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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멘토’로 잘 알려진 혜민 스님을 최근 만날 기회가 있었다. 4년 만에 나온 그의 신작 에세이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이 계기가 됐다. 책 얘기도 듣고 지난해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에서 운영 중인 ‘마음치유학교’도 둘러봤다. 수년 전부터 서로 종종 안부를 전하곤 했는데 이 공간은 한사코 구경시켜 주지 않아 내심 섭섭했다. 스님 책의 삽화를 그려줘 인연을 맺은 화백의 그림을 빼면 별 장식이 없는 소박한 공간이었다. 이른바 홍보란 것도 해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아니냐, 따지듯 물었더니 스님은 “방송 출연이다 책이다 해서 얼굴이 알려져 조금만 소문내도 내실 없이 시끄럽다. 요란스럽기보다는 부족한 것을 하나하나 차분히 채워가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윽고 자리를 옮겨 오랜만에 스님이 한 턱 내는 점심을 막 시작할 참이었다. 책의 추천사를 쓴 이해인 수녀에 대해 묻자 스님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모 수녀님’이 과분한 글을 써 주셔서 너무 좋아요.” “이모 수녀요?” “서로 ‘조카 스님’ ‘이모 수녀님’, 이렇게 불러요.” 이들은 4년 전 한 일간지의 주선으로 대담을 나눈 뒤 자연스럽게 이렇게 부르게 됐다고 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해인 수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언제나 불러도 따뜻하고 친근한 속세의 이모처럼 느껴졌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이후 두 사람은 자신이 관련된 행사에 서로를 초대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수시로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안부를 나누고 있다. 불교와 가톨릭의 다른 구도자이지만 의외로 닮은 점이 많다. 독신으로 살아간다, 자신을 내려놓는 하심(下心)의 삶을 산다, 공동체 생활을 꾸려가야 한다…. 글을 쓴다는 공통점도 있다. 스님이 쓰지 않은 글이 스님 것인 양 인터넷에 나돌아 상심하고 있을 때였다. 스님은 “조카 스님, 나도 모르는 내 시가 40편도 넘어요”라는 이모 수녀의 말에 동병상련의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종교인들의 격의 없는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다. 과거 김수환 추기경과 강원용 목사, 월주 스님의 교류는 아름다운 동행의 대표적 사례였다. 이들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에 금 모으기 운동에 함께 나섰고, 사회적 갈등이 있을 때마다 어른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의 통합과 화해를 촉구했다. 만약 한쪽의 목소리만 전해졌다면 진보 또는 보수의 목소리로 치부될 수도 있었다. 김 추기경과 법정 스님이 각각 길상사와 명동성당을 찾은 것도 당시로서는 종교를 뛰어넘는 거인의 행보였다. 2년 전 천주교 춘천교구장을 지낸 장익 주교와 비구니 정목 스님의 만남도 기억이 난다. 당시 스님이 노(老)주교에게 “절집의 큰 어른 스님 같다”고 하자, 장 주교는 “오늘 스님들과 옷 색깔 좀 맞췄다”며 웃었다. 부녀의 상봉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종교계의 마당발’로 불리며 인명진 목사, 세영 스님 등 다른 종단의 성직자와 잘 어울리는 홍창진 신부의 말이다. “어느 집단이든 같아요.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있으면 스스로를 신비화하면서 귀는 닫고 고집은 세집니다. 반면 이웃 종교인들을 만나면 부족한 점을 느끼고 다른 장점들을 배우게 됩니다.” 자비와 사랑을 얘기하는 종교인들에게 아름다운 동행은 시대적 과제다. 그 동행은 같아지라는 게 아니다. 다르기 때문에 그 화합의 하모니가 우리 사회에 주는 울림이 더 큰 것 아닐까.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얼마나 정겨운가. ‘이모 수녀님, 조카 스님!’김갑식 문화부장 dunanworld@donga.com}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91세로 타계한 배우 백성희 씨의 12일 영결식에서는 소리꾼 장사익의 애절한 목소리에 실려 ‘봄날은 간다’가 울려 퍼졌다. 고인이 연극 ‘3월의 눈’에서 연기했던 이순이 흥얼거리던 노래이자 고인의 애창곡이다. 그는 88세에도 무대에 섰던 ‘연기의 정석’이자 우리 연극계의 산증인이었다. 빈소를 지키던 후배 손숙은 “불과 얼마 전 요양병원에 계신 선생님을 뵈러 갔을 때만 해도 뽀얗게 분을 칠하고 립스틱을 바른 얼굴로 맞아줬다”며 “여배우로서 자존심이 강한 분이었기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고 전했다. 그의 회고와 대담 등을 엮은 책 ‘백성희의 삶과 연극, 연극의 정석’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두 편의 영화 출연을 ‘일탈’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연극이 영화보다 나은 예술이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연극만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 영화들이 ‘유전의 애수’, 또 한 작품이 ‘봄날은 간다’라는 게 공교롭다. 10일에는 영국의 세계적인 팝스타 데이비드 보위가 69세로 세상을 떴다. 중고교 때 그의 음악과 모습에서 느낀 생소함과 충격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는 센세이셔널한 패션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결합한 글램 록의 창시자로 시대를 앞서갔다. 평생 애창곡이 서너 곡인 음치가 받아들이기에 그는 너무 먼 존재였다. 그렇게 기억에서 사라졌던 보위는 “18개월간 암과 용감하게 싸운 끝에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는 외신의 한 문구와 함께 내게 돌아왔다. 그의 말년은 치열했다. 2014년부터 암과 싸운 그는 죽기 이틀 전 새 앨범을 내놓기도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지나갔다. 그는 코앞에 죽음이 다가왔다는 것을 예측했을까, 그렇다면 그 짧은 인생의 봄날을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보냈을까. ‘의학계의 시인’으로 불리다 2015년 82세를 일기로 타계한 올리버 색스의 고백은 그 마지막 순간에 대한 또 하나의 추측이 될 수도 있다. 그해 2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그는 안암(眼癌)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이렇게 썼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출 순 없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이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한평생을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한 특혜이자 모험이었다고 느껴진다.” 최근 출간된 그의 자서전 ‘온 더 무브’는 동성애와 약물 남용, 안면인식 장애 등 여러 위기와 좌절을 인생의 봄날로 바꿔 갔던 삶을 보여준다. 그는 혼자서 봄기운을 즐긴 게 아니라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 싸웠다. 이 기록은 자서전류에서 흔히 발견하는 상투적인 과장이나 미화가 빠진 대신 소박함과 솔직함으로 가득하다. 때로 뉴욕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채 차를 한잔 나누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바람 때문일까? 당신의 봄날은 어느 때였나, 흔들리는 인생의 배에 닥친 위기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나,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싶다. 유행가 가사처럼 예전엔 몰랐다. 90세가 넘었지만 후배와 만나면서 분을 바르고 립스틱을 칠하는 노배우의 마음을 몰랐다. 자신의 굴곡 많은 삶을 아름다운 행성에서 누린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으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몰랐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하는 이 구절이 가슴에 와서 콕콕 박힐 줄 몰랐다.김갑식 문화부장 dunanworld@donga.com}

