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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장은 정말 힘들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일은 일대로 하고 책임도 져야 한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끝난 뒤 감사원은 대응 실패를 이유로 당시 양병국 본부장의 해임 등 8명에게 중징계를 권고했다. 정기석 전 질본 본부장(62·한림대 성심병원 교수)은 “지금도 직원들이 날밤을 새우겠지만 선제적·실질적 대응을 하기 위한 권한은 사실상 거의 없다”며 “과거처럼 상황이 끝난 뒤 또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 정은경 본부장의 직전 본부장으로 2016년 2월∼2017년 7월 재임했다.》 ―정은경 본부장의 머리가 하얗게 센 사진이 화제가 됐다. “힘들 때니까…. 어디 보니까 한 시간은 좀 넘게 잔다고 하던데…. 몸도 몸이지만 아마 마음고생이 무척 클 거다. 전문 인력 등 모든 게 부족한 데다 권한도 별로 없으니까.” (질본 본부장은 최전선 지휘관인데 권한이 없다니.) “코로나19로 질본 본부장이 지휘하는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생겼다. 그럼 여기서 방역에 관한 모든 것을 컨트롤해야 한다. 그러라고 만든 거다. 그런데 위기대응 단계 격상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이 본부장인 중앙사고수습본부가 만들어지고, 다시 ‘심각’ 단계가 되니까 국무총리가 본부장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생겼다. 장관, 총리가 방역을 아나? 정 본부장이 결정하고 말해야 할 것을 그 위에서 하니 엇박자가 안 나고 배기겠나. 즉시 조치는 고사하고 아마 위에 보고하고 설명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내지 않을까 싶다. 얼마나 답답하겠어.” ―그럼 질본은 지금 주로 뭘 하나. “역학조사 정도… 신천지 교도가 어디서 얼마나 감염됐고, 감염원이 여기냐 저기냐 하는…. 그런 건 질본 역할 중 일부분일 뿐이다. 본부장에게 제대로 된 권한이 있었다면 중국 우한에서 터졌을 때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막았을 거다. 얼마 전 정 본부장이 ‘방역하는 입장에서 고위험군이 덜 들어오는 게 좋은 것은 당연하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로서는 엄청 세게 얘기한 거다. 그런 말을 할 스타일이 아니거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전파했다고 했는데 거짓말이다. 일단 보름 정도만 입국을 막으면 한국인도 중국에 안 가기 때문에 금방 준다. 29번 환자도 한동안 왜 감염됐는지 몰랐는데, 그때 이미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됐다고 보고 심각 단계로 올렸어야 했다. 본부장에게 권한이 있었다면 둘 다 즉시 했을 거다. 그리고 파생 문제를 예상하면서 마스크 물량을 점검하게 되고, 수출 금지, 최대 생산을 건의했을 거다. 대만이 그러지 않았나. 하지만 요원한 얘기다. 지금은 인사권도 없으니.” ―질본 본부장은 기관장인데 인사권이 없다니…. “내가 취임했을때 6급 이하 인사를 1년 정도 지나서야 할 수 있었다. 물론 규정은 6급 이하 인사는 소속 기관의 장이 한다고 돼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복지부가 안 놔준다. 얘기를 계속하고 주변과 언론에서도 본부장에게 인사권이 없는 게 문제라고 하니까 그때서야 놔줬다. 지금은 또 어떤지 모른다.” (인사권도 없는데 당신은 왜 맡은 건가. 몰랐나?) “잘 모르기도 했고, 나 때 처음으로 1급에서 차관으로 승격돼 차관이면 할 수 있는 게 있을 줄 알았다. 또 메르스로 그렇게 혼이 나서 아무도 안 하려는 자리에 왔으면 재량권을 줄 거라 생각했다. 순진했지….” (5급 이상은 본부장이 전혀 모른다는 건가.) “사전 의논 없이 일방적으로 내리꽂으니까…. 물론 복지부 장차관과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살짝 얘기는 해주지만 시스템은 아니다.” ―감염병 대응에는 역학조사관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하던데…. “처우나 입지가 안 좋으니까…. 역학조사관으로 들어오는 의사들은 감염병 같은 공공보건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들어와서 일을 하다 보면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규직이 아니다. 처음에 3년 계약하고, 2년 연장할 수 있지만 그다음은 정해진 게 없다.” (계속 계약 연장은 되나.)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2, 3년마다 계속 재계약해야 한다면 누가 남아 있겠나. 그러다 보니 질본에 좀 있다가 그걸 경력 삼아 정년이 보장되는 복지부 5급 사무관으로 옮긴다. 이런 식으로 경력이 좀 쌓이면 사라지기 때문에 베테랑 역학조사관이 적다.” ※역학조사관은 전문임기제로 현재 정원은 43명이지만 33명이 일하고 있다.(2월 27일 기준) 코로나19 사태로 130명까지 늘리기로 했지만 신분은 달라지지 않았다. ―개선 요청은 안 했나. “왜 안 했겠나. 의사 출신 역학조사관은 10년 정도 하면 고위공무원단이 될 수 있는 자격과 인센티브를 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안 됐다.” (왜 안 된다고 하던가.) “정부 조직에서… 그런 걸 공문으로 명확하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구두로 전달하면 돌고 돌아서 안 된다는 말만 온다.” ―역학조사관이 실제 뭘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도 이유가 아닌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는 EIS(Epidemic Intelligence Service)라는 역학조사 전문요원 양성 프로그램이 있다. 연방수사국(FBI)처럼 등에 로고가 박힌 점퍼를 입고 다니는데 ‘질병수사관’으로 불린다. 국립보건원에 이들을 양성하는 대학원을 만들고 싶어 건의했는데 안 됐다. 대학원을 만들면 학생이 오고, 교수 등 전문 인력이 양성된다. 하나의 학문 사회가 생기면 관련 인력 풀이 커진다. 이번에 대구같이 큰 도시에도 제대로 된 역학조사관이 없었다. 역학조사관 분야가 제대로 서있으면…. 그들이 평소에 감염병을 연구하고, 이런저런 상황에 대비한 대응책을 짜고, 가상훈련을 계속한다. 그 시나리오 속에 주변국 입국 금지는 어떻게 할지, 자국민 이송, 마스크 수급, 병상 준비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러다 터지면 즉시 대응하는 거다.” (지금 많은 전문가들이 미리 선제적으로 했어야 한다고 지적하는데.) “그 사람들 중 평상시에 방역 대책을 고민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나부터도 마찬가지다. 지금 코로나19가 터지니까 논문 찾아보고 얘기해주는 거지…. 언제 코로나 방역 대책을 생각했겠나.” ―지금 질본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뭔가. “긴급상황센터장과 감염병관리센터장이 전문가가 아닌 행정고시 출신 복지부 관료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브리핑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다. 복지부가 자기들 인사 적체를 해소하는 곳으로 질본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행시 출신이 하면 왜 안 되나.) “감염병 발생 시 질본에서 가장 중요한 게 긴급상황센터장이다. 현장 지휘관이라고 할까. 의사 출신인 정 본부장도 그 자리에 있다가 본부장이 됐다. 그다음이 감염병과 관련해 전반적인 지원을 해주는 감염병관리센터장이다. 지금 같은 확진자 숫자 나열 브리핑은 사실 본부장이 매일 할 필요가 없다. 그건 원래 긴급상황센터장 일이다.” (그런데 왜 본부장이?) “감염병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면 답을 할 수 없으니까. 행시 출신 복지부 고위관료가 뭘 아나.” (혹시 의사 출신을 구하려다 안 돼서 온 건 아닌가.) “그건 아니고… 복지부에 국장 자리가 한정돼 있으니 질본에 와서 쉬다 가는 거다. 사실 박능후 장관 취임 전날 조언을 해달라기에 만났다. 그 자리에서 질본 조직표를 꺼내 긴급상황센터장, 감염병관리센터장을 형광펜으로 줄 치고 ‘장관님, 이 자리는 절대 행정직이 와서는 안 됩니다’라고 신신당부했다. 전문가를 승진시키거나 뽑아야 한다고….” (결과는?) “더 나빠졌다.” ※ 질본 브리핑은 정 본부장이 혼자 하다 지난달 말부터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이 함께하고 있다. ―감사원은 메르스 사태 때 병원명 비공개가 감염을 확산시켰다며 당시 양병국 본부장, 정 본부장(당시 긴급상황센터장) 등 질본 간부들의 중징계를 건의했다. 하지만 정작 결정권자인 당시 문형표 복지부 장관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희생양이었다고 본다. 내가 본부장이 되면서 징계가 집행됐는데 막아보려고 했지만 잘 안됐다. 권한도 없던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우면 되나. 그때 실망한 의사 출신 간부들이 많이 떠났다. 지금도 이런저런 문제가 지적되는데… 솔직히 지금 경질하면 정부가 잘못했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니 못 하겠지만 사태가 끝나고 나면 알 수 없다. 안 그래도 권한은 없고 책임만 많아서 아무도 안 하려는 자리인데…. 임기도 그렇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인 작년 12월에 청와대에서 정 본부장 후임을 물색했다. 여기저기 전화해 하겠냐고 묻고 다녔거든. 정 본부장이 2년 반쯤 됐으니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던지 그러다가 지금 사태를 맞았는데…. 질본이 정치색이 있는 곳도 아니고 전문가들은 좀 오래 놔두면 안 되나.”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공약으로 질본의 청 승격, 6개 지역본부 설치, 복지부내 보건 담당 2차관 신설 등을 발표했는데,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것과 똑같다. “상황이 끝나고 나면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까 추진하지도 않고, 다시 터지니까 그대로 갖다 쓴 거지.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 중 하나가 질본 독립이다. 공약 지켜지는 거 별로 없지만 역시나였다. 이번에도 저러다 말 거다. 그냥 하는 소리들이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광주시는 지난해 5월 18일부터 228번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1960년 자유당 독재에 맞서 대구 고등학생들이 벌인 2·2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데, 518번이 있는 대구가 두 도시의 화합과 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해 제안했다. 차 안팎에는 2·28민주화운동에 대한 설명도 붙어 있다. 228번은 5·18민주화운동 사적지를, 518번은 2·28기념중앙공원 등을 지난다. ▷2009년부터 시작된 두 도시의 우정은 ‘달빛동맹’이라 불린다. ‘달구벌’(대구)과 ‘빛고을’(광주)에서 땄다.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를 놓고 지자체 간 갈등이 심해지자 소모적인 경쟁 대신 어느 곳이 선정돼도 연구개발 사업을 공동으로 하기로 한 데서 시작됐다. 이후 광주∼대구 내륙철도사업, 광주시민의 숲(대구) 대구시민의 숲(광주) 조성 등 행정 분야를 넘어 문화 예술 민간까지 교류·협력이 확산됐다. 두 지역 통기타 뮤지션들의 모임인 ‘달빛통맹’도 있고, 양 지자체가 두 지역 미혼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달빛오작교’ 행사도 매년 열린다. ▷4일 광주 빛고을전남대병원에 대구의 경증 확진자들이 입원했다. 대구의 어려움을 나누기 위해 광주가 병상을 제공한 것이다. 병원이 있는 덕남마을 주민들은 ‘광주와 대구는 달빛동맹을 맺은 형제입니다’란 플래카드를 걸었다. 광주시의사회는 지난달 28일부터 대구에서 의료봉사 중이다. 대구는 지역에서 확진자가 폭증하기 전 광주에서 처음으로 확진자가 나타나자 마스크 1만 장을 전달했다. 최근에는 광주가 마스크 2만 장을 대구에 지원했다. ▷달빛동맹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두 도시 간의 동맹에서 전라-경상 간의 유대로 확대되고 있다. 화순전남대병원에서는 대구 확진자 2명을 치료 중이고, 전남도는 대구경북에 마스크와 위생용품, 사랑의 도시락을 지원했다. 전남 진도군 군내면 주민들은 특산물인 봄동(봄배추) 800kg을 대구 남구에 보냈는데 자가 격리 중 반찬 부족을 걱정해서라니 그 마음 씀이 훈훈하다. 남구 주민들은 2012년 군내면에서 태풍 피해 복구를 도왔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한국판으로 쓴다면 무대는 단연 대구와 광주가 아닐까 싶다.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대혁명과 우리 민주화의 기폭제가 된 2·28, 5·18이란 시대 배경, 런던과 파리 못지않은 라이벌 의식 등 유사점이 많다. 디킨스는 당시를 “희망의 봄이지만 절망의 겨울이기도 했다”고 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희망만 한 것이 없지만 희망이란 길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없던 길도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생긴다. 달빛이 그 길을 비추고 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보를 최고 단계로 올리고, 전국의 학교 개학도 일주일 연기했다. 일부에서는 생필품 사재기와 정상적인 생활을 꺼리는 사람들도 생기는 상황. 대응은 철저해야 하지만 과도한 공포는 질병 자체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지금, 모든 것이 뚫리고 엉망인 것처럼 느끼는 두려움은 적절한 것일까. 사태 초기 3, 17, 28번 환자를 완치해 퇴원시킨 명지병원 이왕준 이사장(56·대한병원협회 신종 코로나 비상대응실무단장)은 19일 “바이러스는 괴물이 아닌 의학으로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병원협회에서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때는 상황실장, 2015년 메르스 때는 대책위원장을 지냈다.》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정부의 초기 방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은 확산 중이니까 잘 안 믿기겠지만… 솔직히 1단계 방역은 잘했다고 본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분명히 국내로 들어온다고 보고 준비에 들어갔다. 우리가 일본, 싱가포르보다 지역사회 감염이 2, 3주 늦은 게 이런 초기 대응이 잘됐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번 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미 전국에 확산됐는데, 시간을 번 게 의미가 있다니?) “그 사이에 진단키트를 개발해 보급하고, 의료기관이 대처할 수 있게 됐으니까. 