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성

황재성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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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말 언론계에 입문해 주로 부동산을 중심으로 경제 뉴스를 취재했습니다. 인간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문제를 늘 주목하고 있습니다.

jsonh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18~2025-12-18
교육45%
경제일반20%
인사일반13%
운수/교통7%
기업3%
금융3%
복지3%
부동산3%
기타3%
  • [황재성의 오늘과 내일]“부작위는 처벌받지 않는다”

    답답한 가슴을 뚫어주는 시원한 사이다 맛이다. 새 정부의 출범 후 보여준 여러 가지 파격적인 행보와 조치들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이다. 실제로 총리, 부총리 후보자 명단을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뒤 취재진에게 “질문할 게 없느냐”고 묻거나 비서관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청와대 경내를 하얀 셔츠 차림으로 거니는 모습은 신선했다.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자 인정이나 관료 사회의 순혈주의 타파를 위한 비고시 출신 발탁 인사 등과 같은 조치 역시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라는 반응과 함께 보수, 진보 진영 양측 모두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8, 9년간 집권 준비를 제대로 한 것 같다”는 상찬이 쏟아졌고 기자도 그런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22일 정부의 4대강에 대한 정책 감사 지시 발표는 듣는 내내 “도대체 왜 지금”이라는 의문을 갖게 했다. 더군다나 청와대는 발표 말미에 “개인의 위법·탈법 행위 적발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감사 과정에서 명백한 불법 행위나 비리가 나타날 경우 상응하는 방식으로 후속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립적인 지위를 갖는 감사원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언급이다. 새 정부 출범 후 4대강 사업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검증 작업이 이뤄지리란 예상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일부 시민단체들이 4대강에 대해 줄기차게 뿌리 깊은 반감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정부 초기 해결해야 할 산적한 경제 사회 안보 문제들을 제쳐두고 4대강 사업을 최우선 개혁과제로 꺼내든 건 이해하기 어렵다. 4대강 사업은 보수, 진보의 진영 논리를 떠나서 찬반이 엇갈릴뿐더러 사업 효과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아서다. 또 4대강 사업에 대한 재조사의 근거로 제시되는 환경 훼손이나 경제성 논란 등도 찬반의 입장 차가 분명하다. 게다가 이전 2개 정부에서 감사원-공정거래위원회-검찰-경찰 등 사정기관 대부분을 동원해 각종 감사와 조사, 수사 등을 해왔다는 점도 고려해 봐야 한다. 한 대형 건설사 간부는 “이명박 정부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 때엔 사정기관 몇 곳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자료를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다른 기관이 다 가져갔으니 그쪽에서 자료 협조를 받으라는 말까지 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시쳇말로 탈탈 털렸다는 뜻이다. 새 정부가 또다시 들춰서 새로운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런 와중에 역점 국책사업이라는 정부의 요구에 마지못해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는 관련 업체들의 항변은 묻힌 지 오래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조치들이 공직사회에 미칠 영향이다. 정권이 바뀌고,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책임 추궁의 화살은 당시 행정책임을 맡았던 공직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미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책 감사 내용을 소개하면서 당시 책임자로 일했던 공직자들의 이름을 거명하고 처벌 운운하는 언론이 적잖다. 이 같은 마녀사냥의 결과가 ‘변양호 신드롬’을 낳았고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을 야기했다. 정부의 4대강 정책 감사 발표가 있은 뒤 만난 전직 고위 관료는 “한국 사회에서 공직자로 살아남기 위해 명심해야 할 금언 중 하나가 ‘부작위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말”이라고 했다. 이래서는 공직사회가 창의성을 가지고 자발적이고 주도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길 기대하긴 어렵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문제나 국내 경제가 처한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파괴적인 혁신을 요구하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말 그대로 한 치 앞의 미래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책 감사가 ‘김빠진 사이다’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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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성의 오늘과 내일]일자리 SOC 사업 팽개친 대선

    “이쯤 되면 SOC(사회간접자본)를 SOC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거겠죠.” 최근 열린 ‘대선 후보 건설·주택 분야 공약 점검 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건설 관련 연구기관, 전문가집단 등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각 후보 진영에 SOC 투자의 시급성을 강조하고, 필요한 사업 등을 담은 두툼한 보고서들을 전달했지만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는 푸념도 곁들였다. 실제로 19대 대선에 나선 유력 후보들은 한목소리로 공공임대주택 확충 등 주거 복지에 집중하면서 이슈가 될 만한 대형 SOC 개발 공약은 내놓지 않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대다수 후보가 SOC 등 인프라 투자에 대한 우선순위를 낮게 책정했다. 또 이들이 내놓은 SOC 공약도 신규 사업보다는 대부분 기존에 검토 중이거나 지연되고 있는 사업 위주였고, 구체성이나 실현 가능성도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28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개최한 2차 TV토론(경제 분야)에서 건설·부동산 분야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건설업 홀대론’이 나오는 이유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집권한 정부는 선거 때 굵직한 건설·부동산 관련 공약을 앞세워 표심을 자극했다. 노태우 정부는 주택 200만 채(5개 신도시) 건설, 김영삼 정부는 규제 완화를 앞세운 준농림지 해제, 김대중 정부는 개인 재산권 보호를 명분으로 하는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를 각각 내걸었다. 노무현 정부는 행정수도 이전,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4대강) 건설을 각각 공약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규제 완화를 통한 부동산시장 부양을 앞세워 대선을 치렀다. 이런 공약들은 모두 뜨거운 찬반 논란을 일으켰지만 해당 후보들이 대권의 꿈을 실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生前)에 “수도 이전 공약으로 선거에서 재미를 봤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또 이런 공약들을 해당 정부가 실행하는 과정에서 국내 건설업의 수준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그 결과 현재 동남아시아나 중동 지역에 신도시나 고속철도를 수출할 정도의 내공도 생겼다. 이번 대선 후보들이 건설·부동산 관련 공약 개발에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장미 대선’으로 치러지는 특수 상황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 12월에서 5월로 당겨지면서 충분한 사전 검토와 논의가 필요한 건설·부동산 관련 공약을 만들 시간이 부족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일부 유력 후보가 SOC 사업 투자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실제로 유력 후보들은 천편일률적으로 건설 관련 통제나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공약을 내놨다. 하지만 건설업은 저성장의 늪에 빠질 우려에 처해 있는 한국 경제가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분야다. 지난 6년간 국민총생산에서 건설 투자가 차지한 비중은 15%나 된다. 산업별 취업자 수도 제조업, 도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특히 지역경제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게다가 국내 건설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는 점도 우려스럽다. 최근 발간된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건설의 노동생산성은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이고, 조사 대상 41개 나라 가운데 19위에 머물렀다. 건설 기업들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2007년 6.4%에서 2015년 0.7%로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현재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대대적인 SOC 투자를 통해 경제 재도약의 발판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일주일 뒤 들어설 새 정부가 이 점에 주목하길 바란다. 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7-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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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성의 오늘과 내일]국내 여행이 답이다

