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희

조건희 차장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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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이 사건이 되는 지점을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becom@donga.com

취재분야

2025-11-23~202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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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연금개혁 금쪽같은 시간만 보낸 경사노위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이달까지 국민연금 개편안을 내놓기로 했지만 노사의 입장 차가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와 국회가 연금 개편 논의를 경사노위에 떠넘기면서 연금 개편의 ‘골든타임’만 허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사노위 산하 국민연금개혁특위는 12일 전체회의에서 노동계와 경영계, 청년, 연금 가입자 대표들에게 각각 소득대체율(은퇴 전 평균 소득 대비 연금액의 비율)과 보험료율(월급에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율)을 어떻게 조정할지 의견을 수렴했다. 17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이날 회의록에 따르면 노동계 대표인 한국노총은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높이고,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13%로 인상할 것을 주장했다. 반면 경영계는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현행대로 유지하자고 맞섰다. 청년 대표 2명과 가입자 단체 대표 4명은 각기 다른 수치를 제시했다. 문제는 이들이 제시한 개편 방향이 지난해 11월 16일 회의 때 밝힌 것과 똑같다는 점이다. 지난 5개월간 15차례나 회의를 열었지만 타협이나 양보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특위는 19일과 26일 두 차례 회의를 더 연 뒤 활동을 종료할 예정이다. 다만 타협점을 찾기 힘든 만큼 활동 시한을 3개월 더 연장해 7월 말까지 논의를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때 국민연금 개편안이 나온다고 해도 21대 총선이 9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국회 논의를 기대하긴 힘들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위의 한 위원은 “애초 정부와 국회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경사노위에 연금 개편 논의를 떠넘긴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예정됐던 연금 개편안의 국회 제출 시한을 미룬 채 “경사노위 의견을 반영하겠다”며 연금특위를 출범시켰다.▼ 소득대체율 논의 한발짝도 못나가… ‘빈손’ 불보듯 ▼29일 활동 종료 앞둔 연금특위 “기초연금을 소득 하위 80% 노인에게 월 34만 원씩 줘야 한다.”(한국노동조합총연맹) “현행(소득 하위 70%에 월 25만∼30만 원)도 지속가능성이 낮다.”(한국경영자총협회) 1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국민연금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노사 대표가 벌인 논쟁이다. 특위에 노동계 대표로 참석한 한국노총은 국민연금 제도 개편 합의문에 반드시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영계는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부양 인구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초연금을 지금보다 인상하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맞섰다. 참석자들은 △국민연금을 일정액 이상 받는 사람은 기초연금을 깎는 현행 제도를 폐지할지 △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내용을 법에 담을지를 두고도 합의하지 못했다. 노사뿐 아니라 대한은퇴자협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소상공인연합회 등 참석자들의 의견이 제각각 갈려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지난 5개월간 15차례나 회의를 했지만 특위에 참여한 노사나 연금 가입자 대표들의 견해차는 평행선을 달렸다. 특위는 19일과 26일 두 차례 회의를 더 연 뒤 29일 활동을 종료할 예정이다. 결국 정부가 연금 개편 논의를 경사노위로 넘긴 지난 5개월은 허송세월이 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특위 활동을 7월 말까지 연장할 수 있지만 장지연 특위위원장(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은 “원래 기한 내에 논의를 마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위원들 사이에서도 “활동 기한을 연장한다고 합의가 되겠느냐”는 회의론이 팽배하다. 연금 개편의 최종 책임은 국민연금법을 개정해야 하는 만큼 국회에 있다. 하지만 여야는 경사노위가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논의를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올해 12월 중순부터는 내년 4월 예정된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돼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접어든다. 국회가 총선을 앞두고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과 같은 민감한 사안을 논의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결국 정부와 국회가 경사노위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할 줄 뻔히 알면서 국민연금 개편 ‘골든타임’을 의도적으로 흘려보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연금 개편 논의가 21대 국회로 넘어가면 합의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초저출산 현상에 따라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 폭이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통계청의 2016년 장래인구 추계를 반영해 지난해 8월 국민연금 장기 재정 전망을 내놓았다. 당시 복지부는 연금기금이 2057년 고갈된다고 전망하며 연간 적자 폭을 2060년 327조4960억 원, 2070년 467조3340억 원, 2080년 567조4910억 원 등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특위 공익위원인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가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새 인구 추계를 반영해 다시 계산해 보니 기금 고갈 시점은 2057년으로 동일했지만 연간 적자 폭은 2060년 343조9790억 원, 2070년 496조4370억 원, 2080년 622조1290억 원 등으로 크게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기금 고갈 이후 보험료율을 대폭 올려야 해 미래 세대의 부담이 커진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회가 노사 등 이익집단에 연금 개편 논의를 맡긴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지적한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전적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걸린 당사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박은서 clue@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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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사실에선 비린내 풀풀…감천항 日産 수산물 검사 현장 가보니

    회사원 강모 씨(32·여)는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인근 해역의 수산물을 앞으로도 한국이 수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판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평소 장을 볼 때마다 가급적 일본산 수산물을 멀리했지만 음식점에선 자기도 모르게 방사능에 오염된 음식을 먹게 되지 않을까 불안했기 때문이다. WTO 판결을 계기로 이미 국내에 들어온 일본산 수산물은 어떻게 방사능 오염 여부를 검사했는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후쿠시마와 거리가 있는 해역에서 잡힌 일본 수산물은 연간 2만t 가량 수입되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지난달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부산 감천항을 통해 일본에서 들여온 수산물을 검사하는 과정을 참관했다. 동행한 소비자단체 회원과 대학생 20여 명도 ‘매의 눈’으로 검사 과정을 지켜봤다. 식약처는 일본산을 포함한 모든 농축수산물 및 가공식품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하고 있다. 방사능인 세슘이 기준치(1㎏당 100베크렐·Bq)를 초과하면 반송 조치한다. 일본산의 경우엔 1Bq이라도 검출되면 허용치 이내여도 수입업체에 스트론튬 등 추가 핵종(核種) 검사 자료를 요구한다. 이날 감천항 수산물시장 1층 통관 구역인 검사소에선 홋카이도(北海道)산 명태가 냉장 상태로 출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관들은 무작위로 고른 박스에서 명태 대여섯 마리를 꺼내 검체 봉투에 넣었다. 바로 옆 13번 수조에선 활(活)가리비 20여 마리를 수거했다. 정확하게 검사하려면 각 수산물마다 2~3㎏의 검체를 수거해야 한다. 검체 봉투는 ‘바꿔치기’를 막기 위해 케이블타이와 스티커로 봉인했다. 이 구역에선 폐쇄회로(CC)TV가 24시간 가동된다. 수거한 검체는 부산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시험분석센터로 옮겨졌다. 검사실에선 비린내가 진동했다. 연구관들이 수거한 수입 부세(민어과 물고기)를 잘게 분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쇄한 검체를 곧장 고순도 게르마늄 검출기에 넣었다. 모니터의 그래프가 잠잠했다. 방사능 세슘에 오염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날 수거한 검체는 모두 세슘으로부터 안전한 것으로 판명됐다. 이런 검사 작업은 한밤에도 계속된다. 검사를 신속히 마쳐야 통관 구역에 있는 수입 수산물들을 도매 시장에 넘길 수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2011년 3월 14일부터 이달 4일까지 수입된 일본산 수산물은 총 4만8694건(17만9145t)이다. 이 가운데 세슘이 허용치를 초과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허용치 이내 미량 검출은 136건(0.3%)이 있었다. 다만 2015년 이후엔 세슘이 미량이라도 검출된 적이 없다. 검사 과정을 지켜본 소비자단체 회원들은 대체로 “철저히 검사하는 것 같아 안심”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부는 여전히 불안을 거두지 않았다. 부산녹색소비자연대 이자영 사무처장은 “표본 검사인만큼 아무리 철저히 해도 허점이 있을 수 있다”며 “원산지 표기를 강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부산=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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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인구 줄어 손볼 정책 뭔지도 모르는 부처들

    초저출산으로 총인구가 내년부터 줄어들 것이란 통계청의 새 인구 전망에 따라 우리나라의 각종 정책은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맞는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를 포함해 상당수 정부 부처들은 인구 변화에 맞춰 새로 정비해야 할 정책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동아일보가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에게 의뢰해 기획재정부와 교육부, 고용부, 보건복지부 등 범정부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는 주요 부처 10개에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를 활용한 소관 정책 및 사업 목록’을 요구한 결과 복지부와 국토교통부를 제외한 나머지 8개 부처가 ‘해당 사항이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8개 부처 중 최소 5개 부처는 인구 추계를 활용한 정책이 있었다. 기재부의 ‘중장기 조세정책 운용계획’에는 향후 30년 치 인구 추계가 반영돼 있다. 교육부의 ‘중장기 교원수급 계획’과 고용부의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 법무부의 ‘외국인정책 기본계획’ 등도 모두 인구 추계를 활용했다. 행정안전부도 행정 수요를 감안해 ‘중기인력운영계획’을 짜고 이에 맞춰 공무원 수를 조절하고 있다. 이 정책들은 모두 통계청의 새 인구 전망에 따라 대폭 수정이 불가피한 분야다. 그럼에도 해당 부처들은 한결같이 장래인구 추계를 활용한 정책이 없다고 답한 것이다. 복지부는 인구 추계를 활용한 업무로 ‘국민연금 장기 재정 전망’과 ‘기초연금 지급’ 등 두 가지만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밖에도 노인 인구 전망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통합 돌봄 계획’을 마련하는 등 인구 추계를 바탕으로 한 정책은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부처 관계자들은 인구 변화와 관련한 정책을 총괄 관리하지 않다 보니 일일이 확인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인구 통계 데이터를 가지고 (우리 부가) 어떤 정책을 펴는지 데이터 자체가 없어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인구와 관련된 세부적인 정책 하나하나를 다 리스트업(목록화)하지는 않고 있다”고 밝혔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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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외과의사 모자라… 지방선 ‘수술 절벽’

