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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으로 시작된 명상과 수행”서정민 작가의 작품을 사진으로만 보았다면 단순한 추상회화로 봤을 것이다. 그런데 직접 눈으로 그의 작품을 보게 되는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가 작가노트에 쓴 ‘예술은 노동’이라는 말이 실감나기 때문이다. ‘감히 신성한 예술을 땀냄새 나는 노동에 비유하다니…’ 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싹 사라진다. 디지털 시대라서 그럴까. 손끝으로 전달되는 아날로그식 노동과 땀의 흔적이 마음을 뒤흔든다. 지난해 뉴욕에서 ‘한지 콜라주’ 작품 전시를 하는 등 해외에서 각광받고 있는 서정민(63) 작가의 파주에 있는 작업실을 찾았다. 그는 7월7일까지 남양주 서호미술관 본전시장 및 서호서숙 한옥 별관에서 개인전 ‘선과 선을 잇는 사유의 여백-존재의 유속’을 열고 있다. 서양화 유화를 전공했던 그는 2000년대 중반부터 물감을 재료로 하는 평면 회화를 버렸다. 그리고 동서양 회화의 기본인 선 긋기에서 다시 출발했다. 연필과 칼, 쇠 등 수많은 도구로 선을 그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한지였다. 한지를 감는 작업을 하다가 선(線)을 발견했다. 그는 서예가들의 습작 서지를 수집한 뒤, 우리 고유의 두루마리 기법을 응용해 한지를 말고 자르고, 붙이고, 쪼개는 행위의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한지 토막’들로 입체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 한지 토막들의 단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지의 글들은 형상이 바뀌어 먹빛을 머금은 가느다란 선들만 남게 된다. ‘글’이 ‘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지 조각들을 콜라주 기법으로 화면 위에 쌓고 붙인다. 그리고 다시 조각칼로 깎아내고 덜어낸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5~6개월간 총 10여 단계를 거쳐야 하는 ‘노동의 결과물’이다. 그의 작업실에 들어가기 전, 창고에 먼저 들어가보았다. 창고 한 가득 쌓여 있는 종이냄새가 밀려왔다. 선반 위에는 서예가들이 연습하면서 먹물로 쓴 글씨가 선명한 ‘서지(書紙)’가 쌓여 있었다. “먹으로 글씨를 쓴 한지는 쭈글쭈글, 울퉁불퉁해집니다. 서예가들은 보통 연습한 종이를 손으로 구기기도 하고, 접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의 서지는 한 장 한 장 펴서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고, 그늘에 말립니다. 빨래집게로 고정시켜 줄에 걸고 선풍기를 틀어 놓기도 하죠. 그러면 글씨를 쓴 화선지가 다시 평평하게 펴집니다.”그는 이렇게 말린 서지를 2cm 정도 넓이로 칼로 잘게 자른다. 그리고 두루마리처럼 둥그렇게 말아간다. 원은 점점 커지고 보름달 모양이 된다. 100호, 200호짜리 캔버스에 가득찬 크기가 된다. 빽빽하게 붙여진 화선지는 어느덧 다시 나무처럼 딱딱해진다. 그 안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고 하지만,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충분히 딱딱해진 한지 위에 날카로운 조각칼로 무늬를 새긴다. 그의 작품은 둥그런 원으로 표현돼 있지만, 먹물로 쓴 글씨가 안에 있기 때문인지 무수히 많은 별들이 궤도를 돌고 있는 듯한 선의 궤적만 보인다. 검은색 둥근 원의 가운데에는 한줄기 흰색물감이 물방울처럼 떨어진다. 그는 “천지창조의 순간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기껏 한지를 말아서 둥글게 만든 보름달 모양의 원을 칼로 반으로 잘라냈다. 마치 보름달이 기울어 반달이 된 듯한 모습이다. 서 작가는 “둥그렇게 말린 종이는 우주가 원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이는 것은 반원이지만, 태양계든, 지구든, 자기장이든 모두 둥그렇게 돌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서 작가의 설명에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은, 지난달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 근처에 있는 그레이트오션 로드에 갔을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비가 간간히 뿌리는 날씨에 헬리콥터를 탔는데 무수히 많은 무지개를 보게 됐다.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무지개가 둥그런 원의 모습이 아닌가.무지개는 원래 둥그런 원 모양으로 생기는 것인데, 사람이 지평선에 있다보니 반원만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완벽하게 둥그렇게 생기는 무지개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2층 작업실로 올라가자 둥글게 말아놓은 형형색색의 종이들이 벌집모양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의 작업실에는 자신이 직접 고안하고, 만들어낸 목공 기계들이 가득해 마치 목수의 작업실을 방불케 한다. 종이를 압축해 책을 만들어내는 수제 고서 작업실에서나 볼 수 있는 선반 기계도 있다. 그는 두꺼운 종이도 쉽게 자를 수 있도록 커다란 쇳덩이에 커터칼을 붙였다. 또한 조각칼을 연결한 쇠막대 끝에는 손으로 잘 쥐고 힘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가죽 야구공이나 지팡이 손잡이를 붙어놓기도 했다. 하나하나가 작가가 직접 발명해낸 작업도구다.그는 글씨가 쓰여진 화선지를 돌돌말아 압축한 뒤, 칼로 사선으로 잘라내 작은 총알을 만들어낸다. 이런 뾰족뾰족하거나, 네모형태로 깎아난 종이뭉치 수천개를 접착제로 수없이 이어붙여 추상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글씨를 쓴 화선지를 말아서 작업을 하는 이유는.“울퉁불퉁하게 튀어나와 있는 종이, 빽빽하게 말려 있는 종이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언어가 새겨져 있습니다. 글이라는 매체는 오래전부터 소통의 수단이었습니다. 특히 인쇄된 글씨보다 직접 쓴 글씨는 필법과 운율, 리듬과 필력이 기운생동(氣韻生動)을 자아냅니다. 화면 위에 부조처럼 쌓인 글과 글들의 집합체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움직이는 듯한 형상이 됩나. 인간과 자연이 소통으로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하죠.” ― 한 작품 하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처음엔 약 2m 짜리 큰 작품하는데 8개월 쯤 걸렸어요. 지금은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한 작품 한 작품 완성하는 과정이 바로 노동이고,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지를 자르고, 붙이고하는 작업 하나하나의 과정을 저는 ‘의식(儀式)’이라고 말합니다. 노동으로 의식을 진행하면서, 명상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현대 서양화가 중에서도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마크 로스코나 잭슨 폴록도 명상을 이야기합니다.“ ―한지를 재료로 하게 된 이유는.“현대 회화에서 새롭게 구축해야할 지평이 어떤 것인가 고민하게 됐습니다. 우리 것에 대한 탐구를 하던 중, 우리의 정서와 민족성이 담긴 한지(韓紙)라는 재료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한지에는 섬유질이 들어 있어서 가장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종이입니다. 한지는 닥나무 껍질을 갈아서, 물에 띄운 것을 건져내 붙여서 만듭니다. 특별하게 가공을 한 것이 아니라, 나무 그 자체입니다. 한지는 천년을 갑니다. 서양물감은 150~200년 정도면 부식이 될 수 밖에 없어 복원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먹은 식물성이라 더 오래갑니다. 먹은 나무 껍질을 태운 재에 아교를 섞은 것입니다. 한지에 아교로 딱 붙어 있으니까 먹물은 좀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아요. 한지를 빽빽하게 말아서 만든 제 작품은 거의 나무 수준으로 단단해집니다. 그래서 조각칼로 깎아낼 수도 있어요. 흙에서 자란 나무가 종이로 됐다가, 다시 또 나무로 환원되는 순환과정을 따라가는 게 제 작품입니다.“― 글씨 쓴 한지로 작업하는데, 정작 그림 속에서는 글씨가 보이지 않습니다.“제가 하는 작업은 글씨를 모으는 과정입니다. 직접 글을 쓴 한지는 기운이 담겨 있어요. 인쇄된 종이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러나 제 작품에서는 글씨는 보이지 않습니다. 작품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게 회화하고 서예하고 다른 점입니다. 글씨는 본질입니다. 본질은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죠. 저는 외형적인 이미지만 구축한 것입니다. 고전시대 회화는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줬지만, 현대 회화는 본질적인 내용,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숨깁니다. 제 작품 속에 글씨는 안보여도, 그 기운은 안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게 중요한 포인트입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고생하는 노동을 할 필요도 없지요. 조선시대 선비들이 상소문을 쓸 때 글을 쓴 다음에 접고, 밀봉합니다. 이걸 전달한 사람은 무슨 글을 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상소문은 임금만 보는 것이지, 아무나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밀봉한 문서라 읽을 수는 없지만, 상소문을 갖고 가는 사람은 이게 글이라는 것은 알지요. 제 작품은 이러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겁니다.“― 검은색에 흰 빛줄기가 내리는 이 작품은 어떤 의미인가요. “ 태초에 우주가 시작될 때 지구는 불덩어리였다고 합니다. 서서히 식으면서 지구가 만들어진거죠. 모든 것이 타버린 우주 덩어리에서도, 뭔가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제 검은색 작품은 까맣게 잿더미가 된 우주 덩어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 잿더미 속에서 내리는 한줄기 빛은 우주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나도 우리 회화에서 근원점을 찾아보자. 첫 빛줄기가 무엇었는지 찾아보자. 우리 회화에서의 정체성에서 현대 미술의 길을 찾아보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그의 작품의 화두는 ‘선‘이다. 그는 노동으로 서체를 변화시켜, 먹빛을 머금은 가느다란 선들로 만들어낸다. 그는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선을 불교의 수행적 의미를 가진 ‘선(禪)’으로, 또는 석도의 ‘일획론(一劃論)’에서 ‘한번 그음’을 의미하는 ‘선(線)’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중국 명말 청초의 화가 석도(石濤, 1642~1707)는 ‘화어록(畵語錄)’에서 예술의 창의성에 대해 논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은 한번 긋는 선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일획론’이죠. 우주도 한 선이 그어지면서 시작됐다는 설명입니다. 내가 한번 긋지 않으면, 한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선을 그을 때 보통은 연필로 긋는데, 저는 칼로 긋습니다. 연필로 선을 그으면 의도가 담기는 반면, 칼로 그을 때는 칼이 가는 그대로 선이 나옵니다. 제가 칼을 따라가는 거지, 칼이 나를 따라오는 게 아니거든요.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과 같은 겁니다. 모든 것이 한번 금을 긋는 것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그냥 긋는 게 아니라 수행하듯이 그어야 합니다. 선과 선이 만나면, 큰 획과 흐름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석도는 창의성이란 과거의 법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내 법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스스로 내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태초부터 법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 법에 얽매이니까 그 틀에 맞춰 항상 맞춰 사니까, 내 법을 내가 만들어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서지를 붙여나간 후에 다시 깎고, 파내는 이유는.“깎는 것은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쭉 쌓아만 왔습니다. 덜어내게 된 지는 몇 년 안됐습니다. 그동안 충분히 쌓아봤으니, 이제는 덜어 보겠다는 겁니다. 내가 어디까지 덜어낼 수 있을까. 비우고, 덜어내는 과정들의 연속입니다. 단순히 깎아내는 게 아니라 색깔도 비워냅니다. 그동안 많이 썼던 색깔들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고 들어내서, 내 색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으로 가고 있습니다. 저는 5년, 10년, 60년과 같은 주기로 삶과 예술에 변화를 줍니다. 마지막으로 비울 때 무엇이 보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거죠. 그래서 선 수행으로 작업을 하고, 노동으로 땀을 흘리면서 비워내는 작업을 합니다.“―깎아낸 모양이 나뭇결같기도 하고, 물결 같기도 합니다.“네, 한지는 나무로 시작했잖아요. 종이의 본질을 나무입니다. 나무를 깎는 것이나, 종이를 깎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깎을 때 여러가지 실험을 해봤습니다. 처음엔 대패로도 밀어보고, 칼로도 깎아봤어요. 조각도가 제일 낳은 것 같아요. 조각도도 둥근칼, 세모칼, 편칼 등 다양합니다. 칼날에 따라 느낌이 또 달라지지요. 깎아내고 비워내는 방법도 부드럽게 할 것인가, 날카롭게 할 것인가, 거칠게 할 것인가. 뭘 표현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전엔 평면 회화와 조각의 영역이 나눠졌는데, 이제는 그 경계가 다 무너졌습니다. 석도는 ‘나의 법은 법이기도 하고, 법이 아니기도 하다’고 했어요. 법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은 우리 생활의 편리와 지식추구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상상조차 어려울 재앙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AI가 만든 가짜 영상은 각종 범죄 행위에 이용되고, AI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가짜뉴스는 디지털 세상에서 공론장의 역할과 기능을 붕괴시킬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미디어 패러다임과 윤리’를 주제로 한 제24회 가톨릭포럼이 27일 오후 2시반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홍보위원회, 서울대교구 매스컴위원회가 주최하고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에서 주관하는 이번 가톨릭 포럼에서는 AI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디어 패러다임의 변화와 미래 미디어 산업의 전망을 살펴본다. 또한 가톨릭 교회의 관점에서 AI 기술의 윤리적 측면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논의할 예정이다. 이날 포럼에서는 △최재봉 성균관대 부총장의 ‘AI 대변혁, 그 혁신적 패러다임 변화’ △오세욱 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의 ‘AI와 미디어의 랑데부-현황과 미래’ △강정수 블루닷 AI 연구센터장의 ‘AI가 바꿀 미디어 세상…축복인가 재앙인가’를 주제로 한 발표가 진행된다. 토론에는 서강대 메타버스 대학원장 현대원 교수, 성바오로수도회 양상위원장 한창현 신부가 패털로 참여하며, 사회는 양영은 KBS 앵커가 맡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충남 당진시 순성면에는 아미산 앞으로 남원천이 흐른다. 남원천변 논두렁엔 2002년부터 재경 향우회에서 앞장서 ‘고향사랑 나무심기 운동’을 벌었다. 그 때 심은 왕매실나무는 10만 그루가 넘게 자랐다. 순성면 왕매실마을과 백석올미마을 사람들은 엄청나게 생산되는 매실을 어떻게 이용할까 고민했다. 처음엔 그냥 생매실이나 매실청, 매실엑기스만 생산해 팔았다. 그런데 매실청을 넣은 맥주, 막걸리, 한과는 이 마을을 전국적 명성을 얻도록 만들었다. 왕매실마을충남 당진에는 성 김대건 신부가 살았던 솔뫼성지, 신리성지, 합덕성당 등 천주교 성지가 많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이 성지순례 코스로 많이 찾는다. 그런가하면 면천 두견주, 순성브루어리, 신평양조장장 등 다양한 전통주와 지역 양조장도 많아 젊은이들의 ‘성지술례’ 장소로도 인기다. 순성면 왕매실마을에 있는 ‘순성브루어리’는 당진에서 유일한 수제 생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이다. 순성브루어리 1층에는 이 곳에서 만들어내는 당진 최초의 수제맥주와 매실 막걸리 ‘매화꽃비’, BTS팬들이 대량구입했다는 ‘아미주(峨嵋酒)’를 구입할 수 있다.이 곳에서는 나만의 매실청을 넣은 수제맥주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2층에 올라가면 바비큐와 매실 피자를 안주로 다양한 맛의 맥주를 시음해볼 수 있는 펍이 있다. 시골에서 볼 수 없는 세련된 인테리어로 실내가 꾸며져 있다. 대형유리창을 통해 내려다본 브루어리에는 맥주를 담는 양조 시설이 놓여져 있다. ‘탄생! 당진 최초의 Craft Beer’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왕매실마을 검은돌도농교류센터에서는 숙박도 할 수 있다. 가족 휴양객들이 와서 아이들과 함께 매실을 따고, 매실엿과 매실피자 만들기, 맥주 부산물로 비누만들기 등을 체험한다. 체험비는 1만~1만5000원. 아이들이 3~4가지 체험을 하는 동안, 부모들은 2층 펍에서 매실을 넣은 맥주, 막걸리를 만들고 시음하며 하루를 즐길 수 있다.이 곳에서 4가지 종류의 수제맥주를 시음해보았다. 백석바이젠(화이트맥주), 아미페일에일(아미산이름을 딴 에일맥주), 솔뫼IPA(솔뫼 성지 이름을 딴 맥주), 검은돌 스타우트(흑맥주) 등 당진의 역사와 명소, 산 이름과 지명을 활용한 맥주들이었다. 맥주를 담는 과정에 매실청을 넣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뒷맛에 매실청 향이 살짝 느껴진다. “맥주에도 공정과정에 일정량의 설탕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여기가 왕매실 영농조합이기 때문에 설탕비율을 줄이고 매실청을 넣었습니다. 소량이지만 설탕의 비율을 줄이고, 매실청으로 단맛을 내는 것입니다.”순성브루어리 백운기 공동대표는 서울에서 교육 IT업계에서 일을 하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브루어리 사업을 이끌고 있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실이 들어간 맥주, 막걸리 등을 담게 된 계기는. “순성면에는 아미산을 배후로 남원천이 흐르거든요. 남원천변 논두렁에 2002년부터 재경 향우회 분들이 ‘고향사랑 나무심기 운동’을 벌였어요. 그때 왕매실나무를 심어서 순성면 일대에는 왕매실나무가 10만 그루가 넘게 자라게 됐습니다. 2006년부터 영농조합법인을 세워 매실을 수확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영농조합에서 생매실로 많이 팔았고 청을 담아서 팔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뭐할까 하다가 원래 이 곳에 막걸리 공장이 있었거든요. 매실청이 들어간 막걸리를 생산하기 시작했죠. 