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112

추천

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08~2025-12-08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스승이 펼친 아름다운 선율, 그 길을 따라 걸었네[유(윤종)튜브]

    사사(師事)는 ‘누구를 스승으로 섬기고 가르침을 받음’을 뜻한다. 사숙(私淑)은 ‘누구를 마음속으로 본받아 학문이나 기량을 닦음’을 말한다. 러시아의 대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1840∼1893)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관계는 ‘사숙’에 가까울 것이다. 직접 가르침을 받은 일은 없지만 모국의 대가 차이콥스키의 존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거대한 산과 같았다. 차이콥스키는 만년에 ‘내가 죽고 나서 러시아 음악의 길을 이어갈 젊은 인재’로 라흐마니노프를 언급했다. 그가 돌연 사망하기 한 달 전 라흐마니노프를 만났을 때, 갓 스무 살의 후배가 교향시 ‘바위’를 포함해 그해 쓴 작품들을 보여주자 차이콥스키는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다니, 나는 마지막 교향곡이 될 작품 하나를 겨우 썼는데”라며 격려했다. 그 예언과 같은 말처럼 차이콥스키가 세상을 떠나자 라흐마니노프는 슬픔에 휩싸여 피아노3중주곡 ‘비가(悲歌)풍 3중주 2번’을 썼다. 차이콥스키가 스승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의 죽음에 부쳐 3중주곡 ‘위대한 음악가의 추억’을 쓴 것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투철한 예술적 세계와 개성을 갖춘 작곡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에서는 대선배이자 정신적 사부인 차이콥스키의 영향이 짙게 엿보인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2악장을 들어 보자. 현악기들이 느리게, 안개와 같은 신비롭고도 침울한 분위기를 지어내면서 시작된다. 13년 앞서 나온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 2악장도 같은 분위기로 시작한다. 스승에 대한 라흐마니노프의 경모가 반영된 것이다. 음악의 역할에 대한 생각도 두 사람은 닮아 있었다. 차이콥스키는 ‘음악은 일상의 친근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음악 작품은 작곡가의 경험 일체를 담아야 한다’고 했다. 음악의 구조적 형식미나 신비적 기능을 강조하지 않았던 두 사람의 음악관은 그들의 작품을 누구나 친근하고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두 사람의 작품 속 ‘닮은꼴’을 더 들여다보자.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 1악장이나 교향곡 5번 2악장의 중간부는 일정한 멜로디 패턴이 반복되면서 끝없이 높은 음을 향해 상승한다. 동시에 저음(베이스)선은 반대로 계속 낮아진다. 차이콥스키 특유의 수법이지만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2악장의 중간부도 딱 그렇다. 약간 복잡하지만 한 가지를 더 들어 보자.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1악장은 중간부(발전부) 이후 다시 나와야 할 첫 번째 주제가 중간부에 미리 섞여들고, 완전히 매듭을 지은 다음 두 번째 주제가 회상된다. 라흐마니노프는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조까지 차이콥스키를 따라 했다. 교향곡 2번의 1악장에서다. 더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 본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의 마지막 악장은 ‘짠짠짠 짠’ 하는 리듬의 강주(强奏)로 끝난다. 교향곡 6번 ‘비창’ 3악장이나 발레곡 ‘호두까기 인형’ 1막도 같다. 차이콥스키의 ‘도장’이나 ‘서명’ 같은 이 개성 강한 마침도 라흐마니노프가 따라 했다. 그의 피아노협주곡 2번, 3번 등도 ‘짠짠짠 짠’으로 끝난다. 리듬형은 살짝 바꾸어 두 번째, 세 번째 음표가 첫 음표보다 짧다. ‘나는 차이콥스키의 정신적 후계자이지만 똑같지는 않다’고 강조하는 듯하다. 21일 성기선 지휘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러시아 작곡가 시리즈: 라흐마니노프’ 콘서트를 연다. 피아니스트 박종해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일리야 라시콥스키가 협주곡 3번을 협연한다. 라흐마니노프가 차이콥스키로부터 본받았던 음악적 특징들도 주의 깊게 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3월은 학교들이 문을 여는 달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스승들을 직접 만나지 못한다. 지식은 배울 수 있어도 스승의 몸가짐이나 정신의 깊이는 온라인으로 배우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옛사람도 나를 못 보고 나도 옛사람을 못 봬, 옛사람을 못 봬도 (그가) 가던 길 앞에 있네’라는 퇴계 이황의 시조처럼, 후학들이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갖춘다면 길이 보일 것이다. 만날 수 없는 옛사람에게서도 배우는 바에야. 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gustav@donga.com}

    • 2021-03-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스승이 펼친 아름다운 선율, 그 길을 따라 걸었네[유(윤종)튜브]