    오전 7시에 시작한 심장 수술을 장장 13시간 만에 마치고 오후 8시경 수술실에서 나온 김도정 아주대병원 흉부외과 교수(36·여)는 2일 두 눈이 빨갛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높은 집중력이 필요한 만큼 종일 굶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날은 김 교수에게 평소보다 ‘한가한’ 하루였다. 지난달 말엔 사흘 내내 3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오가야 했다. 흉부외과 전문의가 크게 부족한 탓이다. 젊은 의사들이 외과와 흉부외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지방에서는 이미 수술 일손이 부족해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수술 절벽’이 현실화되고 있다.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진료 현장에서 활동하는 외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는 2016년 기준 6886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평균 6.5명이다. ‘수술 의사’는 서울(인구 10만 명당 10.4명)과 대구(8.9명), 부산(8.5명) 등 대도시에 집중돼 있다. 충남(3.5명)이나 경북(3.7명) 등 지역에선 응급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수술 의사 1명이 감당해야 하는 인구가 서울은 9576명이지만 충남은 2만8818명으로 서울의 3배에 가깝다. 의료계는 현재 수술 의사의 주축인 50대 외과·흉부외과 전문의가 대거 의료 현장을 떠나면 2026년경에는 수술 절벽이 서울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대한외과학회와 대한흉부외과학회는 14일 “정부가 올해 안에 충원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조건희 becom@donga.com·박성민 기자}

    • 20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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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년째 전문의 충원 제로… 동맥파열 환자 와도 “못받습니다”

    충북 청주시 충북대병원 2층 17번 수술실. 1일 오전 10시 반경 류동희 간담췌외과 교수(50)가 60대 환자의 간에서 암 세포를 떼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류 교수는 수술 페달을 정확히 밟기 위해 슬리퍼를 벗었다. 바닥에 환자 피가 흥건했지만 수술에 집중하기 위해 혹시 모를 감염 위험을 감수하고 맨발로 수술에 임한 것이다. 류 교수가 환자의 복부 대동맥을 헤치고 간에 메스를 대며 큰소리로 말했다. “환자 BP(Blood Pressure·혈압) 떨어지는 것 좀 보세요!” 류 교수의 지휘에 따라 간호사가 수혈 팩을 달고 수술등을 움직였다. 전쟁 같은 수술은 3시간 만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류 교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수술실로 향했다. 남은 수술 3건을 마친 뒤에도 언제 응급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실려 올지 몰라 비상대기에 들어갔다.○ 지방병원 수술 의사들은 ‘항시 대기 중’ 충북엔 충북대병원을 포함해 30병상 이상 병원에서 근무하는 외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가 79명(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 이들이 주민 160만 명을 담당한다. 의사 1명당 주민 2만296명꼴이다. 서울(9576명)의 2배가 넘는다. 장기가 심각하게 손상된 응급 환자가 실려 오면 환자를 전원(轉院)시킬 대형 병원도 주변에 없고 대신 수술할 여유 인력도 병원 내에 없다. 결국 이 지역 외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들은 퇴근한 후에도 언제 응급 호출이 떨어질지 몰라 항시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명조 충북대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37)는 지난 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온콜(on-call·비상대기)’ 상태로 지내다가 아예 오후 10시 이후에 퇴근하는 게 습관이 됐다. 어차피 집에 일찍 가도 이틀에 하루는 한밤중에 응급실 호출이 오기 때문이다. 동료인 최한림 간담췌외과 교수(40)도 상황이 비슷하다. 수술과 당직이 끊이지 않아 2주 만에 집에 간 적도 있다. 최 교수는 “최근 첫째아이(10)가 TV 앞에 바짝 앉아 있는 걸 보고서야 심각한 근시라는 걸 알았다”며 “병원에 붙어 있느라 정작 내 아이의 건강에 소홀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같은 병원 김시욱 흉부외과 교수(49)는 하루 걸러 당직 근무를 한다. 병원에 흉부외과 전문의가 김 교수를 포함해 2명뿐이기 때문이다. 11년째 전공의는 물론이고 신규 임용할 교수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새 일손이 없으니 기존 의료진의 업무 강도가 세지고,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원자가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김 교수는 “새 교수를 영입하려고 흉부외과 과장인 내 월급에 준하는 보수를 주겠다고 제안해도 지원자가 없다”고 말했다.○ 수술 의사 충원, 내년이 ‘골든타임’ 의료계는 지방 병원의 이 같은 수술 일손 부족이 이미 수년 전에 시작됐다고 했다. 임상현 아주대병원 흉부외과 교수(52)는 “10여 년 전만 해도 심장 수술 도중에 다른 병원에서 ‘대동맥이 찢어진 응급 환자를 전원시켜도 되겠느냐’는 문의가 오면 대기 중인 다른 의사가 환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5, 6년 전부터 일손이 부족해 다른 병원 환자를 받는 건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대한외과학회와 대한흉부외과학회는 고령화로 인해 늘어나는 수술 수요를 감당하려면 60세 미만 전문의가 외과 5500명, 흉부외과 1100명 등 총 6600명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0세 미만 외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는 2014년에 이미 6527명으로 6600명 선이 무너졌다. 내년엔 6000명 선도 무너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지방 병원에선 응급 환자를 제때 수술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해질 가능성이 크다. 60세 미만 외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가 올해(6024명)보다 5% 감소하면 지방 병원에선 수술 일손 부족이 일상이 되고 그 여파가 서울 중대형 병원에 미치기 시작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른바 ‘빅5 병원’을 제외한 서울의 다른 대학병원에선 이미 흉부외과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수술 일손이 5% 감소하는 시점은 2024년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당장 내년 1년 차 전공의 충원율을 100%에 가깝게 대폭 높일 방안을 올해 안에 마련해야 한다. 최근 5년 평균 충원율은 74.7%에 그쳤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실시한 5년 단위 보건의료 인력 실태조사에서도 외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 부족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 손호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실태조사에 근거해 연말에 수립할 예정인 ‘보건의료 인력 종합계획’에 의대생이 기피하는 진료과목에 대한 지원책을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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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학하자 다시 콜록콜록… 봄 독감 기승