그 막걸리를 증류한 게 ‘아미주’입니다.”왕매실마을에서는 매실청으로 막걸리와 맥주를 담는 영농조합과 함께 농촌체험휴양마을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매실을 수확하는 6~7월에는 매실 따기, 매실청 만들기, 매실장아찌, 매실잼 만들기 등을 위주로 이루어진다. 지난해에는 약 7000명 정도의 체험객이 마을을 방문했다고 한다. ―체험객들은 주로 어떤 분들이 오나요. “술 만들기 체험이 많으니까 가족단위 관람객이 별로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그래서 더 가족단위 체험객이 많이 올 수도 있어요. 여기서 숙박하시는 분들의 경우엔 아이들에게 매실 피자, 한과 만들기 등 체험프로그램 서너 개를 신청해서 5시간 정도를 신나게 체험하게 하고, 부모님들은 맥주시음장에서 함께 온 사람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여기서 단골로 오셨던 젊은 커플이 이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어요. 동네에서 마련한 술과 음식으로 피로연 잔치를 했습니다.”―맥주 브루어리를 하게 된 이유는. “농촌의 영농조합법인은 대부분 장년층이 운영하고,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주 소비층도 바뀌어가는 데 뭔가 좀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품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맥주를 시작하게 됐습니다.”―술에 매실청을 넣으면 좋은 점은. “발효가 다 끝난 매실청은 약과 같습니다. 항균 작용도 있고, 소화를 돕는 좋은 성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술로 인해서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조금은 보완해줄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밤에 응급으로 약이 없을 때 매실청을 찬물에 타서 마시면 아주 좋아요. 여름철 땀 많이 나고, 힘들고 어려울 때 매실을 타서 마시면 수분이 부족한 현상들을 많이 보완해준답니다.”―순성 브루어리의 디자인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원래 서울에서 교육 IT사업을 했습니다. 일본의 사가현의 공립고등학교에 교육 시스템을 납품했어요. 약 5년 정도 일본을 오가며 일을 했어요. 한적힌 시골마을이었는데, 식사를 할 때마다 그 지역 고유의 술이 다양하게 나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그 지역의 유명한 특산물로 만든 빵이나 토산품 오미야게를 하나씩 사갖고 오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다 서울에서 양산하는 술들이 지방까지 점유하고 있고, 지역 특산품이나 술 문화는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저의 선조가 1950년대부터 양조장을 하셨으니까 술부터 한번 시도해보기 시작한 것입니다.”‘매화 꽃비’는 매실 막걸리다. 봄에 매화가 비처럼 내리는 모양을 표현한 디자인도 세련됐다. 100% 당진쌀과 순성왕매실로 맛을 낸 막걸리다. 이를 증류해서 만든 40도짜리 증류주가 ‘아미주’다. ―아미주는 어떤 술인가요. “당진에 있는 아미산에서 이름을 따와서 만든 증류주입니다. 그런데 BTS의 팬클럽 ‘아미’와 발음이 같아서 BTS팬들에게 인기가 있는 술입니다. 유재석이 유튜브 채널에서 초대손님으로 나온 BTS 멤버 슈가와 지민에게 ‘아미주’를 선물해준 것을 계기로 유명해졌습니다. 제작진들이 직접 인터넷으로 구매해서 선물했다고 하네요. 저희는 사전에 몰랐는데, 많은 팬들이 갑자기 주문이 쇄도해 놀란 적이 있습니다.“‘할매들의 반란’ 백석올미마을왕매실마을 옆에 있는 순성면 백석올미마을에 들어가면 ‘할매들의 반란!’이라는 문구가 입구에 써 있다. 글자 옆에는 꽃이 달린 모자를 쓰고, 울긋불긋한 색깔의 몸빼바지를 입은 할머니 캐릭터가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할매 캐릭터는 옆에 왕매실이 들어 있는 바구니를 끼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백석올미마을은 김금순 할머니(75)가 여름이면 엄청나게 열리는 왕매실로 담은 매실청으로 과즐(한과)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평균나이 75세인 할매들이 만드는 매실청, 매실장아찌, 매실한과는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서 대통령이 보내는 명절선물에도 선정되기도 했다. 2011년 마을 부녀회 33명이 참가하는 영농조합법인으로 출발한 백석올미마을은 현재 매출 10억원 이상, 80명의 조합원을 가진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백석올미마을에서는 체험장이 잘 구비돼 있다. 한과와 조청, 장아찌, 매실청을 생산하는 공장에는 위생시설 때문에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지만, 체험장에는 매일 단체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체험장에서는 매실을 넣은 한과, 초콜릿, 장아찌, 고추장 담기 뿐 아니라 천연비누, 양초, 전통 서각, 한지공예 등 공예체험도 할 수 있다. 이 마을에서 받은 인상은 할매들의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다양한 캐릭터와 디자인, 브랜딩과 마케팅, 전자상거래를 활용한 판로개척 등이 매우 세련됐다는 점이다. 할매들이 마을을 바꿔보겠다는 열정과 함께 젊은이들의 디자인 감각이 돋보이는 마을이다. 당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파리 외곽에 베르사유 가는 길에 ‘갈리 농장(Ferme de Gally)’이 있다. 딸기와 각종 베리류와 자두를 비롯해 감자, 당근, 사과 등 계절에 따라 맺는 열매를 도시민들이 와서 직접 수확해가는 체험형 농장이다. 파리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가족끼리 자주 가서 한나절을 프랑스 농장에서 놀다가 직접 수확한 채소와 과일을 싼 값에 사서 돌아올 수 있었다. 농장측에서는 수확에 드는 비싼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도시민 입장에서는 색다른 체험과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농산물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 인기가 높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처럼 농가에서 민박하며 체험할 수 있는 ‘농촌체험휴양마을’이 전국 1178여 곳이 생겨났다. 예전에야 할머니댁에 가면 농촌 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요즘 도시민들에겐 낯선 경험이기 때문이다. 충남 아산 외암민속마을과 당진 왕매실마을에서 체험한 농촌마을의 휴가는 유명 관광지에서 사진찍고 오는 여행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아산 외암민속마을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마을은 기와집과 초가집이 잘 어우러져 보존되고 있는 마을이다. 참판댁, 감찰댁, 종손댁 돌담밑에 개양귀비꽃과 수국이 활짝 웃고 있는 골목길을 느릿느릿 걸으며 흘러가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1998년 전통건조물 보존지구, 2000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외암민속마을 보존지구에는 기와집과 초가집에 45가구에 112명이 살고 있다. 45가구 중 대부분인 37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어 마을은 더욱 생기가 넘친다. 전국에 엄청난 예산을 들여 전통가옥을 새로 짓거나 보존해놓은 곳이 많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전시용 마을은 차가운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외암민속마을을 걷다가 열린 문틈으로 집안을 들여다보면 집집마다 다르게 꾸며놓은 정원이 보인다. 어떤 집은 할아버지가 마늘농사가 잘 됐다며 지붕밑에 주렁주렁 마늘꾸러미를 걸어놓기도 했다. 영화 ‘취화선’ ‘클래식’ ‘영웅’ 등의 촬영지였던 외암민속마을은 2003년부터 농촌체험휴양마을로 변모했다. 마을에 있는 농지는 논과 밭을 합쳐 6만 여평. 논과 밭에서 벼베기, 고구마, 감자캐기, 여주따기, 장담그기, 한과와 강정 만들기 등 계절별로 약 20~30가지씩 진행된다. 체험비는 7000~1만원 가량. 감자나 고구마 캐기는 2kg을 직접 수확해서 가져갈 수 있는데, 꾹꾹 눌러담아 3kg이상 가져가는 사람도 있다. 시중에서 사서 먹는 것보다는 훨씬 싼 가격이다. 이 마을에 체험 오는 관람객은 연간 약 7~8만 명. 그 중 농가 민박에서 하룻밤 묵고가는 사람들은 약 3만 명이다. 2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마을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은 연 40만 명이나 된다. 문회재 보존지구이기 때문에 기와나 초가집 외부 모습은 바꿀 수 없고, 내부에 화장실이나 샤워실, 싱크대 등의 편의시설을 고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마을 빈집을 활용하는 민박은 마을 운영비와 세금 등 수수료 20%를 제외하면 농가의 수입이 된다. 마을 입구에는 상류층 기와집, 서민층 초가삼간 등 한옥을 들어가볼 수 있는 체험집도 지어놨다. 이 곳에서 떡메치기, 전통결혼식, 투호놀이 등을 즐길 수 있다. 마을 할머니들이 한복을 입고 마루에서 다듬이질 시연도 한다. 어린이들은 돌 위에 천을 올려놓고, 다듬이 방망이질을 하는 모습을 처음 본 광경에 신기해하며 영상을 찍고, 직접 쳐보기도 한다. 10월에 열리는 마을축제인 ‘짚풀문화제’에는 할머니들이 난타처럼 노래에 맞춰 다듬이방망이를 리드미컬하게 치는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이처럼 체험강사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양성을 한다. 강사교육을 받고 여주차 만들기, 고추장 담그기, 강정만들기, 한지등 만들기 체험을 진행한다. 연로해 걷기 힘든 할머니들은 앉아서 다듬이 방망이 시연을 해주고, 농사를 못짓는 할아버지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관람객들을 맞이해준다. 단체관람객을 인솔하며 돌담장 사이를 걸으며 건재고택, 별감댁, 교수댁 등 마을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아르바이트도 쏠쏠하다. “2003년 농촌체험휴양마을을 시작했을 때 마을에서 생산되는 쌀을 한 톨도 안 먹고 다 팔았을 때 당시 가격으로 약 2억2500만원 정도 나오더군요. 현재 가격은 약 3억원 정도예요. 코로나 때문에 주춤했어도 지난해 마을 공식 총매출액이 7억8000만원 정도 나왔고, 비공식 소득까지 합치면 10억원 정도의 매출이 될 겁니다. 체험휴양마을은 농사를 지어 수확물을 판매하는 것보다 3배 정도가 매출액이 올라갑니다. 더 좋은 점은 수확할 때 인건비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죠.”외암민속마을 이규정 이장은 “인구소멸 위기에 닥친 농촌이 많은데, 우리 마을은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이사오고 싶다는 문의는 많은데 전통가옥 보존지구라 새 건물을 지을 수가 없어 다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즈넉한 조선시대 농촌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외암민속마을은 하룻밤 묵어야 진가를 느낄 수 있다. 해질녘 논에 담긴 물에 노을이 반사돼 붉게 물든 모습, 새들이 지저귀는 아침의 풍경은 잊을 수 없다. 지난 6~8일 열린 ‘2024 외암마을 야행’ 축제에서는 보름달 뜬 외암마을 야경을 보기 위해 10만5000여 명의 방문객이 찾아오기도 했다. 외암마을 농가에서 민박을 하면 초가집이나 기와집 등 한 채를 다 빌려준다. 10~12만원 가량하는 4인실은 방이 2개로 크지는 않지만 화장실과 샤워실, 취사도구가 있는 거실, 마당이 있어 한 가족이 머무르기에는 충분하다. 농가 민박집을 한달에 10번 만 예약을 받아도, 농가에서는 농사를 지어서 얻는 수익을 넘어서는 상당한 수입이 된다고 한다. 이 곳에서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신현길 씨(52)는 서울 창신동에 살면서 공연과 축제기획 일을 하다가 외암민속마을의 풍경에 반해 올해 초 이사를 왔다. 그는 “딸 아이가 서울 종로구 도심에 있는 교동초등학교를 다니다 이 곳으로 전학을 왔는데, 이 곳 초등학교에 학생수가 더 많아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한 복판에 있는 교동초등학교는 1894년에 개교한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인데, 농촌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가 학생수가 더 많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외암민속마을은 한국의 전통 농가를 체험해보고 싶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현지 여행사가 모집하는 6박8일 한국여행 코스에 외암민속마을 농가체험 프로그램을 넣었는데, 여행 후기에서 가장 독특했던 체험으로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미국에서만 올해 48개 팀(한 팀에 20명 정도)이 왔는데, 내년에는 70개 팀이 올 예정이라고 한다. 외암민속마을 보존회장인 이규정 이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 사람들이 농산물을 다 수확해가면 농가 수익은 어떤가요. “농가들은 수익이 더 큽니다. 농촌체험휴양마을이 좋은 점이 농민이 직접 심고, 가꾸고, 수확해서 파는 것보다 3배 정도가 매출액이 더 올라갑니다. 그런데 매출액 3배 뿐 아니라 인건비도 적게 들어가는 이점도 있지요.“― 체험 강사는 누가 하나요.“체험강사는 마을에서 양성을 합니다. 한지등 만들기 같은 공예체험은 직원들이 배워서 강사를 합니다. 그런데 여주차 만들기, 고추장 담그기, 강정 만들기 등은 주민들이 직접 합니다. 처음부터 무작정 해보라고 하면 못하니까, 강사교육을 받고 체험을 하게 합니다.” ― 체험프로그램 개발은. “농사체험이라고 해서는 작물 수확만하는 단순체험만으로는 인기가 없습니다. 자꾸 새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합니다. 강정을 만들어본다든가, 고추장을 담가본다든가, 엿을 만들어보는 체험을 개발해야 합니다. 저희 마을 법인에는 직원이 3명이 있는데, 직원들에게 1년에 한 개씩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게 합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잘 되면 인센티브를 줍니다. 코로나19 당시에는 ‘농가 체험키트’를 만들어서 직접 해볼 수 있도록 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인구소멸 시대 농촌체험휴양마을의 의미는. ”요즘 농촌이 인구소멸 위기를 겪고 있잖아요. 젊은층 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가고, 고령화되다보니 인구가 줄어들수 밖에 없지요. 현재 전국에는 농촌체험휴양마을이 약 1190개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그 마을이 모두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 50% 정도가 어느 정도 운영이 되고, 30% 정도가 수익을 낸다고 합니다. 농촌체험휴양마을이 어느정도 운영되고 있는 50%의 마을을 가보세요. 인구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잘 운영되는 30%의 마을에는 인구가 조금씩이지만 오히려 늘고 있습니다.“이규정 외암민속마을 이장은 ”농촌 인구소멸 시대에 농촌체험휴양마을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본다“고 말했다. ”국내 농촌마을이 약 3만6000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 농촌체험휴양마을이 1190개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국 245개 시군에 다 분포돼 있습니다. 이 마을이 인구소멸을 막는 모범마을이 되고, 옆마을 농산물과 특산품도 팔아주기도 합니다. 이웃마을의 성공사례를 보고 다른 마을도 하고 싶어하게 되는 겁니다.“ ―외암민속마을의 인구추이는 어떤가요. “우리 마을의 경우 2003년 농촌체험휴양마을이 된 이후 20여년 동안 다섯 가구가 늘었습니다. 제가 이사오고 싶다는 문의가 1년이면 수십 명이 문의가 옵니다. 그러나 우리마을은 전통가옥 보존지구로 묶여 있어 집을 새로 지을 수가 없어요. 들어오고 싶어도 집이 없어 못 들어오는 상황이죠.” ―외암민속마을에서 농사지으면서 민박하는 사람들의 소득수준은 어떤가요. “외암민속마을은 체험휴양마을이 된 후 농업 소득보다 ‘농업외 소득’이 더 높아졌습니다. 2003년 처음 체험휴양마을 사업을 시작했을 때 우리 마을에서 생산되는 쌀을 한 톨도 안 먹고 다 팔았을 때, 그 때 당시 계산으로 약 2억2500만원이 나오더군요. 지금은 조금 인상됐더라도 3억원 내외일 겁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좀 주춤했더라도, 작년에 우리 마을의 공식 총매출이 7억8000만원 정도 나왔습니다. 비공식 소득까지 따지면 약 10억원 정도의 매출이 될 겁니다. 3억원 규모의 농업소득만 있을 때 보다 3배가 올라간 겁니다. 저는 매년 우리 마을법인 직원들에게 목표치를 줍니다. 올해는 총 매출을 12억원을 올려보자고 목표를 잡았어요. 모든 농가가 3배씩 소득이 똑같이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노력하는 만큼 더 많은 소득을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은 농사를 짓지 못하더라도 가구당 최소한의 소득은 만들어드리고 있습니다.“―가구당 최소한의 소득은 어떻게 만들어주시나요?“마을에는 연로하셔서 농사를 못짓는 분들도 있습니다. 유모차 끌고 걸어다니시는 할머니 분들도 많아요. 그런데 이 분들은 앉아서 다듬이질을 할 수 있으세요. 그래서 주말에 마을 한옥체험장에 오셔서 다듬이 체험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한옥 마루에 앉아 다듬이 방망이질을 시연해주시면, 인건비를 제공해드리고 있습니다. 또 체험객이 오면 인솔자도 필요하죠. 체험객이 많을 때는 하루에 400~500명 씩 들어와요. 그럼 인솔자가 40명에 한 명씩 붙어도 10명은 필요합니다. 주민들만 가지고 안되니까 아르바이트를 쓰는데, 인근 아파트에서 젊은 주부들이 많이 신청합니다. 인근 아파트 단지에도 외암민속마을 인솔자는 ‘꿀알바’로 소문이 났어요. 아침 9시에 와서 오후 1,2시까지 인솔하면 일당 7만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인솔자는 마을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합니다. 돌담 이야기도 해주고, 마을의 역사나 유물에 대해서 설명도 해줘야 하지요. ‘외암마을 야행’ 행사 때에는 설거지 알바가 하루 15만원이었습니다. 설거지 알바는 좀 힘들기 때문이죠.“― 다듬이 체험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할머니들이 단순하게 다듬이 방망이를 치기만 해도, 주말에는 지나가던 관람객들이 신기해서 소리를 듣고 찾아옵니다. 초가지붕에 제비들이 집을 지어도 관람객들이 사진찍느라 난리인데, 요즘 도시 아이들이 평생 한번도 보지 못했던 다듬이질 하는 장면을 보면 신기해서 영상과 사진을 찍느라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요. 저희 마을에 10월에 ‘짚풀문화제’가 열리는데요. 개막공연에 다듬이 소리 공연을 할 예정입니다. 강사를 불러다가 매주 연습을 하고 있어요. 연극 ‘난타’ 공연처럼 다듬이 방망이로 리드미컬하게 난타를 치는 공연입니다. 지금은 일반 가요에 맞춰서 다듬이 난타공연 연습을 하고 있는데, 올해 작곡가에게 새로운 곡을 의뢰했어요. 내년에는 외암민속마을을 주제로 한 노래에 맞춰 다듬이 공연을 할 예정입니다. 마을노래를 만들어서, 직접 주민들이 다듬이 방망이 공연을 하는 것은 굉장히 새로운 시도입니다.“― 관광객은 어떤 분들이 주로 오나요.“가족단위로 주로 오시는데, 요즘엔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농촌에 와서 명소 여행만 할 게 아니라 체험을 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마을지도를 갖고 돌아다니면서 고추장도 만들어보고, 엿도 만들고, 강정도 만들고, 술도 담가보고 체험해보면서 정말 재밌어 하더군요.”― 해외 관광객도 오나요. “원래 코로나가 안 터졌으면 해외 관광객이 많았을거예요. 