐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개별 사안에 대한 진위 공방보다는 국정원의 수사 전체를 ‘야당 탄압’ ‘용공 조작’으로 몰면서 당 차원의 투쟁으로 맞서는 전략을 택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만 하루 이상 걸린 압수수색 한편 국정원은 이날 이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520호)에 대한 압수수색을 재개했다. 국정원은 이 의원이 오전 10시 반 당 회의를 마치고 의원회관 사무실로 들어오자 수색을 재개하려 했다. 그러나 압수수색 범위를 놓고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대치 상태를 이어갔다. 통진당 측은 ‘의원 집무실’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국정원 측은 보좌관들의 책상을 포함한 의원실 전체를 수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오경엔 양측이 고성을 주고받으며 싸늘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결국 양측은 통진당의 요구대로 집무실에 대해서만 압수수색을 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오후 2시 30분 압수수색을 재개했다. 이 의원은 오후 3시 10분경 변호사와 함께 압수수색영장 내용을 열람한 뒤 신체 수색을 받았다. 법원이 발부하는 영장은 압수와 수색으로 나뉘는데, 휴대전화, USB 등 휴대가 가능한 증거물을 확보하기 위해 신체나 옷에 대한 수색 영장이 포함된다. 압수수색 집행 과정에서 피의자가 옷 속에 중요한 증거 자료를 숨길 경우 확보하기 위해서다. 신체 압수수색을 마친 이 의원은 오후 3시경 옆방인 같은 당 오병윤 의원실(521호실)로 이동했다. 오후 4시 10분경엔 근처 김재연 의원실(523호실) 관계자들이 이 의원이 머무는 오 의원실로 간이침대를 옮겼다. 오후 8시엔 치킨, 김밥 등 먹거리가 오 의원실로 들어갔다. 압수수색은 자정 무렵까지 계속됐다. 수사팀 관계자는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담긴 문서를 복사하고, 삭제된 문서를 복구해야 하는 까닭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통진당은 당을 투쟁본부로 재편했다. 오후 3시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에서 광역시도당 위원장 30여 명, 이정희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결사항전에 돌입할 것을 선포한다”며 “공안 탄압을 즉각 중단하지 않는다면 정권의 무덤을 파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요일인 31일에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기로 했다.손영일·민동용 기자 scud2007@donga.com}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9월 정기국회 개회를 나흘 앞둔 29일 나란히 의원 연찬회를 열어 전열을 가다듬었다. 또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 혐의에 대한 국가정보원 수사의 파장을 예의 주시했다. 황우여 대표는 강원 홍천의 한 리조트에서 열린 의원 연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국회의원이 내란 음모의 주동자라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세력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철저한 수사를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 핵심 인사였던 김병준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강사로 초청됐다. 김 전 실장은 세제개편 논란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은 조세개혁이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산층에게 세금을 걷는 것을 국민들 모르게 살짝 뽑아내서는 안 된다. 세금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정정당당하게 걷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산층의 세(稅) 부담을 줄이겠다면서 세제개편안을 하루 만에 수정한 것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새누리당은 기업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주택시장 활성화 등으로 경제의 선순환을 높이기 위해 정기국회에서 126개 법안을 중점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 워크숍에서 “이제까지 알려진 혐의가 사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충격적 사건이다. 또 하나의 국기문란 사건으로 철저한 수사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통진당과 선 긋기를 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그러면서도 “다만 국정원 개혁이 국민적 요구로 대두된 시점에 불거진 만큼 추이를 예의 주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호준 원내대변인은 “(원내외) 병행투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기국회 개회식(9월 2일)에는 참석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다만) 전병헌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나와 연설하는 경우는 (다른) 고려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김한길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제안한 양자회담 논의에 진척이 없을 경우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보이콧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다. 고성호·민동용 기자 sungho@donga.com}
