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김소영 기자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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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사회부 복지팀 기자입니다. 몸 또는 마음이 아프거나 여러 이유로 차별받는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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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교육87%
사회일반10%
노동3%
  • 사과, 사과… 최교진, 음주운전 등 논란 ‘소나기 피하기’ 청문회

    “음모론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 일로 상처를 받으신 분이 계신다면 사과드린다.” 최교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2일 국회 교육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천안함 음모론 관련 게시물을 올린 것에 대해 “국가에서 최종적으로 내린 공식적인 입장을 신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고개를 숙였다. 음주운전 전과와 부산 비하 발언, 조국혁신당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 옹호 발언 등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10여 차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과거 행적의 구체적 경위를 묻는 질문엔 “토론해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거나 “내가 쓴 글이 아니다”라는 등의 해명으로 일관하면서 야권에선 “‘영혼 없는 사과’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崔 “천안함 음모론, 토론해볼 가치 있다 생각” 이날 인사청문회에선 최 후보자가 2013년 자신의 SNS에 천안함 폭침 사건은 북한이 쏜 어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 잠수함에 충돌해 좌초한 것이란 주장을 담은 글을 공유한 것이 논란이 됐다. 당시 최 후보자가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 천안함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천안함 음모론을 다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개봉 소식을 공유하며 “반드시 보겠다”고 한 점도 문제가 됐다.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이 이 같은 사실을 지적하자 최 후보자는 “피해받은 희생자들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거듭 사과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입장이 달라진 것이냐는 김 의원의 질문엔 “그때의 제 입장은 음모론이 아니었다”면서 “(정부 공식 발표에) 문제 제기하는 의견을 함께 검토하거나 토론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야당은 최 후보자가 17차례 북한을 다녀온 점 등을 지적하며 “전형적인 친북좌파 인사”(서지영 의원)라고 공세를 폈다. 최 후보자는 서면질의에서 대한민국의 주적이 어디냐는 질문에 북한을 언급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위협이 되는 존재는 적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포괄적으로 답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청문회에선 “북한 정권, 북한군은 대한민국의 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 색깔론을 펼치고 있다”며 엄호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김문수 의원이 “무능하게 우리나라 해군이 아무 대응도 못 하고 청년들이 그냥 몰살을 당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김 의원은 북한 어뢰에 공격을 당한 천안함에 대해 “어디서 북한이 미사일을 쏜지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어디 반격 하나도 못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원일 전 천안함장은 페이스북에 “미사일과 어뢰는 같은 이름이 아니다”라며 “처벌은 야비하게 기습한 북한이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신 사과했지만… 사퇴 요구엔 즉답 피해야당은 최 후보자가 2003년 혈중알코올농도 0.187%의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 적발돼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은 것에 대해서도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최 후보자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고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이 과거 야당이던 민주당이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 장관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요구했던 점을 들며 “후보자에게 사퇴하라, 대통령에게 지명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게 무리한 것인가”라고 묻자 최 후보자는 “제가 답변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피해 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2012년 18대 대선 직후 “여전히 부끄러운 부산”이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도 논란이 됐다. 최 후보자는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도 “제가 직접 작성한 글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해서 그냥 공유했다”고 해명했다. 조 원장 가족 수사를 일컬어 “검찰의 칼춤”이라 표현했던 것도 사과했지만 “(직접 쓴 게 아니라) 옹호하는 글에 동의한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한편 최 후보자는 영어 조기교육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해도 충분히 국제적으로 따라갈 수 있다”고 말했고, 고교학점제에 대해선 “취소할 일은 절대 아니다”라고 밝혔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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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거북이 의혹’ 이배용 국가교육위장 사퇴… 특검, ‘김건희 매관매직’ 논란 李 소환 방침

    금거북이 청탁 의혹을 받고 있는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사진)이 1일 전격 사임하면서 매관매직 의혹을 둘러싼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검은 이 전 위원장 관련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김건희 여사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억대 금품을 건네고 사위 인사 청탁을 한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과 사위인 박성근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2일 특검에 나와 조사받기로 했다. 이 전 위원장은 1일 입장문을 통해 “국가교육위원장을 사임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언론에 보도된 내용의 사실 여부는 조사 과정에서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를 지낸 이 전 위원장은 이화여대 총장과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특검은 김 여사 일가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금거북이와 이 전 위원장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의 전달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김형근 특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압수물 등) 필요한 부분을 확인한 후 이 전 위원장에 대한 조사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라며 “이 전 위원장 조사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은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검은 이 전 위원장이 김 여사 측에 추가로 건넨 금품이나 청탁은 없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 전 위원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이후 국가교육위원장으로 임명된 뒤에도 김 여사와 직접 통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 위원장은 2023년 7월 26일 김 여사와 9분 23초가량 통화를 나눈 것으로 파악됐다. 2022년 9월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가교육위원장으로 임명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김 여사와 교류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특검은 이 전 위원장이 금거북이 등 대가성 금품을 건네고 임명된 게 아닌지 확인하고 있다.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특검이 7월 28일 김 여사 일가가 운영하는 요양병원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금고에 있던 시가 수백만 원 상당의 금거북이와 편지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위원장은 2일 조사를 앞두고 있는 이 회장과도 인연이 있다. 이 회장이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이 전 위원장은 기도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 씨와도 알고 지낸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건강 상태 등을 이유로 조사 일정이 미뤄지고 있던 이 회장은 2일 특검에 출석해 조사받을 예정이다. 같은 날 오후엔 박 전 실장도 출석해 조사받는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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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교진 “전교 1등, 12등 됐다고 울길래 따귀 때려”

    최교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교사 시절 성적이 떨어졌다고 우는 여학생의 뺨을 때렸다고 밝힌 인터뷰가 1일 뒤늦게 알려졌다. 최 후보자는 2014년 한 지역 유튜브 채널 토크콘서트에 출연해 “늘 전교 1등을 하던 여학생이 한 시험에서 전교 12등을 했다. 성적표를 나눠주는데 학생이 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전교 12등이 울면 13등은 더 크게 울고 꼴찌 한 애는 죽으라는 말이냐. 나도 모르게 화가 나 어린 여학생 따귀를 때렸다”고 말했다. 이어 “때리고 나서 아차 싶었지만 어쨌든 때렸다”고 말했다. 최 후보자는 이후 해당 학생이 국어 교사가 된 뒤 자신과 만났을 때 “선생님을 오래 미워했지만, 이제는 선생님이 왜 때리셨는지 이해한다”며 자신이 용서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최 후보자 측은 “2일 인사청문회에서 이야기하겠다”고 밝혔다. 최 후보자는 음주 운전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지만, 세종시교육감 시절 음주 운전을 한 교사와 교육청 공무원을 징계 조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최 후보자가 교육감을 지냈던 2021년∼2025년 7월 세종시교육청이 음주 운전으로 교사와 교육청 공무원에게 정직이나 강등 징계를 내린 경우는 총 10건이었다. 최 후보자는 2003년 음주 운전으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187%로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만취 수준이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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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교진 “전교 1등서 12등 됐다고 우는 여학생 따귀 때린적 있다”

