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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월드컵 방문 16강 진출을 이뤄낸 카타르 월드컵. 비록 8강 진출은 못 했지만 한국 축구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무대이기도 하다. 12년 전 첫 방문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뤄냈던 허정무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대표팀 감독(현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은 “이번 월드컵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 중 하나가 일본 축구의 발전상”이라며 “우리도 일본처럼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유망주를 발굴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16강이 쉽지 않다는 전망도 많았는데, 당신은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했더라.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이 강팀이다 보니 인색한 평가가 많았는데, 나는 오히려 찬스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손흥민 황희찬 김민재 등 선수 구성이 역대 월드컵 중 가장 좋았다. 더군다나 다른 때와 달리 11월에 열리다 보니 유럽에서 뛰는 다른 나라 선수들은 시즌 중에 참가해 팀 훈련을 충분하게 하지 못했다. 우루과이가 강팀이라지만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리와 붙었을 때보다 전력이 훨씬 약해졌다. 그때 뛴 수아레스가 이번에도 뛰지 않았나. 세대교체가 안 된 거지. 포르투갈은 2002년에 우리가 이겨도 봤고, 또 마지막 경기라 워낙 변수가 많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 우리가 독일을 이긴 것도 마지막 경기였다. 그래서 나는 16강이 아니라 오히려 8강을 노려야 한다고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빌드업 축구가 인상적이었는데, 그동안은 왜 못 했던 건가. “단순히 볼을 돌리면서 전진하는 게 빌드업이 아니다. 목적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볼을 돌리는 과정이라면 빌드업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상대의 뒤쪽 공간이나 급소를 노리기 위한 과정이어야 하는데, 이게 쉽게 쌓아지는 능력이 아니다. 또 상대가 우리 빌드업을 깨려고 전방 압박을 할 때 그걸 다시 깨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사실 빌드업 축구는 꽤 오래된 세계 축구의 흐름인데, 아쉽게도 우리가 이 흐름을 파악하는 데 좀 약했다. 꼭 한발 늦게 따라가고…. 그러다 보니 한때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까지 들었다.” ―우리가 1986년부터 지금까지 월드컵 본선에 10회 연속 진출했는데 개구리라니…. “내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선수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4년 미국 월드컵에는 트레이너와 코치로 참가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세계 축구에 대한 제대로 된 자료나 정보가 거의 없었다. 늘 아시아권에서만 뛰었으니까.” (그 뒤라도 도입하면 되는 것 아닌가. 당신은 네덜란드에서 뛰다 왔는데.) “그런 축구가 누구 하나가 말 한 번 한다고 바로 되는 게 아니다. 오랜 기간 훈련하고, 극한 상황을 이겨내면서 조금씩 쌓이는 거다. 축구는 말이 아니라 발로 하는 것이니까.”※김정남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 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 “참고할 만한 게 없어 막막하고 두려웠다. 마라도나 한 명만 알고 아르헨티나전에 나섰다”고 말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의 이회택 감독은 “일주일이면 시차 적응이 다 끝날 줄 알았다. 잔디 등 그라운드 컨디션은 신경도 못 썼다”고 말했다. ―브라질전은 좀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이강인이 몸이 참 좋은 상태였는데 왜 처음부터 기용하지 않았는지 궁금하긴 하더라. 그리고 물론 감독이 제일 잘 알 테고, 또 안에서 보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게 다르긴 하겠지만, 지더라도 과연 그렇게 무기력하게 질 수밖에 없었는지 하는 생각은 들었다. 대비를 제대로 못 한 건 아닌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물론 브라질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세계 최고의 강팀이다. 그런데 6월에 우리가 브라질과 평가전을 하지 않았나.” ―당시 1-5로 졌는데….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다. 평가전 때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고 대비해, 질 때 지더라도 악착같이 상대를 힘들게 만들었어야 했다. 상대의 기술이 워낙 좋기 때문에 밀착 방어와 함께 옆에서 도와주고 막아주는 협력 수비도 치열하게 했어야 했는데, 수비에서 그런 면이 잘 안 보였다. 6월 평가전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정말 제대로 보완했는지…. 이런 부분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전반에만 4골을 넣으니까 후반전에는 다음 경기 대비하느라 살살 하지 않았나. 제대로 뛰었다면….”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있었을까. “물론 그런 게 있을 수 있다. 멕시코 월드컵 때 조병득 골키퍼가 감기 걸리는 바람에 오영교 선수가 나갔다. 경기에 지니까 속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조병득을 쓰지 않았냐며 엄청나게 비난하더라.” (아팠다고 하면 되지 않나.) “그걸 어떻게 다 일일이 말하겠나. 기자회견을 열어 아파서 못 나갔다고 할 수도 없고, 지고 난 뒤라 구차하기도 하고….” ―조별 예선에서 독일, 스페인을 침몰시킨 일본 실력이 대단하던데….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일본은 고등학교 팀만 수천 개다. 우리와 비교가 안 된다. 그리고 일반 국민이 잘 모르는 게 있는데… 성인 대표팀은 그럭저럭 버티지만 중고등학교 한일전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거의 다 지고 있다. 일본은 굉장히 오래전부터 축구 발전을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실행하고 있다. 유망주 육성은 물론이고, 이제는 유럽에 상설 캠프장까지 만든다고 한다. 전지훈련은 물론이고 유럽에서 뛰는 자국 선수들도 이용하고, 또 일본 선수들의 유럽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도 활용할 계획이라는 거다.” (우리는?) “없지….” ※지난해 전일본고등축구연맹에 등록된 고교 팀은 3962개다. 대한축구협회 자료에 따르면 우리 고등부(U18) 등록 팀은 190개다. ―일본이 오래전부터 대표팀의 성적 부침이 적다고 하던데, 그런 까닭인가. “앞서 말했지만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부족한 면을 채우고, 낮은 부분을 끌어올리다 보니 우수한 선수가 끊임없이 배출돼 전력이 굉장히 안정돼 있다. 기본기나 기술은 지금 일본이 우리보다 앞선다. 근성도 많이 올라갔는데, 이번 월드컵 독일, 스페인전에서 후반에 뒤집기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몸싸움 때 전혀 물러서지 않더라.” ―일본 축구가 한국보다 앞서는 걸 인정하지 않는 건 우리뿐이라던데 맞나. “그런 면이 있다. 내키지는 않지만 일본이 잘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감정적으로만 대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나도 일본에 지는 건 싫다. 하지만 계속 지고 싶지 않다면, 인정할 건 인정하고 이기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노력해야 한다.” ※전 축구 국가대표 이영표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한국 축구가 일본보다 강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른 나라들은 일본이 더 강하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한 때가 이미 2013년이다. ―우리가 평가전이나 친선경기조차 너무 예민하다 보니 긴 호흡으로 준비하는 게 힘들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게 참 어려운 게… 물론 평가전이 새로운 전술을 시험하고 이런저런 선수도 기용해 보는, 감독의 구상을 적용해 보는 자리인 건 맞다. 그렇긴 한데 팬들은 워낙 기대가 크다 보니 또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승패도 중요한 거지. 더군다나 한일전이면 더…. 그러니 감독 입장에서는 평가전이지만 승패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번 월드컵에도 일부 그런 게 있었지만 과도한 악플은 이제는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내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하도 충격을 받아 지금까지도 댓글을 못 보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유럽 전지훈련을 다녀온 뒤 공항에서 선수들을 다 풀어줬다. 대표팀이 대부분 대학 선수들이었는데, 바로 대학선수권대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회가 끝나고 평가전을 위해 소집했는데 다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한여름에 4차례 경기가 포함된 전지훈련을 다녀오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바로 대회를 뛰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평가전을 하는데 20분 정도 지나니까 녹초가 돼 뛰지 못하고 걸었다. 결국 1-4로 박살났다.” ―경기란 게 질 때도 있지 않나. 상대가? “일본…. 누리꾼들이 댓글로 융단폭격을 하는데, 그중 하나가 심장을 후벼 팠다.” (뭐라고 썼기에.) “그때 부친이 유럽 전지훈련 중에 돌아가셔서 급히 귀국해 장례를 치렀는데, 그 돌아가신 아버지를 걸고넘어졌다. 그 글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이후로는 지금까지 인터넷 댓글을 안 본다. 안 그래도 감독과 선수들은 지역 예선부터 본선까지 엄청난 심적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격려해 주면 좋을 텐데 꼭 그렇게 인신공격성 댓글을 달아야 하는지. 그런 모습은 이제 좀 없어졌으면 한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지난달 중순 한국이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낙선했다. 2006년 초대 이사국에 선출된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일. 4자리를 놓고 6개국이 출전한 선거에서 우리는 5위에 그쳤다. 서창록 전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 위원(현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은 “근본적으로 역대 정부들이 인권외교를 소홀히 한 결과가 쌓인 탓”이라고 말했다. 2014∼2020년 두 차례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을 역임한 그는 현재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당신에게는 더 충격이었을 것 같은데.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진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2006년 인권이사회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3연임 금지 규정으로 2012년, 2019년 두 번 쉬었을 때 빼고는 모두 당선됐다. 더군다나 방글라데시 몰디브 키르기스스탄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등과의 경쟁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지금 탈레반이 여성들 학교도 못 가게 하는 나라다. 다 지고 그런 나라 하나 이겼으니….” ―왜 떨어졌다고 생각하나. “물론 원인은 복합적이다. 북한 인권문제에 소홀했던 전임 정부 탓이라는 의견도 있고, 현 정부의 인권외교 부재를 꼽는 사람도 있다. 외교부 말대로 너무 많은 국제기구 선거에 뛰어들다 보니 선택과 집중에 실패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근본적으로 인권에 대한 역대 정부들의 관심 부족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인권외교 기반을 충분히 다지지 못해 나타난 결과다.” (우리는 유엔 사무총장까지 배출한 나라다.) “스위스 제네바는 유엔인권이사회뿐만 아니라 수십 개의 분야별 국제기구와 수백 개 국제 비정부기구(NGO)들이 있는, 매년 3000여 회의 국제회의가 열리는 다자외교의 중심지다. 그래서 170여 개국이 상주 대표부를 두고 있다.” ―갑자기 제네바 이야기는 왜 꺼낸 건가. 우리도 주제네바 대표부가 있지 않나. “있는데… 인권 담당자는 달랑 세 명이다. 내가 인권이사회 자문위원 할 때 보니, 우리 외교관들은 위원회에서 중요한 협의를 하는데도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가 뭔가.) “인원은 적은데 업무가 너무 많은 탓도 있고, 한국에서 높은 분들이 오면 의전에 투입되느라 못 오기도 했다. 또 서기관들은 대부분 2년도 채 안 있고 떠난다. 초기에는 인권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부족해 좌충우돌하며 배우는데, 그나마 조금 익숙해질 때면 가는 거다. 외교부 본부에도 인권 담당 사무관은 4명뿐이다.” ―현안 따라가기도 힘들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전 세계적으로 인권과 관련해 벌어지는 많은 사안을 다 파악하기가 어렵다. 외교부는 전략 실패라고 하는데…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큰 그림을 못 보는데 무슨 전략을 짜겠나. 그런 상황에서 마침 후보국들도 만만해 보이니 ‘설마…’ 하다가 떨어진 거지.” ―당신 같은 전문가들이 도와줄 수도 있지 않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회를 통해 정기적으로 자문은 한다. 하지만 긴박한 결정을 할 때는 외부 전문가 의견을 듣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번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도 마찬가지였던 걸로 안다.” (외교부는 올해 4대 중점 선거 중 하나라고 했는데 전 자문위원에게 자문도 안 구했다는 건가.) “중요한 이슈들이 매일같이 있다 보니 직원들이 특정 사안을 고민하고 공부할 겨를이 없다. 누군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사안별로) 외부 전문가 집단도 만들고 자문도 구할 텐데 그런 시스템이 없다.”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 “2015년에 만났던 오스트리아 인권 담당은 아직도 있더라. 그러니 아는 것은 물론이고, 인적 네트워크도 얼마나 넓겠나. 선진국은 협상도 선거운동도 그런 사람들이 한다. 내가 2020년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 위원 선거에서 당선됐는데, 일본 위원에게 물어보니 선거 3년 전에 외무성에서 의사 타진을 해왔다고 했다. 그리고 3년 동안 당선되는 데 필요한 훈련과 지원을 해줬다는 거다. 외국에서 관련 공부도 시켜주고, 제네바에서 활동하게도 해 주고….” (당신은?) “나 혼자 개인 플레이로 뛰었다.” ―우리 인권 외교가 오락가락이라는데, 현실을 고려하다 보니 그런 건가. “노(NO), 원칙과 실력이 없어서다.” (원칙과 실력?) “인권은 그 무엇보다도 상위에 있는 가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한 채 존재할 수도 없다. 인권 유린을 당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도우려면 탈레반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나. 그래서 중요한 것이… 그 나라가 가진, 인권에 대한 일관된 원칙이다. 그 원칙 아래서 인권 외교를 추진해야 실력도 생기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게 된다. 국제적 신뢰가 있으면 개별 사안에서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인다고 앞뒤가 다른 나라라고 하지는 않는다. 힘이 모든 것인 국제사회에서 인권을 수호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원칙이 없다. 그러니 실력을 쌓을 수도 없다.” ―인권에 대한 원칙 부재가 실력 부재로 이어진다는 게 무슨 말인가. “지난달 초 유엔 인권이사회가 중국의 신장위구르족과 소수 민족에 대한 반인도적 범죄 혐의와 관련한 토론 개최 여부를 묻는 투표를 했다. 우리는 찬성표를 던졌는데, 이후 같은 사안에 대한 유엔 총회(제3위원회)의 규탄 성명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바뀐 이유가 있나.) “앞뒤가 안 맞을 때마다 쓰는 말이 있지 않나. ‘여러 가지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외교부도 궁색한 거지.” ―제반 상황이 뭔지는 말 안 하던데. “한 사회가 가진 인권에 대한 신념은 오랜 시간 공들인 고민과 노력의 산물이다. 개별 사안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는 것은 그 흔들리지 않는, 확립된 가치관을 기준으로 정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그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는 없지만 기준이 있으니 입장을 달리해도 많이 벗어나지 않고, 그러다 보니 변명도 어느 정도는 남들이 보기에 이해가 가게 만든다. 그게 실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신념은 없고, 위정자에 따라 입장이 완전히 바뀌니 준비를 할 수가 없다. 외교부는 자타가 공인하는 수재들의 집단이지만, 앞뒤가 완전히 다른데 무슨 재주로 논리를 만들겠나. 사실 외교부도 불쌍하다.”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 참여 같은 것을 말하는 건가. “하든 말든 일관돼야지, 했다가 안 했다가 하면 어떻게 하나. 더군다나 우리 문제인데. 얼마 전 있었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인권 침해 규탄 결의안에 불참한 것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인권의 뜻이 뭔지 궁금하다. 그냥 정치적 수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창피한 말이지만, 우리 생각과 달리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인권을 중시하는 나라라는 신뢰를 못 받고 있다. 탈북어민 강제 북송 같은 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다.” ―문재인 정부는 도저히 받을 수 없는 흉악범들이라 추방했다고 했다. “설사 흉악범일지라도 돌려보냈을 때 박해받을 게 분명하면 안 보내는 게 국제인권법상 기본 원칙이다. 백번 양보해 흉악범이라 돌려보낸다고 해도, 정말 흉악범인지 절차를 거쳐 면밀하게 조사했어야 했다. 그런데 며칠 만에 보냈다.” ※2019년 11월 2일 탈북 어민 2명이 해군에 나포됐다. 이들은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정부는 같은 달 5일 북측에 추방 통보를 한 뒤 7일 인계했다. 