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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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5-11-17~2025-12-17
문화 일반51%
인사일반20%
문학/출판10%
기획7%
무용3%
사고3%
칼럼3%
기타3%
  • [책의 향기]프랙털처럼… 위로는 아주 작은 단위에서 시작된다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수학에선 ‘프랙털’이라고 부른다. 1975년 프랑스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1924∼2010)가 처음 쓴 개념이다. 사실 자연에서도 프랙털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안선의 한 부분을 가까이에서 보면 멀리서 봤던 전체 해안선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 고사리의 커다란 잎은 작은 고사리 잎과 똑같이 생겼다. 프랙털을 인생에도 적용해 보자. 우리는 아침에 깨어나 오늘 뭘 할지 생각한 뒤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 할 일을 끝내며 ‘하루’를 마감한다. 길게 보면, 봄부터 겨울까지 ‘1년’도 이렇게 흘러간다. 인생은 어떤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계획하고 준비하고 성년기에 열심히 일하다 노년기엔 ‘생애’를 되돌아본다. 하루와 인생은 어쩌면 프랙털처럼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가 아닐까. 미국 예일대의 수학과 교수였고 망델브로의 ‘절친’이었던 저자(사진)는 “수학을 들여다보면 인생에 대한 통찰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지독한 슬픔을, 이를 버텨낼 위로를 수학이 준다고 한다. 학창 시절 내내 우리를 힘겹게 했던 수학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고 있으면 잡념을 없앨 수 있다는 식의 단순한 주장은 아니다. 수학은 자연에 숨겨진 법칙을 찾아내는 일이기 때문에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요지다. 저자는 프랙털을 거론하며 “큰 상실 안엔 작은 상실이 겹겹이 놓여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을 때 크게 슬퍼하는 건 그와 공유했던 사소한 일상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함께 밥 먹고, TV 보며, 수다 떠는 작은 일상의 상실이 모여 누군가를 떠나보냈다는 커다란 상실을 이룬다. 마치 프랙털처럼. 이 때문에 우리가 인생의 큰 상실을 극복하려면 하루하루의 자그마한 상실부터 먼저 회복해 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x축과 y축으로 이뤄진 수학적 공간에 그린다면 어떻게 나타날까. x축은 시간이라 가정하고, y축은 두려움이나 슬픔, 화남 같은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그래프를 그리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드러나는 감정을 제대로 파악해볼 수 있지 않을까. 슬픔이 이 그래프에서 하나의 선을 그린다고 치자. 이때 이 선과는 만나지 않는 하나의 ‘불연속적인 경로’가 더 있다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 슬픔과는 상관없는 또 다른 감정의 선으로 슬픔의 무게를 덜어내자는 시도다. 수학에서 도형이나 입체를 다른 평면으로 옮긴다는 개념인 ‘투영’처럼 다른 곳으로 감정을 투영해 현재의 삶을 유지하자고 저자는 말한다. 책에 등장하는 수학 개념은 전공자나 수학에 해박한 이가 아니라면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감을 잡기 힘든 대목도 나온다. 하지만 저자는 수학을 자신의 실제 경험과 연관지어 설명해 읽는 이의 머리보다 가슴을 먼저 파고든다. 그래프로 인간의 감정을 그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싶다가도, 어머니를 잃은 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수학에서 감정이란 어떤 것인지 해답을 구하려는 모습은 울림이 컸다. 7년이 지난 뒤 아버지마저 여의고선 삶의 관심을 ‘투영’할 곳을 찾아 헤맸다는 고백은 괜스레 뭉클해지기까지 한다. 올해 7월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8월 서울대 학위수여식 축사에서 “수학은 어떤 무(無)모순적 정의도 허락한다”고 했다. 수학으로 인생을 정의해 보려고 했던 저자는 과연 ‘모순이 없는 정의’에 다다랐을까. 철학자들이 수학을 파고든 건, 어쩌면 수학이 인생에 대한 학문이란 걸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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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랙털 이론으로 인생을 이해할 수 있을까’…美 수학자의 진심 어린 조언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수학에선 ‘프랙털’이라고 부른다. 1975년 프랑스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1924~2010)가 처음 쓴 개념이다. 사실 자연에서도 프랙털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안선의 한 부분을 가까이에서 보면 멀리서 봤던 전체 해안선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 고사리의 커다란 잎은 작은 고사리 잎과 똑같이 생겼다.프랙털을 인생에도 적용해보자. 우리는 아침에 깨어나 오늘 뭘 할지 생각한 뒤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 할 일을 끝내며 ‘하루’를 마감한다. 길게 보면, 봄부터 겨울까지 ‘1년’도 이렇게 흘러간다. 인생은 어떤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계획하고 준비하고 성년기에 열심히 일하다가 노년기엔 ‘생애’를 되돌아본다. 하루와 인생은 어쩌면 프랙털처럼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가 아닐까.미국 예일대의 수학과 교수였고 망델브로의 ‘절친’이었던 저자는 “수학을 들여다보면 인생에 대한 통찰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지독한 슬픔을, 이를 버텨낼 위로를 수학이 준다고 한다. 학창시절 내내 우리를 힘겹게 했던 수학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어려운 수학문제를 풀고 있으면 잡념을 없앨 수 있다는 식의 단순한 주장은 아니다. 수학은 자연에 숨겨진 법칙을 찾아내는 일이기 때문에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요지다.저자는 프랙털을 거론하며 “큰 상실 안엔 작은 상실이 겹겹이 놓여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을 때 크게 슬퍼하는 건 그와 공유했던 사소한 일상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함께 밥 먹고, TV 보며, 수다 떠는 작은 일상의 상실이 모여 누군가를 떠나보냈다는 커다란 상실을 이룬다. 마치 프랙털처럼. 때문에 우리가 인생의 큰 상실을 극복하려면 하루하루의 자그마한 상실부터 먼저 회복해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x축과 y축으로 이뤄진 수학적 공간에 그린다면 어떻게 나타날까. x축은 시간이라 가정하고, y축은 두려움이나 슬픔 화남 같은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그래프를 그리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드러나는 감정을 제대로 파악해볼 수 있지 않을까.슬픔이 이 그래프에서 하나의 선을 그린다고 치자. 이때 이 선과는 만나지 않는 하나의 ‘불연속적인 경로’가 더 있다고 상상해보면 어떨까. 슬픔과는 상관없는 또 다른 감정의 선으로 슬픔의 무게를 덜어내자는 시도다. 수학에서 도형이나 입체를 다른 평면으로 옮긴다는 개념인 ‘투영’처럼 다른 곳으로 감정을 투영해 현재의 삶을 유지하자고도 저자는 말한다.책에 등장하는 수학 개념은 전공자나 수학에 해박한 이가 아니라면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감을 잡기 힘든 대목도 나온다. 하지만 저자는 수학을 자신의 실제 경험과 연관지어 설명해 읽는 이의 머리보다 가슴을 먼저 파고든다. 그래프로 인간의 감정을 그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싶다가도, 어머니를 잃은 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수학에서 감정이란 어떤 것인지 해답을 구하려하는 모습은 울림이 컸다. 7년이 지난 뒤 아버지마저 여의고선 삶의 관심을 ‘투영’할 곳을 찾아 헤맸다는 고백은 괜스레 뭉클해지기까지 한다.올해 7월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8월 서울대 학위수여식 축사에서 “수학은 어떤 무(無)모순적 정의도 허락한다”고 했다. 수학으로 인생을 정의해보려고 했던 저자는 과연 ‘모순이 없는 정의’에 다다랐을까. 철학자들이 수학을 파고든 건, 어쩌면 수학이 인생에 대한 학문이란 걸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

    • 202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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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국아_같이먹짱… MZ들의 신박한 맛집 찾기 ‘아이돌 #’