    지난 주말 충북 옥천에 다녀왔다. 매년 이맘때면 시제(時祭)를 지내기 위해 찾는 곳이다.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일인데도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난다는 생각만으로 늘 맘이 설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역을 가득 메운 여행객들이 환한 웃음과 함께 쏟아내는 수다가 즐거웠다. KTX에서 무궁화호로 갈아타고 옥천역에 이르는 동안 차창 밖으로 펼쳐진 노랗고 붉은 봄꽃과 푸른빛이 감도는 산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역사(驛舍)를 벗어나 최종 목적지까지 찾아가는 동안 온몸을 휘감는 따뜻한 봄기운에 입고 있던 반코트가 거추장스러웠다. 콧속을 파고드는 구수한 거름 냄새에 도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하얀 나비, 귓전을 때리는 산새들의 울음소리는 현기증마저 일게 했다. 평범한 시골길을 걷는 동안 피곤한 몸에 생기가 돌고, 지친 마음이 위안을 얻는 기분도 들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이런 것일 게다. 이런 간단한 여행길이 주는 망외의 소득도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보복으로 직격탄을 맞은 국내 여행업계의 ‘솟아날 구멍’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이 60% 급감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했을 때 관광수입 손실액은 연간 5조500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우리 국민이 연간 하루씩만 더 국내로 여행을 떠나도 내수 진작 효과가 연 최대 4조 원으로 추산된다. 중국인 관광객 감소에 따른 손실의 상당 부분을 상쇄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국민의 국내 여행은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국내 여행 일수는 2009년 3억7534만 일에서 2015년 4억682만 일로 연평균 1.4% 증가에 그쳤다. 여행객도 3120만 명에서 3831만 명으로 연평균 3.5% 늘어나는 데 머물렀다. 반면 해외 여행 증가세는 폭발적이다. 여행객은 같은 기간 949만여 명에서 1931만 명으로 연평균 13% 급증했다. 지난해엔 2238만여 명으로 처음으로 2000만 명을 넘어섰다. 선진국들은 국내 관광이 관광산업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보고서 ‘관광 트렌드와 정책’에 따르면 국내외 관광객들이 지출하는 총 관광지출에서 내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본(93%), 독일(86%), 영국(83%), 미국(83%) 등 선진국은 대부분 80%를 웃돌았다. 또 조사 대상 28개국의 평균도 77%에 달했다. 반면 조사 대상에서 빠져 있는 한국은 2014년 기준으로 추정해본 결과 60% 수준에 불과해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최근 국내 관광은 중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기형적이라는 평가까지 받는다. 전문가들이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지금이 내수 기반 없이 성장을 꾀하는 국내 관광산업을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여행 활성화를 위한 전제조건인 자유로운 휴가 사용이나 여행 인프라 개선 등 제도적인 보완은 갈수록 수요가 커지고 있는 국민 복지 차원에서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일각에서는 이런 움직임에 “여행은 순수하게 즐기는 게 목적이며 여행을 통한 경기 효과를 운운하는 게 ‘관치’ 냄새가 난다”고 폄훼한다. 국내 관광 경쟁력의 문제점을 돌아보고 위기에 쓰러지지 않을 맷집도 키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평상시라면 일리 있는 얘기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현재 국내 관광산업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다. 6·25전쟁의 폐허 더미에서 만들어낸 한국 경제의 기적은 국민과 정부, 기업이 혼연일체가 돼 ‘잘살아 보자’는 의지로 똘똘 뭉쳐서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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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성의 오늘과 내일]횃불이 꺼지지 않도록

    사우디아라비아 남서부 홍해에 붙어 있는 항구도시 지다. 이슬람 성지 메카의 외항이자 사우디 제1의 상업도시이지만 국내 건설업계에선 중동지역이 국내 업체의 텃밭이 되는 데 결정적인 단초가 만들어진 곳으로 더 유명하다. 사우디 정부는 1974년 9월 지다 시 미화공사를 한국 업체 ‘삼환’에 맡긴 뒤 지다 공항에서 메카 쪽으로 향하는 2km 길이의 도로확장 공사를 40일 이내에 끝낼 것을 주문했다. 이에 삼환은 ‘8시간 3교대 24시간 작업’을 벌인다. 이 과정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현장에서 야간작업을 위해 매일 수백 개의 횃불이 동원됐다. 깜깜한 어둠 속에 늘어선 횃불은 불꽃군무를 방불케 하는 장관을 이뤘다. 우연히 이를 목격하고 큰 감명을 받은 사우디 국왕은 한국 업체에 추가 공사를 주도록 명했다. 이를 계기로 중동지역에 ‘꼬리(코리아의 현지 발음)’ 열풍이 불었다. 이른바 ‘불야성의 횃불작업’이다. 이후 중동지역은 국내 건설업계의 안방이 됐다. 특히 사우디는 전략적인 요충지가 됐다. 이를 뒷받침할 지표가 해외공사 수주액이다.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에 처음 진출한 1965년 이후 20일까지 가장 많은 공사를 따낸 곳이 사우디다. 총수주액만 1384억 달러로 전체 해외건설 수주액(7535억 달러)의 18%나 된다. 국내 업체들이 한 번이라도 공사를 수주한 나라가 전 세계 150곳인 점을 감안하면 사우디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이런 관계에 이상기류가 나타났다. 2015년 왕위에 오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이 처음으로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지난달 26일부터 한 달 일정으로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등 아시아 5개국 순방길에 오르면서 한국을 제외한 것이다. 게다가 살만 국왕은 12일 방문한 일본에선 세계 최대 규모의 해수담수화 사업 진행과 일본 기업을 위한 경제특구 설치 등을 담은 ‘양국 간 경제협력 방안(일-사우디 비전 2030)’에 합의했다. 15일 중국에선 650억 달러 규모의 경제협력을 체결하고, 말레이시아에선 7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하는 등 방문국마다 적잖은 선물 보따리를 내놨다. 아쉬운 건 살만 국왕이 이번 순방길에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했지만 국내 준비 부족으로 무산됐다는 점이다. 정부 산하 기관의 한 관계자는 “국왕을 초청하려면 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하는데 국내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는 “2015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해 살만 국왕과 면담을 했고, 현재 후속 실무자 접촉을 진행 중이다”며 한국과 사우디가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강조했지만 뒷맛은 개운치가 않다. 국정 공백 장기화로 예상됐던 경제외교 차질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19일 막을 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한국 경제외교의 무기력한 민낯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보호무역 기치를 앞세워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미국을 달랠 기회로 예상됐던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과의 면담은 10분여 만에 성과 없이 끝났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경제 보복과 관련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기대됐던 중국과의 회담은 샤오제(肖捷) 중국 재정부장(재무장관)의 거절로 만남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문제는 5월 9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 때까지 이런 상황이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거칠어져 가는 사드 경제 보복에 보호무역 파고로 지금 한국 경제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힌 모양새다. ‘한국 경제의 횃불’이 꺼지지 않도록 민관정 관계자들이 이제라도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7-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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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성의 오늘과 내일]낙지부동과 밥그릇 챙기기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하네요.” 13일 오전 2시 퇴근길에 이용한 택시. 운전사 한모 씨(58)는 “요즘 밤 12시만 넘으면 손님 모시기가 어렵다”며 이같이 말했다. 운전 경력 30년째라는 그는 “사람들의 씀씀이가 무척 줄어든 것 같다”고도 했다. 장삿속 엄살은 아닌 듯 들렸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9일 열린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대외적 불확실성 속에 기업의 산업생산지수 하락과 낮은 소비심리에 따른 내수 부진은 외환위기 상황과 유사하다”고 대답했을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국가적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범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로 인한 국정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이를 주도해야 할 공직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무능과 무기력에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을 넘어서 낙지처럼 달라붙어 꼼짝도 하지 않는 ‘낙지부동’을 하고 있어서다. 공직사회의 무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분야는 농림축산식품부를 포함한 방역 당국이다. 최근 구제역 대처를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거의 유일한 대책으로 여겨진 백신은 제대로 된 관리나 접종 매뉴얼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백신 재고나 항체형성률 통계도 엉터리다. 농식품부의 고위 관계자가 “국내엔 구제역 백신의 효능을 확인하는 시스템이 없다”고 실토할 정도다. 구제역은 2000년 이후 2년마다 한 번꼴로 발생했고, 백신 접종이 의무화된 건 7년이나 됐다. 그간 구제역으로 인해 투입된 혈세만 3조3128억 원에 달했다. 그런데도 결과가 이 정도라면 실망을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 ‘낙지부동’ 행태는 끔찍한 수준이다. 매년 수조 원을 쏟아부은 일자리 창출 정책은 실패했고, 청년층 실업률은 지난해 16년 만에 미국보다 높아지는 등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관련 부처 관계자들은 “현재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상황이 아니다. 그저 기존에 했던 정책들을 잘 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말만 내뱉는다. 최순실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청와대에 근무 중인 부처 파견 공무원들은 “‘개점휴업’ 중이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공직사회가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분야가 있기는 하다.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된 정부 조직 개편 움직임에 나타난 ‘밥그릇 챙기기’다. 경제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는 기재부가 대표적이다. 재정과 공공기관을 담당하는 예산처 라인과 거시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재경부 라인으로 쪼개질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치열한 영역 다툼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인사도 안 하는 수준으로까지 악화됐다고 한다. 한국 경제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놓였다는 경고음이 울린 지는 이미 오래다. 최근에는 그 강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과거 유럽 재정위기 수준으로 높아져 있으며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가 ‘불확실성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불확실성의 함정이란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확대돼 가계 및 기업의 소비와 투자가 지연되고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공직사회가 무능과 무기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낙지부동과 밥그릇 챙기기만 계속한다면 이 같은 우울한 전망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외환위기 때만큼 힘들다”며 내뱉은 한 씨의 깊은 한숨이 죽비 소리처럼 귓전을 맴돈다.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7-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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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성의 오늘과 내일]신뢰 회복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켜라

