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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법의학이 조그마한 상자 하나에서 시작됐다면 믿어지겠는가. 1940년대 만들어진 ‘손바닥 연구 모형’이란 상자를 살펴보자. 살짝 섬뜩할 수 있는데, 핏자국이 튄 벽지와 불탄 침대, 목을 매달아 숨진 시체의 미니어처가 세밀하게 표현돼 있다. 사건 현장을 재연한 것이다. 상자 크기는 실제 현장의 12분의 1이다. 이 상자를 처음 만든 건 미국에서 ‘과학수사의 어머니’라 불리는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1878∼1962)다. 미 메릴랜드주 수석검시관실 공공정보관인 저자는 최초의 여성 법의학자인 리의 생애를 되짚으며 미 법의학의 초기 발전 과정을 살펴본다. 사실 리는 법의학과 관련된 정규 훈련도 대학 학위도 받지 않았다.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의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꿈꿨던 하버드대 의대는 여성을 뽑지 않았다. 당시 여느 여성들처럼 결혼해 가정을 꾸린 리가 법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무려 51세 때였다. 한 치료시설에서 검시관 조지 버지스 매그래스(1870∼1938)를 만나며 리는 못다 한 꿈을 다시 펼쳐 나간다. 당시 미국에는 ‘코로너’라는 독특한 신분이 있었다. 사망 사건만 다루는 게 아니라 세금을 걷는 일도 했다. 게다가 의학이나 법학은커녕 글도 모르는 이들이 상당수였다고 한다. 주로 고위관료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이를 앉히는 ‘정치적인’ 자리였다. 매그래스는 리에게 “제대로 훈련받은 의사가 사망 원인을 진단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대학에도 법의학과를 개설해 전문가를 길러야 한다”고 일러줬다. 가족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상당했던 리는 법의학을 독학하며 즉각 행동에 나섰다. 1931년 하버드대에 막대한 돈을 기부하고 미 최초의 법의학과를 개설했다. 1934년엔 법의학 전문 도서관도 만들었다. 앞서 언급한 손바닥 연구 모형을 만들고, 경찰 교육생들에게 이 모형을 통해 훈련받도록 했다. 리는 방대한 지식과 뛰어난 업적을 받아 여성 최초로 뉴햄프셔주에서 경찰 경감이 됐다. 현재 미국에는 리가 만든 손바닥 연구 모형 가운데 18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현대 법의학의 관점에선 다소 엉성하지만, 꼼꼼하고 놀라운 표현력은 지금도 놀랍다. 사회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며 세상을 바꾼 여성에게 경의를 표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당신은 당신을 좋아하나요?” 설치미술가인 박혜수 작가(48)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굳이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사는 게 재밌는지’ ‘지금 현재 스스로에게 무엇을 느끼는지’ 어쩌면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한 궁금증이다. 그리고 그 답에 삶과 예술이 추구하는 뭔가가 숨겨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토대로 전시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는 박 작가가 책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돌베개·사진)을 16일 출간했다. 한 편의 작업노트라 할 수 있는 이 책에는 그가 창작활동을 위해 모아온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빼곡하다. 사랑이나 실연, 꿈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작품에 담아온 그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서울 금천구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모노포비아―외로움 공포증’ 전시장에서 21일 만난 그는 “남들의 버려진 꿈이나 헤어진 연인이 남긴 물건, 혹은 고독사와 나이 듦 등을 다룬 작업 과정도 책에 담았다”며 “수많은 상실 속에도 여전히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되묻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통해 질문을 던지는 박 작가의 방식은 조소과 학생이던 20대 때 조우했던 영화 한 편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올해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브로커’로 친숙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2001년)란 작품이었다. “영화는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고르는 줄거리였어요. 그런데 전 지금까지의 인생에선 선택할 게 없구나 싶었죠. 가족과 사회가 원하는 모습을 충실히 따라왔기 때문이었죠. 문득 꿈이나 사랑 같은, 나이 들수록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어쩌면 사라지는 것들 중에 더 지켜야 하는 게 많은 게 아닐까요.” 11월 26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 역시 그런 고민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무표정한 공장 노동자들이 첫사랑 얘기를 할 땐 미소 짓는 영상,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뒤에 홀로 써내려갔던 일기…. 작품들은 시종일관 타인의 사연을 다루지만, 그 속에서 작가는 물론이고 관객들은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간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건 누구나 포기해선 안 되는 일이죠. 굳이 전시에서 제 얘기는 생략하는 이유도 작가에게 집중하면 관객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에요. 무언가를 상실한 경험이 있다면, 지금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묻고 싶은 겁니다.” 이런 상호작용은 작가에게도 자신을 깨우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그에게 관객은 아무 접점이 없는 ‘제3자’가 아니다. 박 작가는 “작품을 감상하는 그들이야말로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며 “작품을 통해 서로의 내면을 비출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가. 그가 가장 많이 던진다는 질문을 되물어봤다. 작가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요? 전 저를 너무 좋아하죠. 거울 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20대 중반의 한 조소과 학생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2001)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영화는 세상을 떠난 이들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고르는 내용인데, 이 학생은 영화를 보고 “지금까지 인생 중에는 선택할 게 없다”고 생각했단다. 가족과 사회가 원하던 것만을 충실히 따라왔기 때문이었다. “꿈이나 사랑 같은 개인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생각했다”는 그는 “사라지는 것들 중에는 지켜야할 것들이 많았고, 얻으려는 것들 중에는 긴 기쁨을 주는 것이 없다”고 깨달았다.어느덧 그는 중견 작가가 되어 남들에게 다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 다닌다. “너는 네가 좋니?”박혜수(48)는 사랑, 실연, 꿈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갖고 설문조사와 분석을 거친 뒤 시각예술 작품을 만들어 발표해왔다. 16일 발간된 책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돌베개)은 그의 작업노트로, 그가 모아온 남들의 버려진 꿈이나 헤어진 연인이 남긴 물건과 사연 등이 빼곡하다. 또 고독사와 나이 듦, 코로나 유가족 등에 대한 작업 이야기도 함께 담으며 수많은 상실 속에서도 여전히 소중한 것들에 대해 되묻는다.21일 서울 금천구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에서 만난 그는 2013년부터 지속해온 사랑과 실연에 관한 프로젝트 ‘굿바이 투 러브’를 마무리 짓는 전시 ‘모노포비아-외로움 공포증’(~11.26)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박혜수는 “이별 후에 남은 건 당신”이라며 “꿈이든 사랑이든 자신의 과거든 무엇인가를 상실하고 혼자가 된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묻고 싶다”고 했다.