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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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사이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http://nambukstory.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zsh75@donga.com

취재분야

2025-11-17~2025-12-17
남북한 관계67%
칼럼23%
사회일반7%
경제일반3%
  • 北, 청산가리 5배 독성물질 담은 ‘볼펜형 독침’ 주로 사용

    북한은 그동안 독극물을 이용한 테러 방식을 자주 사용했다. 소지가 간편하고 은밀하게 범행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북한 공작원 소행으로 추정되는 독극물 이용 테러는 3건이 알려져 있다. 1996년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의 위조지폐와 마약 밀매 유통을 추적하던 한국영사관 최덕근 영사가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괴한들에게 독극물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이어 2011년 8월 21일에는 중국 단둥(丹東)에서 대북 선교활동을 해오던 김창환 선교사가 독침 공격으로 숨졌다. 다음 날인 22일 중국 옌지(延吉)에서도 10여 년간 대북 인권활동을 해온 강호빈 목사가 독침에 찔려 중태에 빠졌다. 강 목사는 기적적으로 소생했지만 이듬해 5월 27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검사 결과 피해자들의 몸에선 모두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이 검출됐다. 네오스티그민은 부교감 신경흥분제로 가공하는 경우 청산가리(시안화칼륨)보다 무려 5배나 더 독성이 강한 독극물로 변한다. 인체에 10mg만 투여해도 호흡정지나 심장마비로 숨진다. 주로 독침을 만년필이나 볼펜으로 위장해 갖고 다니다 테러 대상물 주변을 지나가며 찌른 뒤 도주하는 것이 북한의 수법이다.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테러를 당한 김정남도 이런 방식으로 독극물에 공격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7-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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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극 상공 날아 美타격’ 의도로 ‘북극성-2’ 명명

    북한은 12일 발사한 탄도미사일을 ‘북극성-2형’이라고 명명했다. 스스로 개발한 미사일에 별 이름을 붙이는 북한의 오랜 관행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외부에선 북한의 미사일에 ‘대포동’ ‘무수단’ ‘노동’ 등의 명칭을 붙여 부르지만 북한 내부에선 미사일 종류별로 별 이름을 사용한다. 대전차 미사일의 명칭은 수성(나중에 불새로 개칭), 대함 미사일은 금성, 이동식 지대지 미사일은 화성, 고정식 탄도미사일은 목성이라 부른다. 종류가 가장 많은 미사일은 화성이다. 북한이 자체 제작한 스커드-B 개량형은 화성 5호, 스커드-C 개량형은 화성 6호, 노동 1호 미사일은 화성 7호, 무수단 미사일은 화성 10호로 부르는 식이다. 신형 미사일을 만들 때마다 태양계 행성의 이름을 순서대로 붙인 북한의 미사일 작명 관행을 따른다면 지난해 8월 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는 토성이란 이름이 붙어야 한다. 그러나 북극성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는 이 미사일을 신포급(2000t) 잠수함에 싣고 북극해를 지나 미국 워싱턴을 겨냥하겠다는 최종 목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최후 결전을 위해 북극성이 빛나는 북서항로를 지나갈 미사일이란 뜻이다. 12일 발사된 지대지 미사일에 북극성이란 이름을 단 것도 결국 알래스카 상공을 가로질러 미국까지 날아갈 미사일이란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앞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북극성 계열로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번 미사일 발사에 앞서 김정은이 이틀이나 현지에 머무르며 용기를 북돋았다고 주장했다. 북극성은 김정은 시대에 새롭게 개발되는 미사일 계열이어서 김정은이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분석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7-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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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12일 신형 핵전략무기 ‘북극성 2형’ 시험 발사, 성공” 발표

    북한이 12일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새로운 전략무기체계이자 강위력한 핵전략무기인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 2호”라고 13일 발표했다. 북한 중앙통신 등 관영매체들은 이날 “우리 식의 새로운 전략무기체계인 지상 대 지상 중장거리 전략탄도탄 북극성 2형 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김정은이 직접 발사를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해 8월 함경남도 신포 인근 해상에서 발사됐던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북극성 1호와 똑같이 생긴 미사일이 화염을 뿜으며 발사됐다. 북한은 이번 시험 발사가 “새로 개발한 대출력 고체발동기(엔진)를 이용하는 중장거리 전략탄도탄과 리대식자행발사대(이동식 발사차량)를 비롯한 무기체계 전반에 대한 기술적 지표를 확증하는데 목적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시험발사를 통해 “지상에서의 냉발사 체계의 믿음성과 안정성, 대출력고체발동기의 시동 특성을 확증했으며, 능동구간 비행시 탄도탄의 유도 및 조종특성, 대출력고체발동기들의 작업특성, 계단분리특성들을 재확인하였다”고 밝혔다. 북한 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우리의 위력한 핵공격수단이 또 하나 탄생한데 대하여 더없는 만족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북한의 주장을 종합하면 전날 발사된 미사일은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핵무기 탑재 가능한 신형 중장거리 미사일(IRBM)이란 뜻이다.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2400~5500㎞ 정도로 추정되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전단계로 볼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고체연료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북한은 스커드 계열과 노동 계열의 미사일을 갖고 있지만 KN-2 미사일을 제외하면 모두 액체연료 방식을 사용한다. 액체연료 방식은 연료주입에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주입 이후 일주일 내로 발사하지 못하면 연료를 다시 뽑아야 한다. 하지만 고체연료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발사의 신속성과 은밀성을 보다 높일 수 있다. 이번 발사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이 북한이 “자체의 힘과 기술, 지혜로 리대식탄도탄자행발사대차”를 만들었다고 발표한 점이다.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차량의 경우 엔진과 바퀴 등을 중국에서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북한이 차량을 무한정 늘이기엔 제한이 있었다. 현재 북한이 보유한 미사일 발사차량은 100여대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날 사진에 공개된 북극성2호 발사차량은 무한궤도 방식의 차량으로 과거 북한이 열병식 때 공개했던 미사일 발사차량과는 차이를 보였다. 무한궤도 방식은 먼 거리 이동에는 상당히 약점이 있지만 가까운 거리를 기동하며 발사하기엔 무리가 없다. 북한이 발사 차량을 자체로 대량 생산할 경우 전국 곳곳에 숨겨놓았다가 동시다발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경우 현재 한미연합군이 보유한 요격 자산으로는 대응이 어렵게 된다. 북한 중앙통신은 김정은이 발사날짜를 직접 정해주고 현지에서 이틀이나 머무르며 조립단계에서 발사단계까지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공개한 여러 장의 사진에는 김정은이 발사 과정을 지켜보고, 발사 후 관계자들과 환하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담겼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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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영호 “제네바합의는 빌 클린턴-김정일 사기 합작품”

    “북-미 제네바 합의는 빌 클린턴과 김정일의 ‘사기 합작품’이다.”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사진)가 9일 북한과 미국이 각각 핵 사찰 허용과 경수로 제공을 합의한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태 전 공사가 학술회의에 참가해 발언한 것은 처음이다. 태 전 공사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주최 세미나에서 “북한 외무성에서 처음부터 제네바 합의가 이행될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김정일은 대량 아사와 경제난 속에 미국이 (북한을) 치지 못하게 시간을 벌어야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 외무성이 당시 진단한 클린턴의 속셈은 ‘북한이 곧 무너지니 붕괴될 때까지 안정적으로 관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결국 제네바 합의는 이런 두 속셈이 만든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태 전 공사는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하더라도 ‘북한과 한미의 내부 요인 때문에’ 김정은 정권을 비핵화로 이끌 수 없다고 주장했다. 먼저 북한에서는 “1000억 달러를 준다 해도 이를 대가로 핵무기를 폐기해 경제를 살리자는 말을 할 사람이 없고, 있다면 당장 처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도 북한을 샅샅이 강제 사찰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합의문이라도 서명하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과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일과 모스크바에서 만나 밤새 보드카를 마시며 ‘한반도 종단 가스관 및 철도 건설을 하면 북한이 단번에 부자가 된다’고 설득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이해관계가 얽히는 것이 두려운 김정일은 끝내 넘어가지 않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7-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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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외 없이 토사구팽 당한 북한의 ‘저승사자’들

