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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로, 음악교육자로 부지런히 활동해 온 첼리스트 김민지와 주연선이 나란히 새 앨범을 내놓았다. 각각 현을 씹어버릴 듯한 쫄깃함과 잔잔한 온화함이 돋보인다. 서울대 교수인 김민지는 20세기 첼로 작품 네 곡을 모은 새 앨범을 유니버설뮤직코리아에서 선보였다. 프리드리히 굴다의 ‘첼로와 윈드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카사도 ‘독주 첼로를 위한 모음곡’, 힌데미트 무반주 첼로 소나타, 1999년 발표돼 간신히 ‘20세기 레퍼토리’가 된 솔리마 ‘알로네(alone·후광)’ 등 네 작품을 실었다. 김민지는 올해 2월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독주회를 통해 카사도와 솔리마의 곡을 소개한 바 있다. 클래식과 재즈,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 다양하게 활동했던 ‘악동’ 굴다의 협주곡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이 앨범의 값은 충분하다. 첫 악장부터 드럼세트와 기타의 음색이 두드러지는 록 밴드 스타일이 펼쳐져 기존의 협주곡 양식을 상상한 감상자를 놀라게 한다. 4악장은 ‘미뉴에트’로 표기됐지만 캐스터네츠와 기타가 두드러지는 남유럽 춤곡을 연상시킨다. 5악장은 뮌헨 ‘옥토버페스트’의 떠들썩함을 연상시키는 독일어권 대중음악 스타일이 신명을 돋운다. 김민지의 첼로는 곡 전체에 걸쳐 찰진 에너지를 마음껏 전달한다. 솔로 악기인 첼로가 무대 곳곳을 뛰어다니는 듯하다. 굴다의 곡은 김영률이 지휘하는 관악합주단 ‘더 윈즈’가 협연했다. 다른 세 곡은 무반주 솔로곡이다. 음반 마지막 곡으로 실린 ‘알로네’에서도 클래식에서 중세음악과 아랍음악의 어법까지 아우르는 자유로운 환상이 마음껏 표현된다. 굴다의 곡은 지난해 1월 인천 하늘꿈교회, 다른 곡들은 4월 경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녹음됐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로 수석을 지냈고 중앙대 교수로 활동 중인 주연선은 첼로 소품집 ‘로망티크’를 소니 레이블로 내놓았다. 2016년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이후 5년 만의 앨범이다. 피아니스트 문정재의 반주로 엘가 ‘사랑의 인사’, 슈베르트 ‘세레나데’ 등 주로 낭만주의 시대의 소품 16곡을 모았다. 바로크 시대 륄리나 근대 작곡가 파야의 작품도 있지만 모두 ‘노래성’이 두드러지는 곡들이다. 주연선은 이 아담한 곡들을 적합한 분절법(프레이징)과 적절한 범위 안에 잡아둔 다이내믹(강약 대비)으로 호소력 있게 표현했다. ‘사람 목소리와 가장 유사한 악기’라는 첼로의 평판처럼 봄날 종일 틀어놓고 따라 흥얼거리고 싶어진다. 올해 1월 서울 종로구 JCC아트센터에서 녹음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인류가 대역병의 검은 구름에 덮인 뒤 16개월이 지났다. 아직도 이와 관련된 신간을 펼쳐야 할까. 답은 ‘그렇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직후 단 몇 개월 사이에 독자의 시선을 끈 책이 있다면 실제로는 코로나19 이전의 전염병을 다뤘거나, 기존 책에 몇 개의 보론(補論)만 덧붙였거나, 충실한 정보를 미처 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충분한 숙고를 녹인 ‘새 감염병 담론’은 이제부터다. 이 책은 인류학 박사인 의사(신경인류학자 박한선)와 인지종교학자(구형찬) 간 협업의 산물이다. 그 영역은 의학과 역사, 종교를 넘나든다. 저자들의 말을 빌리면 “기나긴 인류 진화사의 관점에서 감염균과 인류의 공(共)진화적 투쟁, 투쟁의 과정 중에 빚어진 인류의 인지(認知)와 감정, 사회와 문화, 신앙과 종교에 대한 책”이다. 인류는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이뤄왔지만 이는 대재앙도 불러왔다. 대표적인 예가 농업혁명이다. 소의 몸에 살던 미생물은 홍역·결핵·천연두를, 돼지 몸에 있던 미생물은 백일해와 인플루엔자를 각각 가져왔다. 인류를 괴롭힌 감염 병원체 1400종 중 800종은 사람과 동물 간 인수(人獸)공통 병원체다.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 병원체의 침입이 줄 것 같았지만 인구 밀집이 높아지면서 사람 사이의 감염은 오히려 늘었다. 물자와 사람이 이동하면서 감염균도 이동했다. 오랜 역사를 걸쳐 지구 위에 살았던 사람 중 절반 이상이 감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인간과 병원체는 오랫동안 서로를 길들였다.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방패도 발달했지만 부작용을 피할 순 없었다. 몸속 면역체계가 오작동하면 알레르기나 자가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신체 면역체계뿐 아니라 ‘행동 면역체계’도 있다. 배설물이나 토사물, 해로운 곤충이나 설치류를 본능적으로 회피하는 행동체계를 뜻한다. 행동 면역체계도 자주 오작동 한다. 오늘날 각국에서 볼 수 있는 외국인 혐오가 대표적인 사례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팬데믹이 장기화하면 인간 본능에 각인된 행동 면역체계를 통해 개방성을 낮추고 집단주의가 득세하도록 만들 수 있다. 지금의 강대국 간 갈등에 행동 면역체계 오작동이 개입된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언제든 다시 찾아올 감염병과 함께 인류는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까. 저자들은 옛 프로이센의 인류학자 피르호의 말을 빌려 “의학은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대규모 의학이다. 의학은 이론적 해결책을, 정치는 실제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우리의 의학 수준은 세계 정상급이다. 부족한 쪽이 어느 쪽인지는 자명하다”고 말한다. 장기적으로는 감염과 관련된 불안과 공포, 강박, 그리고 혐오와 배제, 차별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권고다. “(이것들은) 감염병 자체보다 막대한 피해를 가져온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다. 체면 때문에, 법과 평판 때문에 잠들어 있던 이 오랜 본성들은 팬데믹 상황에서 강력하게 활성화될 수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이번에 연주할 작품은 감정의 원류(源流)가 음악 속에 완전히 풀어져 있는 곡들이죠. 제게 가장 잘 맞고, 쉽게 다가오는 프로그램입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으로, 음악 저술가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피아니스트 손열음(35)이 전국 투어를 펼친다. 15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시작해 16일 천안예술의전당, 17일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 18일 서울 강동아트센터, 22일 울산 현대예술관, 23일 창원 진해문화센터, 24일 부산 영화의전당으로 이어진다. 그는 지난해 오닉스(Onyx) 레이블로 슈만 앨범을 내놓은 뒤 전국 투어를 계획한 바 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서울과 경기 하남시에서만 공연이 열렸다. 이번 투어에는 그 아쉬움을 극복하는 의미도 담았다. “3월에 스페인에서 라벨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했어요. 오케스트라 협연은 지난해 8월 이후 일곱 달 만이었죠. 1악장 끝날 때 점차 음량이 커지면서 관현악과 어울리게 되는데,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어요. 이번에는 솔로 연주지만 오랜만에 느낀 그런 각별한 느낌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울산 창원 부산 연주에선 베토벤 ‘안단테 파보리’와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슈만 ‘아라베스크’와 환상곡 C장조를, 서울 대전 천안 연주에선 멘델스존 ‘론도 카프리치오소’, 브람스 6개의 소품 작품 118, 그리고 그가 자주 각별한 애정을 표현해 온 슈만 ‘크라이슬레리아나’ 등을 연주한다. 그는 이 작품들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느낌을 넘어 ‘나와 너만 알 것 같은’, 마치 코드언어 같은 특유의 음악언어가 들어있다”고 말했다. “슈만과 브람스는 뗄 수 없는 이름이죠. 브람스의 작품 118은 후기의 작품인 만큼 초기 피아노곡보다 과감한 면모가 보입니다. 스승이었던 슈만에 대한 동경이 반영된다고 생각해요. 슈만 ‘크라이슬레리아나’는 가장 극적으로 격정적인 작품이고요. 멘델스존은 이들에게 영항을 미친 원조 낭만주의 작곡가라고 할 수 있죠.” 