그의 작업의 핵심은 감정을 건드린다는 점이다. 무표정했던 중년 공장 노동자들이 첫사랑을 이야기하며 미소짓는 영상, 이별 후 누군가가 혼자 끄적인 일기…. 타인의 사연을 다루는 작품이지만, 관람객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찾고 어떠한 감정을 안고 돌아간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이 일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철학은 관람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전시에서 생략하는 이유기도 하다. “제 이야기가 들어가면 작가에게 집중돼요. 관람객들이 스스로 ‘나’에 대한 질문을 안고 가는 것이 주 목적인데, 제가 주인공이 될 순 없죠.”작가 또한 수많은 이들의 사연과 관람객들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본다. 과거 혹은 현재, 미래의 자신을. 사람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그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 사람’에겐 관심이 없다”고 답한다. “전 관람객을 제3자로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더라고요. 전 거울 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관람객들도 저를 보면 그랬으면 해요.”책과 전시를 보다보면 일관되게 ‘나’를 깨우는 질문들을 마주한다. “사는 게 재밌는지” “너는 누구인지” “너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따위들, 그리고 “너는 너를 좋아하는지”까지. 잘 물어오지 않았던 이 질문이야말로 필요한 질문은 아닐까. 작가가 던져놓은 질문을 그에게 되물었을 때 그는 자신있게 대답했다.“저는 저를 너무 좋아하죠.”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전시장 한쪽에 세워진 채 샛노란 빛을 머금은 가로등. 오래전 유럽 거리를 밝히던 가스등처럼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길 반복한다. 안개 낀 프랑스 파리 센강 주변을 산책하면 이런 기분이 들까. 몇 발짝을 더 내디디니 파블로 피카소와 클로드 모네의 작품이 눈앞에 펼쳐졌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 위대한 예술가들이 모여들던 19세기 파리의 노천카페로 탈바꿈했다. 21일 개막한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관객을 몽환적인 걸작의 세계로 초대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선보이는 세 번째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으로, 작가들 면면만 봐도 가슴이 뛴다. 모네, 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폴 고갱, 살바도르 달리의 회화 7점이 전시장을 수놓았다. 미술관은 “4월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첫선을 보였던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년)을 제외하면 모두 처음 공개하는 작품들”이라고 밝혔다. 가장 중심이 되는 작가는 피카소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기증한 피카소 도자 112점 가운데 90점을 대거 선보였다. 1948년부터 1971년까지 만들어진 ‘피카소 도자 에디션’의 대표작들이다. 전유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피카소가 회화나 조각, 판화에 활용했던 다양한 주제와 기법이 응축돼 작가의 예술세계 전반을 살필 수 있다”고 했다. 전시 제목에서 짐작되듯 작가 8명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했다. 당시 파리는 세계적인 미술의 중심지로, 이들은 다양한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다. 모네와 르누아르는 파리 문화계에서 유명했던 절친. 피사로와 고갱은 돈독한 사제지간이다. 피사로는 이번 전시에 나온 고갱의 ‘센강 변의 크레인’(1875년) 등을 보자마자 그의 재능을 알아봤다고 한다. 이후 증권 중개인이던 고갱을 가르쳐 전업 화가로 이끌었다. 함께 전시한 피사로의 ‘퐁투아즈 곡물 시장’(1893년)이 왠지 닮은 기운을 풍기는 연유가 짐작된다. 피카소와 미로, 달리는 스페인 출신이지만 파리에서 처음 만났다. 미로와 달리가 파리에 온 이유가 피카소 때문이었다고 한다.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년)과 피카소의 도자 ‘켄타우로스’(1956년), 사람과 새와 별이 있는 밤 풍경을 담은 미로의 ‘회화’(1953년)와 피카소의 ‘큰 새와 검은 얼굴’(1951년)을 살피노라면, 파리의 밤하늘 아래서 셋은 어떤 대화를 나눴을지 궁금해진다. 르누아르와 샤갈 역시 피카소와 이어진다. 피카소는 전시에 소개된 르누아르의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를 입은 앙드레(독서)’(1917∼1918년)를 본 뒤 1919년 존경을 담아 르누아르의 초상화를 그렸다. 샤갈도 파리를 사랑했으나 피카소를 처음 만난 곳은 1940년대 말 프랑스 남부였다. 샤갈의 ‘결혼 꽃다발’(1977∼1978년)은 당시 도자에 매진하던 피카소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바깥에 설치한 회화들 곁을 거닐다가 도자의 숲을 돌아본 뒤 전시장 가운데 설치한 테이블에서 쉬어가는 경로를 추천한다. 잠시 앉아 ‘걸작의 풍경’을 바라보면 삶을 토닥이는 예술의 숨결이 귓가를 간질인다. 무료이며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mmca.go.kr)에서 예약해야 한다. 1인당 4장까지 가능하다. 관람 희망일 14일 전 오후 6시부터 예약할 수 있다. 회차당 70명씩 하루 8회 차 관람을 진행한다. 현장에선 회당 30명, 하루 240명까지 따로 접수를 한다. 내년 2월 26일까지. 월요일 휴관.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전시장에 놓인 가로등 불이 깜빡거린다.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하는 곳. 마치 흐린 날 프랑스 파리의 노천 카페에 온 듯 하다. 21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막하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은 관람객들을 19세기 말 파리로 초대한다. 이 전시는 마르크 샤갈, 호안미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폴 고갱, 살바도르 달리의 회화 7점과 파블로 피카소의 도자 90점을 선보인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기증한 해외미술작품 중 피카소의 도자 22점을 제외한 모든 작품이 다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했던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에 출품됐던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을 제외하면 모두 첫 공개다. 이들 8명의 작가는 모두 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했다. 이 시기 파리는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모이는 국제 미술의 중심지였다. 이들은 스승과 제자로, 선후배와 동료로 만나 각자의 성장을 거듭했다. 전유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국적 다른 8명의 거장들이 파리에서 만나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장 초입에 놓인 피사로와 고갱은 유명한 사제지간이다. 피사로는 고갱의 초기작 ‘센강 변의 크레인’(1875) 등을 접한 뒤 그의 재능을 알아본다. 피사로는 당시 증권 중개인이었던 고갱에게 직접 풍경화를 지도하고 전시회 참가 기회를 주는 등 전업 화가의 길로 이끈다. 파리 근교의 전원 풍경과 아이 손을 잡고 강변을 걷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포착한 ‘센강 변의 크레인’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시장 풍경을 그린 피사로의 ‘퐁투아즈 곡물 시장’(1893)과 어쩐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이유다. 작가들 사이에서도 큰 주축이 되는 작가는 피카소였다. 미로와 달리는 피카소를 만나기 위해 처음 파리를 방문한 작가들이다. 세 사람은 모두 스페인 출신이지만 파리에서 서로를 처음 만나 교류했다. 