    “올 것이 왔구나. 나만은 예외일 거라고 간절히 믿고 싶었건만.” 평양의 비밀 장소에서 취조를 받은 김원홍 북한 국가보위상은 지금 이런 심정이 아닐까. 사실 그의 숙청은 오래전부터 예고된 일이다. 필자도 2년 전에 이 칼럼에서 “보위부 수장이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망했다. 김원홍은 기적을 기다릴 것이다. “아직은 해임일 뿐. 내가 김정은을 위해 묻힌 피가 얼마인데 이렇게 죽일 리가 없다.”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김원홍을 처형해 그가 갖고 있을 자신들의 약점을 영원히 묻고 싶을 것이다. 살려두면 언젠가는 복수할지 모른다. 김정은에겐 김원홍의 숙청은 매우 골치 아픈 일일 것이다. 지금까지 말 한마디로 죽인 수많은 간부와는 달리 김원홍만큼 김정은 체제에 기여했던 인물도 없다. 그를 죽이면 김정은을 위해 다시 칼을 들겠다는 인물이 나오지 않을지 모른다. 당장 후임 보위상 임명부터 골치가 아프다. 심지어 “죽을 자리에 임명됐으니 내가 먼저 김정은을 제거해야겠다”고 역심을 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보위 기관의 수장은 김씨 가문의 저승사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예외 없이 비극적 운명을 맞았다. 또 수장이 숙청될 때 다수의 부하도 순장조처럼 함께 처형됐고 가족들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다. 1973년 국가정치보위부 출범 이후 초대 보위부장이었던 김병하는 토사구팽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그는 1970년대 김정일의 후계 구도에 방해되는 인물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해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북한의 모든 권력을 움켜쥔 뒤 김정일은 김병하의 무소불위 권력이 두려워졌다. 김병하는 당의 조사를 받던 중 1980년 자살했다고 알려졌다. 그의 심복들도 대거 처형되면서 기세등등하던 보위부는 쑥대밭이 됐다. 김정일은 “김병하는 애매한 군중을 마구 처형하고 잡아가 당과 대중을 이탈시킨 반당 반혁명 종파”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보위부에 잡혀간 사람이 석방된 일은 없다. 2대 보위부장인 이진수는 1987년 황해도 시찰 중 자다가 ‘밤나무 가스’ 중독으로 의문사했다. 이후 김정일은 한동안 보위부장 자리를 공석으로 비우고 1부부장에게 조직을 통솔하게 했다. 3대 보위부 수장인 김영룡은 김정일의 대학 동창이었지만, 그도 1998년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낙인찍혀 음독자살했다. 이후 10년간 보위부는 사회안전성과 군 보위사령부의 기세에 눌려 존재감을 잃었다. 그랬던 보위부는 2000년대 말 류경 부부장이 김정일의 눈에 들면서 서서히 존재감을 회복했다. 남북회담을 통해 우리에게도 알려졌던 류경은 해외 반탐(방첩) 분야를 담당하면서 이중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던 머리가 비상한 인물이었다. 김정일은 보위부 간부 중에서 류경만을 수시로 독대하며 신임했다. 이러는 바람에 류경은 김창섭 정치국장 등 보위부 간부들과 장성택의 행정부, 이제강의 조직지도부에서 동시에 미움을 샀다. 김정일은 죽음이 닥쳐 온다는 것을 예감하자 아들에게 권력뿐 아니라 돈도 물려주고 싶었다. “무조건 100억 달러를 유치해 오라.” 김정일은 이런 특명을 주어 2010년 12월 류경을 남쪽에 비밀 특사로 파견했다. 비슷한 시기 가신이나 마찬가지인 이수용(가명 이철) 합영투자위원회 위원장을 중국에 보냈다. 이수용은 무산광산 철광으로 갚을 테니 100억 달러의 차관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중국 측에서 “무산의 생산 인프라를 고려할 때 갚으려면 100년이 걸리겠다”는 야유까지 받았다고 한다. 류경이 가져왔던 제안은 지금까지 비밀이지만 정상회담과 경제협력을 미끼로 대규모 차관을 얻으려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2010년 류경이 서울에 와서 남북 정상회담을 합의했지만, 북한의 요구가 지나쳐 무산됐다”고 밝혔다. 류경은 평양에 돌아가자마자 반탐 계열의 심복 10여 명과 함께 처형됐다. 내막을 깊이 알고 있는 북한 전직 고위 간부는 “서울에서 고급 여성 코트 등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를 보고하지 않았던 것도 문제가 됐다”고 회상했다. 류경이 빠뜨린 선물 목록은 함께 서울에 동행했던 여성 수행원이 보고하면서 드러났다. 고위급 간부들에게 전달된 류경의 처형 사유는 “파벌을 형성하고 망탕짓을 했다”는 것이다. 해외 반탐 수장으로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 나가 부화방탕하게 놀았다는 것. 그러나 이것 역시 표면적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김정일은 어린 김정은에게 물려주기엔 류경이 지나치게 야심만만해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김원홍은 이런 보위부 비극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김정일과는 다를지 모를 것이란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보진 않았을까. 하지만 세습 독재 체제의 속성은 3대가 아니라 10대가 가도 변하지 않는다. “세력이 커진 자는 반드시 죽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7-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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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성공단 폐쇄 1년… 대선 주자-입주 기업들, 재가동 요구하는데 대북제재 맞물려… 재가동 가는 길 험난

    “뿔뿔이 흩어진 직원들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식당에서 일하면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집니다.” 김운규 화인레나운 대표(65)는 개성공단에서 북측 근로자 724명과 남측 주재원 17명을 두고 의류가공업체를 운영하며 재작년 연매출 87억 원을 올렸다. 하지만 지난해 개성공단 가동 중단 이후에는 대체 생산 공장이 없는 상태로 1년을 허송세월했다. 김 대표는 “베트남 현지 답사를 4차례나 갔지만 인건비가 낮고 물류 조건이 맞는 곳은 이미 다른 기업들이 선점해 마땅한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금은 개성공단이 다시 열리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北, 개성공단 자산 밀반출 정황 있다” 10일이면 개성공단이 전면 가동 중단된 지 1년이 되지만 입주기업들의 시계는 1년 전 그날에 멈춰 있다. 여전히 기업들은 공단 가동을 중단한 정부를 원망하며 실질적 손실을 보상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7일 통일부는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밥솥 등 일부 제품을 중국에 판매하려고 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 측 관계자들이 중국 현지에서 밥솥 완제품의 사진을 보여주며 거래를 시도했고, 중국 측에서 불법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개성공단 기업들은 그간 북측이 남측 기업들의 자산을 청산하지 않은 것을 개성공단 재개 의지로 해석하며 희망의 끈을 잡고 있었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장은 “아직까지 북측의 큰 움직임이나 반출을 의심할 만한 차량 이동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밥솥을 생산한 기업은 “중국 현지에서 그런 얘기가 들려 확인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해당 기업은 개성공단에서만 한 달에 8만∼10만 개의 전기밥솥을 생산했고 개성공단 폐쇄 당시 상당량을 현지에 두고 온 것으로 전해졌다. ○ 고작 3분의 1 보상 vs 충분히 지원 개성공단 기업들은 피해액 산정과 보상을 둘러싸고 1년이 다 되도록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개성공단 비대위가 추산한 123개 기업의 피해액은 1조5000억 원이 넘는다. 이들은 정부의 지원금이 실제 피해액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투자자산과 유동자산만 보상해 주었을 뿐 영업 손실이나 위약금, 현지 미수금, 영업권 상실 피해 등은 전혀 지원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의류업체 D사 최모 대표는 “피해액은 28억 원인데 보상금은 9억 원에 그쳤다. 베트남에서 공장을 임차해 생산을 이어가고 있지만 협력업체에 제때 대금을 못 주고 있을 정도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런 불만에 대해 정부는 “2015년 개성공단 기업들이 낸 보험료는 14억 원에 불과하지만 정부는 3000억 원이 넘는 보험금을 지급해 최대로 지원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정부 당국자는 “피해 보상에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는 상황에서 100% 지원은 보험 제도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문제”라고 일축했다. 개성공단 비대위가 “입주 기업 과반의 매출이 반토막이 났다”고 한 주장에 대해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 전인 2015년 매출액의 79%를 회복했다”고 반박한 것도 양측의 큰 입장 차를 보여준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상당수 대선 주자가 개성공단 재가동에 동의하고 있지만 실제 재가동이 되려면 난관이 많다. 정부는 개성공단 재개 문제가 논의되기 위해서는 북핵 상황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7일 “개성공단 임금 사용에 대한 대내외적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성공단 가동을 재개한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 논란을 야기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국제사회에 대한 설득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정민지 jmj@donga.com·주성하 기자}