이들은 고문 끝에 참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왜 자칭 진보라는 정부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박근혜 정부 시절 내가 주로 진보 진영에서 인권 운동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북한 인권 평화 모임’이란 걸 만들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잘못했던 것도 반성하고, 제대로 된 북한 인권 운동을 하자는 취지였다.” (‘제대로 된’이라니?) “앞서도 말했지만 인권 정책은 원칙을 확립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졌다. 보수도 진보도 북한 인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 이런 생각에 공감하고 그렇게 돼야 한다고 했던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에 많이 참여했다.” (결과를 보면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물어봤더니… 북한 인권 문제는 건드리지 말라는 분위기라 할 수 없다고 하더라.”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얼마 전 영화 ‘담보’ ‘하모니’를 만든 강대규 감독을 만났습니다. 그는 ‘해운대’ 조감독, ‘히말라야’ ‘공조’ 각색 등을 맡았던 충무로의 차세대 유망주지요. 강 감독을 만난 이유는 창작자의 정당한 보상 문제에 대해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창작자가 정당한 보상(저작권료)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8월 말 ‘천만 감독’ 등 국내 영화감독 200여명이 국회에 모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그런데 관련 법 개정이 가시화되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자 등 콘텐츠를 송출하는 최종 플랫폼 산업계의 반대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법으로 저작권료를 보장하면 △사적 계약의 자유가 침해되고 △저작물 권리자와 이용자 간 균형 발전이 저해되며 △복잡한 권리 제도로 인해 오히려 영상 콘텐츠 유통도 위축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감독·작가에게만 저작권료를 챙겨준다면 영화에 참여한 다른 직군과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얼핏 그럴듯해 보입니다만, 대부분의 감독이 작품 계약 시 완전 ‘을’ 입장이라는 걸 생각하면 ‘사적 계약의 자유’와 ‘균형 발전’ 운운은 ‘갑’의 입장을 대변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부분의 감독이 평생 만드는 상업영화가 5편 미만이라는 게 그 반증이지요. 평생 기회가 5번도 채 안 오는 감독들이 조건을 따져가며 계약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계약의 자유라니요. 이런저런 이유를 말하지만 결국 최종 플랫폼 산업계가 법 개정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작권법이 개정되면 콘텐츠의 복제·배포·방송·전송 등의 행위로 발생한 수익 중 일부를 창작자에게 지급해야 하니까요. 예를 들어 넷플릭스 같은 OTT 사업자는 저작권을 가진 제작사나 투자사에서 영상 콘텐츠를 사와 방송합니다. 방송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은 OTT 몫이었죠. 그런데 법이 개정되면 사 오는 비용과 별개로 이후에 방송·배포 등으로 발생한 수익 중에서 일부를 창작자에게 지급해야 합니다. OTT 입장에서는 손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그런데 저는 오히려 법이 개정돼 창작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이 지급되는 게 길게 보면 OTT 등 최종 플랫폼 산업계가 더 많은 돈을 버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넷플릭스나 디즈니+, 티빙 등 국내외 OTT에 볼 게 없으면 장사가 되겠습니까? 볼거리를 만드는 원천은 감독·작가 등 창작자들이죠. 국내 영화감독들의 연 평균 소득이 2000만원이 안 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창작자들이 모두 고흐나 밀레도 아닌데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어떻게 좋은 작품을 만들겠습니까. 전에도 언급했지만 ‘범죄도시’의 강윤성 감독은 첫 번째 상업 영화가 무산된 후 두 번째를 찍는 데 17년이 걸렸습니다. 그 작품이 ‘범죄도시’죠. 그 기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강 감독은 지금도 영화를 지망하는 청년들에게 “꿈에 목숨까지 걸지는 않았으면 한다”라고 조언한다더군요. 당장은 안 주던 돈을 줘야 하니 OTT들로서는 수익이 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부들도 아직 어리거나 산란기 물고기는 바다에 놔 줍니다. 물고기가 없으면 어부들도 살 수 없으니까요. 저는 정당한 보상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면 OTT 사업자들은 당연히 돈을 많이 법니다. 그렇다면 OTT 사업자들이 창작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주는 것은 손실이 아니라 자기 밭에 씨를 뿌리는, 투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로 인해 1000억원 시장을 10조원 시장으로 만든다면, 오늘 지출한 적은 돈과는 비교할 수 없을 큰 이득이 생길 것입니다. 그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닐는지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최근 6·25전쟁 때 세운 무공으로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까지 받은 노병들의 국립현충원 안장이 거부됐다. 현행 국립묘지법이 국내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만 대상으로 하기 때문.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자 국가보훈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언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6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박동하 옹(94·예비역 하사)은 “60여 년 동안 국방부, 육군본부 등에 전쟁 때 세운 무공을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민원 접수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왜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까. “우리 육군에 기록이 없다는 거지요. 제가 1951년 경기 양평 ‘지평리 전투’, 강원 양구 ‘단장의 능선 전투’ 등에서 잘 싸웠다고 전쟁 중에 프랑스로부터 동성십자훈장 두 개를 받았어요. 그걸 인정받고 싶어서 전역하고 1960년대부터 국방부, 육군본부 등에 민원을 넣었지요. 그런데, 대부분 접수도 제대로 안 해줬어요. 어쩌다 받아줘도 우리 측 기록이 없어 인정해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당연하지요. 전 프랑스 대대에 배속돼서 싸웠으니까 전투 기록은 프랑스에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프랑스 기록을 제출하면 될 텐데요. “왜 안 했겠어요. 그런데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사실증명까지 보냈는데도 인정해주지 않더라고요. 제가 프랑스군에 배속돼 싸웠을 뿐이지, 프랑스를 위해 싸운 게 아니잖아요. 외국군에 소속돼 치른 전투는 조국을 위해 싸운 게 아닌가요? 어떻게 보면 프랑스가 대신 기록하고 훈장을 준 것뿐인데…. 프랑스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주는데 정작 내 나라는 60년 동안이나 모른 척했으니….”※ 레지옹 도뇌르 훈장은 1∼5등급까지 있고, 슈발리에는 5등급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조앤 롤링, 삼총사의 알렉상드르 뒤마, 드레퓌스 사건의 알프레드 드레퓌스, 지휘자 정명훈 등이 슈발리에를 받았다. ―지평리 전투가 6·25전쟁 10대 전투 중 하나일 정도로 중요한 전투였더군요. “당시 중공군 개입으로 서울을 다시 잃었어요. 중공군은 5만 명 정도였는데 우리는 국군, 미군, 프랑스군 다 합쳐 5000여 명에 불과했지요. 사흘간 밤이 되면 중공군이 꽹과리와 나팔을 불며 쳐들어오는데, 마치 시커멓고 커다란 파도가 끝없이 몰아닥치는 것 같았어요.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죠. 그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더라고요. 정신없이 총을 쏘고 백병전을 벌였는데… 지평리 전투는 패전을 거듭하던 유엔군이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물리친 최초의 전투였어요. 이 승리로 서울을 재탈환할 수 있었고요.” ―프랑스 부대에는 어떻게 배속된 겁니까. “제 고향이 평안남도 순천인데 전쟁 터지고 공산당을 피해 서울로 내려왔어요. 집안이 소지주 정도 됐는데, 계속 남아 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1950년 12월 국군에 입대했고, 두 달 정도 지난 후 미 2사단 23연대 프랑스 대대에 배속됐지요. 프랑스군으로만 대대 병력을 모두 채울 수 없었기 때문에 나머지는 한국군을 차출했다고 해요. 한국군은 140명 정도 됐던 것 같아요.” (영어 소통이 가능해서 뽑혔다고 하던데요.) “그 정도는 아니고, 중졸 이상 중에 ‘예스’ ‘노’ 정도만 할 줄 알면 뽑았어요. 부대 안에서는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는데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은 없었어요. 프랑스군이 대단했던 게 미군 연대장이나 사단장도 프랑스 대대장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어요. 맥아더 장군과도 맞짱을 뜨시던 분이니까요.” ―맥아더 장군은 유엔군 사령관인데 대대장이 어떻게…. “우리 대대장이 6·25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중장에서 중령으로 자진 강등한 랄프 몽클라르 장군이었거든요.” (자진 강등요?) “우리 국민 중에 그분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가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유엔군 파병이 결정됐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잖아요. 프랑스도 병력을 보낼 여력이 없었대요. 그래서 프랑스 정부가 시찰단만 보내려고 했는데 ‘몽’ 장군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하고, 몸소 전국을 돌며 모병해 참전했어요.” ―프랑스군은 전부 자원병이었습니까. “네, 모두 자원 입대자들이었어요. 그런데 편제상 대대는 중령이 지휘하기 때문에 중장이 맡는 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몽’ 장군이 ‘계급은 중요하지 않다’며 중령으로 자진 강등해 한국에 왔지요. 곧 태어날 자식에게 자유와 평화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다며…. 그때 그분이 58세였어요. 아내는 만삭이었고요. 1, 2차 세계대전을 다 겪은 분이에요. 전쟁이라면 지긋지긋했겠지요. 더군다나 어린 아들과 만삭의 아내를 두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는 그런 분들의 희생으로 지켜졌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랄프 몽클라르(1892∼1964). 본명은 라울 샤를 마그랭베르느레. 몽클라르는 2차대전 때 나치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사용한 가명이다. ―종전 후에도 프랑스와 계속 교류를 가졌더군요. “그 사람들이 참 대단한 게, 외국인이지만 프랑스 부대에서 함께 싸웠기 때문에 저희들을 프랑스 군인과 똑같이 대해줬어요. 1960년대 중반쯤인 것 같은데… 주한 프랑스대사관 무관이 저를 수소문해서 연락을 해 오더라고요.” (대사관 무관이 왜….) “보니까 전쟁 때 함께 싸운 소대장이었어요. 참전했던 장교들이 종종 무관으로 오더라고요. 올 때마다 연락을 하고,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6·25전쟁 참전 관련 행사를 하면 늘 불러줬지요. 프랑스에서 높은 분들이 올 때도 꼭 초청해주고요. 전쟁에서 보여준 제 무공 때문에 프랑스군 위상이 높아져 감사하다면서요.” (실례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2018년 프랑스 외교부 장관이 왔을 때 판문점에 동행한 것도 그런 차원입니까.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부 장관이었는데, 이번에 함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박문준 씨와 함께 갔지요. 2019년 방데…뭐라는 전함(프랑스 태평양함대 소속 방데미에르 전함)이 인천항에 왔을 때도 초청받아 갔고요. 한국과 프랑스 간에 군사적인 행사가 있으면 꼭 부르더라고요. 전에는 제가 버스 타고 갔는데, 지금은 거동이 불편하다 보니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차를 보내줘요.” ―작년 5월 프랑스 국방부가 파리에서 6·25전쟁 참전 대대 전사자 명비 제막식을 가졌는데 한국군 24명도 포함됐더군요. “전쟁 때도 느꼈지만 그 사람들은 우리가 한국군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똑같은 전우로 대해줬어요. 그리고 정말 대단한 게, 지금까지 70여 년 동안 기록을 보존하고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잖아요. 자기 나라 군인도 아니고, 차출된 남의 나라 졸병 명단까지 70년을 보존한다는 게 어떤 국가의 철학, 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육해군 3421명을 파견한 프랑스는 전사자 262명, 부상자 1008명, 실종자 7명이 희생됐다. ―선생님처럼 유엔 참전국에 배속된 한국군이 2만 명이라는데, 우리는 정확한 명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제가 작년에 프랑스 최고 무공훈장인 ‘군사훈장’, 올해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는데, 없던 무공을 갑자기 세워서 받은 게 아니잖아요. 전쟁 때 프랑스 대대에서 무공훈장 받은 기록이 남아 있어서 세월이 지나 받게 된 거죠. 이번에 제 문제로 논란이 되니까 국가보훈처가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유엔 참전국 훈장을 받은 사람들의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겠다고 했는데, 다행이기는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은 거죠.” (혹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이 부상도 좀 있습니까? 최고 훈장인데.) “하하하, 별거 없더라고요. 우리 돈으로 월 6000∼7000원 정도 나오는데,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게 관행이라고 해서 그렇게 했어요. 돈이 아니라 명예지요.” ―실례지만, 왜 그토록 무공훈장을 인정받고 싶었던 겁니까. “제 나이 아흔넷인데 뭘 더 바라겠어요. 단지 목숨을 걸고, 젊음을 바쳐 나라를 지켰다는 걸 내 나라에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뿐이죠. 현충원 안장 요청도 그런 차원이고요. 훈장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프랑스 대대에서 함께 싸웠던 140여 명의 한국군 전우들은 이제 거의 다 죽었어요. 훈장을 받은 저도 인정을 못 받는데, 그들은 누가 기억을 해주나요. 바다 건너 프랑스에서는 기억을 해주는데, 정작 조국에서는 아무도 모른다면… 우리는 누굴 위해 싸운 건가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범죄도시’의 강윤성 감독과 저작권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가 나간 뒤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처음부터 감독들이 제작사와 계약을 잘 맺으면 된다는 것이죠. 정말로 영화를 잘 만들 자신이 있다면, 계약금도 충분히 받고, 다음에 발생할 흥행도 고려해 계약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정당한 보상’ 요구도 애초에 창작자들이 저작권을 제작사에 안 넘겼다면 벌어지지 않을 문제라는 것이죠. 물론 그렇습니다. 스스로 계약을 불리하게 해놓고, 나중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좀 이상해 보일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해서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오징어게임처럼 초대박 작품을 만든 감독이 아닌 한 제작사와 대등한 계약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한국영화감독조합에 따르면 국내 영화감독들이 평생 제작사와 제대로 계약을 맺고 찍는 상업영화가 평균 5편이 안 된다고 합니다. 30, 40대 감독들은 3편이 안 되고요. 평균 수치니, 유명감독이 아닌 경우에는 이보다 훨씬 적겠지요. 작품 수가 이렇게 적은 것은 결국 제작사, 투자사를 잡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만들 기회가 적은 감독들에게 애초부터 당신이 계약을 잘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말입니다. 누군들 그렇게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취업이 절실한 청년들에게 회사 재무 상태, 복지, 임금, 근무 환경 등을 다 따져보고 마음에 안 차면 가지 말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대부분의 감독이 추후 발생하는 수익은 고사하고, 계약금도 많이 요구하지 못하는 데는 이런 현실도 있다고 합니다. 한정된 제작비에서 감독 계약금을 올려줄 경우 다른 부문, 예를 들어 컴퓨터 그래픽이나 음악 같은 곳에 쓸 돈이 줄어든다는 것이죠. 영화를 찍을 기회도 적은 감독들이, 간신히 찍게 된 작품의 질을 떨어트리면서까지 자기 계약금을 올려 받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기사에서 저는 창작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생존권’ 또는 ‘최저생계비’라고 했습니다. 어느 산업이든 발전하려면 인프라가 튼튼해야 합니다. 창작자들이 영화 분야의 인프라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데 작품 활동은 물론이고, 생계조차 불투명하다면 누가 영화 산업에 뛰어들겠습니까. 강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회에서 저작권법이 개정돼 외국에서 저작권료를 받게 되면 저작권 관리 단체가 그중 일부를 적립해 창작자들을 위해 쓸 계획이라고요. 세계의 저작권 관리단체들은 저작권료 수입액의 일정 비율을 창작자들을 위한 생활 및 의료 지원금, 복지 등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야나 비슷하겠지만 창작 활동은 직업 안정성이 굉장히 떨어지기 때문에 꾸준히 일한다는 게 쉽지 않지요. 마음이 불안한데 어떻게 좋은 작품이 나오겠습니까. 적더라도 자기 작품으로 인해 꾸준히 수입이 생기거나, 혹은 저작권료 수입을 통한 기금으로 작품 활동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K 콘텐츠가 양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비교가 적당한지 모르겠습니다만, 과거 한국 축구가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대패하고 나면 유소년 축구부터 육성해야 한다, 잔디 구장이 필요하다, 체계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인프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다른 분야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유독 영화 분야는 우리 작품이 아카데미상, 에미상을 탈 때마다 K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얘기하면서도 그 뒤에 가려진 잘못된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적은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은 땀으로 만들어야지, 피로 만들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최근 범죄도시의 강윤성,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한산의 김한민 감독 등 국내 영화감독 200여명이 국회에 모였습니다. 