이는 작품으로 증명된다. 그리스 신화 속 반인반마 종족인 켄타우로스를 주제로 한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과 피카소의 도자 ‘켄타우로스’(1956), 사람과 새와 별이 있는 밤 풍경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미로의 ‘회화’(1953)와 피카소의 ‘큰 새와 검은 얼굴’(1951)은 작가들 간의 접점을 보여준다. 르누아르는 피카소가 뒤늦게 매료된 작가다. 피카소는 르누아르의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를 입은 앙드레(독서)’(1917~1918)를 발견하곤 1919년 존경의 마음을 담아 르누아르의 초상화를 그렸다. 샤갈은 피카소를 1910년부터 피카소를 만나고자 노력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인해 불발되다 1940년대 말 피카소가 도자를 제작하던 남프랑스에서 처음 조우한다. 연인과 꽃 등을 통해 생의 순간들을 담은 샤갈의 ‘결혼 꽃다발’(1977~1978)은 피카소가 꽃다발이나 비둘기 등을 그려낸 도자와 겹쳐봐도 좋다.작가들 간 관계성이 전시 기획의 착점이 됐지만, 작품은 개별로 관람하기에 더 적절하게 꾸려졌다. 원형 전시장은 3개의 레이어로 나뉘어 외벽에는 회화 작품을, 가운데에는 피카소의 도자를, 가장 안쪽에는 카페처럼 공간을 구성했다. 이번 전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피카소의 도자들은 1948~1971년에 제작된 ‘피카소 도자 에디션’을 대표하는 작품들로, 피카소의 도자에는 그가 회화, 조각, 판화작품에서 활용했던 다양한 주제와 기법들이 응축돼있어 피카소 예술세계 전반을 살펴볼 기회다. 내년 2월 26일까지. 무료.김태언기자 beborn@donga.com}

“자랑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네요.”(나혜석의 손자 스탠 김)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뮤지엄(LACMA)에서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주최로 열리고 있는 기획전 ‘사이의 공간: 한국 미술의 근대’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8일(현지 시간) 열린 개막식 전후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이 비중 있게 소개하며 많은 인파가 몰렸고, 지금도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근대 여성 화가이자 시인인 나혜석(1896∼1948)의 손자인 스탠 김은 개막식에 참석해 할머니의 ‘자화상’(1928년경)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고 한다. 해외에서 한국 근대미술 전시를 접하기는 쉽지 않아 반갑다는 반응이 많다. 이번 전시에는 한반도의 격동기였던 1897∼1965년에 나온 회화와 조각, 사진을 엄선해 128점을 출품했다. 13일까지 전시장에 머문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관람객들이 굴곡을 겪었던 한국 근대 예술가들에게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며 “해외 한국전은 전통 혹은 현대에 초점을 맞춰 왔지만,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근대미술로도 지평이 넓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현지에선 사실주의 화가 이쾌대(1913∼1965)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다. 전시장 입구에 걸린 대표작 ‘군상Ⅳ’(1948년경) 주위엔 항상 많은 이가 몰리고 있다. 사진작가 한영수(1933∼1999), 임응식(1912∼2001) 등의 사진 30점도 인기다. LACMA의 버지니아 문 큐레이터는 “다양한 형식을 지닌 근대작의 유기적 관계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방탄소년단(BTS)의 RM이 재능 기부로 오디오가이드 목소리를 녹음해 눈길을 끌었다. RM은 조선 왕실의 어진화사(御眞畵師) 채용신(1850∼1941)의 ‘고종황제 어진’ 등 열 개 작품을 우리말과 영어로 설명했다. 내년 2월 19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수도승처럼 평생 작품 활동에만 헌신하셨어요. ‘빛의 화가’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분이셨습니다.”(박선주 영은미술관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프랑스가 자랑하는 샤르트르대성당에 해외작가 최초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4점을 설치하는 등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던 방혜자 화백이 15일(현지 시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 고인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화가다. 1956년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에 입학한 방 화백은 1세대 서양화가 장욱진(1917∼1990)을 스승으로 모시고 ‘단색화의 거장’ 이우환(86), 우현 송영방(1936∼2021)과 함께 그림을 배웠다. 1961년 국내 첫 프랑스 국비유학생으로 선정돼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고인의 작품 세계는 ‘빛의 화가’로 두루 일컬어진다. 평생 빛의 표현에 천착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어릴 적 개울가에서 반짝이는 조약돌을 보고 ‘이 빛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에 사로잡혔다”고 회고했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했던 고인은 국내에서 영은미술관이 운영하는 영은레지던시에 주로 머물렀다. 박 관장은 “항상 물감이 많이 묻은 같은 작업복을 입고 작업했는데,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언제나 진지하셨다”고 회고했다. 방 화백의 작품은 한국적 색채가 짙어 더 사랑받았다. 대표작 ‘우주의 노래’(1976년)는 한지와 황토를 섞어 빛의 번짐을 자연스럽게 살린 걸작. 올해 ‘이건희 컬렉션’에서 공개된 ‘하늘과 땅’(2010년)도 오묘한 전통적 색감으로 관심을 모았다. 샤르트르대성당 종교 참사 회의실에 걸린 작품이 마지막 유작으로 남았는데, 2018년 선정 뒤 지난해 완성했으나 팬데믹으로 아직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문화예술상(2010년)과 한불문화상(2012년), 올해의 미술인상(2008년) 등을 수상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두 시간 전 급성폐렴으로 입원한 아버지의 병실에서 나온 나. 간병인에게서 아버지가 임종 직전이란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다시 병원으로 되돌아간 나에게 아버지는 대뜸 “형은?”이라고 물어온다. 장남인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40년 전 잠시 집에 머물렀던 한 형을 떠올린다. 결국 세상을 떠난 아버지. 장례식장에 나타난 한 사내를 보며 ‘그 형’일 거라 짐작한다. 나는 남은 가족에게 형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보지만, 알게 되는 건 이전까지 몰랐던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들.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나는 타인의 인생을 판단하는 걸 그만 멈추기로 한다. 올해 데뷔 29년을 맞은 저자의 아홉 번째 소설집. ‘소년은 늙지 않는다’(문학과지성사) 이후 8년 만이다.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1996년)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2003년) ‘장국영이 죽었다고?’(2005년) 등으로 탄탄한 팬층을 구축해 온 그의 문장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위에서 소개한 단편 ‘타인의 삶’은 지난해 이효석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단편소설 9편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은둔형 외톨이인 주인공의 3인칭 시점이 독특하게 전개되는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를 비롯해 성경학교의 성추행 사건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의 진술을 다룬 ‘가브리엘의 속삭임’, 바다에서 아들을 잃은 뒤 아들의 죽음을 망각하기에 이른 아버지를 다룬 ‘튜브’도 인상적이다. 