    • 20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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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복을 빕니다]서영훈 前 대한적십자사 총재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기셨다. 개인적으론 친아버지처럼 저를 많이 지도해주신 분이었다.”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로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한적) 총재(사진)의 빈소를 찾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서 전 총재의 부인 어귀선 여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았다. 반 전 총장이 1962년 미국 적십자사 초청 외국학생방미프로그램(VISTA) 대표로 선발돼 존 F 케네디 당시 미 대통령을 만나고 외교관의 꿈을 키우게 된 데도 고인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반 전 총장은 “귀국 후 연락을 드렸지만 어 여사가 ‘상당히 위중하셔서 지금 누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라 오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우리 시대의 선각자였고 국민들한테 많은 가르침을 주신 분”이라며 고인을 애도했고,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는 “혼탁한 세상에서 맑은 샘물 같은 정신적 지주였다”고 평가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천정배 나경원 의원, 김한길 전 의원,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등 각계 인사들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시민사회운동의 원로인 서 전 총재가 4일 오전 9시경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3년 평안남도 덕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6년 홀로 월남했다. 이후 정의사회구현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등 20여 개의 크고 작은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특히 1953년 3월 청소년국장으로 한적에 몸을 담은 이후 청소년적십자(RCY)를 만들기도 한 고인은 한적을 고향처럼 여기고 활동했다. 한적 사무총장 시절인 1980년 민주화운동이 벌어지자 직접 앰뷸런스를 타고 포위망을 헤쳐 광주 시내로 혈액을 날랐던 이야기는 지금도 회자된다. 고인을 오랫동안 보좌한 이병웅 한적 중앙위원(76)은 “광주의 실상을 본 뒤 서울로 돌아와 ‘다친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당국에 산소통을 요구하던 서 전 총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남북회담의 시초인 1972년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을 시작으로 평생 많은 남북회담에 대표로 나서는 등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쏟았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의 대표를 맡아 첫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데에도 역할을 했다. 군사정권 시절인 1983년 고인은 흥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본부 강당을 민주화운동 단체의 집회와 기자회견장으로 제공했다.  서 전 총재는 청렴과 청빈을 평생 신조로 삼고 살아왔다. 민주당 대표 시절 그의 지갑을 열어보니 2000원뿐이었다는 이야기, 한적 사무총장 시절 집에 전화가 없어 그를 찾느라 진땀을 흘렸다는 일화 등을 남겼다. 민주당 대표 시절 ‘3만 원 이상 점심 안 먹기 운동’을 펼치며 정치 문화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유족으로는 어 여사와 아들 홍석 유석 경석 씨, 딸 희경 씨 등 3남 1녀가 있다. 발인은 7일 오전 9시. 02-3410-6903 주성하 zsh75@donga.com·최지연·조건희 기자}

    • 20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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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택 처형주도한 김원홍 보위상, 지난달 3계급 강등뒤 전격 해임

     북한의 핵심 실세로 꼽히는 김원홍 국가보위상(사진)이 지난달 전격 해임됐다고 통일부가 3일 밝혔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이날 “김원홍은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조사를 받고 대장에서 소장으로 3계단 강등된 뒤 보위상에서 해임됐다”고 발표했다. 조직지도부가 보위성에 대한 검열을 계속 진행 중이어서 김원홍의 처벌 수위가 앞으로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이번 검열로 이미 보위성 부상 1명을 포함해 여러 명의 보위성 간부가 처형된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김원홍의 해임 원인은 표면적으론 보위성이 자행한 고문 등 인권유린, 월권, 부정부패 등이다. 하지만 김원홍의 숙청은 오래전부터 예상돼 왔다.  북한 정권이 공안기관을 앞세워 권력 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인사들을 숙청한 뒤 나중에 공안기관 수장도 처형하는 ‘토사구팽’의 역사는 김일성 시절부터 되풀이돼 왔다. 최근 사례로는 2000년 처형된 채문덕 당시 사회안전부 정치국장이 대표적이다. 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 사망 뒤 채문덕을 내세워 2만5000여 명의 간부를 숙청한 뒤 채문덕과 그의 부하들을 모두 죽였다. 1972년 설립된 보위성의 역대 수장들도 모두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김정일 사망 직후인 2012년 4월 보위상에 오른 김원홍은 그동안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등 핵심 실세들을 처형하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김정은의 권력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서 입지가 좁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원홍은 당 실세들의 비리를 상세히 알고 있어서 회생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면 김원홍이 일단 소장 직위는 유지한 만큼 향후 복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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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바보’ 탈북자 유상준

