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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고5(고교 5학년)’ ‘미개봉 중고품’이라 부르는 대학생들이 있다. 지난해 입학해 올해 2학년이 된 ‘20학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새내기 1년을 통째로 날리다시피 한 그들은 여전히 제대로 대학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이들은 선배에겐 평범한 일상이었던 ‘과방’(학과 자치 공간) ‘학식’(학생식당)조차 생소하다. “엠티, 축제는 꿈도 안 꾼다. 동기들이랑 학식 가서 수다 떨고 싶다”는 소박한 꿈도 이루지 못했다. 2학년이 됐는데 캠퍼스는 두세 번 가본 게 전부. 동기 선배는 물론이고 올해 입학한 후배 ‘21학번’도 랜선 친구일 뿐이다.20학번은 올해 더 큰 절망감을 느낀다. 1년만 참으면 벗어날 줄 알았던 코로나19가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내년에 상황이 나아진다고 해도 현실과 취업 고민을 맞닥뜨리는 3학년이 된다. “대학생은 돼보지 못한 채, 고7로 졸업하는 셈”이라 자조하는 비운의 20학번들을 만나봤다. 코로나 직격탄… 비운의 2020학번 대학생들“‘과방’요? 그게 대학 모든 과에 다 있는 거예요?”지난해 성신여대 20학번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한 김태림 씨(20).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학과의 학생 자치 공간인 과방이 그에겐 너무나 낯선 말이다. 대학에 입학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정작 학교 캠퍼스는 두 번밖에 가보질 못했기 때문이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입학식은 취소됐고, 신입생 ‘오티(OT·오리엔테이션)’는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김 씨는 “결국 1학년 때는 학교를 아예 못 갔고, 최근에야 실습수업 등을 이유로 등교했다”며 “캠퍼스를 제대로 거닐어 본 적도 없으니 과방이란 환상 속에서나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올해 2학년이 된 김 씨에게 대학은 여전히 일상과 동떨어진 존재다. 그는 학식(학생식당)은커녕 학교에서 약 12km 떨어진 집 근처만 전전하고 있다. 집에서 500m 거리에 있는 카페나 식당에 가는 게 외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학생 기분을 내고파 한껏 차려입고 나설 때도 있지만, 그가 꿈꾸던 ‘대학의 낭만’은 머나먼 얘기다.“사실 제가 생각하던 낭만도 대단한 건 아니었어요. 축제나 엠티(MT) 같은 ‘거창한’ 걸 떠올린 게 아니에요. 공강 때 동기들과 웃으며 시시콜콜한 얘기 나누기, 선후배와 오붓하게 학식 먹기…. 그런 ‘평범한 일상’을 기대했죠. 하지만 코로나19 탓에 점심을 집에서 먹고, 집 근처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수업을 듣는 삶을 살고 있네요.”지난해 대학에 입학한 ‘20학번’은 코로나19로 대학생활에 직격탄을 맞으며 ‘저주의 학번’이라 불렸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1년 정도만 참으면 나아질 거라는. 하지만 2학년이 된 그들은 여전히 코로나19에 발목이 잡혀 있다. 그 어떤 세대도 겪지 못한 ‘소포모어 징크스’(2년 차 혹은 두 번째에 부진을 겪는 경우)에 일부는 심각한 우울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가장 빛나야 할 시기에 가장 어두운 통로를 지나가고 있는 대학 2학년생들을 만나봤다.○“대딩 2학년이 아니라 고딩 5학년”“우리끼린 스스로를 ‘미개봉 중고 새내기’ 또는 ‘고딩(고교생을 일컫는 속어) 5학년’이라 불러요.”우스갯소리지만 별로 우습지가 않았다. 말투에서도 짙은 자조가 묻어났다. 이미 새내기를 지났지만 한 번도 새내기 생활을 해보지 못했다. 고교 때와 별 차이 없는 시간을 보낸 그들. 대학 2학년생들은 스스로가 불쌍했다.김 씨는 대학에 가면 학회나 동아리 활동을 하며 다양한 만남과 경험을 얻길 바랐다. 당연히 그 역시 허락되지 않았다. 학교 선배라곤 ‘줌’을 통해 화면으로 얼굴 본 몇몇이 전부다. 지금 그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선배는 다섯 살 많은 친언니뿐이다.요즘 언니는 김 씨에게 ‘학년별 스펙 쌓는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마케팅 기획에 관심이 많은 김 씨는 언니의 조언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관련 공모전 준비를 하고 있다. 동아리, 봉사활동 등이 다 막혀버린 상황에서 유일하게 ‘스펙’을 쌓을 기회라는 판단이었다. 공모전 정보를 얻는 법이나 기획안 작성법 등도 언니에게 배웠다.원래 공모전은 대학 동기나 선후배와 함께 하기 마련. 하지만 김 씨는 고교 동창들과 준비하고 있다. 사실 가끔이라도 함께 밥을 먹는 친구 역시 그들뿐이다. 김 씨는 “인터넷에서 대학 선배가 직장에 들어간 높은 선배를 소개해 공모전 준비를 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너무 먼 옛날 얘기 같아 실감이 잘 안 난다”고 했다.대학에서도 사귄 친구가 있긴 하다. 3명. 코로나19로 과에서 ‘짝꿍’으로 이어준 선배 1명과 후배 1명,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타(에브리타임)’에서 알게 된 동기 1명이다. 하지만 서로 얼굴을 본 건 두세 번이 전부다.“후배가 실습수업 정보를 물어보는데 난감했어요. 하나도 모르는 내용이었어요. 동아리활동이나 대면수업도 해본 적이 없으니 뭘 일러줄 말도 없네요. 그래도 저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선배는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선배에게 물어보고 답을 전해줬어요.”4, 5월이면 대학마다 열린다는 축제도 20학번들에겐 공상에서나 존재한다. 숭실대 2학년인 유정민 씨는 대학에 가면 꼭 음악밴드 활동을 하고 싶었다. 대학 축제에서 자우림의 ‘매직 카펫 라이드’를 연주하길 오랫동안 소원했다. 하지만 꿈은 꿈으로 끝나버렸다.코로나19로 힘겨운 상황에서도 유 씨는 입학 뒤 곧장 단과대 밴드에 가입했다. 어떻게든 꿈을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밴드는 ‘감염 확산 위험’에 5명 이상 모일 수가 없었다. 4명씩 합주하면 비는 파트 탓에 제대로 된 연습이 어려웠다. ‘줌 합주’도 시도해 봤지만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는 밴드 가입 1학기 만에 꿈을 접었다.○갈라파고스 대학생… 정(情)이 뭔가요대학 2년생들은 섬과 같은 존재였다. 그것도 멀리 떨어진 외딴섬. 가끔 오고가는 배들이 있긴 해도 홀로 바다에 둘러싸인 건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파편화된 대학생활은 학생들끼리 갈등이 벌어지는 악순환마저 낳고 있다.최근 대학생 사이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인 ‘학점 인플레이션’이 대표적인 사례다. 비대면 강의로만 이뤄지다 보니 성적 평가는 아무래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1, 2학년 때 쉽게 학점을 따지 못했던 선배들은 “불공정하다”며 불만을 쏟아낸다. 서울의 한 대학 2학년인 한모 씨(20)는 학내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가 엄청난 악플 세례에 시달렸다.“별거 아니었거든요. 지난해 2학기 학점이 평점 4.3(4.5 만점)이었는데 중위권에 그쳤거든요. 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는데, 거센 성토가 이어졌어요. ‘코로나 덕에 좋은 성적 받고 배가 불렀다’ ‘혜택 입어놓고 징징거리지 마라’ 등등. 얼굴도 모르긴 해도 학교 선배들인데….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선배들도 ‘코로나 학번’들이 편하지는 않다. 같은 학교 4학년인 박모 씨(22)는 “코로나 피해는 다 같이 입었는데 20, 21학번만 학점 프리미엄을 누리는 게 형평성에 어긋나는 건 사실”이라며 “얼굴도 제대로 본 적 없는 후배들인지라 살갑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차피 취업시장에선 모두 다 경쟁자라 예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1년 넘게 대학을 다녔지만 제대로 가본 적도 없는 20학번. 당연히 자기 학교에 대한 애착도 크지 않다. 그렇다 보니 20학번 중에는 ‘반수’(대학을 다니며 재수 등 입시 준비)를 선택하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한 대학 기계공학과 2학년인 이모 씨(20)도 고민 끝에 6월부터 반수를 시작했다.“1학년 때 계속되는 녹화 강의에 지쳐가다 보니 게임 등에만 빠지고 낮밤이 바뀐 생활을 하는 친구가 많아요. 저도 엇비슷했죠.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으면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요즘 동네 독서실을 끊어서 다시 수능 준비를 하는데 훨씬 값진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에요. 이것저것 다 싫다며 군대에 가버린 친구들도 꽤 돼요.”20학번들은 또 다른 걱정도 앞선다. 이대로 가다간 코로나가 끝난 뒤에도 ‘고딩 6학년’ ‘고딩 7학년’으로 지내다 대학을 졸업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자칫하면 그들에게 대학은 평생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른다.“학교에 가본 적이 거의 없죠. 교수님이나 선배들도 ‘실물로’ 본 적이 없네요. 낯설다 보니 진로 상담을 받아보겠다는 생각도 못해봤어요. 벌써 2학년이긴 한데, 한 번도 포장을 뜯어본 적이 없긴 21학번과 마찬가지잖아요. 이대로 한번 펼쳐보지도 못한 채 대학생활이 끝날 수도 있고요. ‘미개봉 중고 새내기’란 말이 얼마나 슬픈 농담인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실 거예요.”(건국대 2학년 이모 씨)유채연 기자 ycy@donga.com·조응형 기자}
