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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고대 도시 테오티우아칸. ‘신들의 도시’라 불리던 이곳의 작열하는 사막과 거대 건축물 ‘태양의 피라미드’가 서커스 천막 속으로 옮겨왔다. 석양처럼 붉게 타오르는 커다란 원판을 배경으로 공중그네가 상공 8.5m까지 치솟았고, 출연자들이 폭포처럼 떨어지는 물을 온몸으로 맞으며 빠르게 회전하자 만화경 같은 환상이 펼쳐졌다. 후프에 양팔과 두 다리를 이용해 바퀴살처럼 매달린 출연자들은 원판 둘레를 따라 돌며 선인장 사이를 오갔다. 멕시코의 신화와 전통을 다채로운 서커스로 표현한 태양의서커스 ‘루치아(LUZIA)’가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에서 25일 막을 올렸다. 국내 초연이다. 태양의서커스는 1984년 캐나다 퀘벡에서 시작해 90개국 1450여 도시에서 3억6500만여 명의 관객을 모은 세계적인 공연 제작사다. 1만6500여 m(약 5000평) 이상의 부지에 원뿔형 텐트를 세워 전 세계에서 공연한다. 이번 공연을 위해 출연자 47명을 포함해 창작진과 스태프까지 총 130여 명이 내한했다. 루치아는 스페인어로 ‘빛(luz)’과 ‘비(lluvia)’를 합친 단어다. 태양의서커스가 만든 38번째 작품으로 투어 공연 사상 처음으로 물을 활용했다. 매회 재활용해 쓰는 물의 양은 1만 L에 달한다. 그레이스 발데즈 예술감독은 24일 빅탑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멕시코에서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지는 비를 주요 주제로 내세웠다. 안전을 위해 오랜 기간 준비했다. 10년간 기획했고, 201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2년간 초연하며 완성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무대 바닥에는 볼펜보다 직경이 좁은 수천 개의 구멍이 있어 공연 중 잠시도 물이 고이지 않았다. 후프엔 자전거 타이어를 둘러 미끄럼을 최소화했다. 공연은 5000송이의 멕시코 메리골드가 펼쳐진 황금빛 무대로 시작된다. 발데즈 예술감독은 “멕시코에서 제단 위에 놓는 메리골드는 죽은 자의 삶을 축복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우물은 마야인 문명을, 이구아나 의상을 입은 여성은 멕시코 초현실주의 운동을 의미하는 등 멕시코 문화를 은유하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다니엘 핀지 파스카 감독이 멕시코에서 10여년간 지낸 경험을 녹여냈다. 관능적인 라틴아메리카풍 음악에 맞춰 출연자들은 숨이 멎을 듯한 곡예를 선보였다. 맨몸의 출연자가 10m 높이 허공으로 던져져 붉은 태양을 가로지를 땐 경이롭기까지 하다. 실물 크기의 재규어, 작은 거울 850개가 달린 수영복 등 화려한 인형과 의상도 볼거리다. 다니엘 라마르 태양의서커스 부회장은 “멕시코 문화를 매혹적이고 정교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훗날 한국의 문화도 공연에 담아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12월 31일까지. 7만∼29만 원. 내년 1월 13일부터 2월 4일까지 부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저는 안무가지만 이 공연을 하는 이가 무용수일 필요는 없어요. 움직임과 언어, 이성과 감성 사이에 우선순위는 없기 때문이죠. 균형을 맞춰 관객이 최대한 주체적이고 명확하게 이해하길 바랄 뿐입니다.” 31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개최되는 다원예술축제 ‘옵/신 페스티벌’에서 강의형 퍼포먼스 ‘제롬 벨’을 공연하는 프랑스 안무가 제롬 벨(59)의 말이다. 서울 동대문구 김희수아트센터에서 다음 달 14, 15일 국내 초연되는 이 공연에 춤추는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벨이 제작한 대본과 프로토콜에 따라 이영준 비평가 겸 서울과기대 교양대학 교수가 홀로 무대에서 무용 영상을 재생하고, 대본을 ‘발화’하며 동작을 취할 뿐이다. 벨은 작품을 통해 ‘이것은 춤인가?’를 비롯해 여러 질문을 던진다. 올해 총 11개국 19개 작품이 펼쳐지는 ‘옵/신 페스티벌’엔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무용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 2010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인 태국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감독 등과 함께 ‘회고전’을 주제로 참여한다. ‘제롬 벨’은 2005년 이후 그가 국내에 선보인 6개 공연 등을 포함한 전작들을 통해 그의 삶을 돌아보는 회고전이다. 그의 대표 레퍼토리인 ‘무용수의 초상’ 시리즈 중 마지막 편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작품들을 일대기로 소개한다.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2005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으로부터 작품을 의뢰받았을 당시 은퇴를 앞둔 코르드발레(군무단) 무용수인 베로니크 두아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시리즈가 시작됐다”고 했다. 이후 초상화 시리즈는 ‘세드리크 앙드리외’(2009년), ‘이사도라 덩컨’(2019년) 등으로 이어졌다. 이번 공연을 위해 그는 대본과 프로토콜을 자기만의 해석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낼 사람을 김성희 옵/신 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부터 추천받았다. 이영준 비평가가 그의 작품을 영상으로 보여준 뒤 벨을 대신해 ‘왜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 설명한다. 해외 공연에서 제3자가 공연을 이끄는 건 제롬 벨 무용단이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2019년부터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과 직결된다. “올여름은 아포칼립스처럼 끔찍했어요. 파리는 10월이지만 7월 같고요. 원격 퍼포먼스라니, 실험적이긴 하지만 저는 예술이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 전석 4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프랑스 칸에서 16∼19일(현지 시간) 열린 제39회 글로벌 방송콘텐츠마켓 밉콤(MIPCOM). 과거 미국, 프랑스 등 ‘콘텐츠 강국’의 전유물이던 1층 입구 ‘명당’을 꿰찬 건 한국공동관이었다. 다큐멘터리 ‘귀족식당’을 제작한 빅하우스엔터테인먼트의 부스엔 사흘간 프랑스TV, 기네스북 등 30여 개 업체 관계자들이 쉴 새 없이 모였다. 이선영 빅하우스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일류 회사들이 먼저 콘텐츠 아이디어까지 제시하며 공동 제작하자는 러브콜을 보내 놀랐다. 비인기 장르이던 다큐멘터리까지 한국 콘텐츠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높아졌음을 체감했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국내 방송 콘텐츠 제작사들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방송 콘텐츠 마켓 밉콤에 참가했다. 올해 100여 개국 관계자 1만1000여 명이 찾은 밉콤에는 미국 워너브러더스, 영국 BBC스튜디오 등이 바이어로 참석했다. 한국에선 역대 최다인 34개사가 참여했다. 올해 밉콤에서 달성한 총 수출 상담액은 5345만 달러(약 722억 원)로 지난해(3293만 달러·약 445억 원)보다 62%나 늘었다. 한국은 국가 공동관 중에선 유일하게 야외 테라스 부스까지 차렸지만 해외 바이어들이 대거 몰리며 테이블을 추가로 마련해야 했다. KT스튜디오지니 부스를 찾은 중동 지역 최대 통신사 에티살랏의 바이어 메가 쿠카르 씨는 “K드라마는 군더더기 없이 분명한 서사, 팬층이 확보된 배우들이 출연하는 것이 강점”이라며 “작품당 수십 편을 넘기는 다른 아시아 지역 콘텐츠와 달리 6∼12편으로 구성돼 시청자와 배급사 모두에 접근성이 높다”고 했다. 