    최교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교사 시절 성적이 떨어졌다고 우는 여학생의 뺨을 때렸다고 밝힌 인터뷰가 1일 뒤늦게 알려졌다.최 후보자는 2014년 한 지역 유튜브 채널 토크콘서트에 출연해 “늘 전교 1등을 하던 여학생이 한 시험에서 전교 12등을 했다. 성적표를 나눠주는데 학생이 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전교 12등이 울면 13등은 더 크게 울고 꼴찌 한 애는 죽으라는 말이냐. 나도 모르게 화가 나 어린 여학생 따귀를 때렸다”고 말했다. 이어 “때리고 나서 아차 싶었지만 어쨌든 때렸다”고 말했다. 최 후보자는 이후 해당 학생이 국어 교사가 된 뒤 자신과 만났을 때 “선생님을 오래 미워했지만, 이제는 선생님이 왜 때리셨는지 이해한다”며 자신이 용서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최 후보자 측은 “2일 인사청문회에서 이야기하겠다”고 밝혔다.최 후보자는 음주 운전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지만, 세종시교육감 시절 음주 운전을 한 교사와 교육청 공무원을 징계 조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최 후보자가 교육감을 지냈던 2021년~2025년 7월 세종시교육청이 음주 운전으로 교사와 교육청 공무원에게 정직이나 강등 징계를 내린 경우는 총 10건이었다. 최 후보자는 2003년 음주 운전으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187%로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만취 수준이었다. 최 후보자가 교육감이던 2015년 세종시교육청은 학교 경영계획서를 표절한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교장 A 씨를 직위 해제하기도 했다. 최 후보자는 목원대 석사학위 논문에 기사와 블로그 내용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통째로 베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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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매-정신질환 안락사 가능, 부부 동반 선택하기도… “삶에 대한 의지 꺾어” 비난도 [품위 있는 죽음]

    “저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단지 삶이 너무 힘들어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6세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아이리스 하위징아 씨는 10년 이상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오랜 기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고, 여러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결국 정신질환을 이유로 안락사를 선택했고 지난해 9월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네덜란드에서는 정신질환에 따른 안락사, 동반 안락사 등이 법적으로 허용됐지만, 자기 결정권과 자살 방조 사이에서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네덜란드 지역 안락사 검토 위원회(RTE)에 따르면 정신질환에 따른 안락사는 2010년 2건에서 2023년 138건, 지난해 219건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며 정서적 불안정을 이유로 젊은이들이 너무 쉽게 선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정신질환에 따른 안락사를 선택한 219명 중 29명(13%)은 20대였고 16∼18세 청소년도 있었다. 테오 보어 흐로닝언 프로테스탄트신학대 교수는 “힘든 일을 헤쳐 나가는 게 인생의 중요한 경험인데 안락사가 삶에 대한 젊은이들의 의지를 꺾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에는 드리스 판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가 자택에서 한 살 연상 부인과 동반 안락사를 선택해 93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판아흐트 전 총리는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반 안락사는 네덜란드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지만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다. 네덜란드에서 처음 동반 안락사 사례가 보고된 2020년 26명(13쌍)이 동반자와 함께 생을 마감했으며 2023년 94명(47쌍), 지난해에는 108명(54쌍)이 동반 안락사를 택했다. 배우자에게 동반 안락사를 강요한 사례도 발견돼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20년 네덜란드 자유민주당이 발의한 일명 ‘완성된 삶 법안’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심각한 질환이 없더라도 75세 이상은 삶이 어느 정도 완성됐기 때문에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내용이다. 안락사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네덜란드에서조차 이 법안은 하원에 계류 중이다. 의사인 마르욜라인 세브레흐츠 씨는 “자기 결정권은 의학적 상태로 한계를 지을 수 없다”며 “의학적 근거가 없는 사람도 자기 삶이 완성됐다고 느낄 때 이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법안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많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현재도 안락사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많은 노인은 죽음에 대한 사회적 내면적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암스테르담·위트레흐트=특별취재팀▽ 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 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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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엄한 삶의 마지막”… 논란 속 생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 ‘안락사’ [품위 있는 죽음]

    “아버지께서 오래전부터 마지막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다른 치매 환자처럼 몇 년간 더 고통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안락사 지원단체인 네덜란드안락사협회(NVVE) 사무실에서 만난 마리아 흐레이프마 씨(65)는 2023년 4월 치매를 앓던 90세 아버지를 안락사로 떠나보냈다. 아버지는 10여 년 전 ‘안락사 사전 의향서’를 작성하며 “중증 치매 진단을 받거나, 건강 문제로 혼자서 생활할 수 없게 되면 살고 싶지 않다”고 적었다. 이후 매년 주치의와 상의하며 서류를 갱신했다. 아버지는 2018년부터 치매를 앓았고 2022년 건강이 크게 악화했다. 흐레이프마 씨는 “치매가 악화해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아버지 자신을 잃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버지에게는 매우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2023년 1월 주치의에게 안락사 의사를 전했다. 주치의 등 안락사 평가 의료진은 아버지가 매우 심각하게 고통스럽다는 점을 인정했고 안락사를 허가했다.● 네덜란드 안락사 20여 년 새 5배 증가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가진 신체적 정신적 환자는 의료진 확인 등 상당한 절차를 거쳐 안락사를 허가받을 수 있다. 보통 약물을 주입하거나 먹는 방법이 사용된다. 안락사 논의는 1973년 법원 판례를 계기로 본격화됐다. 의사인 딸이 난치성 질환인 루게릭병을 앓는 어머니에게 치사량의 모르핀을 투입해 숨지게 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후 안락사와 관련해서 의료 가이드라인과 판례가 쌓였고 2002년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네덜란드안락사협회 활동가 롭 에던스 씨는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의 요청으로 안락사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지역 안락사 검토위원회(RTE)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안락사는 2002년 1882건에서 지난해 9958건으로 22년 만에 약 5.3배 증가했다. 전체 사망자 중 안락사가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1.32%에서 5.8%로 약 4.4배 늘었다. 지난해 안락사 9958명 중 8970명(90.1%)은 60세 이상이었다.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과 ‘회복 불가능’을 전제로 신체적 질병 말기 환자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 정신질환자 등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한다. RTE에 따르면 지난해 안락사 약 86%(8593건)는 신체질환 관련이었다. 이어 치매(427건), 고령 질환 누적(397건), 정신질환(219건), 기타 질환(232건) 등의 순이었다. 네덜란드가 치매 환자나 정신질환자까지 안락사 대상을 넓히면서도 사회적 합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철저한 절차 덕분이다. 환자는 반드시 주치의와 여러 차례 면담을 거쳐 고통의 심각성과 대안 부재를 입증해야 한다. 주치의는 단독으로 안락사를 허가할 수 없으며 반드시 안락사 자문 의사 네트워크(SCEN) 등 독립된 의사들의 2차 의견을 받아야 한다. 특히 치매, 정신질환 등은 이런 절차를 거쳐 안락사 허가까지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안락사 시행 후에는 변호사 의사 윤리학자 등이 참여하는 네덜란드 지역 안락사 검토위원회가 안락사 절차의 적법성을 심사해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다. 실제 지난해에도 6건이 부적절하다는 판정을 받아 검찰 조사가 진행됐다. 비영리 단체인 네덜란드안락사협회는 전국에 7개 지부를 두고 안락사에 대한 상담을 제공한다. 지난해 3만3500건의 문의를 받았고 8000건에 대해 심층 상담을 진행했다. 네덜란드안락사협회 법률고문 변호사 이베트 스카우트 씨는 “협회는 안락사 준비 및 시행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환자들의 ‘죽을 권리’ 보장에 앞서고 있다”며 “문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안락사에 대한 이해와 제도가 사회에 어느 정도 안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락사 논란은 현재도 진행 중한국과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안락사나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없다. 법적 논쟁을 떠나 유교, 불교 등의 정서가 깔려 있는 아시아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 외에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등 일부 국가가 허용하고 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조력 존엄사가 가능하다. 20년 넘게 유지된 제도이지만, 네덜란드 내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안락사를 지지하는 이들은 인간의 자기 결정권,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 환자의 극심한 고통 경감 등을 이유로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40명의 안락사에 관여한 의사 베르트 케이저르 씨는 “현대 의학은 환자를 불행한 상태에서도 살려낼 수 있을 만큼 발달했다. 하지만 ‘좋은 죽음’을 망칠 수도 있다. 중환자실에서 죽는 것은 최악의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종교계를 중심으로 “인간의 생명은 스스로 끊을 수 없는 신성한 것”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테오 보어 흐로닝언 프로테스탄트신학대 교수는 “안락사가 죽음의 당연한 방식(normal way to die)이 돼 버렸다”라며 “죽음을 일종의 ‘프로젝트’로 생각하는 흐름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암스테르담·위트레흐트=특별취재팀▽ 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 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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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 선생이 학원 선생보다 실력 떨어져” 학원연합회장 발언 파문

