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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FO)가 한국인 지휘자 김은선(40)을 차기 음악감독으로 발표했다. 이는 1989년 정명훈의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 취임 이후 한국 지휘자 최고의 성과로 받아들여졌다. 올해 8월 1일 SFO에 공식 취임하는 그를 최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가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겨울에 빈 국립오페라, 내년 독일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영국 필하모니아,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디트로이트 교향악단…” 등의 일정을 얘기하며 “모두 데뷔 연주”라는 말을 덧붙였다. 세계 정상급 오페라 극장과 오케스트라들이다. “커리어가 폭발하듯 치솟는 시점 아니냐”고 하자 전화기 너머 잔잔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SFO 차기 감독으로 임명된 뒤 1년 반이 흘렀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전 세계를 휩쓴 1년 반이었죠. 제한된 여건 속에서 SFO와 어떻게 일해 오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지휘자들은 객원 연주가 많기 때문에 회의에 빠지는 경우가 많죠. 지난해 지휘 일정에 많이 취소돼 거의 모든 회의에 참석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예전 SFO에서 작품을 지휘하셨을 때의 인상은 어땠습니까. “2019년 5월에 드보르자크 ‘루살카’를 지휘했었죠. 세계 수십 개 오페라극장과 악단을 지휘했지만 SFO에서 지휘봉을 들었을 때 너무 ‘케미’가 딱 맞는 걸 느꼈어요. 한번 만나보고 바로 친해진 느낌이었죠. 행정 파트도 너무나 친절하고 언제든 도와줄 자세가 되어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럽에서 여러 활동을 해오셨는데, SFO를 유럽 오페라 극장과 비교하자면 어떤가요. “미국 오페라극장들은 유럽보다 보수적인 편입니다. 무대나 의상, 연출 콘셉트 등에서 혁신적인 시도가 적죠. 음악감독이 운영 전반에 관여하는 지는 극장마다 다른데, 저는 대체로 여러 의견을 내놓으려 합니다. 미국과 유럽이 크게 다른 점은, 유럽에서 국가의 지원이 큰 데 반해 미국에서는 민간의 예술지원이 큰 역할을 합니다. 예술계에 기부하시는 후원회 분들을 만나볼수록 그분들의 예술사랑에 감명을 느꼈어요. 유럽에서만 활동했다면 느끼기 힘들었을 부분이죠. 이 분들이 연주가들에게 묻고 싶은 것들을 대답하면서 연주가와 팬들의 ‘소통’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는 예술계에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지휘자로서, 개인으로서 어떻게 지냈는지요. “미국으로 활동의 거점을 거의 옮긴 시점에서 코로나19가 터졌어요. 너무 많이 연주가 취소됐죠. 거의 모든 연주가들이 겪은 일이지만, 할 수 있는 준비를 다 하고 막판까지 무대를 가지려고 노력하다 거의 마지막 순간에 취소되거든요. 저도 악보를 늘 손에서 놓을 수 없었어요.” ―그래도 큰 무대들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프랑스 독립기념일 콘서트를 에펠탑 앞의 샹드마르스 광장에서 지휘하셨죠. “3년 전 이미 예정되었던 콘서트지만 3월에 파리가 이동금지에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불투명해졌어요. 공연이 가능할지, 장소가 바뀔지, 악단 편성을 줄일지, 외국 연주자들이 참여할 수 있을지 등등. 결국 연주자는 많이 바뀌었고 무관중으로 진행되었죠. 그런데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도 이동금지 이후 이 연주가 처음이었어요. 첫날 연습할 때부터 단원들도 모두 기뻐했죠.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청자가 보아주셨고, 바로 프랑스 국립오페라 다음 연주 일정도 잡혔어요.” ―그 외 공연들도 소개해주시면.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족들을 위한 콘서트 세 개를 했어요. 모두 무관중으로 치러졌죠. 저로서는 라 스칼라 데뷔였고, 매우 재미있었죠. 여러 공연들이 취소됐지만 마드리드 등에서도 공연이 있었습니다.”―어떤 지휘자는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들이 ‘잘 안 굴러가는 고급차’ 같다고 하던데요. 품격은 높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는 뜻일까요. “저에게는 ‘잘 굴러가는 고급차’였어요.” (웃음)―음악감독을 맡으시면서 시작되는 2021~2022 시즌에 SFO에서 어떤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시게 되는지요. “제가 지휘하는 작품으로는 8월 21일 개막하는 푸치니 ‘토스카’와 10월 개막하는 베토벤 ‘피델리오’가 있습니다. 이외 객원지휘자들이 맡는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 ‘돈 조반니’, 2016년 SFO가 초연한 현대 오페라 ‘붉은 방의 꿈’ 등도 있죠. 유감스럽게도 코로나19로 프로덕션 수는 많이 줄어들어든 상태지만 기대와 설렘을 갖고 준비하고 있습니다.”―9월 10일 열리는 ‘오러클 파크 콘서트’도 흥미로운데요. 야구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구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야외 콘서트겠군요. “야외 콘서트는 아니고, 극장에서 하는 콘서트를 야구장에 중계합니다. 시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이자 콘서트여서 제게도 흥미롭습니다.”―지금 전화를 휴스턴에서 받고 있는데, 언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시나요. “그동안 휴스턴 오페라 수석객원지휘자를 맡아왔어요. 7월 초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할 예정입니다.”―고국 무대에서는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가야죠. 유럽처럼 가까우면 잠깐씩 다녀올 수 있을 텐데.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웃음)―2019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로 취임한 키릴 페트렌코와 함께 일하신 적이 있는 걸로 들었습니다. 어떤 분이었나요. “2011년 그가 프랑스 리용 오페라 음악감독일 당시 보조지휘자로 활동했죠. 페트렌코는 악보를 절대 손에서 놓는 법이 없고 늘 연구하는 분이었어요. 연습 때 제가 들은 바를 묻고, 사소한 코멘트 하나도 놓치지 않고 골똘히 생각합니다. 때로는 한밤중에 ‘내일 아침 연습 전에 악보에 이런 지시사항을 적어놓으라’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죠. 음악이 전부인 분입니다.” ―여성 지휘자가 많이 늘어났지만 지휘는 ‘남성의 일’이라고 인식되어 온 면이 강합니다. 동양인으로서 서양인들 사이에서 일하는 일도 쉽지만은 않을 거구요. 지휘계에서 커리어를 키워오면서 어려운 일은 무엇이었는지요. “예술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이죠. 지휘는 남자든 여자든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여자로 자라왔기 때문에 남자가 어떻게 하는지는 알 수 없죠.(웃음) 각자 분야의 정상들과 일하는 직업이고, 이 최고들과 일하다 보면 음악에 대해 생각할 시간 밖에 없어요. 동양인으로서 마주치는 편견도, 우리가 서양인이 판소리를 하는 걸 보면서 선입견을 갖기 쉬운 것처럼 역시나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쨌든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지휘자로서 성장하면서 가족, 스승 등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은 격려와 ‘선한 영향력’으로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어릴 때부터 뭐든지 믿고 맡겨 주시는 편이셨어요. 제가 중학생 때 아버지(김성재 전 문화부장관)가 써주신 글이 있어요. ‘생명을 존중해라. 예술의 즐거움과 높은 이상을 가지고 세계를 바르게 아는 기쁨으로 배움의 길을 가라. 정직한 노력의 결실로 감사하면서 살아라.’ 그 글을 서예가이신 외할아버지께서 써주셔서 제 방에 걸어두었죠. 매일 보면서 제 좌우명으로 삼게 된 것 같아요. 연세대 작곡과에 진학한 뒤 지휘자의 꿈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지휘를 가르치신 최승한 교수님이 ‘너는 좋은 지휘자가 될 수 있을거야’라고 말씀해주셨죠. 지휘자가 가져야 할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실제로 도움 되는 말씀을 들려주셨어요. ‘같은 곡을 몇 백 번씩 해본 악단들 앞에서 어떻게 네게 원하는 소리를 끄집어낼 수 있을까?’ ‘공연이 끝난 뒤 사람들이 하는 칭찬을 다 믿지 마라. 그 공연이 싫었던 사람은 이미 가버렸다’는 등의 말씀들이죠. 지금도 늘 마음에 새깁니다.”―여러 무대에 오르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면. “2019년 가을에 신시내티 심포니를 지휘하면서 대 바이올리니스트 안네조피 무터와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을 협연했어요. 그런데 첫 악장부터 기분이 이상했어요. 무터가 어디엔가 신경을 빼앗긴 느낌이었어요. 2악장이 시작되고 얼마 뒤 연주를 중단하더니 무대 바로 앞의 한 관객에게 ‘휴대전화 끄세요’라고 얘기하더군요. 관객이 연주 동영상을 찍고 있었던 거예요. 