    8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반포동 G소아청소년과의원 진료 대기실은 마스크를 쓴 초등학생 환자들로 붐볐다. 20여 명의 학생이 여기저기서 연신 콜록대는 소리와 코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원장 임고운 씨(40·여)는 “새 학기가 시작된 후로 방학 기간의 2배가 넘는 인플루엔자(독감) 의심환자가 몰려 점심 먹을 시간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새 학기 독감이 거친 기세로 몰려오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달 24∼30일에 전국 표본감시 의원 200곳을 찾은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의심환자가 27.2명으로 집계됐다고 8일 밝혔다. 지난달 첫째 주의 8.3명 이후 꾸준히 늘어 3배 이상으로 증가한 수치다. 현재 유행 규모는 지난해 12월 첫째 주(19.2명)보다도 크다. 특히 같은 기간 초등학생(7∼12세) 독감 의심환자가 13.3명에서 67.1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번 겨울 독감 유행은 초중고교 방학이 시작된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에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의심환자 73.3명으로 한 차례 절정기를 맞은 바 있다. 이후 환자가 급감해 올해 2월 셋째 주엔 8명으로 유행주의보 해제 기준(6.3명) 근처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다시 한번 환자가 크게 늘면서 독감 유행이 초중고교 방학 전후 두 차례 피크를 찍는 ‘쌍봉낙타’형 유행곡선이 나타난 것이다. 봄철 독감 의심환자 수가 초중고교 방학 중 저점(低點)의 3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은 2010년 봄 이후 처음이다. 2010년엔 독감 의심환자가 3월 첫째 주 2.8명까지 줄었다가 4월 둘째 주 20.5명으로 증가했다. 이후엔 피크가 한 차례인 ‘단봉낙타’형으로 바뀌었다. 개학 후 환자가 늘어도 소폭에 그쳤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쌍봉낙타형 유행곡선이 다시 나타난 원인으로 지난달 초 한반도를 덮친 고농도 미세먼지를 지목했다. 독감 바이러스는 환자의 침방울로 전파된다.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 창문을 꼭 닫고 있으면 환자가 내뿜은 바이러스가 빠져나가지 않고 교실이나 방 안에 머무른다. 공기청정기로는 독감 바이러스를 정화할 수 없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밀폐된 공간 안에서 독감 환자와 함께 있으면 고농도 바이러스에 옮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평년보다 낮은 기온과 습도가 이어진 것도 독감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하순 서울의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0.5도, 상대습도는 3.5%포인트 낮았다. 정부가 예방접종 비용을 지원하는 독감 백신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독감 환자들로부터 검출되는 바이러스의 10% 정도는 B형 ‘야마가타’다. 무료 접종 백신인 ‘3가’ 백신으로는 막을 수 없는 종류다. A형 바이러스 2종(H1N1, H3N2)과 B형 2종(빅토리아, 야마가타)을 모두 예방할 수 있는 ‘4가’ 백신을 맞으려면 환자가 별도로 3만∼4만 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무료 접종 백신을 4가로 바꾸려면 현재 연간 1041억 원인 독감 예방접종 예산을 1.5배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평소 건강관리에 취약한 저소득층일수록 독감에 걸리면 심한 합병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효과가 떨어지는 백신을 맞히는 상황은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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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땐 보험료율 20%로 올려야”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퇴 전 평균 소득 대비 연금액의 비율)을 현행 40%에서 50%로 높이려면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20%로 올려야 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개편안에선 소득대체율 50%를 맞추려면 보험료율을 13%로 올려야 한다고 밝혔으나, 경사노위에선 이보다 보험료율을 7%포인트나 더 올려야 한다고 전망해 파장이 예상된다. 경사노위 산하 국민연금개혁특위는 5일 전체회의를 열고 연금 전문가인 공익위원 3명의 연금 재정 추계 결과를 공유했다. 이 중 한 위원은 최근 통계청의 새 인구 추계를 반영한 결과 연금 재정 고갈을 막으려면 △소득대체율 45% 인상 시 보험료율 18%로 인상 △소득대체율 50% 인상 시 보험료율 20%로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국민연금개혁특위에서 보험료율을 20%까지 인상하는 방안에 합의할 가능성은 낮다. 노사 위원 모두 보험료율 인상에 난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노사 위원들은 12일 회의에서 공익위원 추계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한편 국민연금개혁특위는 국민연금도 공무원연금처럼 ‘국가가 연금 지급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관련법에 명기하는 데 의견을 모았지만 시기엔 합의하지 못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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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보다 환자 먼저” 실천한 두 의사… 故 윤한덕-임세원교수에 훈장 수여

    “‘아버지 윤한덕’은 자신보다 환자를 먼저 생각한 분이었어요.”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51)의 장남 형찬 씨(23·공군 병장)는 5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윤 센터장은 설 연휴 기간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병원을 지키다가 2월 4일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돼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형찬 씨는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윤 센터장은 2002년 전남대병원에서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자리를 옮길 때 가족들에게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집에는 빨리 들어올 수 있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킬 수 없었다. 쏟아지는 환자와 업무로 평일엔 거의 집무실 간이침대에서 눈을 붙여야 했다. 일요일 저녁에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간혹 윤 센터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응급의료 현안에 대한 생각을 남기면 형찬 씨는 조용히 ‘좋아요’를 누르며 응원했다고 한다. 윤 센터장은 형찬 씨와 차남 형우 군(16)에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형찬 씨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처럼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했다. 형우 군은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되는 게 목표다. 윤 센터장의 부인 민영주 씨(51)는 남편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추억했다. 윤 센터장이 “나이가 들면 요양병원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 그 이유를 물으니 “치매 환자의 인생도 모두 값지고 소중하니 한 사람 한 사람 곁에서 돕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 센터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몇 달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머물면서 무척 울었다고 민 씨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때 윤 센터장이 항우울제 처방을 받을 정도로 괴로워했다는 사실을 가족들은 최근 업무상 재해 신청을 위해 10년 치 진료기록을 떼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 형찬 씨는 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보건의 날 기념행사에서 윤 센터장을 대신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형찬 씨는 “아버지가 떠난 후 언론 보도로 아버지의 행적을 더 잘 알게 됐다”며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 슬퍼해 주셔서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진료시간 이후에 찾아온 정신질환자를 돌보다가 환자의 흉기에 숨진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47)에게는 이날 청조근정훈장이 추서됐다. 주변의 자살 징후를 일찍 확인할 수 있는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환자를 위해 헌신한 공로다. 남편 대신 훈장을 받은 부인 신은희 씨(49)는 동아일보에 보낸 편지에서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된다면 환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남편이 하늘에서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보건의 날엔 소아암 치료에 헌신한 신희영 서울대 의대 교수가 황조근정훈장을, 이건세 건국대 의대 교수가 녹조근정훈장을 각각 받았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5일 ‘보건의 날’ 기념행사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은 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부인 민영주 씨와 청조근정훈장을 받은 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의 부인 신은희 씨가 동아일보에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아래 전문을 싣습니다.》▽민영주 씨(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부인) 편지 남편이 (17년 전) 서울로 오자했을 때 “돈은 많이 못 벌겠지만 집에는 빨리 들어올 수 있어”라고 했어요. 물론 처음부터 그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요…. 남편의 착한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애들이 어릴 땐 점점 더 바빠지고 힘들어하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고 저도 힘들었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남편에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자신의 소중한 모든 것들을 희생하면서도 해내야 하는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제가 말해줬습니다. “우린 괜찮아. 미안해하지마. 자기의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이란 거 알고 있어. 스트레스 받지 말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너무나 몰랐었죠. 남편이 얼마나 많은 일들에 지쳐있는지도 몰랐고, 얼마나 많은 일들을 이루어냈는지도 잘 몰랐어요. 남편은 최근 몇 년 동안 점점 더 지쳐갔고 둘째가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일요일 저녁에만 볼 수 있었어요. 그것도 얘기 나누는 건 밥 먹는 15분 정도…. 안 들어오는 주도 많았고요. 엄청난 양의 일들과 여러 기관 및 단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스트레스, 수면 부족…. 지인에게 “나 오래 못 살 것 같아”라고 말할 만큼 몸도 힘들었을 텐데 떠나고서야 남편이 얼마나 응급의료 체계 발전에 큰 공을 세웠는지 알았습니다. 또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행복하게 일하기 힘들었을 거란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순수한 그 마음과 열정, 책임감 때문에 남편은 정말 모든 걸 희생했습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웃으며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뜻을 찾아보니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훌륭한 일을 하여 후세에 명예로운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네요. 저는 모든 사람은 고귀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남편 또한 그런 생각으로 억울한 죽음을 막는 데 자신의 모든 힘과 열정을 쏟았습니다. 남편의 죽음을 애도해주시는 국민들과 남편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말하며 울먹이는 문상 오신 많은 분들, 아이들이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게 해주는 많은 기사들, 격려들…. 그리고 이 훈장 또한 저희에겐 남편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고, 위로이며 격려입니다. 아이들 가슴에 새겨질 자랑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고요. 아이들은 아빠의 가슴 속에 있던 순수한 사랑을 이해할 것이고, 그런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남편이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일들이 진정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었을 거라 전 믿습니다. 문상 오신 한 남자 분이 자신을 응급구조사라고 하시며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울며 말씀하시더군요. “센터장님과 약속한 게 있습니다. 꼭 하겠습니다”라고요. 남편과 같은 마음을 가지신 많은 분들을 보면서 감사했고,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고, 당신은 이 사람들과 늘 같이 있는 거라고…. 정말 가치 있고 중요한 그 일들은 이 분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감사합니다. 남편에게도, 남편의 숭고한 마음에 이런 훈장을 주신 것에도, 남편의 죽음을 애도해주시는 모든 분들께도…. 2019년 4월 5일 민영주 ▽신은희 씨(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부인) 편지 남편이 이 자리에서 훈장을 수여받는다면 가족 모두 축하를 하는 자리였을 텐데 남편을 대신하여 받는 훈장에 마음이 아픕니다. 아직도 본인의 일에 열심이면서 ‘보고 듣고 말하기’ 프로그램이 공군에 이어 해군과 육군까지 보급되었다고 좋아하던 모습, 아이들에게 “삼성전자와 함께 개발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이 ‘갤럭시 기어’에 탑재돼 세계 속으로 나가게 된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모습이 선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일인 정신의학 업무에 열정적이었으며 환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편이었기에 훈장이 수여되었다고 생각하며, 하늘에 있는 남편도 기뻐할 거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아프게 간 남편을 생각하면 하느님이 원망스럽지만…. 오늘 통과되었다고 전해들은 ‘임세원법(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통해 의료 현장에서 의료진의 안전과 함께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 구축이 하나씩 이루어져 남편이 소망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 없이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가 된다면 하늘에 있는 남편도 기뻐할 듯합니다. 앞으로도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아빠, 그리고 남편으로 가슴에 담고 살아갈 것입니다.2019년 4월 5일 신은희}