일본은 진단키트도 제대로 못 만들어서 지금도 하루에 백몇십 명밖에 검사를 못 하고 있다. 우리도 처음에는 그랬는데 시간을 벌면서 지금은 몇천 개를 만들어 검사한다. 무기가 쥐여진 거다. 더 중요한 건, 그 시간 동안 걸리면 죽을지 살지 알지도 못하다가 완치돼 퇴원하는 환자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확산은 됐지만 이렇게 치료하면 된다는 지침도 줄 수 있게 됐고… 이게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건데 대부분은 그 의미를 잘 모른다.” ―그렇더라도 지역사회로 전파됐다면 대응에 실패한 것 아닌가.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데, 초기 검역 등 감염병에 대한 1단계 대응은 100% 차단이 목적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중국 우한처럼 순식간에 통제 불능 상태로 확 번지지 않고, 가두리 양식장처럼 최대한 통제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대응 시간을 버는 게 목적이다. 물론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나중에는 결국 지역사회로 전파되지만… 감염병이란 게 지역사회 전파가 안 될 수는 없다. 4, 5일간 확진자가 안 나온 소강 기간이 있었는데 그게 바이러스가 사라졌다는 게 아니다. 방역망 안에서 관리가 되던 사람들 중에 확진자가 안 나온 거고, 빠져나간 사람 사이에서는 감염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지역사회 전파를 예상했다는 건가.) “16일쯤부터 시작돼 오늘(19일)쯤 확산 현상이 보일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지역사회로 감염이 확산됐을 때 환자 분류는 어떻게 하고, 진료체계는 어떻게 정하고, 그런 것들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의료진의 감염 보호 문제도 대비하고….” ※16일 정부 방역망에서 벗어난 첫 2차 감염 환자가 발생했다. ―감염 의심자의 동선 파악에 구멍이 있다는 지적도 많은데…. “아무리 정밀하게 해도 모든 동선을 파악할 순 없다. 그래도 감염병 관리법이 바뀌어서 몇 년 전에 비하면 엄청 좋아진 거다. 메르스 때는 진술 외에는 역학조사관이 동선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신용카드, 휴대전화 통신기록, 폐쇄회로(CC)TV 등을 볼 수 있어 중요한 지점은 다 확인이 된다. 범죄자도 영장 없이는 못 보는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발전한 거다. 외신들은 왜 그런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우리는 안 묻더라.” (어느 외신이?) “월스트리트저널… 특집기사를 준비 중이라고 하던데?” ―3번 환자에게 에이즈 바이러스 치료제(칼레트라)를 투여한 이유는 뭔가. “전 세계에서 사용 가능한 항바이러스 제제가 몇 개 안 되는데, 다른 것은 코로나19와 바이러스 종류가 달라 효과가 없다는 게 드러났다. 칼레트라는 에이즈 바이러스를 직접 공격하는 게 아니라 대사 과정을 막아 자라지 못하게 하는데 이런 원리가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봤다. 보급이 많이 돼 당장 쓸 수 있기도 했고. 17번 환자는 회복기에 발견돼 투여하지 않았다.” ―퇴원 결정 때 고민하지는 않았나. “메르스 때와 달리 지금은 개별 병원에서 결정하지 않고 환자를 치료 중인 병원들이 모인 중앙임상TF에서 한다. 개별 병원에서만 하면 실수가 있을 수도 있고, 이런 문제는 집단지성으로 해결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굉장히 중요한 기구다.” (퇴원 여부 말고 다른 기능도 있나.) “메르스 때 30여 명이 사망할 정도로 엄청났는데 어이없게도 논문 하나, 환자 조직 하나 남겨진 게 없으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논문은 환자를 체계적으로 봐야 쓸 수 있는데, 당시 워낙 정신없이 밀려드는 환자를 보는 데만 급급해서 전혀 준비를 못 했다. 사망자의 폐 조직도 보관해야 하는데, 겁이 나서 전부 화장을 해 남아 있는 게 없다. 제대로 된 혈청도, 유전자 분석도 없다. 지금 우한 같은 상황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이번에는 중앙임상TF로 환자 샘플을 보내고, 치료 과정도 공유하며 케이스를 모으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병원에서도 환자가 퇴원하자마자 관련 논문이 나올 수 있었던 거다. 지금은 환자가 발생하니까 굉장히 뚫린 것 같지만 사실 질서있게 대응하고 있는 편이다.” ※중앙임상TF는 20일 ‘신종 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로 확대·개편됐다. ―의료진도 사람인데…. “감염에 대한 걱정을 말하는 건가? 우리 병원은 시설도 시설이지만 바이러스가 몸에 묻지 않도록 훈련해서 별로 걱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바이러스는 눈에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아나.) “메르스 발생 1년 전인 2014년 ‘감염성 질환 신속 대응팀’을 만들었는데 방호복에 형광물질을 바르고 착·탈복 훈련을 했다. 벗은 뒤 형광카메라를 비춰 조금이라도 묻어 있으면 제대로 벗을 때까지 무한 반복을 하는 식으로. 바이러스는 절대 무섭지 않다. 알고 준비하면…. 그래서 메르스 때 대체로 잘했는데 패착이 하나 있었다.” (패착?) “훈련과 준비를 감염 관련 인력 수십 명만 한 거다.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감염병 대비는 전 직원은 물론이고 환자들까지 함께 해야 한다는 걸…. 그래서 이번에 3번 환자가 확진자라는 보고를 받자마자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진돗개 하나?) “나한테 브리핑한 거 그대로 직원들에게 통신문으로 보내고, 입원 환자들에게는 500부를 복사해서 일일이 회진하며 돌리라고 했다. 직원, 환자들이 우리 병원에서 확진자를 치료 중이라는 걸 뒤늦게 뉴스를 보고 알면 두려움이 생긴다. 먼저 연락 받으면 안심하게 되고, 또 그게 정상이다. 그런 모습이 효과가 있었는지 다행히 한 명도 나가겠다는 환자가 없었다.” ―남들은 돈 안 된다고 기피하는데 국가지정격리음압병상, 권역응급센터·외상센터·재난거점병원 등 4개나 맡고 있다. 돈은 초월한 건가. “하하하, 그럴 리가. 이번에도 외래환자가 30∼40% 정도 준 것 같기는 한데…. 국가지정격리음압병상은 원래 다른 병원에서 내부 반발로 반납한 걸 경기도가 받아달라고 해서 받은 거다. 우리 안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그런 건 공공병원이 해야지 민간인 우리가 왜 하느냐, 문 닫으려고 그러냐고. 옛날에도 콜레라 돌 때 환자 받았다가 폐쇄된 병원들이 있어서….” (알면서 왜?) “10년 전 이 병원을 인수했을 때 기자들이 전략이 뭐냐고 묻기에 응급 의료에 올인하겠다고 했더니 ‘듣보잡’ 전략이라고 하더라. 당시 응급실은 지금보다 더 의료수가가 낮았고, 다들 적자라고 줄이는 상황이었으니까.” (현실적인 지적 같은데?) “이 지역 인구가 42만 명인데 지역거점병원 역할만 제대로 하면 경영에 지장은 없다. 그런데 왜 안 오냐면 우리 병원을 못 미더워 했으니까. 그나마 오는 사람은 가깝거나, 응급상황이라 다른 데 갈 수 없는 경우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졌을 때 제일 먼저 간 곳이 삼성서울병원이 아니라 집 근처인 한남동 순천향대 부속 서울병원이다. 거기서 응급치료 받고 삼성서울병원으로 갔다. 어쩔 수 없이 갔는데 정말 잘하더라는 믿음을 쌓으면 될 거라 봤다. 그 영역이 감염, 재난, 외상으로 넓어진 거다.” ―다른 병원과 달리 남자 의사들이 모두 나비넥타이를 착용하던데 홍보 차원인가. “기자회견이나 브리핑에서 그 모습을 보고 많이들 묻던데… 넥타이란 게 사실 잘 세탁을 안 하는 데다 롱 타이는 길어서 음식물 등이 잘 묻기도 해 감염에 취약하다. 의료계에서는 병원에서의 롱 타이 착용을 가급적 피하자는 제안도 있고, 실제 균 검출을 보고한 것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건 환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나비넥타이로 했다.” ―코로나19는 정복될까. “전파력은 높은데 치사율이 낮은 바이러스가 오래 살아남는다. 치사율이 높으면 숙주가 죽어 바이러스도 살 수 없으니까. 원래 신종 인플루엔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계절 인플루엔자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는) 늘 우리 옆에 남아 있어서 폐렴을 일으키는, 동거하는 바이러스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겉보기엔 평온하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지만, 물속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오염과 부유물 등 때문에 수경 앞에서 자기 손을 흔들어도 안 보일 정도. 물속엔 공사장 등에서 떠내려온 통나무 철근 등 온갖 고체들이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서울 한강경찰대 수상구조요원 유재국 경위가 15일 투신자 수색 중 숨졌다. 교각 돌 틈에 몸이 끼었는데 빠져나오지 못해 변을 당했다고 한다. 2018년 8월에는 민간 보트 구조에 나섰던 심모 소방교 등 소방대원 2명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한강 평균 수심은 5m에 불과하지만 베테랑 구조대원들도 잠수했다가 위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몸이 뒤집히면 위아래를 구별하지 못해 당황하게 되는데, 이때 심장마비에 걸리기 쉽다. ▷강에 투신해 물속으로 사라져버린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강바닥에서 일렬로 줄을 잡고, 한 손으로 더듬어 가며 찾아야 한다. 체력 소모도 극심한데 공기통만 20kg이 넘는 데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수 kg의 추를 차고, 수색 내내 물살을 거스르며 헤엄을 쳐야 한다. 한강 하류는 유속이 시속 5km 정도인데 2km만 넘어도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심야에 출동하는 구조대원들은 한강 잠수교 인근을 지날 때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밤에 잠수교 위에서 불법으로 낚시를 하는 이들이 있어 출동하던 대원의 목에 낚싯줄이 감긴 적도 있다. ▷안타까운 건, 재난 상황 자체도 위험하지만 구조대원들의 선한 마음 때문에 더 큰 위험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는 점이다. “아직 살아 있을 것”이라며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어두워져서 오늘은 그만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보려는 마음에 스스로 ‘조금만 더’를 외치며 잠수 횟수와 시간을 늘리다가 변을 당하기도 한다. ▷구조는 목숨을 건 행동이다. 하지만 ‘설마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구조대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도 많다. 실종자 수색본부가 차려진 곳 바로 옆에서 수상스키, 윈드서핑을 즐기는가 하면, “흥을 깬다”며 수색본부를 옮겨 달라는 사람도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구해내도 “고맙다”고 하거나, 나중에 찾아오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한다. 수색 작업의 어려움은 고려하지 않고 시신 인양이 늦어지는 것만 질타하는 목소리도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다. 숨진 유 경위의 아내는 임신 중이라고 한다. 심 소방교도 당시 갓 돌이 지난 쌍둥이를 두고 있었다. 유가족들만큼은 더 이상 힘들지 않게 우리가 돌볼 차례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보이스피싱은 바이러스와 닮았다. 끊임없이 변종을 양산하는 바이러스처럼 계속 수법을 바꿔 나간다. 초기에는 여론조사, 경품당첨 등을 사칭해 개인정보를 묻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정보기술(IT) 발전과 함께 휴대전화, 컴퓨터에 앱을 설치시켜 통째로 빼가는 식으로 진화했다. ▷이상한 메일이나 문자는 절대 열지 말라지만 최근에는 ‘한국 코로나바이러스 첫 사망자 발생’이란 제목의 동영상도 등장했다. 동영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스팸 바이러스인데 열면 휴대전화에 설치된 금융정보와 송금기능을 몽땅 빼간다고 한다. 요즘 같은 때 ‘우한 폐렴 감염자 및 접촉자 신분 정보 확인하기’라는 문자가 오면 안 열어보기도 힘들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오산이다. 2007년 아들을 납치했다는 보이스피싱에 걸려 6000만 원을 사기당한 한 지방법원장은 범인들이 들려준 “살려 달라”는 목소리를 아들로 착각했다. 주변에서 아들에게 확인 전화를 하자고 했지만 이 법원장은 “협박범들이 아들에게 전화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했다”며 돈을 보냈다. 2014년 적발된 보이스피싱 일당의 총책은 6년간 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서 보이스피싱 수사를 맡았던 전직 경찰이었다. 그는 수사 노하우를 활용해 조직을 구성하고, 직접 조사했던 범죄자들을 조직원으로 편입시켰다. 드러난 조직원만 50여 명에 달했다. ▷최근 전북 순창에서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20대 청년 김모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검사를 사칭한 범인은 “통화를 끊으면 공무집행방해로 2년 이하 징역 및 30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받고 (도주하면) 지명 수배된다”고 협박했는데, 김 씨는 실수로 전화가 끊어진 뒤 다시 연결이 안 되자 진짜 처벌을 받을까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김 씨는 대학 4년 내내 다리가 불편한 친구의 휠체어를 끌어줄 정도로 심성이 고왔다고 한다. 김 씨는 유서에서 “저는 수사를 고의로 방해한 게 아닙니다”라고 호소했다. ▷보이스피싱 피해는 2013년 550억 원에서 지난해 6300억 원으로 급증하고 있다. 피해자 자살 같은 극단적인 불상사가 발생해도 양형단계에서 참고될 뿐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직접적으로 묻기는 어렵다고 한다. 금융범죄인 데다 범인이 고의로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 보이스피싱 일당을 조직폭력 단체에 준해 처벌하고 있으나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걸 보면 큰 효과는 없는 듯하다. 선량한 사람들을 숙주로 삼는 기생충을 박멸하려면 보다 강력한 대응과 처벌이 있어야 한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절박함이 없어….” 