     탈북민 유상준(54)의 첫인상은 어수룩해 보인다. 말주변도 없다. 느릿느릿 말하다 “저처럼 북에서 농사나 짓던 놈이 뭘 알겠습니까”라며 자주 수줍은 표정을 짓는다. 알고 보면 그는 아주 빨랐던 사람이다. 남한으로 오는 게 아주 어려웠던 2000년 12월 남한으로 왔다. 한국 입국 탈북민 3만여 명 중 선착순 1000명 안에 들어간다. 남한에서 상상했던 그의 꿈은 2001년 7월 부서졌다. 아버지를 찾아 탈북했던 하나밖에 없는 12세 아들 철민이가 몽골 국경을 넘다 굶주림과 탈진으로 숨졌다. 차인표가 열연한 탈북 영화 ‘크로싱’(2008년)의 실제 인물이 유상준이다. 아들을 잃고 1년 넘게 우울증, 자살 충동과 싸우던 그는 2003년 훌쩍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엔 한국으로 오는 길을 모르는 탈북민이 너무 많았고, 한국엔 혈육을 데려오지 못한 탈북민이 너무 많았습니다. 먼저 온 내가 이들을 데려와야겠다 생각했죠.” 2004년 그가 첫 번째로 구출한 사람은 철민이 또래인 14세 탈북 소녀였다. 그 소녀는 지금 성균관대를 졸업한 27세 여성으로 성장했다. 이듬해엔 직접 새 탈북루트를 개척했다. 당시만 해도 탈북 브로커들은 한국으로 보내주는 대가로 수백만 원씩 받았다. 유상준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한국에서 7만∼8만 원씩 일당을 받으며 몇 달 일해 돈을 벌어선 중국으로 건너가 탈북민을 구출했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한국에 와서 막노동을 했다. 구출한 사람 중 몇 명이 고맙다고 자발적으로 돈 봉투를 건넬 때도 있었지만 100만 원을 주면 50만 원은 다시 돌려줬다. 그 이상은 받아본 일이 없다. 유상준의 도움을 받아 한국까지 온 탈북민은 500명이 넘는다. 이 중 90여 명은 그가 직접 인솔해 몽골 국경을 넘었다. 그러던 중 2007년 7월 중국 공안에 체포돼 5개월 동안 수감생활도 했다. 내몽골 감옥에서 여름옷을 입고 영하 40도를 견디느라 이가 다 빠질 정도로 골병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그는 1년 넘게 병치레를 하면서도 세탁소 운영과 아파트 경비 일로 돈을 모았다. 그 돈을 들고 2009년 중국에 건너갔다. 다시 탈북민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 대북전단(삐라) 풍선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고 그는 “중국에서 대북전단을 날리면 북한 깊숙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유상준은 중국에서 풍선 가스 구매처를 찾아다녔고, 인쇄물을 찍었다. 그러다 2011년 5월 중국 국가안전국에 잡혔다. 그를 신고한 것은 다름 아닌 탈북 여성이었다. “눈을 가리고 팬티만 입은 채 24시간 동안 내내 맞았습니다. 2명씩 교대로 들어와 때렸는데 너무 맞아서 지금도 기억력이 성치 못합니다.” 그는 다행히 북송되지 않고 한국으로 추방됐다. 몇 년 뒤 자신을 신고했던 여성이 서울에서 탈북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사로 일하는 것을 우연히 보고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며 복수를 하지 않았다. 다시 중국에 갈 수 없게 된 유상준은 한국에 와서도 대북전단을 날려 보내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원통하게 숨진 아들의 한을 풀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대북전단을 보내는 곳을 몇 개월 따라다녔지만, 핵심 ‘영업비밀’은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한다. 탈북 루트를 혼자 개척했던 10년 전처럼 그는 이번에도 혼자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 풍선 타이머를 연구했고, 퇴근해서도 연구에 매달렸다. 동네 재활용장에 사정을 해서 선풍기 타이머들을 모두 뜯어오기도 했다. 0.01mm 니크롬선(발열체의 일종)을 꿰느라 목 디스크가 걸렸다. 잠을 못 자며 4개월 꼬박 고생해 수천 m 상공 영하의 온도에서도 작동하는 타이머를 만들어냈다. 유상준은 요즘 지하철 전동차 청소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한다. 월급은 150만 원 남짓. 주거비와 교통비, 통신비, 쌀값 등을 다 합쳐 자기를 위해 쓰는 돈은 30만 원도 안 된다. 그는 임대 및 관리비가 13만 원인 임대주택에 홀로 살면서 돈이 아까워 난방도 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오랫동안 탈북 고아 2명을 후원했고, 지금도 탈북자 구출 후원금을 보낸다. 아들 둘을 군에서 잃고 홀로 사는 옆집 할머니를 위해선 TV와 전화기를 사주고, 눈 수술비까지 보탰다. 몇 달 월급이 모이면 남의 차를 빌려 대북전단을 조용히 북에 날린다. 그러곤 또 돈을 모은다. 필요한 사람에겐 자기가 연구한 노하우를 전부 가르쳐준다. 유상준의 한국 생활 16년은 이렇게 흘렀다. 그의 인생사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해진다. 그는 자랑할 줄 모른다. 위에 쓴 유상준의 일대기는 그의 지인들에게 듣고 본인에게 확인한 것이다. 하나를 하고 열을 했다고 자랑하기 급급한 이 세상에서, 이런 ‘바보’가 탈북자 중에 소문 없이 숨어 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7-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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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급간부 빈소 찾아 고개숙인 김정은

     김정은이 하급 간부의 장례식장에서 머리를 깊숙이 숙여 조문하는 모습을 북한이 23일 공개했다. 신년사에서 자기반성을 하며 고개를 숙였던 김정은이 새해 들어 독재자의 이미지를 벗고 ‘인간적인 따뜻한 지도자’ 이미지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둔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인 강기섭 민용항공총국 총국장의 빈소를 찾아 깊은 애도를 표시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노동신문에 보도된 사진에는 김정은이 북한군 고위 간부들과 함께 고인의 시신 앞에 깊이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장면과 고인의 얼굴을 만져보며 슬퍼하는 모습이 담겼다. 강 총국장은 고려항공 등 민간항공 부문을 관장하는 기관의 수장이긴 하지만 북한 권력 서열을 따져봤을 때 100인에 끼지 못한다.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후보위원보다 높은 위원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 군부 내각까지 모두 따지면 강 총국장보다 높은 인물은 수백 명에 이른다.  북한 지도자가 서열이 그리 높지 않은 중앙위원회 후보위원급 인물의 장례식에까지 참석해 머리 숙여 조문하고 애통해하는 것은 전례가 거의 없던 일이다. 이 때문에 이번 조문은 두 사람이 특별한 관계이거나, 아니면 ‘부하를 진심으로 아끼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새해부터 김정은은 아이들 책가방을 챙기고, 군인들을 부모의 심정에서 배려하는 언행을 이어가는 등 따뜻한 지도자 이미지를 대중에게 연출하고 있다. 김정은이 인민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은 민생을 실제로 챙긴다기보다는 민심 이반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증거라고 북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7-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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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또 쩔뚝… 수술한 발목 물혹 재발했나

     북한 김정은이 현지 시찰에서 쩔뚝거리며 걷는 모습이 또다시 포착됐다. 2014년 7월 이후 약 2년 반 만이다.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지난해 12월 강원도 ‘12월6일소년단야영소’와 원산구두공장, 원산군민발전소를 시찰하는 장면이 담긴 기록영화를 17일 방영했다. 김정은은 계단을 오를 때 유난히 쩔뚝거리는 모습이었다. 지팡이는 짚지 않았지만 오른쪽 다리에 체중을 많이 실으면서 걷는 점으로 미뤄 왼쪽 다리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2014년 7월 김일성 20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주석단에 오르며 왼쪽 다리를 절뚝이는 모습이 처음 포착됐다. 김정은이 같은 해 9월 25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2차 회의에 불참하고,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에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하지 않으면서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김정은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기간에 유럽 의사들을 초청해 왼쪽 발목의 물혹 제거 수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정확한 병명은 족근관증후근으로 발목 복사뼈 부근에 물혹이 생겨 근육에 손상이 오는 병이다. 국정원은 김정은의 고도비만과 지나친 흡연으로 수술해도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18일 “현재로서는 김정은의 건강상태에 대해 속단하는 것은 이르다”면서 “상황을 계속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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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영호 “김정은에게 비선라인 따로 있다”