작은 에피소드지만 새로운 세대의 관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늘 스마트폰에 빠져 있고 세상과 접속되어 있으며 새로운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어하는 이 시대의 관객들과 어떤 방식으로 클래식과 만나는 것이 좋을까…. SFO에서도 이런 생각을 경영진과 많이 나누려 노력하고 있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어려서부터 ‘내가 협주곡 음반을 녹음한다면 라흐마니노프일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재혁(51)의 말이다. 그는 열세 살 때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으로 첫 협주곡 무대를 가졌고, 3년 후엔 협주곡 3번으로 처음 출전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공연 하루 전에 연락을 받아도 연주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뼈와 살에 새겨진 레퍼토리다. 그가 두 곡을 음반으로 내놓았다. 한스 그라프 지휘로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RNO)가 협연했고 프랑스 에비당스 레이블로 발매됐다. 전 세계 발매에 석 달 남짓 앞서 이달 국내에 먼저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9월에 녹음됐고, 코로나19 발생 후 처음 발매된 국내 연주가의 협주곡 음반이 됐다. 연주는 우선 정밀함으로 귀를 붙든다. 솔리스트의 주도에 악단이 깊은 공감을 보이며 호흡이 더없이 완벽하다. 솔로 파트의 모든 소리가 들리고 터치가 알알이 고르다. 이에 더해 풍요롭다.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들에서는 여러 연주자가 숨 가쁜 클라이맥스로 달려가면서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아쉬워하게 만든다. 이 음반에서는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직선성과 풍성함이 서로를 희생하지 않고 만난다. 정점을 향해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도 한결같이 풍성한 꽃들을 본다. 화음 연결의 묘미와 러시아 어딘가의 민요 향기가 섞여 있을 것 같은 선율미, 매끄러운 터치가 주는, 귀를 당기는 쾌감이 모두 살아있다. 무신경하게 지나치거나 감흥이 덜한 부분이 없다. 솔리스트와 악단, 녹음의 개성이 단단하게 서로 손잡은 점도 음반의 완성도에 큰 몫을 한다. 명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창단한 RNO는 러시아 전통보다는 현대적 정밀함이 두드러지는 합주로 어필해왔다. ‘러시아 악단’에서 연상되는 화난 듯한 고음 현이나 전체 합주를 뚫고 포효하는 금관은 상상할 필요 없다. 그 대신 잘 블렌딩된 음료 같은 달콤함이 있다. 녹음도 절묘하다. 관현악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단단한 배경의 스테이지를 마련하며, 피아노는 해머가 현을 두드리는 모습이 눈에 잡힐 듯하다. 모스크바에 새로 개관한 최신 시설의 ‘자리아디예 홀’에서 최첨단의 사운드로 녹음했다고 발매사는 밝혔다. 도이체그라모폰(DG) 부사장을 지냈으며 서울시립교향악단 공연기획자문역으로도 활동해 친숙한 명프로듀서 마이클 파인이 제작을 총지휘했다. 조재혁은 11월 안토넬로 마나코르다가 지휘하는 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런던 카도간홀에서 이 두 협주곡을 협연할 예정이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희귀문서 거래 전문가인 저자가 한 수집가의 유품들이 출품된 미국 크리스티 경매장을 찾았다. 상자에 마구잡이로 담긴 문서들이 보였다. 옛 종이를 훑던 저자의 손이 순간 멈췄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글씨로 영국 왕에게 구출을 요청하는 편지였다. 더 놀라운 문서도 나왔다. 나폴레옹의 죽음을 알리는 서류와 해부 보고서였다. 경매는 6000달러에서 시작됐다. 아무도 문서의 가치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얼굴을 보이지 않은 전화 입찰자가 높은 가격을 부르기 시작했다. 가격은 4만, 5만 달러를 넘어섰고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자는 문서를 손에 넣었을까. 몇 g에 불과한 옛 문서에는 세상을 바꾼 순간뿐 아니라 유명인의 작업 스타일, 성품까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고문헌 수집에는 상징과 의미에 대한 깊고 심오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 이해가 ‘진품 명품’을 찾아내는 열쇠라며 저자는 풍부한 사례를 소개한다. 예컨대 유명인의 필적이라고 다 귀한 건 아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모든 법안을 13개 주에 각각 서명해 보냈다. 이 중 첫 번째 문서를 구별해낸 이가 짜릿한 성공을 맛봤다. 저자의 아버지였다. 변호사였던 아버지의 취미 겸 두 번째 직업은 AP통신 파리특파원을 지낸 아들이 이어받았다. 나폴레옹의 육필은 많지만 저자는 나폴레옹이 스페인 침공을 명령하는 편지를 찾아내 높은 값에 되팔 수 있었다. 깊은 역사지식에 외국어 실력까지 동반돼야 가능한 일이다. 유명인사가 쓴 문서 중에서도 글쓴이의 특성이 잘 드러날수록 귀한 대접을 받는다. 예를 들어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 중 동생 오빌 라이트의 편지들 가운데 그가 ‘새로부터 비행의 비밀을 배우는 것은 마법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쓴 것은 더 각별한 가치를 지닌다. 문서 출처가 신뢰할 만한지도 중요하다. 유명인의 직계 후손이 조상의 문서를 공개한다면 신뢰도가 높아진다. 하지만 믿을 만한 곳에서 나오는 가품(假品)도 있다. 미국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이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대통령들은 자동 서명 기계를 사용했다. 2개 이상 문서의 서명이 완전히 같다면 기계로 한 서명이다. 비서가 대신 서명하게 한 대통령도 있었다. 문서 수집은 위조 전문가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전설적인 위조가 조지프 코우지나 로버트스프링이 남긴 가짜 문서는 지금도 여러 수집가의 손에 모셔져 있다. 위조가도 고유의 스타일이 있다. 코우지는 끝까지 링컨의 서명을 제대로 흉내 내지 못했다. 한두 세기 전 옛 종이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여기 새 잉크로 글을 쓰면 조금씩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여 가짜 문서를 구분할 수 있다. 때로는 위협도 감수해야 한다. 저자는 존 F 케네디 암살 직후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오간 대화를 담은 녹음테이프를 입수했다. 약 40분 분량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미 국립기록보관소가 이걸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법률자문가는 ‘정부 압력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저자가 입수한 테이프는 똑같은 내용이 담긴 두 개였고, 문제는 만족스럽게 해결됐다. 각 장마다 흥미로운 일화가 기습하듯 튀어나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종종 유럽 얘기도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독립한 지 250년이 채 안 된 미국 문헌 얘기다. 마지막 왕조의 역사만 그 두 배 길이인 우리도 풍성한 고문헌 이야기를 갖고 있다. 그 비화들도 이렇게 흥미롭게 묶여 나오길 기대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크라이슬러나 하이페츠 같은 20세기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도 오페라 아리아나 발레곡을 자기만의 편곡으로 연주했죠. 그분들처럼 바이올린의 목소리에 오페라극장 무대 같은 우아함을 담으려 했습니다.” 봄날 같은 연주를 펼쳐온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32)가 새 음반 ‘바이올린 온 스테이지’를 내놓았다. 그의 세 번째 음반이자 올해 2월 한국 여성 연주자 최초로 도이체 그라모폰(DG) 전속 아티스트가 된 뒤 처음 내놓는 앨범이다. 잔카를로 게레로의 지휘로 폴란드 NFM(국민음악포럼) 브로츠와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반주했다. 같은 제목으로 2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을 비롯한 전국 네 곳에서 리사이틀도 연다. 미국 줄리아드음악원 재학 중 오페라와 발레의 열혈 팬이 된 그는 앨범에 실은 아홉 곡 중 여섯 곡을 ‘무대 음악’으로 꾸렸다. 마스네 오페라 ‘타이스’ 중 ‘명상’은 본디 바이올린 곡으로 유명하다. 비제 ‘카르멘’을 편곡한 왁스만 ‘카르멘 환상곡’, 생상스 ‘삼손과 델릴라’ 중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 등도 수록했다. 발레곡으로는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파드되(2인무)가 실렸다. 빈 필 신년음악회 편곡자로 유명한 미하엘 로트가 편곡을 맡았다. 김봄소리는 “단순 편곡을 넘어 바이올린의 특징을 너무 잘 살려주셨다”며 즐거워했다. ‘무대’ 외에 음반의 두 번째 주제는 폴란드 작곡가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1835∼1880)다. 김봄소리는 2016년 폴란드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이 작곡가와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2017년 야체크 카스프시크 지휘 바르샤바 필하모닉과 함께한 첫 음반에서도 비에니아프스키의 협주곡 2번을 연주한 바 있다. 이번 앨범에는 그의 ‘구노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과 소품으로 낯익은 ‘전설’, ‘화려한 폴로네즈’를 실었다. 