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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69가 백에게 물러서라고 굴복을 요구한 것인데 백도 70으로 강하게 부딪친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기세의 싸움이다. 백 70에 대해 흑의 응수가 만만치 않다. 맨 먼저 떠오르는 수가 참고 1도 흑 1인데 백이 2, 4로 두면 흑의 약점이 도드라진다. 백 6의 젖힘이 있기 때문. 백 18까지 전반적으로 백이 두터운 모양이다. 알파고는 직접 응대하기가 곤란해지면 상대의 응수를 역으로 물어보는 응수타진의 귀재다. 여기서도 흑 71, 73으로 둬 백에게 “어떻게 받을래”라고 물었다. 만약 백이 평범하게 참고 2도 백 1로 는다면 흑의 의도에 걸려드는 것. 흑 4, 6으로 수습에 성공한 모습이다. 백은 전혀 얻은 것이 없다. 그래서 백 74로 내려뻗는 것은 당연하다. 좌하 흑 한 점이 크게 들어간 상황. 그 대신 흑은 하변 백을 납작하게 누르면서 공격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 하변 백은 완생한 형태가 아니다. 그런데 흑 77 때 당연히 A로 둬 흑 한 점을 잡아야 할 것 같은데 백 78로 응수한 이유는 무엇일까.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와 같이 부딪쳐 가는 알파고의 수법은 고 우칭위안(吳淸源) 9단이 실험적으로 쓰던 수법이다. 한때 잊혀졌는데 알파고가 부활시키고 있다. 흑 ●에 대해 참고 1도 백 1처럼 밑에서 젖히면 어떨까. 보통은 강수인데 지금은 흑 2로 젖혀 백이 좋지 않다. 흑 8까지 축이 흑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하변에 둔 흑 한 점이 이것까지 내다보고 둔 것이라면 소름 끼칠 일이다. 백 56으로 자연스럽게 벌릴 때 흑 57이 뜻밖의 수. 이렇게 즉각 뛰어드는 것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그냥 응수타진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흑은 59, 61로 바로 움직인다. 이건 속수(俗手)라고 해서 프로기사들은 거의 두지 않는 수. 흑 59 대신 참고 2도 흑 1로 두는 것은 흑에게 전혀 소득이 없는 그림이 나온다. 백 62로 한 점을 살리지 않고 밑으로 단수해 넘어가는 수도 나쁘지 않다. 어쨌든 백 62를 선택하면 68까지는 필연의 진행. 흑의 속수가 통념대로 나쁜 것일까, 아니면 통념일 뿐 나쁘지 않은 것일까.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로 패를 걸어간 것은 37의 팻감을 믿고 있었기 때문. 여기서 백이 참고 1도 백 1로 패를 해소하는 것은 흑 2, 4로 끊겨 곤란하다. 흑 6으로 하변 백 넉 점이 고립무원에 빠진다. 그래서 백 38로 받아주고 흑 39(○)로 패를 딸 때 40으로 물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제 흑 중앙을 보강하지 않으면 백 A의 급소 한 방이 빤히 눈에 보인다. 흑 41은 좀 허한 느낌은 있지만 A의 위력을 반감시킨 의미는 갖고 있다. 흑 43은 두터움을 취하면서 백이 45의 곳에 잇기를 바란 수. 하지만 프로기사나 알파고 같은 고수라면 후수로 잇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백 44의 반발은 당연한 한 수. 이때 흑은 45로 끊어갔는데, 검토실에선 참고 2도 흑 1이 좋아 보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백 2로 강하게 응수하면 백 14까지 진행되는데 흑이 실전보다는 나아 보인다는 평이다. 흑 51은 ‘알파고스럽다’고 할 만한 수. 60∼70년 전 우칭위안(吳淸源)이 즐겨 쓰던 수법이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에 대해 흑 19는 예상 밖의 수. 알파고가 하도 ‘붙이는 수’를 좋아하니까 이젠 봐도 놀랍진 않지만 아직 프로기사들도 쉽게 손이 나가는 곳은 아니다. 알파고 제로의 주문은 참고 1도 백 1로 젖혀달라는 것. 그러면 흑 8까지 예상된다. 전에는 대부분 백 1로 흑이 좋지 않다고 봤다. 알파고의 생각은 다르다. 