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이지윤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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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23~2025-12-23
문화 일반22%
역사17%
문학/출판14%
미술14%
인사일반11%
음악8%
연극6%
대통령3%
요리/음식3%
기타2%
  • “보고 싶어도 참았다”… 엔데믹 ‘보복 관람’에 공연계 훈풍

    공연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공연 관람에 제약이 컸던 팬데믹 시국을 지나 지난해부터 엔데믹 국면으로 전환되며 공연 시장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치열한 ‘티케팅’전이 벌어지며 몇 년간 잠잠했던 암표시장마저 진화(?)되고 있다. ●브로드웨이보다 빠른 회복세6일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공연 티켓 판매액은 총 5589억 원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43% 증가했다. 성장세는 뮤지컬이 견인했다.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전체 76%를 차지했다. 클래식(12%)과 연극(8%)이 뒤를 이었다. 국내 공연시장 회복세는 글로벌 공연 강국으로 꼽히는 미국, 영국보다 가파르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한국 공연시장의 회복세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와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가 저조한 티켓 판매로 고전하는 것과 대비된다”고 평가했다. 국내 제작사들은 ‘맘마미아’처럼 흥행이 보장된 인기 작품을 내놓고 있다. 세계 유명 공연 단체도 한국 공연시장의 회복세에 주목하며 올해 잇달아 내한공연을 펼친다. 30년 만에 내한하는 파리오페라발레단(BOP)과 6년 만에 한국을 찾는 베를린필하모닉이 대표적이다. 이런 배경에는 코로나19로 공연을 장기간 취소했던 해외와 달리 한국 시장은 강한 방역 조치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이어온 영향이 크다. 2020년 뮤지컬 ‘캣츠’ 공연은 한국에서만 열렸다. 올해 뮤지컬 ‘기대작’ 중 하나인 ‘오페라의 유령’ 역시 2020년 한국에서만 공연했다. 반면 뉴욕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은 팬데믹의 타격을 회복하지 못해 4월 ‘오페라의 유령’을 폐막할 예정이다. 1988년 초연 후 35년간 공연된 ‘오페라의 유령’은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작품이다. ●‘보복 관람’에 암표시장도 진화관객들의 보복 관람이 늘어난 것도 공연시장 회복에 큰 영향을 미쳤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표가 매진되자 한동안 잠잠했던 암표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뮤지컬 ‘레베카’의 옥주현, ‘웃는 남자’의 박효신 등 스타 배우들의 대표작은 VIP석 티켓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근 암표상에게 관객이 티켓 판매처 ID와 비밀번호를 모두 제공하는 형식의 암표 거래가 활개를 치고 있다. A가 티켓을 취소하는 순간 B가 티켓을 낚아챌 수 있도록 매크로를 쓰는 ‘아옮(아이디 옮기기)’이 대표적이다. 암표상이 표를 대거 사들여 웃돈을 얹어 파는 행위가 빈발하자 공연 제작사들이 관객의 티켓 구매 계정과 신분증을 확인해 암표 거래가 변화된 것이다. 회사원 임모 씨(30)는 “뮤지컬 ‘물랑루즈’ 홍광호 공연 회차를 예매하는 데 실패해 발만 동동 구르다 온라인에서 5만 원을 주고 ‘아옮’을 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 씨(26) 역시 지난해 8월 ‘더 보이즈’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 13만 원짜리 표를 암표상에게 맡겨 33만 원에 예매했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를 통째로 넘기는 거래 방식이 2, 3차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춘식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거래 직후 비밀번호를 변경한다 해도 ID와 이름을 알면 다른 웹사이트의 비밀번호까지 파악할 수 있다”며 “보이스피싱, 해킹에 연루될 가능성이 있고 본인이 직접 제공했기에 개인정보보호법상 보호를 받기도 힘들다”고 경고했다. 이에 공연업계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브로드웨이에서 취소 표를 살 수 있는 매표소를 운영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뮤지컬협회를 중심으로 티켓 되팔기 시장을 공식적인 시스템으로 흡수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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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XT ‘빌보드 200’ 정상… K팝 가수 다섯 번째

    보이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사진)가 다섯 번째 미니앨범 ‘이름의 장: 템프테이션(TEMPTATION)’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 한국 그룹이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한 건 방탄소년단(BTS·2018년), 슈퍼엠(2019년), 스트레이 키즈, 블랙핑크(이상 2022년)에 이어 다섯 번째다. 빌보드는 5일(현지 시간)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빌보드 200 1위에 올랐으며 미국에서 16만1500여 장의 음반이 판매됐다고 밝혔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다섯 명의 멤버인 연준, 수빈, 범규, 태현, 휴닝카이로 구성됐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빅히트뮤직이 선보인 두 번째 보이그룹으로 2019년 데뷔 때부터 주목받았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6일 빅히트뮤직을 통해 “소식을 듣고 놀랐다. 꿈에 그리던 목표였는데 이뤄질 줄 몰랐다. 응원하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름의 장…’은 피터팬처럼 소년으로 남고 싶은 유혹에 맞서는 청춘의 이야기를 담았다. 타이틀곡 ‘Sugar Rush Ride’를 비롯해 ‘Devil by the Window’ ‘Happy Fools’ ‘Tinnitus’ ‘네버랜드를 떠나며’까지 총 다섯 곡이 담겼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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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이 희곡 읽으며 타인-세상과 마주하길”

    “4, 5년 전 ‘어린이용 희곡을 써달라’는 출판사 제안에 손사래를 쳤어요. 써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자 노래 부르듯 즐거워 며칠 만에 끝을 봤습니다.” 지난달 어린이용 희곡 그림책 ‘훨훨 올라간다’(비룡소)를 출간한 극작가 배삼식(53)의 목소리는 나직해서 한적한 호수를 마주한 것 같았는데, 때론 세찬 여울처럼 흘렀다. 말의 음악적 요소를 강조해 노래극에 가까운 희곡 ‘훨훨 올라간다’와도 닮아 있었다. 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배 작가는 “우리말은 풍부한 음악성이 특징”이라며 “판소리 사설을 읽거나 식당, 지하철에서 대화를 들으며 살아있는 단어를 꾸준히 수집한다”고 했다.‘훨훨 올라간다’는 전북 진안의 마이산 설화를 재창작한 동화다. 먼 옛날 큰 죄를 지은 하늘나라의 부부가 이 땅으로 추방돼 오랜 세월 마이산으로 살았다. 다시 하늘로 돌아가려던 순간 마을의 아가씨에게 목격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배 작가는 이 설화를 ‘태초의 남매’가 하늘로 떠나려는 산을 붙잡는 이야기로 탈바꿈시켰다. 집필의 동기는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고향인 전북 전주에서 주말이면 시외버스를 탔고, 마이산에 올라 숨통을 틔웠다. 그는 당시 들은 마이산 설화에 매료돼 오래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즈음 지역 대학 동아리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연극을 처음 접했다. 배 작가는 “무대 장치는 허술했지만 그 공백을 상상으로 메우며 환상적인 경험을 했다”며 “연극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한 장르인 만큼 아이들이 일찍, 쉽게 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했다. 25년간 번역극과 창작극, 마당놀이 등 영역을 넘나들었고 동아연극상을 비롯해 각종 희곡상을 휩쓴 그이지만 처음으로 쓰는 어린이용 책은 만만찮은 도전이었다고 한다. ‘쉽고 분명하면서도 울림을 잃지 않아야’ 하기 때문. 그는 “집필 준비 기간 북유럽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등의 동화책을 읽으면서 존경스럽다고 느꼈다”고 했다.‘수백 개의 단어를 품은 단 하나의 단어’를 고르는 배 작가의 스타일은 이번 책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책 속엔 “나무들은 푸른 이불 잠든 산을 덮어주네” 등 직관적이면서도 아름답고,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함의를 담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들판 가득 웅성웅성 수런수런 두런두런” 등 의성어와 의태어를 다채롭게 썼고, 책 뒤편에는 아이들이 연극을 할 때 쓸 수 있는 종이인형 부록을 실었다.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QR코드로 담았다.‘훨훨 올라간다’는 작곡가와 협의를 거쳐 1년 후 노래극으로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방방곡곡 학교를 찾아 공연하는 것이 목표다. 배 작가는 타인과 부대끼는 경험이 적어진 요즘 아이들이 희곡을 소리 내 읽으며 세상과 마주하길 바란다고 했다.“사람은 태생적으로 다른 존재를 흉내 내면서 자기 자신과 세상을 인식합니다. 점점 외로워지는 아이들이 역할놀이를 통해 세상과의 관계를 미리 경험하고 단단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희곡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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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판 가득 웅성웅성 두런두런’…말의 음악적 요소를 강조했어요”