지식재산권(IP)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기업들은 IP 활용도를 높인 콘텐츠로 바이어들의 호응을 샀다. 채널A ‘흐르지 못하는 강 오카방고’ 등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와일드테일은 동물 실사화 애니메이션으로 해외 5개사와 수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한종 와일드테일 PD는 “굿즈 제작에 유리하고 향후 인공지능(AI) 기술과도 결합이 가능해 반응이 좋았다. ‘코리안 프리미엄’까지 붙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18일에는 해외 관계자 200여 명을 대상으로 국내 기업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쇼케이스가 진행됐다. 중소 제작사 글로벌 도약지원 사업에 선정돼 IP 개발을 지원받은 12개사가 참여했다. 배우 변요한 주연 드라마 ‘블랙아웃’(방영 예정)을 제작하고, 드라마 ‘미생’(2014년) ‘시그널’(2016년) 제작에 참여한 이재문 히든시퀀스 대표는 “최근 국내 제작 비용이 급등해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건 필수가 됐다. 밉콤은 가뭄의 단비 같은 기회”라고 했다. K드라마와 영화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자 이들 작품에 출연한 주연 배우들이 나오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민다현 CJ ENM 해외콘텐츠사업팀 부장은 “예전에는 한국 예능을 현지화해 방영하는 계약 위주였다면 최근엔 한국 예능을 그대로 방영하려는 수요가 많아졌다. 디즈니플러스 ‘무빙’의 주연 배우 조인성과 차태현이 출연하는 예능 ‘어쩌다 사장3’에 대한 문의가 쏟아졌다”고 말했다.칸=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짧은 노래인 ‘카바티나’ 선율이 연주되자 스튜디오는 순식간에 지중해 금빛 햇살로 물드는 듯했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38)와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43)이 손끝으로 섬세하게 빚어낸 선율은 여느 대형 악기에 견줘도 아쉬움이 없을 만큼 울림이 컸다.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28일 열리는 두 사람의 합동공연 ‘투 기타즈’ 중 한 대목이다. 2021년 LG아트센터에서 초연 당시 기타 공연으로는 드물게 전석 매진돼 화제가 됐다. 서울 동작구 뮤직앤아트스튜디오에서 13일 두 사람을 만났다. 박규희는 2008년 벨기에 프렝탕 국제기타콩쿠르에서 아시아 및 여성 최초로 우승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박주원은 아이유,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과 작업한 스타 기타리스트다.‘천생연분’이란 말에 펄쩍 뛰며 쉴 새 없이 티격태격하는 이들이지만 기타와 함께한 궤적은 마치 운명처럼 닮아있다. 데뷔 시기(2010년)도, 기타를 난생 처음 손에 잡은 때(1989년)도 같다. 바이올린에도 발을 들여봤지만 결국 기타 외길을 택한 것마저 같다. 박규희는 “‘투 기타즈’는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LG아트센터로부터 합동공연을 제안받은 데서 시작됐다”며 “언젠가 같이 공연하자고 기약 없는 연락만 주고받다 진짜로 만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공연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등 친숙하고 서정적인 클래식 음악과 크로스오버 음악으로 구성된다. 그중 ‘겨울날의 회상’은 두 사람이 가장 행복하게 연주하는 곡이다. 박주원은 “서정적 표현에 강한 규희가 연주할 때 귀가 더 즐거웠다. 주된 선율을 규희에게 맡기고, 나는 반주를 받쳐주는 식으로 편곡했다”며 “서로 장르가 아예 다르다보니 마음 편히 다양하게 도전한다”고 했다. 지난해 성악가 유채훈이 게스트로 출연했고, 올해는 색소폰 연주자 브랜든 최가 호흡을 맞춘다. 공연에서 선보이는 곡들은 미니앨범으로 발매될 예정이다. 국내 최정상급 연주자들임에도 합동공연은 성장의 계기가 됐다. 두 사람은 공연을 통해 데뷔 후 처음 서로의 장르에 도전했다. 박주원은 “작고 부드러운 소리로 공간을 압도하는 ‘중원의 사령관’같은 규희를 보고 많이 배웠다. 제가 이전에는 강하게 밀어붙이는 ‘불도저’같기만 했다면 이젠 여리고 예쁜 소리도 낼 줄 안다”며 웃었다. 박규희는 “정확성에 골몰한 과거와 달리 주원 오빠와 팝, 남미 음악 등을 연주하며 그루브감을 키웠다”며 “어떤 곡이 주어져도 자신의 개성을 적재적소로 녹여내는 그는 ‘센스의 귀재’”라고 말했다.“가수로 따지면 규희는 성악가, 저는 록밴드 보컬이에요. 장르가 다른 기타리스트가 한 무대에 오르는 건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죠. 그렇지만 놀랄 만큼 합이 잘 맞아요. 공연을 통해 기타의 매력에 빠져보길 바랍니다.”(박주원)4만~7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역경을 딛고 ‘선다’는 표현이 있다. 얼마 전 다리를 다친 기자는 주저앉은 상태에선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었다. 책은 휠체어와 평생을 보낸 공상과학(SF) 작가가 쓴 에세이다. 장애가 있는 삶을 경쾌하게 풀어내며 저자는 장애를 “딛고 앉는다”. 선천성 근위축증이란 장애를 ‘쿨한 척’ 애써 외면하고 살던 저자는 2021년 SF문학상을 수상하며 반강제로 정체성이 조명된 뒤에야 이를 수용하기로 마음먹는다. 여러 이유를 들며 자신의 장애가 자랑스럽다고 내세우는 게 아니다. 그는 “장애가 있다고 해서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지 않고, 장애인으로서 나의 삶을 주도하겠다는 뜻”이라고 강조한다. 장애를 가진 작가로서 어떻게 글을 쓰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꾸밈 없이 담겼다. 미국 SF 작가 스티븐 킹이 한 번에 한 단어씩 쓴다고 하면 저자는 “한 번에 한 자모씩”, 분당 최대 50타로 온 힘을 다해 눌러쓴다. 소수자성에 기반한 국내 SF 소설들이 진정한 SF가 아니라는 일부 견해에 대해선 “자의가 아닌 타의로 밀려난 사람들이 SF를 통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쓰는 일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 전략적인 선택일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나라 국민의 95%를 차지하는 비장애인 독자가 장애인의 삶을 외부에서 조망하고 자의적으로 독해하기를 거부한다. 진지함과 유쾌함을 시계추처럼 오가며 풀어낸 속마음은 독자를 저자의 세계로 풍덩 빠져들게 한다. 자신의 글이 ‘치밀히 계획된 사회운동’은 아니라고 하지만 더욱 자연스럽고 정교하게 장애에 대한 타자화를 멈춰 세운다. 저자는 소외된 사람이었다가, 빛나는 사람이 되기를 반복하며 끝끝내 제목처럼 ‘가장 보통의 인간’이 된다. 그 가운데서 가장 특별한 건 시종일관 사푼거리는 발랄함이다. 장애를 경험했든, 경험하지 않았든 즐거이 읽을 수 있다. 저자는 “나의 가벼운 에너지가 누군가에겐 충전이 되는 에너지였으면 좋겠다”며 모두를 끌어안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내 창작 연극·뮤지컬의 희곡이 관객들에게 ‘굿즈’로 각광받고 있다. 대본이 여운을 간직하고 작품을 곱씹기 위한 소장품이 된 것이다. 지난달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창작극 ‘잘못된 성장의 사례’는 출판사 이음과 손잡고 개막과 동시에 희곡선으로 출간했다.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은 현재 공연되고 있는 창작뮤지컬 ‘쇼맨…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의 대본을 자체 제작해 13일부터 극장 로비에서 판매한다. 지난해 초연 당시 대본 소장에 대한 관객 요청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국립극단은 올해 상반기(1∼6월) 공연한 창작 연극 ‘몬순’, ‘보존과학자’(걷는사람)의 희곡을 공연 기간부터 현재까지 극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2021년부터 국립극단 희곡선을 발간하고 있는 김은경 걷는사람 편집장은 “희곡 부문에선 1쇄를 넘는 경우가 드문데 올 4월 ‘몬순’(사진) 초연 개막일 직전에 출간된 희곡은 약 한 달 만에 2쇄를 찍었다”며 “연극을 본 관객의 수요가 몰리면서 공연 기간과 직후에 집중적으로 판매됐다”고 말했다. 