     지난해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사진)가 17일 “김정은에게도 대외적으로 보이지 않는 비선실세 라인과 언론에 공개되는 라인이 따로 있다”고 폭로했다.  태 전 공사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른정당 초청 간담회에서 “북한에는 주민도 잘 모르는 김정은의 서기실이 3층짜리 건물에 자리 잡고 있는데 모든 부서에서 올라오는 정책을 김정은에게 전달하고 지시를 하달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은 ‘신(神)’ 밑에 작은 신이 있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2인자는 있을 수 없다”며 “황병서 최룡해 같은 이름 있는 사람을 다 제거해도 북한은 정상적으로 굴러간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실권자는 국가 서열에서 몇 번째인지를 따지는 게 아니라 인사권, 표창권, 책벌권을 누가 쥐고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며 대표적 실세로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박태성 평안남도 당 위원장 등을 꼽았다.  태 전 공사는 또 “앞으로 더 좋은 삶을 찾아오는 엘리트층의 탈북이 늘어날 것”이라며 “최근 한국에 온 고위 외교관이 상당히 많고, 세계 각국에서 한국행을 기다리는 외교관도 많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가 말한 외교관은 탈북한 북한 무역일꾼까지 모두 포괄한 개념으로 보인다. ▼ “최근 한국 온 北고위외교관 상당히 많아” ▼ 한 대북 소식통은 “태영호 전 공사보다 높은 정무직 외교관은 없지만 최근 2년 동안 해외에 파견된 북한 고위급 간부 20여 명이 한국에 조용히 입국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이날 “북한의 핵 무장화를 중단시키는 유일한 길은 북한 정권의 소멸에 있다”며 “휴전선을 통해 집단 탈북을 유도하는 것이 북-중 국경을 통해 탈북을 유도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고 주장했다. 그는 “휴전선 군인들은 북한의 ‘흙수저’만 남아 근무하는 곳”이라며 “이곳에 김정은 체제의 실상을 알리는 전단과 10달러 지폐 등을 지속적으로 살포하면 중국 북한식당 여종업원 집단 탈북 같은 사태가 지휘관을 포함한 군인들 속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에 외부 정보를 지속적으로 유입해 민중 봉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한국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현대적 병원이나 시장경제 원리를 알려주는 평양과학기술대 등 주민들과 접촉할 수 있는 시설을 많이 지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북 식량지원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지원한 식량의 70∼80%는 당국이 다시 실어간다”며 “하지만 분배의 투명성을 강화해 식량의 10∼20%만 주민에게 가더라도 남한에서 식량이 왔다는 사실을 주민이 알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 체제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으로 세습 명분과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점을 꼽았다. 김정은이 자신의 나이와 경력, 후계자가 돼야 한다는 명분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간부들과 주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간부들에게 평양 대성산에 있는 (김정은의 모친인) 고용희(고영희로 알려졌으나 최근 고용희라는 주장이 나옴)의 무덤을 참배시켰는데, 무덤에 ‘선군 어머니 묘’라고만 돼 있을 뿐 묘비에 묘주의 이름도 없다”고 지적했다. 주성하 zsh75@donga.com·강경석 기자}

    • 201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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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영호 “휴전선 군인 北 ‘흙수저’, 10달러 지폐 계속 살포하면…”

    "내게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는 법률적 환경을 마련해 달라. 10년 내에 통일을 선물하겠다." 지난해 7월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17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른정당 초청 좌담회에 참가해 북한의 실상과 자신이 생각하는 통일방안 등을 밝혔다. 2시간 남짓 열린 좌담회에서 태 전 공사는 한국에 온 이후 가장 수위가 높은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는 "북한의 핵무장화를 중단시키는 유일한 길은 북한 정권의 소멸에 있다"며 "휴전선을 통해 집단 탈북을 유도하는 것이 북중 국경을 통해 탈북을 유도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휴전선 군인들은 북한의 '흙수저'만 남아 근무하는 곳"이라며 "이곳에 김정은 체제의 실상을 알리는 전단과 10달러 지폐 등을 지속적으로 살포하면 중국 북한식당 여종업원 집단 탈북과 같은 사태가 지휘관을 포함한 군인들 속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 체제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으로 세습 명분과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점을 꼽았다. 김정은이 자신의 나이와 경력, 후계자가 돼야 한다는 명분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간부들과 주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는 것. 태 전 공사는 "간부들에게 평양 대성산에 있는 (김정은의 모친인) 고용희의 무덤을 참배시켰는데 무덤에 '선군 어머니 묘'라고만 돼 있을 뿐 묘비에 묘주의 이름도 없다"며 "(김정일의 정식부인인) 김영숙이 만경대 가문에 딸을 데리고 가서 설 인사를 했다는 사실을 간부들이 다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북한이 2010년 고용희를 우상화하는 '선군 어머니'라는 영화를 만들어 고위 간부들에게 보여주었지만 베테랑 간부들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반대해 배포하지 못했고 나중에 그 영화를 몰래 본 사람을 처형까지 했다"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한국의 대북 정책에 대해 외부 정보를 유입해 민중 봉기의 환경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한국 민간단체가 평양에 소아병원을 지어주자 감기 걸린 자녀들을 데리고 왔던 고위 간부들이 충격을 받았다"며 "주민들과 접촉이 가능한 현대적 병원이나 평양과학기술대학과 같은 시장경제 원리를 알려주는 대학을 많이 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 지원한 식량은 분배 행사가 끝나면 70~80%는 당국이 다시 실어가지만 나머지는 주민들에게 분배된다"며 "분배의 투명성을 강화해 설사 식량의 10~20%가 주민에게 가더라도 남한에서 식량이 왔다는 사실을 주민이 알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의 통치방식과 동요하는 북한 엘리트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그는 "북한에는 일반 주민들은 모르는 김정은 서기실이 존재한다"며 "모든 부서에서 올라오는 정책을 김정은에게 전달하고 지시를 하달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3층짜리 건물에 상주한 서기실은 중앙당 조직지도부보다 상위에 있는 조직으로 북한을 움직이는 진짜 실세들은 절대 언론에 나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의 공포통치에 대한 사례로 "장성택 숙청 때 소속됐던 노동당 한개 부서(행정부)를 몽땅 숙청했는데 부서를 없애버린 것은 노동당 역사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300명 정도의 부서원 중 부장과 과장까지는 모두 처형했고 나머지는 문건 나르던 애들까지 모두 수용소로 보냈다"고 말했다. 이런 공포 정치 하에 북한 엘리트들의 동요도 심각하다며 "현재 한국에 비공개로 입국한 고위급 외교관이 상당히 많고, 전 세계에서 북한 외교관들이 한국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자신이 영국에 있을 때 만났던 김정은의 형 김정철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김정철은 정치에 흥미가 없고, 북한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며 "평범한 가정에서 출생해 음악가로 발전했다면 유능한 기타리스트가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끝으로 태 전 공사는 "한국에 와서 KBS와 같은 큰 지상파를 제치고 채널A '이제 만나려 갑니다' 프로그램에 제일 먼저 나간 것은 탈북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일을 제일 먼저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강경석기자 coolup@donga.com}

    •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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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 구해달라”…北, 집단탈북 여종업원 가족들과 유엔서 눈물 공세할 듯

    북한이 지난해 4월 중국을 집단 탈출한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의 가족들을 데리고 유엔 무대에 나타날 것으로 알려졌다. 납북자가족모임은 16일 "북한이 여종업원 가족들을 올해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 이사회에 참석시켜 한국에 있는 딸들과 면담을 요구할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금까지 가족 12명의 명의로 유엔인권고등판무관(OHCHR)과 유엔인권이사회 의장에게 편지를 보내 이들이 한국 정부에 납치됐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아예 가족을 유엔 회의에 참가시켜 딸을 구해달라고 눈물 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이러한 행동은 최근 대북 압박이 경제적 제재에서 인권 공세로 전환되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북한은 인권 압박에 대응하는 카드로 탈북 여종업원 가족들을 내세워 역공세를 펴려 하려 하는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시도는 충분한 계산 끝에 내려진 결정으로 보인다. 북한의 공세에 대응해 여종업원 12명은 별로 대응할 카드가 없다. 지난해 8월 사회에 나온 이들이 지금 언론에 등장해 자발적으로 왔다고 할 경우 북한에 있는 가족이 피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쉽게 나서기 어렵다. 설령 이들이 어렵게 자발적으로 왔다고 말했다고 해도 북한은 "남조선 당국이 억지로 증언을 강요했다"면서 "직접 가족들 앞에서 한국에 자발적으로 갔다는 것을 확인하라"고 재차 공세를 펼 가능성이 높다. 또 여종업원들이 북한의 의도대로 자발적으로 오지 않았다고 할 경우 북한은 이를 기회로 "진짜 인권유린국은 한국"이라고 대대적인 역공세를 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4월 총선 직전 정부가 대북 제재가 효력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회심의 카드로 꺼내든 북한 여종업원 집단 탈북 사실 공개가 지금에 와선 북한의 대남 압박 카드로 역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대북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여종업원 집단 탈북에 대한 보복 카드로 중국에서 주요 탈북 인사 또는 한국인을 납치하기 위해 여전히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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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김정은의 반성문 정치와 신년사의 자아비판