    “4, 5년 전 ‘어린이용 희곡을 써달라’는 출판사의 제안에 손사래를 쳤어요. 써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자 노래 부르듯 즐거워 며칠 만에 끝을 봤습니다.”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광화문사옥에서 1일 만난 극작가 배삼식(53)은 나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출간된 그의 희곡 그림책 ‘훨훨 올라간다(비룡소)’는 25년간 번역극과 창작극, 마당놀이 등 영역을 넘나들며 각종 희곡상을 휩쓴 그가 처음으로 펴낸 어린이용 희곡이다. “초장부터 아이들이 노래하며 노는 극을 구상했다”는 그의 말은 때론 세찬 여울처럼, 때론 적막한 호수처럼 흘렀다.‘훨훨 올라간다’는 전북 진안의 마이산 설화를 재창작한 동화다. 먼 옛날 큰 죄를 지은 하늘나라의 부부가 이 땅으로 추방돼 오랜 세월 마이산으로 살았다. 다시 하늘로 돌아가려던 순간 마을의 아가씨에게 목격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단 이야기다. 배 작가는 이를 ‘태초의 남매’인 송동이와 백단이가 하늘로 떠나려는 산을 붙잡는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책의 기원은 그의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고향인 전주에서 주말이면 시외버스를 타고 마이산에 올라 숨통을 틔웠다. 그즈음 처음 연극을 접했다. 지역 대학교 동아리가 공연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본 것. 그는 “비록 무대장치는 허술했지만 그 공백을 상상으로 메우며 환상적인 경험을 했다”며 “연극과 희곡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한 장르인 만큼 아이들이 일찍, 쉽게 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국내를 대표하는 극작가지만 어린이용 책은 도전이었다. 쉽고 분명하면서도 울림을 잃지 않아야 하기 때문. 그는 “좋은 어린이 책은 시적(詩的)이어야 하기에 까다로웠다”며 “북유럽 작가인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등의 동화책을 읽으며 존경을 느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개의 단어를 품은 단 하나의 단어’를 고르는 배삼식의 스타일은 간결하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용 책을 쓸 때 더욱 빛을 발했다. 책 속엔 “나무들은 푸른 이불 잠든 산을 덮어주네” 등 직관적이면서도 아름답고,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함의를 품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는 “산도, 거기 사는 동물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며 “환경, 역사 등 깊은 주제를 ‘아이들은 이해 못 한다’며 모조리 표백하기보단 아이들이 넌지시 감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 희곡을 소리 내 읽으며 세상과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 그에게 역할놀이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은 말의 음악적 요소를 강조해 노래극에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들판 가득 웅성웅성 수런수런 두런두런” 등 이전 작품과 비교해 의성어·의태어가 다채롭게 쓰였다. 책 뒤편에는 아이들이 실제 연극을 할 때 쓸 수 있는 종이인형 부록이 실려 있고, 배우들이 실감나게 읽어주는 목소리 연기도 QR코드로 담겨 있다.“제가 어릴 때만 해도 술래잡기, 말뚝박기 등 장난감은 ‘서로의 몸’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부대끼는 경험이 적습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다른 존재를 흉내 내면서 자기 자신을 인식해요. 위험한 발상일 수 있지만 문학이라는 안전장치 속에서 (아이들이) 인생의 잔혹동화를 미리 경험하고 단단해질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앞으로는 오페라나 노래 가사 등 음악적 글쓰기에 더욱 집중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물결처럼 출렁이는 판소리 사설(辭說)을 읽거나 술집 등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대화를 들으며 생생한 단어를 꾸준히 수집한다”며 “살아있는 우리말 보물창고”라고 웃었다. 이번 작품은 작곡가와 협의를 거쳐 1년 후 노래극으로 무대에 올린다는 계획이다.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 창작 오페라도 이르면 내년 선보일 예정이다.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무대를 꾸리고 싶어요. 산간지역을 포함한 전국 학교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이지윤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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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정 등 스타 캐스팅… ‘턴테이블 무대’도 볼거리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처럼 누군가를 사랑했다면…. 개막 전부터 화려한 스타 캐스팅과 10만 원이 넘는 티켓 가격으로 이목을 끈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셰익스피어의 실제 사랑 이야기에서 비롯됐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셰익스피어가 연극배우를 꿈꾸는 여성 비올라와 애절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녀와의 추억을 바탕으로 걸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써내려 간다는 이야기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지난달 28일 개막한 ‘셰익스피어…’는 동명의 영화(1998년)를 원작으로 한다.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이 연극으로 제작해 2014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했다. 국내 초연되는 이번 공연의 특징 중 하나는 TV 드라마, 영화에 출연한 유명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는 점이다. 셰익스피어 역에 정문성 이상이 김성철, 비올라 역에 김유정 정소민 채수빈이 발탁됐다. 특히 아역배우 출신인 김유정(24)은 이 작품이 연극 데뷔작인데도 20년에 달하는 연기 내공으로 당차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해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어서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는 장면이 많다. 셰익스피어가 한밤중 비올라의 집을 찾아가 시를 읊는 로맨틱한 상황에서 시상이 바로 떠오르지 않자 친구인 키트가 대신 구절을 불러주며 투덕거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다만 필요 이상으로 익살스러운 대사가 많아 전달력을 떨어뜨리고 부산스러운 느낌을 주는 점은 아쉽다. 무대 세트도 관람 포인트 중 하나다. 2013년과 2016년에 동아연극상 시청각디자인상을 받은 박상봉 디자이너가 꾸민 무대에는 회전문 형태로 돌아가는 대형 턴테이블이 설치됐다. 턴테이블을 통해 무도회장부터 극장, 집안까지 생생하고 다채롭게 보여준다. 무대 바닥 아래 숨어있다 위로 솟아올라 술집으로 사용하는 리프트도 공간의 입체감을 더했다. 작품 곳곳에 치밀하게 숨겨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찾는 것도 흥미롭다. “나 그대를 여름날에 비교할까요?”라고 말하는 셰익스피어의 대사에는 그의 대표작인 소네트 18번이 녹아있다. 고리대금업자 페니맨이 극장주 헨슬로에게 “돈을 갚지 않으면 코를 베겠다”고 위협하는 장면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과 연결된다. 작품 속 등장인물인 4명의 연주자는 클래식 기타, 아코디언, 바이올린 연주를 통해 때론 흥겹고, 때론 애달픈 음악을 선보이며 귀를 즐겁게 만든다. 3월 26일까지, 5만5000∼11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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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만원 넘는 연극티켓 화제…캐스팅만큼 화려했던 볼거리