올해 2월 국립정동극장에서 연극 ‘태양’ 공연을 기념해 출간된 리커버에디션 희곡선(알마)은 당시 제작한 200부가 모두 나갔다. 세계적인 대문호의 작품이 아닌 국내 창작극을 소장하려는 이유는 뭘까. 희곡선을 담당하고 있는 강지웅 이음 편집자는 “신진 창작자들이 쓴 희곡엔 사회를 바라보는 젊은층의 시선이 잘 담겨 있어 20, 30대 중심인 관객층의 공감을 이끌어낸다”고 했다. 이어 “언제 다시 공연될지 모르는 ‘작은 분야’인 만큼 작품을 책으로 간직하려는 욕구도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외국 단체의 내한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서커스부터 발레, 연극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태양의서커스 ‘루치아(LUZIA)’가 25일부터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에서 국내 초연된다. 태양의서커스는 1984년 캐나다 퀘벡에서 시작해 90개국 1450여 도시에서 3억6500여 명의 관객을 모은 세계적인 공연 제작사다. 2016년 세계 초연된 ‘루치아’는 투어공연 사상 처음으로 물(매회 1만 L)과 회전무대를 도입해 화제가 됐다. 멕시코의 강렬함을 콘셉트로 총 47명의 출연자가 라틴아메리카풍 음악에 맞춰 스윙 등 각종 곡예를 선보인다. 멕시코 신화 속 동물에 착안한 코스튬 등 1000벌의 의상을 활용해 볼거리가 화려하다. 12월 31일까지, 7만∼29만 원. 내년 1월부턴 부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13∼15일 세계 유명 발레단인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한다. 2019년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신데렐라’ 이후 4년 만의 내한이다. 현대발레의 거장으로 꼽히는 안무가 장크리스토프 마요가 예술감독으로 참여해 셰익스피어의 동명 소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슬로모션 등 실험적인 연출과 흑백의 미니멀한 무대가 마요 버전의 백미다. 발레단 내 유일한 한국인 단원이자 수석무용수인 안재용이 티볼트 역으로 출연한다. 8만∼28만 원.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는 12∼15일 말레이시아 예술단체 파이브 아트센터의 연극 ‘노셔널 히스토리’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무대에 오른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말레이시아에서 무장단체로 활동한 말라야 인종해방군과 영국 연방군이 벌인 게릴라전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뤘다. 전석 3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64·사진)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5일(현지 시간) “말할 수 없는 것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을 썼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역대 네 번째다. 1928년 소설가 시그리드 운세트가 수상한 후로는 95년 만이다. 노르웨이 해안도시 헤우게순에서 태어난 포세는 1983년 장편소설 ‘레드, 블랙’으로 데뷔했다. 1990년대 초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소설 ‘3부작’, ‘아침 그리고 저녁’을 비롯해 희곡, 시,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였다. 1990년대 중반 발표한 희곡 ‘이름’, ‘기타맨’, ‘가을날의 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포세의 작품은 전 세계 무대에 900회 이상 올라 ‘인형의 집’을 쓴 헨리크 입센(1828∼1906) 다음으로 많은 작품이 상연된 노르웨이 극작가로 꼽힌다. 2003년 프랑스 공로훈장, 2007년 스웨덴 한림원 북유럽 문학상 등을 받았다. 국내에는 ‘3부작’을 비롯해 ‘이름’, ‘기타맨’, ‘가을날의 꿈’, ‘보트하우스’ 등이 출간됐다. 상금은 1100만 크로나(약 13억5000만 원)다.“생존투쟁의 그늘 파고들어… 입센의 재림” 노벨문학상,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희곡-산문 넘나들며 작품 활동전 세계 무대에 900회 이상 올려“죽음-가족 등 소재로 인간 본질 탐구”혼란이 넘치는 시대, 스웨덴 한림원의 선택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64)였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5일(현지 시간) 선정된 포세는 현대 연극의 최전선을 이끄는 극작가이자 소설가다. 스웨덴 한림원은 “포세의 작업은 노르웨이의 언어와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를 예술적 기교와 섞었고 인간의 불안과 양가성을 본질적으로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이어 “오늘날 세계에서 작품이 가장 널리 공연되는 극작가 중 한 명이지만, 산문으로도 점점 더 인정받고 있다”고 밝혔다. 수상 소식을 들은 포세는 “벅차고 다소 겁이 난다”고 말했다. 극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건 영국의 해럴드 핀터(2005년) 이후 18년 만이다. 그는 희곡, 소설, 시, 에세이, 동화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썼다. 한림원은 노르웨이 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재림’이자 아일랜드 작가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환생’이라는 평가를 받는 포세가 희곡과 산문을 넘나들며 경계를 부쉈다는 점에 주목했다. 1959년 노르웨이 해안도시 헤우게순에서 태어난 포세는 하르당에르피오르에서 성장했다. 대학에서는 비교문예학을 전공했다. 1983년 소설 ‘레드, 블랙’으로 데뷔했고, 1994년 첫 희곡 ‘그리고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라’를 발표했다. 약 40편의 희곡은 전 세계 무대에 900회 이상 올랐다. 희곡과 소설뿐만 아니라 시, 에세이, 동화는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그는 군더더기를 극도로 배제한 구성, 리얼리즘과 부조리주의 중간쯤에 있는 화법으로 유명하다. 매일 생존투쟁에서 체념하고 절망하는 인간이 등장하는 비극을 산문과 희곡을 넘나들며 선보였다. 대표적인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문학동네)은 고독하고 황량한 피오르를 배경으로 요한네스라는 이름의 평범한 어부가 태어나고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꾸밈없이 담담하게 풀어낸다. 연작소설집 ‘3부작’(새움)은 3편의 중편소설을 묶었다. 세상에 머물 자리가 없는 연인과 그들 사이에 태어난 한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가난하고 비루한 이들의 삶과 죽음을 들여다본다. 동화 ‘오누이’(아이들판), 희곡 ‘가을날의 꿈 외’(지만지드라마) 등 여러 작품이 국내에 출간됐다. 이달 20일엔 빛을 사랑했지만 그늘진 인생을 살아야 했던 예술가의 일생을 그린 산문 ‘멜랑콜리아 I-II’(민음사)가 나온다. 포세는 한때 알코올중독으로 입원한 적이 있다. 정민영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교수는 “죽음, 가족, 남녀관계 등 보편적 소재를 시적으로 깊게 다루는 작가”라며 “극단으로 치닫고 혼란스러워지는 시대에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고들었다는 점에 한림원이 주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미혜 한양대 연극영화과 명예교수는 “포세의 작품엔 눈 덮인 산과 호수 등 북유럽의 풍광과 감성이 탁월하게 담겨 있다”고 했다. 