참고 1도는 흑이 좋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백 20으로 느는 것은 알파고 입장에선 정수. 흑은 25까지 탄력을 갖춘 뒤 흑 27로 뛴다. 좋은 감각이다. 알파고의 경기에선 초반에 느슨한 수를 찾아볼 수가 없다. ‘효율과 선수’를 중시하는 알파고가 선택한 행마이다. 백 28로 참고 2도 백 1의 마늘모 행마를 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흑 2를 선수하고 흑 4로 먼저 좌변을 둔다. 이는 알파고가 좋아하는 진행. 흑이 선수를 잡았기 때문이다. 흑은 33까지 아낌없이 밀어버린 뒤 35로 패를 걸어간다. 그런데 백이 따내면 팻감은 있는 걸까. 언뜻 보기엔 딱 떨어지는 팻감이 없는 듯한데….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알파고 제로와 알파고 리는 20국을 뒀다. 10국은 제로가 백번으로, 나머지 10국은 흑번으로 뒀다. 앞서 소개한 두 경기는 제로가 백번이었다. 이번엔 흑번으로 둔 대국을 소개한다. 흑 1∼5는 제로가 흑으로 둘 때 좋아하는 포진. 흑 7의 삼삼 침입은 이젠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진다. 요즘은 참고 1도 흑 1로 걸치는 것도 종종 등장한다. 흑 9까지 실리를 취하는 것이 최근 트렌드. 여기서 백 10으로 젖혔는데 그동안 알파고는 주로 12 자리에 날일자로 뛰는 수를 많이 뒀다. 그 선택 기준은 무엇일까. 선후수의 차이다. 실전처럼 두면 후수를 잡는다. 참고 2도 백 1은 선수를 잡고 싶을 때 쓴다. 지금은 흑 6, 8로 두는 수가 크다고 보고 백은 실전을 택한 것. 흑 17은 알파고가 좋아하는 ‘들여다봄’이다. 여기서 그냥 이어줄 고수는 없다. 알파고 리 역시 18로 강하게 받았다. 여기서 흑은 기상천외한 수를 들고나온다. 이젠 프로기사들도 대략 예상이 가능해지긴 했지만 말이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마지막 수인 백 290 때 참고 1도 흑 1이 최선의 응수다. 그러나 백 10까지 반면으로 비슷한 형세다. 얼마 전 한 중국 바둑 사이트에서 중국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줴이(絶藝·FineArt)가 커제와 롄샤오 9단에게 백 번으로 덤 6집 반을 주고 승리했다. 사실상 2점을 접는 것과 마찬가지인 치수에서 인공지능이 이겼다는 것은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다. 그만큼 인공지능은 더욱 진화하면서 인간과의 격차를 점점 벌리고 있다. 알파고 제로는 이 바둑에서 아주 조금씩, 꾸준히 앞서나갔다. 그 결과 참고 2도 때 실리의 균형이 무너졌다. 백 1, 3의 콤비 블로가 멋지다. 확실히 앞선 기량을 보여주며 알파고 리를 제압한 알파고 제로의 완승국이다. 163·191·197·205·213·223·229=35, 188·194·200·210·216·226·234=102, 218·236=152, 221·252=155, 249·282=245, 250=32, 253=153, 263=64, 277=201, 284=203. 290수 끝 백 불계승.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좌변 패는 결국 흑이 굴복한 채 끝났다. 이로써 승부의 변수는 거의 사라진 셈이다. 그러나 알파고의 낙관 모드는 이번에도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흑 45는 기억해둘 만한 끝내기의 맥. 흑 51로 민 뒤 55에 붙인 것이 뭔가 있어 보이지만 백은 참고 1도 1, 3으로 두면 그만이다. 그런데 백은 56으로 상변에서 딴청을 부린다. 백 56이 선수이긴 하지만 흑 57로 백 석 점이 잡히는 것에 비하면 작은 곳. 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수확을 보았다. 물론 알파고 제로는 백 64까지 선수로 5집을 벌어 형세가 뒤집히진 않았다. 수순 중 흑 59로 참고 2도 1로 막으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백 2부터 10까지 백의 이득이 적지 않고 ‘가’로 패를 따내 백 석 점이 살아가는 수단이 있어 흑이 신통치 않은 결과다. 백 66이 생각보다 두터운 곳. 이 수로 우변 흑 대마가 고립됐다. 