    사사(師事)는 ‘누구를 스승으로 섬기고 가르침을 받음’을 뜻한다. 사숙(私淑)은 ‘누구를 마음속으로 본받아 학문이나 기량을 닦음’을 말한다. 러시아의 대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1840~1893)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관계는 ‘사숙’에 가까울 것이다. 직접 가르침을 받은 일은 없지만 모국의 대가 차이콥스키의 존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거대한 산과 같았다. 차이콥스키는 만년에 ‘내가 죽고 나서 러시아 음악의 길을 이어갈 젊은 인재’로 라흐마니노프를 언급했다. 그가 돌연 사망하기 한 달 전 라흐마니노프를 만났을 때, 갓 스무 살의 후배가 교향시 ‘바위’를 포함해 그 해 쓴 작품들을 보여주자 차이콥스키는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다니, 나는 마지막 교향곡이 될 작품 하나를 겨우 썼는데”라며 격려했다. 그 예언과 같은 말처럼 차이콥스키가 세상을 떠나자 라흐마니노프는 슬픔에 휩싸여 피아노3중주곡 ‘비가(悲歌)풍 3중주 2번’을 썼다. 차이콥스키가 스승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의 죽음에 부쳐 3중주곡 ‘위대한 음악가의 추억’을 쓴 것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투철한 예술적 세계와 개성을 갖춘 작곡가였다는 점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에서는 대선배이자 정신적 사부인 차이콥스키의 영향이 짙게 엿보인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2악장을 들어보자. 현악기들이 느리게, 안개와 같은 신비롭고도 침울한 분위기를 지어내면서 시작된다. 13년 앞서 나온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 2악장도 같은 분위기로 시작한다. 스승에 대한 라흐마니노프의 경모가 반영된 것이다. 음악의 역할에 대한 생각도 두 사람은 닮아 있었다. 차이콥스키는 ‘음악은 일상의 친근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작품은 작곡가의 경험 일체를 담아야 한다’고 했다. 음악의 구조적 형식미나 신비적 기능을 강조하지 않았던 두 사람의 음악관은 그들의 작품을 누구나 친근하고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두 사람의 작품 속 ‘닮은꼴’을 더 들여다보자.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 1악장이나 교향곡 5번 2악장의 중간부는 일정한 멜로디 패턴이 반복되면서 끝없이 높은 음을 향해 상승한다. 동시에 저음(베이스)선은 반대로 계속 낮아진다. 차이콥스키 특유의 수법이지만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2악장의 중간부도 딱 그렇다. 약간 복잡하지만 한 가지를 더 들어보자.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1악장은 중간부(발전부) 이후 다시 나와야 할 첫 번째 주제가 중간부에 미리 섞여들고, 완전히 매듭을 지은 다음 두 번째 주제가 회상된다. 라흐마니노프는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조까지 차이콥스키를 따라했다. 교향곡 2번의 1악장에서다. 더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본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의 마지막 악장은 ‘짠짠짠 짠’ 하는 리듬의 강주(强奏)로 끝난다. 교향곡 6번 ‘비창’ 3악장이나 발레곡 ‘호두까기 인형’ 1막도 같다. 차이콥스키의 ‘도장’이나 ‘서명’ 같은 이 개성 강한 마침도 라흐마니노프가 따라했다. 그의 피아노협주곡 2번, 3번 등도 ‘짠짠짠 짠’으로 끝난다. 리듬형은 살짝 바꾸어 두 번째, 세 번째 음표가 첫 음표보다 짧다. ‘나는 차이콥스키의 정신적 후계자이지만 똑같지는 않다’고 강조하는 듯하다. 21일 성기선 지휘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러시아 작곡가 시리즈: 라흐마니노프’ 콘서트를 연다. 피아니스트 박종해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일리야 라시콥스키가 협주곡 3번을 협연한다. 라흐마니노프가 차이콥스키로부터 본받았던 음악적 특징들도 주의 깊게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3월은 학교들이 문을 여는 달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스승들을 직접 만나지 못한다. 지식은 배울 수 있어도 스승의 몸가짐이나 정신의 깊이는 온라인으로 배우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옛 사람도 나를 못 보고 나도 옛 사람을 못 봬, 옛 사람을 못 봬도 (그가) 가던 길 앞에 있네’라는 퇴계 이황의 시조처럼, 후학들이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갖춘다면 길이 보일 것이다. 만날 수 없는 옛 사람에게서도 배우는 바에야.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3-01
    • 좋아요
    • 코멘트
  • “어린 음악도에 책임감 심어주면 연주 실력-인생 내공 쑥쑥”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도로변, 서울 예술의전당 정면에서 200m 떨어진 라율아트홀은 객석 60석의 아담한 공연장이다. 크지 않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비교적 널찍한 로비 공간과 갤러리, 하프시코드, 카페, 다섯 개나 되는 연습실도 갖추고 있다. 방송 시설을 갖추고 유튜브와 네이버TV 채널도 운영한다. 대표인 바이올리니스트 최연우 씨(49) 혼자 일궈낸 일이다. “인테리어도 혼자 구상하고 백지 상태에서 회계와 세무, 소방법까지 익혔어요. 문을 연 뒤에도 홀 운영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죠.” 국내외 유수의 홀에 연주를 다니며 음향 좋고 쾌적한 공연장을 만들고 싶었다. ‘연주자와 관객이 가깝게 소통하는’ 연주회장이 꿈이었다. 그러다 어깨 부상을 당해 잠시 연주를 멈췄다. “‘회복되지 않으면 뭘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딸이 유학 자금을 모았다가 4년 장학금을 받게 됐어요. ‘딸에게 진 빚’으로 시작한 거죠.” 부상에서 회복되었지만 2018년 9월 ‘음을 펼치다’라는 뜻의 라율(羅律)아트홀의 문을 열었다. 라율아트홀은 초대권이 없다. 대관 신청이 들어오면 대부분 자체 공연 시리즈인 ‘살롱 클래식’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대관료를 받지 않고 입장권 수익을 연주자와 배분한다. “저도 그랬지만 연주자들은 대부분 기량 연마에만 신경 쓰고 연주가로서 자립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죠. 그런 분위기를 바꾸고, 자기 연주에 더 책임감을 갖게 만들고 싶었어요.” 3월부터는 전년도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우승자들에게 무료 독주회를 열어준다. 1일 첼로 부문 우승자 박지희 독주회를 시작으로 5월 29일 바이올린 송예지, 7월 23일 피아노 박대호, 7월 24일 플루트 윤서영 독주회가 이어진다. 그가 요즘 가장 힘을 쏟는 부분은 매주 화요일 여는 현악 실기평가회다. 바이올린 유망주들의 연주를 전문 연주가 다섯 명이 듣고 상세한 평을 알려준다. 우수 연주자로 선정되면 ‘라율 영재 & 영아티스트 독주회’ 시리즈에 참여시킨다. 올해는 지난해 우승자 김다연 독주회와 부우승자 다섯 명의 조인트 리사이틀 기회를 제공한다. 유망 연주가들이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기량을 선보일 무대를 일찌감치 마련해 주는 것이 예술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이 새싹들의 연주도 유튜브와 네이버TV ‘라율아트홀’ 채널로 공개된다. “어린 연주가가 자기만의 책임감을 갖고 리사이틀을 열면 1년 공부한 것만큼 성장하게 되죠. 입시에만 몰두하는 음악도를 벗어나 ‘음악가’로서의 자아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3-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조성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온라인 클래식음악 사이트 ‘유디스커버뮤직’(udiscovermusic.com)이 최근 선정한 가장 인기 있는 음악가 4위에 선정됐다. 조성진은 피아니스트 가운데서는 1위에 올랐다. 한국인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이루마는 25위에 선정됐다. 음반그룹 유니버설뮤직의 인터넷 판매 및 홍보 사이트인 유디스커버뮤직은 지난해 11월 이후 전 세계 음악팬 1만 명 이상이 참여한 투표를 통해 선정한 인기 음악가 상위 25명의 명단을 최근 밝혔다. 1위는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개럿, 2위는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 3위는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앙드레 류가 차지했다. 1∼3위 세 사람은 클래식과 크로스오버 부문을 넘나드는 아티스트여서 ‘순수’ 클래식 연주가로는 조성진이 최상위에 올랐다. 5위는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라 베네데티였다. 유디스커버뮤직은 조성진에 대해 “엄청난 재능을 가진 음악가로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이루마에 대해서는 “현대적 슈퍼스타로 유튜브에서 4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소개했다. 조성진은 모차르트의 265번째 생일인 올해 1월 27일 모차르트의 미발표곡인 ‘알레그로 D장조’ 세계 초연 연주를 맡아 전 세계에서 큰 화제를 불러온 바 있다. 인기 1위에 오른 개럿에 대해 유디스커버뮤직은 “네 살 때부터 연주를 했고 열세 살 때부터 음반사와 계약해 2년 뒤 파가니니 카프리스 24곡 전곡 음반을 내놓았으며 세계에서 가장 음반이 많이 팔리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명단에 오른 아티스트 중 피아니스트로는 마르타 아르게리치(6위), 유자 왕(16위), 알프레드 브렌델(18위), 랑랑(19위), 다닐 트리포노프(20위) 등이 이름을 올렸다. 지휘자와 피아니스트 양쪽으로 활동 중인 다니엘 바렌보임도 14위에 올랐다. 지휘자로는 사이먼 래틀(7위), 작곡가는 존 윌리엄스(9위), 첼리스트는 요요마(11위)가 각 분야 최상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메조소프라노 캐서린 젠킨스(7위)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3-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국과 일본, 함께하는 미래 그려갈 방법은

    남북관계와 한일관계.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주제들이지만 두 가지를 연관된 하나의 틀로 들여다본 책은 드물다. 한국 국적의 재일교포 2세이자 도쿄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이런 과제에 적역이라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 사회 내부의 논리를 두루 읽고 토론해 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저자는 일본이 한반도의 분단에 편승한 채 미일 안보체제에 안전과 평화를 맡겨왔다는 데서 논의를 시작한다. 이 때문에 일본은 분단 체제를 극복하려는 한국과 계속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북한과 손잡으려는 한국의 의도를 일본이 의심하고, 한국은 ‘일본이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는 데서 최근의 날카로운 대립이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국가마다 자신의 국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양국 모두 그 방법론에 허점이 있었다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은 북-일 관계의 발목을 잡는 납북 일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남북한의 적극적 중재자 역할에 나섰어야 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거시적 외교 전략을 수립하지 않은 채 여론에 따라 정책을 결정했고,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그리는 지도에서 일본의 위상은 계속 축소되었다. 저자의 눈으로는 한국 정부도 낫지 않았다. 남북 화해 및 일본과의 의사소통을 동시에 강화했어야 했지만 이런 복안(複眼)적 외교 전략을 간과했다. 이런 배경에는 한일 양국의 세대교체에 따른, 상대방에 대한 무지가 있었다. 과거와 달리 두 나라의 정서적 배경을 이해하고 서로를 두꺼운 네트워크로 이어줄 정치가나 지식인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그 결과 한일 외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는 ‘복합골절’ 같은 양상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지금의 현실이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가이다. 저자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포도주가 쏟아지는 낡은 부대’ 같다며 새롭고 튼튼한 부대를 만드는 데 일본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인지가 양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으로 본다. 일본은 더 이상 한반도의 분단과 미일안보체제에 자국의 안정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남북 화합 후 생겨날 더 많은 이익에 참여하라는 권고다. ‘남북이 힘을 합치면 중국에 기울 것’이라는 관념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설득도 곁들인다. 두 나라 정부 못잖게 큰 역할이 필요한 것이 양국의 시민사회다. 저자는 현재의 한국과 일본 시민사회가 ‘내가 이겨야 저쪽이 진다’는 협소한 시야에 빠져 있다며 ‘두 나라의 시민사회가 나서서 적대를 타협으로, 협력의 에너지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호소한다. 이 책의 일본어 원서는 지난해 4월 출간됐다. 미국 트럼프 정부에서 바이든 정부로 정권교체가 일어나기 전이며,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가 사임하고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취임하기 전이다. 스가 총리가 아베 전 총리의 외교정책을 대부분 계승하고 있지만, 두 나라의 정치 상황 변화에 맞춘 보론(補論)이 추가되었더라면 더 유익했을 것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2-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러시아 제국의 야망, 음악에 담은 보로딘[유(윤종)튜브]