    셰익스피어는 사실 자신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처럼 사랑했던 게 아닐까. 개막 전부터 화려한 캐스팅과 기록적인 티켓 가격으로 이목을 모은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이 같은 상상에서 출발한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지난달 28일 막을 올린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의 사랑을 재창작한 동명의 영화(1998년)에 기반한다. 이듬해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등 7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를 영국 극작가 리 홀이 희곡으로 제작했다. 2014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 후 미국, 일본 등 각국으로 진출했다. 국내 연극 중 티켓 가격이 10만 원을 넘긴 건 ‘셰익스피어…’가 처음이다. CJ 토월극장 내 가장 저렴한 3층 좌석도 5만5000원으로 다른 연극의 VIP석 가격에 맞먹는다. 주로 TV 드라마, 영화 등에 출연하며 스타덤에 오른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 셰익스피어 역에 정문성·이상이·김성철, 비올라 역에 김유정·정소민·채수빈이 캐스팅됐다. 아역배우 출신인 김유정(24)은 이번이 연극 데뷔작이지만 20년에 달하는 연기 내공으로 당차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잘 표현해냈다. 비싼 티켓가격은 스타 캐스팅 외에도 정교한 의상, 뮤지컬에 버금가는 무대세트 등으로 설득력을 높였다. 2013년과 2016년에 동아연극상 시청각상을 수상한 박상봉 디자이너가 무대를 꾸몄다. 무대 안쪽에서 회전문 형태로 돌아가는 대형 ‘턴테이블’이 무도회장부터 극장, 집안까지 생생하고 다채롭게 보여준다. 무대 바닥 아래 숨어있다 위로 솟아올라 술집으로 활용되는 리프트도 공간 활용도를 강화했다. 조명은 동화 같은 분위기와 무대 깊이감을 더했다. 완성도 높은 무대의상은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국립 무대의상 자격증(DMA Costume)을 획득한 도연 디자이너가 맡았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황금색 궁중 드레스와 비올라가 입는 초록·분홍·연노랑 드레스 3종은 작고 섬세한 비즈와 자수로 장식돼 제작기간이 기존 계획보다 길어지기도 했다. 조연 배우들의 의상은 유사한 색상을 조합한 톤인톤으로 디자인돼 통일감을 준다. 작품 곳곳에 치밀하게 숨겨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찾는 것도 감상 포인트다. “나 그대를 여름날에 비교할까요?”라고 말하는 셰익스피어의 대사에는 그의 대표작인 소네트 18번이 녹아있다. 고리대금업자 페니맨이 극장주 헨슬로에게 “돈을 갚지 않으면 코를 베겠다”고 위협하는 장면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과 연결된다. 연극에 입문하는 관객에겐 ‘셰익스피어…’의 뮤지컬적 요소가 친숙함을 준다. 클래식 기타 와 아코디언, 바이올린 등 4명의 연주자로 이뤄진 악단은 실제 악기를 연주하며 때론 흥겹고, 때론 애달픈 배경음악을 선보인다. 따뜻한 음색이 목재로 만든 무대 세트와 잘 어우러지는 것은 물론 16세기 영국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한다. 3월 26일까지, 5만5000~11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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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민해 고통받는 베토벤에 빠져 일상도 온통 예민”

    “베토벤 역을 제안받고 정말 기쁘면서도 음악사에서 베토벤이 갖는 의미를 잘 알고 있기에 중압감이 컸어요.” 올 상반기 뮤지컬 중 기대작으로 꼽힌 창작 뮤지컬 ‘베토벤’에서 베토벤 역을 맡은 배우 카이(본명 정기열·42)가 말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2일부터 초연되고 있는 ‘베토벤’은 뮤지컬 ‘엘리자벳’ 등에서 합을 맞춘 작사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러베이가 7년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굴곡진 삶을 산 상처받은 음악가 베토벤이 연인 안토니 브렌타노를 만난 후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교향곡 5번(운명)’, ‘피아노 소나타 14번(월광)’ 등 베토벤의 주요 곡 멜로디 일부를 넘버에 녹여 재탄생시켰다. 서울 강남구 EMK 사옥에서 27일 만난 카이는 이번 작품이 그의 17번째 뮤지컬 출연작이라고 했다. 박효신, 박은태와 함께 베토벤을 연기하는 그는 “작품에서 베토벤은 예민하고 고통받는 영혼으로 표현된다”며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니 실제 생활에서도 많이 예민해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날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가장 알맞은 단어를 고르느라 신중을 기했다. 배역에 대한 고민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카이는 작품 넘버를 소화할 때 악보에 적힌 음정과 박자를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노래할 때 완벽한 음악을 그저 바라보는 베토벤의 심정으로 불러요. 배우들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박자 등을 일부 변형하는 애드리브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엔 전혀 시도하지 않았어요.” 그는 “연출가 길 메흐메르트가 ‘러베이와 쿤체가 원하던 음악’이라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카이와 베토벤의 인연은 10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이는 베토벤 역에 함께 발탁된 배우들 중 유일한 성악 전공자다. 서울예고 음악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성악과에서 학사와 석·박사까지 마쳤다. “베토벤 가곡은 평이 갈리는 편이에요. 학창시절 친구들이 베르디와 슈베르트를 노래할 때 저는 베토벤 가곡을 사랑했습니다. 고전적인 구성에서 느껴지는 여백은 사람을 사색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그는 성악 전공자로서 팝페라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귀족과 대중 모두의 취향에 맞추면서 자신의 음악적 세계관까지 지켜야 했던 베토벤에게 묘하게 애정이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성악을 전공한 제가 크로스오버 음악을 택한 것 역시 돌이켜보면 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은 것이면서도 한편으론 세상과의 타협이기도 했거든요.” ‘베토벤’이 개막한 후 관객들 사이에선 서사가 매끄럽지 않고 귀에 꽂히는 넘버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극 초반 ‘사랑은 욕망일 뿐’이라던 베토벤이 돌연 사랑에 빠지는 장면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그는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이 그랬듯 위대한 시작은 늘 이질감에서 온다”며 “초연을 거치며 작품이 꾸준히 발전할 거라 믿는다. 베토벤이 그랬듯 더 나은 연기와 노래를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3월 26일까지. 8만∼17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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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베토벤’ 카이 “베토벤은 악성(樂聖)이기 전에 인간(人間)”