    한국학원총연합회 회장이 학교 교사가 학원 강사보다 실력이 떨어진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교원 단체들이 일제히 비판 성명을 냈다. 27일 교육계에 따르면 이유원 한국학원총연합회 회장은 22일 국회에서 열린 ‘늘봄학교, 지자체와 함께하는 선택교육 확대방안’ 토론회에서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보호와 돌봄, 잡무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고 있다”며 “솔직히 말하면 소비자들이 선택할 때 학교 선생님들이 학원 선생님들에 비해서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 발언에 앞서 “예전에 초등학교 교사는 여자에게 안정적인 직업으로 1위였는데 최근 교대 경쟁률이 형편없이 낮아지고 있다”며 “교사가 ‘3D(Dirty Difficult Dangerous·더럽고 힘들고 위험하다는 의미)’ 직업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해 교원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비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27일 성명을 통해 “공교육의 가치, 교사의 존재 이유에 대해 몰이해와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된 발언으로 매우 유감스럽다”며 “전체 교사 폄훼와 자긍심 훼손이 심각한 만큼 즉각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교총은 이어 “공교육과 사교육 각자의 역할이 있고 존재의 목적이 상이함에도 대한민국 교사 전체를 실력이 없는 집단으로 확정 발언한 것은 전체 교원에 대한 모독”이라고 덧붙였다.앞서 26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성명을 내고 “이 회장의 발언은 성실히 교육현장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모든 교사를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이라며 “학교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고 교육은 민주시민을 기르는 국가의 중대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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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업중 스마트폰’ 내년부터 법으로 금지…소지 제한도 가능

    내년 3월부터 초중고교 학생이 수업 중 휴대전화 등 스마트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된다. 교육부가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2023년 9월부터 ‘교원의 학생생활 지도에 관한 고시’를 마련해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한 바 있다. 27일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휴대전화 사용 금지는 법으로 명문화됐다. ●‘수업 중 스마트기기 사용 금지’ 법으로 명시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학생은 수업 중에 휴대전화 등 스마트기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스마트기기 소지 자체를 금지하진 않는다. 그러나 학교가 필요한 경우 교내 스마트기기의 사용 및 소지를 제한할 수 있고, 제한하는 기준·방법, 스마트기기의 유형 등을 학칙으로 정할 수 있게 했다. 교육 목적, 장애가 있거나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이 보조기기로 사용하는 경우, 긴급한 상황 대응을 위한 때는 학교의 장과 교원 허용을 받고 스마트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 개정안 내용은 기존 교육부 고시에 ‘학생은 수업 중 휴대전화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 한 것과 동일하다. 하지만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학생 인권이 강조되면서 학생들이 수업시간 휴대전화로 유튜브를 보거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접속해도 상당수 교사가 모르는 척 했던 게 현실이었다. 이에 교사들은 개정안이 학생과 학부모 인식 개선에 도움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경기 지역 한 중학교 교감은 “법으로 규제하면 학생들이 더 조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장승혁 대변인은 “수업 중 스마트폰을 쓰면 안 된다는 인식이 높지 않아 학부모가 학생 인권침해라고 끊임없이 민원을 넣는다”며 “이제 ‘법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 개정안은 스마트기기 과의존 청소년이 늘어남에 따라 학생의 정신 건강 보호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따라 추진됐다. 또 스마트기기가 수업 방해, 교권 침해 등 각종 교내 갈등의 요인이 된다는 지적도 반영됐다. 한 학교 관계자는 “수업 중 휴대전화를 못 쓰게 제지하면 학생이 교사에게 욕하거나 할퀴고 때리는 일이 있다”고 전했다. 교사가 학생의 잘못을 지적하는 장면을 학생이 휴대전화로 촬영하거나 녹음해 교육청에 신고하는 일도 많았다.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해 10월 학교 휴대전화 일괄 수거는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리며 인권침해라고 봤던 기존 판단을 10년 만에 뒤집었다. 인권위는 다수 선진국이 학생의 휴대전화 과다 사용 문제로 휴대전화 제한 정책을 추진하는 점을 참고했다.●수거 원칙·쉬는 시간 사용 등 갈등 불씨 남아 그러나 개정안이 학교에서의 휴대전화 소지 자체를 금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업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학생을 제재할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학칙으로 제한 방법을 정하도록했지만 학교마다 규정이 다르면 민원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교총 관계자는 “휴대전화를 걷고 하교 전에 돌려주는 방식이 학교마다 다르면 형평성 시비가 있을 수 있어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이 학칙 표준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수업 시간에 휴대전화를 걷는다고 해도 쉬는 시간에 다시 돌려줘야 하는 문제, 걷을 때 스마트폰 공기계를 내도 적발하기 어려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이 휴대전화에 목숨을 걸어서 수업 종료 후 돌려주지 않으면 난리가 난다”고 전했다.현재 학생들은 스마트기기로 공부하는 것이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무조건 막을 것이 아니라 사용법을 제대로 가르쳐야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부산의 한 학교 교장은 “디지털에 익숙한 학생들이 스마트기기를 활용해 학습 효과를 올릴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무조건 못 쓰게 하면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며 “모든 것을 법으로 규제할 순 없다”고 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김민지 기자 minji@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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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 ‘최교진 음주운전 알코올 농도’ 비공개 논란

    경찰이 과거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최교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사진)의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를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 후보자는 2003년 음주운전(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적발돼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교통사고가 아닌 적발 사건으로 피해자는 없었다. 최 후보자는 적발 당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신분이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3% 이상이면 음주운전에 해당하며, 최 후보자가 음주운전을 한 2003년 당시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이상이 기준이었다. 경찰청은 적발 당시 최 후보자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묻는 김 의원의 질의에 “개인 사생활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어 제공할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국민의 알권리와 국회의 인사 검증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22년 박순애 교육부 장관도 후보자 시절에 음주운전 전력으로 논란이 됐었다. 당시 대법원은 후보자의 음주운전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에 대한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김 의원실은 대법원에 최 후보자 사건의 판결문 제출을 요구했으나 대법원은 “후보자의 검찰 사건번호와 일치하는 내용이 없어 사건번호와 판결문을 제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판결문이 조회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최 후보자 측은 다음 달 2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최 후보자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신문 기사를 인용한 부분이 많았는데 인용 표시에 소홀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후보자는 목원대 석사학위 논문에 기사와 블로그 내용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적어 논란이 일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논문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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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교진 음주운전 알코올농도 비공개…경찰 “사생활 침해 우려”