“아무런 의욕이 없어서 하루 종일 집에서 누워만 있는 날이 많았어요. 하지만 ‘우울증 초기일 수 있다’는 얘길 들고선 덜컥 겁이 났어요.” 서울에 있는 한 대학 2학년생인 A 씨(20)는 최근 학교 심리상담센터에서 비대면 상담을 받고 깜짝 놀랐다. 뭘 해도 처지기만 하는 게 이상해서 상담했는데 ‘우울증’ 얘기까지 들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A 씨는 “센터에서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보기를 권했다”며 “자칫 마음의 병을 얻을 수 있었단 생각이 드니 보통 일이 아니다 싶었다”고 말했다. 1년 넘게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감염만이 무서운 게 아니다. ‘코로나 블루(우울)’는 대학 생활을 제대로 못하며 무력감을 느끼는 대학생들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상실과 좌절이 반복되면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며 “입시를 마치고 자유와 낭만을 기대했을 20학번들은 코로나19로 실망이 더 컸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학생들의 ‘자기효능감’ 상실도 문제다. 심리학 용어인 자기효능감은 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믿는 기대와 신념을 일컫는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학은 고교 때와 다른 자유로운 분위기 아래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수업을 듣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성취감을 느낄 기회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이런 활동이 제한되면서 학생들은 스스로 위축돼 자기효능감을 느낄 계기조차 잃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학생들이 자기계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미라클 모닝’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미라클 모닝이란 2016년 출간된 동명의 책에 등장한 개념으로 새벽에 일어나 명상이나 운동, 공부 등을 하면 놀라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 소셜미디어에는 해시태그 ‘#미라클모닝’을 달고 자기계발에 열중하는 모습의 게시물을 올리는 청년이 많다. 고려대 2학년인 박모 씨(20)도 “한 달 전부터 매일 오전 5시에 집 앞 공터에서 줄넘기를 했다”며 “한동안 모든 일에 짜증이 늘어 힘들었는데, 아침 일찍 작지만 뭔가를 해냈다는 기쁨을 배운 뒤로는 하루 종일 기분이 상쾌하다”고 전했다. 작은 일상의 변화가 삶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도 중요하다. 임 교수는 “기상 시간이나 식사 시간, 수면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며 “주변 상황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은 자기효능감을 회복할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도 “젊은이들이 미라클 모닝으로 절망적인 현재 상황을 타개해 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며 “작더라도 반복적으로 성과를 이루다 보면 생각의 전환도 얻을 수 있다”고 격려했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유채연 기자}

29일 오전 1시경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한 무인빨래방. 인적이 드물어진 새벽을 틈타 고교생 A 군(16) 등 청소년 3명이 점포에 들어왔다. 수상한 거동을 보이던 이들은 곧장 세탁기에 달려 있는 현금보관함에 다가가 도구를 이용해 자물쇠를 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성공하지 못했다. 서초구 폐쇄회로(CC)TV 통합관제센터에서 늦은 시간에 10대들이 빨래방에 들어가는 걸 수상하게 여겨 인근 파출소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곧장 출동한 경찰은 A 군을 현장에서 체포했으며, 외투와 모자 등을 내버려둔 채 달아난 나머지 2명의 뒤를 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 군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경기 안산에 사는 청소년들로 파악됐다. 도주한 2명도 곧 검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크게 늘어난 ‘무인점포’에서 절도 등 범죄 발생이 잦아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28, 29일 수도권 무인점포 20곳에 ‘최근 절도 등을 당한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17곳이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며 인건비 절감과 비대면 서비스 차원에서 상주 직원을 두지 않는 가게가 증가했지만, 지키는 이가 없다 보니 손쉽게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무인점포가 크게 늘어난 것도 영향을 끼쳤다. 국내 편의점체인 4개만 기준으로 해도 2018년 94개였던 무인점포는 지난해 말 743개로 8배 가까이로 늘었다. 최근엔 무인빨래방과 무인커피전문점, 무인아이스크림가게 등도 선보이며 그 수가 훨씬 많아졌다. 전문가들은 “당연히 CCTV 등의 보완장치가 있겠지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심리적 부담을 덜어줘 쉽게 범행을 마음먹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이는 무인점포에서 절도를 저지르는 이들 가운데 청소년이 적지 않은 점과도 이어진다. 경찰 관계자는 “사람이 없다 보니 10대도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조용한 주택가 점포들이 특히 취약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충남에선 청소년 5명이 대전과 청주, 천안 등을 돌아다니며 5차례에 걸쳐 300만 원어치 금품을 훔쳤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송파구에서 무인아이스크림가게를 운영하는 B 씨(41)는 “10대로 추정되는 4명이 2분 정도 현금보관함을 뜯으려다가 실패하고 나가는 모습이 CCTV에 잡힌 적이 있다”고 전했다. 무인점포는 절도의 고충만 겪는 게 아니다. 술에 취한 시민들이 가게에 들어와 노상방뇨나 구토를 저지르고 가는 일도 빈번하다. 최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무인빨래방에선 20대 4명이 새벽에 술판을 벌이고 흡연까지 하다가 경찰에 붙잡힌 적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선 경찰들은 “무인점포 탓에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지구대 경찰은 “범죄가 잦다 보니 무인점포는 반드시 순찰 루트에 포함시킨다. 순찰차에서 내려 직접 살펴보는 치안 진단 활동도 벌인다”고 전했다. 한 파출소 측은 “범죄예방은 당연히 경찰 업무지만, 무인점포는 직원이 없어 사사로운 것까지 다 챙겨야 해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무인점포라 사람이 없더라도 항상 감시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그래야 범행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유채연 ycy@donga.com·조응형 기자}