두 번째 음반을 함께한 피아니스트 블레하치도 폴란드인이고, 이번 앨범의 반주악단도 폴란드 악단이다. “어릴 때는 비에니아프스키 곡이 너무 과시적인 게 아닐까란 편견을 가졌어요. 이제는 그의 밝은 멜로디와 기교를 사랑합니다. 바이올린으로 노래하는 방법을 늘 고민하고 완벽하게 이해한 작곡가입니다. 폴란드분들과 함께 연주하면서 그들의 전통과 스타일을 점점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가 DG 전속 아티스트가 된 올해는 그의 은사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DG에서 첫 앨범을 발매한 지 50년이 되는 해. 그는 “선생님이 너무나 기뻐하며 격려해 주셨다”며 “선생님의 스튜디오에서 전설적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를 들으며 함께 감동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리사이틀 ‘바이올린 온 스테이지’는 롯데콘서트홀에 앞서 22일 경기아트센터, 23일 대구 웃는얼굴아트센터, 25일 경기 안성 안성맞춤아트홀에서 열린다. 무대 첫 곡은 그의 이름과 잘 어울리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으로 연다. 전 공연을 일리야 라시콥스키 성신여대 교수가 반주한다. 서울 공연 3만∼10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크라이슬러나 하이페츠 같은 20세기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도 오페라 아리아나 발레곡을 자기만의 편곡으로 연주했죠. 그 분들처럼 바이올린의 목소리에 오페라극장 무대 같은 우아함을 담으려 했습니다.” 봄날같은 연주를 펼쳐온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32)가 새 음반 ‘바이올린 온 스테이지’를 내놓았다. 그의 세 번째 음반이자 올해 2월 한국 여성 연주자 최초로 도이체 그라모폰(DG) 전속 아티스트가 된 뒤 처음 내놓는 앨범이다. 잔카를로 게레로의 지휘로 폴란드 NFM(국민음악포럼) 브로츠와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반주했다. 같은 제목으로 2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을 비롯한 전국 네 곳에서 리사이틀도 연다. 미국 줄리어드 음대 재학 중 오페라와 발레의 열혈 팬이 된 그는 앨범에 실은 아홉 곡 중 여섯 곡을 ‘무대 음악’으로 꾸렸다. 마스네 오페라 ‘타이스’ 중 ‘명상’은 본디 바이올린 곡으로 유명하다. 비제 ‘카르멘’을 편곡한 왁스만 ‘카르멘 환상곡’, 생상스 ‘삼손과 델릴라’ 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등도 수록했다. 발레로는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파드되(2인무)가 실렸다. 빈 필 신년음악회 편곡자로 유명한 미하엘 로트가 편곡을 맡았다. 김봄소리는 “단순 편곡을 넘어 바이올린의 특징을 너무 잘 살려주셨다”며 즐거워했다. ‘무대’ 외에 음반의 두 번째 주제는 폴란드 작곡가 헨리크 비에냐프스키(1835~1880)다. 김봄소리는 2016년 폴란드 비에냐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이 작곡가와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2017년 야체크 카스프치크 지휘 바르샤바 필하모닉과 함께 한 첫 음반에서도 비에냐프스키의 협주곡 2번을 연주한 바 있다. 이번 앨범에는 그의 ‘구노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과 소품으로 낯익은 ‘전설’, ‘화려한 폴로네즈’를 실었다. 두 번째 음반을 함께 한 피아니스트 블레하츠도 폴란드인이고, 이번 앨범의 반주악단도 폴란드 악단이다. “어릴 때는 비에냐프스키 곡이 너무 과시적인 게 아닐까란 편견을 가졌어요. 이제는 그의 밝은 멜로디와 기교를 사랑합니다. 바이올린으로 노래하는 방법을 늘 고민하고 완벽하게 이해한 작곡가입니다. 폴란드 분들과 함께 연주하면서 그들의 전통과 스타일을 점점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가 DG 전속 아티스트가 된 올해는 그의 은사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DG에서 첫 앨범을 발매한지 50년이 되는 해. 그는 “선생님이 너무나 기뻐하며 격려해주셨다”며 “선생님의 스튜디오에서 전설적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를 들으며 함께 감동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리사이틀 ‘바이올린 온 스테이지’는 롯데콘서트홀에 앞서 22일 경기아트센터, 23일 대구 웃는얼굴아트센터, 25일 경기 안성 안성맞춤아트홀에서 열린다. 무대 첫 곡은 그의 이름과 잘 어울리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으로 연다. 전 공연을 일리야 라시콥스키 성신여대 교수가 반주한다. 서울 공연 3만~10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최종 결선을 앞두고 목 상태가 심하게 나빠져서 거의 포기했죠. 그런데 기적처럼 목이 돌아왔습니다. 열흘 동안 거듭 좌절과 환희를 오갔어요.” 바리톤 김기훈(29)이 19일(현지 시간) 막을 내린 영국 BBC 카디프 세계 성악가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메인 부문(Main Prize) 우승을 차지했다. 카디프 콩쿠르는 1989년 메인 부문에서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가곡 부문(Song Prize)에서 브라인 터펠이라는 불세출의 바리톤을 배출하며 최고 권위의 성악 콩쿠르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인으로는 1999년 바리톤 노대산, 2015년 베이스 박종민이 가곡 부문에서 1위를 했으며, 오페라를 겨루는 메인 부문 우승은 김기훈이 처음이다. 15개국 16명이 결선에 진출한 올해 콩쿠르에서는 1차 결선 중 김기훈이 이끌어낸 ‘눈물’이 큰 화제가 됐다. 그가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그리움, 나의 망상이여’를 부르는 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듣던 심사위원 로버타 알렉산더(소프라노)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이 장면은 BBC TV를 통해 영국 전역에 방송됐다. “이때만 해도 결과가 좋겠구나 싶었죠. 그러고는 목이 갑자기 잠겼다가 간신히 돌아오기는 했는데 최종 결선에서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중 ‘나는 거리의 제1인자’를 그만 망쳤어요. 수상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제 이름이 호명되더군요.” 그는 5년 전 동아일보 주최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던 때가 떠올랐다고 했다. 테너 김건우(당시 2위)가 너무 잘 불러 끝까지 마음을 졸인 만큼 환희는 더 컸다. 이후 2019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와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최하는 오페랄리아 콩쿠르 2위를 연달아 수상했다. 한창 커리어가 뻗어 나갈 시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발이 묶였지만 올 시즌에는 폴란드 바르샤바 오페라와 독일 뮌헨 주립오페라에서 푸치니 ‘라보엠’, 미국 샌디에이고 오페라에서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 출연 등이 예정돼 있다. 그는 7월 8일 경기 성남시 티엘아이아트센터에서 독창회를 연다. 프로그램은 대부분 카디프 콩쿠르에서 열창한 노래들로 구성했다. 심사위원의 눈물을 이끌어낸 ‘죽음의 도시’의 아리아와 바그너 ‘탄호이저’ 중 ‘저녁별의 노래’, 카디프 콩쿠르 가곡 부문 경연에서 부른 김동환 ‘그리운 마음’을 비롯해 열한 곡을 프로그램에 올렸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반주자로 활동한 성악 전문 피아니스트 정태양이 반주를 맡는다. 4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최종 결선을 앞두고 목 상태가 심하게 나빠져서 거의 포기한 상태였죠. 그런데 기적처럼 목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열흘 동안 수많은 좌절과 환희를 오갔어요.” 바리톤 김기훈(29)이 19일 저녁(현지시간) 막을 내린 영국 BBC 카디프 세계 성악가 콩쿠르(이하 카디프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성악 콩쿠르 중 하나인 카디프 콩쿠르는 1989년 메인 부문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 가곡 부문 브라인 터펠이라는 두 불세출의 바리톤을 배출한 바 있다. 한국인으로는 1999년 바리톤 노대산, 2015년 베이스 박종민이 가곡 부문 1위를 차지했으며, 메인 부문(오페라 부문) 우승은 김기훈이 처음이다. 15개국 16명이 결선에 진출한 올해 콩쿠르에서는 1차 결선 중 김기훈이 이끌어낸 ‘눈물’이 큰 화제가 됐다. 그가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그리움, 나의 망상이여’를 부르는 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심사위원 로베르타 알렉산더(소프라노)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이 장면은 BBC TV를 통해 영국 전역에 방송됐다. “이때만 해도 결과가 좋겠구나 싶었죠. 그리고는 목이 갑자기 잠겼다가 간신히 돌아오기는 했는데 최종 결선에서 로시니 ‘세빌랴의 이발사’중 ‘나는 거리의 제1인자’를 심하게 망쳤어요.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제 이름이 호명되더군요.” 그는 5년 전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우승 때가 떠올랐다고 했다. 테너 김건우(당시 2위)가 너무 잘 불러 끝까지 마음을 졸인 만큼 환희는 더 컸다고 회상했다. 