     ‘물 빠진 갯벌에 걸린 낚싯배.’ 맥킨지 한국사무소 최원식 대표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를 이같이 비유했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가 위기를 쉽사리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에 오른 전문가다. 맥킨지는 외환위기 직후와 2013년에도 한국 경제가 처한 위기 상황을 정확히 짚는 화두를 던져 화제가 됐다.  실제로 국내 경제의 여러 가지 지표가 모두 좋지 않다. 특히 경제성장률 전망치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2.8%에서 2.5%로 낮췄다. 또 내년 성장률도 2.8%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이대로라면 한국 경제가 2015년부터 내년까지 4년 연속 2%대 성장을 이어가는 것이다.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국은 1950년 6·25전쟁의 폐허 위에서 잘살아 보자는 패기 하나로 한 세대 만에 선진국 문턱에 오른 저력의 국가다. 1인당 국민소득을 1960년대 80달러에서 2016년 2만7633달러로 늘렸고, 이 기간에 세계 경제가 6배 정도 성장하는 동안 경제 규모를 30배가량 성장시켰다. 이 과정이 순탄하지도 않았다. 1960, 70년대엔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로 인한 외환위기, 1973년과 1979년에는 오일쇼크, 1997년엔 외환위기, 2008년엔 국제 금융위기 등을 치러야만 했다.  성공의 비결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부를 믿고 헌신적 노력을 아끼지 않은 국민성을 빼놓을 수 없다. 20년 전 발생했던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펼쳐진 ‘금 모으기 운동’이 대표적이다. 1997년 말 달러가 없어 나라가 부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에 90년 전 국채보상운동처럼 금 모으기 운동이 시작됐다. 집집마다 조금씩 가지고 있는 금을 모아 수출하고, 달러를 확보해서 나랏빚을 갚자는 취지였다. 들불처럼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재벌그룹 회장서부터 종교인, 스포츠맨, 고사리손의 초등학생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앞다퉈 참여했다. 350만 명이 자발적으로 나섰고 227t, 21억 달러어치의 금이 모아졌다. 이 기세가 이어지면서 3년 9개월 만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졸업하는 기적도 만들었다.  이제 다시 우리의 저력을 믿고 현재의 위기들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수없이 많겠지만 무엇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끌어올리는 일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아쉽게도 현재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바닥 수준이다. 동아일보가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함께 지난해 12월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8%가 “신뢰하는 정부기관이 없다”고 답했다.  세계적인 석학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트러스트’에서 “경제학은 경제의 80%를 좌우하고 나머지 20%는 신뢰가 좌우한다”고 역설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지난해 10월 “한국의 사회적 신뢰도가 북유럽 국가 수준으로 올라가면 경제성장률이 1.5%포인트 높아지고 4%대 성장을 할 수 있다”는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사회적 신뢰 회복이 갯벌에 파묻힌 낚싯배를 일으켜 바다로 나아가게 만드는 밀물일 수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 선거가 올 상반기에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후보자들의 공약 만들기도 본격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 속에 국가 경쟁력과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를 끌어올릴 구체적인 방안들이 담겨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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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성의 오늘과 내일]닭에게 미안해

     국민 간식의 반열에 오른 닭튀김(프라이드치킨)은 올해 K푸드의 대표 상품으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올여름에 서울과 인천, 대구 등지에서 대규모 중국인 관광객이 방문해 맥주와 함께 닭튀김을 먹는 ‘치맥파티’를 즐겼을 정도다. 하지만 중국인의 한국 닭 사랑은 예전부터 있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고의서 등에서 약용으로 한국 닭을 추천한 곳이 여럿이다. 특히 명나라 때 약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선 “닭은 그 종류가 많아 산지에 따라 크기와 형태 색깔에 차이가 있지만, 조선의 닭이 맛이 가장 좋고 기름지다”고 기록했다.  한반도에서 닭이 사육되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중국 문헌인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에 한국에 꼬리가 긴 세미계(細尾鷄)가 있다는 기록으로 미뤄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육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오랫동안 닭은 우리 민족과 같이하며 영양을 책임져줬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닭은 한민족의 삶과 밀접한 관계다. 닭은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10번째 동물로 전통 신앙 속에서 다양하게 응용됐다. 특히 무속 신앙에서 닭은 인간의 좋지 못한 운수나 운명을 대신해 죽음으로써 인간을 원 상태로 복귀하게 하거나 회생케 하는 역할을 맡는다(한국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2009년·국립민속박물관). 요즘 닭이 큰 시련을 겪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이다. 올해 AI는 예년과 달리 독성도 강할뿐더러 두 종류의 바이러스가 동시에 발생하는 등 예년에 보기 힘든 양상을 띠고 있다. 그만큼 피해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발생해 한 달여 만인 19일까지 무려 2000만 마리가 도살처분됐거나 그럴 처지에 놓였다. 이전까지 역대 최대 피해(1396만 마리)였던 2014∼2015년 AI는 195일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로 인해 농가와 정부, 음식업체 등이 치러야 할 직간접 손실만 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이 같은 피해의 90%가량은 닭에게서 발생했다. 문제는 AI가 당분간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도 안 했다는 게 무엇보다 우려스럽다. AI는 기온이 4도 이하(섭씨 기준)일 때 생존율이 높아진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겨울(2016년 12월∼2017년 2월) 기온은 예년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12월의 평균 온도는 1.5도이고, 1월은 영하 1도, 2월은 1.1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올해 겨울은 예년보다 건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기로 전염되는 AI 바이러스는 건조할수록 확산이 잘된다. 컨트롤타워로서 기능을 해야 할 정부는 늑장 대응과 엇박자 대책으로 갈팡질팡하면서 문제만 키웠다. 이번 AI 발생 초기 전문가들은 독성이 강하고 전파력이 이전보다 빠른 만큼 대책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듣지 않았다. 여기에 인간의 탐욕은 AI가 맹위를 떨칠 근본적인 환경을 제공했다. 이번 AI의 주 타깃이 되고 있는 산란계(알 낳는 닭)는 철사로 만든 닭장에 넣어져 키워진다. 이 닭장의 바닥면적이 A4 용지보다도 작다. 일부 농장에서는 이런 닭장을 최대한 쌓아두고 70만 마리까지 키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번 바이러스가 퍼지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이번 AI 대란은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내년은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다. 닭의 해에 수천만 마리의 닭을 질식사시켜 흙구덩이에 파묻거나 섬유강화플라스틱(FRP) 통에 보관해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닭에게 정말로 미안하다.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6-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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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성의 오늘과 내일]IMF의 추억