짧은 곱슬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 담갈색 눈과 수염…. 25일 성탄절을 앞두고 최근 외신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예수의 얼굴입니다. 이 모습은 10여 년 전 영국 B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신의 아들’에 사용된 것입니다. 영국 법의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리처드 니브가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 발굴한 3개의 셈족 두개골을 토대로 컴퓨터단층촬영과 디지털 3D 기법을 통해 얼굴의 골격을 재현한 것입니다. 이 유골의 주인공들은 예수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방송인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얼굴을 올리면서 새삼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니브가 복원한 것은 정확하게는 예수가 아니라 그 시기에 살았던 누군가의 모습이죠.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부활했고, 현재까지 예수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는 보고도 없으니까요. 외신에 따르면 니브의 복원 과정에는 두개골뿐만 아니라 당시 시대적 상황도 반영됐습니다. 비교적 검은 피부는 예수가 30세가 될 때까지 목수로 대부분 옥외에서 일했기 때문이고, 수염은 당시 유대인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유골 주인공의 키는 약 1.5m, 몸무게는 50kg 정도로 추정됩니다. 올해 4월 교황청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지고 나서 부활하기 전까지 시신을 감쌌던 수의로 알려진 이른바 ‘토리노의 성의(聖衣)’를 3개월여 동안 공개했습니다. 당시 세계 각지에서 인터넷 관람 신청만 100만 건 이상이었다고 하네요. 이 성의는 종교와 과학계의 오랜 논쟁 대상으로 존재해왔습니다. 1898년 이탈리아 아마추어 사진가가 성의에서 발견한 상처투성이 남성의 형상을 예수의 모습으로 믿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 형상은 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움푹 들어간 눈 등 종교적 예술품에서 묘사한 예수와 비슷합니다. 1988년 과학자 21명은 탄소연대측정법을 통해 이 성의를 1260∼1390년 것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그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교황청은 성의에 찍힌 얼굴이 실제 예수의 얼굴인지 등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지만 소중한 성물(聖物)인 것은 분명하다는 견해를 유지해왔습니다. “저는 사실 거장들의 명화에 나오는 서구형 미남 스타일의 ‘얼짱 예수님’보다는 평범한 BBC 쪽 예수님이 훨씬 맘에 듭니다.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와서 큰 사랑을 베푼 것이 바로 그분의 삶이었으니까요.”(천주교 대전교구 홍보국장 한광석 신부) 그의 말처럼 교계에서는 이단의 가능성이 있거나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는 한 해당 교회가 속한 지역의 다양한 예수 형상을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종종 검은 예수상을 만나기도 합니다. 당신이 그리는 예수는 어떤 모습인가요? 물론 ‘외모’야 둘째겠죠. 성탄절을 앞두고 그의 마음을 만나길 기원합니다. <끝>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짧은 곱슬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 담갈색 눈과 수염…. 25일 성탄절을 앞두고 최근 외신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예수의 얼굴입니다. 이모습은 10여 년 전 영국 B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신의 아들’에 사용된 것입니다. 영국 법의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리처드 니브가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 발굴한 3개의 셈족 두개골을 토대로 컴퓨터 단층촬영과 디지털 3D 기법을 통해 얼굴의 골격을 재현한 것입니다. 이 유골의 주인공들은 예수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방송인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얼굴을 올리면서 새삼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니브가 복원한 것은 정확하게는 예수가 아니라 그 시기에 살았던 누군가의 모습이죠.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부활했고, 현재까지 예수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는 보고도 없으니까요. 외신에 따르면 니브의 복원 과정에는 두개골 뿐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상황도 반영됐습니다. 비교적 검은 피부는 예수가 30세가 될 때까지 목수로 대부분 옥외에서 일했기 때문이고, 수염은 당시 유대인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유골 주인공의 키는 약 1.5m, 몸무게는 50㎏ 정도로 추정됩니다. 지난 4월 교황청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지고 나서 부활하기 전까지 시신을 감쌌던 수의로 알려진 이른바 ‘토리노의 성의(聖衣)’을 3개월여 동안 공개했습니다. 당시 세계 각지에서 인터넷 관람 신청만 100만 건 이상이었다고 하네요. 이 성의는 종교와 과학계의 오랜 논쟁의 대상으로 존재해왔습니다. 1898년 이탈리아 아마추어 사진가가 성의에서 발견한 상처투성이 남성의 형상을 예수의 모습으로 믿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 형상은 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움푹 들어간 눈 등 종교적 예술품에서 묘사한 예수와 비슷합니다. 1988년 21명의 과학자들은 탄소연대측정법을 통해 이 성의를 1260~1390년 사이의 것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그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교황청은 성의에 찍힌 얼굴이 실제 예수의 얼굴인지 등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지만 소중한 성물(聖物)인 것은 분명하다는 견해를 유지해왔습니다. “저는 사실 거장들의 명화에 나오는 서구형 미남 스타일의 ‘얼짱 예수님’보다는 평범한 BBC쪽 예수님이 훨씬 맘에 듭니다.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와서 큰 사랑을 베푼 것이 바로 그 분의 삶이었으니까요.”(천주교 대전교구 홍보국장인 한광석 신부) 그의 말처럼 교계에서는 이단의 가능성이 있거나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는 한 해당 교회가 속한 지역의 다양한 예수의 형상을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종종 검은 예수상을 만나기도 합니다. 당신이 그리는 예수는 어떤 모습인가요? 물론 ‘외모’야 둘째겠죠. 