그는 7월 러시아 작곡가 니콜라이 카푸스틴(1937∼2020)의 피아노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클래식과 자유로운 재즈의 음악언어를 결합한 작곡가다. “제가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등상을 수상했을 때 현지 관계자가 ‘카푸스틴이 네 연주를 좋아한다. 연락해봐라’고 귀띔해서 연락을 하게 됐죠. 지난해 7월 갑자기 돌아가셔서 추모하는 앨범으로 그의 1주기를 맞아 발매하게 됐습니다. 한때 재즈를 동경했고 본격적으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의 작품에 실린 재즈의 분위기만이라도 제대로 전달하고자 노력했어요.” 올해 7, 8월 열릴 제18회 평창대관령음악제에 대한 계획을 묻자 그는 “실내악 위주의 축제를 넘어 다양하게 꾸밀 것이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콘서트도 2019년 이전에는 2회였지만 올해는 4회 열릴 것”이라고 귀띔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클래식 음악은 늘 꽉 짜인 레퍼토리를 계속해서 연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오늘날의 창작음악을 논외로 하더라도 그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죽은 작곡가 사회’에 대한 후대의 인정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만 놓고 봐도 최소 두 가지 경향이 뚜렷하다. 첫째, ‘음악의 아버지 바흐’라는 관념처럼 바로크 후기 음악을 감상의 한계선으로 놓던 데서 벗어나 바로크 초기 또는 르네상스나 중세 음악까지도 일반 음악애호가들의 감상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둘째, 1960년대 이후 대대적인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붐이 일어났다. “나의 시대는 올 것이다”라고 말했던 말러 생전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왜 현대인은 말러의 교향곡에 열광할까. 말하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답이 있다. 음악학자 노먼 러브렉트는 “말러의 변화무쌍함이 그의 작품을 늘 처음 연주하거나 듣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지휘자 존 모체리는 “말러의 스타일을 이어받은 후배들이 할리우드 영화음악계에 진출했기 때문에 현대인이 말러의 음악 스타일에 익숙하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이런 분석들에 나름대로 한마디를 덧붙인다면 ‘현대인과 공허’라는 키워드를 제시하고 싶다. 20세기 후반은 서구가 인류사상 경험해 보지 못한 풍요를 최초로 맞이한 시대였다. 한편으로 이런 풍요의 기반 위에 거대한 정신적 공허가 서구를 휩쓸었다. 베이비붐 속에서 냉전이 극한으로 치달았고, 인간은 우주에 도전했으며, ‘데미안’으로 대표되는 헤르만 헤세와 ‘생의 한가운데’를 쓴 루이제 린저 열풍, 히피 세대의 등장, 참여적이면서도 쓸쓸한 반전가요의 물결 등이 시대를 휩쓸었다. 앞선 세대는 전쟁을 치르며 세상의 물결에 휩쓸렸지만, 젊은 세대는 이제 빈틈없이 짜인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하잘것없는 것으로 느끼게 되었다. 말러는 이런 현대인의 공허가 만연한 시기에 세상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은 세상을 새롭고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도록 만들어주며, 삶과 세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기에 적합했다. 말러가 바라본 세계는 비극성과 임무를 부여받은 거대한 드라마로서의 세계이며, 인간의 삶이란 이런 세계 위에서 분명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요구받는 삶이었다. 20세기 후반의 인류는 그렇게 말러가 부여한 세상의 의미에 열광했다. 생전의 말러 자신도 그 누구보다 세계와 삶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그에게 있어서 세계는 풀어내야 할 의미로 가득한 곳이었고, 개인은 그 의미를 풀어야 하는 과제와 숙명에 붙들린 존재였다. 그가 남긴 수많은 메모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그 ‘숙명 의식’을 증명한다. 어린 말러에게 어른들이 장래 희망을 묻자 그는 주저 없이 “순교자요!”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순교하지는 않았지만 이 아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몸과 정신을 불태웠다. 삶의 숙명을 받아들인 말러의 음악엔 늘 극단이 존재한다. 교향곡 5번의 2악장에선 지옥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 황폐한 비명이 들리다가 갑자기 트럼펫이 구원의 찬가 같은 밝은 악구를 연주한다. 교향곡 4번은 민요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서 따온 천국의 순수한 일상을 노래하지만 같은 민요집에서 딴 가곡 ‘지상의 삶’에는 배고픔을 호소하며 죽어가는 아이가 등장한다. 교향곡 6번 ‘비극적’ 느린 악장도 산간 초원지대의 휴가처럼 안온한 멜로디가 흐르다가 갑자기 경악의 외침으로 빠져든다. 1960년대 말러 붐을 이끈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세상에 대해 이중 시각(dual vision)을 제공하는 말러의 음악은 20세기의 복잡성과 상응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올해 서울 예술의전당 ‘한화와 함께하는 교향악축제’에선 13일 제임스 저드 지휘 대전시립교향악단이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을, 14일엔 최희준 지휘 수원시립교향악단이 ‘천국의 일상’을 노래하는 교향곡 4번을 소프라노 홍혜란 협연으로 연주한다. 말러가 묘사한 천국과, 그가 묘사한 비극을 하루 사이 만날 수 있다. 두 교향곡에 나오는 ‘천국’과 ‘비극’도 말러가 묘사한 가장 극단적인 세계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세계 속에서도 ‘절충적’인 천국과 비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스무 세기 전 가야를 건국한 김수로왕과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사랑이 오페라로 되살아났다. 김해문화재단(대표이사 윤정국)이 8∼10일 경남 김해시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에서 공연한 오페라 ‘허왕후’는 사랑과 음모가 어울려 흥미를 견인하며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역사 오페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김숙영의 대본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허황옥의 상륙 이전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조립해 두 주인공의 사랑에 설득력 있는 옷을 입혔다. 허황옥은 가락국과 아유타국의 문명 교류에 핵심 역할을 하는 호기심 많은 인물이자 김수로왕의 즉위에도 큰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무대는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의 상부와 검(劍)을 형상화한 수직의 조형물을 기본으로 각 장면에 특화된 배경이 더해져 관객이 상상력을 열어갈 여유로운 공간을 제공했다. 이런 배경 위에 펼쳐진 작곡가 김주원의 음악은 다중양식(多重樣式)적이라고 할 만했다. 장면마다 유럽의 왈츠, 중남미의 하바네라, 20세기 캅카스 지역 발레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음악적 이디엄이 녹아들었다. 허황옥의 도래가 문명 교류의 역사를 상징하는 이야기인 만큼 다른 역사 소재에 비해 부담이 적은 선택이다. 가야금을 연상시킬 음악적 소재가 등장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우륵의 가야금은 김수로왕보다 5세기 뒤에 등장하지만 2막 2장 허황옥의 처소 장면에서 가야금을 떠올릴 선율이 들렸으면 맞춤했을 것이다. 중창 장면들은 화음을 이루는 부분보다 번갈아 부르는 대창(對唱)의 역할이 컸다. 이국적 색채를 강조하는 부분에서 타악기 글로켄슈필의 비중이 과도하게 들린 반면 금관의 역할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8, 10일 허황옥으로 출연한 소프라노 김성은은 사랑에 설레는 서정성과 음모를 깨부수는 강력함, 새 나라를 열어가는 환희 등을 공명점의 적절한 변화로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김수로왕 역을 맡은 테너 박성규의 온화한 노래와 석탈해를 연기한 테너 서필의 뚜렷한 음색이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시녀 디얀시 역의 소프라노 김민형은 배신의 아픔을 서정적인 음색으로 호소했다. 