우리 영화가 전 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정작 감독, 작가 등 창작자들에게는 단 한 푼의 보상도 없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래서 왜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는지 묻기 위해 강 감독을 인터뷰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유는… 외국에서 주기 싫어서 안 주는 게 아니라, 국내법에 받을 근거가 없기 때문에 못 받는 것이었습니다.설명에 앞서 지금 감독 등 창작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보상’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낯선 개념이라 영화계 안에서도 저작권료와 혼재해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난 기사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위해 한국영화감독조합의 양해를 얻어 ‘저작권료’라고 표현했지요.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정당한 보상’은 저작권자에게 지급하는 저작권료나, 연출료, 인센티브와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작품의 이용 횟수에 비례해 창작자에게 일정 보상을 지급하자는 것이죠.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특약을 맺지 않는 한 법적으로 제작사가 저작권을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저작권료는 저작권을 가진 제작사나, 제작사로부터 저작권을 산 투자사가 가져가지요. 계약금은 말 그대로 계약금일 뿐입니다. 계약금을 받은 후 작품이 이후 어떤 수익을 내도 창작자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는 것은 이런 구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영화 같은 영상저작물은 만들어진 후 수십 년이 지나도 재상영 등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명절 때마다 방송에서 단골로 트는 영화들이 그런 경우죠. 방송사는 이 영화의 방영권을 저작권을 가진 제작사나 투자사로부터 사 옵니다. 방송사는 영화를 틀고 광고 등으로 이익을 얻고요. 제작사 또는 투자사, 방송사 모두 이 영화로 인한 이익을 얻는 것이죠. 그런데, 앞서 말한 이런 구조 때문에 정작 이 영화를 만든 감독과 작가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통 감독들이 시나리오 하나를 완성하는데 보통 2~3년, 더 긴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스트레스로 이빨 6개가 빠졌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죠. 강 감독도 범죄도시 투자자를 못 구해 3년이나 촬영을 못 했다고 합니다.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영화 ‘타이타닉’에 출연했던 5살 꼬마는 단 한 줄의 대사밖에 없었는데 타이타닉이 재상영을 거듭하면서 지금까지 25년째 분기별로 200~300달러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타이타닉이 우리 영화였다면, 25년째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을 만든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구매담당자가 사 온 영화를 틀기만 한 방송사는 25년째 돈을 번 셈이죠. 이거 좀 너무한 거 아닌가요?이런 주장을 하면, 감독들만 잘 먹고 잘살려고, 자신들 배만 불리려고 하려는 것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강 감독이 인터뷰 중에 제게 물은 게 있습니다. 감독들이 제작사와 제대로 계약을 맺고 찍는 영화(상업영화 기준)가 평생 몇 편이나 될 것 같으냐고요. 저도 답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영화감독조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5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30, 40대 감독들은 평균 3편이 안 되고요. 물론 유명 감독들은 다릅니다만 그들도 작품이 터지기 전까지는 마찬가지입니다. 강 감독도 30살 때 상업영화를 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무산된 후 데뷔에 17년이나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 영화가 범죄도시죠. 그런데 상업영화 기준으로 신인급 감독의 계약금은 500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2~3년에 걸쳐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제작사와 계약을 맺을 테니 연봉으로 치면 2000만원이 안 되는 셈이죠. 그나마 한 번에 주지 않고 제작사와 계약할 때 절반, 투자사를 찾으면 나머지 절반을 주는 게 관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투자사를 못 찾아 영화가 엎어지는 게 비일비재하지요. 범죄도시조차 3년 동안 투자사를 못 찾았으니까요. 감독들이 말하는 ‘정당한 보상’은 배를 불리자는 게 아닙니다. 그들에게 이런 표현은 실례입니다만… 저는 ‘생존권’ 또는 ‘최저생계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가 범죄도시나 오징어게임, 기생충 같은 작품에 뿌듯해한다면,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죠. 영화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 분야가 다 마찬가지지만 노력과 성과의 결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원리입니다. 범죄가 나쁜 것은 정당한 노력 없이 남의 것을 가로채거나, 적은 노력으로 큰 이득을 보려 하기 때문이지요. 이빨이 빠질 정도로 고생해 만든 결과물을 만든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수십 년 동안 돈과 유통망을 가진 사람들만 이득을 본다면… 그게 범죄도시 아닌가요?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최근 강윤성(‘범죄도시’), 황동혁(‘오징어게임’), 김한민(‘한산’) 등 국내 영화감독 200여 명이 국회에 모였다. 우리 영화가 아카데미 등 국제 영화상을 석권하고 있는데도 정작 감독, 작가 등 창작자들에게는 단 한 푼의 저작권료도 돌아오지 않는 현실을 말하기 위해서다. ‘범죄도시’(2017년 개봉)의 강 감독은 “외국에서 우리 작품이 상영돼도, 국내법이 없기 때문에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올해 흥행작인 ‘범죄도시 2’에서 기획을 맡았다.》 ―국내법이 없어 못 받는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유럽과 남미에는, 예를 들어 방송사가 ‘범죄도시’를 틀면 작가와 감독 등 창작자에게 수익의 일부(저작권료)를 지급해야 하는 법이 있어요.” (받으면 되지 않습니까.) “외국에서 저작권료를 받으려면, 우리도 국내에서 방송한 외국 작품에 대해 줘야 해요. 자신들은 받을 수 없는 곳에 저작권료를 보내면 불법 송금으로 처벌하는 나라도 있거든요.” ―주는 법이 없어 못 받는다는 거군요. “저작권 시장에 아예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는 거죠. 오죽하면 외국에서 ‘돈은 쌓이고 있는데, 주고 싶어도 한국이 저작권 시장에 참여하지 않아 못 준다’고 하겠어요.” (쌓이고 있다는 게….) “그 나라 법에 따라 한국 작품 저작권료를 모아 놓고는 있으니까요. 우리가 법만 만들면 가져올 수 있는 거죠.” (우리가 저작권 보호를 위한 베른협약에 가입한 게 1996년인데 왜 아직도 관련 법이 없습니까.) “음악 분야와 달리 영화는 창작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겠다는 생각을 한 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저작권법이 영화감독을 사실상 창작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탓도 있고요.” ―영화감독이 왜 창작자가 아닙니까. “법이 별도의 특약이 없으면 제작사가 모든 저작권을 갖는 것으로 하고 있거든요. 창작자지만 권리는 없는 거죠. 그래서 법으로 창작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 안 해 온 것 같아요.” (문화체육관광부나 영화진흥위원회는 뭘 하고 있던 건가요.) “모르겠어요. (법 개정) 얘기를 하면 복잡하다, 어렵다고만 하고….” ―특약이 없는 한 제작사가 모든 저작권을 갖는다는 건 불합리한 것 같은데…. “영화에는 감독 배우 작가 스태프 등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또 모두 어느 정도 자기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이걸 구분하는 게 대단히 복잡하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제작사가 모든 권리를 갖는 걸로 했는데, 그게 굉장히 오래되다 보니…. 하지만 이제는 카페에서 노래 하나를 틀어도 정당한 보상을 받는 시대니까, 영화도 바꾸자는 거죠.” ―어떻게 바꾸자는 겁니까. “창작자들이 저작권을 양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그 후에 TV 재방영, 넷플릭스 유튜브 판매 등으로 발생한 부가적인 수익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법에 넣자는 거죠. 지금까지는 저작권법상 권리가 없기 때문에 작품이 흥행에 성공해도 계약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애초에 특약을 맺거나 계약을 잘해서 많이 받으면 안 됩니까. “창작자들이 (제작사와) 계약을 잘 맺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우리나라 감독들이 평생 평균 몇 편이나 제작사와 제대로 계약을 맺고 찍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10여 편?) “제작사, 투자자가 갖춰진 상업 영화의 경우 평균 5편 이하예요.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 실태조사를 했는데 30, 40대 감독들은 평균 3편이 되지 않고요. 기회 자체가 없는 감독들에게 계약 관행을 바꾸라는 건 비현실적인 얘기죠. ‘범죄도시’도 투자자를 찾지 못해 3년이나 촬영을 못했거든요.” ―왜 투자를 안 한 겁니까. “형사가 주먹들 잡는 얘기는 너무 뻔하다고….” (투자자를 못 구하면 어떻게 됩니까.) “영화가 엎어지는 거죠. 우리나라 감독은 보통 시나리오도 같이 쓰는데, 원작이 있는 경우도 각색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보통 2∼3년. 더 긴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영화가 엎어지면 그 시간이 다 날아가는 거예요.” ―17년 만에 데뷔했다는데 맞습니까. “서른에 상업영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무산됐어요. 그 뒤로 ‘범죄도시’를 찍을 때까지 17년 동안 기회가 없었지요. 30대 때는 그래도 견딜 수 있었는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정말 힘들고 서럽더라고요. 오죽하면 제가 영화를 지망하는 청년들에게 ‘꿈에 목숨까지 걸지는 말았으면 한다’고 말하겠어요. 한 편 찍을 기회가 절실한 감독들이 보상과 특약 얘기를 한다는 건… 꿈같은 얘기죠.” ―제작사는 저작권법 개정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 부분이 오해가 없어야 하는데, 제작사나 투자자 수익을 나눠 달라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면, 음악 분야는 방송사가 음반을 사용하면 가수나 연주자 등 실연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요. 그것처럼 영화도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에서 방영했을 때 발생한 수익 중 일부를 창작자에게 주자는 거죠. 그러면 투자자나 제작사에 부담도 안 될 테고. 이런 상태가 개선되지 않으면 지금은 ‘오징어게임’ ‘수리남’ 등 K콘텐츠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지만 얼마 못 가 영화 산업 기반이 고사될 수 있어요.” ―역대 어느 때보다 잘나가고 있는데 고사라니요. “우리 영화감독들 평균 연봉이 2000만 원이 안 돼요.” (계약금이 그 정도입니까?) “상업 영화의 경우 신인급 감독이 한 5000만 원 정도 받아요. 그런데 대체로 계약할 때 일부 주고, 투자가 이뤄지면 나머지를 줘요. 투자자를 못 찾으면… 나머지 돈은 없는 거죠. 엎어지는 영화가 많다고 했잖아요? 오죽하면 감독조합에서 실태조사를 해보니 감독이 셋 중 하나(30.2%)가 작년에 작품으로 번 돈이 0원이겠어요.”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많은 창작자들이 투잡, 스리잡을 뛰고 있어요. 당연히 창작할 시간과 에너지가 줄지요. 직업 안정성이 떨어지면 새로운 인재는 들어오지 않고, 기존 인재들은 해외로 빠져나갈 테고요. 이대로라면 지금의 화려한 성과도 1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상업적으로 성공한 감독들은 그래도 괜찮아요. 문제는 후배·신인 감독들이죠.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자기 작품이 가치를 인정받고, 적더라도 꾸준한 수입이 생긴다면 훨씬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영화 ‘타이타닉’에서 딱 한 마디 했던 아역배우는 25년째 출연료를 받고 있다던데요. “타이타닉이 1997년에 개봉했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요즘은 그래도 정산하면서 (흥행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경우가 있긴 한데 개봉 후 몇 번만 정산한다 또는 개봉 뒤 2, 3년까지만 준다 이런 식이에요. 사실 평생 권리를 줘야 되거든요. 음악은 사후 70년까지 권리를 인정해 주잖아요. 명절 때마다 방송사에서 그렇게 틀어서 돈을 벌었으면 정당한 보상은 당연한 건데….”※5세 때 타이타닉에 출연했던 리스 톰프슨(30)은 극중 이름도 없었고, 대사는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딱 한 마디였다. 하지만 타이타닉이 재상영을 거듭하면서 지금까지 25년 동안 분기별로 200∼300달러를 받고 있다고 한다. ―감독 계약금은 어떻게 정합니까. “대체로 제작사에서 전에 계약했던 곳에 ‘그때 얼마 줬어?’ 하고 물어서 정하지요. 상업영화 신인감독이 5000만 원 정도라고 해도 이게 시나리오 작업에 2년 정도 걸리니까 결코 많은 게 아니에요.” (너무 짠데요.) “투자자들도 다 이 분야에 오래 있던,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라 갑자기 팍 올리기가 쉽지 않아요. 그분들이 알고 있는 통상적인 가격이 있거든요.” (‘범죄도시’도 가능성을 못 알아봤다면서요.) “하하하. 시나리오, 연출, 컴퓨터그래픽 등 다 정해진 선이 있어서 내 것만 올려달라고 하기는 힘들어요. 영화 시장은 늘 돈이 모자라거든요.” ―순제작비만 200억, 300억 원인 작품도 많은데 늘 돈이 없다니요. “2억 원짜리 영화도 투자자를 찾기 힘든 게 우리 현실이에요. ‘제작비 200억 원’ 이러면 마치 아낌없이 돈을 퍼부은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400억, 500억 원 들어갈 걸 깎고 또 깎고 줄여서 만든 거예요. 그러니 여유가 없지요. 화려해 보이지만 그림자도 짙은 게 우리 영화계 현실이에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올해만큼 국내 수학계에 경사가 거듭된 해가 또 있을까요. 허준이 미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 수상, 수학 국가 등급 최고 그룹 승격,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종합 2위 등 그야말로 뉴스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 수학 교육은 수포자(수학 포기자)란 말이 나올 정도로 붕괴했고, 대학에서 수업이 안 될 정도라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요. 하도 궁금해서 최근 금종해 국제수학연맹(IMU) 집행위원을 인터뷰했습니다. IMU는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여하는 곳이지요. 그는 고등과학원 교수이자 대한수학회장이기도 합니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배운다는 분수 문제를 소개합니다.길이가 45cm인 색 테이프를 영훈이와 지연이가 나누어 가지려고 합니다. 지연이가 가져갈 수 있는 색 테이프는 몇 cm일까요?영훈= 45cm의 5/9만큼 가져갈게.지연=그러면 나는 나머지를 가져갈게.여러분은 이 문제가 쉽게 이해가 되는지요. 어른도 잠시 생각을 해야 하는데 분수가 뭔지 모르고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2019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포자의 첫 갈림길이 초등학교 3학년 ‘분수’에서 시작된다고 발표했습니다.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이렇게 어렵게 가르치는 걸까요. 그리고 학생들이 어렵게 느낀다면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상식적인 답은 쉽게 가르칠 수 있다면 가능한 한 쉽게 가르쳐야 하고, 그 방법을 찾아서 제공하는 게 교육자와 국가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그 노력을 다한 뒤에도 남는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학생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어렵지만 꼭 필요한 것이니 배워야 한다고.그런데 우리 현실은 쉬운 걸 쓸데없이 꼬아서 어렵게 가르치고, 어렵다고 하니 안 배워도 된다며 수능 출제범위에서 빼버린다고 합니다. 2009 개정 교육 과정에서는 행렬, 2015 개정 교육 과정에서는 공간벡터가 삭제된 게 그런 이유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돼 잘 몰랐습니다만 요즘 수능 수학은 고2, 고3 1학기 범위에서만 출제할 수 있다는군요. 금 교수는 “하도 어렵다고 아우성치니 학습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인데 덕분에 대학에서 수업이 안 될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당연한 결과겠지요. 입시에 안 들어가는 내용을 공부할 학생이 어디 있겠습니까.금 교수는 우리가 ‘수포자’라는 정체불명의 부정적인 용어를 써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수포자’라는 기준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기초학력이 미달하는 학생들은 있습니다. 그러면 ‘포기자’인가요? 이 학생들이 “더 이상 나는 공부고 뭐고 아무것도 안 하고 살겠다”라고 천명이라도 했습니까. 수학을 어렵게 느끼고 싫어하는 학생도 분명히 있습니다. 싫어한다고 다 포기자인가요? 공부가 좋아서 하는 학생은 또 몇이나 되겠습니까. ‘싫다’와 ‘포기한다’라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나라 문해력이 문제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금 교수는 “진짜 수학 포기자는 학생들이 아니라 제대로 가르치는 걸 포기한 나라”라고 했습니다. 수학이 어려워서 싫은 건 ‘포기’가 아니라 ‘포비아(공포)’일 뿐이고, 그러면 나라와 교육자들은 학생들이 겁먹지 않고 재미를 느끼며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안 한다는 것이죠. 