    경찰이 과거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최교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를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26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 후보자는 2003년 음주운전(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적발돼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교통사고가 아닌 적발 사건으로 피해자는 없었다. 최 후보자는 적발 당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신분이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3% 이상이면 음주운전에 해당하며, 최 후보자가 음주운전을 한 2003년 당시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이상이 기준이었다.경찰청은 적발 당시 최 후보자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묻는 김 의원의 질의에 “개인 사생활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어 제공할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국민의 알 권리와 국회의 인사 검증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2022년 박순애 교육부 장관도 후보자 시절에 음주운전 전력으로 논란이 됐었다. 당시 대법원은 후보자의 음주운전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에 대한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김 의원실은 대법원에 최 후보자 사건의 판결문 제출을 요구했으나 대법원은 “후보자의 검찰 사건번호와 일치하는 내용이 없어 사건번호와 판결문을 제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판결문이 조회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한편 최 후보자 측은 다음달 2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최 후보자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신문 기사를 인용한 부분이 많았는데 인용 표시에 소홀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후보자는 목원대 석사학위 논문에 기사와 블로그 내용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적어 논란이 일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논문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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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대 노인이 직접 빨래… “일상 유지해야 치매 진행 늦춰” [품위 있는 죽음]

    지난달 22일 오전 일본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 치매(인지증) 돌봄 시설 ‘사랑의 집 그룹홈’. 아침 식사를 마친 노인들이 20분 넘게 TV 화면의 건강 체조를 따라 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오리토 씨(84)는 “집에선 혼자였는데, 여기선 가족 같은 친구들과 노래 부르고 춤출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입소자 9명이 함께 쓰는 거실엔 종이로 접은 꽃과 인형 등이 가득했다. 정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근처 어린이집 아이들이 만든 작품이다. 그룹홈 관리자인 나가쓰카 씨는 “어린이들과 핼러윈 파티도 하고, 지역 요양시설 입소자들이 모이는 ‘오렌지 카페’라는 행사를 열어 교류도 한다”며 “인지증 노인이 고립되지 않고 이웃과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65세 이상 치매 노인은 올 7월 기준 약 471만 명. 고령화가 일찍 진행된 일본은 2000년부터 치매 노인 공동 주택인 ‘그룹홈’을 도입했다. 치매 노인들이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려면 병원에 고립시켜선 안 되고, 최대한 늦게까지 몸을 움직이고 이웃들과 만나는 교류를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치매 노인은 무섭거나 불쌍한 존재가 아니고, 주위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얼마든지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입소자 자녀도 ‘노인’, 노노케어 부담 덜어 2022년 기준 일본 전역의 그룹홈은 1만4079곳, 거주 치매 노인은 약 21만 명에 이른다. 치매 노인이 97만 명에 이르는 한국에선 이런 소규모 전문 요양시설을 찾기 힘들다. 자녀 또는 배우자의 돌봄을 받거나, 치매에 특화되지 않은 대규모 요양시설에 머무는 경우가 대다수다.지난달 21일 도쿄도 이타바시구의 ‘사랑의 집 그룹홈’. 입소자 2명이 주방에서 9명분의 점심 식사 준비를 돕고 있었다. 그룹홈 책임자 무라타 씨는 “인지증 환자는 집안일 등 쉽게 하던 일을 못 하게 되면 자존감을 잃고 상태가 더 나빠진다. 서툴더라도 식사 준비, 빨래 정리 등 최대한 집에서처럼 생활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이 시설엔 3개 유닛에 9명씩, 총 27명의 치매 노인이 거주 중이다. 전체 요양보호사는 25명으로, 항상 9명 이상이 근무한다. 인지력이 떨어지고, 환자마다 특성이 다른 치매는 익숙한 직원들과 소규모로 생활하는 것이 좋다. 대규모 요양시설은 환경 적응과 개별 관리가 어려워 치매를 악화시킬 수 있다. 호텔처럼 깔끔한 1층 오노 씨(91)의 방에 들어서자, 창가의 오래된 불단(佛壇)이 눈에 띄었다. 오노 씨는 “소원을 빌고 싶어서 조상을 모시던 불단을 집에서 가져왔다. 이곳 생활이 너무 행복해서 요즘엔 소원을 빌 필요가 없다”며 해맑게 웃었다. 그는 “산책하며 동네 사람들을 만나거나, 어린이집 아이들이 놀러 왔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시공간 지각 능력과 기억력 감퇴, 불안에 시달리는 치매 환자에겐 배회 증상이 흔히 나타난다. 그룹홈에선 입소자들의 배회를 억제하기보단 요양보호사와 함께 매일 산책하러 나가 건강까지 챙기도록 한다. 집에서 쓰던 이불과 식기 등 익숙한 물건을 갖다 놓는 것도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서다. 입소자들은 상당수가 자녀도 노인이다. 그룹홈은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노노(老老)케어’의 부담도 덜어준다. 무라타 씨는 “고령화로 인해 치매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의 부담도 커졌다. 소규모 그룹홈은 개인 건강 상태나 증상에 따라 맞춤형 돌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룹홈은 같은 지역 거주자만 입소할 수 있다. 이타바시구 그룹홈의 월 부담 이용료는 밥값 등을 포함해 18만 엔(약 171만 원)가량이다. 한국 장기요양보험에 해당하는 개호보험이 월 30만 엔을 지원해 일본 중산층 가정이 이용할 수준으로 비용을 낮췄다.● 치매 카페 만들고, 가족 지원도 그룹홈은 치매 환자가 생의 마지막을 품위 있게 보내도록 돕는다. 야마모토 노리오 메디컬케어 대표는 “그룹홈이 처음 생겼을 땐 입소자 배회 등을 우려한 지역 주민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지역에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인식이 생겼다”며 “인지증 환자의 행동을 억제하기보단 더 개방적인 환경에서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고령화에 대비해 1990년대부터 치매 정책을 본격 추진했다. 2004년엔 ‘어리석다’는 의미가 담긴 치매를 ‘인지증’으로 바꿨다. 정책 총괄도 후생노동성보다 상위 부처인 내각부에서 맡고 있다. 인지증 카페를 운영해 지역 교류를 활성화하고, 인지증 환자 가족을 통합 지원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후생노동성 치매 정책 담당자는 “인지증 환자가 익숙한 지역에서 안심하고 생활하도록 인지증 재택의료 지원 의사 양성, 인지증 초기 집중 지원팀 지원 등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사이타마·도쿄=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 20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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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원에선 불필요한 연명치료 권하기도” 임종 앞둔 환자 돕는 재택의료 [품위 있는 죽음]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산소포화도, 혈압은 다 괜찮네요.” 지난달 24일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시 외곽 단독 주택. 방문진료 기관인 홈온클리닉 히라노 구니요시 원장이 치매와 간경변을 앓고 있는 재일교포 김태희 씨(96)의 배를 연신 주물렀다. 2주 전보다 복수(복강 내 물 고임)가 더 많아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4년 전 3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았던 김 씨와 가족은 집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딸 마채희 씨는 “병원에서도 포기한 상태라 입원은 무의미했다. 무엇보다 집에 가고 싶다는 어머니의 뜻을 존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비를 넘긴 김 씨는 현재는 주 3회 주간돌봄센터도 다닌다. 매주 간호사와 요양보호사가 한 번씩 방문해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23년 전 방문진료를 시작한 히라노 원장은 현재 약 600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 중 절반은 집에서, 나머지는 요양시설에서 말년을 보낸다. 80, 90대 고령 환자들이 많다 보니 임종을 맞는 환자도 한 주에 5명가량 발생한다. 환자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오면 한밤중에도 달려간다. 히라노 원장은 “병원에선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권하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돕는다”고 했다. 그는 “환자와 가족에게 단순히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느냐’ 묻는 게 아니라, 생의 마지막을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86년 방문진료 수가를 처음 도입한 뒤, 1990년대부터 재택의료가 본격 시작됐다. 의료와 돌봄의 중심을 병원에서 지역사회와 집으로 옮긴 것이다. 전체 병의원의 약 10%에 해당하는 1만4000여 곳이 재택의료기관이다. 일본의 재택의료 활성화는 고령화에 대비하는 측면도 있다. 쓰루오카 고키 일본사회산업대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초고령사회가 되면 병상 부족, 고독사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불필요한 ‘사회적 입원’을 최소화해 의료비 지출을 낮추는 효과도 있었다. 재택의료를 이용하는 환자 만족도는 높다. 입원비에 비하면 비용 부담도 작다. 올해 기준 임종기 환자가 월 2회 방문진료를 받으면 요양등급과 소득 수준 등에 따라 7260∼2만1780엔(약 6만8400∼20만5000원)을 낸다. 히라하라 사토시 일본재택의료학회장은 “방문진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1, 2년 동안 별도 프로그램을 이수한다. 암 환자 돌봄, 노년 의학, 치매 돌봄, 소아 재택의료 등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후생노동성 관계자는 “2040년 85세 이상 인구 급증으로 재택의료 수요는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자가 익숙한 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의료·간병 서비스를 더 강화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사이타마·도쿄=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 20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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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최교진 교육 후보자 석사 논문, 기사-블로그 출처없이 베껴