이진아시를 연기한 바리톤 박정민, 신귀간 역을 맡은 베이스 박준혁의 압도적인 성량도 인상적이었다. 출연자들의 동선은 자연스러웠고 연기에 들인 공도 역력했다. 석탈해의 음모가 드러나는 부분이나 디얀시의 희생 장면에서는 구간(九干·가야 건국 주체가 된 9명의 씨족장)들이 한층 뚜렷하게 놀라움과 실망의 감정을 표현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2막 1장 뒤 휴식시간이 진행되고 2막 2장으로 이어진 점은 설득력이 부족했다. 각각 ‘남성들의 장’과 ‘여성들의 장’으로 공통점도 찾기 힘든 만큼 막 구분을 재조정할 만했다. 이번 공연은 출연진의 88%가 지역 예술인으로 채워졌다고 김해문화재단은 밝혔다. 반주부는 이번 연주를 위해 조직한 ghcf페스티벌오케스트라를 장윤성이 지휘했다. 1월에 연습을 시작해 호흡을 맞춘 기간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한층 완숙하게 발전할 합주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김해=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하이든의 교향곡은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음악입니다. 교향악의 본질을 일깨워 주는 ‘지속 가능한 예술’이죠.”(배종훈 서초교향악단 예술감독) 교향곡의 형식을 완성해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제프 하이든(1732∼1809). 그의 교향곡 전 107곡을 5년 동안 연주하는 거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 서초교향악단이 지난해 시작해 2024년까지 서울 반포 심산아트홀에서 완주할 예정인 ‘하이든 교향곡 전곡 시리즈’다. 지난해 3회까지 공연한 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순연했다가 올해 3월 재개했다. 올해는 7월까지 매달 셋째 주 화요일 공연한 뒤 남은 스케줄을 확정할 예정이다. 20일 열리는 다섯 번째 무대에서는 하이든 교향곡 10∼12번과 하이든 호른협주곡 1번(이석준 협연)을 연주한다. 7월까지 공연은 매진됐다. 이 시리즈를 지휘하는 배종훈 감독은 “하반기 이후 같은 프로그램으로 2회씩 공연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편성이 큰 낭만주의 곡이나 성악이 들어가는 프로그램들은 취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기회에 깨끗하고 명료한 하이든의 교향곡으로 ‘힐링’의 기회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죠. 심산아트홀의 규모(405석)도 하이든의 교향곡을 연주하기 적당했습니다.” 음악학자 호보컨이 정리한 하이든의 교향곡은 104번까지 있지만, 교향곡으로 분류되는 네 곡이 더 있고 한 곡은 실제 없는 것으로 판명돼 전체 숫자는 107곡이다. “이전에도 초기 교향곡의 형태들이 있었지만 하이든은 동기(모티브)의 건축적 발전을 철저히 추구해 고전주의 교향곡의 형태를 완성했죠. 초기 10년간의 작품에서는 교향곡의 형식에 대한 여러 실험들이 눈에 띕니다.” 배 감독은 “현대 악기로 연주하지만 하이든 시대 연주의 음향과 프레이징(악구 연결) 처리 등을 연구해 최대한 당대의 뉘앙스를 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 수가 많은 만큼 전곡 도전도 드물다. 음반으로는 1972년 도라티 언털 지휘 필하모니아 훙가리카의 전집이 최초였고, 그 뒤로도 네 개의 전집만이 나왔다. 해외에서는 현재 조반니 안토니니 지휘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가 2032년까지 전곡 공연과 음반 발매를 이어가고 있다. 배 감독은 “서초교향악단 공연은 ‘스팅레이 클래시카’ 채널을 통해 방송한다. 녹음과 방송을 겸한 하이든 교향곡 전곡 연주는 세계 최초”라고 밝혔다. 하이든의 교향곡 중 93번에서 104번까지 영국 런던에서 발표한 이른바 ‘런던 교향곡집’이 가장 사랑받고 있다. 배 감독은 “초기의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 양식 교향곡들도 이미 완숙한 작곡 기량을 나타내며 모차르트의 단조 교향곡들보다도 감동적이다. 한국인들의 감성과도 잘 맞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하이든이 명백히 첫 작품임을 밝힌 교향곡 1번과 질풍노도 시기 초기 작품인 교향곡 26번 ‘애가’는 꼭 들어볼 만한 작품이라고 추천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스무 세기 전 가야국 시조 김수로와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사랑과 이상이 오페라로 되살아난다. 김해문화재단(대표이사 윤정국)은 8∼10일 경남 김해시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에서 창작 오페라 ‘허왕후’를 무대에 올린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실린 가야 건국 설화의 단순한 재현을 넘어, 새로 세운 나라에 선진적인 정치 체제를 심고 철과 문화의 강국으로 탄생시키고자 했던 김수로와 허황옥의 이상을 담은 작품이다. 이 오페라는 지난해 4월 공모를 통해 김숙영을 대본 작가로, 6월 작곡 공모를 통해 가곡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로 알려진 김주원을 작곡가로 선정한 뒤 본격 제작에 들어갔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과 김해에서 두 차례 오디션을 열어 출연 성악가를 확정했다. 최연소 국립오페라단 상근연출가를 지낸 이의주 연출가가 연출을, 노블아트오페라단을 운영하며 대한민국오페라대상을 수상한 신선섭이 예술감독을 맡았다. 오페라는 전 4막으로 구성됐다. 철기(鐵器)와 각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가락국을 방문한 허황옥은 쇠를 다루는 청년 김수로의 열성과 합리적인 자세에 반한 뒤 음모에 빠진 김수로를 자신의 지혜로 거듭 구해낸다. 수로왕이 즉위한 뒤 나라는 부강하고 평화롭지만 왕은 고국으로 돌아간 허황옥이 그립기만 하다. 그때 멀리서 붉은 천으로 둘러싼 배가 보이는데…. 허황옥 역은 8, 10일 소프라노 김성은, 9일 김신혜가 맡는다. 김수로 역에는 8, 10일 테너 박성규, 9일 정의근이 출연한다. 김해시립합창단과 최선희가야무용단, 이번 공연을 위해 구성한 GHCF(김해문화재단)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출연한다. 지휘는 장윤성 서울대 교수가 맡는다. 윤정국 김해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지역특색을 드러내는 한편 보편적이면서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서울과 지역 예술인들이 큰 노력을 기울였다. 초연 이후에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명작이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작품을 다듬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8, 9일 오후 7시 반, 10일 오후 5시.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2006년 시작돼 한국 대표 실내악 축제로 자리 잡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SSF·예술감독 강동석·사진)가 5월에 돌아온다. 지난해 SSF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인해 10월에야 축소된 형태로 만날 수 있었다. 올해엔 2019년 이전과 비슷하게 5월 13∼23일 11개의 공연을 펼친다. 올해 축제 주제는 ‘환희의 송가’. 지난해 예정됐던 공연이 해외 아티스트들의 방한 무산으로 대거 취소된 데 대한 아쉬움이 엿보인다. 지난해 주제도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을 맞아 그의 교향곡 9번 4악장에서 따온 ‘환희의 송가’였다. 강동석 예술감독(바이올리니스트)은 “예전에 이 축제에서 연주해 왔던 베토벤의 현악 4중주나 피아노 3중주곡들과는 다른 영역의 곡들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축제 초기부터 함께해 온 박재홍(바이올린), 김상진 최은식(이상 비올라), 박상민 조영창(이상 첼로), 김영호(피아노)를 비롯해 한국 대표 현악·관악 아티스트와 피아니스트 등 연주자 52명이 출연한다. 5월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리는 개막 공연은 ‘베토벤의 시대, 그때 그 사람들’이다. 한때 베토벤의 맞수로 불렸던 후멜의 피아노 3중주로 시작해 보케리니 기타 5중주 ‘판당고’, 폴란드 작곡가 크로굴스키의 피아노 8중주 등을 소개한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리스트가 피아노 두 대용으로 편곡한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피아니스트 임효선과 정재원이 연주한다. 이 축제에 매년 독특한 색깔을 부여해온 윤보선 고택(古宅) 콘서트는 17일 열린다. 