    “이 음식점요? ‘아이돌 해시태그(#)’로 검색해서 찾아왔어요.” 서울 마포구의 한 고깃집에서 지난달 29일 만난 대학생 김태희 씨(20)는 맛집 찾는 요령에 대해 별거 아니라는 듯 해맑게 웃었다. 맛집과 아이돌이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김 씨는 “요즘 10대, 20대에겐 꽤나 알려진 방법”이라며 “소셜미디어에서 아이돌 해시태그가 달린 음식점을 검색했다”고 귀띔했다. 고깃집 사장인 이범 씨(40)도 “주말엔 고객의 80%가 아이돌 해시태그를 달기 위해 온 팬이거나 그 글을 검색해 찾아온 이들”이라고 했다. MZ세대의 맛집 찾기 방식이 달라졌다. 포털 사이트에서 주변 맛집을 검색하는 건 하수들. 소셜미디어에서서 아이돌 해시태그를 활용한다. 방법은 이렇다. 예를 들어, 갈비가 먹고 싶다면 소셜미디어에 갈비를 검색한 뒤 여기에 아이돌 이름이 달린 해시태그가 있는지 확인한다. 적중률을 높이려면 아이돌 굿즈가 들어간 사진이 있는지도 봐야 한다. ‘찐’팬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포토카드나 캐릭터 인형과 함께 음식이나 식당을 찍어 올리면 더 맛있는 음식점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돌 해시태그 맛집’은 팬들의 아이돌 사랑에서 비롯됐다. 약 1, 2년 전부터 좋아하는 가수의 음식 취향을 파악한 뒤 그들에게 어느 식당이 맛있는지를 알려주고픈 마음으로 해시태그를 달았다고 한다. ‘#승연아_우즈야_여기야’ 식이다. 이런 팬 문화가 입소문을 타면서 같은 세대에겐 ‘직접 발품 팔아 찾은 진심의 맛집’이란 인식이 퍼진 것이다. 동아일보가 최근 MZ세대에게 ‘신상 맛집’으로 떠오른 음식점 8곳을 찾아보니 해시태그의 용도는 좀 더 구체화됐다. 고급 레스토랑의 경우 경제력이 있는 30대 이상 팬이 많은 강다니엘의 팬이 달아놓은 해시태그를 참조한다. 중국 요리가 먹고 싶을 땐 중국 국적 멤버가 많은 아이돌 그룹을 검색한다. 마포구의 한 떡볶이 가게에서 만난 윤정민 양(16)은 “보이그룹 NCT를 검색해 왔다. 멤버가 23명이라 게시물도 많은 게 NCT 해시태그의 장점”이라고 했다. MZ세대에게 이런 유행이 퍼지면서 아이돌 해시태그만 따로 모아둔 온라인 검색 사이트가 등장했을 정도다. 요즘엔 아이돌 해시태그로 미술전시나 여행 장소를 찾기도 한다. 대학생 김소민 씨(23)는 “9월에 아이돌 해시태그 검색 사이트에서 ‘강릉’을 검색해 팬들이 추천한 강릉의 미술관에 다녀왔는데 아주 좋았다”며 “아이돌 해시태그 맛집에 대한 신뢰가 높아 자연스레 다른 분야 추천도 믿고 찾아가게 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돌과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청년 세대의 ‘디지털 리터러시(문해력)’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는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팬들의 추천은 좋아하는 아이돌 이름을 걸고 올리기 때문에 진실성과 신뢰성이 담보된다고 여긴다”며 “온라인에 광고나 다름없는 낚시성 후기가 넘쳐난다는 현실에서 젊은 소비자들이 디지털 리터러시의 새 활용법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돌 해시태그 활용도가 높아지자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임종수 세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아이돌 해시태그로 위장한 광고가 조금씩 생겨나는 추세”라며 “MZ세대의 문화를 돈벌이로 악용하면 이 역시 결국 신뢰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원영 인턴기자 고려대 미디어학부 졸업}

    •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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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연아_여기야”… MZ는 ‘찐 맛집’ 찾는 방법도 다르다

    “여기요? ‘아이돌 해시태그’로 검색해서 찾아왔어요.”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갈비 음식점에서 만난 대학생 김태희 씨(20)는 어떻게 이곳을 찾아왔냐는 질문에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김 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갈비’를 검색한 뒤 아이돌 해시태그가 있는 글을 참고해 음식점을 정했다”며 “‘적중률’을 높이기 위해 음식 사진과 함께 아이돌 가수 팬만 가지고 있는 ‘포토카드’를 음식 사진과 함께 찍어 올린 글을 주로 찾았다”고 했다. 음식점 사장인 이범 씨(40)는 “주말 저녁 손님의 80%가 아이돌 해시태그를 달기 위해서 온 팬이거나, 팬이 올린 글을 검색해서 찾아온 손님”이라고 했다.요즘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은 이른바 ‘아이돌 해시태그’를 활용해 음식점을 찾는다. 포털사이트가 각종 광고로 뒤덮이면서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는 MZ세대가 아이돌 팬덤을 이용하고 있는 것. 아이돌 가수 ‘우즈’의 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에게 음식점을 추천하기 위해 해시태그 ‘#승연아_우즈야_여기야’를 달아놓는 문화를 활용하는 식이다.지난달 29일 동아일보는 ‘아이돌 해시태그’로 MZ세대 사이에서 맛집으로 떠오른 서울 시내 8곳의 음식점을 방문했다. 그 결과 아이돌 가수에 따라 해시태그의 용도는 다양했다. 예를 들어 고급 레스토랑을 찾을 땐 경제력을 갖춘 30대 이상의 팬이 많은 가수 강다니엘의 팬이 달아놓은 해시태그를 찾았다. 그룹 ‘NCT’ 중국 국적 멤버 윈윈의 팬은 마라탕, 훠궈 등 중식을 많이 추천했다. 마포구 떡볶이 가게에서 만난 윤정민 양(16)은 “보이그룹 ‘NCT’ 해시태그로 이곳을 찾았다”며 “멤버 수가 23명이라 게시물 수가 많은 점이 ‘NCT’ 해시태그의 장점”이라고 했다.아이돌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 중에서도 각종 ‘굿즈’로 인증한 글이 신뢰도가 높다. 팬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캐릭터 인형, 엽서, 포토카드를 함께 올리면 팬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미쉐린(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이 많은 음식점을 찾을 수 있는 셈이다. 마포구 피자집 직원 김동욱 씨(26)는 “손님 중 30% 이상이 SNS에서 ‘아이돌 해시태그’를 이용해 찾아온다”며 “아이돌 팬은 도착 직후나 음식 나왔을 때 굿즈를 꺼내서 사진 찍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유행이 급속히 퍼지면서 올 초엔 수백 개의 아이돌 해시태그를 모아둔 온라인 검색 사이트가 등장했다. 또 미술전시, 서점, 여행지를 찾는 방식으로 아이돌 해시태그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대학생 김소민 씨(23)는 “올 9월 아이돌 해시태그 온라인 검색 사이트에 ‘강릉’을 검색해 미술관에 다녀왔다”며 “아이돌 해시태그로 맛집을 찾아간 뒤 실패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식당 아닌 다른 장소도 찾게 됐다”고 했다.전문가들은 아이돌 해시태그 검색법이 진화된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문해력)’의 일종이라고 해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포털사이트는 광고성 후기들로 점령돼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려워졌다는 걸 경험적으로 확인한 소비자들이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이라며 “팬들의 후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의 이름을 걸고 적는다는 점에서 진실성과 신뢰성이 상당히 담보된다”고 했다. 임종수 세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최근 검색법이 알려지면서 아이돌 해시태그를 위장한 광고도 생겨나고 있다”며 “포털사이트처럼 아이돌 해시태그도 신뢰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원영 인턴기자 고려대 미디어학부 졸업}

    • 202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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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율성의 시대서 벗어나 회복력의 시대로 나아가야”

