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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plomacy is like a jazz: endless variations on a theme.’(외교는 ‘재즈’ 같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끝없는 변주가 가능하니까) 미국 외교계의 ‘거인’으로 평가받는 고 리처드 홀브룩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한 말입니다. 예술을 사랑했던 이답게 미국의 외교를 재즈에 비유했네요. 글로벌 무대에 벌어지는 여러 상황에 대해 미국 외교가 택할 수 있는 옵션은 정말 많습니다. 그에 따라 상대국의 운명은 휙휙 바뀝니다. 지금 한반도 상황과 비슷한가요. 워싱턴 시내에 가면 연방정부 건물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역사적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벽조 건축물입니다. 미화 10달러 지폐 뒷면에 있는 재무부 건물은 ‘미국역사기념물(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답고 기품이 있죠. 미국의 역사가 어려 있는 건물에 들어갈 때면 왠지 압도당하는 느낌입니다. 한국의 정부부처들도 한국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건축물에 터를 잡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미국 외교를 담당하는 국무부는 누런 색깔의 현대식 건물입니다. 역사적 향기는 거의 느낄 수 없죠.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이 은밀히 움직이는 미국 외교와 비슷합니다. 국무부 규모가 급팽창하면서 1947년 새로 이사 온 건물이죠. 해리 트루먼 대통령 때 지어진 건물이라 이름도 ‘해리 트루먼 빌딩’이라고 합니다. 미 국방부의 애칭은 ‘펜타곤’입니다. 멀리서 보면 오각형 모양이라네요. 국무부의 애칭은 ‘포기 바텀(Foggy Bottom)’입니다. 펜타곤보다 훨씬 멋스러운 애칭 아닌가요. 국무부 건물은 포토맥 강을 마주보고 있는 저지대(Bottom) 동네에 있습니다. 물가라서 안개가 많이 끼다보니(Foggy) 이런 애칭이 생긴거죠. 한국 유학생이 많은 조지워싱턴대도 이 부근에 있습니다.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생긴 애칭이지만 국무부의 특성을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닌, 외교적 수사로 가득 찬 미 국무부 브리핑을 듣다보면 정말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습니다. 국무부는 매일 오후 1시경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합니다. 매일 정오경 시작되는 백악관 브리핑과 겹치지 않기 위해 1시간쯤 뒤에 한다고 합니다. TV를 보면 국무부 대변인 앞쪽으로 기자들이 많이 보이는 듯한데 사실 별로 기자들은 없습니다. 브리핑에 열심히 참석하는 기자들은 한국과 일본 기자들 밖에 없는 듯 합니다. 일본 특파원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서 보면 한국 기자들도 집단을 이뤄 다니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워싱턴에서 만나는 한국 특파원들은 개별행동파들입니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게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죠. 일본 특파원들의 또 다른 특징은 대부분 영어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실력이 좋은 사람도 있지만 소수지요. 특히 영어 발음이 독특합니다. 브리핑룸의 모든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일본 기자가 특유의 영어 발음으로 질문하는 것을 듣다보면 왠지 제가 긴장이 될 정도죠. 일본 기자들은 브리핑룸에서 얌전한 편입니다. 그런데 흥분하는 때가 있습니다. 독도, 일본 역사교과서, 일본군 위안부 등 한일간 첨예하게 대립한 문제가 나올 때죠. 일본 정부에 유리한 미 국무부의 답변을 얻어내기 위해 딱할 정도로 이러 저리 돌려가며 질문 총력전을 폅니다. 한일갈등이 불거졌을 때 미 국무부는 절대로 한쪽 편을 드는 발언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미국의 외교원칙입니다. 한번은 일본 특파원들이 하도 비슷한 질문을 쏟아내자 국무부 대변인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며 핀잔 섞인 답변을 하더군요. 미국의 동의에 매달리는 일본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자신들의 역사에 자신이 없는 걸까’하는 생각을 했던 사람은 아마 저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미국) 대통령의 방한 기간 한국 국회에서 연설이 이뤄진다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에 단호히 반대하는 한국 국민의 감정을 고려하기를 바란다.”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잭 리드 의원, 다음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국회 연설 때 발언을 신중히하라며)◆“백악관이 북한에 부과한 제재는 역사적으로 최고 수준이며 북한은 이번처럼 강력한 제재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북한 주민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에서 30여 년간 일하다가 탈북한 리정호 씨, 미국 뉴욕에서 열린 아시아 소사이어티 초청 행사에서)◆“북한과의 외교적 노력을 둘러싸고 엇갈리는 메시지를 전해온 미국과 트럼프 행정부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도전이다.” (CNN 방송, 북한이 현재로서는 미국과의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북한 관리의 발언을 인용하며)◆“문화·예술계 지원배제 활동에 직접 개입했고, 다수의 증거가 있는데도 1심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위법하다.” (박영수 특검팀,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항소심 첫 공판에서)◆“국정감사 기간에는 (탈당)하지 않는 대신 전당대회 전까지는 탈당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 바른정당 통합파의 탈당 시기에 대해)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경우 지금은 이륙 3시간 전까지 공항에 오도록 안내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륙 4~5시간 전 공항에 도착해야 안전하게 탑승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사 관계자, 이달 26일부터 미국 교통안전청(TSA) 요청으로 미국행 여객기 탑승객의 보안 검색이 강화된다며)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The Republican party has become overwhelmingly so extreme that it’s hardly a traditional party anymore.‘ (공화당은 지나치게 극단적이 돼서 더 이상 전통적 의미의 정당이 아니다) 미국의 진보학자 노엄 촘스키가 한 말입니다. 