그 뒤 그는 2019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와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최하는 오페랄리아 콩쿠르 2위를 연달아 수상했다. 한창 커리어가 뻗어나갈 시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활동에 발이 묶였다. 올 시즌에는 폴란드 바르샤바 오페라와 독일 뮌헨 주립오페라에서 푸치니 ‘라보엠’, 미국 샌디에이고 오페라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 출연 등이 예정돼 있다. 그는 7월 8일 경기 성남시 티엘아이아트센터에서 카디프 콩쿠르 수상 후 첫 독창회를 연다. 카디프에서 심사위원의 눈물을 이끌어낸 ‘죽음의 도시’의 아리아와 바그너 ‘탄호이저’ 중 ‘저녁별의 노래’, 카디프 콩쿠르 가곡부문 경연에서 부른 김동환 ‘그리운 마음’, 김주원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비롯해 열 한 곡을 프로그램에 올렸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반주자로 활동한 성악 전문 피아니스트 정태양이 반주를 맡는다. 4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서울 도심에서 만나는 한여름의 음악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이 올해로 2회째를 맞아 ‘브람스 & 피아졸라’를 주제로 열린다. 8월 13∼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지난해 베토벤을 주인공으로 시작된 ‘클래식 레볼루션’은 이례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와중에도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음악감독 크리스토프 포펜이 2주간의 자가 격리를 감수하고 입국해 축제를 지휘한다. 포펜은 자르브뤼켄 도이체 라디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5년간 이끈 명지휘자이자 뮌헨국립음대에서 바이올린과 실내악을 가르치는 명교수로 이름 높은 인물. 노부스콰르텟의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 김영욱,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김동현, 아벨 콰르텟, 아레테콰르텟 등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올해 ‘클래식 레볼루션’은 브람스 프로그램(8월 13∼18일)과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탱고의 대명사 아스토르 피아졸라를 기리는 ‘피아졸라와 그의 유산’ 프로그램(8월 19∼22일)으로 나뉜다. 브람스 프로그램으로는 먼저 네 개 교향악단이 출연하는 브람스 교향곡·협주곡 전곡 무대가 눈에 띈다. 13일에는 오스모 벤스케 지휘 서울시향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교향곡 1번과 피아노협주곡 1번을, 16일에는 최수열 지휘 부산시향과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첼리스트 문태국이 교향곡 2번과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을, 17일에는 음악감독 포펜이 직접 지휘하는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이 교향곡 4번과 바이올린협주곡을, 18일에는 이병욱 지휘 인천시향과 피아니스트 김태형이 교향곡 3번과 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 15일에는 노부스 콰르텟이 하루 동안 세 개의 콘서트라는 과감한 도전을 펼친다. 오전 11시 반에는 브람스 현악4중주 1번과 비올리스트 박경민, 첼리스트 박유신이 함께하는 현악6중주를, 오후 3시에는 현악4중주 2번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함께하는 피아노5중주를, 오후 7시에는 현악4중주 3번과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이 함께하는 클라리넷5중주 무대를 마련한다. 브람스 프로그램으로는 이 밖에 14일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과 피아니스트 이진상이 함께하는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무대가 열린다. 피아졸라 프로그램은 19일 금난새 지휘 성남시향,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 기타리스트 박규희, 오르가니스트 신동일의 호화 멤버로 문을 연다.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 ‘김연아의 마지막 시즌 프리스케이팅 곡’으로 유명한 ‘아디오스 노니노’ 등 피아졸라의 대표곡과 로드리고의 아란후에스 협주곡 등을 선보인다. 20일 노부스콰르텟, 21일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이 협연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22일 오스모 벤스케 지휘 서울시향과 오보이스트 함경의 협연무대로 이어진다. 오케스트라 공연 3만∼9만 원, 실내악 공연 3만∼6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부대에 싸여 마차에 실린 모차르트의 시신이 구덩이에 던져지고, 인부가 횟가루를 한 삽 퍼서 뿌린 뒤 서둘러 사라진다. ‘아멘’을 노래하는 구슬픈 합창이 화면 가득히 퍼진다. 작곡가가 스스로에게 바치는 장송곡이 된 모차르트의 레퀴엠(장송미사곡) 중 ‘라크리모사’(눈물의 날)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묘사된 모차르트의 마지막 길이다. 그런데 잠깐, 이 ‘아멘’을 모차르트가 쓰지 않았다면? 예술사상의 거장들이 대작을 미처 끝맺지 못하고 삶을 마치는 일은 자주 있다. 그림이라면 스케치 상태로 전시할 수도 있지만, 미사곡이나 오페라를 쓰다가 중단했거나 선율에 화음을 붙이지 못했다면 세상에 내놓기 곤란해진다. 연주를 위해 갖춰야 할 형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듯이 모차르트는 레퀴엠을 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눈물의 날’ 부분에서 모차르트가 완성한 부분은 처음 여덟 마디까지다. 그 뒤는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이어받아 완성했다. 모차르트의 장례 장면에 나오는 ‘눈물의 날’에는 모차르트가 쓴 부분과 제자가 이어받은 부분이 섞여 있다. ‘아멘’ 합창은 쥐스마이어가 완성한 부분이다. 시대가 지나면서 쥐스마이어가 완성한 부분이 모차르트의 스타일과 다르다, 모차르트의 수법과 비교해 미숙하다는 논란이 일어났다. 몇몇 음악학자와 작곡가들이 새로운 ‘대안’ 악보를 만들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에 불을 붙인 사건이 ‘아멘 푸가’ 악보 발견이다. 1960년에 모차르트가 합창을 위해 쓴 푸가(여러 연주 파트가 특정 주제를 모방하면서 뒤따라가는 것) 악보가 발견됐다. 이것 역시 미완성 악보였고 가사는 ‘아멘’만으로 되어 있었다. 이 악보가 모차르트 ‘레퀴엠’의 다른 파트 악보와 함께 발견된 데다 ‘라크리모사’와 같은 D단조였기 때문에 음악학자들은 이 아멘 푸가가 ‘라크리모사’ 마지막 부분에 붙이려던 것이라고 추측했다. 음악학자 로버트 레빈과 덩컨 드루스 등이 이 아멘 푸가를 적용한 새로운 악보를 만들었다. 이렇게 새로 완성된 모차르트 레퀴엠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쥐스마이어 판의 대안으로 종종 연주된다. 작곡가가 대작을 끝맺지 못하고 죽은 다른 사례로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0번이 있다. 말러는 이 곡을 1악장만 완성하고 세상을 떠났는데, 5개 악장 중 나머지 네 개 악장도 선율 부분은 다 써두었다. 화음을 붙이고 악기 파트를 지정해서 관현악용 악보로 만드는 일이 남은 셈이다. 영국 음악학자 데릭 쿡이 먼저 1960년에 이 곡 전체의 ‘연주회용 버전’을 발표했다. 말러가 끝내지 못한 곡을 감히 완성했다고 선언할 수는 없고, 연주해보기 위한 일종의 시험판이라는 의미였다. 말러는 관현악 색채가 독특하기로 정평 나 있어서 타인이 모방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쿡의 악보는 너무 색깔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 뒤 여러 작곡가와 음악학자들이 말러의 독특한 색깔을 재현한 새 악보를 만들려 시도했다. 음악학자 마체티, 지휘자 바르샤이 등이 만든 악보들의 연주도 오늘날 여러 음반과 음원으로 발매되어 있다. 근대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푸치니도 마지막 오페라인 ‘투란도트’를 끝부분만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푸치니의 소속사인 리코르디는 신예 작곡가인 알파노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알파노는 푸치니가 오페라 앞부분에 사용한 소재들을 다시 끌어와서 화려한 피날레를 만들었다. 이 부분은 만족스러웠지만 이 피날레 바로 앞에 나오는 투란도트 공주와 칼라프 왕자의 이중창에 대해 ‘푸치니답지도 아름답지도 않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푸치니 사후 77년 만인 2001년에 작곡가 루차노 베리오가 완성한 대안 버전이 나와서 눈길을 끌었다. 이 버전은 우리에게 익숙한 알파노 버전처럼 화려하지 않고 조용하게 끝난다. 17일 경기 수원시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선 박지훈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수원시립합창단 정기연주회가 열린다. 로버트 레빈이 ‘아멘 푸가’를 적용해 새로 악보를 만든 모차르트 레퀴엠을 연주한다.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천재의 운명과 함께 이 작품이 겪은 풍상을 기억하며 새롭게 들리는 부분을 따라가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라보엠’ ‘토스카’ ‘투란도트’를 쓴 오페라 거장 푸치니가 서부극을?” 