    집에서 음식을 하면 종종 재료가 남아서 계획에 없던 음식이 될 때가 있죠. 어릴 때 명절에 만두를 빚다가 남은 만두피는 칼국수가 되고, 만두소가 남으면 고기완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보로딘(사진)의 교향곡 2번은 어쩌면 ‘명절날 칼국수’ 같은 작품입니다. 보로딘은 야심 찬 대작 오페라 ‘이고리 공’을 쓰고 있었습니다. 12세기 러시아 제후 이고리 스뱌토슬라비치의 중앙아시아 원정기를 오페라로 만든 작품입니다. 그런데 처음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커졌고, 보로딘은 이 오페라에 넣지 못한 선율과 소재들을 따로 교향곡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교향곡 2번입니다. 보로딘은 이른바 러시아 민족주의 5인조 작곡가 중 한 사람이었죠. 러시아라고 하면 흔히 추운 북방, 하얀 자작나무 숲을 배경으로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풍경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보로딘의 음악들은 다릅니다. 오페라 ‘이고리 공’을 보면 여기 나오는 풍경은 자작나무 숲이 있는 북방의 러시아가 아닙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러시아의 귀족인 이고리 공이 남쪽 초원지대의 폴로베츠족을 정벌하러 나서지만 싸움에 패해 포로가 됩니다. 그런데 족장은 큰 연회를 열어서 이고리 공을 환대합니다.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마음 편히 살라는 거죠. 하지만 이고리 공은 몰래 탈출에 성공해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보로딘이 러시아 남쪽의 초원지대를 그린 게 이 곡만은 아닙니다. 교향시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에서 보로딘은 낙타를 탄 대상(隊商·카라반)이 초원을 줄지어 가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이렇게 러시아 남쪽의 초원지대를 묘사한 음악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 후반의 러시아는 남쪽 초원지대의 이슬람 지역과 투르크계 민족이 사는 땅으로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오늘날의 캅카스 지역과 구소련의 ‘스탄’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나라들입니다. 이런 시대에 나온 보로딘의 ‘이고리 공’이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에는 남쪽으로 계속 시선을 확장하던 러시아의 야망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제국주의적인 야망이죠. 하지만 바람직하든 그렇지 않든 한 시대나 한 국가가 가진 꿈은 당대의 예술가들에게도 투사된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또 있습니다. 오페라 ‘이고리 공’은 또 하나의 걸작을 탄생시켰습니다. 보로딘은 이 대작을 끝내지 못한 채 1887년에 세상을 떠났고, 이 오페라를 완성하는 작업은 친구 작곡가인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맡게 되었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친구의 작품을 마무리하다가 이 작품이 가진 남쪽 초원의 향기에 깊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남쪽 세계를 소재로 작품을 썼습니다. 아랍 세계의 이야기집인 ‘천일야화’를 소재로 그가 쓴 작품이 교향모음곡 ‘셰에라자드’죠. 결국 보로딘이 오페라 ‘이고리 공’을 소재로 오페라를 쓰려던 계획은 자기 자신의 교향곡 2번, 그리고 친구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까지 모두 세 개의 명곡을 낳게 된 셈입니다. KBS교향악단이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여는 ‘불과 얼음의 여행’ 콘서트에서 보로딘의 교향곡 2번을 연주합니다. 스페인 지휘자 프란시스코 발레로테리바스가 지휘봉을 들고, 기타리스트 박종호는 스페인 작곡가 팔라우의 ‘레반티노 협주곡’을 협연합니다. 중앙아시아 초원과 스페인이라는 두 가지 이국적 분위기를 맛보는 콘서트가 되겠습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2-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대초원의 꿈 담긴 보로딘 교향곡 2번, ‘명절날 칼국수’ 같은 작품?

    집에서 음식을 하면 종종 재료가 남아서 계획에 없던 음식이 될 때가 있죠. 어릴 때 명절에 만두를 빚는 데 만두피가 남으면 썰어서 칼국수가 되고, 속이 남으면 기름에 부쳐서 고기완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보로딘의 교향곡 2번은 어쩌면 ‘명절날 칼국수’ 같은 작품입니다. 보로딘은 야심찬 대작 오페라 ‘이고리 공’을 쓰고 있었습니다. 12세기 러시아 제후 이고리 스뱌토슬라비치의 중앙아시아 원정기를 오페라로 만든 작품입니다. 그런데 처음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커졌고, 보로딘은 이 오페라에 넣지 못한 선율과 소재들을 따로 교향곡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교향곡 2번입니다. 보로딘은 이른바 러시아 민족주의 5인조 작곡가 중 한 사람이었죠. 러시아라고 하면 흔히 추운 북방, 하얀 자작나무 숲을 배경으로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풍경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보로딘의 음악들은 다릅니다. 오페라 ‘이고리 공’을 보면 여기 나오는 풍경은 자작나무 숲이 있는 북방의 러시아가 아닙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러시아의 귀족인 이고리 공이 남쪽 초원지대의 폴로베츠족을 정벌하러 나서지만 싸움에 패해 포로가 됩니다. 그런데 족장은 큰 연회를 열어서 이고리 공을 환대합니다.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마음 편히 살라는 거죠. 하지만 이고리 공은 몰래 탈출에 성공해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보로딘이 러시아 남쪽의 초원지대를 그린 게 이 곡만은 아닙니다. 교향시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에서 보로딘은 낙타를 탄 대상(隊商·캐러반)이 초원을 줄지어 가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이렇게 러시아 남쪽의 초원지대를 묘사한 음악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 후반의 러시아는 남쪽 초원지대의 이슬람 지역과 투르크계 민족이 사는 땅으로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오늘날의 캅카스 지역과 구소련의 ‘스탄’ 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나라들입니다. 이런 시대에 나온 보로딘의 ‘이고리 공’이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에는 남쪽으로 계속 시선을 확장하던 러시아의 야망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제국주의적인 야망이죠. 하지만 바람직하든 그렇지 않든 한 시대나 한 국가가 가진 꿈은 당대의 예술가들에게도 투사된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또 있습니다. 오페라 ‘이고리 공’은 또 하나의 걸작을 탄생시켰습니다. 보로딘은 이 대작을 끝내지 못한 채 1887년에 세상을 떠났고, 이 오페라를 완성하는 작업은 친구 작곡가인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맡게 되었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친구의 작품을 마무리하다가 이 작품이 가진 남쪽 초원의 향기에 깊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남쪽 세계를 소재로 작품을 썼습니다. 아랍 세계의 이야기집인 ‘천일야화’를 소재로 그가 쓴 작품이 교향모음곡 ‘셰에라자드’죠. 결국 보로딘이 오페라 ‘이고리 공’을 소재로 오페라를 쓰려던 계획은 자기 자신의 교향곡 2번, 그리고 친구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까지 모두 세 개의 명곡을 낳게 된 셈입니다. KBS교향악단이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여는 ‘불과 얼음의 여행’ 콘서트에서 보로딘의 교향곡 2번을 연주합니다. 스페인 지휘자 프란시스코 발레로테리바스가 지휘봉을 들고, 기타리스트 박종호는 스페인 작곡가 팔라우의 ‘레반티노 협주곡’을 협연합니다. 중앙아시아 초원과 스페인이라는 두 가지 이국적 분위기를 맛보는 콘서트가 되겠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2-22
    • 좋아요
    • 코멘트
  • 서울시향의 유쾌한 변신 뒤엔 ‘젊은 지휘봉’