흑 대마가 죽을 돌은 아니지만 생사를 미끼로 끝내기에서 이득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49=45, 50=○, 53=●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좌변 패는 백이 이길 확률이 높다. 이단 패여서 그렇지 흑 대마는 생사가 걸려 있는 반면 백은 져도 손해가 거의 없기 때문. 백은 그래서 패를 서둘러 해결할 이유가 없다. 상황을 봐서 슬슬 패를 하다가 이기면 좋고 져도 상관없다. 그래서 백 14처럼 팻감이라기보다는 큰 끝내기를 두는 것에 더 주력하고 있다. 흑도 패보다는 15의 큰 자리를 두며 버티고 있다. 흑 23으로 패를 따낸 수로는 참고 1도 1로 두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가 나왔다. 좌변 패는 지지만 백 6의 가일수를 이끌 수 있다는 것. 흑이 참고 1도를 택하지 않자 백 24가 맛 좋은 역 끝내기가 됐다. 흑 27 때 백은 참고 2도처럼 1로 둬 패를 계속해도 된다. 만약 흑이 2로 우상 백을 잡는다면 백도 3으로 좌변 흑을 잡는다. 이건 흑이 손해 본 그림. 그러나 알파고 제로는 백 28로 참아둔다. 좌변 패는 결국 흑이 37로 물러섰다. 이로써 백의 승세가 굳어졌다. 13·23·29=●, 16·26·34=10, 21=●, 36=18.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의 패가 끝내기로 접어든 지금 상황에선 제법 크다. 흑 95의 팻감에 백은 손을 빼도 살아 있다. 만약 참고 1도 백 1처럼 패를 계속 때려내면 흑 2가 있다. 백은 3, 5로 응수해 사는 데는 아무 지장 없지만 흑은 선수로 6집을 벌어들였고, 좌변 대마도 선수로 살릴 수 있다. 이 대마가 선수로 살게 되면 패의 가치는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백 96의 보강은 당연하다. 흑 101은 손해 팻감. 하지만 알파고 리는 패를 이기고 싶어 약간의 손해를 감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패를 계속하지 않고 흑 103으로 둔 건 이해할 수 없는 수. 백이 참고 2도 1, 3으로 두면 흑의 손해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파고 제로는 맘 좋은 아저씨처럼 백 104로 물러선다. 알파고 특유의 ‘안전 운행’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흑 103의 헛수를 둔 뒤로 좌변 패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 흑백 모두 관심을 쏟을 필요가 없어진 것. 그래서 패를 내버려 두고 백 106, 흑 107로 큰 곳부터 두고 있다. 94·100=○, 97·105=91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가 볼수록 좋은 수다. 이런 수를 쉽게 발견해내는 알파고 능력이 대단하다. 백 ○는 이어 74로 붙이기 위한 희생타. 여기서 참고 1도 흑 1로 두면 백은 2로 막아 원하던 그림을 얻게 된다. 그래서 알파고 리는 흑 75로 강수를 던졌으나 백은 알기 쉽게 82까지 둔다. 하변 흑 집을 모두 파괴하며 짭짤하게 백 집을 만들었다. 원래 하변 흑 모양은 20집은 날 곳이었다. 사실 그 이상으로 집이 나야 형세를 맞출 수 있었지만 중앙 백이 두터워서 평가절하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전처럼 진행되고 보니 오히려 백 집이 더 많이 난 상황이다. 수순 중 백 78로 참고 2도 백 1에 두면 흑은 2, 4로 둬 어느 정도 흑 집이 만들어진다. 백에게는 실전보다 못한 그림이다. 흑은 87까지 백 한 점을 끊어 잡으며 두터움을 확보했으나 하변을 공터로 만든 대가로는 너무 작아 보인다. 하변이 정리된 뒤 백 88로 때려내는 것도 이제 와선 크다. 백이 탄탄하게 우세를 굳혀가고 있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은 좌변에서 55로 패를 걸었다. A에 둬 그냥 백 두 점을 잡고 후수로 사는 것은 쉽게 지는 길로 판단한 것이다. 흑의 이런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백의 대응 역시 좋았다. 백 56으로 우하 뒷맛을 없애며 아예 패를 무시해버린 것. 백 56은 참고 1도 흑 1, 3을 방비한 것이다. 