푸치니 일곱 번째 오페라이자 오페라 역사상 드문 서부극인 ‘서부의 아가씨’를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한다. 7월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서부의 아가씨’는 20세기 초 유럽 최고 예술인들을 불러들이던 미국 문화계 풍토와 새로운 소재를 찾아 헤매던 푸치니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산물이다. 190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푸치니 페스티벌’을 맞아 뉴욕에 초청된 푸치니는 ‘나비부인’을 연극으로 만들었던 극작가 벨라스코의 연극 ‘서부의 아가씨’를 관람했다. 서부극 영화의 효시로 꼽히는 E S 포터 감독의 ‘대열차강도’가 나오고 4년 뒤였다. 푸치니는 배경에 로키 고봉들이 스쳐가는 무대와 눈보라 효과에 매혹됐고 오페라 작업에 착수했다. 초연은 1910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열렸다. 배경은 서부 개척시대 캘리포니아의 탄광촌. 보안관 잭 랜스는 살롱을 경영하는 꿋꿋하고 당찬 여성 미니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미니의 마음은 딕 존슨이라는 미지의 남자에게 향해 있다. 눈보라가 치는 어느 밤, 미니와 딕은 뜨거운 사랑을 나누지만 상상할 수 없던 딕의 정체가 드러나고, 보안관은 복수를 다짐하는데…. 이 작품은 초연 직후 ‘푸치니 4대 오페라’ 중 하나로 꼽혔다. 하지만 세계가 제1차 세계대전의 포연에 휩싸이고 난 뒤 유럽 오페라팬들이 ‘푸치니의 해피엔딩 오페라’를 낯설어한 데다 쉽게 다가오는 소프라노 아리아가 없다는 이유로 그의 대표작 대열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푸치니가 차용한 19세기 미국 서부 음악의 특징, 미국의 광활한 자연을 그려낸 유려한 선율이 색다른 감동을 준다. 테너 아리아 ‘내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와 두 주인공의 눈보라 속 키스신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지휘자 피에트로 리초와 연출가 니콜라 베를로파가 이탈리아 본고장식 푸치니를 전해줄 예정. 리초는 2013년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돈 카를로’로, 베를로파는 2018년 국립오페라단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로 국내 오페라 팬들과 낯을 익혔다. 무대와 의상, 조명, 안무까지 이탈리아인 스태프가 맡는다. 살롱 여주인 미니 역에 아르메니아 소프라노 카린 바바잔얀과 이윤정, 미지의 남주인공 딕 존슨 역에 테너 마르코 베르티와 국윤종, 그의 적인 보안관 잭 랜스 역에 바리톤 양준모 최기돈이 출연한다. 바바잔얀은 EMI레이블로 2009년 푸치니 아리아집을 내놓았으며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푸치니 전문 소프라노. 베르티는 메트로폴리탄과 밀라노 라스칼라, 런던 로열오페라 등 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에서 베르디와 푸치니 전문 테너로 활동해왔다. ‘투란도트’의 칼라프 역 등 수많은 영상물에도 출연했다.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메트오페라합창단이 반주와 합창을 맡는다. 1만∼15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역사의 종말’을 외치며 자본주의의 완승을 구가했던 1990년대는 단지 추억인가. 전 세계에 걸쳐 소득 격차가 심화되고 10년 전엔 미국 뉴욕 월가 점령시위가 일어났다. 좌우 양극단에 선 정치가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에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진단들이 터져 나온다. 이 책들엔 저자들이 앞서 쓴 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프랑스인 피케티는 부유층의 자본 집중을 분석한 ‘21세기 자본’으로, 미국인 에런라이크는 최저임금 노동을 직접 체험하며 빈곤의 사회적 배경을 고발한 ‘노동의 배신’으로 자본의 무한 탐욕을 직격한 바 있다. 새 책들은 두 저자가 오랜 기간 기고해 온 다양한 주제의 칼럼을 묶었다. ‘대표작’들에 비해 구성은 성글지만 장점도 분명하다. 이민문제, 환경문제, 유사과학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갈등과 모순은 서로 깊이 얽혀 있으며, 한 문제의 해결은 다른 문제들의 해결과 함께해야 한다는 점을 다양한 분석과 일화로 설득한다. 피케티가 말하는 사회주의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21세기에 잔존한 레닌주의의 망령이 아니라 ‘참여적이고 지방분권화된 방식이며 민주적이고 환경친화적이며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고 여성 존중의 사상을 담은’ 이념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체제를 지칭하기 위해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재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때로 그의 주장은 예상을 넘는다. 세계 곳곳에서 기본소득 지급 제안이 나오지만 그는 기본소득보다 정당한 임금이 우선이라고 전제한 뒤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보다 최소자산을 지급하자고 한발 더 나아간다. 재원은 자산과 상속에 대한 누진세로 충분히 조달 가능하다는 것이다. 피케티의 칼럼들이 경제정의 재설계의 개념 자체에 비중을 둔다면 에런라이크의 글들은 체험을 바탕으로 미국사회 곳곳에 확대경을 들이대는 발랄함으로 다가온다. ‘지방흡입술 한 건당 1.9리터의 지방이 나오니 미국인의 30%가 비만인 점을 감안하면 1억7000만 리터의 연료를 충당할 수 있다’는 식의 풍자가 넘친다. 스타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핵심 주장은 적잖이 겹친다. 이민 문제나 환경 문제, 교육 문제도 자본 집중 문제와 직접 얽혀 있다는 관점에서 특히 그렇다. 에런라이크는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인과 일자리 경쟁을 하지 않도록 하려면 법의 보호를 받도록 하라’는 역발상을 펼친다. 건강보험도 제공하지 않고 급여를 떼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경영자들이 불법 이민자를 택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피케티는 ‘비판해야 할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이동이 아니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라고 역설한다. 어느 책이나 그렇듯 각각의 주장에 함몰되기보다는 독자 자신의 주관을 유지하며 읽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분배 우선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사람보다 자유무역과 시장의 순기능에 더 가치를 두는 이에게 상대편의 논리를 이해할 자료로 권하고 싶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한바탕 놀아보자는 프로그램이죠. 요즘 어려운 분이 많지만 ‘힘들수록 더 자유분방하게 풀어나가 보자’는 메시지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내 안의 집시를 찾는 여행일까.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서울대 교수·57)이 자유로운 민속 선율이 두드러지는 곡들로 독주회를 연다.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집시를 뜻하는 라벨 ‘치간’으로 시작해 김한기(창원대 명예교수)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강강술래’, 버르토크 랩소디 2번, 에네스쿠 소나타 3번으로 이어진다. 2011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준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정한빈이 협연한다. 시작은 루마니아 작곡가 에네스쿠의 소나타였다.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분방한 방랑자들을 그려낸 듯한 작품이죠. 곡에서 표현된 열정이 한국인들의 감성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곡을 중심으로 민속적 요소가 두드러진 작품들을 골랐다. ‘치간’은 라벨이 바이올리니스트 옐리 다라니의 집시풍 연주를 듣고 영감을 받아 쓴 곡이다. 버르토크 랩소디 2번도 집시 바이올리니스트의 즉흥연주 스타일이 깊이 배어 있다. 김한기의 ‘강강술래’도 이 콘셉트에 딱 맞게 느껴져 두 번째 연주곡으로 선택했다. “민속적인 가락과 화성에 작곡가 고유의 색채를 입혀 난해하지 않게 풀어낸 작품이죠. 고전 낭만 작품들에서 친숙한 네 개 악장의 균형미도 있고요. 사실 김 선생님이 제게 초연을 권하신 다른 작품이 있는데, 이번 독주회에는 ‘강강술래’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매우 즐기면서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믿는 구석도 있다. “함께 연주하는 정한빈 피아니스트가 매우 생각이 깊고 너무도 훌륭하게 작품을 연구했어요. 이제 제 연습만 걱정하면 되죠. 하하….” 이경선은 올해 11년차 교수다. 정성 들여 키운 제자들이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에 진출해 자리 잡은 모습을 보는 게 보람이고 재산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음악감독을 맡은 창원 국제 실내악축제는 올해도 11월에 열린다. 탱고의 대명사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피아졸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를 폐막공연에서 연주한다. 