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송평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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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칼럼니스트입니다.

piso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칼럼97%
사설/칼럼3%
  • [사설]검경, 싸우지 말고 성접대 의혹 해소하라

    검찰은 그제 건설업자 윤모 씨에게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경찰의 출국 금지 신청을 기각했다. 김 전 차관이 범죄 혐의가 있는 피의자라기보다는 단순 참고인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유다. 출국 금지도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의 이번 기각은 정치권 공세에 밀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신속히 출국 금지한 것과 형평이 맞지 않는다. 원 전 국정원장은 참여연대 등에 의해 대선 개입 의혹으로 검찰에 고소되기는 했지만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출국 금지 조치를 당했다. 반면 검찰 출신인 김 전 차관에 대해서는 경찰이 수사상 필요하다고 판단해 출국 금지를 신청했는데도 검찰이 기각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경찰도 수사가 지지부진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성접대 의혹 관련 동영상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 결과는 판단 불가로 나왔다. 설혹 동영상 속 인물이 누구인지 확인된다 하더라도 동영상이 몰래 촬영된 것이라면 증거로 가치가 없다. 성접대를 했다는 여성 중 일부의 진술은 오락가락한다. 이 사건 수사는 처음부터 검경 사이의 신경전 속에 진행되고 있다. 경찰의 수사 착수 전에 소문이 무성했고 그 여파로 김 전 차관이 연루 의혹을 받자 옷을 벗었다. 윤 씨는 다른 사건으로 3차례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매번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검찰 고위 관계자들이 외압(外壓)을 행사했을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수사하고 있다.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는 것은 좋으나 검경이 신경전을 벌이다 사건의 실체 규명을 못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윤 씨가 괜히 고위 관료를 비롯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별장에 초대해 접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거 검찰 고위층은 윤 씨 같은 건설업자를 스폰서로 둔 사례가 있었다. 윤 씨도 그런 스폰서였는지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해야 한다. 검찰은 필요 이상으로 경찰 수사를 견제해서는 안 된다. 경찰도 의혹 부풀리기 수사가 아니라 의혹을 해소하는 수사를 해야 한다.}

    • 201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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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민주주의를 위한 이석기 제명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왜 국회 자격심사를 통해 제명해야 하는가. 간단히 말해서 두 의원에게는 국민의 위임이 없기 때문이다. 의원 자격심사를 독일에서는 위임심사라고도 한다. 의원은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주권의 일부를 위임받는다. 그 위임이 있는지 심사한다고 해서 위임심사다.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지역구에서 선출된 의원이 아니라 정당의 비례대표 의원이다. 이 경우 위임은 유권자에서 정당으로, 정당에서 의원으로 두 단계의 위임 절차를 거친다. 첫 단계의 위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다음 단계의 위임이 없었다면 전체적으로는 위임이 성립하지 않는다. 두 의원은 국민이 자기 손으로 직접 뽑지 않았다. 국민은 지난해 4·11총선을 통해 통진당에 6명의 비례대표 의원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을 위임했을 뿐이다. 그러나 통진당은 국민이 부여한 ‘신성한’ 위임을 배신했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는 어떤 식으로든 이 분노에 답해야 하며 그것이 자격심사를 통한 제명이다.이석기에겐 국민 위임이 없다통진당의 비례대표 경선 과정의 부정은 검찰 수사 이전에 먼저 통진당 내부에서 의혹이 제기됐다. 통진당은 자체 진상 조사를 벌여 스스로 총체적 부정선거라고 규정했다. 물론 이석기 김재연 의원이 속한 당권파는 진상조사 결과를 수용하길 거부했고 결국 당은 분열됐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 통진당 부정 경선 관련자 462명이 무더기로 기소됐다.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기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소된 사람들 중에는 두 의원에 대한 부정투표 관련자들도 포함돼 있다. 두 의원이 기소되지 않았다고 해서 부정투표가 지우개로 지우듯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두 의원이 기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격심사를 할 근거가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은 ‘위임’의 뜻이 뭔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주장이다. 국회 자격심사는 두 의원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통진당에 부여한 위임을 배신한 데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는 비례대표가 없다. 이 나라들은 지역구 의원만을 뽑기 때문에 어느 정당의 후보가 당내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후보가 됐는지는 원칙적으로 묻지 않는다. 그 후보는 지역구 의원으로 선출될 때 스스로 정당성을 얻는다. 그러나 독일이나 우리나라처럼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국가는 사정이 다르다. 국민은 의원에게만이 아니라 정당에도 투표를 한다. 국민으로서는 자신들의 위임이 제대로 행사되는지 정당 내부에 어느 정도 간섭할 권한이 있다. 그래서 독일 헌법은 “정당의 내부 질서가 민주적 기본 원칙에 적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도 독일과 비슷하게 “정당은 그 목적,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격심사는 비례대표제의 전제비례대표제의 유지와 확대는 정당의 민주성이 확보된 위에서만 가능하다. 정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때 두 가지 방식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나는 정당 자체에 대한 위임 가능성을 박탈하는 것이다. 위헌정당 해산이 그것이다. 그러나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정당이라 할지라도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가 아닌 한 그 정당을 해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다른 하나는 정당이 아니라 개별 의원을 상대로 한 국회의 자격심사다. 이것마저 작동하지 않는다면 비례대표제, 나아가 민주주의의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2004년 총선에서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례대표제 덕분이었다. 우리는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제가 민주주의를 존중하지 않는 세력에 의해 어떻게 악용되는지 목도했다. 국회가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고 확대할 의사가 있다면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제명하는 단호함부터 보여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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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장준하 사인 규명해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 장교이자 ‘사상계’를 창간한 정치인 장준하 씨(1918∼1975)가 둔기에 맞아 숨진 뒤 추락했다는 유골 감식 결과가 나왔다. 장 씨가 죽은 지 38년 만이다. 현재까지 검찰 기록에 장 씨는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시 약사봉 등산 도중 실족사한 것으로 돼 있다. 지난해 8월 고인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골이 사진으로 처음 공개됐을 때 머리뼈 함몰 부위가 일반인의 눈에도 확연했다. 국내 부검의(剖檢醫) 1세대에 속하는 이정빈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유골 감식 결과 고인의 머리뼈 함몰은 외부 가격(加擊)에 의한 것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감식을 의뢰한 장준하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는 공적 기관이 아니지만 감식 결과는 신뢰성이 높아 보인다. 그의 죽음에는 애초부터 많은 의문이 제기됐다. 그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유신정권에 맞서 개헌서명 운동을 시작하기 3일 전에 사망했다. 본보는 당시 사회면 머리기사로 고인이 왜 70도 경사의 벼랑을 장비 없이 내려오려 했는지, 등산 코스를 따라가다가 왜 하필 절벽을 택해 혼자 내려오려 했는지 등의 다양한 의문을 제기했다. 본보의 자매회사인 동아방송도 진상규명을 위해 비밀 취재까지 시도했으나 1주일 만에 중앙정보부의 압력으로 취재가 중단됐고 이후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이 유골 감식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건 관련 증인 채택을 요구했을 때 본보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당시는 대선 2개월 전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제 대선도 끝나고 타살로 볼 만한 증거가 나온 만큼 정부 차원에서 재확인하고, 타살이라면 누가 장 씨를 죽였는지 규명해야 한다. 이 사건은 살인범이 밝혀지더라도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할 수 없다. 그러나 고인은 독재정권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국회는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서라도 특별법 제정 등 재조사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고인의 사망에는 당시 중앙정보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런 사실이 밝혀지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경선을 앞두고 고인의 부인 김희숙 씨를 만나 사과의 뜻을 전한 바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는 유신 통치 전반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사과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은 사인 규명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 201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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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고위 관료 성접대 의혹, 확실히 밝혀라