자주 공화당 비판에 열을 올리시는 분이라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핵심은 맞다고 봅니다. 요즘 미국 공화당의 현실이니까요. 2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습니다. 그 중에는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리처드 루거 전 공화당 상원의원도 그랬죠. 그는 6년 임기의 상원의원을 6선한 인디애나 출신 의원입니다. 36년 동안 미국 상원의원이라는 꽃길을 걸었던 사람이죠. 그런 그가 2013년 인디애나 주 공화당 상원 경선에서 충격의 패배를 당했습니다. 6선의 상원의원이 정치 경험이 없는 경쟁 후보에게 당한 겁니다. ’결선도 아닌 당내 경선에서 패배하다니….‘ 당시 미국에선 큰 뉴스였습니다. 그의 패배가 기억에 남는 건 미국 정치 지형도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공화당의 변화입니다. 미국의 보수세력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보수지수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흑인 대통령에 대한 반감, 회복될 줄 모르는 경제, 유명 보수 미디어 및 논객의 등장 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루거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불고 있는 이런 강한 보수 바람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 급이면 중앙 정치무대에서 협상에 주력하는 조정자 역할을 하게 되는데 지역구 주민들은 이게 못마땅했던 겁니다. 루거나 존 매케인 같은 상원의원들은 워싱턴에선 지명도가 높지만 정작 자신을 뽑아주는 지역구에선 별로 인기가 없죠. 최근 10여 년 동안 미국에서는 온건 성향의 중진급 공화당 의원들은 당내 경선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루거 전 의원과 비슷한 케이스죠. 반대로 정치 경험이 없고 정치력이 검증되지 않았더라도 강경한 보수 슬로건을 내건 후보는 주목을 받고 당선됩니다. 그런데 정작 이런 강경파 후보는 본선 경쟁력이 없어 민주당 후보에 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선 패배 1개월쯤 지난 뒤 인터뷰한 루거 전 의원은 벌써 충격에서 벗어난 듯 했습니다. 사실 그는 얼마 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워싱턴 유명 로펌에 스카우트됐으니 나쁜 것도 아니었죠. 뼛속까지 공화당 지지자인 그는 공화당 비판은 삼갔지만 당이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강경 보수론자들에 의해 폭주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듯 했습니다. 그런 폭주형 리더가 조만간 나타날 것이라고…. 지금 보니 그의 말이 맞았습니다. 미국인들은 그런 국가적 리더(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를 뽑았습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살기 가득 찬 이 법정에 피고인을 홀로 두고 떠난다.”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 재판부에 사임의 뜻을 밝히며)◆“적절하지 않은 발언이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부 불신’ 발언에 대해)◆“수도권에 대한 북한의 동시다발 장사정포 공격 대응에는 부적합하다.” (합동참모본부, 국방위원회 국장감사에서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을 구입하자는 의견이 있지만 하마스와 같은 비정규전 부대의 산발적인 로켓탄 공격을 방어하기에 적합한 무기체계여서 수도권 인구밀집지역 방어에는 맞지 않는다며)◆“외교적 노력은 첫 번째 폭탄이 투하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간 낭비’ 트윗 발언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소용없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면서)◆“사무실에서 여성에게 윙크하는 모든 남성이 자신을 방어하려고 갑자기 변호사를 불러야 하는 것도 옳지는 않다.” (과거 성추행 의혹을 받았던 미국 영화감독 우디 앨런, 상습적 성폭행 혐의를 받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을 두둔하며)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이제 ‘세월호 7시간’이 아니라 ‘7시간 30분’에 대해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세월호 사고 당일 대통령에 대한 최초보고 시점을 오전 9시30분에서 오전 10시로 사후 조작했다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발표에 대해)◆“임 비서실장이 본인 추측으로 브리핑했다. 비서실장은 입이 없다고 하는데, (임 비서실장이) 정치적 행동을 한 것을 보면 가볍고 경망스럽다는 생각이 안 드나.” (이양수 자유한국당 의원,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세월호 사고 당일 대통령에 대한 최초보고 시점을 사후 조작한 정황이 발견됐다는 문재인 정부의 발표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비난하며)◆“말 바꾸기를 했다는 주장과 관련,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없다고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 춘추관 브리핑에서 정부는 그간 한미 FTA와 관련해 개정협상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 측과 대화해 나갈 것임을 일관되게 밝혀왔다며)◆“사퇴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던 것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빈자리를 대신해 회사를 이끌어왔던 권오현 부회장, 임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사퇴 결심을 밝히며)◆“한강 씨는 기고문에서 ‘한국전쟁은 강대국의 대리전’이라고 했는데, 청와대가 이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은 이런 황당한 역사인식이 청와대의 생각과 같다는 자백인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청와대가 공식 페이스북에 소설가 한강의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게재한 것과 관련해 책임자를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그런 얘기는 여기서 밝히기 어렵다.” (송영무 국방부장관,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북한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 실행 가능성을 묻자)◆“농업 부문의 경우 더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양보할 부분이 없다고 생각한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농업 분야에의 대미 적자가 심한데도 미국이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개방 