29일 오전 1시경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한 무인빨래방. 인적이 드물어진 새벽을 틈타 고교생 A 군(16) 등 청소년 3명이 점포에 들어왔다. 수상한 거동을 보이던 이들은 곧장 세탁기에 달려있는 현금보관함에 다가가 도구를 이용해 자물쇠를 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성공하지 못했다. 서초구 폐쇄회로(CC)TV 통합관제센터에서 늦은 시간에 10대들이 빨래방에 들어가는 걸 수상하게 여겨 인근 파출소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곧장 출동한 경찰은 A 군을 현장에서 체포했으며, 외투와 모자 등을 내버려둔 채 달아난 나머지 2명의 뒤를 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 군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경기 안산에 사는 청소년들로 파악됐다. 도주한 2명도 특정돼 곧 검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크게 늘어난 ‘무인점포’에서 절도 등 범죄 발생이 잦아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28, 29일 강남에 있는 무인점포 20곳에 ‘최근 절도 등을 당한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17곳이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며 인건비 절감과 비대면 서비스 차원에서 상주 직원을 두지 않는 가게들이 증가했지만, 지키는 이가 없다보니 손쉽게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무인점포가 크게 늘어난 것도 영향을 끼쳤다. 국내 편의점체인 4개만 기준으로 해도 2018년 94개였던 무인점포는 지난해 말 743개로 8배 가까이 늘었다. 최근엔 무인빨래방과 무인커피전문점, 무인아이스크림가게 등도 선보이며 숫자는 훨씬 많아졌다. 전문가들은 “당연히 CCTV 등의 보완장치가 있겠지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심리적 부담을 덜어줘 쉽게 범행을 마음먹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이는 무인점포에서 절도를 저지르는 이들 가운데 청소년이 적지 않는 점과도 이어진다. 경찰 관계자는 “사람이 없다보니 10대도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조용한 주택가 점포들이 특히 취약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충남에선 청소년 5명이 대전과 청주, 천안 등을 돌아다니며 5차례에 걸쳐 300만 원어치 금품을 훔쳤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송파구에서 무인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는 B 씨(41)는 “10대로 추정되는 4명이 약 2분 정도 현금보관함을 뜯으려다가 실패하고 나가는 모습이 CCTV에 잡힌 적이 있다”고 전했다. 무인점포는 절도의 고충만 겪는 게 아니다. 술에 취한 시민들이 가게에 들어와 노상방뇨나 구토를 저지르고 가는 일도 빈번하다. 최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무인빨래방에선 20대 4명이 새벽에 술판을 벌이고 흡연까지 하다가 경찰에 붙잡힌 적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선 경찰들은 “무인점포 탓에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지구대 경찰은 “범죄가 잦다보니 무인점포는 반드시 순찰 루트에 포함시킨다. 순찰차에서 내려 직접 살펴보는 범죄예방진단 활동도 벌인다”고 전했다. 한 파출소 측은 “범죄예방은 당연히 경찰 업무지만, 무인점포는 직원이 없어 사사로운 것까지 다 챙겨야 해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무인점포라 사람이 없더라도 항상 감시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그래야 범행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외국인근로자는 일당 3배를 준다 해도 찾을 수가 없어요. 한국인은 아예 오려고도 안 하고…. 정말 올해 농사도 앞이 깜깜합니다.” 23일 오전 충북 괴산군 불정면에 있는 한 담배밭. 900평(약 2975m²)이 넘는 넓은 밭엔 주인인 여정순 씨(57) 부부와 나이 지긋한 어르신 3명밖에 없었다. 한참을 밭을 갈다 ‘에구구’ 소리를 내며 겨우 허리를 편 여 씨는 “저쪽 밭은 또 언제 간대”라며 혼잣말을 했다. 봄을 맞아 갈수록 할 일이 늘고 있지만 여 씨 부부는 걱정이 태산이다. 외국인근로자를 구하지 못해 통사정 끝에 친척 3명이 도우러 왔지만 모두 일흔이 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 씨 부부가 하루 12시간씩 강행군해도 농사 일정을 맞추기 어렵다. 여 씨는 “지난해부터 외국인근로자 씨가 말라 인건비가 몇 배로 든다. 올해는 일당이 15만 원까지 치솟았다. 농사를 30년 지었지만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라며 속상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1년 넘게 이어지며 힘겹지 않은 국민이 없지만, ‘일손 공백’까지 겪고 있는 농민과 어민 등의 시름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외국인근로자 신규 입국이 사실상 중단돼 인력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광어 양식을 하는 지상일 씨(43)도 애가 타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지 씨는 체류기간이 만료된 외국인근로자 3명을 떠나보낸 뒤 추가 인원을 못 구해 큰 손해를 입었다. 남은 직원 넷과 열심히 노력했지만 10월에만 광어 20t을 폐사로 잃었을 정도다.올해도 눈앞이 캄캄하다. 외국인근로자 배정을 신청한 지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소식이 없다. 지 씨는 “수온이 오르면 광어를 분산해야 하는데, 일손이 달려 이틀 걸릴 작업이 열흘 넘게 걸렸다”며 “대안이 없으니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간다”며 한숨지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비전문취업(E-9) 비자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근로자는 3650명. 2019년 3만7213명이 입국했던 것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된다. 현재 국내에 있는 외국인근로자는 16만8940명(3월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약 5만 명이 줄어들었다. 현장의 일손 부족은 외국인근로자에게도 커다란 고역이다. 경기도에 있는 한 소규모 제조업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A 씨(42)는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노동 강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11월 체류기간이 끝난 동료 3명이 떠난 뒤 남은 동료들이 부족한 인력을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고용부는 이달 2일 태국과 베트남 등 비교적 코로나19 상황이 나은 5개국에서 신규 외국인근로자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농가에 ‘내국인 파견근로자 고용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파견근로업체를 통해 근로자를 고용한 농가에 4대 보험료와 수수료 등 1인당 월 36만 원을 대신 내주는 방식이다. 외국인근로자 체류 연장 카드도 내놓았다. 법무부 등은 13일 “올해 말까지 체류 및 취업활동기간이 끝나는 외국인근로자는 기간을 1년 연장해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선 실효성 없는 대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상황이 유동적이라 외국인근로자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고, 이미 인력이 부족한 상황을 남은 이들의 체류 연장으로 버티긴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어민 오재혁 씨(42)도 “이미 외국인근로자들은 다 출국했는데 이제와 기간을 늘려준들 무슨 소용이냐”고 푸념했다. 한 노동 전문가는 “장기적으로는 외국인근로자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개선해야겠지만 당장 생계가 걸린 농어민들을 도울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현장 실태를 파악해 맞춤 처방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괴산=유채연 ycy@donga.com /박종민 / 세종=주애진 기자}