농림식품부에서 동남아 여행사와 계약해 1년에 600명 씩 관광객을 받기로 했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져서 무산돼 버렸죠. 코로나 이후에 다시 미국 여행사와 계약해서 관광객을 받고 있어요. 미국에 있는 재미교포가 하는 여행사에서 한국에 6박8일로 여행오는 미국 관광객들에게 외암민속마을 체험 코스를 넣은 거예요. 작년에는 40팀이 왔는데, 올해는 48팀이 오기로 돼 있습니다. 한 팀에 15~20명 정도가 옵니다. 내년엔 70팀 정도로 늘리자고 여행사에서 그러더군요.” ― 해외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는.“외암민속마을에 오면 하얀 도포자락에 갓을 쓴 할아버지가 인사를 하고, 연엽주 만드는 체험도 하고, 시골 아줌마가 만들어준 된장찌개 청국장찌개 등으로 진짜 시골밥상을 먹을 수 있어 미국인들에게 꼭 한번 가보라고 입소문이 났다고 합니다. 한국의 진짜 농촌에서 시골밥상을 맛보고, 어르신이 마을 설명도 해주니까 다녀온 사람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가봐요. 그러나 숙소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서양 관광객들이 우리 마을에서 1박을 할 수 있으면 주변에 아산 현충사도 있고, 온양온천도 다녀오고 더 좋은 경험을 하고 갈텐데 말입니다. 서양인들은 그냥 맨바닥에서 이불깔고 자는 걸 어려워합니다. 그런데 마을 숙소가 전통가옥의 경우 방이 좁아 침대를 놓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자체에 외암마을 인근에 한옥호텔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건의해놓았습니다.“ ―농어촌체험휴양마을 운영에서 제도상 어려운 점은. “정부가 인구소멸 위기 대안으로 농어촌체험휴양마을에 많은 제도적 뒷받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농촌에서 직접 생산한 농업 생산물을 팔 때는 부가세가 없는데, 농어촌체험형마을에서 벼베기 체험, 감자캐기 체험, 고구마체험을 통해서 도시민들이 수확해 가져간 작물에 대해서는 10% 부가세를 다 냅니다. 체험이니까 농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으로 들어간다고 하네요. 또 농어촌체험휴양마을은 전부 다 영농조합이든 법인형태를 만들어 진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개별적으로 혼자 운영하는 농어촌 민박은 비과세 대상인데, 마을 법인을 통해서 운영하는 민박은 세금부과 대상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경우 민박수입의 20%를 마을 법인이 수수료로 받아 운영비와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농촌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전문성 있는 인력을 구하기일텐데요. “농어촌체험휴양마을에는 체험프로그램과 민박을 관리하고 개발하는 사무장 제도가 있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고, 마을에서 자부담도 해서 전문인력을 고용해 운영하던 제도였습니다. 약 62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전국 농어촌체험휴양마을 650개 마을의 사무장 고용에 지원해주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정부에서 농어촌체험휴양마을 사무장 지원액을 전액 삭감했습니다. ‘선심성 인건비 지원’이란 명목이었죠. 그런데 사무장이 농어촌체험휴양마을에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한번이라도 파악을 해봤다면 삭감하지 않았을 겁니다.농어촌의 마을 공동체 사업은 체험이든 민박이든 주민들 소득 사업을 만들어주고, 인구가 유입되도록 역할을 해주는 젊은 인력이 필수적인데, 그 사람들을 싹 빼버리니까 마을의 사업이 개점휴업 상태인 곳이 많습니다. 전체 1190개 농어촌체험휴양마을에서 절반 가량은 어느 정도 자립해서 운영되고 있는데, 약 650개 마을은 잘 돌아가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런 마을을 지원하던 사무장 예산을 끊으니 아예 일할 사람이 없는 겁니다. 농촌이 전부 고령화가 돼 있다 보니까 손을 놓고 있는 거지요. 저는 정부에 ‘매년 평가를 해서 잘하는 마을은 인센티브를 주고, 잘 못하는 마을은 정리하자. 정리된 만큼 새로운 마을을 양성하자’고 건의해왔습니다. 마을이 잘 운영돼 수익이 생기면 지원 안해도 됩니다. 우리 마을만 해도 체험과 민박집 수입의 20%를 수수료로 걷어 세금을 내고, 직원 3명의 월급도 자체적으로 주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농어촌체험휴양마을은 밑 빠진 데 물 붓기식 사업이 아니라, 농촌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귀농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한마디 조언해주신다면. “제가 귀농 교육을 가면 강조하는 게 있어요. 귀농하기 전에 들어가고 싶은 마을을 찾아봐라. 자주 다니면서 그 마을이 뭘하는지를 잘 살펴라. 그리고 내가 무얼할 수 있는지 역할을 찾아라. 농업은 안해봤지만, 당신들은 공무원, 회사원, 자영업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실 치열하게 살아왔잖아요. 그런데 농민들은 그냥 단순하게 농사일만 해왔어요. 농촌마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말년에 시골마을에서 전원생활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농촌으로 왔다가는 전부 다 실패합니다. 전원생활 실패하고 도시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요.”아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는 대한민국이 직면한 심각한 문제다. 특히 농촌 지역은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3월 ‘새로운 농촌 패러다임’에 따른 농촌 소멸 대응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핵심 목표 가운데 하나가 농촌 관광 활성화로 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을 살리자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농촌 관광 활성화는 매우 중요한 국가 현안 과제다. 치유-워케이션-체험 등을 테마로 현재 진행 중인 농촌 관광 사업지들을 둘러보는 이유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고물가 탓에 얇아진 지갑으로 고민 중인 독자에게는 쏠쏠한 여행 정보가 될 것이다.》 프랑스 파리 외곽 베르사유 가는 길에 갈리 농장이 있다. 딸기와 각종 베리류(類), 자두를 비롯해 감자 당근 사과같이 계절 따라 맺는 열매를 도시민들이 직접 수확해 가는 체험형 농장이다. 10여 년 전 파리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가족끼리 그곳에서 한나절 놀다가 직접 딴 채소와 과일을 싼값에 사서 돌아오곤 했다. 농장으로서는 수확에 드는 비싼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도시민에게는 색다른 체험은 물론이고 신선한 농산물을 싸게 얻을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 우리나라에도 농가에서 민박하며 이런 체험을 할 수 있는 ‘농촌체험휴양마을’이 전국에 1178곳 있다. 예전에야 할머니댁에만 가면 농촌 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요즘 도시 사람에게는 낯선 경험이다. 충남 아산시 외암민속마을과 당진시 왕매실마을에서 맞는 휴가는 유명 관광지에서 사진 찍고 오는 여행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줬다.● 아산 외암민속마을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마을은 기와집과 초가집이 잘 어우러져 보존되고 있는 마을이다. 참판댁, 감찰댁, 종손댁 돌담 밑에 개양귀비꽃과 수국이 활짝 웃고 있는 골목길을 느릿느릿 걸으며 시간의 흐름을 즐길 수 있다. 1998년 전통 건조물 보존지구, 2000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전국에 엄청난 예산을 들여 전통 가옥을 보존해 놓거나 새로 지은 곳이 많지만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아 차가운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외암민속마을은 기와집과 초가집에서 45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어 더욱 생기가 넘친다. 마을을 걷다가 문틈으로 집안을 들여다보면 집집마다 다르게 꾸민 뜰이 보인다. 어떤 집은 마늘 농사가 잘 됐다며 지붕 밑에 주렁주렁 마늘 꾸러미를 걸어 놓았다. 영화 ‘취화선’ ‘클래식’ ‘영웅’의 촬영지였던 외암민속마을은 2003년부터 농촌체험휴양마을로 변모했다. 모두 합쳐 약 19만8000㎡(약 6만 평) 되는 마을 논과 밭에서 벼 베기, 고구마 감자 캐기, 여주 따기, 장 담그기, 한과와 강정 만들기 같은 체험이 계절별로 20∼30가지 진행된다. 체험비는 7000∼1만 원. 감자나 고구마는 2kg을 직접 캐서 가져갈 수 있는데, 자루에 꾹꾹 눌러 담아 3kg 넘게 가져가기도 한단다. 시중에서 사 먹는 것보다 훨씬 싸다. 이 마을을 찾는 관람객은 연간 7만∼8만 명. 그중 농가 민박에서 하룻밤 묵고 가는 이는 3만 명에 이른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마을 구경만 하는 사람은 40만 명이나 된다. 빈집을 활용한 민박은 마을 운영비와 세금을 비롯한 수수료 20%를 제외하면 모두 농가 수입이다. 마을 입구에는 기와집이나 초가삼간 같은 한옥을 들어가 볼 수 있는 체험 집을 지어 놨다. 이곳에서 떡메 치기, 전통 결혼식 체험, 투호놀이 등을 즐길 수 있다. 한복을 입은 마을 할머니들이 마루에서 다듬잇돌 위에 옷을 올려 놓고 다듬잇방망이로 치는 시범을 보인다. 구경 온 어린이들은 신기해하며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고 직접 방망이질을 해보기도 한다. 10월 열리는 마을 축제 ‘짚풀문화제’에서는 할머니들이 노래에 맞춰 다듬잇방망이를 리드미컬하게 치는 이른바 난타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체험 강사는 마을 주민 사이에서 길러 낸다. 교육을 받고 여주차 만들기, 고추장 담그기, 강정 만들기, 한지로 등(燈) 만들기 체험을 진행한다. 연로해 걷기 힘든 할머니들은 다듬이질 시연을 해주고, 농사를 못 짓는 할아버지는 갓 쓰고 도포를 입은 채 관람객을 맞이한다. 또 단체 관람객을 인솔해 돌담 사이를 걸으며 건재고택(建齋古宅), 별감댁, 교수댁 등 마을의 역사를 설명하는 아르바이트도 쏠쏠하다. “2003년 농촌체험휴양마을을 시작했을 때 마을에서 나는 쌀을 한 톨도 안 먹고 다 팔았어요. 당시 2억2500만 원 정도 수익을 올렸어요. 현재 가격으로는 약 3억 원이죠.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주춤하긴 했어도 지난해 마을 총매출이 7억8000만 원 정도인데, 비공식 수익까지 합치면 10억 원가량 될 겁니다. 농사지어 얻은 수확물 판매보다 매출이 3배 정도 올라갑니다. 더 좋은 건 수확할 때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거죠.” 이규정 외암민속마을 이장의 말이다. 이 이장은 “인구 소멸 위기에 닥친 농촌이 많은데 우리는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이사 오고 싶다는 문의는 많지만 전통 가옥 보존지구라 새 건물을 지을 수가 없어 다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고즈넉한 조선시대 농촌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외암민속마을은 하룻밤 묵으면 진가를 느낄 수 있다. 해질 녘 논물에 반사된 붉은 노을, 새들 지저귀는 아침 풍경은 잊을 수 없다. 이달 6∼8일 열린 ‘2024 외암마을 야행’ 축제에는 보름달 뜬 야경을 보기 위해 10만5000여 명이 찾았다. 민박을 하면 초가집이나 기와집 한 채를 몽땅 빌려준다. 10만∼12만 원 하는 4인실은 크지는 않지만 방이 2개이고 화장실과 샤워실에 취사도구가 있는 거실 그리고 마당까지 있어 한 가족이 머물기에 충분하다. 민박을 운영하는 신현길 씨(52)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살며 공연과 축제 기획을 하다 이 마을 풍경에 반해 올 초 이사 왔다. 신 씨는 “딸아이가 종로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전학 왔는데, 이곳 학생 수가 더 많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외암민속마을에는 한국 전통 농가를 체험해 보고 싶은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현지 여행사가 모집하는 6박 8일 한국 여행 코스에 외암민속마을 농가 체험 프로그램을 넣었는데, 여행 후기에서 가장 독특한 체험으로 만족도도 높았다고 한다. 미국에서만 올해 48개 팀(한 팀에 20명 정도)이 왔다. 내년에는 70개 팀이 올 예정이라고 한다.● 당진 왕매실마을과 합덕제 충남 당진시 순성면 아미산 앞으로 남원천이 흐른다. 남원천변 논두렁에는 2002년부터 재경 향우회에서 앞장서 벌인 ‘고향사랑 나무 심기 운동’ 때 심은 왕매실나무가 10만 그루 넘게 자랐다. 순성면 왕매실마을과 백석올미마을은 매실청을 넣은 막걸리와 맥주, 한과 만들기 체험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당진에서 천주교 성지로 유명한 합덕성당이 있는 합덕제 연지마을도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8월 15∼17일 ‘2024 당진 문화유산 야행’ 축제가 열린다. 왕매실마을에는 당진에서 유일한 수제 생맥주를 만드는 ‘순성브루어리’가 있다. 이 브루어리에서는 나만의 매실청을 넣은 수제맥주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브루어리 2층에는 바비큐와 매실피자를 안주로 다양한 맛의 맥주를 시음할 수 있는 펍이 있다. 매실막걸리인 ‘매화꽃비’와 방탄소년단(BTS) 팬클럽 ‘아미’들이 대량 구입한다는 증류주 ‘아미주’도 마실 수 있다. 백운기 순성브루어리 공동대표는 “아미산 이름을 따온 아미주는 유재석 씨가 유튜브에서 BTS 멤버 슈가와 지민에게 선물해준 것을 계기로 ‘아미’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귀띔했다. 왕매실마을 검은돌도농교류센터에서는 숙박도 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매실을 따고, 매실엿과 매실피자 만들기, 맥주 부산물로 비누 만들기를 한다. 체험비는 1만∼1만5000원. 아이들이 서너 가지 체험을 하는 동안 부모는 펍에서 매실을 넣은 맥주와 막걸리를 만들어 보고 시음할 수 있다. 글·사진 아산·당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캐나다 앨버타주와 항공사 웨스트젯 대표단이 10일 방한해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앨버타 관광을 홍보하는 기자 간담회(사진)를 열었다. 앨버타주는 로키산맥을 품은 밴프, 재스퍼 국립공원이 있으며 대표적인 도시는 캘거리와 에드먼턴이다. 대표단은 지난달 18일 인천공항∼캘거리 직항이 생겨 한층 더 가까워진 앨버타주를 한국 시장에 적극 알렸다. 웨스트젯 대외협력부 앤디 깁슨 부사장은 “10월 26일까지 인천∼캘거리 노선을 주 3회 운항하며, 캘거리에서 80여 개 목적지로 이어지는 스톱오버 프로모션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지프 스코 앨버타주 관광체육부 장관은 “앨버타주는 2035년까지 관광 수입을 현재 두 배 수준인 250억 달러(약 34조 원)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로스앤젤레스(LA)는 언제나 ‘현재 상영 중(Now Playing)’입니다. LA를 방문하는 모든 관광객을 영화 속 주연배우처럼 느끼도록 맞이하겠습니다.” 빌 카츠 미국 로스앤젤레스관광청 부사장(브랜드 & 디지털마케팅)이 LA를 알리기 위해 K팝 스타와 협업한 글로벌 광고 캠페인을 내놓았다. 그를 지난달 3∼7일 LA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국 최대 여행박람회 ‘IPW 2024’에서 만났다. “LA는 미국 문화와 예술의 상징 할리우드가 있는 곳이자, 세계 엔터테인먼트 수도로 알려져왔습니다. 세계 8개 주요 시장에서 진행되는 글로벌 캠페인은 LA라는 여행지를 영화에 은유해, 관광객을 LA 레드카펫으로 초대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LA가 K팝 스타와 협업한 까닭은…. “LA는 창의적인 도시입니다. 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할 때는 아티스트와 협력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갑니다. IPW 부스도 LA 출신 저명 그래픽 아티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존 반 해머스벨드와 협업해 디자인했습니다. LA 글로벌 캠페인에는 아이돌 그룹 ‘라이즈(RIIZE)’의 ‘겟 어 기타’ 음원을 사용했습니다. 한국은 K팝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 콘텐츠에서도 엄청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한국에서 제작하는 창의적인 콘텐츠와 파트너십을 맺어 향후에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으면 합니다.” LA는 2026년 FIFA 월드컵, 2027년 슈퍼볼, 2028년 올림픽과 패럴림픽 등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가 열려 관광시장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12년 만에 LA에서 열린 IPW 2024에도 70개국에서 약 5700명의 관광업계와 미디어업계 관계자들이 몰려들었다. ―올림픽을 앞둔 LA는 어떻게 변하고 있나. “내년에 영화 ‘스타워즈’ 조지 루커스 감독을 기리는 ‘루커스 박물관’이 캘리포니아 과학센터 옆에 개관합니다. ‘내러티브 아트(Narrative Art)’라는 이름으로 이야기가 있는 주제를 묘사한 새로운 장르의 작품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약 300억 달러(약 40조 원)가 들어가는 LA국제공항(LAX) 현대화 프로젝트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LA 명소를 추천한다면…. “LA의 다채로움을 경험하려면 최소 5박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그랜드 센트럴 마켓, LA 다운타운,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의 라이브 이벤트, 농구와 야구 등 스포츠, LACMA(시립미술관)와 게티센터 등 다 보려면 5일도 모자랍니다. 미식을 즐기는 데는 하일랜드 파크와 베니스 해변 근처 ‘애벗키니’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LA에서 가장 흥미롭고 핫(hot)한 동네는 코리아타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사진 로스앤젤레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 스페인 북부에 있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선사시대 가장 유명한 예술품입니다. 구석기 시대인들이 그려넣은 소와 말과 같은 동물 그림은 원초적인 아름다움에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울주 대곡리 반구대에 있는 선사시대 암각화를 봤을 때도 마찬가지 감동이었습니다. 울산 앞바다에서 헤엄치던 혹등고래, 귀신고래가 물을 뿜고, 사람들이 배를 타고 사냥을 하고, 소와 말을 그린 그림이 선사시대의 삶을 동영상처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호주 북동부 퀸즐랜드주 최북단 로라(Laura) 근처 산악지대에서 또다시 선사시대 암벽화를 만나게 된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호주에서는 붉은 사막이나 초원, 숲이 우거진 국립공원 등 호주 내륙지역의 광활한 자연환경이 살아 있는 황무지를 ‘아웃백(Outback)’이라고 하는데요. 아웃백에는 원주민들의 벽화 작품이 남아 있는 곳이 많습니다. 이 곳 암벽화는 깊은 동굴이나 물에 잠긴 바위 절벽에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코 앞까지 다가갈 수 있어 경이로웠다. 자연에 그대로 노출된 채 1200년부터 2만년까지의 세월을 견딘 예술작품이었습니다. 