각기 다른 이야기지만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소설들은 읽는 내내 타인을 상대로, 더 나아가면 자기 스스로를 상대로 ‘가면’을 쓰고 있는 누군가를 직면하게 된다. 그건 내면에 상존한 또 다른 나일지도 모른다. 순간 동떨어져 바라보게 되는 나란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4일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비엔날레 전시장. 입구에서 만난 외국인 2명은 탐험이라도 나선 듯 신난 표정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이들은 “산동네 골목에서 이리저리 표지판을 따라오니 전시장에 다다랐다. 도심에서 신기한 체험”이라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개를 보고 부산에 왔는데, 숨겨진 보물섬을 마주한 기분”이라며 즐거워했다. 2002년 시작돼 올해로 20년을 맞은 부산비엔날레가 3일 개막해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때 “차별성이 없고 진부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부산비엔날레는 지역적 독특함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승부를 걸었다. ‘물결 위 우리’라는 주제 아래 여성과 이주, 노동, 자연을 키워드로 내세워 관객에게서 공감을 이끌어내려 노력했다. 일단 비엔날레가 열리는 장소 4곳부터 남다르다. 부산 산복도로(산 중턱을 지나는 도로)를 내려다보는 초량동과 태종대가 있고 해녀들의 일터였던 영도, 일제강점기부터 굴곡진 역사를 머금은 부산항 제1부두, 철새들의 터전으로 생태공원화한 을숙도다. 장소에 맞춰 도시의 역사를 조명하면서도 그 이면에 깔린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배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깡깡이’를 재현한 김도희 작가의 설치미술이나 부산 노동자 파업을 담은 최호철 작가의 회화가 눈길을 끈다. 지역성에 너무 강조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노력도 돋보였다. 인도계 호주미술가인 산신티아 모히니 심슨은 남아프리카에서 노역했던 여성 인도인의 삶을 15점의 회화 연작으로 소개했다. 국가무형문화재인 ‘불화장(佛畵匠)’ 이수자인 법인 스님과 콜롬비아 작가 프란시스코 카마초 에레라가 협업해 세계에 산재한 노동현장을 탱화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들도 인상적이다. 김해주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42)은 “부산 뒷골목에 밴 삶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공감할 보편적인 주제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랐다”며 “이번 전시가 서로 다른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할 방법을 모색할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11월 6일까지.부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비디오아트의 세계적 거장인 백남준(1932∼2006)의 작품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다다익선’(사진)이 3년에 걸친 복원 작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8년 가동을 중단한 뒤 2019년부터 보존 및 복원 작업을 진행한 다다익선을 재가동하고 관객에게 선보인다”고 15일 밝혔다.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있는 다다익선은 6∼25인치 브라운관 모니터 1003대를 쌓아올려 높이만 18m에 이르는 초대형 작품. 세월이 흐르며 모니터 등이 노후화돼 수리를 거듭했지만, 화재를 비롯해 각종 위험이 커지며 2018년 2월 가동을 멈췄다. 다다익선은 이듬해 9월 시작된 보존·복원을 통해 모니터 737대가 수리되거나 교체됐다.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운 모니터 266대는 외형만 유지하고 액정표시장치(LCD) 패널로 바꿨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백남준 탄생 90주년과 다다익선의 제막식 날짜에 맞춰 다시 선보였다”며 “다다익선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주 4일, 하루 2시간만 잠정 가동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4일, 부산 동구 초량의 한 언덕 위에 마련한 전시장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온 두 명의 관람객이 있었다. 이들의 동선은 부산비엔날레가 열리는 장소. 부산의 산복도로를 내다볼 수 있는 초량부터 출항 해녀들의 일터였던 영도, 일제 식민시기부터 물자와 피란민 수송을 담당하던 부산항 제1부두, 새들의 터전이었던 을숙도의 부산현대미술관까지. 이들은 “부산의 숨어있는 곳들을 찾아다니는 기분이다. ‘자연’ ‘이동’ 같은 현대사회 키워드를 대변하는 공간을 부산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고 했다. 올 가을 전국에서 동시대 미술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비엔날레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는 장르와 국적을 넘나드는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국제미술제다. 각 비엔날레가 고심한 주제는 제각기 다르지만, 최근 현대미술이 일제히 가리키는 것은 ‘공존’이다. 각 비엔날레가 다루는 작품들을 보며 공존의 대상을 고민해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이주, 여성, 노동 등을 소주제 삼아 공존을 환기한다. 다소 기시감이 있는 주제지만 차별점은 지역성에 있다. 김도희는 부산 깡깡이(배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행위)를 재현한 설치 작품을, 최호철은 부산에서 진행됐던 한진중공업 고공 농성 장면을 그린 작품을 내놨다. 도시의 급성장 속에서 중요시 여겨지지 않았던 존재들을 부산의 구체적인 사건들을 통해 재확인시키는 식이다. 전시는 부산의 특수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법인 스님과 콜롬비아 출신 프란시스코 카마초 에레라는 협업을 통해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한국을 관통하는 고무산업을 소재로 노동자와 환경 파괴의 역사를 탱화로 표현했다. 그렇게 보면, 남아프리카에서 노역하던 여성 인도인들의 삶과 학살 등을 그린 산신티아 모히니 심슨의 회화도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게 느껴진다. 김해주 감독은 “부산의 뒷골목 이야기가 보편적인 이야기가 돼가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서로 다른 현재를 사는 우리가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했으면 한다”고 했다. 11월 6일까지. 지난달 2일 개막한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는 ‘미래 도시’라는 주제 하에 디지털 시대 속 인간이 공생해야 할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한다. 영국의 알렉산더 웜슬리가 도시개발로 사라져가는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3개 지역을 3차원 가상환경으로 꾸며낸 ‘티라나 타임캡슐’ 등은 가상현실이 개입되는 새로운 도시 모습의 탄생을 마주하게 한다. 과학도시를 지향하는 대전답게 예술과 과학기술을 접목시켜 대전시립미술관과 대구 도심 내 상징적인 4개 공간에서 다음달 30일까지 진행한다. 자연과 생태계는 많은 비엔날레에서 특히나 자주 논의되는 공존의 대상이다. 지난달 27일 개막해 11월 30일까지 진행하는 공주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또, 다시야생’을 주제로 충남 공주 연미산자연미술공원 일대에 작품을 내놨다. 거대한 말이 관람객을 감싸는 형상으로 인간과 동물의 영적인 연결을 꾀하는 몽골 작가 그룹의 설치작 ‘자연과의 상관관계’ 등이 대표적이다. 11월 열릴 제주비엔날레 또한 지구 공생을 위한 자연의 순리에 주목한다. 강이연 작가는 제주의 자연을 소재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미디어아트로 풀고, 캐나다 출신 자디에 사는 제주 자연물을 이용한 조각, 회화 등을 선보인다.부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우리는 프랑스의 보물을 잃었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1960년대 유럽을 강타한 영화 사조 ‘누벨바그(새로운 물결)’를 이끌며 세계 영화계 판도를 뒤바꾼 장뤼크 고다르 감독(사진)이 13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92세. 