홍재웅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학과 교수는 “평범한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삶과 죽음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작가”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레베카’가 지난달 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무단 생중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일 공연에는 걸그룹 레드벨벳 소속 가수 웬디가 ‘나’ 역으로, 배우 리사가 댄버스 부인 역으로 출연했다. 2시간 35분의 전막 공연은 실시간으로 녹음돼 음성 라이브 방송 X(트위터) ‘스페이스’에서 공유됐다. 공연계에서 밀캠(무단 녹화), 밀녹(무단 녹음) 문제가 무단 중계, 불법 유통으로 악화되고 있다. 불법 녹화·녹음본의 유통은 빨라지는 추세다. 기자가 직접 구매를 시도해 보니 포털사이트에서 원하는 공연 영상을 검색해 판매자와 오픈채팅으로 거래한 후 자료를 내려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분에 불과했다. 판매자별로 수백 편이 건당 5000∼1만 원에 버젓이 유통되고 있었다. 판매자들은 ‘구매자에겐 법적 책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안심시켰다. 제작사들은 무단 영상에 대한 제보를 받아 건별로 신고하는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그러나 전담 인력이 없어 현실적으로 한계가 크다. 신춘수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장(오디컴퍼니 대표)은 “비밀채팅방, 비공개 댓글을 통해 무단 영상이 일대일로 거래돼 증거자료를 모으기 어렵다. 다만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난 헤비업로더를 대상으로 연내 형사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판매자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저작권법상 허락 없이 녹화할 수 없는 영화와 달리 공연은 규정이 없다. 무단 촬영자를 극장에서 적발해도 ‘개인소장용’이라고 주장하면 제재하기 힘들다. 윤금용 한국저작권보호원 법제지원부장은 “저작물 복제·배포 권리는 창작자에게 있기에 무단 촬영한 영상은 저작권법 위반일 가능성이 크지만 개인이 소장하는 건 법적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달이 환하게 가득 차 오르는 추석이다. 연휴 기간 나들이에 문화생활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온 가족이 함께 볼 공연과 영화, 전시, 책이 풍성하다. 본보 공연, 전시, 영화, 출판 담당 기자들이 추석 연휴에 즐길 만한 추천작을 각각 추려 봤다.》 英내셔널갤러리 명화전 마지막 기회… 장욱진 60년 활동 조명 회고전 열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품 52점을 선보이는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는 10월 9일 막을 내린다.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최고의 거장 카라바조(1571∼1610)의 명작은 물론 라파엘로,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터너, 마네, 모네, 고갱 등 서양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추석 당일에만 휴관하기 때문에, 이번 연휴가 명작을 만날 막바지 기회다. 통상 해외 전시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인상주의나 현대미술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N차 관람하는 관객이라면 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 풍속화나 18세기 영국 초상화 등 국내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미술 경향을 집중해서 보는 것도 새로운 재미를 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은 1920년대부터 1990년 작고하기까지 장욱진의 60년간 활동을 조명한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일본에서 발견된 1955년 ‘가족’도 최초로 공개된다. 서울관에서는 김구림, 정연두 개인전을 연다. 과천관에서는 이신자 회고전을, 청주관에서는 피카소 도예전을 각각 볼 수 있다. 서울관은 추석 당일, 과천·덕수궁·청주관은 10월 4일 대체 휴관한다.항일운동 소재 ‘도적’ 가족 모두 즐길만… 강동원 주연 ‘천박사…’ 영화 예매율 1위 추석 연휴를 겨냥해 넷플릭스가 야심 차게 내놓은 작품은 ‘도적: 칼의 소리’다. 1920년대 중국 북간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조선식 서부극’으로, 배우 김남길 서현 이현욱 이호정 등이 출연했다. 조선, 중국, 일본 문화가 한데 모인 북간도의 이색적인 풍경에 말을 타고 윈체스터 장총을 쏘는 시원한 액션이 더해졌다. 항일운동을 소재로 삼아 가족들이 추석에 둘러앉아 함께 즐길 만하다. 총 9화가 22일 공개됐다. 27일 개봉한 배우 강동원 주연의 영화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예매율 1위를 달리며 추석 극장가 승리를 예고하고 있다. 퇴마사 행세를 하며 사람들에게 사기 행각을 벌이던 천 박사(강동원)가 악귀 범천을 만나게 되면서 진짜 퇴마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무시무시한 반인반신의 범천 역은 배우 허준호가 맡았다. 최근 개봉한 영화답지 않게 러닝타임이 98분으로 짧다. 12세 관람가로 연휴 저녁에 가족들이 가볍게 보기 좋은 오락영화다. 8월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 이달 초 개봉한 유재선 감독의 ‘잠’을 아직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이들 작품도 관람하길 권한다.하루키 6년만에 장편소설 ‘도시와…’ 출간, 그림책 ‘세상에서…’은 고향 풍경 담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무라카미 하루키 지음·홍은주 옮김·768쪽·1만9500원·문학동네)을 읽어 보는 건 어떨까.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74)가 6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30대 남자 주인공이 10대 시절에 글쓰기라는 취미를 공유했던 소녀를 떠올린 뒤 수수께끼의 도시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6일 출간된 뒤 예스24에선 3주 연속, 교보문고에선 2주 연속 종합 1위에 올랐다. 하루키가 1980년 문예지에 발표했지만 책으로 발간되지 않은 동명의 중편소설을 고쳐 썼다는 점에서 하루키의 팬들이라면 주목할 만하다. 두툼한 ‘벽돌책’인 만큼 연휴에 도전할 만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델핀 페레 지음·백수린 옮김·128쪽·2만 원·창비)은 정겨운 고향의 풍경이 수채화처럼 펼쳐진 그림책이다. 엄마의 고향을 찾은 아이는 시골집 다락에 올라 엄마의 오래된 물건들을 꺼내어 본다. 엄마가 갖고 놀던 장난감, 엄마가 즐겨 불렀던 피리,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사진들…. 엄마의 추억이 보물상자처럼 아이에게 닿는다.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 연휴, 이 책 속의 엄마와 아이처럼 가족들과 옛 추억을 나눠 보면 어떨까. 지난해 프랑스 아동문학상 ‘소시에르 상’ 수상작이다.국립창극단 ‘심청가’ 4년만에 무대에… 연극 ‘더 파더’ 전무송-현아 부녀 출연 이번 추석에는 ‘아빠와 딸’의 이야기를 다룬 공연으로 서로의 온기를 느껴 보는 건 어떨까.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선 국립창극단의 ‘심청가’가 4년 만에 무대에 오른다. 손진책이 극작과 연출을, 안숙선 명창이 작창을 맡았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기 직전 부르는 ‘범피중류’ 장면은 공연의 백미로 꼽힌다.