    정부의 고위 관료가 성 접대를 받고 그 장면이 찍힌 동영상으로 협박까지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청와대는 인사검증 과정에서 이러한 의혹을 듣고 조사했으나 사실무근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직접 동영상을 보고 그 인물임을 확인했다는 사람이 여럿 있어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인사검증 과정에서 당사자에게 한번 문의해보고 검증을 끝냈다면 안이한 일 처리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정황은 이뿐이 아니다. 그제 전격 사퇴한 황철주 중소기업청장은 인사 발표에 임박해서야 청와대로부터 고위 공직자는 보유한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사퇴 이유가 다른 것도 아니고 법령에 관한 것이다. 황 씨는 공직 재임 중에만 신탁했다가 퇴임 후에 되찾을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아들었다고 한다. 청와대가 황 씨에게 인사검증 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경찰은 오래전부터 고위 관료가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내사했다고 한다. 이 관료를 접대한 건설업자가 여성 사업가와 성관계를 맺을 때 찍은 동영상을 보관하고 있다가 이 여성이 빚 독촉을 하자 이 동영상으로 협박한 혐의로 경찰에 고소된 사건이 발단이다. 이 여성은 건설업자가 빚을 갚지 않자 해결사를 동원해 건설업자의 차를 뺏어온 적이 있는데 차 트렁크 안에서 발견한 CD 7장에 고위 관료 등이 등장하는 동영상들이 들어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름을 거론하면 알 만한 인사들이 강원도 남한강변의 호화로운 별장에서 카메라가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허리띠를 푼 채 술접대와 성접대를 받았다는 얘기다. 이 사건은 단순한 섹스 스캔들이 아니다. 고위 관료가 관청에 민원이 많은 건설업자에게 성접대를 받았다면 사생활이 아니라 공직자 뇌물수수로 봐야 한다. 동영상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힌 여성은 경찰이 동영상 제출을 요구하자 폐기해 버렸다고 주장해 진술의 신빙성에 의심 가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건설업자의 조카가 건설업자의 부탁으로 동영상을 컴퓨터 파일로 만들어 따로 보관한 것이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경찰이 수사할 의지만 있으면 의혹을 푸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동영상만 확보하면 된다. 이 사건은 새 정부 들어 터진 첫 고위 공직자 비리 의혹이다. 얼마나 투명하게 처리하는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억울하게 모함을 당한 것이라면 고위 관료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서둘러 진실을 밝혀야 한다.}

    • 201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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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송평인]나승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지난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선거에서 당선돼 취임한 나승철 회장은 변호사 경력이 겨우 5년차로 30대 중반(36세)인 데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이다. ―나 회장의 당선을 두고 젊은 변호사들의 반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청년 변호사들이 많이 지지해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안 된다. 선거 운동 때 어느 모임에 갔더니 아버지뻘은 돼 보이는 변호사가 날 보더니 ‘승철아’라고 소리치며 반가이 맞아 줬다. ‘혹시 내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집안의 먼 어르신인가’ 착각했을 정도다. 얘기를 나눠 보니 30년 선배 되는 변호사였다. 젊은 변호사만이 아니라 나이든 변호사들도 실제로 일하는 회장을 원하고 있다. 그동안 변호사단체장을 변호사 이력의 마지막을 장식할 명예직쯤으로 여기는 풍토가 있었다. 나의 당선에는 이런 풍토로는 더는 안 된다는 질책도 들어 있다고 본다.” ―변호사들이 요새 정말 힘든가.“사무실 월세도 못내는 변호사가 많다. 물론 대형 로펌의 매출은 해마다 늘고 있으니 변호사 업계 전체가 불황이라고 하면 수긍하지 않는 국민도 많을 것이다. 사실 문제는 불황이 아니라 양극화다. 돈 잘 버는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사무실에 연탄난로를 때는 변호사도 있다.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다. 법을 아는 사람이 ‘이것 한 건만 하면 월세는 해결되는데…’라고 생각하고 눈 딱 감고 위법 행위를 저지르면 그 폐해는 심각하다. 의사는 잘못하면 그 의사를 믿은 환자 혼자만 피해를 보지만 소송은 상대편이 있어서 변호사가 잘못하면 무고한 상대방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변호사는 공인(公人)인가 상인(商人)인가.“요새 변호사들이 어느 때보다 공인과 상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공인이라면 질 것이 뻔한 소송은 오히려 말려야 하지만 상인으로서는 의뢰인이 소송을 간절히 원한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게 최선의 서비스다. 변호사를 보는 사회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언론에서 대형 로펌이 대기업 변호만 한다고 비판하면서도 원스톱(one stop)으로 법률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있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굳이 택하라면 변호사는 상인이라기보다는 공인에 가깝다. 그러나 변호사에게 공인의 자세를 지키라고 요구하려면 이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공공 영역의 무한 경쟁은 바람직하지 않다.”―변호사 수가 너무 많은가.“우리나라에서 적정한 변호사의 수를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꺼번에 갑자기 많이 늘어나는 건 분명히 문제다. 한 해 변호사 자격을 얻는 사람이 1000명 정도씩 늘다가 지난해 로스쿨 졸업생이 더해져 2500명이 쏟아져 나왔다. 10년 가까이 한 해 1000명씩 늘면서 법률시장이 겨우 적응하고 있었는데 2500명이나 쏟아지니 소화가 안 되는 거다. 앞으로 한동안은 매년 2000명 안팎의 변호사가 배출된다. 수요는 정해져 있는데 공급이 갑자기 느니까 변호사 처우가 급속히 나빠지는 것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변호사단체는 그동안 무얼 했나. 그런 실망감이 나이는 적어도 실제로 일할 수 있는 나 같은 회장을 뽑은 이유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비판적인 것 같다.“미국인이 쓴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란 책을 공감하며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 저소득층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입학사정관제가 사례로 나오는데 로스쿨 전형 과정이 딱 그런 것이다. 사시를 존치시켜 로스쿨에 갈 돈도, 로스쿨에 갈 만한 ‘스펙’도 없는 사람들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지난해 로스쿨 졸업생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정부 발표로는 입학정원 대비 75%라지만 응시자 대비는 88%다. 운전면허 따는 것보다 더 쉬운 경쟁에 커트라인이 43점이다. 10문제 중 5문제도 못 푼 사람이 변호사 자격을 얻은 것이다. 이래서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라는 말이 나온다.”―지난해 처음으로 로스쿨 출신 검사가 나왔는데 그중 한 명이 검사실에서 피의자를 성추행하는 희대의 사건이 터졌다. 로스쿨 제도의 윤리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성추행하면 안 된다, 뇌물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 꼭 가르쳐서 알 일인가. 그 정도는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누구나 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걸러 내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진짜 문제다. 사법연수원만 해도 교수들이 2년간 연수생을 관찰하고 걸러 내는 시스템이 작동한다. 그런데 로스쿨 출신 검사를 뽑을 때는 5일간 면접한 게 전부다.”―지난해 로스쿨 출신을 바로 검사로 임용하는 걸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법원은 올해부터 법조일원화에 따라 변호사 경력자 중에서 판사를 뽑는다. 3년, 5년, 궁극적으로는 10년 변호사 경력자만이 판사를 할 수 있다. 검찰만 지금 순혈주의를 고집하며 자기네가 뽑아 키우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변호사로 몇 년 일해 보면 업계에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거의 정확한 평가가 나온다. 검찰도 법조일원화를 받아들여야 한다.”1977년생인 나 회장은 고려대 법대를 나와 2003년 사시에 합격해 2006년 사법연수원(35회)을 졸업했다. 군법무관으로 군 생활을 마친 후 2009년 변호사를 시작했다. 2011년 변호사 경력 3년차에 서울변호사회 회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26표 차로 아깝게 낙선해 그때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었나.“민주화 이후에는 정치권력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것 못지않게 자본권력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해졌다. 과거 장하성 교수와 소액주주 운동을 같이 하던 김주영 변호사에 대해 듣게 됐다. 김 변호사가 역할 모델이 됐고 김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한누리 법무법인에 지원해 채용됐다. 증권회사 펀드에 가입해 본 국민이 많을 것이다. 사실 증권회사 펀드의 불완전 판매가 10건 중 5건은 되지만 실제 소송에서 인정되는 것은 1건밖에 되지 않는다. 증권회사를 변호하는 대형로펌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변호사들이 큰 회사를 변호하는 게 돈이 된다고 다 그쪽으로 몰려가면 투자자와 서민은 누가 보호할 것인가.” ―요새 젊은 사람들 장가 시집 늦게 간다고 하지만 36세 총각은 늦은 것 같다. 서울변호사회장이 만약 신혼 장가를 간다면 그것도 화제가 되겠다.“친구 중 3분의 2가량은 결혼을 했으니까 결혼이 늦은 편이다. 변호사회장 직에 있으면서 장가가면 욕 들어 먹을 것 같아서 한다면 비밀리에 해야 할 것 같다.”▼ 2018년 개업변호사… 2만명 넘어설 것 ▼■한 해 배출 법조인 2000명 시대사법시험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 초인 1963년부터 시작됐다. 그 전에는 고등고시 사법과가 있었다. 고등고시 사법과와 초창기 사법시험은 그야말로 ‘좁은 문’. 합격자가 적을 때는 10명대, 많아야 50명대였다. 사시 합격자가 한 해 처음 100명을 넘어선 것은 1978년. 그 때까지만 해도 변호사 업계는 판검사를 하다 개업한 전관 변호사들이 주류였다.1982년부터 사시 합격자 300명 시대, 2001년부터는 1000명 시대가 열리며 변호사업계의 판도도 바뀌기 시작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자마자 개업하는 변호사들이 급증했기 때문. 올해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에 판검사 경력이 없는 지방변호사회 출신의 위철환 회장이 당선되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에 변호사 경력 5년차의 30대인 나승철 회장이 당선된 것도 이런 변화의 결과다.2009년 3년 과정의 로스쿨이 설립되고 지난해부터 로스쿨 졸업생이 나오기 시작했다. 로스쿨 정원은 2000명으로 유지된다. 변호사시험 합격률 75%를 적용하면 매년 1500명이 변호사 시장(검사 등 일부 공직 임용자 포함)에 나오게 된다. 지난해에는 사시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나온 1000명, 로스쿨 졸업생 중 변호사시험 합격자 1500명 등 약 2500명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이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울 것이다.사법시험은 2010년부터 매년 합격자 수가 줄고 있고 2018년에는 폐지된다. 그래도 로스쿨 졸업생과 합치면, 사법연수원 졸업생이 끊어지는 2021년까지는 매년 평균 2000여 명이 법조 시장에 나온다.전체 개업 변호사는 1961년 500명에 근접한 이래 1981년 1000명을 넘어섰다. 걸린 시간은 20년. 그러나 1000명에서 2000명이 되는 데는 10년, 2000명에서 4000명이 되는 데는 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2002년에는 5000명, 2010년에는 1만 명 시대에 진입했다. 지난해 말 현재 개업 변호사는 1만2513명이고 2018년에는 2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세무사 변리사 회계사 등의 업무도 모두 변호사가 하기 때문에 변호사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비교가 어렵다. 일본과는 비교가 가능하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변호사 1명당 국민 수는 3500명 정도. 일본은 변호사 1명당 국민 수가 4000명인데도 벌써 많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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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노회찬 판결과 정의