    ‘인간(人間) 베토벤’. “음악과 사랑 앞에서 베토벤은 악성(樂聖)이기 전에 누구보다 겸손한 인간이었다”는 배우 카이(본명 정기열·42)를 27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만났다. 말 한마디마다 가장 알맞은 단어를 고르느라 신중한 모습에선 맡은 배역에 대한 고민의 무게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음악을 얘기할 때의 눈동자는 극중 사랑하는 여인에게 빠져 ‘미쳤다’고 말하는 베토벤처럼 환히 빛났다. 12일 EMK 창작뮤지컬 ‘베토벤’이 전 세계 초연으로 개막했다. 뮤지컬 ‘엘리자벳’ 등에서 합을 맞춘 작사·작곡가 콤비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가 참여해 장장 7년 끝에 완성됐다. 굴곡진 삶을 산 상처받은 음악가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 안토니 브렌타노를 만난 후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교향곡 5번(운명)’, ‘피아노 소나타 14번(월광)’ 등 베토벤 작품의 짧고 강렬한 모티브를 뮤지컬 넘버로 탄생시킨 것이 특징이다. 뮤지컬만 17번째 작품인 정상급 배우지만 카이는 이번 작품에서 스스로에게 더 가혹해졌다. “배역을 제안 받고 정말 기뻤지만 베토벤이 음악사에서 갖는 의미를 잘 알기에 중압감도 컸습니다. 특히 극중 고통 받는 영혼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이전 배역들보다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리허설 영상을 본 그는 “내 고민이 이것밖에 안 됐나 하는 실망감에 고통스럽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고심 끝에 그는 ‘완벽한 음악을 가만히 바라보는 심정으로’ 노래하기로 했다. 통상 뮤지컬 배우들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곡을 조금씩 변형하는 것과 달리 베토벤이 원곡 악보에 써둔 음정과 박자를 그대로 살리고자 노력한 것. 그는 “대사 전달에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작곡가의 의도를 최대한 반영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연습 한 달 후 노래를 들은 길 메머트 연출이 ‘르베이와 쿤체가 원하던 음악’이라며 인정해주기도 했다”고 웃었다. 카이와 베토벤의 인연은 10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카이는 박효신, 박은태 등으로 이뤄진 베토벤 역 캐스팅에서 유일한 클래식 성악 전공자다. 서울예고 음악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성악과에서 학사와 석·박사까지 거쳤다. “베토벤 가곡은 평이 갈리는 편이에요. 학창시절 모두가 베르디와 슈베르트를 노래할 때 저는 베토벤 가곡을 사랑했습니다. 고전적인 구성에서 느껴지는 여백은 사람을 사색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최근 가장 즐겨듣는 건 베토벤 연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op.98)’라고. 괴팍하면서도 다감했고, 오만하면서도 겸손했던 베토벤의 모순을 카이는 ‘인간적’으로 받아들이며 소화했다. 그는 “귀족과 대중 모두의 취향에 맞추면서 자신의 음악적 세계관까지 지켜야 했던 베토벤에게 음악은 ‘결코 좋아서 한 일만은 아니었다’는 데 애정을 느꼈다”며 팝페라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 시절을 떠올렸다. “성악을 공부한 뒤 크로스오버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은 건 나만의 길을 찾은 것인 동시에 세상과의 타협이기도 했죠”. 초연인 만큼 서사가 매끄럽지 않고 귀에 꽂히는 넘버가 부족하단 평도 나온다. 극 초반 ‘사랑은 욕망일 뿐’이라던 베토벤은 돌연 사랑에 빠진다. 덜컥이는 감정을 그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적인 면모”라고 봤다. 카이는 괴테 원작에 기반한 뮤지컬 ‘베르테르(2020년)’에서도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연기했다. “베르테르는 권총 자살을 했고 베토벤은 여생을 사랑 없이 음악으로만 채웠어요. 이뤄질 수 없음에 굴복한 게 아니라 둘 다 자기 방식대로 영원한 사랑을 쟁취한 거죠. 현실에서 괴테를 싫어한 베토벤도 인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작품을 하늘에 있는 베토벤이 본다면 “21세기 한국에선 내 음악을 이렇게 기려주는구나 박수칠 것”이라고도 했다.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이 그랬듯 위대한 시작은 늘 이질감에서 와요. 작품은 초연을 거치며 꾸준히 발전할 겁니다. 베토벤이 그랬듯 더 나은 연기와 노래를 보여드리고자 고군분투 하겠습니다”. 3월26일까지, 8만~17만 원. 이지윤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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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설원 가르듯 스릴 넘치는 추리극