하이든 플루트 3중주 D장조로 시작해 근대 작곡가인 이베르의 ‘플루트와 기타를 위한 간주곡’ 등 다채로운 시대를 수놓는다. 플루티스트 최나경, 기타리스트 박규희 등이 출연한다.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는 ‘베토벤: 불멸의 연인’ 콘서트가 열린다. 베토벤이 사랑한 연인들과 관련된 작품들을 연주한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엘리제를 위하여’, 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 사랑의 상념과 연관된 것으로 추측되는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1악장 등을 소개한다. 23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폐막 공연은 제목이 ‘Gallic에 미치다(Mad for Gallic)’이다. 마늘(Garlic)이 아닌 프랑스적 성격(Gallic)이다. 드뷔시 ‘네 개의 손을 위한 작은 모음곡’으로 시작해 생상스의 피아노 5중주 A단조로 축제의 막을 닫는다. 2만∼7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노의 조상인 하프시코드와 현대의 피아노가 한 무대에 오른다. 다음 달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챔버홀에서 열리는 ‘안종도 하프시코드·피아노 리사이틀’. “유럽에서도 하프시코드와 초기 피아노인 ‘피아노포르테’가 한 콘서트에서 연주되는 경우는 있지만 하프시코드와 현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경우는 드물죠. 두 악기의 매력을 같은 무대에서 비교해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안종도는 2012년 프랑스 롱 티보 크레스팽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뒤 유럽을 중심으로 연주 활동을 이어오다 4년 전 프랑스 바로크 작곡가 라모의 작품에 빠졌다. 독일 브레멘 국립음대에서 카르스텐 로프 교수에게 하프시코드를 배웠다. ‘해머’로 현을 때리는 피아노와 달리 하프시코드는 건반을 누르면 ‘뜯개’가 현을 뜯어 소리를 낸다. “라모의 곡을 피아노로 칠 때는 특유의 아름다움이 살아나지 않았어요. 정밀한 표현이 가능한 피아노와 달리 하프시코드는 묘사할 대상 앞에 안개가 끼어 있는 것 같아 소리가 짧고, 이내 사라지죠. 대신 은유법을 쓰듯 특유의 아름다운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피아노와 하프시코드 건반 앞을 오가며 감각을 전환하기란 힘들었다. “바꿔 앉을 때마다 마치 옷장에서 옷이 쏟아진 것처럼 혼란스러웠죠.” 안종도는 최근 건반악기 거장 리처드 이가를 방문해 집중 수업을 받았다. “‘악기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소리의 근원인 사람은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뒤 두 악기를 다루기가 한층 편해졌습니다.” 이번 콘서트 1부에선 17세기 프랑스 바로크 작곡가인 루이 쿠프랭의 클라브생 모음곡집 F장조를 하프시코드로 연주한 뒤 모차르트의 환상곡 3번과 소나타 17번을 피아노로 연주한다. 2부에선 쿠프랭과 같은 시대의 독일 작곡가인 요한 프로베르거의 ‘페르디난트 4세의 서거를 위한 라멘토(비탄)’를 하프시코드로, 이어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를 피아노로 연주한다. 클라브생 모음곡 F장조를 작곡한 루이 쿠프랭은 더 잘 알려진 작곡가 프랑수아 쿠프랭의 삼촌이다. 환상적인 느낌 속에도 기쁨과 겸손, 맑음이 들어있는 작품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모차르트의 환상곡 3번은 작곡가가 마지막 열 마디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탓에 제자가 악보를 채워 넣은 곡이다. 그는 이번에 열 마디를 자기 방식대로 채워 선보인다고 귀띔했다. 후원자의 죽음에 부쳐 작곡한 프로베르거의 곡에 대해서는 ‘추상적이면서도 애도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곡’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바로크 곡은 없었죠. 낭만주의 시대의 슈만이 썼다고 해도 믿을 작품입니다.” 그는 리사이틀에 앞서 4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서 김광현이 지휘하는 원주시립교향악단과 하이든의 하프시코드 협주곡 11번을 협연한다. “피아노로도 연주하도록 작곡됐지만 하프시코드로 할 때 더 눈부신 소리가 표현되죠. 하이든 시대에 없던 큰 홀에서 하는 연주여서 독주부가 오케스트라에 묻히지 않도록 연구하고 있습니다.” 24일 리사이틀 3만∼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니스트 윤홍천(39)은 음반 팬들에게 유독 뜨거운 이름이다. 그가 ‘William Youn’으로 내놓는 음반마다 세계 음반전문지의 찬사를 몰고 왔다. 29세 때인 2011년 슈베르트 즉흥곡집 D.935 등을 담아낸 두 번째 음반은 음반 저널 ‘디아파송’에서 5점 만점을 받았다. 고음질 전문 레이블 욈즈클래식에서 2018년 완성한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앨범은 “이렇게 섬세하면서 내면의 깊이를 가진 모차르트는 들어본 일이 드물다”(그래머폰)는 찬사를 받았다. 소니뮤직에서 지난해 첫 장이 나온 슈베르트 전집은 “깊이 있는 감정을 담은 건반의 시(詩)”(BBC 뮤직매거진)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가 2년 만에 고국 팬들 앞에 선다. 4월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여는 독주회 ‘A Psalm of Life―생의 찬가’다. 모차르트의 론도 K511, 리스트 ‘단테를 읽고’, 라벨 ‘거울’, 슈베르트 소나타 21번이라는 육중한 프로그램이다. 그는 22일 열린 화상 간담회에서 ‘생(生)의 찬가’라는 제목에 두 가지 관점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하나는 ‘거울’입니다. 지난해 공연이 50여 개나 취소돼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많았죠.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본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죽음’이라고 그는 말했다. 모차르트의 론도는 친구를 떠나보내며 쓴 곡이다. 리스트의 ‘단테를 읽고’는 저승의 풍경들을 담은 곡이며, 슈베르트의 소나타 21번은 그가 죽기 직전 완성한 작품이다. “지난해 세계에서 많은 사람이 지인을 떠나보냈죠. 인생은 끝이 있는 만큼 현재를 뜻있게 살라는 작곡가들의 메시지를 담고자 했습니다.” 그가 모차르트, 쇼팽, 슈만과 더불어 가장 사랑하는 슈베르트의 피아노곡 전집도 2023년까지 잇따라 발매될 예정이다. “모차르트 전집 이후 ‘슈베르트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제 공연을 소니뮤직 사장이 보러 오셨어요. ‘슈베르트 전집 녹음은 어떤가’ 하셔서 신기했죠.” 녹음은 호텔로 쓰이는 독일 알프스의 엘마우 성(城)에서 했다. “녹음 기간에는 대체로 오래된 교회 같은 곳에 머물며 고립된 느낌을 갖기 쉬운데, 이번엔 호텔 전체를 녹음 팀에 열어주고 셰프까지 왔어요. 좋은 컨디션에서 녹음했죠. 하하.” 그는 이달 26∼28일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열리는 김주원의 무용극 ‘디어 루나’에도 출연한다. “김주원 선생님이 ‘달’이라는 주제를 묘사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저와 하나의 자아를 표현하죠. 처음 해보는 도전이라 직접 만나서 맞춰갈 콜라보에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4월 16일 콘서트 4만∼6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노래는 즐겁구나, 산 너머 길 나무들이 울창한 이 산에, 가고 갈수록 산새들이 즐거이 노래해….” 1970년대 애창곡 ‘노래는 즐겁다’다. 신선한 바람이 가슴으로 흘러들어오는 것 같다. 원곡은 ‘로렐라이’로 유명한 독일 작곡가 겸 민요 편곡자 질허가 1827년 작곡했다. 원곡 가사는 어떨까. “나는 마을에서 떠나야만 하나? 사랑하는 그대가 있는데? … 그대 울지만, 나는 돌아오리다.” 같은 선율인데 느낌은 정반대다. 독일인들에게 한국어 번안 가사를 들려주면 놀란다. “원가사는 쓸쓸한데 당신들 가사는 너무 유쾌하네.” 과연 가사를 배제한 ‘음악’은 그 자체로 어떤 감정을 묘사하기에 부족한 도구일까.1937년 11월,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 레닌그라드(오늘날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되었다. 마지막 4악장은 트럼펫의 찬란한 음색이 불을 뿜는 강렬한 행진 리듬으로 끝난다. 관영 매체들은 이 부분이 공산주의의 빛나는 승리를 그리는 것으로 해석했다. 스탈린의 억압통치가 정점에 달한 시기였다. 훗날 쇼스타코비치는 지인 몇몇에게 은밀히 진실을 밝혔다. “(이 곡은) 누군가 몽둥이로 내리치면서 ‘너의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휘청거리면서 일어나 앞으로 행진하며 그 말을 중얼거려야 한다.” 