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안무를 짰다. 민은경, 이소연, 유태평양 등 창극단 소속 간판 소리꾼들이 출연한다. 연휴 기간에는 관람 전 창극단 단원들에게 ‘심청가’의 한 대목과 추임새를 배워 볼 수 있다. 2만∼5만 원. ‘진짜 부녀’가 함께 무대에 오르는 연극도 만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는 다음 달 1일까지 배우 전무송(81)과 딸 전현아(52)가 아버지와 딸을 연기하는 연극 ‘더 파더’가 공연된다. 프랑스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희곡이 원작이다. 동명 영화로도 제작돼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각색상을 받았다. 공연은 치매에 걸린 가운데 위신을 지키려는 노인 앙드레와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딸 안느의 이야기를 다룬다. 4만5000∼5만5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한국 드라마가 좋아서 유학까지 왔다”는 멕시코인 미르타 페레스 씨(23)는 크고 작은 공연이 쉼 없이 오르는 ‘한국판 브로드웨이’ 서울 종로구 대학로를 최근 찾았다. 올해 5월, 한국어능력시험인 토픽(TOPIK) 4급 합격을 기념해 국립극단의 연극 ‘벚꽃동산’을 본 후 한극 연극에 대한 관심이 대학로까지 이어진 것. 페레스 씨는 “영어 자막과 연극 배우들의 똑 부러지는 발음 덕에 이야기 흐름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었다”며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한국 연극은 멕시코에서 볼 수 없기에 열심히 챙겨 보려 한다”고 말했다. K콘텐츠 열풍을 타고 외국인들의 발길이 ‘한국 공연의 메카’ 대학로로 모이고 있다. 대학로는 서울 종로구 이화동사거리부터 혜화동 로터리까지 이어지는 구간에 공연장 160여 곳이 밀집된 국내 대표 공연예술거리다. 다음 달 14∼28일 대학로에선 다채로운 즐길거리로 구성된 공연 축제인 ‘2023 웰컴대학로 페스티벌’이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관광공사, 한국공연관광협회, 종로구청이 주관하는 웰컴대학로 페스티벌은 대학로를 영국 ‘에든버러 국제 축제’처럼 세계적인 공연 축제의 장으로 키우기 위해 2017년 처음 개최됐다. 지난해 온·오프라인 참여자 수는 90만5100여 명에 달했다. 그중 외국인은 61만 명으로 2017년(1만 명)에 비해 큰 폭으로 뛰었다. 다음 달 15일 열리는 개막식에선 뮤지컬 배우 정성화가 출연하는 15분 분량의 작품 등 초청공연 8편이 야외 무대에 오른다. 일본, 대만, 필리핀 등 해외 초청팀을 포함해 총 18개 팀이 거리 퍼레이드도 펼친다. 티켓 가격을 1만 원 할인해주는 공연은 34편이다. 스테디셀러 뮤지컬 ‘빨래’ ‘김종욱 찾기’부터 독립운동가 박열의 삶을 다룬 뮤지컬 ‘22년 2개월’, 양주별산대놀이 등 전통예술을 가미한 뮤지컬 ‘판’까지 다양하다. 또 대학로 마로니에공원과 소나무길, 야외 무대에선 30여 개 작품이 총 62회에 걸쳐 거리 공연을 펼친다. 올해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축제를 즐길 것으로 보인다. 매년 웰컴대학로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있는 창작뮤지컬 ‘당신만이’의 경우 최근 프랑스, 캐나다에서 온 해외 관객들이 좌석을 채우고 있다. ‘당신만이’ 제작사인 도모컴퍼니 윤민식 대표는 “팬데믹 이전에 외국인 관객은 모두 아시아인이었는데 2, 3년 새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면서 북미, 유럽 관객도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어를 구사하는 가이드와 함께 대학로 일대를 둘러보는 ‘대학로 투어(D-tour)’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유생복을 입고 글씨 쓰기를 비롯해 선비가 갖춰야 할 6가지 덕목인 육예 체험을 하는 코스 등 3가지를 마련했다. K팝 댄스를 배우고 한국 전통놀이를 즐기는 프로그램도 있다. 한국 공연의 해외 진출을 위한 장도 펼쳐진다. 올해 신설된 ‘씨어터마켓’에선 공연제작사, 해외 현지 여행사 관계자 등이 만나 공연 관광을 상품화하고 판로를 확보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재원 웰컴대학로 페스티벌 총감독은 “한국인이 만든 K스토리에 대한 열광은 공연 수요로도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며 “대학로의 수준 높은 작품들이 해외로 널리 뻗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누군가를 도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내가 제법 괜찮은 인간이란 느낌이 들어요. 그 뿌듯함이 좋아서 또 누군가를 돕고요. 그런 나는 이타적입니까, 이기적입니까?” 서울 종로구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30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더 웨일’을 연출한 신유청 씨(42)가 말했다. 극장에서 14일 그를 만났다. ‘더 웨일’은 몸무게 270kg의 은둔형 외톨이 찰리가 죽음을 앞둔 일주일간 자신을 도우려는 인물 4명과 쌓아올리는 희망과 절망을 그렸다. 2012년 미국 덴버에서 초연된 후 동명 영화로 제작돼 올해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분장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 공연되는 건 처음이다. 공연은 치밀한 인물 묘사를 통해 우리 내면의 양가적 감정을 들춘다. 배우 백석광이 매 공연마다 1시간이 걸리는 특수 분장을 거쳐 초고도 비만인 찰리를 연기한다. 찰리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10대 딸 엘리(탁민지)는 아빠에 대한 서운함을 짓궂은 방식으로 푼다. 신 씨는 ‘도와주겠다’며 찰리에게 다가선 인물들에게 촉발되는 감정에 주목했다. 그는 “관객의 머릿속에 ‘엘리는 나쁜 애인가, 표현은 짓궂어도 착한 애인가’ 하는 생각이 뒤엉킬 것”이라며 “우리는 선과 악, 사랑과 미움을 구분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은 둘 중 하나가 아닌 모든 가능성을 품은 존재예요. 타인을 ‘경이로운 존재’로 마주하려면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해요. 추악하지만 사랑받아 마땅한 인물들의 면면을 조명해 관객 내면의 양면성을 길어 올리고, 경이감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는 찰리의 집 안에서만 전개된다. 동명 영화가 4 대 3 화면 비율로 갑갑함을 강조한 것과 달리 연극은 집 무대 세트의 벽을 없애 개방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동선을 부각해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성을 잘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유기적 움직임을 강화하고자 이소영 안무가와도 협업했다. 이 안무가는 신 씨에게 제56회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안겨줬던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신 씨는 ‘더 웨일’의 연극 원작이 있단 것도 모른 채 제작을 결심했다고 했다. 영화에서 찰리 역을 맡은 브렌든 프레이저가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으로 ‘지난 30년간 내 삶은 쉽지 않았으나 이 작품은 내게 생명줄을 던져줬다’고 말한 것을 듣고 “넘쳐흐르는 기쁨을 느껴 대본을 볼 필요도 없다”면서 결심이 선 것이다. “영화를 통해 구원받은 프레이저가 마치 절망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듯한 소감이었어요. 한 출연자의 삶을 뒤집을 수 있는 작품이라면 관객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이번 공연이 그런 변화구가 되길 희망합니다.” 