확대를 요구할 것이라는 의원들의 지적에)◆“제가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주민번호를 확인해보겠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현행 주민등록번호 부여 체계는 주민번호를 쉽게 유추할 수 있기에 임의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며)◆“그분이 정신상태가 정상인지 의심스럽다.” (가수 고 김광석 씨 부인 서해순 씨, 피고발인 신분으로 조사 받기 위해 경찰에 출석하면서 김 씨와 서연 양 사망 의혹의 배후자로 자신을 지목한 영화 ‘김광석’의 감독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를 비판하며)◆“뜨거운 듯 연신 손을 흔들며 공항 2층 화장실로 달려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자 완 아지룰 니잠 체 완 아지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김정남을 살해한 동남아 출신 여성들이 공격 직후 손에 이상을 느낀 듯한 행동을 보였다고 증언하며)◆“피겨를 하며 체중 이동과 몸의 균형을 맞추는 훈련을 했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일본 여자 피겨스케이팅 간판이었던 아사다 마오, 마라톤 선수로 깜짝 변신해 오는 12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리는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로 했다며)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If you want to get out of a rut bad enough, it‘ll always happen. It’s up to you, though. No one else is ever gonna do it for you.”(당신이 정말로 타성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언제라도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당신에게 달렸다.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지 않는다) ‘타성에 젖는다’(stuck in a rut)는 말이 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말도 있죠. 비슷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새로운 것을 추구할 의지가 없어지고 거의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됩니다. 직장인들은 이런 경험을 한 번쯤을 해봤을 겁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처음 갔을 때는 모든 것이 신기했고 열심히 취재하러 다녔죠. 미 국회의사당 건물에 취재하러 가며 ‘아!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라며 뿌듯했고 백악관에 갔을 때는 ‘이러다가 미국 대통령과 만나는 거 아닌가’하며 우쭐하기도 했습니다. 워싱턴은 정치의 중심지라 뉴스거리가 무궁무진합니다. 한반도 관련 뉴스건, 미국 사회에 관한 뉴스건 취재 열의에 불타올랐던 기억이 새롭네요. 1년 반 정도 지나 워싱턴의 취재 메커니즘에 익숙해지면서 뉴스를 보는 눈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부작용도 생겼는데요. 기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그거 기사 안돼’ 병에 걸릴 조짐이 보인 거죠. 어떤 사안에 달라붙어 파고드는 대신 섣불리 뉴스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취재를 접는 병입니다. 기자에게는 치명적이죠. 매너리즘에 빠질 무렵 워싱턴의 한 북한 관련 세미나를 들으러 갔다가 AP통신의 아시아 담당 기자 옆에 앉게 됐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기자였죠. 그날 저와 그 기자의 차이가 있었다면 저는 세미나 내용을 대충 듣고 있었고 그는 마치 처음 들어본 내용인 듯 열심히 적어가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혹시 놓친 부분이 있을까봐 녹음까지 하면서 말이죠. 워싱턴의 한반도 관련 세미나는 매번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반도 전문가 풀이 좁아 세미나에 비슷한 전문가들이 등장하기도 하구요. 그런 새로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세미나를 열심히 취재하는 세계 최고 통신사의 베테랑 기자. 어떤 차기가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그날 오후 다른 세미나장에서 그 기자와 또 마주쳤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세미나였죠. 저는 약간 늦게 도착했는데 그는 맨 앞줄에 앉아 또 열심히 취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전에 수십 번도 더 취재했을 내용을 또다시 취재하면서 새로운 취재 포인트를 잡고 있는 듯 했습니다. 현대인의 일상은 단조롭습니다. 다양한 곳을 취재하는 기자는 약간 다르지만 말이죠. 타성에 빠지려 할 때, 모든 일에 의욕을 잃는 ‘귀차니스트’가 되려 할 때 저는 종종 그 기자를 생각합니다. 그는 여전히 흰머리를 휘날리며 낡은 녹음기를 든 채 취재현장을 돌아다니고 있겠죠.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보고와 논의의 초점은 어떤 형태의 북한 공격에도 대응하고, 필요하다면 미국과 동맹국들을 핵무기로 위협하는 것을 막기 위한 다양한 옵션들에 맞춰졌다.” (미국 백악관 성명,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으로부터 보고 받은 옵션에 군사공격이 포함됐는지 여부에 이 같이 밝히며)◆“저런 사람을 왜 저렇게까지 보호해줘. 무슨 인권이야.” (딸의 친구를 살해한 ‘어금니 아빠’ 이 모 씨 사건의 현장검증을 지켜본 한 주민, 경찰이 이 씨를 둘러 싼 채 현장검증을 진행하자 반발하며)◆“그 영감님은 자유한국당 지지도나 신경 쓰시라 말하고 싶다.” (최근 바른정당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유승민 의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바른정당 전대 전에 한국당과의 통합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자)◆“저희가 워싱턴에서 느낀 감은 폐기로 간다는 분위기였다.” (정병국 바른정당 의원, 국회 동북아평화협력 의원 외교단 자격으로 미국을 다녀온 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과 관련한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를 전하며)◆“그 일 이후 다시는 그와 작업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미국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 할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을 특종 보도한 ‘뉴욕타임스’에 보낸 편지에서 과거 와인스타인이 자신도 호텔 방에서 추행하려 했다고 폭로하며)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오늘이 가장 걱정했던 날이다.”