2018년 6월 어느 날, 김형오 당시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회장은 옆에 있던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안상수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준비위원장과의 통화를 막 끝낸 후였다. 당시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한국당은 국회의장을 지낸 그를 비대위원장 1순위로 접촉 중이었다. 2016년 총선 참패 이후 당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그는 비대위원장 요청을 받았지만 모두 고사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심정으로 독배(毒杯)를 든 걸까.》 ―비대위원장 요청은 그간 모두 고사하지 않았나. “수차례 요청이 왔는데… 모두 절박함, 비장함이 부족한 것 같았다. 비대위가 구성된다는 건 비상시국이라는 뜻 아닌가. 구성원 모두가 비상한 각오를 가져야 하는…. 내 혼자 가지면 뭐 하노. 근데 함께 죽을 테니 맡아달라는 게 아니라, 비대위원장만 임명하면 자기들은 그냥 살아날 걸로 여기는 것 같았다. 물론 말은 그렇게 안 하지만… 우리가 다 선수인데 알잖아? 그런 자세라면 맡아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2016년 총선 참패 직후에, 탄핵 시위가 한창이던 같은 해 12월에, 2018년 지방선거 참패 후에 비대위원장 요청을 받았으나 고사했다. ―황교안 대표가 직접 연락했나. “내가 호흡기 계통이 안 좋아 겨울에 많이 힘들다. 미세먼지에도 민감하고, 추우면 못 살고…. 그래서 2월까지 있을 생각으로 베트남에 갔는데 황 대표 전화가 왔다.” (작년부터 물망에는 올랐는데….) “그때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미 공관위원들이 다 정해져 있고 위원장만 찾는다고 들었거든. 그런 자리에 가면 뭐 하겠노. 그래서 황 대표 전화가 왔을 때 ‘이미 위원들이 다 정해져 있다던데’라고 물으니, 아니라는 거야. 자기들이 생각한 안은 있지만 참고용이지 알아서 인선하라고…. 목소리에 진지함이 묻어 있더라고.” (황 대표 목소리는 메뉴판을 읽어도 진지하게 들리는데….) “목소리 때문은 아니고…. 그런 타고난 목소리가 남 속이라고 주어졌을까? 신뢰가 갔다.” (절박감도 느껴지던가.) “절박감까진 아니고 진지함은 느꼈다.” (목소리 때문은 아니고?) “또 목소리…. 아니라고.”―위원장 임명식에서 황 대표에게 그림을 선물했다. “박지오라고 그림 그리는 내 친구가 있는데… 부산 내 지역구(영도)에 좀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늘 보면서 생각하려고 서민 냄새가 나는, 시장 풍경 같은 거 하나 그려 달라고 해 받은 거다. 과일 장사 아주머니가 아이들에게 포도를 주는 모습인데…. 자신도 넉넉하지 않지만 베푸는 마음이 그림에서 묻어나 내가 참 좋아한다. 정치권이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해서 선물했다.” (황 대표는 그 마음이 있던가.) “아직까지는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고….” (비싼 그림인가?) “싸지는 않을걸. 그 친구가 무슨 한국화 심사위원장도 오래했는데….” ※박지오 화백은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과 위원장을 역임했다. ―공관위원 선임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정치권에 발을 디디지 않겠다는 분들이 예상외로 많았다. 자신이 노출되는 걸 꺼리는 분들도 상당히 있었고…. 그간의 한국당 이미지가 상당히 작용했겠지…. 정치인 출신들은 아예 접촉하지 않았다. 김세연 의원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고.” (당에서 자료를 주겠다고 했는데 거절했는데….) “나도 사람이니 보면 선입견이 생길 것 같아서….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내 소신껏, 내 책임 아래 구성하고 싶었다.” ―공관위원 명단을 발표하면서 “어제까지는 참았는데 오늘부터는 각오하라”고 했다. 많이 찾아오던가. “엄청 찾아오더라고, 밤늦게까지…. ‘인사드리러 왔다’, ‘집 앞에 있다’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면서…. 일절 대응을 안 했다.” (무시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었을 텐데….) “눈감으면 다 똑같다. 일절 안 만났다. 근데 공관위가 본격적으로 출범하면 더 많이 찾아올 것 같아서 그 말을 한 거다. 엄청난 불이익을 당할 것이고, 명단도 공개하겠다고. 그랬더니 좀 줄었다. 문자는 계속 오지만….” (뭐라고 하던가.)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어제오늘 아는 사이가 아닌데…. 내가 공천 부탁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뭐 이렇게….” (공천 부탁이 아니면 뭔가.) “그냥 하는 소리지.” ※인터뷰하는 3시간 동안 그의 휴대전화는 5분 간격으로 울렸다. ―그들만의 잘못이라고 하기 그런 게… 공천은 그런 연줄이 더 많이 작용하지 않나. “그래서 딱 끊은 것도 이런 기회에 좀 바꿔보려고…. 전 원내대표들에게 의정활동 평가서를 받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정작 공천에 의정활동은 전혀 반영하지 않는 게 세상에 어디 있나.” (평가 자체를 안 하지 않나.) “없어, 없어. 내가 원내대표 할 때 나름대로 만들었는데 그 다음 공천 때 보니까 그 서류조차 본 사람이 없는 거야. 의정활동은 평가하지 않고, 여당은 청와대, 야당은 실세 줄 잡으면 공천되니 어느 놈이 의정활동을 ‘쎄빠지게’ 하겠노. 이제는 고쳐야지. 언론도 국정감사에서 뱀 흔드는 거 그만 쓰고… 쓰려거든 아직도 이런 질 떨어지는 의원이 있다고 썼으면 한다.” ―위원장은 어떻게 공천을 받았나. “하하하, 빽 안 썼냐는 뜻인가? 내가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에 있다가 1992년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됐는데… 적임자가 없었는지 3차에서야 공천을 받았다. 당시 부산 공천은 YS(김영삼)가 했는데… 정치가 묘한 게, YS는 청와대 배려 차원으로 나를 넣었는데 정작 노태우 대통령은 나를 몰랐다. 그 때문에 민정계에서는 내가 상도동이랑 뒷거래한 거 아니냐고 봤다. 그래서 보통 청와대 떠날 때는 대통령과 커피타임을 갖는데 그것도 안 해 주더라.” (민주계에서는?) “부산에서 선거를 해야 하니까 민주계에서 좀 끼워주길 바랐지. 근데 또 여기서는 노 대통령 비서라고 안 끼워 주더라고. 선거운동을 하려면 YS랑 함께 찍은 사진이 필요했는데 아무리 노크를 해도 답이 없었다. 친한 선배에게 부탁해 어찌어찌해서 찾아갔는데 YS가 눈길도 안 줬다. 결국 사진 찍는 것도 실패하고…. 계보 정치할 성격도 아니고 끼워주지도 않고… 그렇게 살아왔다.” ―1차 후보 모집이 마감됐는데 인재가 많이 들어왔나. “정치인, 특히 리더라면 국민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마음이 필요한데 한국당은 그러지 못했다. 그러니 공천도 힘들지. 당 이미지가 좋았으면 밀려들어 왔을 텐데. 물론 보수 통합 문제도 함께 걸려 있다. 통합신당을 거쳐 오려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어느 쪽이든 결국 여기 큰 강물로 모일 거라 본다. 개인적으로 열심히 찾고 있고. 추가 모집도 할 예정이다.” ―청년, 신인의 진입장벽을 확 낮추겠다고 했는데 아직 룰이 안 나오고 있다. “기존의 가산점제는 효과가 없기 때문에 기본점수제를 줄 생각이다. 신인 여성 청년 장애인 국가유공자 당 사무처와 보좌관 출신 등 모두. 그 안에서 차등은 있지만 획기적일 거다.” (현역을 컷오프해도 신인은 지역 경선에서 쉽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럴 수 있는데 완벽한 제도는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추린 뒤에 붙이니까 동네 마당발에게 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어떤 방식이길래?) “오늘은 거기까지만.” ―신인은 경선을 통과해도 본선 경쟁력이 낮은 경우가 많다. 낙선하면 공천 잘못이라는 지적이 나올 텐데…. “컷오프된 현역 의원들이 무리한 공천을 했다고 주장하겠지. 개인적으로는 억울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의 뜻은 대구경북(TK)에서부터 새바람을 불어넣어 달라는 것 아닌가. 부산경남(PK)도 마찬가지다. 대승적 결단을 해줬으면 한다.” (‘사랑하는 사람, 아끼는 사람한테도 칼날이 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사람도 김 위원장이 사랑한다는 걸 아나?) “알지.” (굉장히 떨고 있겠구먼.) “하하하, 그럴 수도.” ―홍준표 전 대표, 김태호 전 경남지사는 고향 출마를 고수하고 있다. “한마디만 하자면… 홍 전 대표는 이 당의 대선후보까지 한 사람이지 않나. 희생할 만큼 했다고 하지 말고, 당에 대한 고마움도 있어야 한다. 대선 때 그를 위해 당원들이 얼마나 수고를 많이 했겠나.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올바른 처신인지 알 텐데….” (맡겨 주면 PK 40석을 책임지겠다는데….)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노. 그런 몸 사리는 모습으로 달성이 되겠나.” (그가 무소속으로 나와 표가 갈려 패하면 어떻게 하나.) “나야 각오했으니까… 피하지 않을 거다.” ―어찌됐든 앞으로의 보수 정치는 위원장 손으로 거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바라는 점이 있나. “국회의원도 마찬가지고 고위직을 지낸 사람들은 다 자기가 잘나서 된 걸로 착각한다. 국가와 사회가 없었다면 가질 수 없는 것인데도…. 우리 지도층의 공동체에 대한 애정결핍증이 너무 심하다. 눈 덮인 밤길을 함부로 걷지 말라는 시도 있지 않나. 오늘의 내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고…. 그런데 오히려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이정표를 만들고 있으니….” ※그가 말한 시는 백범 김구 선생이 애송하던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日我行蹟(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이다. 청와대 여민관에도 이 시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선정했다. 말속에 뼈가 있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2011년 석해균 선장을 수술한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가 당시 빠지지 않고 받은 질문이 “골든아워가 뭡니까?”였다. 두 번째는 권역외상센터. 9년여가 지난 지금 국내에는 14곳의 권역외상센터가 운영 중이고, 골든아워를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에 비해 중증 외상에 대한 인식은 많이 부족한 상태. 최근 이 교수의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 사임은 그 간극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한외상학회 이사장을 지낸 조현민 제주한라병원 제주권역외상센터 과장(54)은 “양적 팽창을 인식과 지원이 따라가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가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잘못된 정보라면 예를 들어 어떤 건가. “바이패스(bypass)를 외상센터가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어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으로 쓰는데 그런 뜻이 아니다. 응급환자는 가장 가까운 응급실로 옮기는 게 원칙이지만 시설·인력상 그곳에서는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될 때 건너뛰고 치료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거다. 능력이 안 되는 곳에서 시간을 소비하면 골든아워를 놓치니까. 골든아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바이패스한 환자들이 오는 곳이 외상센터다.” (병상이 없어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경우는 있지 않나.) “그건 ‘수용 불가’라고 하는데… 한꺼번에 많은 환자가 몰리면 병원 간 전원을 시킨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는 좀 특별한 경우고 다른 곳은 그렇게까지 중환자실 병상이 모자라 못 받지는 않는다. 적자 덩어리라는 것도 알려진 것과 좀 다른 면이 있다.”※2017년 기준 아주대병원의 중환자실 병상가동률은 175.4%였지만 다른 곳은 50∼80%대다. ―외상센터가 환자 한 명 치료할 때마다 평균 145만 원이 손해라는데 아닌가? “병원에서 국가지원금은 당연히 받는 거라 생각하고 손익계산에 포함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일 때 계산해봤는데 진료 수익 면에서 센터가 번 돈과 쓴 돈이 얼추 비슷했다. 국가지원금 정도는 남았다는 말이다. 국비 지원을 안 받아도 수익은 안 나겠지만 적자가 눈덩이처럼 엄청나게 불어나는 것은 아니다.” ―병원은 굉장히 힘들다고 하는데… 그렇게 힘들다면 애초에 신청을 안 했으면 되는 것 아닌가. 돈이 안 된다는 걸 몰랐을 리도 없고…. “초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건데… 처음에는 지역 대표로 부각되고 선전효과도 커 경쟁이 치열했다. 지정만 되면 나라에서 지원금으로 80억 원을 줬고. 그런데 의사, 병원, 관련 기관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중증외상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 보니 점점 더 힘들어진 거지. 선진국에서는 닥터헬기가 내리는 외상센터 지역은 부촌이 많다. 안전한 곳이라고. 우리는 집 값 떨어진다고 아우성이다. 이국종 교수가 울분을 토하는 것도 같은 병원 내 의료진조차 인식이 형편없으니까. 왜 짐 덩어리를 가져와서 우리가 고통분담을 해야 하느냐는 소리도 나오고….” (외상센터를 의사들이 가져온 게 아니지 않나. 결정은 경영진이 한 것 아닌가.) “그러게 말이다.” ―제주한라병원도 민간 사립병원인데 괜찮나. “이사회와 병원장의 의지가 좀 강하다. 제주는 섬이라 골든아워 안에 육지로 보내기 힘든 경우가 많다. 헬기로 부산으로 이송했다가 강풍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그런 특수성 때문에 경영진이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고 했다고 한다. 돈 생각하면 못 하는 일이다.” ―외상센터를 큰 병원이 함께 하는 게 아니라 국가 전담으로 만들자는 주장도 있다. “외상센터만 독립적으로 만드는 건 효과가 없다. 중증외상은 한두 곳만 다친 게 아니다. 큰 사고를 당한 경우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있고, 감염 우려로 내과 협력도 필요하다. 지병이 있으면 해당 전문의도 필요하고…. 본원에 있는 다른 진료과와 늘 협력해야 한다. 그래서 병원이 얼마나 의지를 가졌는지가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정부 지원이 적은 것도 아니다. 