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

손효림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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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효림 기자입니다.

arysso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29~2025-12-29
문화 일반52%
문학/출판23%
연극13%
교육3%
무용3%
산업3%
학술3%
  • 현진건문학상에 소설가 하창수

    현진건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제9회 현진건문학상 수상자로 하창수 소설가(57·사진)를 선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수상작인 단편 소설 ‘철길 위의 소설가’는 기차와 철로에 대한 사색을 통해 인생을 비유하는 아름다운 문장들로 구성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수상은 ‘제천’을 쓴 심봉순 소설가에게 돌아갔다. 시상식은 11월 1일 오후 6시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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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작자 김훈과 영화감독 황동혁 ‘남한산성’을 말하다

    ‘살면서 본 영화가 10편도 안 된다’는 60대 소설가와 40대 영화감독. 별 공통점 없는 조합이다. 두 사람을 묶어준 건 380년 전의 역사, 병자호란이다. 지난겨울, 둘은 남한산성에서 처음 만났다. 촬영 현장에서 악수 한 번 한 게 전부였지만 이들 사이에는 묘한 ‘동지애’가 흘렀다. 다들 기억하고 싶지 않아 하는 굴욕과 패배로 점철된 역사를 각자 글로, 영화로 표현해냈다는 공통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설 ‘남한산성’의 김훈 작가(69)와 소설을 영화화해 최근 300만 관객을 넘어선 황동혁 감독(46)을 1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와 문학 담당 기자가 함께였다.○ 영화 문외한과 소설광 김훈 작가는 영화와 담을 쌓고 살았다. 폐소공포증이 있어 영화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20년 전 개봉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게무샤’(1998년)일 정도. “캄캄해서 극장에 못 가요. 이번에 가보니 다들 팝콘은 왜 한 사발씩 끼고 앉았는지(웃음). 전 오직 책과 음악, 그림으로만 문화생활을 하는 전형적인 구세대죠. 기껏 본 영화라곤 이승만 전 대통령 찬양 영화나 6·25 반공영화가 전부고. 우리 세대의 낙후함이랄까요.”(김) 반면 황동혁 감독은 어릴 때부터 소설에 빠져 살았다. 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도가니’(2011년)도 그의 작품이다. ‘도가니’ 흥행 이후 사무실에는 “영화화를 검토해 달라”는 소설들이 쌓였다. “다른 소설은 의욕이 안 생기는데 ‘남한산성’은 읽자마자 ‘아, 내가 영화를 시작한 이유가 이걸 만들기 위해서구나’ 싶었죠. 묘사해 놓은 캐릭터와 쏟아내는 말이 처절하지만 철학적이고, 또 시적이더라고요. 풍경도 아름답되 날이 서 있고…. 저한테 선물 같은 영화예요.”(황)○ 굴욕의 역사 병자호란에는 임진왜란 같은 통쾌한 승리담도, 이순신 같은 영웅도 없다.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 “심정이 괴로웠다”고 했고, 감독은 “소설과 실화의 무게를 동시에 지니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그럼에도 굳이 아픈 역사를 꺼낸 이유가 뭘까. “우리나라는 자존과 영광 중심으로만 역사가 쓰였어요. 치욕과 패배, 그것을 극복하는 민족의 노력은 거의 보여주지 않아요. 독자와 관객도 그런 역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고요. 제 책도 이렇게 많은 독자가 읽을 거라 생각 안 했어요. 70만 부가 넘으면서 ‘진실하게 이야기를 하면 독자도 알아주는구나’ 감사했죠.”(김) “극장에 뭔가 잊으러 가기도 하지만 배우러 가기도 하잖아요. 당시와 지금 상황이 너무나 닮아 타산지석으로 얘기해 볼 만하죠.”(황) 서로의 작품에서 가장 와 닿는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최명길의 갓 뒤로 청나라 기마부대가 몰려오는 장면을 꼽았다. “비극적 구도를 한눈에 보여줘요. 갓으로는 군대를 막을 수가 없는데 조선은 그 갓에 힘이 있다고 생각한 거죠. 사소하고 일상적이지만 그 안에서 힘과 희망이 느껴지는 장면들도 좋았고. 난 그런 문장을 못 썼는데 감독은 넣었더라고. 하하.”(김) “단연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죠. 대부분의 대사도 책 구절을 거의 그대로 살렸어요.”(황)○ 서날쇠와 이시백 옆에서 “살 길과 죽는 길은 포개져 있다”며 거드는 작가에게 당대를 살았더라면 최명길과 김상헌 중 누구의 길을 갔을지 물었다. ‘정치적(?)’ 대답이 돌아왔다. “난 서날쇠의 편입니다만. 그만이 삶의 길을 현실적으로 아는 사람이에요. 나라보다 자기 자식, 논두렁이 중요한 게 현실이거든요. 생업이 애국이 되게끔 만드는 게 위정자의 역할이죠.”(김) “마음만은 수어사 이시백이 되고 싶네요. 휘둘리지 않는 게 멋있잖아요!”(황) 두 사람을 엮어준 남한산성을 함께 걸을 계획은 없는지 물었다. 훈훈한 대답을 기대했건만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인지 사뭇 냉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에이, 안 가요. 책 쓰면서 하도 가서 남한산성의 개미집이 어디 있는지 다 알 정돈데.”(김) “저도 그만 갈래요. 영화 때문에 너무 많이 거닐어 당분간 좀 그만 가고 싶어요.(웃음)”(황) ●제작사 대표는 김훈의 딸 지연씨영화 ‘남한산성’ 제작사인 싸이런픽쳐스의 김지연 대표(42·사진)는 원작 소설을 쓴 김훈 작가의 딸이다. 서강대 불어불문학과를 나온 김 대표는 2001년 싸이더스에 입사해 ‘말죽거리 잔혹사’ ‘늑대의 유혹’ 등을 홍보하다 2008년 사무실을 차렸고 ‘10억’을 제작했다. 김 작가는 함께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딸에 대해 ‘쿨’ 하면서도 은근한 애정이 묻어나는 특유의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딸 얼굴, 잘 못 봐요. 며칠씩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많고 해외에 갈 때도 인천공항에서 ‘지금 어느 나라에 간다’며 전화로 알리는 스타일이거든요.” 김 대표가 소설 ‘남한산성’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을 때 김 작가의 첫마디는 이랬다. “너 얼마 내놓을래?” “통념에 맞게 드리겠다”는 게 김 대표의 응수였다. 딸이라 혜택을 준 게 아니냐고 묻자 김 작가는 곧바로 손사래를 쳤다. “내가 아주 싫어하는 게 ‘친인척 비리’예요.(웃음) 돈은 아직 덜 받았어요. ‘고것’이 까다로워서….(웃음) 난 영화 제작에는 일절 관여한 적이 없어요. 영화에 대해서는 철저히 원작자와 제작자의 관계일 뿐이에요.” 김 작가는 딸을 옆에서 지켜보며 영화 제작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실감했다. 그는 “저렇게 고된 걸 왜 하나 싶은데 신바람 나서 하는 걸 보면 좋아서 일하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어려운 일을 하는 딸이 염려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고것이 워낙 잘 챙겨먹고 돌아다녀서 걱정은 안 해요. 부하도 얼마나 많은데요. 나는 부려먹으려고 해도 나 혼자밖에 없어요.”(웃음)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김 작가의 표정에서 푸근함이 전해졌다. 영락없는 아빠 미소였다.장선희 sun10@donga.com·손효림 기자}