로이터통신은 “프랑스 뉴웨이브 영화의 상징인 고다르 감독이 13일 타계했다”며 “그는 기존 영화의 문법을 거부하고 지평을 넓혀 세계의 수많은 감독에게 영감을 줬다”고 보도했다. 파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소르본대 인류학과를 중퇴한 고다르 감독은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했다. 고다르 감독의 데뷔 작품인 ‘네 멋대로 해라’(1960년)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1932∼1984)의 영화 ‘400번의 구타’와 함께 “누벨바그의 신호탄”이라 불리는 기념비적인 걸작이다. ‘네 멋대로 해라’는 현장에서 쓴 ‘쪽대본’으로 진행되는 줄거리와 비논리적으로 흐르는 등장인물의 행동, 장면과 장면을 급전환하는 점프 컷 등 파격적인 연출로 “영화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극찬을 받았다. 고인은 ‘여자는 여자다’(1961년), ‘비브르 사 비’(1962년), ‘미치광이 피에로’(1965년) 등 센세이션을 일으킨 수작을 잇달아 내놓으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공상과학(SF) 영화 ‘알파빌’(1965년)은 제15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60년대 말 고다르 감독은 전통적인 극영화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다큐멘터리 혹은 에세이풍의 영화를 선보였고, 1970년대엔 당시로선 새로운 매체인 비디오를 이용해 작업하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다르는 누벨바그 영화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우상 파괴자이자 천재였다”며 고인을 추모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설치미술가 차기율 씨(61·사진)가 제7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6일 선정됐다. 동아일보와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강원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이 상은 박수근 화백(1914∼1965)을 기리는 뜻에서 2016년 제정됐다. 차 작가는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을 이용해 설치와 회화 여러 분야에서 자연이 지니는 원초적인 힘을 실험해 왔다. 심사단은 “차 작가는 동양의 전통철학에 바탕을 두고 박수근의 치열한 예술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다”고 평했다. 시상식은 10월 25일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다.‘박수근미술상’ 차기율 작가야생 그대로의 재료들 사용해 “땅에 대한 애정이 내 본연의 모습”‘도시시굴…’ ‘순환의…’ 작업 승화“자연이 만든 대범함 이길 수 없어… 자연과 협업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이번 수상 계기로 다시 한번 도약”“한참 나무를 깎고 있는 중에 전화가 걸려왔어요. 작업 중에 무심코 받았는데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하더군요. 아, 드디어 나에게도 뭔가 ‘계기’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기율 작가가 제일 먼저 떠올렸다는 계기란 뭘 뜻하는 걸까. 1일 인천 연수구 인천대에서 만난 그는 이를 “전력을 다해 작업할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부터 조형학부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꽤 오랫동안 뭔가 창작에 집중하질 못하며 생긴 ‘공백’에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런데 박수근미술상이 “다시 한번 삶을 도약시킬 힘을 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1985년 인천대를 졸업한 차 작가는 이후 약 10년 동안 여러 그룹전 등에 참가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 갔다. 하지만 1995년 두 번째 개인전을 마치고 난 뒤 무작정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귀국 뒤엔 1년 동안 작업을 멈췄다. “그때까지 제 작가로서의 인생은 한마디로 ‘깍두기’였습니다. 마흔 살 즈음까지 뭘 해도 잘 안 됐어요.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제 작품을 ‘설득하느라’ 몸부림쳤죠. 하지만 임기응변처럼 떠밀리듯 하는 전시는 관두고 싶었습니다. 여행에서 ‘나를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선 무작정 산천을 떠돌았어요.” 그 결과로 내놓은, 1999년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 ‘땅의 기억’은 차 작가의 예술 활동에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 이제는 그의 시그니처로 여겨지는 돌과 흙, 나무 등 야생 그대로의 재료들을 본격적으로 ‘화이트큐브’(전시장) 안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땅에 천착하기 시작했어요. 땅에 대한 애정이 제 본연의 모습이란 걸 깨달은 겁니다. 전 경기 화성의 갯벌과 평야가 맞붙은 시골집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 학교가 끝나면 산에서 식물과 새를 보는 게 일상이었죠. 지금도 눈을 감으면 끝없는 갯벌과 아지랑이, 풀, 온갖 철새들이 떠오릅니다. 그게 제 놀이터이자 저만의 색깔이 된 거죠.” 이런 기억은 이후 그의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자양분으로 자리 잡았다. 차 작가는 현재도 ‘도시 시굴―삶의 고고학’과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 사이’라는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도시 시굴은 집 뒷마당 같은 평범한 공간의 땅을 발굴해 삶의 흔적이 담긴 옹기 조각 등을 수집해 전시한다. 순환의 여행은 자연물과 문명을 결합시켜 보는 작업이다. 차 작가는 “자연이 만든 대범함은 이길 수 없다”며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연의 산물과 협업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설치미술을 주로 하다 보니 전시가 끝나면 작품을 해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차 작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는 “예술은 시각적 산물에 그치지 않고 정신이 바탕이 된 영적 산물”이라며 “의미 없이 소멸되는 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신념과 삶에 대한 열렬한 긍정이 남기 때문”이라고 했다. 차 작가가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된 건 어머니의 힘이 컸다. 2014년 세상을 떠나시며 어머니는 단 한마디, “정직하게 살아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 말을 되뇌며 강화도 작업실 앞마당 매화나무 아래 어머니를 모셨다. “지난해 그 매화나무가 고사했어요. 안타깝지만, 이 나무를 활용해 10월 수원국제예술제 ‘온새미로 프로젝트’에서 작품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일평생 아들의 삶이 녹록지 않은 것을 걱정하면서도 응원했던 어머니에게 이렇게라도 뭔가 갚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는 오늘도 그렇게 나무를 다듬고 자른다. 인천=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성균관이 앞으로 차례상을 간소화해 음식은 최대 아홉 가지만 올리고, 전도 부치지 않아도 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성균관 표준안에 따르면 추석 차례상의 기본 음식은 송편과 나물, 구이(적·炙), 김치(백김치류), 과일, 술 등 6가지다. 여기에 조금 더 올린다면 육류와 생선, 떡 정도를 추가할 수 있다. 밥과 국도 따로 올리지 않아도 된다. 위원회는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도 차례상에 꼭 올릴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홍동백서(紅東白西)’처럼 차례상에 음식 놓는 예법도 따를 필요가 없다. 실제로 붉은 과일은 동쪽에 놓고 흰 과일은 서쪽에 놓으라는 홍동백서나 대추 밤 배 감의 순서를 뜻하는 조율이시(棗栗梨枾) 등은 옛 문헌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당이 없는 일반 가정은 보통 지방(紙榜·종이에 써서 모신 신위)을 올리고 기제사나 차례를 지냈으나 이 역시 바꿀 수 있다. 