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에서 열린 5부 요인 초청 오찬에서 이날이 북한의 추가 도발할 가능성이 가장 큰 노동당 창건일이었다며)◆“모든 것을 가졌으면 이제 베풀 줄도 알아야 하며, 모든 것을 가지고도 더 가지려고 집착하면 그때부터 몰락의 길로 가게 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 연장 여부를 결정할 법원의 심리가 진행되는 것과 관련 정부를 비난하며)◆“백악관을 마치 ‘리얼리티 쇼’인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 보브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과거 리얼리티쇼 ‘디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를 진행했을 때처럼 행동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며)◆“아빠가 나가 있으라 해서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친구가 죽어 있었다.” (여중생 살해·시신 유기 사건의 유력한 피의자인 이 모 씨의 딸,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입원 중 경찰 조사에서)◆“이번 연휴 동안 전남을 샅샅이 다녀봤다.”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 한 방송 인터뷰에서 내년 6·13 지방선거에 전남지사 도전 의사를 밝히며)◆“생각 좀 하고 일하지?” “제 일이 아닙니다.”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이 사내 임직원 430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각각 후배가 선배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유감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신의 트위터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임 미 대통령들의 협상은 효과가 없었기에 강력한 대응을 시사하며)◆“그 단 한 가지가 당신이 물러나는 것이냐.” (미국 민주당 테드 리우 하원의원, 트럼프 대통령의 ‘단 한 가지 효과’ 발언을 비꼬며)◆“또 다른 대리전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금, 여기 한반도에 살고 있다.” (소설가 한강, 미국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 친다’는 제목의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수시로 ‘대북 군사옵션’을 언급하는 것을 비판하며)◆“대규모 수명연장 작업을 거치지 않고도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더 운영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마이클 슈미트 미국 공군 전폭기사업단장,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장거리 전략 폭격기 B1-B ‘랜서’가 앞으로 20년 이상 현역으로 활약할 수 있다며)◆“정부는 지금까지 한미 FTA (재협상은) 없다고 얘기를 해왔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재협상에 나서게 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절차가 시작된 이유를 정부가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며)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Television is a medium of entertainment which permits millions of people to listen to the same joke at the same time, and yet remain lonesome.’ (텔레비전은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농담을 듣지만 외롭도록 하는 오락 매체다)유명 시인 T.S. 엘리엇이 한 말입니다. 풍요로운 현대사회에서 미디어의 위력은 날로 증가하고 있지만 현대인은 날로 외로워지고 있다는 뜻이죠. 미국은 미디어, 특히 오락 미디어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산 오락 영화나 드라마가 손을 뻗치지 않는 곳은 지구상에서 없는 듯 합니다. 워싱턴 특파원을 끝내고 돌아오니 미국에서 어떤 드라마를 자주 봤냐고 묻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웬만한 ‘미드(미국 드라마)’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요. 사실 미국에 살면서 TV 시청 시간은 적었습니다. 제가 TV를 보지 않는다거나 미국 TV가 재미없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정반대죠. 한국과의 시간 차 때문에 미국 동부에서 근무하는 특파원은 저녁 시간에 바쁩니다. 자신이 쓸 기사거리를 데스크에서 보내는 발제는 2~3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중요한 업무입니다. 발제를 준비해 회사에 보내는 시간은 미국 TV의 프라임 타임과 겹칩니다. 저녁 7~10시에 해당하는 시간으로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왕창 몰려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기사를 준비하느라 TV에서 뭐가 방송되는지 잘 모릅니다. 사실 요즘은 기본적인 TV 시청보다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 소비 방식이 각광받고 있는 때죠. 미국에서 저 역시 케이블 채널 HBO를 신청했습니다. 케이블이야 그리 발달한 미디어 기술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어쨌든 기본 TV보다는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죠. HBO는 ‘왕좌의 게임’처럼 약간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메시지가 있는 퀄리티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는 프리미엄 채널입니다. 극장 영화도 아무거나 가져다 방송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도저히 1,2 시간을 TV 브라운관 앞에 앉아 있을 여유는 없더군요. HBO도 흐지부지 돼버렸죠. 이번에는 넷플릭스에 도전했습니다. TV 앞에 앉아 있을 시간은 없지만 취재 다니면서 자투리 시간에 모바일로 넷플릭스를 볼 수 있으니까요. 당시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던 때였습니다. 혁신적 스트리밍 방식이니 뭐니 하면서요. 문제는 넷플릭스의 콘텐츠가 매우 풍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방대한 콘텐츠 라인업은 별로 시청할 시간 여유가 없는 사람을 선택의 고통에 빠트립니다. 이걸 볼까 저걸 볼까 하다가 아무 것도 못 보는 사태가 자주 발생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넷플릭스를 신청했습니다. 미국 생활을 추억하려고요. 그런데 왜 이리 콘텐츠가 매우 부족한지요.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이용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를 모아놓은 라이브러리가 미국 넷플릭스가 10개라면 한국은 3,4개 정도입니다. 