     매년 이맘때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1997년 11월 21일 오후 10시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다”고 발표했다. 수백 명의 국내외 취재진이 그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 숨죽였고, 카메라 플래시는 쉬지 않고 터졌다.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는 손이 떨려 제대로 메모조차 하지 못했다. 늦가을 저녁의 추위 탓도 있었겠지만 IMF의 무시무시한 요구를 한국이 견뎌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발표가 끝난 뒤 회견장을 빠져나올 때 속절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던 기억도 생생하다. 이후 우려는 현실이 됐다. 수많은 기업이 쓰러졌고 근로자들이 내동댕이쳐졌다. 당시 최종 부도를 맞은 한 건설회사 K 과장과 밤새 통음하며 그의 눈물 반 콧물 반 섞인 신세 한탄을 들어주던 기억도 여전히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는 이후 몇 차례 회사를 옮기다 고향인 대구로 낙향했다. 그리고 반백수 생활을 한다는 말을 끝으로 소식이 끊어졌다. K뿐이 아니었다. 당시 외환위기를 겪으며 170만 명이 직장을 잃었고, 중소기업 사장에서 노숙인으로 전락한 이들의 사연이 줄을 이었다. 요즘 돌아가는 국내 상황이 IMF 구제금융 신청을 앞둔 1997년을 떠올리게 한다. 여러 가지가 언급되지만 무엇보다 컨트롤타워의 공백이 두려울 정도로 비슷하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3남 현철 씨 관련 부정부패 수사에 모든 관심을 쏟으며 국정에서 멀어졌다. 그로 인해 제대로 된 결정이나 판단을 받기 어려워 한국 경제가 망가졌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최근 청와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국정 공백은 그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경제 총수 자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당시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1997년 11월 14일 IMF에 지원을 요청한 뒤 19일 공식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19일 오전 경질됐고, 정부 계획은 갈지자걸음을 걸었다. 후임자 임창열 부총리가 IMF행(行)을 번복하는 발언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계획했던 자체 외화 조달은 실패로 돌아갔고 정부는 이틀 뒤인 21일 IMF에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 같은 약속 번복으로 신뢰를 잃자 IMF는 한국에 가혹한 구제금융 조건을 요구했고, 정부는 받아들여야만 했다. 정부는 이달 2일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임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내정했다. 이후 한 달이 다 되도록 두 사람은 자리를 옮기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각종 경제 관련 중요 현안은 처리되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가 ‘골든타임’으로 평가되는 산업 구조조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등장으로 격변이 예상되는 한미 간 경제 환경, 야당의 주도하에 산으로 갈지 모르는 내년 예산 및 세법 개정안 등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숙제들이다.  이 같은 한국의 위태로운 행보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8일 강력한 경고장을 보냈다.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4%포인트 낮춘 2.6%로 제시한 것이다. OECD는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제에 미칠 단기적 위험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까지 거론될 정도로 나빠진 정치 상황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같은 짓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착란’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 식이라면 또다시 IMF에 굴욕적인 수모를 겪는 일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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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성의 오늘과 내일]빨간 바지를 솎아내라

     사상 초유의 국정 스캔들의 장본인인 최순실 씨의 첫인상이 복부인(福婦人)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언론에 공개된 사진 때문이었다. 사진 속 그녀는 빨간색 반팔 티에 하얀 바지, 하얀 모자에 흰 테 선글라스를 낀 채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다. 1980년대 말 활개를 치던 복부인들은 주로 빨간 바지를 입고 부동산 시장을 누볐다. 이들은 대부분 고위층 부인으로, 남편들이 직위를 통해 얻은 토지 개발 정보를 이용해 도시 개발 예정지나 도로 건설 대상지를 사들인 뒤 단기간에 되파는 수법으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겼다. 당시 언론은 이들을 ‘빨간 바지’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이후 한동안 붉은색은 복부인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최 씨는 국내외에서 300억 원대에 이르는 부동산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에는 서울 강남 알짜배기 땅에 위치한 건물도 있다. 강남 땅 투기가 절정이던 1980년대 중반 강남 요지의 땅을 사서 건물을 지어 파는 방식으로 재산을 불린 행적도 드러났다. 현 정부 출범 이후인 2013년 10월에는 국토교통부의 토지 개발 계획을 들여다본 정황도 나왔다. 이 때문에 부동산 업계에선 최 씨가 사전적인 의미의 복부인 그대로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복부인은 부동산 투기를 하여 금전적으로 큰 이익을 꾀하는 가정부인을 의미한다. 복부인으로 대변되는 부동산 투기세력은 1970년 강남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등장했다. 늘어나는 서울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당시 정부는 강남에 ‘8학군’을 조성하고 지하철 2호선을 배치하는 등 강력한 강남 개발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1970년부터 1999년까지 30년간 강북 인구가 430만 명에서 520만 명으로 늘어날 동안 강남 인구는 120만 명에서 4.2배인 510만 명으로 증가하는 등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이에 따라 토지 가격이 1년 새 10배 이상 뛰고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집중적인 투기 대상이 됐다. 역대 정권에서 부동산 시장 과열이 문제로 부각될 때마다 강남이 ‘0’순위 타깃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복부인으로 시작했던 부동산 투기세력은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로 침체된 내수 시장을 살리기 위해 1998년 분양권 전매 규제를 전격적으로 해제하면서 기업형 전문화의 길을 걷는다. 당시 등장한 게 이동식 중개업소, 즉 ‘떴다방’이었다. 이들은 1990년 후반까지만 해도 분양계약서를 사들인 뒤 프리미엄을 얹어 파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겼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부동산개발 시행사 등과 결탁해 아파트 청약률을 끌어올리거나 분양권 가격을 끌어올리며 투기 바람을 주도했다. 최근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지목되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부는 ‘선별적, 단계적 대응’ 방침을 선언하고, 강남 재건축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현재 예상되는 방안은 분양권 전매 제한 강화나 청약 1순위 취득 요건 강화, 재당첨 금지 등이 유력하다. 다만 최근 부동산 시장 과열을 이끄는 세력 속에 복부인과 떴다방과 같은 투기세력 외에 실수요자들도 섞여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고민이 깊다. 이들은 대부분 저금리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소액 투자자들이다. 내년 이후 건설 경기가 냉각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잇따르는 점도 부담이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대 후반을 기록할 수 있었던 데에는 건설 경기가 큰 몫을 차지했다. 게다가 내년 경제 전망은 올해보다 더 좋지 않다. 정부가 빨간 바지와 떴다방은 솎아내고 경기 침체는 막는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길 기대해 본다.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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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성의 오늘과 내일]지금 대한민국은 정말로 안전한가

     “우리는 안전한 거지?”  지난 주말 만난 지인들에게서 이 질문을 받았다. 예전에도 종종 들었던 얘기지만 말 속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은 달랐다. 그만큼 대한민국을 둘러싼 환경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는 반증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무엇보다 북한이 올해 들어서 핵과 미사일 실험 빈도를 높이고, 이에 대응한 국제사회의 징계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점을 염려했다. 북한은 올해 초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시작으로 무수단 중거리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노동미사일 발사 등 다양한 군사 실험을 단행했다. 이런 북한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168개 회원국은 지난달 말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북한의 핵실험을 규탄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미국은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한 전방위 압박을 준비 중이다. 북한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가 전면전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이런 움직임에 제대로 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유일한 대책처럼 거론되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설치 장소가 우여곡절 끝에 경북 성주군 초전면 롯데골프장으로 결정됐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나의 지인들은 궁금하다고 했다. 우리는 안심해도 되는지.  경제 위기 상황은 이미 우려를 넘어선 수준이다. 우선 한국 경제성장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수출 부문은 침체 징후가 뚜렷하다. 올해 8월 1년 8개월 만에 반등했던 수출액이 한 달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갤럭시 노트7의 대규모 리콜 사태로 인한 무선통신기기 부문 부진과 현대자동차 파업으로 생긴 수출 감소가 직격탄이 됐다. 연초부터 계속되고 있는 유럽 및 중국발 국제 금융시장 불안과 저유가 등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6월에 하향 조정했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2.8%)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움직임과 130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둔 가계부채, 급속도로 진전되는 고령화 문제 등은 난마처럼 얽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그런데도 철도 등 공공 부문과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르노삼성 등은 파업 강도를 높이겠다며 어깃장을 놓고 있다. 자동차는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파업의 여파로 2005년 이후 지켜왔던 세계자동차 수출국 3위 자리를 내줄 가능성마저 제기됐다. 하지만 자동차 노조들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더욱 갑갑한 것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정부가 제대로 된 수습책을 보여주질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의 지인들은 걱정스럽다고 했다. 우리는 괜찮은 건지. 지난달 12일 발생한 경북 경주 지진은 강 건너 불처럼 여겨졌던 지진에 대한 공포를 실감시키기에 충분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 동부지역보다 지진 발생 위험도가 높다. 또 지진은 경주 일대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든 발생할 수도 있다. 이처럼 국민이 두려워하고 불안해할 상황들은 쌓여가지만 정작 이를 해결하고 국민을 다독여줄 정부나 국회, 청와대, 시민사회 어디에서도 실효성 있는 노력은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입장에서 주장만 앞세우며 갈등을 키울 뿐이다. 국방과 경제, 국토에 이르기까지 상상하기 어려운 초대형 지각변동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은 정말로 안전한 것인가. 지난 주말 나의 지인들은 진실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 했다.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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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성의 오늘과 내일]위기의 조타수, 성공 DNA를 깨워라