모시는 분의 사진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위원회는 “집안마다 차례가 먼저인지 성묘가 먼저인지를 따지기도 하는데 가족끼리 의논해 정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은 “잘못된 의례문화가 명절증후군이나 명절 뒤 이혼율 증가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행처럼 내려오던 예법을 바꾸지 못했다”며 “이번 차례상 표준안이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성별 및 세대 갈등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제2의 n번방’ 주범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성착취 범죄자 ‘엘’(가칭)과 관련된 불법촬영 성착취물이 대거 접속 차단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엘 관련 성착취물 523건을 긴급 심의해 8월 31일부터 접속 차단 조치했다”고 5일 밝혔다. 해외 불법사이트에서 유통되는 미성년 피해자의 성착취물에 대해서는 국내 이용자의 접근을 제한하고, 해외 사업자에게는 해당 자료의 삭제를 요청했다. 아울러 경찰청이 ‘공공 DNA DB’로 등록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엘 관련 성착취물 429건을 ‘불법촬영 영상물 확인’으로 의결했다. 공공 DNA DB란 불법촬영물의 특징을 추출해 편집·변형된 파일도 적극 차단할 수 있도록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다. 해당 착취물들은 향후 이용자 접근 제한 등 필터링 조치를 통해 국내 인터넷사이트에서 유통이 차단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성균관이 앞으로 차례상을 간소화해 음식은 최대 아홉 가지만 올리고, 전도 부치지 않아도 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성균관 표준안에 따르면 추석 차례상의 기본 음식은 송편과 나물, 구이(적·炙), 김치(백김치 류), 과일, 술 등 6가지다. 여기에 조금 더 올린다면 육류와 생선, 떡 정도를 추가할 수 있다. 밥과 국도 따로 올리지 않아도 된다. 위원회는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도 차례상에 꼭 올릴 필요가 없다”며 “이런 상차림도 가족이 합의해 (더 줄이는 것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동백서(紅東白西)’처럼 차례상에 음식 놓는 예법도 따를 필요가 없다. 실제로 붉은 과일은 동쪽에 놓고 흰 과일은 서쪽에 놓으라는 홍동백서나 대추 밤 배 감의 순서를 뜻하는 조율이시(棗栗梨柿) 등은 옛 문헌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당이 없는 일반 가정은 보통 지방(紙榜·종이에 써서 모신 신위)을 올리고 기제사나 차례를 지냈으나 이 역시 바꿀 수 있다. 모시는 분의 사진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위원회는 “집안마다 차례가 먼저인지 성묘가 먼저인지를 따지기도 하는데, 이 역시 가족끼리 의논해 정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은 “잘못된 의례문화가 명절증후군이나 명절 뒤 이혼율 증가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행처럼 내려오던 예법을 바꾸지 못했다”며 “이번 차례상 표준안이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성별 및 세대 갈등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잠시도 쉴 수가 없네요. ‘국보급 명작’들이 워낙 많아 앉지도 못하고 내내 돌아다녔습니다.”(컬렉터 이영상 씨) “너무 도떼기시장처럼 미어터지는 건 ‘옥에 티’네요.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 작품은 사진을 찍기는커녕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요.”(관람객 김모 씨) 소문난 잔치엔 역시 먹을 게 많았다. 다만 먹기가 너무 힘들었다.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는 올 하반기 국내 미술계의 최대 이슈다운 면모를 선보였다. 세계적인 박물관급 작품들이 즐비해 구매자가 아니어도 눈 호강을 멈출 수 없었다. 2일 VIP 오픈 때도 성황이었지만 일반 관람객이 입장한 3, 4일엔 수만 명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대는 거장들의 작품이 쏟아진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은 최고의 하이라이트. 파블로 피카소(1881∼1973), 앙리 마티스(1869∼1954), 에곤 실레(1890∼1918)…. 미국 애쿼벨라 갤러리스나 영국 리처드 내기 갤러리 부스는 그림 앞에 다가서기도 힘들 정도였다. 3일 현장에서 만난 한 40대 관람객은 “모마(MoMA·뉴욕현대미술관)에 온 듯한 기분”이라며 감탄했다. 단체 관람객들은 해외여행을 온 것처럼 동선을 미리 짜서 움직이기도 했다. 세계 최정상으로 꼽히는 거고지언(미국)과 하우저앤드워스(스위스), 리슨 갤러리(영국)도 프리즈에서 처음 국내에 진출했다. 하우저앤드워스는 2일 미국 화가 조지 콘도(65)의 2022년 작 ‘Red Portrait Composition’이 280만 달러(약 38억 원)에 팔리는 등 15점이 오픈 1시간 만에 다 팔렸다. 15∼19세기 고지도와 고서를 선보인 영국 대니얼 크라우치 레어북스와 이집트 특집 섹션을 마련한 영국 데이비드 에런 갤러리도 많은 관심을 모았다. 에런 갤러리 관계자는 “한국 컬렉터들도 꽤 많은 작품을 구매했다”고 귀띔했다. 프리즈를 통해 한국 작가들을 ‘큰 무대’에 소개하려는 국내 갤러리의 노력도 눈에 띄었다. 국제갤러리는 김환기(1913∼1974) 작품을 전면에 내세웠고, 현대갤러리는 국내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인 박현기(1942∼2000)를 부각시켰다. 학고재갤러리도 류경채(1920∼1995) 등 한국 미술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거장들을 선보였다. 2일 현장에서 만난 강정하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는 “국내 메이저 화랑들 역시 전속계약을 맺은 해외 작가들이 적지 않은데도, 한국적 색깔이 분명한 작품들이 나와 큰 의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개최 전부터 우려했던 대로 스포트라이트가 프리즈에 집중되며 키아프는 ‘상대적 박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돼버렸다. 키아프에 작품을 출품한 한 중견 작가는 “전체적으로 함께 들썩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키아프 쪽은 민망할 정도로 한산하다”며 입맛을 다셨다. 국제적인 행사치고는 운영이 다소 미숙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부스별로 한국인 스태프가 부족한 데다 안내지도 등도 금방 동이 나 불편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관람객 김효경 씨(27)는 “모바일 입장권은 현장 스태프들도 혼란스러워하며 입장에 불편을 겪었다”며 아쉬워했다. 주최 측은 “관람객이 예상보다 훨씬 많아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좀 더 원활한 진행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프리즈는 5일까지, 키아프는 6일까지 열린다. 한편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가 내년에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건희 미술관’(가칭) 부지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술계에 따르면 3일 저녁 오세훈 서울시장은 프리즈 서울 관계자 및 주요 VIP 만찬에서 최근 프리즈 측이 요청한 송현동 부지 행사 대여와 관련해 “내년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개최지로 송현동 부지를 빌려줄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안녕하세요. 9월 2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을 맞아 미술계가 시끌벅적한 한 주 였습니다. 이번 주말까지 페어를 찾는 발길들로 서울이 분주할 것 같은데요. '영감한스푼'은 오늘 개막한 프리즈 서울을 찾아 현장 분위기를 담아왔습니다. 방문객들은 '해외를 가야만 볼 수 있는 작품을 서울에서 보니 기분이 좋다'며 들뜬 분위기였지만, 이 흥분이 가라앉았을 때 누가 웃고 울게 될 지를 생각하면 냉정해지는 하루였습니다. 