세계적인 반도네온(아코디언과 닮은 아르헨티나의 건반악기) 연주가 제이피 조프레가 바이올린과 반도네온을 위해 편곡한 버전을 조프레와 협연할 예정이다. 실내악단 서울비르투오지 음악감독도 맡고 있다. 올 9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클래식, 벽을 허물다’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로 여러 계획이 무산돼 아쉬움이 컸어요. 사실은 제 개인의 미래보다 서울비르투오지가 더 잘됐으면 좋겠어요.(웃음)”1만5000∼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저희 같은 앙상블요? 세상에 없죠.” 피아노 하나, 현악기 셋, 목관악기 넷, 금관악기 하나. 그리고 남자 아홉 명. 2017년 결성된 ‘클럽M’의 구성이다. 현악기 셋만으로도 고음에서 저음까지 완전한 앙상블을 이루고, 관악기 다섯만으로도 완벽한 5중주의 화음이 나온다. 모두가 함께하면 작은 오케스트라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국내는 물론이고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조합이다. 유별난 앙상블 클럽M이 ‘2021 세종 체임버시리즈’ 첫 번째 순서로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 무대에 오른다. 슈만 피아노 5중주 Op. 44, 베토벤 피아노 3중주 ‘거리의 노래’, 상주 작곡가 손일훈이 편곡한 라벨 ‘어미거위 모음곡’을 연주한다. 리더인 피아니스트 김재원은 “피아니스트로서 실내악 연주를 많이 하다 보니 여러 분야에서 실력 있는 젊은 연주자들이 한 무대에 서는 앙상블을 꿈꾸게 되었다”며 클럽M 창단 동기를 밝혔다. 악기별로 함께하고 싶은 연주자에게 한 명씩 의향을 묻다가 출범까지 3년이 훌쩍 흘렀다. 바이올린 김덕우, 비올라 이신규, 첼로 심준호, 플루트 조성현, 오보에 고관수, 클라리넷 김상윤, 바순 유성권, 호른 김홍박이라는 황금 멤버가 모였다. 세계적 오케스트라 단원이나 실내악 연주자, 독주자 등으로 바쁘게 활동 중인 실력자들이다. “일단 모이는 게 가장 어렵죠. 세계에 흩어져 있으니 일정 내기가 쉽지 않아요. 공연장 대관 날짜도 맞춰야 하고…. ‘단체 톡방’이 없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싶어요. 일정은 물론이고 연주곡 정하기, 작업 콘셉트 등 모든 것을 톡으로 의논하죠.” 4년 전 창단 때부터 ‘다가가기 프로젝트’로 최대한 몸을 낮췄다. 각 분야 최고 연주가들이지만 홍익대 길거리에서 버스킹으로 젊은 세대에게 출범을 알렸다. 뮤직비디오와 캐럴 음원도 제작해 음원 사이트와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했다. 세상에 없는 조합인 만큼 ‘이런 아홉 명’을 위해 작곡된 곡은 없었다. 하지만 ‘연주할 수 없는 곡’도 없다. 기존 독주곡, 실내악, 관현악곡들이 상주 작곡가 손일훈의 손을 거쳐 클럽M 전용으로 편곡된다. 모든 곡을 아홉 명 전부가 연주하는 것도 아니다. 한 무대에서 다양한 편성이 나올 뿐 아니라 현악 단원이나 관악 단원 등 일부가 따로 활동하는 유닛 활동도 활발히 펼쳐 왔다. 이번 공연에서 라벨 ‘어미거위’ 모음곡은 클라리넷 바순 호른이 빠진 6명이 연주한다. 창단 3년 차까지 모이는 것 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정기연주회가 공연 이틀 전 취소됐다. 올해도 정기연주회가 불발됐다. 김재원은 “내년에는 꼭 정기연주회에서 모든 멤버가 함께 모여 팬들을 만나고 싶다. 지방 무대도 찾아가고 ‘다가가기 프로젝트’도 다시 이어가고 싶다. 지금 갖는 갈증은 그것뿐”이라고 말했다. 2만∼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열다섯 곡. 연주시간만 총 7시간 이상. 1938년에서 1974년까지 만 36년에 걸친 산물. 2014년 모차르트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젊은 현악4중주단’ 돌풍을 일으킨 노부스 콰르텟이 거대한 도전을 펼친다. 구소련을 대표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현악4중주 전곡 연주다. 16∼19일 나흘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무대에 오른다. 연주마다 초기, 중기, 후기의 4중주를 모두 만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배치했다. 베토벤의 현악4중주 17곡이 ‘구약’이라면 쇼스타코비치의 15곡은 ‘신약’으로 불린다. 해외에서도 전곡 연주는 드물다. 있어도 몇 달 간격으로 나눠 연주하기에 ‘나흘간 전곡 연주’는 유례없는 일로 꼽힌다. 7시간에 달하는 연주 분량을 통째로 연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연주를 펼치고 5월 22일 입국해 자가 격리 중인 노부스 콰르텟 리더 김재영(바이올린)은 전화 인터뷰에서 ‘어려운 작업’이라고 털어놓았다. “연습을 해도 해도 불충분한 느낌이에요. 체력적으로도 힘에 부치는 일이죠. 다행히 멤버들(바이올린 김영욱, 비올라 김규현, 첼로 이원해)의 케미가 좋아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유럽 연주가 대부분 취소됐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생각하고 연습할 시간이 많아졌죠. 지난해 멘델스존 4중주 6곡 전곡을 연주한 뒤 더 큰 도전에 욕심이 생겼어요. 쇼스타코비치는 평생 전쟁과 억압을 체험했던 작곡가인 만큼 오늘날의 코로나19라는 재앙이 그의 음악과도 맞물릴 걸로 생각했습니다.” 국내에서 쇼스타코비치는 15곡의 교향곡이 주로 연주된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이 현실과 직접 부딪치는 데 반해 현악4중주는 훨씬 내면적입니다. 더 내밀하고 비꼬인 감정을 풀어내죠. 그만큼 자신의 아픈 얘기들을 솔직히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재영은 “다른 작곡가의 곡들보다 직설적으로 소리를 내야 한다. 연습하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만큼 감정적 소모가 많다”고 말했다. 전화가 연결된 김에 화제를 돌려보았다. 최근 젊은 4중주단 ‘아레테 콰르텟’이 체코 프라하의 봄 국제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2019년 결성 때부터 김재영이 지도해온 4중주단이다. “옆을 돌아보지 않고 정말 매일매일 성실히 정진하는 친구들이에요. 놀라울 정도죠. 일주일에 두 번씩 코칭을 했는데, 매번 눈에 띄게 기량이 늘어요. 지난해 수많은 콩쿠르 기회들이 취소됐고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는데, 오히려 더 열심히 하더군요.” 노부스 콰르텟은 이번에 연주할 쇼스타코비치의 현악4중주 전곡 중 자주 연주되는 4중주 3번과 8번을 내년 아파르테 레이블에서 CD로 발매한다. 김재영은 전곡 녹음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맞춰보는 만큼 여러 번 더 연주한 뒤 도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4만4000∼6만6000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사랑은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이고 중요한 감정이죠. 대작곡가들의 ‘사랑’을 흥밋거리로만 볼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을 따라가 보고 그 사랑에서 영향 받은 곡들을 살펴보면 대가들의 가장 내밀하고 감동적인 부분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한지호(29)가 ‘작곡가들의 사랑’을 무대 위에 펼친다. 공연기획사 크레디아가 각 부문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매달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하는 마티네(낮 시간 콘서트) 시리즈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의 6월 공연(6월 9일)이다. 1월부터 피아니스트 임동민 임동혁 형제,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국내 대표 음대 여교수들로 구성된 ‘그리움 앙상블’ 등이 이 시리즈 무대를 수놓아 왔다. 이번 무대에서는 바흐가 아내를 위해 쓴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음악노트’ 중 ‘미뉴에트 1 & 2’,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월광’ 첫 악장, 리스트 ‘사랑의 꿈’, 쇼팽과 연인 조르주 상드의 미묘한 감정들이 녹아 있는 전주곡 15번 ‘빗방울’ 등을 연주한다. 클래식 음반사 마케팅 이사를 거쳐 ‘클래식 코디네이터’로 강의와 콘서트 진행 등을 펼쳐온 매너 리가 해설을 맡는다. “어떤 사랑들은 추상적이고 감춰져 있지만, 그 시대를 요란하게 만든 사랑들도 있었죠. 흥미로운 일화들을 따라가면서 즐겁게 들으실 수 있는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지호는 2014년 한국을 대표하는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고 같은 해 독일 ARD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이해 최고등위와 청중상, 현대음악 특별상을 휩쓸었다.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대학원에서 명교수로 이름난 아리에 바르디를 사사 중이다. 그는 스승에 대해 ‘기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제자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훈련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지도자’라고 말했다. “독일이 봉쇄 중이어서 이스라엘에 계신 선생님을 1년 반째 못 만나고 있어요. 어휴…, 콘서트도 거의 모두 취소됐죠. 4월 말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쇼팽 작품 위주로 오랜만에 독주회를 했어요. 