앞서 말했지만 어려워도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꼭 배워야 한다고 설득도 하고요. 그런 노력은 1도 안 하고 어렵다고 이 내용, 저 내용 빼고, 그래도 어렵다고 하면 ‘수포자’라고 낙인을 찍고, 더 나아가 안 배워도 대학 갈 수 있다고 하는 나라야말로 진짜 ‘수포자’라는 겁니다.이상한 교육 정책이 나올 때마다 근거로 드는 게 어려운 수학이 사교육을 부채질한다는 말입니다. 금 교수는 “수능을 구구단으로만 낸다고 사교육이 없어지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온갖 종류의 구구단 시험 문제가 만들어져서 학원에 다니게 할 거라는 것이죠. 사교육 증가의 본질은 경쟁인데 자꾸 어려운 교육 탓으로 돌리니 입시제도가 누더기가 되고, 결국 수백억 원씩 버는 소위 일타강사들만 양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사교육 기회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학생들을 위해 EBS 수능을 만들고 그 안에서 출제하도록 했지요.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나요. 아무리 출제범위를 줄이고, 문제를 쉽게 내도 사교육이 줄지 않는다는 게 그 반증 아니겠습니까.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왜 학생들이 쉬운 것만 배워야 합니까? 문제는 쉽게 낼 수 있지만 공부는 어려운 것도 배워야지요. 아니면 나라가 안 배워도 평생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던지요. 그러지도 못하면서…. 이건 나라 망하자는 이야기에요.”저는 우리 사회, 교육 당국이 금 교수의 이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뭐가 아쉬워서 이렇게 피를 토하며 걱정하겠습니까.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수학 국가 등급 최고 그룹 승격,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종합 2위. 올해 한국 수학계는 금자탑이라 할 정도로 눈부신 업적을 쌓았다. 하지만 밑바탕이 돼야 할 초중고교 수학교육은 정반대로 ‘수포자(수학 포기자)’를 넘어 ‘수학의 붕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 4년마다 필즈상을 수여하는 국제수학연맹(IMU)의 금종해 집행위원(65·고등과학원 교수·대한수학회장)은 “수포자가 양산된 진짜 이유는 나라가 수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걸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라가 제대로 가르치는 걸 포기했다고요? “수학이 어려워서 싫은 학생들은 늘 있어요. 이건 ‘포기’가 아니라 ‘포비아(공포)’예요. 그러면 나라는, 교육자는 어떻게 해야 해요? 학생들이 겁먹지 않고 재미를 느끼며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제공해야 하잖아요. 어렵지만 필요하기 때문에 꼭 배워야 한다고 설득도 하고…. 진짜 수포자는 학생들이 아니라 수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걸 포기한 나라예요. 수학이 어렵다고 이 내용, 저 내용 빼면서 정작 학교에서는 쓸데없이 어렵게 가르치니까요.” ―어떤 면에서 쓸데없이 어렵다는 겁니까. “초등학교에서 분수를 이렇게 가르쳐요. ‘길이가 45cm인 색 테이프를 영훈이와 지연이가 나누어 가지려고 합니다. 지연이가 가져갈 수 있는 색 테이프는 몇 cm일까요? 영훈=45cm의 5/9만큼 가져갈게. 지연=그러면 나는 나머지를 가져갈게.’ 그리고 45cm 길이의 색 테이프 그림이 있어요. 그림과 대화까지 있다 보니 어떤 건 문제만 한 페이지나 돼요. 풀기도 전에 문제를 보다가 질려버리죠. 이 문제가 머리에 쉽게 들어옵니까?”※2019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포자의 첫 갈림길이 초3 ‘분수’에서 시작된다고 발표했다. ―왜 그렇게 가르치는 건가요. “실생활 소재를 이용해 가르쳐야 한다는 개념을 무리하게 적용한 거죠. 그럴 내용도 있고 아닌 것도 있는데…. 분수 계산은 기능적인 거예요. 45×5/9=25. 먼저 이렇게 가르쳐주고 나중에 원리를 알려줘야 하는데, 거꾸로 원리부터 알려주면 초등학생들이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어렵다고만 느끼지. 자전거를 탈 줄 알면 왜 바퀴가 이렇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기가 쉽잖아요. 그런데 먼저 바퀴가 돌아가는 원리부터 설명하면 애들이 자전거를 타고 싶겠어요? ‘자포자’가 되겠지요.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걸 왜 일부러 어렵게 가르치는지…. 그리고 우리가 수포자처럼 개념도 모호하고 부정적인 말은 함부로 쓰면 안 돼요.” ―개념이 모호하다니요. “기초학력이 미달하는 학생들은 있어요. 그런데 그 외에 설문조사로 ‘수학에 흥미가 없느냐’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하느냐’를 물어 그렇다고 답한 학생들까지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잖아요. 일정 점수 이상 문제를 못 풀었다고 왜 ‘포기자’라는 낙인을 찍나요? 풀고 싶은데 아직 몰라서, 조금 어려워서 못 풀 수도 있잖아요. 학생이니까, 조금 늦더라도 더 배워서 풀면 되지요. 수포자라는 용어를 쓰는 건… 오히려 수포자를 조장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일 수 있어요. 그리고 생각을 바꿔야 해요. 왜 학생들이 쉬운 것만 배워야 합니까? 문제는 쉽게 낼 수 있어요. 하지만 공부는 어려운 것도 배워야지요. 우리 수학 수준을 낮춘다고 다른 나라도 낮추나요? 이건 나라 망하자는 거예요.” ―어려운 수학이 사교육 증가를 부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계속 쉽고 부담이 작게 가르쳐 왔지만 사교육은 되레 늘었잖아요. 본질은 경쟁에 있지 쉽고 어렵고에 있는 게 아닌데…. 입시를 구구단으로만 치르면 사교육이 없어지겠습니까? 온갖 종류의 구구단 시험 문제가 만들어져서 학원에 다니게 하겠죠. 입시제도를 자꾸 누더기로 만들다 보니 결국 몇 백억 원씩 버는 소위 ‘일타’ 강사들만 탄생시켰어요.” ―그러다 보니 교육도 점점 더 양극화가 되고 있습니다. “서민층 자녀들은 있는 집 애들만큼 사교육을 받기 어려우니까요. 그러니까 또 EBS 교재를 만들어 그 안에서 출제하게 하고… 코미디죠. 대학도 문제가 있어요. 학생들 눈치만 보고….” ―눈치요? “전공별로 모르면 안 되는 과목들이 있어요. 이런 과목들을 배우지 않으면 우리 대학은 입학할 수 없다고 해야 학생들이 공부를 할 텐데 그런 말을 안 하죠. 애들이 지원하지 않는다고. 서울대도 못하니 어느 대학이 할 수 있겠어요. 대한수학회장 임기 4년(재임) 내내 가장 많이 말한 게 우리 수학 교육이었어요. 그게 주 임무가 아닌데….” ―그럼 누가 그런 얘기를 합니까. “대한수학회장의 임무는 허준이 교수 같은 연구자들을 키우고, 국가 수학 수준을 높이는 거지 초중고교 수학 교육과정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교육이 망가져 가는데도 말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나서게 된 거지요. 교육은 정치 이슈가 되면 안 돼요. 보세요.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공부를 잘 못하는 자녀를 데리고 있습니다.” (잘하는 학생은 소수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공부를 못해도 당신 아이가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 어려운 거 안 배워도 대학 갈 수 있다’고 하면 학부모들은 솔깃해질 수밖에요. ‘이 과목은 우리 애가 어려워서 못하는데 안 해도 된다고? 그럼 좋은 대학 갈 수 있겠네’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프로파간다(propaganda·선동 선전)죠. 고1, 고3 2학기 범위에서는 수능 출제를 못하게 하는 게 말이 됩니까.” ―3년 동안 배운 것의 절반에서만 문제를 낸다는 건가요. “하도 ‘수학은 어렵다’고 하니 학습부담을 줄여준다는 건데… 되레 수학 교육만 엉망이 됐습니다. 2009 개정교육과정에서는 행렬,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는 공간벡터가 삭제됐지요. 수학계가 아우성을 치니 2022 개정교육과정에 행렬이 다시 들어갔지만 그나마 어려운 부분은 다 빠지고 기본 개념만 가르치는 정도죠.” ―행렬을 다시 넣은 이유는 뭡니까. “행렬을 모르면 인공지능(AI), 빅데이터를 할 수가 없어요.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요.”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붙은 게 2016년인데 어떻게 이제야….) “그런 게 한두 개가 아니에요. 기하학은 수능 출제범위에서 퇴출됐다가 1년 만인 2022학년도 수능에 선택과목으로 들어갔어요.”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받은 분야 아닌가요.) “대수기하학을 바탕으로 조합론의 오래된 난제를 다수 해결하고 조합 대수기하학의 새 지평을 연 공로를 인정받아 받았지요.” ―올해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표단(6명)이 모두 서울과학고 학생들이더군요. 우연인가요. “다단계 선발시험으로 뽑는데 전에는 일반고, 지방 소재 고교 학생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올림피아드 인기가 높아지니까 중학교 때부터 3∼5년씩 전문적으로 사교육을 받으면서 준비하는 학생들이 생겼지요. 집에서 지원해줄 여력이 안 되면 점차 선발되기 쉽지 않은 구조가 된 거예요. 서울과학고 학생들을 뽑은 게 아니라, 1∼6등이 모두 서울과학고인 거죠. 저는 규정을 바꿔서 한 학교 학생들로 모두 채우는 걸 바꾸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아요.”※7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제63회 대회에서 우리 대표단은 금3, 은3으로 종합 2위를 차지했다. ―대한수학회가 선발을 주관하지 않습니까? 회장이신데…. “과거 해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항의가 심했어요. 오랫동안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은 데다 한 번 메달을 땄는데도 두 번, 세 번 또 나가서 따려고 하는 애들도 있으니까요.” (다른 나라는 어떻게 선발합니까.) “대부분 성적순으로 뽑지요. 수학이 그냥 좋고 잘해서 두 번 이상 나가는 학생도 있기는 해요. 하지만 2000년 제가 채점위원장일 때 러시아 단장에게서 들었는데 러시아는 2명 정도는 성적순이 아닌 단장 재량으로 발탁한다고 하더군요.” ―발탁은 어떤 기준으로 합니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지 보다 이 학생이 앞으로 훌륭한 수학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본다더군요. 그래서 단장이 선발한 학생들은 실제 대회 성적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했어요. (우리 학생들도)한 번 재능을 확인했으면 귀한 시간을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데 쓰지 말고 고급 수학이나 인문학 같은 다른 걸 공부하면 더 좋을 텐데….”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심심(甚深)하다’(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의 의미를 놓고 문해력 저하 논란이 일었다. ‘심심한 사과’의 ‘심심’을 ‘하는 일 없이 지루하고 재미없음’으로 이해한 누리꾼들이 공지 글을 올린 업체에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항의를 한 것. 댓글 하나에서 시작된 이 문제 제기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번졌다. 서영아 국가문해교육센터장은 “문해력은 단순히 어떤 단어의 뜻을 알고 모르는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닌데 최근의 문해력 논란은 다소 초점이 어긋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심심하다 외에도 사흘, 금일(今日) 등의 뜻을 모른다고 문해력 논란이 일지 않았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성인 문해 능력 조사’는 문해력을 ‘가정, 일터 등 일상생활에서 문서화된 정보를 이해·활용하고, 지식과 잠재력을 넓힐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성인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말하는데, 단순히 어떤 특정한 단어를 알고 모르는 걸 가지고 문해력이 있다, 없다고 하지 않는다. 모르면 찾아보면 되니까.” (뜻을 몰라도 찾아보면 문해력이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아는 단어라는 게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또 알게 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특정 시점에 어떤 단어를 아는지 여부가 문해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그런 대표성을 부여받는 단어나 문장들이 없다. 당연히 단어 뜻을 물어보는 식으로 문해력을 평가하지도 않고.” ―그런데 왜 그렇게 사회적 이슈로 번졌을까. “정확히 알 수야 없겠지만 묘하게 논리가 확대된 면이 있는데… 문해력(文解力)을 글자 그대로 문자를 읽고 이해하는 좁은 의미로만 생각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이런 단어도 몰라?’ ‘그럼 글도 이해 못 하는 것 아니야?’ ‘어쩌다 교육이 이렇게 된 거지?’ 이렇게 커진 게 아닌지…. 단어를 알고 문장을 이해하는 게 기본적으로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심심하다’ 논란도 차분하게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문해력 논란으로 번질 일은 아닐 수 있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심심하다’도 그렇고 최근 대부분의 문해력 논란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벌어진다. SNS는 약관을 읽고, 동의하고, 가입하는 절차를 거쳐야 이용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모르거나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 검색도 하고 친구들에게 묻기도 했을 거다. 문해력의 진정한 의미인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실생활에서 잘 안 쓰는 단어 뜻을 몰랐다고 문해력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문해력은 단어 실력 테스트가 아니다. 어휘력이 부족하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최근 문해력 논란은 문해력이 아니라 소통력 저하 때문이 아닌가 싶다.”―소통력 저하? “내가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주변에 물어보려는 마음…. 상대가 모르면 ‘그 단어는 이런 뜻이다’라고 알려주려는 마음.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논란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한쪽은 왜 이런 단어를 쓰냐며 언성을 높였고, 다른 한쪽은 그런 것도 모르냐, 한심하다며 조롱했다. 문해력 저하가 아니라 소통력 저하가 더 큰 문제가 아닌지…. 그래서 우리가 문해 교육을 할 때도 단순히 글과 문장을 이해하는 걸 최종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묻고, 서로 협력해 생활에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경험을 시킨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심심하다’ 논란은 또다른 측면에서 문해력 저하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한 번만 찾아보거나 물어봐서 모르는 걸 알아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실제 문해력은 어떻게 평가하나. “최근 논란이 된 것처럼 단어 뜻을 아는지를 묻지는 않는다. 3년마다 18세 이상 성인 4400만 명 중 1만 명 정도를 표본 추출해 직접 대면 조사를 하는데 숫자 읽기, 지명 쓰기 등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약 복용량 이해 및 측정, 인터넷 정보 이해, 전기요금 계산 등 다소 어려운 것까지 주관식·객관식 43개 문항을 풀게 한다. 3분의 2 이상을 맞히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문해력이 있다고 평가하는데, 학력으로 비교하면 중학교 졸업 이상 수준을 말한다.”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정도’라는 게 감이 잘 안 오는데…. “2020년 조사에서 성인 4400만 명 중 200만 명(4.5%)이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는 되지만 일상생활 활용이 쉽지 않은 사람도 180만 명(4.2%)이나 된다. 이런 분들 중에는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지 못해 평생 통장 없이 사는 분들도 있다. 또 500만 명(11.4%)은 가정, 여가 등 단순한 일상생활에는 활용 가능하지만 경제활동 등 복잡한 일상생활에 활용하는 건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880만 명(20.2%)에 달하는데 성인 5명 중 한 명이 문해력이 낮아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셈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문맹’인 분들이 200만 명이나 된다는 건가. “문맹, 까막눈이라는 말이 너무 안 좋아서 우리는 비문해자라고 부르는데 고령층이 많기는 하지만 10∼40대도 있다. 이분들은 그래서 거의 집에서 멀리 나가질 않는다. 버스를 탈 수도 없고, 글을 모르니 길을 잃기도 쉬우니까. 당연히 소득도 굉장히 낮을 수밖에 없다. 대도시, 고학력 분들이 들으면 ‘설마…’ 하겠지만 인구주택총조사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저학력 인구가 400만 명 정도나 된다.” (저학력이라면….)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중퇴 이하를 말한다. 성인 10명 중 한 명 정도가 중학교 중퇴 이하다.” ―선진국은 문해력 강화를 굉장히 중요한 정책으로 시행하는 것 같던데…. “프랑스는 성인의 약 7%가 문해 수준이 낮은 걸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비문해퇴치사무국이라는 국가 정책기구를 두고 있고, 정기적으로 국민의 문해 수준을 조사한다.” (낮다는 게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가.) “읽고 쓰기, 셈하기가 안 되거나 글을 읽고 쓰기는 해도 일상생활에 활용이 미흡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이 때문에 국가가 정책적으로 관련 광고도 낸다.” ―‘아는 게 힘이다’ 이런 종류인가. “하하하. 자동차 광고처럼 보이는 포스터인데 설명을 읽으면 자동차 광고가 아니라 다른 광고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설명 아래 ‘주변에 이 광고를 자동차 광고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글을 모르는 것이니 가까운 교육기관을 소개해 줘라’고 돼있다. 국제기구들도 문해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 마찬가지다. OECD는 조사 지표를 만들어서 회원국끼리 문해 능력 수준을 비교하고 있다. 물론 조사도 하고 있고. 