    성탄 캐럴 8곡 연주와 저작권 무료 개방, EBS 홈페이지에 공개한 초중고 음악 영상교재, SM엔터테인먼트와 콜라보로 제작한 레드벨벳 ‘빨간 맛’과 고 샤이니 종현의 ‘하루의 끝’ 연주….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지난해 여러 가지 색다른 시도를 했다. 그때마다 지휘대엔 33세의 젊은 부지휘자 데이비드 이(사진)가 있었다. 1년간의 첫 임기를 마치고 올해 1월 재임용된 그가 처음 서울시향 정기연주회 무대에 선다. 3월 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 임지영의 스코틀랜드 환상곡’ 콘서트다. 베버 ‘마탄의 사수’ 서곡과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협연하는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 멘델스존의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그는 지난해 9월 서울시향 온라인 콘서트에서도 멘델스존 현악8중주와 현악 교향곡 11번을 지휘한 바 있다. “원래 큰 관심을 가졌던 작곡가는 아닙니다. 지난해 두 곡을 지휘하면서 멘델스존을 가깝게 알게 된 느낌이 들었죠.” 교향곡 1번은 멘델스존이 불과 15세의 나이로 쓴 곡이다. 그의 교향곡 중에서도 자주 연주되는 곡은 아니다. “트롬본을 쓰지 않는 등 편성이 간소해요. 코로나 상황에서 무대 위 거리 두기도 중요한 만큼 이 기회에 ‘신동 작곡가’가 쓴 덜 알려진 곡을 선보이는 것도 좋겠다 싶었죠. 나이는 잊어도 좋을 만큼 짜임새가 단단하고 꽉 찬 곡이에요.” 지난해 서울시향이 시도한 대중음악과의 콜라보에 놀란 음악팬도 많았다. “음악계가 어떤 식으로든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찬성이에요. 언젠가는 시작했어야 할 일들이죠.” 가장 좋았던 일로는 ‘캐럴 공개’를 꼽았다. “사회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서울시향 유튜브에서만 20만 뷰가 넘어 단원들도 신나했거든요.”(웃음) 그는 음악을 전공한 부모 아래 유년기는 한국에서, 청소년기 이후는 미국에서 보냈다.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휴 울프를, 예일대에서 피터 운지안을 사사했다. 2016년 경기도문화의전당이 기획한 ‘이탈리아 오페라 아카데미’에선 지휘 거장 리카르도 무티에게 발탁돼 다른 두 지휘자와 함께 ‘라 트라비아타’ 공연에 참여했다.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고(古)음악’이라고 했다. 고전주의 이전, 바로크나 르네상스 음악을 당시의 악기와 연주 관습을 살려 연주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 서울시향 ‘퇴근길 콘서트’에서 직접 쳄발로(피아노의 원형 격인 건반악기)를 치며 고음악 연주를 이끌기도 했다. 앞으로도 서울시향에서 고음악의 시도를 늘려볼 생각이다. 미래의 희망을 묻자 그는 ‘엉뚱할지도 모르지만…’이라면서 ‘큰 그림’을 보였다. “우리나라에 오케스트라 전문 교육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음악을 전공한 학생들이 직업을 찾아서 자신의 미래를 체계적으로 찾아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죠. 그런 일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2-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용기와 희망 노래해요

    “‘안단테 칸타빌레’는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듯 천천히’라는 뜻이죠. 암울한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서두르지 않고, 저희만의 발걸음으로 노래하듯, 천천히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뜻입니다.” 창단 후 9년, 변화의 길목에 선 현악4중주단 아벨 콰르텟이 사무치게 쓸쓸하고, 격렬하게 슬픈 낭만주의 시대 4중주곡 세 곡을 연주한다.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여는 네 번째 정기연주회 ‘안단테 칸타빌레’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수현 윤은솔, 비올리스트 김세준, 첼리스트 조형준으로 시작한 아벨 콰르텟은 결성 직후 참가한 2014년 독일 아우구스트 에버딩 국제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한 데 이어 이듬해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2016년에는 현악4중주단으로는 처음으로 ‘금호아트홀 라이징스타’에 선정돼 리사이틀을 열었다. 네덜란드 현악4중주 아카데미가 위촉한 상주 현악4중주단으로도 활동 중이다. 이번 연주회는 창단 비올리스트 김세준이 지난해 독일 하노버 NDR(북독일방송교향악단) 비올라 수석으로 선발되면서 비올리스트가 문서현으로 교체된 뒤 여는 첫 번째 콘서트다. 문서현은 2016년 서울대 음대 재학 중 동아음악콩쿠르 비올라 1위를 수상했으며 독일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에 재학 중이다. 2019년 이탈리아 가에타노 지네티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네 단원은 “하이든 콩쿠르 우승 때문인지 그동안 주로 고전주의 작품 해석에서 인정받아왔다. 자유로운 감정 표현이 필요한 낭만주의 영역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겠다”고 밝혔다. 콘서트의 문은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 12번 ‘콰르텟자츠’로 연다. 슈베르트가 2악장을 쓰다 완성하지 못해 1악장의 곡으로 남았지만 풍부한 구성과 완결미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아벨 콰르텟은 ‘어마어마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이 곡의 특징을 전했다. 멘델스존의 현악4중주 6번은 작곡가가 누나 파니의 죽음을 듣고 마음껏 슬픔과 격정을 쏟아낸 곡. 중간휴식 뒤에는 특히 일반 음악팬과 친밀도가 높은 차이콥스키의 현악4중주 1번 ‘안단테 칸타빌레’를 연주한다. ‘안단테 칸타빌레(노래하듯 천천히)’는 이 곡의 2악장 악보에 작곡가가 쓴 악상기호다. 작곡가 옆에서 이 곡을 듣던 문호 톨스토이가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다른 세 개 악장도 들으면 바로 따라 부를 수 있는 친숙한 멜로디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서울 공연에 앞서 18일에는 광주 유스퀘어 문화관 금호아트홀에서 연주를 갖는다. 서울 3만∼5만원, 광주 3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2-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담은 동요앨범 어때요∼

    ‘오빠 생각’ ‘나뭇잎 배’ ‘과수원 길’ ‘엄마야 누나야’…. 한국인 누구에게나 친숙한 동요들이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음색으로 산뜻한 새 옷을 입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선보인 동요앨범 ‘고향의 봄’(사진).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아픔을 보듬은 동요들부터 ‘꼭 안아줄래요’ ‘된장 한 숟가락’ 같은 2000년대 창작동요까지 100년에 걸친 동요 16곡을 실었다. 정치용이 지휘하고 소프라노 임선혜, 테너 존 노, 피아니스트 문정재, 하모니카 연주자 박종성이 연주에 참여했다. 김택수 나실인 박용빈 안성민 오은철 이용석 등 정통 오케스트라에서 극음악, 방송음악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젊은 작곡가 여섯 명이 편곡을 맡았다. 첫 곡 ‘오빠 생각’부터 풀 향기가 대기에 떠도는 것 같은 꿈같은 봄의 느낌이 가득 펼쳐진다. 각각의 노래에서 관악기를 비롯한 여러 오케스트라 악기 음색의 개성을 살렸고, 기존 동요에서 듣던 기본적인 화음의 틀을 벗어나 독특한 향기를 풍기는 화음들을 입혔다. 김택수가 편곡한 ‘고향의 봄’은 2절 이후에서 유럽의 바로크 아리아처럼 선율을 새롭게 해석해 이채롭다. 소프라노 임선혜의 장기인 휘파람 소리도 들어갔다. 이용석이 편곡한 ‘노을’에선 호른이 꿈꾸듯이 시작한 선율을 트럼펫과 클라리넷이 이어받으며 잔잔한 현의 배경화음 속에 실제 노을을 보는 것 같은 환상을 펼쳐낸다. 전체적으로 ‘따라 부를 수 있는’ 편곡보다 ‘새롭게 듣는’ 체험에 방점을 찍으며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매력에 취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오빠 생각’ ‘과수원 길’ ‘섬집 아기’에서는 하모니카가 한국의 근대 이미지와 들어맞는 아련한 정취를 강조한다. ‘얼굴’ ‘별’은 오케스트라만으로 연주한 트랙을 따로 실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든 시기를 겪는 우리 모두에게 동요가 품은 위로와 치유의 힘을 건네고자 음반을 기획했다. 가사에 담긴 맑은 정서와 포근함을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담았다”고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2-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번엔 반주 아닌 독주… 라시콥스키 4년만에 홀로 무대에