    최교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석사학위 논문에서 기사와 블로그 내용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3페이지 이상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베껴 쓴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본보가 최 후보자가 2006년 12월 목원대 대학원 행정학과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매니페스토 운동에 나타난 정책공약 분석’을 카피킬러로 살펴본 결과, 상당 부분에서 출처를 밝히지 않고 타인이 쓴 내용을 그대로 썼다. 특히 이론적 고찰을 다룬 부분은 많은 곳의 문장 표절률이 100%로 나왔다.최 후보자 논문에서 표절로 나오는 내용의 출처 상당수는 논문이 아니라 블로그였다. 문장 표절률 100%로 나온 블로그 두 곳의 2006년 2월 1일과 3일 게시글은 일간지 기사를 그대로 붙여 넣은 글이었다. 최 후보자는 이 블로그에 실린 문장 27개를 통으로 베껴 논문에 실었다. 참고문헌 목록에 해당 기사나 블로그는 없었다.서울 지역 사립대의 한 교수는 “인용 표시 없이 갖다 쓴 건 표절”이라며 “미국에서는 학부 수업 리포트도 남의 것을 베끼면 퇴학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사청문준비단은 “매니페스토 운동이 주제라 신문 기사를 인용하는 게 많았는데 인용 표시에 소홀했던 것”이라며 “연구 윤리 규정이 만들어지기 전의 논문이라 그렇게 엄격하던 시절은 아니었다”고 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민지 기자 minji@donga.com}

    • 202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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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최교진 석사논문, 일반인 블로그 글 그대로 베꼈다

    최교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석사학위논문에서 기사나 블로그 내용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길게는 3페이지 이상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베껴 쓴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일선 대학에서 리포트를 작성할 때도 타인이 쓴 내용을 출처 표기 없이 그대로 쓰면 표절로 보는 게 관행이다. 최 후보자가 연구 윤리를 담당하는 교육부 수장으로 지명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블로그나 기사 통으로 베껴본보가 최 후보자가 2006년 12월 목원대 대학원 행정학과 석사학위논문으로 제출한 ‘매니페스토 운동에 나타난 정책공약 분석’을 카피킬러로 살펴보니 상당 부분에서 출처를 밝히지 않고 타인이 쓴 내용을 그대로 적은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이론적 고찰을 다룬 부분은 많은 곳의 문장 표절률이 100%로 나왔다. 과거 대부분의 교수 출신 후보자 논문과 달리 독특한 점은 표절로 나오는 내용이 논문이 아니라 블로그라는 점이었다. [공유], [펌] 등의 제목이 달린 일반인 블로그였다. 너무 오래전이라 블로그 대부분은 내용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본보는 최 후보자가 영국과 일본의 사례를 다룬 7~9페이지 중 한 단락 빼고 베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카피킬러에서 문장 표절률 100%로 나온 블로그 두 곳의 각각 2006년 2월 1일과 3일 게시글을 찾아보니 1일에 나온 기사를 긁은 내용이었다. 최 후보자는 해당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적었는데, 문장으로는 27개였다. 표절률이 46%로 나온 한 문장은 원문과 기호를 다르게 해서일 뿐 내용은 동일했다. 최 후보자가 기사를 직접 인용했든 해당 기사를 게재한 블로그를 인용했든 출처를 밝히지 않고 그대로 쓴 것은 문제라는 게 학계 대부분의 반응이다. 최 후보자가 참고문헌에 적은 목록에도 해당 기사나 블로그는 없었다. 카피킬러에는 이 밖에도 최 후보자 논문에서 문장 표절률 100%로 의심하는 블로그 출처를 많이 분석해 냈지만 오래전 내용이라 확인이 어려웠다.●학계 “표절”, 인청단 “연구윤리 엄격하던 시절 아냐”본보는 이에 대해 국내 주요 대학 교수 몇 명에게 물었는데 모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었다. 아무리 교육부 훈령인 연구 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이 2007년 제정되기 전에도 학계는 최 후보자 같은 행동은 표절로 봤다는 취지였다. 한양대 한 교수는 “2007년 이전에도 남이 쓴 거나 자기가 쓴 것도 무조건 인용해야 했다”며 “미국에서는 학부 수업 리포트도 남의 것을 베끼면 표절이라고 퇴학시키기도 하는데 학위논문은 무조건 인용해야지, 안 하면 표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교수는 “학부생의 리포트 수준도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인용 표기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출처가 논문이 아닌 기사나 블로그가 대부분인 것도 문제라는 의견이었다. 서울대 한 교수는 “학술 논문은 근거를 갖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 하는데 블로그 인용 위주는 학술성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인사청문준비단은 “매니페스토 운동이 주제라 신문 기사를 인용하는 게 많았는데 인용 표시에 소홀했던 것”이라며 “연구 윤리 규정이 만들어지기 전의 논문이라 그렇게 엄격하던 시절은 아니었다”고 했다.한편 최 후보자가 지명된 뒤 교육부가 밝힌 프로필에는 공주대(옛 공주사범대) 국어교육학과까지만 있고 목원대 대학원 석사학위 내용은 빠져 있다. 온라인에도 최 후보자의 학력 사항은 공주대까지만 있다. 인사청문준비단 측은 “석사 졸업 사실을 크게 안 밝힌 이유는 특별한 건 없다. 일부러 숨긴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목원대는 홈페이지에 ‘동문 최 교육감의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지명을 축하합니다! 교육의 새 시대, 목원대가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라는 배너를 걸어놨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민지 기자 minji@donga.com}