관객과 교감하는 희열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관광지도 사람이 없어서 전세 낸 것처럼 구경했어요. 후후.” 그는 6월 8일에는 성기선 지휘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피아노협주곡’으로 알려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협연한다. 하반기에는 지난해 순연된 베토벤 피아노소타나 30∼32번 콘서트를 독일 뮌헨과 하노버에서 열 예정이다. 전석 3만8000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나무도 나무도 나이를 먹는다/우리들처럼 나이를 먹는다/아무도 모르는 나무들 나이/나무만 아는 동그란 나이.’(강소천 작사·박흥수 작곡 ‘나무’) 나무는 자신의 연대기를 몸에 적는다. 나이 들면서 갖추는 깊이를 상징하는 연륜(年輪). 곧 ‘나이테’다. 나이테는 알아도 ‘연륜연대학(年代學)’은 다소 생소하다. 저자는 생태학, 기후학, 인류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밝히는 이 학문의 면모와 중요성을 한 권에 요약한다. 세계 첫 연륜연대학 연구소인 미국 애리조나대 나이테 연구소 교수로 70편 이상의 관련 논문을 발표한 전문성이 바탕이다. 나무가 나이테에 기록하는 것은 자신의 ‘불만’이다. 물이 모자라는 곳에서는 비의 양에 따라, 물이 충분한 곳에서는 기온에 따라 매년 그 두께가 결정된다. 산불 같은 재난을 겪었을 때도 나이테는 좁아진다. 좋은 해와 나쁜 해가 이어지면서 모스부호 같은 패턴이 나타난다. 북아메리카에는 5000살 넘는 나무도 많지만 유럽은 나이 많은 나무도 1000살 안팎이다. 그럼에도 1만 년 넘는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 있다. 오래전 벌목돼 건물이나 가구가 된 나무들, 강바닥에 묻혀 썩지 않은 나무들의 패턴을 살아있는 나무들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는 지구와 인류의 역사에 대해 수많은 사실들을 전해준다. 벌목돼 집이나 다리, 우물이 된 나무들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면 가장 오래된 게 기원전 약 6000년이며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농경이 확산돼 인간이 정착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서기 250년 이후 유럽 나무들의 나이테는 150년 년 넘게 추운 기후가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로마제국의 국력은 쇠퇴했고 생존의 위기에 몰린 게르만족은 대이동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벌목된 나무의 숫자도 크게 줄어든다. 문명 활동 자체가 서리를 맞았기 때문이다. 미국 플로리다 숲의 나무들이 덜 성장한 1645∼1715년은 카리브해에서 침몰한 목선의 수도 적었다. 그렇지만 이때는 해적선의 전성기로 기록됐다. 태양 흑점이 줄어 기온이 내려갔고 허리케인 발생이 줄어 침몰선 숫자가 감소한 것이다. 이런 역사들의 증인인 나이테에는 다른 증인들도 함께한다. 남극에는 빙하층이, 바다에서는 산호나 조개, 물고기의 귀 뼈에 새겨진 생장띠가 저마다의 연대기를 기록해 나이테 연구를 보완한다. 잘 알려진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도 나이테 데이터와의 비교를 통해 정확한 값으로 보정할 수 있다. 예상대로 저자의 관심은 결국 지구 온난화로 향한다. 서기 1000년 이후의 기온을 나이테로 재구성한 결과는 최근의 지구 온난화가 전례 없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후대 인류는 나이테 기록과 우리의 대응을 비교하며 어떻게 평가할까. 평생 나무에 몰두해 온 저자에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기후 문제는 나무를 많이 심는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한여름 무더위 속에도 한결 숨결이 트이는 고지대에서 숲의 향기를 맡으며 대작곡가들의 명선율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 ‘한국의 애스펀 뮤직 페스티벌’로 불리는 평창대관령음악제(예술감독 손열음)다. 올해로 18회를 맞아 7월 28일부터 8월 7일까지 펼쳐지는 음악제의 주제는 ‘산(Alive)’이다. ‘살아있는’을 뜻하는 영어를 썼지만, 각 콘서트 제목들은 ‘삶’을 상징하는 ‘살’ ‘끝은 어디?’ ‘재생 1, 2’ ‘산 vs 죽은’과 고산지대의 자연을 상징하는 ‘별’ ‘등정’ ‘시내’ ‘바람’ ‘바위’ 등으로 정해졌다. ‘산(生)’인 동시에 ‘산(山)’이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인 셈이다. 국내외 주요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구성한 ‘관현악의 드림팀’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4개 공연을 강원 평창 알펜시아 내 뮤직텐트에서 펼친다. 7월 28일 열리는 개막 공연 ‘살(flesh)’에선 정치용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4번을 연주하고, 클라라 주미 강이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 31일 열리는 ‘등정’ 콘서트에서는 2017년 토스카니니 지휘 콩쿠르 2위 수상자인 차웅 지휘로 리스트 교향시 ‘전주곡’ 등을 연주하고, 김두민이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을 협연한다. 8월 5일에는 스베틀린 루세브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악장이 지휘를 겸해 20세기의 고전주의적 교향곡인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1번 ‘고전’과 브리튼 ‘단순 교향곡’을 선보인다. 이 축제 예술감독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하고, 서울시향 트럼펫 수석을 지낸 알렉상드르 바티가 트럼펫 솔로를 맡는다. 7일 열리는 폐막 공연 ‘내려갈 때 보았네’에서는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주지휘자인 리오쿽만 지휘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 모음곡과 라벨 ‘라 발스’를,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 협연으로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을 연주한다. 알펜시아 내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11개 실내악 콘서트에서는 플루티스트 조성현, 피아니스트 백건우 백혜선 박종해, 타악 연주자 김미연, 바수니스트 유성권, 호르니스트 김홍박, 소프라노 서예리 등 각 부문 정상급 연주자들을 만날 수 있다. 8월 1일에는 기타리스트 박규희, 3일에는 피아니스트 박종해의 단독 무대가 펼쳐진다. 메인 콘서트와 스페셜 콘서트 총 15회를 R석에서 30% 할인된 가격으로 관람할 수 있는 ‘시즌 패스’도 판매한다. 음악도들은 이 축제 출연 연주자들이 진행하는 ‘엠픽 아카데미 마스터클래스’에 도전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으로만 진행됐지만 올해는 오프라인 클래스가 열린다. 13개 부문 18명의 아티스트가 교수진으로 참여해 최종 선발된 36명을 대상으로 공개 레슨을 진행한다. 다음 달 19일까지 평창대관령음악제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할 수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아찔한 햇살의 계절이 다가온다. 마음은 즐거웠던 옛 휴가의 기억을 따라 들썩이고, 아파트 단지에 크게 자라난 나무들이 아침나절마다 신선한 향기를 뿜어낼 것이다. 그러나 잠깐, 긴 장마와 녹록지 않은 습기가 우리를 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끈끈함이나 더위로 잠 못 드는 밤이라곤 없을, 가장 태양이 사랑스러운 날들이다. 초여름이면 약속처럼 떠오르는 선율들이 있다. 프랑스의 프렌치 리비에라 해안과 프로방스 지역을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다녔던, 젊고 짧았던 유월들이 있었다. 영화 ‘마농의 샘’이나 ‘마르셀의 여름’에 나오는 듯한, 햇살을 받아 새하얀 산과 널찍이 보랏빛으로 펼쳐진 라벤더 밭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런 풍경과 함께 먼저 떠올린 명곡은 비제의 ‘아를의 여인’ 모음곡이다. 마을 사람들의 험담 때문에 상처 입은 주인공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지만, 그 선율과 관현악의 색채는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다. 내가 생전 경험한 가장 강렬한 햇살과 그림자도 바로 아를에서 본 것이었다. 비제는 파리음악원 재학 시절인 열일곱 살 때 첫 번째 교향곡을 썼다. 이 곡은 비제가 죽고 나서 60년이 가까워서야 발견됐다. 10대 천재가 쓴 곡다운 신선함이 악보의 모든 페이지에 풋풋한 향내로 숨쉰다. 파리에서 자란 비제가 청소년기에 프로방스에 머무른 일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남프랑스의 쨍한 햇살과 향기로운 바람을 떠올리게 된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신선한 들판의 향내를 맡는 듯한 1악장이 지나면, 오보에가 실연한 목동의 노래를 아련히 부르는 듯한 2악장이 기다린다. 이제 시선을 더 서쪽으로 돌려 스페인으로 가본다. 카르멘의 입술과도 같은, 플라멩코 무용가들의 의상 같은 새빨간 정열이 타오르는 곳이다. 젊은 날 한때의 치기에 휩싸여 끄적였던 습작 문집을 새삼 꺼내본다. ‘동지여/햇살이 뜨거운 날/에스파냐의 질주하는 소 떼를 만나러 가자//한 놈과 나의 눈빛이 부딪치고/그렁그렁 그 망막에 비치어/섬광이 된 태양/그 간절함을 대기에 태워버리자’ 나폴레옹은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 아프리카’라고 말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가면 자연 풍광부터 모로코나 알제리 같은 북아프리카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건조한 황톳빛 대지와 선인장들, 그리고 선명하게 빛나는 태양이 반길 것이다. 