    법률이나 판결은 정의에 합치해야 한다. 미국에서 연방대법관을 뜻하는 ‘Justice’는 정의를 뜻하는 말과 같다. 독일어로 법률을 ‘Recht’라고 한다. 이 단어는 정의라는 말도 된다. 그렇다면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법률과 판결을 따라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법률과 같은 효력을 지닌 유신 시절의 긴급조치가 줄줄이 위헌 판정을 받고, 그 긴급조치에 의거한 대법원 판결이 뒤집히는 것을 우리는 눈앞에서 보고 있다. 쉽게 ‘악법도 법이다’ ‘나쁜 최종심도 최종심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시대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국회의원이 그제 대법원에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노 의원은 2005년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8년 전에 만든 도청 녹취록을 인용해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전현직 고위 검사 7명의 명단을 인터넷에 올렸다. 수사기관은 도청 기록은 그 내용이 사실과 부합하더라도 다른 증거가 없는 한 진실하다고 보지 않는다. 이에 따라 떡값을 받았다고 알려진 검사들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실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1월 15일 해고),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현 국회의장 비서실장) 등 언론인과 노 의원이 기소돼 처벌을 받았다. ▷노 의원은 공익을 위한 폭로였으므로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그가 진보 진영 내에서 종북주의를 비판하고 상식의 목소리를 내 온 정치인이라는 평가도 있어 호응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공익을 위해서는 도청도 상관없다고 한다면 기자들은 정상적인 취재보다는 ‘도청 취재’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크고, 정부와 기업은 도청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흘린 말이 그대로 보도되면 상대편이 억울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래서 통신비밀보호법은 도청을 금지하고 도청된 내용을 폭로하는 것 또한 금지한다. 대법원도 중대한 공적(公的) 관심 사항이 아닌 한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신중한 입장이다. ▷노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4월로 다가온 재·보궐선거 판이 커지게 됐다. 새누리당 이재균 의원(부산 영도)도 같은 날 대법원에서 선거사무장의 100만 원 벌금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새누리당 김근태(충남 청양-부여) 심학봉(경북 구미갑), 무소속 김형태 의원(경북 포항 남-울릉)도 항소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고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재·보선에 안철수 전 대선후보의 출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원내대표는 부산 영도 재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노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수도권 대결이어서 흥미로운 한판 승부가 될 듯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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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이동흡 청문회에서 느낀 불편함