전석 5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9세 꿈 많은 주인공 남원 역을 맡은 배우 박보검(30)의 맑고 다정한 눈망울은 이내 그렁그렁 차오른 눈물로 힘없이 축 처졌다. 뜻하지 않게 70대 할아버지가 돼 버린 현실 앞에서 “정분아, 고운 내 정분아. 너에게 갈래”라고 노래하며 당혹감과 분노, 그리움을 단어마다 물 흐르듯 교차시켰다. 연습 때마다 눈물바다가 된다는 그는 정분 역의 배우 임예진이 넘버 ‘돌멩이’를 부르자 무대 밖 창틀에 기대서서 손등으로 뺨에 흐른 눈물을 닦았다.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에서 26일 개막하는 뮤지컬 ‘렛미플라이’의 마지막 연습 현장을 22일 찾았다. ‘렛미플라이’는 박보검이 2011년 데뷔 이래 처음 뮤지컬에 도전해 주목받는 작품이다. 지난해 전역한 박보검이 복귀작으로 선택해 화제가 되면서 그가 출연한 회차 티켓은 매진됐다. 공연은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디딘 1969년, 패션디자이너가 되려는 남원이 나사(NASA)의 과학자를 꿈꾸는 정분과 행복한 미래를 그리면서 시작된다. 설렘도 잠시, 남원은 꿈꾸던 성공도 사랑하는 정분도 오간 데 없는 2020년에 불시착한다. 창작극인 이 작품은 지난해 초연돼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청년 남원 역은 박보검과 신재범, 안지환이 돌아가며 연기한다. 정분 역은 나하나, 홍지희, 임예진이 맡았다.연습실에서 만난 박보검은 TV 드라마나 영화에선 보기 힘들었던 발랄하고 코믹한 연기를 선보였다. 힙합이 가미된 넘버 ‘패션의 리더’에선 노인 남원 역을 맡은 배우 김태한과 손발을 맞추며 웨이브 섞인 춤과 껄렁한 걸음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감미로운 음색과 탄탄한 중저음은 다른 배우들과 매끄럽게 화음을 이뤘다. 이날 박보검은 “제가 이 작품에서 받은 감동을 관객분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마지막 공연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400여 석 규모의 소극장 뮤지컬인 ‘렛미플라이’와 박보검의 인연은 지난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지대 뮤지컬공연전공과 동기인 신재범의 공연 회차를 관람한 뒤 박보검은 인사차 분장실에 들렀다. 박보검은 운명처럼 NASA 티셔츠를 입은 채 “정말 재미있다”며 출연 배우들에게 인사했다. 작품과의 첫만남은 그게 전부였다. 홍윤경 프로듀서는 “투자사 모집까지 끝난 시점에 청년 남원 역 배우 2명의 스케줄이 빠듯하다는 걸 알았다. 배우를 급하게 구해야했고, 보검 씨가 번뜩 떠올랐다. 방탄소년단 안무 커버 영상을 본 뒤 확신이 섰고 ‘설마’ 하는 생각으로 출연을 제안했다”고 말했다.드라마 출연료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의 출연료이지만 박보검은 흔쾌히 출연을 수락했다. ‘신인 뮤지컬배우’로서 드라마 촬영이 조금이라도 일찍 끝나면 빠짐없이 오후 10시까지 연습에 참석했다. 15분 만에 목을 타고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고강도의 연습에도 군말 없이 열심히 임했다. 이대웅 연출가는 박보검에 대해 “배역에 대한 몰입도와 정분을 바라보는 시선의 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말했다. 박보검은 자신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의 경우, 무대 밖에서 다른 배우들의 넘버를 소리내지 않고 따라부르며 열의를 보였다. 연습 현장은 서로가 주고받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배우 임예진은 “연습하는 동안 동료 배우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고, 작품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전했다. 노인 남원의 아내 선희 역을 연기한 최수진은 “초연 당시 느꼈던 감동을 돌려드릴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김태한은 “배우로서 꼭 한번 해봐야 할 작품”이라고 했다.‘렛미플라이’의 넘버는 발라드와 재즈, 힙합 등 다채로운 장르로 구성돼 좌충우돌하는 소동을 입체적으로 들려준다. 뮤지컬 ‘빨래’ 넘버를 작곡한 민찬홍 음악감독은 “판타지 감성과 코믹한 요소를 담기 위해 여러 장르를 녹여 곡을 만들었다”고 했다. 공연을 위해 박보검은 자진해 보컬 레슨을 두 달간 받았다. 민 감독은 “부드럽게 감싸주는 듯한 중저음이 강점인 배우”라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9세의 꿈 많은 주인공 남원 역을 맡은 배우 박보검(30)의 맑고 다정한 눈망울은 이내 그렁그렁 차오른 눈물로 힘없이 축 처졌다. 뜻하지 않게 70대 할아버지가 돼 버린 현실 앞에서 “정분아, 고운 내 정분아. 너에게 갈래”라고 노래하며 당혹감과 분노, 그리움을 단어마다 물 흐르듯 교차시켰다. 연습 때마다 눈물바다가 된다는 그는 정분 역의 배우 임예진이 넘버 ‘돌멩이’를 부르자 무대 밖 창틀에 기대서서 손등으로 뺨에 흐른 눈물을 닦았다.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에서 26일 개막하는 뮤지컬 ‘렛미플라이’의 마지막 연습 현장을 22일 찾았다. ‘렛미플라이’는 박보검이 2011년 데뷔 이래 처음 뮤지컬에 도전해 주목받는 작품이다. 지난해 전역한 박보검이 복귀작으로 선택해 화제가 되면서 그가 출연한 회차 티켓은 매진됐다. 공연은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디딘 1969년, 패션디자이너가 되려는 남원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를 꿈꾸는 정분과 행복한 미래를 그리면서 시작된다. 설렘도 잠시, 남원은 꿈꾸던 성공도 사랑하는 정분도 오간 데 없는 2020년에 불시착한다. 창작극인 이 작품은 지난해 초연돼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청년 남원 역은 박보검과 신재범, 안지환이 돌아가며 연기한다. 정분 역은 나하나, 홍지희, 임예진이 맡았다.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의 연습실에서 만난 박보검은 TV 드라마나 영화에선 보기 힘들었던 발랄하고 코믹한 연기를 선보였다. 힙합이 가미된 넘버 ‘패션의 리더’에선 노인 남원 역을 맡은 배우 김태한과 손발을 맞추며 웨이브 섞인 춤과 껄렁한 걸음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감미로운 음색과 탄탄한 중저음은 다른 배우들과 매끄럽게 화음을 이뤘다. 이날 박보검은 “제가 이 작품에서 받은 감동을 관객분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마지막 공연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400여 석 규모의 소극장 뮤지컬인 ‘렛미플라이’와 박보검의 인연은 지난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지대 뮤지컬공연전공과 동기인 신재범의 공연 회차를 관람한 뒤 박보검은 인사차 분장실에 들렀다. 박보검은 운명처럼 NASA 티셔츠를 입은 채 “정말 재미있다”며 출연 배우들에게 인사했다. 작품과의 첫 만남은 그게 전부였다. 홍윤경 프로듀서는 “투자사 모집까지 끝난 시점에 청년 남원 역 배우 2명의 스케줄이 빠듯하다는 걸 알았다. 배우를 급하게 구해야 했고, 보검 씨가 번뜩 떠올랐다. 방탄소년단 안무 커버 영상을 본 뒤 확신이 섰고 ‘설마’ 하는 생각으로 출연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드라마 출연료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의 출연료이지만 박보검은 흔쾌히 출연을 수락했다. ‘신인 뮤지컬배우’로서 드라마 촬영이 조금이라도 일찍 끝나면 빠짐없이 오후 10시까지 연습에 참석했다. 15분 만에 목을 타고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고강도의 연습에도 군말 없이 열심히 임했다. 이대웅 연출가는 박보검에 대해 “배역에 대한 몰입도와 정분을 바라보는 시선의 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말했다. 박보검은 자신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의 경우, 무대 밖에서 다른 배우들의 넘버를 소리내지 않고 따라부르며 열의를 보였다. ‘렛미플라이’의 넘버는 발라드와 재즈, 힙합 등 다채로운 장르로 구성돼 좌충우돌하는 소동을 입체적으로 들려준다. 