    • 201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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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고한 뜻 잊지 않아’…훈장 받은 남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아버지 윤한덕’은 자신보다 환자를 먼저 생각한 분이었어요.”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51)의 장남 형찬 씨(23·공군 병장)는 5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윤 센터장은 설 연휴 기간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병원을 지키다가 2월 4일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돼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형찬 씨는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윤 센터장은 2002년 전남대병원에서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자리를 옮길 때 가족들에게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집에는 빨리 들어올 수 있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킬 수 없었다. 쏟아지는 환자와 업무로 평일엔 거의 집무실 간이침대에서 눈을 붙여야 했다. 일요일 저녁에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간혹 윤 센터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응급의료 현안에 대한 생각을 남기면 형찬 씨는 조용히 ‘좋아요’를 누르며 응원했다고 한다. 윤 센터장은 형찬 씨와 차남 형우 군(16)에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형찬 씨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처럼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했다. 형우 군은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되는 게 목표다. 윤 센터장의 부인 민영주 씨(51)는 남편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추억했다. 윤 센터장이 “나이가 들면 요양병원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 그 이유를 물으니 “치매 환자의 인생도 모두 값지고 소중하니 한 사람 한 사람 곁에서 돕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 센터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몇 달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머물면서 무척 울었다고 민 씨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때 윤 센터장이 항우울제 처방을 받을 정도로 괴로워했다는 사실을 가족들은 최근 업무상 재해 신청을 위해 10년 치 진료기록을 떼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 형찬 씨는 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보건의 날 기념행사에서 윤 센터장을 대신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형찬 씨는 “아버지가 떠난 후 언론 보도로 아버지의 행적을 더 잘 알게 됐다”며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 슬퍼해 주셔서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진료시간 이후에 찾아온 정신질환자를 돌보다가 환자의 흉기에 숨진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47)에게는 이날 청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주변의 자살 징후를 일찍 확인할 수 있는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환자를 위해 헌신한 공로다. 남편 대신 훈장을 받은 부인 신은희 씨(49)는 동아일보에 보낸 편지에서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된다면 환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남편이 하늘에서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보건의 날엔 소아암 치료에 헌신한 신희영 서울대 의대 교수가 황조근정훈장을, 이건세 건국대 의대 교수가 녹조근정훈장을 각각 받았다.5일 ‘보건의 날’ 기념행사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은 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부인 민영주 씨와 청조근정훈장을 받은 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의 부인 신은희 씨가 동아일보에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아래 전문을 싣습니다.▽민영주 씨(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부인) 편지 남편이 (17년 전) 서울로 오자했을 때 “돈은 많이 못 벌겠지만 집에는 빨리 들어올 수 있어”라고 했어요. 물론 처음부터 그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요…. 남편의 착한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애들이 어릴 땐 점점 더 바빠지고 힘들어하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고 저도 힘들었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남편에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자신의 소중한 모든 것들을 희생하면서도 해내야 하는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제가 말해줬습니다. “우린 괜찮아. 미안해하지마. 자기의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이란 거 알고 있어. 스트레스 받지 말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너무나 몰랐었죠. 남편이 얼마나 많은 일들에 지쳐있는지도 몰랐고, 얼마나 많은 일들을 이루어냈는지도 잘 몰랐어요. 남편은 최근 몇 년 동안 점점 더 지쳐갔고 둘째가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일요일 저녁에만 볼 수 있었어요. 그것도 얘기 나누는 건 밥 먹는 15분 정도…. 안 들어오는 주도 많았고요. 엄청난 양의 일들과 여러 기관 및 단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스트레스, 수면 부족…. 지인에게 “나 오래 못 살 것 같아”라고 말할 만큼 몸도 힘들었을 텐데 떠나고서야 남편이 얼마나 응급의료 체계 발전에 큰 공을 세웠는지 알았습니다. 또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행복하게 일하기 힘들었을 거란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순수한 그 마음과 열정, 책임감 때문에 남편은 정말 모든 걸 희생했습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웃으며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뜻을 찾아보니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훌륭한 일을 하여 후세에 명예로운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네요. 저는 모든 사람은 고귀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남편 또한 그런 생각으로 억울한 죽음을 막는 데 자신의 모든 힘과 열정을 쏟았습니다. 남편의 죽음을 애도해주시는 국민들과 남편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말하며 울먹이는 문상 오신 많은 분들, 아이들이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게 해주는 많은 기사들, 격려들…. 그리고 이 훈장 또한 저희에겐 남편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고, 위로이며 격려입니다. 아이들 가슴에 새겨질 자랑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고요. 아이들은 아빠의 가슴 속에 있던 순수한 사랑을 이해할 것이고, 그런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남편이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일들이 진정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었을 거라 전 믿습니다. 문상 오신 한 남자 분이 자신을 응급구조사라고 하시며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울며 말씀하시더군요. “센터장님과 약속한 게 있습니다. 꼭 하겠습니다”라고요. 남편과 같은 마음을 가지신 많은 분들을 보면서 감사했고,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고, 당신은 이 사람들과 늘 같이 있는 거라고…. 정말 가치 있고 중요한 그 일들은 이 분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감사합니다. 남편에게도, 남편의 숭고한 마음에 이런 훈장을 주신 것에도, 남편의 죽음을 애도해주시는 모든 분들께도…. 2019년 4월 5일 민영주 ▽신은희 씨(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부인) 편지 남편이 이 자리에서 훈장을 수여받는다면 가족 모두 축하를 하는 자리였을 텐데 남편을 대신하여 받는 훈장에 마음이 아픕니다. 아직도 본인의 일에 열심이면서 ‘보고 듣고 말하기’ 프로그램이 공군에 이어 해군과 육군까지 보급되었다고 좋아하던 모습, 아이들에게 “삼성전자와 함께 개발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이 ‘갤럭시 기어’에 탑재돼 세계 속으로 나가게 된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모습이 선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일인 정신의학 업무에 열정적이었으며 환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편이었기에 훈장이 수여되었다고 생각하며, 하늘에 있는 남편도 기뻐할 거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아프게 간 남편을 생각하면 하느님이 원망스럽지만…. 오늘 통과되었다고 전해들은 ‘임세원법(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통해 의료 현장에서 의료진의 안전과 함께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 구축이 하나씩 이루어져 남편이 소망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 없이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가 된다면 하늘에 있는 남편도 기뻐할 듯합니다. 앞으로도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아빠, 그리고 남편으로 가슴에 담고 살아갈 것입니다.2019년 4월 5일 신은희 조건희기자 becom@donga.com}

    • 201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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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 우울증 환자에겐 毒… 절망-비하 등 위험신호에 주의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지난해 12월 31일 진료시간이 지나서 찾아온 정신질환자를 돌보다 환자의 흉기에 숨진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47)가 2016년 발간한 저서의 제목이다. 그의 동료들에 따르면 이는 임 교수가 2012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을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가까스로 회복하면서 되새긴 말이라고 한다. 생동하는 봄기운과 정반대로, 3∼5월은 우울증 환자에게 위험한 시기다. 거리엔 활기가 넘치지만 우울증 환자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져 오히려 증세가 심해지기 때문이다. 일조량의 변화도 호르몬 불균형과 수면장애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청년 우울증 환자에겐 졸업과 취업에 따른 스트레스가 한몫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2017년 국내 자살자 6만7331명 중 1만8910명(28.1%)이 3∼5월에 숨졌다. 겨울인 12∼2월(1만5213명)의 1.2배 수준으로 많다. 자살을 막으려면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게 임 교수의 지론이었다. 그의 저서 제목처럼 정말로 죽고 싶은 사람은 없고, 스스로 생을 포기하려는 사람은 주변에 구조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임 교수와 함께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 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만든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조언을 통해 주변 사람의 자살 징후를 일찍 알아챌 방법을 정리했다. # 보기 첫 단계는 주의 깊은 관찰이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2015∼2017년 자살자 289명의 심리를 부검한 결과 자살자의 92%는 가족에게 자살 신호를 보냈지만 가족 중 21.4%만이 사전에 이를 인식했다. “이젠 정말 끝내고 싶다”라며 절망감을 드러내거나 “나는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다”라며 자신을 비하하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몸에 별 이상이 없는데도 통증을 호소하거나 일과 학업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는 것도 간접적인 언어적 신호가 될 수 있다. 대다수는 우울한 감정을 소리 내어 표현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이를 드러낸다. 소중히 여기던 물건을 나눠주거나 사람을 피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불면증이나 과식, 과음, 충동구매 등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일 때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자해의 흉터나 연습장 등에 쓴 “죽고 싶다”는 낙서는 긴급한 자살 신호다. # 듣기 자살 신호를 포착했다면 정말로 자살할 생각인지 물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이 단계에서 망설인다. 대다수는 평생 누군가에게 “자살할 생각이냐”라고 물어본 경험이 없다. 오히려 누군가 “죽고 싶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해도 당황해서 말을 돌리거나 생각을 바꾸라고 타이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자살예방 전문가들은 자살 의사를 명확하게 묻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게다가 자살을 할 생각이라면 언제 할 건지, 어떤 방식으로 할 건지 구체적으로 물으라고 한다. 자살 신호는 구조 요청 신호이기도 하므로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를 경청하는 것이 거꾸로 살아야 할 이유를 찾도록 돕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이때 ‘자살은 옳지 않다’고 설득하거나 충고하는 것보단 처음부터 끝까지 가치 판단 없이 경청하는 게 상대에게 더 도움이 된다. # 말하기 말하기는 자살 위험에 처한 사람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거나 직접 도움을 의뢰하는 단계다. 1393 보건복지부 자살예방 상담전화를 통해 지역 자살예방센터나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 연락하면 전문가가 개입방법을 알려준다. 가족이나 동료가 “죽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절대 알리지 말라고 당부해도 마찬가지다. 모든 상담은 비밀에 부치기 때문에 상대방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불이익에 처할 우려가 적다. 자살 신호를 방치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상상해보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백종우 교수는 “자살 위험에 처한 분들의 주변 사람들이 ‘보고 듣고 말하기’ 교육을 통해 이런 ‘도움 받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이나 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1393)와 정신건강 삼담전화(1577-0199), 희망의 전화(129), 생명의 전화(1588-9191), 청소년 전화(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2019-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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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세대 인공심장으로 말기 심부전 환자에 ‘희망 이식’