    “먼저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애도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 세계에서 이런 사고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보다 엄격한 규제가 필요합니다.” ‘노동의 종말’(1996년·민음사) ‘소유의 종말’(2001년·민음사) ‘육식의 종말’(2002년·시공사) 등으로 유명한 미국 경제·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77·사진)이 1일 ‘회복력 시대’(민음사)를 전 세계 동시 출간했다. 출간을 맞아 7일 e메일 인터뷰한 리프킨은 “인류는 효율성에만 매몰돼 각종 부작용에 시달렸다”며 “천연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며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도 심각해졌다”고 지적했다. “1만 년 동안 인류는 자연을 인간에 적응시키며 멸종의 길을 달려왔습니다. 이제 다시 인류가 자연에 적응할 차례입니다. (심각한 위기지만) 지구의 생명을 재생시킬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리프킨은 신간에서 “효율성만 추구하던 진보의 시대에서 벗어나 회복력의 시대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글로벌 그린 뉴딜’(2020년·민음사)에서 기후변화가 초래한 위기를 지적했다면, ‘회복력 시대’에선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소한 환경 분야에선 이미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10년 내 인류는 태양과 바람을, 20년 내 바다를 공유할 것입니다. 3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프라도 2040년이면 회복력 시대의 인프라로 바뀔 거예요. 새 인프라는 기존처럼 중앙집권적인 게 아니라 ‘완전 분산’적 형태로,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될 겁니다.” 리프킨은 생태계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라며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초국적 협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태계의 경계는 인간이 설정한 경계와는 무관합니다. 기후위기와 같은 지구적 재난은 특정 국가나 정부가 홀로 감당할 수 없어요.” 압축 성장의 길을 걸어온 한국이 이런 회복력의 시대에 적응하기 어렵지 않을까. 리프킨은 오히려 긍정적 요소가 많다고 내다봤다. “동양 문명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강점을 가졌어요. 특히 한국은 오랜 기간 주변 강국의 영향을 받으며 외부에 대한 ‘반응성’에 민감합니다. 서양보다 훨씬 빨리 회복력 시대로 전환할 수 있을 겁니다.” 리프킨은 한국 청년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도 있다고 했다. “정치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밖으로 나가 자연에서 최대한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으세요. 온라인 속 아바타에 갇혀 실제 발 딛고 있는 지구로부터 분리되는 건 파멸로 가는 지름길입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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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노랫말에 담긴 인생을 읽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물에 빠져 죽었으니/장차 임을 어이할꼬.’ 에세이 ‘인생의 역사’(난다·사진)를 지난달 31일 펴낸 문학평론가 신형철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46)는 책에서 고대가요 ‘공무도하가’를 문헌이 아닌 하나의 시로 읽어낸다. 보통 문헌연구자들은 주인공인 백수광부를 무당으로 보지만 신 교수는 그를 ‘삶이 힘들어 자주 강가에 서 있는 남성’으로 상상한다. 어쩌면 백수광부의 처는 위태로운 남편을 말리러 강가로 달려간 적도 여러 번 있지 않을까. 백수광부의 죽음을 지근거리에서 목도한 뱃사공이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노라 고개를 저으며 처의 애달픈 절규를 노래로 불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 교수는 “수천 년 전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들어본 적 없는 그 먼 노래가 환청처럼 들린다”고 고백한다. 1일 전화 인터뷰를 한 신 교수는 글처럼 말투도 무척 차분했다. 한마디 한마디마다 적확한 표현을 찾으려고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그는 “공무도하가는 현대 예술가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작품이란 점에서 현재성이 풍부한 시”라고 말했다. “가수 이상은(52)은 노래 ‘공무도하가’를 불렀죠. 작가 김훈(74)은 장편소설 ‘공무도하’(문학동네·2009년)를 썼고요. 진모영 감독(52)은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찍었습니다. 공무도하가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감동을 주는 만큼 다시 읽을 필요가 있는 문학이란 뜻인 거죠.” 신 교수는 ‘인생의 역사’에서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시 25편과 이에 얽힌 작품들을 다뤘다. 황동규(84)와 최승자(70), 나희덕(56) 등 국내 시인의 작품뿐만 아니라, 밥 딜런(81)과 윤상(54) 등 국내외 대중음악가의 노랫말도 시로 해석한다. 일반인에겐 소설가로 널리 알려진 한강(52)의 시를 다루기도 했다. “한강은 시로 먼저 등단했어요. 사실 소설조차 시적으로 쓰는, 경계가 없는 작가죠. 시집은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2013년) 단 한 권이지만 의미 있는 시를 골라 넣은 시인입니다.” 신 교수는 문학평론가와 에세이스트로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2008년 펴낸 문학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는 물론이고 에세이 ‘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2011년) ‘정확한 사랑의 실험’(마음산책·2014년) 등도 인기를 끌며 ‘스타 문학평론가’로 불린다. 이번 신작 역시 출간 일주일 만에 2만 부가 넘게 팔렸다. “스타란 말이 부끄럽지만 평론가로서 개념을 정리하는 훈련을 받음과 동시에 문학 작품을 읽으며 감정을 표현하는 법도 배운 것 같아요. 문학 작품을 읽은 뒤 이를 개념화하기보단 느낀 감정을 문장으로 쓰는 데 성취감을 느낍니다. 평론가지만 작가적인 색채가 강한 점을 독자들이 인정해주신 게 아닐까 싶네요.” 신 교수는 책에서 “인생은 시처럼 행과 연으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문학은 그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 답변은 역시 무척 담담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 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문학작품을 읽고 글을 쓰는 데 사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 문학은 그야말로 ‘직업’이죠.”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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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념 정리보단 ‘감정’ 표현에 집중”…4년만에 에세이 낸 신형철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이할꼬.’ 신형철 문학평론가(46)는 지난달 31일 4년 만에 펴낸 에세이 ‘인생의 역사’(난다)에서 고대 가요 ‘공무도하가’를 문헌이 아닌 시로 읽는다. 문헌 연구자들은 보통 주인공 백수광부를 무당으로 해석하지만, 신 평론가는 백수광부를 삶이 힘들어 자주 강가에 서 있는 남성이라고 상상한다. 백수광부의 처가 남편을 말리려 강가로 달려간 적도 여러 번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 백수광부의 죽음을 목격한 뱃사공은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공무도하가’를 불렀을 거라 상상해본다. 신 평론가는 “나는 수천 년 전의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들어본 적 없는 그 먼 노래가 환청처럼 들린다”고 고백한다. 1일 전화 인터뷰로 만난 신 평론가는 정확한 표현을 고르기 위해 신중히 단어를 고르는 차분한 사람이었다. 그는 “공무도하가는 현대 예술가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현재성이 풍부한 시”라고 꾹꾹 눌러 말했다.“가수 이상은(52)은 노래 ‘공무도하가’를 불렀고, 작가 김훈(74)은 장편소설 ‘공무도하’(2009·문학동네)를 썼으며, 진모영 감독(52)은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찍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끊임없이 감동을 주는 만큼 다시 읽을 필요가 있는 문학이란 뜻이죠.”신작엔 25편의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시 25편과 이에 얽힌 작품이 담겨 있다. 황동규(84), 최승자(70), 나희덕(56) 등 한국 유명 시인의 작품뿐 아니라 미국 가수 밥 딜런(81)과 한국 가수 윤상(54)의 노랫말을 시로 해석한다. 대중에겐 소설가로 널리 알려진 한강(52)의 시를 다룬 것도 눈길이 간다.“잘 모르시는 분도 있지만 한강은 등단을 시로 먼저 했어요. 소설조차 시적으로 쓰는 경계가 없는 작가죠. 시집은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문학과지성사) 단 한 권이지만 의미 있는 시를 골라 넣었죠.” 그는 에세이 ‘느낌의 공동체’(2011·문학동네) ‘정확한 사랑의 실험’(2014·마음산책)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문학평론이 힘을 잃은 시대에도 책이 꾸준히 팔려 ‘스타 문학평론가’로 불린다. 신작은 예약판매만으로 온라인 서점 알라딘 종합 2위에 올랐고, 출간 1주일 만에 2만 부가 팔렸다. 이유를 묻자 그는 부끄러워하며 답했다.“평론가로서 ‘개념’을 정리하는 훈련도 받았지만, 문학작품을 따로 읽으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법도 배운 것 같아요. 저 역시 문학작품을 읽은 뒤 이를 개념화하기보단 제가 느낀 감정을 문장으로 쓰는 데 성취감을 느끼고요. 작가적인 색채가 강한 걸 독자들이 좋아해주신 것 아닐까 싶네요.”“인생은 시처럼 행과 연으로 이뤄져 있다”는 그에게 ‘문학’의 의미를 물으니 담담한 답변이 돌아왔다.“가족과 보내는 시간 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문학작품을 읽고 글을 쓰는데 사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 문학은 그야말로 ‘직업’이죠.”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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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해야하는 일은 아픔에 공감하는 일[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힘든 분들에게 조그마한 위로라도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달 31일 나태주 시인(77)은 시 ‘못다 핀 꽃들이여… 어여쁜 영령이여’(동아일보 1일자 A1면)와 함께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시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피해자들과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나 시인이 슬픔을 참아가며 꾹꾹 눌러썼다. ‘아, 우리의 청춘들이 넘어지고 엎어지고/그 자리에서 그렇게 많이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 애달픈 시구에선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문학의 본질이 느껴졌다. ‘미안하오 미안하오/우리가 미안하오/그대들보다 우리 나이 많은 사람들’에선 타인에게 책임을 미루지 않는 참된 어른의 진정성이 배어났다. 피해자를 향한 혐오와 비난이 고개를 내밀던 인터넷 공간에선 쉽사리 만나볼 수 없는 깊이였다. 임동식 화가가 그린 그림과 나 시인이 쓴 시를 담은 시화집(詩畵集) ‘그리운 날이면…’ 역시 그런 품격과 정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나뭇잎 두 장을 귀 옆에 꽂은 남성의 모습이 담긴 그림 ‘산토끼’에 나 시인은 ‘토끼야 두 눈을 감고/나하고 놀자’라고 해맑게 외친다. 노란 수선화가 가득 찬 평원에서 한 남성이 고개를 숙인 그림 ‘고개 숙인 꽃과 마주한 인사’도 인상적이다. ‘친구들 향해/인사를 해야지//오늘 하루 우리 서로/잘 부탁해요/허리 숙여 공손히!’라고 천진난만하게 썼다. 여름밤 비가 쏟아지는 풍경을 담은 그림 ‘1975 여름의 기억’을 보고서는 ‘어떻게 어둠 속에서 빛을/데리고 나올 수 있었을까’라고 신기해한다. 시와 그림도 훌륭하지만 또 하나 감동적인 대목이 있다. 나 시인이 자신과 임 화가는 “인생의 궤적이 전혀 다르다”고 고백한 글이다.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살다가 정년퇴직을 한 시인과 달리, 화가는 그림이 관련되지 않으면 전혀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시인은 부인과 자녀가 있지만 화가는 평생 독신. 서로 닮은 점을 찾기 어렵지만 시인은 화가의 그림에서 시를 읽어내고 싶었다고 한다. “지구라는 별, 그 가운데서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만나 한 세상을 함께 살았으니 서로는 어떤 실로도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 시인은 1일 오후 열린 한 강연에서 시 ‘못다 핀 꽃들이여… 어여쁜 영령이여’를 직접 낭송했다. 희수(喜壽)의 시인이 떨리는 목소리를 부여잡고 시를 읽어 내려가자 수강생 40여 명은 하나둘씩 훌쩍거렸다고 한다. 그날 강연 참석자들 가운데 이태원 핼러윈 참사 피해자와 직접 연관이 있는 사람이 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시인의 낭송을 듣고 마음 깊이 아파했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별, 그 가운데서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건 혐오가 아니라 ‘조그마한 위로’다. 나 시인의 조시(弔詩)를 읽으며 다시 한 번 삼가 조의를 표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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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변화 종말론, 환경운동가 주장은 과장”