    • 202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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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치의가 3개월마다 면담… 운동-수면 습관도 챙겨 [품위 있는 죽음]

    “팔을 움직일 때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허벅지에 힘을 주세요. 함께 외쳐요.” 싱가포르 동부 시메이 지역 주택개발청(HDB) 아파트 단지. 필로티 1층 빈 공간에 화려한 운동복을 입은 할머니 등 주민 45명이 줌바 교실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근력과 유연성, 균형감 강화 등 3가지로 나뉜 수업은 1시간 동안 진행됐다. 강사 크리스틴 촉 씨(60)는 “수강생 중 노인이 많아 허벅지 근력을 강화하는 동작을 많이 배치했다”며 “허벅지 근육이 약하면 활동량이 줄고 배변에도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23년 5월부터 개인별 건강 계획을 수립하고 건강한 운동과 식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더 건강한 싱가포르(Healthier SG)’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40세 이상 국민과 영주권자가 프로그램에 등록하면 주치의가 배정된다. 가입자는 주치의와 3개월마다 면담하고 운동, 수면 등 생활습관을 관리받는다. 싱가포르는 질병을 예방해서 건강하게 오래 살고 궁극적으로 의료비를 줄이려고 한다. 김성훈 싱가포르경영대(SMU) 경제학과 교수는 “싱가포르인 건강 수명은 남성 73.9세, 여성 76세”라며 “(이미 건강 수명이 길어)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생활 습관을 개선해 질병을 예방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건강 수명은 2021년 기준 72.5세다. 정부 건강증진위원회(HPB)가 운영하는 ‘헬시 365(Healthy 365)’ 애플리케이션은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헬시 365’ 앱에 가입하면 일단 20싱가포르달러(약 2만1600원) ‘포인트’가 주어진다. 이후 K팝 댄스, 요가, 킥복싱 등 정부가 지정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식습관과 수면습관을 개선하면 포인트를 받는다. 포인트는 바우처로 교환해 마트 등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 현금성 보상에 힘입어 ‘더 건강한 싱가포르’에는 이달 17일 기준 130만 명이 넘게 가입했다. 40세 이상 싱가포르 인구가 22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40세 이상 2명 중 1명이 참여하는 셈이다. 유방암을 앓고 있는 차우 쿡 란 씨(86)는 도보 10분 거리 자택에서 걸어와 줌바 교실에 참여했다. 차오 씨는 “줌바 교실에 참여하기 전에는 다리가 아팠는데, 춤을 추면서 오히려 다리가 좋아졌다”며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혼자 있을 때보다 건강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더 건강한 싱가포르’는 노인 일자리도 창출한다. 촉 씨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줌바 강사로 일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 그는 평일에는 병원에서 의료 데이터 관리자로 근무하고 주말에는 줌바 강사로 활동한다. 5년 전 줌바를 배운 뒤 무릎 통증이 사라져 아예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촉 씨는 “줌바 수업 1시간을 할 때마다 75싱가포르달러(약 8만 원)를 정부로부터 받고 있다”며 “운동을 통해 이웃이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돕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싱가포르=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 202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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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매시설 아닌 집에서 여생 보내게… 아파트에 병원 연계 센터 [품위 있는 죽음]

    “자밀라, 왼팔을 주세요. 요즘은 어떤 TV 프로그램을 주로 시청하나요.” 싱가포르 동부 베독 지역 주택개발청(HDB) 공공아파트. 간호사 셰릴 샤즈와니 빈테 자카리아 씨가 치매를 앓고 있는 자밀라 씨(80) 자택을 방문해 혈압을 재며 이같이 물었다. 자밀라 씨는 3년 전 치매 진단을 받았지만 병원이나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자택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그 대신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활동적 노년 센터(Active Ageing Centre·AAC)’ 소속 간호사 등이 찾아와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해 기준 214개 AAC가 싱가포르 전역에서 운영 중이다. 한국의 노인복지관이 주로 여가활동 중심으로 운영되는 반면에 싱가포르 AAC는 병원과 연계해 의료, 식사, 청소 등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한다.● 의료-식사-청소 모두 제공하는 동네 돌봄 센터 싱가포르는 2009년 통합돌봄청(AIC)을 설립하면서 노후에도 입원하지 않고 자택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AAC와 지역사회 중심의 ‘원스톱’ 돌봄 체계를 구축했다. 자밀라 씨처럼 혼자 사는 치매 환자도 자택에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은 내년 3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두 국가 모두 2030년 국민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일 것으로 전망돼 고령화 속도는 비슷하지만 싱가포르가 17년가량 일찍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AAC 확대 및 지원을 위해 2024∼2028년 9억4000만 싱가포르달러(약 1조227억 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은 직접 신청하거나 병원을 통해 의뢰하면 AAC에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평가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AIC는 지역사회에 마련된 여러 돌봄 서비스와 연계하고 중복 지원을 방지하는 등 조정자 역할을 맡는다. 자밀라 씨는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타이화콴자선재단 산하 베독 AAC가 방문간호, 도시락 배달, 병원 진료 동행, 교통 지원, 방문 요양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이와 별도로 AAC와 연계된 후원 단체는 각종 식품을 지원한다. AAC가 노인들의 건강과 일상생활을 모두 관리해 치매를 앓으며 혼자 사는 노인도 자택 생활이 가능하다. 자밀라 씨는 과거 화장실이 아닌 곳에 배뇨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AAC의 도움을 받으며 현재는 해당 문제가 해결됐고 보행기 없이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증세가 호전됐다. 베독 AAC는 창이종합병원 간호팀과 함께 지역 보건지소를 운영한다. 창이종합병원 의사가 매주 방문해 노인 건강 상담과 진료를 한다. 복용하는 의약품을 가져오면 겹치는 성분이 있는지 따져 조정하고 다른 병원으로 연계해야 하는 경우 진료의뢰서를 써준다. 최근 퇴원한 노인을 위해 낮 시간 동안 한시적으로 돌보는 일시 보호소도 운영한다. 보호자가 출근한 시간대에 머물며 간호사들의 돌봄을 받을 수 있다. 식사, 빨래, 목욕 서비스도 제공한다. 베독 AAC를 운영하는 타이화콴자선재단 소속 의사 탕문렁 씨는 “병원에 입원하면 환자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도 인건비가 발생하지만, 자택에 머물면 환자가 필요한 것만 AAC가 지원하면 된다”며 “지역사회가 건강 관리를 책임지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웃과 연결해 사회적 비용 줄이고 고독 방지AAC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보드게임, 치매환자를 위한 식습관 교육, 디지털 문해력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택시 기사로 일하다 은퇴한 초 추잉 씨(80)는 매주 3, 4일 AAC 등을 찾아 거동이 어려운 노인의 휠체어를 밀어준다. 이른바 ‘마이크로 일자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병원 진료가 있으면 동행한다. 초 씨는 “아직 나 자신은 잘 돌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가 AAC를 중심으로 돌봄 체계를 구축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지역사회 자원을 연결하기 위해서다. AAC를 통해 이웃이 만나고 교류하면 고독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사적 도움도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시티 아이샤 빈테 모하맛 유누스 베독 AAC 센터장은 “노인들은 대부분 한 동네에 오래 살기 때문에 이웃들과 가깝게 연결되길 원한다”며 “AAC를 통해 연결된 노인들이 서로를 돕는 체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후에 병원이 아닌 자택에서 지내는 것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폴린 스트라우겐 싱가포르경영대(SMU) 성공적 노화를 위한 연구소장(사회학과 교수)은 “노후에도 병원에 누워 있지 않고 살던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노화를 겁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싱가포르=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 202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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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귀병 고통속 단식 존엄사 선택한 모친… 손 놓아주는 것, 그것도 사랑의 한 부분” [품위 있는 죽음]