유네스코(UNESCO), 유럽연합(EU)은 문해 능력을 사회경제적 발전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가치 실현을 위해서도 반드시 갖춰야 할 기초 능력으로 여기고 있다.” ―문해력과 민주주의가 어떻게 연결된다는 건가. “조사를 해보면 문해력 수준이 낮을수록 정치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반대로 문해력이 높으면 정치 관심이 높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구성원들이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해야 하고, 사실과 의견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문해력이 떨어지면 이런 사고를 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자꾸만 남의 말은 안 듣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걸 보면 확실히 문해력이 떨어진 것 같기는 하다.) “하하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세계적인 인지신경학자인 메리언 울프 교수는 저서 ‘다시, 책으로’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큰 걸림돌은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시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수준 높은 읽기를 할 수 없는 이들은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 문해력 저하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국가문해교육센터성인 문해 교육을 위해 2016년 출범한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산하 기구. 전국 지자체, 학교, 평생교육시설, 비영리 민간단체 등과 함께 연간 7만여 명을 교육하고 있으며, 3년마다 전국 성인문해능력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최근 윤은호 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를 인터뷰했습니다. 윤 교수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등록 장애인 중에는 유일한 교수이지요. 그를 인터뷰한 것은 드라마를 계기로 현실에서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분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의 인기가 ‘재미있고 훈훈했던 좋은 작품’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쪽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지요.하고 싶은 말은 많습니다만 저는 가장 먼저 국립국어원이 자폐와 관련된 용어를 자폐 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바꾸거나 순화시키면 어떨까 합니다. 인터뷰를 하다보니 우리가 얼마나 자폐성 장애에 대해 무관심했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죠. 드라마에도 나오듯이 자폐는 병이 아닙니다. 윤 교수에 따르면 국제표준인 ‘세계표준질병 사인 분류(ICD)’에도 ‘자폐성 장애(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유일한 공식용어로 쓰고 있다고 하는 군요. 그런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자폐증(自閉症)’으로 돼있고, 관련 용어들의 설명도 거의 대부분 부정적입니다. ‘자폐성’은 ‘자기 자신 속에 틀어박혀 현실에서 도피하는 상태’, ‘자폐성 경향’은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회피하고 자기 가운데에 파묻혀 주위로부터 고립되는 경향’ 이런 식으로요. 장애는 병이 아닙니다.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을 병자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유독 우리사회는 자폐당사자들을 포함한 발달장애인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는 표준어뿐만 아니라 신조어, 중세 한국어와 근대 한국어의 고어, 방언, 외래어로 인정되지 않은 외국어까지 약 110만 개가 넘는 표제어가 수록돼있습니다. 여러분은 ‘샤랑’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우리말샘에 따르면 ‘사랑’의 평안북도 지방 방언이라네요. 우리말샘에는 ‘샤랑트강’이란 생전 처음 듣는 강도 등재돼있습니다. 프랑스에 있는 작은 강 이름이더군요. 그런데 자폐성 장애를 가진 분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자폐당사자’란 말은 없습니다. 당연히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없지요. 말과 글은 그 사회가 특정 대상을 어떻게 보고, 생각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올바른 인식 없이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이런 잘못된 인식은 자폐당사자들이 장애인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을 때도 벌어진다고 합니다. 자폐 진단 기준에 아이큐(IQ) 테스트는 없는데 이상하게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먼저 IQ테스트를 한 뒤에 IQ가 높으면 자폐 진단을 잘 안 해준다는 거지요. 윤 교수 본인이 겪은 일입니다. 아마도 자폐성 장애를 일종의 ‘저능아’로 치부하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고인지 자폐당사자들의 경우 장애인정을 받기 위해 실제보다 더 장애가 심한 것처럼 과잉 행동을 하게 되는 슬픈 현실도 벌어진다고 합니다. 장애를 가진 것도 서러운데 장애인정을 받기 위해 상태가 더 심한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국내에 장애인으로 등록한 자폐당사자는 3만 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다른 장애와 달리 자폐성 장애는 자폐진단을 받아도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고 하는군요. 어쩌면 자폐성 장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 드라마가 가져온 자폐성 장애에 대한 관심을 그저 재미있는 작품 하나 본 걸로 끝낸다면 너무 아깝지 않을까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2022년 여름, 한 드라마가 ‘자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을 바꿔놓고 있다. 자폐는 병이 아닌 장애이기에 자폐증(自閉症)이라 부르면 안 되고, 집착하는 특징도 그들이 가진 흥미라는 점을 인정해 존중하자는 것. 자폐성 장애인으로 국내 처음 박사 학위를 취득했던 윤은호 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36)는 “당연한 얘기지만 현실은 드라마와는 많이 다르기에 편하게 보지만은 못했다”며 “자폐성 장애(자폐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관심이 실제 변화로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떤 점이 편하지 않던가요. “네, 네. 드라마에는 우영우가 어떻게 서울대 학부에 입학했는지 안 나오는데… 제가 서울대 장애인 전형에 지원했을 때는 원서도 못 냈거든요.” (원서를 못 내다니요?) “2005년 서울대 장애인 전형에 지원했는데, 당시 서울대는 지원 자격이 되는지 사전 검증을 했어요. 여기를 통과한 학생만 원서를 낼 수 있었던 거죠. 제 경우는 직원분이 ‘자폐성 장애인을 교육해 본 적이 없어서 받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돌발 행동을 할 수 있어서 어렵다고도 하고. 면전에서….” ―장애 때문에 장애인 전형에 지원할 수 없었다는 겁니까. “그런 셈이죠. 기가 막혀서 당시 언론에 투고를 했는데 학교에서 봤나 봐요. 며칠 뒤 전화가 오더라고요. 지금이라도 지원하고 싶으면 내라고. 그런 식으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비장애인 수험생들과 똑같이 시험 보고 인하대에 들어갔지요. 인하대에는 장애인 전형이 없었거든요.” (우영우도 장애인전형이 아닐 수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러려면 비장애인 학생들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에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에 경쟁이 힘들어요.” ―별도의 고사장이 제공되지 않습니까. “정부가 분류한 15가지 장애 중 청각, 시각, 뇌병변 등 운동장애인에게만 해당돼요. 나머지는 비장애인 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봐요. 시각장애인에게는 점자 문제지, 청각장애인에게는 별도의 시험실, 뇌병변 등 운동장애인에게는 1.5배의 시험 시간 등 배려가 있는데 다른 장애인에게는 없어요.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선수가 같은 트랙에서 달리는 셈이죠.” ―드라마다 보니 실제와 차이 나는 부분도 있었겠지요. “솔직히… 쉽게 보기 힘든 부분도 있기는 했어요. ‘저렇지는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TV를 껐다, 켰다 반복하곤 했지요. 예를 들면 큰 소리가 날 때 자폐당사자가 손으로 귀를 두드리고 누르며 막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자폐당사자들은 귀를 막기는 해도 두드리지는 않아요. 소리 때문에 귀가 아파서 막는 건데 거기를 또 두드리면 더 아프니까요. 3회에 나온 ‘펭수’에 빠진 자폐당사자도 현실에서는 좀 있기 힘들어요.” ―자폐성 장애에는 어떤 물건에 빠지는 특징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대부분 아주 어릴 때 생겨요. 펭수는 2019년에 나왔잖아요. 성인이 됐을 때, 짧은 시간에 그렇게 확 빠지기는 쉽지 않거든요. 물론 드라마적인 요소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실제 자폐당사자들은 만나서 얘기를 들어봤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해요. 그리고… ‘우영우’로 인해 사회적 관심이 는 것은 긍정적인데 반대로 혐오 발언이 더 늘어난 면도 있어서 안타까워요.” ―그럴 이유가 있습니까. “‘우영우’가 뭘 잘못해서는 아니에요. 전에는 관심 자체가 없어서 우리 같은 사람들에 대한 혐오 발언도 적었어요. 그런데 드라마가 뜨면서 평소에 장애인을 혐오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비하할 소재가 생긴 거죠. 오늘도 다른 자폐당사자분들과 이야기하다 왔는데… 확실히 전에 비해 혐오, 비하가 더 늘어난 게 느껴진다고 해요.” (실례지만 어떤 식으로….) “뭐 욕하는 경우도 있고, 자폐당사자들이 지나가면 ‘우영우 간다’ 이러기도 하고….” ―드라마 덕분에 ‘자폐증’이 왜 잘못된 표현인지 알게 됐습니다. “자폐에 대해 가장 잘못된 표현인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게 ‘자폐증’이란 말이에요. 자폐성 장애에는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데 모두를 싸잡아 병으로 규정하는 것이니까요. 장애는 병이 아니거든요. 국제표준인 ‘세계표준질병 사인 분류(ICD)’에서도 ‘자폐성 장애’를 유일한 공식용어로 쓰고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표준어에 ‘자폐증’, ‘자폐적’을 등재하고, 설명도 부정적으로 하고 있지요.” ―어떤 점이 잘못된 설명인가요. “‘자폐적’을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회피하고 자기 내면세계에 파묻혀 주위로부터 고립되는 것’으로 설명해요. 자폐당사자 모두를 싸잡아 외부와 접촉을 거부하고, 현실에서 도피해 내면세계에 틀어박힌, 치료가 필요한 부정적인 존재로 보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제가 최근 3년 동안 기사를 조사해봤는데,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도 부정적인 상황을 비유할 때 쉽게 ‘자폐’란 단어를 써요. 예를 들면 ‘자폐적 역사관을 청산해야’ ‘자폐적 경향을 보이는 사회문화를 바꿔야’ 이런 식으로요.” ―외국에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의사, 교사, 프로그래머, 연구자 등이 수두룩한데 왜 우리는 보기 힘든 겁니까. “그게… 자폐를 포함해서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대한민국 일반 학교에 진학하면 그 순간부터 괴롭힘 등 학교 폭력을 벗어나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저도 상처가 아물 새가 없었으니까요. 돈이나 물건을 뺏는 건 일상적이고…. 그래서 중고교 시절에 힘들어도 미래를 위해 일반학교에 남을지, 아니면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으로 갈지 갈림길에 서요. 대부분은 특수학교를 선택하죠.” ―학교 폭력 때문인가요. “네, 네. 특수학교로 옮기면 학교 폭력은 줄지만 대학 진학 공부와는 완전히 멀어지게 되요. 뒷받침만 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도 사라질 수밖에 없는 거죠. 자폐를 포함해 정신적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얼마나 학교 폭력을 당하는지 나라에서 조사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제가 알기로는 제대로 한 번 조사한 적이 없어요. 자폐성 장애가 있는데도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는 분도 많고요.” ―장애 등록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자폐성 장애인으로 등록된 분이 3만 명 정도 되는데 미등록자가 상당히 많아요. 아이가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부모님들이 많거든요. 그저 조금 불편하거나 발달이 늦는 것, 치료하면 나아지는 것으로 생각하시죠. 그런 부모님들은 아이가 다른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통제해요.” (생활에 지장이 없는 정도라 그런 것 아닙니까.) “진단상으로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데 부모님이 인정하지 않아 장애인 등록을 못한 친구가 있어요. 입대했는데 결국 관심사병으로 찍혀 굉장히 힘들게 복무했지요. 정신 질환도 있어서 약을 먹는데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아서 도움도 받을 수가 없고요. 우영우도 남자였으면 군대 갔을지 몰라요.” ―장애인이 왜 군대를 갑니까. “자폐 진단 기준에 아이큐(IQ)는 있지도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 IQ가 사실상 기준이 돼요. 이 수치가 높으면 자폐 검사를 잘 안 해 주는 거죠. 저도 2002년인가 재진단 받으러 병원에 갔더니 IQ검사부터 시켰는데 수치가 높게 나오니까 (재진단 검사가) 안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제대로 진단 검사할 수 있는 곳도 적다 보니 좋은 의사 선생님은 예약해도 3년 후에나 받을 수 있어요. 자폐진단 검사를 제대로 못 받으면 (군대) 갈 수 밖에 없죠. 서러운 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요. 제가 박사 학위를 딴 게 이상하다고 민원을 넣은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무슨 그런 민원이…. “처음 자폐성 장애인 등록을 하면 2년 후에 한 번 더 진단 검사를 받고 재등록을 해야 해요. 그러면 영구적으로 장애인 등록이 되는 거죠. 그런데 이후에도 누가 ‘쟤 이상하다’고 지자체에 민원을 넣으면 지자체에서 자폐당사자에게 진단 검사를 다시 받아 결과를 제출하라고 해요. 그래서 저도 2018년에 또 검사를 받았어요.” (박사 취득이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저런 애가 어떻게 박사를 받느냐고… 결국 다시 받았어요. 비용이 40만∼50만 원 드는데 정부 보조는 10만 원이에요. 나머지는 제가 내야 해요. 그게 우영우에는 안 나오는… 우리 현실이에요.” 윤은호 교수(36)자폐성 장애인으로는 국내 처음으로 2016년 박사 학위(문화경영학)를 취득했다. 2019년부터 모교인 인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자폐성 장애를 가진 등록 장애인 중 교수는 그가 유일하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2020년 8·15 광복 75주년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나라가 국민에게 해야 할 역할을 다했는지, 지금은 다하고 있는지,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단 한 사람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한 달여 후 우리 국민이 서해에서 북한군에 피살됐을 때 정부는 그를 자진 월북자로 판단했다. 2년이 지난 지금 해경과 국방부는 근거 없는 월북 판단을 사과했지만, 당시 월북을 옹호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월북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고 반박했다.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 ―실례입니다만 많이 변하셨습니다. “그새 많이 늙었지요. 작년 여름에는 신장이 망가져서 잘 걷지 못했고, 12월에는 심근경색으로 죽을 뻔도 했어요. 동생이 월북자라는 말도 안 되는 오명을 벗기려고 백방으로 뛰고, 또 동생 가족도 다독이느라 생활도 사업도 거의 접었고요. 오죽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이메일까지 보냈겠어요.” ―답이 올 리가 없지 않습니까.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렇게까지 했겠어요. 작년 7월에 몽골과 홍콩 주재 북한대사관을 통해 보냈는데… 대사관 이메일 주소는 몽골은 현지에서 사업하는 지인이, 홍콩은 BBC 기자가 알아봐줬지요. 답은 안 오겠지만 김정은이 읽기는 했을 거예요. 아는 국가정보원 출신 지인에게 물어보니까 수신인을 최고 존엄으로 하면 무조건 다 보고한대요.” ―어머니께는 알렸습니까. 피살 당시에는 병중이라 숨겼다고 했는데…. “충격 받으실까 봐 (동생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도 알리지 못하고 있어요. 치매 증상도 있으시고 몸도 안 좋으셔서 아직도 병석에 누워계시거든요. 저도 동생 가족도 몸도 몸이지만 월북자 가족이라는 낙인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지요. 연좌제가 없다고는 해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 월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아시잖아요. 오죽하면 동생 가족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생각까지 했겠어요. 제수씨가 너무 힘들다고 새벽 두 시, 세 시에 울면서 전화한 게 몇 달인지 몰라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 조카는 원래 육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어 했는데 꿈을 접어야 했지요. 월북자 아들을 받아줄 것 같지 않았으니까요. 초등학교 3학년인 조카딸에게는 최근에야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렸어요.” ―말해주기가 쉽지 않았을텐데요. “피살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알리지 않았는데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니까 더는 안 되겠더라고요. 더 숨기면 너무 가슴이 아프니까…. 얘기를 해주고 스스로 받아들이게 해주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고. 저도 기다리다 지쳤는지 이제라도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대요. 이제 아빠 안 기다려도 된다고 하면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그렇게 고통으로 보냈는데 민주당 사람들은 아직도 유족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나 툭툭 던지니….” ―민주당은 월북이 아닌 증거를 대라고 하더군요. “증거도 없이 생사람을 자진 월북자로 몰아놓고 그게 무슨 말인가요. 적반하장도…. 자기들이 월북이라는 증거를 대야지, 월북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니…. 