새로운 콘텐츠가 보강되는 속도도 너무 느리더군요. 그런데도 미국보다 한국 넷플릭스의 월 이용료가 더 비싸니 뭔가 잘못된 듯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미국보다 부실한 제품과 서비스로 더 비싼 요금을 받는 게 한두 개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역시 외국 소비자는 ‘봉’인가요.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As we express our gratitude, we must never forget that the highest appreciation is not to utter words, but to live by them.” (고마움을 표할 때 최고의 감사는 고맙다고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추석입니다. 다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죠? ‘미국 판 추석’은 다들 아시다시피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입니다. 이글은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을 맞아 한 말입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지난 회에 이어 연속 등장하는데요. ‘명언 제조기’라 할만 합니다. 미국인들이 추수감사절 파티에서 잔을 부딪칠 때 즐겨 사용하는 축사라고 합니다. 내용은 좋은데 너무 교훈적인 거 아닌가요. 우리나라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9월말이나 10월초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미국은 추수감사절을 11월 네 번째 목요일로 못을 박아놨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늦습니다. 우리나라 추석처럼 미국 추수감사절 때도 ‘민족의 대이동’이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미국인들은 11월 추수감사절이나 12월 크리스마스 때 고향을 찾죠.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양대 명절을 꼽으라면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입니다. 모두 한 해의 끝에 몰려 있죠. 미국은 추수감사절에서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지는 한달 정도가 일 년의 피크(정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들 고향을 찾고 휴가를 떠납니다. 추수감사절 다음날을 말하는 ‘블랙 프라이데이’부터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미국 쇼핑의 절정 기간입니다.미국인들에게 추수감사절은 즐거운 명절이지만 워싱턴 특파원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입니다. 한국 언론사들은 연말에 기사가 많이 몰리는데 미국은 이 때가 되면 개점휴업 상태여서죠. 미국 취재원들은 대부분 자리에 없거나 업무 종료 분위기입니다. 신년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11월경부터 유명한 미국 석학들에게 수없이 전화를 돌리거나 인터뷰 요청 편지를 써도 80~90%는 거절 답변이 돌아옵니다. 특파원에게 추수감사절 같은 명절은 스트레스지수가 급상승하는 때가 되는 이유죠. 추석 때 송편처럼 추수감사절 때도 구운 칠면조, 크렌베리 소스, 호박파이, 옥수수빵 등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 때 발생하는 교통지옥을 ‘터키 트래픽’(칠면조 교통상황)이라고 부를 정도로 칠면조는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단골 메뉴랍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식 칠면조 요리를 해먹는 분들이 많던데요. 칠면조의 맛이 궁금하시다면 질기고 퍽퍽한 닭고기 같습니다. 칠면조는 크기가 커서 환영받을지 몰라도 별로 맛있는 고기는 아닙니다. 칠면조 요리는 고기 맛이 아니라 ‘어떻게 스터핑(stuffing)을 했느냐’, ‘그레이비(gravy) 맛은 어떠냐’가 승부를 가릅니다. 스터핑은 우리나라 삼계탕처럼 칠면조 속을 발라내고 집어넣는 여러 가지 야채와 햄, 올리브 등을 말합니다. 그레이비는 칠면조 고기 위에 부어 먹거나 찍어먹는 걸쭉한 소스입니다.명절음식을 못 먹으면 약간은 서글퍼 집니다. 특파원 때 추수감사절이 되면 기사 쓸 시간도 없는데 손이 많이 가는 칠면조 쿠킹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대신 한인 타운에 가니 송편을 팔더군요. 송편을 먹으며 추석과 추수감사절을 동시에 기념하던 기억이 새롭네요.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이게 대통령이 국무장관과 소통하는 방식이냐. 믿기 어렵다.” (미국 버지니아대 정치센터 소장인 래리 사바토 교수, 북한과의 ‘외교적 채널’을 언급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트위터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만류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며)◆“우리가 진정 물리력을 써야만 하게 된다 하더라도 당신이 임명한 국무부 장관의 외교적 노력을 조롱하는 건 매우 어리석고 무책임한 처사다.” (과거 공화당 자문 역할을 했던 ‘더 위클리 스탠더드’ 편집장 출신의 윌리엄 크리스톨,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를 지적하며)◆“클린턴이 실패했고, 부시가 실패했고, 오바마가 실패했다. 나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북한과의 대화론을 제기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만류하고 나서며)◆“저야 괜찮은데 이거 뭐 거치적거리면 방해가 아닐까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 교통방송의 ‘교통 통신원’으로 깜짝 변신한 대통령에게 사회자가 “설에도 초대하겠다”고 하자)◆“비행기가 뒤집힐 듯 요동쳐 너무 무서웠다. 한 할아버지는 겁이 나 가방 속에서 우황청심환을 먹었고 아이들 울음소리로 뒤섞인 기내는 공포와 불안의 도가니였다.” (에어부산 승객 정 모 씨, 부산에서 출발한 항공기가 제주공항까지 갔다가 난기류에 착륙하지 못하고 2번이나 회항하면서 승객들이 5시간 동안 공포에 떨었다며)◆“미국 중국 네덜란드는 도움을 제공했지만, 캐나다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은 신변 보호 요청을 거부했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암살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의 피신을 도운 천리마 민방위 관계자,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어제 국군의 날에 연평해전 역사가 담긴 참수리 357호에 올라 총탄 자국을 만지며 총탄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킨 아들들의 용감하고 장한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이 뭉클했다.” (문재인 대통령,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전사자·순직자 유가족과의 청와대 초청 오찬에서)◆“이 순간부터 개혁보수의 승리를 위해 