    일본 다이호대 의과학연구소로 한 통의 메일이 날아왔다. 메일 속 사진엔 곰 인형과 스키 리프트뿐…. 범인은 사진 속 배경인 스키장에 생화학무기를 숨겨 놨다. 주인공 구리바야시는 이 사진 한 장을 단서로 전국 수백 개의 스키장 중 한 곳에 묻힌 무기의 행방을 알아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 무기를 찾지 못한 채 날이 따뜻해지면 탄저균이 공기 중에 퍼져 온 마을이 초토화된다. 설산에서의 ‘화이트 러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학창 시절부터 스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저자는 총 4권으로 구성된 ‘설산 시리즈’를 펴냈다. 그중 ‘화이트 러시’는 ‘백은의 잭’을 잇는 두 번째 작품이다. 2013년 현지에서 출간된 지 일주일 만에 100만 부 넘게 팔리며 인기를 모았다. 시리즈는 작중 등장인물인 구조요원 네즈와 스노보드 선수 지아키를 공통분모로 ‘눈보라 체이스’, ‘연애의 행방’으로 이어진다. 추리물로서 ‘화이트 러시’는 저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용의자 X의 헌신’, ‘가면산장 살인사건’ 등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크다. 치밀한 추론 과정보다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개인의 양심과 보신 사이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며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결말의 완성도 역시 떨어지는 편이다. 감동을 기대한 듯한 반전은 앞서 쌓아올린 서사와 이질감을 빚어 다소 생뚱맞기까지 하다. 다만 설원을 가르듯 속도감 있는 전개가 주는 스릴은 확실하다. 이야기 곳곳에 불필요한 미끼를 심어두는 대신 생화학무기가 파묻힌 곳을 향해 모두가 달려 나가는 명쾌한 서사로 해방감을 선사한다. 작가 특유의 간단명료한 문장과 백색 비탈길에서 벌어지는 추격 장면은 속도감을 배가한다. 스키어들의 눈에 담길 아름다운 설경을 묘사한 문장들도 감상의 묘미다. ‘온통 은빛 세상’에 둘러싸인 구리바야시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스키장을 활보한다. 높다랗게 자란 너도밤나무 사이로 보드라운 파우더 스노가 흩날리는 대목은 당장이라도 눈밭을 거닐고 싶게 만든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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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택에 따라 바뀌는 2가지 인생, 영상으로 몰입감 살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우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혼 후 10년 만에 미국 뉴욕으로 돌아온 39세 여성 엘리자베스. 앞으로 먹고살 길을 고민하던 중 매디슨스퀘어파크에서 대학원 동창 루카스와 새 이웃 케이트를 만난다. 케이트는 그를 ‘리즈’라 부르며 브루클린에 기타 연주를 들으러 가자고 한다. 루카스는 ‘베스’라고 그를 부르며 뉴욕시 주거환경 개선 운동에 동참하자고 제안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리즈는 사랑을 중심으로, 베스는 커리어를 중심으로 나아간다.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이프덴’이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 중이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로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수상한 작사가 브라이언 요키와 작곡가 톰 킷 콤비가 참여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OST ‘Let It Go’를 부른 배우 이디나 멘젤이 엘리자베스 역을 맡아 2013년 미국 워싱턴에서 초연했고, 이듬해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이프덴’은 ‘만약 …했다면(if)’을 주제로 순간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then)를 속도감 있게 풀어낸다. 리즈와 베스의 삶이 번갈아 펼쳐질 때마다 바뀌는 시공간이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됐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쉼 없이 바뀌는 시공간을 배우의 등장, 퇴장과 의상 교체 등으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며 “자칫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조를 ‘극 전개를 따라잡는 재미’로 바꿔놨다”고 평가했다. 분홍 등 화사한 색상의 옷을 입은 리즈는 베스가 될 때 안경을 끼거나 무채색 재킷으로 갈아입는다. 화려한 뉴욕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낸 무대 영상도 눈을 즐겁게 만든다. 눈부신 야경과 덜컹이는 지하철, 열기 오른 야구장 등 뉴욕을 상징하는 다채로운 배경이 무대 위에 고스란히 펼쳐진다. 지혜원 뮤지컬 평론가는 “누구나 영화, 미국 드라마에서 봤을 법한 뉴욕 특유의 분위기를 물리적 세트가 아닌 영상으로 표현해 생동감을 높였다”며 “엘리자베스의 선택에 따라 바뀌는 결과를 영상이 효과적으로 나타내 몰입감을 살렸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출산 후 약 1년 6개월 만에 무대에 복귀한 배우 정선아를 비롯해 박혜나, 유리아가 번갈아가며 연기한다. 정선아는 ‘혼자가 되는 법’ 등 주요 넘버를 부를 때 특유의 시원한 고음과 폭넓은 성량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다만 깊이감 없는 연기력은 다소 아쉬웠다. 지 평론가는 “다른 길을 걷게 된 리즈와 베스의 삶에서 온도 차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2월 26일까지. 6만∼12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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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 vs 커리어…한 여자의 두 가지 인생 이야기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우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혼 후 10년 만에 뉴욕으로 돌아온 39세 커리어우먼 엘리자베스. 앞으로 먹고 살 길을 고민하던 중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서 대학원 동창 루카스와 새 이웃 케이트를 만난다. 케이트는 그를 ‘리즈’라 부르며 브루클린에 기타 연주를 들으러 가자고 한다. 루카스는 ‘베스’라고 부르며 뉴욕시 주거환경 개선 운동에 동참하자 한다.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서 리즈는 사랑을 중심으로, 베스는 커리어를 중심으로 나아간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이프덴’이 지난달 6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됐다. 시대극이 주를 이루는 국내 공연계에선 흔치 않은 21세기 동시대물이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로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수상한 브라이언 요키와 톰 킷 작사·작곡 콤비가 참여했다. 2013년 미국 워싱턴DC에서 배우 겸 가수 이디나 멘젤이 엘리자베스 역으로 초연한 이듬해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이프덴’은 ‘만약 ~했다면(if)’을 주제로 순간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then)를 속도감 있게 풀어냈다. 리즈와 베스의 삶이 번갈아 펼쳐질 때마다 바뀌는 시공간이 무대 위 자연스럽게 구현된 것이 감상 포인트.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는 “쉼 없이 바뀌는 시공간을 배우의 등·퇴장과 의상 교체 등으로 관객이 받아들이기 쉽게 풀어냈다”며 “자칫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조를 오히려 ‘극 전개를 따라잡는 재미’로 바꿔놨다”고 평가했다. 리즈는 베스가 될 때 안경을 끼거나 무채색 재킷으로 갈아입는다. 화려한 뉴욕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낸 무대 영상도 ‘이프덴’의 백미다. 눈부신 야경과 덜컹이는 지하철, 열기 오른 야구장 등 뉴욕을 상징하는 다채로운 배경이 무대 위 고스란히 펼쳐진다. 지혜원 뮤지컬 평론가는 “누구나 영화나 미드에서 봤을 법한 뉴욕 특유의 분위기를 물리적 세트가 아닌 영상으로 표현해 생동감을 높였다”며 “선택에 따라 바뀌는 결과를 영상이 효과적으로 표현해주면서 작품 전체의 결과 몰입감을 살렸다”고 설명했다. 독보적인 주인공 엘리자베스 역은 배우 정선아가 맡았다. 지난해 5월 출산 이후 약 1년 6개월 만의 복귀작으로 배우 박혜나와 유리아가 같은 배역을 번갈아 연기한다. 변화무쌍하던 무대가 암전되고 ‘혼자가 되는 법’ 등 홀로 부르는 넘버에서도 무대를 장악하는 ‘뮤지컬 디바’의 명성은 그대로였다. 반면 연기의 깊이는 부족했단 평도 나온다. 지 평론가는 “다른 길을 걷게 된 리즈와 베스의 삶에서 온도차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며 “극 중 아이를 낳게 된 이후라면 목소리와 제스처 등 세부적인 요소까지 바뀌었어야 하는데 아이를 낳기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2월 26일까지.이지윤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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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온 뮤지컬 ‘캣츠’… “객석 통로 통해 관객과 교감 업그레이드”