왜 매사를 정치적으로 몰고 가는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금강산 관광을 갔던 박왕자 씨가 피살됐을 때 이명박 정부는 사과도 못 받았는데 문재인 정부는 북한 최고책임자의 사과를 받아냈다고 했는데….” ―그 때문에 조카가 우 위원장에게 항의편지까지 보냈더군요. “기가 막힌 게… 김정은(국무위원장)이 유족에게 사과한 게 아니잖아요. 사과는 당사자인 유족이 받아야지 왜 정부가 받나요. 그리고 당시 북한 사과문을 대하는 문 대통령 태도를 보면 유족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어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우리 국민들께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해온 것에 대해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계기로 반전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는데… 남편 아빠가 피살된 사람들에게 ‘남북관계 진전’ 운운하다니요.” ―혹시 북한 사과문을 전달받았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어요. 청와대에서 읽을 테니 알아서 들으라는 건지. 동생이 피살된 후부터 문 대통령이 퇴임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수사 상황이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을 들은 적이 없어요. 되레 청와대는 조롱하듯 놀렸지요.” (청와대가 조롱했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동생이 피살되고 한 달쯤 지나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어요. 그런데 답이 없어서 다시 작년 1월에 답변을 해달라는 민원을 올렸지요. 그런데 1년 넘게 아무 답이 없다가 올 5월 9일 접수 1분여 만에 민원 대상이 아니라고 통보하더군요.” ―5월 9일은 문 대통령 퇴임일인데요. “작년 1월 7일에 신청한 민원을 1년 4개월이 지난 그날 접수하더라고요. 더 기가 막힌 건… 오전 10시 56분 3초에 접수하고, 10시 57분 57초에 ‘본 내용은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상 민원처리 예외에 해당합니다’라고 답을 한 거예요.” ―접수에서 답변까지 2분도 안 걸렸다는 말입니까. “차라리 답을 안 했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1년 4개월 동안 접수도 안 하다가 대통령 퇴임하는 날 1분여 만에 안 된다고 하니… 이게 조롱이 아니면 뭐예요. 올 1월 조카가 문 대통령에게 받은 편지를 반납하려고 청와대에 갔을 때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어요. 피살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직접 챙기겠다고 문 대통령이 쓴 그 편지요.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 편지인데 누가 나와서 받아가는 게 예의 아닌가요. 유족만 힘든 게 아니에요. 동생과 함께 배를 탔던 선장은 좌천됐어요.” ―선장이 왜…. “어느 날 만났는데 ‘형님 저 항해사로 강등 당했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책임자라고…. 선장과 항해사는 하늘과 땅 차이예요. 그런데 당시 (자진 월북)수사를 담당했던 윤성현 수사정보국장(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은 몇 달 뒤에 치안감으로 승진됐잖아요.” ―사건 초기 민주당 의원들이 찾아와 월북 인정 회유를 했다고 폭로했는데, 왜 당시에는 그런 얘기를 공론화하지 않은 겁니까. “그때는 (민주당이) 여당이라 진상 규명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힘 센 여당을 상대로 척지고 싶지도 않았고요. 동생이 피살되고 일주일도 채 안 됐는데… 오후 늦게 황희 의원에게 전화가 왔어요. 경기 안산 제 사무실 앞인데 기다리고 있다고요.” (약속도 안 하고 찾아왔다는 겁니까.) “네, 황 의원과 김민기 김철민 김병주 김영호 의원,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이렇게 여섯 명이 왔어요.” ―약속도 없이 찾아와서 월북 인정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까. “황 의원이 ‘여러 첩보를 보니까 월북 정황이 확실하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기금을 조성해주겠다. 어린 조카들을 생각해서 월북을 인정하라고 했어요. 김철민 의원은 호남은 같은 편 아니냐. 월북을 인정해라, 그러면 보상하겠다고 했고요. 제 고향이 완도거든요.” (월북자 가족을 돕는 국가 보상이나 기금이 있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요.) “그러니까요. 저는 단호히 거절했어요. 동생이 월북했다는 증거도 없는데 돈 얼마 받고 평생 월북자 가족으로 낙인찍혀 살 수는 없으니까요. 황 의원은 그 뒤로 두 번이나 더 찾아와서 같은 얘기를 했어요.”※황희 의원은 이 씨를 만나기 전날 기자회견을 갖고 “다양한 경로로 획득한 한미 간의 첩보와 정보에 의하면 유가족에게는 대단히 안타깝지만 월북은 사실로 확인되어 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 다음 날 오전 해경은 중간 수사 브리핑을 통해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동안은 해수부 공무원으로만 알려졌는데 실명을 공개했더군요. “이번에 발표하기 전에 김태효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상황 설명과 함께 유족이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항소를 취하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이제 동생이 월북자가 아니란 것이 밝혀졌으니까 떳떳하게 실명을 공개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생각해보니 이제는 숨길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정부에서 발표하면서 이름을 공개해 달라고 했지요.” ―이제 진상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죠. 당시 사안을 은폐하고 조작했던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문 전 대통령에게 이 말을 꼭 묻고 싶어요. 지금도 내 동생이 자진 월북자라고 생각하는지. 대통령까지 지내신 분인데… 대답을 해줬으면 해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지난달 초 천상현 전 청와대 조리팀장을 인터뷰했습니다. 청와대가 개방된 지 얼마 안 돼 역대 대통령들의 의식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천 팀장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때 중식 담당으로 들어간 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까지 꼭 20년 동안 청와대 요리사로 대통령의 식사를 책임졌습니다. 남자 ‘대장금’인 셈이죠. 인터뷰를 하면서 의외였던 건 청와대 요리사들조차 정권이 바뀌면 대부분 바뀌는 게 관례였다는 점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만 빼면 그랬다고 하는 군요. 20년 간 살아남은 천 팀장이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고 홀 서비스 직원들도 비슷했다고 합니다.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요리사로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청와대 정무직 직원들처럼 전임 정권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그를 통해 역대 대통령들의 식사 모습을 엿보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라면을 좋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조리팀이 일요일이라도 좀 늦게 출근하라고 직접 끓여먹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엄청난 시련을 겪었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없어서 못 먹을 지경이지만 당시에는 광우병 파동으로 온 나라가 뒤집어졌었죠.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야외 바비큐 파티를 자주했는데 꼭 미국산 쇠고기로 하라고 조리팀에 지시했다고 합니다. 바비큐를 먹으며 얼마나 속으로 억울해했을까요.박근혜 전 대통령은 불통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부분이 많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혼밥’도 그런 이미지를 부추기는데 한몫했죠. 그런데 천 팀장 설명을 들으니 박 전 대통령의 혼밥은 소화를 잘 못시키는 탓도 있더군요.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니 함께 먹는 게 힘들어 이동 중에 간단한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해결했다고 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정치나 정책, 사회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가 대통령 밥 먹는 것 갖고도 욕할 정도로 진영 간의 증오가 이렇게 심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응이 다양하더군요. 국민의힘 지지층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욕하고, 민주당 지지층은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했습니다. 같은 보수 안에서도 박 전 대통령 지지층과 이 전 대통령 지지층이 또 다르더군요. 부동산 문제도, 대북 정책도 아닌 단순히 대통령들의 밥 먹는 스타일과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인데도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서로 간에 미움이 쌓인 모양입니다. 호남 출신인 천 팀장에게 경상도 대통령들 모시느라 고생했다는 말까지 있었으니까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천 팀장은 그냥 웃는다고 합니다. 밥상에는 좌우가 없으니까요. 그는 중식 전문이니까 자장면에는 좌우가 없다고 해야겠군요. 우리 사회가 좌우 진영 논리에 갇혀서 서로 간에 색안경을 쓰고 이전투구만 해온지가 벌써 수 십 년이 넘었습니다. 그걸 말리고 갈등을 해소시켜야할 정치권은 정치적 계산만하며 오히려 증오를 부추기지요. 그가 청와대를 나와 차린 음식점에는 노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의 사인을 받은 접시가 나란히 걸려있습니다. 대통령 퇴임 직전에 그가 실제로 청와대에서 사용하는 그릇을 들고 가 사인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나란히 건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물어보니 그는 “노 전 대통령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나중에라도 두 분 관계가 잘 풀렸으면 하는 마음에서”라고 말했습니다. 일개 요리사에게도 있는 마음이 왜 배웠다는 높으신 분들에게는 없는지 답답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전구∼욱 노래자랑! 빰빰빰 빰 빰 빰∼ 빰 ♬ 빠빠빠∼ 딩동댕! 전국에 계신 독자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새로운 희망 속에 열심히 살아가시는 해외 우리 동포 여러분들, 해외 근로인 여러분들, 그리고 해외 자원봉사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송해 선생님과 30년간 전국노래자랑을 함께한 신재동 악단장을 모시고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푸근한 인상과 달리 선생님께서 야단도 많이 치셨다고요. “일에는 0.0001%도 흐트러짐을 허용하지 않으셨거든요. 한없이 인자한 얼굴과 달리 가슴속에는 늘 넘치는 에너지가 있으셨어요. 그래서 당신이 보기에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이 벌어지면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지요. 초대가수들이 리허설에 늦게 오거나, 건방을 떨거나 하면 된통 혼났으니까요.” (혹시 누가….) “하하하, 가수 장윤정 씨도 초창기 때 조금 늦었다가 호되게 야단맞은 적이 있고… 한두 명이 아니에요. 그런데 뒤끝은 전혀 없으세요. 5분도 안 지나서 바로 풀어지시니까. 전국노래자랑에는 선생님의 그런 생각과 애정이 곳곳에 배어 있어요. 일단 시작하면 거의 NG 없이 생방송처럼 녹화하는 것도 그렇지요.” ―출연자가 일반인인데 가능합니까. “선생님 지론인데… 몇천 명이 한창 흥겨워서 달아오르고 있는데 다시 찍자고 중간에 끊으면 김이 빠져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웬만하면 중간에 끊고 다시 찍는 일이 거의 없어요.” (예측 못 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그럴 때 잘 타고 넘어가는 게 선생님 실력이죠. 예전에 한 양봉업자가 온몸에 벌을 붙이고 무대에 선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분이 내려간 뒤에도 꽤 많은 벌들이 무대에 날아다니는 거예요. 송 선생님은 방충망 같은 걸 쓰고 진행했고, 뒤이은 출연자는 벌이 입에 들어가서 본의 아니게 ‘땡’을 받았는데도 벌을 잡기 위해 끊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녹화가 시작되면 절대 자리에 앉지도 않아요.” ―녹화가 3시간 넘게 걸린다던데요. “리허설 때는 대본을 정리해야 하니까 앉지만 일단 녹화가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몸을 똑바로 세우고 무대를 지켜보세요. 비가 와도 다 맞고요.” (출연자가 노래할 때는 앉아도 되지 않습니까? 화면에 나오는 것도 아닌데요.) “젊을 적 악극단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인 것 같아요. 관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사실 50, 60대도 서서 3시간 넘게 있기는 힘들어요. 리허설부터 하면 7∼8시간이나 걸리는데, 요즘 같은 무더위에 야외에서 진행하면 더 힘들지요. 그걸 90세가 넘어서도 하셨으니…. 체력만 좋으신 게 아니에요. 정의감도 불타셨지요.” ―전국노래자랑에서도 불의한 일이 벌어질 때가 있습니까. “예전에 충청도 어디였는데… 리허설이 한창인데 공무원들이 관객석 맨 앞자리에 의자를 놓고 있더라고요. 군수, 군의원들 앉을 자리라는 거예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선생님이 ‘지금 뭐 하는 짓인가. 당장 치워라. 앉고 싶으면 저 뒤에 아무 데나 앉아라. 전국노래자랑에는 특석이 없다’고 노발대발 소리쳐서 뺐지요.” ―우리 정서상 과거에는 그런 행태나 요구가 꽤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제가 1992년부터 참여했는데, 그때만 해도 공무원들이 맨 앞자리 가운데를 끈으로 쳐서 귀빈석을 만들었어요. 선생님은 그런 모습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그게 쌓였다가 그날 터진 거죠.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저런 짓을 하고 있느냐’면서…. 그 뒤로 전국노래자랑은 지자체장이든, 지역 국회의원이든, 유지든 별도의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아요. 지역 행사다 보니 지자체장들이 지역을 소개하고 무대에서 노래 한 곡 부르게는 해줘요. 하지만 실제 방송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은 편집하고 내보내지 않지요. 선생님은 저희들이 못 받은 월급을 대신 나서서 받아주기도 했어요.” ―월급이 안 나오다니요.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프로그램이 한 8주 정도 결방됐어요. 워낙 사회적으로 슬픔이 큰 사건이다 보니 흥겹게 노래 부르는 프로는 내보내기 어려웠던 거죠. 그래서 그 기간 동안 저를 포함해서 악단 단원들 월급이 안 나왔는데 선생님이 대신 회사와 담판 짓고 받아주셨어요.” ―선생님이 중간에 잠시 하차하신 건 왜 그런 겁니까. “1994년 4월경인가? 경북 영천이었는데… 녹화 날 아침에 그냥 짐 싸서 올라가셨어요. 담당 PD와 프로그램을 놓고 의견 충돌이 잦았는데 선생님은 선생님의 생각이 있고, 또 PD는 너무 자기 고집이 강한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들다 보니 녹화 때마다 서로 쌓인 거죠. 녹화 전날부터 ‘안 한다. 안 한다’ 하셨는데 ‘그럼 하지 말라고 해’ 뭐 이런 말까지 나오고…. 설마 진짜 가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아요.” ―진행은 누가…. “관객이 몇천 명이 왔는데 안 할 수는 없잖아요. 급하게 초대가수로 왔던 현철 씨가 다른 사람 한 명이랑 MC를 봤어요. 그렇게 대충 찍기는 했는데… 결국 실제 방송으로는 못 나갔어요.” (못 나가다니요?) “그 녹화는 방송을 못 내보내고 나중에 다시 가서 제대로 찍어서 내보낸 거죠. 그 뒤로 김선동 아나운서가 진행을 했는데, 와… 진짜 전국에서 ‘송해를 돌려 달라’는 항의가 빗발쳤어요. 결국 그해 10월에 복귀하셨지요. 그 정도로 국민의 사랑을 받으셨지만 정작 선생님 자신은 외로워 보일 때가 많았어요. 저는 선생님이 술을 그렇게 드신 것도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녹화 전날 새벽까지 드신다는 얘기는 워낙 유명합니다만….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예요. 보통 버스 앞에서 세 번째 줄 정도에 앉으시는데 만남의 광장쯤 오면 뒤를 슥 한번 보세요. 눈이 마주치면 말하나 마나 내리라는 뜻이죠. 그때 작곡가 이호섭(현 전국노래자랑 진행자)이 있으면 같이 내리고, 아니면 저만 내리는데 양재 쪽에 자주 가시는 돼지갈비 집에 가서 또 마셔요. 큰 컵에 20∼25도나 되는 빨간 뚜껑 소주를 부어 드시는데, 식사는 거의 안 하시고 안주만 아주 조금 드셨지요. 그렇게 밤새 마시고 택시를 태워 보내드리는데 그 뒷모습이 너무 쓸쓸하고 안타까워 보일 때가 많았어요. 가족들 다 두고 홀로 내려 오신 데다 사고로 아들도 잃으셨으니….” ―늘 버스로 함께 다니셨다고요. “버스가 녹화 전날 오전 10시에 여의도에서 출발해요. 선생님은 늘 오전 7시쯤 먼저 오셔서 스태프와 함께 아침을 먹고 차 한잔하고 얘기하다가 타셨지요. 댁이 경부고속도로를 타는 양재동 근처라 저희가 가는 길에 들르겠다고 해도 한 번도 그러신 적이 없어요.”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차 문제를 많이 고민하셨습니까. “최근 몇 달간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마음과 달리 몸이 힘드셨거든요. 전국노래자랑이 코로나19 때문에 현장 녹화를 못 하고 과거 방송을 편집해 내보내는 스페셜 편으로 방송됐는데 힘드시면 스튜디오에 못 나오시기도 했으니까요.” (많이 안 좋으셨습니까.) “돌아가시기 2∼3주 전에는 살이 다 빠지셔서… 예전 모습이 거의 없으셨어요. 저보고 ‘신 단장 이거 봐봐. 배가 쑥 들어가서 옷이 이만큼이나 남아’ 하시더라고요. 몸을 만져 보니 정말 뼈만….” ―제작진도 고민이 많았겠습니다. “말을 꺼내기가 너무 어려웠을 거예요. 30년을 넘게 하신, 당신 분신 같은 프로그램인데 그런 말을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상처가 되겠어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선생님이 결국 마음을 정하셨더라고요. 돌아가시기 전주쯤에 늘 다니시던 양복점에 지인을 통해 양복을 주문하셨거든요. 마지막으로 그 옷을 입고 무대에서 ‘이제 저는 이 프로그램을 놓습니다’라고 고별인사를 하려고 하신 거죠. 돌아가신 날(8일) 다음 날이 옷 찾는 날이었어요.” (선생님은 지금 하늘에서 뭘 하고 계실까요.) “하하하. 아마… 천국노래자랑 새로 만드시느라 바쁘시지 않을까요?” 신재동1992년부터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한 작곡가 겸 베이시스트. 송해의 ‘유랑청춘’, 남진의 ‘신기루 사랑’, 김국환의 ‘어쩌다 산다’ 등을 작곡했고, 2012년부터 악단장을 맡고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지난달 말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를 인터뷰했습니다. 