성탄절을 앞두고 그의 마음을 만나길 기원합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종교계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가 적었던 올해 말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위원장의 조계사 은신은 ‘정치적 소도(蘇塗)’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문화재계에서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경주 월성 발굴이 시작됐고, 일각에서 최고(最古) 금속활자라고 주장해온 ‘증도가자(證道歌字)’ 일부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조사 결과 가짜로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 종교, 성역인가?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본산인 조계사에는 한 위원장이 10일 자진 퇴거할 때까지 25일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한 위원장은 조계사 측의 자제 요청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는 등 종교시설을 정치투쟁의 거점으로 이용했다. 경찰이 9일 한 위원장 체포에 나서 2002년 발전노조 조합원 체포 이후 13년 만에 경찰의 종교시설에 대한 공권력 투입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자승 총무원장 요청으로 하루 뒤 한 위원장의 자진 퇴거로 사태는 수습됐지만 조계종은 여러 숙제를 안게 됐다. “시대가 달라졌는데 종교단체와 민노총만 착각하고 있다”는 비판적 여론이 많았다. 공식적인 창구 역할을 했던 화쟁위원회 측은 “한 위원장이 다시 와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식의 입장을 내놓고 있어 사태의 재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탈법적인 한상균 은신과 약방의 감초 식으로 사회 문제에 개입해 온 화쟁위 활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태 이후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은 “조계사 차원의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불렸던 명동성당 측은 2000년 한국통신 노조의 농성 이후 “더 이상 점거집회나 천막농성을 방관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시대가 달라졌음을 확인했다. 종교인 과세 문제도 오랫동안 끌어온 ‘종교=성역’ 논란의 하나였다. 국회는 2일 본회의에서 종교인 과세를 명문화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세법상 ‘기타소득’ 항목에 종교인 소득을 추가한 것으로 2018년부터 종교인 개인 소득에 대해 구간별 6∼38%의 세율로 세금을 부과한다. 개신교의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사실상 세무사찰이 가능하다는 비판이 나와 실제 과세까지는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예상된다. ○ 물꼬 트인 종교계의 남북 교류 불교와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천도교 등 국내 7대 종단이 회원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11월에 2011년 이후 4년 만에 북한을 찾아 남북 종교인 모임을 진행했다. 조계종은 10월 금강산 신계사 낙성 8주년 기념 조국통일 기원 합동법회를, 천태종은 11월 개성 영통사에서 복원 10주년 기념 남북 불교도 합동법회를 봉행했다. 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는 1∼4일 북한에서 조선가톨릭교협회 관계자와 면담해 교류 방안을 논의했다. 위원회는 내년 부활절에 평양 장충성당 사제 파견을 추진하는 등 북측과 매년 정기적으로 미사 봉헌이 이뤄질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해는 국내 개신교의 씨앗을 뿌린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한국 땅을 밟은 지 130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하는 교단 또는 연합 행사가 잇달아 열렸다. 8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평화통일기도회가 개최됐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 연합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최근 성소수자 문제를 다룬 책 ‘우리들의 차이에 직면하다’를 출간해 개신교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 책은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총무를 지낸 앨런 브래시 목사가 펴낸 것으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진실한 논의와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김영주 NCCK 총무는 17일 간담회에서 “NCCK는 성소수자와 관련해 특정 입장을 두둔할 수 없다”며 “교단별로 다른 신학적 입장을 토론의 장으로 끌어내려면 이 정도 수준의 책은 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국내 발간 취지를 설명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 등 다른 개신교 연합단체들은 동성애에 대해 강하게 반대해 왔다. 일각에서는 이 책자의 발간을 동성애에 대한 NCCK의 관대한 입장으로 해석하고 있어 갈등도 예상된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성탄절을 앞두고 17일 종교 지도자들의 성탄 메시지가 이어졌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이날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리 죄악과 증오, 폭력이 기승을 부린다고 해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화해와 용서의 실천을 통해 한 가족이 되는 길을 가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김영주 총무의 메시지를 통해 “모두를 화해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평화가 이 땅의 모든 상처를 싸매어 주기를 기원한다”며 “넘치는 사랑의 은혜로 모든 이의 혐오와 분노를 녹이시고 우리 사는 세상에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져 이 땅에도 새로운 삶의 희망이 넘쳐 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마지막으로 떠나면서 우리 모두에게 남겨준 유산이 많습니다. 굽히지 않는 용기와 포용, 화해와 통합의 정신은 우리 현실의 개신교도 꼭 배워야 할 큰 가르침입니다.” 지난달 26일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에서 하관 예배를 집례한 고명진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59)의 말이다. 최근 이 교회에서 그를 만났다. 》―어떻게 하관 예배를 집례하게 됐나요. “유족들이 YS와 평소 가깝게 지낸 원로목사(김장환 목사)께 국가장 중 개신교 부분은 모두 맡긴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국회 장례식은 주로 원로급 목회자들이 참여하고, 하관 및 부활대망예배 쪽은 그래도 ‘젊은’ 제 몫이 됐네요. 하하” ―YS 생전에 어떤 인연이 있었습니까. “YS는 대통령 퇴임 뒤 상도동 자택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매년 한두 차례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가장에서도 노제가 생략됐는데 평소 경호 문제 등으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걸 싫어했습니다.” ―YS는 개신교 장로이기도 했는데요. “신앙의 뿌리가 깊은 분이었죠. 