    “국내 1위, 세계 7위 해운업체 한진해운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는데 정작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가 보이질 않는다.” 한진해운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5월 초 이후 쏟아져 나온 질타였다. 하지만 해수부의 목소리를 좀처럼 들을 수 없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가 1일 확정되고, 이로 인해 국내외 해운물류 시장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호소하는 아우성이 잇따른 뒤에야 해수부는 모습을 드러냈다. 정부가 4일 범정부 차원의 대응팀을 구성하고 해수부를 컨트롤타워로 격상시킨 것이다. 일각에서는 해수부가 구조조정 논의 과정에서 ‘왕따’를 당했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해수부는 당초 한진해운 퇴출에 반대해 왔고, 국적 선사를 2곳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금융위원회나 KDB산업은행 등 금융권의 논리에 따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해수부가 한진해운의 퇴출 반대 의사를 관철할 의지나 능력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해수부 홈페이지에 올려진 2016년 업무계획을 보면 해운시장 전망에 대해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선박 공급 과잉 지속 등으로 본격적인 해운시장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 선박 대형화와 공급 과잉, 운임 약세 등으로 인한 경영 여건 악화와 일부 대형 선사들의 인수합병에 따라 컨테이너 시장 개편 가속화 예상’이라고 정리했다. 연초부터 해운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적절한 분석이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 업무 추진 계획에 이를 어떤 식으로 타개할지 구체적인 답은 보이지 않는다. ‘해운산업의 위기관리 능력 제고를 위해 해운선사별 경영 동향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해운시장 조기경보망을 구축하여 위기 징후를 사전에 파악·대응한다. 또 가스공사 발전사 등 대형 화주와 장기운송계약 체결을 확대하여 해운시장 안정화와 국내 선사의 안정적 경영을 지원한다’고만 돼 있을 뿐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두 개의 컨테이너 해운사를 어떤 식으로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은 없었다. 해수부뿐만 아니다. 최근 정부 부처들의 행태를 보면 무능하고 무기력해 보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유례없는 폭염으로 들끓던 민심이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을 한목소리로 요구하는데도 “4시간만 쓰면 문제가 없다”며 버티던 산업통상자원부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하루 만에 입장을 180도 바꾸는 촌극을 연출했다. 연초 미세먼지로 온 국민이 고통에 시달렸지만 환경부는 뒷북 대책을 내놓으며 고등어와 삼겹살을 주범인 양 거론해 여론의 비난을 자초했다. 날로 심각해지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택지 공급 축소 방침은 전통적 비수기인 여름철에 집값을 들썩이게 하는 부작용만 불러왔다. 이 밖에도 정부가 ‘헛다리 정책’을 내놓음으로써 시장에 큰 파장을 불러온 사례는 많다. 한국 경제는 현재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 내수 침체와 수출 부진, 국제 경기 불안 등을 겪고 있다. 이를 극복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면 그 어느 때보다도 ‘국정의 조타수’로서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정부 수준으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국가경쟁력은 갈수록 뒷걸음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조사 대상 61개국 중 2007년 세계 11위에서 2015년 26위, 2016년에는 29위로 추락했다. 이런 식이라면 선진국 문턱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눌러앉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에겐 전쟁의 폐허 더미에서 세계 10위 경제대국을 이끌어낸 성공 DNA가 있다. 지금 이를 일깨우길 간절히 바란다.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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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성의 오늘과 내일]영화 터널과 아파트의 내력벽

    연휴에 영화 ‘터널’을 봤다. 부실공사로 무너진 터널에 갇힌 주인공과 그를 구하려는 구조대원 및 가족의 사투를 그린 재난영화이다. 군데군데 익살스러운 설정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눈물을 찍어가며 즐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2시간 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잊고 있던 기억에 마음이 무거웠다. 요즘 젊은 관객들은 영화에서 세월호를 연상한다지만 필자는 영화에서 여러 차례 언급됐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떠올랐다. 1995년 6월 29일 사고 당시 인근에 있던 필자는 생생하게 현장을 목격했다. 여름이라 해가 있었지만 어둡게 느껴질 정도로 연기와 시멘트 먼지가 자욱했다. 무너진 건물 파편이 사방을 뒤덮었고, 파편에 부서진 자동차 수십 대가 곳곳에 멈춰 있었다. 명물로 여겨졌던 분홍색 5층 건물은 오간 데 없고, 폭삭 내려앉은 건물 잔해와 흉물스러운 느낌의 기둥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현장을 뛰어다니며 상황을 파악하던 중 3층 높이의 건물 잔해에 빨간색 옷을 입은 여자가 살려달라는 듯 손수건을 흔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람이 저기 있다”며 미친 듯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10초 남짓 지나 구조대원의 손을 잡아끌고 다시 그녀를 찾았지만 사라진 뒤였다. 이 사고로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이라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 조사 결과 기둥에 들어갈 철근 수를 줄여 시공하는 등 건전한 상식으로는 믿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도 많이 자행됐다. 특히 안전을 무시한 건물 리모델링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4층으로 설계된 건물을 5층으로 불법 확장했고, 5층은 용도까지 불법 변경했다. 지하에 두려던 건물 냉각탑 4개도 옥상으로 옮겨졌다. 이로 인해 기둥이 버텨야 할 하중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고, 건물은 주저앉고 말았다. 사고 이후 1990년 전후로 지어진 전국의 대형 건축물들의 안전이 주목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1기 신도시(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아파트들은 전 국민적 관심사였다. 당시 노태우 정부가 주택 200만 채 건설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면서 △불량 건설자재 사용 △비숙련 건설인력 투입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 △감독 소홀 등의 문제가 집약됐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실 자재 사용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1988년 후반부터 건축 물량이 폭주하면서 시멘트 철근 모래 콘크리트 등 건축자재 부족 현상이 심각했다. 시멘트의 경우 당시 40kg 한 포대에 2000원 하던 것이 5000∼6000원으로 폭등했다. 모래 철근 레미콘 등도 마찬가지였다. 해외에서 값싼 자재들이 대량 수입됐고, 제대로 씻지 않은 바닷모래가 사용됐다. 국민들의 우려가 거세지자 정부는 전문가들로 조직을 꾸려 구조안전 점검을 실시했고,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내놓으며 상황은 일단락됐다. 최근 정부가 아파트 수직증축 리모델링 때 내력벽(耐力壁) 철거 허용 방안을 재검토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일부 1기 신도시 아파트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정부가 내력벽 철거 허용 방침을 세우고 올해 초 관련 법령 개정안까지 입법예고했다가 방침을 바꿨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력벽은 건물의 지붕이나 위층 구조물의 무게(하중)를 견디는 벽이다. 건물 안전에 기둥만큼 중요한 구조체이다. 전문가들마다 내력벽 철거에 따른 안전성 여부에 대해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그렇다면 시간을 충분히 갖고 꼼꼼히 따져보는 게 맞다. 안전은 0.001%의 의심도 없어지기 전까진 양보해선 안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이다.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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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성의 오늘과 내일]음지의 서별관, 투명한 웨스트윙