    “인간 때문에 지구에 기후변화가 벌어진 건 사실입니다. 다만 기후변화로 지구가 끝장날 거라 단언하긴 어려워요. 일부 환경운동가의 종말론은 과장됐어요.” 세계적인 미국 환경운동가 마이클 셸런버거(51)가 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는 ‘2022 산업계 탄소중립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그는 지난해 4월 국내에 출간된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부키)과 관련해 3일 서울 종로구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2008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환경 영웅’으로 뽑혔던 그는 열여섯 살에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 미 시민단체 ‘환경진보’를 이끌며 과학적 수치를 바탕으로 대안을 제시해 ‘환경 운동의 구루(현자)’라 불리기도 한다. “과학의 발전으로 탄소 배출량은 줄어들고 있어요. 예를 들어, 비료 기술이 발달하며 좁은 경지에서 많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더 이상 나무를 베어내 농경지를 만들 필요가 없어졌고 벌목 현상도 줄어들고 있어요.”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은 국내 출간 직후 5만 부 이상 팔렸다. 극단적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을 뒤집은 셸런버거의 지적은 반향이 컸다. 그는 책에서 “기후변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은 기술 발전으로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라며 “1920년대 자연재해로 숨진 이는 540만 명이었지만 2010년대는 40만 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일부 환경운동가는 지구온난화와 자연재해의 위험성을 과도하게 엮고 있어요. 지구는 뜨거워졌지만 에어컨이 발달해 폭염으로 사망하는 이들은 줄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에도 화재로 없어지는 숲의 면적은 점점 작아지고 있죠. 기후변화로 30년 내에 지구가 거주 불가능해질 거란 주장을 믿기 힘든 이유입니다.” 셸런버거가 극단적 환경운동가를 지적하고 나선 것은 오랜 세월 환경운동에 몸담으며 갈수록 의문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부에서 환경운동을 정치적 의도로 사용한다는 회의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스웨덴 출신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9)는 자본주의가 환경을 망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의 탄소 배출량은 1970년대에 정점을 찍은 후 떨어지고 있어요. 기업들이 돈이 되는 천연가스 개발에 앞장섰기 때문에 탄소 배출량이 줄었습니다.” 셸런버거가 환경을 위해 제시하는 방안은 바로 “효율적인 에너지 생산”이다. 그는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소는 투입되는 노력에 비해 에너지 생산량이 적어 석탄과 석유의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원자력발전소(원전)를 더 세우고 천연가스 개발에도 더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전에 대한 안전성 논란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는 저개발 국가들을 방문했을 때마다 절망감을 느꼈어요. 원전이 없으면 그 나라들은 땔감을 찾으려 벌목하고 환경이 더 망가지겠죠. 원전의 위험을 두고 무작정 공포에 떨기보단 함께 논의해서 현실적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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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돌 세계관에 협업”… 순수문학 작가들, K팝과 잇단 ‘콜라보’