    • 20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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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수소설부터 SF까지… 장르 넘나들며 인간성과 문명 성찰

    일본계 영국인인 가즈오 이시구로(63)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위대한 정서적 힘을 가진 소설들을 통해, 세계와 닿아있다는 우리의 환상 아래 심연을 드러냈다”고 5일 선정 사유를 밝혔다. 영국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는 2007년 도리스 레싱 이후 10년 만이다. 일본계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와 오에 겐자부로(1994년)에 이어 세 번째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1960년 영국으로 이주한 이시구로는 영국 켄트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스트앵글리아대에서 문예창작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을 발표하자마자 주목받기 시작했고, 세 번째 소설 ‘남아있는 나날’이 1989년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격조 있게 삶과 문명 성찰 영어로 작품을 쓰는 이시구로는 기억과 회한을 통해 인간성과 문명에 대해 깊고도 품위 있게 성찰한 작가로, 평단과 독자들의 사랑을 함께 받고 있다. 대표작인 ‘남아있는…’은 20세기 전반 영국을 배경으로 인품이 고귀한 달링턴 경을 모시는 충직한 집사 스티븐슨을 통해 충직함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 개인의 결정이 지닌 의미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앤서니 홉킨스, 에마 톰슨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1993년)로 만들었다. 유명 피아니스트를 통해 사랑, 가족, 부모, 우정의 가치를 섬세하게 조명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장기 이식을 위해 복제된 클론들의 슬픈 운명을 그린 ‘나를 보내지 마’ 등 다양하고 개성 있는 작품을 선보이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전쟁의 상처를 그린 ‘창백한…’과 인간의 헛된 욕망을 비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젊은 시절 싱어송라이터가 되기를 꿈꿨던 이시구로가 음악적 내공을 발휘한 ‘녹턴: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는 운명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평범한 이들을 통해 삶의 본질을 노래한다. 그의 장편소설 8권은 모두 국내 출간됐다. 1995년 대영제국 훈장(OBE), 1998년 프랑스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공로 훈장을 받았다.○ “고전적이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가” 이시구로의 수상으로 한림원이 전통적 문학 작가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되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림원은 지난해 미국의 시인 겸 가수인 밥 딜런과 2015년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르포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는 파격 행보를 보여 왔다. 이남호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이시구로는 비극적 진실을 깨닫지만 생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과 문명이라는 고전적 주제를 치밀하고 정확한 문체로 품격 있게 성찰하는 작가로, 노벨 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시구로가 묵직한 주제 의식은 유지하면서도 순수 소설뿐만 아니라 복제 인간을 다룬 공상과학소설(‘나를…’), 도깨비와 기사가 나오는 판타지 소설(‘파묻힌 거인’) 등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한림원이 노벨 문학상의 외연을 확장하려 애쓰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민음사 대표를 지내며 이시구로를 국내에 소개하는 데 앞장선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이시구로는 대중에게 익숙한 공상과학, 판타지 장르를 도입하면서도 장르 문학의 기법을 따르지 않고 고급스러운 문체로 문학적인 혁신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도 “첨단 소재를 통해 고전적 주제를 드러내는 실험을 한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한 건 한림원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 특유의 문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음악에 조예가 깊은 작가답게 이시구로의 문장은 노래 가사나 시처럼 리듬감 있고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어 긴 여운을 남긴다”고 말했다. 정통 문학의 품격을 지키면서도 독자적인 화법으로 새로움을 풀어낸 이시구로는 문학의 본질은 바뀌지 않지만 문학을 담는 그릇은 바뀔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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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시구로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일본계 영국인인 가즈오 이시구로(63)가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5일 이시구로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위대한 정서적 힘을 가진 소설들을 통해 세계와 닿아있다는 우리의 환상 아래 심연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영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는 2007년 도리스 레싱 이후 10년만이다. 이시구로는 일본계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와 오에 겐자부로(1994년)에 이어 세 번째로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시구로의 수상으로 한림원이 전통적 문학작가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되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림원은 지난해 미국의 시인 겸 가수인 밥 딜런과 2015년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르포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 파격 행보를 최근 보여왔었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1960년 영국으로 이주한 이시구로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특유의 문체로 잘 녹여 낸 작품들을 선보이며 평단과 독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고 있는 작가다. 영국 켄트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스트앵글리아대에서 문예창작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을 발표하자마자 주목받기 시작했고 세 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이 1989년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남아 있는…’은 고전적 품격과 깊은 주제의식을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써 내려간 작품이다. 20세기 전반 영국을 배경으로 고귀한 인품을 지닌 달링톤 경을 모시는 충직한 집사 스티븐슨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시구로는 이 작품을 통해 숭고하고 맹목적인 충직함의 가치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질문을 던진다. 민주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를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개인에게도 위대함의 가치가 여전히 필요한 것인지, 거대한 질서나 주어진 임무에 충성하는 것보다 자신의 삶과 주장을 우선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남아 있는…’은 시대와 삶에 대해 많은 물음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앤서니 홉킨스, 에마 톰슨이 출연하는 동명의 영화(1993년)로 만들었다. 그는 이후 유명 피아니스트가 성공을 위해 저버려야 했던 가치인 사랑, 가족, 부모, 어린 시절의 우정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패로 돌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99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간병사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되어 온 클론들의 사랑과 성, 슬픈 운명을 그린 ‘나를 보내지 마’ 등 다양하고 개성 있는 작품을 선보이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영국 등 유럽적 색채가 강한 작품과 함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작품도 다수 선보였다. 원폭 후 일본의 황량한 풍경을 투명하고 절제된 감성으로 그려 전쟁의 상처를 드러낸 ‘창백한 언덕 풍경’, 전쟁을 찬양하는 그림으로 부와 명예를 누리다 종전 후 비난받는 노(老)화가를 통해 인간의 헛된 욕망을 그린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가 그렇다.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려 노력하며 스스로를 치유해 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본질을 음악과 함께 그려낸 ‘녹턴’은 젊은 시절 싱어송라이터를 꿈꿨던 이시구로의 음악에 대한 내공을 확인시켜 준다. 1995년 대영제국 훈장(OBE), 1998년 프랑스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공로 훈장을 받았다.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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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올해 노벨문학상도 파격?