    희귀병의 고통 속에서 스스로 곡기를 끊고 삶을 마무리한 어머니. 그 선택을 곁에서 지켜본 의사 딸은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기록해 책 ‘단식 존엄사’를 펴냈다. 대만 중산대 의대 재활의학과 비류잉 교수 이야기다.스스로 물과 음식 섭취를 중단해 사망에 이르는 단식 존엄사는 ‘VSED(Voluntarily Stopping Eating and Drinking)’라는 용어로도 불린다. 국내에서는 낯설지만 미국과 네덜란드에서는 일부 시행되고 있다.비 교수의 어머니는 64세 때 소뇌에 이상이 생겨 사지가 점점 마비되는 희귀병인 소뇌실조증을 진단받았다. 이후 병세가 악화되며 고통이 심해지자 단식 존엄사를 결심하고 2020년 8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대만 타이베이에서 만난 비 교수는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통해 어떤 종류의 사랑은 손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어머니는 어떻게 단식을 결심했나.“평소 어머니는 억지로 치료해 고통을 연장하지 말자는 말씀을 자주 했다. 2019년 병세가 빠르게 악화되면서부터는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고 어떻게 해야 잘 떠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즈음에 어머니가 일본 의사가 단식 존엄사에 대해 쓴 책을 읽고 단식으로 삶을 마무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머니가 20년 동안 병으로 고통받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물과 음식을 끊어 죽음에 이르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가.“물론 본인의 강한 의지와 가족의 지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일반인에게 굶어 죽는 아사는 고통스럽지만 임종을 앞둔 이에게는 다르다는 점이다. 단식 존엄사를 선택하는 고령의 중증 질환자는 일반인처럼 허기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어머니가 21일 동안 단식했다. 그 시간은 어떻게 보냈나.“처음 10일 동안에는 음식 섭취량을 천천히 줄이면서 죽과 삶은 채소, 연근물을 드셨다. 11일째부터는 고형 음식을, 13일째부터는 연근물을 끊었다. 갈증이 나면 면봉에 물을 묻혀 입술을 축이는 정도였다. 21일째 어머니는 편안한 얼굴로 돌아가셨다.”―단식 존엄사는 대만에서 논란의 대상이다.“대만 호스피스 학회에서는 단식 존엄사를 지지하지 않는다. 자살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미국과 네덜란드 등에서는 단식 존엄사를 하기 위한 표준 가이드라인도 마련돼 있다. 죽음의 방식은 환자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식 존엄사에 대한 더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죽음은 누구나 겪는 마지막 길이다. 품위 있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면 반드시 미리 준비해야 한다. 가족과 일상적으로 죽음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논의해야 한다. 그러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최대한 내려놓을 수 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타이베이·신베이=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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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 병동 곳곳 ‘연명의료 내가 결정’ 문구…치매환자도 선택권 [품위 있는 죽음]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은 내가 스스로 합니다.’대만 신베이시 단수이구 매카이 메모리얼 병원. 호스피스 병동 곳곳에는 이렇게 적힌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히는 사전돌봄계획(Advance Care Planning·ACP) 등록을 안내하는 문구다. 팡춘카이 호스피스 센터장은 “대만은 국민이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해 왔다”고 설명했다.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2000년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했다.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권리를 한국보다 폭넓게 보장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보며 고통을 적절히 완화시키는 호스피스도 잘 정착돼 있다. 2021년 미국 듀크대 연구팀이 발표한 ‘임종 및 돌봄 전문가 평가’에서 대만은 81개 평가 대상국 중 아시아 1위를 차지했다.● “내 생명은 내가 결정한다” 인식 자리 잡아“대만은 20여 년 전부터 ‘내 생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사회적으로 논의해 왔습니다.”대만 위생복리부(보건복지부) 류위핑 의료부 국장은 대만의 연명의료 관련 법과 제도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류 국장은 “반대하는 의견도 물론 있었지만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는 건 인권 문제라는 인식이 더 컸다”고 덧붙였다.대만에서 논의가 본격화된 계기는 이른바 ‘왕샤오민’ 사건이다. 1963년 고교생이었던 왕샤오민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자 그의 어머니가 1982년부터 정부 등에 딸의 안락사를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고 2000년 ‘안녕완화의료조례’, 2019년 환자 자주 권리법이 시행되면서 현재 제도가 완성됐다.대만에서는 병원에서 의료진과 상담한 뒤 ACP를 등록하면 향후 △말기 환자 △비가역적인 혼수 상태 △영구적인 식물 상태 △극중증 치매 △그 밖에 고통을 참기 어렵거나 질병이 회복될 수 없고 현재 의료 수준으로는 적절한 해결 방법이 없는 상황이 왔을 때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도 ‘사망 직전’일 때만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 대만이 한국보다 연명의료 중단 범위를 훨씬 넓게 인정한다.등록 절차도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보건소나 민간 기관에서 담당 직원과 간단한 상담을 받은 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하지만, 대만에서는 의료진과 1시간가량 상담한 뒤 ACP를 등록한다. 국립 대만대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청사오이 가정의학과 교수는 “ACP는 전국 280개 병원에서 상담을 통해 등록할 수 있다. ACP에 등록하면 해당 정보가 건강보험 카드에 등록되고 이후 모든 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른바 ‘웰다잉(Well-Dying)’ 관련 민간 움직임도 활발하다. 비영리단체(NPO) 대만 호스피스 재단에서는 무료 전화 상담을 한다. 재단의 창샤팡 이사장은 “ACP 등록을 하는 과정에서 걱정되고 고민되는 점에 대해 누구든 전문 간호사와 상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대상 질환에도 제한 없어대만이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노력하는 또 다른 방법은 호스피스 활성화다. 대부분 암 환자만 호스피스를 받는 한국과 달리 대만은 호스피스 대상 질환에 제한이 없다. 매카이 메모리얼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도 절반가량이 암 환자였고, 나머지 절반은 암이 아닌 다른 질환 환자들이었다.병동에서 만난 쑨보펀 씨(68)도 입원한 96세 노모와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쑨 씨는 “3년 전 투병 중이던 아버지의 상태가 급작스레 악화돼 모르핀을 맞다가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 어머니만큼은 편안하게 보내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며 “이곳의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어머니가 떠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병상에 누운 노모는 담당 의사가 지나가자 손짓을 하며 천천히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팡 센터장은 “사람은 숨이 멎어 관이 닫힐 때 비로소 그 인생이 정의된다는 말이 있다”며 “호스피스는 인생의 가장 끝에서 마지막 길을 함께 돕는 일”이라고 말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타이베이·신베이=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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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동 곳곳 ‘내생명 내가 결정’ 문구…중증 치매도 연명의료 중단 가능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은 내가 스스로 합니다.’대만 신베이시 단수이구 매카이 메모리얼 병원. 호스피스 병동 곳곳에는 이렇게 적힌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히는 사전돌봄계획(Advance Care Planning·ACP) 등록을 안내하는 문구다. 팡춘카이 호스피스 센터장은 “대만은 국민이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해 왔다”고 설명했다.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2000년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했다.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권리를 한국보다 폭넓게 보장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보며 고통을 적절히 완화시키는 호스피스도 잘 정착돼 있다. 2021년 미국 듀크대 연구팀이 발표한 ‘임종 및 돌봄 전문가 평가’에서 대만은 81개 평가 대상국 중 아시아 1위를 차지했다.● “내 생명은 내가 결정한다” 인식 자리 잡아“대만은 20여 년 전부터 ‘내 생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사회적으로 논의해 왔습니다.”대만 위생복리부(보건복지부) 류위핑 의료부 국장은 대만의 연명의료 관련 법과 제도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류 국장은 “반대하는 의견도 물론 있었지만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는 건 인권 문제라는 인식이 더 컸다”고 덧붙였다.대만에서 논의가 본격화된 계기는 이른바 ‘왕샤오민’ 사건이다. 1963년 고교생이었던 왕샤오민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자 그의 어머니가 1982년부터 정부 등에 딸의 안락사를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고 2000년 ‘안녕완화의료조례’, 2019년 환자 자주 권리법이 시행되면서 현재 제도가 완성됐다.대만에서는 병원에서 의료진과 상담한 뒤 ACP를 등록하면 향후 △말기 환자 △비가역적인 혼수 상태 △영구적인 식물 상태 △극중증 치매 △그 밖에 고통을 참기 어렵거나 질병이 회복될 수 없고 현재 의료 수준으로는 적절한 해결 방법이 없는 상황이 왔을 때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도 ‘사망 직전’일 때만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 대만이 한국보다 연명의료 중단 범위를 훨씬 넓게 인정한다.등록 절차도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보건소나 민간 기관에서 담당 직원과 간단한 상담을 받은 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하지만, 대만에서는 의료진과 1시간가량 상담한 뒤 ACP를 등록한다. 국립 대만대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청사오이 가정의학과 교수는 “ACP는 전국 280개 병원에서 상담을 통해 등록할 수 있다. ACP에 등록하면 해당 정보가 건강보험 카드에 등록되고 이후 모든 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른바 ‘웰다잉(Well-Dying)’ 관련 민간 움직임도 활발하다. 비영리단체(NPO) 대만 호스피스 재단에서는 무료 전화 상담을 한다. 재단의 창샤팡 이사장은 “ACP 등록을 하는 과정에서 걱정되고 고민되는 점에 대해 누구든 전문 간호사와 상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대상 질환에도 제한 없어대만이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노력하는 또 다른 방법은 호스피스 활성화다. 대부분 암환자만 호스피스를 받는 한국과 달리 대만은 호스피스 대상 질환에 제한이 없다. 매카이 메모리얼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도 절반가량이 암 환자였고, 나머지 절반은 암이 아닌 다른 질환 환자들이었다.병동에서 만난 쑨보펀 씨(68)도 입원한 96세 노모와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쑨 씨는 “3년 전 투병 중이던 아버지의 상태가 급작스레 악화돼 모르핀을 맞다가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 어머니만큼은 편안하게 보내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며 “이곳의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어머니가 떠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병상에 누운 노모는 담당 의사가 지나가자 손짓을 하며 천천히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팡 센터장은 “사람은 숨이 멎어 관이 닫힐 때 비로소 그 인생이 정의된다는 말이 있다”며 “호스피스는 인생의 가장 끝에서 마지막 길을 함께 돕는 일”이라고 말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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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친의 ‘단식 존엄사’ 지켜본 의사 “때로는 손 내려놓는게 사랑”