그분 어록 중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어떤 역경과 고통이 와도 이겨내겠다는 신앙관이 깔려 있습니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돼 있는 교회에는 평일이었음에도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평일에 사람 많은 교회는 오랜만에 본다”고 하자 그는 “공간 크기에 비해 효율이 가장 떨어지는 곳들이 어딘지 아세요”라고 되물었다. 기자가 머뭇거리자 그는 “교회와 기도원, 성당, 사찰…”이라며 웃었다. ―너무 솔직한 말 아닌가요.(웃음) “사실이 그런데요 뭐. 그래서 교회가 잠시도 노는 공간이 되지 않도록 교육과 복지 활동이 쉴 새 없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와 관련된 산하 기관이나 활동에는 ‘예닮’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다. 2017년 3월 개교가 목표인 가칭 ‘중앙예닮학교’는 다양한 이유로 기존 학교를 벗어난 탈(脫)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중학교 6개, 고교 12개 학급 규모로 장애 학생과의 통합 교육도 계획하고 있다. ―예닮은 무슨 뜻인지요. “우리 교회 목표 중 하나가 ‘예수님 닮게 살아라’입니다. 저도 그렇게 살기를 희망하는 목회자 중 한 명이고요. 명품, 귀족학교는 누구나 운영하려고 하지만 탈학교 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습니다. 수원에서만 한 해에 1400여 명, 전국적으로 6만여 명의 학생이 학교를 포기합니다.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곳은 종교 시설밖에 없습니다. 한 교회 차원에서 벅찬 일이지만 우리 사회와 미래를 위한 노력입니다.” ―개신교의 배타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2013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사회봉사 활동을 가장 많이 하는 종교’라는 조사에서 개신교가 41.3%로 1위였습니다. 가톨릭과 불교는 각각 32.1%와 6.8%였고요. 그럼에도 교회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차갑기만 합니다. 한마디로 ‘예수는 오케이(OK), 개신교는 노(No)’인 셈이죠.” ―그 원인은 뭡니까.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는 일을 못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 특히 개신교 신앙이 없는 불신자(不信者)들을 위한 일을 하면 됩니다. 매주 일요일은 물론이고 평일 새벽에도 나오는 ‘열성 당원’들이 세상에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럼에도 세상을 못 바꾸는 것은 우리들의 기도와 노력이 나와 가족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 기도가 세상으로 향해야 합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제2의 한상균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조계사 차원의 매뉴얼을 만들겠다.” 10일 오전 서울 우정국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에서 만난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58·사진)은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 체포 직후 “조계사를 걱정스럽게 지켜본 국민들께 죄송하고 앞으로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의 주지이자 총무원 서열상 2인자 격인 총무부장을 겸임하고 있는 지현 스님은 “제 말이 종단 입장으로 해석될 수 있어 그동안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은 물론 언론과도 일절 접촉하지 않았다”며 입을 열었다. 지현 스님은 이날 동아일보 기자 등과 함께 한 위원장의 체포 과정을 TV 중계로 지켜봤다. 지현 스님은 “일단 이번 사태는 수습됐지만 앞으로가 중요하다”며 “이번처럼 충분한 검토 없이 누군가 사찰에 들어오고, 눌러앉고, 정치투쟁을 벌이면 대책이 없다. 엄격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뉴얼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모으겠다는 입장이다. ▼ “몸싸움때 옷 벗고는 신도 폭력으로 몰아” ▼ 한 위원장이 자진 퇴거 약속을 거듭 어기고, 조계사 신도회를 폭력집단으로 매도한 과정을 얘기할 때 스님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스님은 “지난달 30일 자진 퇴거 약속을 어겨 신도회와 한 위원장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한 위원장이) 스스로 옷을 벗고 팬티 바람으로 버텨 연로한 여성 보살(신도)들이 기겁을 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런데 이 과정을 도리어 조계사 신도회 폭력으로 몰면서 진상 조사를 주장할 때는 기가 막히더라”고 했다. 이어 “그래도 원만한 수습을 위해 나 자신과 종무원들에게 참을 인(忍), 인내를 거듭 강조했는데, 한 위원장이 페이스북에 ‘유폐’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자신을 보호해준 종단 모습이 자본과 권력의 행태와 같다고 비난할 때는 수행자 입장에서도 참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스님에 따르면 한 위원장과 합의한 조계사 퇴거 시한은 최초로 지난달 30일에서 2차 민중 총궐기 대회 이후인 6일, 다시 9일로 바뀌었다. 한 위원장이 합의했지만 이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지현 스님은 “한 위원장 스스로 노동자를 대표하는 ‘장수’라는 표현을 썼는데, 정말 장수답게 신의를 지키고 당당하게 행동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박수를 받지 않았겠느냐”고도 했다. 이날 지현 스님을 만나는 자리에는 총무원 간부 스님 서너 명도 드나들며 TV 중계를 함께 봤다. 이들은 한 위원장이 관음전에서 나와 조계사 대웅전-총무원으로 가는 길 양쪽에 종무원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고 “큰스님도 아닌데 저렇게까지 배려해야 하나“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사고에 대비하는 것 아니냐”등의 얘기를 나눴다. 또 “대웅전 한가운데 문인 어간(御間)으로 한 위원장이 들어가면 안 된다”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이 조계사를 정치투쟁의 장으로 삼았기 때문인지 간부 스님들의 반응은 차가운 편이었다. A 스님은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 유폐됐다고 주장했는데 워낙 거짓말을 많이 하니 출가시켜 절에 살면서 죄 지은 것 갚게 해야 한다”고 했고, B 스님은 “한 위원장과 수시로 만나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조계사 부주지 담화 스님은 나중에 한 위원장 면회라도 가야겠다”고 했다. C 스님은 “관음전에서 일단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면 고개 숙이고 합장하면서 불편함을 끼친 사람들에게 사죄의 예를 취하는 게 맞는데, 주먹질하고 손부터 먼저 흔들고 있다”며 “저렇게 행동하니 미운털이 박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현 스님은 사태를 마무리 짓는 조계사의 공식적인 입장에 대해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은 10일 오전 조계사 대웅전에서 참회의 3배 뒤 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의 총무원장 집무실로 이동해 15분여 동안 자승 총무원장을 비공개로 면담했다. 조계종에 따르면 한 위원장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하자 자승 총무원장은 말을 아끼는 가운데 “고생했다. 잘 마무리해 달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이 “감옥에서도 108배를 계속 하겠다”고 하자 자승 총무원장은 손에 차고 있던 염주를 풀어 한 위원장의 손에 걸어줬다. 자승 총무원장은 한 위원장과 면담을 끝내면서 다시 “인터뷰 잘 마무리해라. 건강 챙기시라”고 덕담을 건넸다. 