이 일화는 음악이 전달하는 ‘감정’이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상반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음악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일까. 독일 음악학자 에두아르트 한슬리크(1825∼1904)의 생각은 그랬다. 그는 18세기 오페라 작곡가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 나오는 아리아 ‘에우리디체 없이 나는 어떻게 할까?’를 예로 들어 ‘음악이 감정을 표현한다는 생각은 쓸데없다’고 주장했다. 가사를 ‘에우리디체를 찾았으니 나는 기쁘다’로 바꿔 불러도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한슬리크는 같은 시대 작곡가 브람스를 찬양한 인물이었다. 당시는 음악을 넘어 문학과 미술이 어울린 종합예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바그너파’와 음악은 순수한 형식이 중요하다는 ‘브람스파’가 대립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한슬리크가 간과한 것이 있다. 모든 문화권에서 인간은 사랑과 기쁨과 절망을 노래에 담아 불렀고 나아가 사람의 목소리를 뺀 ‘기악’만으로도 희로애락을 표현했다. 한슬리크가 옹호한 브람스도 사랑의 슬픔과 인생의 허무를 노래한 가곡들을 작곡했다. 브람스가 작곡한 교향곡이나 실내악곡 등 순수 기악곡에서도 우리는 가을과, 사랑과, 허무의 상념들을 찾아낸다. 브람스에게 ‘음악은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가’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음악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감정과 다를 뿐이다. 글이 표현하는 감정과 음악이 표현하는 감정이 어울려 멋진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상상이지만 그렇게 말할 것 같다.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 잔 시벨리우스는 1902년 교향곡 2번을 발표했다. 핀란드가 러시아 통치 아래 놓였던 시기였다. 격정에 찬 4악장 피날레를 들은 청중은 그가 3년 전 발표한 교향시 ‘핀란디아’처럼 작곡가가 이 곡에 애국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했다. 시벨리우스의 친구였던 지휘자 카야누스는 “암울한 2악장은 이 시대의 위협적인 불의에 대해 뼈저린 마음으로 항거함을 뜻한다. 4악장은 미래의 밝고 낙관적인 전망을 보여주는, 승리의 결론으로 발전한다”고 설명했다. 이 해석에 대해 시벨리우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했다. 작품의 의미를 한정된 시대에 갇히게 하지 않고 넓게 열어두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26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2021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으로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올해 교향악축제에서는 4월 20일 홍석원 지휘 광주시립교향악단이 같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을, 4월 4일에는 이종진 지휘 춘천시립교향악단이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 두 작곡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모호성’이 오히려 더 깊은 공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gustav@donga.com}

작곡 거장을 넘어 핀란드라는 국가 정체성의 큰 줄기가 된 잔 시벨리우스(1865∼1957). 그의 첫 교향곡인 교향곡 1번 E단조(1899년)가 잇따라 서울 콘서트 무대에 오른다.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막하는 ‘한화와 함께하는 2021 교향악축제’에서는 서진의 지휘로 과천시립교향악단이 4월 2일 이 곡을 연주한다. 4월 15, 1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이 곡을 메인 프로그램으로 연주한다. 4월 29일에는 정치용이 지휘하는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롯데콘서트홀에서 같은 곡을 무대에 올린다. 4월에만 세 차례다. 6월 25일 브람웰 토베이 지휘 KBS교향악단의 연주까지 포함하면 상반기 중 네 개의 교향악단이 서울에서 ‘시벨리우스 1번 대전(大戰)’을 펼치는 셈.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1번은 유명한 교향시 ‘핀란디아’와 같은 1899년 작곡됐다. 당시 핀란드가 러시아의 속국이었던 상황에서 ‘핀란디아’와 마찬가지로 끓어오르는 열정과 격렬한 투쟁을 표현해 3년 뒤 나온 교향곡 2번과 함께 핀란드 청중에게 ‘애국적 교향곡’으로 받아들여졌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전곡 중에서도 가장 초기의 작품이어서 러시아 거장 차이콥스키의 영향도 짙게 들어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작품 전체 분위기를 제시하는 첫 악장부터 삭풍이 부는 듯한 음울한 2악장, 원시적 리듬이 두드러지는 3악장, 찬가풍 선율이 두드러지는 4악장이 두루 사랑을 받고 있다. 4월 15, 16일 이 곡을 지휘하는 벤스케 서울시향 음악감독은 시벨리우스 교향곡 해석의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으로 꼽혀 왔다. 핀란드 출신인 그는 1997년 핀란드 라티 교향악단, 2016년 미국 미네소타 교향악단을 지휘해 두 차례나 시벨리우스 교향곡 7곡 전곡 앨범을 내놓았다. 미네소타 교향악단을 지휘한 앨범은 프레스토 클래식 선정 ‘올해의 음반’으로 뽑혔으며 ‘예리하고 풍성하다. 절대 질리지 않는다’(BBC 뮤직 매거진)는 찬사를 받았다. 6월 25일 KBS교향악단을 지휘하는 토베이는 캐나다 밴쿠버 교향악단을 18년간 이끈 지휘자. 이번 연주에는 에네스 콰르텟 리더로도 활동해온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협연한다. 에네스는 토베이 지휘 밴쿠버 교향악단과 시벨리우스의 동시대 작곡가인 바버, 월턴,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을 내놓은 바 있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외에 과천시립교향악단 연주에선 클라리네티스트 채재일이 슈타미츠의 클라리넷 협주곡 7번을 협연한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콘서트 협연곡은 현역 작곡가 외트뵈시의 ‘말하는 드럼’. 2019년 제네바 콩쿠르 타악 부문 우승자인 박혜지가 협연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찰스 다윈이 1859년 ‘종(種)의 기원’을 발표하면서 진화론을 ‘창시’했다고 우리는 알아왔다. 더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같은 시대의 앨프리드 월리스가 다윈에게 자신의 연구를 전했으며, 진화론은 두 사람 협업의 산물이라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이 책의 부부 저자가 전하는 사실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종의 기원’이 출간될 즈음 지식인들에게 진화는 이미 널리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다윈의 공로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사슬 속의 수많은 고리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진화 이론의 진화사(史)’가 이 책을 이루는 줄기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사상가 엠페도클레스는 ‘생명의 원초적 단계에선 기괴한 부위들이 조합을 이뤘지만 살아가기 적합한 형태만 살아남아 번식했다’고 생각했다. 이보다 전인 기원전 6세기의 아낙시만드로스는 ‘바다에서 물고기가 먼저 등장했고, 인간은 이 물고기 상태에서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기원전 3세기에 에피쿠로스가 한 말은 한층 현대적으로 들린다. 그는 “최초의 생물이 ‘원자’의 결합을 통해 형성됐고 그중 살아남기에 유리한 것만 살아남았다”고 봤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디드로는 ‘동물계는 각 요소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고, 결합이 가능해져 결합하게 되었으며, 이런 전개가 일어날 때마다 수백만 년이 걸렸고, 지금도 새로운 전개가 일어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밝혔다. 