    “반주를 맡아도 되겠느냐고 제가 늘 먼저 묻습니다. 그냥 연주가 좋아서요.” 러시아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시콥스키(37·성신여대 초빙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바쁜 연주자였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1년 동안 그가 참여한 연주만 해도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지 백주영 송지원 양성식 양정윤 이지윤, 첼리스트 김민지 박유신 이정란,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베이시스트 성미경, 소프라노 박혜상,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등 가장 주목받는 공연들이었다. 여러 오케스트라와의 협주곡 협연은 별개로 쳐도 그렇다. 그가 4년 만에 자기 자신만을 대면하는 솔로 리사이틀을 갖는다. 제목은 ‘로맨틱 소나타’. 27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연주를 앞둔 그를 예술의전당 부근 카페에서 만났다. 수많은 악기와 협연해온 만큼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접했다. 부담스럽지 않을까.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가 즐겁고, 여러 연주자와 음악에 관해 생각을 나누는 게 행복해요. 새로운 경험을 통해 더 발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정말로 그가 먼저 반주를 제안할까. 그와 호흡을 맞춰본 연주자들에게 연락해 봤다. 다들 손사래를 쳤다. “천만에요. 그분과 연주하고 싶어서 제가 제안했는걸요. 일정만 확인해보곤 좋다고 하셨어요.” 이번 솔로 콘서트에서 그는 한국 작곡가 류재준의 피아노소나타를 세계 초연한다. “인생처럼 거대한 작품이에요. 고통과 분투가 들어있는 곡이죠. 류재준은 어떤 작품이든 고유의 목소리를 뚜렷이 내는 작곡가입니다.” 이 곡 외 쇼팽의 소나타 3번과 마주르카 작품 24의 네 곡 등도 연주한다. 그는 “로맨틱(낭만적) 소나타라는 콘서트 제목은 류재준의 소나타를 염두에 둔 것”이라며 이 곡의 분위기에 맞춰 다른 곡들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부터 한국에서 연주를 펼쳤고 2013년 성신여대 교수가 되면서 거주지를 서울로 옮겼다. 일본인 부인과 학교 부근에서 살고 있다. “허락되는 만큼 한국에 있고 싶습니다. 여러 세대의 열정적인 청중이 있고, 다양한 개성을 가진 연주가들이 있고, 재주 있는 학생들이 있으니까요.” 남은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그토록 많은 톱클래스의 연주자들이 그를 찾는 이유는 뭘까.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서울대 교수)과 첼리스트 이정란에게 각각 물었다. 답은 약속한 듯 같았다. “일리야는 어떤 곡이든 금방 습득하고 완벽하게 준비해요. 지치는 법이 없고 배려심도 넘칩니다. 무엇보다 음악 자체를 너무나 사랑하죠!” 3만∼6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2-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뚝뚝 끊기는 리듬-선율… 당신도 울고 있나요?[유(윤종)튜브]

    음악의 세계에는 많은 눈물이 있습니다. 헨델 오페라 ‘리날도’에 나오는 아리아 ‘울게 하소서’나 오펜바흐의 첼로곡 ‘자클린의 눈물’도 있고, 그 밖의 수많은 음악과 노래가 ‘눈물’ ‘울음’ ‘통곡’ 같은 제목을 갖고 있죠. 그런데 제목이나 가사가 눈물과 울음을 표현하는 데서 더 나아가, 작품의 음악적인 특징 자체가 ‘울고’ 있는, 즉 사람의 울음과 비슷한 특징을 표현한 경우도 있습니다. 체코 작곡가 드보르자크는 1892년 미국 내셔널 음악원 원장으로 초빙되어서 미국에 건너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향수병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미국에서 쓴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의 2악장에 그가 느꼈던 고향에의 동경과 쓸쓸함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른바 ‘꿈속의 고향’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주선율이 유명한데, 앞부분에 이 선율이 나온 뒤 뒷부분에 다시 나오지만 어찌된 일인지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자꾸 끊어집니다. 이 부분은 향수병을 못 이긴 드보르자크가 울고 있는 자신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음악의 역사에서 울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온 작품은 또 있습니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3번은 베토벤이 죽기 전해에 쓴 작품입니다. 당시 베토벤은 건강이 좋지 않았고 병상에 누웠다가 회복하기를 거듭했습니다. 이 곡은 여섯 개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끝에서 두 번째인 5악장은 ‘카바티나’라는 제목이 달려 있습니다. 번역하기 마땅하지는 않지만 ‘작고 아담한 노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악장은 명상적인 분위기로 시작해서 문득 멈췄다가 새로운 선율이 나오는데, 순조롭게 진행되지가 않습니다. 리듬이 자꾸만 예측할 수 없이 끊어졌다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이 곡도 ‘베토벤이 자신이 울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만약 앞에 소개한 두 곡처럼 소심하게, 누군가 들을 것을 염려하는 듯 자기 방에서 소리 없이 끅끅 우는 울음이 아니라 자신을 모두 내려놓고 오열하는 모습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의 마지막 4악장 두 번째 주제가 그렇습니다. 어깨를 들썩들썩하면서 엉엉 우는 한없는 오열을 연상시킵니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이 초연되고 9일 만에 숨을 거뒀습니다. 그가 당시 알려진 것처럼 콜레라에 걸려 죽은 게 아니라 비소를 먹고 자살했다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자살이 맞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느 쪽도 뚜렷한 근거를 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확실한 것은 차이콥스키가 자기 힘으로 목숨을 끊었든 아니든 간에,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비창 교향곡은 그의 ‘음악적 유서’라고 볼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죽은 원인과 별개로, 차이콥스키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남길 수 있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 세상에는 눈물이 넘쳐납니다. 수많은 공연이 순연되고 공연장 내 띄어 앉기로 어려움이 가중된 음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눈물을 통한 정화와 소생의 힘 또한 믿습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19일 홍석원 지휘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을 연주합니다. 작품이 표현한 비탄을 통해 역설적으로 많은 사람이 새로운 힘을 얻게 되기를 소망합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2-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단독]백건우 “아내 윤정희 방치 주장은 사실무근” 직접 밝혀

    알츠하이머병으로 투병 중인 배우 윤정희 씨(77)가 프랑스 파리에서 가족들로부터 방치돼 있다는 논란과 관련해 남편 백건우 씨(75)가 본보 기자와 만나 “사실무근”이라고 직접 밝혔다. 소속사를 통해 내놓은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백 씨는 8일(현지 시간) 오후 1시 30분경 프랑스 파리 외곽 뱅센 숲 인근 자택 앞에서 본보 기자를 만나 “사실무근이다. 이미 소속사를 통해 다 이야기했다”며 아내 윤 씨를 방치했다는 의혹을 재차 부인했다. 파리 외곽에서 투병 중인 윤 씨가 안정된 상태로 지내고 있다는 현지 지인의 주장도 제기됐다. 앞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윤 씨가 가족으로부터 방치된 채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온 것에 대한 반박이다. 파리에서 거주 중인 이미아 ‘한국의 메아리’ 대표는 8일 새벽(한국 시간)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을 통해 “몇 개월 전 윤정희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행복하고 평안하게 잘 살고 계셨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자신이 방문했을 때 윤 씨의 딸 백진희 씨도 함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게시물에서 윤 씨가 2, 3분마다 자신(이 씨)의 이름을 다시 묻곤 했지만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섞어가며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피부가 좋은 비결을 묻자 ‘매일 저녁 내추럴 요거트를 얼굴에 마사지한다’고 했고, 이 씨가 사들고 간 꽃을 어디에 놓을지 딸이 묻자 놓을 곳도 윤 씨가 직접 정해주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일어나기 전까지 윤 씨를 동네 레스토랑에서 자주 만났고 코로나 이후에도 수시로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며 “내가 찾아간 날도 딸은 엄마를 씻기고 점심 챙겨드리고, 주무시기 적당한 정도로 음악을 틀어드리며 돌보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백 씨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빈체로 관계자는 “백 선생이 국내 연주회 때문에 11일 입국할 예정이지만 언제 어떻게 입장을 표명할지에 대해서는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백 씨는 26일 대전, 다음 달 4일 대구, 6일 인천을 거쳐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슈만을 연주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파리=김윤종 특파원}