수사당국은 내란음모 등의 혐의를 받고 잠적했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소재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당국의 한 관계자는 28일 “이 의원은 현재 수도권에 소재한 나름의 은신처에 머물고 있다”면서 “국회가 회기 중이라 체포를 유보하고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수사팀은 28일 오전 6시 반부터 이 의원의 집,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부친의 집까지 압수수색을 했지만 이 의원의 신병은 확보하지 못했다. 영장이 오전 1시 반경 발부됐고, 발부 사실을 수사 관계자들만 알고 있었지만 정치권에선 이 의원이 압수수색영장 발부 소식을 사전에 알고 몸을 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통진당 홍성규 대변인은 “이 의원과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가 “이 의원과 연락이 닿고 있지만 어디 있는지는 노코멘트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헌법 44조 1항은 국회의원이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의원에 대한 체포 영장은 청구되지 않았으나 이달 30일로 회기가 종료되고 정기국회가 개회(9월 2일) 될 때까지 기간인 31일과 다음 달 1일 검찰이 체포영장을 발부받는다면 국회 동의 없이도 이 의원을 체포할 수 있다. 이 의원은 지난해 4월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2번으로 국회에 들어왔다.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이 대리투표, 유령투표가 자행된 부정선거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원직 사퇴 압력을 받았지만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100% 완벽한 선거는 없다”는 등의 주장을 펴면서 버텼다. 통진당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의 ‘두뇌’이자 ‘몸통’ ‘돈줄’로 불린다. 대학 졸업 후 인터넷매체 ‘민중의소리’ 이사, 정치컨설팅 및 홍보·광고 기획업체 CN커뮤니케이션즈(CNC) 대표, 여론조사업체인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등을 지냈다. ‘종북(從北)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종북보다 종미(從美)가 훨씬 더 큰 문제”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없다. 독재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것” 등의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의원은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복역했지만 노무현 정부 때 두 차례나 사면, 복권됐다. 지난해엔 자신이 운영하던 CNC를 통해 선거비용을 부풀려 국고 보전비용 4억여 원을 받아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손영일·민동용 기자 scud2007@donga.com}
국가정보원이 28일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수사에 나선 통합진보당 인사들은 ‘경기동부연합’의 핵심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동부연합은 지난해 총선 전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때 세간에 알려졌다. 이정희 당시 통진당 공동대표 측의 여론조사 조작사건을 계기로 통진당의 당권파 핵심이 경기동부연합이란 사실이 드러난 것. 경기동부연합은 성남 용인 등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노동·운동권 출신의 정치계파다. 통진당 이석기 의원은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82학번으로 핵심적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민족해방계열(NL)이 전국 대학가를 점령하며 대정부 강경투쟁을 벌이던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과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등 13개 단체와 재야 및 학생운동권을 두루 엮어 출범했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한 지역조직으로 출발했다. 경기동부연합은 당시 전국연합을 구성하고 있던 지역연합 8곳 중 하나였지만 2001년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출범한 뒤 제도권으로 진입해 지역위원회를 장악해가면서 당의 주류로 등장했다. 이후 경기동부연합을 중심으로 한 자주파와 비주류였던 평등파(PD)는 심한 갈등을 빚었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때 당 중앙위원회의 유감 표명 성명 채택을 막고 ‘핵실험은 미국의 책임’이라는 성명서 수정안을 작성하다 격하게 대립한 것. 결국 2008년 분당(分黨) 사태로 이어졌다. 이때 경기동부연합은 공식 해산했지만 지하조직은 지금까지 건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총선에서 이정희 전 의원을 영입하고 대표(2010년)로 만들면서 민노당의 당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지난해 총선 후 통진당에서 정의당이 갈라져 나온 뒤에도 경기동부연합은 통진당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경기동부연합이 통진당의 ‘몸통’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의 지령을 받는 남한 내 지하조직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과도 연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강철서신’의 김영환 씨와 하영옥 씨가 만든 민혁당은 1997년 해체됐지만 이후 정보기관 및 사정당국에 따르면 조직이 재건됐다. 그리고 재건을 주도한 세력이 경기동부연합을 장악했다고 당국은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여야 대치 국면이 9월 정기국회를 목전에 두고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국경색의 돌파구로 여겨지던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의 회담 성사 분위기도 방식과 의제를 놓고 서로 평행선을 달리면서 좀처럼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27일째 서울광장에서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고, 새누리당은 국회로 돌아오라고 비판을 하고 있다. 27일 여야의 최고지도자인 당 대표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과 해법을 들여다봤다.◆황우여 새누리 대표靑3자회담 거부로 리더십 ‘흠집’野양자회담 고수해 정치적 소외“여야 대표 먼저 만나 해법 찾아야일단 9월 국회부터 정상화 필요”“나는 정치 초단이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27일에도 그랬다. 서울 여의도 당사 6층 대표실에서 만난 황 대표는 ‘별명이 어당팔(어수룩해 보여도 당수가 팔단에 가깝다는 것을 빗댄말)인데, 경색된 정국의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부드러운 성품 때문에 대치 정국에서도 늘 웃고 다녀 당내에서 ‘실없어 보인다’는 핀잔을 자주 듣는다. 잠시 뒤 그는 “아휴∼. 다음 수(手)를 찾아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실 민주당 장외투쟁 국면에서 황 대표의 정치적 위상은 꼬여버렸다. 