사실 좌변 패는 흑이 단번에 해소할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여러 수를 들여도 백이 큰 피해를 보지 않는다. 알파고 리는 패싸움을 하지 않는 백에게 화가 난 것일까. 흑 57, 59, 61로 동분서주하며 응수를 묻는다. 하지만 흑 59는 백 60과 교환돼 명백한 손해인 데다 나머지 수도 공연히 팻감만 없앴다. 알파고 리는 내친김에 흑 63으로 패를 한 번 더 때려냈지만 알파고 제로는 역시 ‘무시’ 일변도다. 백 64로 하변을 파괴한 데 이어 72로 붙여 좌하귀도 정리하겠다고 나섰다. 수순 중 흑 67 대신 참고 2도 1, 3에 둬도 백 4, 6이면 아무 소득이 없다. 흑이 점점 수렁에 빠지고 있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38로 끊어간 것은 야구로 치면 적시타. 빈틈없는 끝내기 수순이다. 이곳을 등한시하다가 흑이 먼저 참고 1도 1, 3을 두면 실리로도 크지만 선수도 흑에게 넘어간다. 흑 39는 애매한 수. 중앙 흑 두 점을 탈출시키는 것을 노리는 수이긴 한데 40, 42와 교환돼 이득이라고 보기 어렵다. 흑 두 점 탈출의 뒷맛도 사라졌고 약점도 남았기 때문이다. 물론 알파고는 이해득실을 계산하고 두는 것이겠지만 늘 맞는 것은 아니다. 흑 43으로 잡을 수밖에 없을 때 백은 48까지 흑집을 제법 많이 부수면서 끝내기를 하고 있다. 흑으로는 뼈아픈 수순들. 그렇다고 흑 47로 참고 2도 흑 1로 두는 것은, 백 6까지 흑이 잡혀서 안 된다. 상변에서 든든히 배를 채운 백은 50으로 따내 좌변 흑의 삶을 강요한다. 백 54 때 A로 뒤에서 몰면 몰아떨구기가 성립해 흑은 산다. 그런데 흑은 여기서 완전히 딴생각을 시작했다. 형세가 여의치 않으니까 판을 크게 흔들어 보려는 것이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는 선수를 잡기 위한 수. 백은 14로 좌변 흑의 삶을 강요하면서 자신을 먼저 보강한다. 백 22까지 흑은 원하는 대로 선수를 잡았지만 백은 흑 두 점을 잡으며 두텁게 처리해 백의 우세가 뚜렷해졌다. 백 중앙이 두터운 만큼 흑 23으로 우변 흑 석 점을 연결한 것은 시급하다. 이렇게 보강을 해야 한다면 이전에 흑이 손해를 보면서도 우하귀 삼삼으로 뛰어들었던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삼삼을 두지 않았다면 백이 우변 석 점을 먼저 공격해 왔을 가능성이 높지만 흑은 그 공격을 버텨내는 게 실전보다 나았을 것이다. 백 24로 붙여 차단하는 수는 이전부터 노리던 곳. 흑 29는 정확한 수순. 단수라고 해서 참고도 흑 1로 이으면 흑 5 때 백 6으로 두는 묘수가 기다리고 있다. 백8까지 흑이 완벽히 걸려든 모습. 여기서 백도 31의 곳에 둬 한 점을 따내는 것은 기분만 내는 꼴. 흑이 30의 곳에 두어 뚫어버리면 흑만 실속을 챙긴 모습이다. 우변 흑은 35로 지켜 완생. 이제 남은 건 하변. 흑이 견고하게 진을 치고 있는 것 같지만 중앙 백이 워낙 두터워 쉽게 흑 집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또 ‘폭파 전문가’인 알파고가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 같은데….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우상귀 흑 ○를 두기 위해 ○의 손해수를 둔 것이 옳은 판단이었는지는 차후에 알아보기로 하자. 백은 98, 100으로 손을 돌려 좌변 흑을 먼저 공략한다. 흑 101로는 참고 1도 흑 1처럼 먼저 단수하면 가장 안전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흑 1, 백 2의 교환 자체가 악수인 데다 ‘가’와 ‘나’의 선택권도 백에게 넘어간다. 흑 103의 단수에 백은 손을 뺐다. 백으로선 한 점을 잇는 게 선수인데 굳이 손을 빼서 실전처럼 흑이 한 점을 때려내게 한 건 손해가 아닐까. 이걸 설명하려면 복잡한데 간단히 말하면 ‘가능성이 열려 있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미미한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흑 105로는 참고 2도 흑 1로 밀어 백 두 점을 잡는 게 쉽지 않을까. 하지만 백 4가 강력한 붙임. 백 12 이후 14로 살려 나오면 흑이 곤란하다. 게다가 백 ‘다’, 흑 ‘라’, 백 ‘마’로 두는 뒷맛이 강력하다. 백 112의 급소에 흑 113으로 강력히 저항하는 흑. 