    《뮤지컬 ‘캣츠’가 배우들이 객석을 누비는 특유의 개성을 살린 오리지널 연출로 돌아왔다. 캣츠는 26마리 고양이로 변신한 배우들이 객석 통로를 통과하는 장면이 1막과 2막 시작 때 나온다. 쉬는 시간에도 배우들이 통로를 다니며 관객들에게 장난을 친다. 통로 좌석은 관객과 배우가 직접 교감할 수 있어 ‘젤리클석’으로 불리며 매 공연에서 빠르게 매진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배우들의 객석을 누비지 않았던 2020년 공연과 달리, 20일 개막한 이번 공연에선 젤리클석이 부활됐다. 2018년 내한공연 후 5년 만이다. 공연장인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1층 각 통로와 맞닿은 290여 석이 젤리클석에 해당된다. 아는 만큼 보이고, 자세히 볼수록 재밌는 캣츠의 의상과 장면에 대해 소개한다.》● 고양이별 성격 담은 의상, 분장 캣츠의 의상은 탄성 좋은 얇은 재질의 소재 ‘라이크라’로 만든다. 배우들이 고양이의 움직임과 자태를 잘 표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캐릭터별 성격을 엿보기 위해선 의상을 자세히 보면 된다. 고양이별 성격에 맞춰 색과 무늬를 그려 넣기 때문이다. 악당 고양이 매캐비티는 강렬한 빨간색 바탕에 노란색 번개 패턴을 입히고, 점잖은 사회자 고양이 멍커스트랩은 중재와 절제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회색·흰색 줄무늬로 장식한다. 의상과 분장을 총괄한 안현주 슈퍼바이저는 “국내는 물론이고 영국, 호주 등에서 소재를 들여와 5∼6개월간 의상을 만든다”며 “배우들이 여러 번 옷을 갈아입는 다른 공연과 달리 단 한 벌로 캐릭터를 구현하기에 의상 제작에 공을 많이 들인다”고 말했다. 팔다리와 몸통의 털에도 캐릭터 특성이 반영됐다. 격렬하게 춤을 춰야 하기 때문에 무거운 모조 털 대신 가벼운 천이나 털실을 꼬아 풍성하게 털을 만들었다. 낮에는 두꺼운 털실로 만든 옷을 입고 누워 있는 제니애니닷은 밤이 되면 털옷을 벗어던지고 탭댄스를 춘다. 이때 의상은 화려하면서도 가벼운 커튼 술로 만들었다. 고양이로 변신하는 마지막 단계인 분장도 놓쳐선 안 될 감상 포인트다. 마술사 고양이 미스터 미스토펠리스는 형형색색 고양이들 사이에서 흑백 메이크업으로 신비한 매력을 강조한다. 어린 고양이 엘렉트라는 보송한 솜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모발을 부풀리고 3, 4가지 색으로 염색해 발랄함을 더했다. ● 쉬는 시간에도 무대 지키는 선지자 고양이고양이들의 매력은 특정 장면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이번 공연에서 배우 브래드 리틀이 연기하는 선지자 고양이 올드 듀터러노미는 1년에 단 한 번, 새로 태어날 고양이를 뽑는 역할이어서 주변의 사연에 귀 기울인다. 1막이 끝나고 모든 배우들이 무대를 떠나는 쉬는 시간에도 올드 듀터러노미가 홀로 무대에 남아 관객들을 지켜보는 이유다. 한때 매혹적인 고양이였던 그리자벨라는 넓은 세상으로 모험을 떠났다가 초라하고 늙은 모습으로 돌아와 고독한 삶을 산다. 어른 고양이들이 그를 경계할 때 먼저 다가가는 건 바로 아기 고양이들. 장난기가 많아 무대 한편에서 서로 싸우기도 한다. 하수구, 트렁크 등 무대 곳곳의 세트에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고양이들을 찾는 것도 재밌다. 그리자벨라가 1막 마지막과 2막 후반에 애절하게 부르는 캣츠의 킬링넘버 ‘메모리’는 뮤지컬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명곡 중 하나. 1981년 초연 후 지금까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 세계적인 가수들이 180회 넘게 녹음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선 호기심 많은 고양이 제마이마가 2막을 열며 한국어 가사로 한 소절을 부른다. 3월 12일까지, 6만∼17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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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마리 고양이 더 가깝게 볼 수 있는 자리는?…알고보면 더 재밌는 뮤지컬 ‘캣츠’

    뮤지컬 ‘캣츠’의 백미 ‘젤리클석’이 5년 만에 돌아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018년 공연을 끝으로 중단됐던 젤리클석은 26마리 고양이로 변신한 배우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자리다. 이번 공연이 펼쳐지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경우 1층 통로에 맞닿은 290여 석이 해당된다. 아는 만큼 보이고, 자세히 볼수록 재밌는 ‘캣츠’를 감상하기 앞서 의상과 장면 등에 숨은 각종 팁들을 소개한다.●고양이별 성격 고스란히 담긴 의상과 분장‘캣츠’ 무대의상은 고양이의 자태를 온전히 보여주기 위한 고탄성 소재 ‘라이크라(Lycra)’로 만든다. 캐릭터별 성격을 엿보기 위해서는 이 라이크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된다. 성격에 걸맞는 색과 무늬를 전용 브러시로 그려넣기 때문이다. 악당 고양이 ‘맥캐버티’는 강렬한 빨간색 바탕에 노란색 번개 패턴을 입혔다. 점잖은 사회자 고양이 멍커스트랩은 중재와 절제의 이미지를 강조하고자 회색·흰색 줄무늬로 장식했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 의상과 분장을 총괄한 안현주 수퍼바이저는 “국내는 물론 영국·호주 등지에서 소재를 공수하며 의상 총 제작기간은 5~6개월에 달한다”며 “배우들이 등·퇴장마다 옷을 갈아입는 일반 공연들과 달리 캐릭터별 단 한 벌의 의상으로 캐릭터를 구현해내야 하기에 까다롭고 신중하게 작업한다”고 말했다. 팔다리와 몸통의 털 생김새에도 캐릭터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격렬한 안무를 고려해 무거운 페이크퍼(모조 털) 대신 가벼운 천이나 털실을 꼬아 풍성함을 표현했다. 낮에는 두꺼운 털실로 만든 옷을 입고서 누워있는 ‘제니애니닷’은 밤이 되면 털옷을 벗어던지고 탭댄스를 추는데, 이때 의상은 화려하면서도 가벼운 커튼 술로 만들어졌다. 고양이로 변신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인 분장도 감상 포인트다. 마술사 고양이 ‘미스터 미스토펠리스’는 형형색색 고양이들 사이에서 흑백 메이크업으로 분해 신비한 매력을 강조했다. 분장과 하나로 이어지는 가발의 경우 인모(人毛)를 염색한 뒤 펌 등 스타일링을 거쳐 만든다. 어린 고양이 ‘엘렉트라’는 보송한 솜털 느낌을 강조하고자 커트로 모발을 부풀리고 3~4가지 색으로 염색해 발랄함을 더했다.●인터미션에도 무대 위 남는 고양이의 정체고양이들의 매력은 특정 장면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이번 공연에서 세계적인 배우 브래드 리틀이 배역을 맡은 ‘올드 듀터러노미’는 1년에 단 한번, 새로 태어날 고양이를 뽑는 역할인 만큼 주변 사연에 귀 기울이는 캐릭터다. 1막이 끝나고 모든 배우들이 무대를 떠나도 홀로 무대에 남아 객석에 앉은 관객들을 지켜보는 이유다. 관객들은 ‘인터미션인데 왜 백스테이지에 들어가지 않나’ 의아해 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러한 콘셉트 때문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연출 하나하나에도 캐릭터가 담겼다. 한때 매혹적인 고양이였던 ‘그리자벨라’는 넓은 세상으로 모험을 떠났다가 초라하고 늙은 모습으로 돌아와 고독한 삶을 산다. 어른 고양이들이 그를 경계할 때 먼저 다가가는 건 바로 순수한 아이 고양이들. 장난끼가 많은 만큼 무대 한편에서 투닥거리며 싸우는 모습도 보여준다. 하수구, 트렁크 등 무대 곳곳에 숨겨진 세트에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고양이들을 찾는 재미도 있다. 그리자벨라가 애절하게 부르는 ‘캣츠’의 킬러넘버 ‘메모리(Memory)’는 뮤지컬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명곡 중 하나다. 1981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에 의해 180여 회 넘게 레코딩 됐다. 국내 제작사인 클립서비스 관계자는 “미국에선 라디오와 TV로 100만 번 이상 송출됐는데 이는 5년간 쉬지 않고 반복 재생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선 호기심 많은 고양이 ‘제마이마’가 2막을 열며 한국어 가사로 한 소절을 불러준다. 서울 공연은 3월 12일까지, 6만~17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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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男갱스터 역할 위해 일상서도 목소리 연습…최근 아들이 ‘엄마, 조폭 같아’해서 웃었다”