이 면담에는 조계종 총무부장인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과 화쟁위원장인 도법 스님, 호법부장 세영 스님 등 총무원 간부들과 한 위원장 측 관계자 2명 등 약 20명이 참석했다. 참석자가 많아 밀도 있는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는 후문이다. 한편 한 위원장은 면담 뒤 기자회견 성명 낭독에 앞서 자승 총무원장과의 면담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그동안 종단에서는 많은 불평과 어려움을 감내하면서도 부처님 품에 들어온 2000만 노동자의 아픔을 품어 주셨다”며 “총무원장 스님이 그동안 종단이 전체 노동자의 문제에 전면으로 함께하지 못했고, 오늘을 계기로 정부와 국회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악을 멈추고 민중들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은 “한 위원장 발언은 원장 스님이 아니라 한 위원장이 한 말”이라며 “끝까지 상황을 왜곡하고 있다”고 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조계사의 관음전은 평소 기도처이자 템플스테이 숙소로 활용되는 조용한 공간이다. 하지만 지난달 16일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이곳에 은신한 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10일 한 위원장이 체포된 뒤 관음전은 청소 등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만약에 있을 충돌에 대비해 구름다리를 감시하던 옥상 조명은 오후 2시경 철거됐다. 한 위원장이 체포된 직후인 오전 11시 40분경에는 매일노동뉴스 등 신문이 담긴 쓰레기 포대가 관음전에서 나왔다. ○ “집주인 말도 안 듣는 갑 중의 갑” 이날 오전 10시 7분경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도법 스님과 조계사 부주지 담화 스님 등이 한 위원장의 자진 퇴거에 앞서 관음전을 찾았다. 퇴거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심각했던 이전과 달리 차분했다는 후문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사실상 전날 자진 퇴거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심각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고 향후 계획과 건강에 대한 덕담이 오갔다”고 했다. 하지만 전날인 9일 오후 관음전은 같은 호남 출신인 담화 스님과 한 위원장 사이에 전라도 사투리로 고성이 오가는 등 격앙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날 오후 4시경 관음전 밖에서는 공권력 집행에 나선 경찰과 이를 막는 종무원들 간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시각 담화 스님은 한 위원장을 설득하다 지쳐 “한 사람 때문에 조계사는 물론이고 종단 전체가 이렇게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며 압박했다. 이에 한 위원장은 “(나는) 2000만 노동자의 대표자이니 함부로 거취를 결정할 수 없다”는 논리로 반박했다. 도법 스님이 두 사람을 자제시키며 대화를 이어갔다는 후문이다. 자진 퇴거 시점과 관련해 한 위원장이 거듭 말을 바꾸는 과정을 지켜본 조계사의 한 관계자는 “집 주인인 조계사와의 약속을 3차례나 어긴 한 위원장이 ‘갑 중의 갑’이라며 “(나가기로 약속한) 10일 새벽에도 혹시 마음을 바꿀까 봐 불안해 옆방에서 잤다”고 했다.○ “휴대전화는 목욕탕 들어갈 때에도 비닐에 싸서 가지고 들어가라” 조계사로 들어간 직후 관음전 409호에서 생활하던 한 위원장은 2차 민중총궐기 대회를 하루 앞둔 4일 밤 407호로 방을 옮겼다. 그가 창문을 통해 민노총 관계자들과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본 사찰 측에서 조계사 대웅전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창문이 난 방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한 위원장의 은신 뒤 관음전은 철저히 통제됐다. 건물 내 엘리베이터 사용이 중지됐고, 출입문도 모두 자물쇠로 잠겼다. 직원들 몇 명은 주간에는 외부에서 열어줘야 출입이 가능했고 야간에는 외부와의 출입이 차단됐다. 한 사찰 관계자는 “출입이 번거로워 안에서 직원들이 컵라면을 먹곤 했는데 그걸 두고 (단식 중이던) 한 위원장이 페이스북에 ‘컵라면 고문’이라고 썼다”고 했다. 이세용 조계사 종무실장은 언론과의 거의 유일한 창구가 됐다. 종단이 직접적인 개입을 꺼려 이번 사안을 조계사와 화쟁위원회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어떤 상태라도 전화를 꺼놓으면 안 되고 기자들 전화를 받아라. 목욕탕 들어갈 때에도 비닐에 싸서 가지고 들어가라”는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의 당부까지 있었다. 한 위원장은 은신 초기에는 방에서 노트북을 사용하며 온라인을 통해 투쟁 지침과 서신을 전했다. 하지만 이에 부담을 느낀 사찰 측이 “여기에 피신해 온 것이지 투쟁 지휘소를 설치하러 온 게 아니지 않느냐”며 노트북을 치워 달라고 요청해 한 위원장은 나중에는 스마트폰만 사용했다. 4층을 지키던 조계사 직원들과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 한 위원장은 방에서 조용히 무표정하게 앉아 있거나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민노총 관계자들이 챙겨 가서 따로 빨래를 해줬다. 한 위원장은 단식 전에는 김치찌개 등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었다. 또 은신 초기에는 4층 복도나 옥상을 자주 드나들고 야간에는 민노총 관계자들도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등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김갑식 dunanworld@donga.com·김민 기자}

“총무원장 스님이 직접 국민들 앞에 나서서 한 위원장 거취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내일 낮 12시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조계종이) 더 이상 피노키오가 될 수는 없지 않느냐.” 9일 오후 대한불교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의 기자회견 직후 통화한 조계종 고위 간부의 말이다. 자승 총무원장은 기자회견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공권력 집행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간부는 “한 위원장이 무작정 버티면 다른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미리 언급할 사안은 아니다. 종단 수장(首長)이 책임지겠다고 한 만큼 믿어 달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16일 한 위원장이 조계사로 은신한 뒤 20여 일이 흘렀지만 조계종은 종단 차원의 공식적인 입장은 일절 내놓지 않았다. 불법, 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 위원장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회적 비판과 그래도 종교단체의 입장에서 공권력 진입을 허용할 수 없다는 정서가 교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 위원장과 관련한 입장들은 조계사와 종단 내 기구인 화쟁위원회(위원장 도법 스님) 차원에서만 발표됐다. 하지만 종단 차원의 개입을 피하던 조계종은 이날 경찰의 공권력 집행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하루에 두 차례나 종단 차원의 입장을 밝혔다. 오전 10시에는 종단 대변인을 겸임하고 있는 기획실장 일감 스님이 종단의 첫 공식 입장을 밝혔고, 오후 5시경에는 자승 총무원장까지 직접 나섰다. 특히 자승 총무원장의 발표는 예정에 없었던 것이었다. 