    노벨상의 계절이 왔다. 2일부터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수상자를 발표한다. 관례에 비춰 볼 때 올해 노벨 문학상은 12일경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에 따르면 응구기 와 시옹오(케냐), 무라카미 하루키(일본), 마거릿 애트우드(캐나다)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는 가수 밥 딜런을 선정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한 만큼 올해는 소설가에게 상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물론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출판 관계자들은 책 판매에 도움이 되는 작가가 상을 받길 희망하고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밥 딜런의 수상이 출판 시장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책이 다 잘 팔리는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문학책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작가가 수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벨 문학상은 노벨상 가운데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높은 상이다. 올해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책이 서점가를 한바탕 들썩이게 만들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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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새 밀레니엄 시리즈의 탄생… 짜릿한 긴장감 여전

    온몸에 피어싱과 문신을 한 깡마른 여성 천재 해커 리스베트, 예리한 관찰력과 집요함으로 정보기관보다 한발 앞서 사건을 파고들어가는 베테랑 남성 기자 미카엘. 그렇다. 밀레니엄 시리즈가 돌아왔다. 새로운 작가와 함께. 저자는 시리즈 1∼3권을 완성한 후 심장마비로 숨진 원작자 스티그 라르손(1954∼2004)의 뒤를 이어 공식 작가로 선정됐다. 라르손과 마찬가지로 스웨덴 기자 출신으로 ‘앨런 튜링 최후의 방정식’ 등을 낸 베스트셀러 작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막대한 부담감을 이겨내고 시리즈의 명성에 걸맞은 수작을 탄생시켰다. 3권으로 끝났을지 모를 시리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 이야기는 스웨덴의 천재 컴퓨터 공학자 프란스 발데르가 살해되면서 시작된다. 미국의 유명 정보기술(IT)기업에서 일하다 갑자기 귀국한 그가 만들어낸 건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 프로그램. 신변에 위협을 느낀 프란스는 미카엘에게 모든 걸 털어놓으려 하지만 미카엘이 그의 집에 도착하기 직전 살해된다. 살해 현장을 목격한 이는 프란스의 여덟 살 아들 아우구스트로, 자폐 증세가 있지만 특정 순간을 사진처럼 완벽하게 기억해 그려내는 능력을 지녔다. 미카엘이 리스베트와 협력해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씩 파헤쳐 나가는 가운데 스웨덴 검찰과 경찰 및 국가안보기관 세포, 미국 국가안보국(NSA)까지 개입하며 각종 변수들이 터져 나온다. 퍼즐 조각이 하나둘 맞춰지며 희미하던 그림이 서서히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은 짜릿함은 책장을 맹렬하게 넘기게 만든다. 정교한 이야기가 작품을 단단하게 떠받치는 가운데 기존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도 놓치지 않는다. e메일, 인터넷 검색 기록은 물론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까지 디지털 기기를 통해 벌어지는 행위 하나하나가 국가와 기업, 범죄조직에 의해 감시되고 도청되는 정보화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해커는 모든 걸 훔칠 수 있고 변호사가 있으면 모든 도둑질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일갈은 무력한 법 제도를 꼬집는다. 자본에 위협받는 언론의 위태로운 현실도 가감 없이 비춘다. 여성과 어린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터프하게 응징하는 리스베트의 캐릭터는 여전하다. 여성이 예의상 짓는 미소를 남성에 대한 유혹으로 여기는 현실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나의 독립된 사건을 다루기에 처음 책을 접하더라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 기존 독자라면 라르손이라는 물리 교사를 카메오처럼 등장시킨 대목에서 스티그 라르손에 대한 오마주를 발견하는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리스베트와 가족을 둘러싼 새로운 사실도 밝혀지며 만만치 않은 또 다른 사건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한다. 이전 시리즈에 이어 4편도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원제는 Det Som Inte D¨odar Oss.(Millennium 4)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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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도 단어 하나 찾으려고 반나절 고민”

    하루에 장례식장을 두 군데 간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2시에는 프리미어리그,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며 나지막이 탄성을 지르고 무릎을 친다. 컴퓨터를 능란하게 다루는 초등학교 2학년 손자의 손놀림에 탄복하며 인터넷 검색 요령을 배운다. 올해로 등단 64주년을 맞은 최일남 소설가(85)는 일곱 개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 ‘국화 밑에서’(문학과지성사·사진)를 통해 노년의 삶을 담담하게 응시했다. 최 소설가를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기자 출신인 그는 까마득한 후배를 시종일관 깍듯하게 대했다. “여러 세상을 겪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은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이 책에는 내 경험을 많이 녹였어요.” 노년이 되면 너그러워지고 사리 분별도 밝아진다고 하지만 도리어 변덕을 부리기 일쑤라고 말한다(‘밤에 줍는 이야기꽃’). 장례식장에서 시대와 나라별 장례 풍습을 떠올리다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궁금해하고(‘국화 밑에서’),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불통(不通)은 예전에 더 심했다고 회상한다(‘아침바람 찬바람에’).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현역 최고령 소설가’라고들 하는데 알려지지 않았을 뿐 더 나이 많은 소설가가 있을 거예요. 고마운 말이긴 하지만 나이로 사람을 규정짓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2015년 ‘최일남 소설어 사전’(조율)이 나왔을 정도로 우리말을 맛깔나게 구사하는 솜씨는 여전하다. ‘호도깝스럽다’(조급하고 경망스럽다), ‘헤실바실’(흐지부지되는 모양) 등 자주 접하지 못하는 단어가 살아서 펄떡인다. “단어 하나를 찾으려고 반나절 넘게 고민한 적도 많아요. 안방, 화장실, 거실 등 집안 곳곳에 종이와 펜을 두고 문장이나 단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해요.” 잠에서 깨어 뒤척이다가도 머리를 스치는 게 있으면 불도 켜지 않은 채 적는단다. 아침에 일어나 들여다보면 해독이 불가능할 때가 적지 않지만. 엄격하고 정제된 글은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 순간이 아니면 연장되지 않는 게 많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읽고 쓰는 기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지만 계속해야죠.” 진지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는 젊은 시절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한 단계 높아졌다. “내 첫 작품이 ‘쑥 이야기’(1953년)라고 하지만 등단 전, 한 금융조합에서 주최한 저축 장려 글짓기 대회에서 1등을 한 적이 있어요. 본명을 사용하기 쑥스러워 ‘최인수’라고 썼는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동리 선생이 나중에 ‘최인수가 최일남 맞지?’라며 귀신같이 아셔서 깜짝 놀랐어요.”(웃음) 그는 구상 중인 소설이 있지만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소설 쓰는 건 어렵지만 이걸 붙들고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돈으로 치는 사기보다 글로 치는 사기가 더 무서운 건데, 그건 안 했으니 그런대로 잘 살았어요.” 인촌상, 이상문학상 등 굵직한 상을 휩쓴 문단의 거목은 스스로를 낮추고 또 낮췄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가 누구보다도 커 보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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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전 바이엇 “내 글이 어렵다? 맞습니다… 삶 자체가 어려운 거니까요”