    “‘푸른 반딧불이 섬’의 저주를 풀어라.”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어느 미래. 외부의 위협을 막는 거대한 장막으로 둘러싸인 ‘레퓨지아’란 도시가 있다. 이곳에 사는 소녀들은 어느 날 도서관에서 낡은 책 한 권을 발견한다. 도시 밖 미지의 땅에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소녀들은 책에 나오는 ‘푸른 반딧불이 섬’을 찾아 떠난다. 갖은 모험 속에서 여러 역경을 극복하며 소녀들은 성장해 나가는데…. 10월 17일 발매한 걸그룹 르세라핌의 2집 미니앨범 ‘안티프래자일’에는 자그마한 책자 하나가 들어있다. 공상과학(SF) 판타지 소설인 ‘크림슨 하트’의 프롤로그. 이 앨범 속 소설엔 다소 생경한 이름이 하나 등장한다.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소설가인 김초엽 작가(29)다. 실제 크림슨 하트의 설정은 지난해 8월 김 작가가 펴낸 SF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자이언트북스)에서 위험에 처한 지구에서 살아가는 소녀들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김 작가처럼 순수문학을 하는 작가들이 아이돌 그룹과 협업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웹소설·웹툰 출신 작가들의 참여가 낯설지 않은 가운데, 한류의 중심으로 꼽히는 가요 시장과 문학의 ‘콜라보’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받고 있다. 르세라핌과 김 작가의 만남은 이들의 소속사인 하이브의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안인용 하이브 스토리사업본부 스토리텔링실장은 “한계에 도전하며 나아가는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김 작가의 작품과 크림슨 하트는 공통점이 적지 않다”며 “등장인물에 입체감을 더하고 싶어 협업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로도 화제를 모은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을 쓴 정세랑 작가(38)도 걸그룹 아이브가 올 8월 발표한 영상 ‘아이브 서머 필름’ 작업에 참여했다. 2분 10초짜리 영상에서 멤버들의 내레이션을 정 작가가 집필했다. 영상을 제작한 노상윤 감독은 “소설에서 다정하면서도 용감한 여성 캐릭터를 그려낸 정 작가가 아이브 멤버들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잘 표현할 것 같았다”고 했다. 작가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정 작가는 “아이브 팬이자 케이팝 마니아라 제안을 받아들였다”며 “다른 분야와의 협업이 신선했다. 앞으로도 비슷한 제안이 오면 계속 도전하겠다”고 했다. 김 작가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새로운 도전이 제 스펙트럼을 넓혀주지 않을까 생각해 다양한 제안을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을 만든다기보다 ‘스핀오프’ 같은 느낌을 소설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웹소설·웹툰 작가들의 협업은 아이돌 그룹에선 이미 꽤 익숙하다. 하이브는 올 1월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을 모티브로 한 ‘세븐페이츠: 착호’를 웹소설과 웹툰으로 공개했다. 이 작품은 웹툰 전문제작사 레드아이스 스튜디오가 만들었다. SM엔터테인먼트도 소속 가수들로 하나의 세계관을 만드는 ‘SMCU 프로젝트’를 준비하는데, 웹소설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정상희 SM엔터테인먼트 홍보수석은 “초기 단계라 지금은 공개하기 어렵지만, 세계관을 잘 구현할 수 있는 작가들을 섭외했다”고 전했다. 가요업계에 따르면 대형 기획사들이 웹소설·웹툰 작가들에게 협업을 의뢰하는 경우 1년에 작품 100∼200화를 기준으로 1억∼2억 원 정도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지명도가 있는 작가들은 이보다 더 높은 수익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협업이 늘며 잡음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웹소설 업계에 따르면 몇몇 기획사는 작가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집필만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웹소설 작가는 “유명 아이돌 기획사에서 웹소설 기획을 제안했는데 거절한 적이 있다”며 “작품을 검수하고 자극적인 내용을 다뤄 달라는 기획사의 요구가 무리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소설가들의 아이돌 시장 진입은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아이돌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대세로 자리 잡은 이상, 문학적 상상력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작가들의 활동 영역이 영화, 드라마를 넘어 가요계까지 확대됐다”며 “지식재산권(IP)이 무궁무진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업계로 작가들이 진출하는 사례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원영 인턴기자 고려대 미디어학부 졸업}

    • 20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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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헤미안처럼, 자연인처럼… ‘월든’ 속 삶을 꿈꾸다[책의 향기]

    미국 매사추세츠주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았던 미국 문인이자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소로 같은 삶을 꿈꾼 적이 있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 불필요한 소비가 가득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숲과 호숫가에서 자연과 어울려 사는 삶 말이다. 프랑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저자는 어느 날 소로의 ‘월든’을 읽고 감명 받아 21세기의 소로들을 찾아다닌다. 은둔자의 조용한 일상에 스며들기로 한 것. 저자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년에 걸쳐 이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온갖 신호가 범람하는 도시를 떠나 어떤 신호도 없는 자연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21세기의 소로들은 한겨울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핀란드에서 썰매 개들과 눈밭을 달리고, 이란의 거대한 산맥에서 말을 타며 페르시아 전통 궁술을 연습한다. 영국 북쪽의 시골 마을에서 보헤미안처럼, 이탈리아의 울창한 숲속에서 자연인처럼 산다. 어른뿐 아니라 아장아장 걷는 아이도 자연에서 인생의 충만함을 느낀다. 누군가는 일탈이나 객기라고 부를지 모르겠다. 인터넷이나 전기가 없는 생활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몇 개월만 지나면 지겨워져서 다시 도시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사진에 찍힌 21세기의 소로들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 코를 간질이는 이파리 냄새, 철썩철썩 들려오는 파도 소리, 손을 따뜻하게 데우는 모닥불의 온기가 가득한 삶을 살기 때문일 것이다. 올가을, 떠날 수 없다면 이 책을 펼쳐 보는 건 어떨까. 잠시나마 다른 삶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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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픔 응시한 작품, 독자 뇌리에 오래 남아… 우리의 삶과 닮았기에”

    “6·25전쟁 때 헤어진 언니를 꼭 찾고 싶단다.” 김금숙 작가(51·사진)의 어머니는 어느 날 프랑스 파리에 사는 딸을 찾아와 오래도록 간직한 소망을 털어놓았다. 1933년생인 어머니는 평양에 살다가 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평소 북에 두고 온 가족 얘길 잘 하지 않았지만, 평생 통일부 이산가족찾기 등을 통해 백방으로 찾으려 애써 왔다. 김 작가는 어머니의 사연을 녹취한 뒤 다른 이산가족들도 만나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가슴 아픈 이산가족들의 사연이 쌓여서 나온 결과물이 2020년 선보인 그래픽노블 ‘기다림’(딸기책방)이었다. ‘기다림’은 올해 8월 ‘만화계의 오스카 상’이라 불리는 미국 하비상의 최고국제도서 부문에 최종 후보로 올랐다. 김 작가는 14일 출간한 에세이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남해의봄날·작은 사진)에서 이런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인천 강화도에 있는 작업실에서 25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오래 지켜봤다. 가족의 이야기와 삶의 경험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나’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고, 그게 작품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래픽노블은 만화와 소설의 중간 지점쯤에 있는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작화 실력 못지않게 주제와 이야기가 무척 중요합니다. 그림을 다소 못 그리더라도 진정성이 담긴 작품이라면 좋은 그래픽노블이 될 수 있어요. 제 곁에 있는 진정성 있는 얘기들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죠.” 김 작가와 하비상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그린 2017년 작 ‘풀’(보리)로 2020년 하비상 최고국제도서 부문을 수상했다. ‘풀’은 당시 미 뉴욕타임스(NYT)가 ‘올해 최고의 만화’로, 영국 가디언지가 ‘올해 최고의 그래픽노블’로 각각 선정했다. “그리 먼 옛날이 아니라 우리네 어머니가 살던 시대잖아요.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은 대한민국과 여성의 슬픔 그 자체이지 않을까요. 2017년 이옥선 할머니를 만나 대화도 나눴고, 일본군이 위안소를 세웠던 중국 상하이와 하얼빈을 직접 찾아다녔어요.” 에세이에는 1994년 세종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스트라스부르 미술학교를 다녔던 시절, 2010년 귀국한 뒤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작가의 인생 궤적도 담겨 있다. 작가는 “힘든 역사를 직시하는 작품에 매진하는 이유”를 ‘차(茶)’에 빗대 설명했다. “마시고 난 뒤에도 향이 떠나지 않는 차 같은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 슬픔을 응시한 작품은 독자들 뇌리에도 오래도록 남거든요. 왜냐고요?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사실은 더 우리의 삶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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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픈 역사를 그리는 이유는…“외면하고 싶은 것이 더 삶을 닮아”