종단의 한 관계자는 “공권력 투입 예정 시간이던 오후 4시 전후 원장 스님의 기자회견이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화쟁위원회 차원의 발표는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종단 책임자가 직접 나서 책임을 져야 공권력 투입 시간을 늦출 수 있다는 정부 측 요구가 있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조계종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번 사안에 대해 한발 물러서 있는 태도를 취하던 종단이 적극적으로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은 거세진 사회적 비판과 정당한 법 집행에 나선 정부와의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오전 밝힌 첫 입장에서는 한 위원장의 신속한 결정을 촉구한다면서도 “조계사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조계종 나아가 한국불교를 짓밟겠다는 것”이라며 종교 시설에 대한 공권력 집행에 거부의 뜻을 명백히 밝혔다. 하지만 이후 총무원에서 만난 종단 간부들 사이에서는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기류가 감지됐다. 한 간부는 “만약 공권력이 집행돼 정부와 조계종이 갈등을 빚는다면 이게 바로 한 위원장을 비롯한 민노총이 바라는 것”이라며 “종단은 결코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종단의 사회적 기구인 화쟁위에 이번 사안이 맡겨졌는데 결국 한 위원장을 포함한 민노총의 정치투쟁에 종단이 놀아난 꼴”이라며 “(도법 스님이) 한 위원장 하자는 대로만 하고 결국 자진 출두 문제도 해결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23일째 은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더 피할 곳 없는 처지가 됐다.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행보에 조계종과 조계사 신도들은 ‘자비(慈悲)’를 거둬들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질책에 경찰도 조계사 경내로의 강제 진입 방침을 밝혀 한 위원장 체포는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초긴장 상태 빠진 조계사 8일 조계사에는 하루 종일 전운이 감돌았다. 경찰은 밤사이 민주노총이 조계사로 진입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기동대 11개 중대 약 900명을 조계사 주변에 비상 대기시켰다. 민주노총은 이에 맞서 경찰의 체포 작전을 ‘민주노총 궤멸 시도’로 규정하고 총파업으로 맞설 기세다. 이날 오후 1시 반 조계사 신도 60여 명은 “한상균을 끌어낼 테니 경찰이 잡아가라”며 한 위원장이 은신 중인 관음전에 진입했다. 이들은 한 위원장이 머물고 있는 4층에 진입하기 위해 열쇠공까지 불렀지만 복도를 막은 철문을 열지 못했다. 그러자 분노한 신도들은 “한상균 나와라”라고 소리치며 철문을 발로 차고 2시간 동안 퇴거를 요구했다. 신도회 임모 씨(75·여)는 “신도가 마음을 자비롭게 가지니 한 위원장이 우리를 이용한 것밖에 안 된다”며 “내일(9일)은 꼭 나가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계사를 비롯한 조계종도 격앙된 분위기다. 한 위원장이 자진 퇴거 약속을 어기고 사찰을 정치 투쟁의 거점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위원장은 7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자승 총무원장까지 거명하며 자신을 받아 준 조계종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는 “사찰은 나를 철저히 고립 유폐시키고 있다. 그 전술은 자본과 권력의 수법과 다르지 않다”며 “객으로 한편으론 죄송해서 참고 또 참았는데 참는 게 능사가 아닐 것 같다”고 했다. 조계사 관계자는 “도대체 제정신이냐. 이런 말도 안 되는 ‘갑질’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입으로는 노동자의 대의를 얘기하지만 한마디로 신의, 약속, 책임 같은 단어와는 담 쌓은 인물이다”라고 비난했다. 한 위원장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셈이다. 한 위원장의 난데없는 조계종 비난은 조계사와 화쟁위원회가 이날 새벽 한 위원장에게 조계사 퇴거 시한을 통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계사 측은 “대화 내용은 공식 발표가 있기 전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는데 한 위원장 측이 노동 관련 매체에 흘렸다”며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간 한 위원장에게 우호적이던 화쟁위도 “국민을 믿고 한 위원장이 자신의 거취를 조속히 결정하여 줄 것을 희망한다”며 한 위원장과 거리를 두기도 했다.○ 대통령 불호령에 경찰 최후통첩 경찰은 9일 오후 4시까지 한 위원장이 자진 출석하지 않으면 체포 작전에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 경찰은 조계사 주변 경비를 강화하고 검문검색을 통해 한 위원장 비호 세력의 조계사 진입을 막기로 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8일 기자간담회에서 “일명 ‘한상균 호위대’로 불리는 민주노총 노조원이 한 위원장 검거를 방해하면 범인도피죄를 적용해 엄정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의 조계사 진입 방침에는 청와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 5일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 대통령은 한 위원장이 여전히 체포되지 않았다는 보고에 주무 장관인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조계사 경비를 위해 지난달 16일 이후 23일간 경찰관 1768명을 투입했으며 급식비와 간식비, 유류비 등으로 2억3344만 원을 썼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8일 오후 6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9일 오후 4시 민주노총 조합원이 조계사 인근에 결집해 경찰 체포를 막기로 하는 등 구체적인 대응 계획을 마련 중이다. 9일 오후 7시엔 조계사 내 생명평화법당 앞에서 열리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동체대비 법회’도 예정대로 진행하고 한 위원장을 지지하는 ‘한 끼 동조 단식과 조계사 앞 연등 달기’ 행사도 12일까지 진행한다. 경찰은 조계사 주변에서 집회를 한다는 이유로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면 곧장 해산을 명령하고 이에 불응하면 가담자도 공무집행방해 혐의 현행범으로 체포할 예정이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권오혁·김갑식 기자}

조계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신도회가 요구한 퇴거 기한(6일)에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스스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5일 2차 총궐기 대회 후 조계종 화쟁위원장인 도법 스님과 조계사 관계자가 한 위원장을 6일 새벽까지 면담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까지 언제 어떤 모양새를 갖춰 조계사를 나갈지 밝히지 않았다. 조계사 관계자는 “도법 스님이 ‘평화 집회의 명분도 얻었고 조계사 신도회를 포함한 국민 앞에서 6일까지만 있겠다고 했으니 나와 손잡고 명예롭게 출두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지만 한 위원장이 노동법 개악에 대한 우려의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한 위원장은 5일 페이스북을 통해 ‘12월 16일 총파업 투쟁’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남기는 등 향후 투쟁을 계속 이어 갈 뜻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날 한 위원장의 거취와 관련해 “(한 위원장이) 화쟁위와 소통하는 중이나 아직 최종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자진 출두 약속을 깨고 계속 조계사에 은신한다면 그동안 불편과 고통을 참아 준 신도들과 국민 앞에서 종단이 뭐가 되겠느냐”며 “한 위원장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준 조계사 신도회 부회장은 “한 위원장이 나오지 않으면 7일 신도회 회장단 회의를 여는 등 추가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조계사 신도회는 긴급 총회를 열고 “6일까지 인내하고 기다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찰은 이날 돌발 상황에 대비해 조계사 주변 배치 인력을 700여 명으로 늘려 경계를 강화했다. 