아무래도 형세가 여의치 않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이 84로 중앙에 끊기는 약점을 보강했는데도 흑은 아랑곳없이 85, 87로 끊어간다. 흑도 부담스럽지만 백에게 골칫거리가 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놓자는 뜻이다. 그러나 백도 당장 겁낼 이유는 없다. 아직 좌변 흑이 미생이기 때문에 중앙 백이 생각보단 위험하진 않다. 흑은 중앙 석 점을 살리지 않고 우 하귀에서 93으로 달린다. 진작부터 두고 싶던 자리다. 그런데 이때 알파고 리가 의아한 수를 던진다. 흑 95는 백 96과 교환돼 그 자체로 손해 보는 수. 여기는 참고 1도 흑 1을 먼저 두는 것이 정수다. 백 2로 이으면 흑 3, 5가 기분 좋다. 백이 참고 2도 2로 받으면? 이때도 백 8까지 선수 이득을 취한다. 이 같은 수를 모를 리 없는 알파고가 굳이 흑 95와 같은 손해수를 자청한 것은 선수를 잡고 싶었기 때문. 보면 우변 흑 석 점이 약한데 95가 있어 이젠 손 빼도 거의 완생 형태다. 하지만 95로 손해를 본 대신 차지한 흑 97이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을까.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이 좌상에서 시한폭탄을 터뜨리면서 반상이 어지러워질 조짐이다. 백 64를 보면 ‘어이쿠’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흑을 양분시킨 백돌들도 강하지 않은데 어떻게 상변 흑 진으로 거침없이 뛰어들 수 있을까. 답은 참고 1도가 보여준다. 흑 1로 쉽게 대응하면 백은 2로 뛰고 4, 6으로 끊는다. 이래선 전보에서 애써 살린 우변 흑 돌이 도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다. 그래서 흑도 65로 강력하게 둬야 한다. 하지만 백 66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흑에게 참고 2도 1로 이으라고 주문을 거는 수다. 이어 백 2로 강력하게 틀어막는 것이 준비된 수. 만약 흑 3으로 끊는다면 백 10까지 좌변과 좌상 흑 모두 완생이 아니기 때문에 흑의 무리로 보인다. 타개에 있어서는 알파고가 탁월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깊숙한 침입을 서슴없이 구사할 수 있는 것 같다. 흑 75는 생략할 수 없는 수. 두지 않으면 A로 끊기는 수가 있다. 백은 80까지 중앙에서 좋은 모양을 갖추며 선수를 잡았고 흑은 상변을 지키는 것으로 서로 타협했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전보 마지막 수(●)로 돌아가 보자. 보통 우하 귀에 더 손을 댄다면 참고 1도 흑 1로 삼삼을 파고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알파고는 백 2, 4로 타개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백은 한 점을 뜯기는 게 속 쓰리지만 귀를 지키면서 전체 돌을 안정시켜 불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흑은 우하 귀를 결정하기 전에 ●로 우상귀 대응부터 물어본 것. 백이 50을 먼저 두고 52로 붙이는 것은 인간도 흔히 쓰는 수법. 인간의 기보를 배우지 않은 알파고 제로가 같은 수법을 쓰는 걸 보면 인간이 잘못된 방향을 걸어온 것 같지는 않다. 흑은 57로 흑 두 점을 살린다. 참고 2도 흑 1, 3으로 귀를 차지할 순 있으나 백 4로 두 점 잡히는 것보단 작다는 뜻이다. 흑 61까지 탈출 모양은 갖췄으나 A로 붙이는 뒷맛이 남아 있다. 이때 백은 생각보다 일찍 시한폭탄에 불을 댕겼다. 백 62로 좌상 한 점을 살린 것. 우려대로 좌변 흑과 좌상 흑이 갈라졌다. 당장 목숨이 경각에 달한 건 아니지만 까칠한 이 상황을 흑은 어떻게 타개할까.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가 흑의 입장에선 눈엣가시 같은 돌이다. 이 돌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흑이 위아래로 끊겨서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 물론 백도 지금 바로 움직일 때는 아니다. 