     2013년 초 조선인민군출판사 편집부장이 체포됐다. 불평불만을 내세우며 태업하는 등 출판사를 잘 이끌지 못했다는 죄였다. 군인들을 불평하지 못하도록 세뇌해야 하는 사람이 오히려 남보다 더 많이 불평했으니 문제가 크다고 본 것 같다. 그런데 뜻밖에 편집부장은 “죄를 용서해 주라”는 김정은의 지시를 받고 석방됐다. 4월부터 북한 전역에서 이 일을 김정은의 위대한 은덕이라고 선전하는 강연회가 열렸다. 강연회에서 전달된 내용은 이렇다. “원수님(김정은)께서는 그를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읽으시고 ‘그가 지금 한순간 잘못했어도 과거 당을 위해 공을 세운 것이 없겠나. 그의 경력 자료를 다 가져오라’고 했다. 그가 병사 생활을 잘했다는 자료를 보시곤 ‘반성문도 진심으로 솔직히 쓴 것 같으니 99% 잘못했어도 과거 1%라도 잘한 것 있으면 용서해 주자’고 하셨다.” 자칫 정치범으로 낙인찍혀 가족과 함께 사라질 운명에 처했던 편집부장은 그렇게 김정은의 인간미를 전하는 표본이 돼 살아남게 됐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북한에서 사람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반성문을 쓰라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까지 북한에서도 반성문은 명백히 잘못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만 썼다. 그러나 편집부장 사건이 있은 뒤부터는 노인들까지 1년에 최소 한 차례 이상 반성문을 쓰게 했다. 간부나 해외 파견자들은 훨씬 자주 써야 했다. ‘북한 통치의 10계명’이나 다름없는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60개 조항별로 위반 사실을 따져서 최소 10장 이상 써야 했고, 다 쓰기 전엔 집에도 보내지 않는다. 이런 위협적인 말도 꼭 따른다. “솔직히 고백을 하면 과거 잘못은 다 용서가 되지만 반성문에 쓰지 않은 잘못이 드러나면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내가 당신을 봐주려면 솔직히 써야 한다.” 북한은 급격히 불신 사회로 빠져들었다. 친한 몇 명이 모여서 한 일이나 발언이 누구의 반성문에 올라갈지 모르는 일이 됐기 때문이다. 반성문 바람이 불기 5개월 전인 2012년 12월 김정은은 “어디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모두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반성문 쓰기는 동향 파악은 물론이고 불평불만을 막고 공포 분위기를 만드는 데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런 시스템은 김정일의 통치방식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내정된 1970년대에 ‘전국 일일 직보체계’와 ‘생활총화제도’를 만들어 북한을 틀어쥐었다. 일일 직보체계는 당 조직과 국가보위성, 인민보안성이 해당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각자의 라인을 통해 매일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보고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에선 어떤 사건을 숨길 수가 없다. 가령 당에서 일부러 누락시킨 보고가 보위성을 통해 전달되면 처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김정일은 전국을 파악해 장악했고 지금도 이런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된다. 김정은은 여기에 더해 반성문으로 개인별 약점까지 틀어쥐려 하는 것이다. 반성문은 생활총화의 ‘약점’도 보완했다. 생활총화는 대중 앞에서 자아비판과 상호비판을 하는 것인데 함부로 말해 상대에게 해를 입히면 소속 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그래서 남의 결함을 비판할 때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 반면 반성문은 몰래 고자질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심적 죄책감조차 무디게 만든다. 세계에서 가장 정보화에 뒤처진 북한이 김정은 시대에 와서 역설적으로 최악의 ‘빅브러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신문은 북한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보도했다. 지난해 9월 김정은이 만취한 상태로 군 원로를 모아 놓고 “너희가 군사위성 하나 못 만든 것은 반역죄와 같다”고 고함을 치며 밤새 반성문을 쓰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난 김정은은 반성문을 들고 서 있는 군 원로들을 보고는 “왜 모여 있는가. 다들 나이도 많고 하니 더 건강에 신경을 써라”고 말했다. 숙청의 공포에 시달리며 밤새 반성문을 썼던 군 원로들은 긴장감이 풀어져 소리 내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이다. 일본발 북한 기사들은 사실 신빙성을 신중히 따져봐야 하지만 김정은의 ‘반성문 사랑’을 감안할 때 이 보도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정은이 올 신년사에서 자아반성을 하면서 머리를 숙이는 장면을 보며 북한 간부들과 주민은 섬뜩했을 것 같다. 앞으론 “장군님도 저렇게 겸허히 반성하는데, 너희들은 사소한 잘못도 숨길 생각 마라”며 협박당할 일만 남았다. 누구를 숙청할 때 ‘당 앞에 맹세하고 쓴 반성문조차 거짓으로 썼다’며 더 가혹하게 처벌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인민 앞에 매일같이 반성해도 부족한 김정은이 거꾸로 인민에게서 반성문을 받아내는 이 기괴한 장면을 보면 기가 막힐 뿐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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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핵탑재 가능 스커드-ER 실전배치… 한반도전역 사정권

     국방부가 11일 발간한 ‘2016 국방백서’를 보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증강 실태가 여실히 드러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주도로 대량살상무기(WMD)와 포병, 사이버 전력 증강에 나서는 등 비대칭 위협이 날로 고도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플루토늄탄) 최대 12기 제작 가능 북한은 5차례의 핵실험으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Pu)을 상당 부분 사용했음에도 영변 원자로 재가동과 폐연료봉 재처리로 플루토늄 보유량을 50여 kg까지 늘린 것으로 평가됐다. 기존의 보유량 추정치(40kg)보다 10여 kg이 늘어난 것이다. 핵무기 1기에 4∼6kg의 플루토늄이 들어가는 점을 감안하면 핵탄두 8∼12기를 제작할 수 있는 분량이다. 북한이 지하시설에서 원심분리기를 돌려 고농축우라늄(HEU)을 매년 30kg가량 생산하고 있다는 추정까지 감안하면 몇 년 안에 핵무기 수십 기를 보유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대남 기습타격 능력도 진화하고 있다. 북한은 사거리 1000km급 스커드-ER 미사일을 비롯해 휴전선에서 경기 평택 미군기지와 충남 계룡대를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 200km 안팎의 300mm 방사포 10여 문을 실전배치했다.  이번 백서에 실전배치 사실이 처음 명시된 스커드-ER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탄두’라는 표현도 백서에 처음 명시됐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개발 중인 장거리 로켓이 사실상 ‘핵탑재 ICBM’이란 점을 확실히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략군 1만 명, 김정은 치적물 전담부대 편성  북한군 병력은 128만 명으로 2년 전보다 8만 명이 늘어났다. 김정은의 치적 과시용 건설임무 전담부대(공병군단, 도로건설군단)는 인민무력성 산하에 편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군 당국자는 “김정은 치적용 건설 지시를 일사불란하게 수행할 별도의 군 조직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전략군’이 1만 명 규모로 편성된 사실도 확인됐다. 이 부대는 중국의 로켓군처럼 핵과 미사일 전력을 중점 운용할 것으로 군은 보고 있다.  북한은 이날도 ICBM 능력을 과시하며 “미국도 안심할 처지가 못 된다”고 위협했다. 노동신문은 “우리는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를 실현하고 임의의 시각에 마음먹은 장소에 날려 보낼 수 있는 각종 운반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사라진 ‘박근혜 대통령’ 이번 백서에는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사실상 사라지고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표현은 전혀 쓰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나오는 사진은 ‘2016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 사진 1장이 전부다. 이마저 각국 정상 등 100여 명이 등장하는 사진이어서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2014년 국방백서에는 박 대통령이 등장하는 사진이 4장 실렸다.  반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사진은 이례적으로 본문에 2장 실렸다. 박 대통령의 직무 정지로 군 통수권자가 된 황 권한대행의 지위를 감안한 조치로 분석된다. 국방부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23일 발간되는 국방백서 책자 최종본에는 박 대통령 사진 2장을 추가하기로 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주성하·손효주 기자}