거대한 붉은 사암 바위가 천연의 지붕을 이루고 있는 절벽 중간 부분에 40여m 회랑처럼 그림을 그려넣은 색채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현대의 갤러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완벽한 자연의 ‘경이로운 미술관’(Magnificent Gallery)입니다.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Jaramalli Rock Art Tour) 호주 원주민의 예술인 암벽화(Rock Art)가 있는 곳은 퀸즐랜드주 북부 케이프 요크 반도에 있는 호주 원주민 ‘쿠쿠-얄란지(Kuku-Yalanji)’ 부족의 땅입니다. 케언즈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출발한 헬리콥터가 포트 더글라스 인근 로라에서 한번 주유를 하고, 다시 열대우림 숲을 건너 북쪽 산악지대로 날아간지 1시간 여. 유칼립투스 나무가 빽빽히 우거진 숲 속으로 빨간색 헬리콥터가 착륙했습니다. 헬기에서 내리니 이 지역의 호주 원주민인 쿠쿠-얄란지 부족 후손인 조니 무리슨(John Murison)씨가 둥그런 챙이 멋진 모자를 쓰고 우리 일행을 맞았습니다. 그가 데리고 나온 어린 강아지가 헬리콥터 소리에 놀랐는지 컹컹 짖었는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꼬리를 흔들며 반기네요. 산길을 몇미터 걸어가자 조니의 ‘자라말리 캠프(Jaramalli Camp)’가 나타났습니다. 버기카가 한 대 놓여 있고, 야외에서 나무를 태우는 캠프 파이어도 있습니다. 그의 방갈로에 들어서자 사방으로 탁 트인 전망에 ‘와우!’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걸어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밖에서 쳐다보면 절벽 꼭대기에 있는 오두막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랜드 캐년을 보는 듯한 협곡의 절벽에는 붉은색, 노란색 사암이 선명합니다. 그 사이로 우거진 나무와 초목, 계곡이 펼쳐져 있습니다. 조니의 캠프장 방갈로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치좋은 곳에 세워둔 정자와 비슷한 데요. 시원하게 뚫린 전망을 보며 한 가운데 놓인 테이블에는 웰컴 드링크와 치즈, 산딸기같은 간식거리가 놓여 있습니다. 조니는 이 곳에서 이 곳에서 자라말리 캠프장을 운영하면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Jaramalli Rock Art Tour)’ 프로그램을 가이드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 그는 호주 고고학자, 박물관과 협력해 호주 원주민 암각화 보존과 조사, 3D 화면으로 기록하는 작업에 참여해왔습니다. 조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전수받았던 고대의 지식을 활용해 쿠쿠 얄란지 부족의 종교와 예술이 암벽화에 어떻게 담겼는지에 대한 내용을 골드코스트 고고학회에서 발표도 했었다고 하네요. 조니와 함께 본격적으로 암벽화 투어에 나섰습니다. 그는 손에 막대기를 하나 들고 있었는데요. 끝이 뾰족한데 갈고리처럼 생겼습니다. 부메랑처럼 호주 원주민의 전통 사냥도구입니다. 이 갈고리에 줄을 걸어서 돌을 던지면, 더욱 힘을 받아서 멀리 보낼 수 있다고 하네요. 호주 원주민들은 나무 열매와 잎, 껍질 등에서 먹을 음식과 약 등을 구하는 ‘부쉬 터커(Bush Tucker)’ ‘부시 푸드(Bush Food)’의 전통이 있습니다. 그는 방갈로 앞에서 자라는 나무의 노란색 솔잎같은 잎을 따더니 손을 잡아서 쭉 짰습니다. 옅은 오렌지빛 잎에서 나온 즙이 향긋한 향기가 나더군요. 그는 “호주 원주민들은 이 즙을 짜서 물에 타서 ‘레모네이드 향이 나는 차’를 마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걸어가다가 한 나무 풀 숲 속으로 들어가더니 주먹을 쥐고 나타났습니다. 그는 나무에 매달린 개미집에서 개미를 몇 마리 잡아왔는데, 주먹쥔 손의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습니다.냄새를 맡았을 때는 강한 향이 나서 코가 찡긋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손바닥을 펴니 개미들이 있었습니다. 머리와 배부분은 초록색이고, 가슴은 갈색인 개미었습니다. 이 개미는 뱃 속에 꿀을 보관하는 ‘꿀주머니 개미’(Honey Ant)였습니다. 원주민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 이 개미를 먹으면 낫는 특효약이라고 합니다. 항균효과가 뛰어나 감기약이나 인후통 약으로 쓴다고 합니다. 한번 입에 넣고 씹어봤더니 박하나 로즈마리 등의 허브를 씹고 있는 듯한 달고 향긋한 맛이 났습니다. 산길을 좀 더 걷다보니 드디어 바위에 그려진 암벽화가 나타났습니다. 경이로운 미술관(Magnificent Gallery)“저쪽 아래를 보세요. 사람들이 줄을 지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잖아요. 역사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우리 조상들이 걸어오고 있는 모습입니다.”조니 씨는 갈고리 막대기를 들고 암벽화 입구에 사람들이 줄지어 오는 모습을 그린 그림부터 설명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수천, 수만년 전에 그린 암벽화가 살아 숨쉬는 듯했습니다. 캥거루가 뛰고 있고, 악어와 거북이가 기어다니고, 에뮤가 커다란 날개를 접고 긴다리를 휘청이며 걷고 있었습니다. 호주의 야생 들개인 딩고도 보이네요. 선사시대 사람들은 주로 자신이 사냥하거나 봤던 동물들을 그리는 데, 호주에서는 역시 다른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동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벽화에 그려진 이 동물은 호주의 국조(國鳥)인 에뮤(Emu)입니다. 전세계에서 호주에서만 살고 있는 타조를 닮은 대형 주조류(走鳥類)입니다. 몸길이 1.8m, 몸무게 35~54kg 정도 나가는 타조를 닮은 새입니다. 호주 국장에도 캥거루와 함께 에뮤가 그려져 있습니다. 호주의 선사시대 암벽화에도 캥거루와 에뮤가 가장 크게 그려져 있는 것이 의미심장하네요. 암벽화에는 가방같은 형태로 그린 그림도 있었습니다. 원주민들이 나무 껍질을 벗겨내 바구니처럼 짜서 만드는 가방이었습니다. 가방은 거꾸로 그려져 있었는데, 조니는 “가방 속을 잘 보면 아기가 보인다”고 하네요. 가방 속에 아기를 넣어서 다니며 육아를 하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호주의 동물들은 몸에 달린 주머니 속에 새끼를 넣고 다니며 기르는 유대류 동물이 많은 데, 사람들도 아기를 가방 속에 넣고 다녔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림입니다. ‘Magnificent Gallery(경이로운 미술관)’로 불리는 이 곳은 40m길이의 회랑 같은 암벽에 약 450점의 그림이 그려져 있네요. 호주 고고학자들은 이 그림들이 가장 최근 것은 1200년 전, 가장 오래된 것은 약 2만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이 닿는 부분까지 그림이 그려 있고 그 위 바위 틈에 자연적으로 생긴 검은색 선이 있는데, 대형벽화에 액자를 넣은 듯한 효과를 줍니다. 현대 화랑이었다면 그림을 비추는 조명까지 달았을텐데, 이 곳에서는 천연의 햇빛이 그 역할을 대신하네요.조니는 “암벽화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있지만, 주인공은 퀸칸(Quinkan)”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한 신으로 여겨지는 존재입니다. 퀸칸은 태양처럼 빛나는 머리 장식을 하고, 벨트를 맨 남자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퀸칸은 비정상적으로 긴 팔과 긴 다리를 갖고 있는데요. 스위스 출신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 조각이 생각나는 그림입니다. 퀸칸은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사암 벽화에서 두 팔을 벌리고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듯한 모습이네요. 어떤 사람은 거꾸로 그려진 모습도 있는데, 조니 씨는 “죽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해주었습니다. 로라 분지(Laura Basin) 아웃백에는 조사결과 최대 1만개의 암벽화 유적지가 있고, 매년 새로운 원주민 암벽화가 발견된다고 하네요. 그런데 대부분의 암벽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머리장식과 벨트를 하고 있는 ‘퀸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북부 퀸즐랜드 로라고원 일대를 ‘퀸칸의 나라(Quinkan Country)’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랜세월 동안 이 암벽화는 지워지지 않고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을까요. 비결은 암벽화 윗부분에 바위가 길게 나와 천연의 지붕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암벽 지붕이 반 동굴같은 역할을 해서 안료로 그린 그림이 비바람에 지워지지 않도록 보호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강화 석모도 보문사에 가면 바위 절벽에 해수관음상이 마애불로 새겨져 있는데, 마애불 윗 부분에도 천연의 눈썹바위가 지붕처럼 돼 있어 마애불 보존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조니는 그림 설명 뿐 아니라 암벽화를 그리는 데 사용된 붉은색, 노란색 사암을 갈아서 채색 재료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또한 암벽화 절벽 인근에서 수집한 돌칼, 돌도끼, 연마석 등 고대의 생활 문화를 알 수 있는 유물도 전시해놓았습니다. 그는 “쿠쿠-얄란지 사람들은 아마도 벽화가 그려져 있는 이 바위 은신처 아래에서 민물고기 바라문디(큰입선농어) 같은 생선을 요리했을 것”이라며 “고고학 연구자들은 이 주변에서 숯불을 피웠던 흔적과 함께 캥거루, 포썸, 박쥐 등의 동물의 뼈와 홍합 조개껍질 등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조니는 설명을 마친 후 암벽화 앞 바위에 앉아 원주민들의 전통악기인 ‘디제리두’를 연주해주었습니다. 디제리두는 흰개미가 파먹어서 속이 텅 빈 유칼립투스 나무 가지를 찾아서 다듬고, 치장해서 만드는 악기입니다. 돌 지붕까지 갖춘 천연의 갤러리이어서 그런지 디제리두의 저음이 더욱 더 잘 울려퍼지더군요다. 이 곳이 선사시대 원주민들에게 매혹적인 갤러리이자, 레스토랑이자, 콘서트홀이었다는 점을 알게 해주는 장면입니다. 조니의 연주를 들으며 벽화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여러 그림 중에서도 원주민 아티스트가 자신의 자신의 손도장을 남긴 부분이 특히 마음에 가네요.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고 찍은 손도장은 바로 예술가의 서명(Signature)일 것입니다. 요즘 화가들이 작품 한 구석에 사인을 하거나 낙관(도장)을 찍는 것과 비슷합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스타배우들의 손도장을 남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입니다. 선사시대 예술가 손도장 중에는 남성 뿐 아니라 여성들의 손도장도 많다고 합니다. 조니도 벽화 아래의 계곡에 있는 바위 한쪽면을 긁어내고, 선사시대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과 아이들의 손도장을 그려넣었습니다. 이 암벽화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는 자신도 조상의 예술 작품 속에 흔적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네요. 저도 벽화 속 손도장에 내 손바닥을 겹쳐놓고 사진을 찍어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손크기네요. 손가락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수천, 수만년전 선사시대의 예술가의 영혼이 느껴지는 듯하네요. 열대우림 숲을 건너암벽화 트레킹과 부시워킹(부시 터커를 얻는 원주민들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점심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니는 원주민과 비슷한 방식으로 불을 피워 음식을 조리했다. 치킨과 소고기 스테이크를 감자, 양파, 당근, 허브을 넣고 함께 냄비에 넣고, 통째로 캠프파이어의 숯불 속에 집어 넣은 뒤 익혀냈다.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를 가려면 두가지 방법이 있다. 헬리콥터를 타고 가는 방법과 4륜구동(4WD) 트럭을 타고 찾아가는 방법이다. 4WD 트럭으로 가는 것은 로라 타운십에서 약 35분 동안 울퉁불퉁한 오프로드를 달려서 자라말리 캠핑장에 도착하는 것이다. 자라말리에서 제공하는 트럭에 탑승해서 왕복하고, 암벽화를 보고 점심식사를 먹고 돌아오는 원데이 투어는 1인당 350호주달러다. 자신의 4WD 개인차량을 타고 안내자의 트럭을 뒤쫓아 가는 ‘태그얼롱 투어’도 가능하다. 1박 또는 2박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밤하늘 별보기, 캠프장에서의 식사 등이 포함돼 있다. 헬리콥터 투어는 케언즈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 있는 전세 헬리콥터(Nautilus Aviation)를 타고 왕복하는 여행이다. 헬리콥터는 데인트리 열대우림(Daintree Rainforest) 숲 위로 날아간다. 뿌리만 해도 사람 키 높이만한 엄청난 숲이다.호주 퀸즐랜드주 동북쪽 해안에 있는 데인트리 열대우림(Daintree Rainforest)는 약 1200㎢ 넓이로, 호주 대륙에서 가장 큰 연결된 열대 우림 지역이다. 데인트리 열대우림은 한때 호주 대륙 전체를 덮은 거대한 숲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점차 쪼그라들었고, 현재 퀸즐랜드 열대 습윤 지역은 1억2000만 년의 기후변화 속에서 살아남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열대 우림’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루 종일 풀숲을 함께 걷고, 조상들의 땅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던 조니에게 캠프장 이름은 ‘자라말리(Jarramali)’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조니의 오두막 한켠에는 침대가 놓여 있고, 그 옆에 조그만 테이블 위에는 그림이 그려진 돌이 놓여 있다. 그림에는 암벽화에 그려져 있는 ‘퀸칸’과 ‘에뮤’가 그려져 있었다. 조니가 입고 있는 자라말리 캠프 셔츠 뒷면에도 사람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바로 머리장식을 한 퀸칸의 모습이었다. “천둥(뇌우)라는 뜻입니다. 내 아들의 이름이기도 하고요.“ 조니는 ‘퀸칸의 나라’인 쿠쿠 얄란지의 땅에서 조상들의 영혼과 교감하며 살고 있다. 사암의 절벽과 암벽화, 부시터커, 일몰과 밤하늘의 별, 캠프파이어와 허브로 만든 식사까지 하나하나가 인상적이었다. ‘자라말리(천둥)‘는 조상이 물려준 땅과 하늘이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아닐까.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선사시대 예술 작품이다. 구석기시대인들이 그려 넣은 소와 말 그림은 숨소리가 들릴 듯 생생하다. 울주 반구대 암각화를 봤을 때도 감동이었다. 그런데 호주 북동부 퀸즐랜드주 고원지대에서 만난 선사시대 암벽화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 호주 아웃백 암벽화 투어 호주에서는 붉은 사막이나 초원, 숲 같은 내륙 지역 황무지를 아웃백(outback)이라고 부른다. 아웃백에는 원주민들이 1만 년 이전에 그린 암벽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많다. 호주 북동부 최북단 퀸즐랜드주 케언스에서 케이프요크반도 방향으로 날아오른 헬리콥터는 데인트리 열대우림 위를 날아갔다. 1억2000만 년 동안 기후가 변화하는 가운데 살아남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열대우림’이다. 구불구불한 강물이 흐르는 로라 고원지대 위를 난 지 1시간여. 헬기가 산속 캠프장에 착륙했다. 카우보이모자 비슷한 둥그런 모자를 쓴 조니 무리슨 씨와 개가 여행객을 반갑게 맞는다. 이곳은 원주민 쿠쿠얄란지 부족의 땅. 관광객들은 헬기 대신 로라 타운에서 사륜구동 트럭을 타고 약 35분 동안 오프로드를 달려 도착하기도 한다.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를 진행하는 무리슨 씨는 원주민 가이드다. 그의 오두막에 들어서니 사방으로 탁 트인 전망에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랜드캐니언을 방불케 하는 붉은색, 노란색 사암 절벽 협곡이 펼쳐졌다. 웰컴 드링크를 맛본 후 본격적으로 선사시대 암벽화 투어에 나섰다. 약 1km쯤 산길을 걸어가자 절벽 중간에 길이 약 40m 암벽화가 나타났다. 노천이지만 거대한 붉은 바위가 천연 지붕을 이루고 있어 비도 잘 들이치지 않아 그림이 완벽히 보존될 조건을 갖춘 ‘경이로운 미술관’이었다. “저쪽 아래를 보세요. 우리 선조들의 영혼이 걸어오고 있습니다.” 무리슨 씨는 암벽화 입구 부분의 사람들이 줄지어 있는 그림을 막대기로 가리켰다. 그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암벽화 속 선사시대 사람과 동물 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캥거루가 뛰고 악어가 기어 다니고 에뮤(타조처럼 생긴 호주 국조·國鳥)가 긴 다리를 휘청이며 걷는다. 암벽화에는 약 450점이 그려져 있다. 호주 고고학자들은 2만여 년 전부터 1200년 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무리슨 씨는 호주 여러 박물관 고고학자들과 협력해 암각화 보존과 조사 및 3차원(3D) 기록 작업에 참여해 왔다. 그는 “이 벽화 주인공은 바로 퀸칸(Quinkan)”이라면서 한 그림을 지목했다. 그림 가운데 키가 큰 사람이 양손을 벌리고 있다. 태양처럼 빛나는 머리 장식을 하고 벨트를 맨 남자 모습이다. 퀸칸은 팔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긴데, 일부는 선(善)하고 일부는 악(惡)한 존재라고 한다. 인근 로라 분지 산악지대에 있는 약 1만 개의 원주민 암벽화 유적 대부분에 퀸칸이 그려져 있어 이 지역을 ‘퀸칸 컨트리’라고도 부른다. 무리슨 씨는 암벽화 설명을 마치고 바위에 앉아 원주민 전통 악기 디저리두를 연주했다. 흰개미가 갉아먹어 속이 빈 유칼립투스 나무로 만든 악기로 길이가 1m를 넘는다. 입술 진동만으로 바람 소리, 천둥소리뿐 아니라 뜀박질하는 캥거루 모습까지 표현해 냈다. 돌 지붕까지 갖춘 자연 미술관이어서인지 디저리두의 저음이 더 잘 울려 퍼졌다. 이곳이 선사시대 원주민들에게는 매혹적인 갤러리이자 콘서트홀이었음을 알게 하는 장면이었다. 디저리두 연주를 들으며 벽화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벽화 속 여러 그림 중에서도 원주민들이 남긴 손도장에 특히 마음이 갔다. 선사시대 예술가들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손바닥 서명을 한 것일까. 미국 할리우드 배우들도 길바닥에 손바닥 도장을 찍지 않는가. 암벽화 손도장에 내 손바닥을 겹쳐 사진을 찍어 본다. 수천, 수만 년을 넘어 선사시대 아티스트의 영혼이 느껴지는 듯했다.● 원주민 문화 여행 지난달 20∼23일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 최대 관광교역전 ATE24에는 호주 및 글로벌 관광업계 관계자 2200여 명이 참여했다.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을 앞두고 다양한 관광 인프라에 투자 중인 호주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가 원주민 문화 체험 여행이다. 호주 원주민은 약 4만∼7만 년 전에 호주 대륙에 들어와서 살았다. 지금도 전체 호주 인구 약 3.3%인 81만여 명이 살고 있다. 250여 년 전 영국인들이 호주에 진입한 이후 원주민들은 세균과 전염병, 학살 등으로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차별받던 원주민들은 1967년에서야 시민권을, 1984년 투표권을 인정받았다. 2008년 케빈 러드 호주 총리가 원주민에 대한 과거사를 공식 사과한 이후 호주 정부는 원주민 역사와 문화를 포용하는 작업에 나섰다. 