    ■ 수상자 바이엇 인터뷰“글을 쓸 때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낍니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순간조차도요.” 제7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81)은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글쓰기가 숙명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글쓰기는 어떤 것에서도 얻을 수 없는 생의 강렬함을 선사한다”고 덧붙였다. ‘소유’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그는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타임지가 선정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요한 작가 50인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대영제국 기사 작위 훈장(DBE)도 받았다. 그는 박경리문학상 수상 소식에 깜짝 놀라고 흥분했다고 말했다. “가깝게 지내는 한국인 친구가 있어서 한국에 관심이 많아요. 영광스러운 상을 통해 한국과 또 다른 인연을 맺게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결혼해 네 아이를 낳았다. “다양한 경험을 할 시간은커녕 하루하루 버텨내기 바빴죠. 너무 여성적인 소설은 쓰고 싶지 않았기에 제한된 경험으로 인해 작품의 폭이 좁아지면 어쩌나 고민한 것도 사실이에요.” 이 때문에 틈틈이 시간을 내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에서 문학을 전공한 데다 방대한 책을 읽은 것이 문학적인 향기가 강한 작품을 쓰게 만든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는 ‘미들마치’, ‘다니엘 데론다’ 등을 쓴 영국의 유명 여성 소설가 조지 엘리엇(1819∼1880)처럼 폭넓게 사고하고 싶다고 했다. 여성 작가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본명(메리 앤 에번스) 대신 필명을 사용한 엘리엇은 ‘남성처럼 생각하는 여자 셰익스피어’로 불리며 지적인 작품을 남겼다. ‘소유’를 두 겹의 이야기 구조로 써 내려간 건 순간적인 영감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 중 어떤 걸 써야 할지 한참 동안 고민하고 있었어요. 불현듯 두 개가 공존하도록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죠!” 자신의 작품이 ‘매력적이지만 어렵다’는 평가를 인정하며 “삶 자체가 어려운 거니까요”라고 답했다. 이어 자신은 아들을 잃은 아픔을 겪으며 삶 자체가 흔들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그는 문학이 위기라고들 하지만 인생과 세상을 조명함으로써 삶에 대해 사고하게 만드는 힘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TV와 영화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사고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역시 문학의 주요한 소재로 활용될 수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극적이고 탄탄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문학 작품이 계속 탄생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짧은 생각이나 작은 경험이라도 항상 메모하며 글쓰기를 습관처럼 몸에 배게 만든 덕분이다. 최근 건강이 썩 좋은 상태가 아니지만 보다 정교한 내용을 더 쉽게 표현하는 방법을 매일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와 글쓰기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어요. 요즘 1918∼1945년에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를 배경으로 초현실주의자와 정신분석가가 등장하는 작품을 구상하고 있어요. 11세기에 묵언 수행하던 승려가 현대 영국에 오게 된 이야기도 4분의 3가량 쓴 상태랍니다.” 그는 수상을 계기로 박경리 선생의 작품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박경리 선생은 매우 흥미롭고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는 글을 남기셨더군요. 덕분에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됐어요. 제 작품을 읽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꼭 드리고 싶어요.”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바이엇의 작품 세계묵직한 사유로 문학적 내공 탄탄… ‘소유’ ‘바벨탑’ 등 국내 3권 번역 출간앤토니아 수전 바이엇은 시인, 문학평론가, 전기 작가로 활동하다 1980년대 들어 소설에만 전념했다. 대표작인 소설 ‘소유’(열린책들), ‘천사와 벌레’(미래사)를 비롯해 ‘바벨탑’(현대문학)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소유’는 20세기 문학연구자들이 19세기 남녀 시인의 문학과 사생활을 추적하는 작품이다. 두 개의 이야기는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적 탐구와 추리 소설처럼 의문을 풀어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남녀 관계와 인생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사유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작가의 탄탄한 문학적 내공을 확인할 수 있다. ‘천사’편과 ‘벌레’편의 연작으로 된 ‘천사와 벌레’도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벌레’편은 아마존에서 10년간 동식물을 채집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젊은이의 이야기로, 원시 대자연 속의 삶과 문명 세계를 대비시킨다. 문명의 삶이 야생의 삶보다 우월하다는 데 회의를 제기하며 생명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소유’와 ‘천사와 벌레’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바벨탑’은 ‘정원의 처녀’, ‘정물’, ‘휘파람 부는 여자’와 함께 요크셔 가족에 대한 4부작에 속한다.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문학 공부를 통해 쌓은 풍부한 지식과 깊이 있는 성찰을 담은 작품이 많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바이엇 문학’ 심사평시대의 틀 안에서 개인의 삶 진지하게 성찰제7회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올해 1월부터 수차례 회의를 거쳐 5명의 최종 후보자를 선발했다. 현재도 활발하게 글을 쓰는 세계적인 작가 가운데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이들을 꼽았다. 최종 후보자는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영국), 코맥 매카시(미국), 가즈오 이시구로(일본계 영국인), 페터 한트케(오스트리아), 얀 마텔(캐나다)이었다. 후보로 선정된 작가들은 리얼리즘으로부터 거리를 두면서도 탐험, 여행, 항해 등 조금은 인위적인 방법을 차용하는 서사적 접근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풀어냈다. 오늘날 같은 정보와 문자의 과잉 시대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 듯하다. 수상자로 선정된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은 소설 11권, 단편집 5권과 문학 비평서들을 통해 시대와 사회의 틀 안에서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복잡다단한 요소들을 성찰해 왔다. 이 가운데 소설 ‘소유’와 ‘천사와 벌레’, ‘바벨탑’이 우리말로 번역됐다. 작가의 작품에서 개인의 삶은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 사회 세력과 관습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무엇보다도 개인의 삶은 문화에 의해 정의된다. 인류학에서 문화는 사회 전반에 걸친 삶의 양식을 말하지만 작가는 인문교양을 내면화한 사람을 통해 문화를 그려낸다. 맨부커상 수상작인 ‘소유’의 주인공들을 문학 연구자로 설정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연구하는 19세기 문인들의 작품과 삶은 오늘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작가는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인간의 역사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영국의 북부 요크셔, 프랑스의 브르타뉴 등 태초를 연상하게 하는 지형들은 주인공들의 심리와 행동에 은연중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서술했다. 대자연의 힘은 문화와 문명의 변용을 겪지 않는 동물과 식물에서 더 잘 나타난다. ‘천사와 벌레’에서 두 연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곤충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다. 이 소설은 연인들이 심층적인 연구를 위해 아마존의 원시림 지대로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인간은 지질이나 지형 또는 오래된 생물들의 거대한 힘에 조종되는 대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작품 속 인간들은 이런 힘에 영향은 받되 단순히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삶을 개척해 나간다. 중요한 것은 무엇도 범할 수 없는 개인의 개체성이다. 개체성은 복합적인 경험과 요인들을 하나로 융합한 결정체다. ‘소유’에서 남녀의 사랑이 인격적 융합이 아니라 인간의 개체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건 인간 현실을 구성하는 넓고 큰 요인들을 담아내고자 한 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인간을 보다 진실하게 이해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김우창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장 ○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 명단(가나다순)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 김승옥 고려대 명예교수, 이남호 고려대 교수, 이세기 소설가, 최현무 서강대 교수}

    • 201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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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회 박경리문학상, 英 작가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

    영국 작가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81·사진)이 토지문화재단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강원도, 원주시,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제7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토지문화재단과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27일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은 생생한 인물 묘사와 삶에 대한 예리한 관찰을 바탕으로 개인과 시대를 아우르며 미학적으로 높은 짜임새를 지닌 작품을 써왔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심사위원회는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역사, 관습, 자연 등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세밀히 분석하면서도 개개인의 개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을 새롭고 깊이 있는 시각으로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고 평했다. 박경리문학상은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의 문학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됐고 이듬해 외국 작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한국 최초의 세계문학상이 됐다. 1회 소설가 최인훈을 시작으로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러시아), 메릴린 로빈슨(미국), 베른하르트 슐링크(독일), 아모스 오즈(이스라엘), 응구기 와 시옹오(케냐)가 차례로 수상했다. 상금은 1억 원. 올해 박경리문학상은 금호아시아나, 마로니에북스, 연세대, ㈜미림씨스콘, ㈜스펙스가 공동 후원했다. 사회적협동조합 그림책도시, 패랭이꽃그림책버스는 공동 협찬했다. 시상식은 원주박경리문학제 기간인 다음 달 28일 오후 4시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서 열린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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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 언제든 온다는 걸 알면 마음 비우고 살아갈 수 있어”