수가도 인상됐고, 중증외상 환자가 되면 암처럼 본인 부담이 5%로 준다. 물론 엇박자가 있기는 하지만.” (엇박자?) “진료비 삭감인데, 과잉진료를 막자는 취지는 알지만 중증외상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다. 추락 사고를 당한 환자는 몸 안 상태가 어떤지 눈으로는 모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사해야 하는데 이상이 없으면 왜 불필요한 검사를 했냐고 진료비를 삭감당한다.” (검사를 해야 어디를 다쳤는지 알 것 아닌가.) “당연하지…. 갈비뼈가 부러졌으면 가슴 컴퓨터단층촬영(CT)은 인정, 그런데 뇌출혈은 없는 걸로 나오면 머리는 정상인데 했다고 삭감. 이런 식이다.” (그게 말인가 방구인가?) “웃기지만 현실이다. 그럴 때 ‘꽝 났다’고 하는데… 검사했는데 이상 없을 때 쓰는 우리 속어다.” ―설명하면 되지 않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학 지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자료를 보낸다. 이의 제기도 하지만 답변이 오는 데 반년 걸린다. 일도 산더미인데 어느 세월에 그걸 하고 있나.” (삭감되면 병원에서는 뭐라고 안 하나.) “전에 있던 병원에서는 중증외상 환자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갈비뼈 골절 수술을 시작하고 나서 너무 많이 삭감당하니까 병원에서 구상권을 청구했다.” (월급에서 깠다고?) “그런 거지…. 처음에는 경고를 하고…. 나중에는 대학총장이란 사람이, 설립자인데… 직접 환자 보호자에게 수술하면 안 된다며 취소시켰다.” (갈비뼈가 부러져서 하는 수술을 취소시켰다는 건가.) “그랬다. 그래서 그만두고 나왔다.” ―올해 권역외상센터 예산이 왜 삭감된 건가. “하…. 작년에 외상전담전문의 인건비 31억 원이 남았는데, 기가 막힌 게 왜 못 썼냐면… 사람을 못 구해서다. 그래서 못 쓴 걸 불용예산이라고 삭감했다. 안 그래도 근무환경이 열악해서 사람이 없는데 삭감하면 이젠 무슨 돈으로 뽑나.” ―당신은 어떻게 근무하나. “응급의학과 1명, 외과나 흉부외과 등 외상외과 2명 이렇게 3명은 365일, 24시간 상주한다. 환자가 오면 10분 안에 진료해야 하니까. 흉부외과는 나를 포함해 2명인데 한 달에 절반씩 밤을 새울 수는 없으니까 본과에서 2명을 야간 당직만 지원받는다. 그래서 한 달에 6∼8번 정도 새운다.” (밤 새운다는 게 저녁에 출근해 아침에 나오는 건가?) “아니, 24시간. 아침에 회진하고 퇴근한 뒤 다음 날 정상 출근한다. 3일에 한 번 밤새우는 거지. 주말, 명절 그런 거 관계없다.” (휴가는 어떤가.) “있기는 하다.” (있기는?) “유명무실하긴 한데 환자가 안 좋을 땐 갈 수도 없고, 또 내가 빠지면 남은 사람에게 당직이 몰리니까. 부산센터장 때는 거의 못 갔던 것 같다. 회의도 많고, 외상센터는 사건 사고와 밀접해서 언제 뭐가 벌어질지 모른다. 작년 5월 해군 청해부대 ‘최영함’ 입항 행사에서 밧줄이 끊겨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을 때는 청와대에서 찾고, 참모총장 브리핑도 했고… 쉬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는데 국내에 외과 전문의가 6000여 명, 정형외과 6000여 명, 흉부외과 1000여 명, 신경외과 2700여 명이다. 이보다 많은 곳은 내과(1만5000여 명), 가정의학과(6400여 명)뿐인데 그 많은 외과 의사들은 다 어디로 간 건가? “외과 흉부외과 전문의가 자기 전공과목을 하지 않고 일반의로 개업해서…. 성형외과도 하고….” (성형외과 전문의가 1900명뿐인데 성형 수술을 하는 곳은 수천 곳이 넘는 게 그건가?) “의사 자격증만 있으면 전문의가 아니라도 배워서 할 수 있으니까. 성형 개원의 중에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사람이 많다. 외과 분야의 사람 자체가 없는 게 아니다. 외상 분야가 힘들다 보니 기피하는 거지. 그래서 외과계열 의사를 더 많이 배출한다고 해결될 건 아니라고 본다.” ※성형외과 전문의는 ○○○성형외과의원으로 간판을 단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경우 ○○클리닉, ○○성형센터 식이다. 전문의 수보다 성형을 하는 곳이 훨씬 많은 이유다. 지난해 1분기 기준 전국의 전문의 성형외과는 959곳뿐이다. ―그렇게 힘든데 당신은 왜 그만두지 않고 제주까지 온 건가. “부산센터장으로 있는데 이곳에서 센터 개소를 도와달라고 해 작년 7월에 왔다. 제주는 3월에 문을 연다.” (센터장이 아니라 과장으로 온 이유가 있나.) “하하하, 왜 낮아졌냐는 뜻인가? 그런 건 상관없고…. 부산센터장을 4년 넘게, 작년 12월까지는 대한외상학회 이사장도 2년 반 했는데 행정일이 너무 많다 보니 내가 의사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오더라. 그냥 환자를 보는 게 더 행복해서 그런 것뿐이다. 외상센터에 대한 지적도… 미국도 60∼70년 동안 외상센터가 문을 닫고 다시 여는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어디나 그런 진통을 오랜 기간 겪은 뒤 정착된다. 우리는 2014년부터 개소했으니 아직 제대로 자리도 잡지 못했는데 다른 국가사업처럼 효율성 등을 너무 따지는 점이 안타깝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2018년 11월 영국 BBC는 경찰관 손을 문 차우차우 강아지 ‘벙글’이 애견인들의 석방운동으로 풀려났지만, 형평성 숙제를 남겼다고 보도했다. 4개월 된 벙글은 집에서 탈출 도중 경찰관 손을 물어 법(The Dangerous Dog Act)에 따라 체포됐고, 9개월간 격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체포된 벙글의 귀엽고 애처로운 모습을 본 애견인들이 석방운동을 펼쳤고 경찰은 벙글이 전문가 평가를 받는 것을 전제로 석방했다. 경찰은 “반려동물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은 모든 주인들의 책임이며, 대중을 위험에 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선진국에서는 반려견, 특히 맹견의 인명사고는 강하게 처벌한다. 영국은 맹견을 기르려면 특별자격증 취득과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하고, 개 물림 사고는 최대 14년까지 징역에 처한다. 독일은 19종의 맹견을 1, 2급으로 나눠 관리하는데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등 4종은 아예 소유하지 못한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는 체중 20kg 또는 체고 40cm 이상의 개는 견주를 평가한 뒤 사육 허가를 내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22년부터 맹견을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키울 때 허가를 받도록 관련 제도를 고치겠다고 밝혔다. 사람을 문 개는 공격성을 평가해 행동 교정이나 심하면 안락사를 시키는 방안도 마련한다. 내년부터는 맹견 소유자의 보험 가입도 의무화된다. 2018년 개에게 물려 응급실을 찾은 사람은 2700여 명에 달했다. 우리는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 불테리어, 로트바일러 등 5종과 그 잡종을 맹견으로 규정하고 있다. ▷개 물림으로 인한 피해는 막아야겠지만, 개를 허가받고 길러야 하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입마개 및 목줄 미착용 등 관리 소홀은 제재할 수 있지만, 소유 여부까지 관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이미 잘 훈련시켜서 가족처럼 키우는 개가 기준에 미달하면 버리거나 이사를 가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허가권을 가진 지자체마다 기준이 다를 경우 형평성 문제도 나올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반려견과 산책할 때 사람이 다가오면 리드 줄을 목 가까이 끌어당겨 개를 앉도록 해 행인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습관화돼 있다. 반려견이 흥분한 듯 보이면 길가에 붙어서 머리를 행인 반대방향으로 돌려준다. 전문가들은 견주들이 하는 말 중 가장 잘못된 게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고 한다. 소형 강아지를 보고 임신부가 놀라 넘어져 유산한 경우도 있다.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는 반려견을 안고 이동하는 ‘펫티켓’이 습관화된다면 허가제까지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보수 악몽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다. 20대 총선 ‘막장공천’. 2016년 새누리당의 공천 과정은 입 가진 사람이면 욕하지 않는 이가 없는 막장 드라마였다. 지금 지나간 일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당시의 상황이 재연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오만은 과거 새누리당을 넘어섰고,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다. 총선까지는 불과 석 달 남짓. 이 인터뷰는 불과 4년 전 총선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복기해 반면교사로 삼기 위함이다.》 ―당시 당 대표실에 있긴 했지만 공천 내막은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렵지 않나. “전부 알 수는 없고… 그때 김무성 대표 보좌관이면서 부실장을 겸했는데, 정무·공보 담당인 데다 총선 업무를 맡았다. 또 내가 신한국당 당직자 공채 출신이고,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 대선캠프 공보팀장도 지내 당시 청와대·공천관리위원회와 대표 간의 가교 역할도 했다. 그러다 보니….” ―지역구 공천 과정은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비례대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가 6명을 찍어 내려보냈다고 했는데…. “청와대에서 반드시 당선돼야 할 사람이라며 강효상 최연혜 유민봉 김현아 신보라 현 한국당 의원을 찍어 내려보냈다. 한 명 더 있었는데 너무 ‘깜’이 안 돼 누군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청와대 총대를 멨던 이한구 공관위원장조차 ‘어떻게 이런 사람을 시키느냐’며 순번을 뒤로 멀리 뺄 정도였으니까. 신보라 의원은 발표 전날까지는 당선권 밖이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앞쪽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안 건가?) “발표 전날 최종 명단을 봤으니까. 이 공관위원장이 직접 애기도 했고….” (김현아 의원은 한국당 탈당파와 뜻을 함께한 사람인데 청와대가 챙겼다니 좀 의외다.) “김 의원은 본인이 공천을 받기 위해 끈을 대거나 뛰어다닌 쪽은 아닌 걸로 안다. 박 전 대통령이 전문 분야에서 똑똑한 여성을 좋아하는데 그런 차원이었던 걸로 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친박계 공천을 위한 여론조사 승인 등 불법 공천 개입으로 2년형이 확정됐다. 그것뿐이었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박 전 대통령이 사람을 쓰는 데 정말 꼼꼼히 살피고, 아무나 안 쓰는 건 사실이다. 대통령 당선자 때 청와대에 지원한 행정관들 이력서까지 직접 봤다. 화환 보내는 곳도 직접 결재하고.” (이유가 있나?) “화환과 자신을 동일시한 것 같다. 2006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1년 앞두고 경선 캠프가 만들어졌는데 나는 후보 일정 담당이었다. 매일 올리는 일정보고서에 화환 보낼 곳도 있는데, 하나하나 친필로 ○, ×가 표시돼 내려왔다. 당시 첫 회의에서 유승민 의원이 ‘메시지팀은 어떻게 꾸릴까요’ 했더니 ‘정호성 보좌관과 상의하세요’라고 해 깜짝 놀랐다. 조직은 안봉근, 정책은 이재만과 상의하고 보고하라고…. 경악을 했다. 그 정도인데 국회의원 공천을 아래에만 맡겼을지….” ―사실상 문고리 3인방이 상급자가 된 건데, 그럼 회의는 어떻게 한 건가. “안 했다.” (응?) “안 했다고. 제발 회의 좀 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은 보고서 만드는 걸 싫어했다. 결국 유출된다고.” (당시에는 최순실이 없었나.) “최순실은 몰랐고, 사실 우리는 최순실 남편인 정윤회가 비선 실세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했던 게 내가 일정 담당이다 보니 박 전 대통령 쪽에서 예를 들면 며칟날 오후 1시부터 5시 사이에는 아무 일정도 잡지 말라고 지시가 왔다. 무조건 안 된다고. 경선 때인데…. 어딜 가나 보니 강남에 있는 빌딩에서 누구를 만나고 있다고 하더라.” ―이한구 공관위원장을 청와대가 낙점했다는데, 원래 당 대표가 데려오는 것 아닌가. “왜 안 했겠나. 김종인 윤여준 전 의원 등 여러 명을 최고위원회에 올렸는데 전부 거부당했다. 당시 최고위는 합의제라 친박 최고위원들이 모두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이 김 대표를 찾아와 ‘할매가 이한구 시키라고 한다’고 툭 던지고 가버렸다. 다음 날 최고위에 전했더니 ‘말도 안 된다’며 다 들고일어나더라.” (말 잘 듣던 친박 최고위원들이 왜?) “청와대에 대한 반대라기보다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반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아무도 사전에 언질을 못 받은 것도 있고. 그런데 청와대에서 작업을 했는지 며칠 후 태도가 전부 변했다. 당시 청와대는 늘 그런 식이었다.”―어찌 됐든 최종 임명권자는 당 대표인데 거부할 수도 있지 않았나. “김 대표는 국민경선제가 숙원이었다. 안심번호를 통한 여론조사 등을 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이 공관위원장을 안 받고 공관위 구성이 늦어지면 점점 더 시간이 없어지는 거다. 데드라인까지 와서 어쩔 수 없이 국민경선제를 받는 조건으로 타협했다. 그 대신 전횡을 막자는 취지에서 원래 공천심사위인데 이름을 관리만 하라는 뜻으로 공천관리위로 바꿨다.” (정말 관리만 할 거라 믿었단 말인가.) “그래서 견제를 위해 공관위원은 전부 대표 몫으로 달라고 했는데 최고위에서 거부당했다. 옥신각신하다 청와대 반, 대표 반으로 하되 상대방이 반대하는 사람은 빼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올린 사람들은 한 명 빼고 전부 반대하더라. 방송에서 박 전 대통령을 욕했다며…. 기가 막혔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 한 명만 빼고 전부 청와대에서 하라고 양보했다. 그게 또 하나의 패착이었다. 뭐가 씌었는지….” ―왜 그렇게 무기력했던 건가. “김 대표는 공천권도 있고, 상당 기간 대선 후보 지지도 1위였다. 그래서 나도 그렇고 주변에서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당 대표가 대통령과 싸우면 망한다. 내 주장에 대해 청와대에서 반감을 가지면 접는 게 맞다’고 하더라.” (그렇게 접다가 더 망한 것 아닌가.) “그렇게 됐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 조정이라면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나조차 ‘이 사람을 믿고 큰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으니까.” (정말 아무것도 안 했나.) “최후의 수단으로 공관위를 돕는 당직자들을 모두 철수시킬 계획을 세웠다. 