    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모 씨(67)는 2017년 겨울부터 기침과 가래가 심해지면서 호흡곤란 증상이 시작됐다. 지난해 1월엔 급기야 급성 심근경색으로 증세가 악화돼 심정지까지 발생했다.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는 김 씨가 완치되려면 심장을 이식받아야 한다. 하지만 심장을 기증해줄 뇌사자가 당장 나타나길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다.심부전 환자의 희망, 3세대 인공심장 이식 심부전증은 심장의 펌프 기능이 떨어져 전신에 혈액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과 같은 허혈성 심장질환과 고혈압, 심장판막질환 등이 주요 원인이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호흡곤란이다. 처음엔 움직일 때에만 숨이 차지만 병이 악화되면 가만히 쉬고 있어도 호흡이 곤란해진다. 여기에 온몸이 늘어지는 전신무력감과 식욕감퇴, 피곤, 부종 등의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 궁극적인 치료는 심장 이식이지만 이른 시일 내에 뇌사 기증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심장 이식 수술을 받기 전까지 심부전증을 제대로 관리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심부전·심장이식센터는 오랜 치료 경험과 노하우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심부전 환자들을 치료하고 심장 이식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의료진은 김 씨를 치료하기 위해 심실보조장치(인공심장)를 이식하기로 했다. 인공심장은 심장 기능이 약해져 혈액을 온몸에 원활하게 공급할 수 없는 심부전 환자에게 쓰인다. 좌심실에 펌프를 이식해 대동맥을 통해 전신으로 혈액을 보내주기 때문에 정확히는 ‘좌심실 보조 장치’다. 심장의 끝 부분인 심첨부에 연결되는 유입부와 펌프, 유출부로 구성돼 있다. 김 씨가 이식 받은 것은 예전 모델의 단점을 보완한 3세대 인공심장이다. 최근 개발된 3세대 인공심장은 기존 것보다 내구성이 강하고 혈전(혈관 속 피가 굳은 덩어리)이 생기는 것을 막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사용방법도 간편하다. 이식 수술을 마친 김 씨는 심부전 상태가 안정돼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고, 올해 초 한 뇌사자로부터 심장을 이식받을 수 있게 됐다. 김 씨는 현재 건강을 회복 중이다.국내 첫 심장 이식 수술 700회 달성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은 199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심장 이식 수술에 성공하며 말기 심부전 치료 분야를 선도해왔다. 2001년엔 국내 최연소 환자 심장 이식 수술에 성공했고, 지금까지 700회 이상의 심장 이식을 시행했다. 국내 전체 심장 이식 건수가 1500회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 심장 이식의 절반 정도가 서울아산병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은 그동안 쌓아온 치료경험을 통해 심부전 질환의 진단 및 약물치료뿐 아니라 심부전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심부전 통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약물을 쓰지 않는 치료로는 제세동기(ICD)와 심장재동기화 장치(CRT) 등이 쓰인다. 수술적 치료로는 인공심장 및 심장 이식과 체외막순환장치(ECMO·에크모) 치료 등이 있다. 심장내과와 흉부외과가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위해 긴밀하게 협진을 한다. 지난해 9월 심장 이식 수술 700회 달성은 2016년 9월 600회 돌파 이후 불과 2년 만에 이뤄졌다. 이식 후 생존율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풍부한 수술 경험과 심장이식 후 치료 노하우, 수술 전·후 환자 교육 등 철저한 이식환자 관리가 이식 후 생존율을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병원 측은 밝혔다. 김재중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심장이식 환자의 1년, 5년, 10년 생존율은 각각 95%, 86%, 76%로 국제심폐이식학회의 81%(1년), 69%(5년), 52%(10년)를 크게 앞서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며 “이 기록은 세계 최고의 심장이식 기관으로 손꼽히는 스탠퍼드 대학이나 텍사스 대학과 동일한 수준”이라고 말했다.기증자 부족 해결 위해 인공심장 이식 심장은 단 하나뿐인 장기인 데다 수술은 뇌사자 기증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심장 이식 대기자는 무한정 기다릴 수밖에 없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연평균 뇌사 심장 이식 수술은 156건에 불과해 심장 이식 대기자(지난해 3월 기준 586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2017년 한 해만 따지면 심장 이식 대기자는 559명인 데 반해 심장 이식 수술은 184건에 그쳤다. 대기자의 3분의 1만이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이식대기 등록부터 이식까지 평균 234일이 걸렸다. 서울아산병원의 심장 이식 수술 후 1년 평균 생존율은 95%에 달하지만, 높은 수술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기증자가 많지 않은 데다 기증된 심장의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말기 심부전 환자들은 오랜 기간 입원 치료와 퇴원을 반복하며 기증자를 기다려야 한다. 반면 인공심장을 이식하면 집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심장 기증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 있다. 중증 심부전으로 손상된 다른 장기의 기능이 개선되고, 중증 상태에서 대기하면서 사망하는 경우가 줄어드는 등 심장 이식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하는 셈이다. 또한 심장을 이식받을 수 없는 말기 심부전 환자들에게 영구 이식 혹은 회복을 위한 장치로써 적용할 수도 있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치료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심부전·심장이식센터는 지난 27년간 심부전 환자들의 치료경험과 심장 이식 수술 노하우를 바탕으로 인공심장 이식에서도 성공적인 치료 결과를 보이고 있다. 인공심장은 뇌사자로부터 심장을 이식받기 어려워 약물 치료만으로 연명하던 말기 심부전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정성호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심부전·심장이식센터장(흉부외과 교수)은 “약물이나 다른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말기 심부전 환자들은 심장 이식이나 인공심장이 필요한데, 이러한 치료방법을 적절한 시기에 결정하고 수술 전 환자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심부전 환자의 치료 경험이 많은 센터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인공심장 이식 전문팀, 환자에게 새 희망 1992년 국내 최초로 뇌사자 심장이식을 성공시키며 말기 심부전 치료 분야를 선도해온 서울아산병원은 전문 의료진과 최고의 중환자 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데다 그동안 쌓아온 치료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인공심장 이식 분야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에크모전담팀은 에크모 전담의와 중환자실 간호사, 심폐기팀으로 구성돼 있어 국내 최고 수준의 팀워크를 통해 심부전 환자의 치료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 어느 곳이든 에크모를 적용하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전문 인력이 항상 대기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심장 이식이나 인공심장 이식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최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공심장 전문병동에서는 환자의 수술 전·후 건강을 집중 관리한다. 인공심장 전담의와 전담 간호사, 심장재활팀, 영양팀, 약제팀으로 구성된 다학제 팀이 통합적인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인공심장 전담 간호사는 인공심장을 이식받은 환자와 일대일 맞춤 교육을 시행하고 재활 치료에 함께 참여하면서 퇴원 후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환자를 교육한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심부전·심장이식센터에서 최근까지 시행한 인공심장 이식 수술은 총 12건이다. 이 중 환자 5명이 인공심장 이식 후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하다가 뇌사자로부터 심장을 이식받았다. 지난해 9월부터는 말기 심부전 환자의 인공심장 이식에 건강보험까지 적용되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환자들이 수술 상담을 받고 있다. 정철현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장(흉부외과 교수)은 “말기 심부전 환자들은 뇌사자로부터 이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어 대부분 약물 치료로만 연명하다가 사망하게 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심실을 보조해 심장의 기능을 살리는 3세대 인공심장이 최근 심부전 환자들의 새로운 치료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인공심장을 이식할 경우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삶의 질도 향상되며, 외국의 경우 평균 생존 기간이 10년에 이르러 중증 심부전 환자들에게 유용한 치료법으로 꼽힌다”며 “지난 27년간 뇌사자 심장이식을 통해 오랜 치료 노하우를 쌓아온 서울아산병원이 전문적인 중환자 치료 시스템과 수술기법을 통해 인공심장 이식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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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유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 허가 당시 성분과 달라 판매중단