경찰은 지난달 14일 1차 민중 총궐기 투쟁대회에서 발생한 불법 폭력 행위를 한 위원장이 주도했다며 형법상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집회 관련 법보다 처벌 수위가 높아 최고 징역 10년형까지 처해질 수 있다.권오혁 hyuk@donga.com·김갑식·김민 기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총회장 채영남 목사)은 14일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에서 한국교회언론연구소를 창립한다. 이날 행사에서는 오전 11시부터 발기인 총회와 연구소 창립 및 이사장 취임 예배, 총회장인 채 목사의 설교 등이 이어진다. 연구소는 설립 취지에서 “교회 차원에서의 언론과의 올바른 소통 방법과 관련 정보 등을 제공하겠다”며 “교단을 넘어서서 한국 교회의 언론선교를 위해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이 연구소는 향후 국내외 언론 매체 및 관련 기관 등과 협력해 포럼과 세미나를 개최하고 학술지와 자료집 등을 발간할 예정이다. 연구소 설립 기획과 추진은 교단 부총회장인 이성희 목사(연동교회)를 중심으로 임은빈(동부제일교회·사진), 이순창(연신교회), 신정호(전주동신교회), 이흥식 목사(평산교회)가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연구소 이사장은 발기인 총회에서 임 목사가 선출될 예정이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정진석 추기경(사진)의 ‘그분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습니다’(가톨릭출판사)가 최근 출간됐다. 올해 사제 수품 54주년을 맞은 정 추기경의 54번째 책이다. 정 추기경은 부제 시절 룸메이트였던 고 박도식 신부와 매년 책을 내기로 한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이 책은 성경 내용의 핵심인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을 테마로 예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조명하기 위해 당시 일어난 사건과 주변 상황을 다뤘다. 책은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에서 오늘날 신자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과 메시지를 담았다. 당시의 지리적 요소와 관습, 역사적 기록, 학술적 내용을 기록하고, 예수가 죽기 전 십자가에서 한 말을 묵상할 수 있도록 미국 신학자 풀턴 신 주교의 ‘십자가상 일곱 말씀’도 소개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세상의 이목이 요즘 서울 우정국로 조계사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불법, 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이곳에 은신한 뒤 그의 거취가 사회적 쟁점이 됐습니다. 한때 조계사 신도회 차원에서 “나가 달라”며 몸싸움까지 벌였지만 정작 당사자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5일로 예정된 2차 총궐기 참여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그의 은신에 가려져 있지만 최근 불교계를 둘러싼 가장 큰 현안의 하나는 김건중 동국대 부총학생회장의 단식입니다. 종교를 담당하는 기자들에게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습니다. 사회적 파장이 크지 않다면 종단 내부의 문제는 자율적으로 원만하게 해결되는 게 좋다는 겁니다. 하지만 50일째 단식하던 학생이 3일 오전 10시경 의식을 잃고 병원에 이송됐습니다. 이날 현장에 있던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에 따르면 현재 병원에서 생명 유지를 위한 조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사건은 종단 내부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생명의 문제입니다. 이 학생은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였던 총장 보광 스님의 사퇴에 이어 탱화와 관련한 의혹을 받고 있는 동국대 이사장 일면 스님의 퇴진을 요구해 왔습니다. 탱화 사건의 발단은 해외 문화재 반환 운동을 벌이다 환속한 혜문 거사(居士)가 경기 남양주시 흥국사에 있던 1792년 작 탱화가 일면 스님이 주지로 있을 때 사라졌다 나중 일면 스님의 측근 자택에서 발견됐다며 절도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됩니다. 일면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등에 보고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만 탱화는 도난당한 것”이라고 해명합니다.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과 중앙승가대 교수인 미산 스님은 도덕적 책임을 느껴 최근 동국대 이사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200일 이상 전남 진도 팽목항을 지켰던 금강 스님의 말입니다. “제가 함께 단식하는 것은 어느 한쪽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거나 어떤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꺼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막으려는 겁니다.” 다행히 이날 오후 열린 이사회는 6시간 격론 끝에 전원 사퇴하기로 결의했다네요. 제 짧은 생각으로도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가치는 없습니다. 특정인의 퇴진이나 정치적 요구 등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천지중생이 나와 한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자비심을 일으킨다는 의미의 ‘동체대비(同體大悲)’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비 종단인 조계종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경찰이 지난달 14일 벌어진 ‘1차 민중 총궐기’ 집회 때 불법을 저지른 시위대의 수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 경찰은 당시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등 폭력을 행사했거나 한상균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53)의 도피를 도운 혐의 등으로 수사 대상이 된 사람이 구속 7명, 출석 요구 326명 등 총 410명이라고 1일 밝혔다. 경찰은 이들에게 이례적으로 형법상 소요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소요죄가 인정되면 집회 관련 처벌 때보다 훨씬 무거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경찰은 공공재인 도심 주요 도로가 10시간 넘게 마비됐고 주변 시민들까지 불안에 떠는 등 경찰 이외 공적 영역의 피해가 컸다고 보고 소요죄 적용 검토에 나섰다. 한편 조계사 신도들은 한 위원장에게 조계사가 청정한 수행도량이 될 수 있도록 대승적 결단을 해달라고 1일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조계사 신도회 임원 총회 명의의 성명에서 “신도들이 누구나 참배하고 신행(신앙) 생활을 하는 청정도량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다시 한번 한 위원장의 대승적 결단을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2시 조계사 내 안심당에서 열린 총회에는 160여 명이 참석했다. 전날에 이어 다시 확대 임원총회를 열고 한 위원장의 퇴거를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신도회는 한 위원장에 대해 더 이상 강제 퇴거는 시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세용 조계사 종무실장은 총회 뒤 브리핑에서 “한 위원장이 6일까지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구체적 날짜를 언급한 만큼 이날까지는 대승적 차원에서 인내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일부 신도는 이 발언을 듣고 “뭘 참아요, 내보내 주세요”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김갑식 dunanworld@donga.com·김민 기자}