뮤지컬 ‘빨래’ 넘버를 작곡한 민찬홍 음악감독은 “판타지 감성과 코믹한 요소를 담기 위해 여러 장르를 녹여 곡을 만들었다”고 했다. 공연을 위해 박보검은 자진해 보컬 레슨을 두 달간 받았다. 민 감독은 “부드럽게 감싸주는 듯한 중저음이 강점인 배우”라고 했다. 12월 10일까지. 5만5000∼7만7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빗물이 한옥 처마를 타고 흘러내릴 때 얼마나 예쁜지 알아요? 하늘이시여, 더 세찬 비를 내려주오. 부디 제게 더 멋진 정취를 안겨달란 말이에요.” 비가 추적이던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옥에서 만난 배우 윤석화 씨(67)의 말이다. 인터뷰를 위한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조금 지쳐 보이던 눈꺼풀과 동그라니 말려 있던 어깨는 활시위를 당긴 듯 활짝 열렸다. 허공으로 던지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잘 쓴 극본의 대사처럼 들렸다. 암 투병 소식이 거짓이라도 되는 양, 그저 반백 년 가까이 무대에서 살아온 천생 배우다웠다. 윤 씨는 배우 손숙, 박정자 씨와 함께 국내 연극계를 이끈 여성 연극인으로 손꼽힌다. 1975년 민중극단의 연극 ‘꿀맛’으로 데뷔해 뮤지컬 ‘명성황후’(1996년)에서 제1대 명성황후를 맡았고, 연극 ‘신의 아그네스’(1999년)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음악전문지 ‘월간 객석’을 인수해 종합예술지로 발행하고, 2002년 설치극장 ‘정미소’를 세워 17년간 운영하는 등 공연계에 애정을 쏟았다. 지난해 8월,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쳤다. 영국 런던 출장길에서 급작스럽게 쓰러져 에어앰뷸런스로 서울로 이송된 그에게 내려진 진단은 악성 뇌종양. 20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버텨낸 그 앞에 남겨진 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이었다. “아침마다 간호사가 주삿바늘을 찌르면 괴성을 질렀고 항암 치료를 견디기엔 내 몸이 역부족이었어요. 주치의와 의논해 항암 치료를 일시 중단하고 통원 치료를 받기로 했죠.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로 꼽아요. 한 달을 살더라도 윤석화답게, 담대하고 열정적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다달이 받는 추적검사에서 그는 의사가 놀랄 만큼 호전 중이다. 올 6월부턴 일상생활이 비교적 자유로워졌고, 지난달엔 손숙의 데뷔 60주년 기념 연극인 ‘토카타’에 외롭게 앉아 있는 노인 역할로 5분간 깜짝 출연해 화제가 됐다. 개막 일주일 전, 박정자 씨로부터 “숙이 데뷔 60주년 기념 공연을 함께 장식해주자”는 연락이 온 게 계기가 됐다. 그는 “무대는 오를 때마다 살 떨린다”며 “행여 넘어지기라도 해서 귀한 공연을 망칠까 걱정했지만 잘 해내 다행이었다”고 고백했다. 내년쯤엔 다시 연극 무대에 서길 희망하고 있다. 그는 “연극을 할 때 비로소 에너지가 생긴다. 건강 상태를 보며 최근 들어온 제안을 검토 중”이라며 “내 모든 걸 아낌없이 주고 싶은 관객들과 다시 마주하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훗날 완전히 건강을 되찾는다면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올리는 것이 그의 꿈이다. 다시 무대에 올려보고 싶은 작품으로는 1998년 출연한 연극 ‘마스터 클래스’를 꼽았다. 윤석화는 이 작품에서 전설적인 오페라 디바 마리아 칼라스(1923∼1977)의 은퇴 이후 삶을 연기했다. 그는 “무대를 향한 칼라스의 치열함에서 내가 보여 애착이 크다. 다른 누구보다 진심을 담아 연기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18년 뒤인 2016년에도 같은 공연을 올렸다. 당시 개막 전 교통사고로 갈비뼈 6대가 부러졌지만 휠체어 투혼으로 관객과 약속을 지킨 이야기는 유명하다. 인생에 자꾸만 들이닥치는 굴곡이 원망스럽진 않을까. “고난이 축복이라고 믿어요. 아픔의 시간이 없었다면 삶의 소중한 페이지들을 죄다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번 생을 연극배우로 살 수 있어서, 뒤늦게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해, 고마워’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시간이 주어져서 감사할 뿐입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올가을 다채로운 공연예술축제가 서울 각지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올해로 23회째를 맞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가 다음 달 6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등 서울 공연장 4곳에서 열린다. 개막작인 프랑스 샤요 국립무용극장의 ‘익스트림 바디’를 시작으로 안은미컴퍼니의 신작 ‘웰컴투유어코리아’ 등을 선보인다. 젠더, 환경, 국가에 대한 ‘경계 없는 질문들’을 주제로 연극, 다원예술 등 작품 19개가 무대에 오른다. 올해 SPAF에선 배우 없는 연극 등 신선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아일랜드 극단 데드센터가 다음 달 27∼29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베케트의 방’은 배우가 없다. 관객은 헤드폰 소리와 소품 등의 움직임만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배경인 서사를 따라가게 된다. 앞서 19∼20일엔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를 따라 걷는 거인아트랩의 ‘인.투’가 진행된다. 관객은 증강현실(AR) 기기를 착용한 채 3·1운동의 현장인 삼일대로를 거닐며 가상 퍼포먼스를 관람한다. 국악, 현대무용 축제도 잇달아 펼쳐진다. 다음 달 10∼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처음 열리는 ‘대한민국 국악관현악축제’엔 서울시국악관현악단, KBS국악관현악단 등 8개 단체와 국립창극단 소속 김준수, 민은경 등 인기 소리꾼들이 참여한다. 바이올린, 일렉트릭 기타 등 양악기와 협연도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는 17일 대전시립연정국악단과 해금협주곡 ‘푸른달’을 바이올린협주곡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박상후 KBS국악관현악단 지휘자는 “각 단체의 연주가 같은 장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축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현대무용단인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2)가 막을 여는 현대무용 축제도 주목할 만하다. 28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과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진행되는 제42회 국제현대무용제(MODAFE 2023)가 그것. 9년 만에 내한하는 이스라엘 출신 안무가 호페시 셱터의 무용극부터 김성용 국립현대무용단 신임 단장의 취임 후 첫 안무작인 ‘정글-감각과 반응’까지 다양한 국내외 공연을 만날 수 있다.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야외 공연도 있다. 다음 달 14, 15일 서울 용산구 한강 노들섬 야외무대에서 열리는 서울문화재단 ‘한강노들섬클래식’에선 발레 ‘백조의 호수’를 감상할 수 있다. 올해 ‘브누아 드 라당스’에서 최고 여성무용수상 영예를 안은 강미선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가 주인공 오데트 역을 맡는다. 21∼22일에는 로시니의 희극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가 공연된다. 소프라노 박혜상과 바리톤 안대현, 테너 김성현이 무대에 오른다. 