호주가 250년 정도의 역사가 아니라 7만 년 된 전통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것을 내세우는 관광 전략인 셈이다. ATE24 개막 직전 진행된 팸투어 타이틀도 ‘퀸즐랜드 원주민 문화 투어’였다. 골드코스트 젤루갈 원주민 문화센터에서는 원주민 출신 가이드가 함께 산책하면서 암벽에서 캐낸 흙을 물에 개어 피부에 바르는 보디페인팅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커럼빈 야생동물공원에서도 로리킷 앵무새에게 먹이를 주는 쇼와 함께 원주민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공연이 인기였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페리를 타고 40분이면 갈 수 있는 노스스트래드브로크섬은 원주민어로 민제리바섬으로 불린다. 호주 콴다무카 부족이 2만5000년 전부터 살아온 이 섬에서는 원주민이 가이드하는 투어가 있다. 원주민 아티스트 공방에서 조개껍데기와 나무껍질을 엮어 만든 작품을 감상하고, 해변 텐트에서는 해산물과 허브를 활용한 원주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원주민 가이드 엘리사 키식 씨는 “블러드우드의 붉은색 수액을 바르면 상처가 잘 낫고, 호주 토종 티트리(Tea Tree)가 많아 물빛이 갈색을 띠는 브라운 호수 물로 세수하면 피부가 좋아진다”고 말했다. 원주민 문화 여행에서 가장 흥미로운 프로그램은 ‘부시 터커(Bush Tucker)’. 야채, 과일, 벌레가 흔한 수풀 속 천연 재료를 가지고 약과 음식을 구하는 방법을 배운다. 자라말리 암벽화 투어 가이드 무리슨 씨는 노란색 솔잎처럼 생긴 가지를 짜서 나오는 즙으로 레모네이드 향이 나는 차를 만들어주는가 하면, 배 안에 꿀을 저장해 놓는 꿀개미를 손으로 잡아 향기를 맡아 보라고 하기도 했다. 그는 “꿀개미를 입에 넣고 씹으면 톡 하고 꿀이 터져 나온다. 항균 효과가 뛰어나 감기나 인후통에 걸렸을 때 사용하는 원주민 특효약”이라고 말했다. ● 그레이트배리어리프 퀸즐랜드주 해안에 있는 세계 최대 산호초 지대 그레이트배리어리프는 남북으로 약 2000km에 걸쳐 있다. 400여 종의 산호와 초록거북, 듀공 같은 멸종위기 해양 생물을 비롯한 어류 1500여 종이 살고 있다. 케언스 항구에서 출발한 ‘리프 매직호’를 타고 약 2시간을 가면 산호초 지대에 도착한다.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메고 잠수해 보니 화려한 산호초가 정글처럼 우거져 있다. 말미잘 속에 사는 주홍색 ‘니모’(클라운피시·흰동가리)는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에 나온 그대로이고, 헤엄치는 상어에다 보티첼리 명화 ‘비너스의 탄생’에 나오는 대왕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는 케언스에서 그린아일랜드로 향하는 배(소요 시간 약 45분)를 타고 가 산호초 위에서 스노클링을 즐겨도 좋다. 좀 더 남쪽에 있는 레이디엘리엇섬에 가면 날개 길이가 9m에 이르는 만타레이(쥐가오리)와 함께 헤엄칠 수도 있다.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남극대륙에서 온 혹등고래 약 2만5000마리가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서 새끼를 낳는다. 퀸즐랜드 관광청 셜리 윈켈 씨는 “이 시기엔 엄마와 아기 혹등고래가 물 위로 올라 숨 쉬는 장면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퀸즐랜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다이버들에게 지구상에서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포인트를 꼽는다면? 필리핀과 태국, 인도네시아, 괌, 사이판, 팔라완 등 동남아와 태평양의 섬들, 홍해 연안도 물론 좋지만 좀처럼 가기 힘든 곳이 남미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제도와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 나왔던 니모의 고향 호주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다.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탐험하며 ‘진화론’의 영감을 받았던 갈라파고스 제도는 한국에서 워낙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호주의 그레이트배리어리프도 가깝지는 않지만, 세계 최대의 산호초 군락 지대라는 명성이 다이버들을 끌어들인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관문은 호주 퀸즐랜드주 케언즈 공항. 비행기에 실은 짐 나오는 통로부터 달랐다. 짐이 나오는 출구에는 거북이, 상어, 니모(클로운 피쉬), 마오리 놀래기 등 그레이트배리어리프 산호초 지대에 살고 있는 대표적인 바다생물 입으로 꾸며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제주나 부산 등 지방 공항엔 지역 특색을 보여주는 이런 깜짝한 아이디어를 한번 도입해보면 어떨지?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는 호주 북동부에 있는 퀸즐랜드 주 해안에 발달해 있는 산호초 군락지대다. 이 산호초 지대는 대보초(大堡礁)라고도 하는데, 남북으로 약 2600km에 걸쳐 있다. 면적이 34만 8700km2, 너비 약 500~2000m로 세계 최대의 산호초 지대다. 전세계에 있는 산호 중 3분의 1이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 있다. 198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북쪽은 파푸아뉴기니 남안의 플라이강 어귀까지, 남쪽은 퀸즐랜드주의 레이디 엘리엇섬까지 이어져 있다. 이 곳에는 400여 종의 산호와 1500여 종의 어류, 4000여 종의 연체동물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멸종위기에 있는 초록거북, 듀공 등 해양생물이 살고 있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평균수심은 35m에 불과하지만, 대륙붕이 2000m 까지 이어져 해양생물들의 주요활동 무대가 되고 있다.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워낙 크기 때문에 출발하는 도시에 따라 풍광이 달라진다. 가장 대표적인 코스가 케언즈에 있는 ‘리프 플릿(Reef Fleet) 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가는 것이다. 하루 당일치기로 산호초 지대를 다녀오는 ‘리프 매직(Reef Magic)’호는 8시15분에 승선을 시작했다. 배에 타니 생강에서 추출한 천연성분의 멀미약(Natural Ginger tablets)을 준다. 2시간 가량 배를 타고 달려야 하기 때문에 미리 대비를 해두라는 것이었다. 과연 그레이트배리어리프로 가는 뱃길에 파도가 굉장히 높았다. 여객선도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데다, 파도가 세니 선내에서도 몸을 일으켜세우면 휘청일 정도다. 배가 가는 동안 선내에서는 다양한 브리핑과 프리젠테이션이 이어진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산호에 대한 설명도 있고, 물 속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거북이, 상어, 니모 등 다양한 바다생물도 설명해준다. 또한 안전을 위해 스노쿨링 또는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있는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설문조사도 꼼꼼히 진행된다. 복용하고 있는 약이 있거나, 8시간 이내에 술을 마셨다면 다이빙이나 스노쿨링은 금지다. 드디어 산호초 지대에 도착하니 거짓말같이 날씨가 맑아지고, 파도도 잔잔해진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뱃전에서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산호가 발달한 지역에서는 대부분 수심이 얕기 때문에 바닷물 색깔이 짙푸른색에서 황금 에머랄드빛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산호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누군가 지구상에서 가장 넓게 연결된 건축물이라고 했던가. 다이빙 관광객을 싣고 온 리프매직호는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한 가운데 고정된 다이빙 시설에 접안을 한다. 바닷 속 땅에 고정된 다이빙시설에는 1층에는 다이빙 수트와 핀, 마스크 등을 대여해주고 탈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2층에는 식당이다. 스쿠버다이빙 어드밴스(AD) 카드를 보유하고 있는 기자는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했다. 공기통과 BCD, 마스크와 핀, 컴퓨터(잠수용 시계)를 착용하고 다이빙 준비를 한다. 첫번째 다이빙은 체크다이빙이다. 최대 수심은 11미터로 접안 시설 주변에 있는 산호초 지대를 감상하는 것이다. 200바의 공기를 채워서 약 45분간 다이빙을 했네요. 입수는 접안시설 내부에 있는 계단을 통해 물 속으로 들어간다. 드디어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산호를 감상할 시간이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산호는 둥근 쟁반처럼 널찍하고, 왕관처럼 생긴 모양이었다가, 영지버섯처럼 피어나고, 사슴뿔 모양의 산호가 가시덤불처럼 숲을 이루기도 했다. 가장 장관은 제주 용눈이오름이나 영남 알프스에서 보았던 가을 억새처럼 생긴 연산호가 물살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장면이었다. 산호는 꽃밭을 이루다가, 밀림 숲처럼 우거지고, 청보리밭이나 억새처럼 흩날리며 신세계를 보여주었다. 산호초 사이에는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명물인 머리에 혹이 나 있는 커다란 물고기인 마오리 놀래기들이 지나다녔다. 꽃처럼 피어 있는 산호 틈 사이에서 하얀색 융단처럼 생긴 돌기들이 춤을 추고 있다. 새하얀 말미잘 속에 주홍색 니모(흰동가리, 클로운 피쉬)가 살고 있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서 주인공 니모는 아빠 말린과 함께 바로 이 그레이트배리어리프 산호지대의 말미잘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니모와 어린 바다생물 친구들이 만타 레이(대왕 쥐가오리) 등위에 타서 유치원에 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산호 숲 사이를 유영하고 있는데 가이드 강사가 이리 와보라고 손짓을 해서 가보니 대왕조개가 있었다. 보티첼리의 명화 ‘비너스의 탄생’에서 나오는 것과 똑같이 생긴 대왕조개였다. 약간 벌리고 있는 틈새로 보라색 속살이 보였다. 세상에~ 조개의 속살이 보라색이라니! 기괴함 속에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속살을 자세히 보는 데 구멍이 두개가 있다. 입수공과 출수공이다. 조개는 한쪽 입으로 물을 빨아들이고, 영양분을 걸러낸 다음 출수공으로 물을 내보낸다. 가이드가 대왕조개 위로 손을 가져가서 한번 휘저으니, 육중한 껍질이 쾅!하고 닫힌다. 약간 공포스러운 장면이다. 두번째 다이빙은 점심식사 후에 배를 타고 리프 너머 좀더 깊은 바다에 가서 진행했다. 한참 물 속을 탐험하고 있는 데 가이드가 갑자기 손바닥을 머리 위에 세운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그쪽으로 시선을 옮겨보니 멀리 상어가 보였다. 처음엔 한 마리였는데, 다음 번엔 두 마리의 상어가 함께 헤엄치고 있었다. 얼른 고프로(Gopro)를 꺼내 수중 촬영했는데, 거리가 먼 탓인지 흐리게 상어 특유의 지느러미 형태만 잡혔다. 뭍에 올라 온 후 가이드에게 “상어는 위험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상어는 고양이처럼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려하면 잽싸게 몸을 숨긴다. 상어가 사람을 더 무서워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물 속에서 상어를 봤을 때의 수신호를 가르쳐주었다. 손바닥을 머리 위에 세우면 ‘상어가 나타났다‘는 뜻이고, 머리 위에 왼손-오른손 손바닥을 2층으로 세우면 ’큰 상어가 나타났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왼쪽 손바닥을 머리 위에 세우고, 오른손으로는 십자 성호를 그으면 “어마어마한 상어가 나타났으니, 빨리 도망가라!”는 뜻이라면서 한바탕 웃었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를 즐기는 방법은 스쿠버다이빙 말고도 여러가지다. 산호초 위에 물고기들이 많이 사는 곳이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초보자도 구명조끼를 입고, 간단한 스노클링 장비만 갖추고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바다 위에 둥그렇게 둘러친 안전 펜스 안에서만 떠다니며 구경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스노클링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밑바닥이 투명유리로 돼 있는 소형 배를 타고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산호와 해양생물을 즐길 수 있다.좀더 숙련된 사람들은 구명조끼를 벗고, 잠수용 수트를 입고 자맥질을 하면 더 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제주 해녀들처럼 1~2미터 정도 물 속에 잠시 들어가, 30~40초 동안 산호초 위로 수중 유영을 하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마치 내가 인어가 된 듯한 느낌이랄까.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안에서는 호주 원주민 출신 선원이 호주의 전통악기인 디제리두를 연주해주었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도 원주민 문화가 많이 얽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다이빙전세계적인 기후변화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산호도 죽어간다는 외신 기사가 심심찮게매스컴에 등장하기도 한다. 호주 정부는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산호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를 위해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해양 공원 방문객들은 하루 6달러의 ‘산호세(reef tax)’를 지불해야 한다. 조성된 기금은 산호의 보존과 번식에 연구와 보호 활동에 사용된다.11월은 산호의 산란기이다. 매년 같은 시기에 산호가 알과 정자를 배출하고 나면 구름 같은 연막이 수면으로 떠올라 수정을 준비한다.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이 번식 행위는 단 며칠 동안만이루어진다. 세계 최대 산호초 군락지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산호초 성장과 복구를 돕는 핵심과정이기도 하다.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의 다이빙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케언즈 리프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리프 매직을 타고 산호초 지대에서 하루 다이빙이나 스노클링을 즐기는 방법이 가장 대중적인 코스다. 또한 케언즈 리프 터미널에서 그린 아일랜드로 가는 배(약 45분)를 타고 가서 하루종일 스노클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 서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 위치한 브리즈번에서 가까운 ‘레이디 엘리엇 섬’은 ‘만타 레이(쥐가오리)의 고향’으로 불린다. 날개 길이가 9미터에 이르는 쥐가오리와 함께 수영하며 비현실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케언즈 북부 포트 더글라스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거나, 리브어보드(배 안에서 먹고 자면서 며칠씩 하는 다이빙)를 하면 좀더 커다란 어류와 야생의 자연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특히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호주에서는 약 2만5000마리의 혹등 고래가 남극대륙에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허비 베이로 이동한다. 안전한 고래 보존 구역에서 암컷 고래들이 새끼를 낳기 위해서다. 이 시기에는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주변 해안에서 혹등고래가 물 위로 차올라 숨을 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호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호주는 코로나19 이후 전세계 관광시장에서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다크호스다. 광활한 자연환경 속에서 잘 정비된 관광인프라 덕분에 웰니스와 지속가능한 성장, 미식과 자연 속 탐험과 새로운 경험을 중요시하는 밀레니엄 세대의 여행 트렌드에 잘 맞아 떨어지는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바다면 바다, 산이면 산, 열대우림과 초원, 사막, 펭귄과 새, 신기한 유대류 동물, 문화 예술과 스포츠까지 다양한 관광인프라를 갖춘 호주가 새롭게 내세우는 또하나의 전략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호주 원주민 문화(Indigenous Culture)’다. 지난 20~23일 호주 빅토리아주 멜번에서 열렸던 호주 최대 관광교역전 ATE24에는 호주와 전세계 관광업계 종사자 2200여 명이 참가했다. 개막 첫날 야외에서 호주의 원주민 전통악기인 ‘디제리두(Didgeridoo)’ 연주자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디제리두는 흰개미가 속을 갉아 먹어서 빈 유칼립투스 나무로 만들어진 관악기다. 리드가 없는 악기인데, 대금처럼 특수한 호흡 기술과 입술의 진동을 통해 소리를 내는 악기다. 스위스 호른처럼 길쭉하게 생긴 악기에서는 저음으로 깔린 독특한 울림소리가 난다. 마치 몽골초원에서 한 사람이 두개의 목소리를 내면서 부르는 ‘흐미(khoomi)’ 같은 느낌의 소리다. 호주 원주민을 만날 때면 모두 각각 자신이 직접 만들고, 화려한 문양을 새겨넣은 디저리두를 갖고 있었다. 동물원에서도, 배 안에서도, 섬에서도, 산 속의 바위와 동굴에서도 원주민들은 즉흥적으로 디제리두 연주를 들려주었다. 퀸즐랜드주 케언즈에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로 스쿠버다이빙을 하러가는 배 안에서도 원주민 부족 출신 직원이 디저리두를 연주해주었다. 또한 퀸즐랜드주 북부 로라에 있는 케이프 요크 반도 산악지대에 있는 ‘원주민 암벽화 갤러리 (Rock Art Gallery)’ 앞에서도 원주민 가이드 조니(Johnny)가 디저리두를 연주해주었다. 그는 이 악기로 캥거루의 깡총깡총 뛰는 모습을 음악으로 형상화해서 연주를 해주기도 했다.골드코스트에 있는 커럼빈 야생동물공원에서도 원주민의 춤과 노래를 들려주는 ‘애버리지널 컬쳐 쇼(Aboriginal Culture Show)’ 공연을 했다. 여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디저리두다. ● 호주 원주민 애버리진호주 대륙에 살고 있는 원주민은 애버리진이라고 부른다. 현재도 전체 인구의 약 3.3%인 약 81만 명의 애버리진이 살고 있다. 호주 원주민은 약 4~7만 년 전에 호주 대륙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250여 년전 영국인들이 호주에 도착했을 때 원주민들은 약 250개의 언어를 쓰는 다양한 부족들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가져온 세균과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고, 대규모 학살까지 당하면서 1900년까지 원주민 인구는 90%까지 감소했다고 한다. 호주의 원주민들은 1967년이 돼서야 시민권을 부여받았으며, 1984년이 돼서야 투표권을 인정받았다.