사인만 주면 자료고 뭐고 전부 들고 나오게…. 그런데 결국 대표가 ‘그러면 총선을 어떻게 치르느냐’며 못 하게 하더라.” (정권에 약점 잡힌 게 있어서란 말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이겠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찾을 수는 없었다. 뒷다리를 잡힌 게 있었다면 옥새파동 같은 최소한의 저항도 못 했을 거다.” ※조사기관별 차이는 있지만 김 대표는 2015년 12월까지 약 8개월간 대선 후보 지지도 1위였다. ―막판에 부당 공천에 저항해 ‘옥새파동’까지 일으켰는데 단 하루 만에 접었다. “‘절대로 대표 직인을 찍어줄 수 없다’고 기자회견까지 하고 부산에 내려갔는데…. 친박인 원유철 원내대표가 달래려고 내려왔다. 안 올라간다고 하니 대표 유고 상태로 보고 자기들끼리 권한 대행 세워서 결정하겠다고 하더라. 원 원내대표가 돌아간 뒤 측근들과 회의를 했는데, 그들 마음대로 하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바로 다음 날 올라갔다.” (그 정도 각오도 안 했단 말인가?) “하… 이런 표현은 안 좋지만, 정말 쪽팔렸다. 소심의 대마왕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5곳 중 3곳은 무공천으로 남겼으니까….” ※김 대표는 유승민(대구 동을), 이재오 의원(서울 은평을) 지역구와 진박 중의 진박 유영하 변호사가 출마한 서울 송파을 지역구는 직인을 찍지 않아 무공천으로 남겼다.―이번 총선에서 당시 모습이 어른거린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박 전 대통령 시절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지금 황교안 대표를 둘러싸고 총선과 관련된 중요한 실무를 장악했다.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때 구성됐던 당무감사위원회는 1년여 만에 황 대표 체제에서 1명만 빼고 다 바뀌었다. 총선기획단도 친황 일색이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여론조사를 하는 여의도연구원장에는 자기 사람을 앉혔다. 이 세 곳이 총선 준비를 하는 곳이다. 더군다나 황 대표를 둘러싼 친박들의 탄핵 찬성파, 탈당파에 대한 적개심은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것보다 더 크다.” ―황 대표가 친박을 제어하기 힘들 거란 말인가. “한국당 혁신을 막는 게 친박인데 그들이 주도권을 과연 놓을까. 공천에서 쳐내면 가만히 있을까. 황 대표에게 그걸 제어할 힘이 있을지…. 그래서 20대 총선 때 모습이 사람을 달리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리고 황 대표는 실수하고 있는 게 너무 많다.” (어떤?) “공천관리위원장 후보군으로 황 대표가 ‘내 친구 K도 있다’고 한 적이 있다. 황 대표와 고교 동창인데 여의도에서는 황 대표의 생각과 판단에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사람을 대표가 언급까지 하니까 전국의 당협위원장들이 출판기념회, 당원보고회 등에 모셔서 눈도장 찍으려고 난리도 아니다. 현역 의원, 원외 가릴 것 없이 섭외 1순위다. 대표의 말 한마디가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어떻게 파장을 미치는지 모르고 있다.” ―너무 비판적인 것 아닌가. “주변에서도 그만하라고 하기는 한다. 그런데 지난 총선 과정에서 우리가 실패하지 않았나. 다시 그 과정이 보이는 것 같으니까…. 이유는 있었지만 넘어가고 막지 못한 순간들이 모여 결국 막장공천이 됐다. 그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이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문학에 삶의 전부를 걸어도 좋다는 ‘문청(文靑)’들에게 신춘문예는 앓지 않고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지독한 열병’이다. 새해 벽두 신문 지면에 오른 이에게는 기쁨이지만, 대부분은 다시 길고 긴 자신만의 싸움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죽하면 ‘문단고시’라고 했을까.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당선자인 전민석 씨는 그 당시를 ‘방문 밖 식구들 한숨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도, 손은 어느새 자판 위로’라고 표현했다. ▷일간신문사가 매년 1월 1일자에 당선작을 발표하는 문인 등용문인 신춘문예는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에게만 있는 시스템이다. 현재도 약 20곳에 남아 있다. 191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격인 매일신문이 ‘신년문예’를 모집한 적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1925년 동아일보가 시작한 신춘문예를 출발로 본다. 문예란(단편소설 시), 부인란(가정소설), 소년란(동화극 가극 동요)으로 나뉘었고 분량 제한은 없었다. 각 부문 1등 상금은 50원이었는데, 당시 경성의 쌀 한 말이 3∼4원, 한 달 하숙비가 15원 정도였다고 한다. ▷신춘문예를 통해 싹이 튼 씨앗들은 한국 현대문학의 거대한 숲을 이뤘고 숱한 거목으로 솟았다. 퇴고를 거듭하다 마감을 넘긴 응모자를 인정상 받아줬다가 공교롭게 그가 당선이 되는 일도 있었다. 이메일 접수 초기 한 응모자는 “신춘문예 담당자입니다”란 전화에 감격에 차 울먹였는데, 사실은 원고가 첨부되지 않았으니 다시 보내달라는 전화여서 서로 머쓱해졌다고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은 “법률 의학 기술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이런 감정을 표현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은 변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디지털과 영상이 대세가 된 요즘도 시 쓰기의 어려움과 고민을 토로하며 밤을 지새우는 문학청년들은 끊임없이 배출된다. 신춘문예에 매년 수천 명의 응모자가 몰리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과거 신춘문예 심사위원 중에는 결선에 오른 제자의 작품을 가차 없이 탈락시킨 스승도 있었다. 재주만 승해 일찍 데뷔하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우려해서라니 글과 인간됨을 동일시한 그 엄격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신춘문예의 좁은 문을 통과한 작가들이 롱런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인터넷으로 누구나 글을 올리고 평가받는 세상이다. 데뷔 방식이 다양해진 점은 긍정적이지만, 미숙한 글이 넘쳐 상처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혹독하게 단련시키고, 익지 않은 글이 돌아다니는 것을 용납지 않는 과정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것 같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2010년대 초반 인터넷에서 ‘부처님오신날’의 절묘한 위치가 화제가 됐다. 음력이어서 매년 바뀌는 부처님오신날이 2012년부터 4년 연속 기가 막히게 쉬는 날 앞뒤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2012년은 월요일, 2013년은 금요일이었고, 2014년은 화요일로 전날인 어린이날과 함께 나흘 연휴를 만들었다. 반면 크리스마스는 주말과 잘 이어지지 않았다. 속상한 누리꾼들은 ‘예수님 보고 계신가요?’라는 댓글로 ‘투정’을 부렸다. ▷새해 달력에서 가장 먼저 보는 게 ‘빨간 날’이다. 금, 월요일에 떡하니 있으면 추수를 앞둔 농부처럼 흐뭇하고, 토, 일요일에 있으면 왠지 자살골을 먹은 것 같다. 올해 휴일은 법정공휴일을 포함해 115일로 2015년 114일 이후 가장 적다. 주말과 겹쳐서다. 지난해는 117일, 2018년은 119일이었다. 올해 3·1절은 일요일,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은 토요일이다. ▷휴일이 날아가는 속상함을 달래 주려고 대체휴일제가 도입됐지만 올해는 별 혜택을 못 본다. 설과 추석 연휴, 어린이날이 공휴일과 겹칠 때만 대체휴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올해 대체휴일로 벌충할 수 있는 날은 설 연휴 마지막 날 하루뿐이다. 게다가 대체휴일은 상당수 근로자에겐 무급휴일이다. 올해부터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유급대체휴일이 적용되지만, 30∼300인 미만은 내년, 5∼30인 미만은 2022년부터나 적용된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면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 금요일이라는 점이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직장인들은 전날인 부처님오신날부터 주말을 포함해 추석 연휴(5일)에 버금가는 나흘 연휴가 생긴다. ▷1년 치 달력을 보며 빨간 날을 미리 보는 것도 즐겁지만, 매일매일을 선물로 여기며 달력을 넘기는 즐거움도 크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에 밀려 달력은 줄고 있지만 한 장씩 뜯는 두툼한 일력(日曆) 달력이 요즘 인기라고 한다. 복고(Retro)를 새롭게 즐기는 뉴트로(New-Tro) 바람 때문인데, 365장에 개성 넘치는 문구나 사진 등을 넣어 다양하게 만들기도 한다. 치매 초기인 부모님이 더 수월하게 날짜를 기억할 수 있게 주문하기도 한다고 한다. 하루의 시작과 마침을 새겨 보는 데는 한 달 한 번이 아니라 매일 넘기는 일력이 제격인 듯하다. ▷긴 연휴가 기쁨인 사람도 있지만, 일용직이나 자영업자에게는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소방관, 경찰관, 군인, 응급실 의사·간호사 등 날짜 색깔과 관계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많다. 하루가 쌓여 한 해가 되듯, 고마운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는 것을 생각하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매년 섣달 그믐날 자정이면 서울 보신각(普信閣)에서는 ‘제야(除夜)의 종’ 행사가 열린다. 1953년부터 열렸으니 올해로 66년째다. 그 오랜 세월 뒤에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종지기’를 천직으로 여기고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이 있었다. 5대 종지기인 신철민 보신각 관리소장(45·서울시 역사문화재과 주무관)은 “2대 종지기였던 스승님의 조부는 일제강점기 보신각을 지키다 일본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 ―보신각 관리소장이면 공무원인데 대를 이었다는 게 무슨 말인가. “스승님의 증조부가 구한말 보신각을 관리했는데 그 뒤를 조부, 부친이 이어왔다. 스승님의 조부는 일제강점기 총독부가 보신각 옆에 공중화장실을 짓자 곡괭이로 때려 부숴 잡혀가고, 스승의 모친은 6·25전쟁 때 보신각을 지키다 다리에 총을 맞았다고 한다. 나라가 없던 시절부터 집안에서 가업처럼 이어오다 스승님이 1988년 보신각을 관리하는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되면서 정식 공무원이 됐다. 스승님은 4대, 나는 5대다.” ―당신은 같은 집안이 아니지 않나. “보신각종은 원래 3·1절, 광복절, 제야의 종 이렇게 세 번만 쳤다. 그러다 2006년 시민에게도 개방하자는 취지에서 처음으로 상설 타종 행사를 열었는데 당시 내가 타종 행사 대행업체의 연출팀장이었다. 출연자들에게 종 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먼저 배웠는데 그게 인연이 됐다.” (스승에게 아들이 없었나.) “있었는데 사업을 하느라 이을 상황이 아니었다. 나중에 안 거지만 스승님이 병환도 깊은 상태였다. 그래서 나를 눈여겨봤던 것 같다. 그때는 일 때문에 타종법을 배운 거였는데 가혹할 정도로 엄했다. 문화재 재연 행사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내가 왜 이걸 배우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뒤를 잇는다는 건 생각도 안 했다. 그러던 중 스승님이 입원했는데 거의 매일 병원을 다니며 간병하던 어느 날 내 손을 꼭 잡으시더니 ‘신 팀장이 내 뒤를 꼭 이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전에도 두어 번 말씀하신 적은 있었지만 완곡하게 고사했는데 그날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뭐든지 할 테니 빨리 나으시라고 했는데 그 다음 날 돌아가셨다.”※신 소장의 스승은 고 조진호 씨로 2006년 12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80세. ―유언이 된 셈인가. “그때 스승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듯 홀가분하고 평안한 모습이셨다. 아프신 중에도 뒤를 이을 사람을 남기지 않고 가는 게 내내 마음이 쓰이셨는지…. 그래서 그렇게 엄하게 가르치신 것 같기도 하고….” (스승이 임명권은 없었을 텐데.) “물론 없었다. 그래서 이듬해인 2007년 초 채용 공고가 났을 때 시험 보고 들어왔다. 서류 전형과 면접을 봤는데, 당시에 26명인가 지원했던 것 같다. 스승님이 돌아가셔서 대신 그 아드님이 추천서를 써주긴 했지만….” (떨어지면 어쩔 뻔했나.) “그러게…. 나도 무슨 생각으로 지원했는지…. 뭔가에 씐 것도 같았고…. 하하하.” ―면접에서는 뭘 묻던가. “보신각을 어떻게 꾸려 나갈 건지에 대해…. 나름대로 스승님 밑에서 배우며 느낀 걸 토대로 5개년씩 20년 계획을 준비했다. 제대로 된 관리를 위한 관리동과 경비 시스템 설치, 보신각 활성화 프로그램 같은 거다.” (그 전까지는 경비시스템이 없었나.) “감시 카메라 한 대 없이 사람이 순찰하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스승님은 사모님이랑 보신각 옆 작은 사무실에서 거의 집에도 안 가고 지켰다. 지금 있는 이 관리동은 2012년에 지은 것이다.” (경비업체를 쓰는 게 더 낫지 않나?) “공교롭게도 내가 들어온 바로 그 이듬해 숭례문이 불탔다. 숭례문은 당시 사설 경비업체의 무인 경보 시스템을 사용했는데 그러다 보니 초기 화재 진압이 늦어져 불이 더 커졌다. 이후에는 숭례문도 옆에 관리동을 짓고 사람이 상주하며 지키고 있다.”※2008년 2월 10일 저녁 국보 1호 숭례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범인 채종기(81)는 징역 10년형을 받고 지난해 2월 만기 출소했다. ―보신각이 시내에 있다 보니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자러 들어오는 노숙인들도 있고, 취객도 많은데… 크고 작은 볼일을 보러 들어오기도 한다.” (주변에 널린 게 화장실인데 왜 보신각에서….) “하하하. 종각역 화장실 공사할 때는 노숙인들 화장실이 여기였다. 경내에 나무가 우거진 곳이 있는데 그 아래서….” (혼자서 다 지킬 수는 없지 않나.) “카메라가 7대 있는데 관리동에서 모니터를 통해 감시한다. 보신각 담과 보신각에는 적외선 센서가 사방으로 쳐 있어 침입하면 경보가 울린다. 한 시간 간격으로 순찰도 돌고. 