강 전 대표는 지난달 16일 자신의 당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했지요. 강 전 대표가 어려움을 무릅쓰고 피해사실을 알린 것은 6개월이 넘도록 당 지도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강 전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당 행사 뒤풀이에서 한 당 내 인사가 그의 허벅지 안쪽을 만지는 등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강 전 대표는 이 사실을 이틀 후 당시 여영국 당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참석한 회의에서 알렸지요. 그런데 정의당은 다른 정당의 성폭력 사건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강 전 대표 사건을 대했습니다.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먼저 진상조사부터 하는 게 순서입니다. 그런데 강 전 대표의 설명을 들은 여 대표는 그 자리에서 “이 일은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다만 다음에 또 이 같은 일이 일어나면 그 때는 절차대로 처리하겠다. 내가 해당 위원장에게 엄중 경고하겠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사실상 사건을 듣자마자 종결한 것이죠. 함께 있던 지도부 인사들 중에 ‘그렇게 간단히 처리하면 안 된다’고 문제를 지적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국민의힘 당 대표가 이렇게 처리했다면 정의당은 뭐라고 했을까요.6개월이 지나도록 진상조사조차 없는 사이에 가해자는 지난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후보에 공천됐습니다. 견디다 못한 강 전 대표는 지난달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성폭력 피해사실을 알렸지요. 정의당의 해괴한 일처리는 바로 다음날(17일) 또 벌어졌습니다. 언론에 ‘긴급 대표단회의 결과’란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이동영 당 수석 대변인이 브리핑을 한 것이죠. 요지는 이 사건이 해당 위원장이 옆자리에 앉는 과정에서 강 전 대표를 밀치면서 벌어진 ‘불필요한 신체접촉’이었고, 강 전 대표가 이 사안이 성폭력으로 볼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 언론에 배포한 그 보도자료에 가해자인 해당 위원장의 사과문을 첨부했습니다. 진상조사는 하지도 않았는데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공개한 바로 다음날 당이 성폭력은 없었다고 브리핑을 하고, 가해자 사과문을 대신 배포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정의당 당직자들의 행태도 가관입니다. 강 전 대표가 갈무리해 공개한 당직자 텔레그램방 대화방을 보면 이들의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여지껏 참았는데 선거이후에 문제 제기해도 될 일을 왜 좀 더 참지 못했을까’ ‘강민진은 지저분하게 해당 행위를 하지 말고 떠나십시요’ ‘사건이 안 되는 내용이라 2차 가해 운운해서도 안 되는 겁니다’ 이런 내용들이 즐비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의 어른이라는 심상정 의원, 차세대 유망주라는 류호정 장혜영 의원 등 청년 정치인들이 왜 이 사건에 침묵하고 있는 지입니다. 사석이나 회의석상에서 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이들이 공개적으로 무책임한 당 행태를 지적하고, 피해자와 함께 연대하겠다는 상투적인 말조차 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침묵상태인 것이죠. 심 의원은 지난해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성폭력으로 고통 받고 있는 여성을 대신해서 제가 묻는다. 윤 후보는 정말 성범죄자 안희정 씨 편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당시 윤 후보의 부인인 김건희 씨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두둔한 통화 내용이 공개됐기 때문이죠. 윤 후보는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당 내 문제에 대해서는 반년이 넘도록 아무 언급도 없습니다. 류·장 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류·장 의원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우려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도 거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당 내에서 벌어진 일에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나봅니다.도대체 왜 정의당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걸까요. 강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에서 문제가 벌어졌을 때 정의당에는…외부에 알려져 논란이 되면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겨 꼬리를 자르고, 밖으로 안 알려지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악순환이 있다”고요. 세상 무엇보다 조직보위가 최우선이라는 것이죠. 평시에도 그럴 진데 공교롭게 대선, 지방선거가 연이어있었으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앞서 소개한 한 당직자의 ‘여지껏 참았는데 선거이후에 문제 제기해도 될 일을 왜 좀 더 참지 못했을까’란 말이 딱 그거 아니겠습니까. 여성의 인권, 성폭력 같은 문제는 조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뒤에 놓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습니다. 당 내 성폭력 피해자는 외면당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류호정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14일 공군 고 이예람 중사 성추행 가해자가 2심에서 감형된 판결과 관련해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오늘 유족의 가슴에 다시 한번 대못을 박았다. ‘이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오로지 피고인의 책임으로만 물을 순 없다’는 게 감형의 이유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논리, 아무도 동의할 수 없는 법리”라고 브리핑했더군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로 존립위기에 빠진 정의당은 13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이은주 비대위원장은 “가장 두려운 것은 선거에서 참패했다는 것, 의석을 잃었다는 것이 아니라 ‘정의당의 정치가 지속 가능한가’라는 시민의 물음이다”라고 했습니다. 제 눈의 들보는 안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보며, 조직에 해가 된다면 당 내 성폭력조차 묻고, 그 당의 어른과 기대주조차 이런 사태에 침묵하는 정당이 실패하지 않고 성공한다면…그게 더 무서운 세상일 겁니다.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지난달 10일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구중궁궐 이야기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관심은 대통령의 의식주. 20년(1998∼2018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의 식사를 책임졌던 천상현 전 청와대 조리팀장은 “대통령 밥상에는 식사 때마다 진상품이 올라갈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의외의 모습 때문에 마음이 짠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대통령들의 밥 먹는 모습이 짠했다니 의외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혼밥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행사 같은 데 가면 참석자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소화를 잘 못 시키다 보니 함께 못 먹고 그냥 올라오곤 했지요. 그래서 저희가 비행기나 기차에서 드시게 김밥이나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음식을 미리 마련했어요.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 박정희 대통령 돌아가신 후에 거의 혼자 밥 먹던 세월이 18년이나 된다잖아요. 사람들은 대통령이 혼밥한다고 뭐라 하지만 그런 세월이 너무 길다 보니 습관이 된 탓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탄핵으로 청와대를 나갈 때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스타킹에 구멍이 나 있더라고요.” ―머리 손질을 안 하면 외출도 안 하는 스타일이라던데요. “오후 6시쯤인가? 관저 관리 직원들을 부르셨어요. 조리팀 사람들에게는 ‘4년 동안 음식 너무 고맙게 먹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하셨는데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지요. 그때 엄지발가락 스타킹에 구멍이 나 있는 게 보였어요. 구멍 난 걸 모르고 신은 건지, 신고 있다가 구멍이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그러더라고요. 품성이 되신 분이라고. 솔직히 그 경황에 그냥 나가도 뭐라 할 사람은 없잖아요. 노 전 대통령은 주방에도 자주 오시고, 라면도 직접 끓여 드셨지요.” ―노 전 대통령만의 맛 스타일이 있나요. “그건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우리가 알아서 해 먹을 테니 조리팀은 좀 늦게 나오라고 하셨어요. 조리팀은 늘 새벽에 출근하거든요. 그래서 전날 재료를 주방에 갖다 놓으면 직접 라면을 끓여 드셨지요. 심한 건 아닌데… 노 전 대통령은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밀가루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났어요. 그래서 자장면도 쌀로 만든 거, 빵도 전분으로 만든 걸 드셨는데 그런데도 라면은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이 전 대통령은 어땠습니까. “어릴 때 어렵게 살아서인지 음식 남기는 거 정말 싫어했어요. 늘 음식 버리지 않게 너무 많이 담지 말라고 하셨지요. 청와대 잔디밭에서 야외 바비큐도 자주 했는데… 그럴 때는 (광우병 파동을 의식 해서인지) 미국산 쇠고기로 하라고 지시가 왔어요. 대통령이 미국산 사와서 구워 먹자고 했대요.” ―대통령 침실이 80평이나 되는데 그 안에 침대 하나밖에 없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제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는데…. 침실이 굉장히 크다는 걸 강조하다가 저도 모르게 실수를 했어요. 침실 옆에 목욕탕, 서재 등을 다 합치면 아마 80평 정도 될 거예요. 침실만은 20평 정도일 것 같은데 그것도 굉장히 크긴 한 거죠. 나중에 정정했는데 안 고쳐지고 그냥 나가더라고요. 침실이 크다 보니 박 전 대통령은 휑하다고 안 쓰고 그 옆 작은 방에서 잤어요. 다른 대통령들은 그냥 쓰셨고요.” ―청와대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겁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중식을 좋아했는데 당시 청와대에는 중식 요리사가 없었어요. 그래서 청와대에서 제가 근무하던 신라호텔에 추천을 의뢰해 들어갔죠. 서른 살 때였어요.” (실례지만 경력이 더 많은 분도 많지 않았습니까?) “청와대에서 한국 사람을 보내 달라고 했거든요. 당시 특급 호텔 중식당은 화교 출신이 거의 대부분이고 한국인은 몇 명 없었어요. 웍(중국 음식을 요리할 때 쓰는 우묵한 큰 냄비)을 좀 돌려본 사람 중에 한국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제가 추천을 받은 거죠. 전 그때 사실 중식 조리사 자격증도 없었거든요.” (청와대에 들어가서 딴 겁니까.) “필기까지만 붙은 상태에서 들어갔는데, 실기 시험 날 대통령 행사가 잡히더라고요. 그렇게 두 번 못 보고 필기부터 다시 치러서 나중에 땄어요.” ―아직 못 만드는 걸 대통령이 갑자기 주문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때는 짬뽕, 볶음밥, 요리 몇 가지 정도만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볶는 요리는 비슷비슷해요. 팔보채를 볶는 거나 유산슬을 볶는 거나 비슷하거든요. 그리고 재료 한두 개 실수로 빠져도 잘 몰라요. 하하하. 게살수프에 게살이 빠지면 알지만 팔보채에 재료 하나 빠진 건 모르니까…. 안 해본 것들은 대통령이 순방 같은 걸 가면 신라호텔에 가서 배웠지요. 대통령이라고 매일 랍스터 먹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건 자주 올릴 수도 없어요. 콜레스테롤 때문에…. 연세가 있으시잖아요.” ―대통령 진상품이 진짜 있습니까. “진상품 그런 건 없고요, 김 전 대통령은 활홍어를 좋아했는데 아들이 아버지 드시라고 6∼7kg짜리 흑산도 홍어를 보냈어요. 그걸로 회도 뜨고 초무침도 했지요.” (활홍어가 뭡니까?) “삭히지 않은 홍어인데 DJ는 삭힌 홍어는 안 드셨어요. 밖에서 대통령 진상품이라고 홍보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다 가짜예요. 청와대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게 알려지면 대통령 경호 때문에 바로 납품을 끊거든요. 식재료에 뭘 넣을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계약할 때 아예 그런 조건을 넣지요.” ―입맛이 까다로운 분은 없었는지요. “그렇게 까다로운 분들은 없었어요. 출신 지역에 따라 다른 정도? 경상도 분들은 된장국에 방앗잎이 들어가야 ‘그래, 이 맛이야’ 하시더라고요.” (방앗잎이 뭡니까.) “방아라고 부르는 식물 잎인데 독특한 향이 있어서 향신료로 쓰지요. 경상도분들은 추어탕 같은 데도 넣어서 드시는데 전라도분들은 잘 안 드세요.” ―문재인 대통령 때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나왔더군요. “원래 박 전 대통령 퇴임 때 나오려고 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갑자기 물러나고 어쩌다 보니 좀 더 있었던 거죠. 문 대통령 취임 1년쯤 지났는데 새로운 사람을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굉장히 오래 있었어요. 청와대 요리사도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대개 바뀌거든요.” ―요리사가 정무직도 아닌데 왜 5년마다 바뀝니까. “정해진 규정은 아니고 그냥 관습인 것 같은데…. 노 전 대통령 취임하면서 저랑 홀 서비스 직원 한 명만 남고 다 바뀌었어요. 이 전 대통령 때도 똑같이 저랑 홀 서비스 직원 한 명만 살아남았고, 박 전 대통령 때는 스스로 그만둔 사람 하나 빼고 다 남았지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저쪽 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요리사는 그렇다 치고 홀 서비스 직원은 왜 바꾸는 겁니까.) “요리사보다 오히려 홀 서비스 직원이 대통령에 대해 세세한 건 더 많이 알 수 있죠.” (그런데 어떻게 20년을 버텼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지요.” ―혹시 음식 불평을 하는 손님은 없습니까. 대통령이 먹던 음식은 다를 거라 생각하고 오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그런 말이 없는 게… 제 생각에는 대통령 다섯 분이 똑같이 드신 음식이니까 그 기에 눌린 게 아닌가 싶어요. 하하하.” (식당에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사인 접시를 나란히 거셨더군요.) “퇴임하고 나가시기 전에 제가 대통령들이 쓰던 접시를 들고 가서 받았어요. 나란히 건 이유는… 두 분 관계가 좀 그랬잖아요. 노 전 대통령은 돌아가셨지만… 나중에라도 관계가 잘 풀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란히 걸었어요. 김 전 대통령 퇴임 때는 받을 생각을 못 했고, 박 전 대통령 때는 사인을 받을 상황이 아니었지요.” ―이제는 청와대 요리사란 이름도 사라지겠군요. “용산 요리사라고 해야 하나요? 하하하. 그런데 지금 조리팀은 굉장히 힘들 거예요. 정권 초기 서너 달은 대통령이 일정, 행사는 물론이고 만나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많이 고생하거든요. 청와대처럼 모든 시설이 완비된 곳에서 해도 힘든데 용산은 새로 시작해서 시설이 많이 부족할 테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개방된 청와대 잔디밭에서 다문화가정이나 연세 드신 분들을 위해 음식 대접을 해보고 싶어요. 꼭 고급 요리가 아니라 자장면이나 된장찌개라도…. 청와대 요리사들이 청와대 셰프 옷 입고 대접하면 무척 근사하지 않을까요? 청와대 개방 취지에도 어울리는 것 같고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4월 말 누리호 2차 발사를 한 달여 남기고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을 인터뷰했습니다. 순수우리기술로 제작된 누리호는 개발 착수 11년 여 만인 지난해 10월 21일 1차 발사했지만 아쉽게도 궤도진입을 못했지요. 그 누리호가 15일 2차 발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1차 발사 때 나타난 문제점 외에 다른 문제는 없다고 하는군요. 8월에는 달 궤도선도 발사됩니다. 성공하면 우리 손으로 만든 궤도선이 달을 도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죠. 이에 발 맞춰 새 정부는 국정과제로 한국형 나사(NASA·미 항공우주국)인 항공우주청 신설할 계획입니다. 아직은 정부조직법 개정도 되지 않은 상태고, 넘어야할 산도 많지만 누리호 2차 발사가 성공하면 추진에 탄력을 받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왜 우리는 기술 개발보다 아직 설립도 되지 않은 항공우주청 유치전에 더 관심을 갖는 걸까요. 항공우주청 유치 전에는 대전과 경남 사천이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천은 항공우주 기업들이 많고, 대전은 KAIST, 항공우주연구원 등 연구기관이 많아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데 서로 자신들이 최적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만 지난달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사천 손을 들어준 바 있지요. 이를 근거로 사천시는 전국노래자랑 사천시 편 포스터에 ‘항공우주청 사천 설치 확정 기념’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지자체들의 우주청 유치 전을 보다가 문득 자타가 공인하는 항공우주분야의 최고봉인 미국 나사 본부는 어디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영화에서 늘 “여기는 휴스턴”이란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나사 본부가 당연히 관제센터가 있는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나사는 대통령 직속 기관이란 특성상 워싱턴D.C.에 본부가 있더군요. 메리 W. 잭슨 나사 헤드쿼터 빌딩(Mary W. Jackson NASA Headquarters building)이라고 불리는데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로 유명한 흑인 여성 공학자인 메리 W. 잭슨의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나사 본부와 휴스턴 관제센터(정식 이름은 존슨 우주 센터)는 직선거리로 1962km입니다. 아폴로 11호가 발사된 케네디 우주센터는 플로리다 케이프 커내버럴에 있습니다. 