최근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가상화폐’가 국내 기부문화에도 도입되기 시작했다. 기부단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침체된 나눔의 분위기가 가상화폐를 계기로 나아지길 기대하고 있다. 다만 시세가 수시로 변하는 가상화폐의 가격변동성을 줄이려면 관련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가상화폐 거래소 ‘지닥’을 운영하는 피어테크는 23일 1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모금회에 기부했다. 모금회는 이날 피어테크 측이 가상화폐 지갑주소로 비트코인을 보내주자 곧장 거래소를 통해 환전을 마쳤다. 모금회 관계자는 “가상화폐 기부가 새로운 기부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자산 안정성과 법률 등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기부단체들에는 “가상화폐로 기부가 가능하냐”는 개인 기부자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모금회에 비트코인을 기부한 피어테크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가 활성화되며 지난해 2분기 흑자로 전환했다”며 “가상화폐 투자 사업으로 번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가상화폐 기부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국내 가상화폐 기부는 2017년 12월에 시작됐다.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스트’가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포항지진 이재민 성금으로 1000만 원 상당의 가상화폐 퀀텀을 기부하면서다. 당시 희망브리지 측은 전례가 없다 보니 기부를 받는 방식에서부터 현금화 시점까지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를 거쳤다고 한다. 희망브리지 관계자는 “역시 가장 큰 고민거리는 가격변동성이다”라며 “기부금에 손실을 끼쳐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시세차익을 남겨 공공성을 훼손해도 안 된다. 이 때문에 희망브리지는 지갑주소로 보내온 가상화폐를 즉각 환전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하루만 지나도 시세가 크게 요동치는 가상화폐의 가격변동성은 앞으로 기부단체들이 고민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장애인의 날이었던 20일 가상화폐 거래소 ‘코빗’이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59이더리움을 기부하겠다고 밝혔을 때, 병원 측은 가상화폐를 환전해 현금으로 약 1억6000만 원을 기부받기로 결정했다. 병원 관계자는 “내부 회의에서 결국 손실을 방지하려면 현금 기부가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가상화폐 기부문화가 2013년부터 보편화됐다. 영국 세이브더칠드런은 2013년 가상화폐 거래소에 개설된 지갑주소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현재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13가지 가상화폐로 기부를 받고 있다. 이 밖에 미국 그린피스와 유니세프 등도 자체적으로 블록체인 기술 기반 가상화폐 기부 플랫폼을 마련했다. 기부 즉시 현금화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원칙도 해외 기부단체에서 먼저 세웠다.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특성이 기부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거래 내역을 분산시켜 기록하고 관리해 기부자가 직접 거래 내역을 추적해 살펴볼 수 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기부금 사용처를 투명하게 볼 수 있고, 여러 기관이 거래 기록과 관리 권한을 분산해 신뢰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기부단체를 사칭한 사기 피해를 경계해야 한다는 당부도 있었다. 김 교수는 “미국 등 해외에선 기부단체인 척 가상화폐 지갑주소를 올리고 수익을 빼돌리는 사기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기부단체들이 유니세프처럼 자신의 홈페이지에 기부 플랫폼을 직접 마련하는 게 안전하다”고 조언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유채연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건설사업관리 용역사업 입찰에서 업체들의 담합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LH가 발주한 건설사업관리 용역사업 92건을 분석한 결과, 입찰 업체나 컨소시엄의 수가 2곳인 경우가 66건(71.7%)에 이른다”고 20일 밝혔다. 건설사업관리란 건설공사의 기획·설계·사후관리 등의 업무 전반 또는 일부를 맡아 수행하는 업무를 일컫는다. 해당 기간 LH가 발주한 용역사업 규모는 4505억 원이다. 경실련은 “국가계약법의 ‘경쟁 입찰의 경우 2인 이상의 유효한 입찰이 있어야 성립한다’는 시행령에 맞춰 업체들이 순번을 정해 형식만 갖춰 입찰하는 ‘줄 세우기’ 담합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장성현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 간사는 “용역 가능 업체가 500개 이상인데 대부분 2개 업체만 입찰에 참여한 건 담합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LH 측은 이에 대해 “담합은 사실이 아니다. 공개경쟁입찰의 공정한 심사를 통해 낙찰자를 선정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건설사업·관리 용역사업 입찰에서 업체들의 담합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LH가 발주한 건설사업·관리 용역사업 92건을 분석한 결과, 입찰 업체나 컨소시엄의 수가 2곳인 경우가 66건(71.7%)에 이른다”고 20일 밝혔다. 건설사업·관리란 건설공사의 기획·설계·사후관리 등의 업무 전반 또는 일부를 맡아 수행하는 업무를 일컫는다. 해당 기간 LH가 발주한 용역사업 규모는 4505억 원이다. 경실련은 “국가계약법의 ‘경쟁 입찰의 경우 2인 이상의 유효한 입찰이 있어야 성립한다’는 시행령에 맞춰 업체들이 순번을 정해 형식만 갖춰 입찰하는 ‘줄 세우기’ 담합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장성현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 간사는 “용역 가능 업체가 500개 이상인데 대부분 2개 업체만 입찰에 참여한 건 담합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LH 측은 이에 대해 “담합은 사실이 아니다. 공개경쟁입찰의 공정한 심사를 통해 낙찰자를 선정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18년 전 한국을 떠나기 전엔 (제가) 도움을 요청하면 멀뚱히 서 있거나 도망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오랜만에 돌아오니 길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더라고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훨씬 나아진 것 같아요.” 시각장애인인 홍성계 미국 애리조나대 특수교육학과 교수(49)는 15일 오후 서울 중구 지하철 1호선 시청역 1번 출구에서 만나자마자 연신 “참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홍 교수는 이날도 1번 출구를 찾아 헤매다가 마침 지나가던 청년에게 길을 물었다. 그랬더니 “여러 방법이 있는데, 마침 가는 길이니 같이 가자”며 함께 걸어왔다고 한다. 그는 “자연스럽게 요청에 응하는 태도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진 걸 느꼈다”고 말했다. 네 살 때부터 녹내장을 앓은 홍 교수는 일곱 살에 시력을 잃었다. 이후 특수교육 교사를 꿈꿨던 그는 1996년 유학을 떠났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교육받는 ‘통합교육’을 연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애리조나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따고 공주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가 2014년부터 애리조나대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안식년을 맞은 그는 올해 1월부터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 오랜만에 돌아왔다. “그동안 한국의 장애인 관련 환경은 정말 비약적으로 발전했어요. 옛날엔 버스 운전기사분이 직접 정류장 안내 방송을 했잖아요. 그래서 어쩌다가 방송을 안 해주면 내릴 정류장을 놓치곤 했어요. 하지만 서울은 완전히 달라졌네요. 보행 점자 블록과 음향신호기, 스크린도어까지…. 미국보다 선진적입니다.” 장애인을 위한 기반시설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인식도 더 나아져야 한다. 홍 교수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인격체라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는 게 중요하다”며 “일부 은행에서는 장애인이 보조인 없이 계좌 개설을 못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것들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문제들은 적극적인 정치 참여 등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홍 교수는 “미국에선 장애인 관련 시민단체가 국회와 적극적으로 교류한다”며 “장애인 국회의원을 비례대표로 한 명 뽑은 뒤 모든 정치적 부담을 맡기는 현재의 한국 방식은 지속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본다”고 했다. “1990년대에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직업이 안마사냐’는 질문이 돌아왔습니다. 