    최근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로부터 들은 얘기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월급과는 별도로 100만 원을 매달 현금으로 받는다. 배석판사들은 80만 원씩을 받는다. 명목상으로는 재판과 관련해 쓰는 돈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쓰지 않는다. 그 부장판사의 말인즉 판사가 재판과 관련해 돈 쓸 데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점심값은 합의부 앞으로 따로 나오니까 점심값과도 상관없다. 판사가 부인 몰래 자기 용돈처럼 쓸 수 있는 유일한 돈이다.특정업무경비의 진실 이 돈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되면 400만 원 정도로 확 오른다. 대법원이나 헌재에서는 특정업무경비라고 부르는 돈이다.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도 이 돈을 부장판사의 100만 원같이 자기 용돈처럼 쓴다. 세금도 떼지 않는 400만 원이니까 어엿한 가정의 한 달 가처분소득에 해당할 만큼 큰돈이다. 그래서 좀 나눠 써야 하는 게 아니냐는 무언의 압력이 있다. 대법관이나 헌재 재판관은 설과 추석이 다가오면 얼마씩을 연구관들에게 격려금으로 나눠주는 것이 관행이다. 한 번에 50만 원 정도라고 하는데 액수가 많아지면 평판이 좋아지고 적어지면 나빠진다. 대법관들은 나눠서 작은 지방법원 시찰도 다닌다. 대법관이 법원을 방문하면 법원장이 식사를 대접하고 술도 한잔 먹는다. 대법관과 연구관들, 법원장과 부장판사들이 모두 모여 먹고 마시면 금액이 꽤 나온다. 법원장도 법원 살림을 빠듯하게 꾸려가다 보니 이런 비용도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몇몇 대법관은 서울로 돌아가서 식사비에 얼마간의 돈을 더 보태 돌려보내 준다. 법원장을 해본 이들은 그런 대법관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고 한다. 그 돈도 특정업무경비에서 나가는 돈일 것이다. 결혼할 때 부인이 열쇠 몇 개 챙겨 오거나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대법관이나 헌재 재판관이라면 400만 원 정도는 주변이나 아랫사람들을 위해 호기 있게 다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는 일을 빡빡하게 시키면서도 그런 점에서 인색하지 않았나 싶다. ‘딸깍발이 판사’로 불린 어느 전 대법관은 대법관 취임 시 신고재산이 7000만 원에 불과할 정도로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연구관들에게 매달 20만, 30만 원씩 나눠줘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다. 대다수는 액수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자기 돈처럼 생각하고 쓴다. 조직과 남을 위해 쓰면 가점(加點)이 되겠지만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감점(減點)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특정업무경비에 굳이 유용이란 말을 쓰자면 그 돈은 유용이 예정된 돈이다. 연구관들에게 많이 나눠준다고 해서 유용이 아닌 것이 아니다. 앞의 부장판사도 연구관 시절 대법관들을 모시면서 그런 돈을 받았는데 밀린 외상 술값을 갚는 등 전부 용돈으로 썼다고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은 누구도 지킬 수 없는 기준을 이 후보자에게 들이댔다. 이 후보자가 공금을 횡령한 것이라면 거의 모든 법관이 공금을 횡령하고 있는 셈이 된다.솔직하지 못한 청문회 이 후보자도 다소 비굴하게 대응했다. 특정업무경비를 유용한 게 있으면 사퇴하겠다는 말은 의원들의 추궁에 마지못해 한 말이라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차라리 유용을 시인해 헌재소장이 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돈의 실상을 당당하게 밝히는 용기를 보였어야 한다.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기관의 수장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그런 정도의 용기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김혜영 헌재 사무관은 의원들의 압박에도 특정업무경비 사용명세를 공개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가장 솔직한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보나마나 사용명세는 가짜일 것이다. 영수증이 딸려 있어도 가짜가 많은데 영수증도 딸리지 않은 게 진짜일 리 없다. 실체도 없는 사용명세를 놓고 싸우는 꼴까지는 차마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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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5년 뒤엔 ‘셀프 사면’ 안 나오게 측근 단속하라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비롯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임기 말 특별사면을 강행했다. 사면 대상에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김효재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등 이 대통령의 측근들이 포함됐다. 판결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뤄진 초고속 사면이어서 사면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박정규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과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를 끼워 넣음으로써 민주통합당과 박 당선인을 무마하려는 ‘물 타기’ 사면이다. 사면권은 행정권이 사법권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권력분립 원칙에 대한 중대한 예외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가능한 한 자제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민주화 이후에도 역대 대통령이 모두 사면권을 남용한 오류를 남겼다. 이 대통령은 취임 때 “임기 중 권력형 비리와 친인척 비리는 사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그 전철을 피해가지 못했다. 최 전 위원장은 이 대통령 임기 전인 2006년과 2007년에 받은 6억 원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됐기 때문에 ‘임기 중 비리’가 아니라는 설명은 구차하다. 그 돈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 여론조사에 쓰였다고 최 전 위원장이 해명했지 않은가. 사면 대상자 55명 중 한 명이 이 대통령의 사돈 집안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 조현준 사장이다. 그는 사돈 집안이어서 친인척이 아니라는 해명도 옹색하다. 용산 참사 관련 철거민 5명을 사회갈등 해소 차원에서 사면한 것은 엄정한 법질서 수호라는 중요한 가치를 해칠 우려가 있다. 이번에 사면 받은 사람들의 폭력과 방화로 공무집행 중인 경찰관 1명이 사망했다. 박 당선인 측 윤창중 조윤선 대변인은 “이번 특사 강행은 국민 여론을 무시한 것”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박 당선인 자신은 5년 후 이런 부끄러운 사면을 하지 말기 바란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모진 사람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욕을 듣는 선택을 한 것은 친인척이나 측근들이 임기 중 비리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자기 주변부터 철저히 관리해 ‘셀프 사면’을 할 소지 자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사면 제도를 다시 보완할 필요도 있다. 이번 사면은 2007년 12월 사면법 개정으로 설치한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첫 사면임에도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을 막지 못했다. 사면심사위원들이 회의에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 5년간 공개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의 뜻을 통과시키는 거수기 사면심사위가 되기 쉽다. 사면심사위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최소한 형기의 3분의 1 혹은 절반 정도는 채워야 사면이 가능하도록 특별사면의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

    • 201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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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대한민국 正史라니

    평소 즐겨 읽는 책 중의 하나가 국적은 대만이었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활동한 역사가 진순신의 ‘중국의 역사’다. 진순신은 이 방대한 책의 끝 부분인 청나라 시대를 서술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명나라까지 중국의 역사는 정사(正史)인 이십오사(二十五史)를 좌우에 놓고 붓을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정사에 의지할 수 없다.” 중국에서는 사마천의 사기 이래 25개 정사가 모두 후대 왕조가 전대 왕조의 역사를 쓰는 역대수사(易代修史)를 관례로 삼았다. 청나라가 멸망했지만 아직 청사는 쓰여지지 못했다. ▷전대의 역사는 후대의 전성기에 쓴다는 성세수사(盛世修史)라는 말도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청사가 없는 것은 청 멸망 이후의 중국이 확고한 전성기를 맞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화민국 최초의 대총통이 된 위안스카이(袁世凱)는 1928년 청사고(淸史稿)를 편찬했으나 국민당 정부의 장제스(蔣介石)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만으로 쫓겨 간 장제스는 1959년 청사고를 수정해 새로운 청사를 내놓았으나 중국 본토의 공산당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1965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주도로 청사편집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역시 문화혁명으로 중단되고 2002년에 와서야 청사를 편찬하는 청사공정(淸史工程)이 시작됐다. 동북(東北)공정도 이해부터 시작됐는데 청사공정의 일부로서의 변경지역 역사 정리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청사공정의 결과인 청사는 본래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말까지 나왔어야 하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우리나라도 최초의 정사인 삼국사기는 고려 중기 김부식이 썼고 고려사는 조선 문종 때 와서 완성됐다. 이후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점되면서 조선사를 정리할 여유를 갖지 못한 채 대한민국이 건국됐다. 대한민국 시대에는 국사편찬위원회가 1973년 시작해 2003년 조선사까지 한국사 전체를 52권으로 정리했다. 앞서 1969년에는 한국독립운동사를 5권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최근 국사편찬위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편위가 대한민국사(가제·전 10권)를 쓴다면 그것은 하나의 정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사를 대한민국 시대에 쓴다는 것은 동아시아의 전통 사관에서 보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후대가 전대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시대로부터 떨어져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객관성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역사를 보는 올바른 관점 하나를 국가가 제시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전제 왕조시대의 산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특히 당대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받아들이기 어렵다. 현대에는 복수의 역사, 즉 역사들이 있는 것이지 단수의 올바른 역사는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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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변호사 1만5000명 시대의 소수파 변협회장