스승님은 혼자 했지만 지금은 반장님이라고 부르는 문화재 경비 인력이 도와주고 있다.” (늘 보신각에 상주하나.) “과에서 해야 할 일도 있어서 본청과 보신각을 수시로 다닌다. 그래서 오전 6시쯤 본청에 들렀다가 보신각에 온다. 전에는 오전 8시쯤 출근했는데 이동이 많아지면서 보신각을 비우는 시간이 느는 게 마음에 걸리더라. 그래서 출근 시간을 당겼다.” (우리 사장님이 이걸 보면 안 될 것 같은데….) “하하하.” ―주변에 집회시위가 많은데 위험한 적은 없었나. “2008년 여름에 광우병 사태 때 군중이 보신각 경내로 넘어 들어왔다. 종을 치며 주장을 알리겠다고…. 종이 있는 2층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을 함께 있는 반장님과 필사적으로 막았는데, 몸싸움이 나고 얼굴을 맞고 난리도 아니었다. 의경들도 옷 벗겨지고 헬멧 뺏기고 그랬으니까. 끝끝내 막기는 했는데 만약에 뚫려서 당목(종 망치)이라도 잡아당겨 떨어졌으면 큰일 날 뻔했다. 200kg이나 되니….” ―제야의 종 행사는 어떻게 준비하나. “8월 말부터 계획을 수립하는데 대행업체 공모, 업체 선정 위원회 구성, 타종 인사 선정 및 섭외, 유관기관 협의 등을 거치려면 넉 달 정도 걸린다. 10, 11월에 타종 후보 선정과 섭외를 하는데 홈페이지에서 시민 추천도 받고, 유관기관에도 부탁한다. 나도 틈틈이 찾아보고…. 한 100명 정도가 추려지면 과에서 회의를 해 압축하고 섭외를 한다. 올해 가장 많이 추천된 인사가 ‘펭수’였는데 섭외가 만만치 않았다. 내가 직접 EBS를 찾아가 부탁했는데 내년 3월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류현진 선수도 물망에 있었는데 두 번이나 에이전트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결국 안 됐다. 작년에는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께 요청을 드렸는데 자신이 행사에 참석하려면 다른 후배를 근무시켜야 해서 곤란하다고 고사했다. 그래서 백도 좀 썼다. 도와달라고…. 하하하.”※제야의 종 타종 인원은 통상 16명이지만 상황에 따라 다소 늘기도 한다. 서울시장, 시의회 의장, 시교육감, 서울경찰청장, 종로구청장은 고정이다. 류현진 선수는 인터뷰(25일) 뒤인 29일 참석할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 이 때문에 올해는 17명으로 한 명이 늘었다. ―타종 방법이 따로 있나? 당목 무게 때문에 움직이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행사를 치르고 나면 일주일간은 어깨를 잘 못쓸 정도다. 4명씩 4개 조가 9·8·8·8회(총 33회)를 치는데 당목이 무거워 내가 뒤에서 조정을 해야 한다. 5번 흔들고 6번째 치기 때문에 모두 198번을 치는데, 힘주지 말라고 당부를 해도 막상 치는 순간에 대개 힘을 준다. 그 힘까지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몇 배로 힘이 든다. 박찬호 선수가 쳤을 때는 자칫하면 34번이 될 뻔했다.” (박찬호 선수가 왜?) “다른 분과 달리 의욕이 넘쳐서 온힘을 다해 쳤다. 힘이 센 데다 약간 흥분했던 것 같기도 했고. 워낙 세게 치다 보니 반동으로 한 번 더 맞을 뻔했던 거지… 하하하.”※박찬호 선수는 2013년 8·15 행사에 참여했다. ―종을 치며 대개 소원을 빌 텐데 효과가 좀 있나. “스토리를 만드느라 국내에서 세 번째로 소원을 잘 들어주는 종이라고 해설은 하지만…. 올해 수능 100일 합격 기원 타종을 하고 간 수험생은 서울대와 KAIST에 붙었다고 연락이 오더라. 수험생들에게는 소원을 적은 종이를 모아서 수능 날까지 보신각에 보관한다. 매일 소원지가 종소리를 듣게. 타종 후 한 달 후쯤 임신이 됐다고 알려온 난임 부부도 있고, 교사 임용고시에 붙은 사람도 있긴 하다. 일반인들은 서울시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정오에 칠 수 있는데 인기가 많아 내년 1월은 이미 거의 다 찼을 정도다.” (매일 종을 치는 당신은 정작 무슨 소원을 비나.) “음… 우리나라 잘되게 해달라고?” (지금 정치판을 보면 그건 안 이뤄질 것 같은데….) “하하하, 가족의 안녕도 빌고, 특히 스승님의 손자가 내 뒤를 이어 6대 종지기가 되게 해달라고 빈다.”※제야의 종 행사는 자정이 좀 지나면 끝나지만 그는 뒷정리가 끝나는 오전 8, 9시쯤에야 퇴근한다고 한다. 나라를 잃고, 전쟁의 참화를 겪던 시절에도 보신각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스승처럼 뒤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다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사람들…. 타종의 맨 앞줄에 서야 할 사람들이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수유리 어딘가에 버스를 내려 외풍이 싸늘한 추운 방에서 쇠약해진 환자를 보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으나… 의사를 보는 것만도 그에게는 위안이 됐을 것이다.”(유석희 중앙대 의대 명예교수의 회상) ▷의료 시스템이 부족하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두툼한 가방을 들고 골목을 오가던 왕진 의사는 흔한 풍경이었다. 모든 게 열악할 때라 청진기, 체온계, 응급약과 주사기가 전부였지만 의사가 환자에게 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왕진 거부로 환자에게 피해를 준 의사에 대해 ‘의도(醫道)를 망각했다’는 기사까지 나던 시절이었다. 왕진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취해서 왕진을 못 간 의사 남편 대신 아내가 가서 주사를 놓다가 경찰에 걸린 일도 있었다. ▷보건복지부가 어제부터 ‘왕진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왕진은 수가에 진료시간과 교통비 등이 포함되지 않은 데다, 의료 서비스가 확충되면서 점차 줄어 일부에서만 제공했는데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다시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중증 거동 불편 환자들이 사설 구급차(특수)를 이용해 병원에 가려면 편도 7만5000원에 10km가 넘으면 추가 요금이 붙는다. 치료비는 고사하고 교통비조차 버거운 수준이다. 반면 왕진은 1형의 경우 의사 교통비와 진료비 등을 모두 포함해 11만5000원인데 여기서 자기부담금은 30%인 3만4500원이다. ▷왕진은 환자 편의는 물론이고 환자와 의사 간의 인간적 소통이 이뤄진다는 장점도 있다. 경기 포천시에서 호스피스 전문병원을 운영하는 정극규 원장은 일주일에 이틀은 중증 환자들을 위해 가정 방문 진료를 한다. 종합병원 외과 의사였다가 캐나다 유학을 다녀온 뒤 말기 암 등 중증 환자 곁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해주는 의사로 재출발했다. 환자가 움직이면 이동, 대기, 진료 등 6시간 이상 걸릴 일이 그가 방문하면 30분 정도로 충분하다고 한다. ▷먼저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일본은 왕진이 한 해 1000만 건에 이른다. 주간, 야간, 심야, 휴일별로 왕진 수가가 세분되고 방문 진료 전문병원까지 있다. 우리는 동네 의원만 시범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의료계 반발로 348곳에 불과하다. 국내 의원이 3만 곳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 적다. 대한의사협회는 낮은 수가를 이유로 반대하면서 회원들에게 불참 공문까지 보냈다. 의료 행위도 손해 보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인술(仁術)인데 환자보다 수익을 먼저 따지는 현실은 마음이 불편하다. 스스로 병원에 가기 힘든 사람은 누가 찾아와 손만 잡아줘도 큰 힘을 얻는다. 그 손이 의사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독일 베를린 서남부에 있는 스마트 도시 실험장 ‘오이레프(EUREF) 캠퍼스’에는 특별한 대중교통수단이 있다. 미국 로컬모터스가 개발한 ‘올리(Olli)’라는 이름의 자율주행차인데 150여 개의 기업과 연구소에 상주하는 3500여 명의 발이 되고 있다. 12명까지 탈 수 있는데, 운전자는 없고 스마트폰 앱으로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하면 데리러 오고 내려준다. 버스와 택시의 결합형쯤 되는 셈이다. ▷자율주행버스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시범운영 중이다. 우리도 경기 판교제로시티에서 ‘제로셔틀버스’가 운행 중인데 5.8km 노선을 시속 25km로 왕복하고 있다. 5인승으로 운전대가 없고, 운전기사 자리에는 안전요원이 탑승한다. 시범운영이라기보다 아직은 연구개발용인데, 일반인도 타볼 수 있지만 미리 신청해야 하고 출발지와 도착지에서만 승하차가 가능하다. 안전 때문에 만 18세 미만은 탈 수 없고, 호위 차량이 뒤를 따라가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자율주행차는 승용차보다 버스가 더 먼저 상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버스는 정해진 길을 달리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교통 상황 변화가 승용차보다 적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가 운행하려면 차 자체는 물론이고 도로에도 카메라, 레이더, 각종 통신장비, 제어시스템 등 수많은 첨단 장비들이 설치돼야 하는데 이 점에서도 행로가 고정된 버스가 유리하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 대구 수성구 알파시티 내 2.5km 구간에서 국내 최초로 자율주행 버스의 상용화 서비스가 시작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 1∼3월 중 현재 알파시티 내에서 시범운영 중인 한 업체에 면허를 발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서비스 구간을 넓히는 데는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 교통 인프라를 설치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가 미래차의 대세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안전과 대중교통수단으로서의 효율성도 담보돼야 하지만 다른 제도, 문화와의 충돌도 숱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혁신, 공유경제로 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변화로 피해를 보는 쪽에서는 가만히 있기도 어렵다. 자율주행버스 시대가 목전에 닥치면 지금 종사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공동체라면 기술의 진보는 추구하되, 그로 인한 부작용도 최소화하려는 노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미시시피강 다리는 블랙아이스(Black Ice·검은 얼음) 사고로 악명이 특히 높았다. 주 정부는 염화마그네슘에 옥수수 부산물을 혼합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사고는 그치지 않았다. 그러다 2007년 교량 붕괴 사고 후 새로 건설한 다리에는 320여 개의 센서가 온도, 교량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스프레이로 결빙 방지 물질을 분사하고 있다. 핀란드나 일본 홋카이도는 도로 밑에 열선을 설치하는 로드히팅(Road Heating) 시스템을 쓴다. 문제는 비용. 울산 남구는 2013년 거마로(672.5m) 봉월로(197m)에 8억 원을 들여 열선을 설치했는데, 겨울철 석 달 전기료만 30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블랙아이스는 비나 눈이 먼지 등 오염 물질과 결합해 도로에 형성된 얼음막을 말한다. 얼음막 자체는 투명하지만, 아스팔트 도로 때문에 검게 보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육안으로는 일반 도로와 구별이 안 돼 겨울철 교통사고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14일 새벽 경북 상주∼영천 고속도로에서 다중 추돌사고로 30여 명의 사상자가 난 데 이어 어제 아침에도 경기 고양시 제2자유로에서 7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국내 최다 추돌 사고인 2015년 인천 영종대교 105중 추돌 사고도 짙은 안개와 함께 블랙아이스가 원인이었다. ▷겨울철 ‘도로 위의 지뢰’는 블랙아이스만이 아니다. 21일 오후에는 고양시 일산의 4차선 도로가 갑자기 꺼지며 길이 20m, 폭 15m, 깊이 1m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다. 차가 지나가는 순간이었다면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할 뻔했다. 싱크홀 발생은 2014년 69건에서 2018년 338건으로 5년 사이 390% 늘었는데 지하시설물 유지 관리 부실이 주된 원인이다. ▷예측하기 힘든 각종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에는 ‘이불 밖은 위험해’란 말이 회자된다. 원래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히키코모리(引き籠り·은둔형 외톨이)’나 ‘귀차니즘’을 표현하는 말이었는데, 이제는 집 밖이 너무 위험해 나가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더 자주 쓰인다. ▷2015년 2월 영종대교 105중 추돌사고 후 국책연구기관 공동으로 블랙아이스 대책 마련 연구에 착수했다. 하지만 몇 달 후 정부 연구비 지원 사업에서 탈락했다. 심사 시기가 여름철이어서 그새 관심이 떨어지면서 중요도에서 밀렸다고 한다. 사실 싱크홀도, 블랙아이스도 갑자기 등장한 문제가 아니다. 사고가 끊이지 않는 데는 대책 마련에 소홀한 정부와 사고 때만 관심을 기울이는 우리 정서 탓도 있을 것이다. 안전은 인프라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그는 정말 시장 자리를 도둑맞은 걸까. 지난해 3월 경찰이 울산시청을 압수수색하면서 불거진 경찰의 선거 개입 의혹은 올 3월 이 수사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의심을 더했다. 그리고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에 김기현 전 울산시장(60)에 대한 첩보를 내려보낸 진원지가 청와대인 것이 최근 확인됐다. 만약 당시 경찰이 청와대 하명을 받아 야당 소속 현직 시장 측근을 수사한 게 사실이라면…. 세간의 관심을 보여주듯 인터뷰 내내 그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 ―본의 아니게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한나라당 대변인 할 때 기사가 많이 나긴 했는데, 그때는 내가 뉴스의 주인공은 아니었으니까…. 덕분에 백수인데도 엄청 바쁘게 보내고 있다. 지난주에는 거의 매일 울산∼서울을 출퇴근했다. 당 차원의 진상조사도 그렇고 내가 주축이 돼 대응할 수밖에 없으니까.” ―당신에 관한 첩보를 청와대에 제공한 사람이 송병기 현 울산시 경제부시장으로 확인되면서 이 사안이 지금 정국의 핵폭탄이 됐다. 시장 취임 1년 후 당시 교통건설국장이던 송 부시장을 산하 연구원으로 보낸 이유가 뭔가. “그 자리가 개방형 계약직 자리인데 2015년 7월경에 계약기간이 끝나서 더 연장하지 않은 것뿐이다.” (일을 잘하면 연장할 수도 있지 않나.) “그는 전임 시장 때부터 거의 7, 8년을 그 자리에 있었다. 