    • 2021-02-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단독]“윤정희 방치는 억측…딸 보살핌속 행복하게 살아” 파리 지인 반박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알츠하이머로 투병중인 원로배우 윤정희 씨(77)가 안정된 상태로 지내고 있다는 현지 지인의 주장이 제기됐다. 앞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윤 씨가 가족으로부터 방치된 채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온 것에 대한 반박이다. 파리에서 거주 중인 이미아 ‘한국의 메아리’ 대표는 8일 새벽(한국시간)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을 통해 “몇 개월 전 윤정희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행복하고 평안하게 잘 살고 계셨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자신이 방문했을 때 윤정희 백건우 부부의 딸인 백진희 씨도 함께 있었다고 밝혔다. 게시물에서 그는 윤 씨가 2, 3분마다 자신(이씨)의 이름을 다시 묻곤 했지만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섞어가며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피부가 좋은 비결을 묻자 ‘매일 저녁 요거트를 얼굴에 마사지한다’고 했고, 이 씨가 사들고 간 꽃을 어디 놓을지 딸이 묻자 놓을 곳도 자신이 직접 정해주었다고 그는 밝혔다. 이 씨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일어나기 전까지 윤 씨를 동네 레스토랑에서 자주 만났고 코로나 이후에도 수시로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며 “증세가 악화되기 전까지 부부는 실과 바늘 같은 사이였지만 백 씨가 해외 연주 일정이 잡혀 있어 딸이 아파트 옆 동으로 이사를 하고 전문 간병인을 두고 돌보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내가 찾아간 날도 딸은 엄마를 씻기고 점심 챙겨드리고, 낮잠 주무시기 적당한 정도로 음악을 틀어드리며 섬세하게 돌보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윤 씨가 골절상을 입은 데 대해서는 “다리에 힘이 없어 걷다가 넘어지셨는데 회복되었고, 완쾌되어 거동에 불편이 없다”고 밝혔다. 이 씨는 “당사자나 가족을 만나보지 못한 이들이 마치 현장을 가본 듯 사실과 먼 ‘호러소설’을 쓰는 현상을 보며 망연자실하게 된다”며 “지금 누구보다 편안하고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윤정희 선생이다. 선생의 가족이 상처를 받거나 정신적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말로 글을 마쳤다.다음은 게시물 전문.“억측과 허위사실” 나 : 아니 곧 여든이신데 피부가 어쩌면 이렇게 고우셔요? 정희언니 : 자기 피부도 너무 좋은데 뭘 그래~~ 비결이 뭐냐하면 매일 저녁 내추럴 요구르트(yaourt nature)를 눈가만 빼고 골고루 마사지 하면 피부가 맑고 고와져. 몇 분 간격으로 가족 얼굴도 잊어버리시면서 야구르트 마사지는 잊지 않고 계셨지요. 위의 대화가 불과 몇 개월 전에 찾아뵈었던 윤정희 선생님과 제가 나눈 대화의 일부랍니다. 제가 들고 간 보랏빛 양란을 어디 놓을지 묻는 딸에게 ‘저기 왼쪽 선반’에 라며 본인이 정하셨지요. “자기야 꽃이 너무 이쁘다” 라시며 고맙다고 제 뺨에 뽀뽀도 해 주셨구요. 물론 2.3분 후에 저의 이름을 묻고 또 물으셨지만…. 우리는 불어. 한국어를 섞어가면서 수다를 떨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자주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그 전에는 두 분이 사시던 동네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도 하고, 자주 뵈었었지요. 팬데믹 사태지만 수시로 전화로 안부도 여쭙고, 서로 소식을 나누던 가까운 지인의 한 사람으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기에 이렇게 몇 자 올려봅니다. 지금 한국 언론들은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청와대 청원에 올라 온 글 하나만 믿고 마치 그것이 사실인양 앞 다투어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걸 두고 참담하다는 말을 할까요? 언제부터 청와대 국민청원이 이런 허위와 억측이 난무하는 도구로 전락했을까요? 국민청원이라는 창구가 취지와는 달리 허위와 거짓에 악용 될 가능성은 염두해 두지 않았던 걸 까요? 이 창구의 역할이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충격과 피해를 입히게 된다면 그 책임은 청와대가 지게 되는 걸까요? 남편과 딸, 그리고 손주와 함께 너무 행복하고 평안하게 잘 살고 계시는 윤정희 선생님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억측을 왜 ? 인이라도 했다는 듯. 사실과는 너무도 먼 ‘호러 소설’을 쓰고 있는 희귀한 현상을 보며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윤 선생님의 증세가 악화되기 전까지 두 분은 실과 바늘 같은 분이셨습니다. 모든 연주 스케쥴울 함께 하시고, 심지어 윤 선생님은 백 선생님 없이는 절대 외출도 하지 않으시는 분이셨지요. 그 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백건우 선생님께서 친히 윤정희 선생님 머리를 잘라주게 되었지요. 그런데 최근 2- 3년 사이에 윤 선생님의 상태는 장거리 여행은 물론 바깥 외출도 여의치 않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셨습니다. 잠시도 혼자 두면 안 될 정도로…. 그 모습을 저도 지켜 봐 왔고 주변 지인 분들 또한 많이 안타까워했습니다. 무엇보다 본인께서 집에 계시는 것을 더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 다리에 힘이 없으시니 걷다가 넘어 지신적이 있으셨는데 다행히도 병원에서 치료가 잘 되어 빠르게 회복이 되셨고, 지금은 완쾌되어 거동에도 불편이 없게 되셨습니다. 그 사이, 백건우 선생님께서는 적지 않게 해외연주 스케줄이 잡혀 있었고, 누군가 가까이서 수시로 간병을 해드려야 했지요. 그래서 내린 결정이 요양원보다는 딸이 사는 같은 아파트 옆 동(발코니에서 서로 말할 수 있는 거리)으로 이사를 하고, 전문 간병인을 두고 딸이 직접 돌보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아무리 전문 간병인이 있다지만, 양로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가족을 돌본다는 것 참 쉽지 않습니다. 제가 찾아갔던 그날도 진희(딸)는 엄마 씻기고 점심 챙겨드리고, 윤샘이 좋아하시는 클래식 음악 틀어드리며 낮잠 주무시기에 볼륨의 크기가 적당한지 여쭤보면서 섬세하게 챙기고 또 챙기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확산되는 수많은 억측과 추측성 기사들은 이 가족들에게 천청벽력 같은 일이 아닐까요? 지금 그 누구보다 편안하고 행복하게 생활하는 분이 있다면 윤정희 선생님이십니다. 남편과 딸, 손주 가까이서 지금처럼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페친분들!! 백건우 선생님과 윤정희 선생님 가족이 이 일로 상처를 받거나 그 어떤 정신적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

    • 2021-02-08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사회주의자’ 버나드 쇼의 자본주의 비판