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원주민 출신 육상스타 캐시 프리먼이 여자 4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호주 정부는 2008년 캐빈 러드 총리가 원주민에 대한 차별과 탄압의 과거사에 대해 공식사과한 이후 원주민 피해자 배상과 함께 원주민 문화와 전통을 호주의 역사에 포함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오늘날 사용되는 호주 원주민 언어는 20개 미만이지만, 처음 영국인이 호주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250개 이상의 언어가 존재했다고 한다. 호주에서 사용하는 영어에서는 이런 원주민 언어에서 기원한 단어가 400개 이상 으로 알려져 있고, 주로 사용하는 단어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호주의 동물 이름이나 다양한 지명이 있다. 캥거루, 왈라비, 코알라, 웜뱃, 포썸(호주 주머니쥐), 바라문디(강에 사는 큰 물고기), 딩고(호주 야생 들개) 등 동물이름 뿐 아니라 부메랑(던지면 돌아오는 V자 형태로 생긴 사냥용 도구), 빌라봉(강이 코스를 바꾼 후 남겨져 고립된 연못) 등의 용어도 많다. 또한 호주의 수도 이름인 캔버라(Canberra)도 ‘만남의 장소’라는 뜻의 원주민 언어라고 한다. 호주 정부는 영어식으로 불렀던 지명도 다시 원주민 언어로 바꾸거나 병기하는 작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노던 테리토리(NT) 주 사막한 가운데 있는 사암바위는 지상에 노출된 단일암괴 중 세계 최대 크기여서 ‘세계의 배꼽’으로 불린다. 원래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총리였던 헨리 에어즈경의 이름을 따 ‘에어즈 락(Ayers Rock)’으로 불렸는데, 최근 ‘울루루(Uluru)’로 바꿨다. 원주민 언어로 ‘그늘이 지는 장소’라는 뜻이다. 호주 북동부 퀸즐랜드주 동부연안을 따라 122km로 길게 뻗어 있는 세계 최대의 모래섬인 ‘프레이저 아일랜드(Fraser Island)’는 ‘가리(K‘gari) 섬’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섬 전체가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재돼 있을 정도로 셰계 최고의 휴양지로 꼽히는 이 섬은 부근에서 배가 좌초돼 1836년 섬에서 죽은 제임스 프레이저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가리(K’gari)’는 호주 부출라어 원주민 언어로, 이 섬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 여성의 이름이다. 서호주는 ‘킹 레오폴드 산맥(King Leopold Rages)’의 공식명칭을 ‘우나민 밀리원디 산맥(Wunaamin Miliwundi Ranges)’로 바꿨다. 또한 호주 정부는 시드니(와라네/warrane), 멜버른(나암/Narrm), 퍼스(부를루/Boorloo),애들레이드(타른타냐/Tarntanya), 케언즈(기무이/Gimuy), 브리즈번(미안진/Mian-jin, 뾰족한 모양을 한 곳) 등 대도시의 이름을 원주민식 언어와 병행표기 한다. 호주의 역사는 흔히 1770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 동남부 지역을 점령해 대영제국 영토로 선포한 이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호주 정부는 이 전에 살고 있던 원주민의 문화와 전통, 역사를 적극적으로 재수용함으로써 문화, 관광산업의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호주의 역사가 250년 정도가 아니라 6만 년 이상 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것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0~23일 호주 빅토리아주 멜번에서 열린 호주 최대 관광교역전 ’ATE 2024‘에서도 호주 각 지역마다 원주민 문화체험 여행 상품을 들고 나왔다. 사전투어로 참가했던 퀸즐랜드주 팸투어도 타이틀이 ‘퀸즐랜드 원주민 문화 투어’(Queensland Indigenous Culture Tours)였다. 퀸즐랜드의 대표적인 도시인 브리즈번 골드코스트, 케언즈의 그레이트배리어리프, 북 퀸즐랜드 산악지대 암벽화 투어에서도 모두 원주민 문화가 주제였다. 원주민들이 어떻게 나무에서 약성분을 얻고, 먹을 것을 얻고, 나무 껍질로 그릇과 가방을 만들고, 어떤 흙을 캐서 피부에 발라 바디페인팅 치장을 하고, 어떤 노래와 춤을 추고, 어떤 악기를 불고, 원주민이 남긴 예술 작품 속에 자연을 해석하는 영험한 지혜가 들어 있는지 원주민 출신 가이드가 직접 설명해주며 함께 하는 투어였다. 호주의 대도시를 여러번 투어해본 관광객들의 경우 호주에도 이렇게 오래된 자연 속 지혜를 가진 원주민 문화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 서양에서 온 관광객들은 더욱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호주가 완전 서양의 국가라고 생각했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태평양 연안의 섬국가들이 갖고 있는 전통문화를 나름 잘 보존하고 있는 나라라는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퀸즐랜드주 관광청 셜리 윈켈 씨는 “지명에 대한 이중 표기는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으로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라며 “프레이저섬이 ‘크가리’로, 브리즈번이 ‘미안진’으로, 모튼섬이 ‘멀검핀’으로 불리게 된 것은 진정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글, 사진 멜버른=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정호 앰배서더호텔그룹 회장이 지난달 30일 홍콩폴리텍대학(PolyU)의 호텔관광경영대학(SHTM)으로부터 ‘2024 SHTM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국내 1세대 호텔리어인 서 회장은 네바다주립대에서 호텔관광경영학을 전공하고 경영대학원(MBA)을 마친 후 1987년 세계 5대 호텔 그룹 중 하나인 프랑스 아코르(ACCOR)와의 제휴를 직접 주도해 앰배서더호텔그룹을 일구었다. 현재까지도 앰배서더호텔그룹은 아코르와의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국내에 소피텔, 풀만, 노보텔 등 전국 7개 도시 26개에 이르는 다양한 아코르 브랜드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호텔경영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문대로 꼽히는 홍콩폴리텍대학은 매년 전 세계적으로 호텔관광산업에 크게 기여하고 탁월한 성과를 거둔 인물을 선정해 ‘SHTM 평생 공로상’을 수여하고 있다. 앞서 아만리조트의 창업주 아드리안 제카, 반얀그룹의 창업주 호권핑, 페닌슐라호텔의 창업주 마이클 카두리, 두짓인터내셔널의 창업주 탄푸잉 챠넛 피야오위 등이 이 상을 수상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호주 상징색 ‘초록과 황금의 10년’이 시작됐습니다. 2032년 제35회 브리즈번 올림픽을 필두로 2027년 럭비 월드컵, 2028년 T20 크리켓 월드컵 같은 대규모 국제 스포츠 이벤트가 호주에서 열립니다.” 20∼23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 최대 관광교역전 ‘ATE24(Australian Tourism Exchange 2024)’에 참석한 돈 패럴 호주 통상관광장관은 “호주는 현재 세계 관광시장에서 가장 크게 성장하는 나라”라며 이렇게 선포했다. 올해 44회째인 ATE24에서는 호주 관광업계 관계자 1500명과 글로벌 여행업체 등 관계자 714명이 5만 건에 이르는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했다. 필리파 해리슨 호주관광청장은 “호주를 방문하는 해외 여행객이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수준의 90% 이상을 회복했다”고 밝혔다. 브렌던 매클레멘츠 빅토리아주 관광청 최고경영자(CEO)는 “ATE24는 빅토리아주의 다양성, 창의성, 포용성 등을 담은 새로운 여행 캠페인 ‘모든 것을 다르게(Every Bit Different)’를 선보이는 글로벌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멜버른이 있는 빅토리아주 방문자의 경제 효과는 지난해 12월 기준 378억 호주달러(약 34조3800억 원)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호주관광연구소는 2028년까지 약 160억 호주달러(약 14조5300억 원) 규모의 추가 성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호주관광청은 ‘2024 여행 트렌드 보고서’에서 경험, 자연, 웰니스, 연결, 여정이라는 5가지 지향을 밀레니얼세대 호주 여행의 주요 트렌드로 꼽았다. 이에 따라 ‘남호주의 맛’ ‘태즈메이니아의 맛’ 같은 미식 여행과 코지우스코 국립공원 야란고빌리 동굴, 머리강 패들보트 크루즈, 아웃백 모험을 비롯한 새 여행상품을 소개했다. ATE24 현장 곳곳에서는 “안녕하세요”라며 한국 관계자들에게 인사하는 호주인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호주관광청에 따르면 올해 호주를 찾은 한국인은 전년 동기 대비 118% 증가해 가장 큰 증가율을 보였다. 2위 인도(103%), 3위 인도네시아(95%), 4위 뉴질랜드(94%) 순이었다. 멜버른=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호주를 상징하는 ‘초록과 황금의 10년(Green & Gold Decade)’이 시작됐습니다. 2032년 제35회 브리즈번 하계올림픽을 필두로 2027년 럭비월드컵, 2028년 T20크리켓 월드컵 등 대규모 국제 스포츠 이벤트가 호주에서 개최됩니다.”지난 20~23일 호주 멜버른에서 호주 최대 관광교역전 ‘ATE24(Australian Tourism Exchange 2024)’이 열렸습니다. 호주와 전세계에서 온 관광업계, 미디어 관계자 등 2200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였습니다.행사에 참석한 돈 패럴 호주 연방 통상·관광장관은 개막식에서 “호주는 현재 전세계 관광시장에서 가장 크게 성장하는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어마어마한 자연환경을 갖춘 호주는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을 앞두고 관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호텔객실을 늘리고, 여행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있습니다.올림픽이 열리는 호주 동부 해안 도시 브리즈번은 멜버른, 시드니에 이어 인구 3위 규모의 도시이고, 올림픽 개최 역시 멜버른(1956년), 시드니(2000년)에 이어 3번째입니다. 퀸즈랜드 주와 브리즈번 시는 2024년까지 3조원 이상을 투자해, 브리즈번 강 주변과 도심을 스마트하게 단장,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성장시킨다는 프로젝트인 ‘퀸즈 워프(Queen Wharf Brisbane)’ 계획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4회째를 맞이한 ATE24에는 1500명의 호주 관광 업계 관계자들이 글로벌 여행업체 714명을 만나 5만 건에 이르는 일대일 비즈니스 미팅이 진행됐습니다. 참석한 글로벌 여행업체 및 기관 602개 중 109개는 올해 처음으로 ATE에 참석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코로나19 앤데믹 이후 호주 관광업계가 전세계 여행업계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는 방증입니다.호주관광청 필리파 해리슨 청장은 “호주를 방문하는 해외여행객 수가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수준에서 90% 이상 회복했다”며 “올해는 관광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해 집중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빅토리아주 관광청 브렌던 맥클레멘츠 최고경영자(CEO)는 “멜번에서 ATE를 개최하게 되어 대단히 기쁘다”며 “빅토리아주의 다양성, 창의성, 포용성 등 면면을 담은 새로운 여행 캠페인 ‘Every bit different’를 선보일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빅토리아주의 방문자 경제 효과는 작년 12월 기준 378억 호주달러(한화 약 34조 3,800억 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호주관광연구소는 2028년까지 약 160억 호주 달러(한화 약 14조 5300억 원) 수준의 추가 성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했습니다.빅토리아주의 멜번은 미식의 도시로 이름이 높은데요. 각 주별 프리젠테이션에서는 빅토리아주는 멜번의 유명 셰프인 알레한드로 사라비아를 초청해 무대 위에서 직접 생선을 굽는 요리를 해 참가자들의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빅토리아주 멜번은 또한 ‘커피의 도시’로도 유명합니다. 박람회장 곳곳에서는 멜번의 유명 커피숍에서 맛볼 수 있는 커피를 직접 내려주는 코너가 마련돼 참가자들이 줄을 서는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호주 관광청은 2024 여행트렌드 보고서에서 △경험 △자연 △웰니스 △연결 △여정 등 5가지 지향을 밀레니얼 세대 호주 여행의 주요 트렌드로 꼽았습니다. 이에 따라 ‘남호주의 맛’ ‘테이스트 옵 태즈매니아’ 등 미식여행과 코지우스코 국립공원의 야란고빌리 동굴, 머레이 강 패들보트 크루즈, 아웃백 모험 등 새로운 여행상품을 소개했습니다.특히 흥미로운 것은 호주의 여행프로그램 중에 점점 더 호주 원주민들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코스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호주의 역사를 200여 년전 영국인들이 도착했을 때가 아니라, 6500년 전 원주민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겠다는 것이죠. 호주의 자연환경에 담긴 설화, 스토리, 문화, 역사를 원주민 후손들이 직접 설명해주고, 원주민들의 전통 악기와 춤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호주가 서양인의 나라가 아니라 태평양의 섬나라 전통을 갖추고 있는 신비로운 나라라는 점을 아시아와 서양 관광객들에게 어필하겠다는 점이죠.ATE24 현장 곳곳에선 ‘안녕하세요’라며 한국 관계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호주 관광청에 따르면 올해 호주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대비 118% 증가율을 기록하며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위인 인도(103%), 3위인 인도네시아 95%, 4위 뉴질랜드(94%)의 증가율과 비교해도 현저히 높습니다.호주 관광청 관계자는 “한국은 호주 관광업계에선 아주 중요한 시장“이라며 ”앞으로도 호주를 더욱 매력적인 여행지로 알리기 위해 다채로운 홍보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했습니다.멜버른=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제가 한국에 살면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가보고는 가볼 곳은 다 가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더 먼 곳에 섬이 있더군요.”11일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열린 한-프랑스 문화 교류 한마당 ‘2024 샴막 예술축제’ 사회를 맡은 프랑스인 이다 도시 숙명여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가 이 섬에 처음 와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신안군은 유인도 73개와 무인도 952개 등 1025개 섬으로 이뤄져 있어 ‘천사(1004)섬’의 고장으로 불린다. 바다에 흩어진 섬들은 하나하나가 천사의 선물이고, 때로는 국제 교류의 현장이기도 했다. 과거 수많은 배들이 표류하다 닿았던 비금도에서는 한국과 프랑스 문화 교류를 기념하는 축제도 열렸다.새가 날아오르는 섬, 비금도절해고도(絕海孤島). 섬은 육지에서 보면 바다에 외롭게 떠 있다. 그러나 바다를 건너 한국을 찾아오는 이방인 시각에서 본다면 섬은 처음 만나는 땅이자 희망의 상징이다. 비행기가 없던 시절, 섬은 배를 타고 찾아오는 이방인과 만나는 국제 해양 교류의 중심지였다.9세기 통일신라 시대 장보고는 청해진을 통해 동북아 해상무역을 장악했고, 고려시대 국제 무역항 개성 벽란도에서 중국과 일본을 오가던 보물선들은 신안 앞바다에서 수없이 좌초했다. 조선 시대 신안 홍어 장수 문순득은 풍랑을 만나 오키나와(류큐), 필리핀(여송)을 표류한 끝에 3년여 만에 중국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왔다. 흑산도에서 유배 중이던 정약전이 문순득의 귀중한 해외 탐방 기록을 정리해 ‘표해시말’이란 책으로 남겨 놓았다.전남 목포 KTX역에서 차를 타고 1시간여. 현수교와 사장교로 이뤄진 천사대교를 건너 암태도 남강선착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페리호를 타고 50분 만에 비금도 가산항에 내리니 커다란 새 동상이 여행객을 반긴다. 비금도(飛禽島)는 하늘에서 보면 날개를 활짝 펼친 큰 새처럼 생겼기 때문에 섬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세운 것이다.드넓은 염전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소금과 섬초(시금치)가 특산물인 비금도에서는 요즘 한창 익어가는 청보리가 바람에 넘실거리고 있었다. 비금도는 섬 전체가 거의 평지인데 남서쪽에 설악산 암봉 몇 개를 떼어놓은 듯한 그림산(226m)과 선왕산(255m)이 우뚝 솟았다.비금도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많은데, 그중 사진 찍기 가장 좋은 곳은 선왕산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하트 해변(하누넘)’이다. 해안선이 영락없이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이 해변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며 인증샷을 남기는 명소다. 원래 이름인 하누넘은 하늬바람(서풍)이 넘어오는 곳이란 뜻이다. 고기잡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하누’를 기다리는 ‘넘이’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도 전설로 내려온다.해변이 총연장 4.2km에 이르는 비금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을 차를 타고 달릴 수 있는 만큼 눈과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다. 이 해변에는 영국의 세계적인 작가 앤터니 곰리의 설치작품이 들어설 예정이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명사십리 해변 인근에 2008년 문을 연 ‘이세돌 바둑기념관’이 있다.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고향인 이곳 입구에는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기록한 역사적인 1승을 재현한 조형물이 있어 눈길을 끈다.샴페인과 막걸리의 만남11일 비금도 이세돌 바둑기념관 앞마당에서는 프랑스 샴페인과 한국 막걸리를 마시는 이색적인 축제가 열렸다. 1851년 비금도에서 난파했던 프랑스 고래잡이 어선 나르발호 선원들이 무사히 구조돼 중국 상하이로 돌아갔던 일을 기념하는 샴막 예술축제였다.당시 조선 조정이 비변사 회의에서 ‘배 두 척을 새로 마련해 이방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라’고 내린 결정문을 가져온 나주목사 일행에게 상하이 주재 프랑스 영사 샤를 드 몽티니가 감사의 뜻으로 내놓은 샴페인과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만찬을 함께 한 것을 재현하는 축제였다.행사장에는 프랑스 주류회사 페르노리카그룹의 프리미엄급 샴페인 ‘멈(Mumm)’과 ‘페리에 주에(Perrier Jouet)’ 그리고 스파클링 막걸리 하얀술, 해창막걸리 등 양국 대표 술을 마실 수 있는 시음장이 설치됐다. 이날 비가 흩뿌렸지만 주한 프랑스대사관 요안 르 탈레크 문정관을 비롯해 하비에르국제학교 제롬 피노 교장, 서울프랑스학교 세드리크 투아롱 교장, 프랑스 파리 시테대 에마뉘엘 후 교수, 프랑스와 신안군 학생 등 700여 명이 참석해 양국 문화와 음식을 즐겼다.