    그제 치러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에서 위철환 경기중앙변호사회 회장(55)이 당선됐다. 판검사 출신이 아니라 사법연수원 졸업과 동시에 개업한, 그것도 지방변호사회 출신 변호사가 회장이 된 것은 변협 창립 이래 처음이다. 위 신임 회장은 중동고 야간부를 거쳐 서울교대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 법대 야간부를 나온 입지전적 인물이다. 위 회장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직선제 덕분이다. 지금까지 변협 회장 선거는 간선제로 실시돼 대의원 수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서울변호사회가 추천한 후보가 당선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번 선거 결과는 사법연수원이나 로스쿨 졸업 직후 개업하는 변호사가 2000년대 후반 이후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을 누르고 변호사 업계의 주류를 형성했음을 보여준다. ‘마이너’ 변협 회장의 등장은 변협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위 회장은 “그동안 서울대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 주로 회장을 맡아 변호사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보통 변호사의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변협은 인권과 법치주의를 지키는 역할을 했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시대에 맞는 의제를 설정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있다. 위 회장의 등장으로 계층적, 인종적,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법률서비스 차별도 완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올해 사법연수원과 로스쿨 졸업자가 나오면 전체 변호사 수는 1만5000명을 넘어서고 2015년엔 2만 명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1970년대만 해도 한 해에 몇십 명이던 사시 합격자가 1980년대 중반부터 300명을 넘어섰고 2002년부터 1000명 시대로 접어들었다. 지난해부터는 로스쿨 졸업생도 1500명씩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변호사가 행정부 주무관에 지원하고 금융회사의 일반 사원으로 취업하는 시대다. 젊은 변호사들은 사무실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인지 위 신임 회장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변호사 법률담당관제도를 도입하고, 기업의 사내 변호사를 확대하는 한편 법무사 세무사 변리사 등 유사직역의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그러나 변협은 국민 세금으로 늘리거나 기업에 부담을 주는 일자리에만 눈독을 들여서는 안 된다. 법조일원화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판검사는 변호사 경력자 중에서 임명된다. 변협이 변호사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이익단체로만 기능한다면 역풍(逆風)이 커질 수 있다. 변호사들은 사무실의 문턱을 낮추고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속에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

    • 201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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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안철수를 분석해야 민주당이 보인다

    한때 ‘원초적 본능’처럼 정신분석을 소재로 한 영화가 인기가 있었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개발한 정신분석은 일반 정신과 의사들이 사용하는 치료 방법은 아니다. 정신분석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최면을 걸지도 않는다. 그 대신 대화로 치료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 대화에서 환자들이 보이는 최초의 반응은 ‘저항(resistance)’이다. 정신적 질환은 환자의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에서 비롯되고 환자는 그것을 드러내는 것을 꺼린다. 꺼리지 않았다면 병이 생길 이유도 없다.신경증 환자와 닮은 민주당 야권에서 대선 패배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민주통합당은 진정한 원인을 직시하려 하지 않고 자꾸 다른 이유를 둘러댄다. 그 모습이 꼭 분석에 저항하는 신경증 환자 같다. 민주당이 진 것은 단일화에만 매달렸기 때문도 아니고, 공약이 차별성을 보이지 못해서도 아니고, 이정희 때문도 아니다. 단일화도 완벽하지 않았고 공약도 여권에 선점당한 측면이 없지 않고 이정희도 문제였다. 그러나 정치를 ‘가능한 것의 기술(技術)’이라고 할 때 야권은 이번 대선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했다. 그럼에도 패배한 것은 친노 중심의 야권을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륜 스님이 얼마 전 ‘안철수로 단일화했더라면’이란 가정을 던졌을 때 민주당이 보인 신경질적인 반응을 떠올려 보자. 분석에 저항하는 환자는 분석가가 질환의 진짜 원인에 접근할수록 짜증을 내는 법이다. 법륜 스님의 가정은 진부하다 못해 부질없다. 그렇다고 억지는 아니다. 전문가는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반인은 누구나 해 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상이다. 이상한 것은 오히려 그런 것에 비정상적으로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이는 쪽이다. 바로 그런 데서 질환의 증후를 읽어내는 것이 정신분석의 한 방법이다. 안철수 현상이란 1970, 80년대 대학가의 용어로 말하자면 운동권식 정치 대신에 학생대중적 정치를 원한 것이다. 당시의 학생대중은 야권 성향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운동권에 늘 동조한 것은 아니었다. 대중이란 말 그대로 잡다한 것이다. 그중에는 머리로만 운동을 하다가 평생 부채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극단으로 흐르는 운동권에 신념을 갖고 동조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중간에서 고뇌하던 회색인(灰色人)이란 유형도 있었고 졸업한 뒤 뒤늦게 정치와 사회에 눈을 뜬 사람도 있다. 그들도 서울의 봄, 6·29 같은 항쟁에서는 대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안철수 자신이 학생대중이었고 그런 사람으로서는 처음 야권의 열광을 끌어냈다. 안철수의 정치 참여를 친노 진영이 반기는 척하면서도 ‘네까짓 게 무슨’이라는 내심을 끝내 숨기지 못했다. 결국 문재인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안철수는 없다’고 노골적으로 무시하는가 하면, 과거 모든 학생을 운동권과 비운동권으로 나눠 비운동권을 입신양명 도서관파로 비하하고, 단일화 국면에서는 형님-아우라는 모멸적인 관계 설정으로 애송이 취급하며 주저앉히기를 시도했다. 이 모든 것이 실은 안철수의 돌연한 부상이 친노 운동권 정치인들에게 야권의 주도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트라우마(trauma·상처가 된 경험)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친노의 트라우마 ‘안철수 현상’ 안철수는 깡통인가. 깡통은 심한 표현이고 처음에는 신선했으나 나중에는 답답해졌다는 정도로 말해 두면 크게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안철수란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안철수로 표현된 야권 재구성에 대한 요구를 민주당이 직시하지 않는 한 대선 패배의 진정한 원인 분석에 도달할 수 없다. 원인은 억압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더 깊이 잠복할 뿐이다. 분석을 당하는 측에게 요구되는 것은 솔직함이다. 저항이 크면 분석은 힘들어지고 치료는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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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뱀과 북방문화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권에서 뱀은 사악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에덴 동산에서 이브가 금단(禁斷)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 먹도록 유혹한 것이 뱀이다. 그때 저주를 받아서 뱀은 기어다니게 됐다고 성경에 나온다. 그리스 신화에서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뱀이다. 메두사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몰래 정을 통하다 아테네 여신에게 들켜 저주를 받아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다. 유교 문화권에서도 뱀은 환영받지 않았다. 용두사미(龍頭蛇尾)란 말에서 보듯 용을 숭상하고 뱀을 천시했다. 우리나라의 전통 민화를 보더라도 뱀을 그린 그림은 거의 없다. 까치를 잡아먹으려고 둥지에 접근하는 못된 구렁이 얘기는 있다. 그러나 그걸 그림으로 그려서 걸어두고 싶었던 사람은 별로 없었나 보다. ▷뱀의 이미지는 북방문화권에서는 대체로 좋지 않다. 그러나 남방문화권에서는 그렇지 않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이나 멕시코의 마야 유적지를 가보면 거대한 돌난간에 뱀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아시아인이라면 그게 용이 아니라 뱀이라는데 우선 놀랄 것이다. 이곳에서 뱀은 신(神)으로까지 추앙을 받는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만 하더라도 석가모니의 광배(光背)는 본래 코브라의 머리 형상에 기원을 두고 있다. 코브라가 똬리를 튼 위에 석가모니가 앉아 있고 그 뒤에서 석가모니가 비를 맞지 않도록 코브라가 머리를 들고 지키고 있는 조각이 남방불교에는 많다. ▷불교가 북방, 즉 중국 한국 일본으로 전해지면서 조각도 변했다. 부처가 앉은 곳 아래 뱀이 똬리를 튼 곳은 연꽃이 받치는 형상으로 변했고 광배에도 뱀의 머리 형상 대신 연꽃이나 당초 무늬를 넣었다. 중국에는 뱀은 없어도 용은 많다. 용은 그 원형이 뱀이다. 사실 인도문화권의 코브라의 변형이라는 설이 있다. 북방문화권 사람들이 뱀을 싫어하니까 뱀을 몸통으로 하되 상상으로 치장한 용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더운 남쪽 지방에는 뱀이 많다. 뱀을 거부할 수 없다면 그것과 친해지는 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북방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북방 문화에 남방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십이지(十二支)에 뱀이 열두 동물 중 하나로 들어있다. 십이지는 중국 상나라(은나라) 말기 갑골문자에 처음 등장한다. 유교문화가 정착되기 전의 일이다. 성경에서 유대인을 이집트에서 끌어낸 모세의 지팡이는 던지면 뱀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르메스의 지팡이에 두 마리의 뱀이 감싸고 있다. 우리나라 고구려 벽화 사신도의 현무는 뱀이 거북과 뒤엉켜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뱀은 북방문화권의 억압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올해는 뱀의 해다. 글로벌 문화 시대에 뱀은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좋은 상징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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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콩글리시의 진화