    “삶이 성숙하려면 안으로 여물 시간이 필요하기에 영혼이 맑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정휴 스님(73)은 최근 출간한 ‘백담사 무문관 일기’(우리출판사·사진)에서 이렇게 당부했다. 불교신문 사장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종회의원 등을 지낸 스님은 7년 전 모든 소임을 내려놓고 백담사 무문관 독방에서 수행에 들어갔다. 치열한 수행을 통해 얻은 결과물을 이 책에서 쉬운 언어로 담담하게 풀어냈다. 정휴 스님은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서 마음과 몸에 익힌 나쁜 습관과 타성을 털어내려 노력했다”며 “정신은 꾸준한 수행을 통해 새롭게 형성되고 거듭난다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71년 한 신문사 신춘문예에 시조로 등단한 문인이기도 한 스님은 정제된 언어로 삶을 성찰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자기 응시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탐구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인생이 녹슬고, 과거의 경력에 집착해 권위를 앞세우면 사람들이 외면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님은 “내적으로 눈을 뜨려면 집착에서 벗어나 내려놓고 텅 비워내야 한다”고 말했다. 생을 마감할 때 영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걸 기억한다면 더 가지기 위해 발버둥치고 집착하는 데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책은 불교 고승뿐 아니라 가톨릭 성자의 예도 들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는 임종이 가까웠을 때 옷을 벗고 알몸으로 땅바닥에 누운 뒤 “오래지 않아 내 육신은 먼지와 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의 정신은 육신을 헌 옷처럼 생각해 죽는 것을 헌 옷 한 벌을 벗는 것이라고 여기는 불교 정신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스님은 “겨우살이 준비를 위해 김장을 하듯이 죽음이 언제 어디서든 덮쳐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면 마음을 비우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태도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말을 배우는 데 3년이 걸렸는데 경청을 배우는 데 60년이 걸렸다”고 말한 일화를 소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생사를 초월해 삶을 완성해 나간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노라면 얽매임 없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소쩍새가 울고 가을이면 단풍이 뚝뚝 떨어지는 산사의 정취도 함께 맛볼 수 있다. 수행자의 정신과 생활을 한층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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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빅데이터는 인간 억압하는 살상무기”

    숫자는 진실을 말하고 빅데이터는 더 나은 현실을 만들까. 하버드대 수학박사로 수학과 교수를 지내다 헤지펀드 디이 쇼에서 퀀트(계량분석가)로 일한 저자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재닛 나바로는 네 살짜리 아이를 키우며 대학에 다니는 싱글맘이다. 회사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손님이 많은 시간대에 직원을 더 배치했고, 업무 시간을 하루 혹은 이틀 전에 통보받은 직원들은 근무 일정이 들쭉날쭉해졌다. 규칙적으로 보육 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워진 재닛은 결국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수학, 빅데이터, 정보기술(IT)의 결합으로 만든 알고리즘이 인간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현장에서 경험하며 수학과 금융이 결합된 파생상품의 가공할 파괴력을 목도한 저자는 빅데이터가 법, 교육, 노동, 보험 등 각 분야에 침투해 차별을 공고히 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현실을 폭로한다. 수학을 대량살상무기에 빗댄 것도 그 때문이다. 2009, 2010년 워싱턴 교육청은 학생 25∼30명의 시험 성적만으로 교사를 평가한 후 206명을 해고했다. 기준은 한 컨설팅 업체가 만든 평가 모형으로, 가정환경의 변화와 학습 장애 등 학업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는 배제됐다. 학생과 학부모가 유능하다고 인정했던 새러 와이사키는 교단을 떠나야 했고, 이후 사립학교에 임용됐다. 가난한 지역의 공립학교는 우수한 교사를 잃은 것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모형은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의뢰자와 수학자, 컴퓨터 과학자의 의도가 반영된다. 대학 평가를 도입해 영향력을 키운 시사 잡지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는 하버드대, 예일대처럼 등록금이 비싼 명문대에 불리한 교육비 항목은 평가에 넣지 않았다. 미국 일부 주에서 양형에 영향을 미치는 재범위험성 모형에는 친구와 친척에게 전과가 있는지 묻는 항목이 있다. 빈곤 지역의 흑인은 중산층에 비해 ‘그렇다’고 답할 가능성이 높아 죄를 지을 경우 무거운 형을 받을 확률이 커진다. 구체적인 사례들은 빅데이터 시대에 드리운 어둠에 대한 우려가 과장이 아님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진실을 찾는 대신 스스로 진실을 구현하는’ 인간의 오만을 막는 것 역시 인간의 손에 달렸음을 깨닫게 된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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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내가 인생에 복무하는 방식… 슬럼프 느낄 새 없어”

    아버지의 부재,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 등 오랜 시간 천착해 온 주제 의식은 여전하지만 서사의 힘이 더 강해졌다. 이승우 소설가(58)의 열 번째 소설집 ‘모르는 사람들’(문학동네)은 인간의 내면을 심연까지 파고들면서도 이야기가 지닌 흥미로움을 놓치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5일 그를 만났다. 최근 3년간 책에 담긴 8개 단편을 쓴 그는 “내게 다가온 절실한 순간들을 포착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대통령 탄핵 등 사회적 이슈가 스며들었다는 것. 책에는 전횡을 저지른 시장의 퇴진운동에 앞장서던 중고교 시절 피해를 준 친구를 만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교수, 권력자의 아들에게 짓밟힌 가족이 나온다.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난 현실도 투영됐다.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하기 위해 밤마다 집 주변을 맴도는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두려움이 증폭되는 여성, 찰스라는 말레이시아 남성 때문에 성가신 일을 겪는 김철수 교수의 이야기가 그렇다. “젊을 때는 경험이 적다 보니 다소 관념적으로 썼던 것 같아요. 세월이 흐르며 여러 사건을 접하고 이야기도 듣다 보니 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걸 느낍니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거나 어머니에게 고통만 주고 떠난 아버지에게 얽힌 사연을 짚어 가는 과정은 그가 항상 붙잡고 있는 화두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늘 ‘왜?’라는 질문을 하며 글을 씁니다. 인물이 무엇을 했느냐보다는 행동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복잡한 내면을 분석하면서 조금씩 나아가죠.” 그의 문장은 단단하고 논리 정연하다. 그가 국내에서보다 프랑스 독일 등 해외에서 더 유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신학을 전공한 그의 글에 서구 독자들이 매료되는 이유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인간 내면에 대한 논리적인 사유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2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장편소설 ‘지상의 노래’를 비롯해 현지에서 큰 사랑을 받은 ‘식물들의 사생활’과 ‘생의 이면’까지 프랑스에 소개된 작품은 일곱 권이나 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는 좋아하는 한국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로 황석영 씨와 함께 그를 꼽았다. 이에 대해 그는 얼굴이 살짝 빨개지며 “한국 문학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것 같다”며 쑥스러워했다. 올해로 등단한 지 36년이 되는 그는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왔다. 지칠 때는 없었을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슬럼프는 정점에 섰던 사람이 겪는 거잖아요. 저는 한국 문학의 중심에 있었던 적이 없어요. 항상 서 있긴 했지만 가장자리였죠. 슬럼프가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웃음) 요즘 그는 대공포가 설치된 서울의 빌딩 옥상에 근무하는 병사들을 소재로 한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을 중심으로 경계의 의미를 담은 장편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도 모으고 있다. “글을 쓸 때 존재의 이유를 느낍니다. 인생에 복무하는 방식이자 결핍을 채워주는 게 글쓰기니까요. 멈추지 않고 언제나 글을 쓰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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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도서관에 날개를]軍관사에 책의 향기 솔솔… “이제 시내까지 안 가도 돼요”