저희는 '프리즈 서울'에 앞서 해외 미술계 인사들이 한국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 'Dive into Korean Art' 프로그램에도 다녀왔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트페어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 작가들의 예술을,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이 아니라 작가가 작업하고 호흡하는 스튜디오를 직접 보여주자는 취지로 기획되었습니다. 현장 분위기 오늘 함께 전해드릴게요. ○ 프리즈 서울, 현장은 들떴지만 실속은 누구에게..?:프리즈 서울 현장에서 만난 컬렉터를 비롯한 예술계 인사들은 해외를 가야만 볼 수 있는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트페어 개최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현장을 떠나 냉정히 돌아보면 보이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요. 장기적으로는 외국 갤러리와 아시아 컬렉터의 접점만 강화되는 것은 아닌지, 여기서 한국 작가들이 더욱 소외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나왔습니다. ○ 해외 미술계 인사들이 찾은 한국 작가의 작업실프리즈 서울 개최를 맞아 한국을 찾는 해외 미술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작업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 'Dive into Korean Art'가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과 경기 양평을 오가며 진행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미술계 인사들은 이미 한국 작가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던 바를 토대로 진지하게 질문하거나 적극적으로 쌓여 있는 작품을 꺼내 보기도 했습니다. ○ 프리즈 서울, 현장은 들떴지만 실속은 누구에게? 피카소, 에곤 실레부터 리히터까지 서울에서 보다니! 우선 현장에서 만난 컬렉터, 관람객, 큐레이터 등 사람들의 반응은 들떠있었습니다. 특히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을 인상 깊었던 공간으로 꼽은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피카소와 에곤 실레처럼 누구나 잘 아는 근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관람'으로서 의미를 부여하는 측면이 보였습니다.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서 피카소 같은 고전 작품은 물론 고대 유물까지 볼 수 있어서 신기했어요. 데이미언 허스트 나비 작품이 있는 로빌란트 보에나 갤러리도 기억에 남습니다. 벨기에에서 온 귀여운 컬렉터 부부도 보고 저처럼 소규모로 컬렉팅하는 사람에게는 서울에서 이런 것을 볼 수 있다니 너무 즐거운 기회였어요! 저는 작품은 키아프에서 구매할 생각입니다. 젊은 작가인 장종환에 관심이 있어요." (홍진희, 컬렉터) "해외에서 본 프리즈 아트페어는 실험적 느낌이 있어서 전시를 보는 것 같았는데 상대적으로 프리즈 서울은 상업적 느낌이 강했어요. 그럼에도 프리즈 마스터스 홀은 전시장처럼 느껴졌고, 함께 온 큐레이터들 모두 이 공간을 베스트로 꼽았습니다." (강정하,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게오르그 바젤리츠 같은 작품을 집에 두고 보기는 쉽지 않으니, 여기서 지금 샴페인을 들고 앉아서 감상하고 있었어요. 인상 깊었던 부스를 꼽는다면 단연 가고시안 이죠. 애콰벨라 갤러리도 오늘 보니 재밌었어요. 저는 원래 현장보다 pdf나 이메일로 구매를 하는 편이에요.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고 또 내가 몰랐던 좋은 가격의 작품이 있나 알아볼 계획입니다. 지금은 글래드스톤 갤러리의 빅토르 만에 관심이 가네요." (익명 요청, 컬렉터) 1시간 만에 15점 판매한 하우저&워스 유명 작가들이 대거 포진해있는 '메가 갤러리' 하우저&워스는 첫 날 판매 리포트를 발표했는데, 오픈 1시간 만에 15점을 팔았다고 합니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팔린 작품들 대부분은 한국의 컬렉터나 사립 미술관, 그리고 일부 아시아 컬렉터가 구매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요 판매 작품을 보면...조지 콘도의 'Red Portrait Composition'(2022), 한국의 사립 미술관, 280만 달러니콜라스 파티, 'Clouds'(2022), 아시아 컬렉터, 32만5000달러안젤 오테로, Organic Summer(2022), 한국 사립 컬렉션, 17만5000달러에이버리 싱어, JUUL(2021), 한국 사립 컬렉션, 15만 달러 근데...다 외국 작가에요 현장 취재를 마치고 든 생각은, 프리즈 주최측이 오래 전부터 강조해왔던 '한국 미술과의 연결성' 부분입니다. 사실 어떤 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역으로 그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맹점일 수도 있잖아요? 프리즈 서울을 보면서 해외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을 본다니 즐거웠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판매'가 되는 것은 외국 작가라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즉, 프리즈 서울의 본질이 외국 갤러리가 한국에 와서 작품을 파는 것이라면, 그게 어떻게 한국 미술과 연결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는 거죠. 현장에서 외국 작가에 관심이 간다는 이야기를 해 주신 컬렉터도 많았습니다. "저는 김창열과 마이클 스코긴스 등의 작품을 컬렉팅해왔어요. 제가 기존 소장한 것과 결은 다르지만 뉴욕 기반의 Skarstedt 갤러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 부스 앞에 KAWS 작품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오랫동안 보지 못한 작품들을 직접 봐서 좋았어요. 미국 작가들이 좋았습니다."(우정우, 컬렉터) 다만 이러한 큰 미술 행사가 서울에서 열리는 것만으로 여러 가지 부대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프리즈 서울' 현장에 온 김구림 작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갤러리들은 아무래도 경쟁을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프리즈 아트페어가 달갑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렇게 나와서 작품을 보니 좋아요. 특히 젊은 작가들이 해외에 가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작품을 보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김구림, 작가) "제가 알고 있던 대만이나 홍콩의 아시아 컬렉터 외에도 못 보던 컬렉터들이 서울을 방문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유럽에서 현장을 취재하러 온 에디터들도 많았어요. 이들이 프리즈만 보지 않고 키아프도 보고 갈테니, 전반적인 붐업이 이뤄지지 않을까요?"(이장욱, 스페이스K 큐레이터) 제작진은 이번주 프리즈 서울을 비롯해 여러 행사들을 취재하며 서울을 찾은 해외 미술인들이 한국 미술 '시장'의 성장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한국 미술'은 잘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미술보다는 K팝과 K컬처 이야기 하는 경우가 더 많기도 했고요. 그래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결국에는 메가 갤러리들을 '메기'로 삼아 한국 미술이 더 긴장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의견도 들려주세요! ○ 해외 미술계 인사들이 찾은 한국 작가의 작업실 이런 가운데 프리즈 서울 개막을 앞둔 8월 31일, 경기도 양평에 해외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 마케터, 기획자, 작품 판매 플랫폼 운영자 등 다양한 인사들이 모였습니다. 