올해는 240여 석 규모의 돗자리석을 신설해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관람할 수 있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은 “호숫가가 극중 배경인 ‘백조의 호수’를 아름다운 강물과 노을 곁에서 감상하며 새로운 감동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통일부는 황정주 남북회담본부 회담기획부장(58·사진)을 신임 기획조정실장으로 8일 임명했다. 통일부가 1969년 국토통일원으로 창설된 이래 여성 공무원이 기조실장으로 임명된 것은 처음이다. 황 신임 실장은 1988년 고시 출신이 아닌 별정직 6급으로 통일부에 입부했고, 남북회담본부 수석 전문관과 상근회담대표를 두루 거쳤다. ◇통일부 ▽고위공무원 가급 △기획조정실장 황정주 △인권인도실장 강종석 ▽고위공무원 나급 △기획조정실 정책기획관 소봉석 △통일정책실 통일기획관 오대석 △인권인도실 정착안전정책관 황승희 △정보분석국장 김상국 △남북관계관리단장 강연서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장 박철 ◇산업통상자원부 〈전보〉 ▽국장급 △무역위원회 무역조사실장 박재영 △무역정책관 조익노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포용전환국장 최진혁 ◇환경부 〈승진〉 ▽국장급 △정책기획관 이채은 △물통합정책관 김고응 △자원순환국장 조현수 ◇공정거래위원회 〈승진〉 ▽국장급 △소비자정책국장 박세민}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짧은 코와 동글동글한 뒤통수가 참 예쁘던 강아지가 기자의 무릎 앞에서 숨을 거뒀다. 14년을 함께한 털북숭이 가족이 죽었으나 ‘어떻게 슬퍼해야 좋은지’는 잘 몰랐다. 애도는 그렇게 엉거주춤 이뤄졌고, 떠나보낼 때조차 반려견에게 가족으로서 자격 미달이었다는 죄책감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반려동물을 가족같이 생각하는 이가 늘고 있지만 직장 경조휴가 신청란에 ‘백숙부 사망’은 있어도 ‘반려견 사망’은 없는 게 현실이다. 책은 털북숭이 가족이 죽었을 땐 어떻게 애도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다. 저자는 언젠가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마주할 사람들을 위해 불교식 반려동물 장례와 박제, 생전 모습과 꼭 닮은 봉제 인형 만들기 등을 권하며 “권리를 박탈당한 슬픔”을 애도할 길을 여러 갈래로 안내한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수없는 죽음이 점선처럼 등장한다. 강아지, 물고기, 새 등 여러 동물을 키웠던 저자의 상실부터 유명 팝스타가 마음을 온전히 기대던 고양이의 죽음, 반려인을 먼저 떠나보낸 강아지가 온기로 빈자리를 지키는 이야기까지…. 제목처럼 ‘아는 동물’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미 겪었거나, 겪진 않았으나 충분히 상상했을 법한 책 속 죽음들을 들여다보며 잠잠한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예견된 끝을 미리 걱정하며 스스로가 반려동물에게 부족한 사람은 아닐지 묻는 이들에겐 따뜻한 응원을 건넨다. “나를 위해 이 자리에 붙잡힌 청중”인 반려동물을 기르다 보면 불안과 죄책감이 종종 기쁨을 잠식한다. 그러나 저자는 “언제나처럼 강렬하게 나를 올려다보는 강아지의 눈빛을 보면 어쩌면 우리는 잘 해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고 독자를 북돋운다. 그리고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슬픔을 이해해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슬픈 결말을 맞은 이들이 그러한 슬픔 역시 가치 있음을 서로 일깨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런 타인’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한·중·일이 문화장관 회의를 열고 각국의 젊은 세대와 콘텐츠 산업을 중심으로 문화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후허핑 중국 문화여유부장, 나가오카 게이코 일본 문부과학대신은 7일과 8일 전북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제14회 한·중·일 문화장관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23 전주 선언문’을 공동 채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탓에 세 나라 장관이 한자리에서 만난 건 2019년 이후 4년 만이다.8일 발표된 전주 선언문에는 3국의 청년과 장애인, 문화도시 간 교류를 늘리고 디지털 문화산업을 공동 육성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각국 청년 예술가 간 창작 협업을 장려하고 콘텐츠 산업 진흥을 위한 민관 교류를 확대하기로 한 것. 이날 진행된 한·중·일 문화장관회의 기조연설에서 박 장관은 “젊은이들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문화적 열정을 나눌 때 국가 간 신뢰와 우정도 쌓을 수 있다”며 “내년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 대회는 청소년의 스포츠‧문화예술 축전으로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장애인에게도 공정한 문화예술 참여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하고, 인구감소와 기후변화 등 문제를 문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연대도 강화한다. 각국 지역 간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2024년 동아시아문화도시로는 한국 김해시, 중국 웨이팡시와 다롄시, 일본 이시카와현이 선정됐다. 전주는 2023년 문화도시다.본회의에 앞서 전날엔 3국 장관이 ‘2023 한·중·일 공예전-화이부동(和而不同)’을 함께 관람했다. 환영 만찬에선 전주의 대표 음식인 비빔밥을 함께 비비는 기념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박 장관은 “한·중·일 문화장관회의는 동북아 문화 교류의 전략 플랫폼”이라며 “이번 회담이 연내 3국 정상회담으로 가는 가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사막의 선인장과 길가에서 주로 자라 사람들의 발에 쉽게 밟히는 질경이의 공통점은 뭘까. 모진 삶을 택하진 않았지만 혹독한 환경에 뿌리내린 두 식물은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강인해졌다. 이 세상에 ‘잘 될 삶’이나 ‘결국 안 될 삶’ 따위는 없음을 알려주는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23일까지 공연되는 ‘잘못된 성장의 사례’는 이러한 식물 이야기를 바탕으로 관객을 고즈넉이 위로하는 연극이다. 한 국립대에서 식물의 저항성 유전자를 연구하는 인물들이 등장해 저마다의 생존 패턴으로 살아가는 식물처럼 우리에게도 각자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연극 ‘배를 엮다’ ‘시장극장’을 연출한 강현주 씨가 처음 희곡을 쓰고 연출도 맡았다. 섬세하게 짜인 공연은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연구실 구성원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곳곳에 놓인 시약병과 빛바랜 멸균기, 책상 위 촘촘하게 붙은 포스트잇 등 실제 연구실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무대세트가 몰입도를 높였다. 공예지 류혜린 박인지 이지현 등 배우들은 탄탄한 연기로 누구 하나 튀지 않고 비슷한 온도로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는 캐릭터들을 표현한다. 마음을 울리는 다정하고도 첨예한 대사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식물학에 관련된 이론과 용어가 자주 등장하지만 무리 없이 흐름을 좇을 수 있다. 극중 연구실의 막내인 한인범은 이렇게 묻는다. “식물은 ‘이렇게 다양하구나’ 감탄하고 보존하는데 왜 사람한테는 안 그러는 거예요?” 전석 3만5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