이날 샴페인과 막걸리 안주로 가장 인기 있던 음식은 신안의 유명한 ‘1004굴’이었다. 레몬에 곁들여 먹으면 더 잘 어울리는 신안 개체굴은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맛볼 수 있는 개체굴 맛을 기억하는 프랑스인들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로 입맛을 사로잡았다.신안 갯벌은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건강한 갯벌이다. 신안 갯벌에서 사료나 약 처리 없이 환경 친화적인 노출식 양식으로 생산되는 개체굴은 자연산 굴처럼 갯벌 향이 날 정도로 풍미가 좋다. 하비에르국제학교 학부모회가 준비한 프랑스 간식을 맛볼 수 있는 코너도 인기였다.프랑스 국제학교 학생 60여 명 및 신안군 학생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무대에 올라 ‘오! 샹젤리제’ ‘아비뇽 다리 아래에서’ ‘신안 아리랑’을 부르고 소고춤 등을 선보이며 큰 울림을 남겼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판소리를 배우고 있는 마포 로르 씨가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를 프랑스어로 구성지게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극단 갯돌 단원들은 나르발호 난파 사건으로 양국이 화해와 우호를 다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연극을 펼쳤다.이날 하이라이트는 신안 주민들과 프랑스인들이 운동장에서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비금뜀뛰기 강강술래’를 함께 하는 마지막 순서였다. 양국 학생과 주민들은 손에 손을 잡고 큰 원을 둥그렇게 말았다가 풀었다가, 남대문처럼 높이 들어 통과하면서 강강술래의 의미를 만끽했다.12일 자은도 라마다호텔 그랜드볼룸에서는 ‘한불 문화 예술 교류의 광장, 비금도’ 학술대회도 열렸다. 에마뉘엘 후 교수는 주제 강연에서 “조선 후기 신안 앞바다에서는 외국 선박 100척 이상이 침몰하거나 표착(漂着)했다”며 “나르발호 표류 사건 발생 10년 후 비금도 일대에 또 다른 서양 선박이 표착했는데 앞으로 연구가 계속된다면 신안의 섬과 서양의 만남을 더 깊이 있게 조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신안 샴막 예술축제로 예술의 나라 프랑스와 직접적인 교류의 문을 열 수 있게 돼 무척 기쁘다”면서 “비금도를 한국과 프랑스 청년들의 문화 예술 교류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예술섬 아트 크루즈신안 섬들은 일본 나오시마 예술섬 프로젝트처럼 문화예술을 통한 관광객 유치에 한창이다. 세계적인 작가 작품이 설치된 섬을 여행하는 ‘아트 크루즈’를 운항할 계획이다. 우선 비금도 명사십리 바닷가에는 영국의 대표적 설치미술가 곰리 작품이 들어선다. 곰리는 영국 북동부 작은 탄광 도시 게이츠헤드에 철근 220t을 사용해 높이 20m인 ‘북방의 천사’라는 거대 철제 조형물을 세웠다. 이 덕분에 탄광촌이던 게이츠헤드는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명사십리 해변에 세워지는 곰리의 작품은 철근을 신안 명물 소금 결정체처럼 정육면체 모양으로 만들어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다.미국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은 노대도에 화성과 목성에서 나오는 소리를 채집해서 색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수국축제로 유명한 도초도에는 덴마크 출신 세계적 설치미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작품이 들어선다. 도초도 중심에 수국을 형상화한 엘리아손 미술관이 들어서고 주변은 계절마다 다양한 빛깔의 경관 농업을 통해 ‘대지의 미술관’을 형성하게 된다. 안좌도엔 일본 야나기 유키노리가 설계한 물에 떠 있는 ‘플로팅 뮤지엄’이 들어선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제가 한국에 살면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가보고는 가볼 곳은 다 가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더 먼 곳에 섬이 있더군요.” 11일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열린 한-프랑스 문화 교류 한마당 ‘2024 샴막 예술축제’ 사회를 맡은 프랑스인 이다 도시 숙명여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가 이 섬에 처음 와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신안군은 유인도 73개와 무인도 952개 등 1025개 섬으로 이뤄져 있어 ‘천사(1004)섬’의 고장으로 불린다. 바다에 흩어진 섬들은 하나하나가 천사의 선물이고, 때로는 국제 교류의 현장이기도 했다. 과거 수많은 배들이 표류하다 닿았던 비금도에서는 한국과 프랑스 문화 교류를 기념하는 축제도 열렸다.● 새가 날아오르는 섬, 비금도 절해고도(絕海孤島). 섬은 육지에서 보면 바다에 외롭게 떠 있다. 그러나 바다를 건너 한국을 찾아오는 이방인 시각에서 본다면 섬은 처음 만나는 땅이자 희망의 상징이다. 비행기가 없던 시절, 섬은 배를 타고 찾아오는 이방인과 만나는 국제 해양 교류의 중심지였다. 9세기 통일신라 시대 장보고는 청해진을 통해 동북아 해상무역을 장악했고, 고려시대 국제 무역항 개성 벽란도에서 중국과 일본을 오가던 보물선들은 신안 앞바다에서 수없이 좌초했다. 조선 시대 신안 홍어 장수 문순득은 풍랑을 만나 오키나와(류큐), 필리핀(여송)을 표류한 끝에 3년여 만에 중국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왔다. 흑산도에서 유배 중이던 정약전이 문순득의 귀중한 해외 탐방 기록을 정리해 ‘표해시말’이란 책으로 남겨 놓았다. 전남 목포 KTX역에서 차를 타고 1시간여. 현수교와 사장교로 이뤄진 천사대교를 건너 암태도 남강선착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페리호를 타고 50분 만에 비금도 가산항에 내리니 커다란 새 동상이 여행객을 반긴다. 비금도(飛禽島)는 하늘에서 보면 날개를 활짝 펼친 큰 새처럼 생겼기 때문에 섬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세운 것이다. 드넓은 염전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소금과 섬초(시금치)가 특산물인 비금도에서는 요즘 한창 익어가는 청보리가 바람에 넘실거리고 있었다. 비금도는 섬 전체가 거의 평지인데 남서쪽에 설악산 암봉 몇 개를 떼어놓은 듯한 그림산(226m)과 선왕산(255m)이 우뚝 솟았다. 비금도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많은데, 그중 사진 찍기 가장 좋은 곳은 선왕산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하트 해변(하누넘)’이다. 해안선이 영락없이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이 해변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며 인증샷을 남기는 명소다. 원래 이름인 하누넘은 하늬바람(서풍)이 넘어오는 곳이란 뜻이다. 고기잡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하누’를 기다리는 ‘넘이’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도 전설로 내려온다. 해변이 총연장 4.2km에 이르는 비금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을 차를 타고 달릴 수 있는 만큼 눈과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다. 이 해변에는 영국의 세계적인 작가 앤터니 곰리의 설치작품이 들어설 예정이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명사십리 해변 인근에 2008년 문을 연 ‘이세돌 바둑기념관’이 있다.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고향인 이곳 입구에는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기록한 역사적인 1승을 재현한 조형물이 있어 눈길을 끈다.● 샴페인과 막걸리의 만남 11일 비금도 이세돌 바둑기념관 앞마당에서는 프랑스 샴페인과 한국 막걸리를 마시는 이색적인 축제가 열렸다. 1851년 비금도에서 난파했던 프랑스 고래잡이 어선 나르발호 선원들이 무사히 구조돼 중국 상하이로 돌아갔던 일을 기념하는 샴막 예술축제였다. 샴막은 샴페인과 막걸리 앞글자를 각각 딴 것이다. 당시 조선 조정이 비변사 회의에서 ‘배 두 척을 새로 마련해 이방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라’고 내린 결정문을 가져온 나주목사 일행에게 상하이 주재 프랑스 영사 샤를 드 몽티니가 감사의 뜻으로 내놓은 샴페인과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만찬을 함께 한 것을 재현하는 축제였다. 행사장에는 프랑스 주류회사 페르노리카그룹의 프리미엄급 샴페인 ‘멈(Mumm)’과 ‘페리에 주에(Perrier Jouet)’ 그리고 스파클링 막걸리 하얀술, 해창막걸리 등 양국 대표 술을 마실 수 있는 시음장이 설치됐다. 이날 비가 흩뿌렸지만 주한 프랑스대사관 요안 르 탈레크 문정관을 비롯해 하비에르국제학교 제롬 피노 교장, 서울프랑스학교 세드리크 투아롱 교장, 프랑스 파리 시테대 에마뉘엘 후 교수, 프랑스와 신안군 학생 등 700여 명이 참석해 양국 문화와 음식을 즐겼다. 이날 샴페인과 막걸리 안주로 가장 인기 있던 음식은 신안의 유명한 ‘1004굴’이었다. 레몬에 곁들여 먹으면 더 잘 어울리는 신안 개체굴은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맛볼 수 있는 개체굴 맛을 기억하는 프랑스인들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로 입맛을 사로잡았다. 신안 갯벌은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건강한 갯벌이다. 신안 갯벌에서 사료나 약 처리 없이 환경 친화적인 노출식 양식으로 생산되는 개체굴은 자연산 굴처럼 갯벌 향이 날 정도로 풍미가 좋다. 하비에르국제학교 학부모회가 준비한 프랑스 간식을 맛볼 수 있는 코너도 인기였다. 프랑스 국제학교 학생 60여 명 및 신안군 학생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무대에 올라 ‘오! 샹젤리제’ ‘아비뇽 다리 위에서’ ‘신안 아리랑’을 부르고 소고춤 등을 선보이며 큰 울림을 남겼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판소리를 배우고 있는 마포 로르 씨가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를 프랑스어로 구성지게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극단 갯돌 단원들은 나르발호 난파 사건으로 양국이 화해와 우호를 다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연극을 펼쳤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신안 주민들과 프랑스인들이 운동장에서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비금뜀뛰기 강강술래’를 함께 하는 마지막 순서였다. 양국 학생과 주민들은 손에 손을 잡고 큰 원을 둥그렇게 말았다가 풀었다가, 남대문처럼 높이 들어 통과하면서 강강술래의 의미를 만끽했다. 12일 자은도 라마다호텔 그랜드볼룸에서는 ‘한불 문화 예술 교류의 광장, 비금도’ 학술대회도 열렸다. 에마뉘엘 후 교수는 주제 강연에서 “조선 후기 신안 앞바다에서는 외국 선박 100척 이상이 침몰하거나 표착(漂着)했다”며 “나르발호 표류 사건 발생 10년 후 비금도 일대에 또 다른 서양 선박이 표착했는데 앞으로 연구가 계속된다면 신안의 섬과 서양의 만남을 더 깊이 있게 조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신안 샴막 예술축제로 예술의 나라 프랑스와 직접적인 교류의 문을 열 수 있게 돼 무척 기쁘다”면서 “비금도를 한국과 프랑스 청년들의 문화 예술 교류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예술섬 ‘아트 크루즈’가 기다린다 신안 섬들은 일본 나오시마 예술섬 프로젝트처럼 문화예술을 통한 관광객 유치에 한창이다. 세계적인 작가 작품이 설치된 섬을 여행하는 ‘아트 크루즈’를 운항할 계획이다. 우선 비금도 명사십리 바닷가에는 영국의 대표적 설치미술가 곰리 작품이 들어선다. 곰리는 영국 북동부 작은 탄광 도시 게이츠헤드에 철근 220t을 사용해 높이 20m인 ‘북방의 천사’라는 거대 철제 조형물을 세웠다. 이 덕분에 탄광촌이던 게이츠헤드는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명사십리 해변에 세워지는 곰리의 작품은 철근을 신안 명물 소금 결정체처럼 정육면체 모양으로 만들어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미국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은 노대도에 화성과 목성에서 나오는 소리를 채집해서 색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수국축제로 유명한 도초도에는 덴마크 출신 세계적 설치미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작품이 들어선다. 도초도 중심에 수국을 형상화한 엘리아손 미술관이 들어서고 주변은 계절마다 다양한 빛깔의 경관 농업을 통해 ‘대지의 미술관’을 형성하게 된다. 안좌도엔 일본 야나기 유키노리가 설계한 물에 떠 있는 ‘플로팅 뮤지엄’이 들어선다.글·사진 신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올드타운에서 불과 50km 떨어진 곳에는 멕시코와의 국경이있다. 국경을 넘으면 멕시코 티후아나다. 그래서 샌디에이고 사람들은 국경너머 멕시코로 놀러가고, 멕시코 사람들은 샌디에이고로 출퇴근도 하고 동물원이나 사파리, 씨월드를 구경오기도 한다. 그래서 샌디에이고는 멕시코 영향을 받은 문화와 음식이 다양하게 발전했다. 지난달 서울에서 메이저리그(MLB) 야구 개막전을 펼쳤던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응원 캐릭터는 정수리가 벗겨진 가톨릭 수도승 모습이다. 이것은 샌디에이고라는 이름이 15세기 스페인 예수회 신부였던 성 디다코(Didacus)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파드레스(Padres)는 스페인어로 아버지(father)란 뜻인데, 가톨릭에서는 신부( 神父)를 뜻하는 말이다. 결국 샌디에이고 파드레서는 ‘성(聖) 디에고 신부님’이라는 뜻인 셈이다. 파드레스 구단 기념품 매장에서는 수도승복을 입고 야구 하는 신부 캐릭터 인기가 높다. 원래 샌디에이고를 비롯해 캘리포니아는 멕시코 땅이었기 때문에 타코나 나초 등 멕시코 음식을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홈구장 펫코파크 투어샌디에이고 파드레스 홈구장인 ‘펫코파크(Petco Park)’는 올드타운 한복판에 있다. 도심에서 가까워 메이저리그 야구장 중 접근성과 시설 면에서 1위로 뽑힌 구장이다. 샌디에이고 시내 곳곳에서는 ‘하성 킴’의 얼굴이 플래카드로 걸려 있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원래 샌디에이고만 해변가에 있었는데 20년 전에 현재의 자리에 최신 시설로 다시 지었다. 건립 20주년을 맞은 펫코 파크는 경기가 없는 낮부터 구장을 둘러보는 사람들로 붐빈다. 구장 투어는 경기장 외야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빨간 벽돌 건물에서 표를 끊고 입장한다. ‘웨스턴 메탈 서플라이 컴퍼니(Western Metal Supply Co)’라고 쓰인 이 건물은 1909년 지어진 철강 회사 공장이었는데 펫코파크를 지을 때 헐지 않고 경기장 일부가 됐다. 최신식으로 지어진 야구장이지만 오래된 빨간 벽돌 건물을 그대로 살림으로써 샌디에이고가 전통있는 팀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건물 한쪽 벽 모서리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어 홈런과 파울을 가르는 좌측 펜스 기둥으로 쓰인다. 오래된 건물을 부수지 않고 철제로 보강한 후 역사적인 유적을 그대로 살린 인테리어에서 전통을 중시하고, 보존하는 메이저리그의 문화를 알 수 있었다.이 건물에는 관람객이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바가 있고 연간 입장권(1만5000~5만 달러)을 구입한 VIP 관람객용 클럽하우스도 있다. VIP 클럽하우스에서는 선팅한 유리창 너머로 불펜투수들이 등판을 준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돈에 따라 서비스가 달라지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야구장 곳곳에는 ‘미스터 파드레스(Mr. Padres)’로 불렸던 토니 그윈(19번), 트레버 호프만(51번) 등 명예의 전당에 올라 영구 결번된 선수들의 글러브와 배트, 트로피 등이 전시돼 있다.샌디에이고 파드레스 디렉터인 첼시 딜 씨는 “하성 킴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선수”라며 “공격과 수비에서도 너무 잘하고, 열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성 킴의 얼굴이 새겨진 배지를 기념품으로 선물해주기도 했다.미식의 도시, 샌디에이고샌디에이고에서는 한식, 일식 같은 아시아 음식까지 다양하게 퓨전으로 즐길 수 있다. ‘클록 앤 페탈(Cloak & Petal)’은 일식과 한식 요리를 내놓는 동양 퓨전 레스토랑이다. 화려한 벚꽃과 복숭아꽃으로 장식된 실내에는 젊은 힙스터가 넘쳐난다. 미국식 초밥인 캘리포니아롤 말고도 갈비와 삼겹살, 한국식 치킨도 있다. 셰프 로버트 카씨디 씨는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아버지는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다고 자기 가족을 소개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모든 요리는 어머니에게 배웠다”며 “샌디에이고는 멕시코 한국 일본 같은 다양한 음식 문화에 열려 있어 요리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얻을 수 있는 도시”라고 말했다.‘푸에스토 인 헤드쿼터’는 오렌지색 파라솔 아래에서 정통 멕시코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치킨과 랍스터, 새우, 생선(바하) 등이 들어간 다양한 타코와 패션프루트와 망고, 새우가 들어간 샐러드도 눈길을 끈다. 음료로는 멕시코에서 탄생한 칵테일인 ‘팔로마(Paloma)’가 대표 메뉴다. 데킬라 베이스로 하며, 자몽이 어울러진 롱 드링크 칵테일이다. 술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알콜 성분을 뺀 ‘목테일(Mocktail)’을 시킬 수 있다. 펫코파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올드 타운에 있는 마르가리타빌 호텔 샌디에이고는 로비에서 복도, 객실까지 모두 멕시코풍으로 꾸몄다. 멕시코 유명 화가 프리다 칼로가 그린 짙은 눈썹의 자화상, 밀집으로 짠 모자와 접시, 원색으로 그린 앵무새 같은 인테리어 소품이 가득하다. 이 호텔 바 ‘랜드 샤크(Land Shark)’에서는 타코와 나초, 과카몰, 데킬라 같은 멕시코 음식과 술이 주메뉴다. 왜 이름이 ‘육지 상어’일까? 이 호텔 관계자는 “바에 죽치고 앉아 여성들을 호시탐탐 쳐다보는 상어 같은 남자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귀뜸했다. 샌디에이고=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는 우리에겐 김하성 선수가 뛰고 있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MLB) 구단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친숙한 도시다. 연중 온화한 날씨에 야자수가 우거져 있고 해변엔 물개와 바다사자가 뛰노는 남국(南國)의 정취가 가득하다. 멕시코 국경과 맞닿아 있는 국경도시이자, 톰 크루즈 주연 영화 ‘탑건(Top Gun)’ 1, 2편의 배경이 된 도시이기도 하다. 미식과 문화예술 도시로 미국인에게 손꼽히는 휴양지로 떠나 봤다.● 라호야 코브 바다사자항구도시 샌디에이고는 미국에서 여덟 번째,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4~7일(현지 시간)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여행박람회 ‘IPW2024’에 참석한 길에 렌터카를 빌려 인근 도시 샌디에이고로 향했다. 