    국내 유일 유전자 치료제의 주성분이 허가 당시와 다른 것으로 확인돼 제조와 판매가 중단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31일 제조사인 코오롱생명과학에 무릎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의 제조 및 판매 중지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인보사는 사람의 연골세포와 세포 분화를 촉진하는 성장인자를 무릎에 주사로 투여해 골관절염을 치료하는 세포 유전자 치료제다. 코오롱생명과학은 미국에서 인보사의 임상시험(3상)을 진행하던 중 주성분인 성장인자세포가 신장세포(유전자를 전달하는 매개체를 만드는 세포)로 바뀐 것을 확인하고 이를 식약처에 통보했다. 인보사는 2017년 7월 국내 첫 유전자 치료제로 허가받은 뒤 올해 2월까지 총 3403건이 투여됐다. 미국 임상시험에 쓰인 제품은 국내 유통 중인 것과 다른 제조공장에서 만들었다. 국내 유통 제품에도 같은 이상이 있는지는 4월 15일경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는 그 전까지 국내 환자들에게 대체의약품 처방을 당부했다. 다만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현재까지 인보사를 투약한 환자 중에 심각한 부작용을 보인 사례가 없는 점에 미뤄 안전성에선 큰 우려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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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만 예약 ‘제로’… 분만실 옆 산모병실은 일반환자 차지

    신생아실엔 신생아용 플라스틱 침대 2개가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은 듯 전기난로와 함께 한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분만실 옆 병실은 허리디스크를 앓는 60대 남성 환자가 차지하고 있었다. 원래 임신부 몫이지만 4월까지 분만 예약이 한 건도 없어 일반 환자용으로 쓰고 있다. 28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찾은 충북 영동군의 유일한 분만병원인 영동병원 풍경이다. 이날 2층 산부인과 병동에는 임신부가 한 명도 찾지 않았다. 병원 관계자는 “요즘 애를 안 낳잖아요. 늘 썰렁하지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올해 영동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는 2명에 불과하다. 산부인과가 휴업 상태나 다름없으니 다른 육아 인프라도 덩달아 후퇴하고 있다. 영동군엔 산후조리원이 한 곳도 없다. 소아과만을 전담하는 의원도 3곳에 불과하다. 이날 오전 문을 연 키즈카페도 1곳뿐이었다. 영동군에 살지만 지난해 8월 둘째 아이를 대전에서 ‘원정 출산’한 이모 씨(37·여)는 “문화센터라도 있으면 좋겠다”라며 아쉬워했다.○ 서울 유명 분만병원도 ‘폐원 공포’ 지난해 ‘0명대’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의 충격이 전국 산부인과 병의원을 뒤흔들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출생아를 한 명이라도 받은 분만병원은 2013년 706곳에서 2017년 528곳으로 급감했다. 통계청은 지난해 32만6900명이었던 한 해 출생아 수가 2021년 29만 명, 2067년 21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 산부인과가 줄어들고, 주변에 산부인과가 없으니 아이 낳기를 망설이는 ‘출산 파업의 악순환’이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저출산의 충격은 지방만의 얘기가 아니다. 국내 첫 여성전문병원인 서울 중구 제일병원은 지난해 말 진료를 중단했다. 27일 취재팀이 찾은 제일병원 산부인과 병동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을씨년스러웠다. 일부 병동과 분만실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제일병원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문모 씨(74)는 “하루 1500장 정도 들어오던 처방전이 제일병원 폐원 이후 150장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서울의 다른 유명 분만병원도 불안에 떨기는 마찬가지다. 병상이 55개로 지역 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인 서울 G여성병원은 임신부를 ‘유치’하기 위해 분만 진료비 중 본인부담금을 면제해주는 ‘분만료 덤핑’ 행사를 벌이다가 대한산부인과의사회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태아를 한 달 평균 250여 명을 받다가 지난해부터 그 수가 절반으로 줄자 궁여지책을 쓰다가 적발된 것이다. 산후조리원을 운영하다가 지난해 9월 적자로 폐업한 뒤 G여성병원 인근 산후조리원에 취업한 조모 씨는 “여기도 산모가 줄어 월급을 제대로 못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산부인과 이정재 교수는 “출생아가 줄어도 분만실 유지에 필요한 인건비와 시설비는 똑같이 든다”며 “분만실은 꼭 필요한 공공 의료시설인 만큼 정부가 필수 분만실을 지정해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에 어린이집도 직격탄 27일 서울 영등포구 A어린이집에선 아이 2명만이 텅 빈 놀이방에서 장난감 ‘레고’의 초록색 바닥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다른 교구와 장난감은 전부 처분한 상태였다. 이 어린이집은 31일 폐원할 예정이다. 지난달부터 운영시간을 오후 9시까지로 연장했음에도 등록 아동은 정원(20명)에 크게 못 미치는 4명에 그쳤다. 원장 김영혜 씨(63·여)를 포함한 보육교사 4명이 아이를 일대일로 돌보는 상황에서 더 이상 월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은 ‘저출산 쓰나미’가 가장 먼저 덮치는 분야 중 하나다. 2013년 4만3770곳이었던 전국 어린이집은 5년 연속 감소해 지난해 3만9171곳으로 줄었다. A어린이집처럼 영아를 주로 돌보는 가정 어린이집과 소규모 민간 어린이집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서울 구로구 B어린이집도 같은 형편이다. 1년 만에 원아가 절반으로 줄어 일부 보육교사를 내보내야 했다. 원장 C 씨는 “직원도 불안해하고 사기도 떨어져서 앞으로 얼마나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영동=송혜미 1am@donga.com / 사지원·조건희 기자}

    • 201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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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약처 “수소수, 미세먼지 제거 효과 근거 없다”

    고농도 초미세먼지가 빈발하면서 인체 피해를 줄일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지만 적잖은 제품은 미세먼지 제거 효과가 없고 오히려 몸에 해로운 물질을 발생시킬 위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시판 중인 수소 함유 음료(일명 ‘수소수’) 17개를 조사해 ‘수소샘’ 등 13개 제품을 허위 및 과대광고로 적발했다고 27일 밝혔다. 수소수는 먹는 물에 수소를 인위적으로 첨가한 제품으로 일부 동물실험에서 체내 미세먼지를 줄이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광고하며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다. 여기에 활성산소 제거 및 항산화, 아토피 개선, 다이어트 효과 등이 있다고 광고한 제품도 적지 않다. 하지만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명승권 교수가 수소수의 질병 예방 효과를 임상 시험한 연구논문 25편을 분석해보니 대다수는 피험자가 수십 명 수준으로 적고, 시험 설계가 정교하지 않아 신뢰할 수 없었다. 일부 연구 논문에서는 일관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도 수소수가 아토피나 천식에 도움이 된다는 학술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적발된 제품 13개의 제품당 수소 함량은 평균 0.00015%로 매우 미미했다. 식약처 김명호 사이버조사단장은 “수소수가 미세먼지 제거 등에 도움이 된다는 허위광고에 현혹돼 비싼 가격에 구입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자동차용으로 주로 쓰이는 음이온 공기청정기의 효과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필터가 아닌 정전기로 먼지를 걸러내는 방식인데, 집진력(먼지를 끌어들이는 힘)이 약한 데다 오존을 발생시켜 오히려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오존은 악취 제거 등에 쓰이지만 인체에 유입되면 폐나 심장 질환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대기오염 물질로 꼽힌다. 환경부는 이미 2006년에 “음이온 공기청정기는 공기청정 효과가 거의 없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소비자원도 2008년 자동차용 음이온 공기청정기 21개 중 8개 제품의 오존 발생량이 기준치를 초과했다고 밝혔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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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리수법 갈수록 교묘, 공익신고 활성화해야”… 사무장-의사 밀착 적발 쉽지않아

    사무장병원은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의 건강을 해치고 있지만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투자자인 사무장과 대리 원장인 의사의 은밀한 이면 계약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에 겉으론 일반 병원과 별 차이가 없어 솎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보 빅데이터를 동원해 의심되는 의료기관을 조사하고 있지만 이를 감추는 사무장들의 수법도 점차 교묘해지고 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내부 관계자의 공익신고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건보공단은 내부 신고를 독려하기 위해 2005년 7월 포상금 제도를 도입했다. 환수하기로 결정된 부당 청구 진료비의 10∼20%, 최대 10억 원까지 신고 포상금으로 준다. 제도 도입 후 올해 1월까지 111명의 신고로 총 1612억 원의 부당 청구액을 적발했다. 주로 사무장이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고용한 영업사원이나 부당 청구에 간접적으로 관여한 말단 의료진이 신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무장병원의 비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의사 면허를 빌려준 대리 원장이다. 불법 진료 행위를 속속들이 알고 있어 사무장을 꼼짝 못 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대리 원장이 직접 신고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현행법상 사무장과 공범으로 입건돼 형사 처벌뿐 아니라 부당 청구액까지 물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법상 자진신고 감면제도가 있지만 이는 의사 면허 정지 기간을 줄여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사무장병원 비리를 자진 신고한 의사의 민형사상 책임을 감면해주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2017년 3월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이 사무장병원을 자진 신고한 의사의 책임을 한시적으로 감면해주는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민 정서상 용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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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용기한 열달 지난 수액… 1회용 주사제 나눠 써