8월 29일부터 2박 3일간 진행된 'Dive into Korean Art'에 참가한 것인데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한국 작가를 알리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프로그램 기획자인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 정일주 퍼블릭아트 편집장의 이야기와 함께 현장 분위기를 소개드리겠습니다. "프리즈에 가면 이미 보던 것들이 또 나올 거에요" 31일 양평 작업실 방문에는 카린 카람 아트시(Artsy) 글로벌 영업&파트너십 부사장, 지아지아 페이 전 유대인미술관 디지털 디렉터&구겐하임 디지털마케팅 부국장, 크리스찬 루이텐 'Avant Art-online' 창립자, 아론 세자르 영국 델피나 파운데이션 창립이사 등 다양한 분야의 구성원이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아지아 페이가 프로그램 참여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하더군요. "'프리즈 서울'은 어차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메가 갤러리들이 올 것이고, 그러면 거기서 보게 될 풍경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에요. 이미 봤던 것들보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경험하고 싶은데, 작업실 방문이 그런 점에서 좋은 기회죠." (지아지아 페이, 미술관 디지털마케팅 전문가) 이 프로그램이 기획된 것도 같은 의도에서였습니다. 정일주 편집장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작가 중엔 아트페어와 전혀 무관한 사람도 짐작보다 많아요. 예를 들어 첫날 작업실을 공개했던 최우람이나 이예승, 김아영, 전준호&문경원의 작품이 프리즈나 키아프에 자주 걸리진 않으니까요. 페어에 맞춰 방문한 인사에게 시장과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더라도 역량있는 작가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정일주, 퍼블릭아트 편집장) 작업실이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 특히 이들이 미술관이 아니라 작품이 쌓여 있는 작업실을 찾았다는 것도 새로운 포인트였습니다.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작업실을 돌아다니다가 작품을 꺼내어 보기도 하고, 또 작가에게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작가의 작품을 두고 미술관 큐레이터는 "우리 미술관 천고가 높아 디스플레이가 가능하다"고 묻고, 온라인 플랫폼 관계자는 "당신 작품을 온라인으로 소개할 때 유의할 점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재단 이사는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작업을 하면 기분이 어떠냐"고 묻기도 하더라구요. 현장에서는 '한국 미술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으니 온라인으로도 이런 정보를 많이 공유해달라'거나, '해외 미술계와 한국 미술계의 교류가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관심은 충분하니, 재밌는 걸 어서 던져달라는 분위기였다고 해야할까요? 그런 점에서 오늘 레터는 한국에서 열심히 작업하고 계신 작가나 큐레이터분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는 내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99김민 기자 kimmin@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올해 2월 영국 소더비 경매에는 웬만한 예술 작품보다 훨씬 주목받은 출품 목록이 있었다. 다름 아닌 운동화다. 지난해 숨진 미국 패션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만든 ‘루이비통×나이키 에어포스1’ 200켤레가 나왔는데, 총 낙찰가가 2500만 달러(당시 기준 약 329억 원)였다. 한 켤레의 평균 가격이 1억6000만 원쯤 된다. 사실 이런 얘기 별로 놀랍지 않다. 낡아빠진 콘셉트의 스니커즈가 100만 원 가까이 하는 세상. 이젠 ‘스니커테크(스니커즈+재테크)’란 용어도 꽤나 익숙해졌다. 한정판 운동화를 힘겹게 구한 뒤 되팔아 수익을 거뒀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기고해온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오랫동안 의류와 제화 취재를 이어왔다고 한다. 관련 TV 다큐멘터리도 제작하는 그는 갈수록 거대화되는 신발 산업의 이면에 숨겨진 현실을 파헤친다. 이 정도 말하면 누구나 짐작하듯, 다국적 기업의 횡포나 열악한 노동 환경 같은 이슈들이다. 왜 하필이면 신발에 주목했을까. 저자는 “세계화의 추동력인 동시에 그 결과물”이 신발이라고 봤다. 신발은 제품 가운데서도 “생산의 세계화를 최초로 경험한 물품 가운데 하나”다. 통신과 운송 기술이 발달하고 제3세계로 저임금 노동시장이 퍼지면서, 신발을 만드는 건 세계적으로 이뤄지는 ‘지구적 공정’이 됐다. 미국에서 디자인하면 아시아에서 제조한 뒤 호주에서 팔리는 식이다. 2019년 기준으로 1년 동안 243억 켤레(하루 약 6600만 켤레)나 생산된다니 양도 어마어마하다. 저자는 휘황찬란한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신발을 만드는 작업장은 너무나 열악하다는 점을 고발한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 노동자 셰브넴(가명)의 하루를 따라가 보자(그는 나라도 밝히길 꺼렸다). 1주일에 6일을 일하는 그는 오전 7시에 출근한다. 끝나는 시간은 ‘늦은 밤’. 계약서에는 근무시간이나 여건도 명확하지 않다. (근무일인) 토요일에 쉬면 안 되냐고 했다가 해고당한 동료도 있다. 점심시간은 딱 25분. 일하던 작업대에 그대로 앉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는다. 그가 만든 부츠는 유럽에서 200유로(약 27만 원)에 팔리지만, 셰브넴에겐 몇 달은 꼬박 일해야 모을까 말까 한 거액이다. 신발공장은 또 다른 위험도 상존한다. 독성 화학물질이다. 학자와 학생들로 구성된 한 비정부기구는 2016년 중국 광둥성에 있는 몇몇 공장에 비밀 감시팀을 보낸 적이 있다. 이들에 따르면 접착제나 세척용 화학물질을 다루는 직원들에게 회사는 너무나 엉성해서 보호 기능이 전혀 없는 장갑과 마스크를 지급했다. 그마저도 주지 않는 공장도 여럿이었다. 당시 자주 코피를 흘리는 등 몸에 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현지 직원이 적지 않았다. 신발은 소모품이다. 해마다 200억 켤레 넘게 만든 신발은 언젠가 쓰레기가 되고 생태계를 해치는 요인도 된다. 물론 신발에 열광하는 이들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굳이 깊게 신경 쓰지 않았을 뿐. 하지만 만약 이 책을 마주한다면 한 번쯤 떠올려 보자. 신발 수선법과 관련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소개하는 저자의 진심을. 소비재의 문제가 신발뿐만은 아니지만, 진짜 신발을 사랑하는 법을 고민해 보게 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프랑스 남부 바카라스 바닷가에는 높이 13m의 나무 조각품 하나가 우뚝 서 있다고 한다. 한국 근대 예술가 문신(1922∼1995)의 ‘태양의 인간’이란 작품으로, 1970년 바카라스에서 열린 국제조각심포지엄에서 처음 공개됐다. 현지에서는 올해 문신 탄생 100주년을 맞아 관련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1일부터 선보인 기획전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는 머나먼 타국에서 왜 문신이란 예술가를 재조명하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다. 회화와 조각 등 232점과 아카이브 100여 점을 통해 그의 인생과 예술 활동 전반을 소개한다. 문신은 일제강점기 일본 규슈 탄광촌에서 한국인 이주노동자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무렵 귀국해 아버지 고향인 경남 마산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16세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회화를 공부했다. 문신의 회화는 대담하고 역동적이다. 1945년 귀국해 주로 그린 마산 풍경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1전시장 입구 쪽에 조각 작품 ‘어부’(1946년)가 있고, 이를 화폭으로 옮긴 게 바로 옆 ‘고기잡이’(1948년)다. 어민들의 거친 삶이 살아 숨쉬는 듯 다가온다.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간 문신은 조각가로서 제2의 인생을 맞는다. 도불화가 김흥수 화백(1919∼2014)의 소개로 파리 서북쪽 ‘라브넬’ 고성 공사장에서 일하며 돌과 모래의 질감에 매료됐다. 미술관 측은 “조형의 기본 단위인 원과 선을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해 형태 그 자체에서 리듬감과 음률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관람객이 조각 작품을 보고 “개미를 닮았다”고 해 그대로 제목이 됐다는 ‘개미’(1970년)나 전시 부제로 달기도 한 조각 시리즈 ‘우주를 향하여’는 문신의 심오하고 도전적인 작품 세계를 잘 보여준다. 내년 1월 29일까지. 2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