    한국에 콩글리시가 있듯이 프랑스에는 프렝글리시가, 독일에는 뎅글리시가 있다. 독일에서는 휴대전화를 독일식 영어로 핸디(Handy)라고 한다. 영어권 어디에서도 쓰지 않는 말이다. 휴대전화는 영국에서는 모바일폰이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셀룰러폰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전철을 트람웨(Tramway)라고 하는데 정작 영어권에서는 그냥 트램이라고 하지 트램웨이라 하지 않는다. ▷영어에도 없는 영어식 표현을 만들어내는 데는 일본인이 선수다. 사실 콩글리시의 상당수는 일본에서 온 것이다. 봉급생활자를 뜻하는 샐러리맨은 1930년대부터 쓰인 일본식 영어(和製英語)다. 영어로 굳이 표현한다면 ‘salaried man’이라고 해야 한다. 영어권에서는 이런 표현도 잘 안 쓰고 화이트칼라 워커(white-collar worker)라고 한다. 스페시피케이션(specification)을 스펙으로 줄여 부르는 것도 일본식이다. 다만 이 말을 제품 명세서가 아니라 취업에 필요한 자격조건이란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한국식 변형이다. ▷영국 BBC가 최근 콩글리시를 영어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소개하면서 스킨십(skinship)을 예로 들었다. 스킨십도 실은 일본에서 먼저 사용된 말이다. 1953년 세계보건기구(WHO) 세미나에서 한 미국 학자가 엄마와 아이 사이의 피부접촉을 통한 소통이란 의미로 사용한 것이 일본에 전해져 사용됐다는 게 일본대백과사전의 설명이다. 영어권에서는 터치십(touchship)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 위키피디아는 스킨십을 일본식 영어로 분류한다. 한국에서는 이 말이 엄마와 아이보다는 연인 사이의 남녀 관계에 더 자주 쓰인다. ▷BBC는 영어의 진화가 인터넷에서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영문 웹페이지에 비영어권 누리꾼이 글을 대거 올리면서 그들의 언어권에서 사용하는 영어 방언들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콩글리시와 인도권의 힝글리시를 예로 들었다. 힝글리시에서는 처남 매부 사이 등 결혼으로 맺어진 남자형제를 ‘brother-in-law’ 대신 ‘co-brother’라고 표현한다. 이 같은 현상이 영어를 풍성하게 만든다며 타락이 아니라 진화로 봐준 것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콩글리시는 일본식 영어를 따라 쓰는 일이 많으니 뒷맛이 개운치 않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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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일부 젊은 세대, 보다 성숙된 대응 아쉽다

    18대 대선에서 2030세대는 3명 중 2명이 문재인 후보를, 3명 중 1명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50대 이상은 3명 중 2명이 박 후보를, 3명 중 1명이 문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젊어서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고 나이 들어서도 사회주의자이면 머리가 없다는 오래된 말이 있을 만큼 이상할 것도 없는 현상이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세대 간 이해관계의 차이로 몰아가 세대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12년의 50대는 2002년에는 40대였다. 당시 이회창 후보를 47.9%, 노무현 후보를 48.1% 지지해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런 세대가 이번에 박근혜 후보에게 62.5%, 문재인 후보에게 37.4%의 표를 던졌다. 사실 50대와 20대의 이해관계가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니다. 50대의 자녀는 주로 20대로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 걱정, 졸업 후 취직 걱정을 함께 할 수밖에 없다. 복지의 필요성을 젊은이들 못지않게 절감하는 것은 60대 이상 노년층이다. 앞날이 창창한 것도 아닌데 이들 중 다수가 이번 대선에서 더 많고 더 빠른 복지 대신에 점진적인 복지를 택했다. 눈앞의 사사로운 이익보다 나라의 곳간과 장래를 걱정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높이 평가하지는 못할망정 일부 젊은이들이 노년층을 비판하거나 폄훼하는 글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쏟아내고 있어 안타깝다. 노인들 때문에 젊은이들을 위한 공약이 다 날아갔으니 상응하는 노인 복지를 몽땅 폐지하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버스와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하지 않기’ 등 되바라진 의견까지 나왔다. 젊은 세대의 성숙하고도 분별있는 대응이 아쉽다. 2030세대의 진보 후보 지지율은 10년 전에 비해 6%포인트 이상 올랐다. 그럼에도 이들 세대의 보수 후보 지지율은 2002년 34.5%, 2012년 33%로 큰 차이가 없다. 어느 세대나 보수가 있고 진보가 있다. 10년 전 50대 이상의 진보 지지층이 35%에 가까웠다. 이번에 50대 이상에서 보수 지지층이 늘어난 것은 나이가 들어 보수화한 탓이라기보다는 진보 진영이 이들 세대를 실망시켰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부 경박한 지식인들이 젊은 세대의 분노를 부추기는 행태는 걱정스럽다. 이번 투표 결과를 놓고 “열심히 일해서 세금 내는 40대 이하 세대의 운명을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50대 이상 세대가 결정하는 정치구조는 엄청난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사실과 맞지 않는 저질 선동에 불과하다.}

    • 2012-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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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루소에게 배워야 할 朴 당선인