서부 해안선을 따라 시원스럽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샌디에이고 도심까지 가려면 약 30분 남았지만, 태평양으로 지는 일몰을 보기 위해 라호야 코브(la Jolla Cove·라호야곶)로 차를 몰았다.일몰 예정시간은 오후 7시 반. 15분 정도 남았다. 차창 밖으로 붉은 해가 바다 위 구름 근처에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다행히 주차장 한 칸이 비어 있었다. 차를 세우고 나오니 맞은편 해안가 절벽 위 야자수 실루엣 사이에 붉은 태양이 걸려 있다. 티셔츠에서만 보던 남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주변을 둘러보니 망원렌즈 달린 일명 ‘대포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많았다. 보통 관광객들은 노을 찍을 때 휴대폰으로 찍는데, 망원렌즈는 왜지?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해변 바위 위에 수천 개의 검은 점이 보였다. 해변에 웬 사람들이 저리 많지? 하고 생각한 순간, 자세히 보니 바닷새들이었다. 절벽 틈새 곳곳에 둥지를 튼 어미 새들은 솜털 보송보송한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느라 분주했다. 새뿐만 아니었다. 컹컹대며 우는 소리를 따라가 렌즈를 확대해보니 해안가 바위 위에는 바다사자와 물개 들도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황갈색 바다사자들은 파도 부딪는 바위가 따뜻한 양철지붕이라도 되는 양 고양이처럼 세상 편한 얼굴로 뒹굴며 자고 있다. 반면 검은빛 물개들은 강아지처럼 컹컹거리며 왔다 갔다 바쁘다. 물속에서 나온 물개 한 마리가 컹컹 짖으며 해안가 동굴에서 잠자고 있는 친구에게 함께 놀자고 하는지 떼를 쓴다. 친구 물개는 귀찮은 표정으로 이빨과 수염을 드러낸 채 힘겨루기를 하며 해 질 녘을 보낸다.여기는 캘리포니아주가 해양생태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곳. ‘낚시, 수영, 선박운행 절대 금지’ 경고문이 적혀 있다. 또한 해안가에 사는 동물과 식물에 가까이 가거나 채취를 하는 일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또 다른 안내문에는 ‘물개와 바다사자가 왜 여기 있을까’ 같은 궁금증에 대한 해설도 있다. 수중에서 먹이 활동을 하다 하루에 7~8시간은 바닷가 바위에서 몸을 말리며 체온 조절을 해야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샌디에이고는 세계 최대 규모 동물원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 ‘쥬라기 공원’에 영감을 준 사파리, 범고래와 벨루가를 볼 수 있는 ‘씨월드’ 같은 동물원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동물원이 아닌 자동차 도로 아래 해안가에서도 물개와 바닷새를 볼 수 있다니…. 일몰을 찍으러 갔다가 자연 다큐멘터리 한 편을 찍은 기분이랄까.시내 곳곳 ‘하성 킴’ 얼굴샌디에이고만(灣)을 끼고 있는 올드타운에 짐을 풀고 본격적인 도시 여행에 나섰다. 항구 주변 마리나 구역은 대규모 컨벤션센터와 고층 빌딩이 가득한 모습이 해운대와 비슷하다. 시포트빌리지, 리틀 이탈리아, 가스램프쿼터 같은 맛집이 몰려 있는 핫플레이스가 많다. 도심 곳곳에는 김하성 선수 얼굴이 현수막으로 곳곳에 걸려 있다.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매니 마차도 등과 함께 파드리스를 대표하는 스타 얼굴을 새겨넣은 것이다. 샌디에이고 사람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모두 “아이 러브 하성 킴! 하성 킴!”을 외쳐댔다.시포트 옆 마리나 공원 산책로를 걷다 보면 커다란 소라 모양 건축물이 눈에 띈다. 샌디에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운영하는 ‘래디 쉘(Rady Shell)’ 콘서트홀이다.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샌디에이고 밤 풍경을 붉고 푸른 조명으로 물들인다. 옆에서 보면 동굴처럼 깊어지는 모양이 영락없이 소라인데, 앞에서 보면 입을 벌리고 먹이를 먹으려는 고래상어같은 모양이다. 이 곳에서는 클래식부터 팝음악까지 다양한 콘서트가 열리는데, 잔디밭에 객석을 2000석~2만석까지 놓을 수 있다고 한다. 시포트빌리지의 또 다른 명소는 ‘USS 미드웨이박물관’. 2022년 영화 ‘탑건 2: 매버릭’이 개봉할 당시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시사회에 톰 크루즈는 헬기를 타고 퇴역 항공모함 미드웨이호 갑판에 착륙하며 영화 속 모습처럼 등장했다. 미드웨이호는 1945년부터 1992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걸프전에서 활약한 항공모함. 2004년 개조해 미 해군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관광객들은 갑판을 거닐며, 위풍당당하게 도열한 전투기와 헬기, 폭격기 등을 볼 수 있다.미 해군기지가 몰려 있는 샌디에이고는 탑건 1, 2편의 주요 촬영지다. 톰 크루즈가 전투기 조종사 교관으로 나오는 미 해군 비행장 ‘파이터 타운(Fighter Town)’이 샌디에이고에 있기 때문이다. 미션퍼시픽호텔에는 영화 속 ‘탑건 하우스’도 복원돼 있다. 1887년 지어진 고전적 스타일의 이 건물은 해변 별장으로 쓰인 방갈로였는데 톱건 1편에서 여주인공 켈리 맥길리스(찰리 역)가 살던 집으로 나왔다. 영화에서 톰 크루즈가 오토바이를 타고 이 집에 가서 훈련 프로그램을 놓고 격하게 토론하면서 러브스토리 서막이 열린다. 탑건 하우스 앞에는 톰 크루즈가 타던 기종의 오토바이를 놓아둬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게 했다.캘리포니아 박람회 전시장을 미술관으로 샌디에이고는 예술로도 도심을 활성화해왔다. 대표적인 곳이 뉴욕 센트럴파크보다 큰 490헥타아르(ha) 규모의 발보아파크다.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유럽에 온 듯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분수대가 관람객을 맞는다. 직사각형의 최첨단 빌딩이 가득한 미국의 다른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저녁 노을에 비쳐 황금색으로 빛나는 발보아 파크의 건축물은 둥근 돔과 탑, 화려한 조각상과 문양으로 장식돼 있다. 연못에 비친 스페인풍 건축물과 야자수와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공원 안에는 17개 미술관, 7개 공연장, 18개 정원과 과학관, 음악홀, 동물원까지 있어 하루에 다 둘러보기 힘들 정도다. 발보아파크 건축물은 1915년 중앙아메리카를 관통하는 파나마운하 개통 기념 캘리포니아 박람회 당시 전시장으로 쓰였던 역사적 유물이다. 프랑스 파리에도 에펠탑과 그랑팔레, 프티팔레 등 20세기 초에 열렸던 만국박람회 당시 지어졌던 건축물이 도시의 상징물처럼 남아 있듯이, 발보아 파크도 마찬가지다. 박람회 건물을 일회용 가건물로 짓지 않고, 멋진 건축물로 만들어 대대손손 문화유산으로 보존해 온 지혜가 부럽기만 하다.샌디에이고는 박람회에서의 대규모 유럽회화, 스페인 미술전시를 통해 해양도시, 산업도시가 아닌 문화도시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박람회 이후 1926년 처음 문을 연 것이 샌디에이고미술관(SDMA)이다. 화려한 외관의 건물에 들어가면 엘 그레코와 고야의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바로크 미술, 인상주의, 근현대미술 작품과 사진까지 약 2만 점의 소장품이 있다. 지하에는 한국 도자기와 불상, 소반 등을 전시하는 전시실도 있다. 건축물 사이에는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이 정원으로 꾸며져 있어 산책의 즐거움을 준다. 그중 영화 ‘아바타’에 나올 법한 거대한 반얀트리의 실타래 같은 가지와 뿌리는 장엄한 느낌을 준다.샌디에이고=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는 우리에겐 김하성 선수가 뛰고 있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MLB) 구단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친숙한 도시다. 연중 온화한 날씨에 야자수가 우거져 있고 해변엔 물개와 바다사자가 뛰노는 남국(南國) 정취가 가득하다. 멕시코 국경과 맞닿아 있는 국경도시이자, 톰 크루즈 주연 영화 ‘탑건(Top Gun)’의 배경이 된 도시이기도 하다. 미식과 문화예술 도시로 미국인에게 손꼽히는 휴양지로 떠나 봤다. ● 라호이아 코브 바다사자 항구도시 샌디에이고는 미국에서 여덟 번째,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4∼7일(현지 시간)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여행박람회 ‘IPW 2024’에 참석한 길에 렌터카를 빌려 인근 도시 샌디에이고로 향했다. 서부 해안선을 따라 시원스럽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샌디에이고 도심까지 가려면 약 30분 남았지만, 태평양으로 지는 일몰을 보기 위해 라호이아 코브(la Jolla Cove·라호이아곶)로 차를 몰았다. 일몰 예정 시간은 오후 7시 반. 15분 정도 남았다. 차창 밖으로 붉은 해가 바다 위 구름 근처에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오니 맞은편 해안가 절벽 위 야자수 실루엣 사이에 붉은 태양이 걸려 있다. 티셔츠에서만 보던 남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망원렌즈 달린 일명 ‘대포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무얼 찍고 있는지 봤더니 해변 바위 위에 수천 개의 검은 점이 보였다. 바닷새들이었다. 절벽 틈새 곳곳에 둥지를 튼 어미 새들은 솜털 보송보송한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느라 분주했다. 새뿐만 아니었다. 컹컹대며 우는 소리를 따라가 렌즈를 확대해 보니 바다사자와 물개 들도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바다사자들은 파도 부딪는 바위가 따뜻한 양철 지붕이라도 되는 양 고양이처럼 세상 편한 얼굴로 뒹굴며 자고 있다. 반면 물개들은 강아지처럼 컹컹거리며 왔다 갔다 바쁘다. 물속에서 나온 물개들이 해안가 동굴 앞에서 이빨과 수염을 드러낸 채 힘겨루기를 하며 해 질 녘을 보낸다. 여기는 캘리포니아주가 해양생태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곳. ‘낚시, 수영, 선박운행 절대 금지’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다. 또 다른 안내문에는 ‘물개와 바다사자가 왜 여기 있을까’ 같은 궁금증에 대한 해설도 있다. 수중에서 먹이 활동을 하다 하루에 7∼8시간은 바닷가 바위에서 몸을 말리며 체온 조절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샌디에이고는 세계 최대 규모 동물원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 공원’에 영감을 준 사파리, 범고래와 벨루가를 볼 수 있는 ‘시월드’ 같은 동물원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동물원이 아닌 자동차도로 아래 해안가에서도 물개와 바닷새를 볼 수 있다니…. 일몰을 찍으러 갔다가 자연 다큐멘터리 한 편을 찍은 기분이랄까.● 시내 곳곳 ‘하성 킴’ 얼굴 샌디에이고만(灣)을 끼고 있는 올드타운에 짐을 풀고 본격적인 도시 여행에 나섰다. 항구 주변 마리나 구역은 대규모 컨벤션센터와 고층 빌딩이 가득한 모습이 부산 해운대와 비슷하다. 시포트빌리지, 리틀 이탈리아, 가스램프쿼터 같은 핫플레이스가 많다. 도심 곳곳에는 김하성 선수 얼굴이 현수막으로 곳곳에 걸려 있다.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매니 마차도 등과 함께 파드리스를 대표하는 스타 얼굴을 새겨넣은 것이다. 샌디에이고 사람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모두 “아이 러브 하성 킴! 하성 킴!”을 외쳐댔다. 시포트 옆 마리나 공원 산책로를 걷다 보면 커다란 소라 모양 건축물이 눈에 띈다. 샌디에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운영하는 ‘래디 셸(Rady Shell)’ 콘서트홀이다.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샌디에이고 밤 풍경을 붉고 푸른 조명으로 물들인다. 시포트빌리지의 또 다른 명소는 ‘USS 미드웨이 박물관’. 2022년 영화 ‘탑건 2: 매버릭’이 개봉할 당시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시사회에 톰 크루즈는 헬기를 타고 퇴역 항공모함 미드웨이함 갑판에 착륙하며 영화 속 모습처럼 등장했다. 미드웨이함은 1945년부터 1992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걸프전에서 활약한 항공모함. 2004년 개조해 미 해군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관광객들은 갑판을 거닐며, 위풍당당하게 도열한 전투기와 헬기, 폭격기 등을 볼 수 있다. 미 해군기지가 몰려 있는 샌디에이고는 탑건 1, 2편의 주요 촬영지다. 톰 크루즈가 전투기 조종사 교관으로 나오는 미 해군 비행장 ‘파이터 타운(Fighter Town)’이 샌디에이고에 있기 때문이다. 미션퍼시픽호텔에는 영화 속 ‘탑건하우스’도 복원돼 있다. 1887년 지어진 고전적 스타일의 이 건물은 해변 별장으로 쓰인 방갈로였는데 탑건 1편에서 여주인공 켈리 맥길리스(찰리 역)가 살던 집으로 나왔다. 영화에서 톰 크루즈가 오토바이를 타고 이 집에 가서 훈련 프로그램을 놓고 격하게 토론하면서 러브스토리 서막이 열린다. 탑건하우스 앞에는 톰 크루즈가 타던 기종의 오토바이를 놓아둬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게 했다. 샌디에이고는 예술로도 도심을 활성화해 왔다. 대표적인 곳이 뉴욕 센트럴 파크보다 큰 490ha 규모의 발보아 파크다. 유럽에 온 듯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야자수와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선사한다. 공원 안에는 17개 미술관, 7개 공연장, 18개 정원과 과학관, 음악홀, 동물원까지 하루에 다 둘러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시설들이 있다. 발보아 파크의 건축물은 1915년 중앙아메리카를 관통하는 파나마운하 개통 기념 캘리포니아 박람회 당시 전시장으로 쓰였던 역사적 유물이다. 1926년 처음 문을 연 샌디에이고 미술관(SDMA)에는 엘 그레코와 고야의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바로크 미술, 인상주의, 근현대 미술 작품과 사진까지 약 2만 점의 소장품이 있고 한국 도자기와 불상도 전시하고 있다.● 멕시코풍 이국의 정취 물씬 올드타운에서 불과 50km 떨어진 국경을 넘으면 멕시코 티후아나다. 캘리포니아는 원래 멕시코 땅이었다. 파드리스 응원 캐릭터가 정수리가 벗겨진 가톨릭 신부 모습인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파드리스라는 이름은 15세기 스페인 예수회 소속 성 디다쿠스(Didacus) 신부(Padres)에서 따왔다. 구단 기념품 매장에서는 수도승복을 입고 야구 하는 신부 캐릭터도 인기다. 올드타운 한복판에 있는 파드리스 홈구장 펫코파크(Petco Park)는 메이저리그 30개 야구장 중 접근성과 시설 면에서 1위로 뽑힌 구장이다. 올해 건립 20주년을 맞은 펫코파크는 경기가 없는 낮부터 구장을 둘러보는 사람들로 붐빈다. 구장 투어는 경기장 외야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빨간 벽돌 건물에서 표를 끊고 입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벽 맨 위에 ‘Western Metal Supply Co’라고 쓰인 이 건물은 1909년 지어진 철강회사였는데, 펫코파크를 지을 때 헐지 않고 경기장 일부가 됐다. 건물 한쪽 벽 모서리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어 홈런과 파울을 가르는 좌측 펜스 기둥으로 쓰인다. 이 건물에는 연간 입장권을 구입한 VIP 관람객용 클럽하우스가 있다. 이곳에서는 선팅한 유리창 너머 불펜투수들이 등판을 준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펫코파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마르가리타빌 호텔 샌디에이고는 로비에서 복도, 객실까지 모두 멕시코풍이다. 멕시코 유명 화가 프리다 칼로가 그린 짙은 눈썹의 자화상, 밀짚으로 짠 모자와 접시, 원색으로 그린 앵무새 같은 인테리어 소품이 가득하다. 샌디에이고에서는 ‘푸에스토’ 같은 정통 멕시코 음식점뿐 아니라 아시아 음식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미식이 발달했다. 리틀 이탈리아 거리의 ‘클록 앤드 페탈’은 오리엔탈 퓨전 레스토랑이다. 화려한 벚꽃과 복숭아꽃으로 장식된 실내에는 젊은 힙스터가 넘쳐난다. 미국식 초밥인 캘리포니아롤에 곁들이는 메뉴로 갈비와 삼겹살, 한국식 치킨도 인기다. 이 식당 한국계 셰프 로버트 카시디 씨는 “국경도시 샌디에이고는 다양한 인종과 음식문화에 개방적이어서 요리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도시”라고 말했다.글·사진 샌디에이고=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여행은 인종과 국경을 넘어 상대방 문화와 정치, 경제를 알아가는 인류 문명의 가장 독특한 특징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여행산업 회복은 글로벌 경제 측면에서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크리스 톰슨 미국관광청·브랜드USA 대표) 미국 최대 규모 인바운드(외국인 국내 관광) 여행박람회 ‘IPW(International Pow Wow) 2024’가 4∼7일(현지 시간) 로스앤젤레스(LA)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대표적인 관광도시 LA에서 12년 만에 열린 IPW에는 세계 70개국 여행 바이어와 언론인 등 1700여 명을 비롯해 각국을 대표하는 여행 관련 종사자 5700여 명이 참가했다. 제프 프리먼 미국여행협회 회장은 “올해 박람회 참석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2019년 수준을 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또 이번 IPW를 통해 향후 미국 관광산업에서 55억 달러 이상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IPW 2024 기간 각국에서 온 바이어와 미 전역에서 참가한 여행사 관계자 간의 비즈니스 미팅이 10만여 건 진행됐다. 톰슨 대표는 5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장거리 여행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을 찾은 외국인은 6700만 명으로 2022년에 비해 28% 증가했다. 특히 인도 출신 미국 방문객은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수치를 훌쩍 넘어섰고 호주 브라질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출신 방문객도 내년에는 2019년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브랜드USA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은 브라질 캐나다 중국 일본 멕시코인들이 선호하는 여행지 1위를 차지했다. 특히 팬데믹 이후 미국 방문 의향이 급증한 중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증가하면서 올 3월 전체 외국인 방문객의 55%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해 LA를 방문한 외국인 등은 모두 4910만 명으로 2019년 수준의 97%를 회복했다. 애덤 버크 LA관광청장은 “관광은 LA에 없어서는 안 될 ‘경제 동력’으로 주민 고용 창출 효과가 일자리 53만 개를 넘고 있다”며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2028년 올림픽을 비롯해 향후 3∼4년 동안 LA에서 잇따라 열리는 글로벌 이벤트를 활용해 관광 중심 도시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IPW 2024의 주요 행사는 LA 컨벤션센터를 비롯해 게티센터, LA 메모리얼 콜로세움, 샌타모니카 피어, 유니버설스튜디오, 할리우드 등 도시 전역에서 열렸다. LA 인근 지역 여행 상품을 체험할 수 있는 포스트 투어도 진행됐다.로스앤젤레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