    “6·25전쟁 때 헤어진 언니를 꼭 찾고 싶단다.” 어느 날 김금숙 작가(51)의 어머니는 프랑스 파리에 사는 딸을 만나러 왔다가 이렇게 말했다. 1933년생인 어머니는 평양에 살다 전쟁 때 피란 왔다. 상처 때문인지 가족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KBS TV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을 보면서 엉엉 눈물을 흘리곤 했다. 통일부 남북이산가족찾기를 통해 언니를 찾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김 작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녹취하고, 다른 이산가족을 찾아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사연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 이산가족의 슬픔을 그린 그래픽노블 ‘기다림’(2020·딸기책방)이다. ‘기다림’은 미국 하비상 2022년 최고 국제도서 부문 후보에 올 8월 올랐다. 하비상은 저명한 만화가이자 편집자인 하비 커츠먼(1924∼1993)을 기려 ‘만화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린다.최근 에세이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남해의봄날)을 펴낸 김 작가는 25일 통화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오래 지켜봤다”며 “가족의 이야기와 삶의 경험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나’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고 작품으로 이어졌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만화와 소설의 중간 지점에 있는 그래픽노블엔 작화 실력 못지않게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그림을 못 그려도 진정성이 담긴 작품이라면 좋은 그래픽노블이에요. 제 곁에 있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한 이유죠.”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그린 ‘풀’(2017·보리)로 2020년 하비상 최고 국제도서 부문을 수상했다. ‘풀’은 미국 뉴욕타임스(NYT) ‘최고의 만화’, 영국 가디언지 ‘최고의 그래픽노블’ 등을 휩쓸었다. 그가 먹과 붓으로만 그린 한국의 그래픽노블이 세계를 감동시킨 것이다. “먼 이야기가 아닌 우리 어머니가 살던 시대의 이야기잖아요. 우리가 직접 피해자는 아닐 수 있지만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이 대한민국과 여성의 슬픔 그 자체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군요. 2017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어요. 위안소가 있었던 중국 상하이, 하얼빈을 직접 가기도 했죠.” 신간엔 1994년 세종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스트라스부르 미술학교에 다니다 2010년 귀국해 작품활동을 하는 그의 인생 궤적도 담겼다. 왜 배꼽 잡고 웃을 수 있는 만화가 아닌 힘든 역사를 직시하는 작품을 그리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슬픔을 응시한 작품은 독자 뇌리에 오래 남아요.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것이 더 삶을 닮았거든요. 마시고 난 뒤에도 향이 떠나지 않는 차(茶) 같은 작품을 계속 그리고 싶습니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

    • 202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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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교 34명 모두가 ‘책의 바다’에 흠뻑”[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역사책을 제일 좋아해요. 앞으로 도서관에서 엄청 더 많이 읽을 것 같아요!” 경기 포천시 창수초등학교의 ‘창수학교마을도서관’에서 21일 만난 김명찬 군(12)은 새로워진 도서관을 둘러보며 기뻐했다. 이주아 양(11)도 “도서관이 너무 깨끗해졌다. 놀이터만큼 많이 찾아올 것 같다”며 신나했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리모델링한 창수학교마을도서관이 이날 문을 열었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은 1987년부터 산간벽지와 농어촌, 섬마을 지역 어린이와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 건립을 이어왔다. 창수학교마을도서관은 신규 및 재개관을 합쳐 전국에서 262번째로 문을 연 도서관이다. 1946년 개교한 창수초등학교는 한때 학생 수가 400명을 넘었다. 지금은 학생이 34명뿐이다. 맞벌이부부의 자녀들이 많아 학생들은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길고 도서관도 자주 이용한다. 하지만 도서관이 워낙 낡아 교사도 부모도 걱정이 많았다. 리모델링한 120m² 규모의 도서관은 새로 지은 것처럼 완전히 탈바꿈했다. 곰팡이가 피었던 벽지는 다 뜯어낸 뒤 하얀색 페인트를 칠했다. 고급 원목으로 만든 대형 책장 47개와 책상 11개, 의자 39개도 새로 놓았다. 정필원 창수초등학교 교장은 “도서관이 낙후돼 고민이 많았는데 정말 기쁘다. 아이들의 꿈이 쑥쑥 자라날 것”이라며 “어른을 위한 책도 많은 ‘마을도서관’이라 주민들도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창수학교마을도서관은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 한국사무소의 후원을 받았다. 맥킨지가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을 통해 후원한 도서관은 이로써 10곳이 됐다. 이날 개관식에선 맥킨지 임직원들이 창수초등학교 학생 34명에게 각자 장래희망에 맞는 책을 선물했다. 축구선수가 꿈인 김시윤 군(11)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손흥민(30·토트넘)의 에세이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브레인스토어·2019년)을 가슴에 꼭 품은 채 연신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영록 맥킨지 이사는 “2011년부터 후원했다. 직원들이 기부한 돈으로 후원금을 조성해 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김수연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는 “주민과 학생 모두가 행복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계속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포천=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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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훈 문체까지 흉내 내는 AI… 소설은 ‘합격’, 시-가사는 ‘낙제’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20세기로 넘어갈 무렵, 늙은 어부와 아내는 가욋돈을 얻을 요량으로 하숙을 치기로 했다. 두 사람 모두 영도라는 어촌에서 나고 자랐다.’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의 첫 세 문장이다. 이다음 내용을 인공지능(AI)은 어떻게 쓸까? ‘어느 날 두 사람이 하숙을 치고 있던 집의 주인이 급사했다. 얼마 뒤 부둣가에 새로 생긴 가건물이 하숙집으로 등장했다. 어느 날 밤 그 가건물에 불이 났다.’ 카카오브레인이 13일 일반에 공개한, 글을 창작하는 AI ‘코지피티(KoGPT)’가 쓴 내용이다. 최근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출간 10주년 특별판 서문엔 AI ‘GPT-3’가 쓴 서문이 실려 화제를 모았다. 하라리는 AI의 글에 대해 “잡동사니가 섞인 잡탕”이라면서도 “우리가 알던 방식의 인류 역사가 끝났다는 신호”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동아일보는 국내 AI의 글짓기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코지피티로 실험해봤다. 코지피티는 사피엔스의 서문을 썼던 GPT-3에 한글을 학습시킨 AI. 컴퓨터 언어 단위인 ‘토큰’을 2000억 개 학습했고 다양한 결과를 도출할 ‘매개변수’도 60억 개를 배웠다고 한다. 코지피티에 소설과 시, TV드라마 대사, 영화 대사, 대중가요 가사 등을 입력해봤다. 일단 산문은 만족스럽진 못해도 ‘합격점’을 줄 수준은 됐다. ‘파친코’ 다음 문장처럼 뜬금없어도 뭔가 이야기가 이어졌다. 어부 부부에게 벌어질 법한 일을 그럴듯하게 상상해냈다. 김훈의 장편소설 ‘하얼빈’은 더 놀라웠다. ‘1908년 1월 7일, 일본 제국 천황 메이지는 도쿄의 황국에서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을 접견했다. 이은은 열두 살이었다. 한국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 황태자의 보육을 책임지는 태자태사의 자격으로 작년 말 이은을 서울에서 도쿄로 데려왔고 이날 메이지의 어전으로 인도했다’를 넣었다. 코지피티는 ‘이은은 일본 황족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의 딸 마사코와 결혼했다. 이은은 일본 황족과 결혼한 첫 한국인이 됐다’고 썼다. 작가와 작품명은 물론이고 ‘소설’이란 힌트도 주지 않았는데, 영친왕(1897∼1970)을 이은이라 부르며 김훈의 간결한 문체를 어느 정도 흉내 냈다. 백운혁 카카오브레인 오픈리서치 조직장은 “소설을 창작했다기보다는 수많은 데이터에서 이런 문장이 등장할 빈도가 높다는 결과를 내놓은 것”이라며 “하얼빈이 역사소설이라 ‘말이 되는’ 문장을 추출하기 쉬웠다”고 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나쁘지 않았다. 우영우(박은빈)의 법정 대사를 넣자 코지피티는 ‘사건의 자세한 내막은 다음 기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검사는 피고인에 대한 신문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썼다. 반면 시, 노래 가사처럼 의미가 함축적인 글에는 ‘오류’에 가까운 결과를 내놓았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를 입력하자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 나는 너를 믿는다’라고 이어갔다. 아이유의 노래 ‘좋은 날’의 가사 ‘한 번도 못했던 말/ 울면서 할 줄은 나 몰랐던 말/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어떡해’를 넣었다. 그러자 마지막 문장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어떡해’만 세 번 반복했다. 이에 대해 박인성 문학평론가는 “AI가 인과관계는 잘 파악해도 어린아이보다 창의력은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이민영 카카오브레인 사업개발팀 매니저도 “AI 학습 데이터에 운문이 적고, 줄 바꿈 등 형식이 바뀌면 변수가 늘어나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광고 문구 작성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공기청정기’ ‘필터식’ ‘숯탈취 필터’ 등 관련 단어 몇 개를 넣으니 ‘강력한 공기청정 기능은 기본이고 스마트폰 제어와 이동식 바퀴 기능도! 집 안 공기 걱정 끝!!’이라는 어디서 봤음직한 문장이 쏟아졌다. 온라인에 광고 문구가 워낙 많아 학습량도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AI가 제대로 된 창작자가 되긴 힘들어도 ‘창작 도우미’는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매니저는 “AI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내용을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에 인간 창작자와 경쟁자는 못 돼도 동반자는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지용 문학평론가는 “인간이 비슷한 플롯과 패턴을 반복해 뻔한 작품만 만들면 AI에게 밀려날 수 있다는 경고”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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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훈 문체까지 흉내내 글쓰는 AI… “산문은 합격, 운문은 아직”