    병원 1층 주사실 캐비닛 위엔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서랍을 여니 주사제 앰풀에 주삿바늘이 꽂힌 채 나뒹굴었다. 일회용 주사제를 여러 환자에게 나눠 쓴 흔적이다. 수술 도구를 소독할 때 쓰는 고압 증기 멸균기는 녹이 슬어 있었다. 사무장병원을 조사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들이 2017년 3월 충남 A요양병원 조사를 나갔다가 마주한 광경이다. 입원실 상태는 더 참혹했다. 환자가 맞는 포도당 수액은 사용기한이 10개월가량 지나 있었다. 의료용품 보관함에서 나온 멸균 증류수와 의료용 장갑 등 256개 의료용품 가운데 사용기한이 지나지 않은 건 한 개도 없었다. 이 요양병원은 2015년 9월 개원했는데, 영양 수액의 유통기한은 2014년이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수액을 싼값에 사 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셈이다. 건보공단은 의사 박모 씨(53)를 대리 원장으로 앉히고 요양병원을 운영하며 건보 진료비 42억 원을 빼돌린 임모 씨(58)를 경찰에 넘겼다.○ 사무장병원의 주요 타깃, 요양병원 비의료인이 의료인의 면허를 빌려 운영하는 사무장병원은 투자비 회수를 위해 제대로 된 의료 인력이나 시설을 갖추지 않고 진료비를 부풀리는 데만 집중해 과잉진료 등 각종 사회적 폐해를 낳고 있다. 특히 사무장병원 중 가장 심각한 곳은 ‘사무장 요양병원’이다. 요양병원은 본래 외과 수술 등을 받은 뒤 회복을 위해 입원하는 곳이다. 하지만 현재 상당수 요양병원이 적은 비용으로 오래 입원할 수 있어 노인들의 ‘장기 숙소’처럼 활용되고 있다.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는 노인 요양원에 입소하려면 치매 등 질환의 중증도를 인정받아야 하는 반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요양병원은 등급 없이도 입원할 수 있는 점도 노인들이 많이 찾는 이유다. 요양병원의 또 다른 특징은 환자를 등급별로 구분해 하루 일정액의 치료비(약 4만2390∼7만6250원)를 일괄 지급하는 ‘일당 정액수가제’를 적용받는다. 의료 행위마다 진료비를 매기는 일반 병원의 ‘행위별 수가제’와는 다르다. 요양병원에선 세부적인 진료 명세를 청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진료비나 약제비를 아끼면 수익이 많이 나는 구조다. 요양병원이 사무장병원의 주요 타깃이 되는 이유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적발된 사무장병원 등 불법 개설 기관 1531곳 중 요양병원은 277곳으로 18.1%다. 하지만 이들이 빼돌린 돈은 모든 불법 개설 기관의 부당 청구액 2조5490억4300만 원 중 절반이 넘는 1조3368억9200만 원이다.○ 사무장 요양병원 사망자, 일반 병원의 7배 의료계에선 사무장 요양병원들이 환자를 사실상 빈사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신경안정제를 과다 투여하는 일이 흔하다고 알려져 있다. 환자들이 난동을 부리면 간병 부담이 커지는 만큼 향정신성 의약품을 불필요하게 많이 투약한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요양병원 내 항우울제를 처방받은 환자는 2012년 5145명에서 2017년 2배가 넘는 1만2396명으로 증가했다. 환자를 ‘돈벌이’로만 인식하는 사무장 요양병원의 ‘야만성’은 지난해 1월 45명이 화재로 숨진 경남 밀양시 세종요양병원 사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병원 행정이사 우모 씨(60·여)는 장례식장의 매상을 올리기 위해 간호사들에게 “환자의 인공호흡기 산소 투입량을 줄이라”고 지시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사무장 요양병원이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사실은 수치로도 입증됐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사무장 요양병원 내에서 숨진 환자는 병상 100개당 연평균 165.9명으로 일반 병원(21.9명)의 7배 수준이었다. 환자들이 같은 질환을 앓고 있다고 가정해 분석한 ‘중증도 사망비’도 사무장 요양병원이 일반 병원보다 11.6% 높았다.조건희 becom@donga.com·박성민 기자}

    • 201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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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회용 주사제 돌려쓰고…인권 사각지대 ‘사무장병원’ 타깃은 요양병원

    병원 1층 주사실 캐비닛 위엔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서랍을 여니 주사제 앰플에 주사바늘이 꽂힌 채 나뒹굴었다. 일회용 주사제를 여러 환자에게 나눠 쓴 흔적이다. 수술 도구를 소독할 때 쓰는 고압 증기 멸균기는 녹이 슬어있었다. 사무장병원을 조사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들이 2017년 3월 충남 당진시 W요양병원 조사를 나갔다가 마주한 광경이다. 입원실 상태는 더 참혹했다. 환자가 맞는 포도당 수액은 사용기한이 10개월가량 지나있었다. 의료용품 보관함에서 나온 멸균 증류수와 의료용 장갑 등 256개 의료용품 가운데 사용기한이 지나지 않은 건 한 개도 없었다. 이 요양병원은 2015년 9월 개원했는데, 영양 수액의 유통기한은 2014년이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수액을 싼값에 사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셈이다. 건보공단은 의사 박모 씨(53)를 대리 원장으로 앉히고 요양병원을 운영하며 건보 진료비 42억 원을 빼돌린 임모 씨(58)를 경찰에 넘겼다.● 사무장병원의 주요 타깃, 요양병원 비의료인이 의료인의 면허를 빌려 운영하는 사무장병원은 투자비 회수를 위해 제대로 된 의료 인력이나 시설을 갖추지 않고 진료비를 부풀리는 데만 집중해 과잉진료 등 각종 사회적 폐해를 낳고 있다. 특히 사무장병원 중 가장 심각한 곳은 ‘사무장 요양병원’이다. 요양병원은 본래 외과 수술 등을 받은 뒤 회복을 위해 입원하는 곳이다. 하지만 현재 상당수 요양병원이 적은 비용으로 오래 입원할 수 있어 노인들의 ‘장기 숙소’처럼 활용되고 있다.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는 노인 요양원에 입소하려면 치매 등 질환의 중증도를 인정받아야 하는 반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요양병원은 등급 없이도 입원할 수 있는 점도 노인들이 많이 찾는 이유다. 요양병원의 또 다른 특징은 환자를 등급별로 구분해 하루 일정액의 치료비(약 5만~9만 원)를 일괄 지급하는 ‘일당 정액수가제’를 적용 받는다. 의료 행위마다 진료비를 매기는 일반 병원의 ‘행위별 수가제’와는 다르다. 요양병원에선 세부적인 진료 명세를 청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진료비나 약제비를 아끼면 수익이 많이 나는 구조다. 요양병원이 사무장병원의 주요 타깃이 되는 이유다. 치매와 뇌졸중 등으로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노인 환자가 주로 입원하다 보니 기본적인 위생조차 지키지 않아도 신고나 고발을 피할 수도 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적발된 사무장병원 등 불법 개설 기관 1531곳 중 요양병원은 277곳으로 18.1%다. 하지만 이들이 빼돌린 돈은 모든 불법 개설 기관의 부당 청구액 2조5490억4300만 원 중 절반이 넘는 1조3368억9200만 원이다.● 사무장 요양병원 사망자, 일반 병원의 7배 의료계에선 사무장 요양병원들이 환자를 사실상 빈사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신경안정제를 과다 투여하는 일이 흔하다고 알려져 있다. 환자들이 난동을 부리면 간병 부담이 커지는 만큼 향정신성 의약품을 불필요하게 많이 투약한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요양병원 내 항우울제를 처방받은 환자는 2012년 5145명에서 2017년 1만2396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환자를 ‘돈벌이’로만 인식하는 사무장 요양병원의 ‘야만성’은 지난해 1월 45명이 화재로 숨진 경남 밀양시 세종요양병원 사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병원 행정이사 우모 씨(60·여)는 장례식장의 매상을 올리기 위해 간호사들에게 “환자의 인공호흡기 산소 투입량을 줄이라”고 지시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당시 희생자가 많았던 이유도 병상을 무분별하게 확장하면서 비상구를 틀어막고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무장 요양병원이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사실은 수치로도 입증됐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사무장 요양병원 내에서 숨진 환자는 병상 100개당 연평균 165.9명으로 일반 병원(21.9명)의 7배 수준이었다. 환자들이 같은 질환을 앓고 있다고 가정해 분석한 ‘중증도 사망비’도 사무장 요양병원이 일반 병원보다 11.6% 높았다. 조건희기자 becom@donga.com박성민기자 min@donga.com}

    •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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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51만명분 건보료 빼먹은 사무장병원… 의사 명의 빌려 불법진료-과잉검진