지난달 27일 여야 대표 회동을 제안하고 실무협상까지 벌였지만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이달 3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을 제안하면서 공중에 붕 뜬 신세가 되어 버린 것. 게다가 사흘 뒤 박 대통령은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까지 포함한 5자회담을 제안했다. 전날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참여하는 3자회담을 수정 제안했던 황 대표로서는 머쓱하게 됐다. “김 대표가 여야가 해결하자고 치고 나와야 (내가) 룸(공간)이 생기는데 대통령과 직거래하겠다고만 하면….” 황 대표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일각에선 황 대표가 지난해 5월 선출 이후 최대의 리더십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렇다고 집권여당의 대표가 ‘샌드위치’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그래도 해법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황 대표는 “당대당’으로 해결을 해야 해요. 여야 대표 회동이 우선이에요”라고 답했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을 제안한 3일 이전의 단계로 ‘원상회복’을 시키자는 얘기였다. 그래야 꼬인 정국경색의 스텝을 풀고 새롭게 발을 맞출 수 있다는 논리였다. 황 대표는 “야당이 대통령을 만나면, 대통령은 여당 대표와 회동을 하고, 다시 여야 대표가 의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서 “입법권이 있는 여야가 국회에서 담판을 짓고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선진정치의 모습”이라고 했다. “한 번 해서 안 되면 되게 하는 것이 당 대표들의 역할인데 왜 10년 전 또는 30년 전의 구정치로 돌아가려고 하느냐”고 한탄하기도 했다. 황 대표는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양자회담이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모양새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골치 아픈 일이 생길 때마다 장외투쟁으로 나가고 다시 청와대와 회담하는 관례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가 황 대표의 바람대로 다시 여야 대표회담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이뤄지더라도 최소한 9월 정기국회를 정상화시키면서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당 일각에선 여야의 대치 정국이 10월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 평가를 받고 나서야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황 대표는 “내가 혈혈단신으로 여기(당 대표)까지 온 것도 사심 없이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라며 “당대당으로 해결하는 것이 정당정치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김한길 민주당 대표先양자회담-後다자회담 역제안“국정원 도움 안받았다는 말 믿어”장외투쟁 속 대화에도 강한 의지일부 초선의원 단식투쟁 말려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27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천막당사에서 ‘노숙투쟁’을 선언했다.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제안한 ‘민생 관련 5자회담’에 대해 먼저 양자회담을 갖고 국가정보원 정국의 해법을 찾은 뒤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 다자회담에서 민생을 논의하자고 역제안했다. 투쟁 수위를 한 단계 끌어올리면서도 박 대통령에게 다시금 정국 해법의 공을 넘긴 것이다. 김 대표는 천막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에 대한 생각’이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다음 달 4일 박 대통령이 러시아와 베트남 순방길에 오르기 전에 답변을 줄 것을 요구했다. 김 대표는 우선 “민생을 위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회담은 좋다”면서도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의 양자회담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결론을 내고, 이어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 다자회담에서 민생을 의논한다면 두 회담 모두 국민과 국가를 위해 바람직한 자리가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잦은 만남은 국민이 바라는 바”라며 “민주당과 저는 대통령 알현을 앙망(仰望)하며 광장에 천막을 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만남은 서로가 정국의 정상화라는 목적을 갖고 만나는 것”이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국정원에 도움을 청하거나 국정원을 활용하지 않았다’고 한 데 대해서는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대선을 전후해 있었던 헌정 유린 사건들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생각이라면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한 대통령으로서는 타당하지 않은 인식”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이날부터 천막당사에서 노숙투쟁에 돌입했다. 그는 “집사람에게 장기외박 허락을 득했고 아침에 샤워하지 않아도 되게끔 머리도 짧게 깎았다”며 바짝 올려 친 헤어스타일을 소개하면서 투지를 다졌다. 김 대표가 한뎃잠을 자는 것은 정치를 시작한 뒤 처음이라고 한다. 김 대표의 노숙투쟁 선언과 박 대통령을 향한 ‘선(先)양자회담-후(後)다자회담’ 역제안은 당내 결속을 도모하면서 여권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한 다목적 카드로 풀이된다. 당내에선 당 대표가 솔선수범해 노숙투쟁에 나섬으로써 정부 여당에 대한 경고 강도를 높이는 한편 느슨해졌던 긴장감을 다시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 관계자는 “다음 달 2일 정기국회 개회식에 민주당은 참석할 것”이라며 “국회를 파행하겠다는 게 아니라 호락호락하게 정부 여당이 짜놓은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강경파는 당 지도부의 원내외 병행 투쟁이 미적지근하다며 정기국회 보이콧을 요구하고 있다. 몇몇 초선 의원은 김 대표를 찾아 “단식을 하겠다”고도 했지만, 김 대표는 “길게 가야 한다. 내가 길을 만들어 주겠다”며 만류했다고 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