    올해는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 탄생 300주년이다. 루소 하면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하다. 사회계약론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하나를 꼽으라면 ‘일반의지(la volont´e g´en´erale)’다. 선거란 루소 식으로 말하자면 한 사회의 일반의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일반의지는 쉬운 말로 ‘국민의 뜻’이다. 어제 끝난 대선에서 드러난 한국의 일반의지, 즉 우리나라 국민의 뜻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박근혜 당선인은 이것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도 일반의지가 눈에 보이듯이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는다. 그것이 어려운 점이다. 승자독식에 대한 반감 루소가 말하는 일반의지는 당선인 혹은 당선인의 공약에 대한 지지와 일치하지 않는다. 영국 정치철학자 존 로크에게 다수의 지지는 곧 국민의 뜻이다. 이것이 다수의 지배를 뜻하는 것이고 영미식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다수의 지배를 받아들이자면 승자독식(the winner takes all)의 문화에 대한 수긍이 있어야 한다. 우리 정치 제도도 기본적으로는 승자독식이다. 그러나 그 저류에는 독재 정권에서만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승자독식에 강한 반감이 그치지 않았다. 국회에서 툭하면 벌어지는 날치기 논란이 그 대표적인 증거다. 루소에게 있어서 정치는 국민 중 일부의 의지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명실공히 국민의 의지를 실천하는 것이다. 국민 중 다수라 할지라도 루소에게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전체의지(la volont´e de tous)와 일반의지를 구별한다. 전체의지는 개인들의 의지의 단순한 총합이다. 예를 들어 복지 확대에 대해 찬반을 물었을 때 찬성 60%, 반대 40%라고 하면 서로 상쇄하고 남은 20%가 전체의지다. 결국 다수결인데 이는 일반의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의견 차이를 없애기 위해 타협안에 타협안을 거듭해서 의도한 것과는 다른 엉뚱한 결과를 낳는 합의를 끌어내는 것도 전체의지에 불과하다. 합의의 극단적 형태로 북한이나 중국의 인민대표회의에서 보는 만장일치도 물론 루소의 일반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루소가 말하는 일반의지는 다수결도 합의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다양한 의지가 상호간 차이를 내포한 채 그대로 드러남으로써 성립한다. 복지 확대를 원하는 사람도 국가 재정을 걱정한다. 국가 재정을 걱정하는 사람도 복지 확대를 원한다.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생각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서로 다른 두 요소가 상충하고 있음을 느낀다. 상충하는 정도도 개인마다 차이가 크다. 정당 등의 결사체는 오히려 그 너머에 있는 개인들의 다양한 차이를 은폐한다. 일반의지는 이 모든 개인적 차이를 다 고려한 것이다. 그래서 일반의지는 단순한 통계 수치로 주어질 수 없고 직관적으로 발견할 수밖에 없다. 지지자가 아니라 국민을 보라 선거일의 당락 결정과 득표율은 일반의지를 드러내는 실마리일 뿐이다. 그 전체 모습은 박 당선인이 그려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의 공약만이 아니라 아깝게 낙선한 후보의 공약도 꼼꼼히 읽어야 한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공약이 만들어진 과정을 찬찬히 복기해서 각각의 진정성을 검토해야 한다. 공약에 대한 국민들의 희망 강도도 따져봐야 한다. 모든 것은 결국 그의 통찰력으로 읽어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국회와 별도로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뽑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고 우리 헌법은 그 대통령을 초당파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300명의 구성원으로 나뉜 국회에서는 의원 각자가 지지자의 의견을 따르면 전체로서는 일반의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지만 1명뿐인 대통령은 지지자가 아니라 국민을 봐야 일반의지를 실천할 수 있다. 국민을 통합하는 대통령은 바로 이런 대통령을 말하는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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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정동영의 ‘늙은 꼰대’

    60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한 무덤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고 한다. “요새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고 참을 줄 모른다.” 기원전 8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헤시오드는 “나는 어릴 때 어른을 공경하라고 배웠는데 요새 젊은이들은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너무 없다”고 불평했다. 세대 갈등은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버릇없는 젊은이들의 반대편에는 “왕년에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자기 경험만을 내세우고 성가시게 간섭하는 꼰대 어른들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새 동네 실내수영장을 다녀보면 아침 시간에 노인들이 많다. 고령화 사회라는 말이 실감나는 풍경이다. ‘걷기 레인’이라는 것도 생겼다. 수영을 위한 레인이 아니고 물속에서 걸어 다니기 위한 레인이다. 이 레인에서는 수영하는 젊은이가 걷고 있는 노인에게 수영에 방해가 된다고 항의할 수 없다. 노인들이 운동을 마치고는 샤워실 한쪽의 온탕에 몸을 담그고 담소를 나눈다. 요즘은 대선 얘기가 많다. 귀동냥해 보면 “안철수같이 경험 없는 것들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기겠냐” “이정희의 코리아연방은 북한의 고려연방제나 다름없다” 등 보수적인 의견들이 많다. ▷선거가 점점 더 세대별 대결 양상을 띠고 있다. 최근 정동영 민주통합당 고문은 트위터에 “이번에 하는 청춘투표가 인생투표야. 인생이 통째로 걸렸어…. 꼰대들 ‘늙은 투표’에 인생 맡기지 말라”는 한겨레 신문의 대담 내용을 리트윗 했다. 젊은이들에게 투표를 독려한 것까지는 좋은데 ‘늙은’이란 말로 노인들을 모두 꼰대로 만들어 버렸다. 대한노인회가 민주당 당사를 항의 방문하는 등 비판이 잇따랐다. 정 고문의 노인 비하 발언이 2004년 총선 때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때 크게 혼이 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나의 어머니는 70대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어도 투표만큼은 안 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빠지지 않고 한다. 누구를 찍을 것이냐고 물어보면 절대 대답하는 법이 없다. 비밀투표의 원칙은 기자가 누구보다 더 잘 알 터인데 뭘 그런 걸 물어보느냐고 오히려 핀잔을 준다. 신문도, TV뉴스도 잘 보지 않지만 사람 보는 눈이 절대 허술하지 않다. 정 고문도 내년이면 환갑이다. 괜히 남의 어르신들 함부로 꼰대라고 부르지 말고 자신이나 꼰대가 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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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벌금 대신 노역