    “‘감마GTP’(간 수치의 일종)가 높으시네요. 술을 줄여야 해요.” 사람들은 하얀 가운을 입고 건강검진 결과를 유창하게 설명하는 이모 씨(33)를 ‘의사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서울지역 A병원과 B병원 이름이 적힌 이 씨의 명함 두 개는 모두 가짜였다. 의사 면허가 없는 그에게 ‘의사’ 역할을 맡긴 곳은 하모 씨(45)가 운영하는 불법 출장검진 기관이었다. 이 불법 출장검진 기관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A, B병원 명의를 빌려 관공서나 기업에서 출장검진을 실시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비용을 청구하는 수법으로 총 17억 원을 챙겼다. 출장검진 때 채혈 직전 환자들에게 15만 원가량의 ‘혈액종합검사’도 끼워 팔았다. 혈액형이 틀리거나 남성 혈액으로 난소암 검사를 하는 등 검사는 엉터리였다. 일반인이 돈벌이를 위해 의료인 명의를 빌려 운영하는 이른바 ‘사무장병원’이 활개치고 있다. 불법 의료기관에서 환수해야 할 금액은 2005년 5억5000만 원에서 지난해 6489억9000만 원으로 1180배로 늘었다. 지난해 직장 가입자 월평균 건보료가 10만6243원인 점을 감안하면 약 51만 명의 1년 치 건보료가 불법 의료기관으로 흘러간 셈이 된다. 건보 재정을 축내는 주범인 사무장병원은 국민 건강에도 치명적인 위협이다. 감기 환자에게 권장되지 않는 항생제 처방 비율은 사무장병원이 43.9%로 일반 병원(37.8%)보다 높았다. 김호경 kimhk@donga.com·조건희 기자}

    •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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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손보험 가입 암환자에 허위처방… 남성혈액으로 난소암 검사도

    전북 전주시의 A한방병원에선 2012년 9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직원과 환자 사이에 은밀한 제안이 오갔다. 어깨나 무릎이 아파서 찾아온 노인 환자들에게 간호조무사 박모 씨(50·여)와 오모 씨(46·여)가 “침을 무료로 맞고 용돈까지 벌 수 있다”고 말을 꺼내는 게 첫 단계였다. 환자가 관심을 보이면 형식적으로 혈압을 재고 소변 검사를 했다. 그러고 나면 가벼운 어깨 결림으로 병원을 찾았던 환자는 중증 허리디스크에 시달리는 입원 환자로 둔갑했다. 이런 환자가 실제로 입원하는 일은 없었다. ‘가짜 입원환자’ 494명은 귀가했다가 미리 약속한 날에만 찾아와 무료로 침을 맞고 실손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퇴원 확인서를 받아갔다. A한방병원은 이들의 입원료와 각종 검사 및 치료비 명목으로 매일 수백만 원의 진료비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했다. 이런 식으로 A한방병원이 4년여간 빼먹은 건보 진료비는 총 34억6193만 원에 달했다. 건보공단 조사 결과 이 한방병원은 의료진 자격이 없는 김모 씨(61)가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 위장해서 세운 ‘사무장병원’이었다.○ 50만 명분 건보료 빼먹어 현행법상 의료인 자격이 없는 사람이 면허를 빌려 병원을 운영하면 사무장병원이 된다. 약사가 아닌 사람이 약사를 내세워 약국을 꾸리면 ‘면허대여 약국’으로 모두 불법 개설 기관이다. 건보 진료비는 건보공단 부담금과 환자 본인 부담금으로 나뉜다. 진료비가 1000원이라면 건보공단이 700원, 환자가 300원을 내는 식이다. 적발되면 불법 개설 기관을 운영한 동안 건보공단뿐만 아니라 환자로부터 받은 진료비까지 전액 징수 대상이 된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적발된 불법 개설 기관은 총 1531곳이다. 첫해인 2009년엔 6곳이 적발되는 데 그쳤지만 지난해엔 170곳이 불법 개설 기관으로 판명돼 그 수가 크게 늘었다. 요양병원을 포함한 일반 병·의원이 988곳(64.5%)으로 절반이 넘었고, 한방 병·의원 261곳(17.1%), 치과 병·의원 143곳(9.3%), 약국 139곳(9.1%) 등이 뒤를 이었다. 그간 불법 개설 기관이 빼먹은 건보 진료비와 약제비는 총 2조5490억4300만 원이다. 지난해에만 6489억9000만 원이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 약국으로 빠져나갔다. 불법 청구 금액이 지난 5년간 연평균 1027억 원씩 증가한 결과다. 건보 재정은 지난해 8년 만에 당기 적자를 기록해, 전체 적립금의 규모가 2017년 20조7733억 원에서 지난해 20조5955억 원으로 줄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건보 적립금은 계속 줄어들다가 2026년 바닥나 1조5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법 개설 기관만 제대로 단속해도 건보 재정이 고갈되는 시점을 늦출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투자금 뽑으려 과잉 진료 ‘돈줄’인 사무장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갖은 수법을 쓴다. 환자에게 불필요한 진료를 권하거나 고가의 약을 처방하는 것은 기본이다. 가족이나 지인을 ‘유령 환자’로 둔갑시키고 실제로는 하지 않은 수술비를 청구하는 사례도 있다. 충남 논산시의 B요양병원은 콩팥 투석 환자에게 1명당 20만∼50만 원을 쥐여주고 이들을 입원 환자로 꾸며 2011년 3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299억 원의 건보 진료비를 받아 챙겼다. 아예 설립 단계부터 보험 사기범과 결탁해 가짜 입원 환자를 늘리는 사례도 흔하다. 환자를 유치해온 브로커에게 진료비의 10∼20%를 떼어주거나 월 300만 원을 주고 영업사원으로 고용해 조직적으로 환자를 끌어모은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암 환자만 골라 받은 뒤 비싼 약을 허위로 처방하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2013년부터 정부가 4대 중증질환(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질환) 진료비의 본인 부담을 낮춘 점을 사무장병원이 환자와 결탁해 악용한 것이다. ‘바지 원장’을 앉힌 지 5개월 만에 10억 원을 챙긴 한 한방병원은 입원이 필요 없는 환자에게 “입원 환자 명단에 이름만 올리고 (외출해서) 개인 일을 봐도 된다”는 문자메시지까지 보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진료비 부풀리기는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나타났다. 건보공단이 2017년까지 적발된 사무장의원의 의료 행태를 분석한 결과, 환자 1명당 평균 외래 진료비가 34만8000원으로 일반의원(12만5000원)의 2배가 넘었다. 환자 1명당 입원 일수도 사무장의원은 15.6일, 일반의원은 8.6일로 차이가 컸다. 전문가들은 사무장병원이 수사당국의 감시를 피하면서도 이익을 늘리기 위해 갈수록 교묘한 수법을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건보 혜택이 적용되는 환자는 ‘박리다매’로 저렴하게 치료하되 건보공단이 파악할 수 없는 고가의 비급여 진료를 늘리는 등의 방식이다. 강희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건강보험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사무장병원의 수법이 국가 의료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호경 기자}

    •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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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료 안해도 월급 700만원… 검은 유혹에 넘어간 의사들

    건강보험 재정을 빼먹는 사무장병원의 ‘바지 원장’인 의사와 ‘돈줄’인 사무장은 공생 관계다. 의사는 큰 노력 없이도 월 500만 원이 넘는 월급을 챙길 수 있고, 사무장은 건보 진료비를 청구하며 은행 이자보다 높은 투자금 대비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사무장병원에 이름을 빌려주는 의사 중 대다수는 진료 업무를 보기 어려운 고령의 의사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 6월 사이에 적발된 사무장병원의 의사 206명 중 70대 이상은 18%인 37명이었다. 같은 기간 전국 의사 중 70대 이상의 비율(3%)보다 6배 수준으로 높다. 사무장병원에 가담한 고령의 의사는 직접 진료를 하지 않고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에게 진료를 떠넘기는 일이 많다. 경기 성남시에선 치기공사 출신 사무장 A 씨가 78세 치과 의사의 이름을 빌려 치과 의원을 차린 사례가 있었다. A 씨가 직접 환자를 보다가 엉뚱한 이를 뽑는 일까지 벌어졌다. 면허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 병원이나 약국을 차릴 형편이 되지 않는 젊은 의사나 약사가 타깃이 되기도 한다. 2012년 5월 “월 700만 원을 줄 테니 약사 면허를 빌려 달라”는 사무장 B 씨(57·여)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른바 ‘면허대여(면대) 약국’에서 일하다가 2014년 12월 적발된 약사 C 씨(31)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C 씨는 현재 B 씨와 함께 건강보험 약제비 50억2119만 원과 지연 이자 등 총 60억 원을 갚아 나가고 있다. 사무장과 의사는 주로 온라인 구인 사이트에서 만난다. 25일 한 사이트에서 “원장님을 모십니다”라는 문구로 검색해보니 새로 개설하는 병원에서 원장으로 일할 의사를 찾는다는 글이 20건 넘게 나타났다. 김양균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의사가 사무장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려면 정부가 병의원 개업비용을 낮은 이자로 보조하되 에듀파인 같은 국가관리회계 시스템으로 진료비를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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