    극작가 겸 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가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은 그가 작곡가 푸치니에 열광했다는 사실만큼이나 생소할지 모른다. 그가 1884년 설립을 주도한 페이비언 협회는 영국 노동당 창당의 계기를 만들었고 지금도 이 당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책 제목은 얼마간 젠더 불평등하게 보인다. 한 세기 전(1928년) 나온 책인 데다가 ‘사회주의에 대해 말해 달라’는 처제의 요청이 집필 동기였으니 이해할 수 있다. 요청에 대한 답은 86개 장(章)에 부록을 곁들인 ‘벽돌 책’이 되었다. 당대 사회에 대한 버나드 쇼의 인식은 고전적일 정도로 사회주의적이다. 책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몇 명의 게으른 사람들을 아주 부유하게 만들고, 대다수의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아주 빈곤한 처지에 빠지게’ 한다. 저자의 해결책은 공평한 분배, 주요 기업 및 은행들의 국영화다. 소련 모델의 폭력혁명은 찬성하지 않는다. 페이비언 협회의 원칙도 ‘민주적, 점진적, 평화적’ 개혁이었다. 저자에게 있어서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에 감성적인 힘을 제공했지만 ‘그는 예언자였고, 예언자란 사업운영 기술에 대해서는 무능한 조언자들’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국영화도 몰수가 아니라 보상을 통한 것이었다. 한 세기가 흘렀고 자본주의는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사회민주주의는 곳곳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현실 공산주의는 몰락했고 우스꽝스러운 그림자만 남았다. 창의를 끌어내기 위해 인센티브가 필요 없다는 저자의 생각은 낡은 것으로 판명됐다. 책 후반부에서 그는 소련 방문 경험을 토대로 그 사회의 성과를 찬미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민중’들은 가짜였음이 훗날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호가 날카로운 어조로 지적한 사회적 모순들은 많은 부분 오늘날의 세계와도 부합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100년 전과 다름없는 좌절감은 월가 점령 시위와 버니 샌더스 열풍을, 그 ‘뒤집힌 상(像)’인 트럼프 현상을 낳았다. 완전 평등한 사회를 향한 계획들이 많은 부분 몽상이었듯, 현재의 자본주의가 완전하며 수정이 필요 없다면 그 또한 몽상일 것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2-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달콤하지만 느끼하지 않은 멘델스존 기대하세요”

    “힘든 2020년이었지만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뉴욕 맨해튼 집에서 아내와 함께할 수 있었으니까요.”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36)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알고 보니 그는 지난해 새 신랑이 됐다. 6월 18일 한국인 클라리네티스트 김윤아 씨와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결혼했다.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안토니오 멘데스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과 멘델스존 바이올린협주곡 E단조를 협연하는 그를 서울 영등포구 KBS교향악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야외에서 작게, 지인 몇 명만 초대해 결혼식을 올렸어요. 요즘은 집에서 연습하고, 때론 아내와 2중주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지난해 결혼 얘기를 들을 수도 있었다. 그는 8월 29일 피아니스트 지용, 첼리스트 마이클 니컬러스와 서울에서 ‘이상 트리오’ 콘서트를 열 예정이었다. 8월 중순 코로나19 확산으로 콘서트가 취소됐다. “실망이 컸죠. 이상 트리오의 첫 공연이었는데 사라졌고 그 뒤에도 함께 연주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니컬러스는 이웃이라 자주 만납니다.” 이번에 그가 협연하는 멘델스존의 협주곡은 바이올린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다. “제가 열네 살 때 처음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곡입니다. 20년 이상을 함께한 셈이군요.” 그는 이 곡이 낭만주의 곡다운 열정 넘치는 성격과 모차르트적 고전적 성격을 모두 갖췄다고 설명했다. “절절히 감정을 표현해야 하지만 모차르트적인 가벼움도 담아야 하죠. 너무 센티멘털해지면 위험해요.(그는 영어로 얘기하다 한국어로 ‘느끼해요’라고 덧붙였다.) 희망과 빛을 던지는 마지막 악장에서는 정말 행복해지죠. 서울에 와서 2주간의 격리 동안 내내 이 곡만 생각했어요.” 그의 외할아버지는 수필가 피천득(1910∼2007), 어머니는 피서영 미국 보스턴대 물리학과 교수다. 그가 외할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의 나라인 한국 음악 팬들과 부쩍 친해진 고리는 2008∼2017년 참여한 실내악 프로젝트 그룹 ‘앙상블 디토’였다. “연주자는 도시에서 도시로 떠도는 삶을 보내죠. 그런 제게 디토는 소속감과 헌신의 느낌, 친밀감을 안겨주었어요. 무엇보다 함께하는 연주의 수준이 너무도 만족스러웠고, 제 음악가로서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장(章)이었습니다.” 그는 피아니스트 제러미 뎅크와 협연한 미국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1874∼1954)의 바이올린소나타 3곡 전곡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20세기 음악에 최고 권위를 가진 ‘넌서치’ 레이블로 발매될 예정이다. 아이브스는 미국인에게 국민 작곡가로 통한다. “아이브스의 음악은 언뜻 들어 복잡하지만 핵심은 브람스처럼 낭만적입니다. 유년기의 행복했던 기억이 녹아 있죠. 마치 시끄러운 도시를 걷는데 누가 낯익은 향기를 풍기며 옆을 스쳐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한국에서 자란 아내도 이 곡들을 들으면서 어릴 때의 느낌이 생각났다고 하더군요.” 결혼식 얘기로 되돌아갔다. “부모님은 못 오셨어요. 어머니만 해도 고령(지난해 74세)으로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보스턴에서 오시는 게 위험했죠. 줌으로 결혼식을 보셨고, 따뜻하게 축하해 주셨어요.” 표정이 흐려졌다. “제가 외아들이거든요. 부모님이 빨리 백신 접종을 받으시고, 예전처럼 문제없이 가서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4일 연주회에서 KBS교향악단은 후반부에 슈만의 교향곡 3번 ‘라인’을 연주한다. 1만∼10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2-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명시에 曲을 입히니… 합창이 色을 입네

    빨강 파랑 초록…. 합창이 색채를 입는다. 우리말로 쓰인 아름다운 시어가 새로 지은 가락과 아름다운 조명 속에 새롭게 태어난다. 국립합창단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미디어 콘서트 ‘포에틱 컬러스’다. 10일 오후 7시 국립합창단 네이버TV 채널에서 유료(1만5000원)로 공개된다. 지금까지의 합창 콘서트 대부분은 합창단원들이 무대 위에 줄지어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조명을 받으며 노래를 불렀다. 이번에 공개되는 ‘포에틱 컬러스’는 무대를 특수촬영용 배경인 화이트 호리즌(white horizon)으로 옮겼다. 아무 것도 없던 배경 위에 곡의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색상의 조명이 펼쳐지고, 합창단원을 비롯한 연주자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카메라도 연주자들 사이를 헤치고 다니거나 위에서 내려다보며 역동적인 화면을 선사한다. 연주되는 아홉 곡의 대부분은 한국의 명시에 새롭게 곡을 입힌 것. 박재삼 ‘무언으로 오는 봄’, 김영랑 ‘내 마음 아실이’ ‘바다로 가자’,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등에 국립합창단 전속 작곡가인 우효원, 오병희 등이 곡을 붙였다. 일제강점기 윤심덕의 노래로 알려진 ‘사의 찬미’도 편곡해 선보인다. 윤의중이 지휘하는 국립합창단 단원들과 소프라노 임선혜, 베이스바리톤 길병민, 첼리스트 문태국 등 스타 연주자들이 출연한다. 영상제작을 담당한 안지선 연출가는 “이 공연에선 관객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무대 위를 직접 걸어 다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흰 배경을 스케치북으로 상상하고, 각각의 음악이 가진 빛깔을 상상하며 조명과 영상 패턴의 변화로 채워나가려 시도했습니다. 작곡가들에게 곡을 쓰면서 생각한, 노래 속의 세밀한 표현 방법들도 거듭해서 물어봤죠. 곡뿐 아니라 가사 자체도 좋아서 각각의 작품이 가진 색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곡에 따라서는 합창단원들의 춤도 들어간다. 녹화 후엔 컴퓨터 그래픽작업을 추가해 완성도를 높였다. “녹화 중에는 NG도 많이 났지만 연주자들의 프로페셔널함에 감탄했어요. 작업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줄곧 궁금해들 하셨죠. 서로 설명하지 않아도 의도하는 바가 통하는 순간이 많았어요.” 국립합창단 관계자는 “언택트 시대가 공연 형태의 변화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여기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더 적극적인 시도를 통해 ‘멀티미디어 시대 합창의 역할’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2-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중국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넘어서라