심지어 찰스 다윈의 조부인 이래즈머스 다윈도 진화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남겼다. 그는 ‘온혈동물은 단 하나의 생명 가닥으로부터 생겨났으며, 지속적으로 개량해나가는 성질과 개량된 점을 다음 세대로 영원히 물려주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썼다. ‘끝없는 파도 밑에서 유기생명체가 태어나… 지느러미와 발과 날개 달린 숨 쉬는 계통이 나온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발표한 뒤에야 조부가 쓴 이 글들을 접했다. 책 후반부엔 유전자를 이루는 RNA(리보핵산)와 DNA(디옥시리보핵산)에 이름을 붙인 레빈, 이것들의 구조를 밝힌 왓슨과 크릭을 비롯한 20세기 유전학 대가들의 활약을 소개한다. 책 전체에 걸쳐 150명이 넘는 과학자와 사상가의 이름이 등장한다. 최재천 교수(다윈포럼 대표)의 추천사 말마따나 ‘겨울밤 모닥불 곁에 모여 앉아 듣는 듯한 조곤조곤 진화 이야기’라 할 만하다. 진화 전쟁의 장(場)인 여러 지질시대의 지식도 방대한 차원으로 펼쳐진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들은 진화와 유전학의 이야기는 지금도 적혀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유전자의 활동을 제어하는 세포 메커니즘은 이제야 밝혀지기 시작한 상태다. 이 순간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하며 우리를 위협한다. 바이러스 자체의 관점에서는 ‘진화’다. 진화와 유전 메커니즘의 완전한 규명은 미래에도 거듭 발생할 팬데믹의 불안에서 인류를 구해줄 핵심적인 열쇠가 될 것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손민수(44), 2015년 부소니 콩쿠르 우승자 문지영(26). 두 스타 피아니스트가 함께 호흡을 맞춰 협주곡을 연주한다.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KBS교향악단 764회 정기연주회 ‘새 생명의 전령’에서 두 사람은 브루흐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협연한다. 고전주의 이후의 협주곡은 대부분 독주자 한 사람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형태. 베토벤의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3중 협주곡과 브람스의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 등이 예외로 꼽힌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으로는 모차르트, 스트라빈스키, 풀랑크 등의 작품이 있지만 콘서트 무대에 오르는 일은 흔하지 않다. 이번에 공연되는 브루흐의 협주곡은 그가 죽기 9년 전인 73세 때 미국의 자매 피아니스트 ‘수트로 듀오’를 위해 쓴 만년의 작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나 ‘스코틀랜드 환상곡’ 등 브루흐의 인기곡들에 비해 해외에서도 연주되는 일이 드물다. 두 사람은 “5년 전부터 서로의 연주를 접할 때마다 감탄했다”고 말했다. 손민수는 “문지영이 여러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자주 연주를 봐왔다. 자기 색깔이 뚜렷하면서 성실한 피아니스트다. 함께 합주할 수 있어 행운”이라고 말했다. 문지영도 “한예종 재학 시절부터 존경해왔던 손민수 교수와의 연주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연주할 브루흐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에 대해 손민수는 “브루흐는 바이올린 협주곡과 ‘스코틀랜드 환상곡’ 등 현악 작품에 명곡이 많지만 피아노곡은 많지 않아 피아니스트들이 동경하기만 하던 대상”이라고 말했다. “두 대의 피아노가 뚜렷한 색깔로 겨루기보다는 오케스트라와 하나로 융합되는 작품이죠. 1악장과 4악장에서는 바흐에게서 영향을 받은 푸가적인 특징들도 느낄 수 있습니다. 연습하다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입니다.” 문지영은 “발표된 뒤 반세기 이상이나 잊혀졌던 곡이지만 브루흐 특유의 낭만적 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연주가 잘 되지 않는 만큼 이 아름다운 곡을 청중에게 소개하는 데 대한 책임감이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번 콘서트는 터키 보루산 이스탄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을 지낸 사샤 괴첼이 지휘봉을 든다. 바그너 악극 ‘지크프리트’ 중 ‘숲의 속삭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메타모르포젠’과 ‘장미의 기사 모음곡’도 연주한다. 1만∼8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 곡을 들으면 좋아하셨을 겁니다. 어머니는 소식을 듣고 ‘넌 똑똑한 아이니까’라며 기뻐하셨어요.” 한국계 미국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3)이 제63회 그래미상 ‘클래식 기악연주상’(베스트 클래시컬 인스트루멘털 솔로)을 14일(현지 시간) 수상했다. 수상 앨범은 데이비드 앨런 밀러가 지휘하는 올버니 교향악단과 협연한 크리스토퍼 테오파니디스의 ‘비올라와 실내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용재 오닐은 6·25전쟁 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어머니와 아일랜드계 미국인 조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앞서 2005년, 2010년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 미국 뉴욕에 있는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수상 소감으로 “오늘은 비올라에 위대한 날”이라고 말했다.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해 왔지만 매우 다재다능한 악기이고 수많은 색채를 표현해낼 수 있다. 비올라에 대한 관심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 점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할머니가 이 소식을 들었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할머니는 1999년 마지막으로 내 콘서트를 들으셨다. 월턴의 비올라 협주곡이었는데, ‘독주자가 크게 활약하는 곡이어서 좋았다’고 하셨다. 이번 앨범도 좋아하셨을 것 같다.” ―수상 앨범에 실린 ‘비올라와 실내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어떤 곡인가. “이 곡은 작곡가가 두 가지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다. 하나는 미국 원주민 나바호족의 시문학이고, 다른 하나는 2001년 일어난 9·11테러다. 이 사건은 특히 네 악장 중 2악장과 3악장에 반영되었다.” ―음반에 실린 연주에 대해 테오파니디스는 어떻게 평가했나. “이 곡은 테오파니디스가 9·11테러로 절망감에 빠져 젖혀 두었다가 나를 위해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번 연주를 위해 우리는 수없이 의논했고, 그는 독주 부분 해석에 대한 조언을, 나는 비올라 기법에 대한 조언을 했다. 작곡가와 함께 만든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미상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상이다. 음악가들에게도 의미가 각별한가. “음악가들이 투표해서 뽑는 상이라 특히 의미가 크다. 주요 음악계 인사들의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 ―언제 한국 청중과 만날 수 있을까. “8월에 내가 참여하는 타카치 현악4중주단 내한 연주가 예정돼 있는데, 현재 개최 여부는 불투명하다. 연말경 다른 연주가 예정되어 있어 그때는 만났으면 좋겠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 곡을 들으면 좋아하셨을 겁니다. 어머니는 소식을 듣고 ‘넌 똑똑한 아이니까’라며 기뻐하셨어요.” 한국계 미국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그래미상 ‘클래식 기악연주상’(베스트 클래시컬 인스트루멘털 솔로)을 수상했다. 수상 앨범은 데이비드 앨런 밀러 지휘 올버니 교향악단과 협연한 크리스토퍼 테오파니디스의 ‘비올라와 실내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용재오닐은 6·25전쟁 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어머니와 아일랜드계 미국인 조부모 밑에서 성장했으며 2005년, 2010년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일이 있다. 