앞으로는 장애인이 우주항공이나 인터넷 프로그램 개발 분야에도 적극 참여하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그런 환경을 만들려면 정부와 사회가 장애인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야 합니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일단 예약은 4명으로 해놓고, 당일 2∼3명 더 이용하는 건 상관없어요.” 경기 가평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A 씨는 18일 오후 2시경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6명 이상도 예약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치가 전국 숙박시설에도 적용되고 있지만, 오히려 A 씨는 “문자메시지로 숙박인원을 확인할 때에만 저희 쪽에 ‘4명’이라고 답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모르는 일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제주 서귀포시의 한 숙박시설은 전화로 예약을 문의하자 “직계가족이 아니더라도 6명 이상 한 방을 잡아주겠다”며 대놓고 호객행위를 하기도 했다.○ “절대 안 걸린다”…고삐 풀린 방역 의식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15일부터 나흘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600명을 넘어섰다. 1주간 평균 확진자가 629명일 정도로 확산세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 하지만 봄철 나들이객이 몰리는 관광지와 공항 등에선 최소 1m 이상 거리를 띄우는 기본 방역수칙마저 지켜지지 않았다. 여행객들은 물론 관광지 인근 숙박시설조차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하는 수칙을 위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봄철 ‘방역 의식’이 집단적으로 느슨해졌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일부 숙박시설에서는 업주가 먼저 여행객에게 “절대 걸릴 일 없다”며 단체 예약을 받아내기도 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친구 6명과 가평의 한 펜션을 빌려 여행을 다녀온 박모 씨(20)는 “오히려 펜션 사장이 먼저 ‘SNS에 후기만 안 올리면 된다. 현금 결제하면 걸릴 일 없다’고 예약을 안내해줬다”고 말했다. 펜션 내부엔 방문한 이들의 연락처를 적어두는 출입명부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는 감염병예방법 위반에 해당한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방역수칙을 위반한 업주에게는 최대 3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예약 인원을 속이는 등 방역수칙을 위반했다가 뒤늦게 확진자가 나올 경우 역학조사 등 감염경로 파악에 애를 먹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1m 거리두기 안 지키고 줄 서 제주 여행객 등 나들이 인파가 몰린 공항은 주말 내내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17일 오후 2시 40분경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내선 3층 출발장. 입구 두 곳을 합쳐 200명 넘는 인파가 다닥다닥 붙은 채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적어도 1m 이상 거리를 두라는 방역수칙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특히 공항 2층 외부에 마련된 흡연실에선 16명이 서로 한 발자국 떨어져 마주 보며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실내 흡연실을 이용할 때에도 2m 거리를 두고 접촉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방역수칙은 인파가 몰리자 무용지물이 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봄철 나들이 특별방역대책’을 세워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0일까지 전국 주요 자연공원과 휴양림, 수목원, 놀이공원 등 집중점검에 나섰다. 중대본은 “봄철 나들이 여행은 가까운 곳으로, 단체여행보단 가족끼리 소규모로 가급적 당일 개인 차량을 이용해 다녀오는 걸 권장한다”고 밝혔다.유채연 ycy@donga.com·이기욱·이소연 기자}

“이곳의 반도체 설비들은 1985년 착공됐습니다. 당시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시설이라 해외 학자들이 참관도 왔었죠. 그런데 지금은 장비도, 직원도 매우 부족해 어려움이 많습니다.” 14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서울대 재료공학부에서 반도체 전공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고 있는 박현우 씨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반도체 연구 현실을 이렇게 소개했다. 20분간 진행된 간담회는 산업부가 반도체 인력양성 현황을 점검하려 반도체 전공 학생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급 대란이 이어져 국내 자동차 생산마저 중단되고 있는데, 국내에선 생산 시설, 인력 등 반도체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지적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대학에 연구소가 마련돼 직접 반도체 공정을 체험할 수 있어 만족하면서도 연구소 내 설비가 부족하고 노후화된 점을 아쉬워했다.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최홍석 씨는 “우리 자체 연구비로만 충당하다 보니 장비가 부족해 우리가 연구한 논문이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업이나 학교가 낸 논문에 밀린 적이 있다”며 “지속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같은 학부 석·박사 통합과정의 서영탁 씨는 “가끔 장비가 노후화돼 멈추는 순간이 있다”며 “대체 장비가 마련되면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국내 반도체 연구 기회가 적은 점도 지적됐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김승수 씨는 “반도체를 전공하는 교수의 절대적인 수가 적다”며 “연구직보다는 기업으로 취업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기술인력(2019년 기준)은 향후 10년간 매년 1500명씩 확보돼야 생산에 차질이 없다. 이에 산업부는 2021∼2022년 반도체 관련 인력 4800명 이상을 배출할 계획이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4차 산업혁명 속도가 빨라지며 반도체 인력수요도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며 “정부가 반도체 전공 학부를 확대하고 비싼 반도체 설비에 적극적으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성 장관은 학생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반도체 관련 학계 전문가들과 30여 분간 비공개 간담회도 진행했다. 하지만 정부가 비판 여론에 떠밀려 간담회를 형식적으로만 진행했다는 말이 나왔다. 세종=구특교 kootg@donga.com / 유채연 기자}

지난달 23일 서울 노원구에서 스토킹하던 여성의 집에 침입해 어머니와 여동생 등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태현(25)이 지난해 이미 미성년자 여성을 상대로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9일 밝혀졌다. 특히 김태현이 지난해 저지른 범죄는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이른바 스토킹처벌법상 ‘스토킹 범죄’에 해당돼 22년 전 처음 발의된 스토킹처벌법이 좀 더 일찍 국회에서 통과됐다면 세 모녀 살인 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 모녀 살해’ 전 스토킹 범죄 9일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이 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김태현은 지난해 6월 대구의 한 고시원에서 발신번호 표시 제한 서비스를 이용해 피해자 A 씨(당시 18세)에게 전화를 걸어 신음소리를 냈다. 이후 지난해 8월 11일에도 A 씨에게 전화를 걸어 비슷한 음성을 보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10일 김태현에게 성폭력처벌법 위반(통신매체 이용 음란) 혐의로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선고했다. 김태현은 13일 뒤인 지난달 23일 세 모녀를 살해했다. 세 모녀가 살해된 다음 날인 지난달 24일 국회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1999년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스토킹처벌법은 올 2월까지 총 21회 발의됐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하다가 지난달에서야 통과됐다. 