역시 프랑스 작곡가인 샤브리에의 교향시 ‘에스파냐’를 들어본다. 이제 초여름 따가운 태양에도 익숙해졌다 싶으면 꿈속에서 문득문득 바다가 부른다. 그리고 서늘한 아침 공기가 새삼 반가워진다. 라벨의 발레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2부 서두에는 여름 아침 달콤한 공기와 함께 날이 밝고, 새소리가 들리면 해가 떠오르는 장려한 장면이 등장한다. 신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인 만큼 그리스 어딘가의 해변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아침의 신선한 공기도 이내 달아오르고, 솜사탕처럼 키 큰 뭉게구름들이 푸른 하늘을 헤엄쳐 다닌다. 마을 전체가 그늘졌다가, 다시 환하게 밝아지기를 거듭한다. 그런 오후, 창문을 열어 놓으면 레이스 달린 속커튼이 하늘거리고, 창밖에서 향기 머금은 바람이 불어오며 사람을 덧없는 몽상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런 시간엔 역시 라벨의 작품인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이 어울린다. 여름은 밤이 가장 달콤하게 느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깊은 밤, 베네치아 운하 사이로 가면을 쓴 사람이 토닥토닥 신발 소리를 내면서 뛰어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누구일까. 옆 나라에서 온 스파이일까. 나도 다급하게 그의 뒤를 따라간다. 골목이 복잡해서 놓쳤다 싶던 순간, 다시 골목을 돌아가는 그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접어든 곳은 막다른 골목. 더는 갈 곳이 없어진 그가 가면을 벗는다. 드러난 그의 얼굴은, 3세기 전 베네치아의 작곡가이자 신부였던 안토니오 비발디! 모든 것은 밤을 무대로 한 꿈이었을 뿐이다. 비발디의 플루트 협주곡 ‘밤’ 마지막 악장과 함께한.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바흐의 음악에는 규칙이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20대 후반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공부하면서 이 곡들에 끝없는 자유로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뒤로는 제 나름대로 다양한 해석을 펼치는 데 자신이 생겼어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34)이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6곡을 하루 저녁에 연주한다. 3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반주 없이 오롯이 연주자의 내면과 악기만이 대면하는 ‘바흐의 여섯 곡’은 연주시간만 도합 두 시간에 달하며 바이올린이 가진 온갖 기법과 표현력을 동원한 ‘바이올린의 성서’로 꼽힌다. 해외에서도 하루 두 곡이나 세 곡만 소화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3월 정경화가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하루에 모두 연주할 계획이었으나 왼손 부상으로 취소한 바 있다. 국내에선 2016년 김수연이 LG아트센터에서 하루에 전곡 연주를 선보인 바 있다. 독일에서 본보와 e메일 인터뷰를 가진 클라라 주미 강은 여섯 곡을 하나의 호흡으로 연주할 때 바흐가 바이올린으로 표현하려 한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바흐의 음악에는 신비한 점이 많아요. 단순한 재료로 무엇보다 단단하고 깨지지 않는 것을 만들었다는 느낌이랄까요. 예술을 넘어 수학적으로도 흠이 없는, 어쩌면 흠조차도 신빙성을 부여받게 만드는 느낌이죠.” ‘두 시간 동안 홀로 바흐’는 부담이 큰 도전일 수밖에 없다. “체력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 점이 가장 큰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연습으로 극복하는 방법밖에 없죠. 세부적인 부분들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전체의 호흡을 유지하는 연습은 연주가로서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는 이번 리사이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파고를 겪은 세상에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바흐의 무반주 작품에는 ‘외로움’이나 ‘단절’ 같은 명사가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를 1년 넘게 우리 모두가 함께 겪고 나서 바흐를 들었을 때, 그 광활한 음악은 우리 모두에게 개인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고 색다른 공감이 들 것 같아요.” 그는 22세 때인 2009년 동아일보사 주최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내 음악팬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이듬해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도 우승했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는 굉장히 기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국내보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제가 우리나라에서 상을 받은 건 서울국제음악콩쿠르가 처음이었고, 매우 영광스러웠죠.” 그는 ‘바로크 바이올린 음악의 정수’로 불리는 바흐 무반주 전곡 무대를 가진 뒤 9월부터는 ‘고전주의 바이올린 음악의 정수’로 불리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들고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전국 투어를 할 예정이다. 이 시기에 맞춰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음반도 발매한다. 3만∼10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너무 큰 영광이라 얼떨떨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겸손하게 춤추는 무용인이 되겠습니다.”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51회 동아무용콩쿠르 본선에서 일반부 남자 한국무용 전통부문 금상을 수상한 권영성 씨(28·경희대 졸)는 “믿고 기다려준 부모님과 이끌어준 선생님들께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2019년 이 콩쿠르에 도전해 본선에 진출했고, 두 번째 도전에서 금상의 영광을 안았다. 본선에서는 이매방류 한량무에 무용가 고 최현의 기법을 가미해 선보였다. 그는 “한국적인 색깔을 많이 내고 호흡을 풍성히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권 씨는 올해 동아무용콩쿠르 일반부 한국무용 전통부문에 신설된 강선영상도 받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였던 강선영(1925∼2016)을 기리는 상으로, 남자 및 여자 금상 수상자(공동 금상의 경우 본선 고득점자)에게 상금 150만 원과 함께 주는 상이다. 첫 강선영상은 권 씨와 여자부 금상 수상자 김소연 씨(한국예술종합학교 3학년)에게 돌아갔다. 한국전력과 관악문화재단 후원으로 열린 이번 콩쿠르는 지난해와 같이 참가자와 동반자가 무대 안전교육을 이수한 뒤 자가진단표 작성, 발열 체크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절차를 준수하며 진행됐다. 심사위원 명단과 본선 채점표는 동아무용콩쿠르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콩쿠르 실황 동영상도 추후 이 사이트에 공개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수상자 명단◇일반부 ▽한국무용 전통(여) △금상 김소연 △은상 양세인(성균관대 졸) △동상 김윤지(세종대 졸) ▽한국무용 전통(남) △금상 권영성 △은상 김한길(한국체대 4년) △동상 변영석(단국대 졸) ▽한국무용 창작(여) △금상 김서현(세종대 4년) △은상 이하윤(한예종 4년) △동상 김나형(세종대 4년) ▽한국무용 창작(남) △금상 손동근(한예종 4년) △은상 김규년(한예종 3년) △동상 유재성(중앙대 졸) ▽현대무용(여) △금상 권영주(세종대 3년) △은상 이세림(한양대 에리카 4년) △동상 김지혜(한예종 4년) ▽현대무용(남) △금상 정승준(전북대 졸) △은상 총명주(세종대 4년) △동상 정혜성(세종대 1년) 오정환(강원대 4년) ▽발레(여) △금상 박하민(한예종 3년) △은상 김민영(한예종 3년) △동상 이윤지(세종대 3년) ▽발레(남) △금상 이은수(한예종 4년) △은상 이준수(한예종 3년) △동상 노동익(한예종 4년) ◇고등부 ▽한국무용 전통 △금상 김민지(계원예고 3년) △은상 최신영(부산예고 3년) 도유정(선화예고 3년) ▽현대무용 △금상 조인영(동탄중앙고 2년) △은상 강나윤(브니엘예고 2년) △동상 안윤지(보라고 2년) 정건세(남원국악예고 2년) ▽한국무용 창작 △금상 이윤아(서울예고 3년) 신유민(선화예고 3년) △동상 장하나(계원예고 3년) ▽발레 △금상 이승민(선화예고 2년) △은상 박로빈(서울예고 2년) △동상 서지수(선화예고 3년) ◇중등부 ▽발레 △금상 이재휘(선화예중 3년) △은상 최연서(역삼중 3년) △동상 김소율(예원학교 3년) 박소정(홈스쿨링) △장려상 서민준(예원학교 2년) 이수아(예원학교 3년) 송지윤(선화예중 3년) ◇초등부 ▽발레 △금상 김아윤(광림초 6년) △은상 김주안(덕수초 6년) △동상 윤하랑(포즈발레아카데미) △장려상 강정안(야탑초 6년) 정아라(미사강변초 5년) 인지영(불곡초 6년) 현지호(양상초 6년) 권오성(대광초 6년) 여소율(대자초 6년) 최민정(광진초 6년) 양가은(학사초 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