    “없애라” “안 된다”, 국회를 중심으로 서별관회의를 둘러싼 존폐 논란이 뜨겁다. 존치론자들은 “중요 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비공식 협의(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폐지론자들은 “‘관치금융의 온상’이라며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정부가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서별관회의 내부 문건까지 공개하며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런 논란들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The West Wing)’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웨스트윙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7년에 걸쳐 방영된 미국 방송사상 최고의 정치 드라마로 꼽힌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출신 제드 바틀릿 대통령과 그의 참모진이 대통령 공식 집무실인 ‘백악관 서(西)관’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주로 그렸다. 자칫 딱딱하고 어려울 수 있는 정치 얘기를 다뤘지만 다이내믹한 편집과 사실감 높은 에피소드로 방송 내내 미국에선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미국의 TV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에미상’의 TV 드라마 시리즈상을 4년 연속 수상했을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국내에서의 인기도 뜨거웠다. 방영된 에피소드 중 상당히 많은 스토리가 우리 현실 정치와 겹쳐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국내 정치인이 이 드라마의 팬임을 자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요즘 웨스트윙을 보면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역동적인 리더십을 부러워하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2008년 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서진이 “미국 민주당의 국정기획 방향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웨스트윙’ 7개 시리즈를 구입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청와대 서쪽 별실에서 이뤄지는 서별관회의는 외국 언론에 ‘West Wing meetings’로 번역돼 소개된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두 곳의 역할은 매우 다르다. 웨스트윙은 미국 대통령의 공식 집무실인 만큼 국정 전반이 다뤄진다. 결정된 사안들은 대부분 대변인실을 통해 공개된다. 그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과 끊임없이 사전 조율을 벌인다. 반면 서별관회의는 경제 관련 현안을 다루며, 임시회의 성격이 강하다. 구조조정과 같은 특별한 현안이 있을 때에만 소집된다. 음지를 지향한다. 모임 내용은 물론이고 모임 자체도 비밀에 부치기 일쑤다. 웨스트윙에서는 활발하고 자유로운 토론이 쉴 새 없이 이뤄진다. 또 권력을 다루지만 암투는 없고, 모든 갈등이 논쟁을 통해 해결된다. 심지어 논리적으로 맞는다면 정적(政敵)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적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결정까지 내린다. 서별관회의는 참석자들의 설명이나 언론 보도 등을 고려할 때 국무회의 등 공식적인 회의석상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한다. 하지만 활발한 정책 토론보다는 청와대 측의 일방 통행적인 요청과 이에 대한 관련 정부 부처들의 대책 마련이 논의되는 수준 정도가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의 돌발적인 고백을 통해 이 같은 정황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물론 웨스트윙은 드라마고 판타지다. 현실과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거기에는 일반인들이 열망하는 가치와 기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별관회의가 웨스트윙처럼 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비밀주의와 폐쇄성으로 일관하고, 국민의 오해만을 불러일으키는 현재의 행태로는 곤란하다. 국민과의 소통은 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핵심 과제였다. 차제에 서별관회의 관계자들이 웨스트윙을 시청해 보길 권한다.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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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성의 오늘과 내일]‘건설업’ 미워도 다시 한 번

    “어느 정도는 해야 도와준다는 말이라도 꺼낼 텐데….” 최근 만난 국토교통부 고위 관계자는 쓴웃음과 함께 이같이 말했다. 국내 굴지의 건설사 72곳이 지난해 8월 ‘공정경쟁과 자정 실천 결의대회’를 가진 뒤 약속한 사회공헌기금 2000억 원 모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나온 고백이었다. 그가 공개한 현재까지의 모금액은 두 자릿수로 목표액을 한참 밑돈다. 업계가 대책으로 내놓은 모금 목표 달성 방안은 부실하기 이를 데 없다. 개별 업체가 건설공제조합에서 받는 배당금의 일부를 기금에 출연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인데 언제까지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은 빠져 있다. 당초 목표 시점은 지난해 말이었다. 업계가 실현 가능성도, 의지도 없는 약속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업계도 이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무엇보다 정부의 엇박자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컸다. 정부는 지난해 8월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의 일환으로 건설 분야 행정제재 처분 특별 해제 조치를 발표했다. 핵심은 입찰 담합 등의 혐의로 공공기관 공사 입찰 참가 제한 조치를 받은 건설사 2200곳에 대한 행정제재를 풀어준다는 것이다. 특별사면 결정에는 주무 부처인 국토부뿐만 아니라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11개 부서가 참여했다.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건설업계가 추진한 이벤트가 2000억 원짜리 사회공헌기금 모금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공정위는 올해 4월까지 4차례에 걸쳐 4150억 원의 과징금 폭탄을 건설업계에 쏟아 부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공정위가 업계에 부과한 과징금은 모두 37건, 1조5286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공정위의 처벌을 근거로 공사 발주처들이 건설업체들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만 40여 건에 달하고, 손해배상액도 과징금 총액에 근접한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3조 원에 이르는 과징금과 손배액을 준비해야 하는 건설업계에서는 “열심히 벌어봐야 이익 내기도 어렵다”는 푸념이 나온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주요 건설사의 1분기(1∼3월) 실적을 보면 이는 엄살이 아니다. 영업이익을 냈지만 과징금을 반영하면 당기순이익이 적자로 돌아서거나 전년 동기 대비 반 토막 나는 곳이 적잖다. 이런 상황에서 2000억 원의 사회공헌기금 모금에 선뜻 나설 여력이 있는 업체는 없다. 건설업계가 공공공사 입찰에 담합함으로써 부당 이익을 취득했고, 그만큼 국민에게 손실을 일으킨 점은 지탄 받아 마땅하다. ‘경제검찰’을 자임하는 공정위가 원칙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지난해 실시한 정부 대사면의 취지를 고려할 때 과징금 규모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지적 또한 무시하기 어렵다. 당시 정부는 ‘내수 진작 및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건설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행정제재 해제 조치를 통해 재도약의 기회를 제공하고 건설업체가 서민경제 활력 제고 및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올 하반기에 국내 경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하면 대규모 실업에 경기 침체의 골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한국은행은 10일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 전격 인하라는 깜짝 조치를 단행했다. 기재부도 ‘추경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공정위나 공사 발주처도 이런 경기 흐름에 맞게 처벌 수위를 적절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18일은 정부가 지정한 69번째 ‘건설의 날’이다. 생일 선물로 그만한 게 없을 것 같다.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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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성의 오늘과 내일]‘한국의 벡텔’ 구호만 외칠 건가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 서방이 갖는다더니, 지금이 딱 그 짝입니다.” 2010년 12월 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한국전력과 미국 벡텔사가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관련 계약을 맺자 국내 건설업계에선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UAE 원전은 총공사비가 186억 달러(약 21조7600억 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으로 2009년 말 수주 때만 해도 국내 해외건설사에 남을 쾌거로 여겨졌다. 하지만 벡텔이 2020년까지 종합설계를 맡고 자문에 응하는 대가로 사업 수익금 46억5000만 달러의 절반이 넘는 27억9000만 달러를 챙긴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불만이 터진 것이다. 자타 공인 세계 1위 건설업체인 벡텔은 오랫동안 국내 건설업계에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1954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요청으로 국내에 진출한 뒤 당인리발전소, 울진 원전 3·4호기, 경부고속철도, 인천국제공항철도 등에 관여하며 국내 건설사들의 시어머니 노릇을 했다. 특히 건설 초기 부실공사 논란으로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했던 경부고속철도에선 공사 관리를 맡아 깐깐하게 굴자 현장 근로자들이 벡텔 관계자들을 피해 다녔다고 한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한국의 벡텔을 만들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달 강호인 장관이 관계 국·실장과 실무자들을 대동하고 전문가들과 정책토론을 벌였고, 필요한 법령 개정도 추진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밝혔다. 현재 한국 건설업이 처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국내 건설시장은 더 이상 양적 확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회간접자본(SOC) 확충과 도시화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1991년 국내총생산(GDP)의 23%에 달하던 건설 투자는 14% 수준으로 떨어졌다. 해외건설도 누적 수주액 7000억 달러 달성과 같은 성과를 냈지만 수익성 등 부가가치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진다. 게다가 저유가와 세계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중동 등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텃밭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벡텔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진행해야 할 건설산업 구조조정이 너무 더디다. 동아일보가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의뢰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4년까지 진행된 건설업계의 구조조정 실적을 분석한 결과 기초체력이 오히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 및 당기순이익률, 자산 대비 부채 비율 및 차입금 의존도, 이자보상비율 등 5개 주요 재무지표 중 부채 비율만 약간 개선됐을 뿐 나머지는 모두 나빠졌다. 정부는 “건설경기 침체와 과도한 가격 경쟁으로 인한 저가 수주가 원인”이라고 설명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건설업이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내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도 건설업 구조조정에는 악재다. 선심성 대규모 개발 공약이 남발되면 부실 건설사들이 버티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입만 열면 ‘한국의 벡텔이 되겠다’는 건설사들의 각성도 필요하다. 1900년대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벡텔은 철도 관련 공사의 하도급업체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공사 현장에 신기술을 과감히 도입하는 등 효율적으로 대응했다. 여기에 강력하고 철저한 ‘반부패 윤리 시스템’을 운영함으로써 발주처의 신뢰를 쌓아 성공신화를 일궜다. 부동산과 건설 경기의 부침에 일희일비하는 천수답 경영과 잊을 만하면 터뜨리는 공공공사 입찰 비리 등을 버리지 못한다면 한국의 벡텔은 영원히 허망한 구호로 남을 뿐이다.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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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황재성]시간이, 짧지만 아직 있다