생명을 걸겠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제19대 대선 패배 후 144일 만에 차기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며)◆“우리는 트럼프 세상에서 그의 호전적인 트위터가 아닌 실제 그의 행동을 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네이셔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진짜로 북한을 공격하려 한다면 11월 중국행 일정을 잡지 않을 것이라며)◆“이번 실험이 과거 핵실험들보다 10배나 20배 크다는 정황(indication)이 있는 것 같다.” (라시나 제르보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사무총장, 한국핵정책학회 학술회의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북한의 6차 핵실험 규모를 평가하며)◆“출발하기도 전에 벌써 진이 빠진다.” (추석 연휴에 고향 대신 해외로 출국하는 한 시민, 엄청난 인파가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룬 인천국제공항에서)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A young man who does not have what it takes to perform military service is not likely to have what it takes to make a living. Today’s military rejects include tomorrow‘s hard-core unemployed.’ (군 복무를 이행할 의지가 없는 젊은이는 생계를 꾸려갈 의지도 없다고 볼 수 있다. 지금 군대에서 거부당한 이들은 미래에 실업자가 될 공산이 크다)군인에 대한 존경심이 물씬 풍기는 문장입니다. 군 복무를 통해 삶에 대한 책임감을 배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군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죠. 이 말을 한 주인공은 미국인이 가장 존경한다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1917~63).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에 지원했으나 만성적인 허리 통증 때문에 거부당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해군에 들어가 두 차례 큰 공적을 세워 군인 최고 영예인 퍼플 하트 훈장을 받았습니다. 일부에서는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군대 복무를 했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사실 그렇기에는 공적이 너무 화려합니다. 미군 현대화와 군사훈련 개선의 필요성을 계속 강조했던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에서 발췌한 문장입니다.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워싱턴은 미국 정치의 중심지이자 군 시스템을 총괄하는 헤드쿼터(본부) 같은 곳입니다. 국방부를 비롯해 육군 해군 공군의 최고 사령부가 워싱턴에 있습니다. 매일 군 관련 기사가 쏟아집니다. 가장 쓰기 힘들었던 기사는 미국 군대와 무기에 관련된 기사였습니다. 미국 외교나 정치 기사는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는데 군대, 무기를 다루는 기사는 왠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한국 군대를 가본 경험이 없으니 미국 군대도 알 리가 없었죠. 미국의 최신 무기에 대한 기사를 쓸 때면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정보를 구하기 힘들어 상상에 의존해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군대 경험이 있는 한국 다른 매체의 남자 특파원들도 미국 군대에 대한 기사는 쓰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아직도 구식인 한국 군대와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국 군대는 비교하기 힘들더군요. 제가 거주했던 워싱턴 근교 알링턴은 미국 군대의 최고 결정기관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펜타곤’이라고 불리는 미 국방부도 정확하게 말하면 워싱턴이 아니라 알링턴에 위치해 있죠. 미국 내에서 군인 비율이 가장 높은 곳입니다. 알링턴에 살면서 정말 원 없이 군인들을 봤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의 군인에 대한 존경심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죠. 현역 군인, 퇴역 군인 가릴 것 없습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견돼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군인들이 많아서 동정심과 존경심은 더욱 커진 듯 합니다. 군인 취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나라를 지킨다는 자긍심이 대단합니다. 미국은 존경심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에게는 주지 않는 다양한 경제적 혜택을 군인들에게 제공합니다. 한마디로 미국은 군인으로 살아가기 괜찮은 나라입니다.10월 1일은 한국 건군 69주년 국군의 날입니다. 한국에서는 군사정권의 역사 때문인지 군인, 군대라고 하면 왠지 부정적인 인상이 남아 있죠. 물론 모병제 미국과 징병제 한국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알링턴에 살던 시절 미군이 왜 강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이기는 군대가 돼야 한다.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 확보가 최우선이다.” (문재인 대통령,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건군 69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기념사에서)◆“대통령 발언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적절하지 않다.” (김철근 국민의당 대변인, 논평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조기환수”를 언급한 것을 비판하며) ◆“미국이 폐기 위협을 지속적으로 지렛대로 쓸 것 같다.” (다음달 4일 열리는 한미 FTA 2차 공동위원회를 앞두고 방미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기자간담회에서 폐기 위협을 효과적으로 봉쇄할 방안을 모색하겠다며)◆“아들을 한순간에 잃은 것도 기가 막힌 데 군 당국은 ‘도비탄’ 운운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군 사격장의 총체적 안전 문제를 희석하기에만 급급해 한다.” (진지 공사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 중 갑자기 날아든 총탄에 맞아 숨진 육군 6사단 소속 이모 일병의 아버지, “도비탄으로 인한 총상”이라는 군 당국의 설명이 무책임해 장례 절차를 거부하겠다며)◆“그는 획기적인 남성잡지로 1960년대 성 혁명을 이끌었다.”(로이터 통신, 미국의 유명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창업자 휴 헤프너 부고 기사 중에서)◆“반전은 없었다. 