    희귀병의 고통 속에서 스스로 곡기를 끊고 삶을 마무리한 어머니. 그 선택을 곁에서 지켜 본 의사 딸은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기록해 책 ‘단식 존엄사’를 펴냈다. 대만 중산대 의대 재활의학과 교수인 비류잉 씨 이야기다.스스로 물과 음식 섭취를 중단해 사망에 이르는 단식 존엄사는 ‘VSED(Voluntarily Stopping Eating and Drinking)라는 용어로도 불린다. 국내에서는 낯설지만 미국과 네덜란드에서는 일부 시행되고 있다.비 씨의 어머니는 64세에 소뇌에 이상이 생겨 사지가 점점 마비되는 희귀병인 소뇌실조증을 진단받았다. 이후 병세가 악화되며 고통이 심해지자 단식 존엄사를 결심, 2020년 8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6월 27일 대만 타이베이시에서 만난 비 씨는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통해서 어떤 종류의 사랑은 손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어머니는 어떻게 단식을 결심했나.“평소 어머니는 억지로 치료해 고통을 연장하지 말자는 말씀을 자주 했다. 2019년 병세가 빠르게 악화되면서부터는 더이상 삶의 의미가 없고 어떻게 해야 잘 떠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 즈음에 어머니가 일본 의사가 단식 존엄사에 대해서 쓴 책을 읽고 단식으로 삶을 마무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머니가 20년 동안 병으로 고통받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물과 음식을 끊어 죽음에 이르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가.“물론 본인의 강한 의지와 가족의 지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일반인에게 굶어 죽는 아사는 고통스럽지만 임종을 앞둔 이에게는 다르다는 점이다. 단식 존엄사를 선택하는 고령의 중증 질환자는 일반인처럼 허기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어머니가 21일 동안 단식했다. 그 시간은 어떻게 보냈나.“처음 10일 동안에는 음식 섭취량을 천천히 줄이면서 죽과 삶은 채소, 연근물을 드셨다. 11일째부터는 고형 음식을, 13일째부터는 연근물을 끊었다. 갈증이 나면 면봉에 물을 묻혀 입술을 축이는 정도였다. 21일째 어머니는 편안한 얼굴로 돌아가셨다.”―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단식 17일째 되는 날, ‘생전 장례식’을 열었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어머니의 삶을 회고하며 대화를 나눴다. 어머니의 일생을 담은 영상도 틀어 함께 보면서 존경과 사랑을 전했다. 그 순간 어머니는 마치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 같았다. 우리 가족은 ‘참 잘 사셨다’는 상패를 드리는 듯한 마음으로 마지막을 함께 했다. 생전 장례식을 마치며 어머니는 ‘난 훌훌 떠날 테니 울지 말거라’라고 말씀하셨다.”― 단식 존엄사는 대만 내에서 논란의 대상이다.“대만 호스피스 학회에서는 단식 존엄사를 지지하지 않는다. 자살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미국과 네덜란드 등에서는 단식 존엄사를 하기 위한 표준 가이드라인도 마련돼 있다. 죽음의 방식은 환자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식 존엄사에 대한 더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죽음은 누구나 겪는 마지막 길이다. 품위 있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면 반드시 미리 준비해야 한다. 가족과 일상적으로 죽음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논의해야 한다. 그러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최대한 내려놓을 수 있다.”타이베이·신베이=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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