폭력, 불법 집회를 주도한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53)의 조계사 은신이 15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조계사 신도들이 30일 직접 한 위원장의 퇴거에 나섰다. 조계사 신도회는 이날 오후 2시경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조계사 인근에서 약 1시간 회의를 한 뒤 “만장일치로 한 위원장의 퇴거를 요청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신도회 임원 10여 명은 이어 오후 3시경 한 위원장이 은신해 있는 조계사 내 관음전으로 들어가 “보름 동안 시간을 줬으면 충분한 것 아니냐”며 “이날 밤 12시까지 조계사를 나가 경찰에 자진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박준 신도회 부회장(73)은 한 위원장 강제 퇴거에 대해 “종교는 중립에 서야 하는데 범법자가 불교 사찰에 있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에 따르면 한 위원장은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5일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하며 신도회 측의 거듭된 퇴거 요청을 거부했다. 신도회의 한 관계자는 “몸싸움 중 한 위원장이 끌려 나오지 않으려고 옷을 벗어 속옷 바람이 됐다”고 전했다. 신도회는 1시간여 동안 한 위원장에게 퇴거를 요구하다 실패한 뒤 조계사 주지인 지현 스님을 면담했다. 신도회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한 신도는 주지 스님에게 “대자대비를 베푸는 불교가 한 사람으로 인해 훼손돼 많은 신도들이 많이 분노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했다. 신도회는 1일에도 200여 명이 참여하는 총회를 열 계획이다. 조계사 신도회가 직접 나선 것은 한 위원장 은신이 장기화하면서 범법자를 보호하고 있다는 사회적 비판과 신도들의 신앙생활에 차질을 빚으면서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평화적 집회 문화의 정착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도 사실상 민주노총의 입장을 대변해 주고 있는 화쟁위원회(위원장 도법 스님)의 행보에 대한 불만도 깔려 있다. 조계종과 조계사 측은 신도회의 한 위원장 퇴거 요청에 대해 “종단이나 사찰이 아닌 신도회 차원의 대응”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종단 직영사찰로 총무원의 영향력이 강한 조계사 분위기를 감안할 때 신도회의 이번 조치에는 화쟁위의 행보에 비판적인 종단의 내부 기류가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조계사의 한 관계자는 “수차례 범법 행위를 한 한 위원장을 보호하면서 무조건 평화시위를 보장하라고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등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일부 종교단체들이 가세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신도회 임원들이 물러난 뒤 관음전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한 위원장이 자진 출두할 계획은 없다”며 “한 위원장에 대한 신변 위협은 정권이 조계사를 압박해 벌어진 사건”이라고 주장했다.김갑식 dunanworld@donga.com·김민 기자}

《 스님의 별호는 ‘팔공산 호랭이’다. 1980년 신군부의 지시를 받은 군인들이 법당에 난입하는 등 이른바 불교계의 10·27법난(法難) 때였다. 총에 착검까지 한 군인들이 팔공산 자락의 경북 영천시 백흥암에 들이닥쳤다. 누군가 “중들 싹 모여”라고 했다. 그때 “스님들 공양 중인데 떠들지 마라”는 한 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는 다시 “누가 이렇게 시키더냐. 대통령이 시켰냐. 총 끝에 칼은 왜 달았냐”고 다그쳤다. 》그 호랑이는 최근 6000여 명의 조계종 비구니를 대표하는 전국비구니회장으로 취임한 육문 스님(69)이다. 경북 군위 법주사에서 만난 스님은 10·27 때 사연을 얘기하다 “현실이나 참선 중 만나는 생사의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했다.○ “사자는 제 몸에서 벌레가 나서 죽어” 육문 스님의 행보가 관심을 끄는 것은 비구니계뿐만 아니라 종단 전체에 불어올 새바람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비구니들은 종단 소속 스님의 절반이 넘지만 종단 행정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본사 이상의 주지는 맡을 수 없고, 종단의 국회 격인 80여 석 중앙종회에도 10석만 비구니 몫으로 할당돼 있다. 스님은 “50, 60년 ‘중 생활’ 해도 비구니라는 이유로 본사 주지가 될 수 없으니 말이 되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스님은 이어 “팔경계(八敬戒·계를 받은 지 수십 년이 지난 노비구니도 어린 사미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등 비구니가 지켜야 할 8가지 조항)나 들이대는 것은 쫀쫀한 소리”라며 “젊은 비구니들 중 똑똑한 사람이 많으니 세상이 바뀌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비구니의 당당한 권리도 중요하지만 비구, 비구니들이 싸우는 ‘꼬라지’는 정말 더 보기 싫다”며 “화합이 제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스님은 이런 비유도 했다. “사자는 누가 죽이는 게 아니라 살생과 욕심을 내다 제 몸에서 벌레가 나서 죽어. 최근 불교가 사회에서 욕을 먹는 것은 수행자들이 본연의 자세를 못 지키기 때문이야.”○ “윗사람이 잘 살아야” 한 상좌가 내준 송차 한 모금을 삼킨 사이 스님의 시계는 50여 년 전으로 돌아갔다. 16세 소녀가 길에서 나중에 은사가 되는 성태 스님을 만났다. 조카의 죽음 등을 지켜보며 삶의 무상함을 느낀 소녀는 “스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은사는 “네 마음이 정한다. 절 문은 언제든 열려 있다”고 했다. 이듬해 소녀는 집에서 멀지 않은 사찰을 찾아 출가했다. 독실한 불자이지만 6남매 중 어린 막내딸을 보낼 수 없었던 부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절을 찾았지만 딸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 길로 ‘중노릇’ 한 게 지금까지네. 절에 처음 와 보니 밭이 6000평이야. 별을 보고 나가면 별 보고 들어와야 했어. 진짜 말 그대로 주경야독했지.” 24세부터 강원에 다니며 참선했다. 이후 여러 선원에서 수행하다 백흥암을 거쳐 몇 해 전 법주사로 왔다. 한아름이 넘는 왕 맷돌이 있을 정도로 컸다는 법주사는 작은 전각과 요사채로 쓰는 20평 초가가 전부였다. 지금 그 절은 선원까지 있는 반듯한 사찰로 바뀌었다. 스님은 “앞사람이 잘 살아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며 “내 눈에 귀한 자식, 남의 눈에는 가시니 더 잘 가르쳐야 한다”며 평소 좋아하는 서산대사의 시 한 구절을 읊었다.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오늘 내가 걸어간 이 발자국은 뒤에 오는 다른 사람의 길잡이가 된다).’군위=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