나사 본부와는 직선으로 1209km 떨어져있고, 나사의 연구를 진행하는 제트추진연구소는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북쪽 칼텍에 있습니다. 워싱턴과 LA입니다. 굳이 거리를 설명해야할까요? 3700km입니다. 앨라바마주 헌츠빌에 있는 마셜 우주비행센터는 그나마 좀 가깝(?)군요. 969km네요. 우리 지자체들이 주장하는, 가까이 있어야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주장이 맞다면 나사의 본부 위치선정은 최악인 것 같습니다. 지역 불균형은 점점 더 심화되고, 뾰족한 경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도 부족한 지자체가 정부 기관을 하나라도 더 유치하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본질은 제대로,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항공우주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이제 지방선거도 끝났고, 며칠 후 누리호 2차 발사가 성공하면 본격적으로 항공우주청 설립 논의가 시작될 것입니다. 당연히 우주청의 목표와 역할, 세부 기능 등이 순차적으로 정리되겠지요. 우주청의 입지는 이런 상위 개념들이 먼저 정해진 후에 그 기능을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찾아 정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 합니다. 인터뷰 마지막에 이상률 원장에게 40년 가까이 우주개발 분야에서 일했는데 가장 아쉬운 게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 원장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가 대체로 추격형 대형 프로젝트를 많이 하다보니 30~40년 뒤를 준비하는 게 굉장히 부족했다”고 말하더군요. 당장은 써먹지도 못하고, “뭐 그런 걸 하고 있어?”라는 말을 듣더라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지금은 생각도 못하는 것에 예산과 인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남들이 닦아놓은 길만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앞으로 인류가 가야할 길’이라고 이정표를 제시하고 맨 앞에서 덤불을 헤쳐 가며 길을 내는 역할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칼 세이건은 저서 ‘코스모스’에서 “‘우주라는 바다’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우리가 이 바닷가에 서서 스스로 보고 배워서 알아낸 것이다. 직접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것은 겨우 발가락을 적시는 수준이었다. 아니, 기껏해야 발목을 물에 적셨다고나 할까”라고 했습니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더 빨리 첨벙첨벙 뛰어 들어가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정치와 지역 이기주의 때문에 본질적이지도 않은 청사 유치 전에 발목이 잡혀 국가적 에너지를 소모한다면 너무 안타까울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워싱턴 D.C 나사 본부와 휴스턴 관제센터 간의 거리는 1962km입니다. 서울과 대만 타이베이는 1483km지요. 윤석열 대통령이 항공우주청 입지 결정 때 왜 나사가 본부를 워싱턴에 뒀는지 깊이 참고해 결정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공정이란, 부당한 일이 벌어졌을 때 공동체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시시비비를 가려 주는 것이다. 그런데 공동체가 정당한 절차는 고사하고, 되레 나의 말을 필요한 부분만 떼어서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다면? 최근 자신의 당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한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27)는 “피해 호소 당일 당 대표가 사실상 상황을 종료했다”며 “이후 6개월이 지나도록 진상조사도 없었다”고 말했다.》 ―진상조사를 안 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진상조사를 하려면 담당 기구가 있어야 하고, 제가 출석해 공식적으로 진술을 해야 하잖아요. 양측 주장의 사실관계도 확인하고요. 그런 과정은 없었어요.” ―이동영 당 수석대변인은 사실관계를 면밀히 파악했다고 브리핑까지 했는데요. “성폭력이 벌어진 다음 날인 작년 11월 21일 배복주 당 젠더인권특별위원장에게 성폭력을 알리면서 지도부 회의를 요청했어요. 그 다음 날 열린 회의에서 피해 사실을 말했는데 그건 진상조사가 아니잖아요. 여영국 당 대표는 그 자리에서 ‘이 일은 공식 절차를 밟지 않고, 다만 다음에 또 이 같은 일이 일어나면 그때는 절차대로 처리하겠다. 내가 해당 위원장에게 엄중 경고하겠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피해 호소 당일에 사실상 종결됐다는 말입니까?) “그런 셈이죠. 그런데 사실관계를 면밀히 파악했다니….” ―그렇게 처리하면 안 된다고 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당시 심상정 대선 후보, 이정미 전 당 대표도 있었는데요. “심 후보는 중간에 자리를 떠서 잘 모르겠는데… 별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나, 참 심각하다 이런 정도의 반응만 있었고….” (당신은 왜 그때 반발하지 않았습니까.) “두려워서… 대선을 앞두고 있던 때라 저 때문에 선거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말을 들을 게 두려웠어요.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건 때도 괜히 문제를 제기해서 당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되레 피해자(장혜영 의원)를 탓하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장혜영도 그러더니 강민진도 저러네, 그것도 대선을 앞두고… 그런 말을 듣는 게 두려웠어요. 더 이상 문제 제기를 했다가는 정의당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미안한 얘기지만 왜 6개월이나 지난 지금 공개한 겁니까. “살고 싶어서… 더 이상 가슴에 묻고 얘기하지 않으면 마음이 터져서 죽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살려고 말했어요.”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까.) “힘들어질 수 있지만 그것도 일단 살아야 걱정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때는 당이 제가 피해 사실을 공개한 바로 다음 날(이달 17일) 2차 가해가 난무한 입장문을 발표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정의당에서는 이제 저를 거의 끝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요.” ―심상정 류호정 의원 등은 함께 나서줄 만도 한데…. “아직…. 그런 건 없었어요. 지금은 2차 가해 발언보다 차가운 침묵이 더 무서워요.” (차가운 침묵?) “적극적으로 2차 가해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성폭력 아닌데 허위 주장한다고도 하고, 또 정치적 의도 때문에 저런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더 많은 당내 분들은… 침묵이에요.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당 홈페이지에는 즐거운 선거운동 사진만 있고. 이제는 뉴스도 많이 안 나오니까 이러다 보면 지나갈 거라 생각하나 봐요.” ―당 대변인은 당신이 성폭력이 아니라고 했다고 브리핑을 했던데요. “저는 성폭력이 아니었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지도부 회의에서도 가해자가 제 허벅지 안쪽을 만졌고, 피하려고 (밖으로) 나오니까 계속 따라왔다고 분명히 말했어요. 이게 성폭력이 아니면 뭔가요? 성폭력이 아니면 제가 왜 지도부 회의를 요청했겠어요. 그런데 이달 16일 제가 페이스북에 성폭력 피해를 공개하자 바로 다음 날 당 대변인이 긴급 브리핑을 하더군요. 이 사건이 가해자가 제 옆자리에 앉는 과정에서 저를 밀치면서 일어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었다고요.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가해자가 쓴 말이에요. 가해자의 용어를 당이 대신 쓰다니… 그리고 언론에 가해자의 사과문을 배포했어요. 그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다시 물어서 미안한데, 그럼 당은 왜 그렇게 말하는 겁니까. “가해자가 제 허벅지를 만져서 당황해하고 있는데 마침 다른 여성 청년분이 옆자리로 왔어요. 그분도 당할까봐 안 들리게 ‘지금 내가 이런 일을 당했는데 설마 성적인 의도는 아니겠지만 당신도 조심해라’라고 얘기해줬어요. 다음 날 배복주 위원장과 통화하면서, 내가 어제 사건 당일은 너무 당황해서 성적 의도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려 애썼는데 오늘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충격적이고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고 했어요.” (그럼 당이 당신이 옆자리로 온 여성에게 했다는 말만 가지고 판단했다는 겁니까.) “그런 것 같아요.” ―당은 공식 절차 대신 경고와 서면 사과로 조치한 것도 당신 요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만. “좀 말장난 같은데… 배 위원장과 통화할 때 가해자에게 분명한 경고와 제지가 필요하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표현을 쓰기는 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치할지는 지금 판단이 잘 안 서니 당이 함께 고민해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지요. 지도부 회의도 그런 차원에서 요청한 것이고요. 그런데 그건 당이 공식적인 절차는 밟지 않아도 되고, 당 대표가 구두로 경고해 달라는 의미가 아니잖아요.” ―사과문은 왜 받은 겁니까. “…지도부 회의가 끝난 뒤 가해자에게 계속 전화와 문자가 왔어요. 사과하겠다고. 당에서 연락을 한 모양이에요. 너무 놀라서 배 위원장에게 지금 너무 힘드니까 연락이 안 오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배 위원장이 당 대표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가해자에게 사과문을 받고 제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틀 후인가? 배 위원장이 사과문을 전해줘서 받았어요. 그리고 그냥 수용한다고 했어요.” (마치 용서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한테 가해자 사과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다시는 그 사람을 보고 싶지도, 그 사람으로부터 무슨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빨리 잊고만 싶었던 상황이라 사과문을 받아서 더 이상 연락이 안 올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한 거죠. 그래서 사과문 내용이 뭐든지 상관없었어요.” ―정리하면 진상조사 없이 피해 사실을 들은 그날 당 대표가 상황을 정리했고, 6개월간 아무 조치가 없다가 이달 16일 폭로하자 작년에 했던 말 중에 필요한 부분만 따서 성폭력은 없었다고 했다는 말입니까. “저는 당 대표가 개인적으로 가해자에게 경고해 달라고, 또 사과문을 받으면 끝내겠다고 한 적이 없어요. 당 입장문을 보면 피해자인 제가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는 다 삭제되고 가해자의 목소리만 남겨둔 것 같아요.” (혹시 수사 의뢰 생각은 안 했습니까.) “일단 당 안에서 해결하려고 했으니까요. 만약 가망 없다면 다른 방법도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당신이 당에 바랐던 건 뭡니까. 당신이 알던 정의당이 아니라고 했던데요. “제가 바랐던 건, 지도부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해줬으면 하는 것이었어요. 피해자의 충격과 두려움, 문제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랐지요. 그런 뒤에 가해자를 어떻게 조치할지에 대해서는 함께 고민하고, 또 당의 전반적인 문화를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지도 모색하는…. 그런데 되레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공감은 한 방울도 없고, 오히려 성폭력이 아니라고 가해자를 옹호하니….” ―정의당이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이유가 뭡니까. “안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의당에는… 외부에 알려져 논란이 되면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겨 꼬리를 자르고, 밖으로 안 알려지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그런 악순환이 있어요. 제 문제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안들 중에도 그런 게 많아요.” ―지금 제일 아픈 게….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회운동을 했고 그게 정치까지 이어졌는데… 세상에는 이해관계보다 옳은 것, 진실 이런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언젠가는 그런 사람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게 제가 정의당에 들어간 이유지요. 그게 흔들리니까…. 제가 더 정치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여성 청년 정치인들에게는 더 이상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해요.” 강민진(27) 10대 때부터 청소년 인권 운동가로 활동한 청년 여성 정치인. 2015년 정의당에 입당한 뒤 청년대변인을 맡았고, 지난해 3월 당 내 당인 청년정의당 대표에 선출됐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지난 12일 인터뷰를 위해 이봉주 선수를 만났을 때 사실 속으로 좀 놀랐습니다. 2년이 넘게 근육긴장이상증이란 희귀질환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쾌활했기 때문이죠. 근육긴장이상증은 의지와 관계없이 근육이 수축하여 뒤틀리거나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질환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배 쪽 근육이 계속 잡아당기는 바람에 허리를 펴기 힘든 상태지요. 이 선수를 인터뷰 한 것은 그 자신이 투병 중인데도 불구하고 지난달 20일 장애인의 날에 봉사활동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히려 아픈 뒤에는 전처럼 자주 못가 되레 미안한 마음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파 보니까 몸이 불편하다는 게 어떤 건지 더 피부로 와 닿았다고 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인생 자체가 한 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회 100m 달리기에서 한 번도 상을 받은 적이 없는, 평발에 짝발인 아이. 목장 주인이 되고 싶어 들어갔던 농고에서 친구 권유로 우연히 시작한 달리기 특별활동. 제대로 배우고 싶어 1년을 꿇고 다른 학교로 재입학. 1년 만에 재정난으로 육상부가 없어져 다른 학교로 다시 전학. 3초 차이로 놓친 올림픽 금메달.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무소속으로 뛴 세계대회에서 한국 신기록 수립. 44회 출전에 41회 완주한 국민 마라토너. 은퇴 후 찾아온 희귀병…. 우리는 마라톤을 자주 인생에 비유합니다. 그래서인가요? 그가 선수 시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인생과 마라톤의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라고 합니다. 그런데 참… 저도 기자지만 20~30대 젊은 선수에게 ‘인생’에 대해 묻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선수도 그러더군요. 그 나이에 자신이 인생에 대해 뭘 알겠느냐고요. 그런데 나이도 들고, 은퇴도 한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마라토너가 자신만의 마라톤을 완성하는 것처럼 인생도 그러한 것 같다고요. 그는 마라토너는 순위가 결정되고, 자신의 기록 경신에 실패한 후라도 레이스를 멈추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등수와 기록이 전부라면 금메달이 결정되고, 기록 경신에 실패한 순간 레이스를 멈춰야하지만 그런 마라토너는 없다는 것이죠. 그는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작은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마라토너에게는 레이스 하나하나가 그 작은 일들이고, 완주는 그 싸움에서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라톤의 진정한 승자는 1등이 아니라 완주자고, 지금 힘들지만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44번 출전에 41번 완주는 삶과 마라톤에 대한 그런 생각과 자세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라톤은 대회 준비에만 3~4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1년에 두 번 이상 출전하기가 힘들다고 하는 군요. 44회 출번이면 22년 동안 한결같이 몸 상태를 유지했다는 의미입니다. 보통 마라톤 선수들이 평균 15회 정도 출전하면 은퇴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죠. 그는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3초 차이로 은메달에 그친 것이 오히려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이 됐다고 했습니다. 그때 금메달을 못 땄기 때문에 계속해서 목표를 높게 잡고 뛸 수 있었다는 것이죠. 만약 당시에 금메달을 땄으면 선수 생활을 훨씬 빨리 그만뒀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그는 술을 마셔도 대리운전을 부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차를 두고 간 뒤 아침 해장마라톤으로 가지러 갔다는 군요. 유럽 신혼여행 때도 새벽에 에펠탑 주위를 뛰었고요. 부상이나 상중이 아니면 매일 새벽 달리기를 안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물론 그도 사람이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어떨 때는 달리는데 누가 넘어뜨려 주지 않나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는 군요. 그만큼 힘든 과정을 이겨냈기에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니 인생과 마라톤은 확실히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인생이라는 경주에 나선 우리들도 등수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마라톤을 완주해야 한다는 것이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마라톤이라는 종목이 금메달이 결정되고, 세계신기록 수립이 실패한 순간 모든 선수들이 그 자리에서 레이스를 중단하는 경기였다면 우리가 과연 마라톤에 대해 지금과 같은 경외심을 가질까 하는 것이죠.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전승이 짜릿한 것처럼 힘든 걸 극복하고 이겨냈을 때 더 살만하지 않겠습니까. 이봉주 선수가 하루빨리 쾌차해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