이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스토킹 범죄 신고는 4515건이었지만 이 중 488건만이 처벌을 받았다. 그나마도 스토킹처벌법이 없어 경범죄처벌법으로 처벌됐다. 김태현이 지난해 A 씨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걸었을 때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었다면 강도 높은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세 모녀를 살해하지 못했을 거란 비판이 나온다. 스토킹처벌법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전화 등을 이용해 말, 음향을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행위”를 스토킹 범죄로 규정하고 있어 김태현에게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이 통과됐더라면 김태현은 지난해 ‘전화 스토킹’으로 유치장에 갇혔을 수도 있었다. 이번에 통과된 스토킹처벌법은 “검사는 스토킹 범죄가 재발할 우려가 있을 경우 직권으로 스토킹 행위자를 경찰서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유치해 달라고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얼굴 공개 김태현 “숨쉬는 것도 죄책감” 세 모녀 살해 사건에서도 김태현에게 스토킹처벌법이 적용되지 못했다. 김태현은 세 모녀 중 큰딸 B 씨(25)를 올 1월부터 스토킹했지만 이번에 통과된 스토킹처벌법은 올 9월부터 시행된다. 9일 서울 노원경찰서는 김태현을 경범죄처벌법상 지속적 괴롭힘과 살인, 절도, 주거침입, 정보통신망 침해 등의 5개 혐의로 서울북부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9일 오전 9시경 얼굴이 공개된 김태현은 포토라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뻔뻔하게 눈을 뜨고 숨을 쉬는 것도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온라인 게임에서 처음 만난 김태현과 B 씨는 올 1월 23일 지인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 말다툼을 벌였다. 이후 B 씨는 김태현에게 “찾아오거나 연락하지 말라”고 했지만 김태현은 공중전화나 지인의 휴대전화로 연락하며 집 근처로 찾아가는 등 B 씨를 스토킹했다. 범행 일주일 전 평소 쓰지 않던 아이디로 게임상에서 B 씨에게 접근해 근무 일정을 파악한 김태현은 지난달 23일 퀵서비스 배달 기사로 위장해 B 씨 자택에 침입한 뒤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사건을 맡은 서울북부지검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긴급장례비 1200만 원을 지원했다”고 밝혔다.박상준 speakup@donga.com·유채연 기자}

“정부와 여당이 집값 잡겠다고 공언했는데 부산은 특정 지역의 부동산 가격만 크게 뛰었어요. ‘아파트 벼락거지’가 됐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투표장으로 갔죠.” 8일 부산 기장군 정관읍의 신도시 지구에 사는 주부 신모 씨(42·여)는 7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박형준 시장에게 투표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2018년 지방선거에선 더불어민주당 오거돈 후보에게 표를 줬다. 신 씨는 “주변에 사는 30, 40대 이웃들 중에도 당시 민주당을 찍었다가 이번에 국민의힘을 선택했다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신 씨가 사는 기장군은 부산 1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2018년 지방선거 때와 비교해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 득표율이 가장 높게 오른 곳이다. 7일 박 시장의 최종 득표율은 62%로 2018년 33.2%보다 28.8%포인트가 상승했다. 특히 기장군 정관읍은 신도시 지구에 신축 아파트가 밀집해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알려진 20∼40대 인구 비중이 47%에 이른다. 실제로 민주당은 2018년 이곳에서 64.7%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43.0%로 21.7%포인트가 줄어들었다. 한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기장군 등에서 젊은 유권자들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가 많아 달라진 민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해운대구는 부산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기장군에 이어 두 번째로 크게 표심이 뒤바뀐 지역이다. 해운대구에서 국민의힘 후보 득표율은 2018년 36.9%에서 올해 64.8%로 27.9%포인트 올랐다. 특히 고급아파트가 밀집해 부산의 대표적 ‘부촌(富村)’으로 꼽히는 해운대구 우동은 박 시장이 71.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김영춘 후보보다 45.3%포인트 높았다. 우동 옆 중동은 민주당이 선거운동 기간 내내 박 시장의 특혜 분양 의혹을 제기했던 엘시티가 있는 곳이다. 해운대구에 사는 최모 씨는 “민주당이 너무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에만 치중해 오히려 반감이 들었다”고 전했다.부산=강성명 smkang@donga.com /지민구·유채연 기자}

서울 노원구에서 스토킹하던 여성의 집에 침입해 어머니 등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는 25세 남성 김태현(사진)이었다. 김태현은 피해자 집에 가기 전 휴대전화로 ‘급소’를 검색했으며 범행 뒤 갈아입을 옷도 미리 준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경찰청은 “5일 오후 3시부터 특정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개최해 논의한 끝에 피의자 김태현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3명의 피해자를 모두 살해하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고, 충분한 증거가 확보됐다”며 “잔인한 범죄로 사회 불안을 야기했고,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임을 고려했다”고 공개 배경을 설명했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태현은 지난달 23일 오후 8시 반경 퀵서비스 배달기사로 위장해 피해자 A 씨(25)의 자택을 침입하기 전에 자신의 휴대전화로 ‘급소’를 검색했다. 경찰은 김태현이 범행 전 급소 위치를 파악하고 흉기를 미리 준비한 점 등을 미뤄볼 때 의도적으로 살인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목숨을 잃은 세 모녀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피해자들은 모두 경동맥이 지나가는 목 부근에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태현은 범행 이후 피해자 집에 머물며 자신의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모바일 메신저 메시지 등을 모두 삭제하고 초기화를 시도했지만, 경찰이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검색 기록을 찾아냈다. 김태현은 세 모녀의 집에 침입하면서 갈아입을 옷도 미리 준비해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김태현은 범행을 저지른 뒤 피해자의 피가 묻은 옷을 벗고 가방에 넣어갔던 옷으로 갈아입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뒤 흉기로 목과 팔 등을 자해했지만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며 “출혈로 몸에 수분이 떨어지자 냉장고에서 물과 우유 등을 닥치는 대로 꺼내 마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태현은 지난해 12월 한 온라인게임 이용자들의 대면모임에서 A 씨를 처음 만난 이후 줄곧 스토킹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태현은 당시 모임에서 말다툼을 벌여 A 씨는 물론 참석자들 모두 그의 전화 등을 차단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A 씨가 모바일 메신저에 올린 택배상자가 노출된 사진을 보고 주소를 알아낸 뒤 집으로 계속해서 찾아왔다. A 씨는 지인에게 “집에 갈 때마다 돌아서 간다. 1층에서 다가오는 검은 패딩”이라며 두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현재 구속 수감 중인 김태현은 이르면 8일 검찰로 송치될 예정이다. 경찰은 김태현을 이송하는 과정에서 얼굴을 가리지 않는 방식으로 실물을 공개할 방침이다. 살인 혐의로 피의자 신상을 공개한 건 지난해 8월 경기 용인에서 전 애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유기해 징역 35년을 선고받은 유동수 이후 8개월 만이다.김수현 newsoo@donga.com·유채연·이소연 기자}