    “예술가로서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야 한다는 소명을 갖게 됐어요. 운명 같은 작품이죠.” 배우 추상미(50)가 연극 ‘오펀스’로 8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오펀스’는 미국 극작가 라일 케슬러의 대표작으로, 미국 필라델피아 북부에 거주하는 고아 형제 트릿과 필립이 중년 남성 갱스터 해롤드를 납치한 뒤 함께 살며 가족이 돼 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추상미는 해롤드 역을 맡았다.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9일 만난 그는 “오랜만에 무대에 서니 살아 있음을 느낄 정도로 행복하다”며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역을 맡았는데 관객들이 울고 웃는 모습을 보며 제가 격려를 받았다”고 했다.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형 트릿은 강도질로 생계를 이어가며 동생 필립을 과잉 보호한다. 트릿은 돈을 노리고 해롤드를 집으로 납치하지만, 고아 출신인 해롤드는 오히려 이들을 자식처럼 품어준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선 배우 앨릭 볼드윈, 로버트 드니로가 해롤드를 연기했다. 해롤드 역에 여배우를 발탁한 건 한국 프로덕션이 처음이다. ‘오펀스’는 2017년 남성 배우로만 캐스팅해 국내 초연한 후 2019년 처음 여성 페어가 꾸려지며 젠더프리 작품이 됐다. 이번 공연에선 네 명의 남녀 배우 남명렬, 박지일, 추상미, 양소민이 번갈아 가며 해롤드를 연기한다. 케슬러는 해롤드를 마초 캐릭터로 설정했지만 추상미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 소화했다. “해롤드는 끝없는 경쟁과 소외에 지친 우리 어깨를 주물러주는 존재예요. 남성 갱스터보다는 고아로 자라 아직 양육에 서툰 인물로 표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는 해롤드를 연기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고 고백했다. 1994년 연극 ‘로리타’로 데뷔해 올해 30년 차인 베테랑 배우지만, 남자 배역을 맡은 건 처음이다. 해롤드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일상에서도 목소리가 가늘어지지 않도록 애쓴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털털한 면이 많았다. 계속 연습한 덕분인지 최근 아들이 ‘엄마 변했어. 조폭 같아’라고 했다. 따라 한 건 아니지만 남편(배우 이석준)과 표정, 제스처가 닮아 있어 스스로도 놀랐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젠더프리 작품에 꾸준히 도전할 계획이다. “남성 배역 가운데 매력적인 캐릭터가 정말 많아요. 굵직한 역을 두루 맡으며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습니다.” 트릿과 필립처럼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상처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기도 해요. 상처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폐기물이 아니라 더 단단해지기 위한 삶의 재료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2월 26일까지, 4만4000∼6만6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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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성 갱스터로 변신한 배우 추상미…“남편의 표정과 닮아 있어 놀랐다”

    “예술가로서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야 한단 소명에 다가섰어요. 운명같은 작품이죠.” 8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배우 추상미(50)는 남성 갱스터 역으로 열연 중인 ‘오펀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개막한 ‘오펀스’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사는 고아 형제가 갱스터 해롤드를 납치하며 가족이 돼가는 이야기다. 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무대 위에서 너무도 행복했다”며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역할인데 되레 관객들이 울고 웃는 모습을 보며 격려를 받았다”고 했다. 극중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형 트릿은 강도질을 하며 동생 필립을 과잉보호하듯 부양한다. 트릿은 돈을 노리고 해롤드를 집으로 납치하지만 고아 출신인 해롤드는 오히려 이들을 자식처럼 품어준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선 알렉 볼드윈, 로버트 드니로 등이 해롤드 역에 오른 적 있으나 여자 배우들이 맡기는 한국이 처음이다. 2017년 남성 배우로만 구성된 국내 초연 이후 2019년 최초 여성페어가 꾸려지며 젠더프리 작품이 됐다. 이번 공연에선배우 남명렬, 박지일,추상미,양소민 등 네 명의 남녀 배우들이번갈아 가며 해롤드 역을 연기한다. 원작자 라일 케슬러는해롤드를 고전적인 마초 캐릭터로 설정했지만 추 씨는 성별 경계를 넘어 ‘상처 입은 치유자’로 소화했다. “해롤드는 끝없는 경쟁과 소외에 지친 우리 어깨를 주물러주는 존재예요. 남성 갱스터라기보단 고아로 자라 아직 양육에 서툰 인물로 표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신발끈이 풀린 채 걷는 필립에게 묶는 법을 알려주는 대신 끈 없는 로퍼를 사주는 장면에선상처받은 이들이 저마다의 최선을 다할 때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다. 다만 캐릭터를 외형적으로 구축하는 데는 씨름을 벌였다. 데뷔 약 30년차 배우인 그에게도 남자 배역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도 목소리가 가늘어지지 않게 하는 등 남성의 물리적 특성으로 여겨지는 것을 극대화하고자 끊임없이 연습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강인하고 털털한, 소위 ‘남성적’인 면이 많았다”며 “최근 아들이 ‘엄마 변했어. 조폭 같아’라고 하더라. 일부러 따라한 건 아니지만 남편과 표정, 제스처 등이 꼭 닮아있어 스스로도 놀랐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추상미는 ‘오펀스’를 시작으로 향후 젠더프리 작품에 꾸준히 도전할 계획이다.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 덕에 앞으로 연극을 계속 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어요. 성별에 국한되지 않고 굵직한 배역을 두루 맡으며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습니다.” 우리 주변의 트릿과 필립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그는 “상처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기도 한다”며 “상처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폐기물이 아니라 더 단단해지기 위한 삶의 재료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라고 되물었다. 2월 26일까지, 4만4000원~6만 6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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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은 이상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