지지율이 30%대 중반에 머물고 있고 그의 성격과 판단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해 유권자 상당수가 대통령 직에 잘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혹독한 현실에 직면해야만 한다.” (팀 말로이 미국 퀴니피액대 부국장, 미국인 유권자 1412명 대상 여론조사 결과 발표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36%에 머문 이유를 설멍하며)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북한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트럼프다. 그들은 그를 이해할 수 없다.” (워싱턴포스트가 인용한 미국의 북한 전문가, 북한 관리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중을 알기 위해 워싱턴에 있는 공화당 분석가들과 대화를 하기 위한 시도를 조용히 진행하고 있다며)◆“B-1B 전략폭격기는 일반적으로 F-15 전투기 4대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하는데, 북한이 전투기로 이를 격추하려 해도 F-15가 먼 곳에서부터 이런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 만약 북한 전투기가 접근한다면 F-15는 경고할 것이고, 이를 거부한다면 B-1B 폭격기가 공격을 받기 전에 격추할 수 있다.” (브루스 베넷 미국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의 주장대로 미국의 전략폭격기를 격추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홈페이지에 일본 열도가 없다고 알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기자회견에서 2018 평창겨울올림픽 조직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세계지도에 일본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한국 측에 정정을 요구했다며)◆“추석 전에 민심 달래기용이나 의전용 행사가 돼서는 안 된다.”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 구두논평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청와대 만찬회동이 안보와 외교 문제를 논의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요즘 적폐청산이라는 화두가 지배하고 있다. 조선 시대의 사화(士禍)를 연상케 하는 그런 난장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 최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을 제기해 논란을 일으킨 뒤 이번에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비판하며) ◆“만약 당신이 일본어 전공자라면 나가도 좋다. 또는 일본에 가서 영화산업에 종사해라.” (‘중국의 애플’로 불리는 전자기기 제조업체 샤오미의 친타오(秦濤) 혁신부 총괄디렉터, 대학 취업설명회에서 일본어 전공자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이며)◆“스티브 잡스는 천재였고 놀라웠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자신이 개발한 윈도폰을 버리고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으로 바꿨지만 애플의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며)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If we learn nothing else from this tragedy, we learn that life is short and there is no time for hate (우리가 이런 비극으로부터 배운 것이 있다면 인생은 짧으니 다른 사람을 증오를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2001년 9·11 테러 희생자 추모식 때 나온 말입니다. 운명의 그날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에 납치돼 워싱턴으로 향하다 펜실베이니아 벌판에 추락한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조종사의 부인이 추모식에서 읽은 조사(弔辭) 중 일부분이죠. ‘어번 딕셔너리’(Urban Dictionary·도시의 사전)‘에는 9·11 추모사를 모아놓은 챕터가 있습니다. 미국은 얼마 전 9·11 테러 16주년을 맞았습니다. 미국은 9·11 테러 후 변했다고 합니다. 9·11 이전과 9·11 이후의 미국은 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는 거죠. 9·11 이전에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저는 9·11 발생 10년 뒤인 2011년 워싱턴 특파원으로 다시 미국에 갔습니다. 얼마나 미국은 달라졌을까. 제가 아는 미국인들은 타인에 대한 친절이 몸에 뱄고, 다른 사람의 일에 잘 관여하지 않으려 합니다. 한국처럼 치열한 경쟁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탓에 좀 어리숙하고 순진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 미국인들이 9·11테러를 계기로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바깥 세계에 대해 의심을 키우고 차별적인 인식을 갖게 된 거죠. 의심의 대상은 주로 이슬람 국가들과 미국 내 거주하는 이슬람 출신 이민자들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특파원 재직 당시 제가 살던 곳은 워싱턴 교외 알링턴이라는 곳입니다. 미국 영화에 자주 등장할 만한 평온하고 경제수준 높은 백인 동네입니다. 그런데 알링턴 서쪽으로 가면 이슬람 이민자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알링턴에 이슬람 집중 거주 지역이 생긴 건 유명한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있기 때문이죠. 이슬람교도들은 하루 종일 모스크에 머물며 기도하고 코란을 읽는 것을 최고의 종교 행위로 여깁니다. 9·11 이후 미국 내 이슬람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이 모스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동양 여성의 모스크 방문이 쉽지 않은지라 주변에 아는 중동 사람들을 총동원해 겨우 방문 허락을 받았습니다. 주변의 미국인들에게 모스크 방문을 자랑삼아 얘기했더니 반응이 싸늘했습니다. “거기를 왜 갔는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었죠. 그 모스크는 급진적인 이슬람 교리를 전파해 미 연방수사국(FBI)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곳이라는 겁니다. 알링턴 백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모스크 이전 청원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모스크 때문에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알링턴으로 모여 동네 이미지가 나빠지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뭐가 진실일까요. 