지난달 23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살인)를 받고 있는 김모 씨(25)가 4일 구속 수감됐다. 김 씨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담당한 서울북부지법 박민 판사는 “김 씨가 도망칠 우려가 있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 씨에게 살해당한 A 씨(24) 등 세 모녀에 대한 부검을 의뢰한 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목 부위 자상이 이들이 숨진 원인이라는 의견을 냈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2시 영장심사에 출석하면서 김 씨는 “스토킹을 인정하느냐” 등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김 씨의 국선변호인은 기자들과 만나 “김 씨도 지금 상황에 많이 당황한 상태”라고 전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달 23일 오후 8시 반경 A 씨의 집을 찾아가 자신을 퀵서비스 기사라고 속여 문을 열게 만들었다. 당시 집에 있던 A 씨의 동생(22)을 먼저 살해한 뒤 귀가하는 A 씨의 어머니(59)와 A 씨도 살해했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범행 이틀 뒤인 25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A 씨 지인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 김 씨를 체포했다. 김 씨는 범행 이후 집 안에 머무르며 자신의 휴대전화 데이터와 메신저 메시지 등을 삭제하고 자해를 시도했다. 경찰은 자해를 했던 김 씨가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기를 기다려 2일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김 씨는 2, 3일 이틀 동안의 경찰 조사에서 혐의 대부분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피해자의 집 주소를 알아낸 방법에 대해 일관되게 진술하고는 있지만, 사실관계가 맞는지 검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 씨에 대한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5일 오후에 연다. 공개 결정을 하면 김 씨의 얼굴과 이름 등이 공개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김 씨의 신상 공개 촉구 청원은 4일 오후 24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계속 비어 있는 땅이라 낮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차 대는 곳이에요.” 26일 오후 경기 하남시 망월동 894-6. 텅 빈 땅 한가운데에는 흙을 담은 자루와 시멘트, 벽돌 등이 쌓여 있었다. 넓게는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있고 주위로는 신축 연립빌라들이 들어선 주변 풍경과는 대조적이었다. 인근 주민은 “땅 주인을 본 적이 없고, 공사를 하고 있는 땅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수십억 원대 재산을 소유한 서울시 구의원들이 수도권 일대의 토지 개발 예정지나 그 인근 땅을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다주택 소유자가 택지지구를 분양받아 시세 차익을 노리고 땅을 묵혀두는가 하면, 총 36명이 소유하고 있는 개발 예정 토지의 지분을 쪼개 매입하거나 초등학생 아들 명의로 신도시지구 인근 임야 지분을 소유한 사례도 있었다. 강동구의회 A 의원은 2015년 7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경기 하남시 망월동의 주택용지 356.1m²를 분양받아 배우자와 함께 매입했다. 정부가 2009년 5월 지정한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인 하남 미사지구에 포함된 이곳은 당시 택지 조성사업이 진행 중이었다. 해당 사업은 2018년 초 완료됐지만 A 의원은 현재까지 약 3년간 해당 토지에 건물을 짓지 않고 비워둔 상태다. 이 일대에서는 A 의원의 토지 외에도 빌딩 사이로 공지(空地)가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인근의 한 부동산업자는 “아직까지 건물을 짓지 않고 있는 토지들은 투기 목적으로 주택용지를 분양받아 땅값이 오르면 팔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사업 완료 이후 해당 토지의 공시지가는 2018년 m²당 197만6000원에서 2020년 272만6000원으로 올랐다. 공시지가 기준으로 현재까지 해당 토지 가격이 약 2억7000만 원 상승한 것이다. A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과거 미사지구 내에 공장용지 목적으로 매입해뒀던 땅이 수용되면서 해당 토지 보상과 함께 주택용지 분양 선택권이 주어졌다”며 “집을 지어 노후에 거주할 생각으로 매입했는데, 건축 비용이 10억 원 가까이 든다고 해 (건축비가) 없어서 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공직자윤리위원회가 25일 공개한 ‘2021년 정기 재산변동 신고사항’에 따르면 A 의원은 현재 이곳 토지 외에도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에 아파트 4채를 소유한 다주택자다. A 의원은 서울시 전체 구의원 417명 중 재산공개 액수가 상위 5위 안에 든다. A 의원과 함께 5위 안에 포함된 강동구의회 B 의원은 2015년 10월 경기 남양주시의 1107m² 규모 토지 지분 중 약 20m²를 4000만 원에 매입했다. 이곳은 남양주시가 2007년 11월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해 개발사업이 예정된 곳으로, 현재 B 의원을 포함해 총 36명이 지분을 쪼개 소유하고 있다. 26일 오후 이 토지에는 2층 높이 상가 건물에서 식당 한 곳과 세탁소 한 곳만이 영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낡은 건물 곳곳의 외벽이 뜯기고 2층은 텅 비어 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이곳 상인은 “땅 주인은 30명도 넘는다고 들었는데 얼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면서 “재개발이 된다고 해서 아무도 건물을 고칠 생각을 안 한다”고 했다. 재산 순위 상위 10위 안에 든 서초구의회 C 의원은 3기 신도시지구 예정지와 약 2km 떨어진 과천시 문원동의 임야 지분 절반을 2015년 9월 5500만 원에 매입했다. 5개월 전 C 의원의 부친은 해당 토지 지분 절반을 4800만 원에 먼저 매입해 당시 6세이던 C 의원의 아들에게 증여했다. 이곳은 나무가 우거진 산지인 데다, 도로와도 거리가 멀어 접근하기조차 힘든 땅이다. C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어 생태학습장으로 만들 목적으로 매입했다”면서 “주변에 빌라 등이 들어서면서 접근하기 어려워 토지를 이용하지 못했다. 투기 목적으로 매입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김태성 kts5710@donga.com / 하남=오승준 / 유채연 기자}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가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 26일 서울 노원경찰서에 따르면 25일 오후 8시 반경 중계동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사는 어머니(59)와 큰딸(24), 작은딸(22)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큰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큰딸 친구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 숨진 세 모녀를 발견했다. 현장에는 20대 남성 A 씨가 자해해 중상인 상태로 있었으며, A 씨는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 A 씨는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상태에서 범행 사실을 인정했으며, 경찰은 살해 혐의로 A 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23일 세 모녀의 아파트를 찾은 것으로 조사됐다. A 씨는 당시 집에 있던 작은딸을 먼저 살해한 뒤 귀가하는 어머니와 큰딸도 해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A 씨는 밖으로 나오지 않고 3일간 집 안에 머물며 휴대전화를 초기화하는 등 증거 인멸 시도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큰딸과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사이로 만남을 거부당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범행 동기 등을 조사하기 위해 A 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계속 비어 있는 땅이라 낮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차 대는 곳이에요.”26일 오후 경기 하남시 망월동 894-6. 