통상 2년도 오래하는 건데…. 새 피도 필요했다. 시장은 바뀌었는데 아래가 똑같으면 달라질 게 없지 않나. 그래서 시 산하에 있는 울산발전연구원 공공투자센터장으로 보냈다. 지방자치단체가 늘 예산 따고, 쓰고 나눠주기 바쁘지 장기 미래 비전은 잘 고민하지 않는다. 송 부시장이 시에 오래 있으면서 각종 현안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보고 보냈다.” ―원하는 성과가 좀 나왔나. “나오긴…. 그래도 인력을 사장시키지 말고 활용해보자고 보낸 건데… 단 한 건도 성과가 나온 게 없었다. 1년 넘게 있는 동안 아무것도…. 황당했다. 시 기획조정실을 통해 내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안 올라왔다.” (왜 일을 안 한 건가?) “모르지…. 그 뒤의 행적을 보면 뭘 하고 다녔을지 짐작이 가는 거 아닌가. 지난해 당선된 송철호 울산시장이 규정까지 바꿔가며 경제부시장에 임명할 정도니.” (규정을 바꿨다니?) “원래 울산시 경제부시장은 개방형 직위라 공개모집이다. 그걸 송 시장이 별정직으로 바꿨다. 별정직은 공모 없이 시장이 임명하면 된다.” (내부에서 별말이 없었나.) “없긴…. 시 의회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무슨 위인설관이냐며 난리를 쳤는데…. 그래서 무마하기 위해 여기저기 엄청 뛰어다닌 걸로 안다.”※울산시의 마지막 경제부시장(개방형 직위) 공개모집은 2017년 12월에 있었다. 당시 지원 경력 기준은 1급 상당 공무원은 관련 분야 근무 경력 4년 이상, 2급 상당은 6년 이상이었고, 이듬해 2월 기획재정부 고위공무원 출신인 김형수 씨가 임명됐다. 송 부시장이 재임한 교통건설국장은 3급으로 개방형 공모였으면 자격 미달이다. ―송 부시장은 청와대에 알려준 첩보가 당시 언론을 통해 울산 시민 대부분이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검색해도 기사가 잘 안 나온다. “거짓말이니까…. 첩보 내용 중에서 보도된 기사는 단 한 건도 없다. 울산 시민이 다 알 정도라면 울산경찰청이 모를 수가 없고, 청와대에서 첩보를 내려보낼 필요도 없다. 송 부시장 말이 사실이라면 울산경찰청은 알면서도 수사하지 않았는데, 청와대에서 첩보가 오니 그제야 나섰다는 말밖에는 안 된다.”※송 부시장이 청와대에 첩보 내용을 알린 것은 2017년 10월경이다. ―작년 당신이 한국당 울산시장 후보 공천을 받던 날, 경찰이 시장 비서실 등을 압수수색했는데 사전에 몰랐나. “전혀 몰랐다. 그날 행사 때문에 밖에 있었는데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경찰이 압수수색하러 왔다고…. 부랴부랴 들어갔는데 언론에도 미리 알렸는지 이미 사무실 안에 카메라며 사진기자들이 우글댔다. 그 자리에 있어봐야 할 것도 없고, 좋을 것도 없어 다른 사무실에서 진행 상황을 들었다.” (비서실은 무슨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은 건가.) “비서실장이 골프 접대 등을 받고 업체의 납품 편의를 봐 준 게 직권남용과 뇌물수수라는 건데…. 이게 정말 황당하게 전개됐다. 비서실장은 경찰에서 골프는 쳤지만 자기 돈을 냈고, 납품 편의를 봐준 적도 없다고 진술했는데 무시하고 그냥 구속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신청했다는 건가.) “그랬다. 지역 신문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기사가 나서 알았는데, 황당해서 비서실장이 그 후에 영수증을 찾아서 제시했다. 그랬더니 경찰이 뭐라고 했는지 아나?” (뭐라고 하던가.) “직접 들은 건 아니고 언론에 난 건데 늦게 낸 게 수사방해라고 했다.”※김 전 시장의 비서실장은 자신이 결제한 울산컨트리클럽 결제명세를 검찰에 제출했다. ―선거가 목전이었는데 대응은 어떻게 했나. 가장 중요한 문제였을 텐데…. “대응은 무슨…. 경찰발로 계속 뉴스가 홍수처럼 쏟아지는데 솔직히 하도 많아서 무슨 뉴스가 어디에 났는지 파악도 할 수 없었다. 뉴스는 물론이고 ‘도망간 김기현 시장의 동생을 찾는다’는 허위 비방 현수막까지 걸렸다. 압수수색에 대해서는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과 수사담당자들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했지만 그저 단신으로 한 줄 나고 그만이었다. 건마다 변호사를 선임해 다 고발할 수도 없고…. 변호사를 쓴들 업무도 하고, 선거 준비도 해야 하는 데 언제 그 변호사들을 다 만나겠나. 계속 해명 기자회견만 하면 되레 상대를 도와주는 꼴이고….” ―지난해 울산시장 선거에 대한 무효소송을 내겠다고 했는데, 현행법상 안 되지 않나. “그래서 먼저 공직선거법의 위헌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을 4일 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일로부터 14일 이내 선거 소청을 해야만 선거무효소송을 할 수 있다’고 하고 있는데 소청 기간이 너무 짧고, 내 경우처럼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부정행위가 드러나면 소송 자체가 불가능하다. 낙선하고 무슨 정신이 있다고 14일 안에 변호사 선임하고, 증거 수집하고 소청을 하나. 캠프 정리하기도 정신이 없는데…. 왜 14일 이내인지 근거도 없다. 그래서 먼저 소청 기간을 14일로 규정한 것이 위헌이라는 판정을 받고, 그 다음에 선거무효소송을 내려고 한다.” (공천 받던 날 압수수색을 받았는데 그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이상했지만 증거가 없었으니까. 짐작만으로 내봐야 받아주지도 않았을 테고….” ―설사 위헌 판정을 받고 선거무효소송에서 이겨도 그 사이에 시장 임기는 다 끝날 것 같은데 무슨 실익이 있나. “선거무효소송은 단심이라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을 거치는 사이에 시장 임기가 끝날 수는 있다. 하지만 내 목적은 선거를 다시 하자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헌정 질서에 한 번도 없던 선례를 남기고 싶어서다.” (한 번도 없던 선례?)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을 기억하나? 선거 직전 검찰이 허위라고 밝혔지만 이미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그 때문에 이 후보는 57만여 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떨어졌다. 김대업은 2년 가까이 실형을 살았지만 이미 정해진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도 당시 이 후보가 20만 달러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허위사실로 판명됐다. 이런 행태를 그냥 놔두면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 총대를 메고 일을 저지르고, 감옥 가도 사면해주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걸 막고 싶어서다.”※설 의원은 2005년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 피선거권 10년 제한 형을 선고받았지만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사면 복권시켰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당신을 편들고 있다고도 한다. “검찰이 내 편이라면 작년에 경찰이 신청한 시청 압수수색 영장을 왜 받아줬겠나. 기각하지. 그때는 영장 신청을 받아주고 지금은 내 편을 든다? 앞뒤가 안 맞지 않나. 오히려 경찰이 내 수사의 참고인으로 송 부시장을 불러 조사하면서 진술서를 가명으로 받았는데…. 이런 거야말로 확실하게 편들어주는 거다. 송 부시장이 참고인 진술을 하면서 테러의 위협이라도 느꼈단 말인가? 그래서 FBI나 CIA의 증인보호 프로그램 수준의 신변보호 요청을 경찰에 했단 말인가? 가명으로 진술서를 받아주다니…. 자기 스스로 울산시민 대부분이 아는 내용이라 하지 않았나.”※‘가명조서·신원관리카드 작성 및 관리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범죄신고자법에 따라 살인 강간 등 신고자에 대한 보복 위험이 큰 범죄의 경우 가명으로 조서를 쓸 수 있다. 또 필요에 따라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검사나 경찰의 판단에 따라 쓸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지침에 따라 실명 미기재 사유보고서 원본을 검찰청에 제출하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 송 부시장은 진술서를 가명과 실명 모두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가명 작성의 사유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고 하던데…. “한다. 꼭 한다. 그래서 내 손으로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특검(특별검사)을 추진하든, 국정조사를 하든…. 앞서 말한 대로 선거무효소송을 하려면 선거가 끝난 뒤 14일 이내에 해야 하는 공직선거법도 고치고….” (마음은 알겠는데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제대로 하려면 한국당이 승리해야 하는데 지금 지지율로 되겠나.) “그러게…. 그 얘기하면 할 말이 없다. 갑자기 화가 나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20세기 중반까지도 오케스트라 지휘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통념이 있었다. 소수의 여성 지휘자들은 편견과 성차별에 시달렸고, 이 때문에 여성으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국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자세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첼로 파트에 상당 기간 남성만 고집하던 시절이다. 1967년 뉴욕타임스(NYT) 음악 평론가인 헤럴드 숀버그는 “여성 지휘자의 음악은 언제 시작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속치마가 보일 때”라고 비꼬았는데 지금 같으면 난리가 날 일이다.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생전에 “지휘란 음표 뒤에 숨은 우주를 찾는 여정”이라고 했다. 예컨대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에서 말하고 싶어 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의 음표, 악상 기호, 빠르기, 박자 등 수많은 도구를 통해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지휘자는 악보는 물론 작곡가의 전기, 편지, 일기와 당시 시대 상황까지 끊임없이 공부한다. ▷지휘자는 프로야구 감독, 해군 제독과 함께 미국 남성들이 선망하는 3대 직업이라고 한다. 손짓 하나로 좌우하는 절대 권한도 매력적이지만, 각 분야 최고라고 자부하는 여러 사람의 마음을 모아 목표를 이뤄내는 성취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아바도는 연습 중 “들으세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는데, 연주자들이 다른 파트 소리를 들으면서 지휘자가 만들려는 소리의 모양과 의미를 알기를 바랐다고 한다. ▷여성 지휘자 김은선(39)이 96년 역사의 미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FO) 첫 여성 음악감독이 됐다. SFO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다음으로 큰 세계적인 오페라단이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36세에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이 됐으니 그에 버금가는 셈이다. 세상이 바뀌고 성시연 장한나 여자경 등 뛰어난 여성 지휘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는 있지만 아직도 남성 중심인 지휘 분야에서 흔치 않은 성과다. NYT는 “그녀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성에게만 붙이던 마에스트로(Maestro·거장)란 호칭이 여성 지휘자에게 붙기까지는 수많은 여성 지휘자의 노력과 눈물이 있었다. 여성 밑에서 노래할 수 없다는 가수의 항의로 무대에서 내려오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처음으로 여성에게 지휘를 맡긴 게 불과 14년 전인 2005년 11월 빈 무지크페라인잘 연주회에서다. 여성 지휘자는 합창단, 교향악단, 오페라 순으로 적다. 그나마 객원지휘는 많지만 음악감독이나 상임지휘자는 소수다. 김은선이 얼마나 어려운 길을 걸었을지 짐작이 간다. 브라바(brava)!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올 4월 미국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이 연설을 했다. 나토 사무총장이 미 상하 양원 합동 의회에서 연설한 것은 70년 나토 역사상 처음이다. 하지만 대선 때부터 나토를 쓸모없는 낡은 동맹으로 폄하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 대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방위비를 올리지 않는 나토 회원국들을 콕 집어 비난했다. ▷나토는 1949년 4월, 미국 주도로 영국 프랑스 등 서방 12개국(현재 29개국)이 모여 창설했다. 회원국의 안보 및 북대서양 지역의 민주주의 증대를 목적으로 했는데, 옛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토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원 포 올, 올 포 원(one-for-all, all-for-one)’으로 불리는 조약 5조다.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모든 회원국이 군사적으로 지원하게 했는데 나토 역사에서 딱 한 번 2001년 9·11테러 때 발동됐다. ▷나토 창립 7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서 열린 회원국 정상회의가 트럼프 대통령과 회원국 정상들 간의 기 싸움으로 얼룩진 채 4일 끝났다.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는 트럼프는 심지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2% 방위비 지출을 지키고 있는 영국 루마니아 등 9개국만 따로 초청해 식사를 했는데, 이를 ‘나토 2% 지출자들(NATO 2 percenters)’의 오찬이라 불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는 설전을 벌였고, 다른 정상들로부터는 조롱을 받자 그는 예정된 기자회견도 취소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트럼프의 행동은 무례했지만 회원국의 전력 약화가 심각한 것도 사실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나토 주요 7개국의 주력 전차를 모두 합쳐도 900대 정도다. 네덜란드는 군비 축소로 기갑부대를 모두 폐지해 현재 18대가 고작이다. 미국 국방비는 나토 전체의 70%나 된다. 