    • 201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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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ICBM, 임의 시각-장소서 발사될것”

     북한이 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최고 수뇌부가 결심하는 임의의 시각과 장소에서 발사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김정은의 33번째 생일을 맞아 도발적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미국이 마감 단계에 이른 우리의 대륙간탄도로케트(미사일) 시험발사 준비를 걸고 들고 있다”며 “우리와 상대하려면 우리를 똑바로 알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우리는 상식을 벗어난 속도로 핵무기 고도화를 진척시켜 수소탄을 개발하고 표준화 규격화된 핵탄두까지 보유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발표는 김정은이 1일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라고 말한 것을 미국 측에서 무시한 것에 대한 반발일 가능성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일 “그럴 일(ICBM 완성)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해 북한의 ICBM 개발을 억제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북한이 ‘임의의 시각과 장소’를 강조함에 따라 조만간 북한이 이동식 ICBM을 발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개발한 KN-08과 KN-14 미사일은 사거리가 1만 km 전후로 미국 서부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추정도 있지만 실제로 발사된 적은 없다. 지난해 북한은 사거리 3000km가량인 무수단 미사일도 8번 발사해 7번 실패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은 아직 이동식 ICBM 엔진조차 개발하지 못한 단계”라며 “이동식 ICBM 발사와 관련한 특이 동향은 없다”고 밝혔다. 주성하 zsh75@donga.com·손효주 기자}

    •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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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 숙인 김정은 쇼일까? 진심일까?

     북한 김정은에게 2017년은 집권 이후 가장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최고의 시절이 될 수도, 최악의 시절이 될 수도 있다. 희망의 봄이 올 수도, 절망의 겨울이 올 수도 있다.  대외 환경은 김정은에게 나쁘지 않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출범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흥정이 가능한 상대다. 남한에선 ‘북한 붕괴’를 외치던 보수 세력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여파로 상당히 위축됐다.  반면 나쁜 소식도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확실성’이라는 자신의 가장 큰 무기를 잃게 됐다. 그 무기는 이제 트럼프의 손에 넘어갔다. 트럼프가 언제 분노를 터뜨리고 어떤 일을 벌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나빠지고 있는 경제 사정도 김정은에게 큰 부담이다.  김정은이 장기 집권을 하기 위해서는 핵무기와 민심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카드이지만 둘 다 가지려 하다가는 모두 놓칠 가능성이 높다. 이제 김정은은 핵 무장화의 마지막 직선주로를 계속 뛰어갈지, 아니면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가다듬을지를 결정해야 한다. 2017년 김정은은 어떤 카드를 뽑아 들까. 최근 눈길을 끈 몇 가지 장면을 통해 김정은의 깊은 고뇌를 풀어본다.장면1: 새해 첫날부터 머리 숙인 김정은 2017년 1월 1일=새해 첫날 오전 TV를 통해 김정은의 신년사를 지켜보던 북한 주민들은 뜻밖의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정은이 신년사 끝에 갑자기 자아 반성을 하고 새로운 맹세를 다지며 머리를 숙인 것이다.  “우리 인민을 어떻게 하면 신성히, 더 높이 떠받들 수 있겠는가 하는 근심으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는데 … 나는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우리 인민을 충직하게 받들어 나가는 인민의 참된 충복, 충실한 심부름꾼이 될 것을 새해의 이 아침에 엄숙히 맹약하는 바입니다.” 북한 주민들로서는 평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김정은은 갑자기 왜 이런 모습을 보여야 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북한의 민심 동향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김정은은 집권 첫해인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두 달 뒤인 6월 28일 시장 경제적 요소가 담긴 파격적 경제개혁 조치를 선언했다. 이어 경제특구 24개가 차례로 발표됐고, 농업개혁 조치도 나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첫 연설 이후 5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경제는 전혀 회생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경제특구도 유명무실해졌다.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하는 등 공포통치로 독재자의 이미지는 부각됐고 주민 통제와 수탈은 더 강화됐다.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 조치로 북한의 경제 전망은 어둡다.  한 탈북 엘리트는 이렇게 말했다. “김정은 집권 3년과 5년은 새로운 민심의 변곡점이다. 초기 3년은 기대만 심어주면 됐다. 김정은이 갑자기 잘살게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도 안다. 그러나 3년이 지나서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사람들은 ‘과연 김정은이 우리를 잘살게 만들 수 있을까’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시점에도 변화가 없다면 ‘이젠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해 김정은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바로 그런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김정은이 새해 첫날 머리를 숙인 것은 민심을 얻기 위한 파격 행보다. 그러나 ‘쇼’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젠 정말 민생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가 온 것이다.장면2: “문을 닫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겠다” 2016년 11월 17일=트럼프 당선 후 일주일 남짓 지난 시점에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 장일훈 유엔 주재 차석대사를 대동하고 스위스 제네바에 나타났다. 미국의 대북 전문가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최선희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윤곽이 드러나기 전에는 미북 관계 개선 혹은 협상 가능성에 대해 “문을 닫는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겠다”면서 이런 입장을 트럼프 측에 전달해 줄 것을 부탁했다.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자제하겠으니 협상을 해보자는 뜻으로 보인다. 또 최선희는 트럼프 행정부의 초기 대북정책 재검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를 수차례 미국 측에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급함이 읽히는 대목이다. 최선희는 북한의 대미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위치에 있다.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외무성 미국국은 대미정책의 1안, 2안을 김정은에게 올려 보내 선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최종 결론까지 내서 올려 보낸다”며 “이런 정책 결정에는 노동당도, 군부도 전혀 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쯤 김정은의 집무실 책상에는 향후 대미정책을 담은 외무성의 극비 문서가 놓여 있을 것이다.장면3: 삼지연에서 내린 김정은의 결단은 2016년 11월 27일=김정은이 양강도 삼지연군의 별장에서 3박 4일간의 고심을 끝낸 뒤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등을 대동하고 눈이 쌓인 김정일 동상 앞에 섰다. 3년 전과 판박이이다. 2013년 11월 30일 측근 8명과 함께 삼지연에서 비밀회합을 가진 김정은은 눈이 쌓인 김정일 동상을 참배하고 평양으로 돌아가자마자 전광석화처럼 장성택을 처형했다. 김정은이 나타난 시점은 미국에서 트럼프 당선이 발표되고, 남쪽에선 박근혜 정부가 위기에 몰려 있던 때였다. 이 시점에 김정은은 삼지연에서 무슨 결심을 했을까.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날 김정일 동상 앞에서 “천지풍파가 몰아치고 세상이 천만 번 변한다고 해도 우리 장군님께서 한평생 높이 추켜드셨던 혁명의 붉은 기를 절대로 놓지 말고 장군님의 염원대로 이 땅에 부강 번영하는 인민의 낙원, 사회주의 강대국을 반드시 일떠세우자”고 말했다. 핵무기 개발은 김정일의 유훈인 만큼 미국과 한국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핵 개발은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로 들어서는 순간 ‘인민의 낙원’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는 점은 김정은도 안다. 김정은이 핵을 선택했는지, 민심을 선택했는지는 올해 북한의 행보가 알려줄 것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7-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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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시대에도 없던 철도금지령… 2월 풀릴지도 미지수