    “이은은 일본 황족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의 딸 마사코와 결혼했다. 이은은 일본 황족과 결혼한 첫 한국인이 됐다.” 이 문장은 인공지능(AI)이 창작했다. 올 8월 출간된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문학동네)의 첫 세 문장을 입력하자 이에 이어지는 소설을 내놓은 것. 작가와 작품명은 물론 이 문장이 ‘소설’이라는 힌트도 주지 않았는데 AI는 그럴듯한 글을 써 내려갔다. 영친왕(英親王·1897∼1970)을 이은이라 부르고, 역사적 사실을 나열해 소설의 배경을 간결하게 전달하는 김훈의 문체도 쏙 빼닮았다. 이 문장을 창작한 건 ‘코지피티(KoGPT)’다. 코지피티는 현재 AI 가운데 최고 수준의 자연어처리 모델로 꼽히는 영어 기반의 ‘GPT-3’을 카카오브레인이 한국어로 학습시킨 AI다.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최소 언어 단위인 ‘토큰’ 2000억 개와 다양한 결과를 도출하도록 돕는 ‘매개변수’ 60억 개를 학습해 ‘똑똑한 작가’가 됐다. 백운혁 카카오브레인 오픈리서치 조직장은 “AI가 소설을 창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데이터 중 이같은 문장이 등장할 빈도가 높다는 결과를 내놓은 것”이라며 “‘하얼빈’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 한 작품이라 이른바 ‘말이 되는’ 문장을 추출하기 쉬웠던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예술 창작 분야에서 AI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최근 ‘사피엔스’(김영사) 출간 10주년 기념 특별판 서문에 GPT-3이 쓴 글을 실었다. 미디어아트그룹 슬릿스코프는 올 8월 코지피티를 활용해 AI 시집 ‘시를 쓰는 이유’(리멘워커)를 펴냈다. 이지용 문학평론가는 “창작하는 AI는 공상과학(SF) 소설 속 미래가 아닌 현재”라며 “AI를 동반자이자 경쟁자로 여기는 예술가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AI 창작의 가능성을 확인해보기 위해 카카오브레인이 이달 13일 대중에 공개한 코지피티로 창작을 해봤다. 유명 소설, 드라마, 영화, 시, 노래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실험은 카카오브레인의 조언을 받아 기자가 이달 14일부터 23일까지 진행했다. AI 창작 문장은 실험 시점에 따라 매번 다른 결과를 도출했다.코지피티는 산문에서 합격점이었다. 예를 들어 동명의 애플TV드라마로 화제를 끈 이민진 장편소설 ‘파친코’(인플루엔셜) 첫 세 문장을 넣자 코지피티는 “어느 날 두 사람이 하숙을 치고 있던 집의 주인이 급사했다. 얼마 뒤 부둣가에 새로 생긴 가건물이 하숙집으로 등장했다. 어느 날 밤 그 가건물에 불이 났다”는 소설을 만들어냈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파친코의 첫 문장처럼 감칠맛은 나진 않았지만, 늙은 어부와 아내가 하숙을 치면서 벌어질법한 일을 그럴듯하게 상상해냈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인 우영우가 법정에서 한 자기소개도 입력해봤다. “사건의 자세한 내막은 다음 기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검사는 피고인에 대한 신문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결과가 나왔다. 변호사의 발언이라는 점을 인식해서 검사를 향한 발언을 만든 듯 했다. 다만 말을 더듬거나 엉뚱한 소리를 하는 캐릭터의 특성은 살리지 못했다.운문 창작은 아직 초보 단계였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을 넣자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 나는 너를 믿는다”라는 뻔한 문장을 내놓았다. 아이유의 노래 ‘좋은 날’ 가사를 넣자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어떡해”만 반복했다. 시적인 대사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대사를 넣었더니 오류가 난 것처럼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만 되풀이했다. 박인성 문학평론가는 “예술 창작은 논리력도 필요하지만 기존 틀을 비트는 창의적인 시도가 중요하다”며 “AI가 인과관계 파악은 잘하지만 어린아이보다 창의력은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카카오브레인이 서비스 적용 범위를 넓혀갈 것이라고 계획을 밝힌 광고 문구 활용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공기청정기와 관련된 키워드를 넣었더니 “강력한 공기청정기능은 기본이고 스마트폰 제어와 이동식 바퀴 기능도!”라는 광고 문구를 만들어냈다. 이민영 카카오브레인 사업개발팀 매니저는 “AI가 창작자를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창작자가 옆에 두고 활용할 수 있는 보조도구는 충분히 될 수 있다”고 했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

    •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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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그 모든 걸 가능케 한 것… “깡, 응집력, 고집”

    “(1973년 1차) 오일쇼크 당시 일본 업체들이 TV, 냉장고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집적회로(IC) 물량과 가격을 통제하며 횡포를 부리자 자체 반도체 사업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습니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신동아 2005년 10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이 회장은 “당시 미국, 일본에서는 이미 반도체 산업을 대표적인 미래 하이테크 사업으로 보고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었다”며 “10년 남짓한 기술 격차는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회고했다. 베테랑 현직 기자인 저자는 지난해 10월 출간한 ‘경제사상가 이건희’(동아일보사)에서 인간 이건희의 다양한 측면을 입체적으로 포착했다. 신간에선 고인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이유와 과정을 촘촘히 파고든다. 고인이 생전 “망할 뻔했다”고 했던 반도체 전쟁사를 폭넓게 다룬다. 삼성은 1977년 국내 최초의 반도체 공장인 한국반도체의 지분을 100% 인수했지만 제대로 된 실적을 내지 못했다. 이 전 회장이 “일본, 미국을 직접 다니면서 반도체 기술자들을 만나 기술을 전수해 달라고 사정하는 ‘기술 보따리 장사’를 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인은 꾸준한 투자를 통해 반도체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다. 1983년 최첨단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한 뒤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세웠다. 1986년엔 1M(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한다. 1990년대 개인용 컴퓨터(PC) 열풍이 불었고, 1995년 3조5000억 원의 이익을 내면서 고인의 고집은 대성공을 거둔다. 삼성 전직 임원들은 이 전 회장의 ‘자율’과 ‘위임’ 리더십을 성공 비결로 꼽는다. “회장의 키워드는 ‘깡, 응집력, 고집, 용기, 겁 없음’”(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 “체어맨 리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는 평가를 보면 고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이달 25일은 고인의 2주기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의 위세가 거센 요즘, 고인의 도전정신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는 건 어떨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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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 써보니 알것같다 왜 그리 쪼들렸는지[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절약이 미덕인 시대다. 배달 음식을 시키려다 집에서 밥을 해 먹고, 과일은 사치라 여기며 장바구니에서 슬쩍 뺀다. 물가가 치솟는 이때 자린고비 정신만이 보릿고개를 버틸 방법. 지독한 짠돌이가 쓴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소비단식 일기’는 경영학 박사 출신인 저자가 자신의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인 경험을 담은 에세이다. 어느 날 저자는 신용카드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알림을 받는다. 신용카드 한도의 90% 이상을 사용했으니 한도를 올리라는 통지였다. 저자는 자신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내역을 살펴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 필요해서 산 것뿐이다. 저자를 바꾼 건 책이다. 저자는 전자책(e북)으로 에세이 ‘나는 빚을 다 갚았다’(2016년)를 읽게 된다. 미국의 평범한 직장인이던 애나 뉴얼 존스는 무분별한 소비로 빚더미에 앉았다. 카드 대금을 제때 내지 못해 이월해 막은 리볼빙 서비스를 쓰다 빚을 갚지 못한 것. 필수품을 제외하곤 자신을 위한 돈은 쓰지 않는 이른바 ‘소비단식’으로 빚을 다 갚은 존스를 보고 저자는 결심한다. 자신도 한번 소비단식을 해보자고.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저자의 결심은 하루를 버티지 못한다. 저자는 결심한 다음 날에 8만9000원을 쓴다. 부업을 해보겠다는 핑계로 온라인 강의 사이트에서 결제한 것. 둘째 날엔 케이크와 커피를 사느라 6만 원을 썼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바뀌자 선물을 사 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림을 그려 보려고 결제했던 포토숍 프로그램 비용을 전액 환불하고 대신 무료 앱을 쓰기로 했다. 휴대전화 요금제는 저렴한 것으로 바꾸고 와이파이를 자주 사용했다. 버터, 치즈, 와인을 사 먹는 게 취미였지만 이를 내려놓는다. 집에 쌓여 있는 줄무늬 티셔츠와 청바지는 더 이상 사지 않았다. 저자의 삶은 조금씩 바뀌었다. 2년을 노력한 끝에 저자는 신용카드 대금 500만 원, 학자금 대출 200만 원, 마이너스 통장 100만 원 등 총 1600만 원에 달하는 빚을 모두 청산한다. 주목할 만한 건 저자가 왜 자신이 돈에 쪼들리기 시작했는지 돌아보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게 정말 필요할까?’를 넘어 ‘내가 이렇게나 소비를 했던 이유는 뭐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 결과 자신이 우울과 불안으로 빈 마음을 소비로 채우려 했음을 깨닫는다. 육아와 일로 받은 스트레스를 돈을 쓰며 해소했던 것이다. 요즘처럼 물가가 오르는 때를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저소득층에 물가가 오르는 건 치명적이고, 이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이 중요하다. 다만 개인으로선 자신이 여태까지 한 소비가 옳았는지 한번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건 어떨까. “소비단식을 하는 조심스러운 생활 속에도 행복한 순간들이 곳곳에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인플레이션이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갈 수 없도록.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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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나 원치않는 일 겪기 마련… 어떻게 살아남는가 그리고 싶었다”