    14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 14층.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 6개 경제단체 부회장들과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 등 5개 부처 차관들이 참모들과 함께 삼삼오오 모였다.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간담회로, 민관이 합심해 투자활성화 등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자는 뜻을 다지기 위한 자리였다. 당초 이날 모임에선 국회에 주요 경제법안의 조기 처리를 호소하고, 경제활성화 입법 서명자 180만 명 돌파를 격려할 예정이었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한 활발한 논의로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기대됐다. 하지만 실제 분위기는 차분하다 못해 냉랭했다. 본회의에 앞선 언론 포토타임에 어색한 웃음꽃이 잠깐 피었을 뿐 1시간 남짓한 회의 내내 참석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누군가 “다들 왜 이리 심각하세요?”라며 분위기 전환을 꾀했지만 “지금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참석자 대부분이 표정을 펴지 못했다. 여당 참패라는 4·13총선 결과가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든 원인이었다. 총선 직전까지 여당은 과반을 넘어 180석 확보까지 자신했고, 재계와 정부는 이를 기정사실로 보고 다양한 경제 협력 방안을 추진했다. 14일 배포된 4쪽짜리 간담회 보도자료에는 이런 기대가 고스란히 담겼다.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국회에 국민과 기업의 간절한 염원이라며 19대 회기 내에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 입법의 조속한 처리를 거듭 촉구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모든 역량을 모아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기업에는 연초에 수립한 투자 계획이 실제로 전액 집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자료에 나열된 얘기들이 현실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실망과 당혹감이 이날 간담회를 시종 지배했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현재 재계와 정부가 여소야대라는 총선 결과를 보는 심정은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당이 제1당에서 밀려나고, 3당 체제가 되면 그동안 민관이 조속 처리를 염원했던 경제활성화 법안 다수는 원점에서 재검토될 가능성이 커졌다. 경제 정책의 패러다임도 성장에서 분배로 중심이 옮겨질 개연성이 높아졌다. 여당 눈높이에 맞춰졌던 대기업의 투자 정책도 야당 2곳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총선 직후인 14일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가 한국의 국가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도 15일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가) 한국의 장기 성장률 전망에 저해 요소가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우려가 현실화하는 일을 막기 위해 민관이 다시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경련에 따르면 올해 30대 그룹의 투자 계획은 122조7000억 원 규모다. 재계는 이를 좌고우면하지 말고 금년에 모두 조기 집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애로사항이 있다면 정부가 앞장서서 해결해 줘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미뤄뒀던 기업 구조조정과 규제개혁,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투자 등을 서둘러야 한다. 지금부터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화하기 전인 올해 말까지 8개월여가 한국 경제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만들고,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전 세계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 저력과 DNA를 다시 일깨울 시간이 아직은 남아 있다. 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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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황재성]‘이란판(版) 만만디’를 아시나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최근 만난 국내 건설사 최고경영자 A 씨는 업황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동안 버팀목이 됐던 부동산 경기가 빠른 속도로 식어가는 데다 해외 건설은 말 그대로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건설사의 텃밭으로 여겨져 온 중동 시장은 저유가에 직격탄을 맞았다. 올 들어 1, 2월 중동지역 수주 물량이 8763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23억7243만 달러)의 4%에 불과하다. 2014년 1, 2월 누적치(129억4977만 달러)와 비교하면 0.68%로 처참한 수준이다. 문제는 당분간 이런 분위기가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점이다. 그는 요즘 돌파구로 이란 시장 진출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했다. A 씨뿐만 아니다. 요즘 국내 경제계는 업종을 막론하고 이란 시장 진출을 화두로 내걸고 있다. 민간 연구소들은 앞다퉈 이란을 ‘금맥’ ‘사막의 오아시스’나 ‘잃어버린 중동의 아틀란티스’ 등으로 비유하며 공격적인 진출 전략을 쏟아내고 있다. 올해 1월 경제 제재가 풀린 이란의 잠재력은 그만큼 매력적이다. 우선 자원부국이다.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에 각각 랭크돼 있고, 아연 구리 철광 우라늄 등 68종에 이르는 다양한 광물을 보유하고 있다. 인구 8000만 명에 30세 이하 젊은이가 60%나 돼 상품판매시장 가치가 높다. 최근 경제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세계은행(WB)은 올해 이란의 경제성장률을 5.8%로 전망했다. 이달 14일 테헤란 증권거래소의 주가지수는 80,236으로 마감해 2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 이란과 한국의 오랜 우호관계도 이란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요소다. 대장금과 주몽 등 TV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가 여전히 이란 현지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란 정부는 수도인 테헤란 시에 ‘서울공원’으로 이름 붙인 도시공원을 둘 정도로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이란을 쳐다보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 건설사 관계자들이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요즘은 면담 일정 잡기도 어렵다고 한다. 조만간 있을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 때 내놓을 선물보따리를 찾는 정부의 행보도 탐탁지 않다. 재계에 따르면 정부는 요즘 의료 건설 제조 등 산업 전 분야에 걸쳐 ‘이야기되는 프로젝트’를 찾느라 분야별 기업 관계자들을 조르고 있다고 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 기대에 맞출 만한 의미 있는 양해각서(MOU)를 작성할 정도의 진척된 사업이 많지 않다”고 호소했다. 우려되는 건 역대 정권마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성과라며 내놓은 대형 프로젝트가 관련 기업과 국가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이 적잖았다는 점이다. 이달 초 사옥 매각과 인력 30% 감축 등을 담은 대대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은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광물자원공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석유공사는 창사 이래 가장 큰 4조8000억 원, 광물공사는 2조600여억 원의 적자를 냈다. 두 공사 모두 재임 시절 49차례에 걸쳐 84개국을 순방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진한 자원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낭패를 봤다. ‘희망의 지푸라기’를 찾는 기업인들에게 이란은 ‘썩은 동아줄’이 돼선 안 된다. 이란은 5000년 전부터 전 세계를 상대로 교역을 했던 ‘페르시아 상인’의 나라다. 그들의 대표적인 상술 중 하나가 ‘이란판 만만디’로 불리는 ‘야바시(Yavash)’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가 야바시와 충돌해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민관 모두 치밀하게 준비하고 정교한 전략을 세우기 바란다.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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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황재성]‘소 잃고 난 뒤라도 외양간을 고쳐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는 신용카드.’ 2002년 1월 국내에서 기프트카드를 처음으로 선보인 삼성카드가 내건 홍보 카피였다. 삼성은 초기에 ‘선(先)입금 후(後)사용’ 방식인 기프트카드를 ‘선사용 후결제’ 방식인 신용카드와 동일한 상품이라며 판매에 나섰다. 당시 백화점업계는 기프트카드가 자신들이 판매하는 종이 상품권과 경쟁상품이라며 백화점과 계열 할인점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삼성은 ‘기프트카드는 신용카드의 결제 프로세스가 그대로 적용되므로 신용카드’라며 ‘사용을 막는 건 관련법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백화점업계도 물러서지 않고 ‘카드 모양을 한 상품권일 뿐이다’며 맞섰다. 이 논란은 그해 10월 국세청이 ‘기프트카드를 유가증권(상품권)으로 규정한다’고 백화점업계의 손을 들어주며 일단락됐다. 이런 백화점업계의 거센 반발에도 기프트카드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발매 첫해에만 600억 원어치가 팔려나갔다. 시장도 성장을 거듭해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장규모는 2005년 5300억 원으로 껑충 뛰었고 2008년 1조 원을 돌파한 뒤 2010년 2조4000억 원까지 커졌다. 인기 요인은 여러 가지였다. 기존 종이 상품권이 백화점 주유소 등 일부 점포에 한정돼 이용되지만 기프트카드는 신용카드 가맹점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어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이었다. 특히 20, 30대 젊은층들은 세련된 모양에다 구겨지거나 훼손되지 않는 기프트카드에 큰 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인기의 중심에 무기명 기프트카드가 있었다. 익명성을 유지하면서 누군가에게 주기 쉽다는 장점이 빛을 발했다. 50만 원짜리 고액권의 인기는 고공행진을 했다. 2014년의 경우 한 해 판매된 기프트카드의 35%가 50만 원짜리였다. 그런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최근 들어 기프트카드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2010년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이용액이 줄면서 2014년 7700억 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주 수요자인 젊은층들이 플라스틱 기프트카드보다 기프티콘 등 모바일 상품권에 눈을 돌린 게 직격탄이 됐다. 여기에 백화점과 계열 대형마트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족쇄가 됐다. 한꺼번에 기프트카드 금액을 모두 쓰기 어렵다는 점도 걸림돌이 됐다. 한 번 쓰고 남은 돈에 맞춰서 사용하기가 어렵고, 잔액이 남은 채 분실했을 때 돌려받기도 쉽지 않다는 단점도 새삼 부각됐다. 여기에 보안에 취약하다는 게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았다. 기프트카드는 백화점 상품권, 문화상품권 등 시중에서 유통되는 유가증권 가운데 유일하게 보안장치가 없다. 백화점 상품권에는 위조 방지용 바코드와 부분 노출 은선이 들어있다. 문화상품권도 은박 스크래치가 있어, 이게 벗겨지면 사용에 제약이 있다. 카드업계는 기프트카드가 일회용품이고, 무기명 기프트카드는 한도가 50만 원이어서 사고가 나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만큼 보안수준을 높일 필요가 없다고 봤다. 이 때문에 잊을 만하면 기프트카드를 대상으로 하는 사기 유통이나 불법 복제 사고가 터졌다. 문제는 이런 취약점들이 최근 전문 해커로 보이는 외국인 범죄자들에게 노출됐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이들이 이용한 방법은 높은 기술력을 요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신용과 신뢰를 기반으로 생존해야 하는 금융회사로서는 치명적인 상황이다. 이제라도 카드사들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최소한 30만 원 이상 고액권에 대해선 신용카드에 준하는 보안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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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황재성]허술한 정책 홍보, 멀어지는 국민 체감도