     김정은이 북한을 통치한 지 어느덧 5년이 넘었다. 그동안 북한 주민의 삶과 민심은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김정은이 지금까지처럼 계속 핵무기를 갖기 위해 질주하더라도 민심이 이반될 가능성은 없을까. 이를 가늠해보기 위해선 먼저 김정은 치하에서 북한의 경제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철도 대란이 드러낸 북한의 경제 파탄 북한에서 철도는 ‘나라의 동맥’으로 불리는 매우 중요한 경제 분야다. 경제 회생의 선결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전력 수급 상황도 열차 운행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북한 집권자들의 신년사에는 해마다 ‘철도 운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과업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올해 신년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현실은 절망적이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당국은 지난해 12월 초부터 올 2월 초까지 주민의 열차 이용을 금지했다. 전력 사정이 좀 나아지면 다시 원상 복귀한다고 하지만 몇 달 동안 교통대란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김정일 시대에는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주민 열차 탑승 금지령이 내려진 적은 없었다.  철도가 마비된 내막도 기가 막힌다. 북한은 전기 사정 악화로 겨울엔 전기기관차 대신 중국에서 수입한 중고 내연기관차 4대를 이용해 지금까지 열차를 운행해왔다. 그런데 지난해 말 북부지역 수해 복구 작업에 내연기관차를 모두 투입했다가 2대는 충돌로 전복돼 완파됐다. 나머지 2대는 청진철도공장에서 정비를 받고 있지만 중국에서 부품 조달이 어려워 한동안 운행이 불가능하다. 내연기관차 4대가 멈추자 철도 전체가 마비돼버린 것이다. 지독한 경제난에 허우적대는 북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철도만이 아니다. 북한을 지탱할 수 있는 중요 기간산업 중 제대로 가동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나마 수출용 석탄과 광물을 생산하는 일부 탄광과 광산, 피복 공장 정도만 간신히 돌아가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산업 재건은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전망도 밝지 않다. 특히 대북제재 여파로 외화 수급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임수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일국제협력팀장은 “지난해 11월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321호로 올해 북한의 외화 수급은 7억 달러 감소할 것”이라며 “제재가 지속되면 북한의 외환보유액이 4년 안에 고갈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의 과시성 건설사업은 중단이 없다. 김정은은 대북 제재가 무용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4월까지 여명거리 건설을 완공하라고 지시했다. 이 때문에 해외에 파견된 외화벌이 일꾼들과 근로자들은 번 돈의 90% 가까이를 착취당하고 있다. 견디다 못한 해외 파견 일꾼들이 지난해 대거 한국으로 온 것이 이런 사정 때문이다.환율과 쌀값 안정의 불가사의 지난 5년을 돌아보면 경제 파탄과 별개로 불가사의한 현상이 하나 눈에 띈다. 과거 5년 동안 너무나 안정적인 쌀값과 환율이다. 이 지표는 주민들의 생활 안정을 판단하는 지표이다. 김정은 집권 1년 차에 1달러에 8100원 하던 환율은 4년이 지난 지금도 8100원에 머물러 있다. 이 기간 수백 원 차이로 환율이 요동친 적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8000원대에 머물러 있다. 쌀값도 마찬가지다. 2013년 1월 1kg에 5600원이던 쌀값은 올해 1월 4500원에 머물러 있다. 쌀값은 6000원을 넘어선 일이 거의 없다. 위안화 환율이나 잡곡 가격도 마찬가지로 안정돼 있다. 최근 탈북한 북한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현재 북한에선 잘사는 집과 못사는 집의 차이가 쌀밥을 먹느냐, 옥수수밥을 먹느냐의 차이일 뿐 굶주리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경제는 파탄이 나서 회생 가능성이 낮은데 환율과 쌀값은 선진국보다 오히려 더 안정된 것이다. 지난해 3월부터 사상 최강이라는 대북 제재가 시작됐지만 북한 내부의 환율과 쌀값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무슨 비밀이 숨겨진 것일까. 김정은이 단행한 여러 개혁 조치 중에 농업개혁은 어느 정도 효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집체 경작 방식에서 가족 단위 경작 방식으로 바뀌면서 농업생산량이 늘어나 내부 식량가격을 안정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정은이 사회주의 경제 운영을 포기하고 시장 통제를 거의 하지 않아 장마당이 늘어나고 개인 간 상거래가 활성화된 것도 중요한 요소”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기간산업이 붕괴된 상황에서 개인들의 상거래에 의존한 경제성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김일성 배지를 뗀 김정은 새해 첫날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김정은의 가슴에는 ‘초상휘장’이라고 불리는 김일성, 김정일 배지가 달려 있지 않았다. 김일성, 김정일 시신을 참배하면서 배지를 달지 않은 것은 북한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불경죄다. 과거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도 배지 없이 공개석상에 나타난 적이 많았다. 그렇게 하도록 허락할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은뿐이다. 또 김정일은 자기 집권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후계자론’ 등 많은 사상 이론을 만들어 주민들을 세뇌했다. 김정은 시대엔 아직 이런 움직임이 거의 없다. 그가 아버지 시대의 우상화와 주민에 대한 사상적 세뇌에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 대신 김정은은 강력한 공포통치로 사소한 반항의 싹도 단호하게 잘라버리고 있다. 김정일이 사상과 이념, 상징적 행위에 큰 관심을 두었다면 김정은은 실리를 챙기는 데 관심이 크다. 이런 김정은에게 2017년은 모처럼 찾아온 기회의 해이다. 2000년에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경제난으로 돈이 절실히 필요했던 김정일과 남북관계에서 업적을 남기고 싶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던 결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반면에 2008년 이후 남북 관계가 8년 넘게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것은 문을 닫고 후계 작업에 집중하려던 김정일, 집권 후 안방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가장 시급했던 김정은, 북한에 돈을 퍼주고 싶지 않은 보수 정권의 의도가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올해 한국에서 조기 대선이 실시되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 기회가 열렸을 때 빗장을 열고 그것을 잡을지는 김정은이 선택해야 할 몫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7-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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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전문가 “北ICBM 성공 5년은 걸릴것”

     북한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를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가 마감 단계에 도달했다고 주장했지만, 북한이 ICBM을 전력화하기까진 최소 5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미사일 전문가인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의 조너선 맥다월 박사는 5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올해 위성 발사 로켓에 비견될 만한 대형 군사용 로켓을 실험할 가능성도 있지만 첫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2, 3년 뒤면 미국까지 도달이 가능하지만 정확도는 매우 떨어지는 ICBM을 시험 발사할 수는 있다”며 “하지만 이를 무기화하는 데 5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거리를 늘리기 위한 대형 상단 로켓과 고체연료 엔진,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을 북한이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또 맥다월 박사는 “북한은 광명성 로켓이 성공했다고 주장하지만 위성과 탄도미사일은 발사 형태가 달라 서로의 기술을 활용하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위성 추진체는 매우 빨리 상승한 뒤 수평으로 날아가며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을 만큼만 움직이면 되는 반면에 ICBM은 훨씬 높고 멀리 날아가야 하기 때문에 위성 추진체 성공이 곧 ICBM의 기반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위성 발사 로켓 대신 오히려 무수단 미사일(사거리 3000k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ICBM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은 무기 체계”라며 “3년 뒤쯤 모형 핵탄두를 탑재해 시험 발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이를 위해선 예전보다 훨씬 많은 재원을 투입해야 하고, 시험 발사를 넘어 무기화를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7-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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