    “호랑이는 토끼가 맡긴 돌떡 중에서 가장 큰 걸 꿀꺽 삼켰어요. ‘아이쿠 뜨거워!’ 호랑이는 돌떡이 너무 뜨거워 시냇가로 뛰어갔답니다.” 13일 경기 포천시 일동면 ‘일동승진작은도서관’에서 기연호 성우(67)가 ‘꾀 많은 토끼’를 구성진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었다. 20여 명의 어린이는 호랑이 연기를 실감나게 하는 그를 보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구연동화 수업은 이날 작은도서관의 정식 개관을 기념해 열렸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KB국민은행의 후원으로 육군 5군단 관사 내에 만든 이 도서관은 군인 가족은 물론이고 지역주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다. 191m²(약 58평) 규모로 4000여 권의 책이 비치됐다. 서가와 열람실, 어린이공부방 등 세 곳으로 널찍하게 구성됐다. 국방부는 내년부터 도서관 운영을 지원할 예정이다. 도서관은 정식 개관에 앞서 주민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지난달 1일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예전에는 책을 보려면 10km가량 떨어진 일동도서관에 차를 타고 가거나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야 했다. 주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정은 씨(40·여)는 “도서관이 문을 연 후 초등학교 2학년인 딸 수빈이가 독서량이 두 배가량 늘어나 일주일에 5권 이상 읽고 있다”며 반겼다. 초등학교 2학년인 김유찬 군은 이날 ‘와이(WHY)?’ 시리즈를 세 권째 꺼내 읽고 있었다. 김 군은 “학교를 마친 후 매일 도서관에 와서 학원에 가기 전까지 책을 본다”며 “새로 나온 책을 실컷 볼 수 있어 신난다”고 말했다. 권동오 군(6)은 “어린이집 마치고 매일 오는데 그림이 예쁜 책이 많아서 좋다”며 웃었다. 도서관에는 어린이들이 수시로 찾아와 책을 보고 숙제를 하기도 한다. 엄마들은 자녀들을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보낸 후 도서관을 찾는다. 오후 7시까지 문을 여는데 저녁을 일찍 먹고 함께 오는 가족도 많다. 김란희 양(6)은 “아빠는 역사책을 보고 나는 그림책을 많이 본다. 도서관이 예뻐서 참 좋다”고 말했다. 배경영 씨(49·여)는 “도서관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북적여 동네 사랑방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사단법인 ‘작은도서관…’이 운영하는 이동도서관인 ‘책 읽는 버스’를 지원하고 작은도서관을 공공도서관과 연계해 책을 대출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신명숙 문체부 도서관정책기획단장은 “작은도서관이 지역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포천=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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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독서운동’ 30년의 기록, 김수연 목사 산문집 ‘약속’ 출간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인 김수연 목사(71)가 혹독한 시련을 겪은 후 절박한 마음으로 독서 운동에 뛰어든 과정과 결실을 담은 산문집 ‘약속’(마중물)이 최근 출간됐다. 2008년 펴낸 ‘내 생애 단 한 번의 약속’의 개정판이다. 승승장구하던 방송사 기자였지만 화재 사고로 책을 좋아했던 아들을 하늘로 떠나보낸 후 목사가 돼 30여 년간 전국에 작은 도서관을 짓고 이동형 도서관인 ‘책 읽는 버스’로 산간 오지를 누빈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잠 한숨 자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다 살아갈 이유를 찾고 ‘책 할아버지’로 불리기까지, 그의 지난한 인생 역정을 확인할 수 있다. 김 목사는 “미미하지만 세상 한 구석에서 외치는 작은 독서 운동이 메아리가 돼 계속 퍼져 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첫 책을 낸 후 겪었던 일과 소회를 추가해 개정판을 냈다”고 밝혔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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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소년이 온다’로 伊최고문학상 수상

    소설가 한강(47)이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말라파르테상’ 수상자로 14일(현지 시간) 선정됐다. 이 상은 ‘쿠데타의 기술’ ‘망가진 세계’로 유명한 이탈리아 작가 쿠르초 말라파르테(1898∼1957)를 기리기 위해 1983년 제정됐고, 이탈리아 문학계의 거장 알베르토 모라비아 주도로 창설돼 세계 문학에 활기를 불어넣는 외국 작가들에게 수여돼 왔다. 역대 수상자로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 소설가 솔 벨로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설가 네이딘 고디머가 있다. 프랑스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 미국 작가 수전 손태그 등도 이 상을 받았다. ‘소년…’은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계엄군에 맞서다 숨진 중학생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내면을 담은 작품으로 산 자와 죽은 자의 시선을 교차시키며 참혹한 고통과 깊은 슬픔을 처연하게 그렸다. 이 작품은 정부가 공공도서관에 비치할 우수 도서를 선정해 지원해주는 세종도서 사업에서 ‘문제도서’로 분류돼 지원 대상에서 빠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문학상 심사위원회 측은 수상자를 발표하며 “‘소년…’의 살아있는 이미지들이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고 다 읽을 때까지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고 평가했다. 이탈리아 출판사 아델피는 이 책을 ‘아티 우마니’(‘인간적인 행위’라는 뜻)라는 제목으로 최근 현지에서 펴냈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한 작가와 맨부커상을 받은 데버러 스미스 씨(30)가 영어로 옮긴 것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했다. 심사위원회는 이 책이 현지에서 공식 출간되기 전에 번역본을 읽어본 후 한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상식은 말라파르테가 머물렀던 나폴리 인근 카프리섬에서 다음 달 1일 열린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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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약자의 희망이 된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