뉴욕에 있는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인터넷으로 중계된 그래미상 사전시상식에서 “오늘은 비올라에 위대한 날”이라고 말했는데.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해왔지만 매우 다재다능한 악기고 수많은 색채를 표현해낼 수 있다. 이 악기에 대한 관심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 점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음악가들이 도전을 받는 시기에 내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소감도 말했다. “지난해부터 수많은 공연이 취소되었고, 여러 음악가들이 굉장한 슬픔과 실망을 겪었다. 수상 소식을 듣고는 어두운 곳에 갑자기 햇빛이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 소식을 들으면 뭐라고 하셨을까. “내가 음악의 길로 가도록 격려하고 이끌어주신 할머니는 1999년 마지막으로 내 콘서트를 들으셨다. 약간 까다로울 수 있는 월튼의 비올라 협주곡이었는데, 들으신 뒤 ‘독주자가 크게 활약하는 곡이어서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수상을 기뻐하실 것은 물론 이번 앨범도 좋아하실 것 같다.” ―수상 앨범에 실린 크리스토퍼 테오파니디스의 ‘비올라와 실내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에 대해 설명한다면. “이 곡은 작곡가가 두 가지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다. 하나는 미국 원주민 나바호족의 시문학이다. 미국 원주민들은 오랜 시간 동안 자연과 소통하면서 영감에 넘친 시가들을 남겼다. 네 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에도 대자연의 신비와 호흡이 풍성하게 살아있다. 또 하나는, 2001년 일어난 9·11 테러 사건이다. 이 사건은 특히 네 악장 중 2악장과 3악장에 반영되었다. 2악장에서는 비올라 솔로의 비중이 큰데, 테러사건 후 뉴욕 양키스타디움에 전현직 대통령들을 비롯한 요인들과 수많은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추도 기도회가 열렸던 모습이 들어있다.”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큰 곡인 것 같다. “비극의 시대에 사람들은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 세계가 잘못된 일을 겪을 때 음악은 인류 공통의 언어로 호소할 수 있다. 이 곡을 녹음한 뒤 일어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최근의 아시아인 혐오 범죄 등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음반에 실린 연주에 대해 테오파니디스는 어떻게 평가했나. “이 곡은 테오파니디스가 9·11 테러로 인해 절망감으로 젖혀두었다가 나를 위해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번 연주를 위해 우리는 수없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고, 그는 독주부분 해석에 대한 조언을, 나는 비올라 기법에 대한 조언을 했다. 사실 작곡가와 함께 만든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수상 앨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이 협연한 테오파니디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함께 실렸다. 본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을 위해 쓴 곡이다. 테오파니디스는 한국인이나 한국계 작곡가들에게 특별한 친밀감이 있나. “바이올린협주곡은 사라장의 특별하게 강한 카리스마에 영향을 받아 쓴 곡으로 알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테오파니디스는 한국 음악가들이 매우 잘 훈련되어있고 목표의식이 높으며 한마디로 잘 연주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미상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상이다. 음악가들에게도 의미가 각별한가. “이 상은 음악가들이 투표해서 뽑는 상이라 특히 의미가 크다. 주요 음악계 인사들의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 ―언제 한국 청중과 만날 수 있을까. “8월에 내가 참여하는 타카치 현악4중주단 내한 연주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현재로 개최 여부는 불투명하다. 연말 경 다른 연주가 예정되어 있어 그때는 만났으면 좋겠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

매달 1억 명 이상이 플레이하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가 교향악단의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찾아온다. 4월 2일과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지는 ‘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브: 디 오케스트라’ 콘서트다. 초대형 발광다이오드(LED) 화면에 화려한 게임 영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KBS교향악단과 위너오페라합창단, 주소연 음악감독이 이끄는 밴드가 ‘워리어스’ ‘펜타킬 메들리’ 등 게임에 등장하는 대표곡들을 연주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외계 등 독특한 장소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치열한 전략을 겨루는 MOBA(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 게임의 대표작. 다섯 종류의 ‘챔피언’ 캐릭터를 포함해 150개가 넘는 다양한 캐릭터가 박진감과 호화로움 넘치는 상상력과 재미를 제공한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게임이 내세우는 대표곡들뿐 아니라 유저들에게 가장 익숙한 곡들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게임에 들어가기를 기다리면서 장비 등을 선택할 때 흘러나오는 테마곡들이죠.” 공연을 기획한 조휘영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 PD는 “원곡부터 오케스트라를 염두에 둔 웅대한 곡들”이라며 “상상 속 행성 간의 대결에서 펼쳐지는 게임 속의 웅대한 세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콘서트는 201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 콘서트를 알게 된 세종문화회관 측이 게임 개발 및 서비스사인 미국 라이엇 게임즈에 제안해 성사됐다. 기존에 있던 악보는 제공받고, 넣고 싶은 곡을 직접 듣고 악보로 정리하는 채보(採譜)를 거쳤다. 당초 지난해 11월 공연할 예정이었고 객석 점유율 90%를 단숨에 넘기며 기대를 모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한 차례 순연됐다. 지휘를 맡은 진솔은 2017년 게임음악 전문 오케스트라 ‘플래직’을 창단했으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라이브 콘서트 등을 지휘한 지휘계의 젊은 여성 유망주. 게임음악뿐 아니라 ‘아르티제 프로젝트’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전공자와 비전공자가 함께하는 말러 교향곡 연속 연주 시리즈 ‘말러리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왔다. 이번 공연에는 세종문화회관 개관 이후 처음으로 ‘인터랙션(상호작용) 콘텐츠’를 선보인다. 공연 중 관객이 모바일 기기로 보낸 이모티콘이나 텍스트를 스크린에 노출해 공연에 참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서울시청소년국악단도 출연해 게임의 대표곡을 국악기의 친숙한 음향으로도 느껴보는 색다른 체험을 제공한다. 챔피언 코스튬 플레이와 포토존 등 다양한 현장 이벤트도 마련된다.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 외부에는 ‘바드’ ‘아무무’ 등 챔피언 5종의 대형 풍선이 ‘챔피언 악단’의 모습으로 변신해 관객을 맞이한다. 3일 공연 실황은 전국 메가박스 상영관에서 동시 생중계된다. 3만∼9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지난해 5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에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활동을 비판한 일은 이 단체를 성원해 온 국민에게 실망을 안겼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여러 칼럼과 저서로 한일관계의 바람직한 미래를 제시해 온 저자는 ‘피해자 중심주의’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정의연이 내세우는 피해자 중심주의는 원칙을 벗어나는 일이 많았다. 