텅 빈 땅 한가운데에는 흙을 담은 자루와 시멘트, 벽돌 등이 쌓여 있었다. 넓게는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있고 주위로는 신축 연립빌라들이 들어선 주변 풍경과는 대조적이었다. 인근 주민은 “땅 주인을 본 적이 없고, 공사를 하고 있는 땅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수십억 원대 재산을 소유한 서울시 구의원들이 수도권 일대의 토지 개발 예정지나 그 인근 땅을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다주택 소유자가 택지지구를 분양받아 시세 차익을 노리고 땅을 묵혀두는가 하면, 총 36명이 소유하고 있는 개발 예정 토지의 지분을 쪼개 매입하거나 초등학생 아들 명의로 신도시지구 인근 임야 지분을 소유한 사례도 있었다.강동구의회 A 의원은 2015년 7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경기 하남시 망월동의 주택용지 356.1m²를 분양받아 배우자와 함께 매입했다. 정부가 2009년 5월 지정한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인 하남 미사지구에 포함된 이곳은 당시 택지 조성사업이 진행 중이었다. 해당 사업은 2018년 초 완료됐지만 A 의원은 현재까지 약 3년간 해당 토지에 건물을 짓지 않고 비워둔 상태다.이 일대에서는 A 의원의 토지 외에도 빌딩 사이로 공지(空地)가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인근의 한 부동산업자는 “아직까지 건물을 짓지 않고 있는 토지들은 투기 목적으로 주택용지를 분양받아 땅값이 오르면 팔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사업 완료 이후 해당 토지의 공시지가는 2018년 m²당 197만6000원에서 2020년 272만6000원으로 올랐다. 공시지가 기준으로 현재까지 해당 토지 가격이 약 2억7000만 원 상승한 것이다.A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과거 미사지구 내에 공장용지 목적으로 매입해뒀던 땅이 수용되면서 해당 토지 보상과 함께 주택용지 분양 선택권이 주어졌다”며 “집을 지어 노후에 거주할 생각으로 매입했는데, 건축 비용이 10억 원 가까이 든다고 해 (건축비가) 없어서 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서울시 공직자윤리위원회가 25일 공개한 ‘2021년 정기 재산변동 신고사항’에 따르면 A 의원은 현재 이곳 토지 외에도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에 아파트 4채를 소유한 다주택자다. A 의원은 서울시 전체 구의원 417명 중 재산공개 액수가 상위 5위 안에 든다.A 의원과 함께 5위 안에 포함된 강동구의회 B 의원은 2015년 10월 경기 남양주시의 1107m² 규모 토지 지분 중 약 20m²를 4000만 원에 매입했다. 이곳은 남양주시가 2007년 11월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해 개발사업이 예정된 곳으로, 현재 B 의원을 포함해 총 36명이 지분을 쪼개 소유하고 있다. 26일 오후 이 토지에는 2층 높이 상가 건물에서 식당 한 곳과 세탁소 한 곳만이 영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낡은 건물 곳곳의 외벽이 뜯기고 2층은 텅 비어 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이곳 상인은 “땅 주인은 30명도 넘는다고 들었는데 얼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면서 “재개발이 된다고 해서 아무도 건물을 고칠 생각을 안 한다”고 했다.재산 순위 상위 10위 안에 든 서초구의회 C 의원은 3기 신도시지구 예정지와 약 2km 떨어진 과천시 문원동의 임야 지분 절반을 2015년 9월 5500만 원에 매입했다. 5개월 전 C 의원의 부친은 해당 토지 지분 절반을 4800만 원에 먼저 매입해 당시 6세이던 C 의원의 아들에게 증여했다. 이곳은 나무가 우거진 산지인 데다, 도로와도 거리가 멀어 접근하기조차 힘든 땅이다.C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어 생태학습장으로 만들 목적으로 매입했다”면서 “주변에 빌라 등이 들어서면서 접근하기 어려워 토지를 이용하지 못했다. 투기 목적으로 매입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파주=오승준기자 ohmygod@donga.com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일부 기초의원이 가족 명의로 토지 개발 예정지 인근에 있는 땅을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 경기 등 수도권 기초의원과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장은 10명 중 6명꼴로 토지를 보유했다. 광역자치단체 등이 25일 공개한 ‘2021년 정기 재산변동 신고사항’에 따르면 전북 장수군의회의 A 의원의 배우자는 2019년 9월 경기 화성시 송산면 독지리의 임야 1626.63m²를 샀다. 한 부동산업체가 3개월 전 36억455만 원에 매입한 토지(4만7842m²)의 일부 지분을 A 의원 배우자가 다시 산 것이다. 이 토지는 2026년 이후 분양 예정인 화성 송산그린시티 신도시 서측 지구와 맞닿아 있다. A 의원 배우자는 2019년 9월 경기 고양시 내곡동의 임야 63.38m²도 매입했다. 이 땅은 3기 신도시 경기 고양창릉지구에서 약 3km 떨어져 있다. A 의원 배우자를 포함해 모두 357명이 지분을 쪼개 보유했다. A 의원은 “배우자의 투자를 재산 등록 전에는 몰랐다. 친구 소개로 산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전남 영광군의회 소속인 B 의원의 배우자는 경기 시흥장현 공공주택지구와 1km 정도 떨어진 임야 1008m²를 2016년 9월 매입했다. 이듬해 1월에는 3기 신도시인 경기 하남교산지구 인근인 하남시 배알미동의 임야 3306m²도 지분 쪼개기 형태로 매입했다. B 의원 배우자는 “투자업체의 소개로 산 땅으로, 개발 관련 정보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기초의원과 지자체 산하기관장 1016명의 재산 신고 내용을 종합하면 608명(59.8%)이 토지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종시는 “지역 내에서 2곳 이상 토지를 보유 중인 부동산 중개법인 95곳에 대한 위법 행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25일 밝혔다. 20명 이상이 공동 소유자로 돼 있는 토지 381필지를 보유한 중개법인 13곳을 기획부동산으로 판단해 경찰청과 국세청에 통보했다.지민구 warum@donga.com·이기욱·유채연 기자}

국가보훈처의 고위급 간부가 세종시 스마트 국가산업단지 발표를 약 11개월 앞두고 해당 지역 토지를 매입한 뒤 장모에게 되판 사실이 드러났다. 시민단체 등이 투기 의혹을 제기했던 세종시의회 의원은 부인 명의의 토지 매입이 추가 확인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등이 25일 공개한 ‘2021년 정기 재산변동 신고사항’ 등에 따르면 민병원 국가보훈처 기획조정실장(57) 가족은 2017년 9월 세종시 연서면 와촌리에서 농지 2필지(총 1418m²)를 2억9500만 원에 매입했다. 국토교통부는 2018년 8월 해당 지역을 스마트 국가산업단지로 지정했다. 민 실장 가족은 토지 1필지를 2018년 4월 먼저 판 뒤, 같은 해 12월 나머지 토지의 형질을 대지로 변경한 뒤 건물을 지어 2020년 7월 30일 A 씨(77)에게 팔았다. 등기부등본 등을 보면 이 토지는 2억3000만 원, 건물은 2억5000만 원에 판 것으로 나온다. 토지만 쳐도 약 7000만 원의 시세 차익을 거뒀다. 그런데 해당 토지와 건물을 매입한 A 씨는 민 실장의 장모였다. 민 실장 가족은 현재 이 건물에 전세로 그대로 거주하고 있다. 민 실장은 2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공직자가 다주택자 문제로 언론에 언급되는 게 부담스러워 빨리 집을 팔 방법을 찾다가 어머님께 부탁드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2015∼2019년 부인이 세종시 조치원읍 일대의 땅을 사들여 경찰 조사를 받는 세종시의회 김원식 의원은 2019년 해당 지역에서 또 다른 토지도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의원의 부인은 그해 11월 1일 조치원읍 서창리의 토지 107m²를 1억3900만 원에 샀다. 김 의원은 2015년부터 부인 명의로 조치원읍 봉산리 토지 4필지를 매입해 투기 논란이 일었다. 김 의원을 수사 중인 경찰은 최근 추가 매입 사실을 포착하고 투기 의혹 등을 확인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해명을 듣기 위해 김 의원 측에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의 장남은 지난해 10월 강 의원 지역구인 경남 창원 성산구의 개발제한구역 농지 2필지를 3억6000만 원에 매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당시 2억 원 이상 대출받아 매입자금 대부분을 충당한 것으로 보인다.‘지분 쪼개기’ 토지 매입 의혹이 일어난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은 지난해 7월에 부인 명의로 지역구인 경기 남양주에서 토지 매입을 신고했다. 김 의원 부인은 농지 3540m² 가운데 765.29m²를 8억8000만 원에 샀다. 권기범 kaki@donga.com / 세종=유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