    미국 시카고 흑인 빈민가에 사는 여학생이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하면 아이들이 괴롭혔고 프린스턴대에 진학하겠다고 하자 교사들은 성적에 비해 눈이 너무 높다고 했다. 여학생은 혼란에 빠졌지만 당당히 대학에 합격했고 하버드대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부인이 됐다. 미셸 오바마(53)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로 일한 뒤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된 저자는 가난한 흑인 소녀가 백악관의 안주인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세밀하게 엮었다. 당시 시카고는 인종 차별의 뿌리가 깊었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행진을 한 후 “남부 전역에서 시위를 벌였지만 시카고처럼 적개심에 가득 찬 행위는 보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다행히 미셸과 오빠는 교육열 높은 부모 덕분에 꿈을 갖고 자랄 수 있었다. 전업주부였던 어머니와 정수장에서 일하며 퇴근 후 야구, 농구, 축구, 미식축구를 함께하는 아버지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했다. 그리고 강조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면 너 역시 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선택뿐이다.” 저자는 방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미셸의 개인사와 사회·정치적 성취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미셸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지기 싫어했던 미셸은 늦은 밤은 물론 새벽 4, 5시에도 일어나 공부하던 악바리였다. 키 180cm로 육상 선수로 잠깐 활동했지만 키 큰 소녀도 다른 걸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운동을 더 하지 않았다. 미셸은 프린스턴대에 들어간 후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BMW를 운전하는 성인조차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차를 몰고 다니는 학생을 보며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 시카고 빈민가를 개선하기 위해 풀뿌리 정치 운동을 하던 버락 오바마와의 만남은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그래도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 법. 학생 봉사 활동 사무실을 이끌며 집안일을 하고 두 딸을 키우는 ‘독박 육아’에 지친 미셸이 버락에게 “당신은 자기 자신만 생각해”라며 따지는 모습은 여느 직장맘과 다름없다. 버락의 대선 출마를 허락하며 미셸이 내건 조건은 금연이었다. 골초였던 버락은 니코틴 패치 없이 담배를 끊은 비결에 대해 “마누라가 무서워 죽겠어”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빠듯한 형편에 정치에 필요한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하고, 백악관 입성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간 과정과 미국 대선이 치러지는 분위기도 실감나게 그렸다. 강하고 화끈한 그의 성격도 확인할 수 있다. 유세 논조가 부정적이고 신랄하다는 비판에 참모들이 어투를 순화해야 한다고 조심스레 말하자 “왜 진작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분개하는 모습이 그렇다. 이어 “선거운동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변하고 싶다”고 말할 때는 정치인의 아내 역할을 운명처럼 받아들인 듯하다. 미셸은 아주 낮은 가능성이라도 끈질기게 붙잡으려 애쓰라는 당부를 자신이 걸어온 길을 통해 웅변한다. 흑인을 비롯해 가난하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 뒤 일일이 포옹하며 꿈을 심어준 건 그가 뿌린 가장 의미 있는 씨앗이 아닐까. 원제는 ‘Michelle Obama: A Life’.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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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팬티 염라여왕… 故마광수가 그린 지옥

    “아, ××, 더러운 세상 잘 떠났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 2년 만에 돌연 사망한 마광수 교수의 영혼이 중얼거린다. 5일 별세한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66)가 쓴 단편소설 ‘마광수 교수, 지옥으로 가다’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다. 고인의 단편 28편을 모은 유고 소설집 ‘추억마저 지우랴’(어문학사)가 14일 출간됐다. 책 표지에는 1991년 출간한 ‘즐거운 사라’ 표지 삽화를 색깔만 바꿔 실었다. 이 삽화는 고인이 직접 그린 것. 책에는 ‘허무한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고인이 그린 삽화도 함께 담았다. 보통 삽화는 마 교수가 선택했지만, 이번 책은 마무리 단계에서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출판사에서 골랐다. ‘추억마저…’에서 저자는 페티시즘과 마조히즘, 그룹섹스 등을 등장시키며 성에 대한 특유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과감하게 풀어냈다. 마 교수가 간 지옥에는 투명한 망사 브래지어를 하고 티팬티를 입은 염라여왕이 미소년, 근육질 꽃미남과 함께 있다. 그곳에서 마 교수는 온몸에 피어싱을 해 한층 더 야해진 사라를 만난다. 작품 곳곳에는 고인이 느꼈던 외로움도 짙게 배어 있다. ‘고독의 결과’의 주인공은 같은 꿈을 반복해 꾸며 외로움에 야위어 간다. 고인이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대목도 있다. ‘고독의 결과’는 주인공이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우리 사회의 위선을 직설적으로 비판한 대목도 있다. ‘절망적인, 너무나 절망적인’에서는 ‘초초초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학생이 “사람들은 극단적인 도덕주의에 세뇌돼 겉으로만 도덕적인 척하며 살고 있고, 자유주의 사상은 범죄로 취급돼 정신훈련소에 감금된다”고 말한다. 자신을 단죄했던 법을 풍자하기도 한다. 박영희 어문학사 대표는 “고인은 기존에 써 놓았던 성에 대한 작품은 올해까지만 출간하고 내년부터는 순수 문학 작품을 쓰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추억마저…’는 초판 1000권을 찍었다. 서점에 배포한 물량은 평소보다 50% 늘렸다. 올해 1월 출간한 시선집 ‘마광수 시선’(페이퍼로드)은 하루 10권가량 판매됐지만 저자가 별세한 후 100∼200권이 나가 최근 1000권을 더 인쇄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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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신춘문예 열병앓이

    “신춘문예 공고가 언제 나오나요?” 더위가 가실 무렵이면 회사로 이런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신문춘예는 11월 초 공고를 내고 12월 초에 마감한다. 계간 시 전문지 ‘미네르바’는 가을호에 특집 좌담 ‘한국 문단 등단 제도 이대로 좋은가?’를 실었다. 등단의 주요한 두 축인 신춘문예와 문학잡지의 신인상 제도에 문제점이 있다는 오랜 비판을 바탕으로 깔고 있는 기획이다. 유성호 평론가는 박노해 장정일 씨는 시집 출간으로 시인이 됐다며 등단 제도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제도를 없애기보다는 운용의 미를 발휘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신달자 시인은 “여러 폐단에도 불구하고 등단에 대한 열망이 우리 문학의 큰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신춘문예에 투고된 원고가 차곡차곡 쌓여 높다란 탑을 이룬 광경은 문학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온도계 같다. 올해도 신춘문예를 향한 열병을 앓으며 글을 쓰고 있을, 얼굴 모르는 수많은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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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인 수녀 “저런 외모에 이런 감성이…” 김태원 “제 정신은 다르게 생겼어요”