    중국 베이징(北京)의 톈안먼(天安門)은 600여 년 동안 수많은 군중의 운집을 지켜보았다. 1919년 5·4운동, 30년 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다시 40년 뒤 톈안먼 운동은 각각 오늘의 중국을 만드는 전환점을 이뤘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사건을 바탕으로 중국의 오늘을 분석하고 내일을 전망한다. 그 시선은 집약적이면서 개괄적이다. 세 가지 사건을 추동한 근원과 여러 계기, 한계와 성과,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시선과 세계 체제에 끼친 영향을 두루 짚는다. 5·4운동은 이후 베이징에서 거듭될 정치적 격변의 모델이었다. 단체별로 결집해 톈안먼 앞에서 대규모 대회를 열고 거리로 나가 시위하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형태다. 젊은 지식인층, 즉 ‘신(新)청년’이 주체가 된 점이 이전 정치운동과 달랐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국민당의 부패, 미소의 노선 전환 등 흔한 분석에 머물지 않고 저자는 ‘지역토호 배제’에 확대경을 댄다. 중국은 왕조 시대부터 국민당까지 지역 권세가들이 주민들에 대한 징병권과 징세권을 대리했다. 공산당은 대중과 국가 사이에 자리한 토호들을 배제해 부패와 비능률을 청산할 수 있었다. 승리한 ‘신중국’은 초기에 계급연합과 혼합경제를 수용한 ‘신민주사회론’을 강조했다. 5년 뒤 과도기 총노선을 채택하면서 신민주사회 노선은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앞당기는 마오쩌둥 노선에 굴복했다. 결정적 계기는 6·25전쟁 참전이 불러온 동원 체제였다. 1989년 톈안먼 사건의 기원은 다층적이다. 저자는 1957년 중국 민주운동, 1978∼80년 민주운동으로부터 학습된 영향을 중시한다. 무엇보다 ‘좌절된 신민주사회’에의 열망과 재평가가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저자는 톈안먼 강제 진압 후 민간의 정치적 발언권이 상실된 데 아쉬움을 표하며, 중국이 1989년 보였던 ‘민(民)’의 자치와 결집’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 사건에서 저자가 견고하게 유지한 분석틀은 ‘근대 적응과 근대 극복의 이중과제론’이다. 근대의 극복이나 성취 모두 단독으로는 이룰 수 없고 양자를 겸해야 온전히 수행 가능하다는 관점이다. 저자 스스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말할 만큼 학계 밖의 독서인에게는 쉽지 않은 분석틀이지만 이를 피하면서 이 책을 바로 대면할 방법은 없다. 마지막에 저자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중국 공산당은 계속 집권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계속 집권’에 무게를 둔다. 단, 어떤 공산당인가가 중요하다며 인민의 자발적 참여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그 다음 질문, 미중 대립과 변화하는 강대국 질서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무엇인가. 저자는 ‘중국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넘어 ‘중국에게 우리가 무엇인가’로 물음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남북이 분단된 상태를 평화적으로 극복하고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평화롭고 인간다운 생태를 수립한다면, 중국에 대한 한반도의 비중은 커질 게 확실하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1-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슈베르트 ‘송어’? 케빈 푸츠 ‘도미’도 있어요

    “슈베르트의 송어, 베토벤의 붕어?” 오래전 유행하다 못해 대중화한 ‘클래식 개그’다. 한 무대에서 ‘송어’와 ‘도미’를 만나는 콘서트가 열린다. 실내악 연주단체인 앙상블 이볼브가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여는 ‘온새미로’ 콘서트다. 전반부에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를 연주한다. 후반부에 연주할 곡은 드보르자크나 도니체티가 아니라 현대 작곡가 케빈 푸츠가 작곡한 5중주곡 ‘도미(The Red Snapper)’다. 이번 콘서트는 피아니스트 에드윈 킴, 바이올리니스트 고주철, 비올리스트 고유림, 첼리스트 김도연, 베이시스트 고로헌 등 독일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연주자 다섯 명이 꾸민다. ‘도미’는 슈베르트 ‘송어’와 같은 편성으로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 악장 하나를 ‘주제와 변주’로 구성한 점도 ‘송어’와 닮았다. 푸츠는 2012년 오페라 ‘고요한 밤’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피바디 음대 작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콘서트 제목인 ‘온새미로’는 ‘자연 그대로’라는 뜻. 앙상블 이볼브의 리더인 에드윈 킴은 “두 작품의 시대는 다르지만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근본은 같다”고 말했다. 4만∼6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1-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연주자들이 반한 ‘프랑크 소나타’의 매력은?[유(윤종)튜브]

    세자르 프랑크(1822∼1890·사진)를 ‘대중적’인 작곡가라고는 말하기 힘들 겁니다. 우리나라에선 성가곡 ‘생명의 양식’으로 주로 기억되죠. 하지만 연주자들에게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는 곡이 있습니다. 64세 때인 1886년에 쓴 단 한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입니다. 프랑크는 이 소나타 A장조를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이자이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습니다. 음반도 많이 나와 있고 음악애호가들도 제법 좋아하는 곡이지만 연주자들이 이 곡을 더 사랑하는 편입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만든 곡인데, 첼리스트와 플루티스트도 원래 첼로나 플루트를 위해 쓰인 것처럼 즐겨 연주합니다. 심지어 색소폰이나 튜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악기 연주자들이 연주한 이 곡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연주자들이 유독 이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곡에는 프랑크가 가진 고유한 장기들이 꼭꼭 다지듯 집약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만 들자면, 순환형식, 돌림노래, 잦은 조바꿈을 들 수 있겠습니다. 순환형식이란 앞의 악장들에 나왔던 선율이나 동기(모티브)를 뒤의 악장들에 다시 불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약간 바꾸어서 쓰거나, 거의 그대로 가져오기도 하죠. 실은 베를리오즈나 리스트 등 먼저 프랑스에서 활동한 작곡가들의 전통을 계승한 것입니다. 순환형식을 사용하면 처음엔 불분명했던 것들이 뒤로 갈수록 모이면서 통일되고 또렷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때문에 이 곡의 마지막 악장에서는 앞의 악장들에서 제시된 것들이 새로운 질서를 이루면서 지혜를 전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같은 시대에 나온 다른 작곡가들의 소나타에서 느끼기 힘든 매력입니다. 돌림노래는 설명하기 쉽습니다. 어릴 때 많이 불러봤죠? ‘오리는 꽥꽥’ ‘다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같은 노래를 여러 명이 시간차를 두고 시작하면 화음을 이루면서 듣기 좋은 노래가 되죠. 이른바 ‘카논’이라고 하는 기법의 일종인데, 카논 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카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소나타 A장조의 마지막 4악장에서 프랑크는 이 돌림노래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매우 아름다운 효과를 냅니다. 피아노가 앞서가고, 바이올린이 쫓아갑니다. 이 곡의 마지막 매력으로는 프랑크 특유의 잦은 조바꿈(전조·轉調)을 들 수 있습니다. 프랑크는 섬세한 조바꿈을 통해 환상적인 효과를 내는 데 달인이었습니다. 제자였던 작곡가 댕디나 뒤파르크에 따르면 프랑크는 제자들이 제출한 작품에 몇 줄 동안 조바꿈이 나오지 않으면 작품이 단조롭다며 바로 주의를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자유로운 조바꿈 때문에, 연주자들은 프랑크의 곡을 연주할 때마다 마치 공중에 뜬 사다리를 휙휙 갈아타는 듯이 자유롭고 환상적인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한 플루티스트는 이런 조바꿈이 마치 프리즘으로 분할한 빛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2월 4일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리는 ‘아름다운 목요일’ 콘서트에서는 2018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1위, 이듬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9세 나이로 3위에 오른 뒤 주목받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이 피아니스트 박영성과 프랑크 소나타 A장조를 연주합니다. 전반부에서는 모차르트와 그리그의 소나타를 연주하고, 프랑크에게서 소나타를 선물받은 이자이의 곡 ‘슬픈 시’도 소개합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1-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