제가 모스크에서 만난 이슬람교도들은 급진과는 거리가 먼 유순한 사람들이었죠. 이슬람이라는 이유로 미국 내에서 받는 차별에 제대로 대응조차 못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반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정말로 그 모스크는 요주의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모스크의 이맘(성직자)은 반미 교리를 자주 설파해 미 정부의 조사까지 받았구요. 아마 진실은 중간 그 어디엔가 있겠죠. 확실한 건 9·11 이후 이슬람이라는 단어가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다는 겁니다. 덕분에 미국 유학 생활 때 이슬람이라는 단어조차 별로 들어보지 못했던 제가 특파원 생활 때는 이슬람 관련 기사를 쓰는 것이 주요 일과가 됐다는 거죠.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이번 위협은 평양과 워싱턴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가능한 무력 충돌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는 공포를 더욱 키웠다.” (미국 뉴욕타임스, 북한과 말폭탄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미국 전략폭격기 격추 위협을 ‘말로 하는 공격(verbal volleys)’ 이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경고하며)◆“우리는 북한에 대해 선전포고한 바 없다. 솔직히 말해 그러한 주장은 터무니없다.” (새라 허커비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북한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주장을 반박하며) ◆“어떤 나라도 국제공역에서 다른 나라의 비행기나 배를 타격할 권리는 없다.” (카티나 애덤스 미 국무부 대변인, 북한 영공이 아니더라도 자위권 차원에서 미국 전략폭격기를 격추할 수 있다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위협을 비판하며)◆“북한은 이번에 자정 무렵이니 전혀 예상도 못 했고 레이더나 이런 데서도 강하게 잡히지 않아 조치를 못 한 것 같다.” (이철우 국회 정보위원장, 북한이 미국 전략폭격기가 북한 동해 국제공역을 비행했을 당시에 아무 대응을 못했고 이후 비행기 이동 배치 등의 후속 조치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국가정보원의 국회 정보 보고 내용을 기자들에게 전하며)◆“김정남이 자는 동안에도 감시를 계속했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북한 김정은이 전 세계에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해 이복형 김정남에 대한 치밀한 암살 계획을 진행했다며)◆“정당한 정치 행위가 아니라 몽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청와대 회동에 불참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이번 국감에서 저희가 중점을 두고자 하는 것은 한마디로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의 원조 적폐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여권의 이명박·박근혜 정부 ‘적폐 청산 프레임’에 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640만 달러 뇌물수수 의혹’에 대한 특검 필요성을 공식화하며)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Justice is merely incidental to law and order. Law and order is what covers the whole picture. Justice is part of it, but it can’t be separated as a single thing.‘ (정의는 법과 질서를 지켰을 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법과 질서가 큰 그림을 만든다. 정의는 한 부분이지만, 개별적인 것으로 따로 떼어낼 수는 없다). 정의를 실현하는 것보다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게 우선이라는 뜻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법과 질서를 준수했을 때 정의가 실현될 수 있지만 안 될 수도 있죠. 정의가 실현되지 않아도 할 수 없습니다.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법과 질서를 최우선 순위에 놓는 지극히 미국적인 발상을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얼마나 중요하면 ‘로 앤 오더’(Law & Order·법과 질서)라는 제목의 미국 TV 드라마가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케이블 TV에서도 방송되고 있던데요. 별로 재미는 없는 드라마지만 무고한 시민들이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미국에 살다보면 교통 법규 위반에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여러 차례 ‘딱지’를 떼본 경험이 있는데요. 미국에서는 딱지(traffic ticket)를 ‘핑크 슬립(pink slip)’ 또는 ‘화이트 슬립(white slip)’이라 부릅니다. 경찰이 분홍색 또는 흰 종이에 위반 내용을 적어주기 때문인데요. 직장에서 해고 사실을 통지 받을 때도 “핑크 슬립을 받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번은 워싱턴에서 한 유명한 현지 한반도 전문가를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얘기를 하다보니 빨강 신호에 좌회전을 하게 돼 교통경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노랑 신호에서 좌회전을 시작해 중간 정도에 빨강으로 바뀐 겁니다. ‘완전히 내 잘못은 아니니 경찰한테 어필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 적지 않느냐고 조수석에 탄 전문가에게 얘기했더니 이 같은 충고가 돌아왔습니다. “경찰이 위반했다고 하면 위반한 것이다. 경찰에 항의하다 범칙금만 더 올라간다. 경찰의 판단을 100% 존중해야 한다.” 경찰에게 미소 지으며 최대한 공손하게 미안하다고 했더니 100달러짜리 핑크 슬립을 끊어주더군요. 위반을 했더라도 일단 잡아떼기, 신분 과시하기, 정 안되면 경찰 폭행하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태를 무마해보려는 한국 운전자들의 습성이 저도 몸에 밴 것일까요. 미국인들은 법과 질서를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어릴 적부터 배우니까요. 미국에서 정의와 법질서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이 글 첫 문장의 주인공은 ‘미연방수사국(FBI)의 전설’로 불리는 존 애드가 후버 전 국장입니다. 48년 동안 FBI 수장을 지내며 미국 대통령도 어찌 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후버 전 국장에게 정의보다 법과 질서가 앞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겠죠.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