    시인 수녀와 로커. 너무나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은 이들이 10년 넘게 우정을 나누고 있다. 이해인 수녀(72)와 그룹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 씨(52)다. 2006년 강연을 하러 필리핀에 간 이 수녀는 그곳에서 자폐증세가 있는 아들을 키우는 김 씨의 집에 초대받은 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두 사람이 7일 서울 용산구 ‘성 분도 은혜의 뜰’에서 만났다. “선글라스가 태원 씨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요즘 건강은 좀 어때요?” 이 수녀가 근심 어린 눈으로 안부를 물었다. 김 씨는 지난해 패혈증에 걸려 중환자실에 입원한 적이 있다. “몸이 안 좋으면 누워 있고 좋으면 걸어 다니고, 수녀님 뜨시면 나타나죠.” 김 씨의 재치 있는 답변에 이 수녀가 깔깔깔 웃었다. 단정하고 수수한 이 수녀와 긴 머리를 질끈 묶고 가죽바지를 입은 김 씨는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 노래가 된 시 부활의 11집 앨범(2006년)에 첫 번째로 담긴 ‘친구야 너는 아니’는 이 수녀의 시에 김 씨가 곡을 붙인 노래다. 마음을 다독이는 시어와 서정적인 곡은 절묘하게 어우러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가톨릭 신자인 김 씨는 “시가 성가처럼 와 닿으며 멜로디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 수녀는 시에 곡을 쓰게 해달라는 김 씨의 요청을 수락했지만 속으로는 불안했단다. “로커가 곡을 쓰면 얼마나 시끄러울까 걱정했어요. 앨범이 나온 뒤에도 안 듣고 있다가 궁금해서 어느 날 들어보고는 눈물이 났어요. 저런 외모에 이런 감성이 있다니!”(이 수녀) “수녀님, 제 ‘솔(soul)’은 외모와 다르게 생겼어요.(웃음) 수녀님 시로 노래 한 곡 더 만들고 싶어요.”(김 씨) 이 수녀는 “나 죽고 나서 장송곡으로 쓰지 말고 얼른 만들어서 살아 있을 때 기쁨을 달라”며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렸다. 이들은 시 노래 콘서트도 함께 하고 있다. 올해 11월 3일에도 ‘성분도 은혜의 뜰’에서 콘서트를 연다.○ 창작의 고통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기에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안다. “어떤 분들은 시가 팝콘처럼 튀어나오는 줄 알지만, 오래 진통하고 숙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시가 탄생해요. 포도주가 익어야 향기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죠.”(이 수녀) “아, 그 심정 진짜 잘 알아요. 제가 한 곡을 쓰는 데 2년이 걸렸어요. 멤버들이 ‘진짜냐’고 물어서 702번까지 녹음한 음성 파일을 보여주니 놀라더라고요. 얼마나 많이 만들고 또 부숴야 하는데요….”(김 씨) 이 수녀도 시 ‘석류’를 쓰는 데 3년 걸린 게 과장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힘들수록 오뚝이처럼 이 수녀는 직장암, 김 씨는 위암으로 투병했다. 하지만 꺾이지 않고 씩씩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김 씨는 다음 달 싱글 앨범을 낸다. 내년은 이 수녀가 수도서원을 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 이를 기념해 절기별 기도시를 모은 ‘사계절의 기도’에 시 150편을 추가해 모두 300편이 담긴 시집을 올해 11월 출간할 예정이다. 수필과 칼럼 등을 모은 산문집도 같은 시기에 내기로 했다. 이 수녀는 젊을 때는 코스모스, 민들레 등 수수한 꽃이 좋았는데 요즘에는 장미가 좋다고 했다. 김 씨는 “직접 그린 부활의 로고가 장미일 정도로 저 역시 장미를 좋아한다”며 맞장구쳤다. 식성도 비슷하다. “투병할 때 아무것도 못 먹겠는데 유일하게 짜장면만 들어가더라고요.”(김 씨) “나도 항암 주사 맞을 때 소면 국수만 넘어갔어요. 가족들과 부산 성베네딕도 수녀원에 놀러 와요. 내가 맛있는 밀면 사줄게요.”(이 수녀) 김 씨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들은 ‘집단 토크쇼’라는 문패가 딱딱하다며 다른 이름으로 바꾸면 좋겠다고 했다. 골똘히 생각하던 이 수녀가 “‘우정 토크쇼’ 어때요?”라고 제안했다. 김 씨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이 수녀가 손뼉 치며 웃었다. 두 사람의 표정이 아이 같았다.  ▼“기나긴 투병생활, 이제는 ‘선물’로 받아들여”▼詩-멜로디 뒤에 말못할 고통“고통과 아픔 자체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 과정을 겪고 나니 아픈 사람들을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죠. 인생관, 세계관, 종교관 등 삶의 모든 시선을 넓혀줬어요. 고통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기회로 삼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이해인 수녀) 이들의 아름다운 시와 노랫말 뒤에는 말 못할 고통이 있었다. 이해인 수녀는 2008년 직장암 발병을 확인하고 기나긴 투병생활을 거쳤다.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 씨는 2011년 KBS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며 우연히 위암 발병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해엔 패혈증까지 겹쳐 현재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 “정말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지금은 대부분의 균을 치료하고, 간 등 일부 치료만 진행하면 됩니다.”(김 씨) “갑자기 제가 죽었다는 소문이 났을 땐 마음이 겸허해지고, 묵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꾸 반복되니까 당황스럽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많이 좋아졌습니다.”(이 수녀) 김 씨는 자신의 투병뿐 아니라 자폐증세를 앓는 아들 우현 군(17) 등 가족의 아픔도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50여 년간 수도자의 삶을 살아온 이 수녀 역시 홀로 고통을 극복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 시간을 오히려 ‘선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사는 중이에요. 가족이 없었다면 제 인생은 30대 때 끝났을 겁니다. 사랑의 책임을 져야죠. 다행히 우현이도 필리핀에서 완전히 적응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답니다.”(김 씨) “수도자에겐 ‘선종’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죠. 내 안에 살아있는 자존심을 꺾어야 육체적으로 더 순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이 수녀)손효림 aryssong@donga.com·유원모 기자}

    •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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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진실만큼이나 강력한 거짓말의 힘

    간절히 손에 넣고 싶은 비밀이 있다. 이를 알아내기 위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는가. 봉인 해제를 위한 제단에 바쳐야 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면 이에 응하겠는가. 이 미스터리 판타지 장편소설은 인간의 마음속 깊숙이 도사린, 금단의 열매를 따고 싶은 욕구에 대해 정면으로 질문을 던진다. 다윈이 ‘종의기원’(1859년)을 발표한 지 10년 가까이 지난 영국. 열네 살 소녀 페이스는 유명 화석을 발견한 과학자이자 목사인 아버지가 의문에 가득 찬 죽음을 맞자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나선다. 페이스가 맞닥뜨린 건 거짓말 나무였다. 거짓말을 듣고 열매를 맺어 이를 먹은 이에게 비밀을 알려주는 나무. 더 큰 거짓말일수록, 거짓말이 더 널리 퍼질수록 알아낼 수 있는 비밀의 무게도 커진다. 페이스는 나무에게 거짓말을 속삭이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서서히 거짓말의 유혹에 빠져든다.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퍼뜨리며 쾌감을 느끼게 된 것. 진실을 밝히기 위해 거짓을 말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페이스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어서 빨리 다음 이야기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빅토리아 시대의 옷차림과 풍속, 거리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진화론과 창조론이 격렬하게 대립하던 당시 분위기도 확인할 수 있다. 남성은 두개골이 여성보다 더 커서 지능이 뛰어나고 여성은 똑똑하거나 숙련된 기술을 가질 수 없다고 굳게 믿던 시절, 페이스가 당차게 나아가는 모습은 소녀들에게 보내는 격려처럼 느껴진다. 거짓말에 대한 인간의 복잡 미묘한 심리와 욕망을 다층적으로 비추는 동시에 읽는 재미도 선사한다. 필립 풀먼의 ‘황금나침반’에 이어 청소년 소설로는 두 번째로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코스타상을 수상했다. 탄탄한 서사가 지닌 강력한 힘은 성인을 빨아들이기에도 충분하다. 영화 ‘오페라의 유령’, ‘어거스트 러쉬’ 등을 제작한 루이즈 굿실은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원제는 ‘The Lie Tree’.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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