주변 여건이 성숙하길 기다리면서 좌하 백말부터 보강한다. 그 대신 흑 41과 같은 요처를 흑에게 넘겨주는 건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보통이라면 참고도 백 1로 받는다. 그럼 흑 2가 있다. 어중간한 수처럼 보이지만 백이 받아준다면 자체로 이득이고 받지 않는다면 흑 한 점을 살려 백을 공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흑 2 같은 수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알파고는 화점에서 양걸침을 당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그래서 흑 41에도 응수하지 않고 백 42로 슬쩍 흑의 옆구리를 한번 찔러 본 다음 44로 다시 좌하 백을 보강한다. 알파고의 행마를 보면 전성기의 이창호 9단을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남들은 다 ‘발(행마)이 느리다’ ‘너무 두텁다’며 의아해할 때 이 9단만은 그 가치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만약 알파고가 이 9단 전성기 때 나왔다면 굉장히 재미있는 바둑을 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흑은 백의 느린 행마를 틈타 45를 선착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우변에선 흑이 주도권을 잡았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아무래도 흑의 초반 포석에 문제가 있다. 아직 20수가 안됐는데 이번에도 백이 두터운 진행이다. 백 20의 삼삼침입에 흑 21로 막은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반대쪽으로 막으면 좌변을 키워야 하는데 큰 집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 24에 흑 25의 젖힘이 곧바로 검토실의 지적을 받았다. 참고 1도를 보자. 흑 1로 늘어두는 것이 실전보다 좋았다는 것이다. 백 6까지 실리로는 손해지만 실전보다 훨씬 두터운 데다 선수를 잡을 수 있다. 백도 참고 1도는 싫기 때문에 참고 2도 백 2로 응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흑 9까지 백은 선수를 잡고, 흑은 실전보다 두터운 모양을 갖게 돼 서로 불만이 없다. 백 26으로 젖힌 뒤 32까지 살아가자 흑 모양을 끊은 백 한 점이 흑에겐 눈엣가시 같다. 주변 여건만 성숙되면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그나마 흑 33이 좋은 행마. 백은 좌상 한 점이 움직이는 뒷맛을 남겨두고 34로 좌변 수습부터 나섰다. 벌써 백의 두터움이 돋보이는 초반이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끝내 역전은 없었다. 종반 백 2집반 승이 확실했으나 백이 자기 집에 가일수하면서 손해를 봐 막판에는 백 반집 승까지 좁혀졌다. 하지만 알파고 리는 계가를 하지 않고 돌을 거둬 결국 백 불계승이 됐다. 알파고 제로가 백, 알파고 리가 흑을 잡고 둔 10국 중 백 10까지 똑같은 모양을 10번이나 뒀다. 다만 리는 이 대국 이후 흑 11의 세 칸 높은 협공을 다시는 두지 않았다. 백 22까지의 결과가 불만이었다는 뜻이다. 어디서 승패가 갈렸을까. 흑에게 딱히 눈에 띄는 실수는 없었다. 프로기사들은 참고도 시점에서 백이 이미 앞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백은 좌변을 깨끗하게 넘어가고 흑 8 이하의 공격도 백 19까지 깔끔하게 막아냈다. 그런데 승리가 확실해지자 알파고 제로는 끝내기에서 이해 못할 실수들을 저질렀다. 그래도 승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끝내 반집을 사수했다. 이미 계산이 끝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기보를 전혀 보지 않은 알파고 제로의 완승국이다. 111·243·255·261·267=73, 214=211, 240·246·258·264·270=78. 270수 끝 백 불계승.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