할머니들을 내세워 돈을 모금하고 사용처에 대해선 “우리는 생활보호단체가 아니다”라고 했다. 할머니들의 의사를 예산과 사업 등에 반영하는 시스템은 없었다. 할머니들 일부의 모습만 이상(理想)화하고 나머지의 목소리를 무시하기도 했다. 두 나라가 협의해 만든 화해·치유재단의 돈을 받은 할머니들은 활동에서 배제했다. 이는 현 정부로 이어졌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청와대에 초청하며 “할머니들을 한자리에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라고 말했지만 화해·치유재단에서 돈을 받은 할머니들은 초청하지 않았다. 정부에 대해 저자는 피해자를 방치하며 부작위(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태를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한일 간 분쟁에 대해 정부의 부작위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했지만 현 정부는 2015년의 양국 합의를 파기하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시킨 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비판도 피하는’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과 어떤 수준의 합의를 해야 해결로 볼 것인가, 우리 내부에서 먼저 합의의 수준을 합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현(絃)의 역사는 텐션(긴장)의 역사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현의 역사를 앨범 한 장에 담았다. 그와 파가니니의 이름을 합쳐 ‘인모니니’로 부르는 음악팬이 많은 만큼 기대가 쏠리고 있다. 스무 살 때인 2015년, 3년마다 열리는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가 9년 만에 배출한 우승자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양인모는 최근 도이체 그라모폰(DG) 레이블로 두 번째 앨범 ‘현의 유전학’(The Genetics of Strings)을 내놓았다. 담아낸 시대만 천 년에 가깝다. 12세기 여성음악가 힐데가르트 폰 빙겐의 ‘위로주시는 불의 영이여’(O ignis Spiritus paracliti)로 시작해 18세기 작곡가 코렐리, 19∼20세기의 할보르센과 라벨, 20세기 작곡가 시체드린의 작품과 피아졸라의 탱고 등을 두루 엮어냈다. 9일 서울 강남구 음악공간 오드포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양인모는 “내 손가락에 굳은살이라는 흔적을 남긴 ‘현’에 대해 탐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탐구는 조율(튜닝)과 바이올린 현에 대한 다양한 실험, 여러 동료 음악가들과의 협업을 남겼다. 첫 곡인 빙겐의 곡은 성악곡이다. 소프라노 임선혜가 노래를 하고, 그가 바이올린 파트를 만들어 추가했다. “현과 불(라틴어 Ignis)은 본디 밀접하죠. 인류가 활비비(줄로 송곳을 회전시켜 불을 일으키는 장치)로 불을 피우던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할보르센의 ‘사라방드와 변주곡’은 리처드 용재 오닐의 비올라와 함께했다. “비올라와 함께하면 울림이 훨씬 풍성해지죠. 모든 것이 두 배가 돼요.” 피아졸라의 ‘탱고의 역사’는 기타리스트 박종호와, 라벨 ‘치간’은 피아노 대신 마리온 라보트의 하프 반주와 함께했다. 하프는 피아노만큼 민첩하지 않지만 대신 특유의 풍성한 배음을 들을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코렐리의 소나타 d단조 ‘라 폴리아’에선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와 첼로가 함께한다. ‘긋는’ 현악기와 기타, 하프, 하프시코드 등 ‘뜯는’ 현악기가 줄들의 향연을 펼치는 셈이다. 19세기 이전의 곡은 옛날식 거트(양 창자) 현을 사용하고 현대보다 반음 또는 그 이상 낮은 옛 시대의 조율을 살렸다. 그는 ‘클래식은 시대가 아니라 성격 또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클래식의 멋있는 속성을 ‘클래식 음악’이 가장 쉽고 완성도 높게 보여주지만, 클래식 음악에만 그 멋이 있는 건 아니죠. 여러 곳에서 ‘클래식한 멋’을 찾아 나가려 합니다.” 13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음반 출시 기념 리사이틀도 연다. 피아니스트 홍사헌과 이번 음반에 함께한 기타리스트 박종호가 함께 출연한다. 3만∼7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터키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파질 사이(51)의 첼로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가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의 일환으로 28일 아시아 초연된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은 이달 26일부터 4월 4일까지 열리는 2021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을 최근 발표했다. 올해 음악제 부제는 ‘Changing Reality(변화하는 현실)’로 정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변화하는 공연계와 현대 사회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사이의 첼로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음악제 셋째 날인 28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II’ 콘서트에서 연주된다.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가 협연한다. 사이는 2001년 에코 클래식상을 수상하며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 연주를 펼쳐온 피아니스트. 작곡가로도 일찌감치 인정받아 16세 때 작곡한 ‘검은 찬가’가 독일 베를린 성립 75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연주되기도 했다. 2012년 이스탄불 법원으로부터 종교 모욕 혐의로 기소되면서 그는 터키 이슬람 근본주의와 대립하는 ‘저항의 아이콘’이 됐다. 이슬람에서 가르치는 천당에 대해 그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 발단이 됐다. 이듬해 사이는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는 그해 여름 3개월 동안이나 계속된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첼로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사이가 이 시위에 대한 터키 정부의 폭력 진압과 2015년 파리 테러 등을 비판하며 자유와 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 통곡하는 듯한 첼로 선율과 오케스트라의 포효, 터키 민속 선율이 어우러진다.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는 2018년 이 작품을 파리에서 세계 초연한 뒤 2020년엔 도이체그라모폰 레이블로 음반을 발매했다. 토마는 27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단독 리사이틀도 연다. 한편 26∼28일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에서 열리는 무용극 ‘디어 루나’도 관심을 끈다. 작곡가 김택수가 자신의 작품 및 슈베르트 등 클래식곡, 현대음악 작품을 재해석하고 피아니스트 윤홍천이 연주를 펼친다. 발레리나 김주원이 무용으로 가세하고,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배우 한예리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1970년대 스타 가수 정미조도 출연해 노래를 들려준다. 축제 개막 연주는 26일 바스케스가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맡는다. 윤이상이 핵전쟁의 위험을 묘사한 ‘서주와 추상’으로 시작해 옛 소련 대표 작곡가였던 쇼스타코비치가 스탈린 체제의 억압을 교묘하게 비꼰 교향곡 5번을 메인 곡으로 연주한다. 28, 30일 열리는 정경화 바흐 무반주 전곡 연주도 관심거리. ‘범 내려온다’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이날치 밴드도 4월 2일 통영국제음악당 무대에 서면서 이 축제에 한층 다양한 색깔을 입힐 예정이다. 올해 타계한 작곡가 강석희를 그리는 ‘작곡가 강석희를 기리며’ 콘서트도 4일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에서 열린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