    필자는 지난해 말 사내 인사명령에 따라 새 보직을 맡았다. 이후 2주 남짓한 사이에 지난 1년간 받은 전화, 문자, 이메일보다 서너 배쯤 많은 메시지 폭탄 세례를 받았다. ‘고맙고,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답을 보내는 것도 일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대부분 격려해주고 기운을 북돋아주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비슷비슷한 내용이었다. 통화하거나 답 문자를 보내고 나면 누가 누구였는지 뒤죽박죽이 됐다. 그런데 전화 한 통만큼은 며칠이 지나도록 생생했다. 신문 제작 마감을 코앞에 둔 시간에 생소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 같으면 “미안하지만 마감시간이니 잠시 후에 다시 해 달라”며 끊어야 했다. 그런데 수화기 건너로 다급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면에 실례합니다”로 시작한 그는 자신을 한 정부부처의 대변인이라고 소개한 뒤 속사포 래퍼처럼 중간에 끊기 어려울 정도로 말을 쏟아냈다. 요지는 “자신들의 사업 성과를 꼭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마치 추임새처럼 넣어가며 이어나간 그의 얘기는 꽤나 길었다. 그의 말 속에 느껴져 오는 간절함은 이전의 어떤 전화 대화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필자는 현장기자 시절 다양한 출입처에서 비슷한 전화를 받은 일이 많다. 하지만 이번처럼 간절함과 다급함이 진하게 배어 있던 적은 없었다. 아쉽게도 마감이 임박한 시점에 그의 얘기를 모두 들어줄 수는 없었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그가 몸담은 부처 업무와 관련해 청와대와 야당 의원 사이에 꽤나 심각한 설전이 오갔고, 청와대의 ‘강력한 지시’가 그에게 떨어졌다고 한다. 청와대가 국민의 정책 체감도가 떨어진다며 정책 홍보를 강화하라는 요구를 계속하면서 이 같은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 사회정책 부처는 지난해 말 정책 수혜 대상인 청년층의 호응도가 낮다는 지적에 아이돌 가수들이 출연하는 축제를 개최하기로 했다. 기획한 날로부터 최대 3주 이내에 실행하는 게 목표로 제시되자 걸림돌이 예상됐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최소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 확보도, 출연진 섭외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에 실무자들은 밀어붙이기를 강행했고, 사업은 2주 뒤 중단됐다. 예상대로 출연자도 공연장도 구할 수 없어서였다. 10대와 20대를 겨냥한 홍보물을 만들어보자며 웹드라마 제작을 추진했던 부처의 이야기는 황당할 정도다. 당초 지난해 9월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외부 전문가들의 기획안은 번번이 무시당했고, 출연진도 교체되길 수차례였다. 사업을 추진했던 제작사 관계자는 “실무자가 OK를 해줘서 만들어 가면 그 위 상급자가 반대를 하고, 이를 다시 반영해 수정안을 올리면 차상급자가 반대하는 상황이 지속됐다”고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작품이 최종 결재권자에게 전달된 건 12월 초.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최종 결재권자가 자신이 기대한 작품과 내용이 다르다며 실무자들을 다그친 것이다. 결국 해당 작품은 당초 계획과 달리 일반에게 선보이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이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해당 작품이 창고에 모셔질 가능성이 크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에서 정부 관계자들의 보여주기식, 조급증, 관료주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 정책 홍보를 계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를 보고 소비할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오로지 해당 부처 내부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래선 국민들의 정책 홍보 체감도가 높아질 수 없다. 단순히 정보를 주는 수준을 넘어서 감동을 줘야만 홍보 성과가 나는 시절이다. 정책 홍보 담당자들이 반드시 유념할 필요가 있다.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 201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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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핫 이슈]은행 주택담보대출 연체율 6년만에 최고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6년 만에 가장 높아졌다. 아파트 가격 하락으로 집단대출을 둘러싸고 벌어진 분쟁 탓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말 기준 국내은행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이 0.94%로 전달(0.86%)보다 0.08%포인트 상승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는 2006년 10월(0.94%)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2010년 10월 말 0.44%이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2년 만에 두 배 넘게 뛰었다. 이처럼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급등한 것은 아파트 집단대출(분양 후 입주 전까지 내는 중도금과 잔금 관련 대출) 연체가 늘어난 때문이다. 집단대출 연체율은 10월 말 현재 1.96%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0년 12월 말(0.95%) 이후 가장 높았다. 집단대출 연체가 쌓이는 원인은 새 아파트를 분양받고 중도금 등을 대출받은 사람들이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집값이 계속 떨어지면서 분양가보다 주변 집값이 싸지자 입주를 거부하면서 채무부존재 소송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권창우 금감원 은행감독국 팀장은 “집단대출 분쟁 사업장이 늘진 않았지만, 채무부존재 소송에 패소한 분양자의 대출이 만기가 돼 연체율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집단대출을 제외한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은 0.44%로 아직 안정적인 수준이다. 가계의 신용대출 연체율은 1.15%로 한 달 전보다 0.11%포인트 상승했다. 2006년 10월(1.07%)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합친 가계대출 연체율도 1.01%로 다시 1% 위로 올라섰다. 살림살이가 그만큼 팍팍해지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1.42%에서 1.63%로 0.21%포인트 뛰었다. 대기업대출 연체율이 0.27%포인트 오른 1.24%,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이 0.20%포인트 오른 1.77%다. 기업대출 연체율 상승에는 법정관리를 신청한 웅진그룹에 대한 대규모 여신이 연체된 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을 더한 전체 원화대출 연체율은 1.35%로 한 달 전보다 0.16%포인트 상승했다. 원화대출 잔액은 6조1000억 원(0.55%) 늘어난 1109조6000억 원이다. 가계대출이 2조1000억 원 늘어난 458조4000억 원, 기업대출이 3조6000억 원 늘어난 628조5000억 원이다. 권 팀장은 이와 관련해 “연말까지 연체나 부실채권을 적극적으로 정리하도록 지도해 연체율을 낮춰나가겠다”고 말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 201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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