일부에서는 이런 나토의 영어 약자 T(Treaty·조약)를 Toothless(이 없는)로 바꿔 ‘북대서양 이빨 빠진 기구’라고 비꼬기도 한다. ▷나토는 이번에 처음으로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 중국의 군사 굴기를 우려하는 내용을 담았다. 중국은 지난 5년간 80척의 군함과 잠수함을 진수했는데 이는 영국 해군 전체와 맞먹는 규모다. 유럽에 발을 넓히는 화웨이 등을 겨냥해 통신상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한 모임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나토에서 탈퇴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계속 남에게 안보를 의존했다가는 정말 ‘이빨 빠진 기구’가 될지도 모른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지난달 17일 불출마 선언을 한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은 이후 인터뷰에서 “30, 40대 원외 당협위원장 6명이 쇄신을 요구하며 직을 사퇴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공천을 받아야 그나마 당선 가능성이 있는 원외조차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에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이 언급한 6인의 위원장은 지난달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당 해체 수준의 혁신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에서는 되레 주동자 색출이라는 소동이 벌어졌다. 기자회견의 산파 역할을 한 강명구 위원장(42·영등포갑)은 “공천도 중요하지만 당이 변하지 않으면 그 공천줄이 썩은 동아줄일 뿐이라는 데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의원들도 대부분 침묵하는데 원외들이 나섰다. “그전부터도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낙마 이후 당이 보인 행태를 목격하면서였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관련 법안 저지 과정에서 수사 대상이 된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겠다고 하고, 조 전 장관 낙마에 공을 세운 인사청문 의원들에게 표창장과 상품권을 주며 자축연을 여는 걸 보며 ‘이대로 가면 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뒤 ‘공관병 갑질 논란’이 일었던 박찬주 전 육군 대장 영입으로 물의를 빚었다. 조국 사태로 그나마 조금 얻던 반사이익마저 차 버리는데 그 과정에서 인적 쇄신 얘기는 쑥 들어가고 난데없이 총선기획단을 출범시키더니 그나마 민심과 거리가 먼 구성으로 욕을 먹었다. 그러면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당 지도부가 과연 혁신과 인적 쇄신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쇄신 요구 6인은 강 위원장과 김재식(구로갑), 김성용(송파병), 조대원(고양정), 박진호(김포갑), 김대현 위원장(원주을) 등이다. ―미안하지만 비아냥거림은 아닌데… 한국당의 그런 행태가 처음도 아니지 않나. “나도 그렇지만 함께 나선 위원장들 대부분이 수도권이라 더 충격이 컸던 것 같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랄까. 아직도 저렇게 민심과 현실을 모르는지 이해가 안 갔다.” (지역에서 피부로 느끼는 한국당에 대한 정서는 어떤가.) “얼마 전 새마을부녀회 어머니들과 함께 김장을 했다. 정치와는 관계없는 분들이다. 보통 대부분 잠깐 돕다 사진만 찍고 가는데 나는 신인이라 끝까지 있었다. 어머니들이 기특하게 봤는지 ‘다른 사람하고 다르다’ ‘끝까지 있는 사람 처음 봤다’며 칭찬하더라. 재미있는 얘기도 하고 애교도 부리고 해서 분위기 참 좋았는데 한 분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근디∼ 워디서 왔남?’ 하고 물었다.” (행사에 참여했는데 누군지 모르나.) “나를 초청한 사람 몇몇은 알지만 대부분은 모른다. ‘저 한국당 당협위원장이에요’라고 했더니 웃던 얼굴들이 갑자기 굳어지면서 ‘한국당이었어?’ 하고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다른 정당 지지자들이라 그런 건 아닌가. “현장을 다니면 알 수 있다. 다른 정당 지지자라 그런 건지, 아니면 민심이 그런 건지. 내 친구들조차 ‘명구야, 너 왜 아직도 거기 있느냐’고 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고 지난여름 송충이 엄청 잡고 다녔다.” (송충이를 왜?) “지역 활동으로 민원 해결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여름, 동네 가로수에 벌레가 많으니 잡아 달라는 민원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구청 담당 부서를 연결해 주는 정도였는데 효과가 있었는지 점점 더 많이 들어왔다. 담당 부서도 노력했지만 나도 엄청 잡았다. 부탁했던 주민이 고맙다며 인사를 하는데….” (또 한국당이라 하니 표정이 안 좋아지더라고 말하려는 건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전화하는 곳이 어디인지 잘 모른다. 그저 민원을 해결해주는 곳으로 알지. 고마워하다가도 한국당이란 걸 알고 표정이 변하는 걸 볼 때… 정말 미친다. 조국 사태 때는 1인 피켓 시위를 했는데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 내 귀에 ‘조국도 나쁘지만 너희 당이 더 나빠’ 하고 가더라. 눈을 흘기면서…. 20대 총선 막장 공천, 최순실 사태, 탄핵 등 국가에 대죄를 지어 놓고 책임은 고사하고 사과 한 번 제대로 안 하고, 툭하면 막말 파동이 벌어지는 모습이 아직도 용서가 안 되는 거다. 조국 사태는 어찌 됐든 국가로서는 불행한 일이다. 표창장, 상품권 주고 축하할 일이 아니지 않나. 이게 지금 한국당에 대한 정확한 민심이고, 그래서 비호감 1위인 거다.” ―동참한 위원장들은 어떻게 모인 건가. “지난해 공개 오디션 방식으로 선발된 위원장들이 10여 명 있는데 대부분 정치가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서로 의지하고 정보도 공유하는 모임이 생겼는데 여기서 당 얘기를 하던 게 출발점이 됐다. 안 그래도 답답한데 표창장 수여 등 민심과 괴리된 악재가 터지면서 너무 절박하니까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데 뜻이 모아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행동하려니까 우리 안에서도 또 이런저런 말들이 나와 쉽지 않았다.” (어떤 말들이 나왔나.) “늘 듣던 말…. 시기가 안 맞다, 내부 총질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문재인 정권과 싸워야 할 때다, 이런 것들이다. 그런 우려도 물론 있지만 이런 상황, 저런 이유 다 빼면 아무것도 못 한다. 모두가 그런 이유로 아무것도 못했기 때문에 지금 이 지경이 된 건데…. 사람이니 아무래도 겁도 좀 났을 테고….” (겁?) “원외 위원장이 무슨 힘이 있나. 지도부를 속된 말로 심하게 ‘까다’ 잘릴 수도 있고…. 찬성하지 않은 사람들은 설득이 안 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움직임이 조금씩 알려지니까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신호도 왔다. 그래서 결국 우리 6명만 남았다. 그중 조 위원장은 공개 오디션에서 뽑히지는 않았지만 뜻에 공감해 동참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자회견을 했는데 욕을 많이 먹었다.” ―욕을 먹다니…. “당 해체라는 말 때문이었는데… 성명서를 쓸 때 우리 안에서도 우려가 있었지만 창조적 파괴를 위해 필요하다는 말을 붙였기에 오해가 없을 줄 알았다. 그리고 우리가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누가 우리와 통합하려 하겠나. 당 해체 수준의 결기를 가져야만 그런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말이 너무 센 거 아니냐’ ‘부모를 없애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너희들이 당에 무슨 헌신을 했기에 해체를 주장하느냐. 건방지게’ 그런 말들이 나왔다. 그리고 뒷배와 주동자가 누군지 색출하라고 했다더라.” (혁신을 요구했다고 주동자를 색출하려 했다는 건가.) “그 말이 돌자 기자들이 누가 색출 지시를 했는지 취재하기 시작했다. 이후 파장이 우려됐는지 흐지부지 끝나기는 했다. 근데 중요한 건 원외 위원장들이 직을 걸면서까지 당 해체 수준의 혁신을 요구했는데, 명색이 지도부라면 이놈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번 들어 보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지도부 중 누구에게도 그런 연락이 온 적이 없다. 난쟁이들의 목소리가 그렇게 사라지려는 시점에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 선언으로 불을 다시 지펴준 거다.” ―당신들 기자회견 한 번으로 움직일 한국당은 아니지 않나. “하는 데까지는 할 생각이다. 그런데 주동자 색출 이런 일들이 벌어지니까 우리 안에서도 확 위축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각오는 했지만…. 그래서 2탄을 준비했는데 안타깝게 못 했다.” (2탄?) “혁신과 보수 통합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려고 했다. 솔직히 지금은 막장 공천 파동, 국정농단, 탄핵에 이르기까지 당과 보수를 이렇게 만든 주체들이 혁신을 얘기하는 이상한 상황이다. 혁신의 주체를 바꿔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젊은 보수 연사들을 초청해 난상토론회를 열려고 했다. 3탄으로 바른미래당 청년당협위원장들과 함께 토론회를 열고 뜻을 모아 성명서를 발표하려는 구상도 있었다. 그런데 황교안 대표가 단식을 시작하면서 일이 좀 꼬였다.” (대표의 단식과 혁신이 무슨 관계인가.) “현수막도 제작하고, 토론회장도 다 예약했는데… 단식하는 당 대표에게 리더십 문제, 창조적 파괴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취소됐다.” ―황 대표의 단식으로 쇄신 요구 분위기가 좀 식은 것 같은데…. “단식에 너무 눈이 쏠려 표면적으로 쇄신 분위기가 쑥 들어간 건 맞는데… 반면에 죽을 각오로 단식을 벌인 덕에 황 대표에게 지금 힘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패스트트랙 정국이 끝난 뒤 이 힘을 모두 인적 쇄신에 쏟아붓는다면 살 길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패스트트랙을 저지해야 하는 당의 입장에서 지금 인적 쇄신을 하면 힘이 모아질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니까. 현 정국 상황이 끝난 뒤에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모습을 보면… 기대가 너무 큰 것 아닌가.) “초·재선 의원들도 거취를 대표에게 일임하고 쇄신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 같은 원외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쇄신 하지 않으면… 황 대표 자신도 죽고, 당도 죽고, 정부·여당의 폭주를 막지 못해 나라도 죽는다.” ―한국당에는 김세연 의원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삐딱하게 보는 사람이 많다. “하…. 이 말은 정말 하고 싶은데… 3선 의원이 그렇게 불출마 선언을 하면, 좀 왜 그런지 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민심과 현실을 모른다 해도…. 그런데 돌아보기는커녕 김 의원이 당에 좀비, 민폐라는 용어를 썼다고 그걸 걸고넘어지면 어떻게 하나. 달을 보라니까 왜 손가락만 보는지…. 너무너무 안타깝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1997년 12월 30일, 흉악범 23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국내에서 집행된 마지막 사형이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는 5명이 집행됐는데, 끝까지 혐의를 부인해 난동이 예상됐던 한 사형수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며 마지막 말을 남기자 오히려 교도관이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당시 입회했던 검사는 “그날은 유난히도 추웠다.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나를 위해 동료들이 오후 내내 술을 들이켰다”고 술회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미집행 사형수는 현재 60명. 1994년 100억 원대 재산 상속을 위해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당시 23세)도 그중 한 명이다. 당시 황산성 변호사가 변호를 맡았으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눈물 한 방울 안 보이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3개월 만에 변호를 포기했다. ▷올 4월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흉기로 대피하던 주민 5명을 살해(17명 중경상)한 안인득(42)이 27일 1심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재판부는 안인득이 조현병으로 인한 피해망상과 판단력 저하 등이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범행 과정과 전후 행동을 종합하면 의사결정능력 미약 상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금모 씨는 딸과 어머니가 숨지고, 아내는 딸을 구하러 달려들었다가 중상을 입는 등 일가가 풍비박산 났다. ▷흉악범은 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2월 임모 병장 판결 이후 사형 확정 선고는 없다. 임 병장은 2014년 강원 고성군 22사단 전방소초(GOP)에서 총을 난사해 5명을 살해했다. 딸의 친구를 살해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제대로 학교도 못 다니고, 정신장애를 가진 피고인을 이성적인 사람으로 취급해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이유에서다. 피해자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이의를 신청했지만 법정 경위들에게 제지당했다. ▷안인득의 변호인이 최종변론에 앞서 “이런 살인마를 변호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했다. 저도 인간이다”고 토로했다. 그는 안인득이 “누굴 위해 변호하느냐”고 소리치자 “저도 (변호)하기 싫다”고 맞받아쳤다. 너무도 끔찍한 범죄 앞에서 변호인조차 오죽하면 그런 말을 했을까. 사형제에는 찬반 논란이 있고 각기 나름의 충분한 이유도 있다. 안인득은 억울하다며 항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생명은 한없이 소중하지만, 인면수심 살인마의 생명도 지켜줘야 하는지…. 참 복잡한 문제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