    “쉽지 않은 여정을 함께해 준 배우들과 스태프에게 큰 소리로 또박또박 고맙다는 말을 한번 못해봤습니다. 감사합니다.”(김현탁 ‘걸리버스’ 연출가) “수상 소식을 듣고 이번처럼 기뻤던 적이 없습니다. 결과는 물론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아름다운 작품이었거든요. 함께 이끌어준 모두에게 고맙습니다.”(김광보 국립극단 예술감독)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16일 열린 ‘KT와 함께하는 제59회 동아연극상’ 시상식에 참석한 김현탁 극단 성북동비둘기 연출가와 김광보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말했다. 작품상을 받은 국립극단의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와 성북동비둘기의 ‘걸리버스’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와 소외된 존재들을 각각 참신하게 풀어낸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이경미 동아연극상 심사위원장(연극평론가)은 “연극은 극장에 모인 사람들과 세상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 가치에 대해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며 “연극인들을 믿고 아낌없이 후원해준 동아연극상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작품상에 오른 두 작품은 각각 연출상과 유인촌신인연기상 수상자도 배출했다.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로 연출상을 받은 이래은 연출가는 “앞으로도 계속 흔들리며 단단한 것들에 균열을 내는 연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유인촌신인연기상을 받은 ‘걸리버스’의 곽영현 배우는 “(상을 받은 사실이) 꿈만 같다”며 “넓은 시선을 갖게 해준 작품과 연출가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편입생’의 김하람 배우도 유인촌신인연기상을 받았다. 연기상을 받은 ‘한남(韓男)의 광시곡(狂詩曲)’ 김세환 배우는 “연기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던 제게 도움을 준 동료들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며 “세상과 인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계속 연기하겠다”고 했다. 함께 연기상을 받은 ‘웰킨’의 하지은 배우는 “배우로서, 또 한 명의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작품으로 상을 받게 돼 기쁘다”고 했다. 신인연출상은 연극 ‘툭’의 임성현 연출가, 무대예술상은 ‘웰킨’의 신동선 조명디자이너가 수상했다. 희곡상은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의 정진새 작가가 받았다. 특별상은 젊은 연극인이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한 ‘신촌극장’(대표 전진모)에 돌아갔다. 새개념연극상은 노인의 성(性)을 소재로 한국 근현대사를 조망한 광명문화재단(대표 어연선)과 극단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잠자리 연대기’(프로듀서 이호연)가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는 심사위원인 최용훈 연출가, 김옥란 극동대 연극연기학과 교수를 비롯해 배우 김정호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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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Z세대, 어느 세대보다 협업 중요하게 생각”

    최근 온라인에선 Z세대의 특성을 부정적으로 다루는 각종 밈(meme)과 영상이 적지 않다. 대부분 대중의 흥미를 끌려고 만든 것으로, 이 세대의 진짜 특성은 무엇이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인문사회학자들도 Z세대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공동 저자 로버타 카츠는 미국 스탠퍼드대 부설 행동과학 고등연구센터에서 인류학을 연구하는 교수다. 세라 오길비와 제인 쇼는 각각 영국 옥스퍼드대의 언어학·철학, 종교학 교수이고 린다 우드헤드는 킹스칼리지런던의 사회학 교수다. 저자들은 각자 전공을 바탕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18∼25세 학생들의 데이터를 수집해 Z세대를 향한 선입견에 정면으로 맞선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세대’라는 견해에는 “매우 공동체 중심적이며 타인을 돌보는 세대”라고 반박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자라면서 타인이 겪는 고통을 온·오프라인으로 숱하게 접했고, 사회운동에도 적극 동참하는 세대라는 것이다. ‘직장 내 전통적 리더를 거부하는, 자기중심적인 세대’란 의견에도 반대한다. 수평적 관계만 보장된다면 어느 세대보다 협업을 우선시한다는 것. 이들은 Z세대를 병리적으로 해부하거나 이상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방대한 데이터와 인터뷰에 기반한 연구를 근거로 “우리는 한 배를 탔다. 세대를 뛰어넘어 서로에게서 배울 귀중한 점들이 있다”고 강조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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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구갤러리 인사 佛 현대미술전, 모레노 등 5명 작품 선보여

    서울 종로구 구구갤러리 인사동점이 프랑스에서 주목받는 현대 미술가 5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봉주르! 프랑스 현대 미술 5인전’을 29일까지 개최한다. 재활용 가능한 금속과 가죽으로만 작업하는 크리스티앙 모레노의 작품은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일상의 감정을 회화와 조각에 담은 주창정을 비롯해 화려한 색채와 리듬감이 특징인 델핀 포르티에, 몽환적 우주를 표현한 마티외 르롤랑, 천연재료를 빛과 그림자로 다채롭게 표현한 프레데리크의 작품 ‘Eclosion(부화·사진)’를 볼 수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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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판화박물관서 토끼 판화 전시… 한중일 작품 70여점 한눈에

    강원 원주시 명주사 고판화박물관(관장 한선학)이 새해를 맞아 21일부터 3월 말까지 ‘계묘년 소원 성취 기원: 토끼 그리고 부적 판화’전(사진)을 연다. 한국 중국 일본의 목판화를 비롯해 탁본, 부적 판화 등 토끼와 관련된 판화 70여 점을 선보인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조도(花鳥圖) 채색 판화 ‘달과 토끼’부터 손오공과 토끼가 그려진 일본 우키요에 판화까지 다양하다. 관람객은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부적 판화를 인출하는 체험을 무료로 할 수 있다. 3000∼5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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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만의 ‘연극배우’ 유동근 “자다가도 일어나 대사 외쳐”

    “30년 만에 선 연극 무대는 마치 첫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새롭고 귀한 경험을 선물했습니다.” 배우 유동근(67)이 연극 ‘레드’로 무대에 돌아왔다. 1980년대 민중극단의 전단지를 붙이며 연극계에 발을 들인 그는 서울 중구 엘칸토예술극장에서 연기를 하다 무대를 떠났다. 43년 차 베테랑 배우지만, 오랜만의 연극 무대는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10일 만난 그는 “요즘 하루 종일 연극 ‘레드’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로 작품에 미쳐 있다”며 웃었다. 그는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레드’에서 배우 정보석과 함께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 역을 맡았다. 미국 극작가 존 로건이 쓴 ‘레드’는 로스코와 가상의 인물인 조수 켄(강승호 연준석)이 등장하는 2인극이다. 로스코가 1958년 뉴욕 시그램 빌딩의 고급 식당 ‘포시즌 레스토랑’에 걸 벽화를 의뢰받아 40여 점의 연작을 완성했다 돌연 계약을 파기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작가가 상상을 더했다. ‘레드’는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돼 이듬해 토니상 최우수작품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다. 유동근이 30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9년 후배 정보석이 출연한 ‘레드’를 관람한 것이었다. 작품과 캐릭터 모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막상 로스코 역에 캐스팅되자 난관이 찾아왔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본, TV와는 다른 발성 등이 큰 숙제였어요. 다른 배우들보다 3주 먼저 연습을 시작했고 연극 발성을 되찾고자 선생님을 따로 구해 배웠죠.”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분석하고 연습에 매달렸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은 1막과 마지막 5막을 장식하는 한마디 ”뭐가 보이지?”를 어떻게 표현하느냐다. 그는 “야멸차게 훅 지나가버리는 짤막한 대사에 천재 화가 로스코가 겪은 비극과 철학을 담아내는 것이 녹록지 않다”며 “공연 전 홀로 캄캄한 무대에 서서 ‘오늘 내가 로스코와 접신할 수 있게 해달라’고 염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배역에 몰입하려 한 탓에 일상에서도 로스코의 모습이 나온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뭐가 보이지?”를 외친다. 그는 앞으로 로스코의 ‘레드’처럼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무수한 의미와 감정을 담아내듯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무대에서 또 만날 수 있냐는 질문엔 “몸 안에 깃든 로스코를 ‘소각’시키는 데에도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고 했다. 2월 19일까지, 4만∼7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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