    “휴가라고 생각해. 그동안 쉬지 않고 일했잖아.” 한 광역시 시장의 측근인 황선호는 6개월 동안 한국을 떠나라는 지시를 받는다. 유력 대선 후보로 꼽히는 시장은 건설사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를 무마하려 황선호에게 죄를 뒤집어쓰라고 지시한 것. 시장은 “부탁한다”고 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비리의 주도자가 되거나 시장 곁에서 쫓겨나거나.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결국 황선호는 머나먼 아프리카에 있는 ‘보보민주공화국’이란 곳으로 간다. 14일 출간된 장편소설 ‘이국에서’(은행나무·작은 사진)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고국을 떠난 한 남성의 고독한 여정이 담겨 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받은 이승우 작가(63·큰 사진)의 신작. 그가 장편을 선보인 건 2019년 8월 ‘캉탕’(현대문학) 이후 3년 만이다. 18일 전화 인터뷰를 한 이 작가는 “현실 정치가 떠오른다”고 하자 특정 사건을 모티브로 쓴 건 아니라고 했다. “황선호가 겪는 일이 한국 정치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라 생각되긴 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원치 않은 선택을 강요받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를 그리고 싶어서 정치적인 사건을 (보조 장치로) 택했죠.” 황선호는 도시 3개를 경유해 26시간 만에 보보민주공화국에 도착한다.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으려 낡은 호텔에서 오랫동안 은신한다. 이따금 거리를 걷긴 하지만 시장에게 피해를 줄까 봐 한국에는 연락도 하지 않는다. 상당히 무거운 주제지만 내밀한 심리 묘사와 유려한 문장 덕에 소설은 술술 읽힌다. 어딘지 모를 이국에 갇혀버린 그의 상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갇혀 지낸 우리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018, 2019년 문학잡지 ‘악스트’에 연재한 걸 3년에 걸쳐 틈틈이 고쳤어요. 코로나19가 심각하던 시기에 개작한 만큼 단절과 폐쇄에 대한 정서가 짙게 묻어 있죠. 완벽한 고립 상태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것. 황선호와 우리 모두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보보민주공화국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정치적 혼란이 거세지며 외국인에 대한 제재도 엄격해진다. 황선호는 쫓겨나지 않으려 여러 방편을 찾는다. 그러다 우연히 이 머나먼 땅에서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어떤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데…. “개개인의 인생도 결국은 집단의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다만 5·18민주화운동을 다룰 때는 혹시나 도구적으로 소비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그 사건은 황선호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과거로 이어지며 소설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는다. 황선호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서사는 작가의 1982년 장편소설 ‘생의 이면’(문이당)이 떠오른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담았던 당시처럼, 이번에도 그의 삶이 투영된 걸까. 그는 망설이다 긴 침묵 끝에 말했다. “전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잃었어요. 그 뒤로 고향(전남 장흥)을 떠나 한참 동안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의도적으로 쓴 건 아니지만, 작품에 어릴 적 제 경험과 기억이 어쩔 수 없이 담기는 것 같아요. 태어난 곳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서사를 놓지 못하는 이유입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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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은, 손에 뭘 들었느냐에 따라 달라져

    그림책 양 페이지에 사내가 한 명씩 섰다. 살짝 벗겨진 머리, 바지 아래 맨발…. 둘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기다란 막대기를 든 포즈마저 같다. 그런데 왼쪽 남성이 든 막대기는 끝이 뭉뚝한 삽이다. 그 삽에 빵을 올려 화덕에 넣고 있다. 반면 오른쪽 남성의 막대기 끝은 뾰족하고 빨갛다. 뭔가를 찌른 뒤 붉게 물든 창(槍)이다. 7일 출간된 그림책 ‘우화’(비룡소)는 비슷하지만 다른 인간의 상반된 모습들이 묵직하게 이어진다. 17일 화상으로 만난 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62·사진)도 그림처럼 사뭇 진지해 철학자나 인문학자 느낌이 물씬했다. “유럽인에게 주식인 빵을 굽는 건 사람을 먹여 ‘살리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같은 자세인 남성의 손에 창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건 죽음과 맞닿아 있죠. 인간은 ‘손에 뭘 쥐고 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걸 보여줍니다.” 흐미엘레프스카는 세계 3대 아동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이탈리아 볼로냐 라가치상’을 3차례나 받은 유명 작가다. 올해 3월 이수지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에도 3차례 오를 정도로 그의 작품은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다. ‘우화’는 기획 때부터 비룡소와 협업해 이번이 세계 첫 출간이다. 흐미엘레프스카는 평소 한국에 관심이 많아 2005년 한글 자모를 형상화한 ‘생각하는 ㄱㄴㄷ’(논장)을 이지원 작가와 펴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은 열정적이고 시스템이 체계적이라 함께 일하기 좋다”고 했다. ‘우화’를 그린 계기는 최근 유럽에 불어닥친 혼란이었다. 흐미엘레프스카는 “지난해 난민을 둘러싼 벨라루스와 폴란드의 갈등이나 올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그림책에서 우산을 쓴 여성과 총을 겨눈 여성, 꽃다발 든 남성과 수갑이 채워진 남성이 “대비된 평화와 폭력”을 줄곧 떠올리게 한다. “저는 폴란드의 작고 조용한 동네에 삽니다. 그런 마을에도 우크라이나 난민이 많아요. 여성들은 먹고살기 위해 거리에서 음식을 팔고, 아이들은 발버둥치죠. 폴란드인도 러시아가 쳐들어올까 봐 두려워해요. 폭력과 전쟁의 비극이 그림책에 가득한 걸 부정할 수 없네요.” 그림책 속 수많은 인물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어딘가를 응시한다. 눈빛을 볼 순 없지만 뒷모습에선 절망과 긴장감이 배어난다. 글이 없어 생각을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그들은 어떤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 걸까. “(글을 쓰지 않은 건) 보여주고 싶은 것만 전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설명하지 않을 때, 독자들은 뭔가 다른 것을 찾아냅니다. 제 목소리는 작아서 폭력과 전쟁을 멈출 수 없어요. 하지만 책을 읽은 독자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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