    부릴 역(役)이란 한자는 예로부터 좋은 의미로 잘 쓰이지 않았다. 부역(賦役) 군역(軍役) 등 백성을 괴롭히는 말에 쓰였다. 맹자는 정치를 하는 대인(大人)과 농업 등에 종사하는 소인(小人)을 구별했다. 대인은 노심(勞心) 즉 마음을 쓰고, 소인은 노력(勞力) 즉 힘을 쓴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심자는 사람을 부리고(役人) 노력자는 사람에게 부림을 당한다(役於人)고 했다. 노역(勞役)은 굳이 ‘강제’라는 수식어를 달지 않아도 말 자체에 강제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근대식 교도소는 노역장(workhouse)에서 출발했다. 1555년 영국 런던 브라이드웰(Bridewell)에 노역장이 처음 설립됐다. 거지 부랑자 등을 모아 사회로부터 격리하면서 노역을 통해 근면성을 익히고 직업교육을 받게 해 노동시장에 진출시킨다는 취지였다. 브라이드웰은 워낙 유명해서 나중에 그 말 자체가 교도소를 의미하게 됐다. 징역(懲役)은 노역에 처한다는 말이다. 징역이나 금고형을 선고받으면 똑같이 교도소에 수감되지만 금고는 노역을 하지 않는다. 금고형은 드물고 징역형이 대부분이다. 교도소가 본래 노역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벌금형은 징역 금고 등 자유형과 구별되는 재산형이다. 그러나 6개월 이하의 단기로 가둬두는 것은 격리의 효과도 별로 없는 데다 죄질이 더 나쁜 사람들에게 오염될 우려가 있어 오늘날 벌금형이 많이 선고된다. 제1심 형사사건 중 서류만으로 심리해 재산형만 선고하는 약식명령 사건이 85%가 넘고 나머지 공판 사건 중에서도 25% 정도가 벌금형을 받는다. 그러나 벌금형은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게 미치는 효과가 다르다. 부자에게는 벌금 액수가 푼돈에 불과해 형벌로서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구치소 노역장에 자발적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벌금 미납 노역장 유치처분 집행 건수는 2008년 2757건, 2009년 2819건, 2010년 2918건, 지난해 3221건으로 매년 늘었다.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진 올해에는 상반기에만 2503건이 집행될 정도로 늘었다. 하루 노역은 대개 5만 원으로 친다. 벌금 50만 원이면 노역장 유치 10일 이런 식이다. 일당 5만 원도 벌 자리가 없어 자유를 반납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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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싸이의 ‘反美 랩 사죄’ 음미해볼 사람 많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말춤을 볼 수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9일 워싱턴 국립건축박물관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인 워싱턴 자선공연’에서 가수 싸이의 공연을 지켜봤으나 말춤을 추지는 않았다. 싸이가 2004년 신해철이 이끄는 록밴드 ‘넥스트’의 래퍼로 출연해 부른 “미군과 그 가족들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자”는 반미(反美) 랩이 미국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싸이는 공연에 앞서 “8년 전 일을 깊이 후회하고 있다”는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백악관은 싸이를 자선 공연 행사에 초청하지 말아야 한다는 청원을 물리치고 예정대로 싸이를 초청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싸이의 반미 노래를 보도하면서도 “당시 반미주의적 시대 분위기 속에서 이 노래가 탄생했다”며 시대 상황을 곁들였다. 백악관과 미국 언론의 차분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랩 가사를 읽은 미국인들은 싸이와 어울려 말춤을 추고 싶은 생각이 가셨을지도 모른다. 싸이는 2002년 효순 미선 양 사건과 관련해 미군 장갑차 모형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반미 시위에도 출연했다. 언제부터인가 남보다 ‘정치적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반미 성향을 내세우는 대중 연예인이 종종 있었다. 서강대 철학과 출신의 가수 신해철이 대표적인 경우다. 미국 버클리음대에 유학한 싸이도 그런 사람들과 자주 어울린 것이 사실이다. “미군과 그 가족들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자”는 가사는 미국인이 아닌 우리가 들어도 섬뜩하다. 그런 가사는 부르는 사람은 물론이고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황폐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싸이의 노래를 우리만 들었다면 그가 과거 시류에 휩쓸려 부른 반미 랩이 지금 와서 이렇게까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우리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 노래는 이제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세계가 지켜보는 한국이 됐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시골 장터에서 창을 하는 사람과 방송에 나가 노래 부르는 사람이 같을 수는 없다.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에게는 무대에서 지켜야 할 예절과 금기가 있다. 한국에서만 듣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세계가 함께 듣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같을 수 없다. 일본과 중국을 혐오하면서 일본과 중국에서 한류 스타가 되겠다는 연예인은 어리석다. 반미도 마찬가지다. 미국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미국을 장난치듯 저주하는 것은 경망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싸이의 사죄를 교훈 삼아 한류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우물 안에 머물렀던 우리의 자의식을 고양(高揚)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 2012-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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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정권 전리품 장사’로 안철수 붙잡자는 백낙청

    이른바 야권 원로 모임이라는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의 좌장격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안철수 전 후보 측의 차기 정부 지분을 보장하라고 민주통합당 측에 훈수를 뒀다.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할 것 같다는 위기감에서 안 전 후보 측을 끌어들이려고 노골적인 자리 나눠먹기를 제안한 것이다. 원탁회의는 그제 성명을 통해 “선거 승리 이후의 첫걸음부터 민주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더 폭넓은 세력과 공동보조를 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백 씨는 어제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원탁회의에서 지분 나누기를 권유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어서 인수위 얘기를 하지 않고 ‘승리 이후의 첫걸음부터’라는 표현을 썼다”며 “까놓고 얘기하면 인수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 이게 사실은 가장 중요하다”고 속내를 ‘까놓았다’. 인수위에서 차기 정부를 세팅할 때부터 안 전 후보 측 인사들을 동참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실은 차기 정부에서 나눠줄 자리를 안 전 후보 측에 확실하게 보장해 막바지 대선 운동에 끌어들이라는 주문이다. 안 전 후보 측은 문 후보 지지 수준을 놓고 안 전 후보와 캠프 사이에 온도차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안 캠프 실장급 상당수는 집권할 경우를 염두에 두어서인지 문 후보를 적극 도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 정치를 표방한 안 후보가 ‘권력 배분’ 희망을 갖고 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만약 안 전 후보 측에서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원탁회의가 안 전 후보 측이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해 먼저 자리 나눠먹기를 제안하라고 민주당 측에 주문한 것이라면 후안무치한 훈수가 아닐 수 없다. 천안함 폭침도, 서해 북방한계선(NLL)도 인정하지 않는 원탁회의가 천안함 폭침과 NLL을 모두 인정하는 안 전 후보와, 둘 다에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민주당의 ‘묻지 마 연대’를 중재하는 것 자체가 주제 넘는 일이다. 백 씨의 ‘2013년 체제론’은 4·11총선에서 민주당의 패배로 절반이 무너졌다. ‘2013년 체제론’은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패배하면 완전한 실패로 돌아간다. 그럴 소지가 커지니까 백 씨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국민의 열망 같은 고상한 말은 다 집어던지고 ‘까놓고’ 나눠먹을 자리를 거론하고 있다. 적나라한 권력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 201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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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네거티브 선거운동

    1964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린든 존슨은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가 베트남전에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몰아붙였다. ‘데이지 걸(Daisy Girl)’이라는 악명높은 네거티브 선거광고가 만들어졌다. 풀밭에서 꽃잎을 세던 어린 여자아이가 아홉을 셀 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미사일 발사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하늘을 나는 무언가가 아이의 눈에 보이고 친구들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우더니 갑자기 깜깜해지면서 버섯구름이 피어오른다. 이 광고는 과장이 심하다는 비판 때문에 딱 한번 방송되고 그쳤지만 존슨의 압도적 승리에 보탬이 됐다. ▷1963년 박정희가 군복을 벗고 대선 후보로 나왔을 때 야당 후보 윤보선은 거물 간첩 황태성과의 관련성을 거론하며 박정희의 사상을 문제 삼았다. 박정희의 형 박상희가 좌익으로 1946년 대구 폭동에 가담했다 죽었는데 박상희와 동지였던 북한 무역성 부상(副相) 황태성이 김일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박정희를 접촉해 보겠다며 내려왔다가 붙잡혔다. 그러나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 후 집권 초기부터 좌익 의혹을 불식시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윤보선의 네거티브 전략은 잘 먹히지 않았다. ▷네거티브 선거운동이 다시 극성이다. 민주당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그 친가 및 외가 5촌까지의 재산이 1조3000억 원, 정수장학회와 영남학원 재산까지 더해 4조 원이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의 신고 재산은 21억 원이다. 재산은 형제 간에도 잘 알 수 없는 법인데 4촌도 아니고 5촌까지 합하는 셈법은 황당하다. 진위와 상관없이 상대 후보를 흠집 내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조금 더 나가면 흑색선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때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는 측은 나경원 후보가 1억 원대의 피부 미용을 받은 양 흑색선전을 해서 재미를 봤다. 일단 주장이 제기되고 나면 사실이 아니더라도 ‘사실 아님’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명해도 단순히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있고, ‘좀 과장이야 있겠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하는 식으로 ‘반쯤은 믿는’ 국민도 적지 않다. 상대 후보의 결점을 부각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있지도 않는 허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국민을 향한 사기다.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는 선거운동이 정치개혁의 첫걸음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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